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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영어영문학』 (2015) 141

제57권 4호❙141~161❙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12)

한 혜 정

Han, Hye Chung. “(Non)sense of the Portmanteau Text: Lewis Carroll’s


The Hunting of the Snark.” New Korean Journal of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57.4 (2015): 141-161 . This study regards Lewis Carroll’s The

H unting of the Snark: An Agony in Eight Fits (1876) as the portmanteau text

with multi-layered (non)sense. Charles Lutwidge Dodgson, better known as

Lewis Carroll, was an Oxford don teaching mathematics and logic. Like a

portmanteau word, which packs two meanings into one word, Snark puts

Carroll’s nonsense upon Dodgson’s logic, mixing laughter with despair and chaos

with order. Nonsense doesn’t mean mere absence of meaning like gibberish, but

constitutes a new system of their own which proliferates meanings. Voyaging

through the paradoxical sea of nonsense with a blank map, Snark also invents

brilliant portmanteau words or creatures, resists conventional signs such as

proper names, and invites ‘much of a muchness’ interpretations for the elusive

Snark/Boojum. (Silla University)


Key words : Lewis Carroll, Charles Lutwidge Dodgson, The H unting of the

Snark, portmanteau text, (non)sense

* 이 논문은 2015 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2015S1A5A8012218)

** 이 논문은 2015 년도 새한영어영문학회 가을학술대회에 발표한 글을 수정한 것임


142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Ⅰ. 들어가며

때때로 가로돛대가 키와 뒤섞였다”


“ (29)

1876 년 부활절,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던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Charles


Lutwidge Dodgson) 은 또다시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이라는 이름으로 『스나크
사냥: 여덟 편의 사투』(The Hunting of the Snark: An Agony in Eight F its)1) 를 출
판한다. 앨리스 연작(Alices) 의 뒤를 이어 캐럴의 “두 번째로 중요한 걸작”(Gopnik
2)

xv) 으로 일컬어지는 『스나크』가 정식으로 출범한 날이었다. 산문으로 된 『앨리스』에 무수


한 시적 비유와 노래들이 담겨 있는 것과 “반대로”(Looking-Glass 180), 141 개의 사행
연구로 이루어진 시인 『스나크』는 산문과도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즉 『스나크』는 1편
상륙’(Fit
‘ the First, The 에서 마지막
Landing) 사라짐’(Fit
‘ the Eighth, The

Vanishing) 까지 여덟 편에 걸쳐 직업이자 이름의 머리글자가 모두 로 시작하는 등장


B

인물들이 『거울』에 등장하는 괴물 ‘재버워크’(Jabberwock) 의 “확장판”(Gopnik 3)


xv) 이라
할 수 있는 상상의 존재 ‘스나크’를 잡으러 떠나는 항해를 그리고 있다. 『스나크』의 모험
은 “스나크는 부줌(Boojum)이었[다]”(70)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베이커(Baker)의 사라
짐으로 막을 내리지만, 이 미지의 ‘스나크’의 정체에 대한 탐색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앨리스’ 만큼은 아니지만 ‘스나크’는 많은 인기를 끌어 왔다. 만 부로 시작한 『스나크』
는 해가 바뀌기 전에 두 번의 재판을 찍었고, 년까지만 해도 모두
1910 판을 발행했다
18

(Cohen 406). 스나크’가 불러일으킨 영감은 잭 런던(Jack


‘ 의 『스나크 크루즈』
London)

1) 앞으로는 『스나크』라 약기하며, 텍스트의 인용은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편집한 『주석


달린 스나크』(The Annotated Hunting of the Snark)에서 가져와 면수만 적기로 한다. 가드너
의 각주는 (Gardner n각주번호, 면수)로 표기한다. 한편 주지하다시피 fit은 ‘발작’(convulsion)
과 ‘시편’(canto)이라는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2) 앨리스 연작은 『앨리스의 원더랜드 모험』(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이하 『원더랜
드』, 1865)과 『거울을 지나 앨리스가 발견한 것』(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이하 『거울』, 1871)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글에서는 마틴 가드너의 주석

본을 참고하였으며, 텍스트 인용은 (Wonderland 면수) 혹은 (Looking-Glass 면수)로 표기하


기로 한다.
3) 앨리스가 거울 나라에서 보게 되는 시 「재버워키」(“Jabberwocky”)는 “영어로 쓰인 모든 무
의미 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Gardner, Looking-Glass n16, 149)으로 일컬어진다. 이는
어느 젊은이와 괴물 사이의 결투를 그린 의사 영웅시로 캐럴이 창조한 여러 신조어의 사용으로
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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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uise of the Snark, 1911) 등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까지도 널리 미쳤다.


가장 영향력 있는 캐럴의 전기를 쓴 모튼 코헨(Morton N. Cohen) 에 따르면 전 세계에
스나크 클럽이 존재하고, 『스나크』 노래와 연극과 뮤지컬 코미디와 라디오 극이 생산되었
으며, W. H. 오든(W. H. Auden), 윌라 캐써(Willa Cather), C. S. 루이스(C. S.

Lewis), 프랑스어 초역을 펴낸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을 포함한 무수한 작가들이


스스로를 스나크주의자로 선언했고 수십 개 언어로 된 번역본이 출간되었다(409). 하지
만 이러한 대중적인 혹은 거의 컬트적인 인기에 비해 학계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활발하
지 못하다. 이미 일종의 신화의 경지에 올라선 『앨리스』에 비해 『스나크』에 대한 연구는
상당 부분 미개척 영토로 남아 있고 국내는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스나크』를 주로 특정한 대상에 대한 알레고리로 간주하고자 한다. 다시 코헨에
따르면 일부는 이 시가 작가의 성적 억압이 표출된 것이라 보고, 또 일부는 절대적인
것·명성·부·인기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로 본다(410). 또한 몇몇에게 이것은 당
대의 상속 분쟁인 티크본 소송(Tichborne Claimant) 에 대한 풍자극이거나 생체해부에
반대하는 소논문, 실존주의적 극, 종교-과학 사이의 논쟁에 대한 풍자이며, 또 다른 몇몇
은 이것이 북극 탐험 중 하나에서 영감을 받았다거나 국가 경제가 활동하는 방식에 대
한 설명이라고 주장한다(Cohen 410). 『앨리스』에 이어 『스나크』에 대한 상세한 주석본을
출간한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 조차도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 시는 “불가피한 죽음에 대한 ‘실존주의적 고뇌’”(New Preface xxiii)

에 대한 표현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해석들은 거의 전적으로 스나크의 ‘의미’에 집중하여


