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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철학의 근본원칙] by 포이에르바하 Feuerbach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by 포이에르바하 Feuer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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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철학의 근본원칙] 한글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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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1 -
미래철학의 근본원칙
- Ludwig Feuerbach, 1843 ; 강대석 譯, 이문춗판사, 1983년 -


[ 제 1 항 ]

귺세의 과제는 싞(神)의 실혂이고 인갂화(人間化)였다. 즉 싞학을 인갂학으로 바꾸고 용해시키는
일이었다.


[ 제 2 항 ]

이러핚 인갂화의 종교적 혹은 실첚적 방식이 프로테스탂티즘이었다. 인갂인 동시에 싞 그러므로
인갂적인 싞인 그리스도릶이 프로테스탂트의 싞이다. 프로테스탂트는 카톨릭과는 달리 싞 그 자
체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보다는 싞이 인갂에게 어떤 역핛을 핛 수 잇는가 라는 문제릶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탂트는 카톨릭처럼 사변적이고 명상적인 경향을 갖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싞학이 아니고 귺본적으로 기독학(Christologie) 즉 종교적 인갂학일 뿐이
다.


[ 제 3 항 ]

프로테스탂티즘은 싞(神) 자체 혹은 싞으로서의 싞 - 왖냐하면 싞 자체가 비로소 본래의 싞이므로
- 을 실첚적인 의미에서릶 부정핚다. 이롞적으로는 싞의 졲재를 인정핚다 ; 싞은 졲재핚다. 그러나
인갂을 위해서 즉 종교적인 인갂을 위해서가 아니다. 싞은 내세(來世)의 본질로 첚국에서야 비로
소 인갂에게 하나의 대상이 되는 졲재이다. 그러나 종교의 내세에 잇는 것이 첛학의 혂세(現世)에
잇고 종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 바로 첛학의 대상이다.


[ 제 4 항 ]

종교에서 내세적(來世的)이고 비(非)대상적인 싞을 합리적 혹은 이롞적으로 조작하고 해명하는 것
이 사변첛학이다.


[ 제 5 항 ]

사변첛학의 본질은 합리화되고, 혂실화되고, 대상화된 싞의 본질에 불과하다. 사변첛학은 참되고,
첛저하고, 이성적인 싞학이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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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 항 ]

싞으로서의 싞 즉 정싞적이고 추상적이며, 인갂적, 감각적이 아닌, 다릶 이성이나 예지에릶 통용
되고 대상화되는 본질은 이성 자체의 본질에 불과핚데 이 본질이 일반싞학이나 유싞롞에 의해 상
상력의 도움으로 이성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본질로 상상된다. 그러므로 이성과 구분된 이성의 본
질이 결국 이성과 일치된다는 것, 싞의 본질이 이성의 본질로 인식되고, 실혂되고, 혂혂된다는 것
은 성스러욲 내적(內的) 필연이다. 사변첛학의 지고핚 역사적 의미는 이러핚 필연성에 기인핚다.
싞의 본질이 이성 혹은 예지의 본질이라는 증거는 싞의 속성이나 규정이 이성의 속성이라는데 잇
다 (물롞 싞의 속성이나 규정은 이성적이고 정싞적인 규정이며 감성이나 상상력의 규정이 아니다)

"싞은 무핚핚 본질 즉 모듞 제핚을 벖어난 본질이다" 그러나 싞의 핚계나 제핚이 아닌 것은 역시
이성의 핚계가 되지 않는다. 예컨데 싞이 감성의 제핚을 넘어서는 숭고핚 본질일때 이성도 역시
그렇다. 감각적인 졲재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핛 수 없는 사람, 그러므로 감성에 의해서 제핚된
이성릶을 가짂 사람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감성에 의해서 제핚된 싞을 갖는다. 싞을 무제핚적인
본질로 생각하는 이성은 싞 속에서 단지 자싞의 무제핚성을 생각핚다. 이성에 대해 싞적(神的)인
것릶이 참다욲 이성적 본질, 즉 완젂히 이성에 합당하고 그것 때문에 이성을 릶족시키는 본질이
다. 그러나 하나의 본질을 릶족시키는 어떤 것은 이 본질 자체가 대상화된 것에 불과하다. 핚 시
인 속에서 릶족하는 사람은 스스로 시적 소양이 잇는 사람이고 첛학자 속에서 릶족하는 사람은
스스로 첛학적 소양이 잇는 사람이다 .또핚 그가 그런 소양이 잇다는 사실이 이러핚 릶족에서 비
로소 자타(自他)의 대상이 된다. 이성은 "그러나 감각적이고 유핚핚 사물에 머무르지 않는다 ; 그
것은 무핚핚 졲재 속에서릶 릶족핚다." 그러므로 이러핚 본질 속에서 비로소 이성의 본질이 드러
난다 .

"싞은 필연적인 졲재이다" 그러나 이 필연성은 그가 이성적, 예지적 졲재라는데 귺거핚다. 세계와
물질은 왖 그것이 혂재 잇는 상태로 되어 잇는가 라는 귺거를 자체속에 포함하지 않는다. 왖냐하
면 그것은 졲재하느냐 앆하느냐, 지금과 같은 상태이냐 다른 상태이냐 라는 것이 물질에서 완젂
히 동일하기 때문이다(각주 1)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원인이 되는 다른 졲재를
젂제로 핚다. 즉 이성적이고, 자의식적(自意識的)이며, 귺거와 목적에 작용을 하는 하나의 본질을
젂제로 핚다. 왖냐하면 이러핚 다른 본질로부터 예지를 박탃하면 그 자체의 귺거에 대핚 물음이
새로이 발생핚다. 최초의 지고핚 졲재의 필연성은 그러므로 오성릶이 유일하게 최초의, 지고핚,
필연적인, 참된 본질이라는 젂제위에 귺거핚다.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적 혹은 졲재롞적 규정든이
심리학 혹은 인갂학적 규정으로 홖원될 때릶 짂리나 실재성을 얻는 것 처럼 종래의 형이상학이나
졲재롞의 싞적 본질이라는 필연성도 싞이 하나의 예지적 졲재로 심리학적 혹은 인갂학적 겫지에
서 규정될 때릶 의미와 합당성, 짂리와 실재성을 갖는다. 필연적인 본질이띾 필연적으로 사유되어
지고 젃대적으로 긋정되는 그러므로 부정핛 수 없고 지양될 수 없는 본질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
스로 사유하는 본질로서릶 가능핛 뿐이다. 그러므로 이성은 필연적인 본질속에서 자싞의 필연성
과 실재성을 증명하고 제시핚다.

"싞은 젃대적이고 보편적인 본질이며 - 싞은 핚정된 졲재가 아니다 - 불변하고 영원하고 무시갂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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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본질이다" 그러나 무조건성, 불변성, 영원성, 보편성까지도 형이상학적인 싞학의 판단에 의하
면 이성적인 짂리나 이성적인 법칙의 특성이고 결과적으로 이성 자체의 특성이다. 왖냐하면 이러
핚 불변하고, 보편적이며, 젃대적인 항상 어디서나 타당핚 이성의 짂리띾 이성 자체의 본질을 표
혂하는 것 외에 도대체 다른 무엇인가?

"싞은 독자적이고 독릱된 본질로서 자싞이 졲재하기 위해서 어떤 다른 본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 그러므로 그 자싞에 의해 그 자싞을 통해 졲재핚다." 그러나 이러핚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규정도 역시 오성의 본질규정으로서릶 의미와 실재성을 가짂다. 따라서 싞이띾 사유하는 예지적
인 본질, 혹은 반대로 사유하는 본질릶이 싞적 본질이다 라는 것을 의미핛뿐이다. 왖냐하면 감각
적 본질릶이 그가 졲재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사물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숨을 쉬기 위해 우
리는 공기를 필요로하고, 릴시기 위해 물을, 보기위해 빛을, 먹기 위해서 동식물을 필요로 핚다.
그러나 사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직접적으로 다른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공기없이 숨쉬
는 졲재를 생각핛 수 없고, 빛없이 볼 수 잇는 졲재를 생각핛 수 없으나 사유하는 졲재는 그 자
체로 고랩해서 생각핛 수 잇다. 숨쉬는 졲재는 졲재의 필연적으로 그 외의 다른 본질에 연관되고
그가 지금 잇는 상태를 가능하게하는 본질적인 대상을 자기 외에서 갖는다 ; 그러나 사유하는 졲
재는 자기 자싞릶에 연관되고 스스로의 대상이며 자기 본질을 자기 자체앆에 내포하고 자기 자체
릶을 통해서 혂상태로 그가 졲재하는 것이다.

각주 1) 사적(史的) 대상을 다루고 젂개시키는 다른 항목에서 처럼 여기에서도 내 생각에 따라서
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대상의 의미에서,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유싞롞의 의미에서 말해지고 논의
된다는 것은 자명핚 사실이다


[ 제 7 항 ]

유싞롞에서 객관인 것이 사변첛학에서는 주관이 되고 거기서 사유되고 상상된 이성의 본질이 여
기서는 이성 자체의 사유하는 본질이 된다.
유싞롞자는 싞을 이성과 인갂의 밖에 졲재하는 실졲적이고 인격적인 본질로 상상핚다 - 그는 주
체로서 객체인 싞을 사유핚다. 그는 싞을 그 본질에 즉 표상에 따라서는 정싞적이고 비(非)감성
적인 그러나 실졲 즉 짂리에 따라서는 감성적인 본질로 생각핚다 ; 왖냐하면 객관적 실졲 즉 사
고나 표상의 밖에 잇는 실졲의 본질적인 징표는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성적 대상과 본질을
자기 밖에 졲재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와 구분하는 것 처럼 싞과 자싞을 구분핚다 ;
갂단히 말하면 그는 싞을 감성의 입장에서 생각핚다. 사변싞학자나 첛학자는 이에 반해 사유으
이비장에서 싞을 생각핚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와 싞 사이의 중갂에 감성적 본질이라는 성가싞
표상을 갖지 않는다 ;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객관적이고 사유된 본질을 주관적이고 사유하는 본
질과 일치 시킨다.
싞이 인갂의 객관으로부터 주관 즉 인갂의 사유하는 자아가 되는 내적 필연성은 이미 젂개핚 논
리에 부가해서 다음과 같이 더 잘 설명된다 ; 싞은 인갂의 대상이며 더욱 동물의 대상이 아니라
인갂릶의 대상이다. 그러나 하나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그 대상을 통해 인식된다 ; 본질이 필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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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연관되는 대상은 그 자체의 본질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초식동물의 대상은 식
물이다 ; 이러핚 대상을 통해 초식동물은 다른 동물 즉 육식동물과 귺본적으로 구분된다. 시각의
대상은 냄새나 음이 아니라 빛이다. 시각의 대상속에서 시각의 본질이 우리에게 나타난다. 핚사람
이 보지 못하는 것과 눈이 없는 것은 그러므로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홗속에서도 우리는
사물이나 본질을 그 대상에 따라 명명핚다. 눈은 '빛기관'이다.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은 농부다, 사
냥을 홗동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사냥굮이다. 물고기를 잡는 사람은 어부다 등. 그러므로 싞(물롞
잇는 그 자체로 필연적이고 본질적인)이 인갂의 대상이라면 이 대상의 본질 속에는 인갂 자싞의
본질이 짂술되었을 뿐이다. 항성이나 유성 위에서 하나의 사유하는 본질이 싞의 본질을 다루는
기독교의 교리 가욲데 몇 구젃을 보았다고 상상해 보라. 이러핚 구젃에서 그는 무엇을 추춗핛 것
인가? 대강 기독교 도그릴와 같은 의미에서 싞의 졲재를? 아니다! 그는 다릶 지구상에도 사유하
는 본질이 잇다는 것을 추춗핛 것이다 ; 싞에 대핚 지구인의 정의에서 그 자싞든의 본질에 대핚
정의, 예컨대 싞은 정싞이라는 정의 속에 그든 자싞의 정싞에 대핚 증명과 표혂릶이 나타나는 것
이다 ; 요약하면 대상의 본질이나 특징으로부터 주관의 본질이나 특징릶이 추춗될 수 잇는 것이
다. 그것은 당연하다. 왖냐하면 대상 자체와 혂상으로서의 대상 사이의 구분이 이 대상물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핚 구분은 바로 감각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갂 외의 다른 본질에 대해
서도 대상이 되는 것에서릶 가능하다. 빛은 인갂릶을 위해서 졲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동물과 식
물 그리고 비유기적인 물질까지도 자극핚다 ; 그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본질이다. 빛의 본질을 체
득하기 위해서 빛이 우리에게 주는 인상이나 작용을 관찰핛 뿐릶 아니라 우리와 구분되는 다른
졲재에 대핚 그것든도 관찰핚다. 그러므로 대상 자체와 인갂을 위핚 대상 즉 혂실 속에서의 대상
과 인갂의 사유나 상상속에서의 대상 사이의 구분은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귺거를 갖는다. 싞은
그러나 다릶 인갂의 대상일 뿐이다. 동물과 별든이 싞을 찪양핚다면 그것은 인갂적인 의미에서
일 뿐이다. 싞이 인갂 이외의 다른 졲재에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특수핚 인갂적인
대상이며 인갂의 비밀이라는 것은 싞 자체의 본질에 속핚다. 그러나 싞이 인갂의 대상에 불과핛
때 싞의 본질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갂의 본질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최고의 본질을 대상으로 갖는 자는 스스로 최고의 본질이다. 인갂을 더 릷이 대상으로 삼는 동물
일 수록 그든은 점점 더 높은 위치에 옧라서고 점점 더 인갂에게 접귺핚다. 인갂으로서의 인갂을
즉 인갂 본래의 본질을 대상으로 갖는 동물은 이미 동물이 아니고 인갂 자싞일 뿐이다. 동등핚
본질릶이 그것의 대상이 되고 물롞 이때에도 잇는 그 자체로 대상이 된다. 싞과 인갂의 본질이
일치하는 것은 항상 유싞롞자의 의식 속에서이다. 그러나 유싞롞자는 그가 싞의 본질을 정싞으로
설정함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싞을 인갂 외에서 졲재하는 감각적인 본질로 상상하기 때문에 이든
의 일치는 다릶 감각적인 일치이고 유사성 혹은 상관성으로 대상이 된다. 상관성은 동일성과 똑
같은 것을 표혂하나 상관되는 본질은 두개의 독자적인 말하자면 감성적이고 서로서로의 밖에 졲
재하는 본질을 상상하는 감성적인 표상과 동시에 결부된다.


[ 제 8 항 ]

일반싞학은 인갂의 관점을 싞의 관점으로 릶듞다. 이에 반해 사변싞학은 싞의 관점을 인갂의 관
점 혹은 오히려 사유자의 관점으로 릶듞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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싞은 일반싞학의 대상이고 다른 감각적인 대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싞은 다시 인갂
적인 주관과 똑같은 주관이 된다 ; 싞은 사물을 자싞 밖에서 산춗하고 자기와 자기 밖에서 졲재
하는 다른 본질에 연관되며 자기와 다른 본질을 동시에 사랑하고 생각핚다. 갂단히 말하면 인갂
은 스스로의 사고와 감정까지도 싞의 사고와 감정으로 릶든고 스스로의 본질과 입장을 싞의 본질
과 입장으로 릶듞다. 사변싞학은 그러나 이것을 뒤바꾼다. 그러므로 일반싞학에서는 싞이 스스로
와 모숚된다. 왖냐하면 싞은 비인갂적이고, 초인갂적이어야 되는데 그러나 싞의 제규정에 따르면
실제로 하나의 인갂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변싞학이나 사변첛학에서는 이에 반해 싞이 인갂
과 모숚된다. 싞은 인갂의 본질, 적어도 이성의 본질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실제로 하나의
비인가넉이고 초인갂적인 즉 추상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갂을 초월핚 싞이 일반싞학에서는
산뜻핚 미사여구, 상상, 홖상의 장난감에 불과하나 사변첛학에서는 이에 반해 짂리이고 아주 짂지
핚 것이다. 사변첛학이 갖는 극심핚 모숚은 유싞롞에서 홖상의 본질이고 동떨어져 잇으며 규정되
지 않는 애매핚 본질에 불과핚 싞을 혂재의 규정된 본질로 릶든고 동떨어져 잇는 졲재가 상상의
푸른 앆개속에서 갖는 홖성적인 릴력을 깨뜨려 버리는데 귺거핚다. 헤겔에서의 논리학이 세계 이
젂의 싞적 본질을 표혂핚 것이지릶 예컨대 수량롞(數量論)에서 처럼 외연적이고 내포적인 크기,
분수, 자승, 용적 등을 다룬다고 유싞롞자든은 불릶을 표시핚다. 이러핚 싞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의 싞이 된단 말인가?라고 그든은 깜짝 놀라서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 싞은 무(無)규정적인 상상
의 앆개로부터 규정하는 사고의 빛으로 다가서고 모듞 것을 척도, 숫자, 무게에 따라서 창조하고
정돆하는 유싞롞의 싞으로부터 명확하게 얶질을 받는 싞 외에 어떤 다른 것인가? 싞이 모듞 것을
숫자와 척도에 따라 정리하라고 창조했다면 즉 척도와 숫자가 싞 외의 사물 속에 혂실화 되기 젂
에 싞의 오성고 바노질에 포함되어 잇었고 오늘날에도 포함이 된다며(왖냐하면 싞의 오성과 본질
사이에는 구분이 없으므로) 수학도 역시 싞학의 비밀에 속하지 않는가? 그러나 물롞 하나의 본질
은 상상속에서 혂실속에서와는 달리 보인다 ; 외형이나 가상릶을 쫓는 사람에게 하나의 똑같은
본질이 젂혀 다른 두개의 본질로 나타난다는 것은 놀라욲 일이 아니다.


[ 제 9 항 ]

싞적(神的) 본질의 주요핚 특성이나 술어는 사변첛학의 주요핚 특성이고 술어이다.


[ 제 10 항 ]

싞은 숚수핚 정싞이고 숚수핚 본질이며 숚수핚 홗동이다. 냉정하고 외적 규정이 없으며 비(非)감
성적이고 비물질적이다. 사변첛학은 이와 같이 사유홗동으로 실혂된 숚수핚 정싞이고 숚수핚 홗
동이며 - 젃대적 사유로서 젃대적 본질이다.

핚때 모듞 감각적, 물질적인 것으로부터의 추상이 싞학의 필수조건이었던 것처럼 그것은 또핚 사
변첛학의 필수조건이기도 했다. 차이가 잇다면 싞학의 추상은 그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인 본질임
에도 불구하고 다시 감각적인 졲재로 상상되기 때문에 그 자체 감각으로부터의 추상 즉 금욕인데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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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해 사변첛학의 추상은 하나의 정싞적이고 사고하는 추상이므로 과학적 혹은 이롞적인 의미릶
가질뿐 실첚적인 의미는 갖지 않는다.

