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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것의 합정성 (合情性) 을 찾아서
사회적인 것의 합정성 (合情性) 을 찾아서
- 사회 이론의 감정적 전환
In Search of the Emotional reasonability of the Social: A Reflection on the Emotional Turn in
Social Theories
저자 김홍중
(Authors) Kim, Hong Jung
한국이론사회학회
발행처
Korean Society for Social Theory
(Publisher)
URL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303946
이용정보 인천광역시중앙도서관
58.232.252.***
(Accessed) 2021/07/03 15:3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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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것의 합정성(合情性)을 찾아서:
사회 이론의 감정적 전환*
김홍중
[국문 초록]
1970년대 후반 이래 사회 이론의 중요한 테마로서 ‘감정’이 부상하였다.
감정은 사실 파슨스 사회 이론의 패권이 지배하기 시작한 1930년대 이래
70년대까지 사회학에서는 주변화된 테마였다. 새로운 학회들의 설립과
다양한 연구의 등장은 내가 ‘감정적 전환’이라 부르고자 하는 사회 이론
영역에서의 새로운 흐름을 대표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이와 같은 감정사회
학의 폭발적 등장을 ‘합정성(合情性)’의 재발견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합정
성은 특정 행위, 상호작용, 규칙, 사회 시스템이, 개인 혹은 다수 행위자의
내적 감정, 혹은 객관적으로 생산, 유통, 표현되는 감정적 실재에 발생적으
로 연관되거나, 규범적으로 조응하거나, 혹은 구조적으로 연동되는 경향이
나 능력을 가리킨다. 나는 네 가지 합정성의 유형을 행위 합정성, 규칙/규범
합정성, 상호작용 합정성, 시스템 합정성으로 설정하고, 이를 각각 감정사
회학의 성과들과 연결하여 이론화하고자 한다.
주요 단어: 사회적인 것, 감정사회학, 감정적 전환. 합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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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 되기에 이른다. 파슨스이론이지배하던 20세기중반동안 사실상사
회학은 감정이라는 주제를 망각하고 있었다. 감정은 설명의 대상으로
도, 원인으로도 평가받지 못한 채, 이론적 잔여 범주로 남아 있었던 것
이다. 이런 이유로 메스트로빅은 “대부분의 사회학적 이론화가 결여하
고있는것은 감정의 역할이다.”라고말하고있다(Meštrović, 1997: xi).
그러나 감정은,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사회학뿐 아니라
철학, 정치학, 인류학, 심지어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관심 대상으로 부
상하기 시작했다(바바렛, 2006: 47). 특히 사회학 영역에서 감정 논의
의 급증은 이례적이기까지 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
까지 감정을 다룬 서적과 논문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표적인
저서들을 거론하자면 콜린스의 갈등사회학(1975), 켐퍼의 감정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론(1978), 혹실드의 관리되는 마음(1983), 그리
고 덴진의 감정의 이해(1984) 등을 둘 수 있다(Collins, 1975;
Kemper, 1978; Hochschild, 1983; Denzin, 1984). 이와 더불어 미국, 영
국, 호주에서 학회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미국사회학회는 1986년에
감정사회학분과를 설치했고, 영국사회학회는 1989년에 감정사회학
연구 모임을 결성했으며, 호주사회학회의 연례 학술 대회는 1992년
이후 계속해서 감정사회학 패널을 두고 있다(실링, 2009: 25). ‘감정적
전환(emotional turn)’이라 불러도 좋을 법한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근대성의 핵심 원리인 ‘이성’ 중심의 사회과학적 패러다임에
대한 전반적 반성과 1960년대 이후의 신좌파운동과 70년대 이후의 신
사회운동을 통해 부각된 수많은 정체성-정치의 활성화라는 사회적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박형신 정수남, 2009).
이 논문은 현대 사회 이론이 지난 30여 년에 걸쳐 수행해온 ‘감정
적 전환’의 핵심 논리를 ‘합정성(合情性)의 재발견’으로 규정한다.2)
‘합정성’은 합리성, 합법성, 합목적성 등에 나타난 한자 구성 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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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고, 물질화하는 일련의 감정 연쇄를 만들어내며, 이 감정 연쇄가
사회적 상호작용의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토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뒤르케임의 집합열광이론, 콜린즈의 감정 에너지론). 마지막
으로 시스템 합정성. 이는 특정 사회 시스템(기능적 시스템)이 ‘감정적
인 것’을 자신의 작동의 중요한 요소로 구성하는 경향과 능력을 지칭
한다(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론, 혹실드의 감정노동론).