이를 해석 가능한 존재로 분류하고, 정의내리고, 규정하려고 (결실 없이) 시도한다.
그러나 ‘앨리스 없는 원더랜드’(Kanfer n. 이자 원래 『실비와 브루노』(Sylvie
pag.)

and Bruno, 에 삽입하려고 했던 『스나크』는 캐럴의 작품세계 전반을 가로지르는


1889)

특징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단순한 알레고리적 의미로 치환할 수 없는 다층적인 텍스트


이다. 즉 『스나크』를 관통하는 것은 신조어를 비롯한 말놀이가 펼치는 언어의 향연, (무)
의미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시대와 장소와 연령을 초월하는 보편
적 정서와 공감이다. 캐럴은 『스나크』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이고 자전적인 사실과
『앨리스』를 넘나드는 즐거운 상상의 혼성을, 찰스 도지슨의 엄격한 논리와 루이스 캐럴의
재기발랄한 무의미의 균형을 추구한다. 선원들의 말을 빌자면 『스나크』는 “관습적
인”(conventional)(27) 의미에 대한 도전으로, 기존의 단어와 세계를 해체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창조해 낸다. 따라서 『스나크』는 『거울』에서 험프티 덤프티(Humpty
144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Dumpty) 가 설명하는 혼성어(portmanteau word)4) 에 착안하여 이 모든 다층적인 의미


들이 교차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혼성 텍스트’(portmanteau text) 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스나크』에서 혼성성은 무의미 문학이라는 이 시의 장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통념과 달리 무의미는 의미가 없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무의미는 현존하는 의미 체계에
서 일탈한 의미를 생산하는 것으로, ‘무’(non), 즉 ‘부재’가 의미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이
는 역설적이며 그 효과는 무한하다. 질서와 무질서, 언어와 지시(reference)의 “교차유
희”(interplay)(Flescher 를 펼치는 무의미는 엘리자베스 슈얼(Elizabeth
128) 이
Sewell)

주장하듯이 고도로 조직화된 독자적인 의미체계를 갖추고 있는가 하면, 5)


에밀 카마어츠
(Emile Cammaerts) 가 정의하듯 “종잡을 수 없는”(run wild)(Flescher 128 재인용) 장
르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의미를 정의할 때는 모순과 역설의 ‘상호작용’(interaction)에
유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Flescher 128), 이러한 복합적이고 파악하기 힘든
혼성적 자질이야말로 바로 캐럴 무의미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캐럴이 창조한
가장 무의미한 무의미”(Holquist 인 『스나크』는 ‘무’를 통해 새로운 무한한 ‘의미’들
104)

을 끊임없이 자아낸다. 그리고 이 혼성적인 의미들을 파악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자체가 여러 조합의 혼성어인 ‘스나크’ 뿐만 아니라 가장 무서운 스나크를 뜻하는 부
줌을 발견하자마자 사라져 버린 베이커라는 인물이다. “때때로 가로돛대와 키가 뒤섞이
는”(29) 『스나크』에는 시와 산문, 웃음과 절망, 논리와 무의미가 혼재하고 있으며, 그 질
서정연한 카오스와도 같은 모험을 수행하면서 스나크와 텍스트의 (무)의미를 추적하고
구성하는 것은 베이커가 대변하는 등장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스나크』에서 관습적인 의미
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고 달아나기만 하는 스나크나, 그 스나크를 필사적으로 좇는 “이
름 없는 주인공”(the hero unnamed)(67, 필자 강조) 베이커는 단일하고 고정된 의미와
해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 ‘혼성 텍스트’에 담긴 (무)의미를 고찰하
기 위하여, 사라진 베이커와 스나크를 찾아서 새로운 의미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보고자
한다.

4) portmanteau는 본래 양쪽으로 열리는 큰 여행용 가방을 가리키는데, 험프티 덤프티가 「재버워

키」의 신조어를 지칭하면서 ‘혼성어’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혼성어는 두 가지 이상의 의미


를 한 단어에 담고 있거나 다중 의미 형성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김도훈 47 재인용).
5) 마이클 홀퀴스트(Michael Holquist)의 해설에 따르면 슈얼이 정의하는 무의미란 “알려진 시스템
에 들어맞지 않는 배열의 사건들에 대한 단어의 집합”이지만 “자신들만의 새로운 시스템”(104)
을 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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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도지슨, 캐럴, 『스나크』

내가 보기엔 혼성어처럼

하나의 단어 안에 두 개의 의미가 포개져 있다는


험프티 덤프티의 견해가 전부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10)

찰스 도지슨과 루이스 캐럴을 이분법적으로 딱 잘라 나눌 수 없듯이 6)


, 캐럴의 문학에
서 논리와 무의미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찍이 톨킨(J. R. R. Tolkien) 은 “캐럴
의 이야기와 시에 펼쳐지는 무의미는 논리 위에서 발견된다”(Hennelly 124 재인용)고
평가한 바 있는데, ‘캐럴의 세계’(Carrolliana)에서 언제나 그런 것처럼 한편에는 논리가
다른 한편에는 모순이 놓여 있는 것이다(Kanfer n. pag.). 『스나크』에서도 역시 스나크
나 베이커의 정체와 의미를 명료하게 단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
하듯이 『스나크』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당대의 사회상에서 자라나왔지만 시대와 공간
을 초월하는 정서와 가치를 담고 있으며 더구나 일반적인 문학의 관습과 규범을 위반하
는 무의미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로서, 또한 즐거운 말놀이와 기이한
존재와 초현실적 사건을 다루는 무의미 작가로서 도지슨/캐럴은 『스나크』 안에 마치 혼
성어처럼 논리와 무의미를 겹쳐 놓는다. 일부 비평가들은 베이커가 작가의 분신이며 『스
나크』는 빅토리아 시대상의 풍자라고 본다. 또 다른 비평가들은 스나크가 절대 진리와
물질적 가치와 제국주의적 침략과 실존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사에서
인용한 캐럴 본인의 말을 빌자면, ‘내가 보기엔 혼성어처럼 『스나크』 안에 도지슨의 논리
와 캐럴의 무의미가 포개져 있다는 견해’가 맞는 것 같다. 엄정한 질서와 논리를 추구하
는 도지슨의 사적인 면모, 그의 사촌이나 외삼촌의 일화,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여러

6) 사실 『앨리스』의 작가 캐럴이라는 점이 아니더라도, 찰스 도지슨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


