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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회 http://dx.doi.org/10.21794/ddhm.20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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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DONGHANMUNHAK ISSN 1229-4411 (Print)
2018, 第54輯, pp.291~323 ISSN 2586-4572 (Online)

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 규 필**
1)

1. 들어가며 4. 가정형 현토
2. 역접형 현토 5. 나열형 현토
3. 조건형 현토 6. 나오며

국문초록

논자는 지난 연구에서 현토 ‘한대’와 ‘(이)어늘’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비


슷한 의미로 쓰이는 두 현토는 의미 뿐 아니라 쓰이는 규칙이 다름이 밝혀
졌다. 거기에는 口語的 혼용이 없었으며, 각각 명확한 문법적 질서를 지니
고 있었다. 그리고 論語 경문에 대한 이 두 현토의 상황 해석이 중화서국
의 표점 정리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있으며, 나아가 한층 일관적
임도 밝혔다.
본고는 ‘한대’와 ‘(이)어늘’을 이어 몇몇 현토들을 검토함으로써 앞에 제
기한 일련의 지점을 더욱 분명히 논증하고자 작성되었다. 그 결과 본 논문
에서도 역시 앞의 논문의 논증에서 얻은 세 가지 사실이 틀리지 않은 것이
었음을 더욱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나’와 ‘(이)라도’, ‘(이)면’과

** 이 논문은 2017학년도 경북대학교 신임교수정착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gd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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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이)어든’과 ‘인댄’, ‘며’와 ‘고’ 등 서로의 자리에 바꾸어 써도 무방해


보이는 가까운 현토들 사이에도 나름의 의미와 그에 따른 규칙이 명확히 있
었고, 그 규칙은 모든 현토마다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지켜졌다.
이를 바탕으로 해당 현토의 용법과 의미를 정확히 규명하여 경서 해석에
있어 조선조 지식인들이 어떻게 경문을 분석하고 해석했는지에 대해 고찰
하였으며, 또 교정청언해와 율곡언해의 경문 해석의 태도와 시각차를 미묘
한 지점까지 변별하고 밝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울러 논하였다. 본 연
구를 계기로 경학과 경서 번역에 대한 담론이 더욱 풍부해지고 첨예해질 것
이라 기대한다.

주제어

현토, 문법 규칙, 經書 번역, 經文 해석의 태도와 시각차,


小學諺解, 교정청언해, 율곡사서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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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1. 들어가며

현토 작업은 經書 原文의 문법과 문장 흐름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 위에


句讀를 정확하게 떼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현토는 경서 원문 분석의
기능을 지닌다. 이를 다시 세분화해보면 ‘원문의 文型 정보 제공’, ‘문장 구
조 분석과 문장 성분에 관한 정보 제공’, ‘앞의 절과 뒤의 절의 관계에 관한
정보 제공’, ‘동사와 허사의 문법적 기능과 영향 범위 표시’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經書의 원문에 현토를 하면 원문의 구두가 명확히 드러
나고 문형이 드러나며 구절의 문법적 성격이나 낱글자의 문법적 기능들이
속속들이 제공되는데, 어미와 토씨가 지니는 교착어적 성격 때문에 그 자체
로 이미 일정한 정도 번역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편리함이나 유용성 때
문에 전통시대부터 지금까지 한문 교육과 학습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어왔
고, 학계에서도 일찍부터 그 중요성을 제기해왔다.
현토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대체
로 고립어인 한문에 교착어인 우리말 어미나 토씨가 붙는 것에 대한 거부감
이다. 회의적 견해를 지닌 학자들이 펼치는 논의를 다소 거칠게 요약하면
‘현토가 되면 漢文 고유의 문법 기제가 상실’되고 ‘漢文은 구조적 변환을
겪’게 된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현토를 통한 한문 이해의 감각이 표점부호
를 통한 원문 정리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우리말의 관습이 한문 이해에 간섭하는 것과 그에 따른 제반 사항에 대한
염려이다.1)
회의적 견해를 바탕으로 던지는 일침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요소가 분명
있으며, 한문 문법에 우리말 문법이 간섭하여 야기되는 문제적 지점도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그 논의에 마냥 동조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

1) 현토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박은희, 「한문번역의 측면에서 바라본 표점과 현토의


차이: 고리점을 중심으로」, 민족문화 39, 한국고전번역원, 2012, 148~196면에
주요 지점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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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문으로 된 경서의 원문에 우리말 어미나 토씨를 添記한다고 해서 한문 원문


자체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결코 구조적 변환으로 이어지
지도 않는다. 특히 교착어인 우리말 관습이 한문 원문 이해와 정리에 간섭
을 일으킨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는 두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법적 특징과 그 상이점을 어떻게
명징하게 이해할 것인가에 결부되는 문제이지 그것이 현토의 기능과 유용
성에 대한 의미를 현저히 폄하하거나 회의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회의적인 주장을 펴는 이유를 따져보면 현토를 제
대로 알고 있지 못하여 생긴 오해에서 기인한 점이 크다고 진단되기 때문
이다.
논자는 이 지점과 관련하여 2015년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2) 현토의
유용론 또는 무용론, 현토의 중요성 또는 문제점을 주장하기 앞서 우리에게
이제까지 현토가 제대로 연구된 적이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었다. 지
금까지 학계에서는 현토의 기본형, 성격과 기능에 따른 분류, 현토의 규칙
과 의미, 각 현토의 사용 빈도수 등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한 정보 집적과 정
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초적인 연구 작업이 부재하는 이런 현재적 상황
에 대한 반성 없이 갑자기 현토의 유용성과 활용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오히려 현토를 연구하여 그 성격과 기능 및 규칙
을 정확히 이해할 때 현토가 가지는 문제적 지점 또는 그 문제적 지점 해결
방안에 관한 논의의 초점도 뚜렷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논자는 지난 연구에서 ‘한대’와 ‘(이)어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
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두 현토는 의미 뿐 아니라 규칙도 다름이 밝혀졌
다. 거기에는 口語的 혼용이 없었으며, 각각 명확한 문법적 질서를 지니고
있었다. 논어 경문에 대한 이 두 현토의 상황 해석이 중화서국의 표점 정
리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있으며, 나아가 한결 일관적임도 밝혔

2) 이규필, 「한문고전 번역 및 표점에 있어 현토 활용의 문제」, 한문고전연구 30, 한


국한문고전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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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다. 현토가 어감이나 직관에 의한 임의적이고 무질서한 토씨 붙이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토에 담긴 약속과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표점에 대응시켜 반영한다면 현토는 표점가공에까
지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예견을 제출하였다.
이제 하나 더 보태고자 한다. 논자가 제시한 앞의 주장과 예견이 정말로
믿을 만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면, ‘현토의 경문 해석이 모두 참’이라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려우나, ‘현토를 바탕으로 경문을 연구할 경우 적
어도 조선시대 지식인의 經文에 대한 이해도에 관해서는 한층 정밀하고 합
리적인 해석과 연구가 이루어지리라’는 예측은 가능해진다. 예측이 아니라
반드시 그러해야 논자가 ‘현토는 분명한 문법적 질서를 지니고 있다.’라고
한 앞의 주장이 참임이 증명될 것이다.
본고는 ‘한대’와 ‘(이)어늘’을 이어 몇몇 현토들을 검토함으로써 앞에 제
기한 일련의 지점을 논증하고자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여러 현
토 가운데 역시 가장 문제가 되는 연결어미 성격의 현토를 중심으로 살펴보
고자 한다. 이들 현토를 성격에 따라 ‘역접형 현토, 조건형 현토, 가정형 현
토, 나열형 현토’ 넷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3)

