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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에서 글쓰기의 구성 원리

― 럭키의 독백을 중심으로

김 주 원

서론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문학 언어를 “중심

을 빼앗긴 말, 시작하지 않고, 끝나지 않는 말, 그렇지만 욕심스럽고, 까다롭고, 결코 멈추지

않을 말”1)이라고 묘사한 이래, 베케트의 작품은 언어에 대한 불신과 절망 속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조건이 탐구되는 자리로 이해되어 왔다. 그의 희곡에서 말은 고전극에서처럼 행위

가 되지 못하며, 의미를 잃고 무대 위에서 공허하게 울리는 물질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에서 가장 긴 대사인 럭키Lucky의 독백은 베케

트 희곡 중에서도 언어의 무력함을 과격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예로서 여러 비평가들의 주목


을 받았다. 럭키는 작품의 1막 중간에 등장하는 포조Pozzo의 노예이다. 그는 주인의 명령에

말없이 기계적으로 복종하지만, 생각을 큰 소리의 말로 들려주면서 주인에게 지적 사유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2) 포조는 자신과 두 주인공(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

Estragon) 사이의 의사소통이 계속 좌절되면서 누적된 불쾌감과 권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럭키를 어릿광대로 활용하고자 하며, 럭키는 포조의 명령에 따라 춤과 생각을 공연한다. 그

러나 럭키의 생각은 실상 알아듣기 어려운 말의 연쇄로서 청자들을 당황시키며, 극의 도중

에 파국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럭키의 ‘생각’은 그의 유일한 대사이다. 이 대사는 럭키가 다른 인물에게 신경을 쓰지 않

으며 혼자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과 관객의 주의를 럭키 자신에게 집중시킨


다는 점에서 독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독백이 주의 깊은 연구를 요하는 이유로는 형이

상학적 논변으로 시작하여 무의미의 폭력적인 현시로 끝나는 일련의 말이 다름 아닌 사유의

전형으로 제시된다는 점, 일관된 의미 구축에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암시를 담고 있

다는 점, 해체된 언어를 담고 있지만 자동기술 등의 무작위적인 방식이 아닌 의식적인 기법

에 의존해 창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 모리스 블랑쇼, 『미래의 책』(최윤정 옮김), 세계사, 1994, 337쪽.


2) Samuel Beckett, En attendant Godot, Minuit, 1952, p. 51. 이후 En attendant Godot에서의 인용은 본문
내 괄호로 표기한다.
언어의 무력함과 함께 다양한 철학적 암시를 보여주는 독백을 통해 럭키는 언어적 존재로

서 인간 조건의 한 측면을 상징하는 인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브뤼노 클레망Bruno

Clément에 따르면 이 측면은 “과학과 사유”이다.3) 안 가엘 로비노 베베르Anne-Gaëlle

Robineau-Weber는 보다 상세한 분석을 통해 이 독백이 “논리적, 과학적 기원”을 잃고 공

회전하는 언어를 보여주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부재하는 신”에 대한 암시를 통해 오지 않는


고도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고 주장한다.4) 초창기 연구자인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은

한층 더 종교적인 해석으로 기울어 있다. 그는 부조리극의 본질이 “언어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절하”5)에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럭키의 독백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관념이 있으

며 그것이 “영혼의 구원과 우연에 의한 그 제약”6)이라고 말한다. 한편 강희석은 최근의 베

케트 연구 경향이 철학적 해석에서 형식적 분석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고도를 기다리며』를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선행 연구들을 정리한 다음 럭키 독백의

성격을 “실패한 식장연설의 패러디”라고 규정한다.7)

이 논문은 위의 논의들이 럭키 독백의 함의들을 풍부하게 분석하고 있으나, 내용 분석의

차원에 머무를 뿐 구성 방식 및 극적 효과의 원동력을 밝혀내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베케트가 럭키의 해체된 독백을 통해 인간 언어의 무력함을 보

여주고 있다면, 이 논문의 목적은 인간 언어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베케트 문학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논문은 럭키의 독백이 해체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으며 고유한 문학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여기서 독백의 구성은 의

미 또는 언어 외적 세계와의 관계 바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파스칼 카사노바Pascale

Casanova의 표현을 빌리자면 추상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8) 한편 독백의 언어는

의미 전달 기능과 발화 수행적 기능을 박탈당했다는 점에서 시적 기능에 집중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탐구는 시학적 접근에 속한다.

럭키 독백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 논문은 먼저 독백의 내용과 그 의미에 관한

분석에 착수하여, 독백 속에서 드러나거나 숨겨지는 내용 요소들의 체계적인 정리를 시도할

것이다. 내용 분석은 주제의 전개, 암시적 의미, 수사학의 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다음으

3) Bruno Clément, L'œuvre sans qualités. Rhétorique de Samuel Beckett, coll. «Poétique», Seuil, 1994,
p. 358.
4) Anne-Gaëlle Robineau-Weber, En attendant Godot (1952). Samuel Beckett, coll. «Profil d'une
oeuvre», Hatier, 2002, pp. 113-117.
5) 마틴 에슬린, 『부조리극』(김미혜 옮김), 한길사, 2005, 39쪽.
6) 위의 책, 71쪽.
7) 강희석,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타난 수사학의 연설과 독백의 패러디」, 『불어불문학연구』 제64집, 한
국불어불문학회, 2005, 49-75쪽.
8) Pascale Casanova, Beckett l'abstracteur. Anatomie d'une révolution littéraire, coll. «Fiction & Cie»,
Seuil, 1997, pp. 7-11.
로는 이 요소들로 하나의 극적 텍스트를 구성하기 위해 베케트가 동원하는 구성 방식 및 기

법들이 논의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논문은 이렇게 구성된 럭키의 독백이 극의 진행 속에

서 어떠한 원리를 따라 어떠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지 설명하고자 할 것이다. 럭키의 독백은

무엇보다 스스로 팽창하여 폭발하는 언어로서, 무한한 기다림의 시간을 오직 언어만으로 채

우는 이 작품의 진행에 파괴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본론

I. 무의미 속의 의미

럭키의 독백은 구두점의 부재, 무수한 반복과 열거, 성분 호응의 위반, 삽입어구의 남발을

통해 통사 구조와 의미 구조가 교란되면서 무의미한 횡설수설이 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연극의 청중이 그의 말 전체를 조리 있게 이해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럭키의 생각은 의사소

통이 가능한 말로 성립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브뤼노 클레망은 이런 이해 불가능성을

근거로 하여 럭키의 “유일한 독백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9) 로비노 베베

르는 독백이 étant donné, attendu와 같은 접속사처럼 논리적 언어의 도구 혹은 잔해를 담

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만, 그것들을 진정한 추론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껍데기로

간주한다. 독백의 전반부는 “의미 같이 보이는 것un semblant de sens”을 보여주지만, 후

반부에 가면 이마저도 파괴되어 “공회전하는 생각” 또는 일종의 춤만 남게 된다10).

무대 위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독백에 주의를 기울이다가 당황하고 만다는 점, 무

대 밖의 청중들도 내용을 이해할 수 없도록 다양한 교란 장치가 동원된다는 점, 독백 자체

도 파국적으로 전개되다가 물리적으로 중단된다는 점은 이 독백이 지적 담화를 가장한 무의

미한 말이라는 클레망이나 로비노 베베르의 주장을 분명하게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렇지만 두 사람의 주장은 아무도 럭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판단을 럭키의 말이 애초

에a priori 이해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단으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비약을 안고 있다. 글에서

추출 가능한 의미를 최대한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는 한 럭키의 독백 전체가


무의미 덩어리라는 판단은 인상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로비노 베베르가 럭키의 독

백을 횡설수설 위에 ‘의미 같이 보이는 것’을 덧씌운 텍스트로 간주했다면, 이 장에서는 그

것을 잠재적인 의미 구조가 횡설수설 같이 보이는 것에 파묻혀 있는 텍스트로 가정하면서

분석을 진행할 것이다.

9) Bruno Clément, op. cit., p. 359.


10) Anne-Gaëlle Robineau-Weber, op. cit., p. 107.
독백의 내용을 분석하여 의미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세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첫째

는 텍스트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주제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논지를 정리하는 것으로, 텍스트

의 외시적 의미dénotation와 관계된다. 둘째는 텍스트의 요소들이 암시하는 사실들을 발견

해가면서 명시적인 주제 바깥에서 형성되는 의미의 계열들을 추적하는 방식이며 텍스트의

함축적 의미connotation와 연관이 깊다. 마지막은 의미가 언어 사용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특정한 언어 사용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밝혀내는

일이다. 이것은 수사학의 영역에 속한다.

1. 종말론적 전망의 철학

주제의 관점에서 럭키의 독백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구분의 표지는 논증적 언어의 흔적

에 해당하는 종속접속사 étant donné, attendu, considérant이다. 첫 부분(55쪽 11-27행)

의 주제는 신이다. 한편 두 번째 부분(55쪽 27행-57쪽 7행)는 인간의 문제를 다룬다. 앞의

두 부분보다 한층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세 번째 부분(57쪽 7행-58쪽 5행)은 공기와 땅을

중심으로 해서 자연 현상들을 언급한다. 이처럼 럭키의 독백은 신, 인간, 물리적 자연을 축

으로 전개되면서 고전적인 철학 체계를 모사하고 있다. 물론 럭키의 주제들을 체계적인 철

학적 입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럭키는 이 주제들 속에서 상당한 일관성을

가지고 세계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 혹은 종말론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1.1. 신학

럭키 독백의 첫 부분은 반복과 삽입어구 및 수식어들을 제외하면 다음 문장으로 간추릴

수 있다.

