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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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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고마워.”
민주는 성아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지만, 성아가 병실 밖으로 나가는 것에 극도로 불안 증세를
보이자 어쩔 수 없이 Seung-ho를 불러서 데리고 왔다.
“삼촌, 나는 바나나슛!”
“알겠어!”
성아는 Seung-ho를 기다린 게 아니라 바나나슛을 기다린 것처럼, Seung-ho에게 봉투를 넘겨받아서
과자를 꺼내 들었다.
“시아는 언제 와?”
“집에 바로 올 테니깐… 다섯 시 반? 여섯 시?”
“삼촌, 뭐 봐?”
“뭐?!”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거야.
# 14
“안 된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Seung-ho의 얼굴을 보기 싫은 듯 고개를 돌린 채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등에는
단호함이 묻어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끈질긴 설득 끝에 20년간 Gate 너머에서 생존도 했고, 마석도 많이 먹었기에 충분히 낮은
등급의 Gate는 여유가 있다는 아들의 말을 들어라도 주셨다.
“난 그런 거 모른다!! 안 돼, 안 돼!!”
“민종아, 혹…”
“숭성 대학교!!”
위치를 말하자마자 민종도 도망치는 것인지 스피커 너머로 다급하게 달려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많이는 안 늦을 거예요.”
***
Gate 아웃.
Gate가 발생하고 Gate 게이지 수치에 따라서 발생하는 시간이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발생하는
경우는 정해져 있었다.
아주 특수한 경우지만 Gate 내부에서 사망한 헌터들의 등급 측정값이 최초의 Gate 게이지를
뛰어넘을 때 발생한다.
문제는 Gate 아웃이 발생하면 몬스터가 곱절은 강해져서 나오기 때문에 Gate 아웃이 발생하기 전
무조건 Gate 핵을 파괴해서라도 막아야만 했다.
게이지 수치가 0인 10급 Gate는 내부의 몬스터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Gate 아웃이 일어날
때까지 Gate 유형에 따라 채집, 채광 등을 할 수 있는 Gate였다.
Gate 수치가 낮아서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작업을 마치고 나와야 해서 운이
따라줘야 뭐라도 건질 수 있었다.
Gate 수치가 0부터 500 이하는 9급 Gate로 최하급 몬스터들이 출몰하기에 최대 수치인 500에
가까우면 최소 권장은 D-Rank 헌터 1개 파티, C-Rank 헌터는 3명 이상을 권장했다.
“수치는 협회에서 들은 대로 1670 확인했어. 우리넷은 1650이고. Porter 아저씨 측정값 얼마라고
했죠?”
“87입니다.”
Gate는 필드형이었다.
일행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한 쪽으로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고 십 분쯤 지났을까, 명훈이 카이트
실드를 가볍게 두드려서 시선을 모았다.
명훈에게 시선을 돌리자 명훈은 한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니 멀리 몬스터 하나가 우거진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나무에 등을 비비고 있었다.
“뭐야? 너 저거 알아?”
“…돌아가자”
만두.
중하급 몬스터 중 가장 머리가 좋아서 먼저 발견 당하면 돌아가지 못하게 퇴로를 차단하고 천천히
사냥한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녀석은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일행은 만두에게 머리를 먹히지 않아도 되었고
모두 몸을 낮추어 천천히 Gate로 다가갔다.
들키지 않기 위해 소리도 죽이고 기다시피 이동을 한 탓일까, 동이 터 오르던 해는 어느새 등산을
시작했고 3부 능선쯤 다다랐을 때, Gate 근처에 도착했다.
명훈은 가까이 다가가며 낮게 속삭였지만, 외국인 남자는 오히려 빙긋 웃으며 칼집을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등을 찌른 칼을 뽑은 뒤 주변 풀에 피를 대충 닦아내었다.
양팔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기간트고릴라도 이상을 감지했고 자신을 가둬둔 이 공간에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잠시 멈추어 섰다.
그런 기간트고릴라를 뒤로한 채 남자는 칼집을 주워 칼을 집어넣고는 Gate 너머 지구로 다시
돌아갔다.
# 15
차가운 12월의 밤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저 멀리 Gate가 빛나는 걸
발견하고는 서둘러 달려가 보았다.
“민종아, 혹…”
“숭성대학교!!”
“도망쳐야 한다고요!!”
“죽어도 난 몰라요.”
남자의 잡은 팔을 놓으며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 남자의 발이 빠르게 움직이며 민종의 왼쪽
정강이를 가격했다.
순간 바닥이 민종의 얼굴을 강타하며 피부가 상했지만,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끄아악, 왜, 왜!”
