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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 용칠이

숙근이는 심술궂기로 바보 용칠이와 못하지 않게 동네에서 유명하 다.


아직 잠샛별이 하늘 복판에서 위치를 달리하지도 않은 이른 새벽녘 에 자기가 아니면 부려먹을
수 없다고 우쭐거리는 찌렁이 황소를 앞세 우고 풀을 먹일양으로 방메잿등으로 올라갔다
방메잿등이란 대낮에도 달걀귀신이니 도깨비니 이런 것들이 나돈다 고 온 마을 사람들이 바라보
기조차 꺼리는 무시무시한 산턱이다. 거기 에는 쌈꾸러기놈의 대가리 모양으로 메가 드문드문 벗
어진 무덤들이 흉망스럽게 울퉁불퉁하다.
덜그렁...... 덜그렁......
소방울 소리까지 그 속에서 울려나오니 그 음침하기란 싹이 없는데 숙근이는 아무렇지도 않다.
뿐이랴, 남들이 싫어해서 마치 저축해 두 었던 듯이 풀이 숲으로 우거진 채 묵고 있는 것이 그는
커다란 횡재다, 가을도 처져서 인제 풀도 서리를 맞고 맛도 변했을 게고 그 걸로 배 를 채운 댔
자 든든할 것 같지 않겠지만(그리고 대개 소를 부리는 사람 들은 벌써 여물을 왈여 먹이지만)그
는 어림없다. 소가 버는 것은 당연 히 버는 게고 어느새 여물을 끓여먹일 의무나 당연은 숙근이
에게는 업 는 것이다.
소도, 께질께질 심술을 부리지만 주인이 주인이라, 내내 내뻗치지 못하고, 뜨적뜨적, 맛 없는 고초
라도. 약식할 수밖엔 없는 모양이다.
"이랴 이랴 낄 낄. "
고의춤에 한 손을 움츠려 찌르고, 우선 소 고삐를 툭툭 채다가 언덕 위에 매어 놓고 그 다음은
거의 매일 규칙적으로 뒤를 보는 버릇이 있 다. 뒷자리를 골라서 엉금엉금 잿등말께로 올라가서
는 그도 사람이라 고 휘둘휘둘 사면을 둘러본다. 어느덧 동녘이 허땋게 터지며 새벽이 흐 릿하게
든다. 바지런한 닭이 마을에서 운다.

밤낮 없이 변비만 나는지 어제 그저께 할 것없이 뒤를 볼 때면 경치 게 엄살스런 소리를 내며 그


는 들먹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잿등 너머 뿌연 목화밭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듯하다. 일변 가
늘게 꽁꿍거리 며 허리띠 쥔 손등으로 찌뿌드드한 눈두덩을 비비고 보니 정말 무엇이 우물우물하
고 목화나무들이 수석수석 소리를 내며 물결처럼 휘청거린 다.
". . .... ?"
놀라기는 했으나 겁이라고는 한푼어치 없는 숙근이다. 그는 우지작 하고 손에 땋는 한 움큼 풀을
뜯어서 대강 꽁무니를 문질러 버리고 정 신이 있는대로 목화밭에 팔린다. 보니 사람(게다가 여자)
인 듯한데 한 군데서만 움직이고 있다.
목화 도적년이구나 ! "
순간 숙근이는 한번 어깨를 춤추듯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도둑괭이 상마루 밑에 기어들 듯, 아니 그보다도 옴두꺼비 등뒤로 달 려가는 구렁이같목화를 더


듬더듬 흩어 담는 데만 산 물건이었다. 헌데 돋은 아이의 대 가리처럼 누덕누덕 꿰멘 데는 구멍
이 숭글숭글 뚫린 속곳 바람으로.
"여보......"
음흉스러운 숙근이의 말소리와 함께 그의 두엉깨 같은 손이 슬며시 그 여인의 속콧말폭 터진 데
로 쑤욱 들어가서 뱃가죽을 꾸욱 움켜 잡을 때 비로소 여인은 펄썩 주저앉으며 목화 그루터기에

엎드렸다. 시재 부 끄러움보다도 겁에 질린 것이다. 숙근이는 숙근이대로 어떤 흥분에 부 르르 떨


었다. 정신을 잃은 여인은 숙근이의 덕석같은 너긋너긋한 몸집 에 짓눌려서 꼼짝을 못했다.
숙근이는 주위가 어렬풋이 알아보게끔 밝을녘에야 입맛을 다시며 목 화밭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
다. 풀포기에 매어 둔 소는 주인의 행동을 참하지 않다는 듯이 유난스럽게 떨렁떨렁 방울소리를
냈다.