[1]우리를 사랑하는 인격신의 존재를 가정한다면 [2]그것은 올 것이며 고문 속에서 불


속에서 고통을 받는데 [3]불은 불꽃은 대들보에 불을 지르고 지옥을 하늘로 가져갈 것이
다 (번호는 인용자)
[1]Étant donné l'existance (...) d'un dieu personnel (...) qui (...) nous aime bien
(...) [2]ça viendra et souffre (...) dans le tourment dans les feux [3]dont les feux
les flammes (...) mettront (...) le feu aux poutres (...) porteront l'enfer aux nues
(...) (p. 55)

[1]은 étant donné가 이끄는 가정의 종속절이다. 여기서 인격신의 존재가 가정되는데, 가

정의 전거는 “푸앙송Poinçon과 와트만Wattmann의 최근 공동 연구”이다.11) 인격신은 첫 번

11) 로비노 베베르는 푸앙송과 와트만의 이름이 각각 한 18세기의 기하학자와 영국인 물리학자 제임스 와트
(1736-1819)에게서 빌려온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이 차용이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의 이행을 보여준
째 수식어구인 “흰 수염이 난à barbe blanche”에서 이미 희화화된다. 이 수식어를 둘러싼

간투사 “까까quaqua”는 대변을 뜻하는 caca와 발음이 같은 말로서 희화화에 조롱의 뉘앙

스를 더한다. 이외에 신의 속성으로 언급되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신은 시간과 연장(延長)

바깥에 있으며 무감동apathie, 무공포athambie, 실어증aphasie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처음

두 가지는 신이 영원하며 순수한 정신적 존재라는 전통적인 신 관념을 반복하고 있다. 반면


나머지 세 명사가 보여주는 무관심과 침묵 속에서 럭키의 신은 파스칼의 숨은 신에 근접한

다.12) 신이 침묵하면서 가장 먼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 신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무감동, 무공포, 실어증은 계시나 이성 같은 신의 은총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음성상의 유사성에 의거한 자유 연상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 연상은 신에게

서 유래하는 진리와는 무관하게 인간 언어 고유의 원리를 따라 작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묘

사된 럭키의 신은 기독교의 신처럼 인간을 사랑하지만, 이 사랑은 “몇몇 예외를 제외한à

quelques exceptions près” 것이다. 신의 사랑은 불완전하다. 예외 앞에 부정형용사가 붙

은 만큼 원칙상 누구라도 신의 사랑에서 제외될 수 있다.

[2]는 앞의 종속절에 연결되는 주절이다. 여기서는 위와 같은 인격신의 존재를 가정했을

때 이 세상에서 벌어질 일이 서술된다. 일단 신은 구어체로 사물을 지칭하는 ça로 대명사화

되는데, 이 표현은 신이 존중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 신이 이 세상에

“온다면viendra", 이는 강림보다는 전락에 가까울 것이다. 세상에 내려온 신은 “고문 속에

서 불 속에서 존재하는 자들과 함께 신과 같은 미란다처럼 고통을 받는다.” 여기서 “신과

같은 미란다la divine Miranda”는 누구인가?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empest』에

등장하는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 베네수엘라의 혁명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Francisco

de Miranda, 그리고 천왕성의 가장 작은 위성 미란다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13) 어느

쪽이든 미란다가 신의 무력함을 입증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상에 내려온 신은

평생을 세상 바깥에서 살아서 인간 세상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지상의 난관에 굴복

한 뒤 그가 사랑하는 인간들에 의해 죽음을 맞거나,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의 끝에 겨우

위치하면서 인간들의 삶과는 절대로 관계가 없는 행성 주위를 회전할 것이다. 럭키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존재하는 자들과 함께avec ceux qui sont”, 즉 인간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다. 한편 이 구문은 속사 없는 계사 구문으로 읽을 수도 있다.14) 이 때 신과 함께 고통

다고 주장한다. (ibid., p. 112)


12) ibid., p. 116.
13) 『템페스트Tempest』의 미란다는 마법사인 아버지와 함께 세 살 때부터 세계와 완전히 격리되어 살면서
세계에 대한 순진한 동정심과 무력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1750-1816)는 남아메리카
해방 혁명의 선구자이자 지도자였으나 스페인 군대와 강화를 맺은 뒤 이를 배신행위로 간주한 동지들에 의해
스페인에 넘겨져 감옥에서 죽은 인물이다. 천체 미란다는 천왕성의 위성 가운데 가장 작고 가장 안쪽 궤도에
위치하는 위성으로 직경이 470km에 불과하며,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집필하기 시작한 해인 1948
년에 발견되었다.
받는 자들은 ‘~인 자들’, 즉 규정할 수도 파악할 수도 없는 이들이 된다. 마지막으로 신이

받는 고통의 이유는 알 수가 없다on ne sait pourquoi. 전락한 신의 운명은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그가 신으로 존재할 근거도 사라진다.

[3]은 앞 절의 les feux를 선행사로 하는 관계절이며, 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이 마침내

à la fin 초래할 일을 서술한다. 먼저 고통을 주는 것은 “고문tourments”에서 “불feux”로,


다시 “불꽃flammes”으로 구체화되면서 역동성을 얻는다. 불꽃은 먼저 “대들보에 불을 지를

것이다mettront (...) le feu aux poutres.”15) 대들보는 지상과 수직적인 관계를 맺는 상부

공간을 수평적인 공간으로 재편성하는 장치이다. 이렇게 보면 대들보에 불을 지를 것이라는

예언은 다음 예언, “지옥을 하늘로 가져갈 것이다porteront l'enfer aux nues”라는 말과 겹

친다. 신이 내려오는 세계는 고문과 불이 지배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미 지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불은 지상의 신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혼자 힘으로 상승하여 신의 본

래 거처인 하늘을 불태우고 지배할 것이다. 이 때 하늘은 치솟는 불에 대응하지 못하고 푸

르고 고요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구절은 신의 완전한 패배를 선언한다.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하늘의 “고요calme”는 신이 걸린 실어증의 다른 표현이다.

고요한 정말 고요한 단속적이긴 하지만 덜 반가운 것은 아닌 고요의 하늘


nues (...) calmes si calmes d'un calme qui pour être intermittent n'en est pas
moins le bienvenu (p. 55)

1.2. 인간학

독백의 두 번째 부분은 다음 요약과 같이 인간의 축소를 설명한다.

[1]인간이 마르고 줄어들고 있다는 게 분명하고 그래 보이고 [2]순수 손실이 대략 두당


이 인치 백 그램이므로 (번호는 인용자)
[1]attendu qu' (...) il est établi (...) il apparaît que l'homme (...) est en train de
maigrir et (...) de rapetisser (...) [2]la perte sèche par tête de pipe (...) étant de
l'ordre de deux doigts cent grammes (...) (pp. 55-57)

럭키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의 축소는 현대적인 현상이다.16) 이 현상은 현대의 물질적 진

14) 베케트 자신의 영어 번역본은 관계절 없는 관계대명사를 사용하여 속사 없는 계사 구문의 효과를 낸다.
“suffers like the divine Miranda with those who for reasons unknown” (Samuel Beckett, Waiting for
Godot, Grove Press, 1954[1997], p. 45.)
15) 강희석에 따르면 이 표현은 ‘화약에 불을 붙이다’ 또는 ‘분노를 폭발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mettre le feu
aux poudres를 살짝 바꾼 것이다. 강희석, 위의 글, 67쪽.
16) 인체 측정의 비교 기준 시점은 볼테르의 죽음(1778년)이며, 영어판에서는 철학자 버클리의 죽음(1753년)이
다. (ibid., p. 46)
보, 영양 섭취와 쓰레기 처리의 진보 및 체육 교육과 스포츠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왜소화를 설명할 수 있는 텍스트 내의 유일한 근거는 인체가

세계 제2차 대전의 상징적인 장소인 노르망디에서 측정되었다는 점이지만, 럭키가 적극적으

로 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 패배가 그의 부동심, 무공포, 실어증과 전락을 통해

설명된다면 인간의 축소는 그보다 더 불가해한 숙명으로 보인다.


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신에 관한 이야기보다 두 배 이상 길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이 부

분의 대부분은 주장의 전거와 스포츠 종목의 이름을 열거하거나 반복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

다. 구성상 이 부분은 attendu가 이끄는 원인절과 현재분사 étant에 속하는 독립분사절로

구분된다. 여기에는 주절이 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말의 혼란이 심화되면서 럭키가 통사

구조를 놓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상황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의 축소에 따

르는 결과는 신의 고통과는 비할 수 없이 파국적인 것, 말로 할 수 없는 것l'indicible에 속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럭키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미

완성inachevé이라는 단어는 럭키가 자기 생각의 전거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8번 반복된다.

미완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을 전개시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과도 연결된

다. 첫 부분과 세 번째 부분에서 전거로 드는 연구자가 두 명인데 비해 이 부분에서는 여섯

명의 연구자가 언급된다. 이 여섯 명의 이름 또한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전거를

신뢰하기는 어렵다.17) 이처럼 복잡한 참고문헌 사정 때문에 접속사 attendu에서부터 주제어

인 인간l'homme이 등장하기까지는 15행이 소요된다. 주제 전개가 어렵다는 사실은 럭키가

스포츠 종목 이름 열거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다시 말해 동시에 마찬가지로 줄어들고 이유는 모르지만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다


시 말해 비행 골프 테니스
bref je reprends en même temps parallèment de rapetisser on ne sait pourquoi
malgré le tennis je reprends l'aviation le golf (...) le tennis (p. 56)

럭키는 네 개의 삽입어구를 통해서 인간 축소의 주제로 돌아오는 데 일단 성공하나, “이

유는 모르지만on ne sait pourquoi" 다시 테니스를 언급한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다시 말


해je reprends”이라고 말하며 논지 이탈을 끝맺고자 하지만 곧바로 “비행 골프 테니스”로

돌아오고 만다. 이 착란적인 열거는 결국 완전히 무의미한 지명의 나열("Seine Seine-et-

Oise Seine-et-Marne Marne-et-Oise")에 와서야 일단락된다. 주제 전개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마지막 증거는 이 부분에서 말의 논리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표현들이 사실은

17) 테스튀Testu와 코나르Conard는 각각 남성의 고환과 여성의 음부를 가리키는 testicule과 con을 연상시키
며, 파르토프Fartov와 벨셔Belcher는 각각 방귀와 트림을 뜻하는 영어 fart와 belch에서 파생된 말이다. 푸
앙송과 와트만은 신의 문제를 다룰 때 등장했던 인물로, 럭키의 혼동을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동어 반복이 되어 말의 논리성을 파괴한다는 점이다.18) 럭키는 “사실이 여기 있다les faits

sont là”는 말로 이 부분에서 빠져나가지만 럭키가 말하는 사실들의 사실성은 이미 심각하

게 파손되어 있다.

