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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번역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

제1세대 비디오 작가 박현기를 중심으로


Korean Media Installation in Relation to Cultural Translation : Park Hyun-Ki,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Video Art

저자 정연심
(Authors) Yeon Shim Chung

출처 현대미술사연구 36, 2014.12, 233-255(23 pages)


(Source) Journal of History of Modern Art 36, 2014.12, 233-255(23 pages)

현대미술사학회
발행처
KOREA ASSOCIATION FOR HISTORY OF MODERN ART
(Publisher)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142562

APA Style 정연심 (2014). 문화 번역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 현대미술사연구, 36, 233-
255

이용정보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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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번역’
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
제1세대 비디오 작가 박현기를 중심으로

정연심
홍익대학교

I. 들어가는 글
II. 비평언어의 횡단, 매체의 횡단
III. 한국의 버내큘러 미디어를 찾아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
IV. 나가는 글

I. 들어가는 글

1960년대 백남준은 독일과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미


디어 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는 비디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비디오 매
체에서 보여준‘폐쇄회로 텔레비전(closed-circuit television)’
으로 아날로그 시대
가 열리고 있었지만, 백남준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실험을 동시에
함으로써, 미래에 다가올‘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society)’
를 예언하였다. 그
는‘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이면서, 한국의 제1세대 비디오 작가들에게는 비디
오 아트의‘대부’
와 같은 존재로 표현되었다. 제1세대 비디오 작가들은 국내에
서 비디오테이프와 매거진을 통해서 백남준의 작업을 볼 수 있었고, 세계적으
로 널리 알려진 그의 영향력은 당시 제3세계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까지 미치
게 되었다.
본 논고는 한국의 제1세대로 분류되는 박현기가 제작한 비디오 설치에 주목
하면서, 제1세대 작가인 박현기에게‘제2의 백남준’
이라는 꼬리표와‘이우환’
의 영향이라는 설명이 항상 함께 등장하는 점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
었다. 그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한국에서 접한 비디오 테크놀로지는 한

* 이 논문은 2013학년도 홍익대학교 학술연구진흥비에 의하여 지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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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화단에서는 척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가 죽은 지 14년이 흘렸지
만 여전히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은 제1세대 비디오 작가로서의 미술사적 가치
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연구자는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 작업을‘문화번역’

라는 맥락에서 다루고자 하며, 특히 비디오라는 특정‘매체(medium)’
를‘언어
(language)’
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백남준은 뉴욕에서 제3세계 출신의 작가였
지만, 1970년대 후반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를 꿈꾸었던 젊은 미술가들에게 그
는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활동하는 제1세계의 미술가였다. 그는 한국의
비디오 작가들에게는‘주류’
에 속하는 미술가로, 그가 다뤘던 비디오 아트, 비
디오 설치(video installation)는 젊은 한국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논
문은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를 중심으로 당시 동서양의 미술 상황을 횡단하면
서, 박현기의 설치 미디어가 가지는 미학적 가치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박현기가 백남준을 넘어섰는가, 혹은 독자적
인가 하는 판단보다는, 상이한 문화권에서 비디오 매체라는 것이 다뤄지면서
기존의 문화 경계가 와해되면서 어떤 형식으로 접촉지대가 만들어지는지에 관
심을 둔다. 특히, 비디오 매체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비디오 매체를 통해 어
떤 식으로‘언어횡단적 실천(translingual practice)’
‘문화횡단적 실천’
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제3세계에서의 문화번역은 메리 루이즈 프랫(Mary
Louis Pratt)의 말대로‘접촉지대(contact zone)’즉 문화적 접경지대에서 이질적
인 것이 재맥락화되는 추이와 과정에 대한 논고이기도 하다.1 이를 통해 제1세
대 작가들이 서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백남준이라는 한국 작가에게서 받아들
인‘백남준식 비디오아트’
를 어떤 식으로‘박현기 언어의 비디오,’미디어 설치
로 해석하고, 번안했으며, 매개화했는지를 논의할 것이다.2

1. Mary Louise Pratt, Imperial Eyes: Travel Writing and Transculturatio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2).
2. 이 글에서 연구자는 논문 제목으로 박현기의‘비디오 설치’
라는 용어 대신‘미디어 설치’
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다. 엄격하게 말해, 박현기 스스로도‘비디오 설치’
라고 일부 작품명을 붙였지만, 퍼포먼스, 개념미술,
대지미술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설치적 경향을 아우르기 위해서이다. 이후, 국내에서 미디어 아트가
전개되면서‘비디오 설치’
는‘미디어 설치’
로 흡수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강태희는 2010년 갤러리 현대
에서 개최된 박현기 전시의 카탈로그 글에서‘박현기적 비디오’
라고 표현한다. 강태희,「박현기의 비디오
와 오브제」
, 2010년 박현기 개인전 카탈로그 (갤러리 현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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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비평언어의 횡단, 매체의 횡단

전후 한국현대미술 비평 용어들은 소위 제1세계로 분류하는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미국, 일본 등지의 서구(일본) 비평 용어와의 관계성 속에서 한국 특유
의 비평 용어들을 형성해 왔다.‘한국적’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한국현대미술
이 가지고 있는 자생성과 토착성을 강조하면서도, 서구에서 진행되었던 미니
멀리즘, 개념미술,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아트, 프로세스 아트, 설치미술 등과
의 지속적인 연관성 속에서 한국성이라고 하는 변별력을 지니면서 우리 나름
의 비평 지도를 그려 왔다. 서구 미술과의 변화와 연관성 속에서 우리의 미술
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국의 미술비평가들은 한국의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에
는 자생의 조건과 지속의 조건이 부족하다는 점을 주로 비판하였으며, 이는 포
스트모더니즘 예술이 형성되던 1980년대 후반의 한국비평가들도 마찬가지였
다. 예를 들면, 이재언은「한국 탈모던 미술의 논리와 양상」
에서,“국제 사조
에 의존적이라는 것이며, 그럼으로 해서, 국제적 조류에 편승하는 것을 하나
의 강박관념으로 갖게 되었으며, 전통과의 관계는 왠지 자연스러운 공존보다
는 제도권 헤게모니를 놓고 충돌하는 대립의 관계로 인식되고 했다”
고 설명한
다.3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글들은 대개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자생성의 부족, 그리고 국제화에 무조건 편승하는 한국의 현상에 대해 직접적
인 비판을 가하는 글들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각도 한국적인 버내큘
러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모색들로 비춰진다.
문화번역(cultural translation)의 관점에서 미술의 매체가 제1세계에서 제3세계
로 유입되고, 이것이 인코딩이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이러한 과
정이 위계질서적이고 제 1세계가 가진 독보적인 권력과 권한이 지배적으로 작
용했다.4 그러나 그 반대의 이동도 가능해서 비서구권의 문화와 예술로 인해

