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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 지음

책 읽기와 글쓰기가 주는 위로에 기대어 살고 있다. 할 줄 아는 게 읽기와 쓰기밖에 없어 가끔 초


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글쓰기를 업으로 할 수 있어 행복하다. 타인과 눈을 마주 보며 대화하
는, 그 순간의 온기를 좋아한다. 글쓰기는 마치 나와의 따스한 대화 같다고 여긴다. 때론 종이에
적힌 활자를 보며 기쁘고 슬프고 안쓰럽고 초라하기도 한 모습에 내 마음을 읽으며 이야기 나눈
다. 그런 지금이 소중하다.
지은 책으로는 《하이힐 신고 독서하기》, 《일탈, 제주 자유》, 《같이 걸을까》, 《세상의 모든 위로》
등이 있다. 현재 오디오클립 ‘윤정은 작가의 독서 위로’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2년 ‘삶의 향기 동
서 문학상’을 수상했다.

 
blog.naver.com/luvbook
www.instagram.com/yunjewrite/

audioclip.naver.com/channels/624

마설 그림

손글씨 쓰는 캘리그라퍼이자 수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수만

명의 팔로워들이 반한 SNS 스타 작가다. 지은 책으로는 《마설언니가 있

어서 다행이야》가 있다.

 
www.instagram.com/ma__seol/
프롤로그

원래도 일을 일처럼 생각 안 하고 살았는데, 요즘 특히 그렇다. 원고 작

업하는 날은 딱히 일한다는 느낌 없이 놀러 나온 기분이다. 치호를 만난


뒤 생긴 마음가짐의 변화다.

주 2~3일간 일(강의)을 해서 글쓰기 작업을 먹여 살리는 구도로 산 지 십

년째다. 십 년이면 뭐가 변해도 변한다던데. 난 뭐가 변했지? 여전히 어설

프고 변변찮고 허술하지만 놀이와 유흥인 글쓰기는 더 재밌어졌고, 벌어

먹여 주는 강의는 고마워졌다. 그리고 가족이 늘었다.

색깔, 문체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지만 ‘재미있으면 쓴다’는 가치관은

여전하다. 첫 책을 내면서 책을 열 권쯤 내면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

라 기대했다. 막상 책을 열 권쯤 냈을 시기엔 권수가 중요치 않아졌다. 강

의 자료 만들 때나 세어 볼 정도. 권수보다 중요한 건 밀도다.

아, 책을 열 권쯤 내니 알겠다. 글쓰기는 정말 어렵구나. 젠장.


 

십 년간 작가로 살아와도 여전히 어려운 글쓰기이고, 윤정은으로 삼십

육 년을 살아도 어려운 게 나 자신과의 관계다. 그뿐일까. 얼마 전엔 후진

주차를 하다 자동차 왼쪽 사이드미러를 부쉈다. 운전한 지 십육 년째인


데! 아직도 후진 주차할 때 폭 가늠이 어렵다. 습관적으로 발목 양말만 신

다 보니 겨울엔 늘 발이 시렸는데, 친구가 목이 긴 양말을 신는 걸 보고

‘아, 겨울엔 발목이 긴 양말을 신는구나’ 배웠다. 긴 양말을 신으니 따뜻

하다. 아직도 인생은 아리송하고 나는 허점투성이다.

이런 내가, 엄마로 삼 년밖에 살지 않았으니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모

성애는 아이만 낳으면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는데 부서질 듯 작은 아이를

안고 겁부터 났다. 출산 후, 아이를 너무 사랑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보다 아이로 인해 달라질 내 인생이 두려웠다.

아이를 낳자마자 처음부터 엄마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된 양 모든 걸 완


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어쩜 저렇게 하루 만에 모드전환이 가

능할 수 있지?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과

출산 후에도 여전히 여성의 사회 생활이 보장되는 프랑스식 육아를 동경

하는 그들의 양면적 사고가 이해되지 않았다.


 

보고만 있어도 귀여운 내 새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왜 이렇게나 많은

지……. 아이를 양육하는 게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라는 걸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을까?

혼란스러웠다.

이전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명확했고 세상은 꿈꾸는 대로 움직여 줄 거

라 확신했다. 삶은 대체로 호의적이었고, 넘어져 아파도 아픔을 음미할

여유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쯤 자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관계 온도 조절이 가능할 줄 알았다. 뜨거울 때 뜨겁

고 차가울 때 차갑던 자유가 넘쳤다.

그땐 정말 몰랐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전형적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콤플렉스에 걸릴 줄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일을


줄이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며 TV 드라마에 나오는 ‘좋은

기혼 여성’이 되기 위해 살다 보니 정작 내가 사라졌다. 타인이 보기엔 안

정적이고 조화롭고 행복해 보일 수 있지만 늘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생후 애착 3년’ 이론에 발목 잡혀 아이 돌까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집중하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아이는 놀아 달


라고 다리에 매달려 있는데, 난 온종일 아이 곁에 있어 줬다는 이유로 지

쳐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정말 이렇게 치호 곁에 있는 게 아이와 내가 행복


한 길일까?

그때부터 감정을 돌아보고, 생활을 정비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듣고 싶던 커리큘럼을 수강했다. 나를 위한 삶을

되찾은 지금은 치호와 함께 있을 때 가급적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아이

의 눈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다. 자고 나면 커 버려 아쉬운 예쁜 아이의 움

직임을 부지런히 눈에 담는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를 칭하는 걸까? 뭐가

정답이고,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는 모르겠다.

과연 ‘좋은 엄마’의 기준이란 게 있을까?

만약 사회적으로 ‘좋은 엄마’의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기준도 결국

누군가의 논문, 발표자료, 혹은 생각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내 가정, 내

인생에 ‘좋은 엄마’의 기준은 본인이 정한 답이 진짜 아닐까.

 
원래도 다정한 남편이 치호라면 껌뻑 죽는 건 아이를 낳기 전부터 기정

사실이었다. 아이를 하나만 낳기로 했으니 힘닿는 만큼 아이를 안아 주고

싶다며 자주 안는다.

치호의 어린이집 적응 기간 동안 나는 유모차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남

편은 힙시트로 안아서 아이를 데려다줬다. 자연스레 아빠 품에서 떨어지

기 싫은 아이는 헤어질 때마다 울었고 나와 헤어질 때는 거의 울지 않았

다(지금은 누가 등원시키든 울지 않고 웃는다).

아빠를 좋아하는 치호가 너무 귀여워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 줬다.

“언니, 그래도 치호는 엄마가 가장 좋을 거예요.”

이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왜 치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꼭 엄마여야 할까?

아이가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엄마라고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걸까?

치호는 아빠를 가장 좋아할 수도, 할머니를 가장 좋아할 수도 있다. 아

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족 중 누구

와 가장 강한 애착 관계를 맺어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든 작품이 아이다. 아빠는 가정을 부양하고, 엄

마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게 전통적 생활방식이었지만, 부부가 맞벌이

하면서 양육과 가사를 함께해야 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애착 이론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라떼파파’로 불리는 육아하는 아빠들은 주 양육자로서 아이

를 돌보면서도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의 자리를 엄마에게 넘겨줘야

만 하는 걸까?

물론 얼굴을 볼 수 없을 만큼 바쁜 아빠가 외벌이를 하고 엄마가 독박

으로 아이를 돌보는 경우라면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은 엄마가 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치호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는 아이라고 생

각한다.

나는 생후 두 달부터 다섯 살까지 조부모님이 양육해 주셨는데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돌아가신 할아버지다. 어린 시절 내


게 가장 풍족한 사랑을 준 대상이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따뜻했던 사랑의

잔상을 가지고 있다. 치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라고 대답한다면

조금 서운한 감정이 스칠지라도 치호의 선택이니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지~?” 이런, 대답을 강요하는 질문은 하질 말

고.

매일 집에서 치호가 오길 기다리며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는 엄마는 못

되겠지만 치호의 고민과 행복과 삶을 공유하는 평생 벗이자 사랑하는 이

가 되고 싶다. 치호에게 나는 ‘행복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주어진 삶

에 최선을 다하며 실패와 고난을 헤쳐 나가는 삶의 태도를 남겨 주고 싶


다. 행복한 일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 주고 싶다.

치호가 배고프지 않게, 춥지 않게, 아프지 않게 보살피는 것은 부모라


면 누구나 하는 일이니 생색내지 않으려 노력해 볼 테지만 “엄마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란 소리는 아마 살면서 세 번쯤(혹은 열 번쯤은) 하지 않을

까? 그런 소리를 내뱉더라도 속 좁은 엄마를 이해해 주는 마음 넓은 아이


로 자랐으면 좋겠다.

유난히 잘 웃는 치호가 음악 소리에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막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충만한 행복감이 온몸에 번져 온다. 치호의 웃음이
커 갈수록 그 웃음이 메말라 가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다.

 
내가 만난 남자 중 “사랑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이가 치호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랑 고백을 하게 만드는 치호를 만난 건 이기적인 내가 세


상에 태어나 그나마 쓸모 있는 인간이라 느끼게 해 준 일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치호가 어떤 일을 하건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거다. 엄마의 꿈과 함께 치호도 성장하면 좋겠다. 아이가 자라면 한 달쯤

학교를 땡땡이치고 같이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

쓰고 읽는 삶,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다니며 바람의 소리

에 맞추어 여행을 떠나는, 예정되지 않은 길을 걷는 삶을 살고 싶다. 다양


한 작업으로 소통하며 오랫동안 읽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아흔이 되어도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곱게 단장을 한 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작업


을 마치면 깔깔 웃으며 잔을 부딪칠 지인들이 곁에 있는 것. 그것이 꿈이

다.

그렇게 살기 위해, 엄마이자 여자이자 윤정은으로 살기 위해, 춤을 추


고 싶을 때 몸을 흔드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내가 지속되길 바란다. 그

런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
contents

프롤로그

1장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사는 거 참 꽃 같다

일이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여자’라서 가능해

우리가 했던 사랑의 대화에 대하여

아픔 많은 이 시대에 위로란

언제쯤 어설픈 사회성은 완성될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용기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지금 이대로도 좋아

2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어질러진 방을 치우기 전에

나를 위해 벅차게 기뻐해 보기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통날에 사소한 선물 사 보기

혼영과 혼밥의 미학

어른도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건

 
3장

너를 만나

알게 되는 것들
 
싫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를 통해 나는 자란다

이번 생에 엄마로 사는 건 처음이라

시시한 나를 사랑해 줘서 고마워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랑

너로 인해 모든 게 가능해진다

네가 있어 내가 빛이 나

밥솥도 제 몫이 있는데

 
4장

외로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비밀장소

나 혼자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

스스로 상처 안아 주기

아무래도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죽고 싶다”는 말은 신중하게 내뱉기

이혼해도 될까요?

의존에서 벗어나기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와 함께 자란다

 
5장

자유로운 나로

살기 위해
 
인스타그램 삭제하기

머리라도 감았으니 괜찮아

먹고 싶을 땐 스트레스 없이 양껏 먹기

사소한 금기 깨뜨리기

나와 같이 걷는 사람

자연스러운 게 좋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상징적 종속에서 벗어나기

양손에 욕심이 가득 차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6장

나 데리고

오래 행복하게 살기
 
낯선 사람 효과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참 예뻐요, 당신

일상을 여행하듯 산다

부지런히 내 몸 챙겨 주기

핸드폰에 예쁘게 웃는 내 사진을 남기자

삼십 대인 내가 좋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사는 거


꽃 같다

안 좋은 일이 몰려올 땐 재수 없게 우르르 몰려온다.

지루한 견딤에 목이 타 말라 갈 때쯤 돼서야 좋은 일 하나 던져 주고


“뭐, 살다 보면 좋은 일 더 생길지도 몰라. 견뎌 볼 테야?” 하고 약 올리는

인생에게 지고 싶지 않다.

“이런 꽃 같은 인생!!”

견디기 버거운 일이 올 때마다 말한다.

피고 지고 피고 지는 꽃처럼
화사한 빛을 뽐내려면 뿌리내리도록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조만간 이걸 자양분으로 예쁘게 필 꽃을 상상하며

견딘다.

사는 거 참 꽃 같다, 하고 말하면

생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오늘의 고단함도 내일은 시들어, 새로운 꽃이 필 것만 같다.

꽃같이 살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테니.

꽃 같고 꿈같은

그런 인생이 펼쳐질 테니.


일이란

내게 어떤
의미일까

일이란 과연 내게 어떤 의미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지만 때론 일이 나인지, 내


가 일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직장인으로 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작업하고 있지만 피곤함보다는 시간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올해로 글을 쓴 지 이십이 년, 작가로 살아온 지는 십 년이 됐다. 한때


글이 나를 먹여 살려 줄 거라 기대하다 실망하던 시기도 있었고, 원하는

글과 현실의 글감이 달라 좌절하던 시기도 있었다. 글 값으론 한 달 생활

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울기도 많


이 울었다.
그 와중에도 놓지 않은 건 꾸준하게 글을 쓰고, 공모전에 응모하고, 책

을 출간하는 일이었다. 이상과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며 쓸 수 있는 글을

썼다. 분야가 전혀 다른 칼럼 의뢰가 들어와도 충실하게 주제에 맞추어

글을 써 주었고, 글 값으로 먹고살기 힘들 땐 강의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글로 돈을 벌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강의로 돈

을 벌자고 생각해 시작한 강의도 벌써 십 년째다. 이젠 글쓰기와 강의 둘

다 일이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말하기와 글쓰기 둘 다 어렵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건 특히나 어렵다.

출연한 방송이 무대 울렁증 때문에 통 편집 당한 뒤로 일부러 학원 강사

로 취직해 2년간 매일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한 뒤에야 사람들 앞에 설 때

떨림이 줄었다.

그런데도 강의는 할 때마다 떨려서 ‘할 수 있어, 그냥 즐기는 거야, 재

미있게 놀다 오자!’를 마음속으로 수십 번 외치고서야 강의실로 들어간


다. 남들이 보기엔 강의하는 내 모습이 마치 말하는 직업을 즐기는 사람

같겠지만, 실상은 강의를 마치면 긴장이 풀려 온몸이 쑤셔 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이 돈이 되기까지 버티질 못하고 포기한다. 현실 앞에 무너지

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는 건 가능할까?

가수 박원의 <노력>이라는 노래 가사에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


니’란 구절이 있는데, 감정은 별수 없어도 일은 노력하니까 좋아지는 게

말이 되더라.

회사원 시절에는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니 진짜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 한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열풍이 불며 자신의 일과

직장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고민 상담이 이어졌다. 좋아

하는 일을 하며 사니까 행복하냐는 질문도 꽤 많았다.

사실 읽기를 즐기는 책 덕후인 내가 작가로 사는 건 완벽한 덕업일치(덕

후질과 일이 일치하는 것)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직장에 다닐 때보다 서너 배

는 더 노력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따르지만,


그런 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좋다. 좋

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게 올해의 목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순 없는데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란 물음에, 나는 하는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

해 보든가 퇴근 이후 좋아하는 일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답했다. 뭔가 무책임하고 무미건조한 대답 같지만(왜냐하면 나를 바라

보는 눈빛이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잖아!’란 무언의 말을 하고 있으므로) 과연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

아이 셋을 둔 외벌이 가장이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마흔이 넘은 나

이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기 꿈에 도전하는 건 무모한 짓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차라리 오랜 시간 손에 익은 일로 돈을 벌어 쌀을 사고 적금을

붓고 세를 내면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반을 내 주는


보컬트레이닝 학원을 다니든가 직장인 밴드 활동을 하며 갈증을 해소하

는 편이 생활에 위협을 주지 않는 현실적인 방편일 것이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은 쉬이 식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공기업에 다니면서 좋아하는 옷을 만들어 블로그 마켓을

여는 지인도 있고, 스타트업을 창업해 직장생활과 병행하는 이도 있다.

레고 덕후였는데 장난감 회사에 입사해 좋아하는 것과 직업이 일치된 이

도 있고, 게임에 빠져 살다가 게임회사에 들어가 게임개발자로 사는 이도


있다. 아트디렉터가 카페를 열기도 하고 재미로 블로그를 하던 이가 파워

블로거가 되어 SNS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게 가능하기도 하지만, 취미가

일이 되면 좋아하던 일을 미워하게 될 수도 있다.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일이 나를 대변해 줄 수 있을까? 만일 일이 나를 대변하는 걸 원치 않는

다면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찾아야 할까?

관성에 젖어 의식 없이 일만 하며 지냈다면 지금 이 순간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재수 없으면 이백 살까지 살 수 있다는 동영상을 보았다. 인간 수명 이

백 살이 현실이라면, 오늘 하는 일만 하며 살아가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

나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행위를 오십 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는 장수 시대. 하는 일을 좋아하건 좋아하는 일을 하건 하루에 가장 많

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게 ‘일’이니 ‘일의 의미’에 대해 차 한 잔 앞에

두고 차분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면 한눈 팔지 않기로 결심하기에도

지금이 딱 좋은 시기니까.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여자’라서 가능해

명절 연휴 친정에 온 가족이 모였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나름 누나라고 치호랑 놀아 주는 걸 보니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별명이 날쌘돌이인 치호는 식사 시간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참견한

다. 교대로 치호를 돌봐야 하니 남편이 먼저 식사를 한 뒤 내가 밥을 먹는

다. 식사가 끝나고도 남편이 치호를 돌보자 조카가 물었다.

