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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화. 너는 또 누구야 2020.01.03.

알렌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로테슈 자작은 쯔쯔쯔쯔 혀를 찼다.

“이 무심한 녀석아 무심한 녀석아. 어찌 그리 사람 마음을 몰라.”

“마음이요?”

“걔가 겉으로만 차갑게 구는 거지, 속마음은 아니야. 얼굴 한번 못 본 자기 아이를 위해 이 저택을


우리에게 줄 정도 아니냐. 얼마나 제 애가 보고 싶겠어.”

“아.”

로테슈 자작의 말에 알렌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라스타는 착하고 애정이 깊으니까요.”

하지만 곧 알렌은 걱정스러워져서 물었다.

“하지만 안은 라스타와 똑같이 생겼는데요, 아버지. 이 특이한 머리 색도 그렇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모자를 씌워서 머리카락을 감추면 되지. 왜, 아가들이 뒤집어쓰는 그 모자 있지 않으냐.”

로테슈 자작이 뭘 그런 거로 걱정하냐고 타박하자, 알렌은 느릿하게 납득했다.

“알겠어요.”

“서둘러서 알현을 신청하도록 해라. 사람이 많이 밀려 있으니.”

“예.”

알렌이 아기를 안고 멀어졌다. 로테슈 자작은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끌끌 위태롭게 웃었다. * * *


늦은 밤이었다. 머리를 빗고 가운을 걸친 후 침실 안으로 들어가니, 하인리가 문 옆에 숨어 있다가
얼른 나오면서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발이 허공에 떠올랐다.

“하인리!”
놀라서 어깨를 붙잡자, 그는 나를 든 채 가뿐하게 한 바퀴를 돌고는, 웃으면서 내 배에 머리를 기댔다.
떨어질 것 같아서 그의 머리를 붙잡자, 하인리는 그것도 좋은지 아예 내 배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물었다.

“놀랐어요?”

“왜 맨날 숨어 있는 거예요?”

“재밌잖아요. ……혹시 싫은가요?”

“싫은 건 아니지만…….”

이것도 새의 습성이냐고 물어보면 그가 기분 상해할까? 머뭇거리고 있자니, 하인리는 그 상태로 곧장


침대로 걸어가 나를 내려주었다. 침대에 앉자 그는 나란히 앉아 자기 무릎을 내게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내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가볍게 머리카락을 문질렀다. 부드러운 손길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에 힘을 주면서 물었다.

“언제부터 문 뒤에 숨어 있었나요?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음…… 5 분 정도…….”

“5 분?”

“사실은 10 분이요.”

“10 분을 벽에 붙어 있었다고요?”

10 분을 기다렸단 소리를 듣자 잠이 깼다. 놀라 쳐다보자, 하인리는 내 시선을 피하더니 머리카락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이번엔 내 손가락의 말랑한 부분을 꾹꾹 누르면서 웃었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손을 깍지끼며 물었다.

“퀸. 부인.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있어요. 마침 잘됐어요.”

“뭔가요?”

“카프멘 대공에 대해서예요.”

“…….”
하인리의 표정이 굳는다. 그도 내 말의 중요성을 대번에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서
그에게 나와 카프멘 사이의 거래를 알려주었다.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했어요. 그 대가로 서대제국과 륍트의 교역 때 우리 측에 유리한 항목을 세


가지 넣기로 하였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혹시 다른 생각이 있다면…….”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아. 그게. 그냥, 전 퀸이 다른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해서요.”

내가 눈에 힘을 주자 하인리는 얼른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일도 아주 중요한 일이군요. 네. ……이해했습니다, 퀸.”

뭔가 하인리가 기대한 말이 따로 있던 건가? 내가 그에게 해야 할 말이 있나?

“퀸. 다른 할 말은 없습니까?”

기대하는 말이 있나 보다. 또다시 묻는 걸 보니.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하인리는 아예 ‘힌트를


줄까요?’라며 대놓고 물었다.

