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논문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에 기초한
수학적 실재론 연구

지도교수 양 문 흠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이 진 희
2005

박사학위논문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에 기초한
수학적 실재론 연구
이 진 희

지도교수 양 문 흠
이 논문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05년

이진희의 철학박사학위 논문을 인준함
2005년

위원장

(
인)

(
인)

(
인)



동국대학교 대학원

(
인)
(
인)

I. 서론 ·························································································1

II.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7
유명론
1. 실재론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 ·····································································8
2. 과학에서 수학의 역할과 존재론적 논의의 구조 ······································19
3. 베나세라프의
베나세라프의 딜레마와 인과적 인식론·······················································27
인식론
4. 필드의 허구주의와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32\
추론

III.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확증적 전체론···································53
전체론
1.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자연주의 ·····································································55
2. 콰인의 존재론과 이론 선택의 기준·····························································63
기준
3. ‘필요불가결성
필요불가결성’과
필요불가결성 과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73
전체론
4. 경험적 확증과 여가적 수학 ···········································································81

i

IV.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비판··········································88
비판
1.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소버의 비판···············································90
비판
2.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메디의 비판···················································107
비판
가. 공리선택의 기준과 수학의 자율성 ··············································· 109
나.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과학 ····························································· 119

V. 물리적 해석과 유클리드적 구조·········································132
구조
1. 레스닉의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133
논증
2. 전체론에 대한 레스닉의 부적절한 옹호···················································149
옹호
3. 수학의 적용과정과 경험적 확증 ·································································157

VI. 결론 ···················································································166

참고문헌 ··················································································171

ABSTRACT·············································································179

ii

I. 서론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은 ‘수’, ‘집합’,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
한 존재론적 주장이다. 수학적 대상은 일반적으로 추상적 대상의 전형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수학적 실재론은 종종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긍정한
다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플라톤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존재론적 문제가 그러하듯이,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은 인식론적 문제와 관련되어 논의된다. 즉 “수학적 대상은 존재하는
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는가”와 관련하여 논의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인식
론적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추상적 대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자
들이 그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학과 관
련해서는 이러한 일반적 상황이 성립하지 않는다. 수학과 관련한 존재론적
문제의 독특성은, 추상적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유명론자들
이 실재론자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설명의 부담을 안는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실재론자들이 의존하는 논거가 상당한 설
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실재론자들이 의존하는 중요한 논거는 수학이 참이
라는 것이다. 그들은 수학이 참이기 때문에 그 진술이 지시하는 대상은 존
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명론자들 역시 쉽게 부정하기 어려운 논거에
의존한다. 그들은 물리적 대상인 우리가 추상적인 수학적 대상에 대한 믿
을 만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5는 3보다
크다”와 같은 수학적 진술을 분석해 보자. 실재론자들은 이 진술이 명백하
게 참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은 5와 3이라는 수학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
에 대한 주장이기 때문에 이 진술을 받아들이는 한 우리는 수학적 대상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유명론자들은 우리는 추상
적 대상에 대해 어떤 신뢰가능한 지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5와 3과 같

1

은 대상의 존재를 승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수학적 진술을 유명론적으
로 재해석할 것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허구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은 우리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로 이끈다. 수
학이 참임을 받아들이면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승인해야 하며, 추상적 대
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수학이 참임을 쉽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수학은 단순히 참일 뿐 아니라 논리학과 더불어 선험적
지식의 전형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수학이 참임을 부정하기는 더욱 어렵
다. 그러나 추상적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회의 역시 간단히 포기할 수 없
는 건전한 철학적 반성이다.
특히 인식론적 회의를 주로 제기하는 경험주의자들에게 수학적 실재론은
심각한 난제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왜냐하면 수학적 실재론이 성
립한다면 우리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선험적 지식을 갖게 되며 이것은 경
험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주의자들은 수학
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수학적 실재론은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수학적 진
술의 선험성을 제거하거나 유명론적 언어로 재해석하려 했다. 논자가 여기
에서 경험주의자들의 논의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본 논문에서 다루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기초한 수학적 실재론자들이 모두 경험주의자들이
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통적인 수학적 실재론자들 혹은 플라톤주의자들과
는 달리 수학의 선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수학이 독
립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콰인에 의해 제안되고
퍼트남이 정식화해서 ‘콰인-퍼트남 논제’라고도 불리는 ‘필요불가결성 논
증’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수학의 참임이 논리적 방법이나 수학적 방법에
의해서 정당화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필요불가결성’이라는 용어가 의미하
듯이 그들이 수학이 참임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에 수학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과학이 참인 것처럼 수학 역시 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당
화하는 수학은 과학의 이론적 진술과 마찬가지로 결국 경험에 의해서 정당

2

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출발점은 과학이 참이라는 것
이며, 그것은 ‘필요불가결성 논자’ 들의 철학적 경향인 ‘과학에 대한 신뢰’
혹은 ‘자연주의’에 의해 지지된다.
그런데 ‘과학에 대한 신뢰’ 혹은 ‘자연주의’는 유명론자들도 공유하는 철
학적 경향이다. 그들은 모든 지식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해야 하는데, 추
상적 대상은 원칙적으로 우리와 어떤 인과적 관계도 구성할 수 없기 때문
에 그러한 대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
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기초한 실재론자들이 현존하는 과학에 대한 신
뢰는 수학에 대한 신뢰를 동반한다고 주장한다면, 유명론자들은 과학적으
로 설명될 수 없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을 글자 그대로 수용할 수 없
다고 주장한다. 즉 적어도 본 논문에서 다루는 유명론자들 역시 과학이 참
이라는 것을 논의의 전제로서 수용하기 때문에 그들은 수학이 참임은 부정
할 수 있어도 과학이 참임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회의주의는 수용할 수 없
다. 그렇다면 과학에 대해 신뢰하는 유명론자들이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수학이 참이며 그 대상이 존재함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논자는 위의 질문이 유명론뿐 아니라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이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
한 요소임은 분명하며,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논쟁에 참여하는 어
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지나치
게 강조함으로써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자칫 그것이 실제로 밝혀야 하는 중
요한 논점인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face value)에 대한 논의를 쉽게 지나
쳐 버릴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비롯한 수학적 실재론의 가
장 중요한 논거는 수학이 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이 참임에 근거해
서 그 대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진술이 지시하는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닌 수학적 대상임이 먼저 밝혀져야만 한다. 가령 앞에서 예로
든 “5는 3보다 크다”는 주장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3

승인하기 위해서는, 이 진술이 실제로 5와 3이라는 수학적 대상을 지시하
고 있으며 그들이 ‘보다 큼’의 관계를 만족시키고 있을 경우 오직 그 경우
에만 참이라는 것이 밝혀져야 한다. 즉 수학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대상
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 혹은 액면가대로
참임이 먼저 입증되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이란 수학이 액면
가대로 참임을 그 진술이 과학에 반드시 요구됨에 의해 입증하는 것이다.
유명론자들 역시 수학이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은 부정하
지 않는다. 그들이 부정하는 것은 수학의 필요불가결함이 곧 수학적 진술
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함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드는 수학이 과학
에서 사용된다는 것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위에서 말한 “5는 3 보다 크다”와 같은 수학적 주장이 과학에서 필요
한 요소라 할지라도 과학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진술의 액면가가 아닌
이들이 과학에서 수행하는 역할뿐이며, 그 역할은 충분히 도구적으로 해석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명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수학이 과학
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 그리고 과학이 참이라는 것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수학은 도구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명론자들
의 주장이 성립한다면 ‘존재론적 경제성’에서 유명론이 분명한 우위에 있
을 뿐 아니라 수학을 도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굳이 수학적 대상에 대
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필요불가가결성 논자들은 이
러한 도구적 해석이 성립하지 않음을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그러므로 필
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입증해야 하는 것은 수학이 과학에서 반드시 필
요한 요소라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
라서 논자는 본 논문에서 유명론자들의 비판, 특히 필드의 비판에 대응해
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
하고, 그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자는 우선 II에서 유명론자들의 논의를 재구성할 것이며, III
에서는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필요불가결성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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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을 재구성할 것이다. 특히 III에서의 논의를 통해서 논자는 수학적 진술
의 액면가를 입증할 수 있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도구는 ‘자연주의’나
‘과학적 실재론’ 혹은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이 아니라,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어서 논자는 II, III에서의 결과를 토대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소
버와 메디의 비판을 IV에서 다룰 것이다. 그들의 비판은 결국 ‘콰인-듀헴
의 논제’로 알려진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함에 대한 것이다. 특히
소버의 ‘선험적 필요불가결성’에 대한 비판과 과학적 설명의 모형적 구조
에 관련한 메디의 비판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이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정당화의 전제라기보다는 별도의 논의를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가정임을 드러낸다.
V에서는 이러한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서 레스닉이 제시한 ‘실용적 필요
불가결성 논증’을 분석하면서,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도 수학적 진술
의 액면가를 정당화하지는 못함을 입증할 것이다. 논자가 레스닉의 논의를
제시하는 것은 단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지 않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가능성을 소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논자가 주목하는 것은 수
학이 경험적으로 확증됨을 옹호하기 위해서 그가 도입한 ‘유클리드적 구
조’(Euclidean rescue)라는 개념이다. ‘유클리드적 구조’는 수학에 대한 전
체론적 정당화의 반례라고 할 수 있는 수학적 사례, 특히 유클리드 기하학
이 사용된 뉴턴 역학이 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이 부정
되지 않은 것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다. 물론 콰인도 ‘최소수정의 원칙’이
라는 것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콰인의 주장은 단지 실
용적 설명에 제한된 것이 때문에 위의 기하학의 사례에는 적용되지 않는
반면에 레스닉의 ‘유클리드적 구조’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구조적 설명을
포함하는 것으로, 뉴턴 역학이 부정된 경우에 부정되는 것은 유클리드 기
하학이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의 물리적 적용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유클리드적 구조는 레스닉의 의도와는 다르게 필요불가결성 논증

5

에 대한 중요한 반대 논거가 된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이 참임에 기
초해서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정당화하는 것인데, 유클리드적
구조에 따르면 과학에 의해 입증되는 것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가 아닌
물리적으로 해석된 진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뉴턴 역학이 부정된
경우, 부정되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적 구조에 적
용한 것이라면 과학을 통해서 확증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
에 대한 물리적 해석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클리드적 구조가 가능하
다는 것으로부터, 과학적 이론 T를 구성하는 것은 수학 M과 과학의 물리
적 요소 S로 구성된 M+S가 아니라 해석된 수학 ø(M)을 포함하는
ø(M)+S이며 결국 경험적 반례에 의존해서 반박되는 것은 ø(M)+S라는 것
을 도출할 수 있다. 또한 수학 M에 대한 해석 ø는 매우 다양할 수 있는데
이것은 동일한 M이 상이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øi(M)
과 ┓øi+n(M)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 도출된다. 그러므로 M의 진리값과
각각의 øi(M)의 진리값은 독립적이며, 수학 M은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언제
나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T가 확증되었다는 것으로부터 긍정되는 것은
해석함수 ø일 뿐이다. 더 나아가서 논자는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ø(M)이 아니라 수학의 구조라는 주장을 통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심각
한 선결문제를 야기함을 입증하고자 한다.
정리하면, 본 논문을 통해서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수학적 실재론
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정확한 조건을 제시할 것이며, 이 조건을 만족
시키기 위해 그들이 도입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의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실재론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기 위해
서 반드시 필요한 해석함수와 관련하여 입증할 것이다.

6

II.
II.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
논자는 이 장에서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유명론자들의 인식론적 공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에서 유명론자들을 언급하는 것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반대자를 소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의 논의를 통
해서 드러나겠지만 인식론적 문제제기에 기초한 유명론자들과 필요불가결
성 논증에 기초한 실재론자들은 그들의 상이한 존재론적 주장과는 달리 많
은 철학적 가정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철학적 가정에 기초해서 그들
의 논의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 논문에서 다루는 유명
론자들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1)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

이라는 철학적 경향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유명론자들 역시 수학이 과
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이 추상적 대상에 대
한 회의라는 철학적 요구에 의해 단적으로 부정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학이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필요불
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이 갖는 함의 및 논점을 유명론과 관련하여 보다 효
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됨과 과학적 실재론
이 수학적 실재론을 함의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자들의 주장을 통해 필요불
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임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2)

다시 말해서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됨은 도구적으로 해석

될 수 있기 때문에,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수학이 과
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사용된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임을 유명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파악
할 수 있다.

1)

2)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기초한 수학적 실재론자’라는 용
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 논자는 이러한 유형의 실재론자들을
‘필요불가결성 논자’라는 용어를 사용해 약칭하고자 한다.
용어법과 관련하여 하나 더 지적할 것은 논자는 본 논문에서 ‘명제’와 ‘진술’을
특별한 구분 없이 문맥에 맞추어 사용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7

따라서 논자는 이 장에서의 논의를 통해 유명론자들과 필요불가결성 논
자들이 공유하는 철학적 기반을 드러내고, 이러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유
명론과 수학적 실재론을 정확하게 정의함으로써 본 논문의 논점을 분명하
게 밝히고자 한다.

1. 실재론과
실재론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는 논증이다. 그러나 대
부분의 철학적 개념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실재론’ 역시 그것이 정의되는
맥락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
에 기초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독특한 구조를 갖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정당화하고자 하는 수학적 실재론 및 이 논증이 근거하는 철
학적 가정에 대한 분석은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논자는 이 절에서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을 필요불가결성 논증
과 관련된 맥락에서 정확하게 정의하고자 한다.
서론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수학적 실재론은 ‘수’, ‘집합’,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며, 유명론 혹은 반-실재론은 이러한 대
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적 대상은 비-시공적인 추상
적 대상의 전형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수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
은 종종 ‘플라톤주의’와 ‘유명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3)

그렇다면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의 근거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어떤 근거에서 실재론자
들은 충분히 의심스러운 추상적 대상인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주장하며,
유명론자들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수학이 언급하는 대상의 존재를 부정
3)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전통적인 플라톤주의자를 구분하고자 한다. 뒤에
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인정하는 수학은 경험적, 과학
적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학의 선험적, 논리적 성격에 기초하는
전통적인 플라톤주의자들과는 논의의 출발점과 결론에서 상당한 차이점을 갖는
다. 그래서 논자는 다른 저자의 글을 인용하지 않는 한 ‘플라톤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실재론’ 혹은 ‘수학적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8

하는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학적 실재론이 주장 혹은 정
의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
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적인 주장으로는 그들의 논거를 확인할 수 없
을뿐더러, 우리는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이 정의되는 방식을 통해서 그들
이 공유하고 있는 것과 공유하지 않는 것 즉 논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일반적으로 수학적 실재론이 정의되는 방식은 두 개인데, 하나는 존재론
적인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학적 진술의 독립성에 대한 것이다. ‘존재론적
실재론’(realism in ontology)은 참인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은 존재
한다는 주장이다. 수학적 진술은 분명히 ‘수’나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
에 대한 지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진술이 참일 경우 우리는 그것
이 언급하는 대상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서론에서 언급한 “5는 3보다 크다”와 같이 명백하게 특정한 수를
언급하는 진술뿐 아니라 “모든 자연수 n에 대해서 n보다 큰 소수가 존재한
다”는 주장 역시 각각의 모든 자연수에 대한 것으로, 변항의 영역으로 자
연수를 갖는 것이다. 특히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귀류전제인
“가장 큰 소수가 존재한다”는 비록 특정한 수를 명시적으로 지시하지는 않
지만 분명 어떤 수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 진술은, 이름
이 사용된 경우뿐 아니라 양화사가 사용된 경우에도, 다른 것이 아닌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존재론적 실재론은 수학
이 참이라는 상당히 명백한 사실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령 “5는 3보다 크다”와 같은 진
술을 5와 3과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진술이 참임은 인정하면서도 5와 3
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론적 실재론이란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 참임을 수용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9

수학적 진술은 ‘수’, ‘함수’, ‘집합’과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주장이기 때
문에, 그 진술이 참이라는 것은 곧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존재함을 함의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이 수학자의 심적, 언
어적 구성물이라면 존재론적 실재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경우 우리는
존재론적 환원과 같은 방법을 통해 수학적 대상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사피로는 존재론적 실재론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존재론적 실재론을 정의하면, 그것은 적어도 몇몇 수학적 대상은 객
관적으로, 즉 수학자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4)

위에서 언급된 수학적 대상의 독립성은 뒤에서 다룰 수학적 진술의 독립
성과도 직접 연관되는 것이다. 수학적 대상이 수학자들의 구성물이라면, 우
리는 수학적 대상뿐 아니라 그러한 대상을 지시하는 수학적 진술의 진리값
의 독립성 역시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존재론적 실재론은 수
학적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그것은 우리가 만든 구성물이라는 주장
으로, 전자는 본 논문에서 언급할 대부분의 유명론자들에 의해 주장된 것
이며 후자는 주로 구성주의자들과 직관주의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5)

결국

존재론적 실재론은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독립적인 수학
적 대상이기 때문에 참인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은 존재한다는 주장
이다. 콜리반은 이러한 존재론적 실재론의 성격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서
‘형이상학적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6)

실재론을 정의하는 다른 하나의 방식은 수학적 진술이 독립적인 진리값
을 갖는다는 것으로, ‘진리값적 실재론’(realism in truth-value)이라고 불리
는 것이다.
4)
5)

6)

Sapiro, 2000, p.25.
유명론자들에 대해서는 계속 언급할 것이며, 직관주의자들에 대한 것은 다음 글
참조. Heyting, 1971. Brower, 1913. Dummett, 2000.
Colyvan, 2001, p.3.

10

진리값적 실재론을 정의하면, 그것은 수학적 진술은 수학자들의 마
음, 언어, 규약 등으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인 진리값을 갖는다는 것
이다.

7)

결국 진리값적 실재론이란 수학적 진술은 수학자들로부터 독립적인 객관
적인 사실을 기술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진리값적 실재론은 수학적
진술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앞에서 언급한 구성주의 혹은 직관주의
를 대표적인 경우로 들 수 있다. 직관주의자들은 수학적 진술은 수학자들
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그것의 진리값 역시 수학자들의 구성행위에 의존한
다고 주장한다.

8)

그러므로 진리값적 실재론자와 직관주의자들 사이의 주된

논점은 수학적 공리 혹은 추론 규칙의 인식독립성에 대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굳이 직관주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집합론 구성과 관련된
주된 논점인 ‘선택공리’(axiom of choice), ‘비서술적 정의’(impredicative
definition)의 가능성 등과 관련된 문제들 역시 수학적 진술의 객관성에 대
한 것이다.

9)

수학적 대상이 심적 혹은 언어적 구성물이라면 순환적 요소를

포함하는 위의 선택공리 및 비서술적 정의는 허용될 수 없지만, 객관적 사
실에 대한 기술이라면 충분히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론적
실재론과 관련된 주된 논점이 수학적 진술의 참과 대상의 존재 사이의 관
계에 있다면, 진리값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점은 수학적 진술의 독립성에
있음을 위의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콜리반은 앞에서 ‘존재론적 실재론’을 ‘형이상학적 실재
론’이라고 불렀듯이, 진리값적 실재론을 ‘의미론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다.

7)
8)
9)

Sapiro, 2000, p.29.
배중율에 대한 직관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이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집합론과 관련된 논의들, 특히 선택공리나 비서술적 정의의 가능성과 관련된 논
의들은 다음 책들에 잘 설명되어 있다. Moore,1982. Hallett, 1984. Fraenkel,
1973. Maddy, 1988, 1997.

11

물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존재론적 실재론에서도 ‘참’, ‘지칭’과 같은 의미
론적 요소가 핵심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진리값적 실재론이 대상보
다는 진리값의 독립성을 중심으로 정의됨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그의 용어 사용은 납득될 수 있다. 또한 실재론에 대한 위의 정의는 레스
닉의 정의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대상들(X인 대상들)에 대한 실
재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아래 세 개를 제시한다.

10)

(1) X인 것들이 존재한다.
(2) X에 대한 현존 이론이 참이다. (기본적으로 혹은 대부분 참에 가
깝다.)
(3) X인 것들의 존재 및 X에 대한 진술들의 참은 어떤 방식으로 우
리로부터 독립적이다.

위의 정의는 존재론적 실재론과 진리값적 실재론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
이다. 그러나 레스닉도 인정하듯이 수학적 실재론을 주장하기 위해 위의
세 주장, 특히 참과 대상의 독립성을 동시에 주장할 필요는 없다.

11 )

수학

적 진술이 독립적으로 참이라는 것이 반드시 대상의 존재를 함의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존재론적 실재론에 의해 수학적 대상의
존재가 정당화되는 근거는, 수학적 진술은 다름 아닌 ‘수’, ‘집합’,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불가피하게
수학적 진술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개입된다. 다시 말해서 수학적 진술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먼저 입증되어야만 한다. 따
라서 수학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다면, 수학
이 참이라는 것에 의해 수학적 대상의 존재는 입증되지 않는다.

10)
11)

Rensik, 1997, p.11.
Rensik, 1997, pp.11-12.

12

실제로 이러한 해석의 문제와 관련해서 치하라는 수학이 유명론적 언어
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수학의 참과 대상 사이의 연결고리를
차단한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양화사가 동일한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 것
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부정할 논리적 기반을
마련한다.

12 )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가 집합론을 러셀의 유형이론(type

theory)을 이용해서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다.
그는 러셀이 사용한 ‘속성’ 대신에 ‘열린문장’(open sentence)과 ‘만
족’(satisfaction)이라는 잘 알려진 논의의 틀을 사용해서 집합론을 유명론
적 언어로 재구성한다. 가령 “모든 고양이들의 집합”을 “x는 고양이이다”
라는 열린문장과 만족관계를 통해 집합에 대한 언급 없이 재구성할 수 있
다는 것이다. 결국 ‘집합’이라는 수학적 대상 대신에 ‘열린문장’을 사용하
고, ‘포함관계’ 대신 ‘만족관계’를 사용하여 집합론을 ‘집합’에 대한 언급
없이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두 개념을 사용해서 유
형이론을 재구성하는데, 지금의 논의와 관련해서 특히 중요한 양화사를 치
하라는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a) 레벨(level) 0인 변항을 포함하는 양화사는 표준적 일차술어논리
학의 양화사이다.
(b) 레벨 1이나 그 이상의 변항을 포함하는 양화사는 구성가능성 양
화사(constructability quantifier)이다.

13)

위에서 말하는 변항들의 레벨은 유형이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유사
한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일상적인 대상은 레벨 0에 속하는 반면에, 레벨
1에 속하는 변항은 일상적 대상들에 대한 열린문장을 영역으로 갖는 것이

12)
13)

Chihara, 1990, pp.24-37.
Chihara, 2005, p.502.

13

다. 즉 레벨 n의 변항은 n-1의 열린문장을 그 영역으로 갖는다. 따라서 “x
는 대학생이다”와 같은 문장에 속한 변항은 일상적인 대상을 그것의 영역
으로 갖지만, 레벨 1인 변항은 위와 같은 문장들을 그것의 영역으로 갖는
다. 그러므로 위에서 제시된 치하라의 양화사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일상
적인 대상들에 대한 진술에 속한 양화사만 표준 논리체계와 동일한 방식의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며, 그 이상의 레벨에 속한 양화사는
구체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함의가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14 )

그러므로

일상적인 대상들을 영역으로 갖는 (a)의 경우에만 그 문장이 참이라는 것
으로부터 존재론적으로 개입할 뿐 그 이상의 양화사는 존재론적 개입과 무
관하다. 그리고 이러한 양화사의 해석이 타당하다면 우리는 대상들의 모임
인 집합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 없이 집합론을 구성할 수 있다.

15)

따라서 수학적 진술을 있는 그대로 혹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수학적 진술이 참이라는 것과 대상의 존재는 별개
의 논제가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존재론적 실재론과 진리값적 실
재론이 동시에 주장된다고 하더라도 실재론에 대한 이 두 정의의 방식은
별개의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경우 논제의 우선성 혹은 적절
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즉 수학적 실재론을 논의할 경우 대상의 존재가 핵
심 논제인가 아니면 진리값의 독립성으로 충분한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
다.
14)

15)

그는 일반적인 양화 기호 대신에 “P를 만족시키는 x를 구성할 수 있다”고 번역
되는 (Cx)Px라는 양화기호를 도입한다.
물론 위에서 제시된 치하라의 유명론적 전략은 많은 문제점을 포함한다. 대표적
으로 그는 ‘열린문장’을 이용해서 집합론을 재구성하기 위해 ‘가능한 열린문장’
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것은 수학적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양상을 도입하
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II.4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지만, 유명론적 전
략이 많은 문제를 포함한다는 것이 곧 실재론이 정당함을 입증하지 못할뿐더러,
본 논의에서 치하라를 소개하는 이유는 수학이 참이라는 것이 곧 수학적 진술
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함의하지는 않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위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존재론적 실재론이 성립되기 위한 전제인 수
학에 대한 글자 그대로의 이해가 수학적 진술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 관련된다
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4

예를 들어 몇몇 진리값적 실재론자들은 수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중심
은 수학의 객관성이지 대상의 존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존
재론적 실재론을 잘못된 논제 설정이라고 비판한다.

16 )

의 문제는 …… 대상이 아니라 객관성에 대한 것이다”

즉 그들은 “실재론
17)

라는 퍼트남의 주

장에서 드러나듯이 대상이 아닌 진리값의 독립성을 주된 논점으로 설정하
고 있다. 그러나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핵심적 주제가 대상인지 진리값
의 독립성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란이 가능할뿐더러 본 논문, 특히 필
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일련의 논의는 수학의 객관성에 대한 것이 아니
라 수학이 참이라는 것에 의존해서 대상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다. 따라
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유명론자들의 논점 역시 수학
적 진술의 참과 대상의 존재 사이의 관계이지 진술의 객관성이 아니기 때
문에, 본 논문과 관련된 것은 존재론적 실재론이다.

18)

어찌 되었든 위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수학적 실재론자를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즉 존재론적 실재론자이면서 동시에 진리값적 실재론자인
사람들, 존재론적 실재론자이면서 반-진리값적 실재론자인 사람들, 반-존
재론적 실재론자이면서 진리값적 실재론자인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존재론적 실재론자이면서 동시에 반-진리값적 실재론자인 사람들로 구
분될 수 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듯이 대부분의 수학적 실재론자들은 첫 번째 부류에
속하며, 콰인을 비롯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역시 이 부류에 속한다.

19)

리고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진리값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논자는 찾기
16)
17)
18)
19)

Colyvan, 2001, p.3.
Putnam, 1979, p.70.
Colyvan, 2001, pp.3-4.
대표적인 필요불가결성 논자 중 한 명이 바로 위에서 수학의 객관성을 강조한
퍼트남이다. 그러나 그 역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존재론적 실재론을 정
당화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이 경우 진리값적 실재론은 전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우선성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를 존재론적 실재론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콰인과 퍼트남의 작업은 뒤에서 구체적으로 다시 언급될
것이다.

15

매우 어렵지만, 사피로는 이 부류에 테난트(Tenant)가 속한다고 주장한
다.

20 )

대부분의 유명론자들은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데, 대표적으로 치하

라와 헬만을 들 수 있다.

21)

앞에서 언급했듯이 치하라는 수학이 참임은 인

정하면서도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부정함으
로써 수학적 실재론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차단한다. 마지막 부류에는
앞의 논의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구성주의자들과 직관주의자들이 속한다.
또한 사피로는 이 부류에 필드 역시 포함시키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논자
는 동의할 수 없다.

22)

필드가 반-존재론적 실재론자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만 반-진리값적 실재론자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
지만 그의 논의의 핵심은 수학이 거짓이라는 것이지 진리값의 독립성이 아
니다. 더 나아가서 수학적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대상에 대
해 언급하는 진술이 거짓이라는 그의 주장은 결국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
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필드는 수학
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가장 작
은 소수는 존재한다”와 같이 존재 양화사가 적용되는 진술은 거짓이며, “모
든 자연수는 후자를 갖는다”와 같은 보편 양화사가 적용되는 진술은 공허
하게 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3)

그러므로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은 존재론적 실재론과 진
리값적 실재론을 동시에 주장하는 실재론자들과 진리값적 실재론은 인정하
되 존재론적 실재론을 부정하는 유명론자들 사이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다.
특히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논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들
의 논점은 수학이 참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대상의 존재를 함의
하는가와 관련된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므로 논자는 앞으로의 논의에

20)

Sapiro, 2000, p.33.
Hellman, 1989. Chihara, 1973, 1990.
22)
Sapiro, 2000, p.32.
23)
Field, 1989, pp.2-4.
위의 주장을 필드는 ‘허구주의’라고 부른다.
21)

16

서 ‘수학적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존재론적 실재론’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치하라는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을 직해주의
(literalism)와 반-직해주의(anti-literalism)사이의 논쟁이라고 정리한다.

24 )

다시 말해서 그는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을 수학이 글자 그대로 참
임을 받아들이는 실재론자들과 수학이 글자 그대로 참임을 받아들이지 않
고 재해석할 것을 요구하는 유명론자들 사이의 논쟁이라고 정리한다. 그러
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표적인 유명론자 중 한 명인 필드는 어떤 측면에
서는 직해주의자이다. 따라서 직해주의에 근거해서 유명론자와 실재론자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수학이 글자 그대 참임을 인정하는 것이 실재
론자들의 주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학적 실재론을 수학이 참임을 긍정하
는 직해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점이 아래 두 주장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수학은 참이다.
2) 수학적 진술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수학적 진술에 대
한 적절한 번역은 다름 아닌 수학적 대상에 대한 지칭을 포함한
다.)

즉 수학적 실재론은 1)과 2)를 모두 수용하는 반면, 필드와 같은 허구주
의적 유명론자는 1)을, 그리고 앞에서 잠시 언급한 치하라와 같은 유명론
자는 2)를 부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자가 2)를 괄호 안에서와 같
이 변경시킨 이유는 ‘글자 그대로’라는 용어를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
다. 앞의 치하라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
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문제가 개입해야 할
뿐 아니라 많은 경우 수학적 대상들 사이에 환원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24)

Chihara, 1990, p.4.

17

가령 콰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실재론자들은 수학적 대상이 존재함을 인정
하면서도 자연수나 다른 수학적 대상을 집합(class)으로 환원시키고 있기
때문에, 실재론자들 역시 모든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수학적 언어를 일계
언어와 같은 논리언어로 번역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즉 그들은 일반적
인 수학적 진술을 글자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번역된 수
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 참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논자는 번역의 문제를
개입시켜서 2)를 괄호와 같이 수정하였다.
그러나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점은 특정한 수학적 대상의 존재가 아
니라 수학적 대상 자체의 존재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수학적 대상이 하나
라도 존재한다면 실재론은 정당화된다. 그리고 비록 다양한 환원관계가 성
립된다고 하더라도, 쓰여진 대로의 수학적 진술은 다름 아닌 수학적 대상
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 수학적 진술이 참이라
는 것은 실재론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논자는 일반적인 수학적 진
술이건 논리언어로 표현된 수학적 진술이건 그것이 쓰여진 대로의 값을 갖
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액면가’(face value)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액면가와 관련하여 필드는 수학적 실재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만일 우리가 수학적 관념론을 무시한다면, 수학 이론이 액면가 그대
로를 갖는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 믿는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누구나
수학적 실재론자들이다. 액면가대로 이해된 수학 이론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대상들의 가정된 영역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25)

여기에서 그가 가리키는 관념론자란 직관주의자들이다. 그러므로 그가
정의하고 있는 수학적 실재론은 곧 수학 이론이 액면가대로 참이며, 수학
25)

Field, 1989, p.2

18

적 대상이 마음-언어에 독립적이라는 주장이다.

26)

이러한 그의 태도, 특히

액면가에 대한 태도는 자신을 포함한 반-실재론자 혹은 유명론자에 대한
정의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의 반-실재론은 그 어떤 수학적 대상 — 수, 함수, 집합과 같은
— 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다. 수학은 액면가를 갖는 한 그러한 대
상의 존재를 가정하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내가 원하는 반-실재
론자는 수학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27)

즉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반-실재론 혹은 유
명론이라는 것이다. 물론 위의 인용문을 통해 필드가 주장하는 것은 수학
적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액면가대로 이해된 수학적 진술은 거짓이
거나 공허하게 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치하라와 같은 유
명론자들은 수학이 거짓이라는 필드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수학
이 참임을 부정하는 대신 수학적 진술을 재해석할 것을 요구한다. 즉 수학
적 진술의 액면가만을 부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지금
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일차적인 논점이 수학
적 진술의 액면가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과학에서 수학의 역할과 존재론적 논의의 구조
II.1에서 언급했듯이 수학적 실재론은 수학이 글자 그대로 참임에 근거한
다. 그런데 이러한 수학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믿음은 일상적으로 이해되는
수학적 진술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유명론자들은 어떤 근거에

26)
27)

Field, 1989, p.1.
Field, 1989, p.2.

19

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부정하는가?
유명론자들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부정하는 궁극적 이유는 그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이 추상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승인할 수 없다는 데 기초해서 수학이 거짓이라거나 액면가를 갖지 않는다
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추상적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구체적
논거는 무엇인가? 논자가 보기에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명론자
들의 논거는 대략 아래 두 논제에 기초하고 있다.

28)

a)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시-공간 안에 위치하는 물리적 대상이다.
b) 우리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어떤 믿을만한 지식도 가질 수 없다.

a)는 주로 ‘물리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며, b)는 ‘인식론적 문제
제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다음 절에서 다룰 베나세라프에 의해 제기된 후
유명론자들의 주된 논거로 사용된 것이다. 물론 이 두 논제는 매우 밀접하
게 연관된 것으로 주로 b)가 a)의 근거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몇몇 학자들
은 b)와는 별도로 a)에 근거해서 유명론을 주장하는데, 콜리반은 a)를 인과
성과 관련하여 엘레아적(Eleatic) 원칙이라고 부르면서 아래와 같이 정의한
다.