1.3. 자연학
세 번째 부분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1]시골에서 산에서 공기는 똑같고 땅도 그렇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공기와 땅은


엄청난 추위로 돌들을 위한 것이 되어 아이고 (번호는 인용자)
[1]considérant (...) qu'il ressort (...) qu'à la campagne à la montagne (...) l'air est
le même et la terre (...) [2]l'air et la terre faits pour les pierres par les grands
froids hélas (p. 57)

이 부분은 두 번째 부분과 마찬가지로 주절 없는 종속절과 독립분사절로 구성되어 있다.

[1]에서는 장소와 무관하게 공기와 땅이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잘못된) 물리학적 관찰

결과가 제시된다. [2]에서는 엄청난 추위로 인해 공기와 땅이 돌들을 위한 것이 된다는, 앞

의 관찰과 연관성이 희박한 언명이 나타난다. 이 언명은 두 개의 명사와 하나의 과거분사로


구성되어, 시제를 갖추고 사건을 진술하는 문장보다는 명사구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의 이미

지 혹은 풍경에 가까워진다. 이 풍경은 엄청난 추위와 “엄청난 심연les grands fonds”의

힘으로 어떠한 생물도 살아남지 못하고 광물만 남아 있는 황량한 풍경이다. 첫 부분에서 불

의 지배를 받은 세계는 이번에는 얼음의 지배를 받는다.

돌을 위한 세계는 인간이 모두 사라진 세계이다. 첫 부분에서 형이상학적인 조건에 의해

고통받고 두 번째 부분에서 역사적인 조건에 의해 축소된 인간은 이제 자연 법칙에 따라 소

멸한다. 바꿔 말해 인간이 초월적인 구원과 내재적인 구원의 기회를 모두 박탈당한다면 종

말은 필연적이다. 신의 전락에서부터 희미하게 감지되었던 종말론적 전망은 이 부분에 와서

완성된다. 종말론적 전망에 강렬하게 사로잡힌 듯, 이 부분에 와서 럭키는 “울부짖고hurle”,


“비틀거리며trébuche”, “몸부림친다se débat”. 마침내는 그가 생각을 이어가는 것도 불가능

하게 된다. “바다 위에 땅 위에 대기 중에sur mer sur terre et dans les airs”라는 진술을

통해 종말이 세계 전체를 아우른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럭키의 말은 발화점에 도달하며,

그 신호는 바로 뒤에 나오는 간투사 peuchère이다.

말이 발화점에 도달하자 발화 주체는 사라지고 말의 잔해만 남는다. 앞서 나온 단어들을

18) 다음 두 표현이 여기 해당된다. “인간의 계산에 관련된 것 말고는 어떠한 오류의 가능성도 없이sans autre
possibilité d'erreur que celle afférente aux calculs humains” (p. 56), “반대 의견과는 반대로
contrairement à l'opinion contraire” (p. 56)
무작위적이고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이 말의 잔해들은 혹한 속에서 인간이 사라지고 돌멩이

들만 흩어져 있는, 럭키가 예감했던 황량한 풍경을 닮았다. 럭키가 마지막으로 내지르는 다

섯 개의 단어들은 대문자로 시작해서 말줄임표로 끝난다. 이것들은 15행에 걸쳐 끓어오르는

말 속에서 다른 언어 요소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잃고 일종의 절대적인 사물이

된 단어들이다. 이렇게 독백의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는 언어의 종말은 세계의 종말을 현시
하면서 럭키가 힘겹게 전개시켜 온 종말론적 전망의 철학을 완성한다.

이럴 수가 다시 말해 이유는 모르지만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사실이 여기 있다 이유는 모


르지만 다시 말해 다음으로 요컨대 결국 아이고 다음으로 돌들을 위하여 누가 의심할 것
인가 (...) 테니스! …… 돌! …… 정말 고요! …… 코나르! …… 미완성! ……
peuchère je reprends on ne sait pourquoi malgré le tennis les faits sont là on ne
sait pourquoi je reprends au suivant bref enfin hélas au suivant pour les pierres
qui peut en douter (...) Tennis !... Les pierres !... Si calmes !... Conard !...
Inachevés !... (pp. 57-58)

2. 역사적 현실의 암시

독백에는 철학적 주제의 전개에서 이탈하는 요소가 많으며, 이 요소들은 독백을 외관상

이해 불가능한 텍스트로 만든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연속을 가지고 대단히 속도감 있는

진행을 만들어내는 이 독백에서 암호문이나 주문(呪文)의 인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

이 아니다. 따라서 독백 속에서 텍스트 바깥에 대한 다양한 암시를 찾고자 하는 작업이 필

요하다.19) 이 절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개별적인 암시들을 넘어, 그것들이 독백 전반을 관

통할 정도로 강력한 하나의 계열을 이루는 현상이다. 독백 속에서 이러한 계열을 이루고 있

는 암시들은 세계 제2차 대전과 나치 대학살에 대한 암시들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전체에서 전쟁과 학살에 대한 암시를 찾으려는 시도는 장 프랑수아

루에트Jean-François Louette의 연구서에서 이미 이루어진 바 있다.20) 그는 나치 대학살의

기억이 작품 속에서 강박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들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나사로 문학

littérature lazaréenne으로 간주한다.21) 이 절에서는 럭키의 독백에 나타난 전쟁과 학살에

19) 로비노 베베르가 이 방면으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 그녀는 55쪽 24-25행의 하늘 묘사에서 베를
렌의 시 Sagesse의 반향("Le ciel est par-dessus le toit / Si blue, si calme")을 찾아내는가 하면, 항상 두
명씩 짝으로 등장하며 의심스런 전거를 제공하는 연구자들의 이름에서 플로베르의 소설 『부바르와 페퀴셰
Bouvard et Pécuchet』의 반향을 찾아내기도 한다. Anne-Gaëlle Robineau-Weber, op. cit., pp. 109-112.
20) Jean-François Louette, En attendant Godot ou l'amitié cruelle, coll. « sup lettres », Belin, 2002. 그
의 분석은 주로 연극의 무대 공간 및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인간 조건에 치중한 것으로서, 럭키의 독백
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분석을 요청한다.
21) 나사로 문학은 나치 수용소 체험을 기반으로 쓴 문학 작품들에 장 케이롤Jean Cayrol이 붙인 명칭으로, 성
서 속의 부활한 인물인 나사로Lazare에게서 유래한 용어이다. “작가에게 전쟁 뒤의 문학은 나사로의 문학이
된다. 그것은 인간의 고독, 세계 속에서 그의 부재, 그의 버림받음과 살아있지 않음에 대해 말한다.”
대한 암시들을 나치 수용소 세계의 암시, 나치 세계에서 인간 조건에 대한 암시, 역사적 나

치즘에 대한 암시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럭키의 독백에 나타난 세계는 앞 절에서 살펴본 대로 종말론적 이미지가 지배하는데, 여

기서 나치 수용소의 반향을 읽을 수 있다. 이 세계는 불의 이미지와 얼음의 이미지가 동시

에 지배하는 세계이다. 럭키는 한쪽에서 “불이 불꽃이 대들보에 불을 지르고 지옥을 하늘로
가져가는” 세계를 말하는 한편, 뒤에서는 “엄청난 추위로 엄청난 심연으로 하늘이 땅이 바

다가 돌들을 위한” 것이 되는 세계를 묘사한다. 이 상반된 이미지가 결합할 수 있는 곳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 수용소들이다. 나치 수용소는 가스실과 화장터에서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불의 공간인 동시에, 폴란드의 혹한으로 상징되는 얼음의 공간이다. 아우슈비츠의

겨울철 사망률이 70%에 달한다는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22) 겨울

은 대부분이 그 끝을 보지 못하는 무한한 어둠의 이미지를 획득하게 된다. 럭키의 독백 속

에서도 불의 세계는 “고문tourments”에서 “불feux”로 구체화되며, 얼음의 세계는 “추위

froids”에서 “심연fonds”으로 추상화된다.

다음으로 수용과 학살 과정 속의 인간 조건에 대한 암시가 있다. 고문 속에서 불 속으로,

추위 속에서 심연 속으로 나아가는 인간은 점차 “마르고maigrir”, “줄어들고rapetisser”,

“오그라든rétrécir” 끝에 절멸을 맞을 것이다. 학살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은 이런 전망과

맞물리면서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말의 연쇄 속에 암호처럼 자리잡을 수 있다. 이 때 죽음

을 연상시키는 중심적인 이미지는 돌의 이미지이다. 아래 예문에서 발화행위부사 “다음으로

au suivant”는 군대 명령어인 “다음 사람Au suivant”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

들은 차례로 돌들을 위하여, 돌들을 향하여 또는 돌로 바꿔지기 위하여 불려나가고, 그 결

과는 “아이고 머리 머리 머리 머리”라는 탄식이다.

다음 사람[다음으로] 요컨대 결국 아이고 다음 사람 돌들을 위해


au suivant bref enfin hélas au suivant pour les pierres (p. 57)

다음 사람 수염 불꽃 눈물 돌 정말 푸르고 정말 고요하고 아이고 머리 머리 머리 머리 노


르망디에서
au suivant la barbe les flammes les pleurs les pierres si bleues si calmes hélas la
tête la tête la tête la tête en Normandie(p. 57)

돌의 숙명적인 성격은 “불꽃 눈물 돌”의 이미지 전개에서 잘 나타난다. 독백 말미에서 인

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공기와 땅은 돌들을 위한” 것이 되는데, 아래 예문들에서 돌은 점점

(Maurice Nadeau, Le roman français depuis la guerre, coll. «idées», Gallimard, 1963, p. 38.)
22)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188쪽.
더 공포를 일으키는 이미지가 된다. 돌은 죽음을 만드는 기계,23) 죽음이 만들어놓은 잔

해,24) 죽음 뒤의 절대적인 침묵이다.25)

럭키의 독백에서 이처럼 수용소와 학살의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암시가 없다면 이 독백을 나치즘에 연결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축소를 이야기하는 독백의 두 번째 부분에서 나치즘에 보다 근접한 암시들을 찾을


수 있다. 그 자체로도 우생학적인 울림을 가진 인체 측정anthropométrie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인간은 영양 섭취와 쓰레기 제거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마르고 줄어드는 중이고 두당 순수


손실은 대략 평균적으로 벗겨놓고 노르망디에서
l'homme (...) malgré les progrès de l'alimentation et de l'élimination des déchets
est en train de maigrir (...) de rapetisser (...) la perte sèche par tête de pipe
environ en moyenne (...) déshabillé en Normandie (pp. 56-57)

“쓰레기 제거”는 단순히 위생의 향상을 뜻할 뿐 아니라 인체 규모의 “평균moyenne”을

깎는 왜소한 인간들의 제거를 암시할 수 있으며 나치의 ‘최종 해결’ 정책과도 연결될 수 있

다. 한편 위의 인용문은 12개의 스포츠 종목이 27행에 걸쳐 열거되는 가운데 파편화된다.