이와 같은 메타 수준의개념지도를 바탕으로이 논문은감정사회학
적 논의들의 주요 통찰들을 네 가지 합정성으로 분할하고, 각각 그 전
개 과정과 논의의 내용, 그리고 이론적 함의를 분석적으로 제시함으로
써 사회 이론의 ‘감정적 전환’이 어떤 의미에서 ‘합정성의 재발견’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나는 고
전 사회 이론과 사회사상에서 감정의 문제가 얼마나 중심적인 것으로
다루어졌는지를 고찰한다. 이어서 감정적 전환의 다양한 논의룰 이 논
문이 제안하는 행위 합정성, 규칙/규범 합정성, 상호작용 합정성, 시스
템 합정성의 네 개념에 기초하여 재구성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정성
의 개념이 향후의 작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좀 더 발전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수행하고자 한다.
1. 사회계약론
데카르트 이래 근대적 사유는 이성(정신)과 감정(신체) 사이에 심연
을 설정하고, 감정을 이성에 의해 지도되어야 하는 비합리적 충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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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구성 능력의 토대에서 동정심의 존재를 발견한다. 동정심 혹은 연
민은 자기애보다 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타자와 연대하여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연민의
힘을 매개로 하여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계약론은 ‘사회적인 것’
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정념의 산술학(arithmétique des passions)”을
수행한다(Rosanvallon, 1979: 11). 논자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
기는 하지만, 사회계약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 능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회적인 것의 합정성에 대한 이런 상상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
정론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의 도덕철학적 접근을거쳐, 콩트 사회학
의 실증정치체계에 이르는 근대사회사상의 한 저류로 흘러간다.4)
이들은 모두 근대 사회 공간이 합리적 이해관계의 추구에 의해 유지,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작용하는 정념들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정념은 단순히 이성의 작용을 교란
시키는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신보다더 큰 유기체적 전체인 ‘사회’ 혹
은 ‘인류’에 소속된 존재로 느끼게하는 힘으로 작용했고, 그로인해 차
이들을 극복하고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도덕적’ 또는 ‘규범적’ 원천을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다수의고전 사회학자도 위의 생각을 공유하고있다. 뒤에서 상세히
살펴볼 베버와 뒤르케임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
주의 2권 2부에서 민주주의와 감정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
으며, 파레토는 행위에 영향을 주는 ‘인간의 감정’, 특히 “비이론적 행
4) 콩트 사회학에서 실증철학강의와 실증정치체계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간극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전자가 엄격한 실증주의적 과학에 대한 강조로 특징지
어진다면, 후자는 인류교와 사랑의 감정 등, 소위 유사-종교적 열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 감정에 대한 강조가 희박하다면, 후자는 감정사회학의 다양한
요소를 내장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실링 멜러(2013: 81~89)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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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에서 ‘사회적 사실’이라는 다소 낯선 명
칭하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 매우 뚜렷한 특성을 가진
사실의 범주가있는데, 그것은개인에 외재하며, 개인에게 부과되는 강
제력이 주어져 있는 행위 양식(manière d’agir), 사고 양식(manière de
penser), 감정 양식(manière de sentir)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적 사
실들이 표상과 행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유기체적 현상과
혼동하면 안 되며, 개인의식 가운데서, 개인의식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심리적 현상들과도 구분된다. 그래서 사회적 사실들은 새로운 종을 구
성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야 한
다.”(Durkeim, 2005: 5)5)
위의 인용문에서 뒤르케임이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 사실은
우선적으로 개인들의 사회적 행위를 규제하는 특수한 ‘행동 규칙들
(règles de conduite)’을 가리킨다. 뒤르케임은 세 가지 상이한 유형의
행동을 제시한다. 사고, 행위, 감정이 그것이다. 감정 양식이 사회적 사
실에 포함되어있다는것은 뒤르케임이 파악하는 ‘사회적인 것’이 행위
와 사유만큼이나 인간의 정서적 운동에의해 구성되어 있다는 그의인
식을 반영한다. 사실 사회적 사실에는 “기호 체계, 화폐제도, 신용 도
구”와 같이 객관적 실재나, 사회조직처럼 고정된 형태를 가진 것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그가 ‘사회적 흐름들(courants
sociaux)’이라 부른, 무형의 비감각적 트렌드, 유행, 미묘한 사회적 분
위기의 구조들도 포함된다(Durkheim, 2005: 4). 또한 그 안에는 물론
다수의 감정적 형식들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군중의 열정적 운
동, 분노, 연민은 한 사람의 특정한 개인의식으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다.”는 언명이 그것이다(Durkheim, 2005: 6). 군중의 운동과 열광의 형
5) 유기체적 사실, 심리적 사실, 사회적 사실의 구분과 각 단계로의 창발에 대한 논의는
뒤르케임((Durkheim, 1898)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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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 행자들이 행한 몸짓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 장례식
은 잔인한 상실에 의해 상처받은 개인감정의 자연스러운 동요가 아니
다. 그것은 집단이 부과한 의무이다. 사람들은 단지 슬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관습
을 존중하기 때문에 적응해야만 하는 의례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이것
은 대개 개인의 감정 상태와는 무관하다. 게다가 이러한 의무는 신화
적 혹은 사회적 제재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 따라서 관례에 따
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때로 인위적인 방법에 의하여 억지로 눈물을 흘
려야만 한다.”(뒤르케임, 1990: 546~547)
이런 입장은 감정에 대한 확고한 ‘실증주의적’ 관점을 표방한다. 뒤
르케임은 감정의 ‘실정성(positivity)’을 명확히 표명하고 있다. 감정은
순수한 주관성과 내면성, 그리고 마음의 깊은 어둠 속에서, 타자들에
게 도달되지 않는 사적인 체험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뒤르케임 자신
이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의 제2판 서문에서 제안하는 개념을 빌
려 말하자면, 감정은 하나의 ‘제도’이다. 감정의 생성, 표출, 이해는 영
혼의 자연스런 분출이 아니라, “집합체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신념과
행위의 양식”에 다름 아닌 ‘제도’의 함수이다(Durkheim, 1901: xxii).