2. 역접형 현토

3) 任圭直(1811~1853)의 句讀解法 에는 역접형 현토를 相反之辭라 하였으며, ‘이


로, 호, 이어늘, 언마는, 커니와, 이나, 이라도’ 등을 들고 있다. 나열형 현토를
對待騈偶之辭라 하였으며, ‘고, 며, 이오, 이며’ 등을 들고 있다. 각 현토들 사
이의 차이나 규칙은 따로 말하지 않았다. 가정형 현토에 대해서는 ‘若・苟・如・誠・
儻’ 뒤에 또는 ‘必・則・便’ 앞에 ‘이면, 면, 이러면, 인댄, 이어든’ 등이 쓰인다고
하였다. 전통적 문리 감각으로 기술해놓은 것으로, 언어학적 입장에서의 체계적인
비교나 고찰은 없다. 본고는 이러한 전통 방식의 현토 이해를 수용하는 한편 한 걸
음 나아가 언어학적 방법으로 고찰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句讀解法 에 대해서
는 최식, 「 句讀解法 , 한문의 구두와 懸吐, 口訣」, 민족문화 32, 한국고전번역
원, 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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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1). ‘(이)어늘’

‘(이)어늘’은 앞의 논문(2015)에서 ‘한대’와 비교하며 다루었던 현토이


다. 이 현토는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된다. 그 하나는 앞의 논문에서 이미 상
세히 다루었으므로, 본고에서는 그때 다루지 않았던 다른 한 가지 용법, 곧
역접으로 쓰일 때의 예를 다루고자 한다.
표준국어대사전 에 어미 ‘거늘’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이 오늘 살펴볼 이
현토와 가장 비슷하다. 이해를 위해 정의와 예문을 옮겨보자.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와 맞서는 사실을 이어 주는 연결 어미.


흔히 뒤에는 의문 형식이 온다.
예) 평화는 모든 이의 염원이거늘 어찌 그대 혼자 전쟁을 주장하는가.
예) 사냥꾼도 품속으로 날아든 새는 쏘지 않는다 했거늘 하물며 도움
을 기대하고 찾아온 신자를 고발하겠소?
예) 지난날의 죄만 해도 크거늘 또 훼방을 놓다니.

어미 ‘거늘’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 의 설명은 두 가지 주요 정보를 준


다. 하나는 역접이라는 것, 하나는 의문문 형식이 잘 쓰인다는 것. 여기에
더하여 마지막에 제시된 예문이 감탄형이라는 것에서 어미 ‘거늘’은 그 쓰
임새가 평서형이나 명령형보다는 주로 의문형이나 감탄형 문장에 붙는다는
부가 정보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현토 ‘(이)어늘’에 대한 일반의 어감은
대체로 표준국어대사전 에서 설명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앞의 논문에서 다룬 예를 제외하면 실제 현토 ‘(이)어늘’이 쓰이는 자리와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 에서 설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완
전히 꼭 같은 것은 아니고 미묘한 차이가 있어, 역접형 현토 ‘(이)어늘’을 올
바르게 이해할 때 한문 문형이나 경문에 내재한 미묘한 의미를 한층 깊고
치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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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1 三家者ㅣ以雍徹이러니 子ㅣ曰 相維辟公이어늘 天子穆穆을 奚



取於三家之堂고( 論語 <八佾>1)
2 曰 邦君이야 樹塞門이어 管氏ㅣ亦樹塞門며 邦君이야 爲兩

君之好에 有反坫이어 管氏ㅣ亦有反坫하니 管氏而知禮면 孰
不知禮리오( 論語 <八佾>22)
◯ 子ㅣ曰 大哉라 堯之爲君也ㅣ여 巍巍乎唯天ㅣ 爲大어시늘 唯堯
3

ㅣ 則之하시니 蕩蕩乎民無能名焉이로다( 論語 <泰伯>19)

앞의 예문에서 현토 ‘(이)어늘’이 의문형 문장이나 감탄형 문장에 잘 쓰이


는 현토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이 점은 오늘날의 역접 어미 ‘거늘’과 비슷하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와 맞서는 사실을
이어 주는 연결 어미’라는 설명은 아무래도 현토 ‘이어늘’과 꼭 맞지는 않은
듯하다. 이 세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경문 원문에 ‘維’ 또는 ‘唯’가 반
드시 들어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의미를 담은 현토 ‘이야’가 들어가 있
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약간 다른 경우이다.

4 有能一日用其力於仁矣乎아 我未見力不足者로라 蓋有之矣어늘



我未之見也로다( 論語 <里仁>6)
5 曰 爲國以禮어늘 其言不讓이라 是故로 哂之로라( 論語 <先

進>25)
6 司馬牛ㅣ憂曰 人皆有兄弟어늘 我獨亡로다( 論語 <顔淵>5)

앞의 세 예문은 모두 감탄형에 달린 예이다. 여기서는 경문 원문에 ‘蓋’


또는 ‘皆’가 들어있으며, 그렇지 않은 나머지 한 예문의 경우도 ‘爲國以禮’
라고 하는 儒家 정치사상의 대전제를 제시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어늘’
은 단순한 역접이 아니라 ‘오직 앞절의 상황만 용납되는데 그에 반하는 상
황이 뒷절에서 이어질 때’ 붙거나 ‘보편적으로 모두 그러한 것이 인정되는
데 그에 반하는 상황이 뒷절에서 이어질 때 또는 그 역’의 경우에 붙는 현토
이다. 현토 ‘(이)어늘’에 대한 이러한 규칙을 알면 현토만 보고도 원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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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형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 의미가 한층 선명하게 읽힌다. 이 자리에 ‘한대’


를 비롯하여 ‘(이)로’, ‘(이)나’, ‘언마는’, ‘어니와’ 등의 다른 현토는 올
수 없다. 또 ‘(이)어늘’을 기준으로 주어는 반드시 바뀐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2). ‘(이)나’와 ‘(이)라도’

‘(이)나’와 ‘(이)라도’ 역시 빈도 수가 매우 높은 역접형 현토이다. 小學


에 실린 문장 둘을 우선 보고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자.

1 內則에曰ㅣ 父母ㅣ雖沒이나 將爲善에 思貽父母令名야 必果



며 將爲不善에 思貽父母羞辱야 必不果ㅣ니라.( 小學 <明
倫>)
2 內則에曰 父母ㅣ有婢子若庶子庶孫을 甚愛之어시든 雖父母ㅣ

沒이라도 沒身敬之不衰니라( 小學 <明倫>)

위의 두 예문에 ‘(이)나’와 ‘(이)라도’를 바꾸어 써도 일견 무방할 듯하다.