가을은 잠깐이었다.
한 가을 동안 무슨 제철을 맞은 직업선수 모양으로 뻔질나게 여기저 기 손 뜨게질을 코피가 나도
록 쉴새없이 돌아다닌 용칠이도 이제야 제 법 허리띠를 끄르고 다리를 뻗어 내던지고 새벽잠까지
늘어져 잘 수 있 는 것이다. 한 가지 요사이 와서 그가 남몰래 속태우는 일이 생겼다.
벌써 전부터 그렇기는 했지만 그가 한가하게 되니까 더욱 그놈의 일이 커졌다. 그건, "조놈에게
정말 좨능질을......"
하는 자기 아내에게 대한 의심과 불안인 것이다. 게 배꼽만한 마을에는 가으내 소문이 퍼지고 제
아무리 눈코뜰 짬이 없이 일에 시달렸다해도 소경이 아닌 용칠이에게 아니 들릴 수 없었다. 소문
도 소문이려니와 요 새 보니 아내의 행동거지가 현저하게 전과 다르고 수상한 점이 많다.
그놈의 정사 때문에 어제 오늘은 벙어리 냉가슴 닳듯 꿍꿍이다. 가으내 벌어 모은 돈을 세어 볼
마음도 없이 용칠이는 정말 생병이 든 것처럼 들엊디고만 있다.
"용칠이 있나 ? "
조금전에 모래알을 씹듯 조반이랍시고 몇 숟가락 떠 먹고 속을 끓이 는 판인데 밖에서 찾는 소리
에 용칠이는 오히려 다행을 만난 듯이 벌떡 일어나며, "거 누구이까 ?"
문을 열어 잡고 보니, ?아, 이거 날이 찬데 어떻게.. ...."
용칠이가 재작년 가을까지 총각으로 멈을 살고 있던 동 너머 주인댁 이 버선에 묻은 눈을 털며
섰다.
"어서 들어오시죠. 이거 원 !"
용칠이는 중얼거리며 지저분한 방바닥을 연해 발길로 쓸고 주인댁을 들여 앉히고 나서, ?길이 꽤
질텐데......"
하고 자기도 응크리고 앉았다.
주인댁은 온 방안을 살펴보다가 불쑥, "이얀 어데 갔나 ? "
그 말에 용칠이는, "모르갔시다."
대꾸는 해 놓고 비로소 자기의 아내가 무단히 집을 나가 한나절을 어 디서 무슨 지저귀를 하고
있을끼-하는 회의를 품는다.
애년이 정말 야단이 났단
주인댁은 용칠이 아내의 일
안 서원 뒤 풀촘에서 어떤 때는 남산 너머 골짜구니에서, 또 최근에는 누구네 집 곡조 쌓아 둔
틈에서 이렇게 여러번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들켰다는 이야기며 용칠이가 한참 분주할 때는 그
숙근이란 놈을 끌어
말야."
다가 그래도 장가든다고 큰 마음 먹고 해 준 이부자리를 펴고 연놈이 지랄을 친다는 말을 들려주
며 주인댁은 용칠이보다도 더한 의분에 핏 대를 세우며 떠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예 그것들을
꼼짝도 못하게 잡아서 무종아리를 꺾어 놓고 까짓년 헌 년을 그놈에게 떠맡겨 버려라. 잔치할 때

돈 썼던 것도 고대로 물리 우고......"
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섯다. 용칠이도 분노를 느끼며 끄덕였다. 주인 댁으로서는 응당 그럴 것이,
용칠이가 장가들기 전에 그래도 일 잘하고 돈 잘 번다고 여기저기서 처녀들이 일어났을 때 그 중
에서 지금의 아내 인 필녀를 하필 고 주인댁이 골라 주었던 까닭이요, 또 주인댁은 어디 까지든
지 사람 착하고 근실하고 입 무거운 용칠이를 눈에 잔뜩 들여 놓 은 때문이다.