이런 인식은 인간의 내면과 외부의 경계선을 지워버린다. 이제 사회적
인간의 내부는 그 자신의 외부와 통해 있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간주하는 많은 것은사실 우리 안에 스며들어와있
는 ‘사회적인 것’이 작용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뒤르케임, 1990: 300).
이런 점에서 뒤르케임의 실증주의는 인간의 내적 영역, 그의 마음, 혹
은 그의 영혼까지도 외재적이고 강제적인 사회적 사실로부터 자유롭
지 않은 것으로, 요컨대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extérieur intérieur)”로
뒤바꾸어놓는다(Keck & Plouviez, 2008: 39). 뒤르케임에게 ‘내면적
(intérieur)’이라는 것과 ‘객관적(objectif)’이라는 것은 반드시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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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공리주의적 합리성의 저변에서 ‘계약의 비계약적 전제’를 이
루며, 개개인행위자의 깊은 마음까지를 규정하는‘합정성’의 거대한지
층을 발견한다. 바로이지층에 뒤르케임 사회학의주요한 테마들(연대
감, 도덕, 집합 의식, 성스러움, 동정심)이 집결되어 있는 것이다.
3. 베버
뒤르케임 과달리 베버의감정에 대한관점은 다소분열되어있는 것
으로 보인다. 사회학의 대상을 유기적 총체를 이루는 전체사회가 아니
라, ‘행위’로 재정립함으로써 소위 “사회 없는 사회학”(김덕영, 2012:
844)을 시도했던 베버는 경제와 사회에서 사회적 행위의 유형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행위는 목적 합리적 행위, 가치 합
리적 행위, 감정적(affektuell oder emotional) 행위, 전통적 행위로 나
누어진다. 이중에서 근대사회의 행위자들에게 가장 지배적 유형으로
자리 잡은 것은 목적 합리적 행위이다. 감정적 행위는 전통적 행위와
함께 ‘의미 있게 지향된’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 ‘사이’ 어딘가에 배
치된다. 환언하면 감정적 행위는 ‘주관적으로 생각된 의미(subjektiv
gemeinte Sinn)’에 의해 구성된 행위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성찰 없는
생리적 반응에 더 가까운 것으로 인지되고 있다(베버, 1997: 146~147).
사실 베버의 이런 관점은 “크니스와 비합리성의 문제”(1905)에서도 반
복적으로 발견되는데, 거기에서 감정은 “충동적이고 사고와 이성을 파
괴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베버, 2003;
바바렛, 2006: 70~72).