문장 구조가 비슷하고, 의미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두 자리의
현토를 혼용하거나 바꾸어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질문을 조금 바꾸어보자.
두 문장에서 차이라곤 ‘雖’와 ‘父母ㅣ’의 선후가 뒤바뀐 정도일 뿐이다. 만
1 의 문장이 ‘雖父母ㅣ沒’로 되어 있다면 여기에 ‘(이)라도’라는 현토를
약◯
2 역시 ‘父母ㅣ’가 앞에 놓인다면 ‘(이)나’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또 역으로 ◯
쓸 수 있을 것인가?
매우 비슷해 보이는 두 현토는 사실상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둘
은 바꾸어 쓸 수 없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이)나’와 ‘(이)라도’는 모두 역
접이다. 이중 ‘雖’와 ‘(이)나’가 호응하면 가정의 상황이 현재적인 것으로,
양보의 의미를 강하게 띤다. 이에 비해 ‘雖’와 ‘(이)라도’가 호응하면 미래적
상황 또는 순수한 가정의 의미를 강하게 띤다. 예문과 결부시켜 말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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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1 은 ‘현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으나’라는 의미이고, ◯


◯ 2 는 ‘장

차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라 하더라도’라는 의미이다.

3 曲禮예曰 君子ㅣ雖貧이나 不粥祭器며 雖寒이나 不衣祭服



며 爲宮室에 不斬於丘木이니라.( 小學 <明倫>)
◯ 子ㅣ謂公冶長하샤 可妻也ㅣ로다 雖在縲絏之中이나 非其罪
4

也ㅣ라 시고 以其子妻之하시다( 論語 <公冶長>1)

3 은 소학 에 실린 문장이고, ◯
◯ 4 는 논어 의 유명한 한 구절이다. 앞의

3 에서 ‘군자가 아무리 가난해도’ 또는 ‘가령 가


논리를 적용하여 이해할 때 ◯
난하다 할지라도’로 해석하면 본의와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다. 정도를 강조
하거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함 속에서도 결코 제기를 팔지
4 를 보면 둘의 차이는 조금 더 분명해
않는 것이 군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
진다. 公冶長이 누명을 쓴 것을 가정한 것이 아니라 실제 누명을 썼기 때문
에 현토 ‘이나’를 쓴 것이다. 만약 언해에 참여한 학자들이 논어 의 이 구
절에 대해 ‘公冶長이 실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야장의 인품을
칭찬하기 위한 강조의 의도로써 공자가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이
해했다면, ‘雖在縲絏之中이라도’라고 했을 것이다.
요약한다. ‘雖’라는 부사어가 지니는 문법적 특성상 양보 또는 가정의 의
미를 지닐 때가 많다. ‘아무리’ 또는 ‘가령’ 등의 의미를 띨 수 있다는 것이
다. 그럴 때는 ‘(이)라도’라는 현토가 사용되고, ‘비록’이라는 본래의 의미대
로 사용될 때는 ‘(이)나’라는 현토가 사용된다는 뜻이다. 소학언해 와 사서
언해에서 이 둘을 직관적 어감에 따라 혼용한 경우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예가 있다.

5 -1 子夏ㅣ曰 賢賢易色며 事父母호 能竭其力며 事君호



能致其身며 與朋友交호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나 吾
必謂之學矣리라.( 논어율곡언해 ), ( 小學 <立敎>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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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5 -2 子夏ㅣ曰 賢賢호 易色며 事父母호 能竭其力며 事



君호 能致其身며 與朋友交호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
이라도 吾必謂之學矣리라.( 論語 <學而>7)

5 -2의 미묘한 차이를


5 -1과 ◯
‘(이)나’와 ‘(이)라도’의 용법을 알고 나면 ◯
5 -1은 子夏가 말하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 文을 배우지 않
발견하게 된다. ◯
은 사람이 되고, 曰은 강조를 표시하는 기능만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
5

-2는 그 사람이 文을 실제로 배웠는지 여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


5 -1은
수하게 가정하여 말한 것이고, 또 曰은 ‘말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
5 -2는 교정청의 언해
율곡언해와 그를 이어받은 소학언해 의 현토이고, ◯
이다. 어느 해석이 옳은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두 현토의 차이를 분명
히 알면 이 경문을 해석하는 두 시각 사이에 미묘하나마 일정한 견해차가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서 전반에 걸쳐 산재하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점들에 대한 인식과 구별
이 율곡언해와 교정청언해의 경문 해석의 차이를 더욱 섬세하고 분명하게
규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토 연구가 조선 경학 연구의 지평을 한층
넓고 깊게 열어줄 것이라 기대되는 바,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에라도 현토
연구는 꼭 필요하다.

3. 조건형 현토

1) 호

많은 사람들이 역접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있는 현


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호’이다. 오늘날 어미 ‘되’와 거의 같은 용법의 현
토인데,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 에 실린 어미 ‘되’의 정의
를 살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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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 대립적인 사실을 잇는 데 쓰는 연결 어미.


- 어떤 사실을 서술하면서 그와 관련된 조건이나 세부 사항을 뒤에
덧붙이는 뜻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 뒤에 오는 말이 인용하는 말임을 미리 나타내어 보일 때 인용 동사
에 붙여 쓰는 연결 어미.

소개한 세 항목의 정의 중 오늘날 어미 ‘되’는 첫째의 용법으로 가장 많이


쓰고 있다. 이 때문에 현토 ‘호’를 흔히 역접의 현토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토 ‘호’가 사서와 소학 에서 위 첫째와 셋째의 용법으로 사용된 예는
극히 적어, 전체를 통틀어 첫째의 의미로는 논어 <계씨> 제12장에, 셋째
의 의미로는 맹자 <만장> 상 제6장에 각각 한 번씩 쓰인 것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거의 예외 없이 둘째의 의미로 쓰였다. 다음을 보자

1 子ㅣ曰 道千乘之國호 敬事而信며 節用而愛人며 使民以



時니라( 論語 <學而>5)
2 子ㅣ曰 事父母호 幾諫이니 見志不從고 又敬不違며 勞而

不怨이니라( 論語 <里仁>18)
3 舜이 命契曰 百姓이 不親며 五品이 不遜일 汝作司徒ㅣ니

敬敷五敎호 在寬라( 小學 <立敎>6)

논어언해 에서 둘, 소학언해 에서 하나를 뽑아 예시로 보였다. 예문에


보인 현토 ‘호’는 모두 앞에 제시된 일이나 말에 대한 조건 또는 그와 관
련한 세부 항목이다.
앞에 지시된 일이나 말에 대한 세부 사항을 뒤에 제시하는 기능의 현토가
이것 말고 하나 더 있는데, 바로 ‘하니/이니’이다. 그런데 둘은 완전히 다른
현토이다. ‘호’와 ‘하니/이니’는 어떻게 다른가.