어떤 대상은 그것이 인과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 오직 그 경
우에만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29)

그러나 콜리반이 지적하듯이 엘레아적 원칙은 인식론적 논제인 b)와 관

28)

29)

물론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칭의 불가능성 역시 유명론의 주된 논거가 된다. 그
러나 지칭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추상적 대상과 어떤 물리적, 인과적 관계도 구
성할 수 없다는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별도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지칭과 관련
된 유명론적 논거는 Burgess and Rosen, 1997, pp.49-60 참조.
Colyvan, 2001, p.40.

20

련하지 않고서는 적절하게 정당화되지 않을뿐더러, 인식론적 논제와 별도
로 주장된다면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점을 선취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은 결국 추상적 대상
의 전형이라고 이해되어 온 수학적 대상의 존재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수
학적 실재론이 성립된다면 우리는 추상적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대
상의 존재를 승인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수학적 실재론이 논의되는 철학
적 배경 중 하나는, 다른 추상적 대상과는 달리 수학적 대상은 명백하게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에 기대어 그것의 존재를 승인할 수 있는 가능
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레아적 원칙은 어떤 측면에서는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의를 통해서 정당화되거나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굳이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추상적 대상
에 대한 존재론적 논의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인과적이라는 주장은 논의
의 출발점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에 의해서 정당화되어야 할 결론으로 보인
다. 대부분의 유명론자들이 엘레아적 원칙의 근거로 의존하는 것은 인식론
적 논제이다.
그들은 추상적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회의에 기초해서 그것의 존재를 부
정하는 형식의 논증을 취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들이 의존하는 인식론 및 관련된 철학적 가정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지
만 이것은 베나세라프 및 필드를 논의하는 II.3과 II.4에서 다시 논의될 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이전에 인식론적 문제제기가 수학적 대상의 존
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것은 분
명하다. 특히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하는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더
욱 그러하다.

30 )

명백히 추상적 대상인 수학적 대상에 대한 지식은 과학적

으로 쉽게 납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30)

자연주의 역시 인식론적 문제제기가 기초하는 철학적 가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가정들과 달리 자연주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
다. 따라서 자연주의는 유명론자들의 논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II.4 및 필요불
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할 III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21

중요성을 인정하는 자연주의자가 수학적 실재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
로 수학적 지식의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
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발생한다. 그것은 실
재론자들보다 유명론자들이 더 많은 설명의 부담을 안는다는 것이다. 실제
그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많은 경우 실재론자들은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이
아닐 경우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을 유명론자들에게 요구하면서 자신의 주
장을 간접적으로 정당화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유명론자들 역
시 수학이 거짓이거나 액면가를 갖지 않는다는 주장의 결과, 즉 수학체계
의 허구성 및 재해석의 결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 및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필드나 치하라는 단순히 인식론적, 존재론적 논거에 의존해서 수학적
진술이 거짓 혹은 액면가대로 참이 아님을 입증하려고 시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수학 혹은 과학 체계를 제시함으로써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부
정한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있다.

31)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대상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다음 절에서 언급할 것이지만 우리는 수학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으로부
터 인식론적 문제제기의 전제를 부정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수
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추상적 대상은 인식 불가능하다는 유명론의
전제에 대한 반례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학적 지식
에 대한 확신이 충분히 회의할 수 있는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주장하는 쪽
보다 부정하는 쪽에서 더 많은 설명의 부담을 안아야 하는 궁극적 이유이
기도 하다. 결국 추상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존재론적 경제
성의 기준에서 볼 때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며, 따
라서 실재론자들이 더 많은 설명의 부담을 안는다는 일반론이 수학과 관련
된 논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에서 나타나는 이러
한 현상은 수학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리고 수학에
31)

Field, 1980, 1989. Chihara, 1973, 1990 참조.

22

대한 이해의 차이는 본 논문에서 다루는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논쟁
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학과 관련된 철학적 논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
이기도 하다.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주요한 수학적 논점들을 아래와 같
이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수학은 과학이나 여타의 지적 활동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더 나
아가서 수학은 이러한 지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2) 수학적 지식은 선험적인 것이다.
2′) 수학적 지식은 우리의 지식 중 가장 확고하게 믿을 만한 지식이
다.
3) 수학적 대상은 비인과적이며 비시공적인 추상적 대상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학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논의들은
2)와 3)에 관련된 것들이다. 본 논문의 주제인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해서
도 유명론자들은 3)에 기초해서 수학이 참임을 회의하며, 대부분의 전통적
인 실재론자들은 수학적 지식의 확실성에 기초해서 그 대상의 존재를 승인
한다.
그리고 2), 3)에 기초해서 수학은 물리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한 가장 대표
적인 반례로 이해되어 왔다. 2), 3)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수학적 지식은 추
상적 대상에 대한 언급 혹은 지시를 포함하는 선험적 지식이라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험주의적 전통에 서 있는 대부분의 철학자들
은 수학적 지식의 선험성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밀과 같은 고전적 경험
주의자들의 수학에 대한 경험화 전략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으며, 근래
에도 이러한 경향은 그대로 이어진다.

32 )

가령 실증주의자들, 특히 카르납

은 수학이 갖는 선험적 성격과 존재론 사이의 문제를 소위 ‘내적 질문’과
32)

Resnik, 1980 참조.

23

‘외적 질문’의 구분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했다.

33 )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수학의 논리적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추상적 대상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내
적 질문과 외적 질문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3은 홀수인가?”와 같은 질문
은 수학체계 내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질문인 반면에 “3은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외적 질문의 전형으로 체계 내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언어
적, 규약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국 경험주의에 기초
해서 수학의 논리적 성격과 존재론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더 나
아가서 콰인은 분석명제와 종합명제의 구분에 대한 본질적 회의를 제기하
면서 선험적 지식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다.

34)

물론 이러한 경험주의자들의 시도가 수학에 대한 적절한 설명인지는 분
명하지 않다. 특히 콰인의 비판에 의해서 분석명제의 존재가 부정되었는지
는 매우 의심스러우며, 이에 대한 다양한 반론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
한 그들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2)와 관련된 그들의 주장은 매우 중요한 논
점 둘을 제시한다.
하나는 수학적 명제가 선험적이라는 것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
다. 다시 말해서 수학적 지식이 선험적인가의 문제는 수학에 대한 논리적,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해명해야 할 과제이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
적 논증의 전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2)를 2′)로 바꾸고자
한다. 수학적 지식의 선험성에 대해 충분히 회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수
학이 가장 확고한 지식 중 하나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콰인을 비롯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존한 실재론자들이
경험주의자라는 것이다. 물론 콰인이 경험주의자라는 것은 더 이상의 논의
가 필요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그들의 경험

33)
34)

Carnap, 1956 참조.
물론 콰인의 비판은 주로 ‘분석성’(analyticity)에 대한 순환적이지 않은 정의가
없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명제에 대한 비판이 곧 전통적으
로 이해되어 온 선험적 지식에 대한 부정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이 언급한 것이다. Quine, 1951a 참조.

24

주의적 경향과 관련해서 보다 분명하게 파악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
듯이 대부분의 수학에 대한 철학적 문제는 2) 혹은 2′)와 3)을 동시에 긍
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은 다른 실재론자들과는 커다란 차이를
갖는다. 가령 원래 유명론자였던 콰인이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실재론
자로 변모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다른 실재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이
참이라는 것 때문이다.

35)

그러나 콰인이 2′)를 인정하는 이유는 고전적 실

재론자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2′)가 수학 내적인 방법이나 논리적
인 방법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2′)를 긍정하는 이
유는 수학이 과학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그는 1)
에 기초해서 2′)를 정당화하며, 2′)를 통해서 수학적 대상이 존재함을 받아
들인다.

36)

이에 반해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명론자들은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성
격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추상적 대상은 우리와 어떤 물리적,
인과적 관계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대상에 대한 지시를 포함하
는 수학적 진술이 글자 그대로 참임을 부정한다.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물리적, 인과적 관계란 결국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관계이다.
35)

37 )

따라서

Burgess and Rosen, 1997, pp.7-8.
III에서 다시 논의하겠지만, 콰인이나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3)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불분명하다. 그들의 논의에서 수학적 대상이 추상적
인가 아닌가는 논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과학에 기초해서
정당화된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이 존재함을 주장할 뿐이다. 따라서 같은
필요불가결성 논자임에도 불구하고 콜리반은 수학적 대상은 경험적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레스닉은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는 것을 인정하면
서도 수학적 대상은 결국 추상적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서 입증되는 것은 수학적 대상
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 자체에 대해서 비판
하고자 하기 때문에,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위상과 관련된 그들의 불확실성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것이다.
Colyvan, 2001, p.116. Resnik, 1997, p.82.
37)
물론 과학에 기초하지 않는 유명론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그러나 논자
는 본 논문에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반대하는 유명론자들만을 언급하고자 하
36)

25

그들 역시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를 통해서 우리는 유명론자들 역시 경험주의적
으로 수학을 재해석하려는 일련의 시도와 그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유명론자들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과
학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현존하는 과학 이론의 존
중에 기초한다면, 유명론자들은 지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에 기반한
다. 그리고 이것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자들이 수학적 대상의 존
재에 관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유명론자들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은 수학이 참이라는 2′)를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수
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1)에 의해 입증되는 것이거나, 3)과 관련된 인식
론적 기준에 의해 반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
히 수학이 참이라는 것이 논리적 방법이나 여타의 수학 내적인 방법에 의
해서 정당화되지 않으며 다른 기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은 앞으
로의 논의에 있어서 기본적인 전제를 구성한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 사이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것이다. 따
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자들 사이의 논쟁의 논점은 과학에 기
초해서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이 입증되는가 아니면 비록 과학에 수학이
쓰이기는 하지만 다른 과학적 기준인 인식론적 기준에 의해서 수학적 진술
의 액면가는 부정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모아진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과학에 대한 신뢰와 경험주의라는 공통의 출발점을
공유하면서도 유명론자들은 수학이 참이라는 것을 대상의 추상적 성격 때
문에 회의하며,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과학에 사용됨에 기초해서 수학적

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모두 추상적 대상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
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유명론’ 혹은 ‘유명론자’라는 용어를 과학적
설명의 요구에 기초해서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에
한정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26

진술의 액면가를 정당화하는 구조를 갖는다. 결국 그들은 과학 혹은 과학
적 방법론에 기초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과학에 반드시 필요함에
근거해서 수학적 대상을 인정하는 실재론과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이 과
학적으로 설명의 불가능하다는 것에 기초하는 유명론으로 나뉘어지며, 그
논점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있음을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3. 베나세라프의
베나세라프의 딜레마와 인과적 인식론
앞에서 언급한 유명론자들의 인식론적 문제제기는 베나세라프의 1973년
논문에 기초한다.

38)

그러나 베나세라프는 유명론자는 아니다.

39)

그는 인식

론적 문제제기를 통해서 수학이 거짓이라거나, 반드시 재해석되어야 함을
입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수학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반드시 해명
해야 하는, 그러나 쉽게 해명되지 않는 딜레마를 제시할 뿐이다.
베나세라프는 수학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 만족시켜야 하는 두 조건을 제
시하는데, 하나는 의미론적 조건이며 다른 하나는 인식론적 조건이다. 그는
의미론적 조건으로 수학에 대한 의미론이 여타의 언어에 대한 의미론과 동
질적일 것을 요구하며, 인식론적 조건으로는 수학적 참이 이성적인 인식론
에 부합할 것을 요구한다.

40)

결국 그는 수학에 대한 의미론적 논의와 인식

론적 논의의 기준이 다른 대상이나 진술에 대한 의미론적, 인식론적 기준
과 일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나세라프가 제시하는 의미론적 기준과 인식론적 기준은 구체

38)

물론 베나세라프 이전에도 수학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
이지만, 근래의 유명론자들의 논의, 특히 과학적 인식론의 요구는 베나세라프에
기인한다. Benaceraff, 1973.
39)
베나세라프는 유명론자라기보다는, 본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는 구조주의자에 가
깝다.
Sapiro, 1997 참조.
40)
Benacerraf, 1973, p.403.

27

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는 의미론적 조건으로 아래 두 문장이 동일한 방식
으로 분석될 것을 요구한다.

a 뉴욕보다 더 오래된 큰 도시가 적어도 세 개 이상이다.

b 17보다 큰 완전수가 적어도 세 개 이상이다.

41)

a 가 뉴욕보다 더 오래된 큰 도시가 세 개 이상 있을 경우 오직
이것은 ○
b 역시 17보다 큰 완전수가 세 개 이상 있을 경
그 경우에 참이 되듯이, ○
a 와 ○
b 는 아래 ○
c 의 구조
우 오직 그 경우에만 참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

를 갖는 문장이기 때문에 참이 되는 조건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되어
야 한다는 주장이다.

c a와 R의 관계를 갖는 F인 것이 적어도 세 개 이상이다.

c 의 구조를 갖는 문장이 참이 되기
따라서 그가 요구하는 의미론이란, ○

위해서는 F가 무엇이든 간에 a와 R의 관계를 갖는 F인 대상이 세 개 이상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요구하는 의미론은 ‘지칭적’, 혹은 메디
의 표현을 빌면 ‘강고한’(robust) 의미론이다.

42)

물론 이러한 의미론이 수학에 대한 적절한 분석의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자는 위의 베나세라프의 주장 자체
는 특별한 철학적 논의 없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베나세라프가

41)
42)

Benacerraf, 1973, p.405.
Maddy, 1996, p.63.
베나세라프는 위에서 제시한 의미론적 요구가 곧 타르스키적 의미론이라고 주장
한다. 그러나 타르스키적 의미론이 지칭적 의미론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며, 더 나아가서 필드는 타르스키적 의미론이 지칭적 내용을 결여하고 있
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된 베나세라프의
의미론적 요구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가 타르스키적 의미론을 적절하게 해석했는
지는 본 논문의 주제와 무관하다.

28

의미론적 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일상언어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 이상의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논점은 결국 “철수는 서울에 산다”라는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철수가 있어야 하듯이, “3은 홀수이다”라는 주장이 참
이 되기 위해서는 3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논자는 베나세라프의 의미
론적 요구의 문제점은 지칭적 의미론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지칭적 의미론
의 단순한 구조가 수학이나 여타의 논의에 부가적 전제 없이 그대로 적용
되어야 한다는 ‘일관성의 요구’에 있다고 생각하며,

43)

이 문제는 뒤에서 다

시 논의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의 의미론적 일관성의 요구란 결국 수학
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것은 II.1에서 말한 존재론적
실재론의 근거인 ‘수학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해석이다. 즉 “3은 홀수이다”
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이란 다른 것이 아닌 자연수 3이 홀수일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이 진술이 참이라는 것으로,

44 )

수학이 참이라는 것을 통해서

대상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실재론자들의 전형적인 주장과 일치한다.

45 )

국 그는 구체적 대상에 대한 문장이 액면가를 갖듯이 수학적 문장 역시 액
면가대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론적 일관성의 요구를 통해 직해주의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한편 베나세라프는 그의 논문이 쓰여졌을 당시에 유행했던 ‘인과적 인식
론’에 기초해서 인식론적 기준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나는 S[에 속한] 이름, 술어 그리고 양화사들의 지시체와 X[믿음의
주체] 사이에 성립하는 인과적 관계를 요구한다.

46)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그가 제안한 인식론적 기준이란 믿음이 성
43)

44)
45)
46)

물론 베나세라프는 동질적인 의미론과 인식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논자는
의미론과 인식론이 모든 영역에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요구를 강조
하기 위해서 위의 문제제기를 ‘일관성의 요구’라는 용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Field, 1989, p.2
Benacerraf, 1973, p.403.
Benacerraf, 1973. p.412.

29

립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주체 X와 문장 S가 언급하는 대상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인식론적 기준에
의존해서 추상적 대상을 가정하는 수학적 실재론을 비판한다. 논자는 이러
한 베나세라프의 인식론적 문제제기를, 버지스와 로젠을 참조하여, 아래와
같이 재구성하고자 한다.

47)

1) 수학적 실재론자들은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 인과적 인식론에 따르면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다.
3) 수학적 대상이 추상적 대상이라면, 2)에 의해서 우리는 어떤 수학
적 지식도 가질 수 없다.
4) 우리는 수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
5) 따라서 수학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위의 논증은 수학적 실재론자들의 주장인 전제 1)을 가정했을 경우 발생
하는 논리적 난점을 전제 2)인 인과적 인식론에 기초해서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과적 인식론이 먼저 정당화되어
야 한다. 하지만 베나세라프가 의존하고 있는 ‘인과적 인식론’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으며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48)

우리는 위의

논증이 부당하다는 것을 쉽게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논자가 보기에 ‘인과적 인식론’이 폐기되었다는 것만으로 위의
논증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인과적 인식론’이 비판 받은 이유는 모든
지식은 인과적이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지, 지식에 대한 인과성의 요구
자체 때문은 아니다. 따라서 인과적 인식론이 부정되었다는 것이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전제를 반박하는 직접적 증거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지식의 조건으로서 약화된 형태의 인과성의 요

47)
48)

Burgess and Rosen, 1997, p.31.
Hale, 1987, pp.78-115.

30

구가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추상적 대상의 전형이라고 이해되어 온 수학
적 대상이 그 요구를 만족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논자는 위의 논증은 인과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논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논증에 의해서 반박되는 것이 비록 수학에 대한 실
재론적 해석이기는 하지만, 수학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이란 앞의 의미론적
기준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수학적 진술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믿음
이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이 거짓이라는 것은 결국 수학에
대한 일상적인 믿음인 액면가대로의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논증을 통해서 반박되는 것은 실재론이라기보다는 수학적 진술에 대한 일
상적 믿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과성의 요구가 그것을 통해
서 부정되는 수학에 대한 일상적인 믿음 즉 수학의 액면가에 대한 믿음보
다 더 확고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의 논증은 반박되는 것보다
더 확고하지 못한 전제에 기초하는 ‘회의되는 것보다 더 의심스러운 회의’
의 전형이 되기 때문이다.

49)

다시 말해서, 우리가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

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이 적어도 인식론에서의
인과성 요구보다 명백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액면가를 갖는 수학적 지
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오히려 인과성의 요구를 반박하는 반례로 제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인식론적 문제제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인식론에서의 인과
성의 요구가 수학에 대한 일상적인 믿음보다 확실하다는 것이 먼저 입증되
어야 한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베나세라프에게 이러한 비판은 적용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실재론을 논박하기 위해서 딜레마를 제시한 것이
아니며, 게다가 그의 딜레마의 다른 한 축은 실재론을 긍정하는 논거가 되
49)

“회의되는 것보다 더 의심스러운 회의”라는 표현은 사실 크라이젤(Kreisel)이
다른 문맥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논자는 우선성의 문제, 특히 뒤에서 다룰
자연주의와 관련된 우선성의 문제와 연관해서 위의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
각하기 때문에 버지스를 참조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Burgess, 1998, p.197.

31

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위의 딜레마를 통해서 제시하는 것은 의미론적 일
관성의 요구와 인식론적 일관성의 요구가 동시에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
다.

50 )

그러므로 그는 유명론자들에게는 의미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실재론

자들에게는 인식론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두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으며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만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4. 필드의 허구주의와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
인식론적 문제제기를 수학적 실재론을 반박하는 직접적인 논거로 사용한
것은 필드이다. 그는 베나세라프의 인식론적 문제제기를 두 측면에서 강화
하여 유명론을 입증하는 논거로 사용한다. 우선 그는 수학적 실재론의 문
제는 직해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라
고 주장하면서, 실재론에 대한 자신의 비판은 특정한 의미론에 기초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실, 진리 개념의 도움 없이 수학 자체가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함
의한다. 예를 들어 1000보다 큰 소수가 존재함을 수학 스스로가 함
의한다. 수학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함의한다는 사실이 수학을 믿
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론적 문제를 야기한다. 참에 대한 언급
은 논점이 아니다.

51)

즉 추상적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는 수학의 문제이지 실재론적 해석
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1000보다 큰 소수가 존재함을 수학
스스로가 함의한다”에서 보이듯이, 그의 주장은 결국 수학적 진술이 액면
가대로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II.1에서 언

50)
51)

Benacerraf, 1973, 404.
Field, 1989, p.77.

32

급했듯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수용하면서도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3은 홀수이다”와 같이 대상의 존재를 함의하는 진술은 거짓이며 “모
든 자연수는 후자를 갖는다”와 같은 진술은 공허하게 참이라고 주장한
다.

52)

그리고 이것이 수학은 소설처럼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헛된 기

술이라는 필드의 ‘허구주의’이다.
다른 한 측면으로 필드는 인식론적 문제제기가 인과적 인식론과 같은 특
정한 인식론에 기초하지 않고 재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53 )

그가 인과

적 인식론 대신에, 혹은 그의 표현대로 ‘특정한 지식에 대한 이론’ 대신에
제시한 것은 소위 ‘신빙성의 테제’라고 불리는 것으로, 그것은 “수학자들이
‘P’를 받아들인다면 P이다”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수학자들의 ‘P’에 대한
믿음과 P가 주장하는 사실 사이의 관계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54)

시 말해서 우리가 특정한 인식론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수학적 진술 ‘P’에
대한 믿음이 수학적 사실 P를 반영한다는 것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는 믿음과 그 믿음의 대상 혹은 사실 사이에 성립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에 실재론자들이 반드시 설명해야 하는 것으
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버지스와 로젠은 필드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
식화한다.

55)

1) 수학자들이 수학적 대상에 대한 주장을 믿을 경우, 그 주장은 참
이다. (신빙성 테제)
……
2) 신빙성 테제가 참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
……
3) 신빙성 테제는 설명될 수 없다.
52)
53)
54)
55)

Field, 1989, p.3
Field, 1989, pp.232-233.
Field, 1989. p.230.
Burgess and Rosen, 1997, pp.41-42.

33

정리하면, 신빙성 테제는 믿음과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요구
하는데, 수학적 대상의 경우에는 이러한 요구가 만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이 허구라는 필드의 주장이 신빙성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는 것으로부터 정당화되는가? 논자는 필드의 논의가 유명론을 정당화하기
에는 적어도 두 측면에서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1)
신빙성의 요구가 베나세라프의 인식론적 문제제기와 유사한 난점을 갖는다
는 것이며, (2) 그도 인정하듯이 수학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신빙
성의 요구만으로는 부족하며, 결국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지 않는다
는 것이 별도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을 확보할 수 있다.
먼저 (1)의 경우를 살펴보자. 앞서 말한 대로, 필드의 신빙성의 요구는
베나세라프의 경우와 유사한 문제를 야기한다. 수학에 대한 믿음이 신빙성
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의 근거로 필드가 제시한 것은 결국 수
학적 대상의 추상적 성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살펴보았듯이 필드는
특정한 인식론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학적 지식이 신뢰가능하지
않다는 것의 근거로 제시된 것이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성격 이외의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결국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다는 인식론적
전제에 기초해서 수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아래 글을
통해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수학에 대한 실재론적 견해는 시-공 밖에 존재하며 우리와 아무런
인과적 관계도 갖지 않거나 관찰할 수 없는 많은 수의 다양한 비물
리적 대상의 존재를 가정한다. 그리고 그것의 존재와 속성이 알려지
는 과정을 설명할 어떤 기계적 장치도 없어 보인다.

56)

Field, 1989, p.230.

34

56)

결국 수학적 실재론자는 우리와 어떤 인과적 관계도 구성할 수 없는
비-시공적이며 비-인과적인 대상을 가정하기 때문에 신빙성의 요구를 만
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상과 인식주체 사이를 기계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논자는 위에서 언급된 기계적 설명 자체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드는 특정한 인식론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인과성이나 기계적 설명에 대한 요구를 여러 측면
을 통해서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인식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지식이 신뢰가능하지 않
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식은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며, 다음 인용문에서도 이러한 그의 주장은 그대로 드러난다.

수학적 대상은 마음-언어에 독립적인 것이라고 가정되는데, 그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시-공적 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가정된 것이다.
문제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플라톤주의자들의 주장은 해당되는 체계
적 상호관계에 대한 어떤 이성적 설명의 계획도 배제하는 것처럼 보
인다는 것이다.

57)

앞의 인용문에 이어서 위의 경우에도, 그가 수학적 대상에 대한 믿음이
설명되지 않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성격뿐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인식론을 전제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결국 “추상적 대상에 대한 지
식은 불가능하다”는 인식론적 전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
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은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이지만, 앞에서 보았
듯이 필드는 수학적 대상과 관련된 문제는 실재론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
자체가 갖는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인식
57)

Field, 1989, p.231.

35

론적 회의에 기초해서 수학을 부정하는 논증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이 II.3에서 언급한 ‘회의하는 것보다 더 의심스
러운 회의’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신빙성의 기준이 수학적 지식보다
더 확고한 것이어야 한다. 그의 과학적 실재론 및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된
인과적, 기계적 설명의 요구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의 요구란 ‘인지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굳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을 들지 않더라도, 수학이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구
성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신빙성의 요구로부터 수학을 부정
하는 것은 결국 현존하는 과학의 수정 혹은 재해석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
므로 필드의 신빙성의 요구는 지식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에 의존해서
현존 과학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인식과
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와 그 설명이 속한 과학 이론 중 어느 것을
중시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필드의 신빙성의 요구는 모든 과학이 만족시켜야 하
는 조건을 제시하는 규범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현존 과학이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을 부정하는 직접적인
근거는 되는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규범적 주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개별적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 설명의 요구가 그 설명이 속한 과학에 대해
규범적 역할을 수행함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물론 인식이론이 과학에 대한
규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뒤에서 다시 논의할 자연주의를 받아들
인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요구는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논자는 신빙성의
요구라는 과학적 설명의 요구가 현존 과학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론과 과학 이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정당화되어
야 하는 과제이지, 수학과 과학을 평가하는 철학적 논의의 단적인 전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드의 허구주의와 관련된 다른 한 가지 문제 (2)는 신빙성의 논제가 성
립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학이 거짓이라는

36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필드도 인정하고 있듯이, 신빙성이 만족되
지 않는다는 것에만 근거해서 수학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한 논
증이다.

58)

신빙성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수학자들의 믿음

과 수학적 사실 사이의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만을 의미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빙성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학적 지식이 가능하다고 믿는 실재론자들에게 설명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일 뿐, 그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으로부터 수학이 허구라는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지식을 대상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으
로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신빙성의 요구가 모든 지식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볼 필요도 없다. 즉 신빙성의 요구란 수학적 믿음과 대상 사이
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수학적 진술 P에 대한
믿음이 P가 지시하는 대상과의 직접적 관계가 아닌 다른 간접적인 방식으
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신빙성의 요구가 만족되지 않았다는 것이 곧 P에
대한 믿음이 성립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간접
적인 정당화가 가능하다면, 그의 인식론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수학이 참이
며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대로 필드는 수학에 대한 논리적, 선험적 정당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수학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라고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필요불가결성 논증’이다.

나는 지금까지 [신뢰가능한]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을 증명하
려고 시도했다. 수학적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심각한 인
식론적 문제에 부딪친다. 그러나 수학적 실재론이 갖는 이러한 난점
을 제시하는 것이 곧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의 적절한 근거
가 없음을 함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러한 주장은 완전
58)

Field, 1989, p.238.

37

히 잘못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학적 대상에 대한 믿음을 지
지하는 강력한 근거가 존재한다. 그것은 수학 이외의 중요한 이론들
에서 수학적 대상들이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59)

그리고 나서 그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조차도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지
못함을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따라서 그 역시 자신의 논의가 결정적으로
유명론을 입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재론자들의 가능한 대안인 필
요불가결성 논증보다 자신의 주장이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60 )

필요불가결성 논증만 반박할 수 있다면 실재론은 그 근거를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61)

결국 필드의 논증은 사실상 둘인 셈이다. 하나는 신빙성 논제라는 인식
론적 요구이며, 다른 하나는 신빙성 논제가 수학이 거짓임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기에 실재론의 유일한 논거인 필
요불가결성 논증이 잘못되었음을 밝힘으로써 유명론이 정당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드가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구체적으
로 어떤 것인가?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에 수학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에 기초해서 수학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콰인과 퍼트남에
의해 제시되었다.

62 )

퍼트남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형식적, 물리적 이유에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는 과학을 위해

59)

Field, 1989, pp.238-239.
Field, 1989, p.239.
61)
Field, 1980, p.5.
62)
필요불가결성과 관련된 콰인의 대표적인 글은 다음과 같다.
Quine(1948, 1951a, 1960, 1963, 1969, 1981, 1986).
필요불가결성과 관련된 퍼트남의 논문은 다음과 같다.
Putnam(1971, 1979).
60)

38

필요불가결하다; 우리는 이러한 양화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되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물
론 이러한 유형의 논증은 콰인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는 수학적 대상
에 대한 양화의 필요불가결함과 일상적으로 가정되는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임을 몇 년 동안 강조해왔다.

63)

그런데 위의 인용문에서 나타나듯이 퍼트남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
의 필요성에 근거해서 그것의 존재를 입증하는데, 이것은 II.1에서 직해주
의를 언급하면서 논의한 논리어로의 번역과 관련된다. 사실 퍼트남뿐만이
아니라 콰인을 비롯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양화사를 사용하는 일계언어
로의 번역을 존재론적 개입의 선결조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인정하는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는 일계언어로 번역된 수학적 진술의 액면
가이며, 결국 번역된 수학적 진술의 양화사를 글자 그대로 수용할 것을 요
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가 과학을 위
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양화사와 관련된 ‘존재론적 기
준’ 및 수학을 일계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이유가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III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일계언어로의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액면가대로 이해하는 것
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긍정하는
그들의 논증 구조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콜리반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구
조 특히 과학에 의존하는 구조를 아래와 같이 정식화한다.

63)
64)

64)

Putnam, 1971, p.347.
Colyvan, 2001, p.11.
위의 전제 1)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연주의’, ‘확증적 전체론’, ‘콰인의 존재론
적 기준’이라는 철학적 가정들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것은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III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수학적 대상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지 않기 때문에 위의 두 번째 전제를 “ ‘몇몇 수학적 대상’
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로 바꾸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39

1) 우리는 최선의 과학적 이론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모든 대상들
에 대해서 그리고 오직 그 대상들에 대해서만 존재론적 개입을
한다.
2) 수학적 대상은 우리의 최선의 과학적 이론들에 있어서 필요불가
결하다.
3) 따라서 우리는 수학적 대상들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전제 1)에서 드러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에의 요구에 근거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요청(posit)의 성격을 갖는 것이
다.

65)

그런데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필드의 비판은 그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사이의 논쟁을 이해함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핵심적 구조인 요청에 의한 존재론적 개입의 구
조를 드러내는 전제 1)이 아니라 경험적 성격을 갖는 전제 2), 즉 실제로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다는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위의 논증을 무력
화시키고자 한다.

66 )

그런데 최선의 과학적 이론이 언급하는 대상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는 첫 번째 전제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가정일 뿐 아니라 필드의 신빙성의 요구를 대체
할 수 있는 중요한 인식론적 기준이기도 하다. 따라서 필드가 이 전제보다
두 번째 전제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역시 첫 번째 전제가 함의하는 철학적
가정들에 대해 대부분 동의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의 한 형식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러한 추론 형
식 자체는 인정한다.

67)

그는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이 성립하는 조건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65)
66)
67)

Decock, 2002, p.234. Resnik, 1997, pp.175-188.
Colyvan, 2001, p.63.
Field, 1989, p.14.

40

(a) 우리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현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b) 우리가 믿는 현상들의 집합은 크고 복잡하며, (c) 우리는 그 현
상에 대한 상당히 좋은 설명을 가지고 있으며 …… (d) 이러한 설명
에 나타나는 가정 중 하나가 S이며, S를 빼고는 그 현상에 대한 설
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가정하자.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은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가 S를 믿을 만한 강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68)

다시 말해서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은 대상 S의 존재를 우리가 직접 확
인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설명에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면 우리는 S의 존재를 승인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갖는다는 것
이다. 그러므로 위의 인용문을 통해 우리는 필드가 대상과의 직접적인 관
계에 의존하지 않는 인식론적 기준을 수용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필드는 이러한 설명에서 대상의 경험가능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69 )

최선의 과학이 인정하는 대상은 비록 그것이

필드 자신의 인식론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적으로 부정
될 수 없음에 그도 동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추상적 대상을 인
정하지 않는 필드가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
적 추론이기 때문이다.

70 )

즉 그 역시 과학적 추론에 수학이 필요불가결하

다면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러한 필드의 태도는 그가 ‘관념적 수학’이라고 부르는 구성주의나 직관주
의 수학에 대한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구성주의 혹은 직관주의적 수
학을 받아들일 경우 물리적 세계에 대한 수학의 적용은 설명되지 않으며,
더 나아가서 심적 구성물인 수학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물리
적 대상 역시 심적 구성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관념적
68)
69)
70)

Field, 1989, p.15
Field, 1989, p.15.
Field, 1989, pp.15-16.

41

이해를 부정하고 있다.

71 )

즉 직관주의 수학의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일 경

우 과학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이 허구라는 필드의 주장이 어떻게 과학적 실재론과 양립
가능한가? 이 문제에 대해 필드는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다는 콜리
반의 두 번째 전제를 부정함으로써 과학적 실재론을 유지하면서 수학적 허
구주의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그의 ‘보수주의 전략’이다. 필드
는 수학이 보수적인 조건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C) 수학 이론 M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주장 A와 그러한 주장들의
집합 N에 대해, A가 N으로부터 따라 나오지 않는 한 N+M으로부터
도 따라 나오지 않는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보수적이다.

72)

이것은 수학 M을 포함하는 과학 이론 T의 물리적 현상에 대한 주장 A
가 T의 수학적 요소 M 없이 물리적 요소 N만으로 도출될 수 있을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M은 보수적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보수성’의 개념은 사
실 힐버트가 무한수학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을 필드가 과학
에서 수학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것으로, 수학 M이 보수적이라
는 것은 곧 그것 없이 물리적 진술들 사이의 모든 추론이 원칙적으로 가능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수성의 논제가 성립한다면 우리는 과학적 실재론
을 유지하면서 수학을 도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즉 이론 T에서 M
과 N이 구분될 수 있으며, M은 단지 N을 구성하고 있는 A와 같은 진술들
사이의 추론을 매개하는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제
거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드의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전제 2)에
대한 반박은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게 사용됨을 부정하는 것이 아
니라, 그렇게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도구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71)
72)

Field, 1989, p.27.
Field, 1989, p.58.