“끄으윽… 끅…”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기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부러진 다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무의식중에 바닥을 긁은 손톱이 몇 개 부러졌다.
“괜찮아요?”
천사의 목소리처럼 달콤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전혀 괜찮지 않지만, 민종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얼굴을 굳히며 민종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어 부축을 시도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부러진 다리에 전해지는 충격에 자리에 주저앉을뻔했지만, 그대로 고통에
굴복해 버리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흐윽…”
“괜찮아요? 일단, 가까운 건물로 들어가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지상? 지하?”
“어떻게 하죠?”
“Seung-ho 형? 이 사람한테요?”
“쿠어어어!! 우훠우훠!!”
***
바위 표면은 매끄럽고 군데군데 물처럼 반짝이는 돌들이 박혀 있었다. 손을 슬며시 뻗어서 만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내렸고, 빛이 흘러나오는 내부가 보였다.
자자작! 콰직!
손쉽게 부서진 반짝이는 바위는 바닥에 조각조각 부서져 내렸다. 동굴 안쪽에서 먹잇감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꺅!”
주변을 때려 부수던 기간트고릴라는 자신의 머리 위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파괴를 일삼던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
귀에 온 신경을 쏟아부어 집중하니, 계단을 천천히 올라오는 몬스터의 발소리가 칼날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민종은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1층 로비로 나갔다. 그러자 자신이 내렸던
엘리베이터에서 뭔가 긁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라도 도망쳐요.”
그 모습에 민종은 1초라도 시간을 벌자는 생각에 결의를 다지고, 여자의 앞에서 외발로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양팔을 벌렸다.
민종은 Seung-ho가 도착하기 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주었던
여자를 위해서 찰나의 시간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죽음을 자청하고 앞으로 나섰다.
빠르게 달려오던 기간트고릴라는 갑작스러운 먹잇감의 행동에 잠시 멈칫했으나 군침을 다시며
로비를 지나 민종의 앞에 섰다.
# 16
쾅!
“고생했다.”
“저기… 너… 바지…”
바지를 적시다 못해 경사진 언덕 아래로 아직도 흘러가는 액체를 바라보며 민종은 감동에서 빠져
나왔다.
“저분은?”
차가운 바닥에 닿아있던 여자의 손은 차갑기 그지없었고, 붙잡은 Seung-ho의 따스한 손의 온기를
느끼며 차가운 바닥에서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척의 주인은 어느덧 Seung-ho의 시야에 들어왔고 상대방도 일행을 발견했는지 빠르게 달려왔다.
“헌터이십니까?”
“예, 뭐 일단…”
정중하게 물어보는 태도가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Seung-ho는 기형적으로 꺾여있는 민종의 다리를
가리켰다.
직접적인 사인은 사라져버린 머리였겠지만, 머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흉부의 상태가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팀장님, 이분들입니까?”
최유일이 기간트고릴라의 사체를 만지던 사이 구급차량 뒤에서 내린 남자 중 한 명이 최유일을
발견하고는 다가오며 물어보았다.
“알겠습니다.”
***
최유일이 떠나자 Seung-ho를 불러 조용히 자신의 다리를 부러트린 남자의 이야기를 꺼냈고 자신이
추측하는 점을 말해주었다.
“드락쉬의 부하?”
“그가 왜?”
민종의 예상대로라면 자신을 공격하면 했지, 단순한 기자에 불과한 민종을 도대체 왜 공격했단
말인가?
“…누군데?”
“지금이라도 손 떼야 하는 거 아냐?”
“네, 혹시 모르니까…”
전화해서 사정을 대충 설명하면 아버지는 이해를 해주실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정말 민종의 다리가 부러져서 병원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퉁퉁 부어오른 민종의 다리를
찍고 자신의 얼굴이 나오게 셀카도 찍었다.
민종은 난데없이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Seung-ho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신경 꺼.”
“그래, 끊으마.”
“갔다올게요.”
“아, 저기…”
“할 말 더 있으시면 하세요.”
“저… 저분 연락처도…”
“하…”
# 17
아니나 다를까 Seung-ho가 나가자마자 은혜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Seung-ho는 민종을 위해
잠시 묵념했다.
“아들?”
“무슨 일이시죠?”
“아, 어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협조에 감사드리며, 위로를 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뵈러
왔습니다. Gate 아웃으로 인해서 다치셨는데, 찾아오는 건 당연하죠.”
개소리였다.
몬스터에게 죽은 것도 아니고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과일 바구니와 음료수
선물세트를 들고 찾아온다니. 얼굴색 하나 변함없이 말하는 최유일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왔다.
