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on page 1of 1

■ 생 각 하 는 경 제 글.

유병선 경향신문 논설위원 06 + 07

실험사례 두 가지만 보기로 하지요. 첫번째는 주민번호와 가격입니다. 우리의 주민번호와 비슷한 것으로
미국인들에게는‘사회안전번호(Social Security Number)’
가 있습니다. MIT대에서 이를 이용한 실험을 했
습니다. 우선 컴퓨터용 무선 키보드를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세 가지 숫자를 종이에 적게 합니다. 각자 자신
의 사회안전번호 뒤의 두 자리를 쓰고, 그 숫자를 키보드 값으로 매겨 그 값에 구입할 의향이 있는지를 표
시한 다음, 기꺼이 낼 수 있는 희망 가격은 얼마인가를 쓰게 했답니다. 그러니까 어떤 학생의 번호 끝의 두
자리가 79면 그에게 키보드 가격은 79달러가 되며, 마지막으로 30달러라고 썼다면 그것이 구입 희망가격
인 셈입니다. 세 가지 숫자를 제출한 학생들에게 키보드 값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임의의 번호가 가격 결정
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통계를 내봤더니 그
렇지 않았답니다. 번호의 숫자가 큰 순서로 상위 20%의 희망 구입 가격 평균은 56달러였고, 하위 20%는
16달러였답니다. 다른 임의의 숫자나 다른 물건을 놓고 실험해도 가격차는 평균 2~3배나 났다고 합니다.
요컨대 임의의 숫자가 기준이 되어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두번째는 플라시보 효과
입니다. 82명의 지원자에게 탁월한 진통효과를 발휘하는 신약의 안내책자를 나눠줍니다. 물론 플라시보(위
약)였지만 지원자는 모릅니다. 지원자의 팔목에 전기충격을 준 뒤 통증의 강도에 대해 등급을 매기게 했습

비이성적으로 니다. 그런 다음 신약을 먹게 하고 절반에게는 약값이 2.5달러라고 하고, 나머지에는 10센트라고 말해주고

Irrationally yours 다시 전기충격을 받도록 했답니다. 2.5달러짜리 약을 먹은 지원자의 85%가 복용 전과 똑같은 전기충격에
도 통증을 덜 느꼈다고 한 반면, 10센트짜리 약을 먹은 이들은 61%만이 진통효과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
들 가짜 약을 먹었지만 약값에 따라 진통효과가 이처럼 차이가 난 것입니다.

‘Sincerely yours’ /

영어권 사람들이 편지 말미에 서명에 앞서 즐겨 쓰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딱히 옮기기는 마땅치 않지만, 상상력이 기발하지 않습니까. 모든 소비자와 생산자는 시장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숙지하

‘마음에서 우러나와’글을 띄운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보내는 이의 이름 뒤에 쓰는‘올림’


‘섬김’
‘배상(拜 고 있다는 완전경쟁시장의 가설을 흔들고 있습니다. 같은 괴짜라도 국내에도 소개된 스티브 레빗 시카고대

上)’따위와 같은 쓰임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새로운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홈 교수의「괴짜경제학」
이 인센티브를 중심으로 합리적 경제인 이론을 충실하게 추적해‘시장이 가장 잘 안다

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들에게 답글을 달면서 꼬박꼬박‘Irrationally yours’


라고 쓰더군요. 기껏 글을 써놓 (Market-Know-Best)’
는 명제를 입증하려 한 것과 사뭇 다릅니다. 레빗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실험실 결과

고 받는 이에게‘비이성적으로’
라니 여간 엉뚱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 실제 시장에서 일반화되기 힘들다는 입장이지만, 아리엘리 교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이

/ 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실생활의 단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입니다. 그래서 아리엘리는“시장의 규범은 적

그 주인공은 댄 아리엘리(Dan Ariely)라는, 천재형의 괴짜이긴 해도 젊고 멀쩡한 학자입니다. 뉴욕에서 태 을수록, 사회적 규범이 클수록 삶은 더 만족스럽고 창조적이며 충만하고 즐거워질 수 있다”
고 말합니다. 그

어나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듀크대학에서 각각 인지심리학과 는 합리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세상을 탐욕의 질주로 치닫게 만드는 합리적 경제인의 허구를

경영학의 박사학위를 땄더군요. MIT대 경영대 교수인 그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한다는 MIT 미 입증함으로써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촉구할 뿐입니다. 뉴욕타임스가 그의 책을 평하며‘혁명

디어랩에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도 맡고 있습니다. 누구나 물건을 적’


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Irrationally yours’
를 이기심과 시장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

사고파는 일상사부터 일자리를 구하거나, 심지어 결혼처럼 삶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인생사에 이르기까지 을위한‘따뜻한경제학’
을지향하는이들을향한헌사로받아들이는이유이기도합니다.

현실 속에선 다양한 선택을 합니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선택이 이뤄지는가를 사회
이제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2년간 못난 글 읽어주신 한은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Irrationally yours’
.
과학의 방법론을 동원해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신생 학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Irrationally yours’
는 그가 숱한 실험을 통해 도달한 행동경제학적 명제를 드러
내려는 의도적인 신조어입니다. 그는 지난 2월‘우리의 결정에 미치는 숨어있는 힘’
이란 부제로 펴낸 화제
작‘예측 가능한 비합리성(Predictably Irrational)’
에서‘경제적 선택과정은 비합리적이며, 단지 그 행동양
태를 예상할 수 있을 뿐’
이라고 주장합니다. 주류 경제학의 시장만능주의 패러다임을 떠받치는‘합리적 경
제인(Rational Economic man)’이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인 셈입니다.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