4 命夔曰 命汝典樂노니 敎冑子호 直而溫며 寬而栗며 剛



而無虐며 簡而無傲ㅣ니( 小學 <立敎>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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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4 -1 命夔曰 命汝典樂여 敎冑子니 直而溫며 寬而栗며 剛



而無虐며 簡而無傲ㅣ니
5 故로 君子는 尊德性而道問學이니 致廣大而盡精微며 極高明

而道中庸며 溫故而知新며 敦厚以崇禮니라( 中庸 )
5 -1 故로 君子는 尊德性而道問學호 致廣大而盡精微며 極高

明而道中庸며 溫故而知新며 敦厚以崇禮니라

쉬운 이해를 위해 두 예문에 현토를 바꾸어 달아보았다. 역시 큰 거부감


이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두 현토의 성격이 비슷해 보인다. 하
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하니/이니’는 앞에 제시된 일이나 말의 성격을
세부 사항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고, ‘호’는 제시된 일이나 말을 충족
하기 위한 필수 조건 또는 강력 권장 사항의 제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현토
‘니/이니’의 경우 뒤의 절에 딸린 사항들의 총합이 앞의 절에 제시된 일이
나 말이 된다. 하지만 현토 ‘호’ 뒤의 절에 딸린 사항들은 앞에 제시된 일
이나 말을 이상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 또는 준강제 사항으로,
뒤의 절의 총합이 꼭 앞의 절에 제시된 일이나 말이 되지는 않는다. 이 지점
에서 둘의 성격은 완전히 갈린다. 둘 역시 절대 혼용할 수 없다.
현토 ‘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 어감이 때
때로 ‘에’ 또는 ‘하면/이면’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문
이다.

6 子貢이曰 貧而無諂며 富而無驕호 何如니잇고( 論語



<學而>15)
◯ 季康子ㅣ問 使民敬忠以勸호 如之何ㅣ릿고 子曰 臨之以莊則
7

敬하고…( 論語 <爲政>20)

6 을 번역하라고 하면 대부분 ‘…부유하여도 교만함이 없으


예문 가운데 ◯
면 어떻습니까’라고 한다. 오늘날 저명한 번역서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이

302
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하면 안 된다. 만약 이런 뜻이라면


‘면’을 붙이면 그만이지 굳이 ‘호’를 붙일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호’를
붙인 이 경문의 본의는 무슨 뜻일까.
‘호’ 앞의 절은 가정이 아니라 이상적 모델로 권장되는 정치 덕목이다.
또 앞에서 길게 설명하였듯이 현토 ‘호’는 뒤의 절에 제시된 사항이 앞의
말을 충족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임을 유의해야 한다. 이 구절에 현토 ‘호’
를 붙인 것은 해당 경문을 ‘어떻게 하면 貧而無諂며 富而無驕의 경지에
7 과 비교해본다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로 해석하라는 뜻이다. 예문 ◯
면 그러한 의미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6 의 ‘호’ 자리에 ‘면’을 붙이면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만약 ‘면’
예문 ◯
을 붙인다면, 자공이 자신은 ‘貧而無諂과 富而無驕’의 경지에 도달하였음
을 은근히 전제한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何如’는 자공이 자신의 학문과
덕성에 대해 자못 자부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호’를 붙이면 자공이 ‘貧
而無諂과 富而無驕’를 이상적인 경지로 오인하여 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하려고 하였고, 뒤에 붙은 ‘何如’는 겸손한 자세로 그 실천을 지향하려는 의
지를 드러내는 말이 된다. 물론 자공이 ‘貧而無諂과 富而無驕’의 경지에 거
의 도달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만약 그것을 우회적으로라도 드러내어 과
시하거나 자랑하려 하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無驕’에 위배된다. 자
공이 실제 그랬다면 ‘無驕’에 위배될 뿐 아니라 아마 스승 공자로부터 모종
의 나무람을 받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공의 질문에는 미미한 정도라 할지
라도 자신의 경지에 대한 자랑의 분위기가 없어야 한다.
자공이 질문한 의도는 ‘貧而無諂과 富而無驕’를 이상적인 경지로 이해하
여 그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공자는 부유하면서도 겸
양의 덕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동시에 지닌 제자가 기특하였다. 그에 대한
대답이 ‘可’이다. 하지만 제자가 이상적인 경지로 설정한 덕목의 수준이 자
신이 생각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약간 상향 조정해줄 필요가 있
었다. 이때문에 ‘貧而樂, 富而好禮’라고 깨우쳐준 것이다. 이러한 경문 해
석에 맞는 현토가 ‘호’이다.4)

303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4. 가정형 현토

1) ‘(이)면’과 ‘(이)어든’

가정형 문장의 가장 기본형 현토는 ‘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가정


형 연결어미 ‘면’과 그 역할 및 의미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렇다.
이와 기능과 의미가 가장 흡사하게 보이는 현토가 있다. ‘(이)어든’이다. 이
는 오늘날 가정형 연결어미 ‘거든’과 연결이 된다. 역시 논의를 이어가기 위
해 표준국어대사전 의 설명을 인용한다.

1 ‘면’

- 불확실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을 가정하여 말할 때
쓰는 연결 어미.
- 일반적으로 분명한 사실을 어떤 일에 대한 조건으로 말할 때
쓰는 연결 어미.
현실과 다른 사실을 가정하여 나타내는 연결 어미. 현실이 그
렇게 되기를 희망하거나 그렇지 않음을 애석해하는 뜻을 나타
낸다.
- 뒤의 사실이 실현되기 위한 단순한 근거 따위를 나타내거나 수
시로 반복되는 상황에서 그 조건을 말할 때 쓰는 연결 어미.

2 ‘거든’

- ‘어떤 일이 사실이면’, ‘어떤 일이 사실로 실현되면’의 뜻을 나
타내는 연결 어미.
- 앞 절의 사실과 뒤 절의 사실을 비교하여, 앞 절의 사실이 이러
하니 뒤 절의 사실은 더욱 당연히 어떠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4) 참고로 율곡은 ‘호’ 자리에 ‘ㅣ’를 붙였는데, 율곡의 경문 해석도 결국 논자의 주


장과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천견으로는 ‘면’보다는 ‘ㅣ’가 낫다. 하지만 의미를 분
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호’가 가장 합당한 현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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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연결 어미. 흔히 뒤에는 의문 형식이 온다.

표준국어대사전 에 설명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어미 ‘면’과 ‘거든’


사이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차이를 지적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거든’
이 ‘면’보다 조금 더 강조된 것이라는 느낌 정도이다. 그나마 ‘거든’을 설명
하는 두 번째 정의는 현토 ‘(이)온’이 변형되어 만들어진 어미이다. 현토
‘(이)온’의 변형태 어미를 제외한다면 실상 ‘면’과 ‘거든’의 차이를 뚜렷이
꼬집어 지적하기 어렵다. 둘을 혼용해도 무방하며, 구어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현토 ‘(이)면’과 ‘(이)어든’은 어떠할까? 두 현토 사이에는 이렇다 할 의미
차이가 없으며, 규칙없이 혼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이들 사이에도 각각의
용법과 의미가 있는 것인가?

1 子游ㅣ曰 事君數이면 斯辱矣요 朋友數이면 斯疏矣니라( 論語



<里仁>26)
2 子ㅣ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論語 <學而>1)

3 子ㅣ曰 父母在어시든 不遠遊며 遊必有方이니라( 論語 <里

仁>19)
4 子夏ㅣ問 孝한대 子ㅣ曰 色難이니 有事ㅣ어든 弟子ㅣ服其勞하

고 有酒食(사)ㅣ어든 先生饌이 曾是以爲孝乎아( 論語 <爲
政>8)

현토 ‘(이)면’과 ‘(이)어든’이 쓰인 예문을 각각 둘 씩 인용하였다. 예문의


현토들을 서로 바꾸어 써도 그다지 이질감이 없고 의미 역시 달라질 것 없
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이)면’과 ‘(이)어든’은 사이가 가까운 현토
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현토 ‘(이)면’은 앞 절의 행위가 뒷
절의 결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가정이든 아니든 앞 절은 조건이나 원인이

305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되며 뒷 절은 그에 대한 매우 보편타당하게 예상 또는 수긍되는 결과이다.


