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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순례길 서소문 코스를 가다

-한국 천주교 순교의 역사와 한국 근대사를 엿볼 수 있는 곳

에디터 이희조
사진 신형덕, 세바스티안 슈티제

Editor Lee Heejo


Photographer Shin Hyungduk, Sebastian Schutyser

The landscape of Seoul can come off as desolate, with its big skyscrapers and crowds of people
walking at a fast pace. Not only that, it’s difficult to come across a resting place or a park in Seoul,
which is strikingly different from European cities where people stop by a café and have light
conversations with strangers. But an experienced traveler should be able to see through Seoul’s
veneer to get at the heart of the city.

Several layers of history lie at the heart of Seoul. In the winter of 2016, a city-wide candlelight vigil
took place, with people calling for massive political transformation. It was a moment that reflected
the progressive side of Seoulites. Just three decades ago, various demonstrations took place around
the country in order to oppose the dictatorial regime; in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various independent movements opposed the Japanese colonial regime and its oppression. And
before all of these movements of resistance, roughly two centuries ago, there was a long history of
religious movements that stood on the side of the oppressed and called for a reform in the nation’s
class hierarchy. The stories of these religious movements are marked by the various religious
monuments within Seoul. In September 2018, these monuments will be linked by the new
architecture of Seoul Sullye-Gil. The new architecture is not so much a religious monument but
rather a historical site that commemorates the city’s rich history which belongs to everyone.

높디높은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여 무표정한 얼굴에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고 있는 서울 사람들을


보면 서울은 삭막한 대도시가 따로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갈 벤치나 공원도 마땅치 않으며,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한가로이 카페에 앉아 옆 사람과 여유롭게 아침 담소를 나누는 풍경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자라면 무표정한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서울의 진짜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2016 년 겨울, 서울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는 사회질서 개혁에 적극적인 열정
가득하고 진취적인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30 년 전 1970~80 년대에는
독재 정권의 탄압을 멈추게 한 민주주의 항쟁이 이미 있었고 20 세기 초에는 일제탄압에 저항한
독립운동이 있었다. 그리고 이는 200 년 전 약자들의 편에 서서 신분질서 개혁을 외쳤던 천주교를
비롯한 여러 신앙 운동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빌딩 숲 속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여러
종교건축이 이를 대변한다. 그들은 200 년에 걸쳐 피와 눈물로 새겨진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여전히
서울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2018 년 9 월 서울순례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길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 길이 품은 역사는 결코 특정 종교만의 것이 아닌, 서울을 살고 이곳을 여행하는 우리 모두의 역사다.
명동성당 Myeongdong Cathedral

Dubbed ‘Camino de Seosomun,’ the second course of Seoul Sullye-gil starts off at Myeongdong
Cathedral, a symbolic site of Korea’s Catholic Church. Although Myeongdong Cathedral is widely
known as the biggest Gothic cathedral architecture in Seoul, not many people know about its
historical background. Formerly called ‘Myeongrye-bang’ (literally meaning a Myeongrye room), the
church began as a humble residential room where Kim Beom Woo, a translator of Chinese and a
Catholic follower, began to hold religious meetings in 1784. A religious community was established
through indigenous efforts. In fact, Korea is the only country in which… Religious efforts in Korea
reflect people’s desire to reform the status quo social structure based upon Confucian thought.
Unfortunately, Myeongrye-bang became the target of oppression as the Joseon regime confiscated
all of its books and imprisoned Kim. And so began a long history of oppression.

‘까미노 데 서소문’이라 이름 붙여진 서울순례길 2 코스는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 명동성당에서


시작한다. 명동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딕 양식 건축물로 이미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있지만
그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아는 이는 드물다. 성당의 역사는 명동의 옛 이름인 명례방에서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230 여 년 전 1784 년, 중국어 역관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김범우가 명례방 자택에서 한국
최초로 종교 집회를 열었다. 천주교 공동체가 처음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서양에서 온 선교사나
성직자 없이 일반인 신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신앙이 전래된 것은 여러 나라 중 한국이 유일하다.
(fact check 필요) 이는 조선의 천주교 전래가 조선의 유교 근본주의 사회질서를 개혁하려는 사회
개혁적 성격을 띰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명례방 공동체는 얼마 가지 않아 조선 정부에
발각되어 천주교 서적과 물건을 모두 압수당하고 김범우는 옥에 갇힌다. 이렇게 천주교에 대한 참혹한
박해 또한 시작되었다.