“이모가 바빠서 이모부가 치호 돌보는 거 도와주는 거예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치호는 우리 가족이잖아. 이모랑 이모부가 치호를 함께 탄생시켰어.

그러니까 이모부가 육아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거야.”

어린 조카에게 대답하며,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의 시대엔 그런 인식이

바뀔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여자들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일과 육아까지 전담하는 경우가 많은

현 상황을 개선하려면 가장 먼저 여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고, 이를

가정과 사회에서 마찰 없이 현명하게 해결하려는 부단한 노력도 필요하


다.

가사와 육아는 ‘도와주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한쪽이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한쪽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기로 했다면

평화롭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지금까진 사회 통념상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남자가 밖에 나가 돈

을 버는 형태로 가정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 조카가 성인이


될 가까운 미래엔 지금보다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훨씬 더 활발해질 것이

다. 그때에도 활발하게 사회 진출을 하던 여자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

면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육아 휴직을 쓸 때마다 눈치를 보고, 아

이를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 결국 퇴사하게 되는 슬픈 현실이 되풀

이되고 있을까?
 

지인 중에 아내가 생업을 위해 돈을 벌고,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

하는 부부가 있다. 물론 그녀가 아이 돌보기나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가사와 육아에 있어선 전적으로 남편 역할이 더 크다.

‘남편’이나 ‘아내’ 같은 용어적 편견에 휩싸이지 말고, 우리 아


이들의 시대엔 여자건 남자건 결혼 이후 주어진 버거운 삶의 무
게에 어느 한쪽만 휘청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서구문화를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 아이들 시대엔 그런 삶이 현실화되길 바라본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제약들 말고

여자라서 가능한 일들이 훨씬 많아지길.


우리가 했던

사랑의 대화에
대하여

이십 대엔 친구들과 만나면 무조건 연애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공부나 일은 노력 여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지만 연애만큼은 노력이


나 마음먹은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연인이 한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

을 친구들과 분석해 가며 연애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시간이 모자랐다.

남자가 연락하지 않는 이유는 딱 세 가지. 상중, 옥중, 아웃 오브 안중.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는 다를 거라 믿으며 손가락이 부러졌다거나 쑥

스러움을 진하게 탄다거나 진정 바빴을 거란 이유를 대면서 ‘그가 나에게


반하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와 친구들처럼 같은 감정을 공유

하고, 나쁜 남자는 같이 욕해 주고, 실연에 함께 아파했으며, 새 사랑은

아낌없이 축복해 줬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니 슬슬 청첩장이 손에 쥐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

아 그녀들의 SNS엔 하얗고 볼이 통통한 아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이 올라왔다.

그녀들은 아이를 낳았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연애를 이어 갔다.


때론 지난 이별이 아파 혼자 지냈고, 결혼을 할 뻔했고, 이별을 했고, 결

혼했다 다시 돌아오며 삼십 대 후반이 되고 사십 대를 맞이했다.

“이번 생은 망했어.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말고 우리끼리 여행하면서

살자.”

“야, 징그러워! 난 남자랑 여행 다닐 거야!”

결혼한 친구들은 이런 이야길 나누고,

“어쩌면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나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할 필

요가 있을까?”
“결혼은 별론데 아이는 낳고 싶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자 냉동을 해

두려고.”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우리가 나눈 사랑에 관한 대화가 바뀌어 간다.

이별을 고민하던 친구는 이혼을 고민하고 양육권에 대한 고민을 한다.

서른 마지막 줄에 이제야 진짜 사랑을 만났다고 기뻐하던 친구는 이별을

맞이했다. 이십에서 삼십, 앞자리 숫자가 바뀌며 사랑에 대한 대화들은

무거워졌고 그만큼 신중해졌다. 이십 대처럼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을

일일이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끼리 모여 이야기해 봤자 답이

없음을 아니까.

행여 나쁜 남자에게 빠졌을지라도 사랑한 순간에 본인이 행복했다면

그만이라며, 아프게 웃는 대화가 오가기도 한다.

“결혼한 후에 사랑이 식는다면, 남은 생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

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랑의 색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사십 대, 오십 대, 육십 대에 나눌 사랑에 관한 대화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관한 대화를 지속하고 싶은데 그 시기가 되면 사

랑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될까?

건강과 노년과 아이들 혼사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팔십에 연애를 해도 똑같아요. 몸만 늙었지 젊을 때랑 똑같아.”

오십 대 후반의 지인이 말했다.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가 경로당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연애를 시작했는

데, 그 사람 이야기를 하며 설레는 모습이 꼭 젊은 사람 같았단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봄날 같은 감정을 그려 보며 어쩌

면 노년의 우리도 사랑에 관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구나, 싶다.

치호가 자라 함께 나눌, 녀석의 사랑 이야기도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가 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들, 앞으로 나눌 사랑의 대화들까지.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

지 않는다는 거 같아, 좋다.


아픔 많은

이 시대에
위로란

최정상을 달리는 이십 대 아이돌 그룹 멤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 뒤 공허하고 아픈


내면을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면 그는 힘든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가져서일까, 감수성이 좀 더 발달해서일까. 가벼운


조울증,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이 간혹 찾아온다. 상담을 받거나 약

을 먹을 만큼 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간혹

우울증이 감당할 수 없게 깊어지면 일부러 더 사람들을 만나고, 밖에서

에너지를 소모하며, 워커홀릭마냥 일에 중독되려는 나를 발견한다. 우울


한 감정을 일로 덜어 내는 일종의 자가 치유법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는 임신우울증과 산후우울증을 나 역시 지독하게

앓았다. 임신중독이라는 병에 걸렸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으니 최대한 임신 기간을 늘리려 입원을 했다.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 늘었고, 병실에서 3시간마다 혈압 체크를 했다. 혈압이 오

를까 봐 제대로 말도 못 한 채 침상에서만 지내자니 걷잡을 수 없는 우울

증이 찾아왔다. 딱딱한 병실 침상만 벗어날 수 있다면 줄 수 있는 건 다

내줘도 좋았다.

하릴없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어느 날, 출판사 에디터가 전화를 걸어

왔다.

“나, 위로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에 쓸까 싶어.”

두런두런 통화하고 며칠 뒤, 갑자기 혈압이 200으로 치솟더니 아이 태

동이 작게 느껴진다 했다. 긴급 수술로 임신 32주 만에 1.13킬로그램인


아이를 출산했다.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를 보며 살려 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두려움이 우울증과 함께 왔다.

그렇게 작게 태어났으면서도 자가 호흡을 하는 치호를 보며 산소호흡

기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감사해 아이 앞에선 씩씩해지려 애썼


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오던 날 그토록 집이 낯설게 느껴질 수가 없

었다.

분명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와 함께 오지 못했다. 아이 옷과 기저귀를

한가득 빨아 널며 걷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휘감겼다.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호를 먹였다. 치호가 40여 일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보내고 집으로 오던 날, 2.6킬로그램짜리 아이를 안고 오던 그날

을 생각하면 지금 건강하고 밝게 자라 주는 치호가 너무 고맙고 예쁘다.

기쁨과 우울함이 번갈아 오가던 감정을 치유해 준 건 토실하게 살이 쪄

가는 아이와 글쓰기였다. 담당 에디터의 실행력으로 산후조리원에서 나

오자마자 출간 계약을 했고 《세상의 모든 위로》란 책을 쓰며 산후우울증


을 극복할 수 있었다.

쓰는 사람이 행복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기간에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집필 시간에는 최대한 쾌적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다. 읽는 사람에게 좋은 기분을


전해 주고 싶어서 글을 쓰는 동안 기분을 좋게 만들려 노력했더니 진짜로

행복해졌다.

지독하게 따라붙던 산후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이


위험한 병임을 새삼 깨달았다.

극복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천만다행이지만 대부분 바삐 사느라 마음

의 병을 돌볼 시간을 내지 못한다. 아니, 마음에 병이 들었단 사실조차 인

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밀려오는 무기력과 우울감을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치부하며 아픈 마음

을 방치해 병을 키워 간다.

지인 중 여럿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하루는 공부만 하던 K

가 벤처 기업 창업 후 공황장애를 앓아 모든 걸 놓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체 그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자

료를 찾아보다 좋은 글을 발견했다.

 
친구나 가족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위로의 말에 우울증 환자들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중앙일보가 소개한 <우울증 환자에게 하면 안 되

는 위로의 말 6가지>(2017.12.19 정은혜 기자)란 기사다.

첫 번째 말은 “힘내”. 이미 힘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동력을 상실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힘들었겠다” 정도의 호응이 더 도움이 된

다고 한다.

두 번째 말은 “네가 감정을 잘 다스려야지”. 이미 생활에 집중력도 떨어

지고 불면증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더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가족을 생각해”다. 조언하는 이의 의도와 다르게 자신을 책

망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네가 생각하기에 달렸어”, “어떤 심정

인지 알아” 등의 이야기는 경험해 보지 않은 우울증을 과소평가할 수 있

어 조심할 것을 전문가는 권한다. 또 그런 경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이

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만큼 조언자가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

아서도 안 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정신의학 및 신경학과 교수인 아담 캐플린 박사

에 따르면,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


게 서툰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는

편이 낫다고 한다.

기사를 읽으며 전적으로 공감했다. 상대방이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

해 버거움을 토로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란 말에 한순간 입과 마음

이 동시에 닫힌 경험이 최근 내게도 있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겠지만 이번 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고 버거운 상황에서 유난 떨지 말라는 식의 조언은 독이 된

다.

차라리 “그렇구나, 정말 힘들었겠다”라며 말없이 안아 주고 공

감해 주는 따뜻한 눈빛이 백배는 고맙다.

주변에 누군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면 섣부른 위로의 말

보다 힘찬 도닥임과 공감을 해 주자. 현대인들에겐 감기 같은 병이라지만

앓는 이는 작은 스침조차 몹시 아플 테니까.
 

내일 K를 만나면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 따뜻한 밥을 사 주면

서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 때론 정신과 치료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니까.

그에게 힘이 될 만한 호응을 연습해 본다.


언제쯤

어설픈 사회성은
완성될까

호갱 짓을 당하도록 끌어당기는 에너지라도 내게 있는 걸까?

나름 시크하게 생긴 인상인데 한번 마음 주고 정 주면 흠뻑 퍼주는 스


타일인 호갱력을 알아보시는지 사회 초년생 때부터 별의별 이용을 다 당

하고 다닌다.

황당했던 에피소드를 꼽자면, 친한 언니들이 미술관 행사라고 해서 불

려갔더니 다짜고짜 사진을 찍으란다. 행사의 일환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


는데 다음 달에 유명 브랜드 팬티라이너 지면광고에 그날 찍은 내 사진이

사용된 걸 잡지를 넘기다 발견했다. 이게 대체 뭐냐고 제대로 항의도 못

하던 이십 대의 꼬맹이는 어느덧 사회생활 십육 년 차가 됐다.

 
이제 나는 전과 다른 호갱 짓을 한다.

일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면, 대가 없이 재능이나 노동을 요구하더라

도 마다 않고 필요한 영역을 일정 부분 도와준다. 다음번에 내가 필요할

때 미안해서라도 도와주게 하려고 말이다. 선의가 아닌 목적으로 다가오


는 이들을 능숙하게 피해 가며 상처를 받아도 깊게 간직하지 않고 털어

내는 오늘의 내가 됐다. 기특하다 여겨야 하는데 때묻은 거 같아 씁쓸하

다.

비록 누군가에게 이용당했을지라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순수한 호의를 잃지 않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사회생활을 잘 해내는 내 모습이 때

로 어색하기도 하다. ‘아-’라는 말속에 섞인 ‘어-’와 ‘오-’의 의미를 알아

채지 못하던 그때의 내가 그립지만,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거라 자조하며

씁쓸한 기분을 삼킨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는 사회성도 있다.

칼럼 고료가 제때 안 들어와도 전화 한 통 못하고 끙끙대던 나는 지금

도 제때 입금되지 않는 고료 앞에 이메일 보내기를 몇 번이나 망설인다.


망설이다 보낸 메일에 담당자가 상황과 입금 일자를 설명하는 답장을 보

내오면 그냥 좀 더 기다릴걸, 하고 쑥스러워진다.

이젠 익숙해진 사회성과 아직도 세련되지 못한 사회성.

두 개의 사회성을 가진 직업인으로 살고 있다.

언제쯤 이 어설픈 사회성은 완성될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용기

부모님은 ‘결혼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굳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딸 셋이 모두 늦게 결혼할까 불안했던 부모님은 모든 걸 ‘기-승-전-결


혼’으로 설명했다.

한창 코 성형수술을 하고 싶어 성형외과에 날짜를 잡고 왔더니 “내 집

에서 코 수술할 거면 호적부터 파라. 결혼하거든 해”란 아빠의 말에, 오갈

데 없는 신세였던 나는 예약을 취소해야 했다(지금 생각하면 안 하길 잘한 것 같

다).

독립해 혼자 살고 싶다는 말에도 “결혼하면 그때 나가라”는 말로 응대

하셨다. 스무 살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결혼’이었다. 마

치 여자가 제때 결혼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세뇌하는 부모님 덕에


결혼은 선택 사항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란 인식이 내게도 심어졌

다.

지금 생각하면 ‘왜 결혼 전에 월세로 집을 얻어 혼자 독립해 살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늘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혼자

유학 한 번 안 가 보고 결혼을 해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산다.

안정된 구성원과 함께 있고 세상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은 좋다. 그러나

혼자서 집을 구하고, 매달 나가는 월세에 떨어도 보고, 공과금을 내고, 외


로움도 느껴 보고, 혼자 먹을 찬거리를 마련하는 등 혼자 사는 생활을 해

보았더라면 글감도 지금보다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게 될 텐데, 결혼 전 혼자 살며 나를 알아 가는 시

간을 가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부모도 타인인데, 타인의 견해와 시선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


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남들의 시선과 견해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 수 있

을까?

서른일곱에 비혼을 결심한 지인은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 반지를 샀다.

남자친구 없냐고,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고, 차라리 한 번 다녀온 게 더 낫지 않느냐고 묻는 말이 지겨워 스스로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을 했

다. “나는 나와 결혼했다”는 그녀의 선택을 응원했다.

그런 삶을 택하기 전, 먼저 결혼한 언니와 남동생이 조카들을 데리고

가족 모임에 올 때면 그녀는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그래도 내 인생인데 마음대로 살지 못하

나, 하는 감정이 뒤섞였다.

친구들을 만나면, 결혼이 마치 행복의 완성인 양 말하다가도 육아와 남


편, 시댁과의 관계가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는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안도하는 표정의 그녀들을 보

며 꼭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시

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그들이 하는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연습을 했다. 명절에는 해외여행을 떠났고 남들이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

는 몸매를 가꾸고 업무적 성취를 이루고 연애를 했다.


 

때론 외롭지만 이 또한 그녀의 선택이니 감수해야 한다. 정해진 시점에

대학을 가고,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을 다니다, 결혼 후엔 아이를 둘 낳고


늙어 가는 인생이 정답이라 누가 말했는가?

타인의 시선에서, 특히 부모님과 가족들의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다면 사소한 말들에 상처받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가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긴 하지만 아이만 바라보며 아이가 전

부인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내가 타인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참

견에 상처받지 않으려 흘려듣는 연습.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변신해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

는 동물처럼, 우리도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을 만났을 때 보호색


을 띠기 위해 그들과 같은 생각인 척 호응해 주는 ‘생각의 보호

색’을 띄어야 하는 걸까.

뭐 이렇게 하나 쉬운 게 없나 모르겠다. 산다는 거.

다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시도해 볼수록 좀 더 나다워지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

친구가 짧은 치마를 살까 말까 고민한다. 다리 라인이 길고 예쁜 친구

에게 왜 고민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한다.

“이 나이에 스무 살 애들처럼 입으면 보기 흉하지 않니?”

“아니, 전혀. 오늘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어. 육십에 미니스커트를 입

은들 네가 입고 싶다면 입는 거야. 예뻐-.”

스무 살에 입는 미니스커트보다 풋풋함은 덜해도 성숙미와 관능미라는

게 있지 않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느 때라도 ‘나이’는 별로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물론 십 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젊고 팽팽하고 예뻤겠지만 미숙하고 늘

불안했다. 그때의 사진만 봐도 예민하고 불안한 눈빛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십 대의 나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연애를 하면서도 다른 분야

에서 일하는 남자를 만나 그의 세계를 알아 가는 게 흥미로웠다. 나와 다

른 생각, 다른 지식, 다른 언어,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만남을 통해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이 좋았던 걸까.

사랑을 한 걸까.

때론 둘 다일 수도 때론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겠지.

옛 애인들의 나이가 되어 가며 그들을 이해한다.