이에 비해 ‘(이)어든’은 약간 다르다. 앞절의 조건에 대해 뒷절은 그 조건 아
래 마땅히 행해야 할 강력한 권고 사항이나 준의무 사항이다. 자연스런 결
과가 아니라 앞절에 제시된 사항을 바람직하게 행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일종의 규범에 가까운 내용이다. ‘不憤이어든 不啓며’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문에서도 그러한 의미는 분명하고, 소학언해 에 쓰여진 무수한 ‘(이)
어든’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성격을 지닌다.
현토 ‘면’이 쓰이지 않고 반드시 ‘(이)어든’이 쓰이는 용법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이는 시간의 경과나 단계의 선후가 존재할 때이다.

5 冉有曰 旣庶矣어든 又何加焉이리잇고 曰 富之니라 曰 旣富矣어



든 又何加焉이리잇고 曰 敎之니라( 論語 <子路>9)

위의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는 “백성을 많게 해주고 나면 또 무엇


을 더해줍니까?”라고 하여 어미 ‘면’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토에서는
이 경우에 ‘(이)면’이 절대 붙지 않는다. 시간의 경과나 단계의 선후를 나타
내는 부사어 ‘旣’ 또는 ‘旣~又~’가 들어간 문형에서는 반드시 ‘(이)어든’ 현
토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어든’은 규범이나 준의무 사항을
요구하는 문장, 또는 시간의 경과나 단계의 선후를 나타내는 부사어가 있는
문장, 혹은 해당 부사어가 없더라도 시간의 경과나 단계의 선후가 분명한
문장에 쓰이고, 이 자리에 ‘(이)면’은 쓰이지 않는다. 이들 두 현토 사이에도
역시 구어적인 혼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2) ‘인댄’

오늘날 ‘(이)면’과 바꾸어 써서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현토가 하


나 더 있다면 ‘인댄’이다. ‘인댄’은 ‘(이)어든’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 ‘(이)면’과는 선뜻 구별하여 말하기 어렵다. 오늘 우리말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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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미 ‘-ㄹ진대’가 있어 이것과 흡사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에도 논의를 이어나가기 위해 표준국어대사전 에 실린 어미 ‘-ㄹ
진대’에 대한 설명을 인용해보면, “(예스러운 표현으로) 앞 절의 일을 인정
하면서, 그것을 뒤 절 일의 조건이나 이유, 근거로 삼음을 나타내는 연결 어
미. 장중한 어감을 띤다.”라고 되어 있다. 괄호 안에 첨기된 ‘예스러운 표현’
이라는 말은 현토 ‘인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짐작된다. 그런데 여기에
서 설명된 어미 ‘-ㄹ진대’의 용법과 의미 역시 ‘면’과 아주 흡사하여 그 역
할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때문에 현토 ‘(이)면’과 ‘인댄’의 차이를
구별하기란 더더욱 애매하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호’와 ‘(이)
어든’의 자리와도 구별이 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현토 ‘인댄’이 쓰이는 때에는 두어 가지 규칙과 의미가 있다. 다음에 제시
된 예문을 보고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

1 子ㅣ曰 富而可求也댄 雖執鞭之士ㅣ라도 吾亦爲之어니와 如



不可求인댄 從吾所好호리라( 論語 <述而>11)
2 子貢이曰 必不得已而去댄 於斯三者에 何先이리잇고 曰 去兵

이니라( 論語 <顔淵>7)
◯ 子ㅣ見南子하신대 子路ㅣ不說이어 夫子ㅣ矢之曰 予所否者
3

댄 天厭之天厭之시리라( 論語 <雍也>28)

위의 예문에서 ‘인댄’이 놓인 자리에 ‘(이)면’과 ‘(이)어든’을 바꾸어 놓아


보자. ‘(이)어든’은 아무래도 어딘가 어색함이 느껴지지만, 이에 비해 ‘(이)
면’은 그다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모두
어미 ‘~면’으로 바꾸는 것이 편하고, 실제 현행 번역서에서 거의 예외없이
그렇게 번역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어든’은 ‘(이)면’과 차이가 없는가? 만
약 있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인용한 세 예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인댄’ 앞에 놓인 절의 내용
상의 특징이다. 절대로 가능하지 않거나 현실에서 이루질 수 없는 것,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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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전제로 제시하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뒤의 절


에 제시하는 특성을 보인다. 유가의 사유에서 보자면 富는 命에 달린 것이
므로 인위적으로 추구한다고 해도 좀처럼 이루지지 않는 것이고, ‘食, 兵,
信’은 국가 운영에서 어느 하나도 또는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불가결
한 것이다. ‘所否者’ 또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있을 수 없는 일을 전
제로 하는 말이다. 이것이 ‘인댄’의 용법 첫 번째 규칙이다.
3 의 經文 해당 자리에 ‘면’으로
재미있는 것은 율곡논어언해 에서는 ◯
현토하였다. ‘所否者’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거나 불가결한 것이 아니
므로 다른 앞의 예와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 율곡의 경학 해석의 시각이
이 현토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현토 하나이지만 이 지점에서 다시
율곡언해와 교정청언해의 논어 에 대한 접근 태도와 시각차를 얼마간 확
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댄’의 이러한 용법을 알면 교정청언해가 논어 경문을 해석하면서 당
시의 정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한층 세밀하게 다가가 이해해 볼 여지
가 생긴다. 다음 두 예문을 보자.

4 子路ㅣ曰 衛君이 待子而爲政하시니 子將奚先이시리잇고( 論



語 <子路>3)
4 -1 子路ㅣ曰 衛君이 待子而爲政인댄 子將奚先이시리잇고( 율곡

논어언해 )
5 子ㅣ曰 苟有用我者면 朞月而已라도 可也니 三年이면 有成이니

라( 論語 <子路>10)
5 -1 子ㅣ曰 苟有用我者인댄 朞月而已라도 可也니 三年이면 有成

이니라( 율곡논어언해 )

4 에 적용한다면 교정청언해는 공자
앞에서 정리한 ‘인댄’ 용법의 규칙을 ◯
가 衛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접견하였음에 초점을 맞
추어 경문을 해석한 것이고, 율곡언해는 자로에 대해 ‘공자가 衛나라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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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실 정치에 참여하기란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있었던 제라’


라고 이해했음이 드러난다. 공자가 위나라에 몇 차례 방문하였고 또 衛君이
그때마다 공자를 불러 국정을 물어보았다는 점, 그럼에도 끝내 공자가 위나
라 현실정치에는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교정청언해와 율곡언해는
모두 일단의 타당성을 지니는데, 다만 그 미묘한 관점의 차이가 현토를 통
5 도 마찬가지
해 드러나는 것은 흥미롭고 또 유의미한 지점이라는 말이다. ◯
이다. 교정청언해는 공자가 당세 천하에서 자신을 써줄 군주가 있을 경우를
순수하게 가정하여 자신의 포부와 역량을 확신하여 말한 것으로 본 것이고,
율곡언해는 공자가 당세 천하에서 자신을 써줄 군주가 결코 없다는 것을 인
식한 상황에서 말한 것으로 본 것이다. 둘 사이엔 하찮아 보이지만 실로 작
지 않은 의미의 차이가 있다.
‘인댄’이 쓰이는 또 하나의 자리를 말하자면, 앞의 절에 제시한 가정의 상
황을 가능하게 하거나 충족시키기 위해서 뒤의 절에서 거기에 반드시 요구
되는 조건을 말할 때 ‘인댄’을 쓴다.

