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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역과해詳譯科解 금강경金剛經우리말해설경전20231013
상역과해詳譯科解 금강경金剛經우리말해설경전20231013
삼장역회三藏譯會 용성龍城
김호귀* ✽ 옮김
(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全部大義綸貫)
(覺之應世에 先示本分)
수인구(誰人咎)오 차시(此是)삼백육십골절(三百六十骨節)과
팔만사천모공(八萬四千毛孔)을 진저흔번(盡底掀飜)하야
돈방제인면전(頓放諸人面前)이니라.
창각(彰覺)본회(本懷)이라 하시니,
대각께서 출현한 지 천 년 이후에 운문 성사2)는 당시의 대중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깨달음의 본뜻을 드러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운문이 상식에 반하는 가르침을 활용하여(逆椎倒用) 대중의 본분을 알려 준 것이며 또한 부처님의 본뜻을
드러낸 것이다.
(爲度衆生하야 施設方便)
승당자(承當者)가 희(希)라
부득이권설방편(不得已權設方便)하사
어록야원(於鹿野園)에 설사제법문(說四諦法門)하사
타파아공편진지의(打破我空偏眞之義)하시니
수보리는 권현소승자(權現小乘者)라.
대각께서 진묵겁4) 이전에 일찍이 정각을 이루셨지만
그는 유상 유주 유착 유념(有相 有住 有着 有念)이요,
(每以說經에 先以平常示人)
일용동정(日用動靜)이 별무기특(別無奇特)이로다.
뢰유수보리간파(賴有須菩提看破)하야
희유세존(希有世尊)하 한 대문(大文)
각지혜일(覺之慧日)이 광휘어만상(光輝於萬像)이로다.
의인자(疑人者)는 의인불진(疑人不眞)이니,
불지나개시진각(不知那箇是眞覺)이요,
의법자(疑法者)는 재설유법(纔說有法)이라가 각우설공(却又說空)하니
불지나개시진법(不知那箇是眞法)이요,
의회영진(疑悔永盡)하고 안재반야(安在般若)이니
차경지소귀자야 (此經之所歸者也)니라.
이 『금강경』은 현재 법회에 참여한 대중의 의심을 타파하고 믿음으로써 깨달음에 들어갈 것을 지향한다.
색신과 법신 및 큰 몸과 작은 몸을 듣고 느끼면서도
(此經始終大義總判)
“여세량마(如世良馬)가 견편영(見鞭影)이추풍천리(而追風千里)인달하야,
회마(會麽)아 작약화개정사안(芍藥花開正士顔)이요.
종람엽산야차두(棕櫚葉散夜叉頭)니라.
정시친견여래일편고심순순지자(正是親見如來一片苦心淳淳之慈)로다.
수보리(須菩提)는 권현소승자(權現小乘者)라
특기종종의단(特起種種疑端)하야 파시회법중지의운(破時會法衆之疑雲)하고
미지안신립명처고(未知安身立命處故)로 초문안신항복지법(初問安身降伏之法)하시니,
도차(到此)하야 삼신일체(三身一體)요
신토(身土)가 개공(皆空)이라
위인연설(爲人演說)이라 하시니라
이인욕행(以忍欲行)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이인아양망(以人我兩忘)으로 파지(破之)하시며
답운약의심욕계(答云若擬心欲契)인댄 전전차과(轉轉差過니라).
우각부시야(又却不是也)니 문자성공(文字性空)이라.
학자(學者)는 관세심찰(細觀深察)이어다.
이하(此下)는 내파미세아법이집(乃破微細我法二執)하니라.
차의소오반야(次疑所悟般若)에 존견성각지진인(存見成覺之眞因)이어늘
이무법무아(以無法無我)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의여래유오안(次疑如來有五眼)이어늘
이지중생심위안(以知衆生心爲眼)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의인과필무(次疑因果必無)면 의시무각(宜是無覺)이어늘
이불응구족색상견(以不應具足色相見)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이무법가설(以無法可說)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의법신전공(次疑法身全空)이면 하언수일체선법(何言修一切善法)하야
증보리(證菩提)오 하야늘
이무소득평등(以無所得平等)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이달반야최승(以達般若最勝)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이인아양망(以人我兩忘)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이전륜성왕(以轉輪聖王)으로 파지(破之)하시며,
기비단멸(豈非斷滅)가 하야늘
이불단불멸(以不斷不滅)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의현견여래행주좌와(次疑現見如來行住坐臥)가
기비여래지아야(豈非如來之我耶)오 하야늘
일이지견(一異之見)을 미망(未忘)하고,
삼신일체지의(三身一體之義)를 미계고야(未契故也)라.
이미진세계(以微塵世界)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의평등법신(次疑平等法身)이 일체개비(一切皆非)인댄
우하이각설사상견야(又何以覺說四相見耶)오 하야늘
이각비사상견(以覺非四相見)으로 파지(破之)하시니라.
소집(所執)이 견고난파(堅固難破)고(故)로,
령견본지법신진체(令見本智法身眞體)하니라.