그땐 삶이 가진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랑이 식었다며 이별을 고했는데

한 살 한 살 그들의 나이를 지나오며


그 낮은 한숨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것들.

지나고 나야 알게 되는 것들.

그런 게 있다.

그런 것들을 알아 가는 오늘의 내 나이가 좋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젊을 수 있다.

우리가 마음먹는다면, 싱긋 웃고 생생하게 걸어 나간다면.

할까 말까 망설여진다면 무조건 ‘할까’의 편에 서자.

오늘이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임을 기억하며.


지금

이대로도
좋아

엄마가 된 뒤, 아이 장난감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한 번 놀라고, 그 가격

에 두 번 놀랐다.

이렇게 허접해 보이는 플라스틱 덩어리가 십만 원이라니!

장난감 회사의 상술에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키즈 카페

나 친구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재밌게 노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

라도 사 주고 싶어진다.

치호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지만 가정 경제는 결코 행복하지 않기에,

중고를 사고 친구에게 물려받으며 아이 장난감에 드는 비용을 절약한다.

“정은아, 장난감 받으러 와.”


반가운 전화에 기분 좋게 친구 집에 갔다가 기가 죽어 왔다.

이사 간 친구네 한남동 저택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화려한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이 초췌해 보일 정도로. 서둘러 립글로스를 바른 후,

나는 선물용 빵 봉지를 힘껏 쥐고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헤링본 바닥이 깔린 넓은 거실의 앤티크 티테이블에 앉아 캐모마일 티

가 담긴 잔을 손에 들고 기막힌 풍경을 내다봤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리 집값과 친구네 집값을 비교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복층 구조에, 일


곱 개의 방과 세 개나 되는 화장실을 참 예쁘게도 꾸며 놨다.

아이 봐주는 아줌마 때문에 답답하고 속 썩이는 남편 때문에 힘들다고

투정하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아도 고민이 있구나, 안도하는

치졸한 나도 싫다.

장난감을 받아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딜럭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아기 엄마를 멍하니 응시하다 치호와 나를 대입해 본다. 치호가 이 단지

내에서 아장아장 걷고, 나는 커피를 들고 우아하게 아이를 바라본다.

므흣. 살아 있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부러우면 부러운 거지, 뭐, 어쩌겠어.

실컷 샘내 놓곤 집으로 돌아와 친구네 집보다 작지만 아늑한 우리 집이

가장 좋다며 거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아이가 어디 있는지 멀리

가서 찾지 않아도 되고, 햇살이 비치고 나무가 내다보이는 익숙한 우리

집이 좋다.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가 많고 앞으로 만들어 갈 미래가 있으


니 괜찮다. 그만 샘내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연습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살아간다는 건,

해야 할 연습투성이구나.
어질러진

방을
치우기 전에

출산 전의 결혼생활이 달달한 ‘동거 놀이’ 같았다면, 출산 후 결혼생활

은 각자의 시간과 인력을 쓰임에 맞게 분배해 효율적으로 일과 가사와 육


아를 분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아…… 숨 가쁘다.

치호 돌까지는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직업을 가진 내

가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아기 띠를 매면서

머릿속으로는 원고 구상을 짰다. 아이가 자는 틈을 타 핸드폰이나 노트에

메모해 두었다가 다음 날 짧은 여유시간을 틈타 원고를 썼다. 전에는 원


고가 풀리지 않거나 퇴고 작업을 할 때면 훌쩍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아

이가 생기니 훌쩍은 개뿔, 어떻게든 그 상황 안에서 원고를 풀어내야 하

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치호는 밥을 먹지 않겠

다고 소리를 질러댔고, 각종 장난감과 채소로 아이를 유인하던 나는 입을

꼭 다문 아이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처먹지 마! 먹지 마! 그렇게 울 거면 먹지 마!!”

식탁과 바닥은 아이가 던지고 흘린 이유식으로 이미 난장판이 되어 버

렸다. 소리를 지른 지 1초 만에 우는 아이를 보며, 미안함과 이것밖에 안

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울며 찬장을 여는 순간, 안에 넣어둔 무알

코올 샴페인 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박살이 났다. 찢어진 내 마음


처럼 사방으로 유리 파편이 튀었다.

끈적한 샴페인은 줄줄 흐르고, 유리 파편은 사방에 흩어지고 아이는 엉

엉 울고…….

지금 이 순간 우는 나를 안아 주고 유리 파편을 치워 줄 사람이 앞에 있

었으면 했다. 우는 아이를 향해 달려가는데 오른쪽 발바닥에 날카로운 통


증이 박혔다. 미치겠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울고 있는 치호를 안고 일단 방으로 대피시키는데 지나간 자리에 핏자

국이 선명했다. 유리를 치워야 하는데……. 혹시 치호한테 파편이 튄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아직 밥을 몇 수저밖에 안 먹었는데 배는 안 고프려

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그냥 정신을 툭 놔 버렸다. 일단 아

이는 다치지 않았으니, 됐다. 놀란 아이를 달래서 재우고 거실로 나와 어

질러진 부엌을 넋 놓고 바라보다 생각했다. 엉망진창인 부엌이 내 마음

같다고.

뜨거운 줄기가 볼을 타고 흘렀다. 모든 걸 뒤로하고 욕실로 가 훌훌 옷

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엉엉 울어도 아이가 깨지 않을 만큼 세게 물을

틀고 한참을 울고 나왔다. 스킨로션을 바르며 거울을 보니 눈이 퉁퉁 붓

고 빨갰다. 눈물인지 물줄기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양을 흘려보내니

속이 시원해졌다. 하, 이제야 살 것 같다. 내게 필요했던 건 눈물이었구

나. 힘든 마음을 털어 낼 눈물 한 바가지였구나.

말라 얼룩이 된 샴페인을 닦다 그마저도 멈추고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틀고 침대에 누웠다. 깨진 유리병은 붙일 수 없지만 상처 난 마음은 이렇

게 위로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유리 조각을 피해 냉장고로 가서

찬 맥주 캔을 꺼내 치익- 땄다. 꿀꺽꿀꺽 넘어가는 맥주를 타고 고단함도

배 속으로 흘러들었다.

 
맥주를 몇 모금 마시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치호 그릇 꺼내려다 찬장에서 병이 떨어져 부엌이 난리야. 당신이 와

서 좀 해결해 줘.]

어질러진 마음을 내일까지 가져가기엔 하루가 너무 소중하니 깨진 마

음은 오늘 달래 줘야지.

창밖엔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노트북을 켜고 제주행 티켓을 검색해서

한 달 후 2박 3일 혼자 떠나는 일정을 예약했다. 팔을 뻗어 스트레칭을 하

다가 엑스 자로 교차시켜 내가 나를 안아 주었다. 양팔이 날개 뼈에 닿았

다. 날개 뼈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말했다.

“수고했어, 오늘도. 내일은 더 좋은 날이 될 거야. 괜찮아.”


나를 위해

벅차게
기뻐해 보기

“기쁜 소식과 더 기쁜 소식이 있는데 무얼 먼저 말해 줄까요?”

“기쁜 소식이요.”

“명상 메이트가 구해졌어요, 그리고 더 기쁜 소식은……”

“어머, 정말요? 원장님, 저 지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요. 흥분해서 조

금 이따 통화할게요.”

기뻐 눈물을 흘리던 여자는 전화를 끊은 뒤 감격에 겨워 무언의 환호성

을 지른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던 걸까?
 

“아진이가 이번 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았어요!”

그녀를 가슴 벅찰 정도로 기쁘게 한 소식은 딸이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재벌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

>의 한 장면이다. 재벌가 둘째 며느리 우아진 역을 맡은 김희선의 대사를


들으며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못내 서글펐다. 영재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명 수학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 딸이 수학경시대회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전화가 가슴이 벅찰 만큼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정도라니! 그

녀가 오로지 자신의 성취를 위해 눈물 흘릴 만큼 기뻤던 순간은 대체 언

제였을까?

가족을 위해 자기의 삶을 헌신하며 사는 건 비단 재벌가 며느리 우아진

만의 이야긴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보다는 자녀와 남편과 시댁과 친

정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당연한 거라 여긴다. 한국 정서는 보편적으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사람을 이기적이라 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위

해(가족도 결국 타인이다) 사는 게 더 옳다고 여긴다. 그래서 엄마가 되면 개인


의 욕구는 자녀가 모두 성장한 뒤로 미루거나 쉽게 포기해 버리기 일쑤

다. 만약 가정의 행복으로 자신도 백 퍼센트 행복하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 희생과 포기로 인해 본인이 조금이라도 불행하다 여기는 감

정이 쌓인다면 문제가 시작된다.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데’라는 생각에 매여 억울함과 우울함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사실

남을 위해 사는 건 엄마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 아빠


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자녀가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해야 하는 아빠도 있다.

잠시라도 솔직해지자.

‘나의 기쁨’은 모두 꾹꾹 눌러 참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면 정말 행복한가? 가족이 아닌 오직 나의 일로 가슴 벅차게 기뻐해 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 보자. 번지점프를 했을 때? 스카이다이빙에 성공했

을 때? 찜해 놓은 예쁜 물건이 세일할 때? 목표한 시험에 통과했을 때? 운


전면허를 딴 기억은 어떤가? 혹시 운전면허도 자녀를 통학시키기 위해 취

득한 건 아닌가?

올해 ‘나로 인해 가장 기뻤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나는 문화센터에 등

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기 위

해서다.
우울도 전염되고 행복한 감정도 전염된다. 많은 자녀 교육서에서 그렇

게 말하고 있고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부모가 화를 잘 내거나 자주

싸우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쉽게 화를 낸다.

반면에 온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표정 자체가 평온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기쁘고 행복해야 가족도 기쁘고 행복하다는 거다.

지금 우울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눈물 흘리며 기뻐할 무언가를

찾아 시작해 보자.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새벽잠과 밤잠을 쪼개서라도

해 보자. 돈이 안 되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면 어떤가. 가슴을 떨리게 하


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하게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보통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이에게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보낸 뒤, 급히

들어와 세탁기를 돌렸다.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끼니를 때운 다음, 설거


지하고, 씻고 나갈 채비까지 마치면 빨래가 끝난다. 빨래를 넌 뒤 노트북

가방을 메고 카페로 가서 마감이 코앞인 원고 작업과 강의 준비를 하며


샌드위치를 먹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세 시였다. 간단하게 장을 보

고 오는 길에 아이를 하원시키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를 돌보다 저녁

을 먹였다. 소파에 앉아 거실 창밖을 보니 낙엽이 지고 있었다.

‘이번 달 관리비를 이체했던가? 가스비는 어제 냈고……’

은행 이체 내역을 확인하다 말고 떨어지는 낙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천천히 물 한 잔을 마셨다.
 

남편은 아이를 씻기러 들어가고, 나는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창밖은 어두컴컴했고, 나는 사무치게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거실은 전등 빛으로 환하고, 아이는 배불러 기분이 좋은지 재잘거리고,


라디오에선 따뜻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왜 이렇게 외로운 걸까?

허탈함에 고무장갑을 벗고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빼

서 책장을 넘기다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걸 느꼈다.

우리의 가슴 한쪽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메아리

를 울리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친한 친구나 가족이라 할지라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헬레네 도이치는 외로움이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제일 중

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느낌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김혜남 저,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중에서).

맞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음에도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


과 외로움이 아무 이유 없이 밀려올 때가 있다. 가족이라도 내 외로움을

해결해 줄 순 없다. 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오히려 혼자일 때

보다 더 외롭다고 느낀 적, 없나? 나만 그런가.


 

사실 이날의 외로움은 다른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되지 못해서

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지 못해 밀려온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소진했을 때 느껴지는 허탈한 감정이 외로움까지 불러왔던 거

다. 아무일 없는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안도감에 잊고 지낸 내 감정이 고


개를 든 것이다.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날 위해 무얼 해 주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목욕하고 나온 아이의 뽀얀 얼굴에 입을 맞춘다.

내일은 사랑하는 나를 위해 좋아하는 카페로 달려가

맛있는 커피 한 잔 선물해 주어야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남편한테 육아와 집안일을 맡기면 어떻게 될까? 매일 청소도 빨래도 하

지 않고 대충 외식으로 때우며 지내면 어떻게 될까? 여태껏 살뜰히 챙기


던 집안 행사를 건너뛴다면? 혹은 신규 프로젝트를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에게 맡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어떻게 될까?

집안은 난장판이 되고, 가족은 모두 힘들어지고, 프로젝트는 엉망이 될

까? 나쁜 며느리, 나쁜 딸이라고 손가락질받을까?

 
그런데 사실 어떻게 되냐 하면, 일이 성에 차지 않게 굴러갈 순 있어도

하늘이 무너지진 않는다. 나쁜 며느리이면 어떻고 나쁜 딸이면 어떤가?

좋은 며느리, 좋은 딸로 살다간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좀 놓고 살면 안

될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도 내려놓

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그게 말처럼 쉽게 되냐고 어이없어하겠지만

경험해 보니 딱히 안 될 것도 없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던 시기였다. 작게 나온 아이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

해 발육이 느리지 않았는데도 많이 먹여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이유

식을 먹지 않으려 하는 치호의 앙 다문 입을 벌리기 위해 다양한 장난감

에 구연동화까지, 온갖 생쇼를 하면서 밥을 먹였다. 아이가 던진 것들로

엉망이 된 바닥을 치우면서도 간식으론 무얼 먹일지 고민했다.

한번은 시댁에서 힘들게 아이 이유식을 먹이는데 시어머니가 뒤에서

말씀하셨다.
“야, 엄마가 먹이니까 먹네. 거봐, 다른 사람은 못 먹여. 내 아들이 먹이

면 안 먹을 거야.”

순간 뒷골이 당겨 왔다. 엄마이기 때문에 애가 밥을 받아먹는 게 아니

라 반복해서 먹이다 보면 아이가 입을 벌리는 타이밍을 알기 때문에 잘

먹일 수 있는 건데.

몇 주 뒤 남편에게 아이 밥을 먹이라 하고 다른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몇 번 아~아~ 하면서 두 숟갈 겨우 먹인 남편이 말했다.

“안 먹네. 내가 주니까 안 먹나 봐, 그만 먹이자.”

아, 뒷골이야. 이놈의 뒷골은 맨날 당겨 남아나질 않겠네. 그런데 뒷골

당기는 사건들을 잘 살펴보면 스스로 상황을 그렇게 몰고 간 경우가 적지


않았다. 누굴 탓하랴. 아이를 살찌우고 싶어 힘들어도 혼자 먹여 버릇했

더니 남편은 밥 먹이는 일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아이가 밥을

잘 받아먹게 할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 거다. 매번 내가

먹여 버릇하니 불쌍하게도 남편은 사랑하는 자기 자식에게 밥을 먹일 기

회를 박탈당한 셈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필요한 식사량을 다 먹여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

기로 하고, 아이가 밥 먹을 시간엔 아예 밖에 나가 일을 했다. 남편이 아

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남편이 아이

에게 밥을 먹이며 시간을 나누고 교감하길 원했다. 일상생활은 대부분 반

복 학습의 결과가 아닌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이를 닦

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일과를 시작하는 이런 행동들도 어려서부터 반복

된 학습 때문에 습관화된 것이다.

갑자기 일이 몰린 시기이기도 해서 한 달 정도를 매일 남편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훈련을 했더니 부자간에 점점 호흡이 잘 맞게 되어 솔직히

이젠 나보다 더 잘 먹인다.

내 손으로 모든 걸 다 해야 하고, 남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해야 성이 풀

린다는 생각은 이제 살짝 접어 두자. 잠시 한쪽 눈은 감고 나머지 한쪽으

로만 세상을 바라보자. 반만 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다들 알아서 잘 돌아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거다. 집은 조금 지저분해도 몸은 편해질 것이고, 핀


잔을 듣더라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좀 편하게 놓아주자, 나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 하나 완벽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도 굴러간다.


보통날에

사소한 선물
사 보기

“어머, 나이키 패딩 점퍼가 삼만 팔천 원이래. 너무 싸다. 치호 내후년

에 입게 미리 사 둘까?”

“차라리 그 돈으로 당신 화장품이나 사. 치호 옷 많아. 당신 요즘 치호

것만 사더라.”

백화점에서 꽤 예쁜 패딩을 저렴하게 팔기에 흥분해서 여러 개 집어 들


었더니 남편이 말린다. 희한하게도 아이 옷은 사도 사도 더 사 주고 싶고

부족한 거 같다.

 
아이 옷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오며 ‘팔 한 번 접어 입히면 내년부터

도 입을 수 있을 텐데……’ 싶어 좀 아쉽다. 다음 날 혼자 백화점으로 다시

가 패딩 점퍼를 만지작거리다가 남편의 말이 생각나서 화장품 판매대로

갔다.

문득 깨달았다. 계절마다 신상 립스틱을 브랜드별로 사던 내가, 최근엔

립스틱 하나 고를 여유도 없이 살았다는 걸.

천천히 매장을 돌며 새로 나온 색상들을 발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백화점 립스틱은 좀 비싸지 않나?’