Seung-ho의 표정이 변하기 전, 유일은 재빠르게 돈 봉투의 정체를 말해주었고 Seung-ho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품속으로 챙겨 넣었다.
“근무지 서울 한정!”
계약서를 읽어보고는 Seung-ho는 너무나도 좋은 조건에 오히려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긁적였다.
“맞아.”
“제가 식견이 낮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중앙도서관 계단에 틀어박히기 직전 머리도 마력을
폭발시켜서 날리신 게 맞습니까?”
“그것도 알아봤어?”
“알아차린 게 아니라 머리가 터졌는데 혈흔은 오로지 계단 근처에만 모여있어서 추측한 겁니다.”
원리는 간단했다.
그리고 대상을 향해 마력을 불안정한 상태로 쏘아내서 원하는 시간에 터지게 만든다.
물론 뒤에 날아가는 마력은 날아가는 대상보다 빠르게 쏘아져야 하며, 터지는 방향까지 조절해야
한다.
“흠…”
“좋아.”
“그만 가봐.”
“네? 방금 좋다고…”
“돌아가자.”
“저, 팀장님”
최유일은 어젯밤 Seung-ho에게 건네줄 계약서 만들 거라고 윗분들에게 늦은 밤까지 전화를 돌리고
허락을 구했다. 그러면서 욕을 있는 대로 먹었는데 영입에 실패하자 골이 지끈거렸다.
이걸 어떻게 보고를 올려야 하나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져있던 최유일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늘 사온 선물세트, 영수증 처리됩니까?”
***
“골치가 좀 아플 거야.”
병실로 들어간 Seung-ho는 저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을 유일이 안쓰럽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무원 같은 근무 시간이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헌터 생활과 비교한다면, 철창
안에 갇힌 새와 같았다.
“스카우트 제의에요?”
“알았어요.”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면 곧바로 이 기사가 드락쉬의 귀에 들어갈 것이고 기사에 증거는 없다는
걸 드러냈기에 자신과 Seung-ho의 가족에 관한 관심을 거둘 거로 생각했다.
Seung-ho는 노트북을 돌려주자 규칙적으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는 민종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폰을 꺼내보았다.
- 김성아 : 삼촌 뭐 해?
“당연하죠.”
“아직 다 안 썼어?”
“10분도 안 지났어요!”
***
“…좀 이따 보지.”
“드락쉬 님.”
“응!”
아이에게 인형을 안겨주며 상냥하게 말하자 아이는 드락쉬에게 받은 인형을 가지고 어디론가 총총
뛰어갔다.
그 모습에 카뉴는 아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드락쉬가 한 발 더 빠르게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안나, 무슨 일이니?”
“고맙구나.”
“다음 주, 한국 일정 잡아봐.”
“알겠습니다.”
드락쉬의 말에 카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드락쉬는 고개를 돌려 하늘 너머를 바라보았다.
# 18
대기하는 인원은 측정기 옆쪽 의자에 3명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고 측정기 안에서 검사복을 입은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던 Seung-ho의 차례가 다가오자 갑자기 측정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면이 있는 얼굴과 함께 몇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곧 시작하겠습니다.”
삐----
“어… B-Rank입니다.”
믿을 수 없는 수치에 Seung-ho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잘못 나온 게 아닙니까?”
“박 과장 다시 측정해드려."”
이 수치로는 어머니를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수치가 이렇게 나온 걸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Seung-ho 씨, 저기 보세요.”
“네, 그렇네요.”
자신이 처음에 막 대했던 걸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이렇게 살갑게 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Seung-ho의 의심 어린 눈초리에 다소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듯, 머리와 목을 연신 긁어댔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Seung-ho는 손목을 툭툭 쳤고 최명수 부장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하죠.”
협회를 빠져나가는 Seung-ho를 건물 밖까지 배웅한 최명수 부장은 두 손을 치켜들며 만세를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Seung-ho의 수치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는 사람이 나왔을 텐데 잠시 허리를
굽힌 보람이 있었다.
“민주야, 나왔어.”
“대학 안 갈 거야.”
민주는 어떻게든 대학까지 보내주기 위해서 저렇게 일하는데 성아는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해서 이 사달이 난 것 같았다.
“…PD가 되고 싶어”
“성아야…”
한참을 몸을 비틀며 발작을 일으키던 성아는 간신히 진정했고 성아의 얼굴에 묻은 침과 눈물을
닦아주며, 어머니에게도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안된다.”
손녀의 걱정에 미간을 좁히며 걱정하시는 어머니에게는 조금, 아니, 너무나도 무거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았지만 해야만 했다.
“누가! 누가 우리 성아를!”
# 19
“할머니…”
“아침은 먹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