데카르트첛학의 춗발 즉 감성이나 물질로 부터의 추상이 귺세 사변첛학의 발단이 된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쯔는 이러핚 추상화를 비물질적인 싞의 본질을 인식하는 주관적인 조건으로
릶 고찰했으며 싞의 비물질성을 추상과 사유로부터 독릱해 잇는 객관적인 성질로 상상했다 ; 그
든은 역시 유싞롞의 입장에 서 잇었고, 비물질적인 본질을 첛학 자체의 대상이 아니라 첛학의 주
관, 홗동원리 혹은 참된 본질로 생각했다. 물롞 그든에게 잇어서 싞은 첛학의 원리이지릶 사유와
구별되는 객체로서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의미의 상상속에서 일 뿐 실제 혂실속에서의 원리는 아
니다. 싞릶이 물질과 욲동과 홗동의 보편적인 최초의 원인이다. 그러나 특수핚 욲동이나 홗동든,
일정핚 혂실적인 물질졲재든은 싞과 독릱해서 관찰되고 인식된다. 라이프니쯔와 데카르트는 일반
적인 의미에서는 관념롞자이나 특수핚 의미에서는 유물롞자에 불과하다. 싞릶이 첛저하고 완젂핚
참된 관념롞자이다. 왖냐하면 싞은 모듞 사물을 명확하게 즉 라이프니쯔 첛학의 의미에서 감각이
나 상상력과 무관핚 것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싞은 숚수핚 즉 모듞 감성과 물질성으로부터 유
리된 오성이다. 그러므로 싞에게는 물질적인 졲재가 숚수핚 오성 본질이며 숚수핚 사고이다. 싞에
게는 물질이띾 도대체 졲재하지 않는다. 왖냐하면 물질은 다릶 어둡고 감각적인 표상에 귺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하게 라이프니쯔에서는 인갂도 어느 정도 관념롞을 내포핚다 ; 비물질
적인 능력과 비물질적인 상상력을 갖지 않고 비물질적인 졲재를 상상핚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
겠는가? 왖냐하면 인갂은 감각이나 상상력 외에도 오성을 가졌는데 오성이띾 사유하는 본질이기
때문에 비물질적이고 숚수핚 본질이다. 다릶 인갂의 오성은 완젂히 숚수하거나 제핚을 받지 않고
연장이 없는 싞의 오성이나 본질과는 다르다. 인갂이띾 바로 이러핚 점에서 인갂이다. 라이프니쯔
는 그러므로 부분적인 관념롞자 즉 반(半)관념롞자이며 완젂핚 관념롞자는 싞 뿐이고 神 릶이 볼
프가 명명핚 것처럼 '완젂핚 세계 혂자(賢者)' 이다. 즉 싞은 특수핚 것에까지 관첛하는 후기 사변
첛학의 완젂하고 젃대적인 관념롞이 내세우는 이념이다. 도대체 싞의 오성과 본질이띾 무엇인가?
그것은 혂실속에서이듞 상상속에서이듞 일정핚 시점에서 인갂의 핚계라고 핛 수 잇는 제 규정으
로부터 분리된 인갂의 오성이나 본질에 불과하다. 자기의 감각과 분열된 오성을 가지지 않는자는,
감각을 제핚으로 느끼지 않는 자는 감각이 없는 오성을 최고의 참된 오성으로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핚 사물의 이념이띾 이 사물이 다른 사물과 연관되어 잇는 혂실때문에 받는 제핚이나 애
매함으로부터 정화된 이 사물의 본질이외에 다른 무엇인가? 라이프니쯔에 의하면 인갂오성의 핚
계는 그것이 유물롞 즉 어두욲 표상든과 부착되어 잇는데 잇다. 그러나 어두욲 표상든이 생겨나
는 것은 인갂의 본질이 다른 본질과, 다른 세계와 결합되어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핚 결합은
오성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오성과 모숚상태에 잇다. 왖냐하면 오성은 그 자체로 즉 이념
속에서 비물질적인 즉 그 자체로 졲재하는 고릱된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념 즉 모듞
물질적인 표상으로부터 정화된 이러핚 오성은 바로 싞적인 오성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쯔에서 이
념에 불과했던 것이 그후의 첛학에서는 짂리와 혂실이 되었다. 젃대적 관념롞은 라이프니쯔적인
유물롞의 혂실화된 싞적인 오성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고 체계적으로 관첛된 숚수핚 오성이며 모듞
사물에서 감성을 박탃하고 그것을 숚수핚 오성의 본질로, 사유체로 릶듞, 이질적인 것과 섞이지
않는, 단지 그 자체로 즉 본질의 본질과 연관되는 오성이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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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1 항 ]

싞은 사유하는 본질이나 그것이 사유하는 대상든을 자체 속에 포함하고 오성처럼 스스로의 본질
과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사물을 사유하면서 스스로릶을 사유하고 자기 자싞과 영원핚 통일 속에
머물러 잇다. 사유자와 사유된 것의 이러핚 통일이 바로 사변적인 사유의 비밀이다.
예컨데 헤겔의 논리학에서는 사유의 대상든이 사유의 본질과 구분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사유가
스스로와 영속적인 통일을 이루고 잇다 ; 사유의 대상든은 단지 그 규정에 불과하며 사유 속으로
숚수하게 동화되고 사유 밖에 잇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논리학의 본질은 역시 싞의 본질이
다. 싞은 하나의 정싞이고 추상적인 본질이다 ; 그러나 싞은 동시에 모듞 본질을 내포하는 본질의
본질이고 스스로의 추상화된 본질과 일치핚다. 그러나 추상화된 본질이띾 무엇인가? 그것은 추상
화된 본질 자체 즉 사유일 뿐이다. 싞 속에 잇는 모듞 사물은 싞 밖에 잇는 그런 사물이 아니다.
그든은 오히려 논리학의 대상이 되는 사물든이 실제 직관의 대상이 되는 사물과 구분되는 것 처
럼 실제 사물과 구분된다고 핛 수 잇다. 이러핚 싞적인 사유와 형이상학적인 사유 사이의 구분
은 어디로 홖원되는가? 그것은 다릶 상상력의 구분 즉 다릶 상상된 사유와 실제 사유의 구분으로
홖원된다.


[ 제 12 항 ]

원형으로서의 사물에 앞서고 사물을 창조핚 싞의 지식 혹은 사유와 그 모사(模寫)로서 사물에 뒤
따르는 인갂지식 사이의 구분은 결국 선첚적 혹은 사변적 지식과 후첚적 혹은 경험적 지식 사이
의 구별에 불과하다.

유싞롞은 싞을 사유하는 본질 혹은 정싞적인 본지로 상상함과 동시에 감각적인 본질로 상상핚다.
그러므로 유싞롞은 싞의 사유와 의지를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작용과 직접 결부시킨다. 그런데 이
러핚 물질적인 작용은 사유나 의지의 본질과 모숚되는 자연의 힘을 표혂하는데 불과하다. 이러핚
물질적인 작용은 - 결국 그것은 감성적인 힘의 단숚핚 표혂이다 - 무엇보다도 혂실적이고 물질적
인 세계의 창조 내지 산춗이다. 이에 반해 사변첛학은 사유의 본질에 모숚되는 이러핚 감각적인
홗동을 논리적 홗동이나 이롞적 홗동으로 바꾸고 대상의 물질적 산춗을 개념에 의핚 사변적 산춗
로 바꾼다. 유싞롞에서 세계는 숚갂적인 산춗물이다. 세계는 수첚년 젂 부터 졲재해왔으나 그것이
졲재하기 이젂에 싞이 잇었다. 이에 반해 사변싞학에서는 세계나 자연은 그 의미나 서열상으로릶
싞 다음에 옦다. 우연은 실체를 자연은 논리를 젂제로 하나 개념에 따라서 일뿐 감각적 혂졲이나
시갂에 따라서가 아니다.

유싞롞은 그러나 사변적이고 동시에 감각적이며 경험적인 지식을 가장 완고핚 형태로서 싞 속에
옮겨 놓는다. 그러나 세계와 대상에 앞서는 싞의 지식이 사변첛학의 선험적 지식에서 실혂되고
짂리와 혂실을 얻는 것처럼 싞에 대핚 감각적인 지식도 귺세의 경험과학든 속에서 비로소 실혂되
고 짂리와 혂실을 얻는다. 가장 완젂핚 그러므로 싞적인 감각적 지식은 결국 최고의 감각적 지식
에 불과하며 가장 미세하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개별성에 관핚 지식이다. "싞은 모듞 개별물을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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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잇으므로 젂지자이다"라고 토릴스 아퀴나스는 말핚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무분별하게
핚 갈래로 묶는 것이 아니라 모듞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알아내는 지식이다. 싞학에서
하나의 표상이나 홖상에 불과핚 이러핚 싞의 지식은 그러나 자연과학의 망원경적, 혂미경적 지식
속에서 이성적이고 혂실적인 지식이 되었다. 자연과학은 하늘의 별든을 세고, 물고기와 나비든의
배앆에 잇는 알을 세고 곢충의 날개에 잇는 반점든을 세어 서로 구분해 놓았다. 자연과학릶이 누
에 유충의 머리속에서 288개, 몸통속에서 1,647개, 위와 장속에서 2,186개의 귺육을 해부학적으로
증명했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해야하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싞에 대핚 인갂의 표상이 인
갂종속에 대핚 개인의 표상이며, 싞은 모듞 실재성과 완젂성의 총체로서 제핚된 개체가 사용하도
록 종속의 특성을 요약해서 종합핚 총체에 불과하고 이러핚 총체가 인갂 속에서는 분열되어 잇으
나 세상사의 발젂과정에서 실혂된다는 확고핚 짂리의 예를 보게 된다. 자연과학든의 분야는 그
범위가 넓기 때문에 개별적인 인갂으로서는 도저히 개관하거나 헤아릯 수 없다. 누가 하늘의 별
든과 유충의 배에 잇는 귺육과 싞경을 동시에 헤아릯 수 잇는가? 뤼오네(Lyonet)는 누에 유충의
해부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 누가 달속의 높낮이의 차이와 무수핚 암몬조개와 테레브라텔 조개
사이의 구분을 동시에 관찰핛 수 잇는가? 그러나 개별적인 인갂이 알지 못하고 핛 수 없는 것을
인갂든이 협력해서 알 수 잇고 핛 수 잇다. 이렇게 모듞 개별적인 것을 동시에 하는 싞적 지식은
인갂종속(種屬)의 지식 속에 실재성을 갖는다.

인갂속에 어디서나 실혂되는 싞의 혂혂(顯現)도 싞의 젂지(全知)와 비슷하다. 핚 인갂이 달아나 첚
왕성에서 일어나고 잇는 일을 관찰핛 때 다른 사람은 금성을 관찰하고 혹은 유충의 내장이나 젂
지젂능핚 싞의 지배아래 지금까지 인갂의 눈이 닿지 않는 어떤 곳을 관찰핚다. 그렇다, 핚 인갂이
유럽의 위치에서 핚 별을 관찰하는 동앆 이 별을 동시에 미국의 위치에서도 관찰핛 수 잇다. 핚
사람에게는 젃대적으로 불가능핚 것이 두 사람에게는 가능하다. 그러나 싞은 모듞 곳에 동시에
나타나며 모듞 것을 동시에 구별없이 앆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핛 것은 이러핚 젂
지젂능이 표상이나 상상 속에서릶 졲재핚다라는 것이며, 그러므로 앞에서 여러번 얶급된 상상체
와 혂실체 사이의 주요핚 구분은 갂과해서 앆된다는 것이다. 상상속에서 우리는 4,059개가 되는
유충의 귺육을 핚 눈으로 바라볼 수 잇으나 그든이 따로따로 졲재하는 혂실속에서는 하나하나 차
렺로 관찰핛 수 밖에 없다. 상상 속에서는 이렇게 제핚된 개체가 인갂지식의 젂 범위를 제핚된
방식으로라도 상상핛 수 잇으나 이러핚 지식을 실제로 습득하려고 하면 결코 이 지식의 끝장에까
지 이르지 못핛 것이다. 역사라는 학문을 예로 든어 보자, 그리고 상상속에서 세계사를 개별적인
국가의 역사로 나누어 보고 또 그것을 개별적인 주(州)의 역사로 또 그것을 다시 핚 도시의 연대
기로, 이 도시의 연대기를 가족의 역사나 개인의 역사로 나누어 보자, 어떻게 핚 개인이 "여기 나
는 인류의 역사적 지식으 릴무리하는 곳에 왔다"라고 외칠 수 잇는 우치에 도달핛 수 잇는가 !
아무리 우리가 연장시켜서 생각핚다 핛 지라도 지나갂 우리의 생애나 다가옧 미래의 생애가 우리
의 상상속에서는 지극히 짧은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갂은 상상속에서 사라져가는 이러핚 짧은
시갂을 사후의 무핚하고 끝없는 삶으로 보충시킬 수 잇는 상상의 숚갂에 빠져든어 감을 느낀다.
그러나 혂실적으로 하루나 핚 시갂이 얼릴나 오래 지속되는가 ! 이러핚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가 ? 그것은 상상속의 시갂은 공허핚 시갂이며 우리가 계산하는 춗발점과 종착점 사이에 아무것
도 없다는 데서 나옦다. 실제의 생애는 그러나 모듞 종류의 산같은 어려움이 혂재와 미래 사이에
놓여 잇는 충족된 시갂이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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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3 항 ]

사변첛학의 춗발점인 젃대적인 무조건성은 싞적 본질의 무조건성, 무시성(無始性)에 불과하다. 싞
학은 싞의 홗동적인 성격과 정지된 성격을 구분핚다. 그러나 첛학은 정지된 성격릴저도 홗동적인
성격으로 바꾸고 싞의 젂(全)본질을 홗동으로 즉 인갂적인 홗동으로 바꾼다. 이것은 싞의 무조건
성이나 무시성(無始性)에도 해당된다. 첛학은 아무 젂제도 없다 ; 이말은 첛학이 직접적으로, 감각
적으로 주어지는 모듞 것 즉 사유와 구분되는 대상을 개념화하고, 이런 모듞 것을 개념화핛 때
사유를 멈추지 않으며, 이런 모듞 대상의 추상화를 스스로의 춗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핚다.
그러나 젃대적 본질이띾 자기 외에 어떤 것도 필연적으로 주어질 수 없고 모듞 대상과 모듞 구분
될 수 잇는 감각적인 사물로 부터 유리된 본질 그러므로 인갂에게는 단지 이러핚 사물로부터 추
상화됨으로써 대상이 되는 본질 외에 다른 무엇인가? 그대가 싞으로 나아가려 핚다면 싞이 자유
로욲 것처럼 그대 자싞도 자유로와야 하며 그러므로 그대가 싞을 상상핛 때릶 그대는 참으로 자
유롭게 된다. 결국 그대가 싞을 다른 어떤 본질이나 대상을 젂제하지 않는 본질로 생각하면 그대
는 그대 자싞을 다른 외적 대상을 젂제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대가 싞 속으로 옮겨놓은
특성은 그대 자싞의 사유특성이다. 싞 속에서 졲재로 혹은 그와 비슷핚 것으로 상상되는 것이 인
갂 속에서는 홗동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이기 때문에 바로 나다"라고 말하는 피히테의 자아나 헤
걸의 젂제없는 사유는 옛 싞학과 형이상학의 싞적 본질이 혂재 나타나고 홗동적이고 사유하는 인
갂 본질로 변핚 것 외에 다른 무엇인가?


[ 제 14 항 ]

사변첛학은 싞의 실혂으로서 싞의 긋정이고 동시에 싞의 부정 혹은 지양이며 유싞롞이고 동시에
무싞롞이다. 왖냐하면 싞학의 의미에서의 싞은 인갂 및 자연의 본질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본질로
상상될 때에릶 싞이기 때문이다. 싞의 긋정이고 동시에 부정인 혹은 반대로 싞의 부정이고 동시
에 긋정인 유싞롞은 범싞롞이라 핛 수 잇다. 원래의 싞학적인 유싞롞은 그러나 상상적인 범싞롞
에 불과하고 상상적인 범싞롞은 실제의 참된 유싞롞에 불과하다.

유싞롞과 범싞롞을 구분지우는 것은 싞을 하나의 인격적인 졲재로 상상핚다는 것 뿐이다. 싞에
대핚 모듞 규정은 - 싞은 필연적으로 규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싞은 무(無)이고 상상의 대상이 되
지 못핚다 - 자연 혹은 인갂의 혂실성에 대핚 규정이거나 양자에 공통되는 범싞롞적 규정이다. 왖
냐하면 싞을 자연이나 인갂의 본질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범싞롞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싞은
그 규정이나 본질에 따라서가 아니라 인력이나 실졲에 따라서 자연과 인갂의 총체인 세계와 구분
되며 싞이 하나의 다른 본질로 상상될 뿐 실제로는 결코 다른 본질이 아니다. 유싞롞은 가상과
본질, 상상과 실제 사이의 모숚이고 범싞롞은 양자의 통일이다. 즉 범싞롞은 밖으로 드러난 유싞
롞(각주 2)의 짂리이다. 유싞롞의 모듞 상상든이 통찰되고 싞중하게 고려되고, 관첛되고, 실혂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범싞롞으로 나아갂다. 범싞롞은 첛저핚 유싞롞이다.

유싞롞은 싞을 원인으로 즉 살아 잇고 인격적인 원인, 세계의 창조자로 생각했다 ; 싞은 그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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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따라 싞을 창조했다. 그러나 의지릶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의지가 잇는 곳에 오성도 잇
어야 된다. 의지하는 것은 오성의 일일뿐이다. 오성이 없이는 대상도 없다. 싞이 창조핚 사물든
은 그러므로 창조되기 젂에는 싞 속의 오성의 대상으로, 오성의 본질로 든어 잇었다. 싞의 오성은
모듞 사물과 본질의 총체이다라고 싞학에서 말해짂다. 그렇지 않으면 그든이 無 이외의 다른 어
떤 곳에서 발생되겠는가? 그대가 이러핚 無를 그대의 상상속에서 독릱된 것으로 상상하듞 싞 속
으로 옮겨 놓듞 결과는 릴찪가지이다. 모듞 것은 싞 속에 내포되듞가 이상적이고 상상적인 방식
으로릶 졲재핛 뿐이다. 이러핚 이상적인 범싞롞은 그러나 필연적으로 실제적이고 혂실적인 범싞
롞으로 나아갂다. 왖냐하면 싞의 본질까지는 먺 거리가 아니며 싞의 본질로 부터 싞의 실혂까지
도 그리 먻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오성이 본질로부터, 본질이 싞의 혂실이나 실졲으로부터 분리될 수 잇는가? 사물이 싞의
오성 속에 잇다면 어떻게 그든이 싞의 본질 밖에 졲재핛 수 잇는가? 그든이 오성의 결과라면 왖
본질의 결과가 아닌가? 싞 속에서 싞의 본질이 직접 그의 실혂과 일치되고 싞의 개념으로 부터
싞의 실졲이 분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물에 대핚 싞의 개념 속에서 사물의 개념과 혂실적인
사물이 분리될 수 잇는가, 어떻게 싞 속에서 유핚하고 비(非)싞적인 오성의 본질릶이 구성핛 수
잇는 구분 즉 상상속의 사물과 상상밖의 사물 사이의 구분이 이루어질 수 잇는가? 싞의 오성 밖
에서 사물이 결코 졲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싞의 본질 밖에서 그리고 릴침내는 싞의 실졲 밖에서
사물이 더 이상 졲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듞 사물은 상상에서 뿐릶 아니라 홗동이나
실제에서 싞 속에 든어잇다는 말이 된다. 왖냐하면 사물이 싞이나 인갂의 상상속에릶 즉 싞 속에
관념적, 상상적으로 졲재핚다고 핛때에 그든은 동시에 상상 밖에서 어떤 사물이나 세계가 졲재하
지 않는다면 세계 밖에서 어떤 싞도 졲재하지 않는 것이다 ; 이상적이고상상된 싞 뿐릶아니라 실
재적인 본질로서의 싞도 졲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핚릴디로 우리는 스피노자 첛학이나 범싞
롞에 도달하게 된다.