착상행시(着相行施)로 이구복덕(以求福德)이어늘
각이 이무주(以無住)로 파지(破之)하시며,
이무토가엄(以無土可嚴)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복덕(次執福德)하야 이구보상(以求報相)이어늘
이구족색신(以具足色身)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여래(次執如來)가 유삼신상(有三身相)이어늘
이응화(以應化)는 비진(非眞)이요,
차집법신유상(次執法身有相)이어늘
이법신비상(以法身非相)으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법신유실아(次執法身有實我)어늘
이일체법무아(以一切法無我)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삼신정유(次執三身定有)어늘
이비일비이(以非一非異)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법신불회설법(次執法身不會說法)이어늘
이삼신일체(以三身一體)로 파지(破之)하시며,
차집법신(次執法身)은 적멸(寂滅)이어니
여하시설(如何示說)고 하야늘,
이육유가관(以六喩假觀)으로 파지(破之)하시되,
소견지망(所見之妄)이 기공(旣空)하고
능견지망(能見之妄)이 역민(亦泯)하니
능소기공(能所旣空)에 공역공(空亦空)이로다.
직투법신향상일로(直透法身向上一路)고(故)로
거심즉착(擧心卽錯)하고 동념즉승(動念卽乖)하나니,
반야묘지(般若妙旨)가 극어시(極於斯)니라.
바람을 좇아 천 리를 달려가듯이
수보리는 세존이 자리를 펴고 좌선하는 모습에서 간파하고
모든 보살을 잘 부촉하십니다.”
순순한 자비(淳淳之慈)이다.
(31) 다음으로 복덕에 집착하여 복덕의 과보에 대한 행상을 추구하는 경우는 32가지를 구족한 색신상을 통하여
그것을 타파해 주신다.
(32) 다음으로 여래에게 삼신상이 있다고 집착하는 경우는 응화신은 진신이 아니고 보신은 분별상을 벗어나 있다
는 가르침으로 그것을 타파해 주신다.
(33) 다음으로 법신에도 형상이 있다고 집착하는 경우는 법신은 분별상이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그것을 타파해 주
신다.
(34) 다음으로 법신에도 실아實我가 있다고 집착하는 경우는 일체법이 무아라는 가르침으로 그것을 타파해 주신
다.
(35) 다음으로 삼신에도 정해진 형상이 있다고 집착하는 경우는 삼신은 모두 동일하지도 않고 각각 다르지도 않
다는 가르침으로 그것을 타파해 주신다.
(36) 다음으로 법신은 언설의 설법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집착하는 경우는 삼신은 한 몸이라는 가르
침으로 그것을 타파해 주신다.
(37) 다음으로 법신은 적멸인데 어떻게 설법으로 드러내겠는가 하고 집착하는 경우는 여섯 가지 비유의 관찰30)
을 빌려서 그것을 타파해 주신다.
이처럼 갖가지로 그때그때의 의심을 타파해 주시니 일체의 모든 유위존재는 무상하고(一切皆非)31), 모든 유위상
은 소멸되며, 일심이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로써 곧바로 법신의 향상일로32)를 터득한 까닭에 분별심으로 어찌하려고 하면 곧 어지러워지고 분별념으로
어찌하려고 해도 곧 어그러지고 만다.
(覺敎理가 不止於此)
유설법화(又說法華)하사 원현법계사상(圓現法界事相)하야
회삼귀일(會三歸一)케 하시며
소위원자교(所謂圓字敎)가 시야(是也).
특설교외별전(特設敎外別傳)의 지(旨)하시니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楞嚴)』의 능엄삼매(大定)로써
또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圓覺)』을 설하여
귀어일개후물(歸於一個朽物)이라
발문어전선사찰(發文於全鮮寺刹)이로되
불시무심(不啻無心)이라.
역내비방자다의(亦乃誹謗者多矣)로다
우선한문(又鮮漢文)으로 역금강능엄원각(譯金剛楞嚴圓覺)이러니
갱이상역주해과목(更以詳譯註解科目)하노라.
인비실무(印費實無)를 내하내하(奈何奈何)오.
이고(以故)로 여역금강능엄원각(余譯金剛楞嚴圓覺)이각필(而擱筆)하노라.
지금 내 나이가 예순 살이 되고 보니
또한 비방하는 자가 많았다.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
세존(世尊)은 현답(現答)하심이니라.
‘마하’는 광대무변한 우리네 자성의 절대적인 대大(크고 넓으며 끝없고 많으며 훌륭하고 오묘하다는 뜻이다.)를 말
한다.
여시아문(如是我聞)하사오니
(覺之住世에 平常示人)
걸식어기성중(乞食於其城中)하사,
차제걸이(次第乞已)하시고, 환지본처(還至本處)하사,
반식결(飯食訖)하시고, 수의발(收衣鉢)하시고,
세족이(洗足已)하시고, 부좌이좌(敷座而坐)러시니,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시간41)이 되자
이것은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자리를 펴고 앉는 것이
알겠는가.
맑은 물은 돌멩이 위로 흘러가도다
(幸有須菩提點破)
즉종좌기(卽從座起)하사, 편단우견(偏袒右肩)하시고,
우슬착지(右膝着地)하시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시와,
이백각언(而白覺言)하시대, 희유세존(希有世尊)이시여.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치고
(정시친견여래순순지자(正是親見如來淳淳之慈))
여래(如來)가 선호념(善護念)제정사(諸正士)하시며
선부촉(善付囑)제정사(諸正士)이시니이다.
