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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힌두교의 이해

류 경희
(인도어과 강사)

1. 머리말

인도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웠던 것은 각 州의 경계를 넘을 때마다 달라지


는 말과 글씨 그리고 사람들의 생김새와 풍습이었다. 그러면서 묻게 된 질문은, 이렇듯 다양하고 이질
적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대륙을 ‘인도’ 라는 한 나라로 묶어주는 그 끈
은 과연 무엇일까? 였다. 흔히 인도인들의 지배적인 종교인 힌두교를 이러한 끈들 가운데 하나로 지적
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힌두교가 하나의 종교체계라기 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인도인들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들의 의식과 삶을 지배해온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힌두교는 다
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인도 사회를 통합하고 인도 문화가 단절없이 그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
록 해주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1
그러나 오늘날 힌두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서구 근대성의 도입과 그
로 인해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도입된 일이다. 많은 인도인들이 앞서 언급했듯이 힌두교는 종교가 아
니며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힌두교가 인도인들에게는 단순한 신념체계로서의 사상이나
행위체계 이상임을 의미한다. 다시말해 인도인들에게 종교는 그들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생활
그 자체임을 맗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적 사유나 삶의 방식과는 이질적인 세속적인 사유와 삶의
방식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속도가 매우 느리기
는 하지만 현재 인도에서 세속화 과정이 전지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고 그로 인해 인도인들의 종교 삶
에 불확실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2 그러나 현재도 힌두교도수가 인도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할만큼 힌두교는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잡고 있고 인도인들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중요성을 재주장하는 움직임들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인도인들의 삶에서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리라고는 쉽게 예단할 수 없을 것 같다. 힌두 근본주의의와 그 지지 기반의 확
대현상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 해주는 한 예이다.
이와같이 힌두교가 인도인들의 삶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사회
와 문화의 통합과 지속요인으로 주요하게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힌두교를 이해하는 일은 인도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종교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두 요
소인, 사상체계와 행위체계를 중심으로 힌두교의 제 현상을 설명함으로써 현대 힌두교의 핵심 내용들
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힌두 사상체계에서는 힌두 사상이 지닌 통합적인 관점과 그 기능을
살펴보고 행위체계에서는 그러한 관점이 그들의 의례체계를 통해 어떻게 表象되고 있는가를 살펴본
후 현재 힌두 근본주의 운동의 대두 문제를 힌두 사상의 통합적인 시각과 관련지어 다루게 될 것이다.

2.힌두 종교사상의 통합적 관점: 하나의 근원적인 존재의 다양한 顯現

1) Pannalal Dhar는 인도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통합하는 힌두교의 기능을 힌두교도들이 힌두의례인
뿌자에 사용하는 말라의 실에 비유한다. 말라는 많은 꽃봉오리들을 실로 꿰어 화환 모양으로 만든 것
이다. 그는 비베까난다가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에서 힌두교가 차지하는 이러한 중요성을 파악한 반면
에 네루는 이 점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힌두교에 대한 네루의 부정적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India and Her Domestic Problems(CalCutta: Punchi-Pustak, 1993), ‘인도에서 종교와 그것이 삶에서 차지하
는 위치'항 참조.
2) T. N. Madan, Religion in India(Delhi: Oxford Univ. Press, 1992), pp. 19-20
(1)수억의 신들과 하나의 신

외부인이 힌두 종교 현상을 처음 접할 때 받게 되는 일반적인 인상은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혼돈스러움이다.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사원들, 또 그곳에 모셔진 많은 수의 신과 신성한
존재들, 즉 쉬바나 비슈누와 같은 남신들과 두르가나 깔리 등의 여신들 그리고 원숭이 신인 하누만이
나 코끼리 신인 가네쉬와 같은 동물, 소마와 같은 식물, 산의 신인 희밀라야, 강가나 야무나 같은 강, 그
리고 태양과 달과 같은 천체 등 자연물을 신격화시킨 신들에서 신격화된 성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종
류와 수가 엄청나다. 인도 신화가 말하고 있는 3억 3천에 달하는 신들의 숫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현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수많은 신들만으로도 힌두교를 이해해 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
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스러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이와같은 수많은 신들
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힌두교도들이 신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며 모든 존재에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는 점이다. 그렇다면 힌두교는 多神敎인가? 아니면 一神敎인가? 아니면 一元論(Monism)인가? 그들의
대답은 모두 다 라는 것이다.