백화점 정문 앞 로드숍을 돌아다니다 원 플러스 원 하는 립스틱을 두

개 샀다. 빨간빛이 도는 오렌지색과 사랑스러운 핑크색으로. 새로 산 립

스틱을 보니 별거 아닌데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내일은 립스틱 짙게 바르고 어디를 갈까나. 룰루랄라~


혼영과

혼밥의
미학

아이를 낳고 가장 사치라 느껴지던 일이 ‘둘이서 영화 보기’였다. 예전

엔 개봉되는 영화는 모두 관람했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남편과 함께 영


화 보러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찾기도 어렵지만 아이를 마음으로부터 떼어놓

고 나오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러다 치호가 8개월쯤 됐을 때, 드디어 낮에

혼자 나와 영화를 보면서 영화관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 기절

할 뻔했다. 다음 날 아무리 치호가 말썽을 부려도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기 위해 혼자


영화를 보는 엄마를 알고 있다.
대기업 과장인 J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인다.

강남의 전셋집에서 갭 투자로 내 집 마련을 이루고 아들 하나 딸 하나

사이좋게 낳아 기르며 아이 낳기 전보다 더 자기관리도 열심히 한다. 평

일엔 가족들의 도움으로 치열하게 회사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고 주말에는


아이 둘에게 집중한다. 아이를 낳은 후 그녀와 남편은 각기 따로 영화를

본다. 혼자 영화관에 가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영화를 보며 워킹맘

의 고단함을 위로한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해 다시 육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그녀는, 혼자 영화를 보며 채워진 충만함으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안아 준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다.

일과 육아에 치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가끔 혼자 영화 보는 시


간을 갖자. 늘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신경 쓰

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느껴 보자.

 
엄마가 된 뒤로 알게 된 것 하나가 제때 먹는 따뜻한 밥 한 끼의 소중함

이다. 전에는 프리랜서라 혼자 밥을 먹는 게 외로웠는데 요즘은 음식 맛

을 느끼며 천천히 씹어 먹을 수 있는 점심 한 끼 혼밥 시간이 더없이 소중

하다.

평소엔 아이를 먹이느라 정작 내 밥은 식어 버리고 아이가 먹고 흘린


음식을 치우느라 입맛까지 달아나기 일쑤다. 아이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걸 보는 게 세상 행복하지만 때론 나도 딱딱하게 굳은 음식이 아니라 따

뜻하고 바삭한 채로 식감이 살아 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다.

아이 먹일 메뉴 말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 있고, 식당을 나오

면서 바닥과 식탁을 닦고 나오지 않고, 먹던 음식을 급하게 포장하느라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나오지 않고, 핸드폰을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리노라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밥을 입에 욱여넣지 않고,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엄청 행복해진다.

행복이란 이렇게 소소하고 가까운 것이구나.

 
혼밥과 혼영을 한다는 건 사랑하는 가족에게 “너 때문에 밥도 못 먹잖

아” 원망하는 미련한 짓을 하지 않게 해 주는 예방책이기도 하다. 여유롭

게 혼자 보낸 시간 덕분에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오니까.

아이들과 남편에게 신경질과 짜증이 늘고 있다면 한 시간만이라도 혼

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자. 소진된 감정을 다시 충천하는 한 시간이 당신

의 가정을 평화롭게 만들어 줄 거다.


어른도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지를 걷고 있는데, 청바지를 입고 기타를 멘 여자가 미처 다 말리지

못해 물기 가득한 긴 머리를 흩날리며 뛰어간다. 눈이 마주쳐 얼결에 인


사하고 보니 치호와 같은 반 아이 엄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기타를 메고 가는 뒷모습이 예뻐서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았다. 아이와 함께일 때의 그녀도 예쁘지만 기타를 메고 뛰어

가는 걸음에서, 그녀의 설렘이 바람 타고 전해진다.

아이가 자라 기관에 맡길 수 있게 되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지인들이 늘

어났다. 올해 첫째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둘째가 네 살이 된 친구도


바빠졌다. 스튜어디스였던 그녀는 결혼 후 육아에만 전념하다 공허함을

느꼈단다.

아이가 자라고,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

던 그녀는 일단 영어회화와 헬스부터 등록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


르겠지만 무언가를 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게 생각날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서.

사실 가족을 위해 대출금을 갚고, 현실에 쫓겨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게 없던 사람처럼 자

기의 꿈은 고이 접어 둔 채 달리고 또 달리다 멈추는 순간, 화이트아웃 현

상이 발생한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다.

여유가 생기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영어도 좋고, 뜨개질도 좋고, 캘리그래피도 좋다. 피아노, 댄스, 헬스,

요가, 기타도 좋다.


무엇이든 시작한다는 게 중요하니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받다 보면

잠들어 있던 욕구도 슬슬 깨어날 준비를 한다.

“아내에게 주말엔 무조건 하고 싶은 걸 해 보라고 했어. 그 사람도 일주

일에 한 번은 자신을 위해 살아 봐야지. 그래서 금요일부터 주말까진 내


가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는 성당에서 성서학교에 다니고 주일학교 교사

도 해.”

중학생 아이 둘을 둔 지인의 아내는 원하던 교사의 꿈을 성당에서 이루

고 있다.

아이만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닌 거 같다. 부모도

아이로부터 독립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곁에서 떨어지지 않던 아이에게

도 친구가 생기고 자신의 세계가 생길 거다.

지인에게서 중학생이 된 아이가 처음으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던 날

의 충격을 들으며 치호가 “엄마, 더 이상 나한테 상관하지 마!”라고 외치

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치호가 날개를 달기 위해 집을 떠나는 날, 군대 가는 날 등을 상상해 보

니 아이를 사랑하지만 서서히 놓아주는 연습도 필요하겠다 싶다. 그때 되

면 품을 떠나는 치호에게 집착하지 않도록 왕창 무언가를 배워 둬야지.

아이가 자라는 시간 동안 나도 함께 자라야 할 거 같다.


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건

또 속았다. 내비년한테.

신도시에서 홍대 인근 출판사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 업데이


트한 내비게이션이 왠지 더 정확할 거 같아 순순히 믿은 내 잘못이다. 막

히는 경부고속도로를 꾸역꾸역 지나 올림픽대로에서 동작대교로 빠지더

니 이촌동에서 다시 유턴해 결국 강변북로로 이끈다. 평소 다니는 길로

왔으면 한 번에 쭉 왔을 텐데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의심하지 않은

결과로 빙글빙글 유랑한다.

번번이 이렇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남의 생각, 남의

말에 번번이 흔들린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말에 흔들리고 유명인이 이

야기하는 가치관에 흔들린다.

타인이 좋다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껍데기만 남는다.

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건 무엇일까.

흔들리지 않고

비틀거리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는 건 때론 투쟁의 연속이지 싶다.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타인에게 흔들리


며 안주하려 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투쟁이다.

 
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건 어쩌면 익숙해진 옷을 벗어 던질 용기를 스

스로 내는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

관성과 타성에 길들지 않기 위해 익숙해진 것들을 돌아본다.

내용은 같은데 수업을 듣는 대상만 달라지는 강의가 있다. 완전 꿀이

다. 따로 수업 준비를 하지 않아도 몇 년을 반복한 강의라서 긴장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출근하는 순간 벌써 학생들 반응이 예상돼 집에 가

고 싶어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소통하고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데.

나태해진 모습이 싫어 일부러 두 시간 정도 일찍 출발해 강의실 근처를

산책했다. “오늘을 즐기자, 강의를 즐기자” 중얼거리며 산책을 하고 들어


서니 마음이 상쾌하다.

관성에 젖어들거나 기대지 않는 것.

 
이런 연습부터가 나를 잃지 않는 시작이 아닐까.
싫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치호야, 빵 먹을래?”

“…….”

“치호야, 밥 줄까?”

“응~”

“치호, 밥 줬더니 왜 안 먹어? 그럼 빵 먹을래?”

“…….”
 

“치호, 아침 먹기 싫구나? 싫으면 먹지 않아도 괜찮아.

어른이 되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지더라고.


그러니 지금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치호야, 엄마한테도 누가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응~”

“그래.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너를 통해

나는
자란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철퍼덕) 까르르~”

치호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였다.

처음으로 자기 발로 걷는다는 게 신기한가 보다. 자다가도 일어나 걸어

나간다. 뒤뚱뒤뚱 걷다 넘어져도 울지도 않고 일어나 다시 걷는다. 걷다

가 길에서 낙엽도 주워 먹으려 하고, 지나가는 형이랑 누나를 보고 흥분


해서 소리도 지른다. 결국 철퍼덕 넘어질 거면서 일단 일어서면 세상 가

장 뿌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아이가 짓는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한참을 웃는다. 동영상으로 치호의 첫걸음마를 기록한다.


치호야, 네가 드디어 세상에 두 발로 혼자 설 수 있는 시기가 되었네.

너무 기특하고 멋지다.

치호는 마치 “엄마, 나 일어났어! 나 걸을 거야, 칭찬해 줘!”라는 눈빛으

로 의기양양하다. 그 눈빛을 읽고 호들갑스럽게 손뼉을 쳐 주면 치호는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활짝 웃으며 내게 달려와 안긴다. 꽉 끌어안고 같

이 웃다가 이내 내 팔을 뿌리치고 다시 일어선다.

홀로서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걷기 위해,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일어나


고 다시 일어난다.

“치호야, 엄마가 손잡아 줄까?”

아이가 넘어질까 봐 손을 잡아 주려고 하면 아이는 있는 힘껏 내 손을

뿌리친다.

혼자 걷고 싶어서. 혼자 이루어 내고 싶어서.

 
아이가 걷는 걸 바라보다가, 세상살이에 겁을 집어먹은 내가 두 살짜리

아기보다 못난 걸 깨닫는다.

사거리 신호등 밑에서 바람에 실려 온 먼지 냄새에 구역질하며 아이가

들어선 걸 알았고, 자연스레 일을 쉬었다. 십여 년간 일을 쉰 적이 한 번


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백수가 된 상황이 어색했다. 아이를 낳고 다시 복

귀할 수 있을지, 내 자리에 대신 설 사람은 누구일지 불안했다.

치호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엔 나도 일에 다시 복귀하려고 모색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2년을 쉬다 보니 지레 겁부터 났다.

‘나보다 일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 콘텐츠가 요즘 시장에 먹힐까? 이

러다 복귀 못 하는 거 아냐?’

이력서에 쌓인 긴 프로필이 무색할 만큼 시도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

는 한심한 나보다 넘어질 걸 알면서도 걸음을 떼는 치호가 더 어른 같았

다.

 
치호는 몸짓으로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한 걸음을 떼는 용기부

터 내라고.

그래,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너의 걸음마처럼

나도 시작해 볼게.

고마워. 너를 통해, 나는 자란다.


이번 생에

엄마로 사는 건
처음이라

고백하자면 나는 엄마가 되는 게 두려웠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엄마로서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도 몰라서 무작정 아이 곁에 있


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숨만 쉬어도 더운 7월에 치호를 만났다. 부기가 심했고 조금만 걸어도

어지러웠다. 말을 하면 혈압이 170 이상으로 올라갔다. 임신중독이란 진


단을 받고 병원의 ‘고위험 산모실’에 입원했다. 그곳에선 3시간마다 혈압

체크를 한다. 임신중독 환자에게 혈압은 매우 중요하다. 혈압이 지속적으

로 높게 나오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출산을 해

야 한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몸이 어떻게 되든 하루라도 더 아이를

품고 있고 싶었다. 그래서 혈압 재기 20분 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

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2주쯤 지나서 혈압이 140 정도로 내려가자 일반


병실로 옮겨도 좋다는 담당 의사의 말에 나는 안도했다. 노트북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낄낄거리다 태동검사를 했는데, 아이 태동이 약하게 느

껴진다고 했다. 불안감에 혈압이 200까지 상승했고 그런 응급상황에서

치호를 출산했다.

아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었는데 출산 과정에서 이미 잔뜩 겁을 먹었

다. 내가 엄마라니. 한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니. 믿을 수

없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행여 아이가 죽을까 봐 매일 눈물이 멈추지 않

았다. 6개월 동안 병원 외출을 제외하곤 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

고, 수유 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정신없이 보냈다. 우려와 달리 치호는 건

강하게 쑥쑥 자라 잘 웃고 잘 싸고 잘 먹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도 올라왔

다. 출산 후 한 달 만에 신간 에세이를 계약했고,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칼
럼을 썼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위한 희생이 먼

저라고 되뇌며 올라오는 욕구를 눌렀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던 어느 날, 매달리는 치호를 외면하고 핸드폰만 들

여다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게 뭔가. 차라리 일을 하면서, 아이와 있


어 줄 수 있는 시간에 아이의 눈을 맞추고 더 집중해 주는 게 낫지 않을

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걸.’

그러니 실수하고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엄마로서의 내 실수엔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그놈의 ‘생후 3년간 형성된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아이 인격 형성에 많

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론에 갇혀 오히려 아이 곁에 있다는 이유로 정서

적 학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치호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웃는 아주 건강하고 예쁜 아이로 자라고 있는데 엄마인 나만 과거에 매여

사는 건 아닐까?
집에서 아이에게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 일을 놓지 않는 활기차고 행복한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틀림없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니!” 외치는, 자기보상심리가 강한 올가미 엄마가 되지 않을까.

육아지침서를 덮었다. 사람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내 아

이는 지침서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좋은 엄

마’로 불리는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친구와 비교하며 느꼈던, 더 좋은 엄

마가 되지 못한다는 자책감도 버렸다. 20킬로그램이나 늘어난 몸무게를


줄이고, 다시 강의를 시작하고,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모임에 나가고, 책

을 읽기 시작했다. 혼자 육아를 하는 날이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치호 또

래 엄마들에게 다가갔다. 육아하면서 외로움에 지쳐 있던 그녀들을 불러

모아 커다란 그릇에 밥을 비벼 먹으며 공동 육아를 했다. 남편에게 적극

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배를 가리는 커다란 박스티를 버리

고 몸에 붙는 치마를 샀다. 나는 점점 행복해졌다.

엄마가 된다는 건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하는 일이다. 결혼에도 적응 기

간이 필요했듯, 육아도 마찬가지다. 적응 기간을 거쳐 아이와 가족과 내

가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니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


적으로 행복해졌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 치호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 더 많이 안아 주고 웃어 준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만 행복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니 가족 모두가 행복해졌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니까.

이번 생에 엄마로 사는 건 처음이라, 완벽할 수 없으니까.


시시한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이틀 연속 강의에, 수업에, 원고 작업까지 하느라 하원 이후 시간을 남

편이 치호와 함께 보냈다. 바쁜 일정을 보내다 남편이 전송한 아이 동영


상을 한참 보고 있자니 집에 가고 싶어졌다. 오늘 못 한 일은 내일 하면

되지만 오늘 놓친 아이의 웃음은 내일이면 다른 빛이 될 테니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보아야겠다.

지하철을 타고, 걷고, 다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아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현관문을 미처

다 열기도 전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든다.

“치호야- 보고 싶었어. 아빠랑 잘 놀고 있었어? 사랑해, 뽀뽀!”


미처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치호를 끌어안고 뽀뽀를 해 주고 일어서려

는데 아이가 무릎에 앉아 떨어지질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나와 볼을 맞

대고 부비부비하다가 아빠에게로 뛰어간다.

“엄마 씻고 나올게. 아빠랑 강냉이 먹고 있어~”

샤워실로 들어가자 문 앞에서 치호가 왔다갔다하며 소리친다.

강냉이 하나 먹고 엄마가 나왔나 확인하고

장난감 하나 들고 엄마가 나왔나 확인한다.

아이가 퉁탕대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 웃다 거울을 보았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내가 웃고 있다.

전보다 예쁘진 않지만, 전보다 여유로워 보이네.

지금 너 잘 살고 있나 보다.

 
혼잣말하며 샤워를 마치고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살-짝 열었다. 작은 소

리를 듣고 치호가 우다다다 뛰어온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시시한 내가 뭐라고 너는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

니?

단지 너의 엄마라는 이유로 벅찬 사랑을 줘서 고마워.

시시한 내가 네 덕분에 근사해 보이는 저녁이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랑

잠든 아이의 평화로운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뽀얀 피부와 오밀조밀하

게 작은 눈, 코, 입을 찬찬히 감상하다 쌕-쌕- 고운 숨을 내쉬며 잠든 아


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연애 시절 내게 사랑이란 최소한 내가 사랑을 준 만큼 혹은 그것 이상

으로 나도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계산적인 사랑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사랑이 아니진 않았는데.

그것도 사랑의 한 조각이었겠지.


 

“사랑해”라고 말해도 새침하게 돌아서는 치호가 마냥 귀여워 웃는다.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연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애당초 크기부

터가 다른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너를 얼마나 더 사랑하게 될까.

아이가 움직이고, 웃고, 먹고, 뛰어다니는 모습.

그저 살아 숨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을 느낀다.

치호를 만나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인간관

계에서도 비좁던 마음이 조금씩 넓어진다.

너를 만나 알게 되는 게 참 많다.
너로 인해

모든 게
가능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절대 못 해.”