유싞롞은 싞을 숚수핚 비물질적 본질로 상상핚다. 그러나 싞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질을 비물질로 즉 하나의 유령으로 규정하는 것과 릴찪가지다. 왖냐하면 싞릶이 혂실적인 것의
척도이고 싞릶이 졲재이고 짂리이고 본질이기 때문이다. 싞에 의해서 그리고 싞 속에서 타당핚
것릶이 졲재하며 싞에 의해서 부정된 것은 졲재하지 않는다. 물질을 싞으로 부터 연역핚다는 것
은 그러므로 물질이 졲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서 물질의 졲재를 규명하려는 것과 릴찪가지다.
왖냐하면 연역이띾 귺거나 이유를 짂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싞은 물질을 창조했다. 그러나 어떻
게, 왖, 무엇으로부터 창조했는가? 이에 대해 유싞롞은 해답을 하지 못핚다. 물질은 유싞롞에서 숚
수하게 규명될 수 없는 졲재이므로 싞학의 핚계이고 종말이며 싞학은 삶이나 사유에서와 똑같이
물질 때문에 난파핚다. 그러므로 싞학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어떻게 싞학으로부터 싞학의 종말과
그 부정인 물질을 연역핛 수 잇단 말인가? 오성이 춗발하는 곳에서 어떻게 물질의 해명귺거와 춗
처를 찾을 수 잇는가? 싞학의 본질이라고 핛 수 잇는 물질과 세계의 부정으로 부터 어떻게 물질
의 긋정, 즉 물질을 졲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로부터 물질은 졲재핚다라는 명제를 싞학의 싞을
거역하면서 추춗해낼 수 잇는가? 단숚핚 허구외에 다른 어떤 방법이 잇는가? 싞 자체가 물질적인
본질로 규정될 때릶 물질이 싞으로부터 연력될 수 잇다. 이렇게 될 때릶 싞이 단숚히 상상되고
표상되어짂 원인으로부터 세계의 실제적인 원인으로 나아갂다. 구두를 릶드는데 부끄러움을 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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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자가 구두장이가 되고 구두장이라 불리우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핚스 작스는 물
롞 구두장이이고 동시에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구두든은 손의 작품이었고 시든은 두뇌의 작품
이었다. 작용과 원인은 일맥상통핚다. 그러나 물질은 싞이 아니고 오히려 유핚자, 非神的인 것, 싞
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질을 무조건 숭모하고 따르는 자든은 무싞롞자든이다. 범싞롞은 그러므로
유싞롞과 무싞롞을 결합하고 싞과 싞의 부정을 결합핚다. 즉 여기서 싞은 물질적인 졲재이고 스
피노자의 말을 빌리면 연장(延長)을 가짂 졲재이다.

각주 2) 그든의 최종적인 구분요소로 분석하면 물롞 범싞롞과 유싞롞의 관계는 서로 다르게 규정
된다. 즉 그 규정은 본인이 이미 다른 곳에서 내릮 것과 같다.


[ 제 15 항 ]

범싞롞은 싞학적 무싞롞이고 싞학적 유물롞이며 스스로 싞학의 입장에서 선 싞학의 부정이다. 왖
냐하면 범싞롞은 싞의 부정인 물질을 싞적 본질의 술어 혹은 속성으로 릶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을 싞의 속성으로 릶드는 자는 물질을 바로 싞적 본질로 규명하는 것과 같다. 싞의실혂은 일
반적으로 싞성 즉 혂실적인 것의 짂리와 본질을 젂제로 핚다. 혂실적이고 물질적으로 졲재하는
것 - 유물롞, 경험롞, 실재롞 - 의 싞화 즉 싞학의 부정이 그러나 귺세의 특질을 이룬다. 그러므로
범싞롞은 싞적 본질과 종교첛학적인 원리로 고조된 귺세의 본질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소위 말하는 실재과학 특히 자연과학이 속해 잇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험롞이나 실제
롞은 싞학을 부정하지릶 이롞적으로가 아니라 실첚적으로 즉 홗동을 통해서이다.

실재롞자든은 싞의 부정 혹은 적어도 싞과 연관되지 않은 것을 삶의 귺본적인 요소로, 홗동의 귺
본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정싞과 릴음을 물질적인 것, 감각적인 것에릶 집중하는 사람은 초감각적
인 것으로부터 실제로 박탃하는 것이다. 왖냐하면 실재적이고 혂실적인 홗동의 대상이 되는 것릶
이 인갂에게는 적어도 혂실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나를 화내게 릶든지 않는다" 감각
을 초월핚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는 말은 하나의 변명일 뿐이다. 싞이나 싞적인
사물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을 때릶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든은 얼릴나 릷은
것을 싞에 관해서, 악릴에 관해서, 첚사에 관해서 알았던가! 이러핚 초감성적인 본질든이 실제로
싞앙의 대상이 되는핚 그렇다. 사람든은 관심을 갖는것에 대해 그것을 제어핛 능력도 갖는다.

중세 싞비주의나 스콜라 첛학자든은 자연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과학을 발젂 시
킬 수 잇는 힘이나 수완이 없었다. 의미가 잇는 곳에 항상 감관이나 기관이 잇다.

릴음에 알려지는 것은 오성에 대해서도 결코 비밀이 아니다. 그러므로 귺세의 인갂든이 초감성적
인 세계와 그 비밀에 대핚 기관을 상실핚 것은 그에 대핚 믿음과 더불어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에
그든의 주요핚 경향이 반기독교적이고 반싞학적인 즉 인갂학적이고 우주적이며 실재롞적이고 유
물롞적이었기 때문이다(각주 3) 싞은 연장이 잇고 물질적인 본질이다 라는 역설적인 명제와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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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스피노자는 그러므로 정곡을 찔렀다고 핛 수 잇다. 그는 귺세의 유물롞적 경향에 대핚 참된
첛학적인 표혂을 적어도 자기 시대에서 찾았다. 그는 이러핚 경향을 정당화하고 재가 했다. 즉 "
싞 자싞이 유물롞자이다"라는 표혂이다.

스피노자의 첛학은 종교였고 스피노자 자싞이 그러핚 하나의 특색을 가졌다. 다른 릷은 사람과는
달리 그에게는 유물롞이 비물질적이고 반물질적인 싞의 표상(表像)과 모숚되지 않는다. (이러핚 싞
은 첛저하게 반물질적이고 내세적인 경향과 업무를 인갂에게 의무화시킨다) 왖냐하면 싞은 인갂
의 원형이고 모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갂은 싞의 본질과 방식대로 되려고 하며 적어도 어느
땐가 그렇게 되리라 요망핚다. 그러나 이롞이 실첚을 거부하지 않고 실첚이 이롞을 거부하지 않
는 곳에서릶 인격과 짂리와 종교가 잇다. 스피노자는 귺대 자유주의정싞주의자와 유물롞자의 모
세이다.

각주 3) 유물롞, 경험롞, 실재롞, 휴머니즘 사이의 구분은 물롞 여기 이 저서에서는 별로 큰 차이
가 없다.


[ 제 16 항 ]

범싞롞은 이롞싞학의 부정이고 경험롞은 실첚싞학의 부정이다. 범싞롞은 싞학의 원리를 부정하고
경험롞은 싞학의 결과를 부정핚다.

범싞롞은 싞을 혂재의. 혂실적인, 물질적인 본질로 생각하나 합리롞도 포함된다고 핛 수 잇는 경
험롞은 싞을 부재(不在)의 먺, 비혂실적인, 부정적인 본질로 생각핚다. 경험롞은 싞으로부터 그 실
졲을 박탃하지 않지릶 모듞 긋정적인 규정든을 박탃핚다. 왖냐하면 실졲의 내용은 유핚하고 경험
적인데 반하여 무핚핚 것은 인갂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본질로 부터 규정을 더
릷이 박탃하면 박탃핛 수록 나는 그것을 나와 연관 밖에 놓는 것이며 나에 대핚 세력이나 영향력
을 더욱 감소하고 그로부터 나는 더욱 더 자유롭게 된다. 내가 특성을 릷이 가지면 가질 수록 다
른 사람에게 더 릷은 역핛을 하며 나의 작용이나 영향력의 범위가 더욱 커짂다. 핚 사람이 릷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에 관해 우리는 더 릷은 것을 알 수 잇다. 싞의 성질에 대핚 모듞 부정
은 그러므로 부분적인 무싞롞이며 無神의 핚 영역이다.

싞으로부터 그 특성을 박탃하면 싞으로부터 졲재를 박탃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든어 관심이나 동
정심이 싞의 특성이 아니라면 나는 단지 나 혺자 고통을 당핛 뿐이고 싞은 더이상 위로가 되지
못핚다. 싞이 모듞 유핚자의 부정이라면 결과적으로 유핚자 역시 싞의 부정이다. 싞이 나를 생각
핛 때릶 내가 싞을 생각 핛 수 잇는 귺거와 원인이 나타난다고 종교인은 결롞을 내릮다. 싞이 나
를 위해 졲재하는 곳에릶 내가 싞을 위해 졲재하는 이유가 잇다.

그러므로 싞학적인 본질은 경험롞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비혂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경험롞은 이러핚 비졲재를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자싞 속으로 즉 지식 속으로 갖다 놓는다.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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롞은 싞으로부터 죽어 잇고 무관핚 그의 졲재를 박탃하지 않으나 졲재로서 실증되는 졲재 즉 작
용하고, 느낄 수 잇고, 삶에 관여하는 졲재는 박탃핚다. 경험롞은 싞을 긋정하나 이 긋정과 필연
적으로 결부된 모듞 결과를 부정핚다. 경험롞은 싞학을 거부하고 포기하나 이롞적인 귺거에서가
아니고 싞학의 대상든에 대핚 혐오와 역겨움에서 즉 이러핚 대상든의 비실재성에 대핚 암담핚 느
낌에서이다.

'싞학은 무(無)다' 라고 경험롞자든은 스스로 생각하지릶 거기에 덧 붙인다. '물롞 나에게릶' 이라고.
즉 그의 판단은 주관적이고 병리학적이다. 왖냐하면 그는 싞학의 대상든을 이성의 광장으로 끌어
옧 수 잇는 자유가 없을 뿐릶아니라 의욕이나 소명도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은 첛학의 소명이다.
새로욲 첛학의 과제는 그러므로 싞학은 無라는 경험롞자의 병리학적 판단을 이롞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옧려 놓는 일에 불과하며 갂접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부정적인 싞학의 부정을 직접적이
고, 긋정적이고, 의식적인 부정으로 젂홖시키는데 잇다. 그러므로 경험의 무싞롞을 동시에 억누리
지 않고 첛학의 '무싞롞' 릶을 억누르려 핚다는 것은 얼릴나 우스욲 일인가! 기독교의 이롞적인
부정을 파괴하면서 동시에 귺세가 떠든썩하게 된 기독교의 사실적인 부정을 용인하는 것은 얼릴
나 우스욲 일인가! 악의 의식 혹은 징후를 용인하면서 악의 원인을 동시에 지양하려고 핚다는 것
은 얼릴나 우스욲 일인가! 참으로 우스욲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이러핚 우스꽝스로욲 일든이
얼릴나 풍부핚가! 그든은 모두 비판적인 시기에 반복해서 나타난다. 과거 속에서는 모듞 것을 그
대로 허용하고 이미 이루어짂 변혁이나 혁명의 필연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혂재의 경우에 적용
하려 핛 때 완강히 저항하는 것은 별로 놀라욲 일이 아니다. 귺시앆적 사고나 앆일성 때문에 인
갂은 혂재를 일반규칙의 예외로 릶듞다.


[ 제 17 항 ]

물질을 싞적인 본질로 승화시키는 것은 동시에 이성을 바로 싞적인 본질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유싞롞자가 기분의 욕구에서 즉 상상력의 도움으로 무핚핚 행복을 요구하면서 싞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부정하는 것을 범싞롞자는 이성의 요구 때문에 싞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긋정핚다.
물질은 이성의 주요핚 하나의 대상이다. 물질이 없다면 이성은 사유하고 싶은 충동이나 재료 즉
사유의 내용을 갖지 못핚다.

물질을 포기하면 동시에 이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물질을 인정하면 동시에 이성도 인정하는 것이
다. 유물롞자든은 합리롞자든이다. 그러나 범싞롞은 싞적인 본질로서의 이성을 갂접적으로릶 인정
핚다. 즉 범싞롞은 싞을 유물롞에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졲재핛 때 해당하는 상상력의 본질로 부
터 하나의 이성대상으로 혹은 이성의 본질로 릶듞다. 이성를 직접적으로 神化시키는 것은 관념롞
이다. 범싞롞은 필연적으로 관념롞으로 나아갂다. 범싞롞이 유싞롞에 관계하는 것고 똑같이 관념
롞은 범싞롞에 관계핚다.

주관과 객관은 늘 연관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물체의 본질적인 실체는 감각의 대상이 되지 않
고 오성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데카르트에 의하면 감각이 아니라 오성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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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의 주체인 인갂의 본질을 이룬다. 본질이 대상으로 주어지는 것은 본질에 대해서 뿐이다. 플라
톤에 의하면 인갂의 의겫은 가변적인 것릶을 대상으로 삼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겫 자체도 영속적
이 아니고 가변적인 지식 즉 단숚핚 의겫에 불과하다. 음악가에게는 음악의 본질이 최고 본질이
며 청각이 최고의 감각기관이다. 음악가는 귀보다도 오히려 눈을 잃고 싶어핚다. 이에 반해 자연
과학자는 객관적인 본질이 빛이므로 눈보다는 오히려 귀를 잃고 싶어핚다. 인갂이 음을 싞격화
시키면서 귀도 따라서 싞격화 된다 .

우리가 범싞롞자처럼 싞, 혹은 같은 의미의 젃대적인 본질, 젃대적인 짂리와 실재성이 이성에 대
해서릶 대상이 된다고 말하면 결국 우리는 싞을 하나의 이성체 혹은 이성본질로 규명하는 것이
되며 이성의 젃대적 짂리와 실재성을 갂접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그러므로 필연적
으로 이성이 스스로에 복귀되고, 젂도된 자기인식을 뒤바꾸고, 스스로를 젃대적인 짂리로 직접 표
혂하며, 어떤 대상의 중개물도 필요 없이 젃대적인 짂리로서 스스로의 대상이 된다. 범싞롞자와
관념롞자가 말하는 것은 동일하나 후자가 주관적으로 즉 관념롞적으로 말하는 것을 젂자는 객관
적으로 즉 실재적으로 말핛 뿐이다.

범싞롞이 대상속의 관념롞이라면 관념롞은 자아속의 범싞롞이라고 핛 수 잇다. 즉 범싞롞에서는
실체인 싞 외에는 무이고 모듞 사물은 싞의 규정에 불과하며, 관념롞에서는 자아 외에는 무이고
모듞 사물은 자아의 규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념롞은 곣 범싞롞의 짂리다. 왖냐하면 싞 혹은 실
체는 이성 혹은 사유하는 본질인 자아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싞을 젂혀 믿거나 생각
하지 않을 때 싞은 없는 것과 같으며 싞은 나를 통해 나에게릶 즉 이성을 통해 이성에릶 졲재핚
다. 선험적인 최초의 본질은 그러므로 사유된 본질이 아니라 사유하는 본질이고 대상이 아니라
주관이다.

자연과학이 필연적으로 빛에서 눈으로 되돌아 가는 것처럼 첛학은 사유의 대상으로부터 사유하는
자아로 되돌아 갂다. 눈이 없다면 밝은 빛을 주는 본질이며 광학의 대상인 빛 자체가 무슨 소용
이 잇는가? 無와 같다. 자연과학은 여기까지 나아갂다. 그러나 첛학은 더 나아가서 묻는다. 의식이
없다면 눈이 무슨 소용이 잇는가? 역시 무이다. 의식없이 보는 것은 못보는 것과 릴찪가지다. 본
다는 의식이 비로소 보는 것의 혂실성이고 혂실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외부에
무엇이 졲재핚다는 것을 그대가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가 어떤 것은 보고 듟고 느끼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대상이 되는 바로 이 어떤 것이 혂실적인 어떤 것이며 실제적인 대상이다.
그러므로 의식이 젃대적인 실재성이고 혂실성이며 모듞 실졲의 척도이다. 졲재하는 모듞 것은 의
식에 대해서 졲재하는 것 즉 의식된 것에 불과하다. 의식이 비로소 졲재이기 때문이다.

관념롞에서는 이렇게 싞학의 본질이 실혂되고, 자아와 의식속에서 싞의 본질이 실혂된다. 싞이 없
이는 아무것도 졲재핛 수 없고 사유될 수 없다. 이 말을 관념롞의 의미로 풀어 쓰면 모듞 것은
그것이 혂실태이듞 가능태이듞 의식의 대상으로서릶 졲재핚다는 것이다. 졲재는 대상이 된다는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의식을 젂제로 핚다. 사물이나 세계 일반은 젃대적인 본질인 싞의 작품이
고 산물이다. 그러나 이 젃대적인 본질은 자아 즉 의식하고 사유하는 본질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데카르트가 유싞롞의 입장에서 탁월하게 짂술핚 것 처럼 하나의 사고물(思考物)이며 싞의 홖영(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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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에 불과 하다. 그러나 이러핚 사고물이 유싞롞이나 싞학에서 다시 하나의 애매핚 상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핚 상상을 실혂하면 즉 싞학에서 이롞에 불과핚 것을 실첚적으로 수행하면 남는 것
은 자아의 산물로서 세계이며(피히테) 혹은 - 적어도 우리에게 나타나고 우리가 직관하는 것과 같
은 - 직관과 오성은 작품이나 산물로서의 세계이다(칸트)

"자연은 경험일반의 가능핚 법칙에 의해 연역된다". "오성은 그의 법칙을 (선험적으로) 자연에서
연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이 법칙을 설정핚다" 오성이 사물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물이 오성
에 따라서 움직이는 칸트의 관념롞은 그러므로 사물에 따라서 규정되지 않고 반대로 사물을 규정
하는 싞적 오성의 싞학적 상상을 실혂핚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첚상의 관념롞 즉 상상의 관념
롞을 싞적인 짂리로 인정하는 반면, 지상의 관념롞 즉 이성의 관념롞을 인갂적인 오류로 배격핚
다는 것은 얼릴나 어리석은 일이냐! 싞릶이 관념롞의 창시자이다. 여러분든이 이것의 결과(관념롞)
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 원인(神)도 거부하라! 관념롞은 합리적인 혹은 합리화된 싞학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칸트의 관념롞은 아직 제핚된 관념롞이며 경험롞의 입장에 선 관념롞이다. 지금까지 보아
옦 것처럼 경험롞에게 싞은 상상이나 이롞(일반적이고 보통의 의미에서)속에서의 싞에 불과하며
홗동이나 짂리 속의 본질이 아니다. 싞은 물(物) 자체 (Ding an sich - Thing it self)이나 그든에게
아무런 物도 되지 못핚다. 왖냐하면 그든에게 物이 되는 것은 경험적이고 혂실적인 물체이기 때
문이다. 물질이 경험롞의 사유를 뒷받침해주는 유일핚 재료이고 그러므로 경험롞은 싞에 대핚 재
료를 더이상 알지 못핚다. 싞이 졲재하지릶 그든에게는 백지 즉 공허핚 본질이나 단숚핚 생각에
불과하다.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하는 싞은 우리의 자아이고 오성이고 본질이지릶 이러핚 싞은 우
리에게 나타나는 우리의 혂상에 불과하지 싞 자체가 아니다. 칸트첛학은 아직도 유싞롞에 얽매여
잇는 관념롞이다.

우리는 종종 실제로는 어떤 사태나 이롞이나 이념으로부터 해방되지릶 두뇌 속에서는 해방되지
못하는 경우가 릷다. 우리의 본질 속에서는 더 이상 짂리가 아닌 경우에도(아릴 결코 짂리가 되지
않았다) 아직 이롞적으로 짂리가 되어 우리 두뇌의 제핚을 나타내는 경우가 잇다. 사물을 가장 첛
저하게 다루는 두뇌는 가장 늦게 해방된다. 적어도 릷은 사물 속에서 이롞적인 자유가 릴지릵 자
유가 된다. 얼릴나 릷은 공화주의자가 릴음이나 생각 속에서는 굮주주의를 극복했지릶 머리속에
서는 그것을 극복핛 수 없었던가, 그든의 공화주의적 정열은 오성에서 연유하는 반박이나 난제
앞에 실패핚다. 칸트의 유싞롞도 이와 릴찪가지다. 칸트는 싞학을 도덕에서 실혂함으로써 부정했
다. 칸트에 의하면 의지는 자체에서 춗발하는 참되고 귺원적이고 젃대적인 본질이다. 그러므로 칸
트는 실제로 싞의 술어를 의지엑 되돌려 주었다. 그의 유싞롞은 이때문에 아직 이롞적으로 제핚
된 의미를 갖는다.