42

다.

73)

그러나 모든 수학이 보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전제 2)가 바로 반박되지는 않는다. 과학적 추론에서 사용된 수학
이 도구적으로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진술 자체가 수학적 대상에 대
한 언급을 포함한다면 수학적 대상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전제 2)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드의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학
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 실제로 그는 과학적 언어에 대한 유
명론적 재구성이 가능함을 보이기 위해 뉴턴의 중력이론을 유명론적 언어
로 재구성하였다.

74)

그러므로 그의 전략은 두 개인데, 하나는 과학적 추론

에 사용된 수학이 도구적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과학 언어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75)

시 말해서 현실적으로 우리는 수학적 대상을 포함하는 언어로 구성된 과학
을 사용하지만, 이러한 수학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제거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드의 전략을 맥브라이드는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76)

1) 필드는 수학은 과학에 필요불가결하지 않음(dispensable)을 주장
한다. 즉 그는 과학을 유명론적으로 형식화시킬 수 있음을 주장
한다. 유명론화된 과학에서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지칭은 생겨나
지 않는다.
2) 필드는 수학이 성공적으로 과학에 적용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
은 참이 아니라 보수성이라고 주장한다.

73)

필드는 ‘필요불가결성’을 두 의미로 사용하는데, 하나는 위에서 제시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론 선택의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74)
Field, 1980 참조.
75)
과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그의 시도를 ‘유명론화 전략’이라고 부르
고자 한다.
76)
MacBride, 1999, p.434.
1)과 2)는 편의상 논자가 붙인 것임.

43

유명론화 전략인 1)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실재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

과학적 진술 N을 물리적 내용의 변화 없이 유명론적 언어로 쓰여진 N 으
로 번역해야 하는데, 이러한 번역의 규칙을 맥브라이드는 교량 법칙
(bridge law)이라고 부른다.

77)

교량 법칙이 성립된다면 우리는 실제 과학적

논의에서는 N을 사용하면서도 존재론적 개입과 관련해서는 물리적으로 동
#

치인 N 을 이용할 수 있다. 결국 수학적 대상에 대한 개입 없이 실재론적
과학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두 주장이 성립한
다면 우리는 실제 과학에서는 수학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거 가능함을 쉽게 입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량 법칙에 의해 우리는
일반적인 과학적 진술 N1, N2, , , , , Nn을 물리적 내용의 변화 없는 유명론
#

#

#

적 언어로 구성된 N1 , N2 , , , , , Nn 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N1, N2, , , , ,
Nn으로부터 수학에 의존해서 A가 도출되었을 경우에도 보수성의 논제인
#

#

#

#

2)에 의해 A의 유명론적 번역 A 이 N1 , N2 , , , , , Nn 으로부터 도출 가능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과학에서 수학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유명론적 언어로 바꾸어 쓸 수 있으며, 결국 수학은 과학에
필요불가결하지 않음을 입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두 논제는 어떻게
입증되는가?
우선 과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실제 과학에서 사용되
는 모든 진술을 유명론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만 정
당화된다. 그러나 모든 영역의 과학 언어를 유명론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각 영역의 과학에서 언급하는 대상 역시 다르기 때문에
유명론적 전략은 일반적인 원칙을 통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필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뉴턴의 역학을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임
으로써 이러한 전략의 가능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하였다. 즉 뉴턴 역학을
표본으로 삼아 그것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다른 과학에서도
동일한 작업이 가능함을 보이고자 하였다.
77)

MacBride, 1999, p.434.

44

이를 위해 필드는 뉴턴 역학이 적용되는 공간에 대한 진술에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해석
학이 수행했던 것과 정확히 역방향 전략이다. 주지하듯이 기하학을 수에
대한 것으로 재구성한 것이 해석학인 반면 필드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
급 없이 뉴턴 역학을 재구성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주장을 ‘수’에 대한 언
급 없이 재구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드의 역학을 종합적
역학(synthetic mechanics)이라고도 부른다.

78)

그러나 뉴턴 역학을 고전적

인 기하학적 방법만으로는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필드는 공간에 대한
모든 해석학적 언급을 제거하기 위해 시-공점(space-time point) 및 시공점의 영역(region)을 도입하여 실수를 대체한다.

79 )

그는 좌표상의 모든

실수들의 4중순서쌍(quadruples)에 시-공점을 일대일 대응시킴으로써 이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매우 복잡하지만, 아래 가장 기초적
인 표상정리(representation theorem)를 통해 기본적 특성은 쉽게 파악될
수 있다.

a) 임의의 모든 점 x, y, z에 대해서 d(x, y)=d(z, w)일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xy Cong zw이다.
b) 임의의 모든 점 x, y, z에 대해서 d(x, y)+d(y, z)=d(x, z)일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y Bet xz이다.

80)

즉 물리학은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변항 x, y, z에 해당하
는 것은 물리적인 시-공점이며, 수로 표현되는 그들 사이의 거리(d) 역시
물리적 관계인 합동(cong)와 사이(bet)에 의해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정리가 성립된다면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재
론적 과학과 유명론적 재해석 사이를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실제 과학적
78)
79)
80)

Sapiro, 2000, p.231.
시공점의 영역은 실수들의 집합을 대신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MacBride, 1999, p.436.

45

추론에서는 실재론적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존재론적 개입과 관련해서는 유
명론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필드의 전략은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81)

우선 필드의 유

명론화 전략의 범위와 관련된 다양한 비판이 있어 왔다. 가령 그의 전략은
뉴턴 이론보다 훨씬 더 많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양자역
학 및 ‘가능성’과 같은 것을 언급하는 확률적 설명에 적용될 수 없다는 비
판이 있어 왔다.

82 )

그러나 그가 모든 과학 이론을 유명론적으로 표현하지

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뉴턴 역학을 유명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러
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필드의 전략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뉴턴 역학
에 대한 유명론적 재구성이 성립한다면,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존재론적으
로 보다 경제적인 철학적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다.

83)

유명론화 전략과 관련하여 논자가 보다 주목하는 비판은 그가 수 대신에
도입한 시-공점에 대한 비판이다. 왜냐하면 시-공점에 대한 비판은 그가
뉴턴 역학조차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했음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논자 보기에 시-공점에 관한 중요한 비판은 대략 두 개인데, 하나는
시-공점이

물리적

대상이라는

그의

주장은

공간에

대한

실체론

(substantivalism)과 관계론(relationalism)이라는 오래된 논쟁과 관련된 문
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공점은 물리적 대상이라기 보다
는 수학적 대상과 유사한 존재론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공점이 물리적 대상임을 주장하기 위해 공간에 대한 실체론을
수용한다. 즉 물리적 세계는 물리적 대상들과 그것으로 구성된 물질뿐 아

81)

필드의 유명론화 전략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은 아래 치하라의 책에서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Chihara, 1990, pp.153-173.
82)
Resnik, 1997, pp.56-58. Chihara, 1990, pp.159.
83)
또한 한 명의 철학자에게 모든 과학 이론을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
하는 것은 지나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46

니라 그것들이 위치하는 시간과 공간 자체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84)

물론

관계론자들은 이러한 시공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명론화 전
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체론이 공간에 대한 적절한 설명임이 먼저 입증
되어야 한다. 실제로 필드는 장 이론(field theories)들을 통해 실체론을 정
당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전자기 이론은 대상에 의해 점유
됨과 무관하게 모든 시-공점에 전자기적 강도(intensity)를 부여한다고 주
장하면서, 장 이론은 인과성을 물질에 의해 점유되건 되지 않건 간에 모든
점에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85 )

물론 이러한 필드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비

판이 있어 왔다. 가령 맬러밋(Malamet)은 장 이론은 시공 자체가 아니라
시공을 점유하는 장(field)에 힘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필드를
비판한다.

86 )

그러나 논자가 보기에 필드의 유명론화 전략에 대한 보다 직

접적인 비판은 시-공점의 존재론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 시-공점이 인과성
을 갖는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그것이 구체적 대상이라는 것이다.

87 )

더욱

이 시-공점이 구체적 대상이라는 주장은 유명론화 전략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이기도 하다. 시-공점이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면 유명론적 이
론이 실재론적 이론보다 존재론적으로 경제적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러나 시-공점이 구체적인 대상이라는 그의 주장은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
는데, 이것이 곧 논자가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비판이다.
가령 레스닉은 물리학에서 시-공점은 역사적으로나 설명적으로나 표준
적인 물리적 대상보다는 수학적 대상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88)

즉 시-공점

은 물리학의 이론적 대상과 같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 아
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는 것이
다.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은 현상이 일어나는 구조이지 현상을 구성하
84)

MacBride, 1999, p.437.
Field, 1980, pp.181-184.
86)
Macbride, 1999, p.438.
87)
필드 역시 시-공점이 구체적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Field, 1989. pp.67-73.
88)
Resnik, 1985a, pp.165-169.
85)

47

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시-공점은 수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난제를 하나 더 야기하는데, 그것은 시-공점이 실수와 구조적 유사
성을 매우 많이 갖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89 )

이것은 유명론화 전략의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한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드가 시-공점을 도입한
이유는 실수에 대한 언급 없이 뉴턴 이론을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스닉이 지적하듯이 실수 대신 시-공점 및 시-공점
들의 영역을 사용하여 고전적 해석학을 어렵지 않게 재구성할 수 있다.

90 )

물론 이러한 실수와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공점은 독립적 인
과관계를 갖는 구체적 대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와 시-공점
이 동일한 수학적 구조를 표현한다면 연속체 가설과 같은 결정 불가능한
가설들 역시 시-공점을 이용해서 구성 가능하며, 따라서 연속체 가설이 물
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해서 연속체 가설은 물리적
사실에 의해서 참과 거짓이 결정되는 물리적 가설이 된다.

91 )

그러나 연속

체 가설이 물리적 가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더러 물리적 대상
이 이러한 특징을 갖는다는 것은 더욱 인정하기 어렵다. 심지어 필드 역시
연속체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믿기 어렵기 때문에 연속
체에 대한 물리적 유비가 발생하지 않는 물리학이 보다 선호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2)

결국 시-공점이 인과성을 갖는다는 필드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고 하더라도 그것을 물리적 대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시-공
점을 이용한 그의 유명론화 전략은 ‘실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
급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히 의심스러운 대상을 도입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보수주의적 전략과 관련해서도 그는 쉽지 않은 문제에 직면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보수주의적 전략은 수학을 사용하여 도출된 물리적 귀결들을
89)
90)
91)
92)

Sapiro, 1997, pp.235-242.
Resnik, 1985b, pp.192-195.
Sapiro, 2000, p.160.
Field, 1989, p.48.

48

수학 없이 물리적인 전제들만으로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
주의적 전략은 ‘논리적 귀결’이라는 메타-논리적 개념에 의해 정의되었
다.

93)

그런데 그는 이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사용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논리적 귀결은 모형을 사용해서 정의되는데, 이것 역시
추상적인 대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드는 보수성을 모형
을 비롯한 다른 추상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정의하기 위해 일관성에 의
존하는데, 모형의 도움 없이 도입된 일관성은 결국 ‘가능성’과 같은 양상에
의해 정의될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그는 수학적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양
상을 도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양상을 추상적 대상을 대신하기
위해서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특정한 추상적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추상적 대상을 도입한다는 문제를 야기할뿐더러, 비록 양상을 가능세계와
같은 추상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된다. 주지하듯이 모형이 메타 논리에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상당히 복잡하고 잘 정의되지 않은 양상 대신에 보다 정확하게 정의된 개
념인 모형을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즉 ‘가능성’, ‘필연성’과 같은 양상적 개
념 대신에 ‘모든 모형에서 참’ 혹은 ‘한 모형에서 참’이라는 보다 잘 정의
되고 정확한 개념으로 메타 논리적 개념들을 정의하기 위해 모형이 사용된
것이다. 또한 이것이 현대 논리학의 가장 큰 성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굳이
‘이데올로기와 존재론의 교환’ 이라는 콰인의 비판을 들지 않더라도

94 )

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제거하기 위해서 양상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한가
는 많은 논란을 충분히 야기할 수 있다.
결국 필드는 과학에서 수학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시-공점에 관련된
논란뿐 아니라 보수성을 유명론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논리적 귀결과 관련

93)

필드는 보수성을 정의하면서 구문론적 귀결과 의미론적 귀결을 혼용하여 사용
하였다. 그러나 콜리반이 주장하고 있듯이 그가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의미
론적 귀결이기 때문에 앞으로 논의되는 논리적 귀결은 의미론적 귀결이다.
Colyvan, 2001, p.70.
94)
Quine, 1986, p.397.

49

된 메타논리적 개념들을 유명론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충분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았음을 지금까지의 논
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논자는 본 논문에서 필드의 유명론화
전략의 문제를 더 이상 지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논자가 필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유명론자인 그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공유하는 철학적 가정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며, 필
드의 프로그램이 실패했다는 것이 곧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타당함을 함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필드의
전략이 갖는 중요한 함의는 그의 프로그램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필요불
가결함’이 현존 과학에서 수학이 사용되는가의 문제가 아닌 유명론적 재해
석 혹은 재구성의 가능성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드는 필
요불가결성 논증과 유명론 사이의 논점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만일 우리가 수나 함수와 같은 것에 대한 개입을 포함하지 않는 동
등하게 훌륭한 이론이나 설명을 제공한다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에
의존하는 어떤 수학에 대한 정당화도 무너진다.

95)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필드의 핵심적
비판은 과학 이론이 수나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재구
성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이론이 현존하는 과학 이론과 동등하거나 더
훌륭한 이론이라면 수학에 대한 언급 없는 이론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 경우 우리는 콜리반이 정식화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첫 번
째 전제 및 그와 관련된 철학적 가정들에 동의하면서도 유명론이 정당하다
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역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없는 동등하게 훌륭한 이론이 구성된다면 유명론이 정당하다는 주
장에 동의할 것이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첫 번째 전제는 최선의 이론이
95)

Field, 1989, p.17.

50

언급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며, 유명론적 이
론이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과 동등한 설명력을 갖는다면 굳이 추상적 대상
에 대한 존재론적 설명의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96)

그래서 필

드는 유명론과 실재론 사이의 논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수학적 실재론과 내가 수용한 반-실재론 사이의 논쟁은 수학의 참
임이 필요한가와 보수성만으로 충분한가 사이의 논쟁이다. 반-실재
론을 선호하는 근거는 분명하다. 그것은 이론적으로 보다 경제적이
다.

97)

물론 이론 선택의 다양한 기준 중 존재론적 경제성이 갖는 중요성에 대
해서는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98 )

그러나 유명론적 이론이 필드가 주장하

는 것처럼 실재론적 이론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설명력을 갖는다면, 이 경
우 존재론적 경제성은 이론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필
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보수적
이지 않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최선의 이론이 수학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으로부터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그들이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수학에
대한 도구적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곧 과
학에 대한 실재론과 그 과학에 사용된 수학의 유명론적 해석이 양립 불가
능함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정당화
해야 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신뢰는 수학의 액면가에 대한 신뢰를 동반한
다는 것이다.

96)

97)
98)

다음 장에서 언급할 것이지만, 존재론적 경제성을 이론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사용하는 콰인이 실재론자가 된 이유는 수학 없이 현존하는 과학과 동등한 설
명력을 갖는 이론이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역시 현존하는 과학
과 동등한 설명력을 갖는 유명론적 이론이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Field, 1989, p.242.
Burgess and Rosen, 1997, pp.208-225.

51

그리고 이것은 결국 과학에 사용된 수학적 진술과 물리적 진술이 동일한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즉 II.3에서 언급한 의미
론적 일관성, 그것도 수학적 진술이 과학적 진술과 동일한 존재함의를 갖
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99 )

다시 말해서 수학적 진술이 참이라는 것

으로부터 그 대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제로 사용되는
수학적 진술이 ‘수’, ‘함수’, ‘집합’과 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진술에 대한 적절한 의미론적 분석은 반드시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수학
적 대상에 대한 표준적 양화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수학적 진술을 번역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주장하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과학이 참이
라는 것이 수학적 진술에 대한 실재론적 번역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다
시 말해서 과학적 진술과 수학적 진술에 사용된 양화사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논자가 파악하는 유명론자들과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기초한 실재
론자들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지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필드를 비롯한 유
명론자들은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과 과학이 신뢰할 만한 지식이
라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신뢰와 수학의 효용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수학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근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99)

또한 이것은 II.1에서 제시한 치하라와 같은 반-직해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이기
도 하다.

52

III.
III.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확증적 전체론
앞에서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자들 사이의 논쟁이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귀착된다
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부터 논자는 이러한 논점에 기초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불가피하게 의존하
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및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의 문제를 지적함
으로써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본격적으로 재구성하기 전에 예비적 사항 둘을 잠
시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갖는 상식적 설득력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II.4에서
의 논의를 통해서 이 점은 이미 드러났다. 논자가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
는 이유는 과학에서 수학이 사용된다는 것 자체가 보기에 따라서는 실재론
을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게는 수학이 과학
에서 사용됨을 이용해서 플라톤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증을 아래와
같이 귀류적으로 구성한다.

100)

1) 플라톤주의적 관점에 있어서 물리적 법칙과 이론들은 반드시 수
학적 대상과 비수학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해야만 한다.
2) 모든 물리적 관계(물리학에 있어서의 관계)는 인과적이며, 시공적
이다.
3) 수학적 대상은 인과적이거나 시공적인 관계에 개입하지 않는다.
4) 따라서 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물리적 법칙이나 이론은 거

100)

Bigaj, 2003, p.198.
물론 위의 정식화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보조적 전제가 개입해야만 하
지만, 위의 간략한 논증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논증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을 것
이다. 또한 위의 논증은 스타이너를 참조해서 구성한 것이다.

53

짓이다.

결국 플라톤주의를 승인할 경우 모든 물리적 법칙이 거짓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플라톤주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앞
에서 언급한 유명론자들과 동일한 문제를 안는다.

위의 전제 2)와 3)은

앞에서 보았던 ‘인식론적 문제제기’와 마찬가지로 수학, 인과성 및 과학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지, 전제로 사용되기에는 부적절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하여 위의 논증이
지적하고 있는 논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수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실재론을 옹호
하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수학이 과학
에서 사용됨을 통해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해야만 하며, 단지 수
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단순한 전제에 근거해서 유명론을 논박할 수 없
다. 위의 논증에서 보이듯이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유명론자들
뿐만이 아니라 실재론자들에게도 설명의 난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인식론적 문제제기’보다 더 명확한
사실인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됨’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실
재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의 해석과 관련된
철학적 가정들이 관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전제들을 분명히
해야만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정확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하기 위한 예비 사항 중 다른 하나는 이 논
증을 제안한 콰인이나 퍼트남과 같은 철학자들의 강조점 및 근거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처음 주장한 콰인은 사실 ‘필
요불가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101)

게다가 수학을 제외한 대부

분의 경우에 그는 추상적 대상을 제거하려는 유명론자이다.

101)
102)

Decock, 2002, p.232.
Decock, 2002, pp.238-239.

54

102 )

그렇기 때

문에 그가 수학적 실재론을 주장한 것은 어찌 보면 특이한 현상이다. 그리
고 필요불가결성과 관련된 그의 논의들은 수학적 대상뿐 아니라 ‘존재’,
‘언어’ 등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논의와 대부분 관련되어 있다. 또한 II.1에
서 언급했듯이 ‘필요불가결성’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퍼트남의 목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는 수학적 대상보다는
수학적 진술의 객관성을 입증하려 했으며, 객관성이 보장된다면 굳이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103 )

실제로

104)

따라서

그는 양상을 사용하여 수학을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콰인-퍼트남 논제’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들이 기
초하는 철학적 가정 및 목표는 상당한 차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논
의를 ‘필요불가결성 논증’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정리하는 것은 다양한 오
해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II에서 언급한 콜리반의 예에서 보이듯이 현
재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상당히 잘 정리된 형태로 정식화되기 때문에, 그
리고 이 논증이 의존하는 철학적 근거들 역시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논자는 콰인과 퍼트남의 세부적인 주장에 대한 해석보다는 II에서
의 논의에 기초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II에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 입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하
게 제시됐기 때문에, 논자는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정
당화하기 위해 요구되는 철학적 가정들 및 논리구조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1.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자연주의
논자는 이 절에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기본적 논리구조와 그 논증의 근
거로 이해되어 온 자연주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의하려 한다. 이미 보았

103)
104)

Putnam, 1971, pp. 256-357.
Putnam, 1979 참조.

55

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요청의 성격을 갖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콰인
의 존재론에 근거한다. 그는 이론과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한다.

이론이 주어진 대상이나 대상들의 집합을 가정함을 보이려면, 그 대
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 집합이 공집합이면 이론이 거짓이며, 따라
서 이론이 참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나 집합의 원소들이 요구됨을
입증하면 된다.

105)

그런데 이러한 이론과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콰인의 주장은 II.4에서
논의한 필드의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과 같은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106)

즉 이론이 참이기 위해 반드시 가정해야 하는 대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이나 콰인의 존재론은 앞에서 보았
던 콜리반의 정식화와는 다소간의 차이를 갖는다.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
이나 II.1에서 논의한 실재론에 대한 정의에서 드러나듯이 필드는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믿음을 실재론의 근거로 이해하고 있으며, 콰인 역
시 이론이 참이기 위해 가정해야만 하는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II에서 살펴보았듯이 액면가와 관련된 주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유명론과 실재론 사이의 논쟁은 논점을 상실한다. 따라서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다는 콜리반의 두 번째 전제는 “수학적 대상들에 대한 명백한
지칭은 최선의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다”로 바뀌어야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논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최선의 이론에서 수학적 대상에 대한 명백한 지칭이 필요불가

105)
106)

Quine, 1963, p.93.
물론 그렇다고 논자가 콰인의 존재론이 곧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이라든가
필드와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이 동일하다는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논자는
단지 그들이 존재론적 문제에서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 혹은 요청의 성격을
갖는 추론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을 밝힐 뿐이다.

56

결하다는 것이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일반적
으로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논쟁의 논점은 최선의 이론이 언급하는
대상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는, II.4에서 제시한 콜리반의 정식화
에서의 첫 번째 전제와 수학적 대상에 대한 명백한 지칭이 과학에 필요불
가결하다는 두 번째 전제에 대한 정당화로 모아진다. 첫 번째 전제는 규범
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자연주의와 확증적 전체론 그리고 콰인의 존재론
적 기준에 의해서 정당화된다고 주장되어 왔으며, 두 번째 전제는 실제로
모든 과학에서 수학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경험적 주장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II.4에서 살펴본 필드의 보수주의 전략은 이 두 번째 전제에
대한 공격이었다. 즉 첫 번째 전제는 규범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철학적
전제들에 의해서 지지되는 반면에, 두 번째 전제는 실제로 수학이 과학에
서 필요불가결하다는 경험적 주장으로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필요불가결
성 논증을 논의하는 경우 이 두 전제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지지되거나 부
정되었다.
그러나 논자는 이 전제들을 독립적으로 평가해서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핵심적 논제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II.4에서 언급했듯이
첫 번째 전제의 핵심적 내용인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에 대해서는 유명론
자들 역시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직 필요불가결한 대상에 대해서만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는 첫 번째 전제의 핵심적 주장이 두 번째 전제에
서의 ‘명백한 지칭’에 대한 언급을 유도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두 번째 전제의 ‘명백한 지칭’이란 결국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대로의 이해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필요불가결성’에서 ‘액면가’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그래서 논자는 ‘필요불
가결성’에 대한 의미 규정 혹은 ‘액면가’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논자는 이 절에서 우선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게 언급되는 대
상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의 근거로 주장되어 온 ‘자연주의’에 대해 살펴보

57

고자 한다. 논자가 다른 철학적 가정에 앞서 자연주의를 먼저 언급하는 이
유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인식론적 문제제기에 기초한 유명론자들이
모두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존중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신뢰는 일반적으로 ‘자연주의’
라는 틀 속에서 논의된다. 따라서 자연주의를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유명론
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자연주의’는 현대 영어권 철학의 가장 큰 흐름이면
서 동시에 가장 불투명한 용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의 혹은 자연주의자로 분류되는 철학자들이 모두 공유하는
구체적인 논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107)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자는 자연주의에 대한 잠정적 정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콰인의「자연화된 인식론」에서 드러나듯이 인식과정
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108)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연주의를 인식론의 규범적 역할보다는 인식과정에 대한 기술적 설명을
중시하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자연주의가 전통적인 논리적
정당화 중심의 인식론으로부터 인식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로 인식론의
주제를 이전하는 일종의 철학적 전환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전환의 배경에는 철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규정이 놓여 있다. 김재권이나 메디의 논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자연주의적 전환의 핵심은 ‘제일철학’의 포기에 있다.

109 )

그들은 전통적으

로 이해되어 온 과학과 철학의 관계, 예를 들어 데카르트나 칸트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과학에 대한 철학의 선험적인 규범적 지위를 부정하면서 과학
과 철학의 관계를 재정립한다. 그들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문제를 과학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가령 콰인은 과학과는 별개로 철학적 기준에 의해 과
107)
108)
109)

Maddy, 2001 참조.
Quine, 1969, pp.69-90.
Kim Jaegwon, 1988. Maddy, 2001 참조.

58

학적 성과를 재해석하거나 평가하는 것을 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주의는 제일철학의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오류
가능하고 수정 가능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초-과학적 법정에서도 답
변될 수 없는 실재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고 자연주의는 이해한다.
또한 자연과학을 가설-연역적 방법과 관찰 이외에는 어떤 정당화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110)

결국 자연주의란 초-과학적인 방법에 대한 포기와 과학의 자율적인 방
법론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인식론은 과학이 실제로
참인가를 선험적, 초월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대상인
우리가 물리적 대상인 세계를 이해하는 과학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식론을 심리학의 한 장으로 편입시킨다. 이러한 그의 인식론에 대한 태
도는 과학과 관련하여 보다 분명해진다.

111)

고전적 인식론자들과 달리 우리 자연주의자들은 과학 자체보다 더
확고한 과학의 기초를 추구하지 않는다.

112)

그런데 이러한 ‘자연화된 인식론’이 순환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가장 중
요한 이유 역시 제일철학의 부정에 기인한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인식론을
지식에 대한 정당화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인식론을 과학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순환의 오류를 범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이나 일상적인 지
식에 대한 평가의 기준인 인식론이 그 평가의 대상인 과학의 한 부분이 된
다는 것은 순환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콰인은 이미 제일철학
을 포기했기 때문에 인식론은 더 이상 과학에 대해 지배적인 평가자의 위
110)
111)
112)

Quine, 1981, p.72.
Quine, 1969, pp.75-76.
Quine, 1995, p.16.

59

치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화된 인식론은 논리적 순환과 관련된 아무
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결국 보이드의 주장처럼 “경험과학에 대한 인
식론은 경험과학이다”

113)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통적인 과학방

법론에 대한 철학적 해명인 과학철학의 역할에 대한 수정도 요구하는데,
콰인은 과학의 방법론적 규범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성찰은 표준들과 절차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러한 표준과 절차들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습득한 과학 자체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114)

이것은 과학의 방법론적 규범들은 과학-외적인 철학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내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철학자와 과학자는 세계를
이해하는 ‘노이라트 보트에 동승한 선원’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철
학과 과학의 연속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115 )

결국 자연주의자는 철학의 선

험적 지위를 포기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이론인 과학 안에서 과학자와 어깨
를 맞대고 동일한 방법론을 사용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지적 공동체의 일원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콜리반의 말대로 자연주의, 특히 콰인의 자연주의
는 ‘제일철학의 포기’와 과학의 독립적인 방법론에 대한 인정을 통한 ‘존재
론의 과학화’ 그리고 ‘철학과 과학의 연속성’이라는 테제로 구성된다.

116 )

그리고 이러한 자연주의에 기초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실제 과학에서
요구되지 않는 ‘인식론적 문제제기’에 기초해, 과학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
는 유명론자들의 주장을 비-자연주의적 태도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모든 자연주의자들이 수용하지는 않을 것
이다. 자연주의를 앞에서 설명한 방식대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주의
113)
114)
115)
116)

Boyd, 1990, p.227.
Quine, 1981, p.181.
Quine, 1975, p.72.
Colyvan, 2001, pp.23-24.

60

가 과학에 대한 규범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므로 과학의 모
든 요소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앞에서 언급한
‘자연화된 인식론’에 따르면 인식대상과 인식주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과
학적 설명, 즉 물리적, 인과적 설명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인식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대상에 대한 언급을 최선의 이론이 포함한다면,
해당 이론에 대한 존중과 자연화된 인식론 중 어느 것이 보다 더 기본적인
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
하는 현존 과학이다. 우리가 현존 과학에 대해 신뢰한다면 수학적 대상을
긍정해야 하지만, 자연화된 인식론을 따를 경우에는 그러한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주의가 매우 포괄
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연주의는 단지 현존 과학에 대한 존중뿐만 아
니라, 김재권이 말한 것처럼 ‘존재론적 논제’와 ‘인식론적 논제’를 포함하
는데, 그것은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시공적 혹은 물리적
대상이라는 것이다.

117)

과학적 방법론 혹은 규범으로서의 자연주의적 논제

들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다.

118)

존재론적 논제: 존재하는 것은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시공적 대상들
이다.
인식론적 논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어떤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117)
118)

Kim Jaegwon, 1988 참조.
이러한 ‘존재론적 논제’와 ‘인식론적 논제’는 몇 가지 측면에서 불완전하며, 위
에서 언급한 김재권의 정식화와도 조금 다르기는 하다. 특히 위의 두 논제를
정식화하는 데 논자가 사용한 ‘과학적 설명’이라는 것은 불분명한 용어이다.
그래서 많은 자연주의자들, 예를 들면 암스트롱이나 필드와 같은 자연주의자들
은 ‘과학적 설명’이라는 용어 대신에 ‘인과적 방법’이나 ‘인과적 설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적 설명이 곧 인과적 설명인가에 대해서
는 충분히 회의할 수 있으며, ‘인과성’이라는 개념 역시 매우 불분명한 개념이
기 때문에 논자는 ‘과학적 설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61

그렇다면 제일철학의 부정 혹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과 위의 두
논제가 부딪치는 경우, 즉 현실적으로 인정되는 과학과 위의 두 논제가 부
딪치는 경우 자연주의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II에서 논의한 필드의
유명론과 필요불가결성 논증 역시 이러한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필드의
논의는 인식론적 논제에 근거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인 데
반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제일철학의 부정과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에 기초해서 과학이 언급하고 있는, 그것도 필요불가결하게 언급하고
있는 수학을 부정하는 것은 비-자연주의적 태도라고 규정하기 때문이
다.

119)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필드를 비롯한 유명론자들이 모두 자연주
의자라 할지라도 자연주의에 의존해서 그들의 논증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더 나아가서 자연주의를 ‘제일철학의 부정’과 ‘과학에 대한 신뢰’를 중심으
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인식론적 논제와 존재론적 논제는 여전히 자연주
의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기 때문에 현존 과학에 대한 신뢰가 곧 과학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대한 신뢰라는 것은 입증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인식과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의 요구 역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라
는 자연주의적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현존 과학이 수학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수학적 진술을 액면
가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존재론적 논제나 인식론적 논제에 기반한 유명론자들의 주장이
비-자연주의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위의 두 논제에 기반한
필드 역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중요한 논증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가
부정하는 것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더 이상 자연
주의에 기초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논자가 보기에,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자들이 과학에 대한
119)

Colyvan, 2001, pp.39-65 참조.

62

신뢰를 공유하면서도 수학에 대해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하는 이유는 콰인
의 ‘존재론적 기준’과 ‘확증적 전체론’에 있다.

2. 콰인의 존재론과 이론 선택의 기준
이미 확인한 대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자들은 상당히 많은 철
학적 가정들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에 관해
서 전혀 상반된 결론에 도달한 것은 존재론에 대한 그들의 접근방식의 차
이에 기인한다. 자연주의와 관련한 위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유명론자들
이 개별적 대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기초한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과학이 참이라는 것에 기초한다. 즉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필
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주목하는 것이 그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신뢰
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유명론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대상과 인식주체 사
이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다. 이처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존재론
은 이론의존적 혹은 이론중심적 존재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콰인은 “우리
의 존재론은 넓은 의미에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념적 체계가 확정
되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120 )

대상의 존재는 이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험적 대상은 인정하면서 이론적 대상은
회의하는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콰인의 반론이기도 하다. 결국 콰인에게 있
어서 존재론의 문제는 우리가 인정하는 과학은 어떤 것이며, 그 과학이 언
급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것은 콰인이 여타의 추상적 대상에 대한 회의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신뢰를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추상적 대상의 존재는 인정
하지 않으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는 인정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
다.

120)

Quine, 1948, pp.16-17.

63

수와 집합들은 이론물리학이나 자연에 대한 여타의 체계적 논의에
기여하는 힘과 능력 때문에 선호된다. 명제나 속성은 동일성과 대체
율과 관련된 비-규칙적인 행위 때문에 선호되지 않는다.

121)

이것은 수나 집합은 인정하면서 같은 추상적 대상인 명제나 속성은 인정
하지 않는 이유를 이론적 가치 혹은 전체 이론에의 기여에서 찾는 것이다.
부분적인 비판이 없지는 않지만 존재론적 문제의 이러한 전환은 이후의 존
재론의 전형을 구성하며, 그가 고전경험주의 및 실증주의자들과 결별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론중심적 존재론만으로는 수학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당
화되지 않는다. 이론이 참이기 위해서 그 이론이 언급하는 특정한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관련된 진술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했을 경
우에 성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부가적 논거
없이 그것이 언급하는 대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어도 수학의 액
면가에 대해 회의하는 유명론자들에게는 설득력 없는 논증으로 보일 것이
다. 따라서 액면가의 문제를 해결할 부가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부가적 논의를 우리는 콰인의 존재론 안에서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한 이론에 속한 모든 문장은 동일한 의미론적 기준으로 분
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 T를 구성하고 있는 언어 L에 속한 모든 문
장이 동일한 의미론적 기준을 갖는다면, 다시 말해서 L을 구성하는 ‘경험
가능한 문장’, ‘이론적 문장’, ‘수학적 문장’ 등이 참이 되는 조건을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우리는 L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L을 구성하고 있는
경험적 문장과 동일한 방식으로 수학적 진술을 분석해야 하며, 결국 수학
적 진술 역시 다른 주장들처럼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
다.