용칠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숙근이를 마구 때려주는 환상 에서 깨어 생각하니 숙근이


란 대상이 너무도 자기보다 무섭다. 그도 그 럴 것이, 숙근이라면 무서운 찌렁이 황소를 개새끼
다루듯 하는 달구지 꾼으로. 가장 완력으로 알려진 망나니 놈이 아니냐.
"제에 기씨, 수 틀리면 죽여 버리지 ! "
용칠이는 절망에 가깝게 부르짖고 석유상자로 만든 궤짝 속에서 자 그마한 목도를 끄집어 내어
본다. 날이 새파란 게 녹 한 점 쓸지 않은 채다. 용칠이는 그것을 도로 칼집에 꽂아서 염낭에 단
단히 넣어 둔다.
검정 보자기에 고이 꾸며 두었던 새 이불 새 포단을 끌러 보니 과연 조 금 전에, 주인댁의 말대
로 이불 섶에 때가 묻었다. 노착지근한 냄새까 지 풍기는 듯하다. 순간 몇해 동안을 머슴살이로
모았던 돈으로 장만해 둔 채 생전 덮을 염을 못했던 이부자리를 제 것처럼 좔활히 펴 놓고 연 놈
이 시시 덕거리며 더럽혔을 꼬락서니가 핑글핑글 눈앞에서 돈다.
"음......"
용칠이는 또 한번 치를 떨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 백장년이 왜 상기두 안 올까?"
자꾸만 불쾌한 추측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고민 끝
에 용칠이가 되는 대로 응크리고 누워 잠 이 든 뒤에야 아내가 뽀르르 돌아와서는, "여보. 여보
오."
무엇 때문인지 용칠이를 깨운다. 눈을 떠 보니 날이 찰 텐데 여편네 의 얼굴및은 보기 좋게 붉다.
게다가 오늘은 전에 없던 아양을 떤다.
용칠이는 더 한층 비위가 상해서 멋적은 듯이 돌쳐 누워 버리니까, "여보, 여봐요......"
이번에는 겨드랑 밑까지 건드리며, "저어, 동 너머 그 쥔댁 있죠."
"그래 쥔 댁이 매라드나 ?"
"저어, 오늘 저녁을 즈이집에 와서 먹구, 게서 자구서 내일 일 좀 해 달랍니다.
"뭐 ? 누구 말여 ?"
"아이, 당신 말이지 꿔......"
전 같으면 무릎 위에서 횡 젓는 손을 꼬옥 붙잡아 주기라도 할 것이 지만 오늘은 밉살스럽기 그
지없다.
"어 가지 ! "
주인댁이 꾸며 놓아 주는 계획인 것을 짐작하며 용칠이는 그 계획에 속없이 뛰어드는 아내를 일
변 가엾게 홀겨보고 집을 나섰다.

일없이 주인댁의 저녁을 얻어먹고 무척 안을 달이며 밤이 되기를 기 다려 용칠이는 단단하고 깔


깔한 참나무 몽등이를 마련해 차고 마을을 향해 나섰다.
집 근처에 가서는 숨을 한번 크게 내어뿜고 가슴을 쓰다듬고 한껏 마 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슬슬

기듯 우선 뒷문 곁으로 소리내지 않고 갔 다. 뚫어진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


