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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발맹일2007년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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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원 지음
Eika 일러스트

목차

프볼포그 초인 띠위, 정말 싫어 ! -9

저"장 초인시대! _21

제 2장 초인혐오증! 49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 툭77

제 4장 초인월드! 그07

제 5장 초인스키우트! 그39

제 6장 초인프로덕션JUSTICE! 167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_201

제 8장 초인긱정 ! -225

예필표쭁고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261


어쩌다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오늘은 분명히 여동생의 생일 축하 겸 가족 전부가 외출
을 했던 날이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외식을 하고, 그
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케이크를 자르고
어쨌든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어쩌다이렇게되어버렸을까?'
나는 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만 해도 사람들로 가득 찼던 백화점은 엉망이 되어 있었
다 갈라진 벽들 꺼져 내린 바닥, 곳곳에서 밀려오는 혹 연
기 까지
어린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면 여기가 무너지리란
것 울
“우우우.오빠......”
내 등에 업힌 은비가 울먹이고 있었다 오늘부로 여덟 살
인 여동생은 인형처럼 작고 가벼운 아이였다 하지만, 그 작
고 가벼움조차 지금의 내게는 너무 버거웠다 얼마 업고 오

11

프롤로그 초인 따위 , 정 말 싫어 !
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힘이 부치기 시작한다. 나는 당장
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것을 참으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
다.
쿠릉!

“꺅!”
바로 지척에서 콘크리트 파편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기
겁한 은비가 내 등에 얼굴을 파묻는다 아빠! 엄마! 나 역시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에 들
어오는 거라곤 폐허가 된 매장뿐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
는 보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백화점에 남아있는 것은 나와
은비 둘 뿐이다
‘역시무모했어r
앞에서 대피 방송이 나왔을 때 도망쳤어야 했다 부모님
을 따라서, 그랬더라면 지금쯤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피하
고 있었을 텐데!
나는 경솔했던 자신을 탓하며 몸을 떨었다 미아가 된 여
동생은 부모님들이 찾도록 내버려둘 것을 그랬다 이무런
힘도 없는 어린애가 뭘 할 수 있다고 혼자 찾아 나섰는지 I
“오빠미안,미안”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버려둘 수 있을 리 없잖아?
나는 등 뒤에서 전해지는 흐느낌에 이를 악물었다 꼴사
납게 울먹이면서도 은비를 업은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괜찮아내가지켜줄게내가지켜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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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암시를 걸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굳었던 발이 다시 움직인다 나는 은
비를 고쳐 업으며 재차 앞으로 나아갔다 아직 해가 지기엔
일렀지만 전기가 나간 것만으로도 밤이 따로 없었다 시야
가 확보되지 않는다 니는 기억을 더듬으며 밑으로 기는 통
로를 찾았다 분명히 이 근처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을 텐
데 . .. . . .
우르르르
그때 불길한 소리가 백화점에 울려 퍼졌다 이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진동! 일부분만 흔들리는 게 아닌 건물 전체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철렁
내 려 앉았다
무너진다 무너질 거야! 결국 한계에 다다른 거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니는 황급히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
고 그것이 실수였다. 기뜩이나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제대
로 발밑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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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


을 때는 지독한 나른함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상
황을 파악하고자 몸을 일으키 려고 했다 하지만, 무리 였다
사지가 말을 듣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힘겹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 몸이 콘크리트 잔해에 널브러져

13

프를로그 초인 따위 , 정 말 싫어 l
있었다 그리고 저 위쪽에 구멍이 난 천장이 보인다
‘저기에서떨어진건가?'
바보같이혁
자조하려던 입가가 일그러졌다 잠겨있던 수도꼭지가 열
리는 것처럼 전신으로 통증이 밀려든 것이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뭐야, 이건? 뭐가 이렇게 아픈 거야! 나는 소리
없이 이-우성치며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
을 뿐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전신의 신경이 끊
어진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는다
“하악!하악!”
무서워 ! 무서웨 나 죽는 거야? 이대로 죽는 거야?
헐떡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희미해져 가는 시야로 얼핏
빛나는 무언가가 보여 왔다 저건 뭘까? 고리? 고리인 건
가? 날 데려가려는 천사의 고리인 거야?
“오빠!”
사라졌다? 은비의 외침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고리가 사라
졌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는지 모른다
대신 천장의 구멍으로 보이는 것은 날 내려다보는 은비의
얼굴이 었다.
다행이다! 구멍에 빠진 것은 나 흔자였구나 은비는 무사
했어 !
“오빠! 오빠아!”
은비는 떨어진 나를 내려다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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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가! 난 괜찮으니까 너만이라도 도망쳐! 어서! 하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동생은 도통 떠날 생각을 하지
않 았다 .
저 바보가! 어서 가라니까! 잠시 후면 여기가 무너진단
말이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고!
우르르르
우려대로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천장의 금들이 점점 좌우로 번져나가는 것을!
안 돼 무너진다! 은비가 떨어질 거야! 나는 기를 쓰며 목
소리를 쥐어짜 냈다
‘‘거기서피해은비야,어서..!”
“싫어!싫어어!’'
바보같이! 이대로 같이 죽을 셈이야? 나는 물에 빠진 사
람처럼 허우적거리며 울부짖었다 도와줘! 누구라도 좋으
니까 제발! 아빠! 엄마! 하느님 l 부처님 ! 누구라도 좋아요!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l 동생과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제 발 !
‘제발-!’
콰쾅!
하지만, 소망도 부질없이 천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은비가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려던 그때,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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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률로그 초인 따위,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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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7F나타났다
떨어지는 콘크리트 파편을 정지시키며, 추락하던 은비를
낚아채면서 , 그렇게 그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 냈다 그는 마
치 TV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새하얀 타이즈에 붉

은 머플러를 두르고, 코와 입이 드러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


었다
“괜찮나,소년?”
낮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 나는 알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곧 내게서 일어
나는 변화에 짧은 탄식을 터뜨렸다
떠오른다?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어?
‘이게어떻게된일이야?’
당황하는 내 눈에 남자의 양손에서 빛나는 십자 문양이
보여 왔다 그리고 곧 그 문양이 내 가슴팍에도 나타나 있다
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이것 때문에....? 나는 허공에 멈
춘 콘크리트 파편들을 올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파
편에서도 앞의 십자 문양을 찾이볼 수 있었다
설마 저 빛의 문양이 우리를 띄워 주고 있단 말인가?
“혼자서 동생을 지켜줬구나 정말이지 장한데?”
남자의 칭찬에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에스(S)자가 크게
그려진 가슴팍으로 떠오른 나를 받o튜었다 그러자 미리
안겨있던 은비가 내게 두 팔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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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동생의 포옹에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살았구나 죽지
않았어 ! 이제 우리는 살은 거야! 아직 건물을 빠져나가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남자라
면 문제없다 반드시 우리를 데리고 나가줄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나는 왠지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막 그의 이름을 물으려는 찰나, 남자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전방으로 예의 십자 문양들이 여러 개
가 나타났다
“하아아oF”
남자의 기합에 맞춰 문양들이 고속으로 회전한다. 그리
고 그 속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싶을 무렵,
‘느타앗!”
남자가 앞으로 돌진했다 동시에 허공에 멈춰있던 파편들
이 다시 떨어진다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남자의 손앞에서 회전하는 문양들, 그 척력(斥方)
의 집합체들이 말 그대로 드릴이 되어 모든 것을 꿰뚫은 것
이 다 !
콰콰콰쾅!
수차례의 폭음이 일어나며 무시무시한 압력이 우리를 짓
눌렀다. 나는 남자의 품에서 은비를 끌어안은 채 두 눈을 감
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조금만 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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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로그 초인 따위, 정말 싫어!


면. . .. . . !