6 子ㅣ曰 不得中行而與之댄 必也狂狷乎인저 狂者는 進取요 狷



者는 有所不爲也니라( 論語 <子路>21)
7 子貢이 問爲仁대 子ㅣ曰 工欲善其事댄 必先利其器니( 論

語 <衛靈公>9)
8 故로 君子ㅣ 名之댄 必可言也ㅣ며 言之댄 必可行也ㅣ니

君子ㅣ 於其言애 無所苟而已矣니라( 論語 <子路>3)
❶ 游居有常호 必就有德이니라.( 小學 <立敎>)
❷ 割不正이어든 不食하며 席不正이어든 不坐하며

앞의 절이 가정이란 점에서 ‘호’와 다르고, 앞의 절이 같은 가정이기는


하되 조건이 아니라 희망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이)어든’과도 다르다.
‘인댄’은 앞의 절에서 제시한 가정의 상황을 충족시키기 위해 뒤의 절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조건을 들기 때문에 원문에 ‘必’이 있거나 혹은 그에 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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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는 필수 요구 조건이 뒤따른다. 예문 ❶과 비교해보자면 ◯


6◯ 8 은 현실에
7 ◯

서 가능한 최선의 상황을 지향하는 가정형의 문장이고, ❶은 子弟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당위적 행위의 강력한 권장 사항 제시이다. ❷의 ‘이어든’은 제
시된 상황 또는 조건 아래에서 행해지는 행위 또는 권장되는 처신이다.
가정이기는 하되 희망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必’ 字로 호응하는 평서
형이 아니면 의문형이나 감탄형 문장에 잘 쓰이는 것도 현토 ‘인댄’의 용법
이다.

◯9 子ㅣ曰 愛之댄 能勿勞乎아 忠焉인댄 能勿誨乎아( 論語 <憲

問>8)
◯ 王曰 善哉라 言乎여 曰 王如善之댄 則何爲不行이니잇고( 孟
10

子 <梁惠王> 下5)
◯ 季康子ㅣ 問政於孔子曰 如殺無道야 以就有道댄 何如니
11

잇고( 論語 <顔淵>19)

9 의 의미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대상을 수고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
다. 평서형으로 하면 ‘愛之댄 必勞니라’가 될 문장을 의문문으로 바꾸고,
10 의 ‘何爲不行’도
그 의미를 분명히 살리기 위해 ‘勿’ 字를 첨가한 것이다. ◯
11 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겠는가? 많
‘必行之’의 의문형 형태이다. 그렇다면 ◯
은 번역서에서 “無道한 자를 죽여서 백성들을 道가 있는 데로 나아가게 한
다면 어떻습니까?”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렇게 번역해서는 ‘댄’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럴 뿐 아니라 만일 해당 경문이 그러한 뜻으로 한 말이
라면 선현들은 여기에 현토 ‘면’을 달았을 것이다. 번역을 어떻게 하는가는
기술상의 문제이겠지만, “사형을 통해서 도덕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면 반
드시 ‘어떠한 방법’으로 해야합니까?”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것
이 이 경문의 본래 의미이기 때문이다. 季康子는 본디 국법을 빌린 살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또 그것을 하고 싶었다. 다만 ‘就有道’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자신의 진심을 숨긴 채 공자에게 저항이 가장 적은 합

310
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법적 살인의 ‘효과적 방법’을 자문하였던 것인데, 공자가 그 잔인한 속내를


단번에 눈치 채고 계강자의 의도를 막은 것이다. 현토 ‘댄’은 이러한 의미
를 정확하게 살려 담은 것으로, 이 자리에 ‘면’이나 ‘어든’ 또는 ‘호’를 넣
어도 될 것 같지만, 이들 현토는 절대 올 수 없다.5)

5. 나열형 현토

나열형 연결 현토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고 가장 친근하며 그 의미가 특


별히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현토를 들자면 ‘며’와 ‘고’를 들 수 있다. 이
두 현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고, 또 사용에 있어서
도 굳이 구별하지 않고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와서 구어적 혼용이나
자의적 사용이 가장 많은 현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말
에서 조사 ‘하며’와 ‘하고’, 연결어미 ‘며’와 ‘고’가 몇몇의 특별한 경우를 제
외하면 큰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는 언어습관의 현실에서 영향을 받는 측면
도 있다고 본다. 표준국어대사전 에서 연결어미 ‘며’에 대한 특별한 설명
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우리말에서는 조사이든 어미이든 대체로 ‘(하)
고’로 흡수되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현토에서도 그러한가. 이 두 현토의 사용에는 특별한 규칙이 없
으며, 혹 있다 하더라도 그 규칙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없
는 것일까. 본 장 역시 이런 작은 물음에서 출발하여 작성되었다. 두 현토는
용법이나 의미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장과 달리 각각의 현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마지막에 둘을 사례별로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5) 특히 ‘호’는 올 수 없다. 이 문장의 문형으로만 보자면 Ⅲ장의 ⑥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이 자리에 ‘호’를 쓰면 ‘殺無道, 以就有道’가 爲政者에게
강력히 권장되는 정치 덕목이 되기 때문에 논어 경문의 본지를 크게 해친다.

311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1) ‘하며’

먼저 ‘며’이다. 나열형 연결에 쓰이는 가장 기본 현토이다. 많은 사람들


이 나열형 연결에 쓰이는 기본 현토를 ‘고’로 알고 있는데, 이는 널리 잘
못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대등한 어떤 사실이나 동작, 또는 개념을 나
열할 때 일차적이고 기본적으로 쓰이는 현토는 언제나 ‘하며’이다. 빈도수
도 ‘고’보다 ‘며’가 훨씬 많다.

1 子夏ㅣ曰 賢賢호 易色며 事父母호 能竭其力며 事君호



 能致其身며 與朋友交호 言而有信이면 雖曰未學이라도
吾必謂之學矣리라.( 論語 <學而>7)
◯ 子ㅣ謂子産샤 有君子之道ㅣ 四焉이니 其行己也ㅣ恭며
2

其事上也ㅣ敬며 其養民也ㅣ惠며 其使民也ㅣ義니라( 論


語 <公冶長>15)

1 은 나열된 네 개의 구가 각각 층위는 같지만 문장의 통사구조는 다르



2 는 층위도 통사구조도 같다. 말하자면 층위가 같은 사실이나 동작 또
다. ◯
는 개념을 나열하는 문장에서 사용하는 현토는 언제나 ‘며’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본 논문 2・3・4장에 소개한 여러 예문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구가 아무리 많아도 일관되게 ‘며’이다. 지루한 감이 든다고 ‘
고’를 ‘며’로 바꾼다거나 또는 ‘며’가 자주 사용되었다고 하여 ‘고’로
바꾸어 쓰는 일은 결코 없다.