하나의 根源的 實在의 다양한 自己顯現

힌두교도들의 신학적인 설명에 의하면, 하나의 근원적인 實在인 브라흐만 혹은 神이 존재하며 그것


은 이 우주의 모든 존재에 偏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서 신의 개념은 자신의 의지로 無로
부터 우주를 창조한 인격적인 신 개념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힌두 사상에서 窮極的 實在는 무한하
고 영원하며 변화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이자 모든 형태와 속성을 초월하는 비인격적인 존재로서 우주
를 피조물로서 創造했다기 보다는 자신으로부터 전 우주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 근원적 실재의 자기 표현이며 우주는 이 신의 다양한 나타남이다. 그러므로 신은 자연의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며 모든 자연은 신성한 것이며 신은 어떠한 형태로도 숭배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
한 우주론에 적합한 용어는 創造(creation)라기보다는 전변(transformation이나 eman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힌두교에서 신이 여러 명칭과 형태로서 숭배되어지는 까닭은 바로 이 신의 편재성
과 내재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와같이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서 神性을 인지하는 힌두교도들의 사유는 우주를 이해하는 그들의 통
합적인 시각, 다시말해 현상계의 다양성 배후에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통일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
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힌두 사상은(매우 다양한 사상의 흐름이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二元論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본질
을 신적인 존재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는 一元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처음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수없이 많은 신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해 지는 듯
하다. 그러면 힌두교에서 그 하나의 근원적 존재가 자신을 수많은 신적인 존재들로 드러내는 구조와
방식 그리고 유형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궁극적 實在의 기능적 分化와 신들의 유형

힌두 사상에 의하면 하나의 근원적 실재인 브라흐만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즉 속성과 형태를 지
니지 않는 非人格的인 측면인 니르구나 브라흐만(Nir-guna Brahman)과 속성과 형태를 지니는 인격적
측면인 사구나 브라흐만(Sa-guna Brahman)이다. 이 가운데 자신을 우주로 드러내는 것은 사구나 브라
흐만이다. 이 사구나로서의 브라흐만이 자신을 기능적으로 분화시켜 창조의 기능을 담당하는 브라흐
마(Brahma), 우주의 유지를 담당하는 비슈누(Vishnu) 그리고 우주의 해체를 담당하는 쉬바(Shiva) 신으
로 顯現시켰다. 그리고 이 세 신들은 각각 사라스와띠(Saraswati), 락슈미(Lakshmi), 움마(Uma) 등 많은
여신들을 배우자로 삼아 자손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모두 신으로 숭배된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여신
들, 그 중에서도 두르가나 깔리 등과 같은 쉬바의 배우자들은 남신과 동등한 힘을 지니는 존재로서 숭
배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힌두교의 종파는 크게 비슈누 신앙과 쉬바 신앙 그리고 여신숭배 신
앙으로 대별될 수 있다.4

3) 이러한 힌두 신 개념에 대해서는 D. Sharma, Hindu Belief and Practice(New Dehli: Arnold Heineman,
1987), 4장 Concept of God ; S. C. Chakravarti, Hinduism(Dehli: Motilal Banarsidass, 1991), p. 23 ; P. K.
Sharma, Hindu Religion and Ethics(New Dehli: Asian Publication Services, 1979), Part 1, 1, 2 장 참조.
4) 브라흐마에 대한 신앙은 아주 미미해서 그에게 받쳐진 사원이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이들 신들과 관련되는 다양한 신화적 존재들이 숭배되는데 이들을 다음과 같은
세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아바따라Avatara 개념에 의한 神格化이다. 이것은 신이 물
고기, 동물, 인간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자신을 化身시킨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인도에서 대중
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라마나 크리슈나 신 등이 대표적인 예이고 때론 전설적이거나 역사적으로 위
대한 인물이 신격화되기도 한다.
둘째는 자연물이 신격화된 형태이다. 예컨대 코끼리, 소, 원숭이, 새, 보리수, 소마 등의 동식물, 강가,
야무나, 히말라야(특히 카일라사)의 강과 산 그리고 태양, 달, 등의 천체 등이 신으로 숭배된다. 그리고
신들은 엔드로진Androgyne 형태를 취하기도 해서 반인 반사자 형태를 취하는 나라심하(Narasimha)와
같이 반인반수형태의 신들과 브라흐마, 비슈누 그리고 쉬바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신들임을 표상하
는 뜨리무르띠(Trimurti), 쉬바와 비슈누가 하나의 신임을 주장하는 하리하라(Harihara), 쉬바와 여신의
결합형태 등과 같이 신과 신이 결합한 형태의 신들이 있다. 그럼 이 가운데 힌두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하는 아바따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아바따라 思想