화아악!
순간 우리를 괴롭히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시
에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두들긴다 감았던 눈을 뜬
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눈앞에 펼쳐진 창공 발밑에 펼쳐
진 스카이라인 그 모든 것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건물
에서 탈출한 것이다!
쿠구구구

남자의 휘날리는 머플러 뒤로 무너지는 백화점이 보여 왔


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유유히 상공을 부유
하고 있었다 남자의 발밑에서 나타난 십자 문양이 낙하 속
도를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저싸..아저씨는누구세요?”
니는 감동에 벅차올라 앞에서 못다 한 질문을 마저 했다
그 질문에 남자는 뭔가를 망설이다가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
로 답했다.

“라이트 세이버(Right Saver) 초인동맹(廻火日盟) 한국


지부 소속의 초인이다”
라이트세이버!
그것이 우리를 구해준 은인! 내가 처음으로 만난 초인의
이 름 !
나는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고 또 되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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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기가 부모를 알아보듯,
사춘기 소녀가 첫사랑에 빠지듯,

그렇게 나는 나만의 영웅을 찾아낸 것이다一

(오빠, 아침이야! 일어나!)


꿈은거기까지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손으로 눈가를 가린 채 인상을 찌푸렸다
하고많은 꿈들 중 왜 하필 그런 꿈을... 벌써 9년이나
지난 일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꿈속에서의
상쾌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불쾌함이 치밀어 오른다
(오빠, 아침이야! 학교 가야지 !)
알았어 알았으니 보채지 좀 마 나는 신경질적으로 이불
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일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적어도 기
분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좀 더 쉬고 싶다.
(훗 좋아 뜻하지 않는 기회로군 이대로 오빠의 동정은
내 가 가져 가겠 )
벌떡l
이불을 박차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횡급히 돌아본
곳에는 자명종 시계가 천연덕스럽게 동생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은비 녀석!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걸 녹음해놓은

19

프톨로그 초인 따위 , 정말 싫어 !
거야? 아니, 그보다 어제하고 내용이 바뀌지 않았나? 언제
바꿔서 녹음한 거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자명종 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그제
야 찾아오는 정적. 하지만, 다시 누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이상 늦장을 부렸다간 목소리를 녹음한 장본인이 직접
날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야”
한숨을 쉬며 침대 머리맡에 둔 안경을 손으로 찾았다 그
러다 안경 옆에 놓인 만화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야가 흐
릿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화책의 표지에는 꿈에서
본 초인이 만화로 그려져 있었다.
초인 라이트 세이버 초인 동맹 산하의 프로덕션, 데스티
니 (Destiny)의 주력 초인 그리고 이름 그대로 수많은 인명
을 구조해온 내 어린 시절의 영웅
나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
고는 주저 없이 침대에서 몸을 돌렸다
“초인따위.정말싫어.”
열아흡살의 봄
나, 서지우는 더 이상 그때의 소년이 아니다

20
제 1장

초인시대 !
세안을하고교복을갈아입고
시간표대로 가방을 정리하고서 시계를 돌아보았다 오전
7시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은 시간이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늘은 1학년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기에 평소
보다 등교 시간이 늦었던 것이다
“그래봤자야자는그대로지만'’
고3 수험생으로서의 푸념 서지우는 가방을 둘러매며 안
경을 고쳐 썼다 막 방을 니서는데 군침이 도는 냄새가 풍겨
왔다 부엌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의 여동생이 언제나처럼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나
평범한 가정에서라면 기사는 당연히 어머니의 몫이겠지
만코

느그럴리가없지.’
지우는 맞은편 안방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에 한탄했
다 안방 문 사이로 보이 그의 엄마는 어제도 철야를 했는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또 마감을 안 지키는 작가라던가

23

저l 1장 초인시대!
기 자라던가 잔뜩 있었던 거 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여동생이 정말 기특하다고 생
각했다 엄마가 팽개친 집안일을 어릴 때부터 도맡아온 것
으로도 모자라, 불평 한 마디 없이, 훌륭한 실력으로 꾸려온
것 이 다
부글부글

지우는 찌개 끓는 소리를 들으며 거실로 향했다. 예상대


로 부엌에서는 그의 여동생이 한창 뭔가를 요리하고 있었
다.
‘오늘 아침은 갈치 무 조립 자반고등어 찜, 된장국인
가 '
변함없이 거창한 식단이다 이걸 손이 크다고 해야 하는
건지 부지 런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렇게 감탄 아닌 감탄
을 하는데, 기습처럼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일어났어?”
“어?으응”
지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맞추는 여동생에게 혀
를 내둘렀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온 자신이 머쓱해
져서 일부러 퉁명스레 말했다.
‘탕연히 일어났지 자명종 소리가 그 모양인데 어떻게 안
일어날 수 있겠냐?”
“애정을 담아서 녹음한 건데 어땠어? 효과만점이지?”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여동생 앞치미를 두른 그녀는

24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 내린 활발한 인상의 소녀였다 잔
뜩 인상을 쓴 오빠와 달리 그 얼굴에서는 연방 미소가 떠나
지 않는다

“까분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당장 저거 지워놔 안 그러


면 자명종 시계고 나발이고 다 갔다 버릴 테니까”
“그래? 그럼 내일 아침부터는 내가 직접 깨워줘야겠네”

싫어절대로싫어
“후후 먼저 식탁에 가 있어 얼른 밥 차려 줄게”
동생에게 등을 떠밀리면서 지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식탁 위에 놓인 도시락통을 발견하고 표정
을 풀었다 여동생이 아침 식사만으로도 모자라 그의 도시
락까지 준비해놓은 것이다
“야. 내가 오늘은 매점에서 때운 댔잖아 뭘 도시락을
싸?”

“오늘부터 같은 학교잖아 이제부터 매일 매일 오빠랑 같


이 점심 먹을 거야”
여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치마를 풀었다 그러자 드러
니는 교복 지우가 다니는 한성 고등학교의 여자 교복이었
다 기슴의 명찰에는 서은비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그것을
보자 지우는 새삼 그녀가 자신의 후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때?잘어울리는것같아?”

25

지l '장 초인시대!
“어울리고자시고.. 교복이 어울려서 뭐할건데”
“그러지 말고 그냥 예쁘다고 해줘라. 응? 응?,’
“아, 저리 좀가l..
지우는 매달리는 여동생. 은비가 귀찮아서 손을 내저었
다 그때 그를 대신해서 다른 목소리가 은비를 칭찬해주었

“어~머~나~ 우리 딸 너무너무 예쁘다~”
이 목소리는. 지우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특유의 늘어지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그의 집안에
단 한 사람뿐이다 바로 곯아떨어져 있으리라 생각한 엄마,
윤미라! 과연 돌아본 곳에는 부스스한 잠옷 차림의 미라가
막 안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치?잘어울리지,엄마?”
“응! 눈물이 날 정도로 잘 어울려! 역시 우리 딸이 최고
야. 세상에서 제일 예뻐 !”
“그러는 엄마도 예뻐 어쩜 자고 일어난 모습까지 이렇게
예 쁠까?”
“정말? 그럼 앞으로도 계속 늦잠자도 돼?”
“그건안돼.”
지우는 엄마와 동생의 대화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 팔불
출 모녀를 누가 말린담. 그는 까치집처럼 붕 뜬 미라의 머
리카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용케 일어나셨네요 좀 더 주무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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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우신 것 같던데”
“우리 아들! 지금 이 엄마 걱정해주는 거야?”
미라는 그렇게 말하며 당연하다는 듯 지우의 등에 매달렸
다 그 바람에 가뜩이나 체구도 작고 동안인 엄마는 한 폭의
그림처럼 이들에게 업힐 수 있었다 지우는 시도 때도 없이
당해온 일이었기에 별 개의치 않고코라기보다는 자포자기
하며 엄마의 어리광을 받o튜었다.
“걱정하는 게 당연하죠 저번에도 기면증 때문에 쓰러지
셨잖아요? 제발 올빼미 생활 고치라고는 안 할 테니 주무실
수 있을 때라도 좀 주무세요'’
“그치만~ 그치만~ 오늘 같은 날까지 늦잠을 잘 순 없잖
아 우리 아들딸이 새 학기를 시작하는 날인데 적어도 엄마
로서 배웅은 해줘야지 !”
“.....그전에 소홀한 집안일부터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돼 요?”
“아아~ 초인 코믹컬라이즈는 다 좋은데 작업 시간이 너
무 불규칙해 이건 뭐, 끝냈다 싶으면 계속 사건이 터지니!
만화를 뭐 도장으로 찍어서 만드는 줄 아나~ 사건 각색부
터 콘티에 펜 터치까지 다시 해야 하는데 중노동이 따로 없
다니 까”
지우는 자기 불평만 하는 엄마의 태도에 한탄했다 어떻
게 이런 사람이 저 월간 초인동맹의 편집장인 걸까 지우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여서 라기보다는 자신의 엄마이기 때문