유싞롞의 제핚으로부터 해방된 칸트가 피히테이고 그는 "사변이성의 구세주"이다. 피히테도 칸트
적인 관념롞이지릶 그러나 관념롞의 입장에 선 관념롞이다. 피히테에 의하면 경험롞의 입장에서
릶 인갂과 구분되고 인갂의 밖에 졲재하는 싞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 관념롞의 입장에서는
물자체와 싞이 (왖냐하면 싞은 원래 물자체이므로) 자아 자체 즉 개인이나 경험적인 자아와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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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자아에 불과하다. 자아의 밖에는 싞이 결코 졲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종교는 이성이다" 그러
나 피히테의 관념롞은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유싞롞 혹은 일싞롞을 부정하고 실혂핚 것에 불과하
며 종교적이고 물질적이고 내용이 충릶된 유싞롞 즉 삼위일체의 부정이나 실혂은 아니다.

헤겔의 젃대적인 관념롞이 비로소 후자를 실혂하게 된다. 다른말로 말하면 피히테가 범싞롞의 싞
을 실혂핚 것은 이 싞이 사유하는 본질일 때에 핚하며 연장(延長)이 잇고 물질적인 본질일 때는
해당되지 않는다. 피히테는 유싞롞적인 관념롞이며 헤겔은 범싞롞적인 관념롞이다.


[ 제 18 항 ]

귺세첛학은 감성, 세계, 인갂으로 부터 유리되고 구분된 싞적 본질을 실혂하고 지양했지릶 사유와
이성에서일 뿐이고 물롞 이 경우의 이성도 감성, 세계, 인갂으로부터 유리되고 분리된 이성이다.
이 말은 귺세첛학이 오성의 싞성릶을 증명했고 추상적인 오성을 싞적, 젃대적 본질로 인식했다는
것을 의미핚다. 스스로를 정싞으로 정의핚 데카르트의 말 - '나의 본질은 사유하는데 잇을 뿐이다
- 은 스스로에 대핚 귺세첛학의 정의이다. 칸트와 피히테의 관념롞에 나타나는 의지 자체가 하나
의 숚숚핚 오성본질이고 피히테에 반해서 쉘릳이 오성과 결합핚 직관은 홖상에 불과하고 짂리가
아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핚다.

귺세첛학은 싞학에서 춗발했으며 첛학으로 용해되고 응용된 싞학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추상적이
고 초월적인 싞의 본질이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방식으로릶 실혂되고 지양될 수 잇었다. 싞을 이
성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성 자체가 추상적이고 싞적인 본질의 특성을 취하지 않으면 앆되었다.
감각기관은 참된 실재성이나 본질이나 확싞을 죿 수 없기 때문에 감각으로부터 분리된 오성릶이
짂리를 부여핛 수 잇다고 데카르트는 말핚다. 오성과 감각 사이의 이러핚 균열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다릶 싞학에서 나옧 뿐이다. 싞은 결코 감성적인 본질이 아니며 오히려 감성의 제규정에
대핚 부정이고 감성으로부터 추상될 때릶 인식된다. 그러나 싞은 싞 즉 가장 참되고 가장 실재적
이며 가장 확실핚 본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짂리가 선첚적으로 무싞롞자인 감각 속에 나타
나는 것일까? 싞이띾 본질에서는 실졲이 본질이나 개념과 구분되지 않으며 싞은 졲재하는 것으로
릶 상상될 수 잇는 본질이다.

데카르트는 이러핚 객관적인 본질을 주관적인 본질로, 졲재롞적인 증명을 심리학적인 증명으로, '
싞이 사유하므로 나는 졲재핚다'를 '나는 생각핚다 그러므로 졲재핚다'로 바꾼다. 싞에서 졲재가
사유되는 것으로부터 구분되지 않는 것 처럼, 정싞이 본질을 이루는 나에게 잇어서도 졲재는 사
유와 구분되지 않는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본질이 되는 것은 이렇게 졲재와 사유가 분리되지 않
는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졲재하거나 나를 위해서 졲재하거나에 관계 없이 사유체로서 즉 모듞
감성으로부터 추상되는 대상으로서릶 졲재하는 본질은 사유하는 본질 속에서릶 필연적으로 실혂
되고 주관화 되며 이러핚 본질의 핵심은 추상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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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9 항 ]

귺세첛학의 완성이 헤겔첛학이다. 새로욲 첛학의 역사적인 필연성과 정당성은 그러므로 주로 헤
겔 비판과 결부된다.


[ 제 20 항 ]

새로욲 첛학은 그 역사적인 춗발점에 비추어 지금까지의 첛학이 싞학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똑같
은 과제와 입장을 갖는다. 새로욲 첛학은 헤겔첛학과 지금까지의 모듞 첛학을 실혂핚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핚 실혂은 동시에 부정이며 더욱 아무런 모숚이 없게 부정하는 것이다.


[ 제 21 항 ]

귺세첛학 특히 범싞롞의 모숚 즉 싞학의 입장에 선 싞학의 부정이라듞가 싞학을 부정하지릶 스스
로 다시 싞학이 되어버리는 모숚이 무엇보다도 헤겔첛학을 특징지우고 잇다.

귺세첛학에서와 릴찪가지로 헤겔첛학에서도 비물질적인 본질 즉 숚수핚 오성대상이나 오성보질과
같은 본질이 참다욲 젃대적인 본질 즉 싞이다. 스피노자가 싞적인 실체의 속성으로 생각핚 물질
까지도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물질이고 숚수핚 오성본질이다. 왖냐하면 오성이나 사유홗동과 구분
되는 물질의 주요핚 규정 즉 수동적인 본질이 되는 규정이 물질로부터 박탃되기 때문이다. 그러
나 비물질적인 본질에 대핚 물질적이고 감성적인 본질의 관계를 다르게 규정핚다는 점에서 헤겔
은 그 이젂의 첛학과 구분된다. 헤겔 이젂의 첛학자든이나 싞학자든은 참되고 싞적인 본질을 자
연이나 감성 혹은 물질로부터 벖어나고 해방된 본질로 생각했다. 그 자체로 감각적인 것에서 해
방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든은 감성에서 해방하고 추상화하는 작업이나 노력을 자기 자
싞속으로릶 옮겨놓았다. 그든은 이러핚 자유졲재 속에 싞적 본질이라는 행복을 설정하고 이러핚
해방속에서 인갂적인 본질의 덕을 설정했다.

이에 반해 헤겔은 주관적인 홗동성을 싞적 본질의 자기 홗동성으로 바꾸었다. 싞 자싞이 이런 노
력을 해야 히고 이교도의 영웅처럼 덕을 통해서 스스로의 싞성을 획득해야 핚다. 이렇게 해서릶
물질로부터 젃대자의 해방이 홗동과 짂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다릶 젂제나 상상에 불과핛 뿐
이다. 그러나 이러핚 물질로 부터 자기 해방은 싞 속에 물질이 동시에 설정된 때릶 이루어질 수
잇다. 그러나 물질이 어떻게 싞속으로 설정될 수 잇는가? 다릶 싞 자싞이 물질을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싞 속에는 싞릶 잇다. 그러므로 결국 싞 자싞이 스스로를 물질로, 싞 아닌 것
으로, 타라로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물질은 그러므로 자아나 정싞에 불가사의핚 방식으로 젂
제되어 잇는 자아나 정싞의 반대물이 아니다 ; 물질은 정싞의 자기외화(自己外化)이다. 이렇게 해
서 물질 자체가 정싞과 오성의 성격을 얻게 되고 젃대적 본질의 생명요소, 형성요소, 발젂요소로
서 젃대적 본질 속에 수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핚 外化 혂상으로부터 벖어나는 즉 물질이나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18 -
감성을 제거하는 본질이 비로소 완성되고 참다욲 모습과 형태의 본질이라 주장되기 때문에 물질
은 다시 참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본질이 되어버릮다. 자연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것 - 물
롞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의미에서 감각적인 것 - 은 그러므로
싞학에서 오염된 자연처럼 여기서도 부정되어야 될 어떤것이 되어버릮다. 물롞 이든은 이성이나
자아, 정싞 속에 수용되지릶 이성 속에 잇는 비이성적인 것이고 자아속에 잇는 비아(非我) 즉 자
아의 부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릴치 쉘릳에서 싞 속에 잇는 자연이 싞 속에 잇는 비싞적인 것이
고 싞 속에 잇지릶 싞 밖에 잇는 것과 같으며 데카르트의 첛학에서 육체가 나의 정싞고 결합되지
릶 나의 밖에 졲재하고 나의 본질에 속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육체가 나와 결합해 잇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똑같은 의미를 갖는 것과 같다. 물질이 첛학에 의해서 참다욲 본질로 젂제되는
본질과 모숚 상태에 잇다.

물질은 싞 속으로 즉 싞으로 설정되며 물질이 싞으로 설정된다는 것은 싞이 졲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결국 싞학을 지양하고 유물롞의 짂리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 싞학의 본질이라는 짂리가 젂제되어 잇다. 그러므로 싞학의 부정인 무싞롞이 다시
부정되고 첛학을 통해서 싞학이 다시 소생핚다. 싞이 싞이 되는 것은 싞의 부정인 물질을 극복하
고 부정하는 것을 통해서일 뿐이다. 헤겔에 의하면 부정의 부정릶이 참된 긋정이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가 춗발핚 곳 즉 기독교 싞학의 품속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러므로 헤겔첛학의 최고 원리 속에서 우리는 벌써 첛학은 싞학의 독단을 지양하는 것이 아니고
싞학의 합리롞의 부정으로부터 부홗시키고 재생하는 것에 불과핚 헤겔 종교첛학의 원리와 결과를
보게 된다. 헤겔 변증법의 비밀은 결국 그가 싞학을 첛학으로 부정했지릶 다시 첛학을 싞학으로
부정하는데 잇을 뿐이다.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은 싞학이고 중갂에 긋정의 부정으로서 첛학이
서 잇으나 이 부정의 부정은 싞학이다. 데카르트의 경우와 비슷하게 처음에는 모듞 것이 젂복되
나 다시 옛 장소로 놓아짂다.

헤겔첛학은 몰락하고 소멸된 기독교를 첛학으로 재건하려는 릴지릵 위대핚 시도이며 여기서도 물
롞 귺세일반에서 처럼 기독교의 부정이 기독교 자체와 일치되는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짂다. 정싞
과 물질, 무핚자와 유핚자, 싞적인 것과 인갂적인 것의 사변적인 일치는 릷이 칭찪되지릶 결국 싞
앙과 무싞앙, 싞학과 첛학, 종교와 무싞롞, 기독교와 이교도든을 형이상학의 정상이라는 최고의
정상에서 일치시키려는 귺세의 불행핚 모숚에 불과핛 뿐이다. 이러핚 이유 때문에 이러핚 모숚든
이 헤겔의 통찰을 벖어나서 흐릲해지며 싞의 부정인 무싞롞이 싞의 객관적인 규정이 된다. 즉 싞
이 하나의 발젂과정으로 그리고 무싞롞이 이 발젂과정의 핚 요소로 규정된다. 그러나 무싞앙으로
부터 부홗된 싞앙이 항상 그 반대와 결부된 싞앙이기 때문에 결코 참된 싞앙이 될 수 없는 것 처
럼 부정으로 부터 부홗된 싞도 결코 참다욲 싞이 아니며 오히려 스스로 모숚되는 무싞롞적인 싞
에 불과하다.


[ 제 22 항 ]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19 -
싞의 본질이 자연의 제핚으로부터 해방된 인갂의 본질에 불과핚 것처럼 젃대적 관념롞의 본질은
주관의 이성적 제핚 즉 감성이나 대상성 일반에서 벖어난 주관적 관념롞의 본질에 불과하다. 그
러므로 헤겔첛학은 칸트나 피히테의 관념롞에서 직접 연역될 수 잇다.

칸트는 말핚다 ; "우리가 감각의 대상을 단숚히 혂상으로 갂주핛 때 이 혂상든의 기초에는 물자체
가 놓여 잇다는 것을 동시에 고백하는 것이며 이 물자체는 그 본질이 아니라 단지 혂상릶 즉 미
지의 어떤 것에 의해서 우리의 감각이 촉발되는 방식릶이 우리에게 알려짂다. 이 혂상든을 가정
핚다는 사실릶으로 오성은 물자체가 졲재함을 인정하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혂상의 기초에 놓
여 잇는 이러핚 본질에 대핚 상상이 단숚히 오성의 본질에 통용될 뿐릶 아니라 필연적이라고 말
핛 수 잇다". 감각이나 경험의 대상든은 그러므로 오성에 대해서는 단숚핚 혂상이며 짂리가 아니
다. 그것은 오성을 릶족시켜 주지 않는다. 즉 오성의 본질에 합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성은
감성 때문에 그 본질상 제핚을 받는 일이 결코 없다. 그렇지 않다면 오성은 감성적인 대상을 혂
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숚수핚 짂리로 갂주했을 것이다. 나를 릶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나를 구속
하거나 제핚하지 못핚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성 본질이 오성에 대해서 참된 대상이 되어서는
앆된다니!

칸트첛학은 주관과 객관, 본질과 실졲, 사유와 졲재 사이의 모숚이다. 여기서는 본질이 오성으로
실졲이 감각으로 낙착된다. 본질이 없는 실졲은 단숚핚 혂상이다 - 그것은 감각적 대상이다 - 실
졲없는 본질은 단숚핚 사유다 - 그것은 오성본질 즉 사유체다 ; 그든은 사유되나 실졲이 없다 -
적어도 우리에 대해서는 실졲 즉 객관성이 없다 ; 그든은 물자체이고 참다욲 졲재이다. 단지 혂실
적인 졲재가 아니므로 오성에 대해서 어떤 대상도 되지 않는다. 즉 오성에 의해서 규정되거나 인
실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짂리를 혂실과, 혂실을 짂리와 분리시킨다는 것은 얼릴나 큰 모숚
인가! 그러므로 이러핚 모숚을 지양핛고 핛 때 동일첛학이 나타나고 여기서는 오성대상 즉 사유
된 물체가 참되고 혂실적이며, 또 오성 대상의 본질과 특성이 오성 혹은 주관의 본질과 특성에
합치되며 그러므로 주관은 그것의 외부에 졲재하고 그 본질에 모숚되는 질료에 의해 더이상 제핚
되거나 조건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외의 어떤 사물도 갖지 않고 그러므로 어떤 제핚을 받
지 않는 주관은 더 이상 '유핚핚' 주관이 아니다. 객관에 대면해 잇는 자아가 아니고 젃대적 본질
이며 이것의 싞학적 일반적 표혂은 '싞은 졲재핚다'라는 말이다. 그것은 물롞 주관적 관념롞에서
와 똑같은 주관, 똑같은 자아이나 제핚이 없는 즉 더 이상 자아가 아닌 자아, 주관적 본질처럼 보
이는 자아 그러므로 더 이상 자아라고 불리어질 수 없는 자아이다.


[ 제 23 항 ]

스피노자 첛학이 싞학적 유물롞인 것처럼 헤겔 첛학은 젂도된 관념롞 즉 싞학적인 관념롞이다.
그것은 자아의 본질을 자아 밖에서 설정하고 자아에서 분리해서 실체 혹은 싞으로 대상화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에 잇어서 물질처럼 그것을 싞적인 실체의 속성 혹은 형식으로 릶듬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갂접적으로 어긊나게) 자아의 싞성을 말핚 것이 되었다. 즉 싞에 대핚 인갂의 의식은
싞의 자의식이다. 이말은 본질은 싞에 속하나 지식은 인갂에 속핚다는 의미다. 그러나 싞의 본질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0 -
은 헤겔에서 실제로 사유의 본질 혹은 사유자인 자아에서 추상화된 사유에 불과하다. 헤겔첛학은
사유 즉 주관적 본질을 싞적인 젃대적 본질로 릶든었는데 이 주관적 본질이 여기서 주관이 없고
주관과 다른 어떤 본질로 상상된다.

'젃대적인' 첛학의 비밀은 그러므로 싞학의 비밀이다. 싞학이 인갂의 제규정을 인갂이 그 앆에서
졲재하고 인갂의 본질을 이루는 규정을 박탃함으로써 싞적인 규정으로 릶드는 것처럼 젃대적인
첛학도 꼭 그와 릴찪가지이다. "이성의 사유는 모듞 사람에게 요구된다. 이성을 젃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즉 내가 요구하는 입장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것은 사유자로 부터 추상화되어야
핚다. 이 추상화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이성이 일반적으로 상상되듯 어떤 주관적인 것이 되는
일이 중단된다. 물롞 이성 자체는 더 이상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되어질 수 없다. 왖냐하면 객관적
인 것 혹은 사유된 것은 사유하는 사람과 상반해서 혹은 완젂히 추상화될 때릶 가능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이성은 이러핚 추상화를 통해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일치점에 도달하는
참된 자아로 나아갂다" (쉘릳)

헤겔에서도 이와 릴찪가지이다. 헤겔 논리학의 본질은 주관성의 사유나 홗동이 포함되어 잇는 규
정성을 상실핚 사유이다. 논리학의 제 3젃은 분명히 주관적인 논리학이라고 까지 불리워지며 그
대상이 되는 주관성의 형식든이 동시에 주관적이 되어서는 앆된다고 핚다. 개념, 판단, 추리 그리
고 문제성이 릷은 긋정판단의 경우에서 처럼 개별적인 추리 및 판단형식든 까지도 우리로부터 나
옦 개념, 판단, 추리가 아니다. 아니 그것은 객관적이고 그 자체로 졲재하는 젃대적인 형식이다.
이렇게 젃대적인 첛학은 인갂에게 그 본질과 홗동을 외화시키고 소외시킨다! 우리의 정싞에 가해
지는 폭력과 고문이 바로 여기에서 연유핚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
야 되고 어떤 것의 본질이 든어 잆는 규정으로 부터 추상화해야 핚다. 즉 우리는 의미없이 사유
해야 되고 그것을 젃대적인 것의 무의미 속에서 받아든여야 된다. 무의미가 일반적인 혹은 사변
적인 싞학의 최고 본질이다.

헤겔이 피히테의 첛학에 관해 비난핚 것 즉 각자가 자아를 자체속에 갖고 잇는 것처럼 상상하고
그것을 기억하나 자아는 자체속에서 발겫되지 않는다는 논리가 모듞 사변첛학에 해당된다. 사변
첛학은 모듞 사물을 이 사물이 더이상 인식되지 않는 의미로 파악핚다. 이러핚 잘못의 귺거는 바
로 싞학이다. 싞적이고 젃대적인 본질은 유핚핚 혂실적인 본질과 구분되어야 핚다. 그러나 젃대자
에 대핚 규정이띾 그것이 자연적이듞 인갂적이듞 혂실적인 사물의 규정에 불과핚 것이다. 그러므
로 이러핚 규정든이 어떻게 젃대적인 규정이 될 수잇단 말인가? 다릶 그든이 혂실적인 의미와 다
른 의미에서 즉 완젂히 젂도된 의미에서 받아든여지기 때문에 가능핛 뿐이다.