“말해봐요.”

“힌트는 부부입니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알겠어요.”

하인리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나는 그에게 잠시 가만히 있으라 말하고서, 얼른 내 방으로 건너가


낮에 만들어 둔 할 일 목록을 가져왔다.
“퀸?”

나는 아까의 그 자리에 앉아서, 하인리에게 가져온 노트를 건네며 뿌듯하게 말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놨어요.”

이걸 보고 싶던 거지? 부부간이라 해서 비밀이 단 한 톨도 없진 않겠지. 하지만 부부들은 많은 일을


공유한다. 하인리도 내게 그런 걸 원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하인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이걸 원한 게 아닌가? 그러고는 덧붙이는 한 마디.

“알찬 계획서네요.”

“재미없나요?”

난 이런 거 적고 보는 게 재미있는데. 남이 보기엔 별로일까.

“재미있습니다, 부인. 재미는 있는데…….”

하인리는 다시 말끝을 흐리더니,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돌연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서, 내가


건넨 노트 속 글씨를 하나하나 살폈다. 어느새 내가 건넨 노트를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다.
하인리는 다섯 번은 정독할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도로 건네며 말했다.

“참으로 알찬 계획서입니다, 부인.”

“아까랑 소감이 같은데요.”

“부관과 집무실은 제가 내일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급하게 말을 돌린 티가 나지만, 넘어가 주자.

“고마워요.”

“아니, 부관은 퀸께서 직접 살피고 잘 맞는 사람들로 고르는 게 낫겠지요?”

적당히 응수해주며 고개를 끄덕여주기를 얼마간. 갑자기 하인리에게서 뚝 말이 끊겼다. 왜 이번엔


갑자기 조용해졌지? 의아해서 보니, 하인리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전 따로 적어둔 게 없어서…… 보여드릴 게 없는데요.”

아. 내가 이 수첩을, 서로 교환해서 보자고 내민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몹시 아쉽단 소리를 했다.
“그래요? 그대 것도 보고 싶은데.”

아니라면 그가 민망해할 테니까. 다행히 하인리는 민망하지 않은 듯 ‘아, 그러면’ 하고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 웃음이 사라지더니, 말을 잇는 대신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시선을 내렸다. 갑자기 왜 저러지?

“그게, 제 것은…….”

“자신없나요?”

자세히 보니 얼굴도 그사이에 붉어져 있었다. 왜 이러지? 의아해서 쳐다보자, 하인리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퀸. 처음 한 얘기는 아주 중요했고, 두 번째에 해 준 얘기도 아주 알찼지만, 그,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좀 더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사적인 이야기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설마 몸의 대화를 나누자든가, 그런 뜻은 아니겠지. 저 말간 얼굴로 그런


의도를 가졌을 것 같진 않고……. 혹시 고백에 대한 답을 들려달란 걸까? 약간 짐작 가는 바가 있지만,
나는 계속 모른 척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무슨 말인지.”

하인리는 시무룩해졌지만, 더 물어보는 대신 순순히 옆으로 가 누우며 팔을 뻗었다. 문제는, 그 팔이


내 자리를 침범했단 데 있었다. 그의 긴 팔이 내 베개 바로 밑에 있었다. 게다가 내가 그의 팔과
얼굴을 번갈아 살펴도 팔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좀 민망하겠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하인리. 여긴 내 자리입니다.”

“예?”

팔 치우라고.

“내 자리예요.”

딱 잘라서 다시 말하자, 하인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천천히 팔을 회수했다.

“팔을 크게 뻗어서 자고 싶으면 좀 더 왼쪽으로 가서 누워요, 하인리. 침대가 넓으니까 그렇게 해도 될


겁니다.”
얌전히 접힌 그의 팔을 몇 번 두드려준 후, 나는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그러나 불을 끄자마자 이번엔
옆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

왜 저러나 싶어 보니, 하인리가 입술을 악물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하인리?”