122)

121)
122)

Quine, 1969, pp.97-98.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베나세라프의 첫 번째 요구, 즉 ‘의미론적 일관성’을 만
족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64

그러므로 콰인의 존재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의 의미론이 적용
되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콰인은 과학을 구성하는
언어를 ‘일계언어’로 번역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론에 속한 모든 변항은 동
일한 의미론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123)

이것은 ‘존재하는 것은 변

항의 값’이라는 그의 존재론적 기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콰
인의 존재론은 ‘이름’이나 ‘술어’와 같은 일상언어적 요소가 아닌 ‘변항’과
‘양화사’라는 논리언어적 요소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콰인의 경우, 존재하
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론을 일계언어로 바꾸어야
하며, 그 때 이론이 개입하는 대상은 이론이 참이기 위해 변항의 값으로
간주된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다.

124)

그런데 앞의 ‘영역’이란 용어에서 드러

나듯이, 일계언어로 번역된 이론의 변항이 대상을 값으로 갖기 위해서는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이론이 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정되거나 요구되는 것들로서, 일계언어의 해석된 변항의 값이 되는 대상
들이다.

125)

그러므로 일계언어로 번역된 이론의 변항의 값이 되는 대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계언어로 번역된 과학적 진술의 변항
이 ‘양자’를 값으로 갖는다면 그것의 존재가 인정되듯이, 그 언어에 속한
수학적 진술이 참이 되기 위해 ‘연속체’와 같은 수학적 대상이 변항의 값
이 되어야 한다면 그것의 존재는 ‘양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123)

동일한 이론언어를 구성하는 모든 변항은 동일한 의미론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을 ‘일반변항(general variable)의 도입’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124)
Quine, 1951a, p.11.
125)
치하라가 지적하고 있듯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대상이 이론이 ‘함의’하는
대상인지 ‘가정’하는 대상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론이 참이기 위해 그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는 위의 주장은 ‘가정’의 의미가 강하지만, 뒤에서 다룰
배경이론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함의’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존재론적으로 개입
한다. 따라서 치하라의 지적은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과 관련하여서 중요한 논
점을 제공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Chihara, 1973, p.65.

65

그런데 변항의 영역을 결정하는 일계언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기 때문
에, 이론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지금까지의 논의
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일계언어에 대한 해석은 다
양하며 각각의 해석에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존재하
는 것은 변항의 값’이라는 위의 주장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이 존
재하는지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에 ‘의도된 해석’이라는 개념을 사
용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상당히 자의적이다. 그래서 콰인은 “이론의
모든 영역에 속하는 대상들에 대해서만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고 주장한
다.

126 )

즉 존재하는 것은 어떤 해석에서도 이론이 참이기 위해서 반드시

가정되어야 하는 대상들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존재론은 다
음 두 단계로 구성된다.

1) 이론을 일계언어로 번역한다.
2) 일계언어로 쓰여진 이론의 모든 진술들이 참이기 위해 변항의 값
으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대상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콰인의 주장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루어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다. 하나는 이론적 진술을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번역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며,

127 )

다른 하나는 2)는 보기에 따라서 카르납의 이론 내적인 질문과 동

일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첫 번째 것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
한 것으로, 만일 콰인이 과학적 진술을 수학적 대상의 양화를 포함하는 방
식으로 번역해야만 하는 이유를 충분히 제시한다면, 이것은 수학적 실재론
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논자는 비교적 간단한 두 번째 것을 먼저 다루고자 한다. 우리가 수학적
126)
127)

Chihara, 1973, p.96에서 재인용.
이것은 곧 II.2에서 언급한 치하라와 같은 방식의 양화사에 대한 해석이 불가
능함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66

대상의 존재에 관한 물음, 가령 “100보다 큰 소수는 있는가”와 같은 질문
을 카르납과 같이 이론 내적인 문제로 이해한다면 수학적 실재론은 성립하
지 않는다. 이 경우 우리는 위의 질문이 속한 이론에서 특정한 수가 존재
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어도 ‘소수’ 및 ‘추상적 대상’의 존재는 입증할
수 없으며, 이것은 추상적 대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콰인은 카르납의 내적 질문과 외
적 질문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128 )

그러나 위에서 제시된 논의만으로

본다면 “모든 100이 넘는 소수는 추상적 대상이다” 라는 진술에 대한 적
절한 의미론적 평가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일계언어로 쓰여진 어떤 이론에
서도 이러한 진술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상적 대상 자체를
변항의 값으로 갖는 이론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위의 진술이 참도 거짓도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카르납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이 경
우 수학적 실재론에 대한 문제 자체가 구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콰인은 외
적 질문이 실용적으로 해결될 수 있듯이 위의 질문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
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카르납을 비판한다.

129 )

특히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해서, 우리가 검은 백조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100보다 큰 소수가 존재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대해 콰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것들[검은 백조나 백보다 큰 소수와 같은 것들]을 말하면서,
함의에 의해 우리는 물리적 대상과 추상적 대상이 있다는 것 역시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검은 백조는 물리적 대상이며, 백보다 큰 모
든 소수는 추상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130)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콰인은 검은 백조가 있다거나 100보
다 큰 소수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부터 개별적인 새나 수뿐만이 아니라 그
128)
129)
130)

Quine, 1954 참조.
카르납에 대한 콰인의 비판은 다음 논문을 참조. Quine, 1951a, 1954.
Quine, 1951b, p.205.

67

것이 함의하고 있는 물리적, 추상적 대상 역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
고 이것은 이론이 참이 되기 위해 가정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론이 함의
하는 것 역시 존재론의 목록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위의 인용문
에서처럼 검은 백조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진술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물리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함의’와 관련된 이론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
어 위의 인용문에서 검은 백조로부터 물리적 대상으로, 100보다 큰 소수로
부터 추상적 대상으로 존재론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대상들과 물
리적 혹은 추상적 대상 일반을 연결하는 이론이 있어야만 하며, 그래야 개
별적 대상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물리적,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함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 존재론의 상대성 」 에서 말하는 ‘배경이론’이
다.

131 )

그는 개별적 이론은 독립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론을

통해서 이해되고 해석된다고 주장하면서, 개별 이론은 이론 전체를 구성하
는 하나의 요소라는 ‘전체론’을 주장한다. 결국 “100보다 큰 소수가 존재
한다”는 주장이 참이기 때문에, 그리고 ‘100보다 큰 소수’가 추상적 대상
이라는 것은 믿음의 사슬을 구성하는 다른 이론에 의해 보장되기 때문에
우리는 위의 진술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추상적 대상의 존재를 승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2)

그러나 과학 언어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번역
해야 하는 이유와 관련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II에서 논의했던 것
처럼 우리는 과학언어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 없이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진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131)
132)

Quine, 1976 참조.
물론 콰인이 이론이 언급하는 모든 대상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론적 경
제성’은 콰인의 중요한 철학적 지침이며, 앞에서 논의하였듯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대상은 이론이 참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제한되기 때문이
다.

68

a) 소가 두 마리 이상 있다.
b) ∃x∃y(x는 소의 수이다 & y=2 & x≥y)
c) ∃x∃y(x는 소이다 & y는 소이다 & x≠y)

a)에 대한 번역 b)는 자연수 2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개입하지만, c)의
경우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과학언어를 c)와 유사한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 없이 과학을 재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으로부터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
려면 과학적 언어를 c)가 아니라 b)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야 하는 이유
가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물론 위의 예에서는 a)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b)와 c)가 모두 적절하
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c)와는 달리 ‘수’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b)를 선택할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특히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주
장하는 것이 과학에서 언급된 모든 대상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즉 ‘필요불가결한’ 대상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
입해야 함이며, 콰인이 이론을 일계 언어로 번역하는 이유 중 하나 역시
일상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존재론적 개입을 최소화하
기 위함임을 생각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와 관련하여 필드는
b)와 c)가 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b)를 사용하는 화자의
존재론적 개입은 c)와 동일하다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133)

왜냐하면 화자의 존재론적 개입은 그나 그녀가 엄격한 의미에서 받
아들이는 문장의 존재론적 개입이기 때문이다. (a′)와 (b′)가 어떤 느

133)

위에서 필드는 존재론적 개입을 ‘문장’으로부터 ‘화자’로 전환시키고 있다. 물
론 이러한 그의 전환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콰인의 경
우에도 존재론적 개입의 주체가 어떤 것인지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으며, 존재
론적 개입의 주체와 관련된 논란이 본 논문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
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논의는 생략하고자 한다.

69

슨한 의미에서 (a), (b)와 동치라는 것 ― 예를 들어 (a′)와 (b′)가 (a),
(b)의 모든 유용한 역할을 수행함 ― 을 이해하는 화자는 그나 그녀
가 (a′)와 (b′)만을 엄격한 의미에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a)와
(b)를 자주 언급할 것이다.

134)

위의 주장이 성립하고 (a), (b)와 (a′), (b′)가 경험적 현상에 대해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다면, 우리는 과학자들이 (a), (b)를 사용한다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방향’을 존재론의 목록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과학 언어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는 유명론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다면, 과학자들이 ‘수’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실재론적 언어
를 사용한다는 것이 곧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II.4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든 과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유명론적으로 번역된 이론
이 번역되기 전의 이론과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유명론적 번역이 가능하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성
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과학에서 반드시 사용됨에 기초하는 것인데, 유명론적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이러한 ‘필요불가결성’이 성립하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유명론적 번역
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이러한 번역의 문제를 이론 선택의 문제로 이해
한다. 그들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과학 이론 T와 포함하
지 않는 T′가 있을 경우 T와 T′는 서로 다른 이론이며, 이 경우 우리는 일
134)

Field, 1989, p.151.
위에서 필드가 언급하는 (a), (b), (a′), (b′)는 다음과 같다.
(a) The direction of c1= the direction of c2
(a′) c1 is parallel to c2
(b) The direction of c1 is closer to that of c2 than to that of c3
(b′) c1 is more nearly parallel to c2 than c3

70

종의 이론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고 주장한다.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부분에서 번역의 문제는 단순한 동의어의 문제가 아니라, 구성된 이론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부분적으로
타당하다.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된 이론은 비록 경험과 관련하여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존재하는 것에 대한 다른 목록을 갖는 다른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리반은 콰인이 수나 함수와 같은 수학적 대
상을 존재론의 목록에 포함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론 선택의 문제라고 주
장한다.

135 )

이론 선택의 문제와 관련하여 콜리반은 ‘필요불가결하지 않음’

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136)

정의 2; 어떤 대상이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는 필요불가결하지 않다(dispensable).
(1) 첫 번째 이론[실재론적 이론]과 정확하게 같은 경험적 결과를
갖는, 문제되는 대상[수학적 대상]이 언급되지도 예측되지도 않
는 두 번째 이론[유명론적 이론]을 초래하는 이론에 대한 수정이
존재한다.
(2) 두 번째 이론이 반드시 첫 번째 이론보다 선호할 만한 것이다.

어떤 대상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 더 훌륭한
이론이 있을 경우에 필요불가결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번 말했
지만 필드 역시 동등한 설명력을 갖는 훌륭한 이론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
래 유명론적 번역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T와 T′에 대한 선택
의 문제는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 실재론적 이론과 유명론적 이론 사이의
선택의 문제로 귀착된다. 결국 위의 정의 2의 (2)와 관련된 문제가 핵심적
인 논점으로 작용한다.

135)
136)

Colyvan, 2001, pp.76-77 참조.
Colyvan, 2001, p.77.

71

이와 관련해서 콜리반은 경험적 내용이 동일한 이론들 사이의 선택의 기
준으로 콰인이 제시한 ‘단순성’, ‘대담성’, ‘형식적 우아함’ 등을 들면서, 실
재론적 이론이 이러한 가치에 보다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137 )

이러한 콜리

반의 주장은 현존하는 최선의 과학이 실재론적 이론이라는 것에 의해 정당
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 이론에 대한 선택 주체가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실재론적 이론을 선택했다는 것 자
체가 앞에서 언급한 이론 선택의 기준을 실재론이 만족시킨다는 것의 증거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유명론에 대한 공정한 비판이 아니다. 유명론자들이
제안하는 것은 현존 과학 이론 T와 경쟁하는 유명론적 이론 T′가 아니다.
그들이 제안하는 것은 T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일 뿐이다. 이점은 II.4에서
언급한 필드의 예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종합적 과학’은 현
존 과학 이론을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므로, 그것은 현존 과학 이론
T와 경쟁하는 유명론적 이론 T′가 아니라, T에 대한 유명론적 재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 T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는 것과, T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를 포
함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
야 하는 것은 최선의 이론 T가 실재론적 이론이라는 것이 아니라 T에 대
한 유명론적 번역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수학적 대상
에 대한 양화 없이는 과학에 대한 적절한 번역이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것
이다.
더 나아가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역시 과학이나 수학을 그대로 받아들

137)

콰인은 이론 선택의 기준으로 특정한 가치만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앞에서 살
펴본 자연주의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과학이론의 선택의 문제는 과학 내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래서 구체적인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의 기준을 철
학이 선험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경우에는 위의 기준을 제시하며, 다른 경우에는 단순히 가설연역적 방법 및 경
험적 확증만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이론 선택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Colyvan, 2001, pp.78-80.

72

이지 않는다. II장 및 앞의 존재론적 논의에서도 드러났듯이 그들의 존재론
은 수학이나 과학을 일계언어로 번역했을 경우에 결정된다. 그들 역시 현
존 과학 T에 대한 번역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
T가 실재론적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점은 T에
대한 실재론적 번역 T1과 유명론적 번역 T2 사이의 선택의 문제이지 T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서의 이론 선택의 문제와
T1과 T2에 대한 선택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의 이론 선
택과 액면가에 대한 인정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IV에서 다시 논의하
겠지만,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물리적 가정들 ― 가령 ‘마찰력 없는 평면’
이라든지 ‘유체의 연속성’ 같은 것 ― 조차 도구적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재론적 이론 T
를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T를 선택했다는 것이 곧 수학적 진술
의 액면가를 인정함을 의미하며 따라서 T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T2가 아
니라 T1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 선택의 문
제는 결국 번역의 문제에 귀착되며, 이것은 다시 원래의 문제인 액면가의
문제로 되돌아간다. 이론 선택의 문제에 기초해서 수학적 실재론은 정당화
되지 않는다.

3. ‘필요불가결성
필요불가결성’과
필요불가결성 과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주의,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 그리고 이론 선택의
기준으로는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함에 기초해서 수학적 대상이 존재
함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입
증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수학이 사용됨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 사이의 연
결고리가 주어져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은 과학적 언어와 수학적 언어가 동일한 의미론적 기준을 통해서 분석되어
야 한다는, 아직까지는 정당화되지 않은 요구뿐이었다. 이것을 입증하려면

73

앞에서 언급한 ‘필요불가결성’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의존하는 것은 결국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게
사용된다는 것이며, 그래서 과학에 의해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할
수 있는 것 역시 수학의 필요불가결한 사용 이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이 과학에서 필요불가결하다는 의미는 정확하게 무엇인가? 비게는
필요불가결성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한다.

138)

필요불가결성 1) 수학적 개념들과 수학적 정리들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과학적 이론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과학 이론
을 받아들인다면, 적어도 몇몇 수학적 정리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달
리 말하면, 누군가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는 수학뿐
아니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는 모든 과학적 이론
(거의 모든 현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지어 사화과학들)도 부정
해야만 한다. 따라서 수학적 대상은 존재한다.

필요불가결성 2) 수학은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 달리 말하면, 수학
적 개념들과 정리들은 단순히 당대 과학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물
리적 세계에 대한 지식을 포함하는 모든 가능한 이론에 반드시 사용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에 대한 참된 기술이 가
능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수학적 대상이 존재하며 수학적 진술이
참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필요불가결성 3) 수학은 충분한 경험적 지지를 받은 과학적 이론에
나타난다. 따라서 과학을 확증하는 증거는 간접적으로 수학적 진술
역시 확증한다. 그러므로 수학은 과학 이론에 적용됨에 의해 경험적
지지를 받는다. 수학은 더 이상 경험과학과 인식론적으로 구분되는
138)

Bigaj, 2003. pp.176-177.

74

과학으로 취급될 수 없다.

필요불가결성 1)은 가장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필요불가결성’이라
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과학에서 수학이 사용되므로, 수학에 대
한 부정은 곧 과학에 대한 부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1)에
의존해서는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
다는 단적인 사실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하지 못함을 우리는 이미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필요불가결성 1)은 과학언어의 번역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기 때문에, III.2에서 논의한 T1과 T2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개입하지 못한다.
따라서 과학을 통해 수학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필요불
가결성 1)을 강화한 필요불가결성 2)가 요구된다. 필요불가결성 2)란 과학
을 어떤 방식으로 번역하거나 형식화하든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은 반드
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뿐만 아니라 모든 과
학이 수학적 정리나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형식화하든
과학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2)는 지나치게 강한 주장이다. 과학이 어떤 경우에도 수학적
개념들과 정리들을 포함해야 한다는 양상적 규범을 콰인과 같은 자연주의
자들은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살펴본 대로 필드는 자신의 유명론적
전략을 실증해 보이기 위해 뉴턴의 역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필드의 작업은 결국 또 다른 추상적 대상인 ‘시-공점’과
‘양상’을 불가피하게 도입하기 때문에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유명론에 대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비판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논점을 제시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유명론과 실재
론의 문제를 이론 선택의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유명론
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최선의 이론이 실재론적
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역시 유명론적

75

이론의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다. 일례로 콰인이 유명론을 포기한 이유는
유명론 자체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최선
의 과학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9 )

그러므로 필요불가결성

2)는 실재론자들의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강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2)를 III.2에서 언급한 번역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약화시킬 수 있다. 모든 가능한 과학은 수학적 개념들과 정리를 포
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과학 T에 대
한 모든 번역 Ti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2)를 수학에 대한 실
재론적 번역 없이는 현존 과학에 대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수학적 진술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믿음 없이는
과학에 대한 실재론적 믿음이 불가능함을 함의한다. 그런데 II에서 확인하
였듯이 본 논문에서 다루는 유명론자들 역시 과학적 실재론자들이다. 따라
서 이런 방식으로 정의된 필요불가결성 2)가 성립한다면 적어도 지금의 논
의에서는 수학적 실재론이 정당화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필요불가
결성 2)와 관련하여 우리는 III.2의 마지막에서 마주친 문제와 동일한 문제
에 직면한다. T에 대한 번역 Ti에 반드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포함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T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데, 이것은 III.2에서 살펴본 대로 이론 선택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불가능함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서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T를 구성하
는 과학적 진술 S와 수학적 진술 M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가 먼저 규명되
어야 한다. S와 M이 서로 다른 진리조건을 갖는다면 S에 대한 실재론적
번역과 M에 대한 유명론적 번역이 양립 가능함을 II에서의 논의를 통해서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T를 구성하는 경험 가능한 물리적 세계에
139)

Burgess and Rosen, 1997, p.8 참조.

76

대한 진술들 S와 수학적 진술들 M이 동일한 의미론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
이 선결되어야만 유명론적 번역이 불가능함을 입증할 수 있다. S와 M을
구성하는 진술들의 진리조건이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된다면, T를 구성하는
S가 참이기 위해 물리적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M에 속한 수학적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의 존재 역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140 )

따라서 S

와 M에 사용되는 모든 변항이 동일한 의미론적 역할을 갖는지가 실재론과
유명론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
이러한 ‘일반변항’ 혹은 의미론적 동일성에 대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정당화는 ‘확증적 전체론’에 근거한다. 그들은 수학적 진술과 경험적 진술
을 포함하는 과학적 진술들이 동일한 의미론적 기준을 갖는다는 것을, 그
진술들이 정당화되는 과정이 원칙적으로 동일하다는 확증적 전체론에 근거
해서 정당화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수학이 인식론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다는 필요불가결성 3)이다. 이론 선택 역시 확증적 전체론과 관련된 문제
이기는 하지만, 이론 선택보다 우선하는 것은 과학의 확증과 수학의 확증
사이의 연속성이다. 그렇다면 콰인의 확증적 전체론의 구조는 어떤 것인
가?
사실 확증적 전체론은 그의 전체론을 구성하는 두 요소 중 하나일 뿐이
다. 콰인의 전체론은 ‘의미론적 전체론’과 ‘확증적 전체론’으로 구성된
다.

141)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의미론적 전체론은, 의미의 단위는 개별적 문

장이 아닌 그 문장이 속한 이론 안에서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142 )

그리고

이러한 의미론적 전체론이 그의 확증적 전체론보다 기본적인 논제인 것은
사실이다.

143 )

그러나 의미론적 전체론과 확증적 전체론을 비교해 보면 의

미론적 전체론이 많은 논쟁의 여지를 안고 있는 것에 비해서 확증적 전체
140)
141)

142)
143)

물론 위의 주장은 과학적 실재론을 전제하는 것이다.
콰인은 ‘의미론적 전체론’이라는 용어 대신 ‘moderate hol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논자는 콜리반의 용례를 따라 ‘의미론적 전체론’과 ‘확증적 전체
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Quine, 1951a, p.42.
Colyvan, 2001, p.35.

77

론은 보다 분명하며 논쟁의 소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콜리반의 주장
대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입증하는 데에는 확증적 전체론만으로 충분하
기 때문에 논자는 본 논문에서 더 이상 의미론적 전체론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144)

확증적 전체론이란 과학에서 확증의 단위는 개별적 문장이 아니라 이론
전체와 관련된다는 것으로, ‘콰인-듀헴의 논제’로도 알려진 것이다. 확증적
전체론에 대해서 콰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관찰적 정언문장의 허위성은 특정한 가정을 결정적으로 부정하지 않
는다. 그것이 부정하는 것은 그 관찰적 정언문장을 도출하는 데 필
요한 문장들의 연언이다. 그리고 그 연언을 부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문제되는 가설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는 연언을 구성하고
있는 다른 문장을 부정할 수 있다. 이 중요한 생각을 전체론이라고
부른다.

145)

이 말은 확증과 부정의 단위는 개별 문장이 아니라 경험 가능한 문장을
연역하는 데 관여한 모든 문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확증적 전체론은 과
학에 대한 정당화와 연구프로그램을 해명하는 과학철학의 논제로서, 광범
위하게 수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론으로부터 관찰언명을 연역하기 위해
서는 초기조건을 비롯한 다양한 보조가설들이 사용되기 때문에 관찰언명이
참일 경우 해당 진술을 연역하는 데 사용된 모든 진술들이 함께 확증되는
반면에, 부정되었을 경우에는 관찰언명을 연역하는 데 사용된 다양한 보조
가설이나 이론언명, 심지어 숨겨진 가정들 중 어느 것이 잘못되었는지 바
로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양한 과학사적 사례에 의해
서 입증된 것이기도 하다.

144)
145)

Colyvan, 2001, p.35.
Quine, 1992, pp.13-14.

78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특히 콰인의 주장이 갖는 특징은 그가 확
증적 전체론을 수학에까지 확장한 것에 있다.

146 )

과학적 확증관계를 추적

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수학을 과학 이전에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반
면에 콰인은 확증적 전체론을 통해 수학까지 정당화한다. 그는 경험적 테
스트에 의해 관찰 가능한 진술뿐 아니라 그 진술을 연역하는 데 사용된 수
학적 진술과 논리적 진술 역시 확증되거나 부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47)

과학적 추론에서 사용된 이론적 진술이 그것으로부터 따라나오는 경험적
진술에 의해 확증되듯이, 그러한 추론에 사용되는 수학적 진술과 논리적
진술 역시 경험에 의해서 확증된다는 것이다.

148 )

다시 말해서 직접적으로

경험 가능하지 않은 과학의 이론적 진술 S가 관찰 문장 O에 의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논자는 이렇
게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아래와 같
은 도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149)

(1) S & P & M ├ O

(2) S & P & M ├ O

O

┓O

-----------------

-----------------

S&P&M

146)

147)
148)

149)

┓S ∨ ┓P∨ ┓M

이러한 확증적 전체론의 수학에로의 확장을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이라고 부
르고자 한다.
Quine, 1951a, pp.42-43.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콰인의 접근은 다소간의 차이를 갖는다. 그러나 수학과
논리학의 구분에 대한 문제는 본 논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논
자는 수학적 진술과 경험적 확증의 문제만을 다루고자 한다.
물론 (1)과 (2)는 엄격한 의미에서 논증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과학에서 이론적 진술 S와 수학적 진술 M이 단순한 연언 관계로 구성되
지도 않는다. 그러나 확증적 전체론을 표현하기에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논자는 위의 식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표현을 뒤에서도 사용하고자
한다.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뒤에서 나오는 모든 확증적 전체론과 관련된 식
들은 설명을 위한 편의적 표현이다.

79

이것은 S로부터 경험적 문장 O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전제 P뿐
아니라 수학적 전제 M이 반드시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1)의 경우 추론
에 사용된 S, P, M이 모두 확증되는 반면에 (2)의 경우에는 S, P, M 중 적
어도 하나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과 일반적
인 확증적 전체론의 차이점은 M을 P와 동일한 확증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가에 있다. 일반적인 확증적 전체론에서 M은 위의 논증 자체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따르면 M 역시 P
를 구성하는 물리적 전제들, 가령 초기조건들이나 보조가설과 같은 방식으
로 확증된다. 따라서 콰인은 잘못된 예측을 연역한 이론 전체에 대해서
“어떤 진술도 수정으로부터 면책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150)

결국 과학적

추론을 위해서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는 수학적 진술 역시 잘못된 예측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경험을 통해서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수학 역시 이론을 구성하는 다른 과학적 진술과 동일한 방식으로 확증된다
는 것이다.
그러나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진술 역시
궁극적으로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는 것이 먼저 입증되어야만 한다. 만
일 수학이 경험적 확증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정당화된다면 위의 논의
는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험적 명제의 존재 자
체를 부정하는 콰인의 논거를 들어 수학의 독립적 정당화의 가능성을 부정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수학이 경험적으로 정당화됨을 입증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문제되는 것은 수학의 선험성이 아니라 그것의 경
험적 정당화에 대한 것이며, 선험적이지 않다는 것이 곧 수학이 과학에 의
존해서 경험적으로 정당화됨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은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전제 위에 구성된 것이다.
또한 확장된 학증적 전체론은 실제 수학 및 과학 활동과도 일치하지 않는
다. 어떤 과학자도 잘못된 예측의 결과로부터 수학을 부정하거나 재구성하
150)

Quine, 1951a, p.43.

80

지는 않는다. 콰인 스스로도 이와 관련된 문제를 인식하고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기도 한다.

151)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정당화가 가정되어야만 필요불
가결성 논증이 성립한다. 수학과 과학이 정당화되는 방식이 다르다면 우리
는 과학적 실재론을 유지하면서도 수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
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논의를 통해서 드
러나겠지만 가장 취약한 논거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필요불가결성 논증
은 과학과 수학이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는 필요불가결성 3)에 의존
해서 일반변항의 사용을 정당화하며, 그것에 기초해서 수학이 액면가를 갖
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논증 구조를 갖는다.

4. 경험적 확증과 여가적 수학
III.3에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기 위한 핵심적 가정은 확장된 확
증적 전체론이며, 결국 필요불가결성 3)이 도입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확인
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서
수학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된다. 또한 이 경우 우리는 수학은 경험적 학문
이라는 매우 강한 인식론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반면에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특징에 대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 자체에 의해서는 별달리 얻을
수 있는 결론이 없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론
적 주장은, 수학적 대상은 과학이 참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뿐
이다. 이러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존재론적 함의에 대해 콜리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51)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콰인의 수정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
이다. 또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과 관련된 문제 역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비
판하는 IV와 V에서 다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
지 않을 것이다.

81

집합들(혹은 다른 수학적 대상들)이 독자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에 대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집합이나
수학적 대상들은 보편들 그리고/혹은 관계들(Joh Bigelow(1988),
Peter Forrest and David Amstrong(1987)), 패턴들 혹은 구조들
(Michael Rensik(1997) and Stewart Sapiro(1997)), 부분/전체 관계
(David Lewis (1991))와 같은 보다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
혹은 가능한 구조들(Hilary Putnam(1967))이라는 보다 독특한 용어
로 표현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어떤 (실재
론적) 이해도,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서 승인된다.

152)

물론 이러한 콜리반의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으로 상당한 난점을
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존재론적 함의가 “수학적 대
상은 존재한다” 이상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결론과는 달리,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입
증된 수학은 과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수학은 더 이상 선
험적, 필연적 명제의 지위를 갖지 않으며, 경험에 의해서 입증되고 부정되
는 경험명제, 특히 과학의 이론적 명제와 동일한 인식론적 지위를 갖는
다.

153)

게다가 수학이 정당화되는 것은 과학적 추론에 전제로 사용되기 때

문이었다. 따라서 수학은 과학에서 보조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과학이 정
당화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에게 있어서 순수수학 혹은 과학에 적용되
지 않은 수학의 영역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만일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확
증적 전체론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과학에서 사용되지 않은 수학이 글자
그대로 참이라는 것을 부정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한 콰인의 주장은 분명

152)
153)

Colyvan, 2001, p.142.
Colyvan, 2001, p.116.

82

하다. 그는 연속체 가설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는 비가부번적인(indenumerable) 무한이 보다 환영받는 문제
(welcome matter)를 가장 단순하게 체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인정
한다. ⊐ω나 도달불가능한 수들(inaccessible numbers)처럼 이러한
요구를 초과하는 양(magnitude)들을 나는 존재론적 권리가 없는, 단
순한 수학적 여가라고 본다. 괴델 논문의 의미에 입각해서 V=L과
양립하는 집합들은 유용한 제한점(cut-off)을 제공한다.

154)

위의 인용문에서 ‘보다 환영받는 문제’란 곧 과학적 문제이다. 수학은 과
학에의 적용 혹은 기여를 통해서 평가되기 때문에, 과학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V=L 이상의 집합과 관련된 논의는 불필요한 수학적 여가활동이
라는 것이다.

155)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상당한 설명의 부담을 안는다. 비록

우리가 자연주의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수학을 과학에 기초해서 판단하
고 더 나아가서 과학에 사용되지 않거나 무관한 영역의 수학이 단순한 여
가활동일 뿐이라는 것은 지나친 주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데콕은 위의 주장을 ‘강한 필요불가결성’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필요
불가결성 논증의 결론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결론: 현대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수학적 대상은 존재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에 필요불가결하지 않은 수학적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다.

156)

그리고 그는 이러한 강한 주장에 근거하지 않으면서도 필요불가결성 논
154)
155)

156)

Quine, 1986, p.400.
V=L 혹은 ‘구성가능성 공리’와 관련해서는 다음 논문과 함께 앞에서 연속체가
설과 관련해 인용한 글들을 참조할 수 있다. Godel, 1964.
Decock, 2002, p.237.

83

증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논자가 보기에도, 만일 우리가 위의 결
론을 수반하지 않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옹호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안정적일 것이며, 다음 장에서 나올 비
판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논자는 이 절에서 데콕의
‘약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데콕의
‘약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유명론을 부정하고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
기에는 부족한 논증이며, 결국 필요불가결성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든 간
에 그것이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려면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해
야 한다.
데콕은 약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157)

A) 어떤 대상은, 그것이 일차술어논리로 표현된 받아들여진 전체적
(global)인 과학적 이론의 일반변항의 값이라면, 존재한다.
B) 과학자 사회에서 어떤 것을 현재의 과학(contemporary science)
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한다.
C) 현재의 과학은 전체적이고 연결된 이론이다.
D) 현재의 과학은 일차술어논리로 조직화(regiment) 가능하다.
E)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양화는 몇몇 현재 과학의 영역에서 필요불가
결하다.
결론: 수학적 대상은 존재한다.

위의 논증에서 A)와 C)는 확증적 전체론에 의해서, B)는 자연주의에 의
해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D)는 III.1에서 살펴본 콰인의 존재론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며, E)는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수학의 자율성에 대한 포기, 그리고 그것에 관한 비판
은 위와 같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위의 논증에 기초
157)

Decock, 2002, p.234.

84

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58)

결국 데콕

은 콰인의 체계에서 ‘확증적 전체론’과 ‘경험주의적 일반화’를 분리하고,
경험주의적 일반화로부터 분리된 확증적 전체론만으로도 필요불가결성 논
증이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
을 논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 III.3에서 보았듯이, 만일 수학적 진술과 물리
적 진술이 정당화되는 방식이 동일하지 않다면 우리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주장과 물리적 대상에 대한 주장을 동일한 의미론적 기준을 통해서 이해해
야 할 근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적 진술이 참이 되는 조건과
물리적 진술이 참이 되는 조건이 다르다면, 우리는 수학적 진술에 대한 재
해석을 통해서 추상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데콕의 주장처럼 우리가 모든 콰인의 철학을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수학 사이의 고리의 역할을 하는 전제
E)에 대한 분석이 필수불가결하다. 만일 수학이 과학에서 도구적으로 사용
된다면 우리는 과학이 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수학에 대해서는 액면가
를 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논증에서의 전제 E)는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콰인의 체계가 아닌 독립적 논증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다른 전제들, 특
히 전제 A)의 근거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
하기 위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수학적 진술과 과학적 진술이 동일한 의
미론적 기능을 갖는 양화사를 사용한다는 전제 A)인데, 데콕은 A)는 일차
술어 논리학의 양화사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개입
의 표준적 기준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159)

그러나 과학적 이론을 일계

언어로 번역한다는 전제 D)를 인정하더라도, 사용된 모든 변항이 동일한
의미론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과학에 사용된 수학을
유명론적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

158)
159)

Decock, 2002, p.235.
Decock, 2002, pp.234-235.