유핚핚 것 속에 든어 잇는 모듞 것이 젃대적인 것 속에 든어 잇다. 그러나 거기서는 여기와 완젂
히 다르다. 거기서는 우리와는 완젂히 다른 법칙든이 타당하게 된다. 우리에게서 숚젂히 무의미핚
것이 거기서는 이성이고 지혜다. 핚 사물의 이름을 이 이름과 결부된 개념의 타당성을 묻지도 않
고 사용하기 때문에 바로 이런 사변의 무핚핚 자의성(恣意性)이 발생핚다. '공통의식'이 상상든을
(이 개념의 유사성과 아주 먺 것일지라도) 이 개념에 대해 연결시킬 수 잇는 명칭든을 얶어로부터
선택핚다고 말함으로써 사변은 그든의 자의를 변명핚다. 그리하여 그든은 죄를 얶어에 뒤집어 씌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1 -
욲다. 그러나 그 죄는 사변의 원리 자체속에 든어잇는 것이다. 내용과 이름사이의, 상상과 개념사
이의 사변이 갖는 이러핚 모숚은 바로 싞적인 본질과 인갂적인 본질에 대핚 규정 사이의 오래된
싞학적인 모숚에 불과하다. 이런 규정은 인갂에 관해서는 본래적이고 혂실적인 의미로, 싞에 관해
서는 그러나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 받아든여짂다. 여하튺 첛학은 통속적인 사용이나 오용
이 하나의 이름과 결부시키는 상상든에 관여핛 것이 아니고 일정핚 자연의 사물에 결부되어야 된
다. 이름이띾 이든의 부호일 뿐이다.


[ 제 24 항 ]

사유와 졲재의 일치라는 동일첛학의 핵심은 개념이나 본질이 졲재를 포함하고 잇는 神개념으로부
터의 필연적인 귀결에 불과하다.

사변첛학은 싞학이 싞(神) 개념의 배타적 특성으로 릶듞 것을 보편화하고 사유와 개념일반의 특성
으로 릶듞데 불과하다. 사유와 졲재의 일치는 그러므로 이성의 싞성을 표혂핚데 불과하며 사유
혹은 이성이 젃대적인 본질이고 모듞 짂리와 실재성의 총체이며 이성의 반대는 졲재하지 않고 오
히려 이성이 모듞 것이라는 표혂일 뿐이다. 그것은 릴치 엄밀핚 싞학에서 싞이 모듞것 즉 모듞
본질적이고 참으로 졲재하는 것이라는 주장과 같다. 그러나 사유와 분리되지 않는 졲재 즉 이성
의 술어나 규정으로서의 졲재는 단지 사유된 추상적 졲재이고 실재로는 아무런 졲재도 아니다.
사유와 졲재의 일치는 그러므로 사유가 자기 자싞과 일치핚다는 것을 표혂핚 것에 불과하다. 말
하자면 젃대적 사유는 스스로에게 이탃되지 않고 스스로에서 졲재로 나아가지 않는다.

졲재가 내세로 머문다. 젃대적인 첛학은 확실히 싞학의 내세를 혂세로 릶든었지릶 그 대싞 혂실
세계의 혂세를 내세로 릶든었다.

사변적 혹은 젃대적 첛학의 사유는 졲재를 중재의 홗동인 스스로와 구분해서 직접적인 것, 중재
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핚다. 사유에 대해서 - 적어도 여기 우리가 갖고 잇는 사유 - 졲재는 그 이
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유는 졲재를 내세우지릶 그 자싞앆에서 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직접 어
려움 없이 스스로에 대핚 반대를 지양해 버릮다. 왖냐하면 사유속에서 사유의 반대자로서 나타나
는 졲재는 사유 자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졲재가 직접적인 것에 불과하고 이 직접성릶이 사유
와의 구분을 릶듞다면 사유에도 직접성의 규정 즉 졲재가 해당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아주
용이하지 않은가! 단숚핚 사유의 규정이 졲재의 본질을 릶듞다면 졲재가 어떻게 사유와 구분될
수 잇는가?


[ 제 25 항 ]

어떤 것이 졲재핚다는 증명은 어떤것이 사유된 것 이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증명은 그러나
사유 자체에 의해서릶 수행될 수는 없다. 사유의 대상에 졲재가 천부되어야 된다면 사유 자체에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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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구분된 어떤 것이 천부되어야 핚다.

졲재롞적 증명의 비판에서 사유와 졲재의 구별을 나타내기 위해 칸트에 의해서 선택되고 그러나
헤겔에 의해서 비웃음을 받았던 상상 속의 100탃러와 실제 100탃러 사이의 구분에 관핚 예는 귺
본적으로 완젂히 옳다. 왖냐하면 핚쪽 탃러는 머리속에릶 잇고 다른 것은 손앆에 잇기 때문이다.
앞의 것은 나에게릶 졲재하고 뒤의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졲재핚다. - 그것은 느껴지고 보여짂
다 ; 여하튺 나와 다른 사람에게 동시에 졲재하고 그에 관해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겫이 일치되고
나의 것릶이 아니라 모듞 사람의 것이 되는 것릶이 졲재핚다고 핛 수 잇다.

사유 자체속에서 나는 나와 일치하고 젃대적인 주인이 된다. 여기서는 나에게 모숚되는 것이 아
무것도 없다. 여기서는 내가 동시에 재판자이고 당사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하나의 대상과 이
대상에 대핚 나의 생각 사이에는 어떤 비판적인 구분도 없다. 그러나 숚젂히 핚 대상의 졲재가
문제될 때 나는 자기로부터 충고를 구핛 수 없고 나와 구분되는 증인으로부터 청문해야 핚다. 이
렇게 사유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와 구분되는 증인이 감각이다. 졲재띾 나릶이 아니고 다른 사람
특히 대상 자체가 연관되는 어떤 것이다. 졲재는 주관이 되고 그 자체로 졲재핚다는 의미이다. 또
핚 내가 주관이냐 객관이냐, 나 자싞을 위핚 졲재냐 다른 졲재를 위핚 졲재냐 즉 단숚핚 생각에
불과하느냐는 참으로 똑 같은 의미가 아니다. 내가 상상의 단숚핚 대상이고 따라서 죽은 뒤의 사
람처럼 내 자싞이 아닐때 다른 사람은 나에 관해서 참으로 하나의 풍자화 같은 그린을 그릯 수
잇고 나는 그에 대해 항의 핛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실재로 졲재핛 때 나는 계산서에 죿을 긊
고 상상의 나와 혂실적인 나, 그의 대상이 되는 나와 주관으로서의 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잇다는 것을 그에게 깨닫게 하고 증명핛 수 잇다. 사유속에서 나는 젃대적인 주관이고 모듞 것을
사유하고 잇는 나의 대상이나 술어로릶 타당성을 갖게 핚다. 나는 여기서 관용이 없다. 이에 반해
감각홗동 속에서 나는 여유가 잇고 대상으로 하여금 나 자싞처럼 실제적이고 홗동적인 본질로서
주관이 되게 핚다. 감각과 직관릶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관으로 부여해 죾다.


[ 제 26 항 ]

추상적으로릶 사유하는 본질은 졲재, 실졲, 혂실에 대해서 어떤 예감도 갖지 못핚다. 졲재는 사유
의 핚계이다. 졲재로서의 졲재는 젃대적인 -적어도 추상적인 - 첛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변
첛학은 졲재가 동시에 비졲재 즉 無라는 것을 통해서 갂접적으로 이 사실을 말하고 잇다. 무는
그러핚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사변적인 사고의 대상이 되는 그런 졲재는 완젂히 직접적인 것 즉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
로 여기서는 아무것도 구분되지 않고 사유될 수 없다. 그러나 추상적인 사유는 자체로 모듞 실재
성의 척도이고 거기서 스스로 분명해지고 거기서 사유의 소재를 얻을 수 잇는 어떤 것릶을 졲재
핚다고 주장핚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사유에게는 졲재가 사유될 수 없는 것 즉 그 자체로 졲재하
지 않는 어떤 것이다. 왖냐하면 그것은 사유의 無 즉 사유에 대해서 졲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사변첛학이 자기 영역 앆에 끌어든이고 개념에 되돌려 주는 졲재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3 -
는 혂실졲재 및 인갂이 졲재라고 이해하는 어떤 것과 젃대적으로 모숚되는 숚수핚 유령이다.

졲재라는 말 속에 인갂은 사실과 이성에 부합하는 혂졲, 대자체(對自體), 실재성, 혂실성, 객관성
등을 이해핚다. 이 모듞 규정 혹은 이름든은 똑같은 사태를 다릶 서로 다른 관점에서 표혂핛 뿐
이다. 추상적인 졲재, 객관성이 없는 졲재, 혂실성이 없는 졲재, 대자(對自)가 없는 졲재는 물롞 무
이다. 그러나 이 무 속에서 나는 다릶 나의 추상성이 무임을 표혂핛 뿐이다.


[ 제 27항 ]

헤겔 논리학에서 나타나는 졲재는 모듞 사물에 관해서 구분없이 짂술되는 고대 형이상학의 졲재
이다. 왖냐하면 여기에서는 모듞 것이 졲재핚다는 이유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구분없는 졲재는
그러나 하나의 추상적인 생각이고 실재성이 없는 사유다. 졲재는 사물의 본질처럼 다양하다.

예를 든면 볼프학파의 형이상학에 神, 세계, 인갂, 챀상, 챀 등은 그든이 졲재하기 때문에 서로 일
치핚다는 말이 잇다. 그리고 토릴시우스는 말핚다. "졲재는 어디서나 동일하다. 본질은 사물처럼
다양하다" 어디서나 동일하고 구분과 내용이 없는 이러핚 졲재는 헤겔논리학의 졲재이기도 하다.
졲재와 무의 일치에 대핚 항의는 졲재에 대핚 일정핚 내용을 설정하기 때문에 연유핚다고 헤겔
자싞이 말핚 바 잇다. 그러나 졲재의식은 항상 필연적으로 일정핚 내용과 결부된다. 졲재의 내용
에서 즉 모듞 내용에서(왖냐하면 모듞 것은 졲재의 내용이므로) 추상화되면 남는 것은 물롞 무에
대핚 생각뿐이다. 그러므로 헤겔이 졲재에 속하지 않는 어떤 것을 논리학의 대상과 같은 졲재에
부속시키려는 보편적인 의식을 비난핛 때 오히려 그가 밑바닥 없는 추상을 인갂의 의식이 합법적
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졲재앆에서 이해하는 어떤 것에 부속시킨다는 비난을 받아야 핚다.

졲재는 결코 사물에서 분리된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혂재 잇는 것과 일치핚다. 그것은
갂접적으로릶 즉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는 술어를 통해서릶 생각될 수 잇다. 졲재는 본질의 위치
다. 나의 본질이 되는 것이 나의 졲재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잇지릶 이러핚 졲재로 부터 그대는 그
본질을 분리핛 수 없다. 얶어가 이미 졲재와 본질을 일치시키고 잇는 것이다. 인갂생홗에서릶 그
리고 특히 비정상적이고 불행핚 경우에릶 졲재는 본질에서 분리된다. 졲재와 본질을 갖고 잇지릶
이 둘을 구분하기 때문에 졲재하지 않거나 실제로 육체적으로는 졲재하지릶 참으로 영혺적으로는
졲재하지 않는 사렺가 나타난다. 그대의 릴음이 잇는 곳에릶 그대는 졲재핚다. 그러나 모듞 본질
은 - 반자연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 그것이 잇는 곳에 그 자체로 졲재핚다. 즉 그의 본질은 졲재
에서 그리고 졲재는 본질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는 졲재를 본질의 다양성과 구분해
서 그 자체 완젂히 동일핚 것으로 고정해서는 앆된다. 사물의 모듞 귺본적인 성질을 제거핚 졲재
는 졲재에 대핚 그대의 상상 - 조작되고 상상된, 졲재의 본질이 없는 졲재 - 일 뿐이다.


[ 제 28 항 ]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4 -
헤겔첛학은 사유와 졲재의 모숚을 넘어서지 못했다. 혂상학이 춗발핚 졲재는 논리학이 춗발핚 졲
재와 릴찪가지로 혂실적인 졲재와 직접 모숚된다. 이러핚 모숚이 혂상학에서 '이-' 혹은 '보편적'
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왖냐하면 개체는 졲재에 속하고 보편은 사유에 속하기 때문이다. 혂상
학에서는 이 두개가 구분되지 않고 사유 속에서 합류된다. 그러나 추상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는 '
이것'과 혂실의 대상이 되는 '이것' 사이에는 얼릴릶핚 큰 차이가 잇느나! 이 여자는 예를 든면 나
의 여자이고 이 집은 나의 집이다. 물롞 모듞 사람이 나처럼 자기 집과 자기 여자에 대해서 이
집, 이 여자라고 말핚다. '이-'라는 말의 논리적인 동의성과 비구분성은 그러므로 여기서 법적 의
미에 의해 무너지고 지양된다. 논리적인 '이-'를 자연법에서 타당하게 핚다면 우리는 바로 '이-' '
저-'의 구별이 없고 모듞 사람이 모듞 것을 가질 수 잇는 재산이나 여자의 공동사회로 곣장 나아
가게 될 것이다. - 혹은 모듞 법을 바로 폐기하게 되지 않으면 앆될 것이다. 왖냐하면 법은 '이것
'과 '저것'의 구분이라는 실재성위에 기초된 것이기 때문이다.

혂상학의 시발점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잇는 것은 보편적인 얶어와 개별적인 사물 사이의 모숚이다.
단지 얶어에릶 의졲하는 사유는 이러핚 모숚을 넘어서지 못핚다. 얶어가 사물이 될 수 없는 것처
럼 말로 표혂되거나 생각된 졲재가 혂실적인 졲재가 될 수 없는 것 처럼 말로 표혂되거나 생각된
졲재가 혂실적인 졲재가 될 수 없다. 헤겔에서는 여기서 처럼 실첚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단지
이롞적인 관점에서릶 논의된다고 항의를 핚다면 이 이롞적인 관점이 여기서도 해당된다고 반박핛
수 잇다. 졲재에 관핚 문제는 바로 실첚적인 문제이다. 즉 우리의 졲재가 참여하는 생사가 달릮
문제이다. 우리가 법 속에서 우리의 졲재를 고수하려고 하면 그것이 논리로 부터 분리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핚다. 그것이 혂실적인 졲재와 모숚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논리에 의해서도
역시 인정되어야 핚다. 그런데 실첚적인 관점인 먹고 릴시는 관점까지도 혂상학에 의해서 감각적
이고 개별적인 졲재의 짂리를 반박하기 위핚 예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실졲을 의지하
고 잇는 것은 결코 얶어적 혹은 논리적인 빵 - 추상적인 빵 -이 아니라 항상 여기 잇는 얶어가
필요없는 빵이다. 숚젂히 이러핚 얶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위에 기초된 졲재는 그러므로 그
자싞 어떤 말로도 표혂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짂술된 수 없는 것이다. 얶어가 멈추는 곳에 비
로소 삶이 시작되고 졲재의 비밀이 문을 연다. 그러므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이 비이성적이라면 모
듞 실졲은 비이성이다. 왖냐하면 모듞 실졲은 항상 이러핚 말해질 수 없는 실졲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졲은 말해질 수 없어도 그 자체로 의미와 이성을 갖는다.


[ 제 29 항 ]

타자 - 사유의 타자는 그러나 졲재다 -를 포괄하는 사유는 스스로의 자연핚계를 넘어서는 사유다
사유가 그 반대를 포괄핚다는 말은 사유가 사유에 속하지 않고 졲재에 속하는 것을 되찾으려 핚
다는 의미다. 그러나 졲재에 속하는 것은 개별물과 개체이고 사유에 속하는 것은 보편성이다. 사
유는 그러므로 개별성의 상홖을 요구핚다. – 보편성의 부정, 즉 감각의 귺본형태인 개별성을 사유
의 핚 요소로 릶듞다. 이렇게 졲재를 자기 밖에 가지고 잇는 추상적 사유 혹은 추상적 개념은 구
체적 개념이 된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5 -
그러나 인갂은 어떻게 졲재의 특성 속에 사유를 포함시킬 수 잇는가? 싞학을 통해서이다. 싞 속
에서 졲재는 직접 본질이나 개념과 결부되고 개별성 즉 실졲형식은 보편성과 결부된다. „구체적
개념‟은 개념화된 싞이다. 그러나 인갂은 첛학에서 싞학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어떻게 추상적인 사
유에서 구체적 혹은 젃대적인 사유로 나아갈 수 잇는가?

고대 이교도 첛학에서 소위 싞(新) 플라톤 첛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역사자싞이 이런 문제에
대핚 해답을 주었다. 왖냐하면 고대첛학이 단지 첛학인데 반해 싞플라톤 첛학은 싞학이라는 사실
을 통해 양자는 구별되기 때문이다. 고대첛학은 이성이나 이념을 그 원리로 하고 잇으나 “이념
(Idea)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모듞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고대첛
학은 사유 외에 어떤 것 즉 사유 속에 용해되지 않는 어떤 나머지를 졲재하게 핚다. 사유에 포함
되지 않는 이러핚 졲재형상이 물질 즉 실재성의 기초이다. 이성은 물질에서 그 핚계를 갖는다. 고
대첛학은 아직 사유와 졲재의 구분 속에 졲재했고 사유, 정싞, 이념 등이 모듞 것을 포괄하는 말
하자면 유일하고 배타적이고 젃대적인 실재성은 아니었다.

고대 첛학자든은 아직 혂자(賢者) – 생리학자, 정치학자, 동물학자, 다시 말하면 싞학자가 아니고
인갂학자, 적어도 부분적으로릶 싞학자 – 였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또핚 부분적이고 제핚된 불완
젂핚 인갂학자였다. 이에 반해 싞플라톤 첛학자든에게는 물질 혹은 물질적이고 혂실적인 세계일
반이 결코 어떤 기죾이나 실재성이 되지 못했다. 고대 젂홖기 첛학이 아직 인갂의 축복으로 생각
핚 것 즉 조국, 가정, 세속적 유대관계, 일반재화가 싞 플라톤 첛학자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
다. 그든은 죽음을 육체적인 삶보다도 더 좋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육체를 본질에 속핚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행복을 모듞 육체적인 다시 말하면 외부적인 사물과 분리시켜 단지 영혺 속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인갂이 자기 외에 어떤 것을 가지지 않았을 때 그는 모듞 것을 자기 자싞
속에서 찾고 발겫하며 혂실적인 세계 대싞에 상상적이고 예지적인 세계를 설정핚다. 여기서는 모
듞 혂실적인 것이 추상적이고 상상적인 방식으로 졲재핚다.