로운 인물이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Chirst Church)의 장학생(Student)이었던 그는 그 자
격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직을 받아들이고 평생 독신으로 강의와 연구에 몰두했다. 수학자이
자 논리학자였던 그는 이 방면에서도 많은 저작을 남겼고 대학과 빅토리아 사회의 수많은 사건
과 정치에 대응하는 소논문들을 발표했다. 전형적인 빅토리아 신사였던 그는 강박적일 만큼 규
칙과 예의범절을 준수했으며 방대한 양의 일기를 쓰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각종 퍼즐과 게임과 발명품을 수없이 만들어냈고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사진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많은 ‘어린이 친구’들, 특히 소녀들과 특별한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그 정점에 『앨리스』가 있었다. 대외적으로 그는 자신이 캐럴이라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일견 모순
적으로 보이는 이 성향들은 이 매력적인 한 인물 속에 멋지게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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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들이 『스나크』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나크』에


『앨리스』를 넘나드는 즐거운 말놀이와 신비한 존재와 환상적 사건들이 넘쳐흐르는 것은
더욱 사실이다. 따라서 『스나크』는 이 모든 역설적 조화가 다층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혼
성 텍스트로 간주하여야 비로소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성직자이자 수학 교수, 논리학자, 발명가, 사진작가, 일기와 편지 작가이기도 했던 도
지슨/캐럴의 거의 모순적으로 보이는 여러 성향들은 ‘원더랜드’에 어울릴 법한 한 인물
속에 멋지게 공존했고, 『스나크』 역시 그 조화로운 모순 속에서 탄생하였다. 『스나크』를
구상할 무렵인 1874 년 도지슨은 세였다. 당시 결핵에 걸려 위독했던 사촌 찰리 윌콕스
42

(Charlie Wilcox)의 간호를 맡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잠깐 산책길에 오른다. 십삼 년 뒤


캐럴은 「무대 위의 ‘앨리스’」(“‘Alice’ 에서 당시 일어난 기이한 일을 회상
on the Stage”)

했다. 그날 언덕을 혼자 걷던 그는 ‘알다시피 그 스나크는 부줌이었으니까’라는 한 줄의


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 때도, 이후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던 캐럴은 점차 이것을 마
지막 행으로 삼은 한 연을 떠올리게 되고, 그 후로도 조금씩 그 시의 나머지는 스스로를
함께 짜 맞추어 결국 이것이 마지막 연을 이루는 시가 탄생하게 된다(Cohen 404). 이
마지막 행은 그가 “영어로 된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한 무의미 시를 창조하도록 나아가게,
혹은 물러나게 추진한 매개체”(Cohen 404)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선 다시 간
호에 몰두했고 불행히도 찰리는 곧 세상을 뜨고 말았다. 코헨은 찰리의 병과 죽음, 그리
고 『스나크』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405). 찰리의 구원을 위해 캐럴
은 불안과 웃음을 뒤섞었고 ‘사투’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이 떠들썩한 시는 끝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페르난도 소토(Fernando Soto) 는 모든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B 로 시작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름 앞의 정관사 의
‘The’ 와 이름 앞
T

의 를 더하면
B TB 가 되므로 선원들 모두는 결핵(tuberculosis)에 걸려 있었다고까지 주
장한다(Gardner, New Preface xxiv). 이들의 주장은 분명 흥미롭기는 하지만 『스나
크』는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마지막 문장부터 쓰인 이 텍스트
는 단순히 작가와 시대의 반영물로 치환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그리고 비관습적인 의미들
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굳이 닮은꼴을 찾고자 한다면,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베
이커는 찰리보다는 ‘찰스’의 모습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스나크』에서 발견되는 도지슨의 자전적인 요소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특히 1편 ‘상륙’
에서 가장 길게 소개되는 인물인 베이커는 3편 전체에 걸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이는 상당 부분 도지슨의 삶과 겹친다. 일례로 수학자였던 도지슨은 『스나크』에도 논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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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들을 재치 있게 삽입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


는 라는 숫자가 여기저기 사용된 것인데, 본래 캐럴은 자신의 작품에
‘42’ 라는 숫자를
‘42’

끼워 넣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Cohen 314). 『스나크』에서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많은 ‘42’ 가 등장하여 벨맨(Bellman)의 수칙 42조(9-10)와 베이커가 육지에 두고 온 42

개의 상자(20)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3편에서 “사십 년을 건너[뛰어]”(37) 삼촌의


야기를 전하는 베이커의 나이는 40 대 초반으로 추정되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스나크』
를 쓰기 시작할 당시 캐럴은 42 세였다. 가드너는 린돈(J. A. Lindon) 의 말을 빌어 베이
커의 42 개의 상자 역시 캐럴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본다(n33, 37).7) 또한 베이커와 삼촌
의 관계에서도 자전적인 사실들은 쉽게 확인된다.

“ 존경하는 제 삼촌이(제 이름은 그 분을 따라 지은 것이죠.)


작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말씀하시길―”
. . . . . . . . . . . . . . . . . . . .

“ 넌 골무로 스나크를 찾을 수 있단다―조심스레 찾을 수 있어.


포크와 희망을 들고 좇을 수 있지.
넌 철도 주식으로 스나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웃음과 비누로 홀릴 수 있지―

“A dear uncle of mine (after whom I was named)

Remarked, when I bade him farewell —”


. . . . . . . . . . . . . . . . . . . .

“‘You may seek it with thimbles —and seek it with care;

You may hunt it with forks and hope;

You may threaten its life with a railway-share;

You may charm it with smiles and soap —’” (37-38)

주의 깊은 캐럴 독자라면 ‘내 이름은 그 분을 따라 지었다’라는 말에서 그의 외삼촌 로


버트 윌프레드 스케핑턴 루트위지(Robert Wilfred Skeffington Lutwidge) 를 쉽게 떠올
릴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루이스 캐럴’이라는 이름은 ‘찰스 루트위지’의 철자를

7) 캐럴이 베이커를 빌어 스스로를 풍자하고 있다고 보는 가드너는 그 근거로 베이커의 산만함, 가


명, 농담과 익살, 불면증 등을 든다(Gardner n34, 37-38). 이 모든 것은 캐럴의 전기적 사실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148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뒤섞어’ 만든 것으로, 찰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고 그의 예술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분야인 사진을 소개한 이도 바로 이 외삼촌이었다. 나아가 풀러 토리(Fuller 와


Torrey)

주디 밀러(Judy Miller) 는 이 시가 1873 년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다 한 환자가 찌른 칼에


목숨을 잃은 루트위지의 비극적인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Gardner, New

Preface xxiv).8) 한편, 베이커의 일화는 아니지만 5편에서 비버(Beaver)와 부처


(Butcher) 의 대화(52)가 (x+7+10)(1000-8)/922-17=x라는 수식으로 환원(Gardner n53,

53) 될 수 있는 것 역시 도지슨의 수학자적 면모가 투영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자칫


