20061027
반성하지반성하지반성하지반성하지 않는않는않는않는 사회사회사회사회,,,, 반성하는반성하는반성하는반성하는 법을법을법을법을 가르치지가르치지가르치지가르치지 않는않는않는않는 학교학교학교학교....
필자는 지난학기 총학생회의 정책기획국장을 맡은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생활관 수칙 개정과정에 개입한 바 있으며, 어느 정도의 후회와 어느 정도의 자기위로를 하면서도, 현재의실태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답함을 또한 느끼고 있다. 지난 뒷북 대자보를 접한 학우 개개인이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진 학우들의반응은 크게 3가지였다. ①대자보에 담겨있는 약간의 애교로 인해 귀엽다는 반응과, ②그래서간사님들이 제대로 규제해주길 바라냐는 반응, ③내용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외에는 ‘무반응’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무관심일지도 모르겠으나, 너무나 뒷북인 관계로 그저 무반응으로해석하고 싶을 뿐이다.지난번 대자보의 표현대로 우리는 분명 젊은 꿈나무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학교에서 몇 년간굴러먹은 짬밥으로 나도 어느 정도의 좌절과 이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회의가 늘어가고있는 것은 사실이리라. 이러한 이유로, a4 한 장의 글을 쓸 때, 단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던어린 날의 성실함은, 이제 “이 사회에 있어서 대자보란 내용적 성실함이 아니라 그저 붙이는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라는 말로 정당화 되며, 내용적 정교함을 떠나 이러한 허접한 대자보에대해 학우들이 반응하고 열띤 토론을 해주리라는 미약한 기대만을 가지고 글을 붙이게 된다.이곳은 나만의 이곳이 아니기 때문이다.지난 대자보의 내용은 정교하지 못하다. 글 그 자체로는 여러 측면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며,자유와 규제의 대립구도로 보았을 때, 오히려 규제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말 그대로 학우들의 토론을 기대했다. 그리고 이제, 이미 익히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시반복하며 어떤 결론을 내 보고자 한다.
했던했던했던했던 이야기를이야기를이야기를이야기를 또또또또 해야만해야만해야만해야만 한다한다한다한다....지난 봄 학기 개강 이전에 이루어진 교수수련회에서는 생활관의 한 간사는 ‘2006 간사사역소개 및 야작 관련 교수 협조 건’이라는 제목으로 교수들에게 협조를 구하였다. 간사사역과기타 학우들의 생활실태에 관한 통계자료를 보고하였으나, 그 주된 결론은 야작의 허가 과정에교수들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교수들에게 야작 신청 학생들에게 보다 관심을기울여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허나, 이에 교수들은 소위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을결의하는 과민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의사소통과정의 오해와 교수들의 인식부족에 관해 필자는공문에 ‘교수들의 수준 낮은 인식’이라는 표현을 썼다.(이것이 자치회장이생활관수칙개정과정에서의 모든 책임이 필자 탓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부분적 이해로
Add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