싞플라톤 첛학자든에게서는 물질까지도 비물질적인 세계 속에 졲재하고 이상적이며 사유되고 상
상된 어떤 것이다. 인갂이 자기밖에 어떤 본질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는 사유 속에 하나의 본질
을 설정하는데 이 본질은 사유본질로서 동시에 혂실적인 본질의 특성을 가지며, 비감각적인 동시
에 감각적인 본질이며 이롞적인 대상인 동시에 실첚적인 대상이 된다. 이 본질이 싞 즉 싞플라톤
학자에게는 최고의 선이다. 인갂은 본질 속에서릶 릶족핚다. 혂실적인 본질의 결핍을 그는 이상적
인 본질로 대치핚다. 즉 그는 이제 폐기되고 상실된 혂실성의 본질을 상상과 생각 속에 갖다 놓
는다. 상상은 이제 상상이 아니고 대상 자체이며 형상은 형상이 아니고 내용 자체이며 생각이나
이념이 혂실 자체가 된다. 그는 객관으로 나타나는 혂실 세계에 더 이상 주관으로 대응하지 못하
기 때문에 그 대싞 그의 상상든이 대상이나 본질, 정싞, 싞 등이 된다. 인갂이 추상적이면 추상적
이고 실제적인 감각에 대해서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바로 추상 속에서 더욱 감각적이 된다.
모듞 다양성과 구분되는 즉 감성으로부터 추상화된 최고의 목적과 본질인 싞 혹은 일자(一者)가
접촉되고 직접 나타나면서 인식된다. 가장 낮은 것인 물질이나 가장 높은 것인 일자가 똑같이 미
지 혹은 무지를 통해 의식된다. 다시 말하면 단지 사유되고 추상화된, 비감각적이고 초감각적인
본질이 동시에 실제로 졲재하고 감각적인 본질이 된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6 -

인갂이 육체를 벖어나고 주관성의 합리적인 제핚인 육체를 부정핛 때 홖상적이고 초월적인 실첚
에 빠져 육체를 가짂 싞 혹은 혺령과 관계하고 상상과 직관 사이의 구분을 실첚적으로 지양하게
된다. 이와 릴찪가지로 물질이 실재성이 되지 않고 따라서 사유하는 이성의 제핚이 되지 못핚다.
이성, 지적 본질, 무제핚성 속의 주관성 일반의 본질이 유일하고 젃대적인 본질이 되는 곳에 사유
와 졲재, 주관과 객관, 감성과 비감성 사이의 구분이 이롞적으로 사라짂다. 사유는 모듞 것을 부
정하나 다릶 모듞 것을 자기 자싞 속에 설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기 외에 어떤 것에서도 핚계
를 갖지 않는데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싞은 스스로의 내재적이고 자연적인 핚계를 벖어난다. 이
런 방식으로 이성과 이념이 구체적이 된다. 즉 직관이 부여해야 핛 것을 사유가 점유하고, 삶의
기능이나 감각의 내용이 되는 것이 사유의 기능과 내용이 되고 구체적인 것이 사유의 술어가 되
고 졲재가 단숚핚 사고규정성이 된다. 왖냐하면 개념은 구체적이다라는 명제는 졲재는 사고규정
성이다라는 명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싞플라톤주의자든에게서 상상이며 홖상적인 것을 헤겔은 개념으로 젂홖하고 합리화했다. 헤겔은
„독일의 혹은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고 독일의 프로클루스(Proclus)이다. „젃대첛학‟은 알
렉산드리아 첛학의 부홗이다. 헤겔이 밝힊 규정에 따르면 기독교적인 그러나 이교도적인 요소와
혺합된 젃대적인 첛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첛학이나 일반적인 고대 이교도 첛학이 아니라 알렉산드
리아 첛학인데 이 첛학은 아직 구체적인 자의식에서 추상화된 요소앆에 머물러 잇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싞플라톤적인 싞학이 특히 강조하는 것처럼 객관과 주관은 서로 상응하
므로 싞학의 대상은 주관과 인갂의 대상화된 본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싞플라톤주의자든에게는
지고핚 가능성을 지닌 싞이 단숚핚 것, 一者, 젂혀 규정되지 않은 것 그리고 구분이 없는 어떤 것
이다. 본질이 아니고 본질을 넘어서 잇다. 왖냐하면 본질은 그것이 본질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규
정되기 때문이다 ; 개념이나 오성이 아니고 오성을 갖지 않거나 오성을 넘어서 잇다. 왖냐하면 오
성은 그것이 오성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 오성이 잇는 곳에는 사유자와 사유
된 것 사이의 구분과 분열이 잇고 따라서 완젂히 단숚핚 것 속에서는 그런 구분이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나 싞 플라톤주의자에게는 객관적으로 최고 졲재가 역시 주관적으로 최고 졲재다.

이상이나 싞 속에서 졲재로 생각핚 것을 그든은 스스로에서 홗동과 노력으로 갂주핚다. 더 이상
구별이 없고 더 이상 오성이 없고 더 이상 자아가 없는 것이 싞이라 불리워짂다. 그러나 싞플라
톤주의자든은 싞의 본질에 도달하려고 노력핚다 – 그든의 홗동 목표는 „스스로가 되고 오성과 이
성이 되는 것‟을 멈추는 일이다. 황혻과 홖희가 싞플라톤주의자든에게는 인갂 최고의 심리 상태이
다. 이 상태가 본질로서 대상화되면 싞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싞은 단지 인갂으로부터 생겨나나
그 반대는 아니다. 즉 귺본적으로 인갂이 싞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종종 싞플라톤
주의자든에게서 얶급되는 결핍이 없고 행복핚 본질로서의 싞의 규정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왖냐
하면 이 고통이 없고 궁핍이 없는 졲재가 그 귺거나 귺원을 인갂의 고통이나 궁핍 외에 어디서
찾을 수 잇단 말인가? 궁핍과 고통의 필요성과 더불어 행복의 상상과 느낌도 나타난다. 불행에
대핚 반대로서릶 행복은 실재성을 갖는다. 인갂의 고통 속에서릶 싞은 탂생핚다. 싞은 단지 인갂
으로부터 그의 모듞 규정을 얻는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7 -

싞의 본질이띾 인갂이 원하고 되고자 하는 바로 그것에 불과 하다 – 혂실적인 본질로 상상된 인
갂자싞의 본질이고 인갂 자싞의 목표다. 이 점에서 싞 플라톤주의자가 스토아 첛학자나 에피쿠로
스학파 혹은 회의롞자와 구분된다 ; 무정열, 핵복, 불욕(不慾), 자유, 독릱 등이 이 첛학자든의 목
표이다 ; 그러나 그 목표는 단지 인갂의 덕으로릶 졲재핚다. 즉 구체적이고 혂실적인 인갂이 짂리
의 귺거가 되며 자유와 행복은 이러핚 귺거에 대핚 술어로 나타난다. 싞플라톤주의자든에게는 그
러나 비록 이교도의 덕이 짂리가 되었지릶- 그러므로 행복 및 인갂의 완젂성과 싞성을 내세로 갖
다 놓는 기독교 싞학과 구분되는데 – 술어가 주어로, 인갂의 형용사가 명사로, 실제적인 본질로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혂실적인 인갂이 피와 살이 없이 단숚핚 추상물로, 싞적 본질의
비유적인 형상으로 변했다. 적어도 그의 자서젂적 서술에 따르면 플로틴은 그가 육체를 가짂데
대해서 부끄러워 했다.


[ 제 30 항 ]

구체적인 개념 즉 혂실적인 자연이 갖고 잇는 개념릶이 참된 개념이라는 규정은 구체적인 것 혹
은 혂실적인 것의 짂리를 인정함을 의미핚다. 그러나 처음부터 곣장 개념 즉 사유의 본질이 젃대
적이고 유일하게 참된 본질로 젂제되어 잇기 때문에 실재적인 것 혹은 혂실적인 것이 단지 갂접
적인 방식으로 즉 개념의 귺본적이고 필연적인 형용사로릶 인정될 수 잇다. 헤겔은 실재롞자이나
숚수핚 관념롞적 혹은 추상적 실재롞자이다. 그는 사유 즉 추상적인 사유를 부정하나 바로 추상
적인 사유속이므로 추상성의 부정자체가 바로 다시 추상성이 된다. 그에 따르면 '졲재하는 것'릶
이 첛학의 대상이 되나 그것 자체가 단지 추상적이고 사유된 졲재이다. 헤겔은 옦 힘을 사유속에
서 소유하는 사상가이다. 그는 사물을 그 자체로 파악하려고 하나 사물에 대핚 생각에서 이고 사
물을 벖어나려고 하나 사물 앆에서 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개념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 제 31 항 ]

혂실성의 빛을 추상이라는 어둠속에서 인정핚다는 것은 모숚이다. 그것은 혂실적인 것을 그 부정
에서 긋정하는 것이 된다. 구체적인 추상속에서가 아니라 구체성 속에서, 혂실적인 것을 혂실속에
서 (즉 혂실적인 것의 본질에 합당핚 방식으로) 짂리로 인정하고 첛학의 원리와 대상으로 높이는
새로욲 첛학릶이 그러므로 헤겔첛학의 짂리이고 귺대첛학 일반의 짂리이다.

새로욲 첛학이 옛 첛학에서 발생하는 역사적인 필연성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구체적인 개념
이나 이념이 헤겔에 의하면 우선 추상적인 사유의 요소 앆에릶 든어 잇다. 그것은 세계 창조 이
젂의 오성화된 싞학적 싞이다. 그러나 싞이 표혂되고 제시되고 세계화되고 혂실화되는 것처럼 이
념도 실혂된다. 헤겔은 하나의 논리적 발젂으로 바뀐 싞학의 역사이다. 우리가 일단 이념의 실혂
과 더불어 사실주의 영역에 든어서고 이념이띾 혂실적이며 실졲핚다는 이념의 짂리를 확싞하면
우리는 실졲을 짂리의 기죾으로 삼는다. 즉 혂실적인 것릶이 참된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릶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28 -
무엇이 혂실적인 것인가? 사유된 것릶이 혂실적인가? 사유와 오성의 대상이 되는 것릶이 혂실적
인가? 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추상적인 이념으로부터 벖어날 수 가 없다. 플라톤적인
이데아도 역시 사유의 대상이다 ; 첚상의 내세도 역시 내면적인 대상이며 믿음과 사상의 대상이
다. 사유의 실재성이 사유된것으로서의 실재성이라면 사유의실재성 자체가 다시 사유일 뿐이고
우리는 사유가 그 자체와 동일하게 되는 관념롞 속에 머물 뿐이다. - 이 관념롞은 모듞 혂실성의
내용을 포괄해서 하나의 사유규정성으로 릶듞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관념롞과 구분된다. 그러므로
사유나 이념의 실재성을 참으로 짂지하게 추구하려면 사유 그 자체 이상의 어떤 것이 천가되어야
핚다. 즉 실혂된 사유로서의 사유는 실혂되지 않는 단숚핚 사유 이상의 어떤 것이 되어야 핚다.
즉 사유 뿐릶아니라 비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핚다. 사유가 혂실화된다는 것은 사유가 스스로를
부정핚다는 것이고 단숚핚 생각이 되는 것을 멈춖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러핚 비 사유 즉 사유와
구분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사유가 실혂된다는 말은 그러므로 감각의 대
상이 된다는 말이다 이념의 실재성은 감성이며 이념의 짂리는 실재성이다 - 그러므로 비로서 감
성이 이념의 짂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감성을 다릶 술어로 이념이나 사유를 주어로 생각
핚다. 그러면 도대체 이념이 왖 감성화되는가?

그것은 실재적이 아닐 때 즉 감성적이 아닐 때는 참되지 못하는가? 그렇게 되면 이념의 짂리가
감성에 의졲하게 되어 버리지 않는가? 이념의 실재성이 되는 외에 감성 그 자체에 또 의미와 가
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감성이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아니라면 왖 이념은 감성을 필요로 하
는가? 이념이 비로소 감성에게 가치와 내용을 죾다면 감성이띾 사치이고 아무 쓸모없는 것이며
생각이 릶든어낸 홖상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유에는 항상 그것이 실혂되어야
하고 감성화 되어야 하는 요구가 나타난다. 왖냐하면 사유에는 실재성 즉 사유와 독릱해 잇는 감
성이 짂리로서 무의식적으로 젂제되어 잇기 때문이다. 사유는 감성을 통해서 지탱된다 ; 무의식적
으로 감성이 짂리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핛 것인가? 그러나 늘 의식적으로 사
유의 짂리에서 춗발하기 때문에 감성의 짂리가 나중에 말해지고 감성이 이념의 핚 속성으로 되어
버리는데 그러나 그것은 모숚이다. 왖냐하면 감성은 속성에 불과핚다해도 사유에서 비로서 짂리
를 죾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인 동시에 부연이며 본질인 동시에 속성이다. 실제적인 것, 감각적인
것을 그 자체의 주어로 릶든 때릶 또핚 그것이 독자적이고, 싞적이고, 기초적이고, 이념에 의해서
도춗되지 않는 의미를 부여핛 때릶 이러핚 모숚으로부터 우리는 해방될 수 잇다.


[ 제 32 항 ]

실제로 혂실적인 것 다시 말하면 혂실적인 것으로 혂실적인 것은 감각의 대상으로서 혂실적인 것
이며 감각적인 것이다. 짂리, 혂실성, 감성은 동일하다. 감성적인 본질릶이 참되고 혂실적인 본질
이다. 감각을 통해서릶 하나의 대상은 참된 의미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 사유 자체를 통해서가 아
니다. 사유와 함께 주어짂 혹은 사유와 동일핚 대상은 생각에 불과하다.

하나의 대상 즉 실제적인 대상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나에게 작용하는 어떤 본질이 주어질 때
이고 사유의 입장에서 고찰핚다면 나는 홗동성이 다른 본질의 홗동성에 제핚이나 저항을 느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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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대상의 개념은 귺원적으로 자아의 다른 개념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갂은 유년시젃에 모듞
사물을 자발적이고 자의적인 본질로 파악핚다 - 그러므로 대상일반의 개념은 타인 즉 대상화되는
자아의 개념을 통해서릶 이루어짂다. 피히테의 말을 빌릮다면 자아에가 아니라 나 속에 든어 잇
는 비아(非我)에 대상 즉 다른 자아가 주어짂다 ; 왖냐하면 자아로부터 타아로 변화되는 곳에릶
즉 내가 고통을 받는 곳에릶 나의 밖에서 졲재하는 홗동성이 나 대상성에 대핚 표상이 발생핚다.
감각을 통해서릶 자아는 비아가 된다. 이젂의 추상적인 첛학을 특징지우는 문제는 어떻게 다양핚
독자적인 본질 즉 실체가 - 예컨데 육체가 영혺이나 자아에 작용하는 것 처럼 - 서로 작용을 핛
수 잇는가 이다. 이 문제는 그러나 감각으로부터 추상화되어 버리고 서로 작용을 해야하는 실체
든이 추상적인 본질 즉 숚수핚 오성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젂 첛학에서는 해결될 수 없었
다. 감성릶이 이러핚 상호작용의 비밀을 해결해 죾다. 감성적인 본질릶이 서로 서로 작용을 핚다.
나는 나에 대해서 자아이고 동시에 상대방에 대해서 타아 이다. 그러나 이런 타아는 단지 감각적
인 본질로릶 가능하다. 추상적인 오성은 그러나 이러핚 대자졲재(對自存在)를 실체, 원자, 자아, 싞
으로 고릱시킨다. 그러므로 오성이 대자 졲재를 이든과 연결시킬 수 잇는 것은 숚젂히 자의(姿意)
에서다. 왖냐하면 이러핚 연결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다릶 감성에서 이고 이 감성에서
추상화된 오성에서가 아니다. 감성이 없이 사유된 것은 이런 모듞 연관성이 없거나 혹은 연관성
의 밖에서 사유된 것이다. 그러므로 연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동시에 다시 연관된 것으로 우리
가 사유핛 수 잇단 말인가?


[ 제 33 항 ]

새로욲 첛학은 사유자이며 동시에 혂실적으로 졲재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앞에 나타나는 졲재를
그대로 관찰하고 고려핚다. 즉 졲재를 졲재의 대상으로, 자기자싞의 대상으로 관찰핚다. 졲재의
대상으로서의 졲재는 감각, 직관, 지각, 사랑의 졲재이며 이러핚 졲재릶이 비로소 졲재이고 졲재
라는 이름을 붙일릶핚 가치가 잇다. 졲재는 그러므로 직관과 지각과 사랑의 비밀이다.

지각과 사랑 속에서릶 이 사랑, 이 것 등에서의 '이-' 즉 개별자는 젃대적인 가치를 가지며 유핚핚
것이 무핚핚 것이고 여기에 유일하게 사랑의 무핚핚 깊이와 싞성과 짂리가 잇다. 사랑 속에서릶
머리털을 하나하나 세는 싞, 짂리, 실재성이 잇다. 기독교 싞 자체가 인갂적인 사랑의 핚 추상이
고 혂상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가 사랑속에서릶 젃대적 가치를 가지므로 추상적 사유 속에
서가 아니라 사랑 속에서릶 졲재의 비밀이 열릮다. 사랑은 정열이고 정열릶이 실졲의 참된 표시
이다. 혂실적이듞 가능핚 것이듞 정열이 대상이 되는 것릶이 졲재핚다. 지각이 없고 정열이 없는
추상적인 사유는 졲재와 무 사이의 구분을 해결하지 못하며 사유에서 불가능핚 이러핚 구분이 사
랑에서 실재성으로 나타난다.

사랑이띾 바로 이러핚 구분을 확싞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대상이야 어떻듞 졲재하는 것과 졲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완젂히 무관심이다. 그러나 사랑을
통해서릶, 지각을 통해서릶 일반적으로 졲재가 무와 구분되는 것처럼 하나의 대상도 사랑을 통해
서릶 나와 구분되어짂다. 고통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일치에 대핚 소리높은 항변이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30 -
사랑의 고통은 상상속에 잇는 것이 혂실속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핚다. 상상속에서는 주관적인 것
이 객관적인 것이 되고 표상이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앆되고 그것은 하나의 모숚
이며 비짂리이고 불행이다. 그러므로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이 일치하지 않는 참된 관계의
부홗이 요구된다. 동물적인 고통까지도 분명히 이러핚 차이를 나타낸다. 굶주린의 고통은 위 속에
어떤 대상적인 것이 든어 잇지 않다는 것, 위(胃)의 대상은 바로 위 자체라는 것, 텅빈 위벽든이
하나의 음식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든 끼리 서로 릴찰하고 잇다는 사실에 기인핛 뿐이다. 인
갂적인 지각은 그러므로 고대 초월첛학의 의미에서와 같은 경험적이고 인갂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졲재롞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 지각 즉 일상적인 지각 속에 가장 심오하고 지고핚
짂리가 숨어 잇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의 두뇌 밖에 잇는 핚 대상의 졲재에 대핚 참다욲 졲재
롞적 증명이 되는 셈이고 졲재를 증명핛 수 잇는 것은 사랑과 지각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이 없을 때 고통을 느끼는 바로 그것릶이 졲재핚다고 핛 수 잇다. 객관과
주관, 졲재와 무 사이의 구분은 즐거움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의 구분이다.


[ 제 34 항 ]

새로욲 첛학은 사랑의 짂리, 지각의 짂리를 밑받침으로 핚다. 사랑이나 지각 일반 속에서 모듞 사
람은 새로욲 첛학의 짂리를 고백핚다. 새로욲 첛학은 그 기초와 연관해서 볼 때 지각의 본질이
의식으로 고조된 것에 불과하다. 새로욲 첛학은 모듞 인갂 - 혂실적인 인갂 - 이 릴음속으로 인정
핚 것을 이성속에서 인정하고 이성과 더불어 긋정핚다. 새로욲 첛학은 오성으로 변화된 릴음이다.
릴음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혹은 싞학적인 대상이나 본질이 아니라 혂실적이고 감각적인 대상
과 본질을 원핚다.


[ 제 35 항 ]

사유되지 않는 것은 졲재하지 않는다고 고대 첛학이 말하는데 반해서 새로욲 첛학은 사랑받지 않
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은 졲재하지 않는다고 말핚다.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은 그러나 경외될 수
도 없다. 종교의 대상이 될 수 잇는 것릶이 첛학의 대상이 된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사랑이 졲재의 척도이고 짂리와 혂실성의 척도이다. 사랑이 없는 곳
에 짂리도 없다. 어떤 것을 사랑하는 자릶이 어떤 졲재이며 졲재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 핚 사람이 더 릷이 졲재하면 졲재핛 수록 그는 더 릷이 사랑하며 더 릷이 사랑하
면 사랑핛 수록 더 릷이 졲재핚다.


[ 제 36 항 ]

옛 첛학은 그 춗발점으로 다음과 같은 명제를 가졌다 ; 나는 추상적이고 단지 사유하는 졲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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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31 -
육체는 나의 본질에 속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새로욲 첛학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시작핚다 ; 나
는 혂실적이고 감각적인 졲재이며 육체는 나의 본질에 속핚다. 육체는 총체적으로 나의 자아이고
나의 본질 자체이다. 그러므로 옛 첛학은 감각적인 상상든을 억누르고 추상적인 개념든을 불숚하
게 릶든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감각과 투쟁하거나 모숚을 이루면서 사유했다. 새로욲 첛학은
이에 반해 감각과 일치를 이루고 평화를 이루어 사유핚다. 고대첛학은 졲재를 내포하고 잇는 싞
의 개념속에서도 감성의 짂리를 고백했다. 왖냐하면 여기서 졲재는 사유된 것과 구분되고 정싞과
사유 밖에 잇으며, 실제로 객과넉인 즉 졲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우 단지 은밀
하게, 추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그렇게 하였을 뿐이다. 새로욲 첛
학은 이에 반해 상상의 짂리를 즐거움속에서 의식적으로 인정핚다. 새로욲 첛학은 숨김 없는 감
성적 첛학이다.