이 광적인 열거 속에서 나치 정권이 스포츠에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으며 또 나치 이데올로

기를 전파하는 도구로 스포츠를 사용했다는 사실, 또 이러한 목적을 위해 1936년 올림픽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다.26) 그러나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소해진

다. 이 인간은 “벗겨놓고 노르망디에서déshabillé en Normandie”에서 측정한 인간, 다시

말해 이 모든 조치들이 파국적인 전쟁으로 귀결된 뒤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는 인간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치 시대의 세계에 관한 암시들의 계열을 구축하

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이 세계는 스포츠에 대한 집착과 우생학적 인간관이 전쟁과 인간의

축소를 초래하는 세계이다. 고문과 대량 학살은 인간의 조건을 한층 더 비참하게 하면서 인

간을 절멸에 이르게 한다. 인간의 절멸은 수용소의 이미지, 즉 불에 의한 재앙과 얼음에 의


한 재앙이 합류하는 장소의 이미지를 통해 완성된다.

독백 속에 나치즘에 관한 암시는 세계대전이 만들어 낸 파국의 이미지가 작품의 글쓰기에

23) “더 심각한 건 돌들 요컨대 다시 말해 아이고 아이고plus grave les pierres bref je reprends hélas
hélas” (p. 57)
24) “머리가 아이고 돌들이 코나르 코나르[멍청이 멍청이]……la tête hélas les pierres Conard Conard...” (p.
58)
25) “돌! …… 정말 고요! ……Les pierres !... Si calmes !...” (p. 58)
26) 럭키가 스포츠를 총칭하기 위해 사용한 말인 “체육 교육culture physique” 역시 나치가 1934년에 창설한
기관인 ‘민족사회주의 체육교육 제국연맹Nationalsozialistischer Reichsbund für Leibesübungen’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베케트는 전쟁과 나치즘을 온몸으로 겪은 작

가였다. 그는 아일랜드인임에도 불구하고 레지스탕스에 참가했고, 동지들이 체포되어 독일

로 이송되던 날 점령 지역을 탈출하여 남프랑스에 은거했으며, 종전 후 적십자사의 야전 병

원에서 일했고,27) 수용소 체험 작가인 다비드 루세David Rousset, 엘리 비젤Elie Wiesel,

샤를로트 델보Charlotte Delbo가 증언 서적을 출판한 미뉘Minuit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 이


런 작가에게 자기 시대가 경험한 파국을 경유하지 않고 인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

능했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대전과 나치 대학살을 통해 유럽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파국의

경험은 럭키의 종말론적 전망이 닿아 있는 역사적인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3. 패러디

뒤크로Ducrot와 토도로프Todorov의 언어학 사전에 의하면, 패러디는 단어가 텍스트에

선행하는 다른 문맥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그 문맥에서와는 반대되는 기능을 하는 현상을

뜻한다.28) 패러디의 관점에서 읽는다는 것은 글에 수사학적으로 접근한다는 뜻이며, 수사학

적 접근은 언어 사용 방식에 따라 의미 효과가 변화하는 양식을 밝혀내는 방법이다. 예컨대

럭키의 독백을 철학 연설로 읽을 경우 종말론적 전망의 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철학

연설의 패러디로 읽을 경우에는 언어를 통한 철학 행위 자체의 불가능성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수사학적 관점은 언어 사용 방식을 탐구하지만 하나의 텍스트를 결속

하고 구성하는 원리를 다루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내용 분석과 형식 분석의 중간에 있다.

럭키의 독백을 패러디로 읽는 관점은 선행 연구가 가장 풍부한 관점이다.29) 이 절에서 패

러디에 대한 분석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전통적 형태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동시에

기능과 의미를 상실하면서 성찰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성찰이 연극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언어에 대한 성찰로 나뉜다는 브뤼노 클레망의 주장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30) 분석의 목표

는 다양한 양상의 패러디들을 종합하면서 럭키의 독백 속에서 패러디의 궁극적인 기능과 목

적에 접근하는 것이다.

3.1. 고전적 독백의 패러디


연극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고전적 독백의 패러디를 통해 나타난다. 말을 통해 생각을 있

27) 마틴 에슬린, 앞의 책, 51-52쪽.


28) Oswald Ducrot, Tzvetan Todorov, Dictionnaire encyclopédique des sciences du langage, Seuil,
1972, p. 328. 이 정의는 본래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e의 것으로 패러디에 대한 넓은 정의이다.
29) 강희석에 따르면 베케트 작품에 대한 수사학적 접근은 브뤼노 클레망과 파스칼 카사노바의 저작 이후 최근
베케트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럭키의 독백과 관련해서는 마이클 호크로프트Michael Hawcroft, 장
피에르 링가르 Jean-Pierre Ryngaert, 로비노 베베르, 미셸 투레Michèle Touret의 연구가 모두 수사학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강희석, 앞의 글, 50-55쪽 참조.
30) Bruno Clément, op. cit., 334-335.
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설정은 고전극의 독백 개념과 상통한다. 고전극에서 독백은 먼저 대

화와 행동만으로 진행되는 연극에서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을 기술하기 위해 활용된다.31) 독

백은 연극 무대 위에서 시적인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만큼, 내면 기술과 함께 인물의 정서

를 표현하는 기능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독백은 배우의 기량을 과시할 수 있는 화려한 부

분으로서, 17세기 초반에는 극 전개에서 수행하는 기능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32)


즉 독백은 작품에서 독립적인 위상을 가지고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내면 기술, 정서의 표출, 배우의 역량 부각이라는 고전적인 독백의 세 가지 기능은 럭키

의 독백 속에서 모두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그의 독백은 독백의 기능들을 수행하는 요소들

을 제시하지만,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먼저 내면 기술의 경우, 럭키는 수

없이 혼동을 겪으며 길게 독백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사유를 완결하지도 전달하지도 못한다.

그는 독백을 통해 내적 갈등을 정리하고 행동에 나서는 코르네유의 인물들과 극명하게 대조

된다. 독백을 마치지 못한 채 모자를 빼앗기자 쓰러지고, 곧이어 “거대한 침묵Grand

silence”이 찾아오는 것이다.


정서를 표출하는 기능도 패러디된다. 럭키의 하늘 묘사(“nues si bleues (...) et

calmes”)는 베를렌의 시를 연상시키는 한편,33) 작품 속에서 바로 앞에 나온 포조의 석양

묘사와도 짝을 이루며 서정적인 효과를 유도한다.34) 포조와 럭키가 묘사하는 하늘은 모두

역시 고요하지만 위협에 노출된 하늘이다. 그러나 럭키의 정서 표출은 명백히 실패한다. 그

는 동작과 어조를 활용하지도 못하고 이미지의 전개를 만들어내지도 못하며, 계속해서 말을

더듬다가 얼버무리면서 화제를 돌리는 것으로 묘사를 끝내기 때문이다.

하늘 이따금 아직 오늘 정말 푸르고 고요한 정말 고요한 단속적이긴 하지만 덜 반가운 것


은 아닌 고요의 그렇지만 속단하지 맙시다
nues si bleues par moments encore aujourd'hui et calmes si calmes d'un calme
qui pour être intermittent n'en est pas moins le bienvenu mais n'anticipons pas (p.
55)

럭키의 독백에서 정서 표출을 담당하는 또 다른 요소는 비탄을 표현하는 감탄사 hélas이

다. 앞 절에서 돌의 이미지를 분석하며 확인했듯 hélas는 모호하게나마 비탄의 감정을 전달

31)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의 『르 시드Le Cid』가 전형적인 예이다. 이 작품의 1막 5장에서 동 로
드리그 Don Rodrigue는 사랑과 명예 사이의 내면적인 갈등을 독백을 통해 정리한 뒤 복수를 결의하고 행동
에 나선다.
32) 강희석, 앞의 글, 58쪽.
33) 각주 19 참조.
34) 동작과 어조를 끊임없이 바꿔 가면서 고요한 하늘이 역동적인 밤에게 자리를 내 주는 모습을 그려내는 포조
의 석양 묘사(pp. 47-49) 역시 서정적인 문학에 대한 또 다른 패러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탄을 만들어낼 만한 상황을 정식화하는 표현의 결과로 나타나

는 것도 아니고, 응집된 감정을 터뜨리면서 위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표현을 이끌어내는 것

도 아니다.35) 그것은 일관성 없이 나열된 주변 단어들에 격앙된 어조와 불길한 분위기를 부

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무의미

하고 급속한 열거 속에 매몰된 hélas는 자신 안에 감정을 응축시키고 낭송자의 호흡을 조정


하는 방식으로 서정적 감정이 음미될 만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다.

배우의 역량을 부각하는 기능 역시 럭키의 독백에서 패러디된다. 럭키의 독백은 그의 유

일한 대사인 동시에 등장인물들과 청중들의 관심이 오직 그에게만 집중되는 기회이기도 하

다. 포조는 이전에 럭키의 생각에 감탄하던 경험을 상기시킨 바 있다. 또한 독백의 여백에

나타난 지시문들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열띤 반응을 보여주면서 독백을 일종의 극중

극으로 만든다. 그러나 럭키의 독백은 청중들의 만족과 감탄을 이끌어내기는커녕 당황한 청

중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중단된다.

포조 ― 저놈 모자요!
블라디미르는 럭키의 모자를 낚아채고 럭키는 입을 다물며 쓰러진다. 거대한 침묵. 승리
자들의 헐떡임.
Pozzo. ― Son chapeau !
Vladimir s'empare du chapeau de Lucky qui se tait et tombe. Grand silence.
Halètement des vainqueurs. (p. 58)

3.2. 언어의 이성적 기능에 대한 패러디

럭키의 독백이 보여주는 언어에 대한 성찰 속에서는 자율적인 이성적 사고가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언어의 이성적인 기능 자체가 문

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방향의 패러디를 통해 구체화되는데, 하나는 학술적인

담론의 패러디이고, 다른 하나는 논리적 언어 일반에 대한 패러디이다.