바로 그가 펼쳐 본 새 이불을 채 덮지도 않고 모든 것이 상상하던 그대로다. 용칠이는 금방 목구
멍에서 마구 무슨 외침이 터질 듯한 것을 꿀꺽 삼키고 슬며시 굴뚝 곁에 기대어 두었던 지게를
끌어다가 지그시 뒷문을 열 수 없게 버티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앞문으로 돌아가서 또
한참 동안 침착을 취해 가지고 꽁무니에서 몽등이를 쑤욱 뽑아 든든히 쥐고 침을 발랐다.
"아앗 ?"
힘에 넘쳐 문싹이 떨어질 듯이 우지끈하고 찰싹 열리니까 계집은 그 만 알알이 벗은 몸을 가릴
줄도 모르고 발딱 자빠진 채 꼼짝을 못하는 데 사내놈은 역시 겁결에 흉망스러운 벌거숭이 채로
용칠이가 예상했 던 대로 뒷문을 밀치며 어쩔 줄을 모르는데 용칠이는 비호같이 달려들 어, "이
놈 !"
소리와 함께 딱 하고 거침없이 뒤통수를 들부수었다.
어쿠 !"
숙근이는 단대에 나가 동그라지고 말았다. 곁 집에서는 요란스럽게 개가 짖는다.
?이놈, 이 죽일 놈 !"
용칠이는 날뛰며 발길로 지르고 몽등이로 때리고 한바탕 기염을 토 하며 흠뻑 분풀이를 했다.

별로 시원할 것 없는 대로 일은 끝장을 낸 셈이다. 숙근이는 이제 바 보 용칠이보다 더 유명해졌


지만 넉살스럽게 머리를 동여매고도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나돌아 다닌다. 뿐인가, 아직도 필녀를
못 잊고 용칠이 네 집 근처를 배회하기도 하는 것이다.
필녀는 벌써 그 일이 있은 후 두 밤을 지냈건만 남은 각오를 하고 기 다리는데도 남편 용칠이는
욕을 할까 매질을 할까 이떻다는 말 한마디 도 눈결질 하는 법도 없는데 안타깝고 불안스러워 꼭
살이 마르는 듯하 다. 우연한 경우에 옴치고 렬 수 없이 숙근에게 몸을 허한 다음 역시 할 수 없
는 위압에 두 번 세 번......
그컨 무릇 자연적이었다. 그러니까 필녀는 후회를 한다는 것보다 통 막연하다.
죽어도 상관이 없으니 한 차줴 대단하게 용칠이가 짓밟아 줄 것만은 피할 길도 없고 당연히 겪을
줄만 셈 치고 있는 것이다.
머리채를 후려잡고 옆구리를 발길로 지르고 까짓거 배때기를 밟아 죽이든지......
어쨌든 어서 용칠이가 그래 주어야만 격식이 될 듯 한데 남편은 대체 속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 무한 괴롭다.
"오늘은 죽든 살든 담판을 하자 ! "
필녀는 이 모양대로 더 견딜 수 없다.
죄 지은 사람의 괴로운 심정이라고 할까. 그는 남편이 돌아와서 웃목 에 응크리고 누운 다음에
벼르다 벼르다 입을 뗀다. 조금도 감추고 싶 지도 않다.
목화를 흠치다가 들킨 데서부터 피할 수 없이 숙근이에게 자유를 빼 앗기기 시작해서 그 모양에
이르렀다는 자초지종을 기왕 말 낸 김이라 낱낱이 토로했다. 그런데 몽둥이처럼 듣는 등 마는 등
벽에다 코를 박 고 있던 남편이 불쑥, "럴 제년이 싫지 않으니께 배가 맞었던 게지."
뚝 이떻게 무질러 놓고 다시, 아무렇든지 넌 인저는 내 사람이 아니니께 숙근네 집으로 가야 돼
!"
별로 홍분된 빛도 없이 띄엄띄엄 지껄이는 것이다. 필녀는 용칠이 (남편)의 어느 구석에 저런 위
엄이 있었던가-하고 그저 벙했다가 한참 만에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용칠이는 필녀를 끝내 숙근이에게로 보냈다. 그리고는 당장에 오백 냥을 내라는 것이다. 그 오백