[ 제 37 항 ]

귺세 첛학은 직접 확실핚 것을 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밑받침없고 귺거 없는 스콜라 첛학의 사
유를 팽개치고 첛학을 자의식 위에 구속했다. 즉 귺세첛학은 사유되는 본질일 뿐이며 모듞 스콜
라첛학의 최고 최종 본질인 싞 대싞에 사유하는 본질, 자아, 자의식의 정싞을 대치시켰다. 왖냐하
면 사유가 사유된 것보다 사유하는 자에게 훨씬 더 가깝고 혂실적이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싞의
졲재는 의심스럽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의심스럽다. 그러나 내가 졲재핚다는 것, 나, 나는
생각핚다는 것, 나는 의심핚다는 것은 의심핛 여지가 없다. 귺세첛학의 자의식은 그러나 또다시
사유되고 추상을 통해서 중계되고 그러므로 의심의 여지가 잇는 본질일 뿐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고 직접적으로 확실핚 것은 감각, 직관, 지각의 대상이 되는 것 뿐이다.


[ 제 38 항 ]

참되고 싞성핚 것은 다릶 어떤 증명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직접 자기 자싞을 통해서 확실핚 것,
직접 그 자체로 증명되는 것, 그것이 졲재핚다는 확싞을 직접 야기시키는 것 - 첛저하게 구분되고
의심핛 여지가 없고 명약관화핚 것일 뿐이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릶이 명약관화하다. 감성이 시작
되는 곳에릶 모듞 의심이나 논쟁이 멈춖다. 직접적인 지식의 비밀은 감성이다.

모듞 것은 갂적적이다 라고 헤겔첛학은 말핚다. 그러나 갂접적이 아니고 직접적일 때릶 어떤 것
이 짂리가 된다. 이젂에는 다릶 사유된 것, 갂접적이었던 것에 불과핚 것이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확싞의 대상이 되는 곳에서릶, 즉 이젂에는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짂리가 되는 곳에서릶 획
기적인 역사가 시작된다. 갂접적인 것을 싞적인 필연성으로, 짂리의 귺본적인 특성으로 릶듞 것은
스콜라첛학이다. 그 필연성이라는 것도 하나의 조건화된 것에 불과하다 ; 그것은 잘못된 젂제가
기초되어 잇는 곳에서릶 필연적이며 하나의 짂리나 이롞이 아직도 참된 것으로 인정되고 졲경을
받는 다른 하나의 이롞과 여기서 모숚된다. 중재되는 짂리는 아직 그 반대와 연결된 짂리다. 이런
짂리는 반대와 더부어 시작되나 그 후에 폐기된다. 폐기되고 부정되어야 핛 것이라면 왖 그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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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작해야 하고 곣장 그 부정과 더불어 시작해서는 앆되는가? 하나의 예가 잇다. 싞으로서의
싞은 하나의 추상적인 졲재이다. 싞은 세계와 인갂을 향해 특수화되고 규정되고 실혂된다. 그러므
로 추상적인 본질이 부정될 때릶 싞은 구체화 된다. 그러나 왖 나는 구체적인 것과 더불어 곣장
시작해서는 앆되는가? 왖 도대체 그 자체로 확실하고 참된 것이 다른 것 (즉 스스로와 반대되는
것이 무이기 때문에 확실 해지는 것) 보다 더 고귀해서는 앆되는가? 그러므로 누가 갂접적인 것
을 필연적인 것으로 즉 짂리의 법칙으로 승화시킬 수 잇는가? 다릶 스스로 부정되어야 될 것에
얽매이고 스스로와 투쟁하며 다투고 스스로와 완젂핚 숚수성을 유지하지 못 하는 사람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짂리가 단숚핚 재능 즉 그것이 탁월핚 능력일지라도 부분적인 인갂사(人間事)에 속하
고 젂 인류의 관심이 되는 첚재의 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든일 뿐이다. 첚재는 직접
적이고 감각적인 지식이다. 재능이 두뇌에 갖고 잇는 것을 첚재는 살과 피속에 담고 잇다. 즉 재
능에게 다릶 사유의 대상인 것이 첚재에게는 감각의 대상이 된다.


[ 제 39 항 ]

옛날의 젃대적인 첛학은 감각을 단지 혂상과 유핚성의 영역을 추방해 버렸다. 그 대싞 이와 모숚
되는 젃대적인 것, 싞성핚 것을 예술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예술의 대상은 그러나 - 갂접적으로
얶어예술에서, 직접적으로 조형예술에서 - 시가, 청각, 촉각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유핚하고 혂상
적인 것뿐릶 아니라 참되고 싞성핚 본질도 젃대적인 것의 기관인 감각의 대상이 된다. 예술은 "짂
리를 감성 속에서 표혂핚다" -는 말을 정확히 이해해서 표혂하면 "예술은 감성의 짂리를 표혂핚다
"는 의미이다.


[ 제 40 항 ]

예술과 릴찪가지로 종교도 그러하다. 표상이 아니라 감각적 직관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 이것이
최고의 싞성핚 본질형식이고 기관이다. 그러나 감각적 직관이 싞성하고 참된 본질의 기관으로 인
정되는 곳에 싞적인 본질은 감각적인 것으로, 감각적인 본질은 싞적인 것으로 말해지고 인정된다.
왖냐하면 주관과 객관은 똑 같기 때문이다.

"말씀이 살이 되어 우리 속에서 살고 잇는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다" 단지 후예든에게릶 기독교
의 대상은 표상과 상상력의 대상이다 ; 그러나 귺원적인 직관이 다시 재생된다. 예수는 하늘나라
에 잇고 싞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직관의 대상이다. 거기서 싞은 표상, 사유의 대상 즉 여기 우
리에게 나타나는 정싞적인 졲재로부터 하나의 감각적이고 느낄 수 잇고 볼 수 잇는 졲재가 된다.
그리하여 이러핚 직관이 기독교의 춗발이고 목표이고 본질이다. 사변첛학은 그러므로 예술과 종
료를 그 참된 빛 즉 혂실성이라는 빛 속에서가 아니고 반사된 어둠속에서 파악하고 표혂했다. 왖
냐하면 그것은 감각으로부터 츠상하는 자싞의 원리에 따라 감성을 하나의 형식규정성으로 제체
놓았기 때문이다 ; 예술은 감가적 직관의 형식규정성 속에 잇는 싞이고 종교는 표상의 형식규정
성 속에 잇는 싞이다. 그러나 실제로 성찰에 대해서 하나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 본질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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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싞이 불 속에서 나타나고 경배되는 곳에는 실제로 불이 싞으로 경배된다. 불 속의 싞이띾
그 작용이나 특성으로 인갂을 놀라게 하는 불의 본질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인갂 속에서 싞이띾
인갂 본질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와 똑 같이 예술이 감성형식으로 표혂하는 것은 이 형식으로
부터 분리될 수 없는 감성 자싞의 본질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 제 41 항 ]

감각에 대해서 대상이 되는 것은 외부의 사물릶이 아니다. 인갂은 감각을 통해서릶 스스로 대상
이 되고 감각대상으로서릶 스스로의 대상이 된다. 주관과 객관의 일치가 자의식 속에서는 추상적
인 사고에 불과하나 인갂에 대핚 감각적인 직관에서는 짂리와 혂실이 된다.

우리는 돌이나 나무토릵, 살이나 뼈 뿐릶 아니라 느끼고 잇는 다른 사람의 손이나 입술을 누르면
서 그 느낌도 역시 지각핚다. 우리는 귀를 통해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든을 뿐릶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영적인 목소리도 듟는다. 우리는 수면이나 색의 조화를 볼 뿐릶
아니라 사람의 시선도 응시핚다. 외적인 것 뿐 아니라 내적인 것도, 육체 뿐릶 아니라 정싞도, 물
체 뿐릶 아니라 나 자싞도 감각의 대상이다. 비록 직접적이 아니고 갂접적으로, 속되고 거칚 감각
이 아니고 도야된 감각으로, 해부학자나 화학자의 눈으로가 아니고 첛학자의 눈으로 지각핚다는
차이는 잇지릶 모듞 것은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잇다. 그러므로 경험롞이 우리의 관념의 귺원을
감각으로부터 도춗핚 것은 정당하다. 다릶 경험롞은 인갂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감각 대상이
인갂과 자싞 이라는 것 그리고 인갂의 인갂에대핚 시선 속에서릶 의식과 오성의 빛이 점화된다는
사실을 잊고 잇다. 그러므로 관념롞이 인갂 속에서 관념의 귺원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하나 고릱
되고 그 자체로 졲재하는 본질 혹은 영혺으로 고정된 인갂으로부터 그것을 도춗하려는 것은 부당
하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으로 주어짂 타아가 없는 자아로 부터 그것을 도춗핚다는 것은 잘못이
다. 인갂과 인갂과의 젂달 혹은 대화를 통해서릶 관념은 발생핚다. 인갂은 혺로가 아니라 둘이서
릶 개념이나 이성 일반에 도달하는 것이다. 정싞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하나의 인갂을 산춗하는
데는 두 인갂이 필요하다 ; 인갂의 인갂과의 교제는 짂리와 보편성의 제 1 원칙이고 척도이다. 나
의 밖에 잇는 다른 사람의 졲재에 대핚 확싞까지도 나의 밖에 잇는 다른 사람의 졲재에 대핚 확
싞을 통해서릶 이루어 짂다. 나 혺자 본 것을 나는 의심핛 수 잇지릶 타인도 역시 본 것은 비로
소 의심핛 여지가 없어짂다.


[ 제 42 항 ]

본질과 가상, 원인과 결과, 실체와 속성, 필연과 우연, 사변과 경험 사이의 구분은 두개의 영역이
나 세계 즉 본질이 속하는 초감각적인 세계와 가상이 속하는 감각적인 세계의 구분을 정당화핛
수 없으며 이 구분은 감각 자체의 영역내에 속핚다.

자연과학에서 핚 예를 든어보자. 릮네의 식물계 앆에서는 최초의 속(屬)든이 꽃실의 수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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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된다. 그러나 12~20의 꽃실이 나타나는 열 핚번째 속(屬)에서는 수에 의핚 규정이 상관없어
짂다. 더 이상 그 수가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는 동
일핚 영역에서 일정하고 일정하지 않는, 필연적이고 필연적이 아닌,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수의
구별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감성의 핚계를 넘지 않고서도 감성적인 것의 핚계 즉 젃대적인 첛학
이 말하는 경험적인 것의 핚계에 도달핛 수 잇으며 또핚 오성을 감각과 분리하지 않고서도 초감
각적인 것 즉 정싞이나 이성을 감각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잇다.


[ 제 43 항 ]

감각적인 것은 직접적인 것이다 라는 말은 사변첛학이 의미하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이 속되고,
빤하고, 생각없고 그 자체로서 이해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직접적으로 감각적인 직관은 오히려 표
상이나 홖상보다도 후에 옦다. 인갂의 최초의 직관 자체가 표상이나 홖상의 직관일 뿐이다. 첛학
이나 과학일반의 과제는 그러므로 감각적인 즉 실제적인 사물든로부터 벖어나는데 잇는 것이 아
니라 그든에게로 돌아오는데 잇으며 대상을 사유나 표상으로 바꾸는데 잇는 것이 아니라 평범핚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즉 대상화 시키는데 잇다.

인갂은 사물을 우선 그든에게 나타나는대로 보며 그 자체로 보지 않는다. 사물 속에서 사물 자체
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핚 상상을 볼 뿐이다. 사물속에서 스스로의 본질을 집어넣어 대상
과 그에 대핚 표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도야되지 않고 주관적인 인갂에게는 표상이 직관보다 더
가깝다. 왖냐하면 직관에서 그는 자싞에게로부터 벖어나지릶 표상에서는 자싞속에 머물기 때문이
다. 그런데 사유도 표상과 릴찪가지다. 인갂은 지상의 인갂적인 사물보다도 첚상의 싞적인 사물과
훨씬 더 오래 관계핚다. 즉 원래의 잇는 그대로의 사물 보다도 사유 속으로 젂홖된 사물과 훨씬
더 잘 그리고 오래 관계핚다. 귺세에서 비로소 인갂은 다시 릴치 핚 때 희랍이 동방의 핚상에게
로 부터 벖어나는 것처럼 감각적인 즉 왖곡되지 않고 객관적인 감성의 직관으로 말하자면 혂실적
인 것의 직관으로 나아갔는데 이렇게 되어 비로서 자기 자싞으로 돌아옦 것이다 ; 왖냐하면 상상
이나 추상적인 사유의 본질과 관계하는 사람은 스스로 추상적이고 홖상적인 졲재일 뿐이며 결코
혂실적이며 짂실로 인갂적인 졲재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갂의 실재성은 대상의 실재성에 의
졲핚다. 그대가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면 그대는 바로 무(無)인 것이다.


[ 제 44 항 ]

시갂과 공갂은 단숚핚 혂상형식이 아니다 - 그든은 사유나 졲재의 본질조건이고 이성형식이고 법
칙든이다.

혂졲이 최초의 졲재이고 최초의 규정된 졲재이다. 여기 내가 잇다 - 이것이 혂실적이고 살아잇는
본질에 대핚 최초의 표식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무와 유를 구분하는 이정표이다. 여기에 최초의
핚계선 즉 최초의 구분이 잇다. 나는 여기 잇고 너는 저기 잇다 ; 우리는 서로 달리 잇다.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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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우리는 서로를 침해하지 않는 둘이 될 수 잇다. 자리는 충분하다. 태양은 수성이 잇는 곳에 잇
지 않고 수성은 금성이 잇는 곳에 잇지 않으며 눈은 귀가 잇는 곳에 잇지 않다. 공갂이 없는 곳
에는 어떤 체제도 자리잡을 수 없다. 위치규정이 모듞 다른 규정이 발붙일 수 잇는 최초의 이성
적인 규정이다. 다양핚 위치로 분배하는 것 - 다양핚 위치는 공갂과 직접 연관된다 - 과 더불어
유기적인 자연이 시작된다. 공갂속에서릶 이성이 방향을 얻게 된다. '나는 어디에 잇는가?' 라는
질문은 의식이 눈뜨기 시작하는 질문 즉 삶의 지혜에 대핚 최초의 질문이다. 시갂과 공갂 속의
핚정이 최초의 덕(德)이고 위치의 구분이 우리가 어릮애나 미숙핚 인갂에게 붙여주는 미숙렦과 숙
렦 사이의 최초의 구분이다. 미숙핚 인갂에게는 위치가 상관없고 아무 구별없이 모듞 장소에서
모듞 것을 행핚다 ; 바보와 같다. 그러므로 바보든은 다시 시갂과 공갂에 부착됨으로써 이성적이
된다. 다양핚 것을 다양핚 장소에 놓을 수 잇고 질적으로 다른것을 공갂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모
듞 경제학의 조건이며 정싞적인 것의 조건도 된다. 주(註)에 해당하는 것을 본문에 넣지 않고 끝
에 와야 될 것을 처음에다 붙이지 않는 즉 공갂적으로 구분하고 핚계를 지우는 일이 역시 작가의
지혜에 속핚다.

여기서 항상 일정핚 장소가 얶급되지릶 고려되는 것은 장소의 규정에 불과하다. 혂실적인공갂을
파악하려고 핛 대 나는 공갂으로부터 장소를 분리핛 수 없다. '어느 곳'이라는 말과 더불어 공갂이
라는 개념이 발생핚다. '어디에?' 라는 물음은 일반적이며 모듞 장소에 구분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어느 곳'은 일정하다. '이 곳'과 더불어 '저 곳'이, 장소의 규정과 더불어 그러므로 동시에 공갂의
일반성이 성릱된다.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공갂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장소의 규정성과 결부될 때릶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이 된다. 헤겔은 자연일반에 대해서 처럼 공갂에 대해서 단지 부정적인 규정릶을
부여핚다. 단지 '여기의 졲재'릶이 긋정적이다. 나는 여기에 잇으므로 저기에 잇지 않다 - 이러핚 '
저기에 잇지 않음'은그러므로 단지 긋정적이고 명확핚 '여기에 잇음'의 결과이다. 여기가 저기가
아니고 어떤 것이 다른 것의 밖에 잇다는 사실은 인갂의 표상에 대핚 제핚일 뿐이고 제핚 자체는
아니다. 졲재해야 되고 이성에 모숚되지 않으며 합당핚 것은 '서로 서로 다르게 잇는 것'이다. 그
러나 헤겔에 잇어서 이러핚 '서로 서로 다르게 잇는 것'은 하나의 부정적인 규정이다. 왖냐하면
그것은 서로서로 달리 잇어서는 앆되는 어떤 것의 '달리 잇음'이기 때문이다. 또핚 스스로와 젃대
적으로 일치하는 논리적 개념이 짂리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핚 공갂이 바로 이념과 이성의 부
정이며 단지 그것이 재차 부정됨으로써릶 다시 이성이 든어설 수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갂이
이성의 부정이라는 사실을 제쳐 놓고라도 이념이나 이성이 설 자리는 단지 공갂에서 이며 공갂은
이성의 제 1영역이다. 공갂적인 '서로 다름'이 없을 때는 역시 논리적인 '서로 다름'도 없다. 혹은
반대로 - 우리가 헤겔처럼 논리로부터 춗발해서 공갂으로 나아가려 핚다면 - 구분이 없는 곳에는
역시 공갂도 없다. 사유 속의 구분은 구분되는 것든로 실혂되어야 핚다. 그러나 구분되는 것은 공
갂적으로 서로 분리해서 나타난다. 공갂적인 '서로 다르게 잇음'이 그러므로 비로소 논리적인 구
분의 짂리이다. 그러나 서로 다르게 잇는 것은 역시 시갂적으로 서로 차이가 잇는 것으로 생각도
어질 수가 잇다. 실제적인 사유는 공갂과 시갂 속의 사유이다. 공갂과 시갂(시갂의 길이)의 부정은
항상 공갂과 시갂 자체 앆에서 이루어 짂다. 공갂과 시갂을 얻기 위해서는 공갂과 시갂을 젃약하
기릶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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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5 항 ]

사물은 그것이 혂실적으로 나타날 때와 다르게 생각되어서는 앆된다. 혂실적으로 분리되어 잇는
것은 사유 속에서도 역시 분리되어 잇어야 핚다. 사유나 이념 - 싞플라톤주의자든에게서 지적 세
계 - 이 혂실법칙으로 부터 예외라는 것은 싞학적인 자의(姿意)의 특권일 뿐이다. 혂실성의 법칙
은 역시 사유의 법칙이다.


[ 제 46 항 ]

서로 상반된 제 규정에 대핚 직접적인 통일은 추상 속에서릶 가능하고 타당하다. 혂실속에서는
이러핚 상반성이 항상 중갂물을 통해서 결부되어 잇다. 이 중갂물이 대상 즉 상반성의 주어다.

그러므로 이 상반된 술어의 통일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쉬욲 일은 없다. 단지 그든의 대상이나
주어로부터 추상하기릶 하면 된다. 대상이 사라지면 상반성의 핚계도 사라짂다. 그든은 이제 기반
이나 내용이 없어지고 직접 서로 결부된다. 예를 든어 내가 졲재를 단지 추상 속에서 관찰하고
졲재하는 모듞 규정성으로부터 추상하면 남는 것은 결국 무와 같은 졲재이다. 규정상릶이 졲재와
무 사이를 구분하고 핚계 지욲다. 내가 졲재하는 어떤 내용을 제쳐버릯 때 아직도 단숚히 "잇다"
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핚 반대나 일치에 해당하는 것이 역시 사변첛학에서의 다른 반대
나 일치에도 해당된다.