럭키의 독백을 학술적 담론의 패러디로 볼 수 있는 근거로는 논리적 관계를 표시하는 접


속사가 빈번하지만 헛되게 사용된다는 점, 학문적 권위가 전거로 인용되는 동시에 우스꽝스

러운 고유 명사를 통해 조롱된다는 점, 청중의 주의를 환기하는 발화행위부사들이 역효과를

일으켜 논증을 지체시킨다는 점을 들 수 있다.36)

35) 전통적인 시에서 hélas의 두 가지 기능이 동시에 나타나는 예로는 다음 두 구절을 들 수 있다.
Faibles projets d'un cœur trop plein de ce qu'il aime !
Hélas ! je ne t'ai pu parler que de toi-même. (Racine, Phèdre, vv. 697-698)
La chair est triste, hélas ! et j'ai lu tout les livres. (Mallarmé, Brise marine, v. 1)
36) 강희석, 앞의 글, 66-67쪽. 강희석은 이상의 근거들을 들면서 럭키의 독백을 대학 강연의 패러디로 읽을 것
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지명 이름의 나열("Seine Seine-et-Oise Seine-et-Marne Marne-et-Oise")에서 초
논리적 언어 일반의 패러디는 학문적 로고스가 파괴되는 과정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패러디의 궁극적인 기능과 목적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먼저 언어

는 언어 자체의 논리를 따라 증식하면서 생각을 전개하거나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적

사고가 아닌 음성적 유사성에 의거해서 도출된 말들이 이 경우인데, 신에 대한 이후 담론을

규정하게 되는 “신의 실어증sa divine sphasie”나 존재하지 않는 지명인 Marne-et-Oise가


예이다. 한편 아래 예문에서는 이전까지 “공기와 땅”으로 구성되어 설명되던 공간이 leur

ère와의 음성적 유사성에 의해 l'éther가 튀어나오자 “하늘 땅 바다”로 재편성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시골과 산을 배경으로 전개되던 럭키의 자연학 강의가 세계 전체에

대한 것으로 확장된다.

제7기에 하늘이 땅이 바다가 돌들을 위하여


au septième de leur ère l'éther la terre la mer pour les pierres (p. 57)

한편 서로 다른 맥락에서 돌출하는 무의식적인 반복 및 변조가 의미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아래 예문들도 유사한 경우이다.

잔디밭에서 전나무에서 땅에서 치는 테니스


le tennis sur gazon sur sapin sur terre (p. 56)

땅에서 바다에서 공중에서 치는 하키


le hockey sur terre sur mer et dans les airs (p. 56)

바다에서 땅에서 공중에서 거대한 추위가 이럴 수가


les grands froids sur mer sur terre et dans les airs peuchère (p. 57)

두 번째 예문은 첫 예문을 기계적으로 변조한 것으로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이 나중에 “거대한 추위” 뒤에서 변조되어 반복되면 사고 자체의 파국을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럭키가 보여주는 학술 강연의 패러디 혹은 유사 논증적 언어는 인간이 사고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패러디는

작가가 전통적인 언어 형태를 유지하는 동시에 이 형태들이 함축하고 있는 전제를 무력화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 그것은 베케트의 오랜 화두인 언어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강

력한 도구이다.

등교육에서 활용하는 암기용 목록의 패러디를 읽어내고자 하는 로비노 베베르의 제안을 참조한다면, 독백에서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학술적 담론을 대학 강연으로 제한해야 할 이유는 없는 듯하다. Anne-Gaëlle
Robineau-Weber, op. cit., pp. 109-112 참조.
II. 의미 바깥에서의 구성

우리는 럭키의 독백에서 추출할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확인했으나, 또한 이 의미들이

하나같이 말로 전달되는 데 실패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철학적 주제는 완전한 문장을 만

들어내지 못하면서 계속 중단된다. 역사적 암시는 암호의 차원으로 숨어들어 연극 청중의


이해로부터 멀어진다. 독백을 패러디로 읽는 입장은 베케트가 그려내는 것이 화자의 의도를

담은 의미가 아니라 의미 작용이 실패하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

리가 논의한 의미들을 해석을 통해 재구성할 수는 있었지만, 연극 무대에서 재현하기는 어

려울 것이다. 럭키는 독백을 통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

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럭키의 독백은 큰 소리로 무대를 뒤흔들면서 작품의 진행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베티 로이

트만Betty Rojtman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베케트 연극의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그녀

는 베케트의 연극에 이야기도 없고, 연극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또한 그것이

살아 있는 연극, 주의를 끌고 붙잡아 두면서 지속하는 연극이라고 주장한다.37) 이것은 형식

적이고 연극적인 관점의 연구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주장이다.

럭키 독백의 형식적 분석을 시도하는 이 장은 의미 전달에 잠정적으로 실패한 언어 요소

들이 극적 폭발력을 가진 언어의 구축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서술할 것이다. 럭키 독백의

극적인 흐름은 오직 독백 안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철학적 주제의 전개는 청중의 이해를 통해 지적 긴장감을 발생시킬 수 없도록 흐

트러져 있으며, 거의 모든 문장에 지시문이 개입하는 포조의 석양 묘사와는 달리 럭키의 대

사에는 지시문이 거의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38) 럭키 독백의 ‘구성 원리’는 의미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는 고립된 언어 요소들의 운용 방식을 가리킨다.

독백의 구성 원리에 대한 탐구는 세 단계를 거치며 이루어질 것이다. 1절은 럭키의 독백

이 내용 전개만 가지고 극적인 흐름을 구성할 수 없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하여 독백을 구

성하는 언어가 파편화되어 있는 양상을 검토할 것이다. 2절에서는 독백을 축조하기 위해 사

용되는 구성상의 기법들을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 절에서는 이런 기법들을 통해 일종의 추


상적인 건축물이 된 럭키 독백의 대략적인 윤곽을 그리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1. 언어의 파편화

독백의 언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구두점이 삭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구두점의

37) Betty Rojtman, Forme et signification dans le théâtre de Beckett, Nizet, 1976, p. 9.
38) 럭키는 “단조로운 어조로débit monotone” 독백을 시작하는데, 다음 지시문에서 그가 “울부짖게hurle” 되는
것은 행 수 기준으로 독백의 73%가 진행된 뒤이다.
부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언어의 파편화를 촉진한다. 첫째, 그것은 통사 구조에 근거해서

낭독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를 통해 럭키의 독백은 정말로 지시문을

따라 “단조로운 어조”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둘째, 구두점의 부재는 문장 성분들의 중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그것은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연 화제를 전환하는

현상을 가능하게 한다.


파편화의 두 번째 양상은 문장 성분의 고립이다. 고립된 성분의 첫 번째 유형은 문장 구

조 속에 통합시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성분으로, 부정법 동사 assavoir가 여기 해당한

다. 이 불가사의한 단어는 독백 속에 네 번 출현하면서 한 번도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56쪽 4-5행에서 “이에 뒤따르따르따르는ce qui suit qui suit qui suit” 뒤에는 아무것도

뒤따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57쪽 21행의 peuchère부터 나타나는 모든 성분은 통사 구조

에 편입되지 못하는 상태로 고립되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어느 절에 통합시켜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이다. 삽입어구 on ne sait pourquoi는 앞의 절에 붙일 것인지 뒤의 절에

붙일 것인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39)

파편화의 세 번째 양상은 대명사에 의한 조응 관계의 불확정성이다. 57쪽 19행의 소유한

정사 leur는 세 개의 복수명사구 뒤에 오지만 어느 것을 받는다고도 확언하기 어려운 경우

이다. 55쪽 22행과 57쪽 24행의 의문문 “누가 의심할 수 있는가qui peut en douter”에서

부정대명사 en이 받는 절도 무엇인지 결정할 수 없다.

네 번째 양상은 단문의 절단이다. 눈에 띄는 예는 1장 1.1.절에서 거론한 “있는 자들과

함께[~인 자들과 함께]avec ceux qui sont”이다. 56쪽 9-10행의 “de Testu et Conard”

는 명사구의 주성분이 생략된 경우이다. 이 말이 수식하는 명사는 의미상 여섯 행 위의 “연

구recherches”이겠지만, 이 명사와 수식어들은 서로 다른 절에 속한다.

언어의 파편화는 복문 차원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다섯 번째 양상은 복문 구조의 교란이

며, 수많은 삽입어구, 전거의 인용 및 스포츠 종목 이름의 열거를 통해 실현된다. 55쪽 27

행에서 56쪽 11행에 이르는 종속접속절의 경우, 접속사 attendu와 보문소 que 및 비인칭

주어 il은 잡다한 전거 인용에 의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 종속절 표지들은

아무 내용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공회전하면서 주제의 전개에서 떨어져 나간다. 한편 접속사


considérant이 이끄는 또 다른 종속절에서 네 번 등장하는 삽입어구 “더 심각한 것은ce

qui est plus grave”은 기계적으로 que 바로 앞에 위치하면서 청자가 considérant que의

구조를 인지하는 것을 방해한다.

39) “우리를 사랑하시는 몇 명은 빼고 이유는 모르지만 하지만 그게 올 것이다qui (...) nous aime bien à
quelques exceptions près on ne sait pourquoi mais ça viendra” (p. 55), “벗겨놓고 노르망디에서 이유
는 모르지만 사실이 여기 있다déshabillé en Normandie on ne sait pourquoi (...) les faits sont là” (p.
57)
파편화의 마지막 양상은 복문구조가 결국 완결되지 못한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위

의 두 예문에 나타난 원인의 종속절에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주절이 없다.

언어의 파편화는 럭키의 독백이 통사 구조에서 의미 구조로 이행하는 과정을 상실한 발화

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청자는 음운과 형태의 인지에서 통사 구조, 의미 구조, 담화 구조

의 인지까지 차례로 이행하지 못하며, 따라서 독백의 화용론적 목적인 극적 효과의 인지로
도 나아갈 수 없다. 여기서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독백의 언어는 유기적 구조를

이루어 언어 외적 세계의 사태들을 체계적으로 지시하는 데 실패한다. 둘째, 통상적인 언어

사용의 관점에서 볼 때 파편화된 문장 성분들과 독백의 요란한 극적 효과 사이에는 도약이

있다. 이 도약을 만들어내는 것은 베케트가 사용하는 독창적인 구성 기법의 몫이다.