“나 아이 싫어하는 거 알지? 아이 키우는 거 절대 못 해.”

“아침 지방 강의는 절대 못 해. 힘들어서 어떻게 거기까지 운전해 가서

강의를 해.”

그러던 내가 치호를 키우며 단련된 습관 덕에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할

만해졌고, 아이를 너무 싫어해서 지나가는 아이가 생긋 웃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제 갈 길만 씩씩하게 가던 내가 치호를 키우며 알게 된 아이

의 사랑스러움에 반해 치호 또래 아이를 보며 웃음 짓게 됐다.


아침 지방 강의는 절대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늦지 않기 위해

한 시간 반을 일찍 도착했다. 고요한 시골의 동터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초록색 양철 대문 앞에 선다. 파란 지붕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아침 연

기를 맡으며 지지배배, 짹짹, 새소리를 듣는다. 평화롭다.

어쩌면 “절대 못 해”라는 말은, 해야 할 걸 알지만 두려워서 피하게 되

는 강한 자기방어적 부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절대 못 하리란 부정문을 “할 만하네?” “할 수 있네?”로 바꾸며 살아간


다.

생의 끝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될까?

치호 덕분에 점점 더 근사한 어른이 되어 가는 기분이다.


네가 있어

내가 빛이 나

세 살이 된 치호가 부쩍 예쁜 짓을 한다. 아침 첫 얼굴을 마주치면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웃어 준다. 아이를 안고, 아이의 웃음을 마주할

때면 고단한 이 삶이 아이로 인해 빛난다.

품을 파고드는 치호의 뜬 머리를 손으로 빗겨 준다. 묵직한 기저귀를

벗겨 내고 새 기저귀를 채우며 한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엄마 치호 사랑해~ 사랑해~”

치호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이의 환한 웃음을 보며 간밤의 고단

함을 날려 보내고 새날의 힘을 얻는다. 희망 없을 것 같던 낙심한 마음도


치호의 해사한 웃음으로 빛난다.

아이가 잠에서 깨는 귀여운 얼굴을 본다. 검고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잘 잤냐고 인사해 줄 수 있는 아침이 좋다. 오늘 하루도 이 아이가 건강하


게 눈을 뜨고 웃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기다려지고 행복하

다는 것. 네가 내게 주는 그 많은 선물 중 소중한 하나다.

지금 내 앞에 네가 있으니 되었다.

지금 너를 안고 웃을 수 있으니 되었다.

네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내가 너의 엄마라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는다.

소중한 이 감정을 네가 크고 나서가 아니라

너를 키우면서 알 수 있으니 기쁘다.


밥솥도

제 몫이
있는데

어제저녁, 치호가 콩밥을 맛있게 먹던 게 생각나 콩을 불려 밥을 지어

아침을 먹인다.

밥의 무게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세 끼 밥을 먹기 위해 드는 수고로움

과 세 끼 밥의 영양을 유지하기 위해 성실하게 벌어야 하는 돈의 무거움.

무엇보다 세 끼 밥을 아이에게 맛있게 먹이기 위해 이렇게 노래까지 부르

며 쇼를 해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한 끼쯤 안 먹으면 어때 싶지만 아이가 한 끼라도 굶으면 왠지 얼굴이

더 작아지고 빼빼 마른 기분이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를 쓰는


데, 밥솥이 김을 내뿜자 치호가 시선을 돌리며 잔뜩 궁금해한다.
 

“치호야, 밥솥은 지금 밥을 열심히 짓고 있어. 치호가 맛있게 먹는 콩밥

을 만들고 있지. 밥솥은 밥을 하는 게 할 일이고, 청소기는 먼지를 깨끗하

게 빨아들이는 게 할 일이고, 치호는 할 일이 뭐지?”

옆에서 숟가락을 들고 <곰 세 마리>를 부르던 남편이 대답한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응가 잘 싸는 게 할 일이지.”

순간 치호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너는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기만 하면 되어서.

그렇다면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

밥솥도 다 자기 몫이 있는데

나의 몫은 무엇인가.

밥솥에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우리 각자의 몫을 생각한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비밀장소

눈물이 왈칵 올라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뺨을 따라 흐를 때면 아

이는 엄마의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교를 부


린다. 엄마가 울고 있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는 건지 야속한 마음도 잠시,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 보면 까르르 웃으며 안기는 사랑스러운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네가 이렇게 웃고 있는데, 그만 울어야

지.

그렇지만 어느 날엔 마음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쏟아지는

눈물을 넘실넘실 흘려보낼 장소를 찾다 차를 몰고 한강으로 향했다. 한참

차 안에서 울다 보니 지금은 벌써 초등학생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친구의


결혼식 전날이 기억난다.
결혼하게 되면 바뀔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차올라 밤 열두시에 차

를 끌고 한강으로 가 혼자 닭발에 소주를 마셨단다.

‘우리에겐 울고 싶은 날 혼자 마음껏 울며 털어 버릴 장소가 별로 없구

나……!’

집에서 울고 싶어도, 아직 세상에서 엄마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에


게 슬픈 감정을 전해 주고 싶지 않아 꾹 참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울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장소를 두 군데

정도 찾아 놓았다(이미 차 안은 밝혀졌고, 한 군데는 나만의 비밀. 그래야 또 혼자 갈 수 있

으니까).

이놈의 호르몬이 때만 되면 굳이 안 해도 될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바

람에 작은 일에도 자꾸만 왈칵하곤 한다. 그럴 땐 나만의 장소에 숨어 펑

펑 울어 버리면 시원하다. 사소한 일에 우는 내가 쪽팔릴 일도 없고.


나 혼자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

밤새 끙끙 앓던 치호를 안고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질투

도 났다.

함께 낳은 아이인데, 나만 아이의 시간 속에 정체되어 열심히 쌓은 커

리어는 멀어져 가고, 남편은 아이가 생겼어도 본인의 생활을 변함없이 이

어가는 거 같다. 최소한 경력은 끊기지 않으니까.

일 욕심 많은 나로서는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고, 회식도 하고, 프로젝


트도 진행하는 남편이 부러웠다. 그러다 방긋 웃는 아이의 맑고 투명한

눈, 보드라운 피부, 오물거리는 입술, 작고 따뜻한 손을 만지며 위안을 얻

곤 했다.

이렇게 옆에 있어 줄 시간이 얼마나 되겠니.


네가 조금만 자라도 엄마가 아닌 친구들을 찾아 떠나겠지.

그때가 되면 서운하고 허전할 테니 마음껏 아이를 안아 줄 수 있는 지

금을 즐기자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산후우울증이 몰려오면 애써 추

스른 마음이 또 무너지곤 했다(보통 3개월 주기로 몰려왔다).

남편은 저 멀리 앞서 나가 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남편만 혼자 성장한 걸까.

가족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해 일을 접고 가정에만 집중했는

데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친구는 여전히 예쁘고, 싱싱하고, 아이들도 잘

만 자랐다. 허탈하다.

나만 정체되고 뒤처진 걸까?

괜스레 울적해져 쇼핑하러 나갔다가 아이 옷만 잔뜩 샀다. 저녁 찬거리


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년생 아이를 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첫째가 요즘 유치원에 안 가려 해서 아침마다 쇼를 한다니까. 어린이

집 안 다니는 둘째까지 옷 입혀서 ‘둘째야, 어린이집 가자. 첫째도 유치원

가야지?’ 하고 둘 다 데리고 나와. 너무 스트레스받아. 어제는 엄마가 와


서 애들을 봐주고 난 청소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대학원까

지 나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엄마는 이런 날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다

시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제 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

어. 애들은 또 어쩌고.”

그래, 맞아.

그래, 맞아.

나만 혼자 정체된 것 같아 끙끙 앓다가,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동지

를 만나니 한결 속이 편안하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어야 하는

동물인 것인가.

나만 정체된 건 아닌 거 같다. 지금은 정체기가 아니고 오히려 성장기

일 수도 있다. 기다림으로 익어 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스스로

상처
안아주기

자라며 늘 외로웠다.

큰언니는 똑똑해서 공부를 잘했고, 애교가 많은 작은언니는 예쁘고 사


랑스러웠다. 막내딸인 나는 엄마 말도 안 듣고 틀어박혀 책만 보는 아이

였다. 동생들을 건사해야 할 가난한 집 장남인 아빠와, 그런 아빠에게 시

집온 엄마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어린 내게 보이지 않았다. 늘 외로워 책

을 읽었더니 다독가가 되었고 작가가 됐다.

무섭고 눈치만 보이던 부모님을 다시 보게 된 건 결혼을 하고 나서다.

나이 들어가는 아빠의 어깨를 보며, 그토록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빠는 강한 척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늘 차가웠던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았다. 엄마 역

시도 제대로 사랑받아 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르는 거라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친구들의 다정한 엄마들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모

든 걸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혼자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엄청난 독립심이 생

겨 어디에 내놔도 살아남는 잡초 같은 사람이 되었다. 하하.

엄마 아빠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인 줄만 알았다. 당연히 나보다 강하


고 모든 걸 알고 있는 분들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이 셋의 아빠가

된 가난한 집안의 장남 윤영오 씨는 모르는 것투성이인 지금의 내 나이를

살고 있었다.

통닭 한 마리에 달려드는 배고픈 세 딸과 삼십 대 젊은 부부가 안방에

있다. 닭을 싫어한다며 통닭을 옆에 두고도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엄마와,


살점 없는 목이랑 우리가 남긴 뼈가 제일 맛있다고 했던 아빠가 고소한

닭 냄새를 맡으며 수없이 침을 삼키는 모습이 보인다.

세 딸이 나간 뒤 방에 벤 통닭 냄새를 맡으며 두 분이 느꼈을 감정은 슬

픔이었을까, 아니면 아이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안도감이었을까. 젊은 부

모의 고단함이 안쓰럽다.
 

아빠가 장남이라 아들로 태어났다면 엄마가 기를 펼 수 있었을 텐데,

나까지 딸로 태어났다. 고지식한 경상도 어르신들의 아들 타령에 엄마는

시들어 갔겠지.

[산타가 된다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싶나

요?]

작년에 공감 클래스란 곳에서 수업을 듣던 날 받은 질문이다. 주저 없

이 다섯 살의 나에게 뭐가 되었건 선물 상자를 주고 싶다고 적다가, 그 옆

에 스케이트를 하나 그려 넣었다.

언니들과 롤러스케이트장에 처음 간 날 엄마가 나는 어리고 롤러스케

이트를 타지 못한다며 언니들에게만 돈을 주셨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언니들을 따라 달리며 외로웠던 다섯 살의 나를 안아 주고

싶다.
스케이트장에서 유일하게 운동화를 신고 뛰던 다섯 살의 나를 안아 주

고 싶다. 아이의 발에 롤러스케이트를 신겨 주고, 손을 잡고 함께 롤러스

케이트를 타 주고 싶다.

먹고살기 바빠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형편이 안 되는 걸 이해하지 못

하고 서글퍼만 했던 내게 뭐가 되었건 선물을 하나 해 주고 싶다.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글과 그림을 보다가 ‘치호가 다섯 살

이 되면 롤러스케이트든 킥보드든 원하는 걸 사 줘야지.’ 생각하며 웃었

다. 아이에게 사 줄 자전거를 고르며 신이 났다. 빨간 자전거를 타고 신기

해할 녀석의 눈동자가 떠올라 행복했다.

애정결핍에 대한 트라우마가 치유된 건 치호 덕분이다. 나를 똑 닮은

아이가 사랑받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

이가 웃는다. 치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며, 크리스마스 선물

을 사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하던 내 안의 아이도 함께 웃는다.

녀석을 마음껏 사랑할수록

녀석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할수록


내 안의 아이는 눈물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이제야 다섯 살에서 멈춘 내 안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어른이 되면 인간관계가 쉬워질 거 같았다. 몸이 크고 의젓한 어른이니

까 다툼, 오해, 불편한 관계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다.

사람이 변하는 걸까,

마음이 변하는 걸까.

오래된 친구인데도 최근 들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공감받는 느낌 없

이 감정은 벽을 뚫지 못한다. 한땐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던 둘도 없던 단


짝 친구들이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하나둘 멀어진다.

왜 그럴까?

원해서 친해진 게 아닌, 그저 아이와 같은 반 친구 엄마라는 이유로 유

지되는 어색한 관계도 있다. 한 번 식사했다는 이유로 초대된 단체 카톡


방을 나오고 싶지만 뒷말이 나올까 무서워 쌓이는 대화들을 읽지 않고 놔

둔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아무래도 불편한 사람

그런 이들이 주변에 있으면 왠지 내가 너그럽지 못한 어른이 된 기분이

다. 특별히 그 사람이 큰 잘못을 한 건 아닌데 왠지 비호감이고 불편하다.

때론 교류 없이 혼자 있는 것보단 불편해도 어울리는 게 좋을 거 같아


서 노력한다. 아니, 사실은 모든 이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픈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성향도 다르듯 호감이 가는 스타일도 다르

다. 의미 없는 한마디에 혼자 상처받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무래도 싫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자.

너그러운 어른이 되는 것보다

마음 편한 어른이 되는 편을 선택하기.
“죽고 싶다”는

말은
신중하게 내뱉기

“아침에 딸에게 죽고 싶다고 말해 버렸어. 딸 기분은 생각하지 못하고.”

친구의 엄마는 평생 착한 남편 뒷바라지와 모진 시집살이에 시달리면

서 식당일로 아이 둘을 키워 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모두 결혼시키고,

은퇴한 남편과 함께 식당을 하며 대출 빚을 갚아 나간다.

매일 뜨거운 불 앞에 서서 음식을 만들어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있지만


매월 이자 내는 날은 왜 이리 빨리 오는지…… 통장에 돈 쌓이는 속도보다

빠져나가는 속도가 소름 돋게 빠르다고 느낀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몸살 기운에 점심 장사를 마치

고 집에 들어가기 전 딸에게 전화를 걸다 유난히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보며 울컥, 했더란다. 남편이 저지른 사고를 마무리하고 이제야 좀 편해

지는가 싶었는데, 지극한 효자 남편은 치매 걸린 어머니를 요양원에 둘


수 없다며 집으로 모셔 온 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아내 몫으로 미뤘다.

생은, 참 지루하고 길다.

이쯤이면 내 몫을 다한 거 같은데.

이쯤이면 더 이상 시련이란 게 오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살아 내야 할 날이 살아온 날만큼이나 많다니.

아찔하다.

딸에게 전화를 걸어 “죽고 싶다”고 말하고 난 뒤, 그녀는 후회했다. 힘

든 날만 있는 게 아닌데, 왜 딸에게 푸념했을까. 딸에게 내 고단함을 의지

하다 보면 딸도 버거워할 텐데. 바보같이 참. 울컥하는 버릇 좀 고쳐야겠

다고.
친구 엄마뿐만 아니라 우리도 “아, 힘들어 죽겠어”, “죽고 싶다, 진짜.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지” 등 죽고 싶다는 말을 가볍게 내뱉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힘들다는 투정일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내뱉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가슴이 철렁할

까. 당신이 죽는 상상을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말하는 대로 생각과 행동이 끌려간다. 정말로 죽고 싶으면, 그렇게 쉽

게 내뱉지 못한다. 죽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내가 죽을 수 있

다는 사실을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 할 테니까.

딸에게 “죽고 싶다”고 말한 친구 엄마는 전화를 끊고 너무 아름다운 노

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순간이 아름다워서 생을 더 살아 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한 끗 차이다.
이혼해도

될까요?

[꼭 심각한 이유가 있어야만 이혼할 수 있는 걸까요?]

노하라 히로코의 만화 《이혼해도 될까요?》에서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가정을 가진 결혼 9년 차 주부 시호는 고민한다. 성실하고 착한 남편과 귀

여운 아이 둘. 하지만 시호는 매일 이혼을 꿈꾼다. 밖에선 다정한 남편이


집에만 들어오면 폭력적으로 변하고 집안일과 아이들에겐 완전 무관심하

기 때문이다. 첫아이가 아파 밤새 울어도 “난 그럼 나가서 저녁 먹고 올

게. 있어 봤자 도움도 안 되잖아”라며 나가 버리는 매정한 남편이다.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가 아파 울면 엄마는 덜컥 겁이 난다. 행여 아이

가 잘못될까 곁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시호는 남편이란 사람의 냉정

한 태도에 외로움이 사무치게 밀려온다.


 

모두 다 그렇게 참고 사는 거라지만 정말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사랑하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대화와 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유


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이를 키우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시호에게 외벌이라며 생색낼 뿐

아니라 “집에서 애나 보며 놀면서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라고 소리치

는 남편이라니.

사실 가장 어려운 게 ‘애나 보는’ 거 아닐까.

1분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백 프로 아이의 컨디션과 요구에 따라 움

직여야만 하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가사까지 해내려면 정

신과 몸은 피폐해진다. 오죽하면 맘 카페에 올라온 ‘어린아이만 키우는

삶’을 묘사한 글에 ‘지옥 속에서 아이만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던 댓글이


격한 공감을 받았을까.