Towards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 liberty of having any religious belief is proclaimed
within the Joseon Dynasty, at least in name. Afterwards, Father Blanc, Father Mutel, and Father
Coaste establish Myeongdong Cathedral at the site of Myeongrye-bang to. The Cathedral’s steeple
stands out the most, its height seemingly reaching towards the sky. Right now, Namsan Tower lies
behind the Cathedral. At the time, the Cathedral was the tallest building in the capital, and one can
imagine the awe that it would have inspired in people. Among several paintings in display within
the Cathedral, an oil painting that depicts religious gatherings held at Myeongrye-bang is notable.
The painting depicts a room crammed with people in hanbok and gat studying the Bible. It’s not
difficult to see why the Joseon regime initially assumed the religious study as a meeting for
gambling.

이후 19 세기 말 조선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종교의 자유가 선포된 후 블랑 주교, 뮈텔 주교, 코스트 신부


등의 노력으로 명례방에 지금의 명동성당이 세워졌다. 역시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늘 높이
뾰족하게 솟아오른 첨탑이다. 지금은 성당 뒤로 멀리 남산타워가 함께 보이지만 당시에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 장엄함이 느껴진다. 또한 본당 내부에 걸려있는 여러 그림
중에는 명례방 집회 장면을 그린 유화가 흥미롭다.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둘러앉아 교리를 공부하는
모습이 열성적이며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집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들어서는 모습이 처음 조선
정부로부터 불법 도박으로 의심받았던 정황을 설명해준다.

저녁마다 열리는 미사는 천주교인뿐 아니라 많은 일반 시민 및 관광객에게도 열린 자리로 많은 이들이


미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다듬는다. 이처럼 명동성당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Seoul Cathedral Anglican Church of Korea

명동성당을 지나 서울시청에 다다르면 복잡한 도로 맞은편으로 주황색 기와가 돋보이는 아담한 서양식
건축물이 눈에 띈다. 16 세기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영국교회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중도적 문화를 표방하며 전 세계 약 1 억 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다. 이 주황색
건물은 바로 1920 년대 한국에 처음 세워진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명동성당이 미래지향적인 고딕 건축이라면 성공회성당은 낮고 굵은 기둥이 중후하고


장중한 우리나라 유일의 로마네스크 건축물이다. 또한 아치 가운데가 뾰족하게 솟은 뾰족 아치(Pointed
Arch) 형태를 한 명동성당과 달리 성공회성당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둥근 아치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교좌성당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한옥을 닮은 성당이라는 점이다. 주황색 서양식
기와와 검은색 한국식 기와를 섞어 사용하고 2 층 창문에는 한옥의 고즈넉한 창살 무늬를 사용했다.
성당의 설계자였던 영국인 건축가 아서 딕슨은 바로 옆에 위치한 덕수궁의 전통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하고자 하였다.

아름다운 건축으로 손꼽히는데도 불구하고 성당이 생각만큼 주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성공회는 교회보다 성공회대학교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육 및 복지기관이 많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시해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가를 키워내는 데 앞장서고 있는 성공회다운
설명이다. 일상에서의 삶과 순례가 멀리 있지 않듯, 교리와 실천이 멀리 있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구간이다.

서소문역사공원 & 약현성당 Seosomun Historical Park & Yakhyeon Catholic Church

2014 년 8 월 16 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은 곳이 있다. 바로 서소문공원,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다. 서소문 밖 사거리는 예로부터 중죄인의 공식 처형장이었다. 이유인즉슨 하천이 가까이
있어 처형자의 피를 흘려보내기 쉽고 주변에 칠패시장이라 불리는 큰 시장이 형성돼있어 사람의
통행이 잦아 형벌의 엄중함을 알리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 중에는 조선의
신분제도를 개혁하고자 했던 허균, 왕실과 지도층의 폐단에 저항했던 홍경래,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동학교도 등 이념과 사상은 달라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수많은 사람이 있다.

서소문 밖 처형장에서 순교한 천주교도들의 수 또한 100 여 명에 달한다. 한국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을 비롯해신도들을 이끌었던 정약종, 천주교 박해의 전말을 기록한 황사영 등을 포함해 60 여
년간 세 차례에 걸쳐 수많은 처형이 이루어졌다. 현재 이곳 서소문공원에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현양탑이 세워져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들의 희생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이곳 앞 제대에
참배하고 헌화하였다.
서소문 성지를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한 약현성당이 서울순례길 서소문 코스의 마지막 코스이다.
명동성당보다 더 이른 1892 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고딕성당으로 서소문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세워졌다.

2018 년 9 월 14 일, 서울순례길은 ‘교황청 승인 세계 공식 순례지’ 선포를 기다리고 있다. 역사공원으로


새로 태어나는 서소문공원에서 진행되는 이 선포식을 통해 서울순례길은 전 세계인의 주목 아래 국제
순례지의 위상을 갖게 될 예정이다. 어지러운 도심 속 든든히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역사적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Tip. 서울시 도보관광 해설을 들으며 서울순례길을 걸으면 훨씬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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