3. 이재언,「한국 탈모던 미술의 논리와 양상」


,『선미술』
(1990년 가을호), pp. 67-73. 그는 이재삼의 <인스털레
이션>, 윤동철의 작업 등을 예시로 들고 있다.
4.‘문화번역’
에 대한 국내 연구는 인류학을 위시한 비교문학, 사회학자, 언어학자, 문화이론가 등 다양한 연
구진들에 의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은령,「번역/문화번역 이론의 매체이론화 가능성 연구」
,
『탈경계 인문학』
, 제3권 2호 (2010년 6월), pp. 91-112; 이명호,「문화번역의 정치성: 이국성의 해방과 혼성
의 지대」
, 특집-경계에 서라: 소통을 위한 인문적 상상,『탈경계 인문학』
, (2010), pp. 93-105. 한국포스트
모더니즘과 문화번역의 맥락을 다룬 논문은 문혜진,「시대적 거울로서의 틈새 공간: 문화번역과 한국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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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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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구권의 용어들이 더욱 다양하게 대응하기에 이르렀다. 호미 바바(Homi
Bhabha)가 1984년,『악토버(October )』저널에「미미크리와 인간: 식민담론의
양가성(Of Mimicry and Man: The Ambivalence of Colonial Discourse)」
을 발표한
이후,5 사이 공간에서 생겨나는 혼종성과 양가성은 이러한 위계질서가 새롭게
맥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도 했다. 특히, 원문/원천 텍스트(source
text)에서 목표/수용 텍스트(target text)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상이한 문화권이
서로 충돌하고 관계를 맺는 상호문화화(transculturation), 상호작용, 그리고 문
화교차적(cross-cultural) 과정에 주목하게 되면서,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권력
담론보다는 수평적인 문화번역의 과정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변화를
제기하였다.
리디아 리우(Lydia Liu)는 자신의 저서인『언어횡단적 실천: 문학, 민족문화
그리고 번역된 근대성-중국, 1900-1937(Translingual Practice: Literature, National
Culture, and Translated Modernity-China, 1900-1937 )』
에서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불어 원전을 독어로 출판하였던 번역가로서의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에 주목한다. 벤야민은 샤를 보들레르의『파리 풍경(Tableaux
parisiens )』
을 독어로 번역하면서 역자서문으로「번역가의 임무(The Task of the
Translator)」
를 쓴 바 있는데, 이 글에서 벤야민은 번역가의 임무란‘번역’자체
가 아니라‘번역가능성(translatability)’
에서 출발하므로 새로운 의미생성을 제기
한다. 리우는 벤야민의‘번역가능성’
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벤
야민이 보기에) 원천언어로 된 원본과 수용언어로 된 번역본은 제3의 개념, 즉
비표현적이지만 창조적인 태초의 말씀과도 같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의미하거
나 표현하지 않지만 모든 언어들 속에서 의미를 부여받는”순언어(純言語, die
reine Sprache/pure language) 속에 귀속되어야 한다.6 벤야민이 제기했던‘번역가

스트모더니즘 미술비평」
,『한국근현대미술사학』
, (2010), pp. 48-68.
, October, Vol. 28, Discipleship:
5. Homi Bhabha,“Of Mimicry and Man: The Ambivalence of Colonial Discourse”
A Special Issue on Psychoanalysis (Spring, 1984), pp. 125-133.
6. 리디아 리우 지음 (민정기 역),『언어횡단적 실천: 문학, 민족문화 그리고 번역된 근대성-중국, 1900-
(소명출판, 2005), pp. 39-41. 원전은 Lydia Liu, Translingual Practice: Literature, National Culture, and
1937』
Translated Modernity ― China, 1900-1937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 이 책은 1995년 초판
이 출판된 이후, 근대 중국학 연구자들을 넘어서 인문학 전반에 걸쳐 많은 문화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준
저서로, 서론에 해당하는 내용이 리우 교수의‘문화교차적 연구 방법론’
의 핵심을 다룬다. 리우는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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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
은 이후 데리다의 논의를 통해 확장된 바 있다. 언어의‘차연(différance)’

많은 관심을 두었던 데리다에 의하면,“이제 번역은 더 이상‘절대적으로 순수
하고 투명하며 명백한 번역가능성의 지평 위에서’언어 간 의미를 전이하는 행
위가 아니다.”그는 원천언어가 가진 권위하에 묶여져 있던‘번역본’
의 위계관
계를 해체시키고, 수용언어에 힘을 실어 주었다. 데리다에게 원본과 번역본은
단순한 모사 혹은 복제 이상의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이
다. 특히, 그가 제기했던 원본과 번역본의‘상보적(complementary)’관계를 주
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유태인이었던 벤야민은 번역의 궁극적 목적
(telos)은 메시아적 회귀라고 말하며, 원본과 번역본을 모두 성전(聖典)에 귀속
시키지만, 그는 원천 텍스트와 수용 텍스트 간의 상보성을 처음으로 중요하게
제시하였고,7 데리다는 두 텍스트의 상보성을 강조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리우의 저서는 미국에서 1995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고전텍스트로 상징성을 가질 뿐이지만, 당시 중국계 미국인 연구가였던 레이
초우(Rey Chow)와 함께 두 사람의 문화이론은 동아시아 연구와 식민담론 연구
에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8 리우는 원천언어에서 목표(수용)언어로의
번역이라는 기존 용어가 제기하는‘권위, 기원, 영향’
의 개념을 넘어서기 위해
언어횡단적 실천에 관한 연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연구는) 주인언어(host language) 내부에서 손님언어(guest language)와의 접촉/충돌로