85

수학적 실재론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따라서
전제 A), 특히 의미론적 해석이 개입된 ‘일반변항’의 사용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단순한 전제가 아니라 입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A)를 입
증하는 것, 특히 E)에 기초해서 입증하는 것이 필요불가결성 3)이라는 것
을 III.3에서 확인하였다.
결국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수학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정당
화하고 유명론적 해석이 성립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확장된 확증
적 전체론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서 입
증되는 수학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해 입증된 수학이며, 따라서 경
험적으로 정당화된 수학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콰인의 ‘여가적 수
학’이라는 개념은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별개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필
요불가결성 논증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수학이 과학에 의해서 정당화된다
면, 그것도 과학과 동일한 방법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면 과학 이론 T를 구
성하는 수학만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에게 있어서
과학에 적용되지 않은 수학은 정당화되지 않은 것이다.
콰인이 이러한 수학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여가적’인 것이라고 한 것
은 단지 과학에 적용된 수학과 그렇지 않은 수학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
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대기수에 관한 집합론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과학에] 적용된 수학과 동일한 문법과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
다”라고 주장한다.

160 )

그의 이러한 태도는 서술적 집합론에 대한 아래 글

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헤르만 바일(Hermann Weyl), 폴 로렌쩬(Paul Lorenzen), 에렛 비숍
(Errett Bishop), 그리고 최근에는 하오 왕(Hao Wang)과 솔로몬 페
퍼만(Solomon Feferman)에 의해 보다 포괄적인 경제성이 계획되었
다. 그들은 과학에 필요한 모든 수학적 요구를 제공하는 메마른 기
160)

Quine, 1995, p.56.

86

초로서 서술적 집합론을 성립시켰다. 그것은 자연과학 자체 안에서
진보로 환영받는 단순화와 경제성을 얻은 것이다.

즉 그가 구성한 집합론

161)

162)

과는 그 배경에서 전혀 다른 서술적 집합론 역

시 그것이 과학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으며, 서술적
집합론이 비-서술적 집합론보다 상대적으로 존재론적 개입이 적기 때문에
충분히 선호할 만하다는 것이다. 결국 수학의 독립적 정당화나 방법론적
자율성은 인정하지 않고, 수학은 오직 과학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며 수학적
이론 선택 역시 결국 과학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결국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논자는 다음 장에서 주로 그의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과 관련된 비판을 통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
려 한다.

161)
162)

Quine, 1992, p.95.
Quine, 1937, (re 1980) 참조.

87

IV.
IV.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비판
III에서 논의한 대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존하는 수학적 실재론은 매
우 강한 경험주의적 수학관을 제시한다. 그들이 인정하는 수학은 과학에
적용된, 따라서 경험적으로 정당화된 수학이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있었다. 일례로 파슨은 수학이 갖는 선험적 성격에 기초
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비판하기도 했다.

163 )

그리고 수학적 대상의 추

상적 성격과 관련한 문제제기 역시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비판들이 대부
분 정당할 수 있지만, 본 논문에서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기본적 전
제인 ‘자연주의’와 ‘과학적 실재론’, 그리고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기본적
구조인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을 인정하면서 수행된 비판을 다루고자
한다. 앞에서 예로 든 선험성에 기초한 비판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수학이 갖는 논리적, 인식론적 특징에 대한 또 다른 논
제를 제시하는 것이므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비판의 효과적인 출발
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성격에
기초한 비판들, 가령 “추상적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우리는 추상
적 대상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앞에서 언급한 필드의 주
장과 유사한 것으로, 사실상 수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쟁의 결론에 해당
한다. 그래서 논자는 위에서 언급한 비판들보다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출
발점인 자연주의와 과학적 실재론을 받아들이면서 수행된 소버와 메디의
비판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여러 번 말하지만,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
하려면 과학에 기초해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수학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II장
에서 논의했듯이 수학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가능하면, 과학에 대한 액
면가 그대로의 믿음인 실재론을 인정하면서도 수학을 도구적으로 해석할
163)

Parson, 1983 참조.

88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경우 과학 이론 T에 대한 실재론적 해
석과 T에 사용된 수학 M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 M′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 경우 M+S가 현존하는 최선의 과학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M+S가 M′+S보다 설명의 단순성과 같은 이론적 가치에서 앞선다
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M+S와 M′+S가 경험 가능한 세계에 대해서 동일
한 설명력을 갖는다면 M+S를 선택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164)

M′+S는 이론 선택의 또 다른 기준인 존재론적 경제성에서 M+S

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설득력이나 유명론자들에게 설명의 부담을 전가하는 것으로는 불충
분하며,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과학을 통해서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III에서 살펴본 이론 선택과 관련된 논의에 의해서는 수학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 즉 M에 대한 M′적 해석이 불가능함을 입증하지 못한다. 따라서 필
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려면 M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며,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다름 아닌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이었다.
그러나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는 수학적 실재론은 이미 살펴본
대로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를 동반하며, 그 결과 적용되지 않은 수학
에 대한 부정과 수학의 자율적 방법론에 대한 부정이라는 받아들이기 어려
운 결과를 도출한다. 뿐만 아니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의존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은 확증적 전체론과는 별개의 것으로, 독립적으로 정당화되
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확증적 전체론을 처음 주장한 듀헴이나
다른 과학철학적 논의에서 확증적 전체론은 과학의 이론적 진술에 한정된
것이었으나, 콰인은 이것을 수학에까지 확장했다. 따라서 그의 확장된 확증
적 전체론은 과학의 이론적 진술에 대한 전체론적 설명과는 별개로 다루어
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연
164)

위의 M+S나 M′+S에 사용된 ‘S’는 과학 이론 T의 물리적 요소이다.

89

주의’, ‘과학적 실재론’,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에 동의하면서 필요불가결
성 논증을 붕괴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논자는 이 장에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소버와 메디의 비판을 통해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1.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소버의 비판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이란 정확하게 어떤 것인가? 물론 III에서 살펴보았지만, 앞
으로의 논의를 위해서 그것의 논리적 구조를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듀헴의 논제인 과학에 대한 확증적 전체론의 구조를 간략하게 재구
성해 보자. 일반적으로 확증적 전체론은 과학의 이론적 진술들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을 이론적 진술과 경험적 진술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통해서 입증하는 것이다. 확증적 전체론에 따르면 이론적 진술 T의 경험적
내용은 T로부터 연역되는 테스트 가능한 문장 O이며, 따라서 O에 대한 경
험적 확증에 의존해서 T가 평가된다. 그러나 T와 O가 논리적 관계를 유지
하기 위해서는 C로 표현될 수 있는 다양한 보조가설이나 초기조건들이 개
입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론적 진술과 경험적 진술 사이의 논리적 관계
는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T&C ┣ O

그리고 이 경우, O가 테스트를 통과하면 우리는 O에 의해서 T&C를 정
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O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T가 거짓이라
는 것이 바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이 경우 T와 C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들 중 어느 것이 거짓인지는 위의 식을 통해서 결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90

즉 ┓O일 경우 ┓(T&C)가 성립하기 때문에, T와 C 중 어느 것이 잘못되
었는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콜리반은 확증과 반증은 ‘비대칭적’이라
고 말한다.

165 )

다시 말해서 T&C┣ O일 경우 O이면 (T&C)이지만 ┓O이

면 (┓T∨┓C)의 관계가 성립되며, 이 경우 우리는 T가 잘못되었는지 C가
잘못되었는지를 결정할 수 없다. 특히 C를 구성하는 (A1, A2, …… An) 중
어느 것이 잘못되었는지는 더욱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O일 경우 우리는
T와 C가 경험적으로 확증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에 ┓O일 경우에
는 T와 C를 구성하는 어떤 진술도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보호될 수도 있고
부정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어떤 문장이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해서는 확증
되거나 반증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헴펠이나 포퍼의 주장 및 실제 과학적
활동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되는 이론적 주장이 경험을 통해서
반증되었을 때 이론적 주장이 아닌 보조가설이 잘못된 경우를 과학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헤르쯔의 전자기파 실험에서는 명시적으
로 언급되지 않은 보조가설인 실험실의 크기가 잘못된 관찰을 유도했으며,
해왕성에 대한 발견의 과정 역시 이와 유사하다. 당시 과학자들은 천왕성
궤도의 이상현상으로부터 뉴턴의 이론을 부정하지 않고 그 현상을 설명하
기 위해 새로운 행성을 가정했으며, 결국 해왕성이 발견되었다. 위의 경우
와 유사한 사례, 즉 이론과 관찰이 단선적 관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들은 과학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콰인은 C를 구성하는 A1, …… An에 수학과 논리학을 포함시켜서,
즉 T&C┣ O 형식의 추론의 보조가설인 C에 수학적, 논리적 요소도 포함
시킴으로써 확증적 전체론을 확장하고, 그래서 C의 수학적 요소에 해당하
는 Am 역시 O와 관련한 경험적 확증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T&C┣ O 자체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라고 일반적으로 이해되어 온
수학을 C에 포함시킴으로써 확증적 전체론을 확장해서 수학을 경험적으로
165)

Colyvan, 2001, p.134.

91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콰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다양한 반론들
이 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비판은, 콜리반이 예를 들고 있는 머스그
래이브(Musgrave)의 비판과 유사한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비판은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반증되는 사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초한
다.

166 )

어떤 진술이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해서는 확증뿐만 아니라 반증

역시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는 수학적 진술이 경험에 의해서 반증되는 경
우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수학적 진술들이 경험에 의해서 반증되는 사례나 그러한 사례
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할 수 없다면, 수학적 진술 Am이 C를 구성
하는 Ai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해 수학적 진술
이 경험적 진술임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67)

이러한 반박에 대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대답은 기본적으로 확증과
반증의 비대칭적 관계에 의존한다. 이미 살펴본 대로, T&C가 O에 의해서
반증되었을 경우 우리는 O에 의존해서 T나 C를 구성하는 A1, …… An 중
어느 것이 잘못되었는지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Ai 중 하나인 Am이
실제로 O에 의해 반증된 사례가 없다는 것이 곧 Am이 다른 Ai와는 구분되
는 논리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콰인
은 Am이 O에 의해서 실제로 반박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위 ‘최소수정의 원
칙’이라고 불리는 실용적 규칙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는 O가 반증되었을
경우, T 나 A1 …… An 중 반드시 하나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경우 Am이 아닌 다른 Ai를 부정하여 반례를 설명하는 것이 이
론 전체와 관련된 실용적 선택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함께 잘못된 [예측을] 도출하는, 참이라고 가정된 S들의 집합이 주
어질 경우, …… S에 포함된 하나나 그 이상의 문장이 참이라는 것
166)
167)

Colyvan, 2001, p.122.
이 경우 단순히 상상이 불가능함이 아닌 실제로 반증되는 사례에 대한 제시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92

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S에 속한 몇몇 문장들을 이와 같은
문책에서 제외할 것인데, 그 기준은 그 문장들의 도움 없이 중요한
함의가 유지되는가이다. 따라서 순수하게 논리적인 진리는 …… 문
책으로부터 제외된다.

168)

물론 위의 언급은 논리적 요소에 대한 것이지만, 수학 역시 해당 과학적
추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위의 기준이 적용된다
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즉 수학은 ┓O에 의해서 반박된
T&C뿐만 아니라 다른 과학적 추론, 특히 성공적인 과학적 추론에서도 사
용된다. 따라서 수학적 요소 Am을 부정할 경우에는 T&C뿐만 아니라 Am
이 사용된 모든 과학적 추론을 변경해야만 하는 데 반해서, 대부분의 반례
는 다른 Ai, 특히 독립적으로 테스트 가능한 Ai를 부정함으로써 쉽게 해결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론적 피해가 큰 수학을 부정하는 것은 반례에 대
한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콰인의 ‘최소수정의 원칙’을 통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해명과 위에서 언급한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실제로 반증되지 않는다는 주
장과의 차이점은 결국 고정점(fixed point)과 관련된 것이다. 확증적 전체
론을 따르면, 어떤 이론적 진술도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과학적 실험 과정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일반
적으로 과학적 실험의 목표는 특정한 가설에 대한 확인이기 때문에 다른
요소들은 고정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콰인의 최소수정의 원칙이란, 이
러한 고정점에 대한 실용적 선택 기준을 제시한 것, 즉 Am은 원칙적으로는
반증 가능하지만 사실상 고정점으로 사용된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수학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Am이 모든 가능한 경우에 고정점으
로 사용되며, 따라서 경험적으로 확증 불가능한 명제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Am을 고정점으로 사용하는 것이 실용적 선택인지, 수학의 선험성을 입증하
168)

Quine, 1992, p.14.

93

는 것인지는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실제 사례
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는 Am이 고정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것의 양상적 특징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
라서 Am이 경험을 통해서 반증되는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초
해서는 수학의 선험성은 입증되지는 않는다.
확증적 전체론의 문제점을 단순한 반증 사례의 부재가 아니라 조금 더
구체적인 논거를 통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소버와 메디의 비판이다. 우선 이 장에서는 소버가 제시한 문제점에 대해
서 살펴본 후, 다음 장에서 메디의 주장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할 것이다.
소버는 위에서 언급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의 수학에로의 확장을 그의 독
특한 과학관인 ‘대조적 경험주의’(contrastive empiricism)에 입각해서 비
판한다. 그는 자신의 ‘대조적 경험주의’를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주
의’(constructive empiricism)와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구성적 경험주의는 명제에 집중하는 반면에 대조적 경험주의는 문제
에 집중한다고 두 경험론의 차이를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전자는 과
학은 특정한 종류의 명제들에 대해서만 진리값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과학은 특별한 성격을 갖는 문제들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69)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특별한 성격을 갖는 문제’를 소버는 관찰 가능한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을 산출하는 ‘경쟁가설’(competing hypotheses)
의 존재라고 말한다.

170)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론적 진술의 경험적 근거와

관련된 오래된 논쟁에 대한 그 나름의 해결 방식이다. 소버는 이론과 관찰
을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경쟁 이론과 관찰 사이의 상대적 관계로 규정하

169)
170)

Sober, 1993, p.41.
Sober, 1993, p.41.

94

고, 그러한 상대적 관계에 기초해서 관찰이 이론 선택의 기준임을 보임으
로써 과학에 대한 경험적 확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그는
관찰과 관련된 확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찰과 이론 사이의 확증 관계
를 역전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소버는 자신의 대조적 경험주의의 핵
심적 원리인 ‘우도성의 원리’(likelihood principle)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관찰 O는 P(O/H1)>P(O/H2)일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H2보다 H1을
선호한다.

171)

이것은 결국 가설이 확증되기 위해서는 경쟁하는 가설이 있어야만 하며,
경험은 이러한 경쟁 가설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즉
관찰이 이론 혹은 가설을 직접적으로 확증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관찰
은 경쟁이론에 대한 선택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172)

더 나아가서 그는 경쟁

이론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곧 과학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그의 대조적 경험주의는 다양한 비판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헬
만(Hellman)은 과학적 이론은 종종 ‘우도성의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이론이 유일하기 때문에 선택된다고 주장한다.

173)

즉 이론과 관찰 사이

의 관계가 항상 경쟁하는 이론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경
쟁가설이 경험에 의존해서만 선택된다는 것 역시 과학적 이론 선택의 역사
적 실례에 비추어 보면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장이다. 소버는 이러한 비판
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반박하고 있다. 특히 경쟁가설이 없는 경우에도
과학이 성립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뉴턴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
있다.

171)

Sober, 1993, p.38.
이 경우 O는 관찰문장, H는 이론적 가설을 나타낸다.
172)
Sober, 1993, p.39.
173)
Colyvan, 2001, p.129.

95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뉴턴 이론의 대안이 뉴턴의 법칙 자체로부터
구성 가능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 만일 뉴턴의 법칙이 핼리 혜
성의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 사건에 대한 잘못된 예측을
하는 대안을 뉴턴의 법칙으로부터 구성할 수 있다.

174)

그러나 위의 주장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며, 애드 혹 수정이라고 볼 수밖
에 없다. 혜성의 궤도와 관련해서 뉴턴 역학을 부정하는 ┓N을 가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독립적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하
여 매우 중요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고정점과 관
련된 것으로, 수학은 사실상 반증되지 않는다는 것이 수학의 선험성을 입
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모든 경쟁하는 과학 이론이 동일한 수학
이론 M을 사용한다면 이 경우 M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쉽게 설
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산술’이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해
서는 다른 경험적 결과를 갖는 대안적 산술체계가 있어야 하지만, 그런 체
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175)

그리고 다른 경험적 내용을 갖는 산술이 존재하

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과학 T1, …… Tn은 적어도 경험적 결과와 관련해
서 동일한 A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경험적 진술 O1, ……
On 이 T1,…… Tn을 입증함이 곧 산술 A를 입증한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
다. T1과 T2가 경쟁하는 이론일 경우 문제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음과 같
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T1 & A┣ O
T2 & A┣ ┓O

174)
175)

Sober, 1993, p. 52.
Sober, 1993, p. 46.

96

이 경우 A는 O와 ┓O로부터 모두 긍정되고 있기 때문에, O에 의해서 입
증되거나 반증됨으로써 경험적 내용을 갖는 것은 A가 아니라 T1과 T2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A를 과학에서의 상위이론의 역할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현존하는 T1, …… Tn에서 동일한 A가 사용되
며, 특히 경쟁하는 이론들이 동일한 A를 사용한다면, A는 O에 의해서 확
증되는 것이 아니라 Ti와 O를 연계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경험적 명제가 갖는 논리적 조건인
반증가능성이 성립하는지 역시 매우 의심스럽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소버
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제시한다.

176)

(Ⅰ) H1 or H2
(H1 & A) entails O and (H2 & A) entails ┓O
A&O
-----------------------------H1

(Ⅱ) H1 or H2
(H1 & A) entails O and (H2 & A) entails ┓O
H1 does not entail O (or ┓O)
H2 does not entail ┓O (O)
O
-----------------------------A

물론 (Ⅰ)과 (Ⅱ), 특히 (Ⅱ)는 타당한 논증의 형태라고 볼 수 없다. 그러

176)

Sober, 1993, p.46.
Hi는 경험적 가설, A는 수학, O는 관찰문장이다.

97

나 위의 논증으로부터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경험적 확증에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Ⅰ)은 일반적인 확증적 전체론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경험
적 가설 H1과 H2가 수학적 명제 혹은 이론 A와 관련하여 경험적 문장 O
와 ┓O를 도출하고 A와 O가 독립적으로 인정된다면, 우리는 당연히 H1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리고 소버의 주장대로 이 경우 O를 도출하는 데 H1
이 필요불가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177 )

즉 A를 고정점으로 인정한다면

O를 도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H1이 참이어야만 하며, 다른 대안인 H2가 ┓
O를 도출한다는 의미에서 H1은 필요불가결하다.
그러나 본 논문의 주제는 A와 관련되어 있다. (Ⅰ)의 경우, A가 필요불가
결하며 경험적 확증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Ⅰ)에
의해서 A가 경험적 확증을 갖는다는 것은 전혀 입증되지 않는다. (Ⅰ)에서
A는 H1을 O를 통해서 경험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전제이다. 따라서 A가
참이라는 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Ⅰ)의 두 번째 전제와 O로부터
H1이 참임을 입증할 수 없다. 따라서 (Ⅰ)에서 A는 H1이 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위의 논증을 통해서 경험적으
로 확증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Ⅰ)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A가 참이라는
것이 독립적인 방식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Ⅱ)는 일단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에 충실히 따르면서, A를 경험적 문
장 O에 의해서 정당화하는 구조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Ⅱ)와 관
련하여 우리는 A의 필요불가결성을 보다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다. (Ⅱ)의
세 번째 전제와 네 번째 전제인 “H1 does not entail O (or ┓O)” 와 “H2
does not entail ┓O (O)” 란 결국 A 없이 경험적 가설만을 가지고 과학적
추론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수학 없는 과학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177)
178)

178)

Sober, 1993, p.47.
물론 H1, …… Hn에 대해서 H1 does not entail O( or ┓O), H2 does not entail
O( or ┓O) ,…… Hn does not entail O( or ┓O)가 성립되어야만 수학 없이는

98

그러나 (Ⅱ)에 의해서 A가 경험적으로 정당화되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
는다. (Ⅱ)에서 A는 잘못된 결과를 갖는 추론과 참인 결과를 갖는 추론에
서 모두 사용되기 때문에, 과학적 가설 H1와 H2가 경험적 결과를 갖기 위
해서는 A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세 번째 전제와 네 번째 전제를 모두 받아
들인다고 하더라도 A가 O에 의해 입증된다고 할 수 없다. O에 의해 입증
되는 것은 H1과 동일한 수학을 사용한 H2가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였다는
것뿐이다. 더 나아가서 H1이 참이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정당화되었음을 가
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입증되는 것은 H2가 거짓이라는 것일 뿐, H1
과 H2에 모두 사용된 A가 참이라는 것은 경험적 결과 O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다.
따라서 (Ⅱ)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수학이 참임을 입증할 수 없
으며, 경험적 문장 O에 의해 수학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
은 논증이 가능해야만 한다.

a) A1 or A2
A1 & H1┣ O
A2 & H1┣ ┓O
H1 & O
------------A1

말하자면, 소버가 주장하듯이 다른 산술이론이 존재하며, 그것에 대한 경
험적 평가가 가능해야만 한다. 그리고 a)는 앞에서 다루었던, 수학이 반증
되는 실제 사례가 없다는 것에 기초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비판
과는 다른 성격의 비판이다. 소버의 비판은 경험적 확증에 사용된 수학이
실제로는 확증되지 않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확증되기 위해서는 a)와 같은
과학이 불가능함이 성립된다.

99

경우가 발생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소버
는 수학이 확증적 전체론의 논리적 구조 안에서 경험적으로 정당화되기 위
한 조건으로 a)와 같은 논증이 성립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버의 비판에 대해 콜리반은 a)와 같은 경우가 가능하다고 주장
하면서, 산술에 대한 경쟁 혹은 대안 체계로 필드의 유명론적 수학을 제시
한다.

179 )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소버의 비판을 약화시키기는커녕 더

강화시킨다. 위의 확증은 경험적 결과와 관련된 것인데, 필드나 유명론자들
이 제시하고 있는 산술은 경험 가능한 것들에 대해 고전 수학과 동일한 설
명력을 갖는 것들이다. 그들이 구성하는 산술은 고전 수학에 대한 변형이
아니라 재해석일 뿐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유명론 논자들 사
이의 논쟁에서는 a)와 같은 형식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180)

그러므로 소버는 모든 과학에 동일한 수학이 사용되면서도 수학이 과학
에 의해 확증되기 위한 부가적 전제를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181)

H1 or H2 or …… or Hn
For each Hi, Hi entails M
---------------------M

그러나 수학이 “H1, H2, …… Hn”과 같은 경험적 가설에서부터 도출된다
는 위의 전제는 수학이 경험과학에 포함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학에 대한
경험적 확증의 가능성과 관련된 지금의 논의에서는 논점을 선취하는 것이
다.
179)
180)

181)

Colyvan, 2001, p.128.
물론 이러한 설명력의 문제가 직관주의 수학과 고전 수학에 적용된다면 얘기
는 조금 달라진다. 그러나 이 경우 논란의 중심은 과학이나 경험적 결과가 아
니다. 또한 본 논문에서 다루는 유명론자들 역시 직관주의 수학을 인정하지 않
는다.
Sober, 1993, p.47.

100

결국 동일한 수학 이론, 특히 산술이 모든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그
것의 경험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수학이 과학적 추론의 조건이라
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수학은 경험적 확증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확증
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과학적 가설 Hi가 A 없이 O
를 연역할 수 없고, 따라서 각각의 Hi가 동일한 A를 사용해서 O를 연역한
다면 A는 O를 경험적 내용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진술이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한 조건이며, 결국 선험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
다. 소버는 수학적 대상의 필요불가결성을 과학의 이론적 대상과 비교하면
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유전자와 쿼크는 후험적으로 필요불가결하다. 수는 전혀 다른 것처
럼 보인다. 그것들은 선험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보인다.

182)

물론 이러한 소버의 주장은 과학은 경쟁하는 Hi들 사이의 선택이라는
‘대조적 경험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수학의 예도 산술에 한정되어 있지
만, 대조적 경험주의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위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어떤 주장 S가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한 논리적 조건이 반증 가능
성 혹은 반박 가능성이라고 했을 경우, S 혹은 S가 속한 이론 T가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은 곧 S나 T가 거짓일 수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
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S나 T와는 다른 S′나 T′가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
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학이 경험적 내용을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안 체계의 가능성은 존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실제로 경
쟁이론이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경쟁이론의 가능성은 항상 인정되듯이, 수
학 역시 경험적 학문이기 위해서는 경쟁이론의 가능성은 항상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수학을 경험을 통해서 입증하기 위해서는 99쪽에서 언급한
a)가 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나 위의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우리가 실제로
182)

Sober, 1993, p.47.

101

경험을 통해서 확증하는 것은 A가 아니라 Hi들 뿐이다. 그러므로 a)와 같
은 경우는 성립되지 않으며, 결국 A가 Hi들과 동일한 경험적 성격을 갖는
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리고 비교적 단순한 산술을 예로 사용한 것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해 수학이 확증된다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은 과학에 사용된 모든 수학이 경험을 통해서 확증됨을 의미하며, 이
경우 산술은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버는 수학에 대한 경험적 확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
리가 그의 주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a)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지금의 산술과는 다른 경험적 결과
를 도출하는 다른 산술이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서 a)와 같은 경우가 실제
로 발생한다면 수학은 경험적 확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아마도 수 이론에 대한 대안이 언젠가는 형식화될 것이며, 오래된
이론과 새로운 이론이 관찰 가능한 것들에 대한 상이한 예측을 제공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떤 수 이론을 다
른 이론보다 선호할 경험적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83)

따라서 소버의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비판은 경험적 결과와 관련
하여 상대적으로 제한된 것이다. 그러나 논자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동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경험적 확증과 관련하여 상이한 결과를 도출
하는 수학 체계가 있었으며, 그 경우에도 수학은 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
다.

184)

그것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사이의 이론 선택의

문제이다.
183)
184)
185)

185 )

그리고 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된 논의를 통해서 소버뿐만

Sober, 1993, p.55.
Leng, 2002, p.402.
소버는 다른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같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었다고 주장한다. Sober, 1993, p.55.

102

아니라 필요불가결성 논증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논자
는 소버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 중 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된 비판을 통해
서 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이 수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전적 방식대로 우리가 유클리드 기하학이 실
제 공간에 대한 참된 지식임을 받아들인다면, 유클리드 5번 공리와 모순되
는 공리로 구성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참임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 공간에 대한 수학적 기술로 이해되어 온 기하학적 명제의
논리적 성격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후 전개되었다. 또한 본 논문의 주
제와 관련하여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매우 중요한 사
례이기도 하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명백히 대립되는
기하학 체계이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과학 이론인 뉴턴의 역학과 아인슈타
인의 상대성 이론에 사용됨으로써 경험적 확증의 문제에 개입하고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소버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되거나 부정된 대표적인 수학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186 )

기하학의 경우에는 a)와 유사한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이미 발생하였다는 것
이다.

187)

b) E & N ┣ O
NE & R┣ ┓O
┓O
----------------------NE & R

물론 논증 b)와 a)는 다소 차이가 있다. a)에서는 동일한 경험적 가설 H1
186)
187)

Sober, 1993, p.55.
이 경우 ‘E’는 ‘유클리드 기하학’, ‘N’은 ‘뉴턴 역학’, ‘NE’는 ‘비-유클리드 기하
학’, ‘R’은 ‘상대성 이론’이다.

103

이 사용되었던 것에 반해서 b)의 경우에는 고전역학과 상대성 이론이라는
전혀 다른 과학 이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기본적
규정을 제공하는 기하학이 다르고, 그 다른 기하학에 근거한 과학이 산출
한 결과가 다르다면 상대성 이론을 선택했다는 것은 곧 비-유클리드 기하
학을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기하학은 경험에 의해서 확
증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역
사적 증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앞의
주장대로라면 유클리드 기하학은 반증된 것으로 폐기되어야만 하며, 비록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콰인의 표현대로 진지한 지적 가치
를 상실한 여가적 수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수학자도 유클리드 기
하학을 여가적 수학이라고 주장하지도 폐기하지도 않으며, 현재까지도 여
전히 수학의 중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기하학의 사례는 필요불
가결성 논증이나 소버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반례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수학자들의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옳은 수학
자들과 옳지 않은 수학자들을 구분하여, 옳은 수학자들은 과학에 의해서
반박된 유클리드 기하학을 폐기하거나 여가적 활동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III에서 여가적 활동으로서의 수학에 대한
논의를 통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학자들에 대한 평가의 타당성은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188 )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태도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을 매우
난처하게 만든다. 과학자들의 상대성이론과 고전역학에 대한 태도와, 유클
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태도는 분명히 다르다. 과학자
역시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전역학이 부정되었다는 것에 의해서 유클리
드 기하학을 부정하지 않는다.

188)
189)

189 )

그리고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구조상 수

이 부분은 IV.2.가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Leng, 2002. p.412.

104

학자들에 대한 규범적 평가와는 달리 과학자들에 대한 규범적 평가는 상대
적으로 제약되기 때문에,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이러한 과학자들의 태도
에 대해서 수학자들을 평가했던 위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따라
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수학과 과학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론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반드시 해명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콰인의 ‘최소수정의 원칙’이나 콜리반의 ‘확증과
반증의 비대칭성’을 통해서 설명되지 않는다. 최소수정의 원칙은 T & C├
O 형식의 추론에서 ┓O일 경우에 이러한 오류를 설명하는 실용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인데, 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된 사례에서 우리는 잘못된 예측
의 원인을 이미 찾았으며, 그 원인에 유클리드 기하학이 포함되어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포함하는 상대성 이론을 선택했음에
도 불구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이 중요한 수학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것은 최
소수정의 원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반례
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이와 관련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사례를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례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파슨은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결과적으로 수학이 바뀔 수 있다. [물리적] 구조에
대한 어떤 유형의 [수학] 이론은 다른 유형의 이론에 비해 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순수수학의 어떤 명제도 부정되지는 않는
다. 우리가 수학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물리적 공간이 유클
리드적이지 않다는 발견에 의해 어떤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제도 부
정되지 않는다.

190)

어떤 수학 이론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은 단지 해당 수학에 대한 과
190)

Parson, 1983, p.196.

105

학적 인용의 문제일 뿐, 해당 수학 이론에 대한 정당화나 반박과는 다르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기하학을 비롯한 동일한 수학 이론을 사용하는
다양한 과학 이론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또한 이것
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하지 않은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지만,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수학이 과학에 사용된다는 단
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191)

따라서 논자 역시, 상당한 난점에도 불구하

고 수학이 과학에 적용된 것을 단지 ‘M+S’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산술이
실제로 경험에 의해서 반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나 지금 논의하고 있는 기하
학의 사례는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 동일
한 수학 이론이 다양한 과학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 특히 III에서 언급했
던 것처럼 수학이 다양한 물리적 대상에 대한 기술에 사용됨을 단적인 사
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뉴턴 역학이 부정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그 역학을 구성하고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여전히 중요한 수학적
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소버는 수
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필수적인 수학의 적용 과정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고 있으며, 적어도 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적
용 과정에 대한 분석이 제공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위의 논의를 통
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레스닉은 과학이 반증되었을 경우에 그 과학을 구성
하는 수학이 함께 반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유클리드적
구조’(Euclidean rescue)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192 )

그러나 논자는 이러한

레스닉의 주장이 그의 의도와는 달리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반대 논거
가 될 수 있음을 V에서 밝히고자 한다. 즉 유클리드 기하학의 사례를 설명

191)
192)

Colyvan, 2001, p.6.
Resnik, 1998, p.242.

106

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
어야 하며, 이러한 분석은 결국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반대 논거가 된
다는 것이다.
결국 확증적 전체론의 수학에로의 확장은, 그 동기와 관련된 정당화는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산술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모든 경쟁하는 과학 이
론이 동일한 산술을 사용한다면 산술의 필요불가결성은 사실상 선험적이
된다는 문제를 안는다. 따라서 산술은 그것을 고정점으로 사용하는 가설들
에 대한 경험적 확증을 통해서 확증된다기보다는, 경험적 가설을 확증하는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클리드 기하학의
예는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 특히 과학에 수학이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과 관계된 부분은 V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필요불가결
성과 확증적 전체론 그리고 자연주의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는 메디의 논
의를 IV.2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2.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메디의 비판
앞에서 우리는 확증적 전체론을 수학으로 확장한 것에 대한 소버의 비판
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소버 역시 본질적으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수
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해, 한 때 필요불가결성 논자였던
메디는

193 )

확증적 전체론 및 자연주의와 관련한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수학에 대한 경험적 확증과 경험화된 수학을 비판한다.

194)

메디의 문제제기는 ‘수학적 자연주의’라는 그녀의 독특한 논제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 그녀가 자연주의를 수학으로 확장한 이유는 공리 선택의
193)
194)

Maddy, 1990 참조.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메디의 비판은 아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Maddy, 1992, 1997, 2001.

107

방법론적 문제, 특히 연속체 가설과 같은 결정 불가능한 진술들에 대한 선
택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녀는 과학에 기초한 자연주의로는 결정 불가능한
가설들을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학은 고유의 방법론을 가지기 때문
에 이러한 수학적 방법론을 그 자체로 분석하고 존중하는 ‘수학적 자연주
의’를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메디는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해서는 수학적
문제, 가령 III.4에서 언급한 V=L과 관련된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
기 때문에 수학에 대해서는 수학적 방법론, 특히 집합론에서의 공리선택의
실제적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

러나 이러한 수학적 방법론과 관련된 문제는,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관련되지
않으면서 논리적, 수학적 정당화가 필요한 문제들도 산재해 있다. 따라서
논자는 그녀의 주장 중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만을
발췌해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메디의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비판은 대략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출발점이기도 한 자연주의와 관련된 것으로,
이것은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입증하고자 하는 수학의 자율성에 대한 것이
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논의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출발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증적 형태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난점을 제시한다고 보
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주의와 관련된 그녀의 비판은 필요불
가결성 논증의 결론인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가 야기하는 문제를 분명
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IV.2.가에서 살펴 보려 한다.
다른 하나의 비판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논리적 구조와 관련된 부분이
다. 위의 첫 번째 비판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기초하고 있는 자연주의와
그 결과로 제시된 경험화된 수학에 대한 비판이라면 후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논리적 구조와 관련된 부분으로, 과학적 실재론과 자연주의를 받아
들이는 경우에도 발생하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한 비판이다.
195)

Maddy, 1997, pp.183-232.