공란의정사空亂意正士45)라 불린다.
모든 정사正士를 잘 호념(護念)하시고
세존(世尊)이시여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이는
응운하주(應云何住)하며 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이닛고,
이에 더 이상 나아가려고 해도 새로 증득한 것은 없고
이에 공란의정사空亂意正士45)라고 말한다.
(返取善護念付囑之意하야 答不必別求)
각언(覺言)하사대 선재선재(善哉善哉)라!
수보리(須菩提)야 여여소설(如汝所說)하야,
여래(如來)선호념(善護念)제정사(諸正士)하시며,
선부촉(善付囑)제정사(諸正士)하시나니,
여금체청(汝今諦聽)하라 당위여설(當爲汝說)호리라.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이는
응여시주(應如是住)하며, 여시항복기심(如是降伏其心)이니라.
혜가가 여쭈었다.
달마가 말했다.
단제정사미령기지고(但諸正士未領其旨故) 갱욕락문(更欲樂聞)
각고(覺告)수보리(須菩提)하사대
제정사(諸正士)가 응여시항복기심(應如是降伏其心)이니
소유일체중생지류(所有一切衆生之類)에
약비무상(若非無想)을 아개령입무여열반(我皆令入無餘涅槃)하야,
이멸도지(而滅度之)이니,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호대
실무중생(實無衆生)이 득멸도자(得滅度者)니,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여정사(若正士)가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즉비정사(卽非正士)이니라.
수보리가 위에서 “마땅히 어떻게 안주하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한 것에는 수보리에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어느 때에 모두 제도할 것인가.
만약 이와 같다면 어떻게
복차(復次)수보리(須菩提)야
행어보시(行於布施)니
소위(所謂) 불주색보시(不住色布施)와
불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味觸法布施)니라
불주어상(不住於相)이니라.
(疑云若不住相이면 何以有福고)
기복덕(其福德)이 불가사량(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동방허공(東方虛空)을 가사량불(可思量不)있겠느냐.
불야(不也)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수보리(須菩提)야 남서북방사위상하허공(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을
가사량불(可思量不)있겠느냐.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역복여시(亦復如是)하야 불가사량(不可思量)이니라.
또한 그와 같이 불가사량하다.
수보리는 보시를 하되 저 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서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상을 떠난 복이 크다는 것은 모르는구나.
가히 상에 머물 것이 없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聞衆生空三輪體寂하고 疑因虛設)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가시신상(可以身相)으로 견여래(見如來)불(不)아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불가시신상(不可以身相)으로 득견여래(得見如來)니이다.
각고(覺告)수보리(須菩提)하사대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니라.
볼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하다.
이제 이미 중생이 공하여
보시를 할 자와 보시를 받을 자와
그 보시물이 모두 공한 것이라면
그런데 지금 여래를 보면
여래께서 일러 말씀하셨다.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하다.
이렇다 저렇다 함을 모두 얻을 수가 없는 바로
(疑無相因으로 契無相果)
각고(覺告)수보리(須菩提)하사대
막작시설(莫作是說)하라.
여래멸후후오백세(如來滅後後五百歲)에 유지계수복자(有持戒修福者)면,
어차장구(於此章句)에 능생신심(能生信心)하야,
이차위실(以此爲實)하리니 당지시인(當知是人)은
불어일각이각삼사오각(不於一覺二覺三四五覺)에 이종선근(而種善根)이라.
이어무량천만각소(已於無量千萬覺所)에 종제선근(種諸善根)일새
문시장구(聞是章句)면 내지일념(乃至一念)이라도
생정신자(生淨信者)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래실지실견(如來悉知悉見)하나니
시제중생(是諸衆生)이 득여시무량복덕(得如是無量福德)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시제중생(是諸衆生)이
무복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무법상(無法相)하며 역무비법상(亦無非法相)이니라.
즉위착아인중생수자(卽爲着我人衆生壽者)오.
약취법상(若取法相)이라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卽着我人衆生壽者)니,
하이고(何以故)오 여취비법상(若取非法相)이라도
즉위착아인중생수자(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이시의고(以是義故)로 여래상설(如來常說)하사대
법상응사(法尙應捨)어든 하황비법(何況非法)이따녀.
이와 같은 의심이 일어나자
유상과有相果에 집착하자
그 뜻이 대단히 깊은 까닭이다.
(覺示覺之知見)
그리하여 진실을 믿는 자는
그러므로 나는 결코 법에 집착하지 말고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如來)가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야
여래(如來)가 유소설법(有所說法)야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여아해각소설의(如我解覺所說義)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역무유정법(亦無有定法)이 여래가설(如來可說)이니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覺이 雙遣覺法知見)
(解無覺法이나 疑福殊勝)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기복덕(其福德)이 녕위다불(寧爲多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심다(甚多)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기복덕(其福德)이 즉비복덕성(卽非福德性)일새,
위타인설(爲他人說)하면,
수보리(須菩提)야, 일체제각(一切諸覺)과
급제각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及諸覺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이
개어차경출(皆從此經出)이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覺示無相之福爲最)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聞覺法俱無可得하고 疑修因結果)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수다원(須陀洹)이 능작시념(能作是念)호대
아득수다원과(我得須陀洹果)불(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불입색성향미촉법(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시명수다원(是名須陀洹)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사다함(斯陀含)이 능작시념(能作是念)호대,
아득사다함과(我得斯陀含果)불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사다함(斯陀含)이 명일왕래(名一往來)로대,
이실무왕래(而實無往來)할새 시명사다함(是名斯陀含)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아나함(阿那含)이 능작시념(能作是念)호대,
아득아나함과(我得阿那含果)불(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시고명아나함(是故名阿那含)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아라한(阿羅漢)이 능작시념(能作是念)호대,
아득아라한도(我得阿羅漢道)불(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실무유법(實無有法)이 명아라한(名阿羅漢)이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약아라한(若阿羅漢)이
즉위착아인중생수자(卽爲着我人衆生壽者)니다.