인해, 혹은 그것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단어, 의미, 담론, 재현 양식이 생성되고 유포되어
합법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손님언어에서 주인언어로 옮겨갈 때 그 의
미는‘변형(transformed)’
되기보다 오히려 주인언어의 지역적(local) 환경 속에서 창안된다.
이런 차원에서 번역은 … 주인언어 내의 전이, 조작, 배치, 지배의 양식을 설명하는데 도

과 데리다의 논고를 인용하는데, 위에서 인용한 원전은 다음과 같다. Walter Benjamin, Illuminations, Trans.,
Harry Zohn (New York: Schocken Books, 1968), pp. 70-80; Jacques Derrida,“Des Tours de Babel”
, Trans.,
Joseph F. Graham, in J.F. Graham, ed., Difference in Translation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5);
Jacques Derrida, Positions, Trans., Alan Bas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1).
7. 리디아 리우,『언어횡단적 실천』
, p. 39 (각주 37). 이 내용은 마틴 제이의 글에서 다뤄진다. Martin Jay,
, in LBIY,
“Politics of Translation: Siegfried Kracauer and Walter Benjamin on the Buber-Rosenzweig Bible”
XXI (1976), pp. 3-24.
8. Rey Chow, Primitive Passions: Visuality, Sexuality, Ethnography, and Contemporary Chinese Cinema (New
York: Columbia Univ. P es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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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을 주는 이론적 어휘다.9

기존의‘목표/수용언어’
를‘주인언어’
로 상정함으로써, 리우의 담론적 실천
연구는 문화이동의 지도를 탄력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수직적 위계질
서를 벗어나 문화교차의 수평성을 강조하므로, 박현기를 해석하는 데 좋은 해
석적 프레임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III. 한국의 버내큘러 미디어를 찾아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를 한국에서 시도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이우환의 모노하의 흐름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주면서 출발하
였다. 전통적으로 보면, 백남준과 이우환의 원천 언어들은 수용 언어를 구사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 작업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박현기의 작업
을 주인언어로 규정함으로써, 그가 한국적 자생성과 토착성이라는 버내큘러를
모색하기 위해서 어떤 미학적 시도를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건축적’미디어 설치(architectural media installation)


오사카 태생의 미술가 박현기(1942-2000)는 우리나라 비디오 아트의 개척자이
자 선구자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08년 대구광역시의 문화예술회관에
이 열리면서 사후 첫 회고전이 열렸고, 2010년 갤
서 첫 회고전인《현현(顯現)》
러리 현대에서 10주기 회고전이 개최되면서 사후 그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
기 시작한다(도판 1).10 박현기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을 하지만, 이후
건축학과로 전과하여 1966년 졸업했으며, 이후 대구로 내려가 70년대 초반에
큐빅디자인이라는 실내장식 전문회사를 경영했다.11 그는 자신의 비디오 설치
(video installation)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 건축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
조한 바 있다. 특히, 회화 매체 고유의 특징인 이차원성을 극복하기 위해 조각

9. Lydia Liu, Translingual Practice: Literature, National Culture, and Translated Modernity ― China, 1900-1937
(Stanford: Stanfo d University P ess, 1995), p. 26.
10. 작고 직전, 1997년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개인전《비디오-인스톨레이션》이 개최되고, 1998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는 박현기의 개인전이 열렸다.
11. 류병학,「박현기의 차이와 반복」
,『아트인컬쳐』
, (2010년 4월), pp. 10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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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2010년 갤러리 현대 박현기 10주기 회고전》, 전시 장면, 현대화랑, 서울.

이 아닌 건축을 택했다고 밝히며, 건축이 삶과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기 때문이


라는 것이다. 이 근간에는 형식성과 예술적 오브제, 그리고 작품의 프로세스
모든 것을 담아내는 설치와 연관된 부분이 있으므로,12 박현기의 어법은‘건축
적 설치(architectural installation),’
‘건축적 미디어 설치’
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비디오를 조형매체로 사용한 동기에 대해 박현기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흔히들 나를‘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라고 말하죠. 하지만 난 비디오 아트를 의식하
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디오는 내가 말하려는 것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재료였
고, 그것을 작업에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한 작가의 조
형 모색 중에 비디오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13

박현기는 1977년 비디오를 이용한 작업을 국내에서 최초로 발표하였는데,14


1963년 독일에서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를 제작한 지 14년 이후의 일이다. 당