베버 사회학의 이론적 밑그림에서 이처럼 잔여 범주로 설정된 감정
은 그러나 그의 종교사회학적 탐구에서는 매우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등장한다. 베버는 근대 세계가 주지주의적 합리화의 경향을 심화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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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의 과학적 사고와 결합되어 모두주술적 구원 추구수단을 미신
레 즘
과 독신이라고 비난했던 저 위대한 종교사적 과정, 즉 세계의 탈주술
화 과정이 여기에서 완결되었다.”(베버, 2010: 183)
구원이 이미 결정되어 있고 어느 누구도(목사도, 교회도, 심지어는
신 자신마저도) 구원의 사실을 변경할 수 없다는 이 가혹한 교리는 신
도들의 심리에 특수한 감정 형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감정(고독감,
절망감)이 신도들의 행위를 지도하는 고유한 윤리를 생성시킨 원동력
으로 기능했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감정사회학
적 관점에서 이렇게읽어 들어갔을 때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감정의 행위능력(agency) 혹은 수행성(performativity)이다. 감정 개념
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의미론적 원형인 ‘수난(passion)’, 즉
외부에서 부여되는 감각적 소여를 받아들이는 행위에 내포된 피동성
의 뉘앙스가 부여되어 있다. 감정(정동)은, 주체가 자신을 엄습하는 심
적 에너지에 꼼짝없이 사로잡히는 체험을 표상한다. 그러나 베버 종교
사회학에서 감정은 그 반대편에 위치한다. 감정은 단순히 외적 자극이
무력한 주체에 가해질 때 발생하는 수동적 체험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감정은 행위를 촉발한다. 무언가를 수행하며, 사람들을 움직여 현실을
변화시킨다. 돌려 말하자면 사회적 행위자가 수행하는 특정 행위는 합
정적으로 촉발되고, 창발되고, 실행된다. 감정의 힘과 논리가 행위자를
어떤 방향으로 정향시킨다. 요아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베버에게
감정은 ‘행위의 창조성’의 원리로 기능한다(요아스, 2003). 전대미문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자신이 구원되지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의 감정은, 캘빈주의를믿는 신자들에게 고도로 집중되어 있으며, 절박
한 의지를 동반한, 특정 실천 양식들을 선택하게 하는 동력으로 기능
하였다. 즉 자신이 선택되었다고 간주하고, 그런 확신을 실현하기위한
부단한 직업노동에 매진하는 생활양식을 수용하게 강제 혹은 유도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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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행위이론과합리성의이론이합정성개념의구성과성찰의조명하
에서 새롭게 조망되어야 한다는 이론적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1. 합정성의 유형화 근거
서문에서 나는 합정성의 네 가지 유형을 각각 행위 합정성, 규칙/규
범 합정성, 상호작용 합정성, 시스템 합정성으로 제시한 바 있다. 어떤
근거로 이런 유형화가 시도되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제시된 네 항목들(행위, 상호작용, 규칙/규범, 시스템)은 사회 이론의
전통에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8)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위로
한다(Weber, 1978: 903). 더 나아가서 고대 유태교에서 베버는, 성직자의 직무와
역할을 감정 발생과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실링, 2009: 47~50;
바바렛, 2006: 69~75; Barbalet, 2000).
8)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것’의 개념은 이론가마다 상이한 내용과 관점을 포괄하는
매우 폭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Castel, 1992: 125). 사회적인 것은 때로
사회라는 고정된 형태를 이루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가리키기도 하고
(Simmel, 1896: 167), 근대적 국민경제 시스템을 가리키기도 하며(아렌트, 1996:
80~81), 실정적이고 제도적인 ‘사회’의 근저에서 작용하는 상징적, 담화적, 비총체적
차원을 일컫기도 한다(라클라우 무페, 1990: 122 이하). 푸코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에
게 사회적인 것은 19세기 프랑스의 계급투쟁의 전개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이 야기하
는 다양한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하는 국가적 통치성의 통치 대상으로 형성된
역사적 구성물을 가리킨다(Donzelot, 1994). 그러나 이 연구에서 나는 ‘사회적인
것’의 개념을 사회 이론의 맥락에 고정시켜 사용하고자 한다. 이때 사회적인 것은,
뒤르케임의 방법에 대한 논의에서 명시되고 있듯이, 유기체적인 것, 그리고 심리적인
것과 구분되는 독자적(sui generis) 차원을 가리킨다. 거의 모든 고전 사회학 이론은
바로 이 ‘사회적인 것’의 자율적이고 자기 조회적 양태를 적극적으로 확보함으로써
자연과학이나 심리학과 구분되는 사회학의 대상 영역을 확정하고자 했다. 이 논문에
서 사회적인 것은 그리하여, 바로 이와 같은 ‘이론적’ 관점을 따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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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으로, 사회적인 것은 시스템을 기본단위로 한다는 관점도 있다.
마 막
파슨스로부터 루만의거대 이론에 이르는 사회 이론의 중심 관점 중의
하나는 시스템이론이다(Parsons, 1951). 루만의 시스템이론은, 자신과
환경 사이의 차이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구성하는 시
스템의 작동에 초점을 맞춘다. 시스템은 분화를 통해 환경과의 차이를
반복하는데, 현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하위 시스템들(과학 시스
템, 경제 시스템, 정치 시스템, 법 시스템, 교육 시스템, 예술 시스템,
종교 시스템 등)이 구성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회적인 것의 중요 단
위는 이처럼 독립된 코드를 갖고 작동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다(루만,
2013, 691 이하).