세존(世尊)이시여, 각설(覺說)아득무쟁삼매(我得無諍三昧)하야,
시제일리욕아라한(是第一離欲阿羅漢)이니다.
(세존(世尊)이시여)59). 아불작시념(我不作是念)호대,
아시리욕아라한(我是離欲阿羅漢)이라 하나이다.
세존(世尊)이시여, 아약작시념(我若作是念)호대,
아득아라한도(我得阿羅漢道)라 하면,
세존(世尊)이 즉불설수보리(卽不說須菩提)가
시락아란나행자(是樂阿蘭那行者)라 하시련마는,
이수보리실무소행(以須菩提實無所行)일새,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자’라고 불리지만 들어간 것이 없는데,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간 것이
없는 것을 수다원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설법이라 해도 설할 법이 없고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覺示無住眞宗)
본래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가 없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사다함은 한번 왕래한다는 말인데 욕계에 와서 단번에 미혹을 단절하고 이후로는 아주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며, 아나함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뜻이고, 아라한은 모든 법이 일심에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육근이 인식의 주체인 인간 존재라면 육경은 인간의 환경과 그를 둘러싼 현상으로, 모든 우주는 이 십이처에서
비롯되어 이 십이처로 들어간다.
각고(覺告)수보리(須菩提)하사대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如來)석재연등각소(昔在燃燈覺所)하야
어법(於法)에 유소득(有所得)불(不)아
불야(不也)이니다63). 세존(世尊)이시여
여래(如來)재연등각소(在燃燈覺所)하사,
어법(於法)에 실무소득(實無所得)이니다.
얻은 것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覺示究竟無得之旨)
만약 나에게 얻은 것이 있었다면
(聞菩提覺果無所得하고 疑莊嚴覺土)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정사(正士)가 장엄각토(莊嚴覺土)불(不)아.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장엄각토자(莊嚴覺土者)가
즉비장엄(卽非莊嚴)이라, 시명장엄(是名莊嚴)이니다.
시고(是故)로 수보리(須菩提)야.
제정사(諸正士)가 응여시생청정심(應如是生淸淨心)호대,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하며,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니,
응무소주(應無所住)하야, 이생기심(而生其心)이니라.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에 수보리여,
‘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불국토(覺土)를 장엄한다는 것은
어떤 조사가 말씀하신
무주심체無住心體가 영지불매靈知不昧65)한데
65)무주심체(無住心體)가 영지불매(靈知不昧)는
또는
수보리(須菩提)야 비유(譬如)하면,
유인(有人)이 신여수미산왕(身如須彌山王)하면,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시신(是身)이 위대(爲大)불(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심대(甚大)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각설비신(覺說非身)이 이명대신(是名大身)이니다.
‘몸 아닌 것은 그 이름이 곧 큰 몸입니다.’
(覺示以喩顯法殊勝)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하야,
세존(世尊)이시여. 각고수보리(覺告須菩提)하사대.
약선남자선여인(若善男子善女人)이 어차경중(於此經中)에
내지수지사구게등(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위타인설 (爲他人說)하면,
내지사구게등(乃至四句偈等)히 당지차처(當知此處)는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하황유인(何況有人)이 진능수지독송(盡能受持讀誦)함이따녀.
수보리(須菩提)야 당지시인(當知是人)은
성취최상제일희유지법 (成就最上第一希有之法)이니라.
약시경전소재지처(若是經典所在之處)는
이와 같이 경전이 있는 곳이라면
각고수보리 (覺告須菩提)하시대,
이경(是經)이 명위금강반야바라밀(名爲金剛般若波羅蜜)이니,
각설반야바라밀 (覺說般若波羅蜜)이
즉명반야바라밀 (是名般若波羅蜜)68)이니라.
(覺示般若實際)
모든 의심이 이미 사라졌으며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것은 곧 마음이다.
(疑覺無相인댄 誰當說法)
여래 (如來)가 유소설법불(有所說法不)아.
(覺示法身無形인댄 法亦無說)
(疑法身非相인댄 卽墮斷滅)
시위다불(是爲多不)아.
수보리(須菩提)야 제미진(諸微塵)을
여래설비미진(如來說非微塵)이라.
시명미진(是名微塵)이며
여래설세계비세계(如來說世界非世界)라,
시명세계(是名世界)니라.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말씀하셨다.
(須菩提疑化身爲眞覺)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가이삼십이상(可以三十二相)으로 견여래불(見如來不)아.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불가이삼십이상(不可以三十二相)으로
득견여래(得見如來)니,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설삼십이상(如來說三十二相)이 즉시비상(卽是非相)이라.