의미 없어’ 보이는 이들의 대화는 사실 내적인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이것은 벨

맨이 말하는 ‘3의 법칙’(the rule of ―“내가 세 번 말하는 것은 진실”(15)―에서


three)

도 확인된다. 이것은 “삼단논법에 대한 패러디”(Holquist 111) 이기는 하지만 이 시의 고


유한 체계로 기능하여 시의 진실(이란 것이 있다면) 생산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
스나크에는 질서와 논리를 중시하여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규칙을 따르고자
했던 도지슨의 일화가 곳곳에 반영되어 있으며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 또
한 마찬가지이다.
1832년 태어나 년 세상을 떠난 캐럴의 생애는
1898 1837 년부터 년까지 지속된 빅
1901

토리아 시대와 거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스나크는 ‘조심스레’ 살펴보면 동시대의 여


러 사회상을 담고 있다. 2편에서 벨맨은 “진짜 스나크를 . . . 알아볼 수 있는 틀림없는
표시 다섯 가지”(31), 즉 잘 느껴지진 않지만 바삭바삭한 맛, 늦잠 자는 버릇, 농담과 말
놀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근엄함, 이동식 탈의차(bathing-machines)를 좋아하는 것,
마지막으로 야망을 든다. 바다 바로 앞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을 수 있게 고안된 ‘이동식
탈의차’는 해변에서 매년 여름휴가를 보냈던 캐럴을 비롯한 빅토리아 중산층들에게 친숙
한 풍경이다. 게다가 삼촌이 언급했던 ‘철도 주식으로 스나크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은
당대의 철도 투기 열풍과 주가폭락이 빚어낸 자살 현상과 관련이 있다(Dormouse n.

pag.).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비평가들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 집중하여 스나크

8) 스나크를 광기의 상징으로, 부줌은 인생의 비합리적인 결말로 보는 토리와 밀러는 삼촌이 스나
크를 잡는 도구로 제시한 골무, 포크, 비누는 정신병원에서 늘 점검하던 물품들이었다는 근거를
제시한다(Gardner, “New Preface” xxv). 한편 가드너는 이 도구들을 스나크의 다섯 가지 특징
과 연관시키는데, 포크는 맛, 철도 주식은 부자가 되려는 야망, 웃음은 말놀이, 비누는 이동식 탈
의차 그리고 골무는 스나크의 머리를 쳐서 깨우는 데 쓰이는 것 같다고 본다(n47, 46). 이와 같
이 표면적으로 무의미해 보이는 스나크에는 사실 다양한 (논리적) 해석의 여지가 숨겨져 있
다.
한 혜 정 149

전체를 빅토리아 시대의 산물로 한정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캐럴이 궁극적으
로 자신을 둘러싼 옥스퍼드의 작은 사회로부터 길어 올린 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무의미였으며, 바로 거기에 캐럴 문학의 눈부신 성취가 있다. 즉 도마우스(Dormouse)의
말을 빌자면 캐럴의 우물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많고 많은 비슷한 차이들”(much of a

muchness)(Wonderland 77)9) 로 이것은 당대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획득하며 스나크의


바다로 이어진다. 혹은 사라진다. 따라서 스나크를 특정한 의미로 한정하려는 시도들
은 이 텍스트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다수 제공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주장 외에 다른
많은 의미들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장-자크 르세르클
(Jean-Jacques Lecercle) 의 지적대로, 스나크에서는 다른 해석을 버리고 한 해석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해석들이 동시에 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225).
스나크는 분명 빅토리아적 맥락에서 탄생하였으나 그 의미는 특정한 시대를 넘어서
무한히 변주되기에 그 의미들을 빅토리아 시대로만 한정하는 것은 ‘캐럴다운’(carrollian)
의미를 놓치는 일이 될 것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가 의미의 논리(The Logic of Sense) 전체에 걸쳐 주장
하듯이 캐럴 문학에서 의미는 상식적인 차원에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무의미 문학으로서,
앨리스와 스나크는 일상적 의미를 가로지르고 넘나드는 비규범적인 의미체계를 구
축한다. 캐럴은 재기 넘치는 말놀이를 행하거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문
학과 관습을 패러디하여 전혀 새로운 맥락을 창조해 내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지니고 있
다. 스나크에서도 이러한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헌시부터 서문을 거쳐 본문에 이
르기까지 캐럴은 텍스트 전반에 걸쳐 여러 겹의 다층적인 의미들을 지닌 단어와, 존재와,
맥락들을 창조해 낸다. 먼저 헌시부터 살펴보자면, 캐럴이 어린이 친구였던 거트루드 채
터웨이(Girtrude Chattaway) 에게 주는 이 이중 이합체(acrostic) 시는 스나크의 선원
들이 상륙하기 전에 작가의 서문보다도 앞서 독자들을 맞이한다. 캐럴의 “가장 재치있
는”(Gardner n1, 5) 이합체 시로 일컬어지는 이 시는 각 행의 첫 글자가 소녀의 이름을
이룰 뿐만 아니라 각 연의 첫 단어 역시 같은 이름을 구성한다. 10)
따라서 헌시는 ‘거트

9) 는 보통 ‘엇비슷한, 대동소이한’으로 옮겨진다. 가드너에 따르면 이는 아


much of a muchness

직도 사용되는 영국의 구어체 표현으로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이 아주 비슷하거나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음, 혹은 어떤 상황에서 널리 퍼진 유사한 현상들을 의미한다(Wonderland n14, 77).
그러나 본 글에서는 유사함만큼이나 다양한 차이의 함의에도 주목하여 위와 같이 옮기기로 한다.
10) 이합체 시, 특히 이 시처럼 이중 이합체 시는 번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문 그대로 제시한다.
이탤릭체와 밑줄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표기한 것이다.
150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루드 채터웨이’라는 이름이 가로·세로로 각각 엮여 만들어지지만 시의 의미는 한 소녀와