다시 불을 켜고서 상체를 일으키자, 하인리는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예 몸을 옆으로 하며


웃었다. 한참 후에야 그는 가까스로 진정해서 사과했다.

“미안해요. 난 그냥, 퀸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싶었어요.”

“!”

* * * 자고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근처에서 났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 기분과 고소한 냄새를 더


맡고 싶은 기분이 제멋대로 충돌했다.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다가, 결국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신경 쓰여서 눈을 떴다.

“하인리?”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음식용 카트 옆에 선 하인리였다.

“그게 뭐예요?”

상체를 일으키며 묻자, 하인리는 카트 위에 놓인 은색 뚜껑을 치웠다. 노란 오믈렛과 짙은 색 커피가


놓여 있었다.

“아침 식사요.”

그게 아니라, 왜 카트가 여기에……. 일어나서 가져온 건가? 놀라서 보고 있자니, 하인리는 포크에
오믈렛을 찍어서 내밀었다.
얼결에 입을 벌려 받아먹자, 그는 뿌듯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맛이 어때요?”

“맛이 있긴 한데…….”

“요리 잘하죠?”

“잘하네요.”

“취미예요.”

황족은커녕 귀족들만 되어도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날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이상한 기분에 멍하니 있자니, 하인리가 다시 오믈렛을 찍어
내밀었다.

“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퀸?”

“다 해 줄 수 있나요?”

“당연히.”

어색하게 입을 벌려 받아먹자, 하인리는 신이 나는지 계속 음식을 포크로 찍어 주었다. 몇 번이나


그러다가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하인리.”

“네, 퀸.”

“그건…… 그대 종족의 습성인가요?”

“?”

“새들은 먹이를 직접 먹여주잖아요. 혹시 그대도 그래서……?”

하인리는 내 말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아닌가? 혹시 내가 너무 새 취급을 해서 기분이 나빠졌나?
걱정되어 바라보자, 하인리는 한참 만에야 털어놓았다.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요?”
“아버지가 무척 엄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음식은 꼭 먹여주셨거든요.”

“!”

“형님도 별로 안 친했는데, 이상하게 음식을 먹여주더라구요.”

“아.”

“생각해보니, 저도 퀸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음식을


먹여주어야겠다.”

그럼 우리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도 하인리는 자기가 하나씩 다 음식을 떠먹여 주려나? 좀 귀여울 것
같기도 한데……. 그 순간. 위험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인리. 정말로 궁금해서, 아니, 중요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네, 퀸.”

“혹시 그대 일족은 그…….”

“?”

“알로 태어나나요?”

* * * 카를 후작을 부른 소비에슈는 그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라스타의 노예매매 서류가 궁전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걸 찾아서 내게 가져와라.”

카를 후작은 기겁해서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폐하?”

“확실하진 않아. 코샤르가 라스타에게 한 말이니.”

어쩌면 코샤르는 라스타에게 화가 나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코샤르가 그


서류를 처음 가져간 것, 현재 그 서류가 사라진 것. 이 두 가지는 진실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야기가 퍼질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찾아야 한다.”

“예, 폐하.”
카를 후작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라스타의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노예매매 문서가 공개된다면.
아니, 태어난 후에라도 공개된다면 아주 큰일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야 했다. * * * 한편
그 시각. 라스타는 이미 제 발로 그 문서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소비에슈에게는 그를
위해 입을 다문 채 대신 움직여 줄 측근들이 많았지만, 라스타에게는 그런 이들이 없었다. 그나마
에르기 공작이 친구이지만, 그는 친구이지 부하가 아니었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문서를 찾아보는
수밖에.

“황후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황후 폐하, 안녕하십니까.”

그러나 황후가 된 그녀를 못 알아보는 이들이 없다 보니, 은밀히 움직이기 불편했다. 라스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다 허리 숙여 인사했다. 라스타가 먼저 나서서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길게
대화가 이어지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남들의 시선이 쏠리는 만큼 행동에 한계가 있었다.