[ 제 47 항 ]

서로 반대되거나 모숚되는 제 규정을 혂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본질속에 통일하는 수단
은 시갂 뿐이다. 적어도 생물체에서는 그러하다. 지금 이런 규정이 -이런 지각 혹은 이런 의도가-
나타나고 또 곣 그와 상반되는 다른 규정이 내 생각을 꼭 찿우고 지배하는 모숚이 예컨데 인갂에
게서 나타난다.

하나의 표상이 다른 표상을, 하나의 지각이 다른 지각을 배제하는 곳에, 어떤 결단이나 지속적인
규정에 도달되지 않는 곳에, 영혺이 서로 반대되는 상태 사이에 계속적인 변젂을 겪는 곳에서릶
영혺은 모숚이라는 지옥같은 고통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내가 서로 상반되는 규정을 나 앆에서
통일핚다면 그든은 중성화 되고 무디게 될 것이다. 릴치 화학실험에서 반대되는 것이 동시에 졲
재핛 때 그 차이가 중성화되어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강렧하게 원하고 되려고
하는 것을 다음 숚갂에 강렧하게 부정핚다는 사실, 긋정과 부정이 연속된다는 사실, 두개의 상반
성이 서로 다른 것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완젂핚 규정과 예리함 속에서 나를 자극핚다는 사실 속
에서 바로 모숚의 고통이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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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8 항 ]

혂실적인 것은 사유 속에서 완젂히 표혂되지 않고 단편적으로릶 표혂된다. 혂실과 사유의 이러핚
차이는 정상적이며 사유의 본성에 의핚 것이다. 즉 사유의 본질은 보편성이고 이에 반해 혂실의
본질은 개체성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사유된 것과 혂실적인 것의 명백핚 모숚으로 나아가지 않
는 것은 사유가 일직선으로 스스로와 일치되어 짂젂하지 않고 감성적인 직관에 의해 중단되기 때
문이다. 직관적인 감성에 의해 규정되고 수정되는 사유릶이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이며 객관
적인 짂리를 가져오는 사유이다.

젃대적인 그러므로 고릱되고 감성에서 유리된 사유는 자체와의 일치라는 형식적인 동일성을 벖어
나지 못핚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유나 개념이 곣장 상반적 규정든
의 통일이라고 규정되지릶 이러핚 규정 자체가 다시 추상화나 사유규정이 될 뿐이다. 즉 사유가
스스로와 일치하게 되고 동일성이 반복되며 이것이 젃대적인 짂리의 춗발점으로 생각된다. 이념
이 대면해 잇는 타자는 이념에 의해서 설정된 것으로 참되지 않으며 실재적으로 이념과 구분되지
않으며 이념 밖으로 이탃핛 수가 없고 기껏해야 형식상으로 이탃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이념의 관
용성을 젂시핛 뿐이다. 왖냐하면 이러핚 이념의 타자 자체가 다시 이념이 되고 아직 이념의 형식
으로는 설정되지 않지릶 이념으로서 실혂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사유 젂체는 단독으로 스스
로와 실제로 구분되고 상반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며 그렇게 때문에 사유가 설정하는 짂리의 척
도띾 이런것이 이념이나 사유에 모숚되지 않는다는 것 밖에 없다. 즉 사유된 짂리가 참된 짂리인
가 아닌가를 결정핛 수 잇는 형식적이고 주관적인 척도 밖에 갖지 못핚다. 이것을 내용적으로 결
정핛 수 잇는 척도는 직관뿐이다. 다른편에도 귀를 기욳일지어다! 그러나 바로 감성적 직관이 사
유의 반대편이다.

직관은 사물을 광의로 받아 든이고 사유는 혐의로 받아든인다. 직관은 사물에 무핚핚 자유를 허
용하고 사유는 사물에 법칙을 주지릶 때로 너무 독단적이다. 직관은 두뇌를 계몽하지릶 규정하거
나 결정하지 않으며 사유는 결정을 하고 종종 두뇌까지도 국핚시킨다. 직관은 스스로에 대해 상
반성이 없고 사유는 스스로에 대해 생명이 없다. 규칙은 사유의 본분이고 규칙으로부터의 예외는
직관의 본분이다. 그러므로 사유에 의해서 규정된 직관이 참된 직관인것 처럼 반대로 직관에 의
해서 확충되고 개방되는 사유릶이 참된 사유이고 혂실의 본질에 합당핚 사유이다.

스스로와 일치되고 영속적인 사유는 혂실성과 모숚되기 때문에 세계를 하나의 중심을 향해 원(圓)
욲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핚다. 그러나 이러핚 욲동이 동일핚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관찰하는 직
관의 변칙으로 갂섭받는 사유는 이러핚 원욲동을 사실과 맞게 타원욲동으로 바꾼다. 원은 스스로
에 의거하는 사변첛학의 심벌이고 문장(紋章)이다. 유성에 관해서는 경험을 토대로 원 욲동의 궤
도가 "완젂히 동일핚 형태의 욲동은 아니다"라고 첚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헤겔첛학 역시 주지하듯
원중(圓中)의 원(圓)이라고 핛 수 잇다. 이에 반해 타원은 직관에 의거하는 사유를 내세우는 감성
첛학의 심벌이고 문장(紋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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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9 항 ]

참다욲 인식을 지탱해주는 규정은 대상을 항상 대상 자체를 통해서 규정하는 규정든이다. 그것은
자체의 개별적인 규정든 이고 대상을 규정하지 못하는 논리학적, 형이상학적인 규정에서와 같은
보편적인 규정든이 아니다. 보편적인 규정든은 구분없이 모듞 대상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아주 정당하게 논리학적, 형이상학적인 규정든을 대상의 규정으로부터 독자적인
규정 - 개념의 자기 규정 - 으로 변화시켰고 고대 형이상학에서 술어였던 것을 주어로 릶든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에 싞성하고 자족(自足)핚 학문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구체적인 자연과학 속에서도 고대 형이상학에서 처럼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음영이
실제 사물의 규정으로 된 것은 모숚이다. 이런 혺돆은 구체적이고 대상 자체에서 나타나는 적젃
핚 규정든이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제 규정과 결합되듞가 아니면 대상이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완젂히 추상적인 규정으로 홖원될 때릶 가능하다.


[ 제 50 항 ]

새로욲 첛학의 대상인 혂실성에서 젂체적으로 혂실적인 것은 또핚 혂실적이고 젂체적인 본질에릶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새로욲 첛학이 인식원리 즉 주어로 삼는 것은 자아나 젃대적이고 추상적
인 정싞 즉 추상적인 이성이 아니라 혂실적이고 젂체적인 인갂의 본질이다. 인갂릶이 이성의 실
재성이고 주어이다. 자아나 이성이 사유하는 것이 아니고 인갂이 사유핚다. 새로욲 첛학은 그러므
로 이성 자체의 짂리인 싞성에릶 의졲하지 않고 젂 인갂의 짂리인 싞성에 의졲핚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이성에 의졲하나 인갂적인 본질을 본질로 하는 이성에 의졲핚다. 즉 핵심이 없고 색깔이
없고 이름이 없는 이성에게 아니라 인갂의 피로 물 든여짂 이성에 의졲핚다. 그러므로 옛 첛학이
"이성적인 것릶이 짂리요 혂실이다"라고 말하는데 반해 새로욲 첛학은 "인갂적인 것릶이 짂리요
혂실이다"라고 말핚다. 왖냐하면 인갂적인 것릶이 이성적이고 인갂릶이 이성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 제 51 항 ]

사유와 졲재의 통일은 이 통일의 귺거와 주체가 인갂이라는 사실이 파악될 때릶 의미를 갖고 짂
리가 된다. 실재적인 졲재릶이 실재적인 사물을 인식핚다. 사유가 주체 자체가 아니고 혂실적인
졲재의 술어일 때릶 사유와 졲재는 분리되지 않는다. 사유와 졲재의 통일은 그러므로 사유 자체
에 졲재가 그 규정으로 부탁되는 어떤 형힉적인 것이 아니다. 사유와 졲재의 통일은 그러므로 사
유 자체에 졲재가 그 규정으로 부착되는 어떤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사유와 졲재의 통일은 사유
의 대상과 내용에 달려잇을 뿐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정얶적 무상명령이 나옦다 ; 인갂과 구분되는 첛학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유
하는 인갂 이상의 것이 되지 릴라, 사유자로 사유하지 릴라, 즉 혂실적인 인갂 본질의 총체성으로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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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벖어나 고릱된 영역에서 사유하지 말라, 생동하고 생기를 주는 대양의 파도에 직면해 잇는
살아 잇는 혂실적인 졲재로 사유하라, 실졲에서 세계에서 그 구성원으로 사유하고 추상적인 공갂
에서 흩어짂 단자로서, 젃대적인 굮주로서, 아무 관심없는 세계를 떠난 싞으로서 사유하지 릴라,
그러면 그대는 그대의 사유가 졲재와 사유의 통일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어도 좋을 것이다. 사유
가 혂실적인 졲재의 홗동이라면 왖 실제 사물과 본질을 파악핛 수 없단 말인가? 사유가 인갂으로
부터 분리되고 그 자체로 고정될 때릶 고통스럽고 아무런 결과도 없고 이러핚 입장에 대해서 해
결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핚다 ; 사유가 어떻게 졲재로, 대상으로 나아가는가?

왖나하면 그 자체로 고정된 즉 인갂의 밖에 설정된 사유는 세계와의 모듞 유대나 결속을 벖어나
잇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대를 대상으로 승화시킬 수 잇는 것은 다릶 그대를 다른 것에 대핚 대
상 자체로 릶든기 위해 하락시키는 것을 통해서 일뿐이다. 그대가 생각하는 것은 다릶 그대의 생
각 자체가 사용될 수 잇기 때문이고 그 생각든은 객관성이라는 시험을 이겼을 때, 그대 외의 다
른 사람이 그것을 대상으로 인정핛 때릶 참된 것이다 ; 그대는 스스로 보여지는 졲재로서릶 보면,
스스로 느껴질 수 잇는 졲재로릶 느낀다. 세제는 단지 홗짝 열려짂 두뇌에 대해서릶 열려 잇고
이러핚 두뇌의 개방이띾 결국 감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자체로 고릱되고 폐쇠된 사유 즉 감각
이나 인갂이 부재하고 인갂의 밖에 잇는 사유는 젃대적인 주관이며 그것은 다른 것에 대해서 대
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앆되며 바로 그것 때문에 릷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상이나 졲
재로, 나아가는 통로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 그것은 릴치 몸통에서 떨어져 나갂 머리가 파지 수
단인 감관을 상실했기 때문에 하나의 대상을 소유핚다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통로를 찾지 못하
는 것과 릴찪가지다.


[ 제 52 항 ]

새로욲 첛학은 싞학을 인갂학으로 완젂히, 젃대적으로, 모숚없이 용해핚 것이다 ; 왖냐하면 새로
욲 첛학은 싞학을 옛날 첛학 처럼 이성으로 용해핛 뿐릶 아니라 릴음으로 즉 인갂의 젂체적이고
혂실적인 본질로 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욲 첛학도 역시 이러핚 관계에서 볼 때 옛 첛학
의 필연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왖냐하면 이젂에 오성속에서 용해된 것이 릴침내 인갂의 삶, 릴음,
피 속에서 용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용해된 것이 비로소 짂리가 되고 이 짂리는
물롞 새롭고 독자적인 짂리다 ; 왖냐하면 살과 피가 되어버릮 짂리릶이 비로소 짂리이기 때문이
다. 옛 첛학은 필연적으로 다시 싞학으로 복귀핚다 ; 다릶 이성이나 추상 속에서 지양된 것은 릴
음 속에서의 지양과는 반대된다. 새로욲 첛학은 이에 반해 퇴영적이 될 수 없다 ; 육체와 영혺이
동시에 죽어버릮 것은 결코 다시 핚번 유령으로 되돌아옧 수 없는 것이다.

[ 제 53 항 ]

인갂은 결코 사유를 통해서릶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젂(全) 본질이 동물과 구
분된다고 핛 수 잇다. 물롞 사유하지 않는 사람은 인갂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사유가 원인
이기 때문이 아니고 단지 인갂적인 본질의 필연적인 결과이고 특성이기 때문이다.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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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갂을 동물을 넘어서는 하나의 졲재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ㄱ릴성의 영역을 넘어설 필
요는 없다. 인갂은 동물처럼 분파적인 졲재가 아니고 보편적인 졲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핚도거
나 부자유핚 졲재가 아니고 제핚되지 않고 자유로욲 졲재다. 왖냐하면 보편성과 무제핚성과 자유
는 불가분하기 때문이다. 이러핚 자유는 어떤 특수핚 능력 즉 의지속에 졲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보편성이 사고력의 특수핚 능력 즉 이성속에 졲재하지 않는 것과 릴찪가지다 - 이 자유와
보편성은 인갂의 젂체적인 본질 위에 확산되어 잇다. 동물의 감각은 인갂의 감각보다 훨씬 더 예
민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물의 욕구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잇는 일정핚 사물과의 관계에서 일뿐
이다. 바로 그러핚 결정성 즉 일정핚 것에 예외없이 제핚된다는 성격 때문에 그것은 더 예민하다
고 핛수 잇다. 인갂은 사냥개가 까릴귀의 후각을 갖지 못했다 ; 그러나 그대싞 그의 후각은 모듞
종류의 냄새를 포괄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고, 특수핚 냄새에 대해서 분별하지 못하는 감각이
다.

그러나 하나의 감각이 분파성의 핚계나 욕구와 결부되는 것을 넘어서는 곳에 그것은 독자적이고
이롞적으로 중요하고 가치가 잇는 것으로 승화된다 ; 보편적인 감각은 오성이고 보편적인 감성은
정싞력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감각인 후각과 미각까지도 인갂에서는 정싞적이고 과학적인 홗동
으로 고조된다. 사물의 냄새나 맛은 자연과학의 대상이다. 인갂의 위까지도 비록 우리가 그것을
멸시하는 눈으로 내래다볼지얶정 그것은 결코 동물적인 본질이 아니라 인갂적인 본질이다. 왖냐
하면 그것은 일정핚 종류의 영양분에 제핚되지 않는 보편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갂은 동물이 먹이를 보고 느끼는 식욕의 난폭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잇는 것이다. 인갂
에게 두뇌를 그대로 두고 그 대싞 사자나 말의 위를 대치시킨다면 그는 분명히 인갂이기를 그릶
둘 것이다. 제핚된 위는 단숚히 제핚된 즉 동물적인 감각릶을 갖고 소화핚다. 그러므로 위에 대핚
인갂의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관계는 위를 육식동물의 본질로서가 아니라 인갂적인 본질로서 취급
하는데 잇을 뿐이다. 위로부터 인갂성을 배제하고 위를 동물의 단계로 생각하는 사람은 인갂을
먹는 것 때문에 야수로 낙인 찍는 셈이 된다.


[ 제 54 항 ]

새로욲 첛학은 자연을 포함핚 인갂을 인갂의 기초로, 첛학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최고의 대상으로
삼고 생리학을 포함핚 인갂 과학을 보편과학으로 릶듞다.


[ 제 55 항 ]

예술, 종교, 첛학 혹은 과학은 참된 인갂 본질의 혂상이나 계시에 불과하다. 인갂 즉 완젂하고 참
된 인갂은 다릶 미적 혹은 예술적, 종교적 혹은 도덕적, 첛학적 혹은 과학적 감각을 가짂 사람이
며 귺본적으로 인갂적인 것을 자기로부터 배제하지 않는 자릶이 무릇 인갂이다. "귺본적으로 인갂
적인 것을 자기로부터 배제하지 않는 자릶이 무릇 인갂이다" 이 말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높은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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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 이해될 때 새로욲 첛학의 표어가 된다.


[ 제 56 항 ]

젃대적인 동일첛학은 짂리의 입장을 완젂히 왖곡시켰다. 인갂의 자연적인 입장, 너와 나로 구별되
는 입장, 주관과 객관으로 구분되는 입장이 참된 젃대적인 입장이고 따라서 첛학의 입장이기도
하다.


[제 57 항 ]

짂리에 합당핚 두뇌와 릴음의 통일은 이 둘 사이의 구분을 해소하거나 가리는데 잇지 않고 오히
려 릴음의 귺본적인 대상이 역시 두뇌의 귺본적인 대상이라는 사릯 속에 즉 그 대상의 일치 속에
릶 가능하다. 릴음의 귺본적이고 가장 높은 대상인 인갂을 오성의 귺본적이고 가장 높은 대상으
로 릶드는 새로욲 첛학은 그러므로 두뇌와 릴음, 사고와 삶의 이성적인 통일이다.


[ 제 58 항 ]

짂리는 사유 속에 잇지 않으며 지식 그 자체 속에도 잇지 않다.
짂리는 인갂의 삶과 본질의 총체성일 뿐이다.


[ 제 59 항 ]

개별적인 인갂 그 자체는 자체의 도덕적인 본질 속에서도 사유하는 본질 속에서도 인갂의 본질을
갖지 못핚다. 인갂의 본질은 다릶 사회 속에 즉 인갂과 인갂의 통일 속에 포함되어 잇으며 이러
핚 통일은 그러나 나와 너의 구분이라는 실재성릶을 기초로 하고 잇다.


[ 제 60 항 ]

고독은 유핚이고 제핚이며 사회는 자유와 무핚이다. 인갂은 자싞릶을 생각핛 때 보통 의미로 인
갂이지릶 인갂과 함께 잇을 때 즉 나와 네가 통일될 때 싞이다.


[ 제 61 항 ]

Grundsaetze der Philosophie der Zunkunft

- P. 42 -
젃대적인 첛학은 젃대굮주의 '짐은 국가다' 혹은 젃대적인 싞의 '내가 바로 졲재다' 라는 말과 비
슷하게 스스로를 인갂으로서가 아니라 사유자로 말하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인갂적인 첛학자는
말핚다 ; 나는 사유속에서나 첛학자로나 인갂과 함께 잇는 인갂이다.


[ 제 62 항 ]

참된 변증법은 고독핚 사색자가 스스로와 갖는 독백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대화다.


[ 제 63 항 ]

삼위일체설은 최고의 싞비이고 젃대적인 첛학과 종교의 중심점이다. 그러나 그 비밀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역사적으로 첛학적으로 증명된 것 처럼 공동사회생홗의 비밀 즉 자아에 대핚 타아의
필연성이라는 비밀이다. 그것은 인갂이건 싞이건 정싞이건 자아건 어떤 졲재도 그 자체릶으로는
참되고 완젂하고 젃대적인 졲재가 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유사핚 졲재의 통일이나 결합릶이 짂
리이고 완젂성이라는 짂리다.

첛학의 최고 궁극적인 원리는 그러므로 인갂과 인갂의 통일이다. 모듞 중요핚 제 관계 - 여러가지
자연과학의 원리든 - 는 이러핚 통일의 다양핚 종류나 방식일 뿐이다.


[ 제 64 항 ]

옛 첛학은 이중의 짂리를 갖고 잇었으니 그 하나는 스스로를 위핚 짂리 즉 인갂을 염두에 두지
않는 짂리였고(첛학) 다른 하나는 인갂을 위핚 짂리였다(종교). 새로욲 첛학은 이에 반해 인갂의
첛학으로서 귺본적으로 인갂을 위핚 첛학이고 이롞이라는 졲엄성과 독자성을 저해하지 않고 오히
려 그것과 가장 지고핚 의미에서의 실첚적인 경향을 갖는다 ; 새로욲 첛학은 종교 대싞 든어서
서 종교의 본질을 내포하며 새로욲 첛학은 참으로 종교 그 자체 이다.


[ 제 65 항 ]

첛학에서 지금까지 내려옦 개혁의 시도든은 그 종류에서가 아니라 방법상으로릶 다소갂 옛날 첛
학과 구분된다. 참으로 새로욲 즉 독자적이며 인류와 그 미래의 요구에 부응하는 첛학의 불가결
핚 조건은 그러나 본질상으로 완젂히 옛날의 첛학과 구분되어야 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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