시명삼십이상(是名三十二相)이니다.
(覺示法化冥一)
이치로 펼 수도 없고 말로 드러낼 수도 없게 되다
수보리(須菩提야) 약유선남자선여인(若有善男子善女人)이
이항하사등신명(以恒河沙等身命)으로 보시(布施)하야도,
여복유인(若復有人)이 어차경중(於此經中)에
내지수지사구게등(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은
(覺示現法空勝益)
그리고 이 사구게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는
심해의취(深解義趣)하야 체루비읍(涕淚悲泣)하야,
이백각언(而白覺言)하사대 희유세존(希有世尊)이시여,
각설여시심심경전(覺說如是甚深經典)을
아종석래(我從昔來)에 소득혜안(所得慧眼)으로
미증득문여시지경(未曾得聞如是之經)이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복유인(若復有人)이
득문시경(得聞是經)하고,
신심청정(信心淸淨)하야 즉생실상(卽生實相)하면,
당지시인(當知是人)은 성취제일희유공덕(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다.
시고(是故)로 여래설명실상(如來說名實相)이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아금득문여시경전(我今得聞如是經典)하옵고,
신해수지(信解受持)는 부족위난(不足爲難)이어니와,
여당래세후오백세(若當來世後五百歲)에
기유중생(其有衆生)이 득문시경(得聞是經)하고,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여래설제일바라밀, (如來說第一波羅蜜)이,
비제일바라밀(非第一波羅蜜)이라.
시명제일바라밀(是名第一波羅蜜)이니라.
희유 하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래, 바로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그래, 바로 그렇다. 이 법을 듣고
수보리(須菩提)야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
여래설비인욕바라밀(如來說非忍辱波羅蜜)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하더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아어왕석절절지해시(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약유아상(若有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면
응생진한(應生瞋恨)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우념과거어오백세(又念過去於五百歲)에
작인욕선인(作忍辱仙人)하니,
무중생상(無衆生相) 무수자상(無壽者相)이니라.
시고(是故)로 수보리(須菩提)야
정사(正士)가 응리일체상(應離一切相)하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나니,
부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하며,
부응주성향미촉법생심(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니,
응생무소주심(應生無所住心)이니라.
약심유주(若心有住)하면, 즉위비주(卽爲非住)니,
응여시보시(應如是布施)니라.
여래설일체제상(如來說一切諸相)이 즉시비상(卽是非相)이며,
우설일체중생(又說一切衆生)이 즉비중생(卽非衆生)이니라.
(覺示破五蘊實法)
이것은 경전의 머리에서 ‘어떻게 안주해야 합니까’라고 여쭌 것에 대한 결답이다. 수보리는 목숨으로 보시함을 듣
고 오온이 본디 공함을 알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고
담연(淡然 욕심(慾心)이 없고 깨끗함)하게 요동(搖動)치지 않았다.
실어자(實語者)며, 여어자(如語者)며
불광어자(不誑語者)며 불이어자(不異語者)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래소득법(如來所得法)은
차법(此法)이 무실무허(無實無虛)하니라.
헛된 말을 하지 않는 자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다.
과가 공한 즉 인이 없고 인이 공한 즉 과를 얻을 수가 없다.
즉무소견(卽無所見)인달하고, 약정사(若正士)가
심불주법(心不住法)하야 이행보시(而行布施)하면,
여인(如人)이 유목(有目)커든) 일광(日光)이 명조(明照)하야),
견종종색(見種種色)인달하니라.
(覺示無住之益)
공적불매(空寂不昧)72)한 것이 곧 반야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마음의 성품과 진리체와 지혜가 하나로 합쳐진 완전한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일원상一圓相의
본질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의무주심(疑無住心)이 수시반야(雖是般若)나
수보리(須菩提)야 당래지세(當來之世)에
약유선남자선여인(若有善男子善女人)이
능어차경(能於此經)에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면,
즉위여래이각지혜(卽爲如來以覺智慧)로
실지시인(悉知是人)하며,
실견시인(悉見是人)하나니,
개득성취무량무변공덕(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하리라.
여시무량백천만억겁(如是無量百千萬億劫)에 이신보시(以身布施)하야도,
약복유인(若復有人)이 문차경전(聞此經典)하고,
신심불역(信心不逆)하면, 기복승피(其福勝彼)함이온.
하황서사수지독송(何況書寫受持讀誦)하야,
위인해설(爲人解說)이따녀.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무량 백천만억 겁 동안 보시해도
각시중찬반야 (覺示重讚般若)
수보리(須菩提)야 이요언지(以要言之)컨대,
시경(是經)이 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변공덕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하니라.
여래위발대승자(如來爲發大乘者)하야 설(說)하며,
위발최상승자(爲發最上乘者)하야 설 (說)이니라.
여래실지시인(如來悉知是人)하며, 실견시인(悉見是人)하나니,
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이니,
여시인등(如是人等)은 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
(卽爲荷擔如來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약락소법자(若樂小法者)는
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
즉어차경(卽於此經)에 불능청수독송(不能聽受讀誦)하며,
위인해설(爲人解說)이니라.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므로
각시반야법신상주 (覺示般若法身常住)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소응공양(所應供養)이니,
당지차처(當知此處)는 즉위시탑(卽爲是塔)이라.