2. 구성의 기법

베케트의 희곡을 형식주의적인 관점에서 상세하게 분석한 베티 로이트만의 연구에 따르

면,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언어 연쇄를 통해 텍스트를 구성하는 주요 원리는 계열체

paradigme를 연사체syntagme의 차원으로 연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의 대상인 계열체

의 요소들을 수평적으로 펼쳐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40) 이 절에서는 반복, 변조, 열거,

삽입, 혼합이라는 다섯 가지 개념을 통해 구성 기법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켜 볼 것이다. 이

기법들은 아래 표와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표에서 더 아래의 기법일수록 연사체 내의 이질

성이 심화된다. 각 기법들의 기능은 이하 소절들에서 논의될 것이다.

반복répétition 동일 요소가 한 연사체 속에서 여러 번 출현


한 요소가 유사한 의미의 다른 요소와 함께 한
변조modulation
연사체 속에서 출현
계열체 내에서 선택 관계를 맺는 요소들의 연사
열거énumération
체 내 수평적 나열
삽입intercalation 독립적인 한 요소의 연사체 내 개입
혼합mélange 의미상 무관한 요소들의 연사체 내 수평적 배치

2.1. 반복

반복은 음절, 단어, 구문, 복문 구조의 차원에서 빠짐없이 일어난다. 반복의 기능은 어조

를 긴장시키고, 의미를 증폭시키거나 의미 전개를 지체시키며, 통사 구조를 대신하여 말에

40) Betty Rojtman, op. cit., p. 59. 럭키의 독백은 계열체 내 요소들의 수평적 연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 이 연쇄를 통해 연사체상의 무질서를 만들어내는 예이기도 하다. ibid., p. 63. 그러나 로이트만의 연구는
계열체를 연사체로 연장시키는 구체적인 기법들을 세분해서 논의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리듬감을 부여하고, 텍스트에서 시간의 관념을 박탈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어조를 긴장시키는 기능은 음절이나 단어의 반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체체체측정학

아카카카카데미Acacacacadémie d'Anthropopopométrie”나 “quaquaquaqua”에서는 경음이

중첩되면서 어조가 경직되는 동시에 격앙된다. “Il est établi tabli tabli”(56쪽 4행), “tels

tels tels”(56쪽 18행), “la tête la tête la tête la tête”(57쪽 29행)에서는 유음 l과 경음 t


가 계속 교대하면서 혀의 긴장이 가중된다.

한편 단어의 반복에서는 음성만이 아니라 의미도 중첩되는데, “머리la tête”의 반복은 음

성과 의미가 모두 공명을 통해 증폭되는 예이다. 또 인간학의 전거를 댈 때 inachevé(e)s는

처음 두 번은 한 번씩 나타나다가, 뒤에서 두 번 나타날 때는 두 번씩 중첩된다. 여기서는

미완성이라는 관념이 점차 강하게 럭키를 사로잡게 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반복은 또한 의미 전개를 지체시키는데, 이는 반복이 새로운 요소의 도입을 지연하기 때

문이다. 아래 예문에서는 “인간l'homme”을 주어로 하는 que 절이 네 번 반복되는데, 여기

서는 말이 시작하려다 잇달아 실패하면서 주제 전개가 지체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보기에 인간은 반대 의견과는 반대로


인간은 테스튀와 코나르의 브레스에서
인간은 결국 요컨대
인간은 요약하건대 결국 영양 섭취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행 구분은 인용자)
il apparaît que l'homme contrairement à l'opinion contraire
que l'homme en Bresse de Testu et Conard
que l'homme enfin bref
que l'homme en bref enfin malgré les progrès de l'alimentation (p. 56)

첫 번째 반복은 “반대 의견과는 반대로”가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두 번째

반복에서는 브레스도, 테스튀와 코나르도 원래 인간을 수식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이

중단된다. 세 번째 반복은 럭키가 말을 잇지 못해 당황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이다. 네


번째 반복에서 럭키는 enfin bref를 “요약하건대en bref”로 축약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결국

enfin이 다시 나오면서 말이 헛돌게 된다. 이처럼 “que l'homme”가 네 번 반복되는 동안

럭키의 생각은 정체되고 무대 위의 시간만 흘러간다. 여기서 반복은 의미 전달 없이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관객이 리듬감을 느끼면서 대사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41)

한편 반복에 의존하여 구성되는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순환적인 시간이다. 반복은

41) 토마스 커지노Thomas Cousineau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반복이 리듬을 형성하며, 이것이 만족감과 권
태감을 동시에 산출한다고 주장한다. Thomas Cousineau, Waiting for Godot. Form in movement,
Twayne Publishers, 1990, p. 108.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시간으로부터 청중을 해방시키고, 인과성의 논리를 해체한다.42)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막도 같은 상황의 반복이며, 두 번으로 끝나는 반복이 아니라 무

한히 계속되는 반복의 일부인데, 여기서는 어떤 의미 있는 사건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2. 변조
변조는 커지노가 “차이의 반복repetition of difference”이라고 부른 서로 다른 요소들의

되풀이에 해당하며, 리듬에서 유래하는 만족과 권태를 전달하지 못하는 대신 의미장의 확장

을 만들어낸다.43) 그런 만큼 변조는 내용 분석에서 여러 번 언급한 기법이다.44) 그것은 언

어가 결정적인 의미를 찾아 스스로 이동하게 만든다. “실어증aphasie”은 신의 침묵이 무관

심이 아닌 무력함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폭로하여 그의 전락을 유도한다. 인간의 축소는 “오

그라들다rétrécir”라는 말로 표현되면서 죽음의 이미지와 합류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변조는 언어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실종되게 만들기도 한다. 럭키가 전거를 인용하

는 방식은 독백 전체에 걸친 변조의 대상이며, 전거의 의미가 퇴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 telle qu'elle jaillit des récents travaux publics de Poinçon et Wattmann
(2) à la suite des recherches inachevées (...) de Testu et Conard
(3) à la suite des recherches inachevées inachevées de Testu et Conard il est
établi
(4) à la suite des travaux de Poinçon et Wattmann il apparaît
(5) en vue des labeurs de Fartov et Belcher inachevés inachevés (...) inachevés
inachevés il apparaît
(6) à la lumière la lumière des expériences en cours de Steinweg et Petermann
(7) à la lumière la lumière des expériences abandonnées de Steinweg et
Petermann

럭키는 위 예문들에서 일곱 번에 걸쳐 전거를 소개한다. (1)은 “공적인publics” 연구를

“나오는 그대로telle qu'elle jaillit” 가져온 것으로서 전거의 신뢰성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반면 (2)에서 “~대로telle”는 “~을 따라à la suite de”로 약화되고, 연구는 미완성임이 드

러나며, 연구자 이름은 “고집불통Testu”과 “멍청이Conard”가 된다. 여기서부터 전거의 신

뢰성이 하락한다. (3)부터는 “미완성inachevées”이 중첩되고, (4)에서는 “~이 분명하다il

est établi”가 “~로 보인다il apparaît”로 약화된다. (5)의 “~을 위해서en vue de”에 이르

42) ibid., pp. 115-116.


43) ibid., pp. 108-110.
44) 신의 무감동과 무공포와 실어증, 신이 전락한 세계의 고문과 불과 불꽃, 땅과 바다와 공중에서의 하키와 추
위, 마르고 줄어들다가 오그라드는 인간 등은 모두 변조의 예이다.
러서는 전거와 사실의 관계가 역전되기에 이른다. 전거가 사실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이 그렇게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6)에서 “~에 비추어à la

lumière”는 “~을 따라”를 다시 한 번 약화시킨 표현이다. 또한 (6)과 (7)에서 미완성의 연

구는 “진행 중인 실험expériences en cours”으로, 다시 “포기된 실험expériences

abandonnées”으로 변조된다. 여기서 변조를 통한 의미장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미


완성이면서 진행 중인데도 이미 포기된 탐구는 불가능한 탐구이다.

2.3. 열거

열거의 기능은 의미 측면의 기능과 구어 측면의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미 측면에서

열거는 첫째로 내용 이해를 교란하며 발화체를 보다 무질서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명사

구나 전치사구의 연속으로서 문장 구조를 중단시키며 주제의 전개를 지연하기 때문이다. 또

한 열거는 문장의 내용 전개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계열체 속에서 하나의 요소를 선택

하는 일은 문장의 통사 구조나 주제 구조에 의해 제한을 받지만, 열거처럼 복수의 요소를

선택하는 경우에는 이 제한이 약화되기 때문에 선택이 더 자의적이 되는 것이다.45) 한편 열

거는 말의 자가 증식을 유도하면서 계열체의 범위 자체를 위협한다. 열거의 항목들은 “승마

비행 의욕l'équitation l'aviation la conation”처럼 유(類)의 범위를 넘을 수 있으며, “Seine

Seine-et-Oise Seine-et-Marne Marne-et-Oise”에서처럼 존재하지 않는 지시물을 꾸며

낼 수도 있다.46)

구어 측면에서 열거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짧은 요소가 잇달아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낭

독할 경우 어조의 굴곡을 제거하면서 문장의 호흡을 빠르게 한다. 열거의 이런 점 때문에

평상시의 언어 사용에서는 항목들 사이에 쉼표나 휴지가 개입하지만, 럭키의 독백에서는 구

두점도 없고 휴지 삽입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열거는 말의 가속도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가속도의 원리는 뉴턴의 운동 법칙에 비유할 수 있다. 속도는 시간과 가

속도의 곱이다. 스포츠 종목의 열거에서도 열거의 진행에 따라 점차 명사의 음절수가 감소

하고(équitation, aviation에서 hockey, golf로), 정관사를 붙인 명사구보다 전치사구가 우세

하게 되어 호흡은 갈수록 짧아진다. 또한 가속도는 힘에 비례한다. 가속을 받은 말은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어, 긴 열거 다음에 “요컨대 다시 말해bref je reprends”라는 말로 주제 전

45) 예를 들어 “수영 승마 비행la natation l'équitation l'aviation”은 주제 구조를 가진 문장의 연쇄를 통해서는
결합시키기 어려울 만큼 공통점이 적은 항목들이다. 그러나 열거는 이 세 항목을 단번에 하나의 형용사 밑에
결합하는데, 이 때 사용된 연상의 원리는 의미상의 공통점보다는 각운이다.
46) 따라서 열거를 형성하는 항목들이 구조주의 언어학의 계열체 개념을 따라 선택 관계를 맺고 있다기보다는
소쉬르 언어학에 나타난 대로의 연합 관계rapports associatif를 맺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연합
관계를 만드는 것은 논리적인 체계가 아닌 연상이기 때문이다. Saussure, Ferdinand de,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 Payot, 1978, pp. 173-175.
개를 재개하려는 럭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다.