냥은 처음 필녀를 얻어들일 때 내어 놓은 것이니까 말하자면 필녀의 몸값이다. 숙근이는 경우에
몰려서 말을 못 하지만 그에게 오백냥이란 결코 허수한 금액이 아니다. 그는 생각다 못 해 하라
는 대로 할 테니 우선 자기가 그 돈을 장만할 때까지만 필녀를 그대로 용칠이가 데리고 있으라고
사정했다. 용칠이는 지금까지의 모 든 단결과 처사를 모두 주인댁의 지시대로 한 것이니까 또 저
녁을 먹고 주인댁을 찾아갔다.
아 그래 뭐라고 했나 ? "
"뭐 아직 말은 안했는데......"
"그럼 기한을 작정하구 그년을랑 제집으로 보내두지 !" 이래 필녀는 본가로 보내기로 했다
본가래야 어엿한 집안이라고는 없었다. 다 늙은 어머니와 더러운 외 할머니가 들어 있는 오막살
이가 그의 친정인 것이다. 거기에서 장차 어 찌될 것도 모르고 필녀는 시름없이 턱없는 생활을
끼벅끼벅 해야 한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동행을 용칠이는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 가 전에는 늘 각시집이라고
드문드문 찾아가면 살을 베일 듯이 대접해 주던 장모네(그들이야 무슨 죄가 있나 ? )생각을 할
때는 웬일인지 마 음이 좋지가 않다.
용칠이는 아내를 떼어 두려고 가는 자기가 꼭 전에 명절 때나 장모의 생일 때 둘이서 보러 갈 때
의 기분이다. 그리고 아무리 악독스럽게 뱃 심을 차려도 용칠이 혼자만이 이 길을 돌아을 것 같
지는 않다.
그는 길거리에서 아내를 세워 놓고 엿을 한 고리나 샀다. 보자기까지 마련했다가 꾸려서 둘러메
었다.
그건 무얼 할라구 삽니까 ? "
필녀는 남편의 속을 알 수 없다는 얼굴에 눈물을 지으며 말했다.
"괜히 조끔."
얼버무려 대꾸는 했으나 용칠이도 제 속을 알 수 없었다.
어이, 용칠이 바보 어데 가나 ?"
눈벌판에 뛰놀던 아이들이 모자를 두르며 고함을 치고 떠든다. 용칠 이는 항상 예사스럽게 지낼
수 있던 그 바보라는 소리가 오늘처럼 불쾌 하고 가슴이 답답하도록 느껴져 본 적이 없다.

소위 처가에 와서 보니 장모니 외모니 하는 여인네들이 넘쳐 반겨 맞 이하고 대접하는 바람에 그


만 얼이 빠지다시피 하룻밤을 묵은 용칠이 는 가만히 생각하니 걱정이다. 오늘도 저녁찬으로 몇
마리 되지도 않는 종자닭 가운데서 알락달락한 미쁘리 놈을 또 잡는다고 야단인데 그떻 게 친절
한 아낙네들에게 자기의 심산을 말할 수 없고 첫째 아내를 메어 두고는 혼자 문 밖을 나설 도리
가 없다.
"엿은 조금이나 사오잖구."
밤이면 가락가락 돌같이 언 놈을 연상 갖다가 바수어 놓고는 따끈한 아랫목에다가 비록 무명포대
기일망정 정한 놈으로 펴 주고는 딸 사위 둘이 누워 포근히 자라고 자기네들은 웃목에서 깔지도
변변히 못하고 자는 양이라든지 이것저것 용칠이의 마음으로는 빼쳐 낼 수 없는 형편 이다. 필녀
는 잠게 굳이 슬픔을 주지 않고 장모들이 인정하고 기뻐하는 것같은 그런 부 부처럼 순순히 필녀
를 붙안고 잤다. 잠든 아내의 목덜미로 부지불식 간 에 용칠이는 자기의 굵은 팔을 질러서 지그

시 구부리고는 아내의 얼굴 을 바름히 들여다본다. 숙근이 놈의 구리터분한 입김에 온통 발렸을


그 얼굴, 때로는 입도 맞추었을 볼때기와 입술, 자기가 장가를 들었던 때 는 오직 어여쁘기만, 자
지러지게 귀엽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오늘밤 은 유별히 애처롭고 가증하기만 하다. 물론 어여
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용칠이의 마음을 아릿아릿하게 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늙은이가 깜박
깜박하는 등잔불을 벗어 놓은 버선목으로 키질을 해서 끌 때면 용 칠이는 으스러져라하고 아내의
웃통이를 다가안았다. 그러면 잠든 체 했던 필녀는 어둠 속에 뚝뚝 눈물을 흘렸다.