의 추억을 넘어서 순수한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쁨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기는 혹은 놀라는 것으로 밝혀진다. 앨리스 플레
즌스 리들(Alice Pleasance Liddell) 을 위해 쓴 앨리스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의 어린
이들을 위한 선물이자 수많은 비평과 해석의 근원이 되었던 것처럼, 스나크는 시간과
공간과 나이를 초월하며 그러면서도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달아난다. 홀퀴스트가 지적하듯
이 이 헌시는 스나크에서 단어들이 영어의 체계 안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캐럴이 세운 체계를 위해 작동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며(110), 이와 같은 독자적인
의미체계는 혼성어에서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헌시 다음에 등장하는 서문은 스나크를 관통하는 핵심어인 ‘혼성어’를 명시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모순적 조화라는 주제를 암시하고 있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작
가 스스로가 밝히듯 “어느 정도 재버워크의 시와 관련되어”(10) 있는 이 서문은 「재버워
키」 혼성어들에 대한 해설에 거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다. 캐럴은 거울에서 이미 존재
하던 두 단어들을 합하여 새로운 단어들을 창조해 내었는데, 예를 들어 ‘씩씩대
는’(fuming)과 ‘성난’(furious)을 조합하여 “씩성난”(frumious)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
단어들은 구체적인 의미들 때문만이 아니라 두 이질적인 요소들을 끌어안고 있기에 중요
하다(Flescher 133). 나아가 홀퀴스트는 이들이 두 정의의 조합일 뿐만 아니라 두 시스

Girt with a boyish garb for boyish task,

Eager she wields her spade: yet loves as well

Rest on a friendly knee, intent to ask

The tale he loves to tell.

Rude spirits of the seething outer strife,

Unmeet to read her pure and simple spright,

Deem, if you list, such hours a waste of life,

Empty of all delight!

Chat on, sweet Maid, and rescue from annoy

Hearts that by wiser talk are unbeguiled.

Ah, happy he who owns that tenderest joy,

The heart-love of a child!

Away , fond thoughts, and vex my soul no more!

Work claims my wakeful nights, my busy days —


Albeit bright memories of that sunlit shore

Yet haunt my dreaming gaze! (5)


한 혜 정 151

템, 즉 언어와 논리의 조합을 형성한다고 지적하면서 다시 3의 법칙을 상기시키는데, 독


특한 종류의 삼단논법으로서 혼성어는 두 이전 의미들을 일탈하는 새로운 의미 혹은 ‘진
실’로 귀결되는 것이다(113). 그리하여 밴더스내치(bandersnatch), 쥬브쥬브(jubjub), 가
장 가련비참한(mimsiest), 휘함불렀다(outgrabe) 11)
그리고 으쓱깡충한(galumphing) 같
은 어휘 혹은 존재들은 스나크에서 더욱 풍부한 육신을 얻어 살아 움직인다. 비버와
부처는 “칠판 위에서 삐걱거리는 연필”(48)처럼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는 ‘쥬브쥬
브’의 소리에 공포에 질리고, 뱅커(Banker)는 ‘밴더스내치’의 “씩성난 턱”(64)에 물려 기
절하고 마는가 하면 “가장 가련비참한 어조”(65)로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기존의 의미들
을 합한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이 혼성어-존재들은 텍스트 안팎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한편 재미와 즐거움과 공포와 절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낯설고 모순적인 효과 또한 자아
낸다. 다시 말해 스나크의 혼성어들은 언어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혼성성을 이끄는 역
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제드 메이어(Jed Mayer) 의 주장대로, 무의미의 언어는 “다
양한 주제를 재빨리 오가며 예기치 않은 연결점을 만들고 차이를 붕괴”(431)시킨다. 이
러한 언어를 통해 번성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혼종’이다. 따라서 메이어는 “전적으
로 문화적이거나 자연적이지 않은, 토착적이거나 이질적이지 않은, 또는 인간적이거나 비
인간적이지 않은 키메라”(431)에 캐럴이 붙인 용어가 ‘혼성어’였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스나크에서 정점을 이루는 이 모순적인 존재들은 당연히 관습적인 의미로 규정되지 않는다.
‘스나크’의 의미 혹은 의미들이 산출되는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한 이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작가인 캐럴 자신이다. 가드너는 스나크 100 주년 기념판의 서문에서 캐럴 자신이
설명한 스나크의 의미를 상세히 정리하고 있는데(xxxii-xxxiii), 12)
그 대답은 ‘모른다’와
스나크는 부줌이다’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답변은 스나크

를 출판한 지 20년이 지난 1896 년, 여전히 질문에 시달리던 그가 한 편지에서 쓴 것이


다.

11) 혼성어를 옮길 때 ‘가련비참한,’ ‘휘함불렀다,’ ‘씩성난’은 각각 김도훈의 논문 59, 51, 60쪽을 참


고하였다.
12) 첫째, 캐럴은 「무대 위의 ‘앨리스’」에서 스나크가 알레고리인지, 숨겨진 교훈이 있는지, 종교적
인 풍자인지 등의 수많은 질문에 대해 ‘나도 모릅니다!’라는 단 하나의 대답만이 있다고 말했
다. 둘째, 1876년 한 어린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스나크를 읽고 나서 스나크가 무엇
인지 알면 말해달라고 하는데, 자신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셋째, 1880년 스나크를 왜 설
명해 주지 않느냐는 한 소녀의 질문에 그는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당신은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나요?’ 다섯째, 스나크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그가 죽기
한 해 전인 1897년에 쓴 한 편지에 나오는데, 캐럴은 ‘그 스나크는 부줌이었다’고 단언한다
(Gardner, Preface xxxii-xxxiii).
152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스나크의 의미에 대해서 말인가요? 제가 의미한 건 무의미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자니 아주 곤란하군요! 하지만 알다시피, 단어들이란 . . . 우리가 표
현하고자 의미한 것 이상을 의미하지요. 그러니 한 권의 책은 작가가 의도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된답니다. 그러므로 어떤 그럴듯한 의미가 이
책에 있든, 저는 그것을 이 책의 의미로 매우 기꺼이 받아들일 거예요.
(Gardner, Preface xxxii-xxxiii).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스나크를 추적하며, 저마다 자신이 잡아 올린 것이 진정한 스나크


의 의미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가장 대표적인 혼성어로서 겹겹의 의미가 포개어진
스나크’를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환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유일하게 스나크 혹은

부줌을 발견하고 사라져 버린 베이커가 그 증거다. 캐럴이 스나크를 헌정한 거트루드


채터웨이를 만난 것은 1875 년 샌드오운(Sandown)의 “햇볕이 가득한 해변가”(5)였지만,
스나크는 그 해변에서 헤엄쳐 나와 망망대해로 사라졌다. 그러므로 스나크의 (단일한)
의미를 추적하고자 하는 작업은 결국 그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발
견하자마자 사라지게 된다는 결론 아닌 결론으로 귀결될 것이다.