‘내려온 자’라는 뜻의 아바따라는 신의 化身(Incarnation) 개념이다. 이 신앙의 핵심은 신이 자신을 드


러내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인간이나 동물 등의 형태를 취하고 지상에 자신을 나타낸다는 믿음이
다. 이와 유사한 믿음은 인도 뿐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인간 종교성의 일면을
드러내주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5 이 사상은 서력기원 수세기 전인 마하바라따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가 형성되던 시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6 힌두교도들 사이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다.
특히 이 신앙은 비슈누 신과 밀접히 관련되어지는데 힌두 신화에 따르면 비슈누는 자신의 신봉자가
위험에 처해있거나 지상의 다르마가 오염 또는 쇠퇴될 때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형태를
취하고 지상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힌두교도들은 대표적인 10 아바따라를 숭배한다. 즉 물
고기 마쯔야, 거북이 꾸르마, 멧돼지 바라하, 반인 반사자 나라심하, 도끼를 가진 파라슈라마, 전설적 영
웅이거나 왕인 라마와 끄리슈나,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그리고 미래에 올 아바따라인 깔끼 등이다. 이
가운데 라마와 끄리슈나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아바따라이다.
힌두 신화에 의하면 제 7 마누 통치시에 대홍수로 지구가 파괴될 때 비슈누는 한 큰 병에 일곱 성자
와 그들 부인들 그리고 모든 동물의 쌍들을 들어가게 한 후 홍수가 나자 물고기 형태로 나타나 마누를
구하고 그가 조물주의 역할을 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 물고기가 바로 마쯔야이다. 라마는 서사시 라
마야나의 영웅으로 이상적인 힌두 왕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비슈누의 아바따라로 믿어진다. 끄리슈나
는 마하바하라따의 한 부분인 바가바드기따에서 비슈누의 아바따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깔끼는 우
주의 해체 시기인 깔리유가에 나타나게 될 아바따라로 정결함과 질서의 새시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신들을 통해서 힌두교에서 신은 전우주의 모든 형태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로 이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우주를 하나
의 근원적 실재의 자기현현으로 이해하는 힌두 사상의 통합적 관점을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
는 부분이다. 결국 힌두 종교 심성은 전 우주를 신성한 것으로 인식하며 따라서 힌두교에서는 聖의 영
역과 俗의 영역의 분리가 그리 엄격하게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다.(물론 순결과 오염의 대립 개념은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듯 다양한 신들의 유형은 힌두교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서 인
도에 존재해 온 다양한 신앙 형태들을 힌두교 라는 하나의 신앙체계 내에 흡수통합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바타라 개념은 중요한 통합기능을 해왔고 현재도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를 비슈누의 아바따라로 해석하여 힌두교 내에 흡수한 것이나 토착
인들 가운데 신봉되던 끄리슈나 신앙을 흡수한 것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남부의 한
힌두 사원에서 접했던 비슈누의 부인 락슈미의 여러 아바따라 들도 남부의 여러 토착 여신 신앙들을
힌두교로 흡수 통합시킨 결과로 보인다.

5) Daniel E. Bassuk, Incarnation in Hinduism and Christianity(Macmillan Press, 1987), p. 3. Bassuk은 이 저


서에서 동서양의 化身 개념을 힌두교의 아바따라 사상과 기독교의 성육신 사상을 통해 비교하고 있다.
6) S. Radhakrishna, ed., The Cultural Heritage of India(Calcutta : The Ramakrishna Mission, 1982), vol. 2, p.