12.“Park
 , Space (Jan. 1995), p. 60; 그는 건축과에서 3차원적 해석
Hyun-Ki interviewed by Shin Yong-Dug”
을 공부할 수 있었으며 당시 홍대 건축과는 김수근이 가르쳤다고 한다. 김수근은 1961년부터 홍대에서 강
의했으며, 1966년『공간』
지를 발간했다.
13. 박현기와 이근용의 인터뷰,『월간미술』
, (1999년 3월), p. 51.
14. 최초의 비디오를 실험한 박현기 작품과 그 당시 전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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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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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비디오 작품은 사진관 암실에서 현상용으로 사용하던 트레이에 담긴 물
을 휘저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영상이미지를 찍은 것이다. 박현기가 당
시 대구의 K-STUDIO에서 발표한 15분짜리 기록비디오 작업은 국내최초의
비디오 아트에 속한다. 그가 비디오 예술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74년 ― 아
마도 박현기를 다룬 모든 전시와 도록, 논문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일 것이다
― 대구 미국문화원 자료실에서 <지구의 축(Global Grove)>(1973), 그리고 머
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춤을 편집한 비디오 작업을 보고 비디오 제작
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머스 커닝햄의 작업에 대해 혹자는 <텔레비전을 위한
이벤트(Event for Television)>로 밝히고 있으나, 이 작품은 1976년 작이다.15 물
론, 이 점은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출발점일 뿐 박현기가 대구에 살면서 테크
놀로지에 접근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백남준이 사용한 비
디오 신시사이저(Synthesizer) 기술뿐 아니라, 이미지를 합치고 변화시키고 왜
곡시키는 기술도 국내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박현기는 실망하기 때
문이다.16 그러나 백남준에게서는 비디오가 미학적인 미디어가 되고‘오브제
화’
가 된다는 사실을, 머스 커닝햄에게서는 신체 퍼포먼스가 전달하는 수행성
(performative)를 익힌 것이 아닐까 한다.
박현기는 서울의 미술계를 떠나 대구로 가게 된 직접적 이유를 전통 내에서
현대미술의 비전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대구와 가까운 경주에서 전통을
모색할 수 있었고 전통 가옥이나 건축 등을 탐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17
특히 1970년대 초반 박현기는 대구로 내려와 큐빅디자인(실내장식전문)을 경

15. 정영민은 1986년 박현기가 1973년에“<Event for Television>의 비디오 작업에서 그 특유의 무용관을 엿
볼 수 있었고 특히 그 작품의 해설 중“우리는 뱃소리를 들으며 날아가는 갈매기를 볼 수 있다”
는 동시적
현상에 깊은 매력을 느꼈으며 그것은 또한 커닝햄의 총체이미지(Total Image)에로의 집중이었다”
고 밝히
고 있다. 정영민,「비디오 예술의 신개척자: 박현기(The New Pioneer of Video Art: Park, Hyun Kee(Hyun
Ki Park))」
,『미술세계』
, (1986년 3월), pp. 82, 87. 그러나 머스 커닝햄의 <텔레비전을 위한 이벤트>는
1976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머스 커닝햄의 레퍼토리 중에서 <Antic Meet> <Scramble> <Septet> <Solo>
<Sounddance> <Minutiae>의 발췌본이며 <Rainforest>가 공연되었다.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이 영상 작업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Video Triangle>(음악: 존 케이지)가 실렸다.
16.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1970년에 발명되었으며, 실시간으로 특수효과를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이점을 제
공했다.
17. 이원곤,「박현기의“비디오 톨탑”
에 대한 재고: 작가의 유고(遺稿)를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 (2011),
pp. 449-458. 이 논문은 작가 사후에 발견된 제작노트를 중심으로 비디오 돌탑 작업의 제작 과정을 재구
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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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면서, 대구에서 최병수, 이강소, 황현욱(1947-2001)과 함께 서울에서 유행
하던‘단색화’
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당시 대구에서는 이들을 중심으
로 1974년부터 1979년까지‘대구현대미술제’
가 개최되면서 대구 지역에서 프
로세스 아트,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을 실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18 특
히 박서보가 이끌었던 앙데팡당 전시와 거리를 두고, 이우환의 모노하를 바탕
으로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던 설치미술과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19
박현기가 구사해 내는 주인언어는 이우환의 <관계항>과 백남준의 비디오 아
트에 답하며 (국외에 거주하던 두 선배들의 작업에 답하며),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일종의‘신조어’
에 해당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작업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신조어 비유(trope)는 수사학적으로 외부에서 유입한 단
어(매체)들을 재현하는 동시에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 창안된 것이다. 또한 이
것은 타자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 속에 일종의 긴장감을 불어 넣어 외국적인 것
이 되면서도 자생적인 길을 동시에 열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박현
기의 <TV시소>(1984)는 모니터와 돌,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다(도판 2). 박현기
스스로도 이우환의 영향
을 밝혔듯이, 강태희는
박현기의 이 작품을“이
우환의 모순율의 구조를
극대화하는 작품”
으로
본다. 돌과 철판으로 시
소를 만들고, 다른 쪽에
는 돌의 영상을 투사하
는 TV 모니터를 놓아 서
로 균형을 이루게 하고 도판 2. 박현기, <TV 시소(TV Seesaw)>, 1984, 모니터, 돌, 철, 40×
270×72cm, 현대화랑, 서울.
있다. 현대산업사회의

18.‘대구현대미술제’
 에 대해서는 박민영,「박현기의 비디오 작품 연구」(영남대학교 석사논문, 2007). 박현기
는 마샬 맥루한의‘미디어는 메시지: 인간의 확장’개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 Space (Jan. 1995), p. 16.
19.“Park Hyun-Ki interviewed by Shin Yong-Dug”

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정연심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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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성을 대변하는 금속성과 돌의 정신성을 대비시키면서 돌로 대변되는 자연
과 모니터로 대변하는 테크놀로지를 제시한다.20 돌은 영겁의 시간성을 축적해
온 모티프를 상징한다. 특히, 대지미술가였던 로버트 스밋슨(Robert Smithson)
도‘암석’
과 같은 돌이나 지층은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엔트로피와‘시간성’
의 결정체라고 설명한 바 있다.21
박현기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인“서구적 미니멀리즘에 동양적 사유세계를
접목시킨 작가”
라는 평가는 박현기가
밝혔듯이, 백남준, 이우환의 영향을
드러내며 그의 미디어 설치가 형성되
는 과정에서 주요 영향을 미친다. 박
현기는 1970년대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던 아방가르드 협회가 만든 AG 전
시와 4회 발간된 같은 이름의 책자뿐
아니라, ST(Space and Time의 약자)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알았을 것이다
(도판 3). 그의 작업이 개념성을 전략
적으로 이용하고, 대지미술, 아르테
포베라에서 볼 수 있는 프로세스 아트
의 특징들은 대구에서 자리 잡은 이후
도판 3. 한국아방가르드협회 발행,『AG 』, 1969,
Vol. 1 표지. 제작된 초창기 작업에서 등장한다.22