Ⅲ. 베이커, 스나크, 부줌

그가 뱉으려 했던 외침 속에서,

웃음과 환희 속에서,
그는 소리 없이 돌연히 사라져 버렸다―
알다시피 그 스나크는 부줌이었니까” (70)

무의미는 확장된 의미의 혼성어라고 할 수 있다. ‘무’와 ‘의미’의 혼성은 의미의 부재


가 아니라 오히려 부재가 낳은 새로운 의미의 생성으로 이어진다. 스나크는 특히 이러
한 무의미 작용이 지배적인 텍스트이다. 이 혼성 텍스트에서 ‘무’와 ‘부재’는 부정적인 소
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들의 생산 조건이 된다. 우선 베이커를 비롯한 선
원들은 고유한 이름이 없고, 그들을 인도하는 해도는 백지이며, 스나크―특히 부줌―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침내 이를 목격한 베이커마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 부재들이 텍스트를 의미 없음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르세르클의 말대로
한 혜 정 153

무의미는 단일한 해석으로 제한되지 않는 다중 의미, 즉 의미의 증폭 효과를 지니고 있


기 때문이다(20). 마찬가지로 이름―고유한 자기동일성―을 상실한 베이커와 결코 포착
되지 않는 스나크/부줌은 ‘무’를 포함한 어떠한 단일한 의미로도 환원되지 않고 고유한
내적 체계에 따라 다층적인 의미들을 증폭해 나간다. “있을 법하지 않은 선원들이 상상
도 못할 존재를 찾는 불가능한 항해”(Gardner, 를 그리는 스나크는 관
Preface xxxii)

습적인 규범과 의미와 해석에서 벗어나 있고 또 그렇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스나크의 ‘무’의미를 생산하는 첫 번째 요소는 이름이 없는 혹은 이름의 머리글자가
모두 인 선원들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고유한 이름 대신
B B로 시작하는 직업으로 호
명된다. 즉 그들은 벨맨, 뱅커, 비버, 베이커, 부처 외에도 부츠(Boots), 보닛 메이커
(maker of Bonnets), 배리스터(Barrister), 브로커(Broker), 빌리어드 마커
(Billiard-marker) 이다. 그러나 이들의 직업 역시 그 본연의 역할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
어, 선장인 벨맨은 종종 배를 거꾸로 가게하고 부처는 비버만을 죽이며 비버는 레이스를
뜨는 식이다. 특히 베이커는 웨딩케이크밖에 만들 줄 모르지만 배에는 그런 재료가 없고,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나이를 표상하는 42개의 상자와 더불어 그 위에 써 둔 이름까
지 잃어버린 그는 이런저런 다른 호칭으로 불린다. 선원들의 이름 아닌 이름이 모두 B

로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이 있어 왔다. 일례로 소토는 이 B가 존재(Be)


에 상응한다고 보았다(Gardner, New Preface xxiv). 그러나 아마도 가장 캐럴다운 답
은 “그들이 모두 B 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B 로 시작하기 때문”(Holquist 111)

이라는 재치 있는 주장일 것이다. 홀퀴스트의 지적은 캐럴의 무의미가 구축한 독자적인


체계를 암시한다. 원더랜드의 당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단어들의 머리글자인 M 이 무
작위로 선택되었으나 반복되며 일정한 패턴을 형성했던 것처럼(Flescher 130), B로 시작
하는 선원들의 이름은 내적인 일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누구라도 머리글자가
B로 시작한다면 스나크를 추적할 수 있지만, 그들은 특정한 인물로 환원되지 않는다. 만
약 이 B 를 존재(Be)로 읽을 수 있다 해도, 선원들이 형성하는 존재의 사슬은 비-존재
(non-being), 즉 부줌(Boojum)을 만날 운명이기 때문이다(Lecercle 226-27). 스나크
에서 이 존재와 의미의 사슬은 실비와 브루노에 나오는 포투나투스의 지

갑’(Fortunatus’s purse)13) 처럼 연결과 사라짐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이어져 나간다.


이 이름 없는 선원들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해 볼 만한 인물은 베이커이다. 국외

13) 2권 7장에 나오는 이 지갑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독특한 방법으로 접어 만드는 것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쪽의 바깥 면이 다른 쪽의 안쪽 면과 이어져 있다.


154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자”(odd man out)(Lecercle 227) 인 그는 캐럴의 자화상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아예


이름을 잊어버린/잃어버린 그를 특정 인물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베이커는 배에 오를
때 우산, 시계, 보석, 반지, 옷 등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린다. ‘마흔 두 개’의 상자를 주의
깊게 포장해서 “모두 자기 이름을 똑똑히 적어 놓았[던]”(20) 그는 상자들도 고스란히
해변에 남겨두고 와 버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20)
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이!” “날 튀겨!” “내 가발 좀 찢어줘!”(Fritter 뭐
my wig) “

라더라!”(What-you-may-call-um) “이름이 뭐였지!” “누구더라!”(Thing-um-a-jig)(21)


등 이런 저런 다른 부름에 답한다. 또한 친구들은 그를 “양초 동강”으로, 적들은 “구운 치
즈”(21)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름과 나이가 소거되어 있고, 동시에 다양한 관계의 맥락
속에서 여러 호칭이 가능한 베이커는 고정된 자기동일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들뢰
즈가 지적하듯이 앨리스가 거울에서 “이름의 상실”이라는 “반복되는 모험”(3)을 행하
게 된 것은 상식과 양식만이 지배하는 의미와 주체와 세계를 재검토하기 위해서였다. 마
찬가지로 이름 없는 베이커와 선원들은 관습적 기호 일반에 저항하기 시작하고, 따라서
이들을 이끄는 지도가 백지인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 메르카토르 도법의 북극점, 적도,


회귀선, 기후대, 자오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지?”
이렇게 벨맨이 외치겠지. 그러면 선원들은 답하겠지.
“그런 건 다 관습적인 기호일 뿐이지!”

“ 다른 지도들은 섬과 곶이 나오는 이런저런 모양이지만,


우리는 용감한 선장에게 감사해야지!”
이렇게 선원들은 단언하겠지) “선장이 사온 것이 최고이니―
(

완벽하고 순수한 백지!”


. . . . . . . . . . . . . . . . . . . .

그러나 위험은 지나갔다―그들은 마침내 상륙했다.


상자와 말-가방과 자루들과 함께.

“What’s the good of Mercator’s North Poles and Equators,

Tropics, Zones, and Meridian Lines?”

So the Bellman would cry: and the crew would reply

“They are merely conventional signs!


한 혜 정 155

“Other maps are such shapes, with their islands and capes!

But we’ve got our brave Captain to thank:”

(So the crew would protest) “that he’s bought us the best —
A perfect and absolute blank!” (27, 필자 강조)
. . . . . . . . . . . . . . . . . . . .