‘저기도 찾아보고 싶은데. 저쪽 구석은? 저쪽도 틈이 있는 것 같아.’

라스타는 황후로서의 체면 때문에 몸을 굽혀 여러 틈새를 찾아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황후가


되면 무조건 편할 줄 알았는데. 이런 건 불편했다.

‘나도 빨리 측근이나 부하를 만들어야겠어.’

황후라면 응당 손가락 끝으로 사람들을 부려야 하는데. 라스타는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정문에서부터 본궁으로 쭉 이어진 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처음 보는 화려한
마차가 보였다.

‘누구지?’

남궁의 귀빈이 사용하는 마차인 줄 알았으나, 마차는 남궁으로 가는 길목을 지나쳐서 쭉 본궁으로
향했다. 보통은 이 안쪽까지 마차를 끌고 올 수 없기에, 라스타는 의아해져서 마차를 뚫어져라
보았다.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마부는 근처까지 오자 마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얼른 마부석에서
내려 라스타에게 인사했다.

“라스타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라스타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은 뒤, 턱으로 마차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안엔 누가 타고 있어?”

그런데 마부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냥 순순히 대답하면 될 텐데. 마부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렸다.
“누가 있길래 그래?”

라스타가 미간을 찡그리며 묻자, 마부는 라스타의 눈치를 살피며 고했다.

“그…… 에벨리 양입니다.”

“에벨리 양?”

라스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인가. 노예일 적에는 몰랐는데.
황후가 된 후, 라스타는 이 세상엔 참으로 많은 귀족이 있단 걸 알게 되었다. 노예의 입장에서 보는
귀족과 황후의 입장에서 보는 귀족은 또 위치가 달랐다. 그런데 단순히 ‘에벨리’란 이름만 알려주면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인가.

“에벨리 양이 누군데?”

결국 라스타가 대놓고 물었으나, 마부는 더욱 우물거렸다. 라스타는 인상을 쓰다가, 문득 아주 기분


나쁜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마부는 자신에게 ‘황후 폐하’라며 인사를 올렸고,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작은 목소리로 나눈 대화가 아니니, 마차 안에 탄 사람도 대화를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차 안의 사람은, 나와서 황후를 대하는 예를 갖추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화가 난
라스타는 마차를 향해 명령했다.

“누군지 몰라도 예의가 없구나. 당장 나와서 인사를 올리도록 해라.”

잠시 후. 마차 문이 달칵 열리고 노란 구두가 빠져나왔다. 마차 밖으로 나온 건 처음 보는 여자였다.


르베티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 라스타는 호통을 치려다 흠칫했다. 분명 처음 보는 여자인데. 그
여자가 라스타를 원수라도 되는 양 노려보고 있었다. 그 서늘한 시선에 라스타는 자기도 모르게 괜히
움찔했다. 그러나 곧 그보다 더한 짜증이 몰려왔다.

‘내가 황후란 걸 알면서도 저렇게 노려보고 있어?’

참으로 고얀 게 아닌가.

“누구인데 감히 그딴 식으로 라스타를 쳐다보는 거지?”

마부는 쩔쩔매다가 황급히 ‘에벨리 양’이란 여자에게 다가가 타일렀다.

“에벨리 양. 황후 폐하십니다. 얼른 인사를 올려요.”

마부는 그 여자를 어려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여자보다는 라스타를 더 무서워하는 내색이었다.


결국 여자도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튀어나온 말은 인사도 사과도 아니었다. 라스타도 마부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황후 폐하와 다른 분이신데요.”

뚱한 목소리에 불만에 가득 찬 눈동자. 그리고 저 건방진 말. 세 가지 모두가 다 라스타의 분노를


화르르 지폈다. 라스타는 더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때, 본궁 쪽에서 랑트
남작이 황급히 달려오며 말했다.

“황후 폐하, 저분은 황제 폐하의 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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