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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용칠이
바보용칠이
가을은 잠깐이었다.
한 가을 동안 무슨 제철을 맞은 직업선수 모양으로 뻔질나게 여기저 기 손 뜨게질을 코피가 나도
록 쉴새없이 돌아다닌 용칠이도 이제야 제 법 허리띠를 끄르고 다리를 뻗어 내던지고 새벽잠까지
늘어져 잘 수 있 는 것이다. 한 가지 요사이 와서 그가 남몰래 속태우는 일이 생겼다.
벌써 전부터 그렇기는 했지만 그가 한가하게 되니까 더욱 그놈의 일이 커졌다. 그건, "조놈에게
정말 좨능질을......"
하는 자기 아내에게 대한 의심과 불안인 것이다. 게 배꼽만한 마을에는 가으내 소문이 퍼지고 제
아무리 눈코뜰 짬이 없이 일에 시달렸다해도 소경이 아닌 용칠이에게 아니 들릴 수 없었다. 소문
도 소문이려니와 요 새 보니 아내의 행동거지가 현저하게 전과 다르고 수상한 점이 많다.
그놈의 정사 때문에 어제 오늘은 벙어리 냉가슴 닳듯 꿍꿍이다. 가으내 벌어 모은 돈을 세어 볼
마음도 없이 용칠이는 정말 생병이 든 것처럼 들엊디고만 있다.
"용칠이 있나 ? "
조금전에 모래알을 씹듯 조반이랍시고 몇 숟가락 떠 먹고 속을 끓이 는 판인데 밖에서 찾는 소리
에 용칠이는 오히려 다행을 만난 듯이 벌떡 일어나며, "거 누구이까 ?"
문을 열어 잡고 보니, ?아, 이거 날이 찬데 어떻게.. ...."
용칠이가 재작년 가을까지 총각으로 멈을 살고 있던 동 너머 주인댁 이 버선에 묻은 눈을 털며
섰다.
"어서 들어오시죠. 이거 원 !"
용칠이는 중얼거리며 지저분한 방바닥을 연해 발길로 쓸고 주인댁을 들여 앉히고 나서, ?길이 꽤
질텐데......"
하고 자기도 응크리고 앉았다.
주인댁은 온 방안을 살펴보다가 불쑥, "이얀 어데 갔나 ? "
그 말에 용칠이는, "모르갔시다."
대꾸는 해 놓고 비로소 자기의 아내가 무단히 집을 나가 한나절을 어 디서 무슨 지저귀를 하고
있을끼-하는 회의를 품는다.
애년이 정말 야단이 났단
주인댁은 용칠이 아내의 일
안 서원 뒤 풀촘에서 어떤 때는 남산 너머 골짜구니에서, 또 최근에는 누구네 집 곡조 쌓아 둔
틈에서 이렇게 여러번 동네 사람들에게 골고루 들켰다는 이야기며 용칠이가 한참 분주할 때는 그
숙근이란 놈을 끌어
말야."
다가 그래도 장가든다고 큰 마음 먹고 해 준 이부자리를 펴고 연놈이 지랄을 친다는 말을 들려주
며 주인댁은 용칠이보다도 더한 의분에 핏 대를 세우며 떠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아예 그것들을
꼼짝도 못하게 잡아서 무종아리를 꺾어 놓고 까짓년 헌 년을 그놈에게 떠맡겨 버려라. 잔치할 때
돈 썼던 것도 고대로 물리 우고......"
하며 허리를 펴고 일어섯다. 용칠이도 분노를 느끼며 끄덕였다. 주인 댁으로서는 응당 그럴 것이,
용칠이가 장가들기 전에 그래도 일 잘하고 돈 잘 번다고 여기저기서 처녀들이 일어났을 때 그 중
에서 지금의 아내 인 필녀를 하필 고 주인댁이 골라 주었던 까닭이요, 또 주인댁은 어디 까지든
지 사람 착하고 근실하고 입 무거운 용칠이를 눈에 잔뜩 들여 놓 은 때문이다.
그렁저렁하며 빨리도 닷새를 지냈다. 용칠이는 이대로 집으로 가야 겠다고 한다는 소리가 기껏
아내에게, "오늘은 가자우."
하고 무슨 의논을 하듯 했다.
". ..... ? "
필녀는 그저 벙할 수 밖에는 없다. 정녕코 자기를 떼어 버리려고 왔 던 남핀이요, 또 자기는 떨어
질 것을 각오했었는데...... "가자우" 하는 말은 또 함께 행동하자는 뜻이 아니냐.
가서 오늘밤으로라도 어디 곁동네루 떠나자우 ! "
남편은 이런 말도 한다. 그 목소리는 전의 용칠대로 부드럽다.
"아, 꿔 이사를 가 ?"
그들 부부가 다시 행장을 차리고 나설 때 장모가 그냥 붙잡다못해 하 는 말이다.
"이 추운 겨울에 ?"
할머니도 못지 않게 곁을 들었다.
사위는 머리를 벌적거리며, "뭐 걱정 없어요."
대답과 함께 아내를 힐끗 보며 벙싯 웃기까지 했다.
필녀도 무엇에 끌려 실쭉 웃고 돌아섰다
"야. 그럼 함께 가자 그래두 이산데."
장모가 따라나서는 것을 용칠이가 굳이 말리고 필녀도 속이 있어 남 편의 편을 도왔다.
뭐 멀리 가나요 ? 바루 곁동네루 가는데......"
용칠이는 정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제에 기씨, 반편놈 예서 더 반편 될까 갑산을 간다기로......"
용칠이는 이렇게 결심했다. 그는 사실이 인정있는 사람들에게 아내 의 사실을 말하고 일을 결단
하고 가는 것보다는 아내를 데리고 딴 곳으 로 떠나는 편이 한결 마음 펀하리라 싶었다.
"정말 이사할랍니까 ? "
아내는 길을 걸으며 참다 못해 물었다.
"니사하지 뭐. 그냥 살 수 있나?"
필녀는 갑자기 눈시울이 화끈하고 눈이 흐릿흐릿하며 금시에 한길 바닥에 엎드려, 흠뻑 울고라도
싶으며 훌쩍훌쩍 코를 치걷고 눈을 닦으 며 꼭 부처님같은 남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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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칠네 부부가 없었던 동안 마을에는 또 한 가지 소문이 널렸다. 그 것은 숙근이가 필녀를 영월
관이라는 술집에다가 팔기로 약조하고 술까 지 한 턱 먹었다는 것이다. 용칠이는 이삿짐을 싣고
갈 달구지를 얻으 러 다니며 이런 쳐 실었다. 또 말을 들으니 숙
뜨린 데가 곪아서 꼼짝을 못하고 닳는다는 것이다. 용칠이 마음은 뒤숭 숭만 했다. 그래 주인댁도
찾아보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만일 이러이 러해서 이렇게 이사를 한다면 주인댁은 자기가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