개응공경작례위요(皆應供73)敬作禮圍遶)74)하야,
이제화향(以諸華香)으로 이산기처(以75)散其處)니라.
각시반야리장출천지익 (覺示般若離障出纏之益)
복차수보리(復次須菩提)야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
수지독송차경 (受持讀誦此經)호대,
여위인경천(若爲人輕賤)이면, 시인(是人)이
선세죄업(先世罪業)으로 응타악도(應墮惡道)로대,
이금세인(以今世人)이 경천고(輕賤故)로
선세죄업(先世罪業)이 즉위소멸(卽爲消滅하고,
당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라.
각찬반야일념돈초 (覺讚般若一念頓超)
수보리(須菩提)야 아념과거무량아승기겁(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호니,
어연등각전(於燃燈覺前)에 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각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覺)하야,
실개공양승사(悉皆供養承事)하야 무공과자(無空過者)니,
약복유인(若復有人)이 어후말세(於後末世)에
능수지독송차경(能受持讀誦此經)하면,
소득공덕(所得功德)은 어아소공양제각공덕(於我所供養諸覺功德)이
백분(百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천만억분(千萬億分)과 내지산수비유(乃至算數譬喩)라도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약선남자선여인(若善男子善女人)이
어후말세(於後末世)에 유수지독송차경(有受持讀誦此經)하야,
소득공덕(所得功德)을 아약구설자(我若具說者)면,
혹유인(或有人)이 문(聞)하고,
심즉광란(心卽狂亂)하야 호의불신(狐疑不信)하리라.
수보리(須菩提)야 당지(當知)하라.
시경의불가사의(是經義不可思議)며,
과보(果報)도 역불가사의(亦不可思議)니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후말세에
대각께서 찬탄하셨다.
이미 반야를 깨친 정사正士는
세존(世尊)이시여, 선남자선여인(善男子善女人)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한 이는
운하응주(云何應住)하며,
어하항복기심(云何降伏其心)이닛고 각고수보리(覺告須菩提)하사대,
약선남자선여인(若善男子善女人)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79)者)는
당생여시심(當生如是心)호대,
아응도일체중생(我應度一切衆生)호리라 할지니,
도일체중생이(度一切衆生已)하야는
이무유일중생(而無有一衆生)이 실멸도자(實滅度者)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80)
약정사(若正士)가 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즉비정사(則非正士)이니라.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수보리(須菩提)야
실무유법(實無有法)하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81)者)니라.
대각께서 말씀하셨다.
일으킬 만한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의 뜻은 이미 저 위에서 언급했으므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여러 가지 모든 상에 집착하고
또한 빨리 보리를 구하려는 것도
왜냐하면 본래 어떤 법도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어연등각소(如來於燃燈覺所)에 유법(有法)하야,
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불(不)아).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아해각소설의(如我解覺所說義)는
각(覺)이 어연등각소(於燃燈覺所)에 무유법(無有法)하야,
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다.
각언여시여시(覺言如是如是)하다.
수보리(須菩提)야. 실무유법(實無有法)하야
여래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유법(若有法)하야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댄,
연등각(燃燈覺)이 즉불여아수기(卽不與我授記)하사대,
여어래세(汝於來世)에 당득작각(當得作覺)하면,
이실무유법 (以實無有法)하야,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일새,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할 법이 없습니다.
(覺示菩提無得하사 以破執覺之疑)
이에 수보리가 비단 상만 공한 것이 아니라
약유인(若有人)이 언(言)하되,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須菩提)야 실무유법(實無有法)하야,
각(覺)이 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래소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如來所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가
어시중(於是中)에 무실무허(無實無虛)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소언일체법자(所言一切法者)는
즉비일체법(卽非一切法)일새.
시고(是故)로 명일체법(名一切法)이니라.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설인신장대(如來說人身長大)가 즉위비대신(卽爲非大身)이라,
시명대신(是名大身)이니라.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말한 것은
(覺現法身이 不屬因果)
(疑無我면 何以度生)
수보리(須菩提)야 정사(正士)도 역복여시(亦復如是)하야
즉불명정사(卽不名正士)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시고(是故)로 각설일체법(覺說一切法)이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설장엄각토자(如來說莊嚴覺土者)가
즉비장엄(卽非莊嚴)이라, 시명장엄(是名莊嚴)이니라.
여래설명진시정사(如來說名眞是正士)이라 하니라.
각시법신무아(覺示法身無我)하사
예파정사미세이집(例破正士微細二執)
불견중생가도(不見衆生可度)하고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육안불(如來有肉眼不)아.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천안불(如來有天眼不)아.
여시(如是)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천안(如來有天眼)하시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회안불(如來有慧眼不)아. 여시(如是)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혜안(如來有慧眼)하시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법안불(如來有法眼不)아.
여시(如是)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법안(如來有法眼)하시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래유각안불(如來有覺眼不)아.
여시(如是)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유각안(如來有覺眼)하시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항하중소유사(如恒河中所有沙)를 각설시사불(覺說是沙不)아.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일항하중소유사(如一恒河中所有沙)에 유여시사등항하(有如是沙等恒河)어든,
시제항하(是諸恒河)의 소유사수(所有沙數)를
각세계여시(覺世界如是)면, 녕위다불(寧爲多不)아.