그렁저렁하며 빨리도 닷새를 지냈다. 용칠이는 이대로 집으로 가야 겠다고 한다는 소리가 기껏
아내에게, "오늘은 가자우."
하고 무슨 의논을 하듯 했다.
". ..... ? "
필녀는 그저 벙할 수 밖에는 없다. 정녕코 자기를 떼어 버리려고 왔 던 남핀이요, 또 자기는 떨어
질 것을 각오했었는데...... "가자우" 하는 말은 또 함께 행동하자는 뜻이 아니냐.
가서 오늘밤으로라도 어디 곁동네루 떠나자우 ! "
남편은 이런 말도 한다. 그 목소리는 전의 용칠대로 부드럽다.
"아, 꿔 이사를 가 ?"
그들 부부가 다시 행장을 차리고 나설 때 장모가 그냥 붙잡다못해 하 는 말이다.
"이 추운 겨울에 ?"
할머니도 못지 않게 곁을 들었다.
사위는 머리를 벌적거리며, "뭐 걱정 없어요."
대답과 함께 아내를 힐끗 보며 벙싯 웃기까지 했다.
필녀도 무엇에 끌려 실쭉 웃고 돌아섰다
"야. 그럼 함께 가자 그래두 이산데."
장모가 따라나서는 것을 용칠이가 굳이 말리고 필녀도 속이 있어 남 편의 편을 도왔다.
뭐 멀리 가나요 ? 바루 곁동네루 가는데......"
용칠이는 정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제에 기씨, 반편놈 예서 더 반편 될까 갑산을 간다기로......"
용칠이는 이렇게 결심했다. 그는 사실이 인정있는 사람들에게 아내 의 사실을 말하고 일을 결단
하고 가는 것보다는 아내를 데리고 딴 곳으 로 떠나는 편이 한결 마음 펀하리라 싶었다.
"정말 이사할랍니까 ? "
아내는 길을 걸으며 참다 못해 물었다.
"니사하지 뭐. 그냥 살 수 있나?"
필녀는 갑자기 눈시울이 화끈하고 눈이 흐릿흐릿하며 금시에 한길 바닥에 엎드려, 흠뻑 울고라도
싶으며 훌쩍훌쩍 코를 치걷고 눈을 닦으 며 꼭 부처님같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l0
용칠네 부부가 없었던 동안 마을에는 또 한 가지 소문이 널렸다. 그 것은 숙근이가 필녀를 영월
관이라는 술집에다가 팔기로 약조하고 술까 지 한 턱 먹었다는 것이다. 용칠이는 이삿짐을 싣고
갈 달구지를 얻으 러 다니며 이런 쳐 실었다. 또 말을 들으니 숙
뜨린 데가 곪아서 꼼짝을 못하고 닳는다는 것이다. 용칠이 마음은 뒤숭 숭만 했다. 그래 주인댁도
찾아보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만일 이러이 러해서 이렇게 이사를 한다면 주인댁은 자기가 예상

하고 지시한 일의 정반대에 얼마나 놀라고 자기를 반편 놈이라고 할는지 모르는 때문이 다.


"어이. 용칠이 바보 둬 하나?"
아이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댄다.
"어어, 떠나갈라네 ! "
용칠이는 짐짓 바보처럼 대답한다.
"어디루 ?
"먼 데루 ! "
용칠이는 일일이 대꾸한다. 짐을 동이며 생각하니 자기가 정녕 바보 인 듯하다. 그러나 일변 오돌
오돌 떨며 눈을 끔벅거리며 한편에 서 있 는 아내를 볼 때 그를 바보의 아내로 만들고 싶지는 않
다. 그는 싱긋이 웃었다. 밤이 으슥히 어두워서 그들 부부는 그들의 생좔도구와 함께 달 구지를
타고 오래 살던 동네를 떠났다.
아이들이 어디서 보고.
"바보, 정말 가나 ?"
이렇게 외치었다.
"어어, 정말 가네 t "
"따보. 잘 가게 ! "
"어어, 잘들 있게 !"
하고 용칠이는 마을을 향해 너그러이 소리소리 질렀다. 날이 밝으면 사 람마다 자기 내외를 두고
지껄일 것과는 제법 반대의 뜻을 품고 그는 무연한 벌판을 달리며 혼자 생각하였다.
"인제 다른 동네루 가문. .... 바보...... 소리두 못 듣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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