2) ‘고’

보다 복잡한 규칙을 안고 있는 현토는 ‘고’이다. 사람들이 ‘며’와 ‘


고’를 헷갈려하거나 혼용하는 것은 모두 이 현토 ‘고’의 용법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한다. 논지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고’의 규칙과 예문을 하나씩

312
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간략하게 제시하면서 설명하고 한다.


하나. 둘 이상의 대등한 동작이나 개념 등이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앞 절
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뒤의 절이 함께 이루어질 때 ‘고’를 사용
한다.

❶ 子ㅣ曰 道之以政고 齊之以刑이면 民免而無恥니라 道之以德


고 齊之以禮면 有恥且格이니라( 論語 <爲政>3)

행정으로 인도하고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대등한 두 가지 일이고 구의


통사구조도 같지만, 둘이 각각의 일이 아니고 앞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뒤의 행위도 동시에 이루어지며 또한 그 역도 성립하기 때문에 여기서
2 와 비교해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6)
는 ‘하며’를 쓸 수 없다. 바로 앞의 ◯

둘. 둘 이상의 동작이나 사실 등이 시간상의 차이를 두고 순서대로 연결


될 때 ‘하고’를 사용한다.

❷ 子ㅣ曰 吾ㅣ 十有五而志于學고 三十而立고 四十而不惑


고 五十而知天命고 六十而耳順고 七十而從心所欲야 不
踰矩호라( 論語 <爲政>4)

셋. 둘 이상의 사실이나 개념이 대비적으로 제시될 때 ‘하고’를 사용한다.

❸ 子ㅣ曰 君子 周而不比고 小人 比而不周ㅣ니라( 論語


<爲政>14)
子ㅣ曰 學而不思則罔고 思而不學則殆니라( 論語 <爲政>15)

❸에 인용한 두 예문은 층위도 대등하고 앞뒤 구의 통사구조도 같다. 다

6) 이 자리에 현토 ‘고’가 붙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는데, 이는 본절 ❸을 참조.

313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만 앞 절과 뒤 절이 선명한 대비가 되기 때문에 ‘며’가 아니라 ‘고’로 연


결된다.

넷. 둘 이상의 사실이나 개념이 계기적 또는 인과적으로 연결될 때 ‘고’


를 사용한다. 점층법이나 점강법 등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❹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고 欲治其國者 先齊其


家고 欲齊其家者 先修其身고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고 欲正其心者 先誠其意고 欲誠其意者 先致其知니 致
知 在格物니라( 大學 )
物格而后知至고 知至而后意誠고 意誠而后心正고 心正
而后身修고 身修而后家齊고 家齊而后國治고 國治而后
天下平이니라( 大學 )

治國과 齊家, 齊家와 修身는 계기적 또는 인과적으로 연결된다. 平天下


에서 格物까지 내려올 때나 物格에서 天下平까지 올라갈 때나 마찬가지이
다. 이러한 경우에 절대 ‘며’를 사용하지 않는다. 大學 經文 제1장 “大
學之道 在明明德며 在親民며 在止於至善이니라”에서 ‘고’를 쓰
지 않고 ‘며’를 쓴 이유와 비교해 보면, 두 현토의 용법과 규칙 차이가 선
명하다.
다섯. 큰 단위의 구두를 구분하거나 이을 때 사용된다.

이상에서 보듯 의미의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바꾸어 써도 크게 무


리 없는 ‘며’와 ‘고’ 사이에도 엄격한 사용의 규칙이 있었으며, 직감이
나 구어적 관습에 의한 혼용은 없었다. 둘의 구분도 철저하여, 예외의 경우
가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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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3) ‘며’와 ‘고’를 통한 경문의 이해

앞에서 말한 ‘며’와 ‘고’ 두 현토의 용법과 규칙을 정확이 인지하고


언해를 볼 때, 범상하게 보아넘겨왔던 이 두 현토들을 통해 경문의 흐름을
좀 더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린다.

㉠ 子ㅣ曰 視其所以며 觀其所由며 察其所安이면 人焉廋哉리


오 人焉廋哉리오( 논어 <爲政>10)
㉡ 子ㅣ 語魯大師樂曰 樂은 其可知也ㅣ니 始作애 翕如也야 從
之純如也며 皦如也며 繹如也여 以成이니라( 논어 <八
佾>23)

㉠의 문장은 흔히 視其所以 단계를 거치고 觀其所由를 거쳐 察其所安의


단계에 이른다면 대상 인물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기 쉬운
데, 교정청언해는 視와 觀과 察에 시간이나 단계의 선후를 상정하지도 않았
고 이들을 굳이 계기적 연관 관계로 파악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셋 사이
에 상호 연관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예컨대 ‘행동, 말, 표정을 보
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察人法의 세 관점을 소박하게
나열하여 드러낸 것으로, 그 사이의 선후나 계기가 앞의 ❷나 ❹와는 다르
다는 것이다. 視其所以의 다음 단계로 반드시 觀其所由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察其所安을 위해 視其所以와 觀其所由가 필수불가결하게 전제되
지 않는다. ㉡ 역시 마찬가지이다. 純과 皦와 繹이 음악 연주의 전개나 진행
에 따라 요구되는 이상적인 어떤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교정청언해
는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고 선후나 계기적 연관 없이 각각 같은 층위로 중
요한 독립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현토 ‘며’를 붙인 선현들의 의
도를 비로소 간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이해가 합리적이고 객관적
이라고 판단된다. 굳이 단계의 선후나 계기적 연관성을 지닌 관계로 파악하
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315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현토 ‘며’와 ‘고’를 경문 이해에 좀더 정밀하게 적용해볼 수 있는 경


우는 두 현토가 한 문장 안에 같이 사용되었을 경우이다.

㉢ 子ㅣ曰 弟子ㅣ 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호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論語 <學而>6)
㉣ 子ㅣ曰 事父母호 幾諫이니 見志不從하고 又敬不違며 勞而
不怨이니라( 論語 <里仁>18)

㉢의 문장을 대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작은 구 사이의 관련이 어떻게 되는


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현토로 보자면 적어도 교정청언해는 ‘入則孝, 出則
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으로 나누어 본 것이
분명하다. ‘며’로 끊어 연결한 것이 기본 단위로 이들 구는 각각 독립된
덕목이고, ‘入則孝’와 ‘出則弟’는 대비가 되기 때문에 ‘고’로 이은 것이다.
㉣ 역시 마찬가지이다. ‘見志不從, 又敬不違’와 ‘勞而不怨’을 나누어 ‘
며’로 연결하였고, ‘見志不從’과 ‘又敬不違’는 앞 구절의 행위가 이루어지
는 동안 동시 뒤 구절의 행위가 일어나, 이어지는 하나의 행위이므로 ‘고’
로 이은 것이다.(현대의 표점은 의미의 흐름과 분절을 이렇게 섬세하고 정
치하게 표시할 수 없다.)