20. 강태희는 2010년 박현기에 대한 카탈로그 에세이에서 일본 모노하와 이우환의 영향을 설명하며, 1970년
일본에서 개최된《사람과 물질 사이(Between Man and Matter)》
에서 다룬 대지미술, 프로세스 아트, 아르
테 포베라, 비디오 섹션 등을 강조한다. 특히 1978년 그의 돌탑은 모노하 작가인 노부오 세키네의 1970년
작 <공상(空相-돌탑)>과의 유사성을 논한다.
, Artforum (Sept. 1968); reprinted in Robert
21. Robert Smithson,“A Sedimentation of the Mind: Earth p ojects”
Smithson: The Collected Writings, ed. Jack Flam (Berkeley: Los Angeles, and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6), pp. 68-74. 이브-알랭 부아, 로잘린드 크라우스 (정연심, 김정현, 안구 역),『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 (미진사, 2013), p. 91. 미국비평가 모건은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 및 대지미술과 로버트 스
밋슨의 유카탄 프로젝트를 서로 비교한다. Robert C Morgan,“Hyunki Park: Noe-Metaphysical Video and
, PAJ: A Journal of Performance and Art 87, Volume 29, No. 3 (Sept. 2007), pp. 30-33.
Conceptual Art”
22. 1970년에 발간된 두 번째 AG 잡지는 大地作品(Earth works), 워터 워크(Water works), 공중작품(Sky
works), 思念作品(Thinkworks), 허무예술(Nihil works), 아취워크(Archiworks)를 다뤘는데,‘사념작품’
은 조셉
코수스 등의 개념미술을 의미했고,‘아취워크’
는 크리스토, 클래스 올덴버그의 모뉴먼트 프로젝트,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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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4(왼쪽). 박현기, <몰(沒) 시리즈>, 1974, 화장
지, 설치(가변크기).
도판 5(오른쪽). 박현기, <TV & 돌>, 1978, 모니터
와 돌, 설치(가변크기).

박현기는 해외에서 개최되던 유명 비엔날레 참여작가가 되면서 직접 상파울로


와 파리로 가서 현장 설치를 하면서 동시대 미술의 변화를 직접 보고, 체험하
게 된다.
연구자는 박현기의 작업이 비디오 아트와 이우환의 모노하에 자체에 한정하
지 않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작가가 퍼포먼스와 대지미술, 개념미술, 프로
세스 아트를‘박현기의 어법’
으로 구축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려고 한다. 여기
에는 여러 매체를 아우르는 인터미디어(intermedia) 설치에 대한 박현기의 관심
사도 있지만, 그는‘건축’
을 상당히 은유적 관점으로 해석한다고 여겨진다. 건
축이란 인간의 삶을 다루는 것이고, 건축을 배운 그는 드로잉에‘유토피아’
‘물
질’
‘정신’등의 단어 등을 기록한다. 비디오 아트를 제작할 즈음, 박현기는 대
지에 드로잉을 긋는 행위와 미니멀리즘의 반복적 유닛을 1974년도 작업에서
시도하였다. 예를 들면, 1974년에 그는 낙동강변의‘줄긋기’
에서 나무 둥지와
나무를 직접 땅에 그린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돌 6개의 납작한 돌을 층층이

의 아키그램(Archigram) 등을 소개했다. AG, Vol. 2 (1960), pp. 28-37 참조.

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정연심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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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6. 박현기, <몸 기울기>, 1979, 행위와 비디오 설치.

쌓아올렸다. 같은 해의 <몰(沒) 시리즈>는 화장지 두루마리 종이에 물감을 발


라서 스며들게 하는 우연성을 강조하고 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작업이다(도
판 4). 이러한 쌓기 작업들은 자연석 사이에 유리, 수지 등의 인조돌을 끼우면
서 돌탑을 설치하다가 이후, 1978년에는 돌을 이어 가면서 SONY TV로 돌을 2
개 비춰 주는 영상으로 설치하였다. 모니터와 돌로 구성된 <TV & 돌>(1978)도
TV를 돌탑처럼 쌓아 올린 작품이다(도판 5). 이러한 작업들은 우리의 눈이 실
제로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과 카메라의 렌즈가 사물을 찍는 방식을 병치시킨
다. 모니터 속의 이미지는 영상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움직임이 제거된 스틸
이미지, 혹은 사진적 이미지처럼 보인다. 박현기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본 사
물성과 실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사물의 미적 특성이나 고유한 개념을 추구하지 않으며, 항상 외계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눈(Camera-eye)을 통해서 보는 사물은 내가 아닌 즉 개인적인 내적
관점을 벗어나 사물과의 거리를 취하면서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매체의 이념적 해석이 아닌 것으로 실제적인 현실감을 맛보게 된다. 나의 작업의 영상은
카메라 앵글을 통해서 본 사물일 뿐(이다).23

23.《맥향화랑
 30년 1976-2006》, 2006, p. 245; 박민영,「박현기의 비디오 작품 연구」
, 영남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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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대상이 그물에 걸렸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잡았다고 생각하
는 그 대상은 추상의 결집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재에 대한 과학적 접
근을 나타내는 특징은 대상을 서술하는 것, 그것에 관해 언급하는 것. 그 주위를 맴도는
것. 우리들의 지적 감각에 호소하는 어떤 것을 캐내는 것. 그리고 그 대상 자체와 그것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는 분석적으로 구성된 추상의 결과를 봉합
하고 대상의 결론을 얻어내는 것이다.24