‘집에서 애나 보는’ 게 절대 노는 게 아님을, 그 무엇보다 힘든 일임을

알아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될 텐데.
사랑해서 결혼했고, 더 행복하려고 아이를 낳았는데 어째서 점점 더 외

로워져만 가는지 아이러니하다.

아이가 없을 땐 이성적으로 통제 가능한 선에서 싸움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신생아기를 겪으며 수면 욕구, 배설 욕구, 섭취 욕구 같은 기본

적인 욕구가 모두 무시되는 상황에선 날카로움은 배가 된다. 지금까지 싸


운 건 어린애 장난이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심각한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지속되면서, 결속력이 강해지거나 더 화목

해지기도 하고 시호네 가족처럼 멀어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이혼할 거란 생각으로 생활비를 계산해 보고, 집을 보러 다니

던 시호는 ‘맞을 각오를 하고 남편에게 불만을 이야기해 보라’는 조언에

따라 그동안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아 왔던 말을 남편에게 꺼낸다.

“이혼하자”고.

이제부터 아이들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시호의 발목을 이번엔

아이들이 잡는다.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고.

결국 시호는 이혼하지 못하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이

야기는 끝이 난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혼해야 행복해질 거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없었던 것처럼
이혼해서 행복해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말, 이혼하면 행복해질까?

정말, 이혼하지 않으면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무엇이 정답인지.

시호의 가족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의존에서

벗어나기

명문대를 다니고, 집안 환경도 좋고, 좋은 부모님에, 예쁘고 착하기까


지 한 P의 단점은 딱 하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는 거다.

연애할 때는 예쁘고 착한 P가 혼자 결정을 못 해도 남자들은 귀여워했

다.  의견을 물어봐 주는 걸 관심이라 여겼고, 다정하다 칭찬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남자들은 질려 갔다.

“오빠, 나 점심 뭐 먹을까?”

“오빠, 나 버스 타고 집에 가, 택시 타고 집에 가? 버스는 몇 번 타야
해?”

“오빠, 나 매니큐어 핑크색으로 할까, 흰색으로 할까?”


“오빠, 나 코트 입어, 패딩 입어?”

“오빠, 나 친구 오늘 만날까, 내일 만날까?”

“오빠, 나 지금 과자 먹어도 돼?”

“오빠,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어. 뭐라고 대답하지?”

쉴 새 없이 물어 대는 질문 공세에 질려 관계는 늘 오래가지 못했고 P는

또 다른 남자친구를 쉬지 않고 만났다. 그러다 선을 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P는 남편이 더는 자신을 받아 주지 않자 다시 친정엄마에게 의존하

기 시작했다.

“엄마, 아이 양말 뭐 신겨?”

“엄마, 아이 반찬 뭐 줘야 해?”

“엄마, 아이 콧물 나는데 지금 병원 가야 해?”

“엄마, 조리원 동기들이 만나자는데 나갈까 말까?”

“엄마, 나 점심 뭐 먹어?”
 

남편은 점점 집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친정엄마는 아예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고조됐다. P의 의존을 친정엄마는 부모와

자식 간에 당연한 애정표현이라 여겼고, 사위에게도 P에게 했던 것처럼

각종 영역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독립적이고 개인적


인 성향의 남편은 숨이 막혔고, 그 답답함을 P에게 폭력적 성향으로 풀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 조정 중에 있다.

P는 왜 모두에게 의존하려 하는 것일까? 몸은 자라 어른이 되었는데,

정신이 자라는 속도가 따라와 주지 못하는 걸까?

P의 의존엔 친정엄마의 집착이 존재한다. 어머니 없이 자란 P의 엄마는

딸에게 모든 걸 해 주고 싶어 했다.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결정해 주고 챙

기다 보니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소한 일상부


터 학업, 진학, 취직 같은 일까지 엄마의 조언을 받는 게 습관이 되다 보

니 무엇 하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몸만 어른인 아이가 된 것이다.

의존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P의 주변엔 엄

마 말고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의존적인 사람들을 살펴보면


겁이 많고 불안감도 크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조금씩 의존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자.

‘틀려도 괜찮다’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혼자 의사결정도 해 보아야 한

다. 만약 결정한 일이 잘못되더라도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지는 태

도를 지니는 게 성숙한 어른 아닐까. 그럼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의존하면 할수록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

두려워도 조금씩 스스로 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친구 M 있잖아, 결혼한 지 6개월 됐는데 이혼했대. 혼인신고를 안

했다나 봐. 결혼해 보니 본인이 결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더래. 그래


서 남편한테도 잘 설명하고, 부모님한테도 이야기해서 혼자 살기로 했

대.”

“캬- 현명하다. 멋지네.”

“지금 과외교사로 한 달에 오백씩 번다더라. 돈을 많이 쓰는 타입도 아


니니까 저축하고 여행 다니면서 지방에 작은 원룸도 대출받아 샀대. 이번

엔 외국 남자랑 연애한다던데?”

“어쩜 그렇게 똑똑하다니? 대단하다. 부럽다!!”

결혼 5년 차와 10년 차 여자의 수다다.


 

우리는 왜 결혼을 했으면서도 미혼을 꿈꿀까?

왜 미혼 여성들은 결혼을 꿈꿀까?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 같은 것일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평범한 삶의 관문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서일까?

내 인생은 로맨스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결혼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편을 만들고 싶은 것일까?

결혼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 꼭 남자친구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 결혼을 하면 더


외롭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사람은 결혼해서도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이유가 뭘까?

 
‘결혼을 통해’ 외로움을 해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부족하

고 약점 많은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게 결혼생활이다.

기대고 싶어서, 외로워서, 나이가 차서, 불안감에, 친구들이 모두 하니

까 하는 그런 결혼 말고, 내 앞에 있는 사람과의 미래가 그려질 때,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생활하면서 아무에게도 보


여 주기 싫은 민낯을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상처

나 약점 같은 걸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손을 잡아 주고 싶을 때, 나 혼자

서도 너무 잘 살 수 있을 때, 같이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 편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때 하는 결혼이 좋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아서, 집안이 좋아서, 잘 생겨서, 혹은 조건이 좋아서 하게 되는

결혼생활은 그 이유들이 사라지면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 조건

없이 그냥 당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 함께 있을 때 꾸미지 않아도 나를 가

장 나다워질 수 있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

설령 그게 평생이 될지라도 맞지 않아 삐걱대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

느니 비혼인 상태로 평화롭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나이 들어 외로울까


봐 맞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괴로워하며 사느니 비혼주의를 선언하고 혼

자 살아가는 편이 행복하지 않을까?

비혼주의라 해서 연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결혼으로 인해 얻는 행복도 있지만

결혼으로 인해 잃는 행복도 있으니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이지만.


너와

함께
자란다

아이는 시간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이의 키는 한 뼘이나 훌쩍 커 있고

지난달엔 소매를 접어주어야 했던 큰 옷이

이번 달엔 아이에게 딱 맞는다.

나의 젊음을 먹고 네가 자란다.

한때 나는 나날이 늙어져 가고

너는 나날이 젊어져 간다, 생각했다.


 

나의 몸은 하루하루 늙어가고

너의 생기는 눈이 부셨다.

너와 숨기 놀이를 시작한다.

빤히 눈에 보이는 장소에 숨어 있는 나를

찾으러 와 자지러지게 웃는 너를 보며

나는 너의 나이가 된다.

너의 순수를 닮는다.

네가 찾기 쉽도록

일부러 커튼 뒤에서 발을 빼꼼히 내어놓으며

지루했던 일상이

이렇게 행복해졌구나 싶어 눈물이 난다.


 

너의 생기와

너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통해

나도 나날이 젊어지는구나.

사소한 일에 깔깔깔 웃는 법을 배운다.


인스타그램

삭제하기

SNS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호기심에 타인


의 삶을 염탐할 때면 부러움과 자괴감이 세트 메뉴로 따라온다. 저 여자

는 아이 낳은 지 백일밖에 안 됐는데 얼굴과 몸매가 어쩜 저렇게 예쁘고,

집은 또 어떻게 저리도 깔끔하게 꾸미고 살 수 있지? 틀림없이 아이 봐주


는 사람이랑 집안일 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야.

남편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매일 쇼핑을 해대는 걸까? 치호랑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는 저 연예인은 한남동에 살다가 아이를 위해 자연을 보여 주

고 싶다고 평창동으로 이사 갔네.

저 집은 바닥에 아이 매트 한 장 없고, 장난감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아

이가 심심하다고 징징대지 않는 걸까?


어쩜 저렇게 여행도 자유롭게 다닐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이 커

플은 여행하고 노는 걸 사진 찍어 올려서 돈을 다 버네.

별로 예쁘지도 않으면서. 복도 많아.

혼자 중얼거리며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 그들의 화려한 삶이 부러워

시샘을 한다.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며 끝없는 비교를 하다 결국 불행해졌

다.

나는 아직도 붓기가 남아 배가 이렇게 퉁퉁한데. 아이 돌보고 일하느라

아무리 치워도 집 안은 엉망진창인데. 이번 달 예산을 아무리 쥐어짜도

여행 갈 여유가 없는데. 남의 남편들은 센스 있게 오렌지색 박스 선물도

딱딱 잘해 주던데. 얘네 집이 이렇게 잘 살았었나? 인테리어 죽이네. 쟤는

좋은 데만 다 찾아다니네, 팔자도 좋아. 어머, 얘 귀걸이 또 샀나 봐. 난

비싸서 침만 흘리던 건데.

눈알 빠지게 한 뼘짜리 작은 핸드폰으로 인생이 불행한 이유를 백만 가

지 찾아낸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핸드폰만 봤더니 안구가 건조하고

뻑뻑하다. 인공 눈물을 넣고 눈알을 굴리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인스타그

램을 보다 한심해졌다.
뭐 하고 있는 거니, 나 지금.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는데 멀리 보이는

이미지만 바라보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 스튜핏~!

당장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했다.

염탐의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현재에 만족하는 건강한 마음을 얻었다.


머리라도

감았으니
괜찮아

“언니 괜찮아요?”

스물여섯 긴 생머리의 그녀가 비틀거리는 나를 끌어안았다. 순간 샴푸


냄새가 확- 알딸딸한 취기에 기분 좋은 샴푸 냄새. 두근거린다. 이래서 남

자들이 여자의 샴푸 냄새에 반하는구나.

질끈 묶은 내 머리는 과연 어제 감은 게 맞는지, 그제 감은 건 아닌지

기억을 더듬다가 포기한다.

싱글 시절, 나도 그녀처럼 샴푸 냄새를 풍기는 여자이고 싶어 일부러

샴푸를 덜 헹궜다. 엘라스틴 했어요-하면서 머리를 휘날리던 전지현처럼


되고 싶었다. 그들은 나를 향기 나는 여자로 기억했을까? 상대방 머릿속
에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그건 잘 모르겠고, 기억나는 건 덜 행군 샴푸 탓

에 머리가 풀풀 빠졌다는 슬픈 사실.

지금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지키기 위해 좋은 향은커녕 한약 냄새 나

는 천연 샴푸를 찾아 쓰고 노푸족에 대해 연구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향이 좋고 자시고를 떠나 일단 머리라도 제대로 감고 다니면 다행이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화장실 거울 너머로 내 피곤한 몰골과 가닥가닥 기

름진 머리를 보며 스스로가 애처롭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두어 달에 한


번씩은 꼭 미용실에서 뿌리염색을 하며 갈색 머리를 유지하던 스물여섯

그녀는, 이제는 귀찮고 시간도 없어 원래의 검은 머리를 선호하는 아줌마

가 되었다.

자연미 있고 좋다.

정말이다. 하하하.

그리고 오늘은 머리를 감았으니 당당하게 머리를 풀고 다닐 수 있다는

말씀.
먹고 싶을 땐

스트레스 없이
양껏 먹기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네.

아침에 밥 먹고 뒤돌아 간식 먹고 점심으로 치즈떡볶이를 먹은 지 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배가 허하다. 동네 교회에서 나누어주는 부침개도

받아먹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치호 데리러 가야지~” 하고 헤헤 웃

다 알았다.

일주일 뒤가 생리일이구나.

여자의 몸이란 호르몬 작용에 어찌나 정직한지. 어김없이 일주일 전부

터 식욕이 오르고, 몸이 좀 붓는 느낌에, 평소보다 짜증도 는다. 한 달에


열흘을 호르몬에 지배당하다 보니 컨디션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좀 달라진다.

식탁에서 컵을 집어 일부러 물을 바닥에 쭈욱- 쏟는 치호를 보며 자제

력을 잃고 화를 냈다.

‘내가 왜 이러지. 얘한테 화내 봤자 뭐 좋다고……’

자책하며 아이를 안아 주었다.

아무래도 다이어트 한답시고 저녁을 안 먹어 예민해졌나 보다.

먹고 싶을 땐 양껏 먹기.

호르몬의 지배를 받을 땐 더더욱.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주변도 평화로워지니까.

그런 기념으로 아이스크림 또 먹어야지.

다이어트는 원래 내일부터 하는 거다.


사소한

금기
깨뜨리기

친정 부모님은 상당히 보수적이셨다. 스물도 훌쩍 넘은 딸들에게 통금

시간을 밤 9시로 정해 놓고 옷차림, 행동거지, 말씨, 생활양식 등의 예의


범절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물론 그런 것들이 득을 가져다준 점도 많았지

만 되레 삐딱함을 심어 주기도 했다.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돼, 여자는 술을 마시면 안 돼, 여자는 처녀성


을 잃으면 끝인 거야, 늦게 들어와도 안 돼, 짧은 옷을 입어도 안 돼, 남자

앞에선 항상 조신해 보여야 돼 등등.

여자기숙사처럼 안 된다는 것투성이었다. 대부분은 따랐지만, 어떤 건


반항심에 일부러 뒤에서 몰래 하곤 했다. 짧은 옷을 가방에 싸 가서는 지
하철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다니며 금지된 행동을 한다는 쾌감을 느꼈다.

결혼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생활양식을 제어 당하지 않는다는 점이었


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를 미친 듯이 사 입었고 형

광색, 스터드, 해골 등 그간 입지 못했던 색상과 무늬의 옷들을 주로 입었

다. 그래서인지 결혼 초에 찍은 사진을 보면 유난히 패션이 화려하다.

어디 가서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무언의 강박에, 한 번도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거나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던 내가,

아이를 낳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이를 보려면 몇 시간만이라도 쪽잠을 자 두어야 하는데, 상

념에 상념이 꼬리를 물어 잠이 오지 않아 요리용으로 사둔 소주를 한두

잔 마시기 시작하면서 알코올의 기분 좋은 알딸딸함을 알게 됐다. 술자리

에서 오가는 왁자지껄한 대화들이 때론 맑은 정신에 오가는 진지한 대화


보다 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를 사로잡았던 사소한 금기를 한번 깨 보자.


어제와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 보자.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사는 것보다 덜 지루할 테니.


나와 같이

걷는 사람

“이상형이요?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요.”

결혼 전 이상형에 대한 물음에 20대 중반까진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라


답했다. 왠지 남편이라 하면 똑똑하고, 이해심도 많고, 포용력도 넓은, 어

쨌든 나보다 나은 사람이길 바랐고, 그런 환상이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은, 존경하는 사람도 함께 살다 보면 그저 ‘남자 사람’으로 보

인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며, 아무리 똑똑한 남자라도 가정에서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단 사실을 발견했다.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찾기보


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남편감을

선택하는 게 한결 쉬워졌다.

내 남편은 아빠처럼 엄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내 일을 존중해 주며, 무

엇보다도 고정적 남편 역할에 메이지 않는 사람이길 원했다.

이런 다원주의 시대에 TV 연속극에선 아직도 성 역할을 고정시키는 세

뇌작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잘나가고 똑똑한 여자가 결혼해서 시댁 식구

들과 함께 산다. 여자는 예쁘게 차려입고, 퇴근하는 남편의 양복 상의를


곱게 받아들고 저녁상을 차려 준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학력 수준, 소득 수준, 직위 등이 상당 부분 향상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행복은 남편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은 왜 바

뀌지 않는 걸까? 당연히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하느냐에 따라 여자의 결

혼생활과 행복도는 달라지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여자가 남편의 생

활에 모든 것을 맞추고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편에게 헌신적이고 순종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여자들이 황혼기에 남

편과 따로 살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일본에 사는 친구에


게서 들었다. 평생을 참고 살다 노년이 되어서야 남편과 떨어져 산다면

젊은 날의 시간과 감정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남편이 돈을 벌어다 주고, 아내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게 결

혼생활의 전부일 거라 생각해 본 적 없다. 남편이건 아내건 돈을 버는 주


체가 한 명이라는 게 이상했다. 그 주체가 누구여야 한다는 게 이상했다.

긴 결혼생활 동안 한쪽만 돈을 벌고 한쪽만 집안일을 한다는 게 불공평하

다고 느꼈다. 함께 돈을 벌고,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함께 집안일을 나누

어서 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이었다.

힘이 들 때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는 있지만, 너무 일방적인 관계는 좋

지 않다. 항상 기대기만 하는 사람은 늘 의존만 하게 되고 어깨를 빌려주

는 상대방도 숨이 막힐 테니까.