84, Bassuk, 앞의 책, p. 3.
뿐만 아니라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주요한 종교적 인물들에 의해 일어난 종교 운동들이 그들의 지도
자들을 아바따라로 해석함으로써 힌두교 내에 통합되어 왔다. 예를들어 성자로 숭상받는 차이딴야
(Chaitanya), 라마끄리슈나(Ramakrishna), 오로빈도 (Aurobindo) 등과 현재 인도에서 가장 명성을 얻고
있는 인물인 사이 바바(Sai Baba) 등이 그들이다. 사이바바는 그의 사진이 현재 인도 가정 집이나 여러
상점 등에서 신들의 상이나 사진들과 나란히 놓여 있을만큼 신성시되고 있다.

3.힌두 宗敎儀禮: 自己淨化의 행위

(1) 神像 崇拜와 명상

우리는 힌두교도들의 종교의례인 뿌자에서도, 앞서 수많은 신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신을


주장하는 현상에서 느꼈던 혼돈스러움과 또다시 만나게 된다. 수없이 많은 종류와 형태의 신상과 상징
들을 사용하는 종교의례, 특정 신을 숭배하는 사원 안에서 발견되는 다른 많은 신상들. 신은 아마도 모
든 존재와 형태들로 表象化될 수 있는듯이 보이고 힌두교에서 서로 다른 신을 신봉하는 것에서 오는
종파 간의 대립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상호 교환 가능한 신들을 숭배하고 있는듯이 보
인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상징숭배 형태와 더불어 이와는 크게 대조를 보이는 명상하는 사람들을 발
견하게 되는데 그들은 어떠한 상이나 상징들도 사용하지 않은채 홀로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는 정신
집중에 몰두한다.
이와같이 힌두교의 종교 의례인 뿌자는 크게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즉 정규적으로 하루에 두
세 번 신을 숭배하는 뿌자와 축제 등의 특별한 경우에 일시적으로 행하는 뿌자 등은 신상을 사용하는
신상숭배 형태를 취하지만 요가나 명상 등은 신상이나 여타 상징을 사용하지 않는 뿌자 형태이다. 이
렇듯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형태의 종교행위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앞서 언급한 힌두 사상의 통합적 시각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2) 뿌자: 자기 淨化의 행위

인도에서 흔히 뿌자 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하루 두, 세 차례 가정의 사당이나 사원에서 꽃, 呪文, 등


불, 향, 음식 그리고 물 등을 사용하여 신상 앞에서 수 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행하는 의례를 지칭한
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뿌자는 자신을 정화시키려는 의도로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힌두교에서 종교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숭배자나 수행자들이 종교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킴으로써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인 輪廻로부터 解脫에 이르도록 돕는데 있
기 때문이다. 여기서 解脫의 의미는 인간의 본질이 우주의 근원적 실재 또는 신의 본질과 동일하다는
것을 자각적인 체험을 통하여 깨달음으로써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달리말해 자아실현
또는 신의 실현을 의미한다. 따라서 뿌자의 형태가 위와 같이 구분되기는 하나 그 목적은 자기정화란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뿌자란 말의 의미는 신에게 꽃을 바친다는 것으로, 실제로 힌두 종교의례에서 꽃 특히 화환은 매우
보편화된 供物로서 사용되어진다. 꽃은 그것이 꽃봉오리를 저절로 펴듯이 인간이 신을 향하여 자연스
레 마음을 여는 것을 상징화하기 때문이다.7 따라서 뿌자를 행하는 사람은 순결함과 순수함 그리고 열
린 마음으로 뿌자에 임해야 하며 뿌자를 통하여 감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순화되는 것으로 믿는다. 다
시말해 뿌자가 인격신에 대한 외적인 절대적 봉헌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면 내적인 명상 형태를 취하
든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정화에 의한 에고이즘의 제거를 통해 우주적 통일성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종류의 의례 형태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인도인들이
신을 상징화 시키는 방식에는 최고의 추상화와 최고의 구체화 라는 양극적인 경향이 모두 발견된다.
즉 브라흐만 개념처럼 추상적인 개념이나 스와스따까와 같은 도안, 얀뜨라나 만달라 같은 도형들 그리
고 오움 같은 글자나 소리 그리고 빛 등으로 상징화되는가 하면 다양한 형태의 구체적인 신상들로 형
상화되기도 해서 신은 마치 모든 존재와 모든 형태로 상징화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상징으
로 형상화된 대상들에 대한 힌두교도들의 숭배행위는 외부인들 특히 유일신 관점에 서는 이들에 의해
우상숭배로서 지칭되며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오기도 했다. 무슬림들이 인도로 들어와 수많은 힌두 사원