108

가. 공리선택의
공리선택의 기준과 수학의 자율성

이미 확인한 대로 필요불가결성논증은 불가피하게 과학에서 사용된 수학
만을 인정하고, 과학에 사용되지 않은 수학은 여가적 수학이라고 정의한다.
메디는 이러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결론인 순수수학과 수학의 자율성의
부정, 그 중에서도 연속체 가설에 관한 콰인의 주장이 수학에서의 공리 선
택의 일반적 기준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주목하는 연속체
가설에 대한 콰인의 주장, 특히 III.4에서 인용한 그의 주장은 결국 아래
두 논제로 구성된다.

1) 집합론이 과학에 기여하는 한계는 V=L이다.
2) 그 이상의 큰 집합에 관한 논의는 여가적 활동이다.

III에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수학을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기초해 정당
화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실제 과학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연속체와 관련된
‘거대기수 공리들’(large cardinal axioms)에 대한 논의는 과학과는 무관하
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6 )

물론 우리는 III.4에서 콰인이 이론 선택의

문제와 관련해서 직접적인 경험 가능성보다는 이론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연속체 가설과 관련된 집합론의 결정 불가능한
문제들은 모두 ‘ZFC’ 이상의 체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과학에서 필요한
수학은 이러한 결정 불가능한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제공될 수
있기 때문에 콰인은 결정 불가능한 문장들과 관련된 공리선택의 문제에 대
해 존재론적 개입이 가장 적은 V=L, 즉 구성가능성 공리를 선택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콰인의 논점은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다시 확
인할 수 있다.
196)

‘large cardinal axioms’을 이후로는 ‘LC’라고 부르고자 한다.

109

선택공리와 연속체 가설과 같은 독립적인 공리들 역시 일반적으로
과학 이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단순성, 경제성, 자연성과 같은
고려사항들에 따를 수 있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은 괴델의 구성가능
성 공리 V=L을 지지한다.

197)

즉 선택공리나 연속체 가설과 같은 ‘ZF’로부터 독립적인 공리에 대한 선
택의 기준 역시 과학에 대한 기여이기 때문에, V=L에 대한 콰인의 선택은
결국 이론적 가치를 포함하는 경험적 정당화와 존재론적 경제성에 의한 것
이다. 그러나 콰인의 주장과는 달리 V=L을 받아들이는 수학자는 극소수이
다.

198)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V=L을 선호하지 않는다. 메디는 그들이 V=L

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몇몇 수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V=L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를 다음 인용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
다.

대부분의 집합론자들은 [V=L]을 각 단계(stage)의 모든 부분집합을
구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제한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거부한다(여기에는 구성가능성의 공리라는 이름을 부여한 괴델도 포
함된다). (Drake(1974), 131)

199)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수학자들이 V=L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콰인
이 V=L을 선택한 바로 그 이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콰인은 V=L이 과학
에는 불필요한 존재론적 가정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반면에 수학
자들은 V=L이 수학의 영역을 불필요하게 축소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
는다.
197)
198)
199)

Quine, 1992, p.95.
괴델 역시 V=L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Godel, 1964 참조.
Maddy, 1997, p.84.

110

그러나 이러한 그들 사이의 불일치는 존재론적 경제성에만 기인하는 것
은 아니다. 콰인이 V=L을 선택한 이유는 수학이 과학에 보다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방식에 기초한 것이라면, 수학자들이 V=L을 부정하는 이유는 집
합론이 수학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은, 과학에
의 적용과는 무관하게 집합론이 수학 기초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
해서는 가급적 큰 집합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V=L을 부정하
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학자들의 태도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수학
적 문제에 대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콰인도 받아들이
는 ZFC에서의 공리선택의 일반적 기준 역시 수학 기초론으로서의 역할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집합론의 공리 선택과 관련된 문제는
연속체 가설이 처음이 아니다. ZFC를 구성하는 선택공리(axiom of choice)
도 사실 연속체 가설만큼이나 많은 철학적 논쟁을 야기하는 것이지만, 이
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선택공리가 표준적 집합론인 ZFC의 공리로 채
택된 이유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초한수를 정렬시킬 수 없다는 수학
내적인 필요성 때문이다.

200 )

그래서 선택공리 대신에 동일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는 정렬정리(well-ordering theorem)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리선택의 기준은 집합론, 특히 ‘러셀 역설’ 이후 집합론의 공리
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메디가
‘내적인 기준’이라고 부르는 집합의 속성 혹은 집합 구성의 기본적 지침인
‘크기제한의 원리’(limitation of size)나 ‘반복적 집합 개념’(iterative
conception of set) 역시 공리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지만, 많은 경우, 심지어
가장 단순한 부분집합 공리에 대해서도 체계 구성의 효용성이 선택의 기준
으로 작용한다.

201 )

더 나아가서 ‘크기제한의 원리’ 자체도 집합의 논리적,

수학적 성격에 기초해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설을 피하면서 충

200)
201)

Maddy, 1997, pp.54-57.
‘크기제한의 원칙’이나 ‘중층적 집합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고할 수
있다. Moore, 1982. Hallett, 1984. Fraenkel, 1973. Parson, 1975.

111

분한 집합을 구성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202 )

따라서 수학 기초론으로서

의 역할을 논외로 한다면, ZFC를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조차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공리선택의 이러한 특징은 큰 집합과 관련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무한집합 공리와 관련해서 프랭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해석학에 관심이 있다면, 무한집합은 필요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유한
집합만으로는 실수라는 개념조차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단순한 가부번적인 무한집합의 존재를 긍정하는 존재공
리를 부가해야만 한다.

203)

무한집합이 인정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실수에 대한 정의를 위해서 그것
이 필요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보다 큰 집합과 관련
된 공리들, 가령 ‘멱집합공리’, ‘대체공리’ 등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사용된
다. 결국 그들의 공리선택의 기준은 역설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급적 큰 집
합을 선호하는 수학 내적 실용성에 있다.

204)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보았듯

이 집합론의 수학 기초론으로서의 역할과 관련된 것으로, 집합론의 이러한
역할에 대해서 메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합론은 고전 수학의 모든 대상들에 대한 대리자(surrogate)를 포
함하기에 충분한 장(arena)과 고전 수학의 모든 정리들을 증명할 수

202)
203)
204)

Fraenkel, 1973, p.25.
Fraenkel, 1973, p.45.
위의 공리들의 선택과정은 각주 201)에서 언급한 글들에서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 한편 논자가 집합론의 공리선택의 과정이 실용적 관점에서만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논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
로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며, 그 실용성의 기준은 다름 아닌 집합론의 수학 내
적인 역할, 즉 수학 기초론으로서의 역할에 있다는 것이다

112

있는 충분히 강한 공리들을 제공해야 한다.

205)

집합론은 수학의 다양한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상들과 정리들을 통
일된 체계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메디가 공리선택의 기준으로
제안한

‘최대화’(maximize)와 ‘통일화’(unification)는 ZFC를 구성하는 기

본적 지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6)

따라서 위의 공리선택의 일반적 기

준에 의해 구성된 ZFC나 다른 집합론 체계를 인정하면서 연속체와 관련해
서 존재론적 경제성을 기준으로 V=L을 주장하는 것은 일관성의 문제를 야
기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ZFC를 비롯한 집합론에서의 공리선택의
기준이 역설을 발생시키지 않는 큰 집합에 대한 선호에 있다면 앞에서 인
용한 수학자들의 태도, 즉 LC를 선호하는 수학자들의 태도가 보다 일관적
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III.4에서의 논의와 위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대답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ZFC를 구
성하는 공리들, 가령 선택공리는 집합론의 기초론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선
택된 것이라기 보다는 궁극적으로는 그 공리를 포함하는 ZFC가 과학체계
를 구성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기여의 상계는 V=L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집합에
대한 선택 기준은 존재론적 경제성에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205)

207)

다시 말하

Maddy, 2001, p.19.
이러한 집합론 중심의 수학 기초론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존재한다. 특히 각
영역의 수학적 대상을 집합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있다. 그
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보이듯이 메디는 집합론을 통해서 수학적 대상을 환원
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즉 집합은 다른 수학적 대상들의 대리자이지 집합이
유일한 수학적 대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수학 기초론으로서의
집합론을 인정한다는 것과 수학적 대상을 집합으로 환원하는 것은 별개의 문
제이다. 이것은 물리적 환원과는 다른 수학적 환원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으로,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일 수 있다.
Maddy, 1997, pp.22-35 참조.
207)
이 문제와 관련해서 콜리반은 V=L에 대한 콰인의 선택은 필요불가결성 논증
의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그의 이론 선택의 기준, 특히 단순성과 관련된 문
206)

113

면 공리선택의 기준은 비록 간접적이더라도 과학에의 기여이기 때문에 수
학 내적인 공리선택의 기준은 제한적으로 인정되며, 따라서 일반적인 공리
선택의 기준과 V=L에 대한 선택 기준의 차이는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으며, 이러한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 LC에 대한 논의는 여가적 활동이라
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ZFC의 공리선택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면, 아주 기초적인 공리
선택의 과정에서도 과학에의 기여는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쉽게 파악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에의 기여를 고려하지 않은 수학적 활동은 어떻
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적용된 수학만이 실질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라면,
적용되기 전의 수학적 활동은 모두 여가적 활동으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메디는 자연주의와 수학 사이의 관계를 필요불가결성 논
자들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수학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수학적 방법을 수학 외부의 우선적 관점, 가령 과학 우
선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모든 자연주의의 배후에 깔려 있는 기
본적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성공적 사업(enterprise)은 그것이 과
학이든 수학이든 그 자신의 용어로 이해되고 평가되어야 하며, 보다
높다고 가정되는 어떤 외부적인 관점에서 비판되거나 지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에 위배된다.

208)

이것은 자연주의자가 과학의 독자적 정당화 및 방법론을 존중하는 근거
가 다른 것이 아닌 성공에 있다면, 어떤 측면에서 과학보다 더 성공적인

208)

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구성가능성 공리에 대한 콰인의 선택이 단순성
에 기초한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논자가 구성가능성 공리와 관련된 그의
주장을 인용하는 것은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가 갖는 일반적 문제, 특히
여가적 수학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콜리반의 주장은 본 논의에 직접 적용
되지 않는다.
Maddy, 1997, p.184.

114

수학을 수학 외적인 방법에 기초해서 평가하는 것은 비-자연주의적 태도
라는 것이다.

209 )

그러나 이러한 메디의 주장에 대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콜리반은 자연주의를 수학으로 확장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메디가 정당화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210 )

물론

과학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자연주의를 수학으로 확장하는 것은 정당화되
거나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에 논자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자연주의자인
콰인이나 콜리반이 비-자연주의자들 혹은 여전히 철학의 선험성을 주장하
는 사람들에게 과학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할 답변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메디의 비판으로부터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209)

‘과학이 수학만큼 성공적인 학문’이라는 메디의 주장이 지금의 문맥에서 설득
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학 이외의 근거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과는 별도로 수학이 성공적 학문임을 입증할 실제적 근거를 찾기
란 그리 쉽지 않다. 메디 역시 수학의 중요성을 종종 과학과의 관계에 기초해
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자는 수학이 과학만큼 성공적인 학
문이라는 메디의 주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근거는 대략 두
개이다.
하나는, 비록 메디가 과학과 별도로 수학이 성공적인 학문임을 입증할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1997년 책 1장 및 수학적 자연주의에 대
한 일련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메디는 수학이 독립적 방법론을 가지며 일관성
을 갖춘 발전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가령 집합론은 수학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
결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학체계의 일관성 및 이론 구성의 체계성은 그것이 적
어도 퇴행적이지는 않음을 입증하는 간접적인 증거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수학의 중요성을 과학이나 여타의 지적 활동에 근거해서 찾는다
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학이 경험적 학문 혹은 과학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V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지만, 수학이 과학
에 적용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수학이 과학이 가능한 조건임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수학이 과학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수학이 과학적 진술과 함께 물리적 세계를 기술하는 데 사용될 뿐
아니라 과학에 논의의 틀 혹은 언어를 제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
고 이 경우 수학은 과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에의 기여에 의해 수학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것과 수학이 경험적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별개의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논자는 수학이 과학만큼이나 성
공적 학문이라는 메디의 주장은 수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과 과학을 비
롯한 여타의 지적 활동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통해 충분히 정당
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Maddy, 1992, 1998, 2001 참조.
210)
Colyvan, 2001, p.97.

115

수 있다. 그들의 과학 혹은 과학 방법론에 대한 신뢰는 궁극적으로 과학의
성공에 있지 과학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특징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
문이다. 어쨌든 메디는 이러한 유형의 자연주의를 ‘과학 유일적 자연주의’
부르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과학 유일적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수학의 적용된 부분은 노이라트
보트의 적절한 부분(plank)으로서 과학의 분야로 인정되고 적용되지
않은 부분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무시된다.

211)

III.1에서 논의한 자연주의에 대한 정의의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과학
유일적 자연주의자들은 결국 과학에의 적용에 의존해서 수학의 학적 가치
를 평가한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의미 있는 지적 활동을 하기를 원하는
수학자들은 과학의 성과나 응용 방식에 준해서 이론을 개발하고 연구할 것
이다. 게다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따르면 수학에 대한 정당화는 과학
의 몫이며, 따라서 어떤 수학적 활동이 가치가 있는지는 과학에 의해 결정
된다. 이에 대해 메디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집합론자들
은 연속체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기다려 자신의 연구 방향을 결
정해야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12)

즉 대부분

의 수학자는 과학의 성과를 기다려서 자신의 연구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여
가적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에 기초한 자연주의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과학 이상으로 성공적일 뿐 아니라 과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지금까지 수학이 사용해 온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
으로 평가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유용성에 기초한 자연주의자의 일관된 전
략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이와 관련해서 콜리반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장

211)
212)

Maddy, 1992, p.279.
Maddy, 1992, p.289.

116

을 한다.

수학자들은 정리가 관련된 공리로부터 따라 나온다는 것은 믿지만
그 정리(혹은 공리들)의 존재론적 개입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자로 남
아 있다. 존재론적 질문은 수학적 이론의 특정한 부분이 경험과학
안으로 들어올 때 대답된다.

213)

이것은 실제 수학자들은 존재론적 개입과 무관하게 공리적 방법을 사용
하며, 존재론적 질문은 과학에의 기여를 통해서 답변될 수 있다는 주장이
다. 그런데 이 주장에 따르면 수학적 진술 혹은 정리들은 과학에 적용되기
전에는 존재론적 함의가 결정되지 않은 것들이다. 물론 콜리반이나 필요불
가결성 논자들이 모든 수학적 이론이 아무런 내용을 갖지 않는 형식적 체
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존재론적 문제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의존하는 실재론적 의미론에 기초해서 보았을 경우 해당 진술
의 진리값이 결정되지 않았음을 뜻하며, 이것은 결국 해당 진술이 실제적
내용을 갖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학에 적용되기 전의 수학은 모두
여가적 활동이 된다. 게다가 이러한 여가적 활동이 과학에 적용되었을 경
우에 존재론적 함의가 결정된다는 위의 주장은 과학이 수학적 진술에 내용
을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수학도 과학과 독립적으로는 정
당화의 대상조차 되지 않음을 함의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콜리반은 아
래와 같이 수학적 활동의 특성을 규정하고 있다.

수학자들은 가능한 공리체계를 연구함에 반드시 자유로워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결과물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 없이 자유로워야 한
다. 콰인이 말하는 ‘수학적 여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수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곧 그것이 존재한
213)

Colyvan, 2001, p.106.

117

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견해는 비록
완전히 부조리한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인식론적 문제에 직면한
다.

214)

위의 인용문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따르면 수학은 자율성을 완전히 상
실한다는 메디의 비판에 대한 콜리반의 대응이다. 즉 자유로운 수학이 존
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이 존재론적 개입 없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모든 수학은 여가적 활동이라는,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결
론을 함의하게 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수학의 존재론적 함의는 과학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과학적 성과와 무관하게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며, 수학자들이 과학적 적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학을 물리적 세계에 적용시키는 것은 수학자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과학
자로서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결국 존재론의 문제를 과학에 이전함으로써
수학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콜리반의 시도는 역으로 모든 수학적 활동은
여가적 활동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게 되며, 메디의 비판을 강화하는 결
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수학적 여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학자들의 생각
이 곧 그 존재를 함의한다는 콜리반의 주장은 아마도 힐버트류의 형식주의
자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데, 수학자들이 일관된 체계를 구상하는
것이 곧 존재를, 그것도 물리적 대상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 대상의 존재를
함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더 나아가서 III.4에서 보았듯이 콰인도 어떤 수학체계든 과학에 도움이
되면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수학을 존재론적 개
입이 없는 활동으로 보았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수학은 단지 일관된 체계,
즉 존재론적 개입이 없는 체계를 구성하는 행위이며, 이러한 체계 중 어떤
체계를 선택하는가의 문제는 과학자 혹은 과학적 활동의 몫이라는 데 그도
동의할 것이다. 결국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모든 수학적 활동은 여가적
214)

Colyvan, 1998, p.56.

118

활동이며, 이러한 여가적 활동의 결과물이 과학에 의해 선택되었을 경우에
의미 있는 학문이 된다고 주장할 수밖에는 없다.
물론 지금까지 제시한 메디의 비판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논리적으로
논박하지는 못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정당화하
려는 수학은 경험적 내용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에 적용되기 전의 수
학적 활동은 여가적 활동이라는 주장은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의 주장을 뒷
받침하는 증거일 수 있다. 또한 해석학을 비롯한 수학의 중요한 영역들이
실제로 과학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으며, 이러한 수학들이 중요하게 평가
되는 이유 역시 과학과 무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수학
이론이 과학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으며, ‘순수수학’이라는 개
념이 확립된 것 또한 상대적으로 근대라고 할지라도 수학과 과학 사이의
상호 보완적 활동이 있었다는 것과 모든 의미 있는 지적 활동은 과학적 활
동이라는 주장은 다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수학과 과학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수학을 과학에 의해 평가하려는 필요불
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되기 위
해서는 과학과 수학의 방법론적 특징 및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뿐
아니라 과학에서의 수학의 실제적 역할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절 및 V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과
학 유일적 자연주의는 위에서 제시된 문제, 특히 수학과 과학 사이의 실제
적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수학을 평
가하는 단적인 기준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과학이 수학에 의존
하는 방식이 그들의 주장과 다르다면,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존중이 곧 과
학 유일적 자연주의를 정당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과학

지금까지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결과인 ‘여가적 수학’에 대한 메

119

디의 비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비판이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곧바로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메디의 말대로 그들은 과학 유일적 자연
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존재론적, 의미론적 기준은 수학이 아니라 과학에 있
다. 따라서 비록 상당한 설명을 요구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을 과학 유일적 자연주의에 기초해서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절에서 다루는 메디의 두 번째 비판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기초하고
있는 과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 비판이 타당하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IV.2.가에서의 대응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즉 그들
은 자신들의 주장을 수정하든가 적극적으로 해명해야만 한다.
과학적 활동 혹은 이론 구성과 관련된 메디의 비판은 대략 세 가지 주제
로 구성된다.

215 )

첫 번째 비판은 과학사에 기초한 것으로, 그녀는 19세기

초의 원자에 대한 과학자들의 태도를 예로 들고 있다. 그녀는 최선의 이론
에서 원자가 필요불가결함에도 불구하고 원자에 대한 직접적인 확인 혹은
확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대부분 과학자들이 원자를 도구적으로 이해했었
다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비판하고 있다.

216)

즉 메

디는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이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다는 주장에 대한
역사적 반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논자가 가장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이론 구성에 있어서
잘 알려진 현상인 ‘모형화’ 혹은 ‘이상화된 가정’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면, 운동을 설명하는 경우에 마찰력 없는 평면을 가정한다든지, 기체의
부피와 압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상기체를 도입하는 것 등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최선의 이론이 마찰력 없는 평면이라든지
이상기체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
지 않듯이,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이 반드시 수학적 대상의 존재

215)
216)

Maddy, 1997, pp.133-157.
Maddy, 1997, pp.135-143.

120

를 인정해야 하는 근거라고 볼 수 없다고 메디는 주장한다. 가령 메디가
직접 든 예인 유체역학에서 유체를 연속체로 가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우
리가 유체역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곧 그 이론이 포함하고 있는 모든 가
정들, 예를 들어 연속적인 유체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한다는 것과 같
은 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217 )

마찰력 없는 평면이라든지 유

체의 연속성은 설명의 틀로 제시된 것으로 과학적 설명에 있어서 모형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 경우 우리는 모형적 대상에 대해 반드시 존재론적 개
입을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적 설명의 구조에서 수학 역시
모형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경험에 의존해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가 확
증될 수 없다고 메디는 주장한다.
마지막 비판은 실제 과학자들이 수학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으로, 과
학자들의 수학에 대한 태도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218)

논자는 우선 이 세 번째 비판을 살펴보고 난 후 나머지

두 비판에 대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메디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과학자들
의 전형적인 태도로 파인만(Feynman)의 예를 들면서, 시-공간의 연속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가정은 콰인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별한 존재론적
함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과학자들의 수학에 대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에 새로운 추상적 대상이 더해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들은 그 수학에 의해 가정된 추
가적인 물리적 구조도 개의치 않고, 유용하거나 편리하면 언제나 강
한 수학을 사용하려 하는 듯하다.

219)

이러한 과학자들의 태도가 일반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콰인주의자들에게
217)
218)
219)

Maddy, 1997, pp.143-154.
Maddy, 1997, pp.154-157.
Maddy, 1995, p.256.

121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IV.2.1에서 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따르
면 모든 수학적 활동, 가령 공리체계 구성이나 일관성 혹은 정리에 대한
증명과 관련된 활동은 그것이 과학에 의해서 선택되지 않는 한 ‘여가적 활
동’에 지나지 않으며, 수학 명제의 참과 거짓 및 대상의 존재는 과학에 의
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판정관의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이 수학적
대상과 구조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자신들의 이론에 효과적임에 근거해서
특정한 수학 이론을 선택한다는 것은 수학의 자율성 및 수학과 과학의 구
분을 전제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수학적 대상이 과학에 의해서 발견되
거나 부정되지 않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적 대상이 과학에
의해서 발견되거나 부정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대상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
은 납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과학자들의 태도, 특히 메디가 예를 든 파인만의 태도에 대
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그들은 메디가 인용한 태도
가 일반적이지 않으며, 비록 일반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해석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콜리반은 비록 많은 경우에 과학자들의
수학에 대한 태도가 메디의 지적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몇몇 문제되는 새
로운 수학적 개념이나 대상의 경우에는 과학자들 역시 그러한 개념의 타당
성 및 대상의 존재에 대해 회의한다고 주장하면서, 디랙(Dirac)의 델타함
수와 데카르트, 뉴턴, 율러의 복소수에 대한 회의와 관련된 사례를 들고 있
다.

220 )

특히 그는 다른 수학적 개념들과는 달리 복소수에 대한 회의는 개

념적 엄격성보다는 그것의 존재론적 성격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면서, 복소
수에 대한 뉴턴의 회의는 수학적 엄밀성 때문이 아니라 복소근(complex
root)이 물리적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221)

그리고 이러한

복소수의 존재가 광범위하게 인정된 것은 그것을 사용하여 가우스가 대수
학의 기본 정리를 증명하고 물리학에 복소함수(complex function)가 사용

220)
221)

Colyvan, 2001, pp.103-104.
Colyvan, 2001, pp.104.

122

된 이후라는 클라인(Kline)의 해석을 예로 들면서,

222)

콜리반은 수학적 대

상이 인정되는 데에는 수학적 이유뿐만 아니라 과학에의 적용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223)

논자는 이러한 콜리반의 주장의 문제점을 두 개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
는 복소수에 대한 데카르트, 뉴턴, 율러의 회의를 그의 주장대로 존재론적
회의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가이다. 물론 그가 인용한 위의 세 사람의
주장을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그들의 회의는 복소수의 존재론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당시의
수학은 복소수뿐만 아니라 실수가 사용되는 대부분의 영역이 아직 발전의
초기 단계에 있었으며, 따라서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된 미분과 관련된 개
념조차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에 문제가 된 수학
적 개념들에 대한 논의를 존재론적인 것과 수학적 엄밀성과 관련된 것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는 충분히 회의할 수 있다. 또한 그도 인정하
고 있듯이 복소수가 인정된 것은 가우스의 대수학 정리가 증명되고 복소함
수가 물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개발된 후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의 의도와는 다르게 복소수에 대한 회의가 존재론적 특성 때문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복소근이 물리적으로 의미 없기 때문에 부정된 것이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수학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소수 역시 다른 수학적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존재론적 특성이 아
니라 그것이 사용된 수학체계의 엄격성이 수용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설명일 것이다.

222)
223)

224)

224)

Colyvan, 2001, pp.104.
물론 이 경우에 복소수를 인정하게 된 첫 번째 근거는 수학 내적인 것이며 두
번째 것만이 과학에의 적용에 근거한 것이지만, 콜리반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
히 두 번째, 즉 과학에의 적용이다.
콜리반 역시 복소수에 대한 회의가 모두 존재론적 문제 때문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는 수학적 엄밀성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논점은 수학적 엄밀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123

델타함수나 복소수와 관련된 콜리반의 주장의 문제점 중 다른 하나는 과
학이나 수학의 역사적 사례를 그 이론을 구성한 수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의
언급과 관련해서 분석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로, 메디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자나 수학자들의 이론 구성의 실제적 과정
혹은 이론의 함의가 그러한 이론을 구성한 수학자나 과학자의 언급과 반드
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제 이론에서의 개념이나
법칙의 역할과 그러한 개념이나 법칙에 대한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언급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에 기초해서 본다면 메디가
인용한 파인만이나, 콜리반이 인용한 디렉, 뉴턴, 데카르트, 율러의 언급
자체가 바로 수학이나 과학 이론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함의와 일치하는지
는 분명치 않다. 특히 그들의 주장을 현대적 관점으로 이해한다면 더욱 많
은 오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인용한 과학자들의 주장이 정확
히 어떤 의미인지는 과학사나 수학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재구성되어야 할
과제이지, 수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단적인 반례가 되지는 않는다. 따라
서 콜리반이 인용한 뉴턴의 주장을 수학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의 예로 보
기 어렵듯이, 물리학자들이 특별한 존재론적 개입 없이 수학을 사용한다는
것 역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부정하는 근거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존
재론적 문제에 무관심한 물리학자들의 수학에 대한 태도를 자연주의자들이
그대로 승인할 필요는 없다는 콜리반의 주장이 적절하다고 논자는 생각한
다.

225)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콜리반의 주장은 자신을 포함하는 필
요불가결성 논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자주
주장하듯이 고전 수학의 많은 영역이 물리적 적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례가 곧 모든 수학은 응용수학이
며 따라서 수학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됨을 입증하지 않는다. 특정한 수학이

225)

문제이기 때문에 위에서 제기한 비판은 그에게 적용될 수 있다.
Colyvan, 2001, p.105.

124

물리적 적용을 위해서 고안되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정당화가 물리적,
경험적 증거에 기초한다는 것은 별개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논의한 메디의 세 번째 비판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논박하기에는 부족하
지만, 이 비판을 통해 우리는 실제 수학 이론의 형성과정에 의해 수학이
경험적 학문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필요불가
결성 논자들이 이러한 이론 형성 과정 및 목적에 의존해서 수학이 경험적
학문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보았던 사례, 즉 파인만의 예와 같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설
명의 부담이 그들에게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메디의 다른 비판은 어떠한가?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그녀의
첫 번째 비판은 과학적 실례를 통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지적
하는 것이다.

226)

그녀는 1900년대 초기 원자에 대한 과학자들의 논쟁을 예

로 들면서 이론적 대상에 대한 경험적 확증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한다.

227)

메디가 지적하듯이 이미 1900년대 초기에 이론적으로는 원자의 개념이 도
입되었고, 당시 물리학에서 원자의 역할은 필요불가결했지만 과학자들의
원자에 대한 태도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과는 달랐다. 포앙카레를

226)

논자는 앞에서 역사적 사례에 근거하는 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수
학이나 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역사적 사례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배제
할 수 없으며,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에 따
를 경우 과학적 이론 선택의 주체는, 비록 철학자들이 부분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과학자이며, 이러한 과학자들의 이론 선택의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루어진 이론 선택 및 정당화의 과정에 대한 분석
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적 사례에 의존하는 논증은 상당히 위험한 측면
을 포함한다. 따라서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나 그 반대자들의 역사적
사례에 대한 인용이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켰을 경우에 인용하려 한다. 하나는
과학자의 주장과 이론의 실제적 함의 혹은 선택과정이 일치했을 경우이며, 다
른 하나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 그 반대자들이 그러한 사례가 존재했음과 그
사례가 갖는 기본적인 함의에 동의하고 있을 경우이다. 그리고 앞으로 논의할
1900년대의 원자와 관련된 예는 이 두 조건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인용할 것이
다.
227)
Maddy, 1997, p.138.

125

비롯한 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원자의 존재를 인정하기
를 거부하였으며, 원자가 인정된 것은 페린(Perin)의 브라운 운동에 대한
실험이 행해진 이후였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존재론적 기준이 이론적 요청
에 있지 않고 그 대상에 대한 경험적, 실험적 확증에 있다고 메디는 주장
한다. 더 나아가서 페린의 주장처럼 그러한 의심은 원자에 대한 보다 나은
이론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28 )

그러므로 메디는 이론을 구성하는

개별적 대상의 존재에 대한 콰인의 기준과 과학자들의 실제 활동과는 일치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원자의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는 콰인의 기준을
수학적 대상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따라서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
되는 방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229 )

결국 과학에도

적용되지 않는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이 수학에 적용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디의 비판에 대해서 콜리반은 메디가 자신과 콰인의 자연주의
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연주의를 수학으로 확대할 것
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위의 예가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반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존재론은 전적으로 과학자의 몫이
라는 강한 의미의 자연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자신이나 콰인이 기초하
는 자연주의는 이러한 강한 의미의 자연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230 )

위의 예를 통해서 이론적 대상에 대한 콰인의 주장을 반박하려면 존재론은
전적으로 과학자의 몫임이 전제되어야만 하지만, 그나 콰인이 기초하고 있
는 자연주의는 철학과 과학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이지 과학에 모든 존재
론을 위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31)

따라서 그는 위에서 언급한 1904

년 이전의 과학자들, 특히 포앙까레의 주장은 잘못된 철학인 검증주의에

228)
229)
230)
231)

Maddy, 1997, p.140.
Maddy, 1997, p.143.
Colyvan, 2001, pp.97-98.
Colyvan, 2001, p.97.

126

물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232)

과학과 철학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자연주의자

는 과학에 대해 어느 정도 규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위의 예가 대
표적인 경우이므로,

233 )

자연주의적 과학철학의 역할은 과학자들에게 자연

주의의 장점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234)

이것은 이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원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과학자
들은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러한 오류를 지적하는 것 역시 자연주의자
의 역할이기 때문에 메디의 예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콜리반
도 인정하듯이 메디가 존재론의 문제를 전적으로 과학에게 위임하는 강한
의미의 자연주의자는 아니다.

235 )

또한 자연주의에 과학에 대한 규범적 요

소가 포함된다는 콜리반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원자에 대한 경험적 확증
을 요구하는 것이 비-자연주의적 태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
험적 확증이 이론 선택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과학자
들이 원자에 대한 경험적 확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해서 그것
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이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그 이
론이 포함하고 있는 원자의 존재를 승인하는 데 유보적이었을 뿐이다. 결
국 그들이 부정한 것은 과학의 독립적인 이론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과학
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것이다. 과학의 독립적 정당화와 철학과 과학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과 이론을 구성하는 모든 주장들이 액면가를 갖는다
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한 앞에서 말한 대로 이러한 원자에 대한 회의는 원자와 관련된 보다
엄밀한 실험을 유도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브라운 운동에 대한 페린의 실험
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페린의 실험이 현대 물리학에서 중요한 진보

232)
233)

234)
235)

Colyvan, 2001, p.100
위에서 언급한 ‘규범적 역할’이란 물론 과학 내적인 규범을 제시하는 것을 의
미한다.
Colyvan, 2001, p.100.
Colyvan, 2001, pp.97-98.

127

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론적 태도가 더 적절
한 과학적 태도인가? 콜리반의 주장대로라면 페린은 잘못된 철학에 기초하
고 있기 때문에 원자에 대한 의심을 중단해야만 한다. 그러나 원자에 대한
그들의 회의는 결국 긍정적인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 낸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과학적 기준 및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논자는 자연주의의 기본적 논제들과 과학적 성과에 기초해
볼 경우, 그들이 잘못된 비-자연주의적 철학에 기초했다는 콜리반의 비판
에 동의할 수 없다. 비록 그나 콰인이 강한 의미의 자연주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과학적 이론 선택의 자율성에 대해서는 그들 역시 인정하고 있으
며, 이러한 이론 선택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긍정적 발견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자는 이론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주장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콰인의 주장이 차라리 더 의심스럽다는 메디의 주장이 보다 설득
력 있다고 생각한다.

236)

그러나 위의 사례만으로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기
에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자신
들의 이론 선택의 기준을 부분적으로 수정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예를 들면 콜리반은, 콰인의 존재론적 기준은 1904년 이전의 원자론과
같은 초기단계의 이론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과학에 적용된다고
주장하면서 메디의 비판을 다른 방식으로 비껴간다.

237 )

게다가 그들이 이

론 선택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과정에 다양한
요소가 개입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에 대한 반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선의 것으로 선택된 이론에서도 위와 같은 경우가 발생한다면 상
황은 달라진다. 최선의 것으로 선택된 이론에서 필요한 대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존재론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논리적
구조인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에 근거한 수학적 실재론은 성립되지 않는

236)
237)

Maddy, 1997, p.143.
Colyvan, 2001, pp.100-101.