남편은 기대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하고 기쁨이 생

기면 함께 웃으며 일상을 공유하는, 앞이나 뒤가 아닌 옆에서 호흡을 맞

추며 걸어가는 ‘옆 사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관계성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서

로를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게

좋다

생리대 화학물질 논란이 일면서 여기저기서 면 생리대와 생리컵에 대


한 간증이 쏟아졌다. 생리컵을 쓰고 나서 생리 때마다 밑이 쏙 빠질 거 같

던 증상이 사라졌다는 둥, 면 생리대를 사용하고 난 뒤 생리통이 사라지

고 생리혈 뭉침이 사라졌다는 둥, 주변인들의 사용담을 들으며 ‘그럼 한


번 나도 써볼까’란 호기심으로 면 생리대를 사용했다.

와, 생리한 지 이십 년 만에 면 생리대를 만나다니!

그간 밑이 빠질 것처럼 아프던 통증은 생리혈을 흡수하는 화학약품 때


문이었던가. 불쾌한 느낌 없이 생리 기간을 보냈고, 생리혈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둘째 날엔 꼭 진통제를 복용했는데, 면

생리대를 사용한 뒤로 진통제를 찾지 않는다. 물론 세탁해야 하는 번거로


움이 있지만, 수고스럽게 세탁하는 과정을 거치면 생리하는 동안 몸을 쾌

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거구나.

자연히 속옷에도 눈을 돌렸다. 문득 남편의 빨래를 걷다가 사각팬티는

얼마나 편할지 궁금했다. 팬티라면 무조건 작고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고

만 생각했지 그게 몸을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가를 고려하진 않았었다.

캐주얼한 옷차림을 할 때는 오히려 섹시한 속옷을 입고 섹시한 옷을 입을

땐 반대로 캐주얼한 속옷을 입으며 속옷부터가 패션의 시작이라 생각했


다.

레이스 속옷을 즐겨 입다 아이가 생긴 후 임부용 속옷을 보고 컬처쇼크

를 받았다. 길고 촌스러운 임부용 속옷을 보며 벌써 할머니 같은 팬티를

입어야 하나 싶어 억지로 작은 팬티에 부른 몸을 욱여넣었다.

출산 후 다시 돌아온 속옷 사이즈에 환호하며 불편한 줄 모르고 지내왔

는데, 면 생리대가 몸을 더 건강하고 쾌적하게 했듯이 몸에 붙지 않는 속


옷도 더 편안하지 않을까?

그런데 몸에 붙지 않는 여성용 사각팬티가 있었나? 당장 속옷매장에 가

보니 헐렁한 사각팬티가 없어 작은 사이즈의 남성용 트렁크 팬티를 사 와


세탁기에 돌렸다. 건조기에서 꺼낸 팬티를 입어 보니, 신세계다. 꽉 조이

지 않으니 긴장되는 부분이 없다.

편안한 자연의 상태랄까.

절로 몸이 나른해지고 마음도 여유롭다.

그동안은 속옷을 고를 때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능보다 몸매를 예뻐

보이게 부각하는 기능에 더 중점을 두었다. 딱딱한 와이어로 가슴을 올려

주고 두꺼운 뽕으로 가슴골을 모아 라인을 예뻐 보이게 하는 데만 신경

썼다. 몸이 처음 맞대는 옷인데도 몸이 편하도록 배려해 주기보다, 옷이

더 예뻐 보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번엔 와이어가 없는 브라를 입어

보며 몸이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너무 딱 맞는 속옷은 불편해. 과한 와이어 때문에 숨쉬기 힘들어. 집에

서라도 해방시켜 줘.’

대부분 혼자 보게 되는 속옷조차 남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 입는다면

자신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배 부분이 넓어 흉해 보이던 임부용 속옷이 다시 보인다. 불룩 나온 배

를 조이지 않고 보호해 주는 이 속옷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몸이 가장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자유를 주어야 하지 않


을까? 몸을 옥죄는 기분에서 벗어나니 시선도 여유로워진다. 몸이 자유로

워야 정신도 자유로워지는데 말이다. 물론 가끔 섹시하고 예쁜 속옷을 입

고 싶은 날엔 한껏 속옷으로 멋 내도 좋지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은 눈빛으로도 말을 한다.

마주치는 눈빛에 감정마저 설렌다.

권태가 진행 중인 연인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멀다.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모든 말은 소중하다.

상대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역사를 가늠한다.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상상하며 공감한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대화에 집중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나에 대해 말해 주고 싶다.

인간이 가진 여러 훌륭한 기능 중 하나는 ‘대화’가 아닐까. 말과 목소리

와 눈빛과 표정으로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니까.

K는 아픈 상처를 연인에게 공유하지 않아 이전 애인과 깊은 관계로 가

지 못했다고 한다. 밝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던 K와, 깊은 상처까지 공

유하고 싶었던 연인은 결국 이별했고, 몇 년 만에 다시 연애를 시작한 K

였다.

“꼭 힘든 걸 말해야 해? 그냥 숨기면 안 돼?”

그러게. 꼭 힘든 걸 말해야 하고, 공유해야 관계가 깊어지는 걸까. 내가

보여 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 주고 딱 그만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까.

그러고 보면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게 참 어렵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두렵고, 그런 말을 듣고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


을까도 두렵다. 멀어지느니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지레 겁을

먹고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우리 아기가 오늘 아침에 이렇게 말했는데 너무 귀엽지 않아?”

“우리 아들이랑 딸 옷 샀는데 너무 예쁘지?”

“우리 애가 요즘에…….”

아이를 낳게 되면 평생 헤어질 걱정 없는 연인을 만난 기분이 드는 걸

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입만 열면 아이 이야기에 열을 올린

다. 카톡을 하건, 전화를 하건, 만나건 간에 엄마가 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아이 이야기를 한

다. 열심히 듣다 나도 아이 이야기를 좀 해야 하나 싶어 몇 마디 거들다가

이내 지루해진다.

아이랑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있다가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여

기서도 또 아이 이야기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모처럼 생긴 자유 시간

에 차라리 서점에나 갈걸. 여기 나오지 말고 치호를 끌어안고 눈을 맞추

고 볼이나 비빌걸.

 
“그래서 요즘 넌 어때? 전에 다시 일하고 싶어 했잖아. 복직은 힘들 거

같아?”

아이 이야기만 듣고 있자니 지겨워져 무심코 질문을 던졌더니 그제야


친구는 봇물 터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아이 이야기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구나.

너의 이야기를 물어봐 주는 사람이 필요했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엄마

가 되면서, 처음 맞는 세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열심히 아이 이야

기를 나누게 된다.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하고, 경이롭고, 힘들어서 아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 이야기만 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거

다.

너의 이야기를 물어봐 주고 들어 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하니까.

다음에 나를 만나면 아이 이야기 말고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상징적

종속에서
벗어나기

묵직한 결혼반지를 볼 때마다 후회된다. 뭐에 홀려 이렇게 비싼 브랜드

반지를 샀지?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한 번 더 갔더라면……. 불편한 반


지를 몇 년간 의무적으로 끼다가 임신 중 손가락이 부어 자연스레 반지를

뺐다.

결혼이란 무거운 굴레에서 벗어나 좀 가벼워진 기분이다. 반지를 볼 때


마다 ‘결혼한 여자니까’라는 강박과 책임감 때문에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맡은 역할에 집중했다.

출산하고, 좋아하는 예쁜 모양의 반지를 찾아 끼기 시작했다. 때론 반


지 없이 다니기도 한다.
아무것도 손에 걸리지 않는 홀가분함이 좋다. 반지를 끼고 나왔어도 키

보드를 두드릴 때 거슬려 빼놓았다 다시 끼곤 했는데, 번거로움이 사라져

좋다.

반지 끼고 있지 않은 나.

가볍다.

괜찮다.
양손에 욕심이

가득 차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어

한 손엔 포크, 다른 한 손엔 장난감을 든 치호가 밥을 먹다 말고 뛰어가

더니 포크레인 장난감을 집고 싶어 한다. 양손에 이미 물건이 있는데 내


려놓기는 싫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싶고. 낑낑대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다.

“치호야, 손에 있는 걸 놓아야 잡을 수 있지.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


으면 새로운 걸 가질 수가 없어.”

알아들은 건지 치호는 이내 들고 있던 장난감을 내려놓는다.

 
“치호야, 밥 다 먹었으면 엄마한테 포크 주세요.”

포크를 달라는 말에 눈을 반짝거리며 아이는 신나게 포크레인 장난감

을 끌고 와 내게 안긴다. ‘나 잘했지?’ 세상 가장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

래……. 평소 포크레인 장난감을 포크라고 부르긴 했지. 하긴. 나도 양손


으로 모자라 양발까지 동원해서라도 붙잡고 싶은 욕심에 빠져 매번 허우

적거리는걸.

이제라도 손에 쥔 여러 개의 욕심 중 하나만이라도 내려놓는 연


습을 해야지.

자유로워진 손으로 다시 잡을 무언가를 위해.


낯선 사람

효과

전에는 책도 쓰면서, 강의도 나가고, 그림도 배우고, 꽃꽂이도 배우고,


대학원도 다니고, 영어학원도 다니고, 각종 모임도 나갔는데…… 지금은

넘치는 에너지를 해소할 수 없어 치호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

는 지나친 예민함이 탑재됐다.

“정은아, 너도 같이하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숨 쉴 구멍이 간절할 때, 대학원 선배가 <낯선 대학>에 입학을 제안했

다. <낯선 대학>은 ‘내가 보는 이 세상이 과연 전부인가’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된 모임이다. 33~45세까지의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

다. 그 나이 정도 되면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성이 쌓일

연차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다양한 전문지식을 교환할 수 있고, 콜라보도


가능하다. 컨설턴트, 디자이너, 마케터, 개발자, 가야금 연주자, 작가, 가

수, 사진작가, 세무사, 건축가, 회계사, 핸드메이드 전문가, 기획자, 배우,

성우, 연출가, 출판인, 영화인 등등. 이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두 명의 멤

버가 40분씩 자유롭게 자신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문 강연 집단


이 아니기 때문에 때론 서툴고, 자유롭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서

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가운데 폭 넓은 시야와 교류가 생성된다.

작가라는 직업은 자칫 고립되기 쉽다. 대부분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쓸데없는 아집과 고집이 생기고 그래서인지 대부분 예민하고 ‘또

라이’ 기질이 다분한 작가도 많다. 섭취하는 정보도 제한적이다. 간섭하

는 이가 없기 때문에 받고 싶은 정보만 받고, 읽고 싶은 글만 읽고, 만나

던 사람만 만나는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한다.

사실 작가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나 주부들도 삼십 대 이후가 되면 만나

던 이들만 만나고, 했던 이야기 또 하며 반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말로 써

내려가는 수필을 귀로 읽으며, 그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이해관계 없이 만나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고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나

누고 그들이 내뿜는 생기를 마신다. 사람에게 상처받아 웅크린 마음을 치

유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낯선 사람들과 1년을 함께하면서 받은 생기로 오랜 시간 두려움과 결정

장애로 망설이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했다. 할까 말까 망설이던 일을

일단 시작해 본다.

가다 아님 말면 되지.

시작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가고 있으니까.

춤을 추어도 좋고 도자기나 빵을 구워도 좋고 운동을 해도 좋다. 전혀

다른 분야의 공부도 좋다.

쳇바퀴 도는 삶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내 안의 콘텐츠와 에너지가 고

갈됐다 느껴질 때, 처음 만난 사람들과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낯선


모임에 나가 보자. 평생을 배우면서 사는 사람들이 전해 주는 생기 덕에

피부과에 가지 않아도 반짝반짝 얼굴에 광채가 날 테니까. 좋은 사람들이

주는 긍정적 에너지는 삶을 풍요롭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작년부터 ‘건강하게 살기’와 ‘내 몸의 반응에 주목하기’를 실천하고 있


다. 그중 하나가 음식 조절인데, 요즘 먹고 있는 생무가 속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하스미 카논이 쓴 《생무 다이어트》란 책을 읽고 매일 1센티씩 생무를

먹었더니 출산 후 몸에 남은 마지막 부기가 빠졌다. 독소배출과 소화에


도움을 준 듯하다.

가볍게 살고 싶어 식습관을 바꿨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로 육식을 좋아했고 떡볶이, 치킨, 피자, 빵 같은 밀가루 음식과


즉석식품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맵고, 달고, 짠 음식에 빠져 사는 동안 입

은 행복했지만 속은 늘 더부룩하고 하체가 부어 있었다.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상체보다 투실한 내 하체에 놀라며 “이건 몸이

부은 거예요”라고들 했다. 그땐 회원권 끊게 하려는 상술인 줄 알았는데

맵고 달고 짠 음식을 줄이고 빠진 붓기를 보니 사실이었다. 이제 고기보

다 생선이 좋고, 양념한 생선보다 그냥 구운 생선이 좋다. 고추장과 고춧


가루 소금 베이스보다, 간장에 물을 타서 약하게 간한 일본식 식사와 채

소 생식을 주로 한다.

그래도 좋아하던 음식을 가끔이라도 먹어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주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 즐거운 이들과 함

께하는 식사라면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음식도 좋은 에너지로 바꿔 줄


거라 믿으며 맛있게 먹는다.

며칠 과식했다 싶으면 아무 간을 하지 않고 코코넛오일에 닭가슴살, 애

호박, 양파, 피망, 파인애플, 잡곡밥을 넣고 볶아 식사로 200그램을 먹는

다. 여러 번 볶기 귀찮아서 한 번 볶을 때 10통 정도를 만들어 냉동한다.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미워할 일이 생

기면 그날 해소한다. 쌓아 둔 감정은 독소가 되어 몸을 아프게 하니까. 미

워하지 않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알지만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을 단번에 용서하는 관용을 베풀기엔 나는 아직 너무 젊고 속

이 좁다.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체내 독소가 빠지면서 몸이 순환되는 걸 느

낀다. 하루에 10권씩 책을 읽고 몇 시간씩 의자에 앉아 작업하면서 다리

를 꼬거나 양반다리를 할 때가 많았다. 그 때문에 몸이 틀어지고 순환이

잘되지 않아 그간 통증을 달고 살았다는 걸 깨달은 뒤로 이제는 다리를


꼬지 않는다.

몸이 답답한 느낌이 들면 충분히 걷기 운동을 하고, 마사지를 받고, 반

신욕을 한다. 먹고 난 다음 날 속이 부대끼거나 화장실을 자주 가게 하고

물을 많이 마시게 하는 음식의 섭취를 줄인다. 몸의 반응에 신경 써서 음

식을 먹으니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지니 얼굴빛도 좋아진다. 음식으로

인한 피부 트러블도 줄어 거울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식이요법과 더

불어 마음의 소리와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나를 데리고 오랜 시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의 반응에 주목하

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참 예뻐요,

당신

“어머, 오늘 너무 예쁘세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제가 예쁘긴 뭐가 예뻐요.”

평소와 달리 화사해 보이는 지인을 향해 예쁘다고 진심 어린 칭찬을 하


자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왜 예쁘다고 칭찬받는

자신에게 이다지도 인색한 걸까? 웃으며 손을 내젓는 게 아니라, 정말 자

신이 예쁘단 소리를 듣는 게 가당치 않다는 표정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겸손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


는 것 같다.

“오늘 스카프 색이 너무 예쁜데요?”

“고마워요, 님도 블라우스가 우아하세요. 좋은 일 있으신가 봐


요.”

찬사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면 웃음이 나 엔도르


핀도 돌고 분위기도 부드러워진다.

칭찬을 받는다면,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

은근슬쩍 자존감도 올라간다.

과한 겸손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니까.


일상을

여행하듯
산다

프리랜서로 산 지 십 년이 됐다.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불안정한

자유를 선택했다. 아침에 눈 떠 가고 싶은 장소로 노트북을 들고 이동한


다. 노트북만 있다면 그곳이 작업실이 된다.

매화가 한창인 봄날엔 지리산으로 달려가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 밑

에서 돗자리를 깔아 놓고 막걸리 한잔하며 글을 쓴다. 한강 둔치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들 옆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삼성동이나 여의도처럼 복잡

한 도심 한복판 카페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닷가 앞 노천카페다. 그래서 책을 계약하는 순


간 비행기 티켓부터 예매한다. 목적지는 주로 제주 바닷가다. 티켓에 적
힌 날짜까지 1차 탈고를 마무리해 프린트한 후 원고 뭉치를 들고 여행을

떠나 바닷가 앞에서 2차 퇴고를 하는 일. 노트북으로 보던 원고를 종이 위

로 옮겨 와 한 자 한 자 읽다 지치면 바닷가로 나가 걷는다.

지방으로 강의를 가게 되면 나를 위한 시간을 일부러 낸다. 작년엔 속

리산 앞 연수센터에서 강의를 여러 번 맡았다. 오전과 오후 수업 사이가 3

시간이나 비어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운 날엔 수백 년 된 나무 근처 평상

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산바람을 맞으며 낮잠을 자고 음악을 들었다. 책


을 들고 카페에 가기도 하고, 아침 일찍 도착해 동네 작은 초등학교를 거

닐기도 한다. 초록 양철지붕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골길을 혼

자 걷고 있노라면 일할 수 있는 하루가, 살아 있는 아침이 새삼 벅차게 감

동적이다.

