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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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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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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4
단위는 왜 태어났을까?
큐빗
큐빗 :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된 길이로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사과 10 kg을
주시오. 사과 10 kg이면
비단 1 필이오.
1장 단위의 기원과 역사
피라미드가
북 230.25 m 동 230.45 m 정교하게 만들어진 건
‘로열 큐빗 마스터’
덕분이지!
서 230.38 m
남 230.40 m
로열 이집트 큐빗 =
(당시 통치하던 파라오의) 팔꿈치에서부터
가운데 손가락까지의 길이 + 손바닥 폭의 길이
1 큐빗 = 2 스팬
n
spa
큐빗(cubit)
1 스팬 = 3 팜
palm
n
spa
palm
palm
팜(palm) 디지트(digit) 스팬(span)
1 피트(feet) ≒ 16 디지트 ≒ 12 인치
1 인치 = 엄지손가락 폭 = 2.54 cm
1 큐빗 = 1.5 피트 = 45.72 cm
2 큐빗 = 3 피트 = 12 팜 = 36 인치 = 48 디지트 = 91.44 cm
이 자로 재보니
비단이 턱없이
부족하구나!
지역마다
제각각인
이 나라의
도량형을
반드시
노라!
통일하겠
진시황
1장 단위의 기원과 역사
면적 단위
1 줌 가로 1 자, 세로 1 자의 넓이 (1 자 = 38.86 cm, 1 줌 = 0.15 m2)
1 단 10 줌
1 짐 100 줌 (한 짐의 땅에서 수확된 곡식을 한 짐으로 지고 갈 수 있는 양)
1 먹 10000 줌
위키피디아
럼 변장하고 지방에 몰래 파견되었던 조선시대의 암행어사.
암행어사 하면 지방의 탐관오리를 적발하고 동헌에 쳐들어
갈 때 “암행어사 출두야!”라고 외치는 게 떠오를 것이다. 이
때 암행어사는 마패를 손에 쥐고 등장한다. 마패는 한자어,
馬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암행어사는 이 마패만 보여주면
어디서든 역졸과 역마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행어사가 지니고 다녔던 건 마패 뿐만이 아니었
다. 왕이 암행어사를 임명할 때 하사하는 것은 모두 네 가지
로 봉서(封書)와 사목(事目), 마패, 유척(鍮尺)이다. 봉서는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고, 사목은 암행어
사의 직무를 규정한 책이다.
그렇다면 유척은 무엇일까?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
조선시대 도량형 제도에서 일종의 표준 역할을 했다. 세종
대왕은 박연을 시켜 아악을 정리하면서 악기의 기본음을
내는 황종률관을 만들고, 이것을 기준으로 황종척이라는
자를 만들었다. 이 황종척이 모태가 돼서 탄생한 자가 바로
유척이다.
그런데 암행어사는 왜 이런 자를 가지고 다녔을까? 당시
지방 수령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백성들로부터 각종 세
를 거둬 조정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금은 오
늘날처럼 화폐로 거두어들이지 않고 한 해 동안 농사 지은
곡식, 옷감, 지역 특산품과 같은 물품으로 바쳐졌다. 암행어사의 유척
단위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암행어사 출두야!
ironorchild.com
1789년 프랑스는 혁명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성
난 군중들이 왕의 폭정을 상징하는 바스티유 감
옥을 점거하고, 농민들은 지주에 맞서 봉기를 일
으켰다. 당시 프랑스 왕이 자유와 평등을 내용으
로 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승인하지 않
자, 파리의 군중들은 왕이 사는 베르사유로 진격
해 왕의 가족들을 파리로 데려와 감금했다.
이렇게 프랑스 혁명이 절정에 달했던 그 해 또
앙투안 라부아지에
다른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위한’ 새로운 도량형 질서를 세우는 혁명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도량형 체계는 꽤 혼란스러웠다. 프랑스 혁명 전 프랑스를
다녀간 아서 영이란 영국인은 프랑스에 존재하는 다양한 도량형을 보고 놀라
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 “프랑스에는 납득하기 힘들 만큼 무수
히 많은 도량형이 있다. 지방마다, 교구마다, 마을마다 모두 제각각이다”라고
기록했다.
프랑스 도량형 개혁을 시도할 당시 그 중심부에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앙투안 라부아지에
(1743~1794) 있었다. 아카데미는 1635년경부터 데카르트, 파스칼 등 저명한 철학자와 과학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자들이 모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아카데미가 도량형 개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 프랑
화학반응에서의
질량보존의 법칙을 스 과학의 발전 덕분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측정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고,
세웠으며, 원소와
화합물을 구분하여
여러 측정 장치들이 개발되고 개선되었다.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정확하
화합물에 이름을 붙이는 게 길이를 측정하는 측량도구와 시각을 측정하는 시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미
법을 만드는 바탕을
마련했다. 세한 질량 차이도 측정할 수 있는 저울도 갖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과학자들은
단위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위한 새로운 도량형을
만들 것이다.
데카르트 파스칼
도량형의 표준은
인류 전체의
공통 유산인 ‘자연’에서!
1장 단위의 기원과 역사
물 1 dm3
질량
넓이
물
부피
100 m2 = 1 아르(are)
1 m3 = 1000 리터(L)
1장 단위의 기원과 역사
구사일생으로 얻은 미터
메생은 낮에는 정부에서 1792년 6월 들랑브르는 당대의 최신 과학기구를 마차에 싣고 파리의 북쪽으
지도 제작자로 일했고,
로, 메생은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라부아지에는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모든
밤에는 천문학에 전념해
11개의 혜성을 발견했다. 힘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임무를 그만둬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이런 공로로 그는 1782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1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들랑브르와 메생의 자오선 원정은
되었다. 6년이 넘게 걸려 1798년 말에 마무리됐다. 프랑스는 대혁명으로 혼란스러웠고,
들랑브르는 3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원정 도중에는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북쪽에는 프로이센-오스
천문학을 시작한 늦깎이
천문학자였다.
트리아 군이 프랑스의 왕정복고를 노리며 공격해왔고, 남쪽에서는 프랑스와 스
그는 1792년 자오선 원정 페인 간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임무를 맡기 몇 달 전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들랑브르와 메생이 겪은 고초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
단위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그럼 난 로데즈에서
바르셀로나까지의
거리를…
자오선
1 미터 =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 × 1/1000만
정복은 순간이지만,
미터법은 영원하리라!
1867년
1875년
금 열 돈!
땅 백 평!
넓이
1 줌(把) 1 m2
1 단(束) 10 m2
1 짐(負) 100 m2 (= 1 아르)
1 목(結) 10000 m2 (= 1 헥타아르)
거리
1 주척(周尺) 0.2 미터
1 보(步) 1.2 미터 (= 6 주척)
1 칸(間) 2 미터 (= 10 주척)
평, 돈을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
평과 돈은 현재도 널리 쓰이고 있는 단위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용한
단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단위는 우리나라 고유의 단위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남긴 잔재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10년 일본의 측량부대가 비밀리에 우리나라 국토를 그들만의
단위인 자로 재서 그 면적을 ‘평’으로 계산했다. 그런 다음 지적등본에 땅의 면적을
평으로 기재했던 것이다. ‘돈’은 일본의 진주양식업자들이 썼던 무게의 단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