합정성의 유형화는 이 네 단위를 각각 유형화의 단위로 차용함으로
써 가능해진다. 이로부터 행위 합정성, 상호작용 합정성, 규칙/규범 합
정성, 그리고 시스템 합정성이라는 네 가지 상이한 형태가 도출된다.
물론 이러한 유형적 구분은 합정성 개념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색출적
(heuristic)’ 목적으로 시도된 것이지, 합정성의 개념 그 자체에서 연역
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것의 단위에 대한 탐구
는 향후 시도될 미지의 다양성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우선, 기왕의 감정사회학적 담론들에서 위의 네 가지 합정성의
유형과 조응하는 다양한 이론적 모색들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2. 행위 합정성
부동에 의하면 합리성 개념은 고전적 의미의 이성 개념을 대신하여
인간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근대에 접어들면서 사용된 보다 좁은 개념
이다(Boudon, 2009; 2007).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계보를 갖는 이 개념
은 그러나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을 사고와 추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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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내가 알프스를 등반하는 도중에 실수로 위험스러운 건너뛰
기가 유일한 탈출구인 위치에 가게 된 불운을 겪고 있다고 하자. 나는
그런경험을한적이없어서 건너뛰기를성공적으로할수있는지에관
한 내 능력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 대한 희망과 신뢰
(confidence)가그렇게할수있다고 확신을 갖게하고, 내 다리로하여
금 그런주관적정서없이는아마도 불가능할것을하게끔하는용기를
북돋운다. ……이경우(그리고이것은수많은경우중하나) 지혜의한
요소는 분명히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념은 그 대상의
실현에 관한 필수적인 예비 조건들이기 때문이다.”(제임스, 2008: 50)
이 가상의 행위자는 지금 위험한 장소에서 도약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제임스에 의하면 이런 경우 의사 결정에 절대
적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계산적 합리성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
은 그가 “합리성의 정서(sentiment of rationality)”라 부르는 감정의
힘이다. 결과를 계산할 수 없는 미래의 일에 대해, 만일 행위자가 희망
이나 신뢰의 감정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반대로 희망이나 신뢰가 부재한다면, 그것은 실패로 이
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정 감정의 발현 여부가 도약 행위의 결정적 요
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행위자가 희망과 신뢰를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는가, 즉 행위 합정성을 갖고 있는가, 라는 문제가 그의 생존을
좌우한다. 이런 사고는 존 듀이나 로티와 같은 프래그머티즘 사상가들
에게서도 여실히 발견된다. 1921년의 저서 인간 본성과 행동에서 듀
이는 인간행동이 합리적 계산과 선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아
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성의 작용으로서의 숙려(deliberation)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는 지성의 운용에 감정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는 사실을 지적한다. 감정은숙려를 촉발하기도 하고, 상상력을 매개로
하여, 판단/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Dewey, 1921: 19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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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s)”이라 부른 어떤 자발적 열정의 힘이다(케인즈, 2007: 189; 애커
로프 & 쉴러, 2009: 36 이하). 전형적인 행위 합정성의 논리이다.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행위들이 순수한 합리성이 아닌 합정성의
맥락에서 촉발된다는 이런 관점을 자연과학적 기초 위에서 점검할 수
있게 하는 뇌과학의 성과가 다마지오에 의해 제시된 바 있다. 그는 자
신의 저서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코 뒤쪽에 있는 복내측 전전두 피
질이 손상된 환자들이 보여준 특이한 증상을 이야기한다. 신경학자들
에 의하면이 부분이 파손된사람들은정신적 활동에요구되는다양한
능력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의사 결정과 판단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
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계산 능력은 뇌손상 이전과 다
르지 않다. 놀랍게도, 문제는 감정을 느끼는 능력의 감퇴에 있었다. 다
마지오에 의하면 환자들은 감정 능력의 쇠퇴로 인한 무감정
(disaffection) 상태에 빠졌고, 감정의 불능은 다시 의사 결정과 판단력
의 손상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알기는 하지만 느끼지는 않는 상태에
빠져들었고, 이 상태에서 시간과 자아와 일정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의 붕괴를 체험했으며, 더 나아가 “미래에 관해 계획할 수 있는 능력”
의 상실을 겪었다(다마지오, 1999: 49, 40~41, 25). 감정 능력의 파괴가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의 손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감정, 느낌 그
리고 생물학적 조절 기능 모두가 인간의 이성에 작용”하고 있음을 보
여주는데, 이런 다마지오의 논의는 인간 행위의 해명 원리로서 합리성
과 합정성이 그 유기체적 수준으로부터 매우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다마지오, 1999: 3; 2007: 165 이하). 이런 관점
에서 보면, 행위를 합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했던 근대
사회과학의 지배적 행위 패러다임들은 사실상 행위 합정성의 관점에