128

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는 메디의 두 번째 비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논자가 보기에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메디의 비
판 중 가장 적절한 것은 이 두 번째 비판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비판과
세 번째 비판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태도와 관련된 것으로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데 비해 두 번째 비판은 과학적 이론의
구조 및 설명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앞에서 본 대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은 수학이 과학에 적용된다는 단적인 사실에 기초해서 과학적 추론에서 사
용된 수학 역시 과학의 이론적 진술과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는 확장
된 확증적 전체론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소버는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이 결국 선험
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들어 반박했다. 이와 달리 메디는 과학적 설명의
모형적 특징과 관련해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메디는 과학적 설명의 예로 갈릴레오의 운동에 대한 설명과 유체역
학을 들고 있다.

238)

특히 IV.2에서 다루었던 연속체 가설의 문제와 관련해

서 연속체에 대한 과학적 언급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한다.

239)

가령 마찰력

없는 평면에서의 운동에 대한 설명이나 유체 역학에서 유체의 연속성에 대
한 언급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논자는 그녀의 주장을 단순한 연속체
의 문제만으로 한정할 필요 없이 과학적 설명의 모형적 특징과 직접 연관
시키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메디가 위의 예를 통해서 주장
하고 있는 것은, 렝의 지적처럼, 과학적 설명에서 불가피하게 도입하는 이
상화된 조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240 )

이론이 참이라는 것에 근거해

서 마찰력 없는 평면이나 연속적인 유체의 존재가 입증되지 않듯이, 대부
분의 과학적 설명이 근거하는 이상화된 조건이나 모형 역시 존재론적 함의
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참인 과학에서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사용되
었음이 곧 그 대상의 존재를 함의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238)
239)
240)

Madd, 1997, pp.143-146.
Madd, 1997, pp.149-152.
Leng, 2002, p.399.

129

서, 과학적 설명에서 모형을 구성하는 가정들 중 많은 부분은 실용적 요청
에 의한 것이며, 이 경우에 그러한 대상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개입 하지
않는다면 모형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인 수학적 대상에 대해서 반드시 존
재론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비판이다.
왜냐하면 수학이 과학에 기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설
명의 모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형적 설명의 구조는 필
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적절한 반례가 된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
은 더 이상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을 단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결국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요구받을 수밖
에 없다. 즉 IV.1에서의 결론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 비판이다.
더 나아가서 위의 예에서 이상화된 조건인 마찰력 없는 평면과 유체의
연속성은 과학적 설명에서 필요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조건들이 개
입하지 않으면 해당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에 기초해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 역시 정당화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메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연주의적 원리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론이 참인 부분과
단지 유용한 부분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단
순히 유용한 부분조차 그것 없이는 동일한 현상에 대한 동등하게 훌
륭한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필요불가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241)

과학 이론에서 단순히 유용한 부분과 참인 부분이 구분된다면, 우리는
수학 역시 과학에서의 이상화된 조건과 동일한 방식으로 유용한 것으로 이
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대상에 대한 언급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이
241)

Maddy, 1992, p.281.

130

그 대상에 대한 진술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입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메
디는 확증된 과학에서 수학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이 수학이 참임을 보장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242)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반박할 수 있으려면, 그들은
과학의 이상화된 조건이 확증적 전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도록 재해석해
야만 한다. 콰인은 바이에스트라스(Weierstrass)의 극한 개념을 사용해서
연속체에 대한 과학적 주장을 재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243)

그러나 메디는

이러한 극한 개념을 이용해서 갈릴레오의 마찰력 없는 평면에 대해서는 어
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체 역학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다고 주장한다.

244 )

분자들의 간격을 극한화할 경우 그 대상은 더 이상 유

체가 아니며, 더 나아가서 연속성은 모든 유체에 대한 설명의 틀이기 때문
에 극한 개념을 통해서 제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콰인의 이상화된
조건에 대한 재해석적 접근은 일반화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곧 연속체
와 관련된 수학적 진술들 역시 경험에 의해 확증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결
국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과학적 설명
의 모형적 구조 및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해야만 한
다는 것을 위의 예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필요불가결성 논자의 대답들 중 가장 적절한 대답은 레
스닉에 의해서 제시된다. 다른 필요불가결성 논자들과는 달리 레스닉은 위
에서 제기한 소버와 메디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과학적 설명의 모형적
특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설득력을 유지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자는 다음 장에서 레스닉의 필요불가
결성 논증의 재구성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242)
243)
244)

Maddy, 1992, p.281.
Quine, 1960, p.250.
Maddy, 1997, p.145.

131

V. 물리적 해석과 유클리드적
유클리드적 구조
IV에서 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및 경험화
된 수학과 관련하여 다양한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소버의 선험적 필요불
가결성 및 메디의 이상화된 조건과 관련된 아래 두 논제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반드시 해명해야 할 과제임이 드러났다.

1) 과학적 설명의 모형적 구조: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설명은 모형
적 구조를 가정하는데, 이 경우 해당 모형을 구성하는 과학적 진
술조차 도구적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도구적 해석
역시 가능하다.
2) 선험적 필요불가결성: 수학은 모든 과학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기보다는 경험적 확증이 가능하
기 위한 조건이다.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레스닉은 소버와 메디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과학
을 통해 수학이 참임을 입증하기 위해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제시
한다. 즉 그는 1), 2)와 관련된 소버와 메디의 비판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
론의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분리하고,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한다는 실용적 요구에 근거해서 수학적 진술이 참임을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시도는, 이제부터 살펴볼 것이지만,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과학이 반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이 부정되지 않는 이
유를 설명하기 위해 레스닉이 제시한 ‘유클리드적 구조’라는 개념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논거로 해석될
수 있다. 역시 뒤에서 자세하게 논의하겠지만, 우리는 유클리드적 구조에

132

대한 분석을 통해 과학에 적용되는 것은 수학이 아닌 수학에 대한 물리적
해석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확증적 전체론에 의해서 입증되
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이기 때문에,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모든
전제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는 입증되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물
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이 참이라는 것에 의해 수학적 진술이 액면가를 갖는
다는 것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화는 쉽지 않을 뿐 아
니라 그것은 더 이상 필요불가결성 논증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 수학적
실재론의 정당성과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별개의 것이 된다. 그러므로 과학
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려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수학적 진술
의 액면가를 입증하지 못하며, 결국 유명론자들에게 설명의 부담을 전가하
는 논증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었을
경우 적용된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는
분석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두 번째 전
제는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는 확실한 출발점이 아님을 마지막으로 밝
히고자 한다.

1. 레스닉의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
레스닉은 앞의 1)과 관련된 비판에 대해서, 과학적 설명에 모형을 제공
하는 역할을 통해서 오히려 수학이 참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과학적 모형-구성의 성공은 그러한 모형들을 형식화하
고 개발하는 데에 우리가 수학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한다. 더욱이
사용
과학적 모형을 구성하는 데에 수학을 사용한 것은 그 사용된 수학이
참임을 우리가 인정하게 하며, 그것의 성공은 사용된 수학이 참임을

133

지지한다.

245)

그러나 IV에서 보았듯이 과학적 설명의 모형을 구성하는 물리적 대상도
종종 도구적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모형을 구성하는 수학적 진술을 어떻
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IV에서의 메디의 지적처럼 과학적
설명을 구성하는 물리적 가정들, 가령 ‘마찰력 없는 평면’이라든지 ‘유체의
연속성’ 등과 관련된 가정들은 그것이 과학적 설명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
임에도 불구하고 도구적으로 해석되는데 어떻게 추상적 대상에 대한 수학
적 진술의 액면가를 과학을 통해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
레스닉은 이러한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뉴턴의 예를
들고 있다.

246)

그가 지적하고 있듯이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기 위해서 뉴턴

은 행성이 하나임을 가정했다. 그는 문제되는 행성이 다른 행성의 중력에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궤도를 계산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메디가 IV에서 제시한 이상화된 모형과 동일한 과학적 설명 혹은 계산 방
식이다. 이와 관련해서 레스닉은 비록 행성이 하나만 있다는 것에 대해서
는 뉴턴을 포함한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지만, 행성의 궤도를 계산하는 수
학 법칙이 참이라는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즉 뉴턴의 모형적
설명에서 행성이 하나밖에 없다는 물리적 가정은 도구적인 것이지만, 이러
한 모형적 설명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인 수학이 참이라는 것은 반드시 전
제되어야 한다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이러한 [행성 궤도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것은 (뉴턴 모형의) 고립된(isolated) 체계의 유형은 뉴턴이 그
것에 부여한 수학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245)

Resnik, 1998, p.237.
Resnik, 1997, p.44.
247)
Resnik, 1997, p.44.
246)

134

247)

그리고 레스닉은 위의 논의를 통해서 이상화된 조건과 관련된 메디의 주
장뿐 아니라 소버의 ‘선험적 필요불가결성’과 관련된 비판에 대해서도 반
박한다. 이미 확인한 대로 레스닉은 뉴턴의 설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행
성이 하나밖에 없다는 물리적 가정에 대해서는 신뢰하지 않더라도 관련된
수학 법칙이 참임은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경우 수
학은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따라서 과학적 설명에 수학
이 요구되는 것이 소버가 말하는 선험적 요소를 갖는다고 할지라도, 과학
이 참이기 위해서는 혹은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참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스닉은 과학에서 이상화된 조건이
사용되는 것과 수학이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임을 인정하면서
도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참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뉴턴의 예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수학 없이 과학이 불가능하다는 것
뿐이다. 따라서 레스닉의 논증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기초하는 필요불
가결성 논증과 구분된다. 그리고 그 역시 III에서 제시한 필요불가결성 논
증과 자신의 논증을 구분하여 전자는 ‘H-N’, 즉 ‘전체론-자연주의 필요불
가결성’인데 비해 자신의 논증은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이라고 주장하
면서

248)

아래와 같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재구성한다.

249)

(1) 과학적 추론을 수행하고 법칙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학적
대상의 존재와 수학적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 가정된다.
(2) 위의 가정들은 과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하다. 더 나
아가서 과학 안에서, 그리고 과학으로부터 도출되는 많은 중요한
결과들은 수학이 참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도출되지 않는다.

248)
249)

Resnik, 1997, p.45.
Resnik, 1997, p.46-47.

135

(3) 따라서 우리가 과학에서 사용된 수학이 참임을 수용하는 것이
정당화된 경우에만 과학 안에서 그리고 과학으로부터 결론을 도
출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첫 번째 전제는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으로, 앞의 뉴턴의 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의 논증의 핵심은 두 번째 전
제에 있다. III에서 보았던 ‘필요불가결성 2)’와 유사한 두 번째 전제는 결
국 수학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용어대로 ‘H-N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해서 지지되는 ‘필요불가
결성 3)’을 실질적 전제로 사용하는 데 반해서, 그의 전제 (2)는 수학 없는
과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필요불가
결성 논증은 과학에 대한 증거가 곧 수학에 대한 증거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과 관련된 비판을 비껴가고 있
다.

250)

그러나 위의 논증만으로는 ‘H-N 필요불가결성’과는 다른 실용적 특징이
드러나지 않으며,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하기에도 부족하다. 위의 논
증은 결국 ‘필요불가결성 2)’에 의존하는 것이며, III에서 확인한 대로 그것
에 의존해서는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가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스닉은 수학에 대한 실용적 정당화의 특징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
해 위의 논증을 아래와 같이 보충한다.

251)

(4) 우리가 설명과 예측을 위해 과학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화된 것
이다.
(5)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 안에서
그리고 과학으로부터 결과를 도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250)
251)

Resnik, 1997, p.47.
Resnik, 1997, p.48.

136

(6) 따라서, 그리고 위의 (3)에 의해서, 수학이 참이어야 함을 우리
가 수용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4)는 단지 과학에서의 예측과 설명의 역할을 주장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정당화가 필요해 보이지 않으며, (5) 역시 받아들일 수 있다. 과학과 단순
한 경험의 구분이 이론화에 있으며, 과학적 법칙을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
기 위해서는 추론 행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
(6)은 (4)와 (5)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레스닉이 지적하고 있듯이 (6)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3)이 전제되어야만 하며, (3)은 앞의 논증의 결론이
기 때문에 결국 첫 번째 논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경우 그의 논증의 실
용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4)와 (5)로부터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
서는 추론의 기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1)과 (2)에 의해서 그러한
추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참이어야 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
문이다. 즉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스닉은 자신의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형식을 “한 행위가 참이라
는 것으로부터 다른 행위가 참임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252)

시 말해서 첫 번째 논증이 전제되었을 때 (4)와 (5)로부터 과학을 사용하
기 위해서는 혹은 과학적 활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적 추론에
필수불가결한 수학이 전제되어야 하며, 이 경우에 수학이 참이라는 결론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스닉의 주장은 과학적 증거와 수학적 증
거 사이의 확증 관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과학의 가능성 자체에 기초한
실용적 정당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그
는 수학이 배경 논리로 사용된 경우나 이상화된 조건에서도 수학이 참임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52)
253)

253)

더 나아가서 과학이 모두 거짓인 경우 혹

Resnik, 1997, p.48.
.
Resnik, 1998, p.234

137

은 과학에 대한 허구주의자도 과학적 활동이 가능한 조건인 수학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54 )

따라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는 필요불

가결성 논증은 경험적 증거와 수학적 진술 사이의 전체론적인 확증관계에
기초하는 반면 레스닉의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확증 관계가 아니라
과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수학이 참이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의 요청적 성격에 보다 직접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레스닉의 주장은 매우 중요한 논점을 생략하고 있다. II
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우리는 수학의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수학을 부정
하거나 유명론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학을 받아들이는 것
과 액면가의 문제, 특히 대상의 존재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레스닉이 입증해야 하는 것은 과학적 활동의 조건으로 수학을 인
정하는 것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 사이의 정당화 관계이다.
그러나 위에서 제시된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만으로는 수학이 액면가
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위의 논증은 결국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참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경우 전제되는 수
학이 반드시 액면가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위의
논증에서 우리는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정당화는 발견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 II에서 논의한 필드의 보수주의적 전략과 위의 레스닉의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수학의 추론적 역할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필드의 보수주의적 전략이란 결국 수학의 추론적 기능을 유명
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며, 레스닉의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수학의 추론적 기능이 전제되어야만 과학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레스닉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수학을 유명론적으로 재해
석할 수 있다. 즉 실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에서 요구되는 것은 수학의 추
론적 기능뿐이며, 필드의 보수주의 전략 역시 수학의 추론적 기능을 인정
254)

Resnik, 1997, p.49.

138

하면서도 그것을 도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주장은 양립
가능하다. 그러므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정당화 없이 수학의 추
론적 기능에 의존하는 실용적 논거만으로는 수학적 실재론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판과 관련해서 레스닉도 결국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여
수학적 명제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255)

그러나 그는 앞에서 다루었던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소버와 메디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
가서 수학에 대한 전체론적 설명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예, 즉 유클리드 기
하학을 사용하는 뉴턴의 역학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사용하는 상대성
이론으로 대체되었음에도 유클리드 기하학이 여전히 중요한 수학의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이더라도 수학의 독립적 방법론은 인정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레스닉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실용적 필요불가결성이라는
형태로 완화시킨 것처럼 확증적 전체론 역시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완화시킨다.
그러므로 레스닉의 전체론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실제로 과학에
의해서 반증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유클리드적 구조’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확인했듯이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이 갖는 대표적인 문제는 과학이 반증되었을 경우에도 수학이 부정되지 않
는다는 것이며, 그의 확증적 전체론 역시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제
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레스닉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관
련된 사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면서 ‘유클리드적 구조’를 정의하
고 있다.

과학적 모형을 구성하는 수학이 부적절함이 입증되었을 경우, 수학
을 반박으로부터 보호하고 그 수학이 적용되어야 하는 물리적 구조
255)

Resnik, 1997, pp.112-135.

139

에 그것이 부합하지 않았다고 결론짓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이후부
터 나는 이러한 방법으로 수학의 분야들을 보호하는 것을 유클리드
적 구조라고 부를 것이다.)

256)

다시 말하면, 수학을 이용한 과학적 모형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
을 경우, 수학을 부정하는 것보다 물리적 구조에의 적용이 실패했다고 이
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유클리드적 구조가 IV
에서 살펴본 콰인의 ‘최소수정의 원칙’이나 콜리반의 ‘확증과 반증의 비대
칭성’에 관한 주장과 유사한 것으로, 확증적 전체론의 틀을 유지하는 제한
된 규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57)

그러나 ‘유클리드적 구조’는 그의 의도와

는 달리 콰인이나 콜리반의 주장과는 중요한 차이점을 갖는다. 앞에서 살
펴보았듯이 콰인이나 콜리반의 주장은 반례에 대한 실용적 기준, 즉 수학
을 부정하는 것이 이론 전체와 관련하여 비-효과적인 수정 방식임에 기초
한다. 그러나 ‘유클리드적 구조’는 수학 이론의 물리적 적절성에 대한 것이
기 때문에, 콰인이나 콜리반이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과학이 수학
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불가피하게 포함하게 된다. 과학 T가 반
증되었을 경우 수학 M이 아니라 M의 물리적 적절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M에 대한 물리적 해석 ø(M)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T에
적용된 것은 M이 아니라 ø(M)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물리적 적절성이
란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전제하
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출현이 가져온 수학에 대한 새로
운 이해와도 일치하는 것이다. 뉴턴이나 상대성 이론의 문제를 떠나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이 가져온 수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란, 수학은 물
리적 세계에 대한 기술이 아니며 수학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256)
257)

Resnik, 1998. p.242.
Resnik, 1998, p.244.

140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하학을 실제 공간에 대한 학문
이라고 이해할 경우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양립 불가
능하지만, 우리는 이 두 체계가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기하학이 실제공간에 대한 것
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하학의 사례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또
한 굳이 기하학의 사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수학 언어는 물리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직접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현상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수학에 대한 논리적 분석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수학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유클리드적 구조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과학적 확증에 기초해
서 수학이 정당화된다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대 논거로
이해될 수 있다. M이 사용된 T가 현상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에 M
을 유클리드적 방식으로 구조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M이 아니라 물리
적 적절성이 잘못된 것이라면 결국 잘못된 것은 수학에 물리적 내용을 부
여하는 해석 혹은 해석함수 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이론을 통해서
긍정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이론 M이 아니라 해석함수 ø라고 할 수 있다.
즉 뉴턴 역학이 부정되었을 경우 부정되는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이 아니라
그것의 물리적 적절성이라면,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유
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물리적 해석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클리드적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과학적 설명을 구성하는 것은 M+T가 아니
라 ø(M)+T이며, 경험적 사례에 의해 확증되거나 부정되는 것 역시
ø(M)+T임을 도출할 수 있다. 따라서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수용한다고
a 가 아니라 ○
b 와 같은 방식
하더라도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는 아래 ○

으로 도식화될 수 있다.

141

a M + T┣ O

b ø(M) + T┣ O

┓O & T

┓O & T

----------

-------------

┓M

┓ø(M)

즉 수학의 적용은 단순히 과학 T에 수학 M을 더한 (M+T)를 통해서가
아니라 M을 물리적으로 해석한 ø(M)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이 경우 ┓O
를 통해서 의심되는 것은 M이 아닌 해석함수 ø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학
M에 대한 해석 ø가 매우 다양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M에
대한 다양한 해석ø1(M), ø2(M), ………… øn(M)이 존재하며, 경험적 반례에
의해서 부정되는 것은 각각의 øi(M)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일한 M이 상이
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øi(M) 과 ┓øi+n(M)이 양립 가
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예를 들어 유클리드 기하학을 G라고 할 경우,
우리는 제한된 영역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이 합은 180도이다”와 같은 유
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할 수 있지만 보다 큰 영역에는 적용할 수 없음을 알
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것으로 해석된 유클리드
기하학 øi(G)와 보다 큰 영역에 적용된 øi+n(G)의 진리값이 동일하지 않음
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M에 대한 해석인 øi(M) 과 øi+n(M)의 진리
값은 독립적이며, 이것은 결국 M과 각각의 øi(M)의 진리값이 독립적임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경쟁하는 과학 이론이 동일한 M을 사용하는 경우는 빈번
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은 경우 역시 가능하다.

ø1(M) + T1┣ O
ø2(M) + T2┣ ┓O

이 경우 관찰 가능한 진술 O가 참이라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142

ø1(M)+T1은 O에 의해서 확증되는 반면에 ø2(M)+T2는 경험에 의해서 반
박되는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물론 그들은 잘못된 것은 ø2(M)이 아니라
T2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원칙적으로 ø2(M)
역시 오류 가능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ø1(M)과 ø2(M)는 모두 M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에, 위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ø1(M)과
ø2(M)의 정당화와 M에 대한 정당화는 별개의 것임을 함의하는 것이다. 다
시 말해서 경험적 결과 O에 의해서 ø1(M)이 확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
일한 경험적 결과에 의해서 ø2(M)이 반박 가능하다는 것은 øi(M)과 M의
진리값이 독립적임을 입증함은 물론 경험적 결과 O에 의해서 M이 정당화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M 자체가 물리적 이론에 사
용되지 않고 해석된 ø(M)이 사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과학
에 대한 정당화는 수학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즉 M은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언제나 보호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
각의 øi(M)의 진리값과 M의 진리값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T가 확증되었다
는 것으로부터 긍정되는 것은 해석함수 ø일 뿐이다.

258)

또한 과학에 적용된 ø(M)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이다. 따라서 필요불
가결성 논증의 출발점은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가 아니라 “물리
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하다”이며, 결국 필요불가
결성 논증에 의해 입증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이라는 결
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수학적 실재론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 ‘함수’,
258)

퍼트남의 주장처럼, 이 경우 해석함수 ø도 수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
에 결국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은 필요불가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 논문에서 주장하는 필요불가결성과는 다른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보
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입증해야 하는 것은 수학이 액면가를 갖
는다는 것이지, 단지 수학적 요소가 사용된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함수
ø가 수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은 지금의 논의에서는 논점을 일탈하
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이 경우에도 수학적 실재론이 정당화되지 않음을 뒤에
서 다시 입증할 것이다.
Putnam, 1979, pp.46-47.

143

‘집합’과 같은 수학적 대상의 존재이다. 따라서 필드는 유명론 혹은 반-플
라톤주의를 어떤 수학적 대상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필요불가결성 논증과 관련된 논점은 수학적 진술 M의 액면가를 과학에 의
존해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임을 II에서 확인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
의를 통해 드러났듯이 과학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뿐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
기 위해서는 ø(M)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M이 액면가대로 참임을 정당화
하는 새로운 논증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논증의 가능성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ø(M)과 M
의 진리값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과학을 통해 정당화되는 것은
ø(M)뿐이기 때문에, ø(M)으로부터 M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레스닉
이 제시한 것과 같은 실용적 요청에 다시 의존해야 하는데, 이러한 실용적
요청에 의존해서 M이 액면가대로 참임은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ø(M)으로부터 M을 정당화하는 방법
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요결함에 의
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 실재론의 정당성은 필요불가결성 논
증과는 별개의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비록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ø(M)
으로부터 M을 정당화하는 별도의 논리를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에 의
해 정당화되는 것은 ø(M)뿐이기 때문에, 이렇게 제시된 논증의 적절성과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별개의 것이 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 입증되는 것이 ø(M)뿐이라고 하더라도
ø(M) 역시 수학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에 ø(M)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베
레스트 산의 높이는 8848미터이다”와 같이 수가 공간에 적용된 경우, 그
들은 이 진술이 ‘8848’이라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진술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수학적 대상의 존재는 긍정된다고

144

주장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해석함수 ø 자체가 수학적 개념이기
때문에 ø(M)에 이미 수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논자
역시 ø(M)이 수학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주장에 대해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직
면하게 된다.
하나는 III에서 언급한 ‘여가적 수학’과 관련된 것으로, 필요불가결성 논
증을 통해 입증되는 것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해석
된 ø(M)뿐이라면, 과학을 통해서 경험적 내용을 갖는 것은 M이 아니라
ø(M)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과학에 적용되지 않은 수학뿐 아니라 모든 수
학 M은 정당화되지 않는 여가적 활동임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III
에서 살펴보았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 특히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따를
경우 과학에 적용된 수학만이 확증 가능한데, 위의 논의를 통해 확인했듯
이 과학에 적용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이다. 또한 M과 ø(M)의
진리값은 독립적이기 때문에 과학에 응용된 수학적 진술 M 역시 필요불가
결성 논증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필요불가결
성 논자들은 모든 수학적 활동은 여가적 활동이라는 결론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위의 비판에 대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그리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경험주의를 강화하는 결론이라고 환영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대부분의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경험주의자들이며, 그들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그것 없이는 과학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물리적 현상
에 적용되지 않은 순수수학이 아니라 경험적 내용을 갖는 적용된 수학이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했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는 실제로 과학에
이용된 수학 이론조차 정당화되지 않는다. 즉 모든 수학 M은 과학을 통해
정당화되지 않는 여가적 활동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여가적 활동을 굳이
실재론적으로 이해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들
이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에 적용된 ø(M)이라면, 굳이 진리값도 독립

145

적인 M의 액면가를 입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수학이 여가적 활동이라면 II에서 필드에게 제기된 것과 동
일한 문제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에게도 제기된다. 그것은 어떻게 여가적
활동이 과학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즉 허구인 수학
이 어떻게 참인 과학에 사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필드에게 제기되었듯이,
내용이 없는 여가적 활동이 어떻게 물리적 세계를 기술하고 설명하는 과학
에 이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에게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서 필드는 보수성의 원리에 의해 이 문제를 부분적이나마 해명하고
있는 반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이 없는 여가적 활동을 실재론적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 역
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필드는 ‘보수성’이라는 개념을 사용
해서 수학의 허구성과 과학에서의 역할 사이의 문제를 해명하는데, 이러한
그의 전략은 M과 ø(M)이 독립적인 진리값을 갖는다는 지금의 논의 및 존
재론적 경제성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데 반해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여가적 활동과 필요불가결성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수학적 실재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불분명해진
다.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부딪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수학의 적용 및 확증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 입증되는 것이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이라면, 우리는 현재 과학에 적용된 ø(M)이 수학
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지를 묻기 전에 M의 물리적 적용, 즉 수
학의 응용 과정에 대한 분석을 선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ø(M)에
대한 경험적 확증이 수학적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인정을 포함하는지를 다
시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II에서 언급했듯이 현존하는 과학 T가 수학
적 요소를 포함한다는 것이 곧 T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해석을 정당화하지
는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논자는 II에서 살펴본 필드의 유명론화 전략을 다시 분석

146

하고자 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필드는 그의 종합적 과학이 실재론적으로
해석되는 일반적인 과학 이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표상정리를 제시하였다. 즉 그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는 과
학적 진술과 동일한 설명력을 갖는 유명론적인 진술이 가능함을 보임으로
써 유명론적 재구성이 실제 과학에 대한 어떤 내용적 변화를 초래하는 변
경이나 재구성이 아님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정리와 관
련하여 우리는 수학이 과학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논점
을 제공받을 수 있다. II에서 보았던 그의 표상정리를 지금의 논의에 적용
하면, 그것은 수학 M이 아닌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을 유명론적으로 재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님을 함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인용한 그의 표상정리
중 “임의의 모든 점 x, y, z에 대해서 d(x, y)+d(y, z)=d(x, z)일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y Bet xz이다”

259 )

는 결국 실제 과학에 적용된 d(x, y)+d(y,

z)=d(x, z)와 같은 ø(M)이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이 y Bet xz와 같은
방법으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
없는 과학 이론의 재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정리가
가능한 이유는 다름 아닌 d(x, y)+d(y, z)=d(x, z)조차 수학적 대상이 아닌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II에서 언급했듯이 x, y, z가 지시하는 시-공점이 추상적 대상이 아
닌 물리적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
판은 과학을 완전히 유명론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필드에게 적용되는 것일
뿐 지금의 논의에서는 중요한 논점을 제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위의 식
은 추상적인 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공간에 대한 것
이기 때문에, 비록 x, y, z가 지시하는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에 대한 논쟁
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위의 식이 적용되는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d(x, y)+d(y, z)=d(x,
259)

MacBride, 1999, p.436.

147

z)가 표현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의 임의의 지점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들이 위의 관계를 만족시킨다면, 수학적
요소가 개입하는 ‘d’ 대신 ‘사이’라는 물리적 용어를 사용하여 내용의 변화
없이 재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d(x, y)+d(y, z)=d(x, z)를 만족시키는
대상은 그것이 필드가 말하는 시-공점이든 무엇이든, 위의 식은 물리적 공
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학적 요소가 개입하는 거리 ‘d’ 대신에
‘사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위의 식을 물리적 내용의 변화 없이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점은 지금의 논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논점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위와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경험을 통해 입증되는 것은
수가 아니라 물리적 공간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위
의 표상정리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났듯이, 비록 현존 과학이 수학적 대상
을 포함하는 ø(M)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에 사용된 ø(M)은 궁극적으
로 물리적 대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ø(M)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정
당화되는 것은 수학적으로 표현된 물리적 대상들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
해서 ø(M)이 수학적 요소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유명론적으로 재
구성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험을 통해 확증되는 것은 ø(M)이 언급하는
물리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과학을 통해서 확증되는 것은
ø(M)의 수학적 요소가 아니라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
라는 것이다. 따라서 ‘d’와 같은 수학적 요소를 포함하는 ø(M)이 과학에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러한 수학적 요소가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
은 입증되지 않음을 우리는 위의 표상정리를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M과 ø(M)의 진리값이 독립적이므로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물론 II에서 언급했듯이 필드의 유명론화 전략은 매우 많은 난제에 부딪
친다. 그러나 필드가 과학을 적절하게 유명론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
이 곧 과학에 대한 유명론적 재구성의 불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III에서 언급했듯이 과학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이 반드시 현존 과학

148

에 대한 적절한 번역임은 입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의 전략이 가능하
다는 것은 곧 ø(M)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
시 말해서 필드의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과학에 적용된 수학적 진술
이 지시하는 것은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대상이며, 따라서 ø(M)이 참이라
는 것으로부터 정당화되는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수학을 이용해서 표
현된 물리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임을 함의한다. 그리고 필요불가결성 논자
들이 ø(M)을 통해서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기 위해 밝혀야 하는 것이 바
로 이러한 유명론적 해석이 불가능함임은 이미 누차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수학이 적용되는 과
정 및 수학이 사용된 물리적 진술의 확증 과정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분석
이 필요한데, 이것은 V.3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유크리
드적 구조의 가능성으로부터 수학 M과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이 독립적
인 진리값을 가지며, 따라서 과학 혹은 경험을 통해서 확증되는 것은 각각
의 øi(M)뿐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비록 ø(M)이 수학적 요소를 포함한다
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부가적 논의 없이 수학적 대상의 존재는 입증
되지 않음을 필드의 예를 통해 다시 확인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서 레스닉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하면서 실
용적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입증하는 전체론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2. 전체론에 대한 레스닉의 부적절한 옹호
V.1에서 제시된 문제와 관련하여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전체
론을 옹호하기 위해서 레스닉은 이론을 포괄적인(global) 것과 국지적인
(local) 것으로 구분하면서 완화된 전체론을 제시한다. 그는 어떤 이론 T와
T′에 대해 T′가 T에 의존하는 반면에 T는 T′에 의존하지 않는 경우, T는
포괄적인 이론인 반면에 T′는 국지적인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가령 물리학
은 수학을 사용하지만 수학은 물리학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수학

149

은 포괄적인 반면에 물리학은 국지적이라고 주장한다.

260 )

그리고 이러한

포괄/국지의 구분에 기초한 ‘실천적 합리성’을 통해서 레스닉은 콰인의 최
소수정의 원칙을 정당화한다. 즉 포괄적 이론인 수학이 국지적인 물리학에
의해서 부정되지 않는 것은 국지적인 이론에 속한 학자들의 ‘실천적 합리
성’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는 개별적 학문의 방법론적 독립성과 관
련해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전문적 영역에서의 활동이 다른 영역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국지화된 전체론’(localized holism)을
주장한다.

261)

즉 그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 개별적 학문의 독립성을 인

정하면서 전체론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지화된 전체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논자 역시 이러한 국지화된 전체론이 실제 과학 활동을 설명하는 유용한
분석의 틀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위의 포괄/국지의 구분은 콰인의
최소수정의 원칙은 실천적 합리성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클리드적 구조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제공하지 못한다. 국지화된 전체론
에 의존한 실천적 합리성은 수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개입을 최소화할 뿐인
데, 앞에서 제시한 유클리드적 구조에 따르면 원칙상 과학이 개입할 수 있
는 상계는 해석함수 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괄/국지의 구분만으로는 수
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를 설명하지 못하며, 결국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
를 입증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서 레스닉은 두 종류의 논의를 통해서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를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하나는 수학과 과학이 원칙상 구분되지 않
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수학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수학이 과학과 분리된다는 주장을 논박함으로써 수학이 경험
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학과
과학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M과 ø(M)의 구분은 수학이 경험적으로 정당화
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포괄적인 수학이 물리학과 같은
260)

Resnik, 1988, p.238.
물론 이러한 ‘포괄’과 ‘국지’의 구분은 상대적이다.
261)
Resnik, 1988, p.239.

150

국지적인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과 관련된 것으로 실천적 합리성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학과 과학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유클리드
적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은 단지 과학 내적인 국지적인 방법론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입장을 ‘분리주의’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주장은 듀헴의 논제에 의해 지지되지만 분리주의자들은 듀헴의 논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론적 가설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야만 한다고 주장
한다.

262 )

결국 그는 듀헴의 논제에 의지해서 분리주의자들에게 설명의 부

담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분리주의’에 대한 정당
한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반대하는 어느 누구도, 혹
은 적어도 논자가 인용한 어느 누구도 듀헴의 논제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
으며, 특히 메디는 전체론은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한
다.

263)

레스닉이 분리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지, 듀헴의 논제인 과학에 대한 확증적 전체론에 반
대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서,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한다면 수학에
a 가 아니라 ○
b 가 된다. 그
대한 확증적 전체론의 구조는 V.1에서 언급한 ○

리고 이 경우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모든 전제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입
증되는 것은 M이 아니라 ø(M)이며, ø(M)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것이기 때
문에 그 대상 역시 물리적 대상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과 관련된 논점
a 와 ○
b 중 어느 것이 적절한 과학적 설명인가와 관련된 문제이며, 이것
은 ○

은 확증적 전체론의 적절성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증명의 부담을
분리주의자들에게 전가하는 레스닉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그의 비판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분리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이 선행
되어야만 한다.