심다(甚多)합니다. 세존(世尊)이시여.
각고수보리(覺告須菩提)하사대
이소국토중(爾所國土中)에 소유중생(所有衆生)의
약간종심(若干種心)을 여래실지(如來悉知)하시니,
시명위심(是名爲心)이니라. 소이자하(所以者何)오
수보리(須菩提)야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이며,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이며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니라.
과거의 마음도 없고
(覺示心覺及衆生三無差別)
약유인(若有人)이 만삼천대천세계칠보(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이용보시(以用布施)하면,
여시(如是)하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불설득복덕다(如來不說得福德多)언마는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하이고(何以故)오 여래설구족색신(如來說具足色身)이
즉비구족색신(卽非具足色身)이라, 시명구족색신(是名具足色身)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불야(不也)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시명제상구족(是名諸相具足)이니다.
성불(成覺)하는 인이므로
그것은 과가 없는 것이다.
곧 무량겁토록 육도만행을 닦되
한편으로는 이타행을 하고
한편으로는 자리행을 하여
여래가 말한 구족색신이란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므로
수보리(須菩提)야 여물위여래작시념(汝勿謂如來作是念)호대,
아당유소설법(我當有所說法)이라 하라.
막작시념(莫作是念)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즉위방각(卽爲謗覺)이라 불능해아소설고(不能解我所說故)니라.
시명설법(是名說法)이니라.
또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
(覺이 破報身佛說法之疑)
수오법신무설무시(雖悟法身無說無示)나
말세중생(末世衆生)이 능신부(能信否)
세존(世尊)이시여, 파유중생(頗有衆生)이
피비중생(彼非衆生)이며, 비부중생(非不衆生)이니,
하이고(何以故)오 수보리(須菩提)야.
중생중생자(衆生衆生者)는 여래설비중생(如來說非衆生)이라,
시명중생(是名衆生)이니라.
수보리는 비록 법신은 설할 것도 없고
세존(世尊)이시여,
각득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覺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시니,
위무소득야(爲無所得耶)이까.
각언(覺言)하사대.86) 여시여시(如是如是))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내지무유소법가득(乃至無有少法可得)일새.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무유고하(無有高下)하니,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이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로
수일체선법(修一切善法)하면,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소언선법자(所言善法者)는
여래설즉비선법(如來說卽非善法)이라,
시명선법(是名善法)이니라.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소소한 어떤 법도
얻은 것이 없었으므로 곧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곧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아가 없고 인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覺示破覺法見)
소유제수미산왕여시등칠보취(所有諸須彌山王如是等七寶聚)를
유인(有人)이 지용보시(持用布施)라도,
약인(若人)이 이차반야바라밀경(以此般若波羅蜜經)에
내지사구게등(乃至四句偈等)을 수지독송(受持讀誦)하며,
위타인설(爲他人說)하면 어전복덕(於前福德)이
백분(百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백천만억분(百千萬億分)과 내지산수비유(乃至算數譬喩)라도
소불능급(所不能及)이니라.
각시리상지공(覺示離相之功)이 최승(最勝)
의기무중생(疑旣無衆生)이면 하언도생(何言度生)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여등(汝等)이 물위여래작시념(勿謂如來作是念)하되,
아당도중생(我當度衆生)이라 하라.
수보리(須菩提)야 막작시념(莫作是念)이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실무유중생여래도자(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라
약유중생여래도자(若有衆生如來度者)댄,
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여래설유아자(如來說有我者)가
즉비유아(卽非有我)언마는,
수보리(須菩提)야 범부자(凡夫者)는
여래설즉비범부(如來說卽非凡夫)라 시명범부(是名凡夫)이라87).
(覺有人我하고 顯法身眞我)
의법보(疑法報)가 기공(旣空)이면
가이삼십이상(可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불(觀如來不)아.
수보리언(須菩提言)하되 여시여시(如是如是)니다.
이삼십이상(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觀如來)니이다.
각언(覺言)하사대 수보리(須菩提)야.
약이삼십이상(若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자(觀如來者)인댄,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즉시여래(卽是如來)로다.
수보리백각언(須菩提白覺言)하사대, 세존(世尊)이시여.
여아해각소설의(如我解覺所說義)는
불응이삼십이상(不應以三十二相)으로 관여래(觀如來)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커나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전륜성왕도 여래이겠구나.
‘색으로 나를 보려 한다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각시응화비진(覺示應化非眞)이오 법신비상(法身非相)
결코 법신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문설법신무상(聞說法身無相)하고 의법신단멸(疑法身斷滅)
수보리(須菩提)야 여약작시념(汝若作是念)호대,
여래(如來)를) 불이구족상고(不以具足相故)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수보리(須菩提)야 막작시념(莫作是念)하되,
여래(如來)를 불이구족상고(不以具足相故)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하라.
수보리(須菩提)야 여약작시념(汝89)若作是念)하되,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하이고(何以故)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91)는
어법(於法)에 불설단멸상(不說斷滅相)하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자정사(若正士)가
이만형하사등세계칠보(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지용보시(持用布施92)라도, 약복유인(若復有人)이
지일체법무아(知一切法無我)하야 득성어인(得成於忍)하면,
차정사(此正士)는 승전정사소득공덕(勝前正士所得功德)이니라.