실제의 돌과 허구의 돌, 진짜와 가짜는 서로 대리 보충의 상보적 요소로 존


재하며, 가짜가 없다면 진짜는 존재할 수 없는 역설적 관계 안에서 공존한다.
가짜와 진짜 돌은 일루전을 연상시키는 반복성을 보여주는데, 스크린에 비춰
은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투사된다. 1979년 박현기가 제작한 <몸 기
진 가짜‘돌’
울기>는 비디오의 이미지 영상을 이용한 신체 퍼포먼스로, 1979년 제15회 상
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다(도판6).25 그는‘비디오 돌탑’
도 보여주는데, 비
디오 매체는‘무빙 이미지’
를 끌어들이면서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던 시간성을
끌어들였지만, 박현기의 비디오 매체는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부동하는 돌
의 스틸 이미지를 통해 흘러가는 시간성을 이야기한다.26 박현기는 전시 역사
상 처음으로 비디오 설치 섹션을 마련한 1980년 제11회 파리 비엔날레(Biennale
de Paris: manifestation internationale des jeunes artistes)에도 직접 가서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였다.27
박현기의 성과는 같은 시기, 초기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써 나가던 작가들
이 모색하지 못했던 요소였다. 적어도 미국에서 일어났던 초창기 비디오 아트

2006, p. 43.
24. 1984년 작가노트, 박민영,《박현기 유작전-현현(顯現)을 열며》
, (대구문화예술회관, 2008).
25.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이건용, 김기린, 진옥선, 최병서, 이상남, 김용민, 박현기, 총 7명이 참가하였고, 1980
년 파리비엔날레 커미셔너는 오광수였다. 이중 이건용, 박현기, 김용민은 현장 설치를 선보였다. 오광수
는 당시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맞먹을 정도였으며, 박현기는 브라질의 비디오 시스템
이 한국과 달라 현장에서 애썼다고 회고한다. 그들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의 서구적 경향을 목격했으며,
이건용은 신체 드로잉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26. 고충환,「고(故) 박현기 선생의 빈자리에 남은 작업들」
,『미술세계』
(2000년 2월호), pp. 120-121. 고충환은
“당시 출품 작업은 비디오 특유의 동적인 화면과 재빠른 화면의 변전을, 그리고 어떤 서술적인 형식의
전개를 기대했던 현지인들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오히려 주목을 끄는, 보기에 따라서는 동양인의 세계
관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동적인 접근을 꾀한 작업”
이라고 논한다.
27. 1980년 파리 비엔날레(9월 29일-11월 2일)는 파리시립현대미술관(Musée d’
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에서 개최되었다.

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정연심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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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역사에서 즉시성(immediacy)은 비디오의 미학적 특징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
음을 보여주었다. 백남준 또한 1965년 10월 4일, 자신이 테이프로 녹음한‘일렉
은 관람자의 모습을 즉시 보여준다고 밝힌다.28 비디오
트로비전(electrovision)’
매체는 즉각적인 이미지의 피드백(feedback), 비디오 스크린의‘나르시시즘 효
29
과’ 을 이용한 댄 그레이엄(Dan Graham), 비
를 가능하게 했다. 시간의‘지연’
디오 스크린의 거울 효과에 입각한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비디오의‘감시’
기능을 탐닉한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등의 궤적과는 다른 길이다.30 이
들은 모두 당시로서는 뉴 미디어로 부각되던 비디오 테크놀로지가 가진 매체
의 가능성을 천착하였으나,31 백남준 또한‘비디오 조각’
과 동양의‘불교’
를통
한 동양적 사유를 끌어들임으로써 특히 미국의 비디오 작가들과는 길을 달리
했다.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 윌리엄 카이젠(William Kaizen)은 미국의 포스트미니
멀리스트들이 비디오의 즉시성(immediacy)에 열광하고, 동시대 사회현상을 포
용하기 위한 예술생산의 매체(medium)로 작업하였다고 설명한다. 당연히 이러
한 변화의 동인에는 1960년대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정보 배포의 수단으로 바
뀌어갔고, 간편해진 휴대용 비디오테이프 시스템 덕분이다. 뉴욕을 베이스로
작업하던 초창기 비디오 작가들은 실시간 혹은 테이프에 녹음된 사운드와 움
를 실험하였다.32 박현기
직임을 포착하기 위해‘텔레크로놀로지(teletechnology)’

28. Nam June Paik, Videa‘n’Videology 1959-1973 (Syracuse: Everson Museum of Art, 1997), n.a.:“In my
video-taped electrovision … you see your pictu e instantaneously.”비디오의 즉시성은 당시 많은 비평가
, Artforum (April
와 비디오 작가들의 코멘트에서 동시적으로 등장한다. Douglas Davis,“Video Obscura”
1972). 1965년 6월 3일 일본의 소니사에서 개발한 첫 휴대용 Porta-Pak이 미국에 공식판매되기 시작했
, in Art and the
다; Kaizen, 제 1장 참조. William Kaizen,“Live on Tape: Video, Liveness and the Immediate”
Moving Image: A Critical Reader (London: Tate Publishing/Afterall, 2008), pp. 258-272.
, October, No. 1 (1976). 비디오 매체를‘나르시시즘’
29. Rosalind Krauss,“Video: The Aesthetics of Narcissism”
으로 협소하게 설명하는 크라우스의 논지에 대한 반박은 다음과 같다. David Joselit,“Tale of the Tape:
, Artforum 40, No. 9 (May 2002), pp. 152-155, 196; Anne Wagner,“Performance, Video
Radical Software”
, October, No. 91 (2000).
and the Rhetoric of Presence”
30. Dan Graham, Video-Architecture-Television (Nova Scotia: The P ess of the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1979).
31. 1969년 하워드 와이즈 갤러리(Howard Wise Gallery)에서는《Television as Creative Medium》
이 개최되었고,
《The Medium is the Medium》
이 보스턴 WGBH에서 개최되었다.
32. William Kaizen,“The Immediate: Video Art and the Aesthetics of Liveness, from Andy Warhol to
Postminimalism”
, Ph.D. Diss. (Columbia University,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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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7. 박현기의 신체 퍼포먼스,
1985, 행위와 비디오 설치, 카마쿠
라(Kamakura) 화랑, 일본.