7) D. Frawley, From the River of Heaven(Dehli: Motilal Banarsidass, 1992), p. 97.


과 신상들을 파괴했던 것도 바로 이 우상숭배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예를
바라나시의 비슈와나트 사원과 아요댜의 람 사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힌두교의 숭배형태가 우상숭배라는 주장에 대하여 힌두교도들은 다른 이해와 설명을 제시해
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신상이나 아이콘(icon)은 하나의 신을 가리키거나 표현하는 다양한 형태의
상징일 뿐 그 자체가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축제와 같이 일시적으로 행해지는 특별한 뿌자의 경
우, 그 뿌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신상을 뿌자가 끝난 뒤 강물에 잠그는 등 신상을 폐기시키는 행위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힌두교에서 의례의 주요 목적이 자기 정화의 과정을 통하여 신을 인지하도록
돕고 신의 편재성과 내재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므로 신을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명상이 최고의 의례형
태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용이한 것이 아니므로 그들을 위한 보다 용이한 방법으로써 구체적인 상징이
사용되어 진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종교적 수행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 즉 신성한 존재를 외적인 존재로 인지하는 단
계, 자신 속에 내재하는 신성으로 인지하는 단계 그리고 모든 곳에 편재하고 내재하는 하나의 신으로
인지하는 단계가 있는데 초기 단계에서는 신의 인지를 위하여 신상 등의 상징의 사용이 필요하나 진
전된 정신적 단계에서는 상징의 사용을 하지않는 명상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8 그러나 다양성을
통합성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이러한 신학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상징숭배를 행하고 있는 대다수
일반 힌두교도들이 실제로 이러한 힌두교의 근본 사상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그
들의 종교적 행위의 목적이 지극히 기복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신학
적인 설명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힌두교의 발전과정에서 상이하고 다양한 신앙형태들을 힌두교
라는 하나의 체계내에 수용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聖地巡禮의 의미와 그 기능

많은 힌두교도들이 즐겨 하고 있는 성지순례 역시 중요한 종교의례로, 넓은 의미의 뿌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인도에서는 매년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인도 전역에 펼쳐져 있는 성지들을 순례하고
있다. 성지는 전인도에 걸쳐 수백 장소가 되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도 동, 서, 남, 북단에 위치한 4대 사
원 즉 뿌리의 자가나트 사원, 드와르까의 드와르까데쉬 사원 , 라메스와람의 라메스와람 사원 그리고
바드리나트의 바드리나트 사원과 그리고 히말라야 지역, 강가와 야무나 강 또 인도의 정신적 수도 라
고 할 수 있는 바라나시가 보다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져서 모든 힌두교도들이 방문하기를 열망하는
순례지가 되고 있다.
힌두 경전들이 정신적 단련과 내적인 淨化가 성지순례와 동일한 효능을 지닌다고 지적하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일반 힌두교도들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수행자들도 순례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그들의 종교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힌두교도들에게
성지순례는 의무이자 열망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4대 사원 및 바라나시로의 순례는 再生에
앞서 낙원을 경험하거나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9
사실 그들의 순례 과정을 지켜 보노라면 그것은 마치 고행의 과정처럼 느겨진다. 순례자들 중에는 부
유층과 지식 계층도 물론 포함되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계층들이다. 그들은
순례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여 저축을 하고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길고도 먼 여행을 한다. 순례
기간 중에도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서 노상에서 음식을 해먹고 역 광장이나 사원 근처의 땅바닥에
서 잠을 자기도 한다.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고행을 감내케 하는 힘을 불어 넣어 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열망이다. 이러한 순례의 과정은 그것이 외적인 숭배대상인 신
과 만나는 과정이든 자기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든 근본적으로는 자기자신의 본질
을 실현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힌두 순례는 이러한 종교적 기능 이외에 전힌두교도들을 종교, 사회, 문화적으로 통합시키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인도 아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성지들 특히 동서남북단에 위치한 4대
성지인 뿌리, 드와르까, 라메스와람 그리고 바드라나트를 평생에 한번은 모두 순례하도록 한 순례제도
는 중세 인도의 사상가인 샹까라가 동일한 종교, 문화 의식의 형성을 통하여 전힌두교도 더 나아가 인
도사회를 통합시키려는 의도로 세운 것이다. 그는 이러한 순례가 다양한 배경을 지니는 순례자들에게
인도의 언어, 신앙, 종족, 관습 등의 다양성을 인식케 하고 서로의 교류를 가능케함으로써 인도통합의