2.4. 삽입

발화 내용에 속하지 않으면서 발화 상황과 관계를 맺는 삽입어구들은 가장 많이 반복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고유의 의미에 따라 독백의 구성 및 독백 전체의 흐름에 다양한 방식


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삽입어구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으며, 분포 양태에 따라 집중형,

편재형, 증가형의 세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삽입어구 번역 반복 유형 첫 출현
on ne sait pourquoi 이유는 모르지만 12 편재형 55쪽 17행
bref 요컨대 8 편재형 56쪽 13행
je reprends 다시 말해 8 증가형 56쪽 26행
assavoir 알기가 4 편재형 55쪽 23행
ce qui est plus grave 더 심각한 것은 4 집중형 57쪽 8행
enfin 결국 4 편재형 56쪽 13행
en même temps
동시에 마찬가지로 4 집중형 56쪽 15행
parallèlement
n'anticipons pas 속단하지 말고 3 집중형 55쪽 27행

집중형 삽입어구는 텍스트 안의 특정 구역에만 분포한다. 먼저 n'anticipons pas는 신에

대한 담화가 교착 상태에 빠진 직후에 한 번, 화제를 돌리기 위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처음

소개하고 나서 한 번, 주장을 시작하려다가 “il est ètabli tabli tabli tabli ce qui suit qui

suit qui suit”하고 말이 꼬였을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등장한다. 결국 속단하지 말라는 말은

첫 번째 화제가 실패했고, 화제 전환의 과정이 온당하지 않으며, 두 번째 화제도 제대로 전

개될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셈이다. 한편 en même temps parallèlement은 인간

이 “마른다maigrir”는 언급 바로 뒤에 처음 나타난 뒤, 스포츠 종목의 긴 열거를 거쳐 “줄

어든다rapetisser”는 말을 하기 직전에 두 번째로 나타나고, 다시 한 번 열거가 진행되다가

“Marne-et-Oise”에 이르렀을 때 다시 한 번 나타난다. 이 삽입어구는 럭키의 말이 계속


논지에서 이탈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럭키가 인간의 운명에 대해 여러 가지 통찰을 내놓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ce qui est plus grave는 자연에 관한 담화를 시작하는 부

분에서 considérant과 que 사이에 네 번 등장하며 변조에 의해 진행된 전거의 약화를 만회

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요컨대 집중형 삽입어구는 논리적 언어의 신기루이다. 그것은 주

제 전개가 실패하고 해체되는 지점을 가리고 서 있으면서, 말이 중단되는 것을 막고 또 논


리적 외양을 띤 채로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편재형 삽입어구는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무작위적으로 실현되면서 해석의 단초를 제공

한다기보다는 해석의 걸림돌 역할을 한다. 12번 반복되는 on ne sait pourquoi는 전체적으

로 논리가 무너져 있는 텍스트 속에서 인과 관계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준다. Bref는 집중형

삽입어구들과 유사하게 논리 전개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는데, 8번 반복되지만 아무 것도 요


약하지 않는다. Enfin은 항상 bref와 함께 실현되면서 삽입어구들의 반복이 가진 기계적인

성격을 환기시킨다. 부정법 동사 assavoir는 절대적으로 고립된 단어이며 분석되지 않는 잉

여이다.47) 결국 편재형 삽입어구는 독백에 리듬을 부여하는 동시에 독백을 양적으로 팽창시

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팽창은 무rien를 가지고 무를 부풀리는 작업에 불과하며, 팽창

한 말은 더 무질서해져서 해석하기 어렵게 된다.

증가형 삽입어구로는 희박하게 분포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반복되는 je

reprends이 있다. 이 말은 독백이 주제에서 이탈하면서 혼란에 빠지는 현상의 표지가 된다.

je reprends l'aviation le golf


je reprends Oise Marne
je reprends on ne sait pourquoi malgré le tennis

예문에서 세 번째 je reprends은 자연학에 대한 담화의 말미에서 출현하지만 자연학과

연관이 없는 “테니스에도 불구하고malgré le tennis”로 이어지며 독백을 완전한 혼란에 빠

뜨린다. 여기서부터(57쪽 21행) 5행 동안 je reprends이 네 번 출현하는데, 그 동안 독백

언어의 희박한 논리성은 소멸한다. 증가형 삽입어구는 럭키가 점점 혼란에 빠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시 말해je reprends”는 앞의 말을 무화시킨 뒤 가중된 혼란을 남긴다. 이 말

의 기능은 집중형 삽입어구의 반대이다. 집중형 삽입어구들이 혼란을 가리면서 독백이 계속

될 수 있게 한다면, 증가형 삽입어구들은 혼란을 적극적으로 노출하면서 독백의 파탄을 앞

당긴다. 그런데 세 개의 집중형 삽입어구들이 모두 소진되고, 편재형 삽입어구들도 57쪽 7


행부터 21행까지 모습을 감춘 뒤에 je reprends이 본격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독백이 균형 있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파탄을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2.5. 혼합

혼합은 의미상 무관한 요소들의 수평적 배치로서, 논리적 해석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발

47) 이 말의 의미를 ‘알아두라’는 뜻의 간접 명령, ‘알게 된다는 것’이라는 뜻의 독립적인 명사구, ‘지식savoir’에
결여형 접두사 a-를 붙인 형태 등으로 다양하게 추측할 수 있으나, 의미를 문맥 속에 위치시키는 것은 불가
능하다.
화의 무질서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기법이다.

혼합의 또 다른 기능은 이미지의 생성이다.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의 논의에 따

르면 이미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현실이 결합하면서 생겨나는데, 르베르디에 대한 앙드

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주석에 의하면 두 현실의 결합이 임의적일수록 이미지는 강렬해

진다.48) 혼합은 언어 요소를 가장 임의적으로 결합하는 기법이다. 따라서 언어 요소가 지시


하는 현상들의 충돌에서 생겨나는 이미지도 매우 강렬한 것이 된다.

혼합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은 독백에 나타난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분석할 수 있다.

1장 2절에서 논의한 돌의 이미지가 죽음을 상징하게 되는 것은 혼합을 통해서이다.49) 죽음

은 수염(달린 신)과 불꽃이 결합하여 눈물과 돌들을 남기는 이미지, 또는 노르망디의 전장

에서 하나씩 떨어져 나뒹구는 머리들의 이미지로 표상될 수 있다. 또한 아래 예문에서 혼합

은 돌-죽음의 의미장에 테니스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테니스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아이고 돌들이 코나르[멍청이]


malgré le tennis la tête hélas les pierres Conard (p. 58)

“머리가 아이고 돌들이” 앞에 놓인 테니스는 사람의 머리를 향해 규칙적으로 돌이 날아오

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혼합을 통해 생성되는 죽음의 이미지들은 역사적 파국에 대

한 암시의 계열을 이끌어내는 단서가 된다.

혼합은 말의 무질서도를 높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어조를 가속하고

긴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혼합에서는 의미를 가진 요소가 반복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

에, 말의 리듬감은 음성 차원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독백의 마지막 단계에서 규

칙적으로 실현되면서 리듬을 만드는 요소는 l로 시작하는 정관사뿐이다. 혼합되는 명사들

속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자음도 l이다(flammes, pleurs, calmes, hélas, labeurs). 게다

가 어조의 긴장은 혼합 고유의 기능을 통해 심화될 것이다. 말의 무질서는 혼란을,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는 공포를 초래한다. 이렇게 해서 럭키의 독백은 점차 울부짖음vociférations


으로 변모하고, 배우가 버틸 수 없는 지점까지 격앙되면 폭발하고 만다. 요컨대 블라디미르

가 모자를 벗기지 않았더라도 럭키는 곧 쓰러졌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3. 추상적 구성

이상의 구성 기법들을 통해 럭키의 독백이 특유의 구성 원리를 따라 조직되어 있으며, 이

48) 오생근, 『프랑스어 문학과 현대성의 인식』, 문학과지성사, 2007, 64쪽.


49) “수염 불꽃 눈물 돌la barbe les flammes les pleurs les pierres” (p. 57), “머리 머리 머리 머리 노르망
디에서la tête la tête la tête la tête en Normandie” (p. 57)
조직의 목표가 의미의 총체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극적 효과를 산출하는 데 있음을 확인하였

다. 독백의 구성은 외부 세계의 부분을 재현하는 언어 단위들을 외부 세계의 논리대로 결합

하는 구성이 아니라 단위의 고립적인 의미와 물질성 자체에만 의존해서 만들어지는 구성이

라는 점에서 반사실주의적 구성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현대 미술에서 추상화를

그리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베케트 문학의 본질이 추상성에 있다고 주장하는 파
스칼 카사노바에 따르면, 추상화는 단어에서 의미 박탈로, 의미에서 사실주의적 재현의 파

괴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며, 언어로부터 의미 작용과 지시 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문학의 모

든 가능 조건을 문제시하는 과정이다.50)

추상적 구성을 통해 언어는 의미 작용 없이도 조형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절에서는 작가가 구성 기법의 활용을 통해 텍스트의 형식미를 세심하게 다듬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 이렇게 다듬어진 독백은 말의 축조물, 혹은 가사와 독립적인 선율이

극적 구성을 결정하는 노래로 다시 태어난다.

추상적 구성에 참여하는 변수로 이 논문이 제안하는 것은 속도vitesse, 강도intensité 및

무질서도entropie이다. 이것들은 럭키의 독백이 중얼거림과 말의 폭발 사이에서 진행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할 것이다. 속도는 말의 빠르기 또는 호흡의 길고 짧음을 나

타내고, 강도는 어조가 긴장되거나 격앙되는 정도를 나타내며, 무질서도는 인접한 요소들

사이의 의미상의 이질성을 나타낸다. 럭키의 독백에서 속도, 강도, 무질서도는 대체로 모두

증가하면서 말의 폭발을 향해 나아간다. 이 때 다섯 가지 구성 기법들은 구성의 변수들을

조정하며 추상적 텍스트를 조형해 나가는 장치 역할을 한다. 구성 기법에 대한 앞 절의 분

석 속에서 나타난 기법과 변수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다음 표로 나타낼 수 있다.