가 1985년 일본 가마쿠라 갤러리(Kamakura Gallery)에서 진행한 TV 모니터를


애무하는 비디오 퍼포먼스는 비디오 매체 자체를 더욱 실험하는 듯이 보인다
(도판 7).
대구에서 활동하던 박현기는 비디오 스크린의 거울 효과를 수용하며 거울
이미지를 담아내는 비디오의 스크린(screen)과 건축으로서의 미디어 설치에 관
심을 두고, 대지미술과 건축을 서로 횡단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백남준의‘비디
, 이우환의 모노하의 흐름과 그 궤적을 달리하게 된다.33 이러한 박현
오 조각’
기의‘건축적 미디어 설치’
는 이미지의 다양한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허상과 가
상, 실재와 함께 공존하면서 대지에서 거울의 전치(displacement) 효과로 만들
어지는 장소특정적 작업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34 다시 말하면, 비디오 설치
미술가들이 장소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과 달리, 박현기는‘장소성’
을 강조하면
서 대지 속에 자신의 신체성, 행위를 통해 퍼포먼스의 수행성을 표현한다. 자
연과 조우하는 돌과 같은 여러 가지 대상들, 인간의 몸 (혹은 자신의 몸), 혹은
돌로 표상되는 자연은 미디어의 인공성, 인공물로서의 미디어를 서로 병치시

33. 비디오 및 미디어 아트의 스크린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 참고. Kate Mondloch, Screens: Viewing Media
Installation Art (Minnesota: Univ. of Minnesota Press, 2010); 미국의 초기 비디오 아트부터 미디어 아트까
지‘인터페이스’
로서의 스크린과 관련된 예술형식을 다룬다. 국내문헌은 전혜숙,「미술 속의 인터페이스:
르네상스 이후 미술에서 스크린과 프레임 개념의 변용」
,『탈경계인문학』
, 제2권 3호 (2009년 10월), pp.
5-33.
34. 김홍희,「박현기의 한국적 미니멀리즘 비디오: 사이트특정성과 정신성」
,『한국현대미술 197080』
, (학연문
화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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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8. 박현기, <도심지를 지나며
(Pass Through the C ty)>, 1981, 행
위와 비디오 설치.

키는 박현기의 어법을 구사한다.


1981년 박현기가 제작한 <도심지를 지나며(Pass Through the City)>는 작품이
제작된 3월 22일, 대구시내지역을 12킬로미터 횡단하면서 화이트 큐브 공간(대
구의 맥향 화랑)과 갤러리 밖의 공간인 도시공간을 이중적으로 활용하는 프로
젝트였다(도판 8). 그는 대형 트레일러 위에 거대한 바위(실은 복제된 돌)을 설
치하고, 돌덩이에는 거울을 두어 사람들이 들여다보게 하였다. 이것은 비디오
화면에 다시 투사되어 인터랙티브를 구현하였다. 거울 스크린이 비디오 스크
린으로 확장되면서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였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관점과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한다.
특히, 박현기가 1982년에 대구 낙동강변에서 설치한 <Media as Translators>
는 자연 속에 돌의 영상을 담은 이미지를 모니터에 보여준다(도판 9). 미디어
는 전달자, 번역자로 존재하며, 상이한 요소들을 매개해 주는 에이전시(agency)
로 존재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동안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안에서의 재현물 이
었지만, 그는 자연 속으로 이를 확장시켰다. 장석원이「비데오(비디오) 인스탈
레이션의 현장화(現場化)」
에서 자세하고 기록하고 있듯이, 박현기의 퍼포먼스
현장 설치는 총 15명의 사진작가와 비디오 기사, 그리고 대구의 작가들이 동원
된 대형 퍼포먼스형 비디오 설치였다.35 박현기는 이틀 동안 6개의 퍼포먼스를

35. 장석원,「비데오(비디오) 인스탈레이션의 현장화(現場化)」


,『공간』
, (1982년 8월), pp. 76-83; 이 글은 1982
년 6월 26일부터 27일, 이틀 동안 대구근교강정(낙동강변)에서 진행된 박현기의《Media as Translators》

의 현장 도큐멘테이션을 사진과 일정에 따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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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9. 박현기, <Media as
Translators>, 1982, 행위와 비디오
설치.

진행하였는데, 첫날은 (오후 6시 반) 모래언덕 위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모니터


를 다시 설치하는가 하면, 오후 7시에는 강변의 숲에 널려져있는 쓰레기 더미
속에 쓰레기가 투사된 두 개의 모니터를 설치하였다. 마치 인간의 신체와 쓰
레기, 코카콜라와 같은 대중 소비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표상하고 이를 매개해
주는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하는 듯하다. 해가 진 8시에는 풀밭에 세운 유리 스
크린(크기 90x180cm)에 자신의 나체 영상을 투사했고, 오후 8시 30분에는 포플
라 숲 풀밭에 설치한 텔레비전 모니터에 주변의 풀밭이 투사되게 하였다.36 자
정에는 박현기의 대지작업인 <Fire 드로잉>이 시작되는데, 원을 따라 휘발유를
부은 후 작가가 직접 원 속에 들어가서 불을 지르는 대지 퍼포먼스가 진행되었
다. 불이 소멸되면서 작가의 신체도 사라져간다. 장석원은“보이는 돌과 허상
으로서의 돌, 사물과 영상의 대비를 통하여 자연과 미디어의 세계를 합일하는
으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박현기는 자연과 인공(artefact)의 대비,‘인공물’
장”
로서의 비디오 매체로 동시대 문화를 비평하고, 새로운 매체로‘번역가능성’