28
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월간 초인동맹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이
시대의 아이콘 초인! 그 초인의 만화화를 전담하는 월간지
였다 초인이 해결한 사건들. 업적들을 친근한 만화의 이미
지로 사람들에게 보도하는 소식지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스타는 가수도, 연예인도 아닌 초인! 그런 초인의 만화화는
출판 시장의 황무지인 이 대한민국에 월평균 십만 부의 놀
라운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만화잡지를 탄생시켰다 그런 잡
지사에서 뭐가 아쉽다고 이런 나태함의 화신을 채용한단 말
인가? 그것도 자택근무라는 특별대우까지 해주면서?
‘무엇보다어째서.'
어째서 엄마는 그 일을 계속 하시는 거지? 더 이상 아빠
는 없는데 더는 돌아오시지 않는데
‘그런데어째서초인따위를..,’
지우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려고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런
오빠의 기색에 은비는 화제를 돌릴 겸 리모컨으로 TV를 켰

“맞다! 지금쯤이면 기상 예보하겠네 입학식 날 비 내리
면 안 되는데.”
(간밤의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TV에 니온 것은 하
필이면 초인 뉴스였던 것이다. 화면에서는 분홍색 타이즈를
입은 여성 초인과 그 밑에 ‘라이징 발키리, 한밤의 활약상!,

29

저l '장 초인시대!
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권총 강도가 초인 라이징
발키리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라이징 발키리는 오늘 새벽
1시경 여의도 근처 금방에서 강도 행각을 벌인 뒤 달아나던
권총 강도를 무력으로 검거하였으며 ,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를 타고 달아나던 남성 한 명과 범행 현장에서 망을 봐주던
십대 여성 한 명을 추가로 검거하였습니다)
“여,여기가아닌가”
은비는 당황하며 채널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지우의
등에서 내려온 미라가 눈 깜짝할 새에 은비의 손에서 리모
컨을 낚아챘다
“이거야, 이거~ 이것 때문에 어제도고생했다니까? 하필
이면 마감 전날에 이런 사건이 터질 게 뭐람~ 덕분에 인쇄
소에 들어가려던 원고 붙잡고 다시 사건 취재시키느라 정말
힘 들었어 난리 가 났다고”
“엄마.리모컨!”
‘멸심히 초인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이차 창작자들도 좀
생각해주면 좋을 텐데 매스컴 쪽이야 보도만 하면 그만일
지 몰라도 우리 같은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 쪽은 소재가 늦어지면 그만큼 작업이 늦어진다고 피
를 토하며 마감에 쫓긴단 말이야 편집자나 작가들이 괜히
단명 히는 줄 알아?”
은비의 만류에도 미라는 눈치 없게 TV만 계속 바라보았

30
다 긴장하며 오빠를 돌아보자, 예상대로 지우의 표정이 점
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경찰은 검거된 용의자들이 지난달 20일 이후 명동에서
발생한 2건의 권총 강도 사건과 동일범일 7馮성이크다고
밝혔으며, 이번 권총 유출에도 리벨리온(Rebellion)이 개입
한 것은 아닌지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총기 안전지대인 우리나라에서도 유사사고가 거듭 발생하
는 것을 우려, 총기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저 먼저 가볼게요”
뉴스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그제야 TV에서 눈을 뗀 미라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어, 왜? 같이 밥 먹고 가 은비가 밥 다 차려놨는데~”
“생각없어요”
“그치만~ 엄마도 겨우 힘들게 일어났잖아~”
“그럼 더 주무시던가.”
그런 쌀쌀맞은 아들의 태도에 미라는 정말 이유를 모르겠
다는 듯 은비를 돌아보았다
“우리 딸! 오늘 오빠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갑자기 오빠
가 왜 저래?”
“잘못한건엄마잖아..”
은비는 화낼 기분도 들지 않아서 서둘러 핸드백과 도시락
통을 챙겼다 TV에서는 막 뉴스가 끝나고 그 사이의 광고
가 시작되고 있었다

미1
난쓰

저l '장 초인시대!
(초인 라이징 발키리의 활약은 하나 전자, 초인 보험, 주
식회사 토이 맨의 스폰서들에 의해 보내드립니다)

“으윽”
등굣길의 지하철 안 지우는 수많은 승객 사이에 끼어 고
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소에도 만원 전철이었지만
오늘은 정도가 더 심했다 o民래도 늦게 출발하다 보니 출
근하는 직장인들과 시간대가 겹쳐진 모양이다 그나마 x馮
문 옆 손잡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
다 여기라면 적어도 제때 못 내릴 일은 없으니까
“오빠, 괜찮아? 힘들면 나한테 기대.”
마찬가지로 손잡이 근처에 있던 은비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는 괴로워하는 지우와 달리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서
있었다 오빠가 그녀의 앞에서 인파의 홍수를 몸으로 막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우는 안간힘을 다해 등 뒤의 사람
들을 밀어내며 대꾸했다
“괜잖아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그러지 말고그냥기대라니까.”
“시끄라 안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게 할래?”
고집불동 은비는 작게 투덜거리며 x馮문의 창밖을 살펴
보았다 창밖에서는 막 지하 터널을 지나 승차장의 정경이
보이고 있었다
(이번 역은 신도립 신도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向 지
㉠ 4
입 니 다)
“그것봐도착했클'
지우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전차의 자동문이 열리기
무섭게 일제히 사람들이 입구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 바
람에 덩달아 휩쓸린 지우는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간신
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아 이건 뭐 콩나물시루로 아니고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대 ?”
승차장 구석에서 한숨을 돌리는 지우에게 은비가 다가왔
다 지우는 지친 표정으로 뒷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 앞으로는 3년 내내 이렇게
다녀야 하니까”
“진짜?다른방법은없고?”
“없어 그러게 너라도 가까운 학교로 가지 그랬냐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여고라던가, 여고라던가, 여고라던가. 거기
라면 네 성적으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에 은비는 오빠의 구겨진 옷깃을 바로 해주며 미소
했다 .
“말했잖아 1년이라도 좋으니 오빠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난 그거면 족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우는 조금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지 않으며 되레 핀잔을
주 었 다 .

33

제 1장 초인시대!
“바보야, 필요 없기는 뭐가 필요 없냐? 네가 여고에 가면
나한테 소개팅도 시켜주고 좀 좋아 그런데 같은 학교에 오
면 무슨 소용이야? 괜히 중학교 때처럼 이상한 오해나 받지
않으면 다행 이 지 ”
“오해?무슨오해?”
“잊었냐? 중학교 때도 네가 지금처럼 날 졸졸 따라다녔잖
아 그 바람에 교내에서도 근친이 어쩌고 애남매가 어쩌고
다들 멋대로 떠들었다고”
“아~ 그거 말이야?”
은비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뺨에 홍조를 띠었다
“괜찮아 난 남들이 뭐라고 하던 신경 안 써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오빠와 나, 두 사람의 마음 아니겠어?”
“마음 같은 소리 하네! 중요한 건 그 당시 내가 사귀던 사
람이 있었단 거야! 근데 근친 같은 소문이 돌았으니 어떻게
되었겠냐? 제대로 손도 못 잡아보고 헤어졌잖아!”
“흥 그 정도로 헤어질 거면 애당초 오삐를 넘보지 말았어
야지 나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됐다됐으니까그만두자제발”
지우는 진저리를 치며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향했다 은비
와 얘기를 니누는 사이에 어느덧 승차장이 한적해져 있었

“어쨌든 고등학교에서만은 조용히 지내 알았지? 나 올해


로 고3이다 너도 재수한 오빠는 싫을 것 아냐?”