변수 증가 요인 정체 요인
속도 반복, 열거, 혼합 변조
강도 반복, 변조, 혼합 삽입
무질서도 열거, 삽입, 혼합 반복

세 변수가 변화하는 양상은 곧 텍스트가 극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

음 표는 극적 전개 양상에 따라 독백을 여섯 구간으로 구분한 것이다.

50) Pascale Casanova, op. cit., p. 9.


구간 해당 텍스트 분량 비율 성격
1구간 Étant (55:11) - et (55:27) 18.2% 발단
2구간 attendu (55:27) - bref (56:13) 19.3% 전개
3구간 que (56:13) - Oise (56:31) 20.5% 위기
4구간 assavoir (56:31) - et (57:7) 7.9% 교착
5구간 considérant (57:7) - peuchère (57:21) 15.9% 소강
6구간 je (57:21) - inachevés (58:5) 18.2% 폭발

1구간은 발단기로서 변조와 삽입이 온건하게 관찰되며 통사 구조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

아 있는 구간이다. 2구간에서는 반복과 삽입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세 변수가 모두 증가하

기 시작한다. 그러나 무질서도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가속이 절정에 달하는 것은 열거가

지배적인 기법이 되는 3구간이다. 4구간에서는 명사구의 열거가 갑자기 중단되고 삽입과 부

사구의 긴 열거51)가 그 자리를 채운다. 또한 이 구간에서는 혼합이 처음 관찰된다. 따라서

강도는 뚜렷이 정체되고 속도에도 큰 변화가 없지만 무질서도는 도리어 증가하면서 말이 교

착 상태에 빠진다. 5구간에서는 먼저 집중형 삽입어구 ce qui est plus grave를 제외한 모
든 삽입이 사라진다. 전거를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2구간에 비하면 반복보다 변조가 현저하

다. 주제가 전개되는 부분에서는 많은 요소가 되풀이해 나타나지만, 이 현상은 동일한 요소

가 인접해서 혹은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의 반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속도와

무질서도가 크게 변하지 않는 동안 강도가 증가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외견상의 소강상태

일 수도 있지만 내적인 긴장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변수가 정체된다는 것은 어

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속도는 3구간에서, 무질서도는 4구간에서, 강도는 5구

간에서 이미 임계점에 근접해 있다. 세 변수가 일제히 임계점을 넘기며 말이 폭발하는 것은

혼합이 지배하는 6구간이다.

추상적 구성이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사건 진행이나 논리 전개로부터도 전개되어 이처럼 극


적인 형식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럭키의 독백에는 의미 있는 내용이나 주제의 전

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또 이것들은 상당히 일관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

러나 내용이나 주제의 전개가 이 독백에서 극적 구성을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지

하다시피 독백의 언어는 파편화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내용 전개가 극적 전개에 개입하는

것은 단 한 번이다. 5구간에서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 전망이 완성될 때 6구간에서 폭발이

시작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용 전개에 의한 구성을 배제한 채로 추상적 구성이 전개된

51) 부사구 열거(par tête de pipe environ en moyenne à peu près chiffres ronds bon poids déshabillé en
Normandie)는 성분 각각이 스스로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 정관사를 동반한 명사구의 열거에서처럼
음사성의 유사성이나 리듬감을 관찰할 수 없다는 점, 모두 하나의 명사구(la perte sèche)를 수식하며 명사
구의 의미를 조금씩 수정해 나간다는 점에서 열거보다 변조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기보다는, 내용 전개에 의한 구성이 실패하는 자리에서 추상적 구성이 성립하고, 럭키가

내용 전개의 의지를 잃었을 때 추상적으로 구성된 말도 폭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추상적 구성은 극도로 압축된 극적 형식을 만들어 언어를 폭발에 이르게 하며, 럭키의 독

백은 언어의 폭발과 함께 끝난다. 언어의 폭발은 네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충격적인 경험

이다.52) 독백이 끝나자 럭키는 쓰러지고 포조는 무대를 떠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럭키는
이후 완전히 무력한 인물이 되어, 2막에서는 벙어리가 되고 등장하자마자 쓰러진다(p.

100). 그러나 럭키의 변모를 제외하면 독백은 극의 진행 속에서 거의 아무런 가시적인 결과

도 남기지 않는다. 럭키가 다시 일어서자 인물들은 다시 잡담을 시작한다. 포조가 떠나려는

것도 기실 럭키 때문은 아니다.53) 그리고 작품 속에서 사소한 일들이 대개 실패하듯 포조의

출발도 실패를 거듭하며 지체된다.

포조 ― 출발할…… (망설인다) ……수가 없어요.


에스트라공 ― 사는 게 그렇죠.
Pozzo. ― Je n'arrive pas... (il hésite) ...à partir.
Estragon. ― C'est la vie. (p. 61)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럭키를 통해 세계의 종말에 대한 암시, 시끄럽게 고조되는 연

극,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홍수, 주인을 위협하는 노예의 발악을 경험했지만, 포조와 럭키

가 떠난 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변화가 없다. 이는 두 사람이 포조가 등장했

을 때 고도인 줄 알았던 것처럼 포조가 퇴장한 직후에도 고도 이야기를 한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에스트라공 ― 이제 뭐하지?
블라디미르 ― 몰라.
에스트라공 ― 가자.
블라디미르 ― 안 돼.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리잖아.
에스트라공 ― 맞아.
Estragon. ― Qu'est-ce qu'on fait maintenant ?
Vladimir. ― Je ne sais pas.
Estragon. ― Allons-nous-en.

52)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탄성Exclamations”을 지르고, 포조가 “벌떡 일어서며se lève un bond” 럭키
가 “울부짖을hurle” 것을 지시하는 독백의 마지막 지문이 그 충격을 생생히 전달한다. (p. 57)
53) 포조가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악취 때문이다. (p. 60)
Vladimir. ― On ne peut pas.
Estragon. ― Pourquoi ?
Vladimir. ― On attend Godot.
Estragon. ― C'est vrai. (p. 62)

결국 럭키의 독백은 예상치 못하게 시작해서 결과 없이 끝나는 것으로, 시간 속에서 상황


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극적 사건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추상적 구성의 결과물인

독백은 언어 외적 세계의 재현이 아닌 만큼이나 그 세계에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두 주인

공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릴 것이고, 고도는 그날 밤 오지 않을 것이며, 포조와 럭키는 다음

날 돌아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에스트라공은 2막에서 포조와 럭키가 왔었다는 사실도 기억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에스트라공은 럭키의 독백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대답한다.

블라디미르 ― 이 녀석 다 까먹었군!
에스트라공 ― 웬 무뢰한이 내게 발길질을 했던 기억은 나. 그리고 그자는 바보짓을 했지.
블라디미르 ― 그게 럭키였어!
Vladimir. ― Il a tout oublié !
Estragon. ― Je me rappelle un énergumène qui m'a foutu des coups de pied.
Ensuite il a fait le con.
Vladimir. ― C'était Lucky ! (p. 79)

결론

이상의 논의는 내용 분석과 형식 분석의 관점에서 럭키의 독백을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럭키가 거론하는 철학적 주제들이 종말론적 전망을 보여준다는 주장에서 출

발하였다. 이후 다섯 개의 절에서 계속되는 분석의 과정은 작가가 종말론적 전망을 보다 철

저하게 인식하고 표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시에 대

한 분석은 철학적 성찰이 동시대 역사에 대한 강박적인 기억의 확인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보여주었고, 패러디에 대한 분석은 작가의 시대가 경험한 파국이 고전적인 문학적 글쓰기로
는 포착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언어의 파편화에 대한 분석은 작가의 언어에 대한

불신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구성 기법에 대한 분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계속하기 위해 작가가 동원하는, 재현과 무관한 언어의 운용 방식을 탐구하였다. 추

상적 구성은 이렇게 비재현적인 언어 사용에 주도권을 넘기면서 만들어 낸 텍스트의 구성

원리이다.
럭키의 독백은 작가의 시대가 겪은 역사적 파국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다. 럭키는 독백의

내용을 통해서 파국을 암시하는 동시에 형식을 통해서 파국이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이라

는 인식을 드러내며, 추상적 구성을 통해 내용과 형식 사이의 이율배반을 해소한다. 그러나

이러한 응답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독백 이후 극의 전개 과정에서 보듯 추상적 텍스트는

언어 외적 세계에 대해 발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럭키의 독백은 시대에 대한 응답의 방식


을 근본적으로 성찰한 만큼이나 응답의 실패 혹은 불가능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럭키의 실패를 가장 근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럭키에게 자기 문학의 전위

avant-garde를 담당하게 한 작가 자신일 것이다.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 바로 다음

에 쓴 작품인 『이름붙일 수 없는 것L'innommable』에서,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시도가 계

속 실패하고 있으며 세계나 자신에 대해 발언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했던 인물들을 나열하는 아래 대목에는 럭키의 이름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머피, 몰로이, 또 말론,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내 시간을 잃게 했고 내


노력을 망쳤다. 침묵하기 위해 나만에 대해서 말해야 할 때 그들은 내가 그들에 대해 말
하게 만들었다. 나는 방금 내가 나에 대해 말했다고, 나에 대해 말하는 중이라고 했다. 내
가 방금 말한 것에 개의치 않는다. 나는 지금 처음으로 나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Ces Murphy, Molloy et autres Malone, je n'en suis pas dupe. Ils m'ont fait perdre
mon temps, rater ma peine, en me permettant de parler d'eux, quand il fallait
parler seulement de moi, afin de pouvoir me taire. Mais je viens de dire que j'ai
parlé de moi, que je suis en train de parler de moi. Je m'en fous de ce que je
viens de dire. C'est maintenant que je vais parler de moi, pour la première foi
s.54)

□ 참고 문헌

Beckett, Samuel, En attendant Godot, Minuit, 1952.

54) Samuel Beckett, L'innommable, Minuit, 1953[2004], p.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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