서 다시 성찰되어야 할 필요성 앞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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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hschild, 1979: 565). 이 점에서 혹실드가 바라보는 사회적 행위자
는 고프먼이 바라보는 사회적행위자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자기 연출
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고프먼의 경우 행위자는 남들에게 드러나는 자
신의 모습, 즉 ‘인상’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혹실드의
행위자는 내면 연기(deep acting)을 시도하고 그것에 성공하는, 좀 더
근본적인 수준의 연극적 행위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이다
(Hochschild, 1983: 38 이하). 감정 작용은 자신이 느끼기를 원하는 감
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사회적 규칙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정식화하자면 사회적 행위자는 특정한 방식으로 정의
된 상황 속에서 공식적 프레임이 규정하는 적절한 감정을준수해야할
의무에 구속되어 있다. 혹실드는 이를 ‘감정 규칙(feeling rules)’이라
부른다. 감정 규칙은 “내가 느껴야만 하는것”을 규정하는 사회적지침
들을 가리킨다(Hochschild, 1979: 565). 그런데 감정 규칙의 존재와 운
영 방식은 다양한 사회집단에 따라서 상이한 양태로 나타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여성, 개신교, 중간 계층의 사람들이 남성,
가톨릭, 하층인 사람들에 견줘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행위보다 감정에 중점
을 두는 경우가 많고, 개신교는 중간적 구조로서 교회나 성사, 고해의
도움이 아니라 신과 나누는 내적 대화를 중시한다. 또한 문화 속에서
중간층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비스 직종에서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 사실 사람들이 감정 규칙과 감정 작업에 관해 갖는 관심의
정도는 이런 사회적 경계선을 따라 나타나는 경향이 있
다.”(Hochschild, 1983: 57)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공간은 ‘합정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 공간을 분할하는 선들은 사회적 경계, 문화적 경계
인 것만이 아니라 감정적 경계이기도하다. 계급, 종교, 젠더 등에 부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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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인권 규범은현실적으로 의미를 갖는 작
용력을 발휘한다. 즉 “당신이 그 여인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집
에서 멀리 떨어져 이방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
을 테니까.” “그 여인이 당신의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 여인
의 어머니가 무척 슬퍼할 테니까.”(로티, 1993: 170) 요컨대 인권 규범
은 그 규범을 수용하는 행위자들이 그 규범과 연관된 감정적 상상과
그에 이은 공감을 수행할 수 있을 때 하나의 ‘규범’이 된다. 규칙/규범
합정성 개념은 이처럼 현재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규범들의 생명력의
근저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인간 감정을 둘러싼 복합적인 과정을 고
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4. 상호작용 합정성
혹실드가 감정 규칙의 개념을 통해서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규범/규칙의 존재와 작동을 이론화했다면, 랜들 콜린스는 감정 에너지
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것의 구성과 변동, 그리고 그 기초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상호작용’에 있어서 감정의 중심적 성격을
조망하였다. 사회적 삶의 에너지에서 콜린스는, 사회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의례를 통해 발산되는 감정 에너지가 상징으로 전환하여 사
회적 결속력을 신장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이론화하고 있다. 그의 출발
점은 역시 상호작용 합정성의 발견자인 뒤르케임이다. 콜린스는 종교
적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뒤르케임이 수행하고 있는 의례 분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집합 열광, 공유된 감정, 신성한 상징의 발생 등을
‘상호작용 의례(interaction ritual)’의 개념으로 재구성한다. 이때 핵심
적인 것은 감정 에너지이다. 그는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근본적으
로 감정적 토대를 갖고 있다는 명제, 이 논문에서 제안된 개념을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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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적 계층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배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콜린스는
감정 에너지의 ‘자본’으로서의 속성을 인정한다. 감정 에너지를 풍부하
게 소유한 소위 ‘에너지 스타’들은 특정한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서 높
은 감정적에너지의 발휘를 통해서 낮은 감정 에너지의 소유자들을압
도하고 지휘한다(콜린스, 2009: 190). 상호작용 의례는 이런 점에서 거
시와 미시를 연결하는 ‘시장’을 이룬다. 이 시장에서 감정적 에너지는
행위자의 “핵심 자원”으로 기능한다(콜린스, 2009: 213). 콜린스의 이
런 논의는 “거시사회학의 미시적 기초로서의 감정”의 중요성을 효과
적으로 이론화한 사례를 이룬다(콜린스, 1995: 211). 감정적 전환을 이
끈 주된 이론가들에게 감정은 이처럼 행위자의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조율하는 규칙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상호작용 의례의 핵심적 동력으
로기능하면서상징들을 발생시키는사회성의원초적질료로파악되기
도 한다. 감정은 구조인 동시에 수행이며, 상징인 동시에 에너지이다.