㉤ 子夏ㅣ曰 君子ㅣ 有三變니 望之儼然고 卽之也溫고 聽其


言也厲ㅣ니라( 논어 <子張>9)

㉠과 ㉤을 비교하면, ‘며’와 ‘고’가 혼용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의


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은 ‘三變’을 전제로 두고 있는데다 ‘望之’와 ‘卽之’
와 ‘聽’의 거리감에 따른 ‘儼然’, ‘溫’, ‘厲’의 사이에 계기적 연관관계가 강
하므로 ‘며’가 아니라 ‘고’가 쓰인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통사구조의 구를 연결할 때 현토 ‘고’를 쓰다
가 일정한 단위 별로 ‘하며’를 써서 정리해준다거나 혹은 그 역의 방법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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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용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7) 그런 사례는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는


다. 이 규칙도 매우 엄격하여 예외라든지 구어적 혼용이 일어나는 곳은 결
코 없다. 모두 현토의 용법에 따른 규칙을 철저히 준수한 것이다. 요컨대
‘고’나 ‘며’에도 역시 분명한 용법과 규칙이 존재하며, 언해의 현토는
그것을 엄격히 준수하고 있다. 사용자의 어감이나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혼용하거나 자의적으로 편용한 것이 결코 아니며, 그런 사례는 발견되지 않
는다.

6. 나오며

본 논문을 시작하면서 약술한 바, 논자는 번역과 표점에 과연 현토가 유


용한가 하는 물음에 답을 얻기 전에 현토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와 정리가
우선 요청된다는 요지의 논문을 기왕에 발표한 바 있다. 그 논문에서 ‘대’
1 용법에 따른 분명한 의미가 각각 있으며, ◯
와 ‘(이)어늘’을 중심으로 ◯ 2

용법은 일관된 규칙을 지니고 있어 관습이나 자의에 의한 혼용과 편용이 없


3 원문의 문형과 문장구조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음을 논
으며, ◯
증하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현토를 연구하여 각각 의미와 용법을 정확히
규명한다면 한문고전 번역과 표점의 수준 제고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
리라는 전망을 제출하였다.
그때부터 지니고 있던 문제의식을 조금 키워 빈도수가 많고 여러 사람들
에게 익숙하게 거론되는 네 유형의 주요 현토들을 대상으로, 지난 논문의
논지에 성급한 일반화나 과도한 비약의 오류는 없었는지 다시 검증해보았
다. 특히 자주 사용되어 초학자들에게도 비교적 낯익은 현토들을 각 유형별

7) 구두해법 에서도 “‘며’는 ‘고’의 相間으로, 待對處에 많이 사용하니, 역시 변


통의 용례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전통 시대 한문 문리의 감각으로 말한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바로 현토 연구에 보다 언어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태도와 방법론
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317
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로 검토하되, 의미와 용법이 매우 유사해 보이는 현토들을 둘 혹은 셋씩 대


비하여 고찰하고 규명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본 논문에서도 역시 앞의 논문의 논증에서 얻은 세 가지 결론이
틀리지 않은 것이었음을 더욱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나’와 ‘(이)
라도’, ‘(이)면’과 ‘(이)어든’과 ‘인댄’, ‘며’와 ‘고’ 등 서로의 자리에 바
꾸어 써도 무방해 보이는 가까운 현토들 사이에도 나름의 의미와 그에 따른
규칙이 명확히 있었고, 그 규칙은 모든 현토마다 일관되고 엄격하게 지켜졌
다. 예외는 없었다. 현토가 적당히 문맥에 맞추어 편의적으로 행하는 비합
리적인 문화관습이나 자의적인 토씨 달기가 아님은 이제 가설이나 추론이
아니라, 논증을 통해 증명된 명확한 참이라 할 수 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현토의 용법과 의미를 정확히 규명하면 경서 해석에
있어 조선조 지식인들이 어떻게 경문을 분석하고 해석했는지 살펴보았다.
또 현토의 비교를 통해 교정청언해와 율곡언해의 경문 해석의 태도와 시각
차를 미묘한 지점까지 변별하고 밝혀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울러 논하였
다. 이 작업이 경서 번역과 원문 정리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여할 점이 없
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본고를 계기로 경학 담론은 더욱 풍부해지고 깊어지
길 기대한다.
하지만 논자는 일련의 연구에서 원천적인 한계와 선결 과제가 있음을 절
감하였다. 그중 현토 연구에서 언어학적 접근태도와 연구방법론이 부재하
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금까지 현토 연구는 구두해법 과 같은 전
통 구두 해설서나 한문 대가의 문리에 의존하려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과학적 태도가 오히려 현토 연구에 방해가
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현토의 문제점을 운위하는 학자들의 주장에는 현토
연구자들의 비언어학적 접근 태도나 연구 방법에 그 비판의 논거를 두고 있
는 측면도 있다고 판단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현토의 기본
형 조사와 빈도수 조사가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토의 유형
분류와 문법 용어 정립이 필요하다.(본고에서 사용한 문법 용어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학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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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각한다.) 셋째 분류를 위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토의 의미와


용법을 규명하기 위해 문형이나 구절의 통사구조, 문장 내의 특정 부사어와
의 호응, 주어의 전환, 문법 또는 내용상의 제약조건 등 방법이나 기술적인
측면도 더욱 개발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과 연구가 성실히 수행되어 신뢰성 높은 결과가 제출
다면, 이를 바탕으로 두시언해 와 같은 문학서 언해 연구에도 새로운 방법
론과 시각을 열어줄 수 있다고 전망한다.

※ 이 논문은 2018년 01월 30일(화요일)에 투고 완료되어,


2018년 02월 21일(수요일)부터 03월 12일(월요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8년 03월 13일(화요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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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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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東漢文學 (第五十四輯)

ABSTRACT

Commentary and interpretationof Sohakeounhae


and Chinese Classic Texts

Lee, Gyu-pil*
8)

In my previous research I have looked at the commentary such as


‘Handae’ and ‘(i)Eouneul’. As a result, it turns out that the two used in
similar meaning differ not only in meaning but also applied rules. Each had
a clear grammatical order and that the interpretation of the two situations of
Chinese Classic Texts is very reasonable and logical, and even more
consistent.
This paper examines some horns after ‘Handae’ and ‘(i)Eouneul’. As a
result, I can confirm the results obtained in the previous paper. Like
between ‘(i)Na’ and ‘(i)Rado’, between ‘(i)Myeon’ and ‘(i)Eodeun’・
‘(i)ndean’. between ‘Hamyeo’ and ‘Hago’ there was a clear meaning
between the similar things and their rules. And the rules were strictly
followed without exceptions.
Based on this, this study accurately explains the usage and meaning of
comentary, and examined how the intellectuals of Joseon Dynasty analyzed
and interpreted the text. I also discussed the possibility that the attitude
and visual difference of Gyojeongcheongeounhae and Yulgokeounhae
interpretation can be distinguished and delineated to a subtle point. It is

**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Research Fund,


2017.
** Professor,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gd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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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토와 小學諺解 및 四書諺解의 經文 해석 (이규필)

expected that the discourse related to chinese classics will become more
abundant and sharp.

Key Words:Commentary, Grammatical rules, Transcription of Chinese Classic


Texts, Interpretation of attitude and visual difference,
Sohakeounhae, Gyojeongcheongeounhae, Yulgokeoun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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