262)
263)

Resnik, 1997, p.120.
Maddy, 1992, p.280.

151

논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분리주의에 대한 레스닉의 적극적 비판은
추상적 대상과 물리적 대상 사이에 명백한 구분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추상적 대상과 구체적 대상의 경계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양자’(quantum)의 예를 들면서,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분리주
의자들이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논박한다.

264 )

그러나 이러한 그

의 주장 역시 분리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수학과 과학의 구분이 반드시 대상의 추상적 성격에만 기초하는 것은 아니
며, 방법론적 차이 역시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
기 때문이다. 가령 수학을 과학으로부터 논리적, 공리적 성격에 의해 구분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클리드적 구조 역시 수학과 과
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즉 수학은 언제나 유클리드적 구조를
통해서 반증으로부터 면책될 수 있는 반면에 과학은 원칙적으로 반증으로
부터 완전히 면책될 수 없다는 것이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대상을 기준으로 수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레스닉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분리주의자에 대한 그의 비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양자’를 통해서 제시한 것은 물리학의 대상 중 구체적이라
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추상적 대상
과 구체적 대상을 구분할 경우에 그 경계에 있는 물리학적 대상이 존재한
다는 것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예로 든 ‘양자’는 비록 그것이 구
체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물리학의 연구 대상이다. 따라
서 ‘양자’의 예는 “모든 물리적 대상은 구체적 대상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례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물리주의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수학
적 대상은 물리적 대상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분리주의자들이 해명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또한 레스닉 역시 수학적 대상은 비-인과적이며 비-시공적

264)

Resnik, 1997, pp.102-107.

152

대상임을 인정한다.

265 )

즉 그 역시 구체적 대상과 추상적 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대상이 추상적 대상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 대상과 추상적 대상 사이에 명백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근거한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레스닉의 비판은 적절하지 못
하다.
그러므로 레스닉은 결국 두 번째 논제, 즉 수학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
는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
한다면 우리는 수학이 경험에 의해서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레스닉은 다소 자의적인 예를 통해서 수학이 경험적 정당화를
갖는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IV.2.가에서 메디가 제시한 집합
론의 결정불가능한 공리에 대한 선택 문제와 관련해서 수학이 경험에 의해
반박 가능한 예를 다음과 같이 구성하고 있다.

몇몇 물리학자들이 실험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어떤 함수가 극점
(maximum)을 갖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집합론을 A를 통해서 새로이 확장한 ZFC+A의 예견된 귀결 S에 대
해 들었으며, 그들의 함수가 극점을 갖는다는 것을 S가 함의함을 결
정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물리적 가설을 테스트하는 데 그
극점이 존재함을 가정했는데, 실험의 결과가 그들의 예상과 일치하
지 않은 경우를 상정해 보자.

266)

여기에서 레스닉은 ZFC에 결정불가능한 공리 A를 더한 ZFC+A를 물리
학에 적용했는데 잘못된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가상적 상황을 들고 있다.
물론 레스닉 역시 이 경우 ZFC+A는 거짓이 아니며 유클리드적 구조를 통
해서 경험적 반증으로부터 면책될 수 있다는 것, 즉 ZFC+A를 물리학에

265)
266)

Resnik, 1997, p.82.
Resnik, 1998, p.244.

153

적용하기 위한 해석함수 ø의 부적절성을 통해 ZFC+A를 면책할 수 있다
는 것을 인정한다.

267 )

그러나 그는 ZFC+A를 경험적 결과에 의해 반박하

기 위해서 ZFC+A가 유클리드적으로 구조된 경우에도 계속해서 경험적 반
례가 발생하는 경우를 가정하며, 그 경우에는 ZFC+A가 경험적 반증으로
부터 면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68)

그런데 이것은 수학을 경험을 통해서

반증하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의 논리적 구조와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경험적 결과에 반하는 결과가 ZFC+A로부터 도출된다면, 비록 처음부
터 ZFC+A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계속되는 반증 사례의 출현
과 더불어 그러한 설명에 사용된 물리적 요소들이 참이라면 우리는 불가피
하게 ZFC+A가 거짓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하는 레스닉의 경우에 성립될 수
있는가? 앞에서 보았듯이 유클리드적 구조를 인정한다면 과학에 적용되어
잘못된 예측을 수행한 것은 (ZFC+A)+T가 아니라 ø(ZFC+A)+T이다. 따
라서 계속되는 경험적 반례에 의해 부정될 수 있는 것 역시 ø(ZFC+A)일
뿐이다. 즉 유클리드적 구조가 성립된다면, 계속되는 경험적 반증은 단지
ø의 문제점만을 지적할 뿐이다. 더 나아가서 계속되는 경험적 반증 때문에
ZFC+A가 아닌 다른 이론, 심지어 ZFC+ ┓A를 과학에 적용했으며, 그
결과 예측된 가설이 확증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에 의해 입증되는 것 역시
ZFC+ ┓A의 물리적 적절성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예
와 원칙적으로 동일한 것이며, IV.1에서 인용한 파슨의 주장이기도 하다.
레스닉 역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ZFC+A가 경험에
의해서 논박되었을 경우 단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관된 수학의 영역을 언제나 유클리드적 구조를 통해서 보

267)
268)

Resnik, 1997, p.134.
Resnik, 1998, p.245.

154

호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수학자들이 ZFC+A의 공리를 부정하
기 위해서는 그것이 일관적이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269)

V.1에서 말한 대로 경험적 문장 O를 연역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M+T
가 아니라 ø(M)+T이기 때문에, M이 일관적이라면 우리는 M+T의 잘못된
결과로부터 언제나 M을 보호할 수 있다. 따라서 레스닉은 위의 경우에 ø
나 T가 아닌 ZFC+A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ZFC+A를 거짓이 아니라
일관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결국 레스닉은 잘못된 경험적 결
과로부터 유크리드적 구조를 통해서 언제나 M을 구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ZFC+A을 부정하기 위해 그것이 일관적이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논자는 회의적이다. 모순을 과학적 추
론을 통해서 발견하며, 그래서 수학의 비-일관성 역시 과학자가 발견한다
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그의 주
장은 자신의 포괄/국지의 구분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학은 수학 내적인 방법론을 가지며, 그것이 과학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존중된다는 것이 국지화된 전체론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270)

그런데 수학의

일관성이 과학을 통해서 입증된다면 사실상 수학의 독립적인 영역은 존재
하지 않는다. 수학이 과학에 의존해서 정당화됨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일관성은 수학 내적인 방법론이 적용되는 가장 전형적인 문제이기 때문이
다. 따라서 국지화된 전체론을 주장하면서도 ZFC+A가 경험적 내용을 갖
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무모순성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이 형식적 문
제를 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관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앞
에서 본 콜리반의 예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
화를 인정하더라도 일관성의 문제는 여전히 수학의 문제로 남아 있기 때문

269)
270)

Resnik, 1998, p.245.
Resnik, 1998, p.241.

155

이다. 콰인 역시 여가적 활동이, 즉 물리학과는 별도로 성립하는 수학 고유
의 영역이 존재함은 인정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주제가 일관성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일관성조차 과학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
장은 수학의 고유 영역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것은 그가 주장하는
국지화된 전체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클리드적 구조를 일관성
과 관련해서 경험적 전체론 속에 화해시키려는 레스닉의 전략은 적절하다
고 볼 수 없다.
또한 그는 수학이 경험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을 산술과 기하학의 발생
과정 및 신뢰성의 정도에 의해서 설명하려고도 시도한다.

271 )

그러나 이것

역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을 통해서 수학이 참임을 정당화하는 것이지, 수학이 갖는 경
험적 기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수학이 경험적 기원을 갖는다고 하
더라도 유클리드적 구조가 가능하다면 수학은 과학과는 다른 정당화 근거
를 가지며, 이 경우에 필드와 같은 도구적 해석은 언제나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레스닉의 실용적 정당화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의
논증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은 과학적 활동을 위해 수학이 배경논리로 주어
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의 논의 어디에서도 이러한 배경논리에
대해 실재론적 해석을 해야만 하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즉 확증적 전체
론을 도입하더라도 그의 국지화된 구조 안에서 수학은 과학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율성이 보장되는데, 수학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과학에 위해
하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수에 대한 언급 없이 과학언어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272 )

그러나 앞에서 확인한

대로 과학에 수학이 필요함과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하려면 결국 확장
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레스닉 자신이 제시한 유

271)
272)

Resnik, 1997, p.143.
.
Resnik, 1997, p.74

156

클리드적 구조는 이러한 확증적 전체론의 확장, 즉 듀헴 논제의 수학으로
의 확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유클리드적 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수학
(M)+과학(T)이 통일된 이론을 구성한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은 ø(M)+T
가 이론을 구성한다는 주장으로 변경되어야 하며, 이 경우ø(M)+T의 경험
적 확증과 반증이 M에 대한 경험적 확증과 반증은 되지 못함을 우리는 이
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유크리드적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으로부터 우리
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과학을 통
해 입증되는 것은 해석된 ø(M)뿐이며, 따라서 수학적 실재론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을 분석
한다면, 과학에 의해 수학이 액면가대로 참임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필요불가결
성 논자들이 단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수학적 대상은 과학에 필요불가결
하다’는 주장은 겉보기와는 달리 매우 중요한 전제를 생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해석의 문제를 분
석하지 않은 것이다.

3. 수학의 적용 과정과 경험적 확증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정당화되지 않은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수학을 과학에 적용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결여된 잘못된 논증임을 확인했다. 이제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재구성하고, 위에서 밝혀진 수학의 적용 과정
즉 해석을 통한 모형적 적용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필요불가결성 논증
이 과학에 적용된 수학에 대해서도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함을 보이고
자 한다. 특히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 ø(M)이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의 존재가 과학을 통해서 입증되지 않
음을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는 주장에

157

근거해서 밝히고자 한다.
우선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과학에 대한 확증이 곧 수학에 대한 확증이라
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에 의존하는 논증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증
에 의해 정당화되는 수학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며, 결국 수학 역
시 경험적 학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의 논의에 따르
면 수학이 실제적 내용을 갖는가는 오직 과학에의 기여를 통해서 평가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논자가 보기에 가장 효과적인 비판은 유클리드적 구조
와 관련된 것이다.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따르면, 이론을 구성하는 수학적
진술과 과학적 진술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따라서 과학적
진술이 경험에 의해서 반증되었을 경우 수학적 진술 역시 반증 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나 유클리드적 구조를 통해서 확인했듯이, 과학에 의해 확증되거
나 반증되는 것은 수학 이론 M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이다. 그
리고 이것이 수학 M에 대한 입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에 적용되어
서 확증되거나 부정되는 것은 ø(M)이며, ø(M)과 M의 진리값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에 응용된 수학조차도 필요불가결성 논증에 의해서
정당화되지 않는다.
물론 V.1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위의 비판
이 자신들의 논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수학은 경험적으로 정당화된 수학이며, 수학 자체는 여가적인 것으로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
해 입증해야 하는 것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이다. 따라서 그들이 입증해
야 하는 것은 ø(M)이 아니라 M이다. 더 나아가서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
해서 입증되는 것이 ø(M)이라면, 수학적 실재론은 논점에서 제외된다.
ø(M)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이므로 ø(M)에 속한 진술들이 언급하는 대
상 역시 물리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은 수학적 방식으로 표현된 물리적 대상의 존재이지

158

수학적 대상이 아니다. 결국 수학이 과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 입증
되는 것은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
뿐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 경우 수학에 대한 유명론자들의 해석
이 보다 적절한 해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논의에 의해서 우리
는 ø(M)이 액면가를 가짐을 인정하면서도 M의 액면가는 부정할 수 있으며,
존재론적 경제성이나 그들의 경험주의적 경향에 비추어 볼 때 M에 대한
유명론적 해석이 보다 적절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V.1에서 언급했듯이 논자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
한 이유가 수학의 적용 과정 및 확증 과정에 대한 분석의 결여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굳이 유크리드적 구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수학의 적용과
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과학 혹은 경험에 의존해서 확증되는 것이
수학적 대상이 아님을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논자는 이 절에서 경험적
확증과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동국대학교 교수회관 양문흠 교수 연구실에는 책이 100권 있다”
와 같은 산술의 가장 단순한 적용 사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진술은 특
정한 공간에 있는 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100’이라는 수학적 대
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진술에서 사용된 ‘100’은 양
문흠 교수 연구실에 있는 책에 대한 셈에 적용된 것, 즉 특정한 공간의 책
과 일대일 대응된 것이다. 따라서 양문흠 교수 연구실에 있는 책이 100권
이 아닐 경우, 우리는 자연수의 ‘후자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
간의 책과 자연수들 사이의 관계, 즉 책에 대한 셈의 과정이 잘못됐음을
지적해야 한다. 결국 앞에서 언급한 해석의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왜냐하
면 이 경우 잘못된 것으로 확인되는 것은 책의 권수이지 자연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위의 진술이 언급하는 대상은 자연수 100이 아니라
100이 적용된 물리적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확증되거나 부정
되는 것은 100까지의 자연수와 책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이다. 결국 책

159

의 권수에 대한 경험적 확증을 통해 입증되는 것은 특정 공간에 있는 물리
적 대상에 자연수가 적절하게 적용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수와 수가 적용된 대상이 구분된다는 위의 주장은 ‘수’에 대한
정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수’는 ‘일대일 대응관계’를
만족시키는 모든 집합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해당 집합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존재론적 특징에 무관하게 우리는 ‘일대일 대응관계’를 갖는 모
든 집합에 동일한 수를 적용시킬 수 있다. 즉 수와 수가 적용된 대상은 집
합과 원소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이미 구분되는 것임을 ‘수’에
대한 정의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리적 대상에 적용된
산술은 ‘수’ 자체가 아닌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대상들의 집합 혹은 모임
에 대한 것이다.

273)

물론 위의 논의에 의해 ø(M)에 대한 확증으로부터 수

학적 대상의 존재가 정당화되지 않음이 바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물리적
대상에 적용된 수로부터 수의 존재를 보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차 언급했듯이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정당화해야 하는 것은 과학적 확
증이 곧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확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확증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우리는 잘못된 산술의 결과로부터 산술이 부
정되지 않음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2=4와 같은 산술식이 테이블 위의 사과나 배와 같은 특정
한 대상에 적용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잘못된 결과로부터 위
의 식이 부정되는 경우를 확인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특정한 대상들의 셈에 적용된 위의 산술이 지시하는 대상은 수 2
나 4가 아니라 구체적인 물리적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수학이 다
양한 해석을 가진다는 수학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그 맥을 같이하는 것
273)

물론 이 경우에도 특정한 대상들의 집합 혹은 모임 자체가 수학적 대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 경우 집합 혹은 모임은 대상들을 묶어 주는 하나의 범주
로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집합 자체도 II에서 언급한 치하라의 방법, 즉
열린 문장과 만족관계를 통해서 설명가능하기 때문에 집합 혹은 모임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는 것이 곧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반드시 필요함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160

으로, 실재론과 유명론에 대한 논쟁과는 별도로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
해서 굳이 유크리드적 구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학적 진술이 다양한
해석 및 적용 사례를 갖는다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해석된 수학적 진술
ø(M)과 M의 진리값이 무관하다는 것뿐 아니라 경험을 통해 확증되는 것은
수학이 적용된 물리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비록 ø(M)이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고 하더
라도 과학에 적용되는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수학의 구조이며, 따라
서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요소 역시 수학의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수학의
적용 과정과 관련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의 산술의 예에서 책
의 셈은 첫 번째 대상에 1을 부여하고 두 번째 대상에 2를 부여하는 과정
을 통해서 마지막 대상에 100을 부여한 것이지, 개별적 대상과 특정한 자
연수 사이의 독립적 관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즉 특정한 대상에 대한
셈에 적용되는 것은 개별적인 자연수가 아니라, 시작점이 있고 ‘후자관계’
를 갖는 자연수들의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세어지는 대상들의 존
재론적 특징과 무관하게 자연수를 사용해서 그것의 수를 셀 수 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관점을 핀콕은 ‘사상적 설명’(mapping account)
이라고 부르면서, 이에 따를 경우 “적용된 수학적 진술의 참은 물리적 상
황에서 수학적 영역으로의 어떤 종류의 사상(mapping)에 의존한다”고 주
장하며, 그 예로 물리적 대상과 자연수 사이의 동형성을 제시한다.

274)

즉 적용된 수학적 진술들은 물리적 대상에 대해 언급할 뿐 아니라, 이
진술들이 참임은 위에서 언급한 동형성에 의존하는 것이지 개별적인 수학
적 대상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석함수 ø의 주된
역할은 개별적 대상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는 동형성의 부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위의 예에서 100이라는 수를 책들에 적용시키기 위
한 핵심적 요소는 개별적인 수가 아니라 시작점이 있고 오직 하나의 후자
를 갖는다는 자연수의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상적 설명에 따르면, 경
274)

Pincock, 2003, p.69.

161

험을 통해 확증된 ø(M)이 참이라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
은 동형성을 부여하는 해석함수 ø의 적절성이며, ø의 적절성조차도 수학적
대상이 아닌 구조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베이
커는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은 그것의 구조적 특징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275)

그리고 이러한 적용 과정 및 확증 과정에 대한 분석은 앞에서 언급한 필
드의 표상정리의 적절성을 입증하는 논거로도 사용될 수 있다. 뉴턴의 이
론에 적용된 것이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면, 그 구조를 유명론적으
로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철학적 전략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
해서 물리적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 개별적인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
면, 그리고 수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면 그러
한 구조를 유명론적으로 표현하려는 필드의 전략은 과학에 대한 정당한 철
학적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용되는 것이 수학의 구조라면
동형성을 갖는 유명론적 진술 역시 실재론적 진술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리적으로 해석된 d(x, y)+d(y, z)=d(x, z)는
산술의 기본적 구조를 공간에 적용한 것인데, 이러한 구조는 x Bet y,z로
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구조를 유명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추상적인 수학적 대상을 존재론의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이유가 없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적 설명의 정당성은 앞에서
언급한 수학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생각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수학이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은 곧 적용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수학
적 대상과 적용되는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이 아니라 구조적 유사성임을 함
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잘못된 것이거나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상적 설명에 따르면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
275)

Baker, 2003, p.49.

162

조이기 때문에, 이 경우 “수학적 대상은 우리의 최선의 과학적 이론들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하다”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사상적 설명이 수학의 적용 과정에 대한 적절한 설명
이라면,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것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이다. 예를
들어 앞의 필드의 표상정리에서 보이듯이, 비록 실제 과학에서는 수학적
요소를 포함하는 d(x, y)+d(y, z)=d(x, z)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과학에
필요한 것은 x, y, z가 지시하는 특정한 공간의 지점들 사이의 관계이며,
확증되는 것 역시 이러한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책의 권
수에 대한 주장을 분석해 보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양문흠 교수 연
구실에 책이 100권 있다”는 주장이 참일 경우 확증되는 것은 특정한 공간
에 있는 책과 1부터 100까지의 자연수들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가 성립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수의 구조를 표현하기 위해 반드시 수
학적 대상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것
이 수학적 대상이 아닌 구조일 뿐 아니라 확증되는 것 역시 구조뿐임을 위
의 예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위의 논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
은 위의 논의가 잘못된 전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할 것이다. 즉 사상적
설명이 수학의 적용 과정에 대한 정확한 기술임이 증명되지 않는 한 위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상적 설명
이 정당화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학의 적용 과정에 대한 설
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면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실재론
을 정당화하는 논의의 출발점이라기 보다는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임은 그
들 역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사상적 설명이 갖는 장점과 관련하여 논자는
두 개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사상적 설명은 수학이 다양한 영역에 적용
되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용되는 것이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면, 그 구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해당 구조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상적 설명은 필요불

163

가결성 논자들이 단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
하는 문제인, 추상적 대상에 대한 수학이 어떻게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는
가와 관련된 설명 역시 제공한다. 과학에 적용되는 것이 수학이 언급하는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면, 수학이 추상적 대상에 대한 것이든 혹은 여가적
활동이든 수학 M과 구조적 동형성을 유지하는 øi(M)들이 언급하는 대상의
존재론적 특징은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학이
적용되는 과정 및 해석의 다양성은 사상적 설명에 대한 간접적 근거를 제
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상적 설명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을 수용한
다고 하더라도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수학적 실재론을 입증
하는 확실한 출발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수학의 역할이 구조에 있다는 위의 논의와 “수학은
구조에 대한 연구”라는 구조주의자들의 주장은 구분되어야 한다.

276 )

위의

논의에서 논자가 주장하는 것은 베이커가 언급한 것처럼 수학의 적용 과정
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는 것뿐이다.

277)

가령 레스닉

은 대표적인 수학적 구조주의자이지만, 그의 구조주의적 접근과 필요불가
결성 논증의 타당성은 별개의 것이다. 수학적 구조를 인정한다는 것과 그
구조 안에 특정한 위치를 점유하는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것
이기 때문에 구조의 존재로부터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은 수학적 구
조주의자들이 구조 및 구조 안의 대상에 대한 유명론자와 실재론자로 나뉜
다는 점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78 )

다시 말해서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수학적 대상이 아니라 구조라면 필요불가결성 논증
을 통해 입증되는 것은 다양한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한 수학의 구조뿐이며,
그러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대상들의 존재는 구조로부터 직접적으로 입증
276)

수학적 구조주의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 참조.
Sapiro, 1997. Resnik, 1997. Hellman, 1989.
277)
Baker, 2003, p.54.
278)
Sapiro, 1997, pp.84-90. 2000, pp.263-283.

164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유명론이 보다 효과적인 철학적 전략임은
정당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유명론을 정당화하는 것이 논자의 의도인 것
도 아니다. 논자는 단지 필요불가결성 논증은 매우 불완전한 논증임을 밝
힐 뿐이다. 즉 자연주의나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과 같은 필요불가결성 논
자들의 철학적 전제들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수학이 과학에 사용됨에 의
해 입증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뿐이며, 이 경우에도 과학에 반
드시 필요한 요소가 대상인지 구조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함
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수학적 대상
은 우리의 최선의 과학적 이론들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하다”는 필요불가결
성 논증의 두 번째 전제는 잘못되었거나 매우 의심스러운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물리적으로 해석된 ø(M)에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포함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언급하는 대상은 수학을 이용해서 표현된 물리적
대상이기 때문에 필요불가결성 논증을 통해서는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
론적 개입의 근거를 발견할 수 없음 역시 확인하였다. 따라서 필요불가결
성 논증은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지 못하며,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입
증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별도의 논의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지금까지 논의한 필요불가결성과는 다른
것이 되기 때문에, 결국 수학적 실재론과 유명론 사이의 논쟁은 수학이 과
학에 필요불가결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165

VI.
VI. 결론
본 논문에서 논자는 수학이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에 근거해
서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을 지적
하였다. 이를 위해 논자는 II장에서 유명론자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필요불
가결성 논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임을 밝힌 후,
이러한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하기 위해 그들이 도입한 확장된 확증
적 전체론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을 받아들인
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는 과학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음을 수
학이 과학에 적용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제시하였다. 즉 과학에 적
용되는 것은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이기 때문에, 수학적 진술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에 의해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는 입증되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논자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주의와 수학이 갖는 특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해결하는 데 촛점
을 맞춘 나머지 과학적 확증의 구조를 성급하게 수학으로 확대했기 때문이
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과학적 진술이 수학적 대
상에 대한 언급을 포함하기 때문에 과학의 이론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수학
적 대상 역시 경험적으로 확증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수학에 대한
경험적 정당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II장에서 본 수학이 갖
는 학문적 특징은 철학적 퍼즐을 양산하기에 충분하며, 그러한 퍼즐을 해
결하기 위한 시도들은 기본적으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 이론에 사용된 모든 진술은 동일한 의미론적, 인식론적 기
준을 갖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
해 평가되고 수정되어야 할 과제이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신뢰라는 자
연주의를 통해 단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방
법론에 대한 신뢰와 과학에 사용된 진술의 액면가에 대한 신뢰는 별개의

166

것이기 때문에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이 과학적 진술과 수학적 진술
이 동일한 확증 구조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지는 못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되는 과정을 조금
만 분석해도 과학과 수학이 동일한 정당화의 과정을 갖는다는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V.1과 V.3에서 언급한 유크리드적 구조 및 과학에서의 수학의 역
할과 관련 분석은 수학이 경험적으로 정당화된다는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
에 대한 반례일 뿐 아니라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과학과 수학은 원칙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즉 ‘분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과학
과는 명백하게 다른 수학의 특징들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 특히 IV장에
서 잠시 언급한 집합론적 환원은 이와 관련한 문제를 잘 드러낸다. IV.2.가
에서 언급했듯이 집합론은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두 역할을 수행한다. 하
나는 모든 수학적 대상을 집합으로 환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수
학적 논의들을 집합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나세라프가 지
적하고 있듯이 집합론은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279 )

예를 들어 대표적인

집합론은 ZF 이외에도 폰 노이만 체계를 비롯한 다양한 체계들이 존재한
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연수 2가 ZF의 {0{0}}인가 아니면 폰
노이만 체계의 {{0}}인가에 대해서 물을 수 있으며, 이 두 집합 사이의 동
일성 관계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두 집합은 각
기 상이한 집합론 체계 안에서 정의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지 ZF에서
2는 {0{0}}이며, 폰 노이만 체계에서 2는 {{0}}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
다. 그러나 이것이 곧 수학적 대상은 독립적 대상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집합론적 환원과 물리적 환원을 동일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279)

Benacerraf, 1965 참조.

167

집합론적 환원은 다른 수학적 대상을 집합으로 환원해서 제거하거나 그
대상의 본질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메디가 지적하고 있듯이 단
지 다양한 수학적 대상을 집합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280)

따라서 위의

경우는 2에 대한 다양한 집합론적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낼 뿐 대
상의 동일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의 동일성 기준에 대한 베
나세라프의 지적은 수학적 대상과 물리적 대상이 동일한 존재론적 기준을
통해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정당한 것이며, 이러한 전제는
어떤 측면에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
일 수 있다.
게다가 물리적 대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만 수학을 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집합론적 환원을 들지 않더라도, 수학에서는 특정 이론 T를 다른 이
론 T′로 환원하거나 T의 모형을 T′에서 구성하는 것이 매우 일반화된 증
명 방법 중 하나이다. 가령 공간에 대한 기하학을 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어느 누구도 공간이
수로 환원되거나 제거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간이 전혀 이질적인 수로
표현되고 수가 공간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존재론적 환원을 통해서는
이해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모든 지식은 과학을 통해서 입증 가능한
경험적 지식이라거나, 모든 대상은 과학에서 요구되거나 언급되는 대상이
라고 주장하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먼저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만
일 그러한 설명의 과정에서 수학이 경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이라기보다
는 과학이 가능한 조건이라면, 선험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것은 설명
되어야 하는 것이지, 선험적 명제에 대한 부정을 통해 간단히 제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논자는 필요
불가결성 논증의 모든 전제들, 특히 확장된 확증적 전체론의 문제를 지적
280)

Maddy, 1997, pp.22-35 참조.

168

했으며, 이를 수용하더라도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는 과학을 통해서 입증되
지 않는다는 것을 해석함수와 관련해서 주장하였다. 또한 수학의 적용 과
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논자는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 ø(M)에
수학적 대상에 대한 언급이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과학에 필요불가결한 요
소는 수학의 구조임을 주장하였다. 물론 이러한 논자의 주장에 대해 필요
불가결성 논자들의 다양한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증
명의 부담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서
수학이 과학에서 사용된다는 것이 ‘수’, ‘함수’, ‘집합’과 같은 수학적 대상
에 대한 액면가대로의 지칭을 반드시 함의하지 않음은 충분히 보여졌기 때
문이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이 수학적 실재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는 물리적으로 해석된 수학적 진술이 참이라는 것에 의해 수학적 진술의
액면가를 입증하는 별도의 논의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하였
듯이 이러한 정당화는 쉽지 않을뿐더러, 설사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학이 과학에 필요불가결함에 근거한 논증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부가
적 논의는 필요불가결성 논증과는 별개의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논자는 이러한 필요불가결성 논증의 문제점이 발생하
는 근본적인 이유가 실제 수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분석이
지나치게 편향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주의 혹은 자연주의가 충
분히 설득력을 갖는 철학적 전략이라는 데에는 논자 역시 동의한다. 그러
나 이것이 곧 수학이 과학과 동일한 확증의 구조를 가지며, 따라서 수학은
과학을 통해 정당화됨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연주의와 같은 철
학적 근거에서 과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실제 과학과 수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필요불가결성 논자들은 유명
론자들을 철학에 기초해서 과학의 변경을 요구하는 비-자연주의자라고 비
판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과학과 수학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 분석 및 철학
적 해석의 가능성 및 범위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대한
분석이 결여된 것은 그들의 철학적 경향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충분히 비판

169

가능하다는 것이 논자의 결론이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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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Abstract
A Study of Mathematical Realism based on the
Indispensability of Mathematical
Mathematical Entities in Science

Lee, Jinhee
Dept. of Philosophy
Graduate School
Dongguk University

An indispensability argument concerning the realism of mathematical
entities has received lots of attention by mathematical philosophers
during the last several decades. According to a general description of
this argument, the mathematical entities such as ‘function’, ‘set’ and
‘number’ etc., are used to explain the scientific theory so that the
scientific theory indispensably accompanies the mathematical theory.
This argument is based on a concept named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It has never proved the existence of mathematical entities
in that a nominal interpretation of the mathematical theory can approve
the justification only of mathematical theories used in the scientific
theory. Thus, the justification of mathematical realism presupposes that
mathematical sentences have face value.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key point between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and nominalism is the
face value of mathematical sentences.

The present doctrinal thesis constitutes the critical analysis of this
argument and its relevant problems in different angles. Chapter two

179

describes the debates between mathematical realism and nominalism in
the historical background. In this chapter, it can be easily noticed that
they share several philosophical basis such as naturalism and scientific
realism providing the important foundation of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Chapter three focuses on the three acknowledged philosophical
foundations, i.e. Quine’s naturalism, holism and ontological criterion.
Firstly, it seems that naturalism is based on the abandonment of the
first philosophy. Secondly, we can realize that holism has been
developed while accepting a basic theory that individual scientific
statements, or even individual scientific theories, face the ‘tribunal of
experience’ not individually, but only as a group. Finally, Quine’s
ontological criterion is totally based on the fact that the ontology of a
theory is found in the range of the bound variables. He maintains that
there is only one kind of existence and one criterion for the existence
that fall within the bound variable in the web of belief. This variable is
named as a general variable. These three theories seem to be not
enough sufficient to justify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Quine’s
confirmed holism regarded as a ground of general variable does not
prove effectively that mathematical variables have the same semantic
content with variables in scientific theories. Thus, the holistic principle
that extends conformational holism to mathematics was established in
order to overcome this problem. However, this extended holism also
has several argumentative problems. The major problem is that in
terms of mathematical realism this holism is not an appropriate premise,
but only a conclusion justified by semantic and epistemological

180

discussion on the relation between mathematics and science. Another
problem is related with outcome of this holism. If we accept the
extended holism as a proper theory, the list of existence will be full of
objects only used in scientific theories. In addition to this, mathematical
theories are justified not by mathematical methods, but scientific
methods. Eventually the standard mathematical practice of considering
the implication of varieties of axioms systems, regardless of application,
seems to be totally meaningless, as Quine points out that such a
mathematical practice is recreational act having no real content.

Two representative opponent ideas concerning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are dealt in chapter four. Firstly, Sober’s objection is
explained in this chapter that according to indispensability argument
mathematics can be rejected by empirical evidence. He formulates this
condition as follows:

A1 or A2
A1 & H1┣ O
A2 & H1┣ ┓O
H1 & O
------------A1
(A: arithmetical theory, H: scientific hypothesis, O: observational
consequence)

It appears that there is no such case. Moreover we can easily find
counter examples of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in the history of

181

science. As an example, though Newtonian gravitational physics using
Euclidian geometry was rejected, geometry is still regarded as a good
mathematical theory.
The next objection is raised by Maddy, who points out two problems
related to the naturalism and scientific model. In particular, her concern
with the scientific model introduces an instrumental point of view on
mathematical entities. We already know that some physical elements
being indispensable in scientific explanation are just an instrumental
part of that theory, such as ideal gas, frictionless plane, etc. In spite of
their indispensable roles, many scientific elements are just an
instrumental one. Is there any other reason which differentiates these
scientific elements from mathematical ones?
To overcome these problems, Resnik modifies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and suggests Euclidian rescue. The detailed description about
his argument is given in chapter five, where I will try to show that, in
spite of Resnik’s modification, indispensability argument have problems
which can never be solved. Most problems presented in chapter four
are related to extended holism. This thesis can be schematized as
follow.

S&P&M ├ O

S&P&M ├ O

O

┓O

-----------------

-----------------

S&P&M

┓S ∨ ┓P∨ ┓M

(S: scientific statement, P: physical hypothesis, M: mathematical
statement, O: observational statement)

182

However, no scientific theory uses mathematics itself. In order to
apply mathematics to scientific theory, a mathematical theory must be
interpreted. Thus, the above scheme should be modified as follows:

S & P & ø(M) ├ O

S & P & ø(M) ├ O

O

┓O

-----------------

-----------------

S & P & ø(M)

┓S ∨ ┓P∨ ┓ ø(M)

(ø : interpretational function)

What is confirmed above is not a mathematical statement (M), but
only an interpreted sentence (ø(M)). In addition, it is notable that M has
many different øi(M) and øi(M)’s truth conditions are different each
others and M.

If extended holism and Quine’s ontological criterion are generally
admitted, in my opinion, what is existing is not the mathematical
entities, but the interpreted mathematical entities represented by
physical entities mathematically. If geometry is applied to physical
space, I believe that geometrical elements should be interpreted
physically and the interpreted geometrical lines represent actual and
spatial relationship between physical objects. In conclusion, the
indispensability argument never proves mathematical realism, and their
neglect to the applying procedure has crucial defect.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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