이처럼 합정적인 방식으로 창발하며구성되는사회적상호작용은행위
자들의 내면적수준, 혹은사회적에너지와같은보다객관적인수준에
서 모두 감정과의 불가피한 연관성을 갖고 발생하며 구조화된다.
5. 시스템 합정성
시스템 합정성은 특정 사회 시스템이 ‘감정적인 것’을 작동의 중요
한 요소로 구성하는 경향과 능력을 가리킨다. 현대사회에서 기능적으
로 분화된 다양한 하위 시스템 중에서, 우리는 앞서 베버에 의해 분석
된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을실례로 들어 시스템 합정성개념을 점검
하고자 한다.
베버의 자본주의에 대한 관점의 새로움은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자본 축적의 경제 논리’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응하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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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 하는 ‘감정 자본주의(emotional capitalism)’로 진화하였다는 테
제를 제출한다. 감정자본주의는 시스템 합리성과상이한‘시스템 합정
성’을 구비한 자본주의이다. 즉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운영, 재생
산되기 위해서, 베버가 말한 것과 같은 합리성의 기술적, 심성적, 제도
적 지원이 요청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 감정의 내용과 형식을
드러내고, 계발하고, 그것을 테마로 소통하는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실
천들, 그리고 문화적 표현물들이 요청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순
수한 합리주의를 떠나서 ‘합정성’과 결합하였다. 하여 자본주의적 경제
시스템은, 이 논문이 제안하는 개념을 빌려 말하자면 시스템 합정성을
구현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정 문화의 영역에서 발생한
중요한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루즈의 연구에 의하면 미국
의 감정 문화는 세기 초에 프로이트의정신분석학이 소개되면서 큰 변
동을 겪게 된다. 주지하듯 정신분석학은 분석의가 환자의 언어를 청취
하여, 그의 무의식적 충동을 해석하고 합리적 언어로 그 내용을 소통
함으로써 환자가 증상으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와주는 일련의 담화적
과정을 추구한다. 정신분석학은 자아와 자아의 관계 그리고 자아와 타
자의 관계에 합리성과 투명성을 갖춘 언술적 소통과 치료의 절차를들
여 온다. 정신분석학의 도식들이 문화적으로 수용되면서,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는 “치료학적 감정 양식(therapeutic emotional style)”이 형성
되었고, 이후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확산되어, 비단 신
경증 환자들의 경우뿐 아니라일반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루즈, 2010: 24). 특히 개인의 감정을 섬세한 소통의 대상으로 정립
시키는 이 실천 양식은 노동 현장인 공장에까지 확산된다. 그 계기를
이룬 것이 바로 1924년부터 27년까지 사회학자 엘튼 마요가 행한 호손
실험이다. 이 연구는, 노사 관계가 노동자의 감정을 신중히 배려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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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자아를 구성한 두 가지(곧 심리학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문화 설득 담론)의 핵심 동기들과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다. 곧 근대적
친밀성의 이상은 평등, 공정, 중립적 절차, 감정 소통, 섹슈얼리티, 감
춰진 감정의 극복과 표현, 언어적 자기표현의 중시 등을 핵심으로 하
고 있다.”(일루즈, 2010: 65) 이는 요컨대 “친밀한 관계의 합리화 과정”
(일루즈, 2010: 70)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부부 관계와부모-자식 관계는
치료학적 감정 양식, 소통의 모델, 그리고 감정의 합리적 분석 등의 기
본적 절차들에 의해 조율되게 되었다. 이는 20세기 미국의 공적 영역,
특히 자본주의시스템이 합정화되는경향과대립된다. 요컨대 ‘경제시
스템의 합정화(合情化)’와 ‘친밀성의 합리화’라는 이중 방향의 운동이
감정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두 축이었다.12)
엄밀하게 말하면 에바 일루즈가 분석하는 현대 미국 사회는 합리성
과 합정성이, 마치 보로매오의 매듭처럼 상호 얽힌 모습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합리성의 자리와 합정성의 자리가 서로 뒤바뀌는 아이러니
가 발생한다. 시스템의 논리 속에합정성이 깊숙이 스며들어가고, 친밀
성의 영역에 합리성이 틈입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합
정성의 활성화가 합리성의 위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감
정에 대한 담론의 폭발, 감정적 삶의 확장과 심화, 감정적 소통 능력이
12) 이러한 다양한 현상은 현대사회에 일종의 감정장을 창출하였다. 감정장(emotional
field)은 “사회생활의 한 영역, 곧 국가, 학계, 각종 문화 산업, 국가와 대학이
인가한 전문가 집단, 대규모 의약 및 대중문화 시장 등이 이리저리 교차함으로써
창출되는 모종의 작용, 담론 영역”으로서 “그 나름의 규칙과 대상과 경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일루즈, 2010: 125). 감정장은 감정능력을 갖춘 주체성을
요구한다. 사회가 감정의 관리, 성찰, 표현, 이해, 처리를 중시하는 문화적 패턴을
일반화시켰기 때문에, 사회적 행위자는 그런 감정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
기대되며, 그런 능력은 사회적 편익(benefits)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감정 자본은
신체에 육화되어 있으며, 가장 덜 성찰적인 부분을 동원하기 때문에 피상적 연기
능력이 아니라 그야말로 깊은 수준의 연기(deep acting)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일루즈, 2010: 125~127).