지방 강의도 없고, 원고 요청이 유난히 많아 바쁜 시기라면 단골 카페


를 바꾼다. 작업하다 지치면 동네를 걷고, 동네 주민 마냥 시장에서 장을

본다. 양손 가득 장을 봐 온 식재료로 집에 돌아와 요리를 한다. 해방촌에

서 사 온 토마토로 샐러드를 해 먹고 수원시장에서 사 온 두부로 된장국

을 끓인다. 망원시장에서 양말을 사와 신는다. 이탈리아에서 장을 봐 음

식을 해 먹었던 것처럼 일상 여행지에서 장을 봐 온 음식을 해 먹으며 일


상과 여행을 섞는다. 일상을 여행하듯 낯설게 바라보고파 익숙해짐을 피

한다.

관계는 오래되어 익숙할수록 깊어지고

일상은 오래되어 익숙해지면 권태롭다.

권태에 젖어들지 않도록 매일 다니던 길을 피해 옆길로 가 보고 고개를

들어 시시각각 달라지는 구름의 움직임과 계절 따라 변하는 나뭇잎을 관

찰한다.

계절마다 바람의 냄새가 다르다.

흙이 마르고 촉촉해지는 느낌도 다르다.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을 세심히 살핀다.

매일이 같지 않으니 매일을 여행하듯 살 수 있다.


부지런히

내몸
챙겨주기

내 기억에 엄마는 1년 365일 중 340일은 아팠다. 철이 들고 나선, 늘

아프고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말


하지 않고 혼자 해결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엄마는 백만 가지 안 좋은 상상을 하며 앓아누웠다. 아침마다 잠을 못 자

퉁퉁 부은 엄마 얼굴을 보는 게 버거워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고 보면 우리 자매에게 ‘혼자’ 해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옷 공장을 하시느라 늘 바빴기 때문에 큰언니가 다섯 살 때부


터 혼자 연탄불을 갈았다. 예전엔 별생각 없이 듣고 흘렸는데, 다섯 살 된
치호가 연탄불을 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유달리 똑똑했던 언니라 가

능했던 것일까?

엄마가 바빠, 둘째 언니는 팔이 찢어졌는데도 혼자 응급실에 가서 꿰매

고 돌아왔다. 아홉 살의 나는 혼자 치과에 가서 썩은 어금니를 레진으로


할지, 아말감으로 할지 결정했다. 자연스레 독립적 성향이 길러진 우리

세 자매는 지금도 일하는 아내로 살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게 시집온 아내이자 며느리. 그 무게로 엄마는 늘


아팠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더 아팠다. 애 낳기 전날까지 일을

했고 애 낳은 다음 날부터 일했다는 엄마의 하소연도 아이를 낳기 전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치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다음 날, 간호사는 회복을 위해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응급수술로 생사를 헤매다 출산해 아직


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혼자 일어나야 한다니.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나온 첫마디는 시옷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 욕이었다.

아이를 낳은 다음 날 일을 한다는 건 인간이 할 짓이 못 되는 거였다.

몸은 무너졌는데 밥을 하고 가게 일을 해야 했던 엄마의 삶이 스쳐 지나
갔다. 이래서 엄마가 평생 아팠구나. 엄마는 참 외로웠겠다. 아무도 공감

해 주지 않아서. 아이 셋을 낳을 때마다 한 달이라도 옆에서 누가 도와주

며 산후조리만 해 줬어도 엄마가 평생을 그렇게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았

을 텐데.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며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

데.

“하도 몸이 아파하니까 주변에서 애를 하나 더 낳으면 괜찮아진다 카더

라고. 그래서 니를 낳았어.”

엄마가 내게 해 주시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를 하나 더 낳은 뒤 몸이

굳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에 못한 산후조리를 제대로 해야만 아프던 몸이

좋아진다’는 말을 그분은 왜 빼신 걸까. 속상했다. 아이를 낳으면 뼈도 느

슨해지고 근육도 말랑해져 이때 틀어진 몸을 다시 잡으면 더 건강해질 수

도 있다는 속설을 엄마는 앞뒤 말을 빼고 들으신 거다.

평생 아픈 엄마를 떠올리며, 원래도 몸이 약한 나였으니 산후조리에 최

선을 다해야겠다 생각하며 침대 위에서 바둥거리던 출산 둘째 날, 시어머

님이 병실에 오시며 남편에게 노트북을 건넸다.

 
“일인실이라 조용하니까 여기서 서류 작업하면 되겠네. 월요일까지 제

안서 보내야 한다.” (시어머님과 남편은 같은 회사에 다닌다.)

노트북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조산으로 인해 인큐베이터에 아이가


누워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임신 기간 동안 워낙 몸이 상했던 터라 회

복이 느려서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그런 며느리 앞에서 아들

에게 회사 일을 하라고 하는 시어머님을 마주하며 한없이 외로워졌다.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이를 낳고도,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

로 손주 얼굴도 보지 않고 내려가는 시어머니의 등을 보며 이렇게 외로웠

을까. 차갑고 쓸쓸한 바람을 마음으로 맞으며, 나는 다음 날부터 남편이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혼자 몸을 일으키고 걷기 위해 애를 썼고, 결국 이튿

날부터 화장실에 혼자 갈 정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일하는 남편 곁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결혼을 했다 한들 아무도 나를 지켜 줄 수 없겠다.

내가 나를 지켜야 하는구나.

이제 아이도 지켜야 하는구나.


마냥 기대 투정 부릴 시간은 허락되지 않나 보다.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은데 건강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 스스

로 건강을 챙겨야 할 노릇이다. 엄마가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해 평생 아

프셨으니 나는 산후조리를 잘 해야겠다 마음먹고 퇴원 후 회복과 건강관

리를 위해 애썼다.

약했던 체력에 비해서 건강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이제 몸에 좋다는 음

식, 운동, 환경,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쓰며 살고 있다. 평생 아픈 엄마를


둔 아이의 마음을 아니까. 아픈 아내에게 이골이 나 무심히 대할 남편을

아니까. 건강을 스스로 챙기는 것이야말로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

이다. 아프면 나만 손해다.


핸드폰에

예쁘게 웃는
내 사진을 남기자

인생에서 70킬로그램대의 몸무게를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더 충격적인 건 아이를 낳은 후에도 2킬로그램밖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


다. 나머지는 다 살이었구나.

남들이 조리원 가면 살이 싹 빠져서 나온다기에 기대했건만 조리원에

서 나온 세 끼 밥이 어쩜 그리 맛있는지 싹싹 긁어 먹고 남은 것까지 덜어

먹으니 체중계의 눈금이 내려오질 않는다. 연예인들을 보면 출산하고 한

달 만에 예전 몸매로 돌아가 사진도 잘 찍던데……. 연예인은 역시 나랑


다른 종자들인 건가! 뚱뚱한 모습이 보기 싫어 거울도 잘 안 보고 사진도

안 찍는다. 옷도 맞는 게 없으니 쇼핑도 더는 재미가 없다.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귀여운 생명체를 미친 듯이 찍어 대기 시작했다. 뭘 입어도 잘 맞


고 깜찍한 치호에게 옷을 사다 입히며 인형 놀이를 하듯이 대리만족을 느

꼈다.

“작가님, 저자 란에 쓸 사진 좀 보내 주세요.”

출판사의 요청을 받고 핸드폰 사진첩에서 프로필로 쓸 만한 사진을 고

르는데, 한참 동안 페이지를 넘겨도 치호 사진이 끝나지를 않는다. 아이

는 하루가 다르게 콩나물처럼 쑥쑥 커간다. 예쁜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기

싫어 기록하다 보니 내 사진첩은 온통 치호 게 돼 버렸다. 나는 이러지 않


을 줄 알았는데……. SNS에는 아이 사진이 넘쳐나고, 카톡 프로필 사진도

치호고, 핸드폰 사진첩의 주인공도 치호다.

그날부터 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퉁퉁 부어 못난 얼굴이라도 이게

나니까. 사진을 찍으면서 살을 빼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운 후 먹던 야식

과 맥주도 그만두고 식이조절을 하면서 눈물의 다이어트를 한 끝에 21킬


로그램을 감량하고 결혼 전 몸무게로 복귀했다.

이제 핸드폰엔 아이와 내 사진이 공존한다. 기술이 좋아져서 대충 찍어

도 예쁘게 나오는 앱으로 셀카를 찍으니 잃었던 자신감이 슬슬 회복된다.


출산 전 입던 옷이 맞는 쾌감을 누리며 살이 빠져 가벼워진 몸을 유지하

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걷기 운동을 나간다.

이런 작은 변화를 느끼는 지금의 나. 바람직해. 칭찬해!


삼십 대인

내가 좋다

틀어진 몸을 바로 잡고 몸매를 다듬기 위해 1 대 1 요가수업을 받기로


했다. 단체반에 들어가 모두가 다 하는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것보단

내 몸에 맞는 동작을 섬세히 배우고 싶었다.

“이십 대의 나보다 삼십 대 후반의 오늘이 너무 좋아.”

이십 대 초반부터 함께한 친구와 올해 계획을 이야기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의 오늘이 좋다고 고백한다. 너무 젊고 눈부셨지만, 이십

대의 나는 늘 불안했다.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보여도 어떻게 갈지 방법


을 몰랐고 마음만 급해 총총거리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불안

감에 사로잡혀 지냈다.
삼십 대가 되고, 안도했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늘 어리다고

무시받던 나이 콤플렉스를 탈출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서

른이 되고부터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당당하게 “삼십 대입니다”라고 말하

며 희열을 느꼈다. “이십 대가 뭘 알겠어”란 말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되니


까.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못한다고 말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 기를 쓰고 아

는 것으로 만들었던 이십 대와 달리 모르고 못하니까 배우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삼십 대가 좋다.

베인 상처가 이제는 덜 아파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도록 노력하는 오늘이 좋다.

눈물을 흘리되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오늘이 좋다.

웃을 기회가 생기면 아낌없이 웃는 오늘이 좋다.


 

치호를 앞에 두고 “하하하” 하고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로 치

호가 “하하하” 소리 내며 따라 웃는다. 아이의 살을 부비며 웃을 수 있는

오늘이 좋다.

새롭고 낯설게 시도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는 오늘이 좋다. 익숙하고

지루한 것을 견디느니 불안한 도전을 견디는 편이 생을 살아 낼 생기를

심어 주는 걸 알고 있는 오늘이 좋다.

다시 돌아가도 무모하고 치열하게 이십 대를 살아 낼 나이기에 삼십 대

인 오늘의 삶도 흥겹게 즐기자고 마음먹는 내가 좋다.

강의를 십 년 가까이 했으면서도 아직도 떨려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 스스로 위로하는 말을 알고 있는 오늘의 내가 참 좋다. 주름은 늘었

지만 경험을 가진 오늘의 내 나이가 좋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들도 좋아할 거다. 사십 대의 나와 오십

대 이후의 나는 여전히 생의 순간에 충실할 테니까. 오늘을 행복하게 보


낸 내가 맞이할 내일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도 둘째를 낳으면 생각이 달라질걸? 애는 키울수록 예쁘다잖아.”

“저는 원래도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치호를 낳고 보니 치호만 예


뻐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에이, 둘째를 낳으면 둘째가 더 예쁠걸? 애는 어떻게든 크니까 늦기 전

에 시도해 봐요.”

“그 말도 맞지만, 아이를 낳으면 저는 일을 못 하는 걸요. 일할 때가 행


복해요.”

“그럼 첫째가 너무 외롭잖아요. 나중에 혼자되면 불쌍해서 어떡해.”


“외로움은 인간 모두가 가지는 본성인걸요. 저는 언니가 둘인데도 외로

워요.”

“에이, 그래도 엄마가 딸이 있어야지.”

“하하. 저는 아들이 좋아요. 사실 저는 아들, 딸을 떠나 치호가 좋아요.”

“첫째가 아들이면 둘째는 딸이어야지. 여자는 늙으면 딸이 최고야, 얼

른 딸 낳아요.”

“저 아이 낳다가 죽을 뻔해서 임신과 출산 트라우마가 있어요. 하하. 괜


찮습니다.”

“원래 첫째 낳을 때 힘들면 둘째는 수월해. 그리고 둘이 있으면 잘 놀아

얼마나 편한데.”

“사실 저희는 양가 부모님들이 아이를 돌봐 주실 수 없으세요. 저희 둘

이 양육해야 하는데 둘째가 태어나면 너무 버거워요.”

“애는 태어나면 어떻게든 크게 돼 있어. 그래도 둘은 있어야지.”

끝이 없는 도돌이표 대화다. 이 정도면 대화가 아니라 폭력이다. 우리

의 선택으로 더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아


이를 더 낳기 강요하는 저 아주머니는 내 지인도 아닌, 처. 음. 본. 사. 람.

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처음 본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가족 구성원은

최소한 네 명은 되어야 한다’라고 입력된 로봇처럼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둘째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 기쁨만 가지고 감당하기

엔 어마어마한 품과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엔 ‘지

금처럼 일하면서 돌보미 아줌마 쓰면 되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아이

를 낳고 보니 가장 힘든 게 ‘돌보미 아줌마 쓰기’였다. 내 집에서 내 돈 주

고 내 아이 보는 건데도 행여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돌보미가 있어도 육아와 가사는 여전히 내가 담당해야 하는 데다 돌보미

를 쓴다는 이유로 남편도 육아와 가사에 소홀해지는 건 덤이다.

아이가 이렇게 오랜 시간 혼자 있지 못하고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존

재라는 걸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노후에 외롭지 않기 위해 둘

째로 딸을 낳은 친구들은 입을 모아 예민하고 섬세한 딸 키우기의 어려움

을 토로한다. 대신 키워 줄 것도 아니고 양육비를 제공해 줄 것도 아니면

서 남이 고심해서 내린 결론에 대해 왜 그렇게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는

걸까.
 

“아이 데리고 나갔다가 지하철에서 둘째 낳으라고 참견하는 할머니들

때문에 이젠 둘째 있냐고 물어보면 집에 두고 왔다고 그래.”

말하고 싶지 않아도 자꾸 물어보는 할머니들 때문에 거짓말까지 한다

는 지인의 말을 듣고 웃다가 왠지 씁쓸해졌다.

“아이를 낳아야만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거라고 말하는 게 이해되

지 않아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고 두 사람의 삶을 즐기며 충분히 행복하게 사는


부부에게 사람들은 어디 문제가 있지 않냐, 더 늦기 전에 시험관 아기를

시도해 봐라, 나이 들어 후회한다 등의 참견을 늘어놓는다. 그런 참견에

지친 지인은, 마치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사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

하지 않는 것처럼 몰아가는 이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 해 봤는데, 결혼은 저한테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혼자 살래요.”

십 년을 연애하면서 서로를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다가,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이혼하며 결혼이란 제도에 진저리를 치는 지인에게 사람들은 더


노력해 보지 경솔했다, 다른 사람은 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하며 재혼을 강요하는 입방정을 떨어 댄다.


 

“저는 비혼으로 살기로 했어요. 혼자 너무 오래 살아 타인과 삶을 공유

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의 자유를 포기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한 혼자 살겠

다는 지인에겐 결혼을 해 봐야 어른이 된다, 막상 결혼하면 생각이 달라

질 거다, 늙으면 외롭다 등의 이유를 들어 결혼을 종용한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거야? 힘들겠다.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게 최

곤데.”

“집에서 애만 보는 거야? 이젠 아이도 많이 자랐는데 돈벌이해야지, 집

에서 놀면 뭐해.”

어떤 삶을 살아가건 사람들의 참견이 문제다. 가만히 응원해 주는 방법

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입방정을 떤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남의 선택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하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책임져 주지 않는 타인의 무례

한 말에 상처받지 말고 휘둘리지 않는 굳건한 태도가 아닐까.

 
꼭 결혼과 아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이

야기할 때 백 프로 지지받거나 공감받을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모두

가 안 될 것이라 이야기하면 나는 은근히 즐겁다. 안 될 것이라 믿으며 아

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시시하게 입으로만 인생을 사는 이들 말에, 딱 반

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처럼 기어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루고야 말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

그게 무엇이든 가장 나다운 삶을 선택해 행복하게 살아도 괜찮다. 단

한 번밖에 없는 당신의 인생이니까. 눈을 감았다 뜨면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바로 가장 특별한 선


물이니까. 감사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보자.

충분히 그럴 자격 있다,

그저 나라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종이책 발행일 | 2018년 4월 16일
전자책 발행일 | 2018년 4월 16일

 
지은이 | 윤정은
그린이 | 마설
펴낸이 | 이범상
펴낸곳 | (주)비전비엔피·애플북스

 
전자책 제작 | (주)비전비엔피
전자책 정가 | 7,800원
ISBN | 979-11-5771-304-2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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