모색한다. 그는 인간과 환경, 테크놀로지를 통합적으로 묶어내는 미디어의 파
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본고에서 지금까지 설명한‘건축적’
이라는 수식

에 필요한 장비들은 비디오 촬영기 1대, 수상기 3대, 조작기 1대, 바위 6개, 발전기 1대, 슬라이드 기재, 젖
빛 유리, 전지 3장, 천막 100미터, 담요 20장, 소수 100병, 음료수 3박스, 음식물(30명분 3끼분) 등으로 기
재하고 있다. 대구에서 강정강변까지는 1톤 트럭 2대로, 낙동강에선 배로 이용하였고, 다시 현장까지는
당시 소달구지로 이동했다. 총 6개의 퍼포먼스가 이틀 동안 진행되고 60여 명의 관람자가 다녀갔다.
36. 1979년의 <반사 시리즈> 도강물에 거울을 설치하여 그 거울에 투사되는 이미지를 투사한다.

의 맥락에서 본 한국 미디어 설치|정연심 249


‘문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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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는 장르 구분의 의미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Ⅳ. 나가는 글

연구자는 언어 중심으로 진행되었던‘문화번역’


이라는 관점을‘매체’
의 번역,
매개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를 설명하였다. 본 논
문은 수직적 위계질서 내에서 조명되었던 문화이동의 여정을 수평적으로 생각
해보면서 박현기의 비디오 설치가 동서양의 비디오 매체 비평 내에서 위치할
수 있는 독자적 가능성을 짚어 보았다. 미국의 초기 비디오 아티스트들이‘비
디오’
라는 스크린이 지니는 매체 자체의 심리적 특징에 몰두했던 것과 달리,
박현기는 테크놀로지 자체보다는 비디오 설치와 퍼포먼스, 대지미술의 개념
적 요소를 혼용하여 박현기 어법의‘건축적 미디어 설치’
를 모색하였다. 보통
박현기는 비디오 자체를 오브제화하여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는 다른 작업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이젠과 같은 서구 매체이론가들은 백
남준 또한 비디오를 오브제화하여 아콘치, 나우먼, 그레이엄 등과 달리 동양의
정신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박현기의‘건축적 미디어 설치’
는 비디오라는 매체 자체가 지닌 기술적, 미
학적 가능성을 탐구하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환경을 둘러싼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 구축(construction)과 구조(structure)의 관계를 만들어낸다.37 최초의
한국 비디오 작가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박현기의 작업은 비디오 아트만
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에 바탕을 두었던 대지미술, 개념미술, 아르
테 포베라의 요소들이 모두 혼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바탕을 둔 것이‘박현
기의 어법’
이라고 여겨진다. 박현기가 남긴 색채 드로잉에는 이러한 구축과 구
조의 의미를 한층 강조하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리하여 그에게 건축이란 작
업 방식에서 작동기제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미술의 중심(서
울)과는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테크놀로지를 구사하는 비디오 오브제를 통해
서울화단에서 진행되던 회화 운동과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의도적으로 드러

37. 박현기가 1987년 일본 오사카의 ABC 갤러리에서 Eji Okubo와 함께 <협업(Collaboration)>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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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위해‘건축’
이라는 용어에 더욱 천착했을 것이다. 동시에,‘서울문예진흥
에서 진행된 박현기의 전시는 더욱 건축적으로 변해 가며,38 이러한 요소들
원’
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바로‘건축’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박현기의 설치는 개념미술, 비디오와 퍼포먼스가 결합함으로써, 비
디오는 박현기의 신체와 주변 환경, 사물을 매개해주는 미디엄으로 존재하며,
건축적 구축 및 구조를 통해서 자연과 인공물(artefact)은 모두 현현하게 된다.
보들레르가 쓴 불어를 독어로 번역했던 벤야민은“낯선 언어를 번역하며 순수
언어를 번역자 자신의 언어로 해방시키고, 작품 속에 갇혀 있는 언어를 번역의
39
재창작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번역자의 과제” 라고 보았다면, 해외 유학을 나
가지 않았던 박현기는 자신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건축적 미디어 설치를 통해
“토착적, 자생적”버내큘러 미디어를 구축하였다.40

■ 주제어
한국 비디오 아트(Korean Video Art), 박현기(Park Hyun-Ki), 백남준(Nam June Paik), 문화번역
(Cutural Translation), 건축적 미디어 설치(Archtectural Media Installation)

투고일 2014년 11월 2일 심사일 2014년 11월 14일 게재확정일 2014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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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Korean Media Installation in Relation to “Cultural Translation”:
Park Hyun-Ki,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Video Art

Yeon Shim Chung

This paper examines the identity of Korean video art in the late 1970s and 1980s in
light of the “cultural translation” theory raised by Lydia Liu, Rey Chow, and others.
Liu’s “translingual practice” discusses the way non-Western regions translate Western
language and mediums. In the genealogy of video art, Nam June Paik has his authority
as the founder of video art, but his Korean counterpart, Park Hyun-Ki, has established
as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video art. Park, eclectically relying on performance
art, conceptual art, and Arte Povera style process art, established his video art in the
context of an architectural media installation. After raising theoretical issues concerning
the translation of mediums from one culture to another, chapter two discusses the
“translingual practice” of video from Paik (United States) to Park (Korea). Chapter
three queries the vernacular medium situation of Park’s video installation by looking at
his significant works of art in detail.
My paper discusses the way architecture plays a mediatory role connecting humans,
environments, and artistic mediums such as video or video installation. Whereas
Western video artists such as Bruce Nauman, Vito Acconci, Joan Jonas, and others
explored the medium specificities of video screens, Park dealt with video as the
medium of “translatability” in accepting the new medium in the mid-1970s. Park’s video
installation was exhibited in the 1979 San Paolo Biennale and the 1980 Paris Biennale,
the latter showing the first video art in its exhibitio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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