8)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D. Sharma, 앞의 책, pp. 24-29와 S. S. Chakravati, 앞의 책, p. 85 그리고 The


Cultural Heritage of India, vol. 4, p, 434참조.
9) D. Sharma, 앞의 책, p. 50.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실제로 순례는 그러한 기능을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3.힌두 사상의 통합적 관점과 힌두 근본주의


지금까지의 고찰을 통하여 힌두 사상의 근저에는 전우주를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체로 인식하는
우주관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통적 우주관에 의하면 전우주의 모든 현상과 존재
들은 근원적 실재의 자기 현현이자 부분들로 이해되어 그 모두에 神性性이 부여되어 왔다. 따라서 모
든 사물에서 신성을 인지하는 인도인들에게는 聖과 俗의 영역이 분리되기 보다는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 사회와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이 추구해야할 가치이며 그러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
시킬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인도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우주에 대한 인식과 삶의 방식은 서구적 세계관과 세속주의
의 경향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온 도전들
에 유연한 반응을 보이며 그 지속성을 유지해온 힌두교가 지금의 새로운 도전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
응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인도에서 힌두 근본주의가 대두되는 현상은 바로 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드러진 반응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힌두 근본주의 운동이 표면적으로는 무슬림과의 분쟁을 야기시켜왔다고 하더라
도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서구적 세속주의 경향에 대한 反운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힌두 근본주의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은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세계를 엄격히 분리하는 그리하여 聖
과 俗을 구분하는 서구적 우주관과 속의 영역의 확대인 세속주의는 모든 사물에서 신성을 인지하는
인도인들의 심성에는 수용되기 힘든 것이며 또한 서구의 세속주의 개념은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내적
인 균형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따라 자연을 재질서지우려는 것이므로 인도인들의
의식에 부합될 수 없는 것으로 거부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그들은 인도의 독립을 전후로 해서 지금
까지 지속되고 있는, 인도인들의 의식을 세속화시키려는 세속주의자들의 노력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성공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한다.10
결국 그들은 인도가 직면하고 있는 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서구적 시각이나 관행이 아니라 인도의
전통적인 시각과 관행으로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서구 문화의 산
물인 세속주의 또는 세속화 개념이 여전히 종교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비서구권에 이전되어 그대로
적용되어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인도의 경우 독립과 더불어 세속국가가
건립된 이래 세속주의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가지 난제가 발생해
왔고 힌두 근본주의 운동의 대두로 인한 상이한 종교집단간의 되풀이되는 유혈 폭동 사태가 그 대표
적인 예로 지적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근본주의 운동의 대두로 인한
종교 집단 간의 유혈폭동 사태는 힌두교가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통합기능과는 달리 인도 사회의 통합
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이다. 따라서 힌두 근본주의의 등장은 한편으로
는 세속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힌두사상의 강력한 자기주장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다
양한 인도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해온 힌두교에 새로운 과제를 부과해 주고 있는 듯하다.

10)Jitendra Bajaj, ed., Ayodha and the Future India(Madras: Center for Policy Studies, 1993), 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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