But the danger was past —they had landed at last,

With their boxes, portmanteaus, and bags: (30, 필자 강조)

이 선원들에게는 일반적인 항해에 필수적인 “북극점, 적도, 회귀선, 기후대, 자오선”은


“관습적인 기호”(27)에 불과하다. 미지의 존재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그들에게는 “가로
돛대와 키가 뒤섞이는,” 즉 배가 “스나크되는”(29)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므로 스나크를
잡으려는 그들을 인도하는 해도가 ‘백지’이며, 그들이 운반하는 것이 여러 의미가 하나로
꾸려진 ‘말-가방’(portmanteau)인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백지의 지도가 그들에게 방향
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가 의미를 부여하는 이 장르를 쉽게 연상시킨다. 즉 지도에게 의
미를 부여하는 것은 공백이기에, 그들은 비관습적인 항해를 떠나 어디로든 ‘거꾸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백지는 무사히 그들을 스나크의 섬으로 인도한다.
스나크에서 ‘무’와 ‘의미’의 혼성이 새로운 의미들을 자아내는 것은 스나크에게서 절
정에 이른다. 비록 선원들은 스나크를 좇아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도 이 스나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우리는 스나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고 선원들도 모르는 것
이 확실하다. 헨리 홀리데이(Henry Holliday) 가 그린 삽화들에서도 스나크의 그림은 빠
져 있는데 캐럴은 스나크의 모습을 독자의 상상에 맡겨 두고 싶었던 것이다(Cohen
407). 알려진 것이라고는 다섯 가지의 특징에 잡는 방법뿐이지만 이마저도 부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 미지의 스나크는 당연히 혼성어인데, 표면적으로 이는 ‘스네일’(snail)
과 ‘샤크’(shark) 혹은 ‘스네이크’(snake)가 합쳐진 말로 보인다. 14)
한편 스티븐 바
(Stephen Barr)는 스나크가 ‘스날’(snarl)과 ‘바크’(bark)가 하나로 합쳐진 단어라 보며,
조셉 코흐(Joseph Keogh) 는 이것이 이 야수를 실제로 포획하는 방법(묶다, 조이다, 비

14) 가드너의 해설에 따르면 ‘스나크’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캐럴의
어린이 친구 베아트리스 해치(Beatrice Hatch)는 그가 한때 스나크는 ‘스네일’과 ‘샤크’의 혼성
어라 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필리스 그린나크르(Phyllis Greenacre)는 ‘스네이크’가 이 혼성
어 사이로 기어들어왔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스키트(Skeat)의 어원학 사전(1882)에 따르면,
‘스나크’는 현재의 snare 처럼 묶다, 비틀다를 뜻하는 세 아리아어(Aryan) 어근을 가지고 있다.

캐럴이 이 아리아 어근을 알고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Gardner n4, 15).


156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틀다)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고대 게르만어라는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Gadner n4,

15). 그러나 이 표면적인 그리고 제각각인 의미들의 총합은 결코 스나크를 규정하지 못


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비평가들은 죽음, 부, 행복 등 저마다의 알레고리로 스나크의 의
미를 해석하려 애써 왔다. 그러나 의미가 합의되지 않는 혼성어로서, 스나크는 마치 자
신이 묘사되는 장르와도 같이 범주와 정의를 거부하고 달아난다. “달팽이와 상어 사이의
혼종으로 어떠한 단일한 환경에도 속하지 않는, 파악하기 어려운 동물”로 스나크를 규정
하는 메이어는 “길들여진 동시에 위협적으로, 집 안의 정원과 풍랑이 이는 바다를 손쉽
게 오가는 스나크는 끝없는 다양성을 지닌 담론들의 층위에서 행해지는 사냥을 위한 적
절한 ‘미끈유연한’(slithy) 상징”(431)이라고 주장한다. 결코 단일한 범주로 환원되지 않
는 혼종적 정체성을 지닌 스나크는 무한히 가변적인 것으로 “무의미의 화신
(emblem)”(Lecercle 230) 이라 할 법하다.
그렇다면 스나크 가운데 가장 무서운 족속으로, 발견하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게
하는 ‘부줌’ 은 어떨까? 스나크와 마찬가지로, 부줌은 의미화 작용에 포획하고자 하는
15)

비평가들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러한 욕망은 스나크/부줌을 ‘무’로 환원하고자


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가드너는 부줌을 죽음 이상, 모든 추구의 종말이라 보았
다. 그는 “캐럴의 부줌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공허함(void), 우리가 기적
적으로 주조되는 위대한 공백으로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것에 삼켜진다”(Preface xxxix)

고 주장한다. 부줌을 의미의 공간에 제한하지는 않았지만, 가드너는 이를 다시 공허함/공


백/무의 공간에 가두고자 한다. 그러나 부줌은 심지어 ‘무’ 조차로도 환원되기를 거부하
는 독자적인 의미 체계의 생산 작용 자체로 보아야 한다.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 은 스나크, 특히 부줌을 “의미 없는 텅 빈 기호”로 간주하여 이는 “단지 그들
고유의 밀도와 과잉을 지시할 뿐”(40)이라고 본다. 잭슨은 스나크를 죽음의 알레고리적
인 표현으로 보는 데 반대하면서, 그것은 곧 이 시가 내적으로 저항하는 환원적인 개념
화 도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144). 마찬가지로, 르세르클 역시 무의미의 철학
(P hilosophy 에서 스나크를 알레고리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메타-
of Nonsense )

알레고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메타-알레고리란 “자유롭게 유영하는

15) 역시 가드너에 따르면 에릭 패트리지(Eric Partridge)는 부줌이 Boo! fee, fo, fi, fum!을 합한
단어라고 주장하였다. 그린나크르는 Boo!가 boohoo 또한 암시한다고 보기도 했고, boogieman
을 언급한 사람도 있었다. 린돈은 ‘부줌’이 1882년 런던 동물원에 있었던 거대하고 놀라운 코끼
리 ‘점보’(Jumbo)의 철자를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다(Gardner n30, 34-35).
한 혜 정 157