34
“걱정마재수하더라도오빠는오빠니까”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지우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은비는 그런 오빠의 옆에 서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껴온다 지우는 거기에 대해서 한소리
하려다 곧 그만두었다 동생의 이런 행동이 무엇에서 비롯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적 그들 남매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사
고의 후유증으로 은비는 한동안 외출을 두려워하게 되었는
데, 그러다가도 지우가 손을 잡아줄 때면 거짓말처럼 밖으
로 나갈 수 있었다 오빠와의 스킨십이 무서움을 이기는 버
릇이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우는 줄곧 은비의 버릇을 받
이주었고, 그녀의 외출 공포증이 나아질 때까지 계속 곁에
머 물러 주었 다
‘그결과가중학교때의오해였지만.
지우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팔짱에서 눈을 돌렸다 후유
증을 이겨냈음에도 때때로 이런 버릇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도 은비가 그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디는 증거였다 그러니
조금만 더 어리광을 받이주는 수밖에. 언젠가는 이 녀석도
저 좋다는 남지를 만나면 떨어져 나갈 테니까
...그말은올한해도근친소리를달고살아야한다는
거 군'
그렇게 근심하며 올라가는데, 곧 이상한 광경을 볼 수 있
었다. 먼저 갔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이 디들 매표소 근처에

35

저l 1장 초인시대!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왜들안나가고저래?”
지우는 영문을 몰라 북적거리는 매표소를 둘러보았다 그
러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표정을 굳혔다 이
소리는 설마.? 그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려고 출구 쪽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계단 위에서는 초록색의 제복
을 입은 공익요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경계경보중입니다협조해주십시오!”
“거기 아저씨, 나가시면 안돼요 얼른들어가세요!..
지우와 은비는 출구에 몰린 사람들 너머로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
다 그 뿐만 아니라 도로를 가득 채워야 할 차들도 사라져
있다.

괴인 경보(Monster man Warning;MMW)였다 리벨리


온이나 소속 불명의 단체와 초인 동맹이 격돌할 때 이에 방
호 태세를 취하도록 알리는 신호인 것이다
“꺅!누구래?누구래?”
“크래쉬 맨(Crash man) 한상준이야! 지금 로케이션
(Location) 중인가 봐!”
“근데 왜 안 보여? 뭐가 보여야 폰 카로 찍든가 하지 !”
여학생들이 신이 나서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일반인들이 실제로 초인을 보는 일은 흔치 않았기에 당연하
다면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36
“촬영은안됩니다!”
뒤늦게 공익 요원들이 제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로서
는 당장에 입구에서 뛰쳐나가려는 사람들을 붙잡는 것만으
로도 한계였다
은비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었다
“디들 겁도 없네. 언제 여기가 이수라장이 될지도 모르는
데 그치 , 오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그녀의 곁에 있
던 지우가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
던 은비는 곧 오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계단
밑의 통로에 등을 기댄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
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 없다는 태도다
은비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중얼거 렸다
“정말이자...窮고집불통이라니까”
모두가 초인에 열광하는 시대 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초
인에 열광하지 않는다 되레 초인을 혐오하고 있다 원망하
고 있다.

F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내가 지켜줄 테니까셈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은비는 더욱


기슴이 아팠다

37

저l 1장 초인시대!
경보가 해제된 것은 그로부터 15분 뒤였다 덕분에 빠듯
하게 한성 고에 도착한 지우와 은비는 곧바로 자신들의 교
실로 달려가야 했다.
‘‘그럼 입학식 잘 치러라 위에서 지켜볼 테니까 괜히 말썽
부리지 말고”
“오빠도 참 남들이 들으면 뭐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말썽
만 부리는 줄 알겠다”
시도 때도 없이 말썽만 부리고 있잖아....... 지우는 그렇
게 말하려다 괜히 꼬투리를 잡힐까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그의 뒤로 은비가 외쳤다
“이따 점심시간에 봬 같이 점심 먹기로 한 것 기억하
지 ?”
“그러려고도시락싸준거 아니었냐?”
“오케이.거기까지!”
은비는 브이 자를 그려 보이며 쏜살같이 교사로 들어갔
다 그 활발한 뒷모습에 지우는 혀를 내둘렀다 저 모습 어
디에 사고 후유증이 있디는 건자......
“나도이러고있을때가아니지”
지우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서 빠르게 걸음을 옮
겼다 3학년 반 배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반을 찾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어렵지 않게 자신
의 교실을 찾아갈 수 있었다. 교실은 3학년 4반이었다.
“야, 오늘 크래쉬 맨 로케 하는 거 봤냐?”

38
“크래쉬 맨이 로케? 진짜? 그 초인, 현장 근무는 안 하잖
아 ”
“뮤직 비디오 촬영이래 아까 우리 학교 근처에서 찍었다
나 봐”
“요즘 프로덕션 빅토리 잘 나가네 그러고 보니 어제 라이
징 발키리도 한 건 했다며?”
“응! 신인인데 대단하지 않냐? 올해부터는 세븐 암즈
(Seven Arms) 에 도 들어 간대 !’’
낯선 교실, 낯선 급우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언제나 변
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화제 모두 변함없이 초인들의
활약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우는 거기에 끼고 싶은 마
음이 없었기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그의 자리
는 뒷문 끝자리 디음으로 사랑받는 창가 끝자리 였다
“크래쉬 맨 2집 앨범 어때? 빅 뱅 어택(BIG BANG
ATTACK)이란 곡, 괜찮지 않니?”
“빅토리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초인이잖아 괜찮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여기도 초인 얘기인가 지우는 자신의 자리 근처에서 떠
드는 여학생들에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다 그 중 한 여
학생을 발견하고서 재빨리 눈을 피했다 지우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히는 학우가 거기에 있었다
“지우야,지금왔어?”
자리에 앉는 지우를 발견했는지 여학생이 먼저 손을 흔들

39

제 1장 초인시대!
어왔다 지우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져서 안경을 고쳐 쓰는
척 얼굴을 가렸다
‘하나, 넌 일찍 왔네”
“응. 오늘 입학식 있는 줄도 모르고 일찍 와버렸지 뭐야
덕분에 좋은 구경거리도 놓치고 속상해 죽겠어”
여학생, 정하나는 한숨을 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단발
을 가지런히 뒤로 묶어 내린 그녀는 최근 지우가 가장 신경
을 쓰는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자리가 바로 자신의 옆자리
인 탓도 있었지만, 반 배정을 받고서 가장 먼저 말을 걸어준
이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호의가 생겼
다고 해야 하나 니름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뭐좋아한다거나그런것은아니고
지우는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며 하나에게 물었다
“좋은구경거리를놓치다니?뭘?”
“아까 괴인 경보 울렸잖아? 그게 크래쉬 맨이 여기서 야
외 촬영을 했기 때문이래 그래서 다들 아까부터 그 얘기
야 ”
“......아아.그거.’'
지우는 싫은 내색도 못하고 떨떠름하게 답했다 하나는
이무것도 모르고서 계속 말을 이었다
“아! 혹시 지우 너도 경보 때문에 늦은 거야? 그럼 크래쉬
맨 봤겠네? 어땠어? 실물도 멋있었어?'’
“아니. 그게 난......”

40
“얘들아 지우가 학교에 오면서 크래쉬 맨 봤대! 다들 이
리 와봐!”
“뭐?진짜!진짜!”
하나가 여학생들을 부르자, 그녀들뿐만 아니라 반 전체가
일제히 지우를 돌아본다. 그런 시선의 집중에 지우는 안색
이 새파래졌다.
‘대체누가크래쉬맨을봤다고이러는거야?’
하지만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 기대
에 찬 시선들을 차마 실망시킬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지우를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크래쉬 맨 같은 건 초인이 아니다! 단순한 아이돌일 뿐
이 야 !”
교실 뒷문이었다 거기에는 멀리서 보기에도 한 눈에 들
어오는 개성적인 남학생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19살 치
고는 작은 체구에 어딘가 일부러 지은 듯한 험악한 표정이
특징이었는데, 무엇보다도 가관은 왁스로 꾸민 그 앞 머리
카락에 있었다.
‘번개?'
남학생의 앞 머리카락은 범상치 않게도 번개 모양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초인 동맹의 번개 로고 흉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우는 자신이 거기에 속한다는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얘,쟤걔아니니?”