불수복덕고(不受福德故)니라.
수보리백각언(須菩提白覺言)하되 세존(世尊)이시여.
운허정사(云何正士)가 불수복덕(不受福德)이니잇고,
(覺이 破斷滅知見)
그와 같은 소견을 낸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냐.
만약 이런 뜻을 알면 구족상이 곧 여래이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자는
제법에 대하여 단멸상을 말하지 않는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버들은 푸릇푸릇하고
복숭아꽃은 불긋불긋하지만
모두 아我가 없다.
일체법에 아가 없는 것을 알아서
진지견眞知見을 드러낸다.’
50. 아도 없고 복도 없으면
의무아무복(疑無我無福)인댄 위의동정(威儀動靜)이
비여래야(非如來耶))
시인(是人)이 불해아소설의(不解我所說義)니,
어語·묵默·동動·정靜하며
각시회귀법신진제(覺示會歸法身眞際)
그 수효가 무수하다.
다르지만 다른 것이 아니고,
이에 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곧 일합상一合相이 될 것이다.
만약 세계가 실로 있다면
무릇 그것에 탐착하므로
의법신(疑法身)이 일체개비(一切皆非)인댄
우하이설사상견(又何以說四相見)
수보리(須菩提)야 약선남자선여인(若善男子善女人)이
이삼천대천세계(以三千大千世界)로 쇄위미진(碎爲微塵)하면,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시미진중(是微塵衆)이
영위다불 (寧爲多不)아.
심다(甚多)하니라. 세존(世尊)이시여.
각(覺)이 즉불설시미진중(卽不說是微塵衆)이시리니,
소이자하(所以者何)오 각설미진중(覺說微塵衆)이
즉비미진중(卽非微塵衆)이라.
시명미진중(是名微塵衆)이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가
즉비세계(卽非世界)라, 시명세계(是名世界)니.
하이고(何以故)오. 약세계실유자(若世界實有者)인댄,
즉시일합상(卽是一合相)이어니와.
여래설일합상(如來說一合相)은 즉비일합상(卽非一合相)이라,
시명일합상(是名一合相)이니다.
수보리(須菩提)야 일합상자(一合相者)는,
즉시불가설(卽是不可說)이어늘, 단범부지인(但凡夫之人)이,
탐착기사(貪着其事)하나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시인(是人)이 해아소설의불(解我所說義不)아.
불야(不也)니다95), 세존(世尊)이시여.
시인(是人)이, 불해여래소설의(不解如來所說義)니,
하이고(何以故)오. 세존(世尊)이,
설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시명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입니다.
수보리(須菩提)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는,
어일체법 (於一切法)에,
응여시지여시견여시신해(應如是知如是見如是信解)하야,
불생법상(不生法相)이니라.
수보리(須菩提)야, 소언법상자(所言法相者)는,
여래설즉비법상(如來說卽非法相)이라, 시명법상(是名法相)이니라.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곧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 아니라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하여
각(覺)이 파집이상지견(破執離相之見)
위에서 여러 번에 걸쳐서
若有善男子善女人이 發菩提心96)者하야,
爲人演說하면 其福勝彼하니라.
그것으로써97) 보시한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오.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어다.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은
각시반야진공묘관(覺示般若眞空妙觀)
각설시경이(覺說是經已)에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와
급제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니 (及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尼)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청신사·우바이청신녀 및
5) 금강지金剛智와 금강심金剛心: 금강지는 지극히 견고한 지혜로서 곧 여래의 안목을 가리키고, 금강심은 지극히
견고한 마음으로서 곧 여래의 자비를 가리킨다.
6) 아공편진我空偏眞: 아공의 치우친 도리를 깨달아 수행하는 것으로서 소승선을 가리킨다. 『도서都序』 卷上之一
(『大正新脩大藏經』 48, p.399中)
8) 무상無相·무주無住·무착無着·무념無念:
안심입명安心立命과 같은 의미이다.
시자륜侍者輪·시물륜施物輪·수자륜受者輪이 모두 공하므로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가리킨다.
22) 사구게四句偈: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의 사견四見은
33) 부공혜浮空慧: 마음이 악취공에 휘둘려서 올바른 견해를 지니지 못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끊임이 없이 지속적인 중생이 있다는 관념)·수자상壽者相( jīva-saṃjñā: 영혼이 있다는 관념)은 인人의 사상四相이
고, 이하에 등장하는 유상有相·무상無相·법상法相·비법상非法相은 법法의 사상四相이다.
52)
53)
54)
55)
내지 다툼이 없이 도 닦는 경지를 증득한 자로서 부처님이 수보리를 칭찬한 말이다. 아란나행阿蘭那行과 무쟁삼
매無諍三昧와 적정행寂靜行은 동일한 뜻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사다함은 욕계에 한번 다녀와서 수행을 더 닦아야 한다는 뜻에서 일왕래一往來라 말했고, 아나함은 욕계에는 다
시 돌아올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불래不來라 말했고,
“外息諸緣。內心無喘。心如牆壁。可以入道。
明佛心宗。等無差誤。行解相應。名之曰祖。”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는 방법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70) 혜안慧眼: 사성제의 도리를 통하여 수보리 자신이 이전에 터득한 소승법을 가리킨다.
흔히 말법시대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