IV. 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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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이런 관점과대립하는것이바로 ‘사회적인것’의 감정적 기초를
강조하는 전통이다. 이 흐름은 초개인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거대한 집
합 감정의 실재가 합리성의 외관적 지배를 넘어 행위, 사회적 상호작
용, 구조(규범/규칙),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나 국가 혹은 시민사회와
같은 근대의 거대 공간을 구성하는 근본 원리라는 사실에이론적 가능
성을 걸고 있다. 이처럼 합정성과 합리성이 대립되었을 때, 우리는 자
칫 합정성을 합리성의 대립 항인 비합리적인 것혹은 비합리성과 동일
시할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합정성은 단순한 비합리성이아니다. 합정
성에는 합리성에 함몰되지 않는, 다른 종류의 논리, 절차, 형식에 ‘부합
하는’ 일관된 작동 능력이 전제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사회적
행위의 합리성(rationalité)과 합당성(raisonnabilité)을 이론적으로 분
리시킨 부르디외의 논의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행
위자들이 반드시 합리적 선택을 하는 합리성의 구현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는 놀랍게도 다양한 고려 사항(규범, 정서, 규칙,
분위기)에 대해서 합당하다는 사실, 즉 사회적 행위자들이 합리적
(rationnel)이지는 않지만 분별력이 있다(raisonnable)는 사실을 발견
한다(Bourdieu, 1994: 149~150). 비록 부르디외에게 이 구분은 사회적
행위자의 수준에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이 구분의 이론적 함의는 향후
더 깊은 주목을 요한다. 요컨대 합정성은 합리성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성에 귀속되는 것도 아니다. 합정성은 합리성을 넘어서는
포괄적 사회 이성의 한 유형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차후의 연구가 요청된다고 본다.
둘째, 합정성 개념은 동아시아 사회의 ‘사회적인 것’의 구성을 이해
하고 설명하기 위한 좋은 개념적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을 갖는다. 이
를 테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행위들과 관계들은 반드시 합법적이거
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행, 성사되지 않는다. 법, 규범, 합리성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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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Kim, 2013). 나는 마음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상이한, 분화된 권능
들을 실천하는 인간 능력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인지적 능력으
로서의 합리성, 감정적 능력으로서의 합정성, 그리고 의지(意志) 능력
으로서의 합의성(合意性)이 그것이다. 합리성이 계산 능력에 기초한다
면, 합정성은 감정을 통한 행위능력에 기초하며, 합의성은 인간 정신
능력의 의지적 차원, 즉 욕망/의지/충동에 기초한다. 철학적으로 의지
의 문제는 루소, 쇼펜하우어, 니체, 그리고 생철학 전통으로 연결되었
고, 하이데거에게서 역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의지 능력은
행위자 혹은 주체의 개인적 권능인 동시에, 다른 사회적인 것의 구성
차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기본 원리로 이해될 수 있다. 마음을 이
해한다는 것은 이 세 차원에 대한 복합적 통찰의 실천이다. 현실 세계
에서 행위자들은 ‘마음’의 주체로 행위하고 있으며, 그들의 마음은 인
지적, 감정적, 의지적 차원에서 모두 작동하는고도로 복잡하고 심층적
인 실천들로 현상한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나는 향후 ‘합의성’이라 명
명할 수 있는 사회학적 마음 탐구의 또 다른 개념적 준거에 대한 논의
를 시도함으로써 사회학적 ‘마음’ 개념을 현대 사회학의 기본 개념들과
의 긴밀한 조응 속에서 체계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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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사회와 이론 통권 제2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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