41

제 1장 초인시대!
“약간정신이 이상하다는”
“아아그별종?”
교실의 학생들이 남학생을 가리키며 귓속말들을 주고받
았다 그 소리가 뻔히 들림에도 남학생은 조금도 개의치 않
았다 오히려 다른 곳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똑바로 지우
를 향해 걸어온다
‘3학년이되면이제포기하려나했더나.’
지우는 덩달아 자신까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교실 분
위기에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왔냐?”
“또 왔지 앞으로도 계속 올 거다 네가 허락할 때까지 올
거다 이 허영웅이 너와의 우정을 쉬이 저버릴 것 같으냐!”
으윽 어쩌면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저토록 부담스러
울 수 있을까?
지우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예
상대로 하나를 비롯한 급우들이 남학생, 허영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 과장된 언행에 익숙한 자신도 이럴지
언데 그들이라고 오죽하겠는가.
“요 며칠간은 동아리 홍보에 열중했었지 그 때문에 소홀
했던 점을 용서해주게, 친구.”
“됐어 됐으니까 그냥 네 반으로 가라 좀 있으면 수업 시
작하니까 제발”
지우는 최대한 빨리 영웅을 돌려보내려고 그의 등을 떠밀

42
었다 하지만, 영웅은 꿈쩍도 하지 않고서 되레 지우의 옆에
있는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 켰다
“그전에 잠깐! 아까 크래쉬 맨을 초인이라고 불렀던 게
너 냐?”
‘‘어?으응...그런데그게왜?”
난데없는 삿대질에 하나는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영웅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지우의 책상을 밟고 올라갔다.
“왜냐고? 지금 왜냐고 물었나? 그렇다면 가르쳐주지! 초
인이란 단순히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자가 아니다 그 힘
을 사람들을 구하는데 쓰는 자, 그것이 바로 초인이라는 거
다! 그런데 크래쉬 맨은 어떻지?”
“어,어떻기는?”
“그저 음반을 내고! 토크쇼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심
지어는 맨 얼굴을 드러낸 채 영화까지 찍었지 ! 사람들의 구
조 활동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말이야! 그런 녀석의 어디가
초인이라는 거냐? 그저 혼해빠진 연예인일 뿐이잖아!”
끝났다 지우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
을 쉬었다. 모처럼 새 반에서 이미지를 쇄신하나 했는데, 이
녀석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래서야
1학년 2학년 때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저기 , 하지만 요즘 초인들은 전부 그렇지 않아?”
낙담하던 차에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였다 그
녀가 의외로 흥미롭다는 듯 질문을 던진 것이다 영웅은 반

43

제 '장 초인시대!
색하며 책상에서 뛰어 내려왔다
“좋은 질문이다! 확실히 요즘 나오는 초인들은 트렌드가
어쩌니 상품성이 어쩌니 하면서 아이돌 화 되어가고 있지
그 대표적인 예가 앞의 크래쉬 맨이고 말이야”
“으- 으_”
o.•.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돈은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정의


는 실현되지 않아I”
그 단호한 대답에 하나와 급우들은 다시 한 번 아연실색
했다 정의? 정의가 뭐 어쨌다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야l
‘역시이상해’
.이상한아이라니까’
그런 불신 어린 시선에도 영웅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초인이라고 부를만한 이는 라이징
발키리 정도밖에 없지 그녀라면 남들 다 내는 앨범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치안 유지에만 전념하고 있으니까 하아l
그나저나 언제부터 초인의 척도가 인지도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군 3년 전, 라이트 세이버가 있을 때만 해도 이렇지
는 않았는데”
그 푸념에 옆에 있던 지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정확하
게는 라이트 세이버라는 이름에 반응한 것이었다 영웅은
그런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하고 다시 친구를 돌아보았다
“어쨌든 이런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너와

44
나의 초인 연구회가필요한 거다 자, 친구여! 지금이라도
나와 힘을 합치지 않겠는가! 중학교 때처럼 모두에게 진정
한 초인의 정신을 가르쳐주는 거다!”
“심해”
지우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영웅은 반문했다
“뭐라고?'’
“못들었냐?한심하다고그랬잖아”
그렇게 말하며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영웅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정신 좀 차려라 어린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초인 따위에
열 광할래 ?”
“一I’'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냐? 뭐가 너와 나의 초인 연


구회야? 유치한 것도 정도껏 해야지 ”
영웅은 부리부리한 눈썹을 위로 올리며 지우를 노려보았
다 그리고는 힘주어 한 자 한 자 말했다
“지금그말진심이냐?”
“진심이고말고 그러니 너도 그만 돌아가 우리 이제 고3
이잖아? 가뜩이나 수능 공부해도 모자랄 판에 동아리 활동
같은 거 할 새가 어디 있냐? 초인 따위 생각할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라도 더 해.”
“그것 말고! 맨 처음에 했던 말 말이다!”

45

처l 1장 초인시대!
“맨 처음? 아아, 한심하다는 거읔'
퍽l
순간 지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난데없이 영웅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그 바람에 지우는 쓰고 있
던 안경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넘어졌다
“지우야! 괜찮니?”
옆에 있던 하나가 당황하며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는 영
웅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갑자기 사람을 왜 때려 !”
“한심한건너다,서지우!”
영웅은 하나의 항의를 무시하며 소리쳤다 지우는 얻어맞
은 뺨을 감싸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대가한심하다고?”
“그래 한심하지! 허구한 날 맘에도 없는 소리나 하고 있
으니까! 뭐가 어린애라느니 유치하다느니 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성 싶으냐! 자기 자신을 속
이는 건 적당히 해 !”
“적당히 할 건 너잖아 매번 질리지도 않고 귀찮게 시
라 . l”
‘‘뭐라고?”
영웅은 지우의 멱살을 붙잡고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리려
고 했다 그때 울려 퍼지는 종소리 1교시 시작종이었다 그
소리에 영웅은 지우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잡은 멱살을 풀어

46
주 었 다
“이게 끝이 아니야 다시 찾o虐 거다 몇 번이고 권유해
주겠어 !.’
그렇게 으름장을 놓으며 세차게 몸을 돌린다 지우는 뒷
문으로 나가는 영웅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제대로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 았 다
“나, 참l 뭐 저런 애가 다 있니? 지우야, 정말 저런 애하고
친 구 야 ? ”
하니는 탄식하며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서 건네주었
다 지우는 그것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죽마고우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47

저l 1장 초인시대!
제 2장

초인 혐오증!
언제부터인가 제계의 목소리’ 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목소리를 듣게 된 자들은 저마다 하니씩 특이한 능력
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초인코 인
간을 초월한 자들이라고 부르며 경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초인들이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
니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가 초인력을 가진 자객에게 피살된 것을 계기로 제1차
초인대전이 일어났으니까”
4교시 사회 시간 지우는 책상에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
보고 있었다 한창 교단에서는 열의에 찬 선생님의 수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탈리이를 제외한 유럽 열강은 서로가 가진 초인들을
내세워 4년 가까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수많은 무
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 당연히 초인들은 세간의 두려
움을 사게 되었고, 반(反) 초인 운동이 일어나는 둥 세계는

51

제 2장 초인협오증!
심각한 초인 불신 중에 빠지게 된 거야”