차이들로서의 언어학적 기호에 대한 알레고리”로, 예를 들자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텅 빈 사각형이 전체 구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231). 마치 공백이 지도
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스나크가 플롯을 전개하는 것처럼, 베이커의
사라짐이 텍스트의 (비결정적인) 결말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층의 (무)의미가 교차하
는 혼성 텍스트 스나크는 한 겹의 의미에만 집중하는 알레고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
다. 다만 그 알레고리들이 작동하게 하는 독자적인 구조와 체계를 내포할 뿐이다. 따라
서 부줌은 ‘죽음’이나 ‘무’를 포함하는 어떠한 개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무한한 의미, 즉
무의미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그렇다면, 스나크의 의미를 알 수 없다면 혹은 이것이 절대적인 메타포로서 단
지 그 자신만을 의미한다면(Holquist 116), 이 텍스트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가 없다. 무한한 의미라는 것이 해석의 포기나 불가능
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다시 도지슨/캐럴에게로 돌아와 찾
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어린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체스나 백개먼(Backgammon)
같은 게임을 하고 또 스스로 새로운 게임들을 창조하기를 즐겼던 이 작가에게로 말이
다.16)
질서와 의미와 규범으로 가득 찬 빅토리아 조에 살았던 그는 누구보다도 그 관습
을 존중하면서도 또 누구보다도 더 그 관습의 허구성을 통렬히 깨닫고 있었다. 그는 교
훈으로 가득 찬 삶과 문학에 재기발랄한 말놀이로 맞섰다. 동시에 삶이 꿈만큼이나 파악
하기 힘들다고 보았던 캐럴은 그 앞에서 침묵하기보다는 자신의 텍스트 안에서 그들 두
고 게임을 벌이기로 마음먹는다(Kutty 287). 스나크 역시 마치 게임과도 같다. 게임
은 나름의 규칙을 지니고 있지만, 누가 언제 행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매번 달라진다.
무의미 역시, 독자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으나 그 의미는 관습적인 틀 속으로 수렴되지
않고 독자마다 다층적으로 “확산”(proliferation)(Lecercle 된다. 결과는 미지의 시간
231)

과 공간 속에 숨겨져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게임과 무의미의 묘미이다. 그래서


게임은 즐거우며, 무의미를 좇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것이 베이커가 마침내 스나크-부
줌을 발견하고 한편으로는 침묵과 절망 속에서, 또 한편으로는 “웃음과 환희”(70) 속에
서 사라진 이유이다. 그러나, 다시, 이 사라짐의 결말이 의미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
다. 캐럴과 공동작업을 한 홀리데이가 그린 베이커의 삽화(68)가 그 생생한 증거이다.
베이커의 ‘사라짐’을 묘사한 이 삽화의 왼편에는 벨맨의 종이 울리고, 중간에는 베이커의

16) 캐럴은 다양한 게임과 놀이를 즐겼고 스스로 여러 가지 단어 게임, 두뇌 게임, 수수께끼 등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한편 원더랜드는 카드 게임, 거울은 체스에 토대를 두고 있기도 하다.
158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얼굴이 보이며, 아래에는 스나크의 손(?)도 보인다. 베이커는


사라졌지만, 한편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부재하지만 또한 존
재하는 모순과 역설을 한눈에 보여주는 이 삽화는 스나크의
무의미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무와 부재와 공백과 사
라짐이 의미를 낳는 스나크는 그 의미를 추적하는 게임을
제안하고,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이 그
게임에 동참한다.

Ⅳ. 나가며

“스나크는 특이한 존재라,


평범한 방법으로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은 다 해 보고, 모르는 것도 다 시도해라.
오늘 단 한 번의 기회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 (42)

오늘날 인도의 벵갈만에는 스나크 섬(Snark 이 있으며 근처에는 부줌 바위


Island)

(Boojum Rock) 가 있다. 또한 부줌은 물리학과 그래프 이론의 한 용어가 되기도 하였다
(Gardner n30, 34). 한편 미 공군은 냉전 초기 개발한 아음속 미사일에 스나크, 초음속
미사일에 부줌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아담 갑닉(Adam 은 이러한 위
Gopnik)

협과 두려움의 이미지를 과 연관시킨다. 우리는 현재의 스나크가 최후의 부줌이 될


9/11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번영하는 사회는 년 어느


2001

치명적인 아침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Gopnik xx).

사라짐의 모티브를 지닌 스나크는 역설적으로 이처럼 아직도 우리의 곁을 맴돌고 있다.


이는 스나크를 일정한 의미 속으로 포획하려는 욕망이 아직도 건재함과 동시에 그 포획
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동시에 암시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출판된 스나크가 오
늘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 작품이 캐럴과 도지슨, 웃음과 절망, 시와 산문, 논
리와 무의미가 혼재하는 혼성 텍스트로서 단일한 의미와 범주에 한정되지 않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역설적인 자질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하다. 마치 빛과도 같이, 이 시가
지닌 사상의 스펙트럼은 독자들의 프리즘을 지나며 굴절하고 흩어지기에(Gopnik xvi),
한 혜 정 159

스나크는 우리가 어떤지를 비추어 보는 ‘로르샤흐 테스트’와도 같다(Kennedy 71). 그리


고 스나크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독자들을 그 테스트 혹은 게임으로 초
대한다.
스나크를 마주한 독자들의 첫 반응은 아마도 “「재버워키」를 접한 앨리스의 반
응”(Kutty 과도 같을 것이다. 앨리스는 이 시를 들으니 마음이 생각들로 가득 차는
287)

것 같지만 이 생각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고 고백한다(Looking-Glass 150). 마찬가지


로 스나크의 무의미는 독자들의 마음을 의미로 가득 채우는 한편 어떤 의미인지 쉽게
규정할 수 없게 한다. 무의미는 의미 체계에 행해진 위반이기 때문이다(Holquist 114).

캐럴이 이러한 위반을 행한 이유는 관습적 규범에 도전하기 위해서였고, 무의미를 채택


한 것은 이것이 즐거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 즉 우리는 베이커의 용기, 웃음, 노력을 갖추어야 스나크를 추적할 수
있다. 홀퀴스트가 비판하듯 스나크를 알레고리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오래 전에 “열린
잠재성”(Holquist 110), 다시 말해 어린이의 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플레슈어 역시
우리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읽히는 무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어린이의 신선함”이나 “비
판적인 마음”(Flescher 144) 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나크는 ‘특이하고’ 무의미한 존재
이기에, ‘평범한 방식으로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이의 열린 잠재성을 추구하
는 한편, 관습에 저항하는 비판적인 마음을 지니고 게임에 임해야 한다. 따라서 “매일
밤 어두워진 다음이면 / [우리]는 꿈같은 무아지경 속에서 / 스나크와 싸운[다]. / 희미
한 어둠 속에서 그것에게 푸성귀를 먹이고/ 성냥불을 긋는 데 사용한[다]”(39).
《신라대》
160 혼성 텍스트의 (무)의미: 루이스 캐럴의 『스나크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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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혜정 17)

소속: 신라대학교
주소: 부산시 북구 화명신도시로 145, 102-1005

E-mail: han@silla.ac.kr

원고접수일: 2015 년 월
9 일
30 수정일: 2015 년 10 월 21일
게재확정일: 2015 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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