지우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따분하디는 기색을 숨기


지 못했다 선생님의 설명이 고리타분한 탓도 있었지만, 수
업이 끝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4교시가
끝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이쯤 되면 디들 집중
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소수 초인들이 국제연맹(League
ofNations)에게 독립을 주장했고, 이를 거부한 국제연맹은
휘하의 초인들을 앞세워 탄압했지 바야흐로 제2차 초인대
전의 시작이다. 7년간 벌어진 이 전쟁은 간신히 원(允) 초
인들의 승리로 돌아가고, 초인들은 공권력과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되는데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거
야”
“얘,지우야”
그때 조심스럽게 지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창밖에
서 눈을 뗀 지우는 교실을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옆
자리의 정하나였다 그녀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빙긋 웃
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대답도 안
하고”
“아,그랬어?”
지우는 설마 수업 중에 그녀가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기
에 당황했다 그러다 자신들 쪽을 돌아보는 선생님의 모습

52
에 입을 디물었다
“크흠!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바로 그동안의 대전으로 초
인들이 민심을 잃어버렸다는 거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
립되고 말았던 거야 이를 극복하고자 초인들은 그들 스스
로 동맹을 맺어 국제연맹과는 별개로 초인력을 사회에 공헌
하기로 했다”
“그런데무슨일로?”
지우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하니는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지우의 책상에 걸려있는 도시락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늘같이 점심 안먹을래?”
“각종 범죄와 재난과 싸우며 초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
로 사람들을 구한다, 이러한 의도는 당연히 처음에는 받아
들여지지 않았지 하지만, 계속되는 구제와 희생은 차츰 긍
정적인 결괴를 낳게 되었고 21세기가 된 지금, 초인은 이
사회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거
다.”
점심을 같이 먹자고? 지우는 하나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
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이런 제안을 해올 줄이
야! 하니는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뭘 오해했는지 얼
굴이 붉어졌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지우 네가 매일 혼
자 밥 먹는 것 같아서 나라도 괜찮으면 같이 먹는 게 어떨

53

제 2장 초인혐오증!
까 하고
7T

“흔자 먹는 것보디는 여럿이서 먹는 게 즐겁잖아? 그래서


난 그냥. 저기, 괜한 참견이었으면 사과할게”
“아,아냐사과는무슨!”
지우는 도리질 치며 재빨리 안경을 고쳐 썼다 애써 침착
해지려고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래 처음으로 받아본
호의였던 것이다 그것도 여자에게서 ! 더구나 상대는 그가
평소에 마음을 두고 있던 하나였다 그는 들뜨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내가고맙지나도적적했거든”
“정말?그럼이따같이먹는거야?”
“으응.”
지우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다- 뒷말을 흐렸다 도
시락통을 보고 있자니 잊고 있던 뭔가가 떠오른 것이다
F오늘부터 같은 학교잖아 이제부터 매일 매일 오빠랑 같
이 점심 먹을 거야J
맞아 그게 있었지! 지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낮게 신음했
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그런 약속을 하다니 ! 이런 천
재일우의 기회는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냥은비한테는다음에먹자고말할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자신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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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거야말로 재앙을 부르는 길 지금까지의 경험상, 지우
는 동생을 화나게 해서 단 한 번도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
다 대놓고 그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지만, 반드시 그 뒤에
는 학교에 근친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루머가 성행했던 것
이 다.

아아 그래 그 루머가 녀석의 짓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녀석의 짓이 아니었다는 증거 또한 없다 그랬기에
지우는 이번에도 피눈물을 삼키며 하나의 호의를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야 오늘 말고 다른 날 같이 먹으면 안 될까?”
“왜? 무슨 일 있어?”
“응 선약이 있어서..'.
거기서 지우는 말을 멈췄다 선생님의 헛기침 소리가 다
시 들려온 것이다
“초인들은 단순히 초인력으로 사람들을 구해봐야 자신들
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 그
때문에 그들은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갈 필요가 있
었고, 그러한 방법의 일환으로 선택한 것이 연예, 오락, 문
화 산업인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였다 너희가 알
고 있는 초인 동맹은 그렇게 탄생한 거지 ”
“그랬구나 그럼 하는 수 없지. 다음에 같이 먹자”
하니는 선생님한테 보이지 않게 미소했다 아아 그 아쉬
움이 물씬 느껴지는 미소라니 l 지우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

55

제 2장 초인혐오증!
뜨리며 이 자리에 없는 동생을 진심으로 원망했다
‘요즘 남자들은 다 뭐하냐. 그 애물단지 빨리 안 데려가
고l'

“요즘 남지들은 너무 무례한 것 같아'’


‘.....안데려가는게아니라못데려가는건가’
점심시간 지우는 은비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
다 그들 남매는 약속대로 교정의 벤치에서 만나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은비는 오전 중에 받았다는 러브레터를 들어
보이며 한창 편지의 발신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입학식이 끝났잖아? 그런데 벌써 이런 걸 보
내면 어쩌지는 거야? 나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있다고?”
“한눈에 반했다거나그런 거겠지”
“바로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그럼 한눈에 반했으니까
한 눈에 싫어질 수도 있겠네? 사람이 좋아지는데 이유는 필
요 없다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계기는 있어야 할 거 아냐?”
“옷깃만스쳐도인연이라잖냐.”
“스치지 않았어! 어쨌든 상대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걸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야 민폐일 뿐이라고”
‘클쎄다 난 러브레터 같은 거, 보낸 적도 받아본 적도 없
어서 잘 모르겠다”

은비는 잠시 말을 멈추고 불만스런 표정으로 오HH튼 노려

56
보았다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식사에만 전념한다
“오빠, 나한테 뭐 화나는 일 있어? 아끼부터 왜 그렇게 퉁
명 스러 워 ?”
“퉁명스럽기는나원래이렇잖니”
“그래? 내가 보기엔 마치 데이트를 방해받아서 심통이라
도 난 것처럼 보이는데”
쿵!

지우는 정곡을 찌르는 동생의 말에 기슴이 철렁했다 ‘이


자식, 설마 뭔가를 알고 있나? 그냥 언제나처럼 넘겨 짚어
본 거겠지? 그렇겠지?' 그는 애써 멈췄던 숟가락을 다시 움
직 였다.

“데이트 같은 소리 하네 난 그냥, 편지를 쓴 남자와 같은


남자로서 네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것 뿐이야 너한테는 그
저 그런 편지일지라도 그걸 쓴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용
기를 내서 쓴 것이겠냐? 그런데 그걸 무례라느니 민폐라느
니 깔보는데 좋아 보일 거 같아?”
“아..... 그건 확실히 내가잘못했어”
은비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편지를 핸드백에 갈무리
했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지우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
다. 다행이다. 어떻게든 넘어가는군
“오빠, 그게 뭐야?”
그때 은비가 지우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그
바람에 도둑이 제 발 절인다고, 지우는 화들짝 놀라서 몸을

57

제 2장 초인협오증!
물 렸 다 .
“뭐뭐가?”
‘뭐긴 뭐야l 볼에 난상처 말이야!’.
“상처?”
지우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
렸다 그러고 보니 영웅이에게 한 대 맞았었지 아마도 그때
생채기라도 생긴 모양이다
‘거울로 봤을 때는 티도 안 나던데...... 용케도 알아보
네'
“맞은 거지? 그거 맞아서 생긴 거지? 누구야? 어떤 인간
이 울 오빠를 때려 !”
“또오버한다”
지우는 흥분히는 동생을 달래며 영웅과 있었던 일을 간단
히 설명했다 그제야 은비는 납득했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그랬구나 영웅이 오빠랑그런 일아.”
그녀도 허영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오빠의 죽마
고우라서 어릴 때부터 자주 만니온 데다가 실제로 중학교
때는 같은 학교 선후배였던 것이다. 언행이 좀 특이하기는
했지 만 재 미 있 었던 사람으로 기 억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셋이서 정말 재
미있게 놀았는데 그치? 비록 1년뿐이었지만 초인 연구회
다 뭐다 만들어서 집에도 가지 않았잖아”
은비의 말에 지우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녀는 그것을

58
알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여름철에 초인 월드 참가했던 것도 기억나? 참가비 마련
한다고 셋이서 비싱금이랑 세뱃돈 전부 털어서 넣었잖아
어휴 그때 영웅이 오빠 말 믿는 게 아니었어 뭐가 본전은
찾을 수 있디는 건지 정작 중요한 원고가 완성되지 않아서
재고만 잔뜩 남아버렸는데. 후후 그래도 그렇게 고생했던
일들이 제일 기억나 그때는 그런 날들이 계속될 거라고 생
각했는데 오빠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에도 계속 동아리
를 만들어 서 . ”
하지만현실은一
“만약아빠만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그만해!”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어찌
나 컸던지 운동장에 있던 학생들이 전부 그들이 있는 쪽을
돌아본다. 은비는 오빠가 그렇게 반응할 거라 예상했던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런얘기는그만하자.”
지우는 언성을 낮추며 은비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꿀 겸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다
“그것보다 뭔가 가지고 싶은 것 없어? 명색이 고등학교
입학식인데 맨손으로 넘어가기는 그렇잖아 너무 비싼 거만
아니면 내가 입학 선물 사줄게”
“이, 이상해 우리 오빠 안 같아 언제부터 입학식 선물 같

59

제 2장 초인협오증!
은 걸 사줬다고
“싫으면관두고.”
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 먹은 도시락통을 닫았다 그
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냉큼 은비가 그의 옷자락을 붙
잡 았 다 .
“그럼 내일 놀토에 데이트 찜 !”
“...그냥선물로사준다니까”
“안 돼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건 나쁜 습관이야. 그
리고 어차피 데이트 쪽이 지출도 적고 오빠한테도 좋잖아?'.
대신 그만큼 귀찮잖아 지우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알
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비는 대번에 화색을
띠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약속한 거야? 취소하기 없기! 도장 복사 코팅!”
‘발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도시락이나 챙겨!’'
지우는 초조해하며 은비에게 붙잡힌 팔을 흔들었다 아침
에 주의를 준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엉겨 붙는단 말인가 솔
직히 그로서는 은비가 교정에서 보자고 한 것도 별로 내키
지 않았다 가뜩이나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서 밥을 먹었다간
싫어도 전교생들의 눈에 띌 텐데
‘....설마그럴의도로여기서보자고한건아니겠지?'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핸드폰 진동음이
었다 지우는 자신의 폰이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은비의 핸
드백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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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전화 온 거 아냐? 네 잡동사니 가방 흔들리잖아”
“아, 그러네 하여간 진동으로 해두면 알 수가 없다니까”
“그러게 주머니에 넣으면 되지 뭘 그리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 너 그 가방에 지갑도 열쇠도 다 넣고 다니지?”
“그치만 주머니가 볼록하면 보기 싫은걸 촌스럽단 말이
야 ”
은비는 오빠에게 혀를 내밀며 핸드백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문자메세지를 확인하다가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뭘 봤기에 저러는 거지? 지우는 영문을 몰라 은비의 핸드폰
을 들여 다보았다
“왜 그래? 스팸 메일이라도 받았어?”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은비는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며 핸드폰을 닫았다 그 바
람에 문자를 보지 못한 지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왜 감춰? 내가 보면 안 되는 거였냐?”
“아, 아oF 그게 뭐랄까내 프라이버시에 관한 거라서”
프라이버시? 남의 프라이버시는 신경도 쓰지 않던 녀석이
언제부터 프라이버시를 챙겼다고 저러는 걸까 지우는 코웃
음을 치다가 은비의 핸드백에서 삐져나온 러브레터를 바라
보 았 다
‘프라이버시라는 게 혹사,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그
는 히죽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두들겼다
“뭐야 그런 거였냐? 난 또 뭐라고 진즉에 말을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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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초인협오증!
“응?뭐가?”
“쑥스러워서 그래? 아님 내가 반대할까봐? 괜찮아 걱정
하지 마 이 오빠는 진심으로 축복하고 있으니까 세상 모두
가 반대하더라도 나만은 너희 편이 되어줄게”
“무, 무슨 소리야? 뭘 축복해줘?”
은비는 어딘가 불안해진 표정으로 수중의 핸드폰을 움켜
쥐었다 그런 동생에게 지우는 핸드백의 러브레터를 가리켜
보 았다

“방금 온 문자, 저 남자한테서 온 거 아냐? 편지 쓴 사람


한 테 서 ?”

순간, 은비의 고개가 맥없이 떨어진다 그 반응에 지우는


편지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슬그머니 거두었다
“아니야?”
“절대로혁아니야!”
은비는 고개를 들며 교정이 떠나가라 버럭 소리 질렀다
그 바람에 지우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뒷걸음쳤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오빠, 진
짜 웃긴다! 내 핸드폰 문자랑 저 편지랑 무슨 상관이 있다
고I”

‘자, 상관이 있을 수도 있잖아.”


“없어! 내 눈에 흙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없어! 무엇
보다 그 응원해주겠다는 말투가 글러 먹었어. 오빠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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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웬 산적 같은 남자랑 사귀어도 축복해줄 수 있는 거
야? 동생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전력을 다해 말려줘야지
뭘 부추기는 거야? 그러고도 오빠로서 자격이 있어 !”
순식간에 무책임한 오빠가 된 지우는 입만 벙긋거렸다
그냥 남자친구가 생겼느냐고 물어본 것뿐인데 어째서 저런
소리까지 들어야 할까?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란 말인
가?
은비는 도시락통을 챙겨들며 찬바람 나게 몸을 돌렸다
“어쨌든 난 볼 일 생겼으니까 오늘은 오빠 혼자 집에 가!
나 독서실에서 못 기다려줘 !”
그럼 야자 끝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냐.” 지우는
혀를 차면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비는 코
웃음을 치며 성큼 성큼 교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
을 바라보며 지우는 머 리를 긁적 였다
“결국.그볼일이라는게뭐라는거야?”

야자가 끝마친 것은 평소와 다름없이 10시 반이 되어서였


다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겹게 기지개를 켰다 7시
에 야자가 시작되고 나서 계속 앉아있다 보니 엉덩이에 못
이 배기는 것 같았다 조만간 의자에 깔 방석이라도 가져와
야 할까 보다
“수고했어,지우야”
옆에 있던 하나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우는 가방을 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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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초인혐오증!
멋쩍게웃었다
“수고는무슨나만야자하나”
“그래도 한 번도 안 일어나고 공부하던걸. 되게 열심히 하
더 라”
“그거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그렇지 지우는 차마 그렇게 말하지
는 못하고 가방을 둘러 맸다 사실은 그도 무진장 좀이 쑤셨
지만 하나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도저히 게으름 피울 수
가 없었던 것이다 호감이 있는 여자애에게 좋은 모습을 보
여주려 한 게 의외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할까
‘이거쓸만한데'
지우는 저 혼자 감탄하며 조용히 안경을 번쩍였다. 어쩌
면 그는 올해의 수능을 대비한 홀륭한 공부법을 찾아낸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우야 오늘 점심시간에 같이 도시락 먹던 애는
누 구 야? ”
들뜨던 기분이 단숨에 가라앉았다 지우는 당황하며 하나
를 돌아보았다 설마 그녀에게 그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하긴 그 넓은 운동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되레 이상하
겠지 ,
지우는 안경을 쓸어 올리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내여동생이야오늘입학했거든”
하나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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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여동생이랑같이 먹은거구나! 난또.”
“난또?”
“당연히 여자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지. 둘이 너무 잘 어울
렸 거 든”
“르긔_=1 ”
•roI.......

지우는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서은


비, 나랑 싸우자l 내 연애 사업의 암적인 존재 같으니라고!
하여간 이건 동생이 아니라 원수야, 원수!
“그나저나동생너무예쁘더라키도크고”
“예쁘기는 무슨 말도 지독스럽게 안 듣고 고집은 또 얼마
나 센데”
“그래도 사이좋아 보이던걸 특히 동생이 오빠를 많이 좋
아하나 보더라 원래 우리 나이쯤 되면 오빠한테 팔짱끼지
는 않잖아?”
“그래?난잘모르겠는데”
지우는 말을 얼버무리며 교실을 나섰다 그 뒤를 하나가
가방을 메며 따른다 덕분에 둘은 자연스럽게 같이 하굣길
에 올랐다
‘동생이 우리 학교에 온 것도 오HH든 따라서 온 거야?”
얘기의 화제는 지우가 원치 않게도 계속 그의 여동생에
관해서였다 공통된 화제가 없다 보니 처음의 화제에 집착
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靴. 그는 자꾸만 질문하는 하나
에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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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초인협오증!
.날 따라왔다기보다는 옛날부터 그랬어 그 녀석은 내가
뭐만 하면 똑같이 따라 해야 직성이 풀렸거든 아마 여기에
온 것도 별다른 생각은 없었을 거야”
“아, 그거 왠지 알 것 같아 나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언
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입은 옷이나 장신구를 보면 그대로
따라하고 싶었거든 그거랑 비슷한 기분이려나 어쨌든 동
생 이름이 서은비라고 했지? 한 번 만나보고 싶네”
우뚝 지우는 그 즉시 교사에서 나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의구심이 가득 찬 눈으로 하나를 돌아본다 이게 웬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야? 갑자기 은비는 왜 만나보
고 싶대? 무슨 경을 치려고? 그렇게 그가 지독한 불신감을
드러내자 하나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냐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어떤 애인가
궁금해 서 ”
그러니까왜궁금해?
“네얘기를들어보니까착한애같기도하고”
내얘기가어쨌기에?
“그리고 지우의 동생이니까..... 앞으로 알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내 동생이니까- 뭐? 지우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 퍼져
있는 홍조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 역시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거,이무래도그건가?내가오해하는거아니지?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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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설마하나도나에게...
거기에 결론이 도달하자 지우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렸다 그는 당장에 진의를 확인하고픈 마음을 참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괜히 경거망동하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
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좀 더 신중하게, 주도면
밀하게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
“내동생이라서잘알고싶다는건.무슨뜻이야?”
“응?그게.......”
지우는 마른 침을 삼키며 하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후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 사멸했다고 생각한
그의 연애 세포가 다시 부활할지 몰랐다 그는 몇 번이고 입
술만 달싹이는 하나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냈다. 힘내, 하나
야l 넌 할 수 있어 I 눈 딱 감고 한마디 만 해 !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게뭐냐하면.”
그리고 힘겹게 말이 나오려는 찰L농
“와하하l 이거 뭐야?”
“존내비범하다!”
경박한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깨뜨린다 교사 밖의 게시판
쪽이었다 그 앞에서 일련의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
었던 것이다. 지우는 잠시 그쪽을 험악하게 노려보다가 다
시 부드럽게 웃으며 하나를 돌아보았다 지자 저쪽은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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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초인험오증!
이고 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
“지우야, 게시판에 뭔가 붙어 있나 봐. 우리도 가볼래?”
“ ”

버스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주변의 하교생들을 의식했는


지 하나가 정색하며 말을 바꿨던 것이다 그 바람에 닭 쫓던
개꼴이 된 지우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미안, 연애 세포
아직은 네가 깨어날 때가 아닌가 봐
‘제갈대체무슨일때문에저러는거야?'
지우는 투덜거리며 하나를 따라 게시판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확인하다가 점점 두
눈을 크게 떴다.
.저건괄
새하얀 전신 타이즈, 날곬居게 휘날리는 붉은 머플러, 그
리고 코와 입을 드러낸 검은 마스크까지 ! 지우가 꿈속에서
마저 그리워했던 초인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히
어 로다
초인 라이트 세이버! 그가 포스터에 그려져 있었던 것이
다 !
“초인연구회?”
옆에서 들린 하나의 중얼거림에 지우는 간신히 정신을 차
렸다 그리고 다시 포스터를 살펴보자 이번에는 초인의 옆
에 적힌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구의 내용은 초인 연구
회라는 동아리에서 신입 회원들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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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요 며칠간은 동아리 홍보에 열중했었지J
지우는 영웅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 녀석, 혼자서 이런 걸 하고 있었던 건가!’ 그 생각대로
포스터의 초인 연구회는 그의 친구. 허영웅이 만든 동아리
였다 아니 , 정확하게는 중학교 때 그와 지우가 함께 만들었
던 동아리다.
'하지만,고등학교에올라오고나서는해체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는 두 번 다시 활동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영웅은 계속 혼자서 동아리를 꾸려오고 있다 지
우 자신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확신하며 포기하지 않았던
것 이 다
“망할자식.”
지우는 주먹을 움켜쥐며 다시 포스터의 라이트 세이버를
바라보았다 하고많은 초인들 중 하필 저 초인을 그렸다는
것부터가 지우 지신을 도발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신입 부
원을 모집할 거라면 최근 유행하는 초인을 그리는 게 낫지 ,
3년이나 지난 초인을 그릴 필요가 없다 아마 이 중에서는
절반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저 동아리, 그 괴짜가 운영하는 곳이지? 초인빠라서 이
름까지 영웅이라고 개명한?”
“그런 덕후가 운영하는 곳을 누가 들어 가냐?”
“누가 오덕 아니랄까 봐 그려놓은 초인까지 씹덕이네 저
거 뭐 하는 초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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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초인협오증!
“뭐였더라 라이트.뭐였는데 하여간 엄청 오래된 초
인일 걸?”
예상대로였다 예상대로 이 자리의 누구도 라이트 세이버
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들 초인, 초인하며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그들을 위해 희생했던' 초인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마치 유행이 지나 헌옷처럼 잊어버리고 말았어 l
“지우야?”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우는 화가 났다 치미는 분
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멋대로 떠드는 남
학생들에게로 걸어갔다 뒤에서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도 이
미 그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야, 우리 이거 찢어버릴래?”
“뭐?왜?”
“재밌을 것 같잖아 그 덕후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우리가 한 거 알아도 덕후 주제에 따질 배짱이나
있겠냐 저 혼자 찌질 거리고 말겠지”
“하하 그러다 정말 우는 거 아닌지 몰라”
그렇게 웃으며 남학생들이 포스터에 손을 가져갔다 지우
는 그 중 한 명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
리고는 퍽 I 미처 남학생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
을 후려 친다.
“뭐,뭐야?''
“너 이 새끼, 무슨 짓이야?”

70
남학생들은 쓰러진 친구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그런 그들
에게 지우는 안경을 벗으며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너희가 씹던 덕후가 내 친구다 불만 있냐?”
“이런개병!”
“어디서같잖은게....!’'
열 받은 남학생들은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다 그에 맞서
지우도 물러서지 않고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결과는 뻔
했다 지우는 흔자, 상대는 다섯 애초부터 무모한 싸움이었
다.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꺅!지우야!”
하나는 무참하게 짓밟히는 지우의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곧 몸을 돌려 교무실로 달려갔
다.

철컹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였다 지우는


열쇠로 문을 열고 조심스레 현관으로 들어갔다 문 밖에서
부터 조용하다 싶더니, 어두운 거실이 그를 반겨주고 있었

.다들벌써지는건가?,
이상한 일이네 이렇게나 일짝 지우는 의아해하면서
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7信들에게 엉망이 된 자신의 모
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제대로 얼굴을 보지는

71

제 2장 초인혐오증!
못했지만 다섯 명에게 돌아가며 맞았으니 아마 상당히 볼만
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미쳤지무슨생각으로싸움을걸었던거야?’
지우는 힘겹게 신발을 벗으며 한탄했다 그래도 이 정도
에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하나가 선생
님을 불러오지 않았더라면 더 심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대
신 그만큼 선생님한테 혼났으니 피장파장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월요일에는하나한테고맙다고해야겠네'
지우는 부엌에 도시락 가방을 갖다놓고, 발소리를 죽인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잠그자 비로소 잊고 있
던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그대로 침대에
쓰러뜨렸다 푹신한 쿠션의 느낌에 그대로 침대 속으로 빨
려 들어갈 것 같다
“아야야”
지우는 신음하며 얼굴을 감쌌다 광대뼈가 시큰거리는 게
내일이면 붓기가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이대로 잘게 아
니라 계란 미사지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손에 뭔가가 잡혀왔다. 침대 머리맡에 둔
만화책이었다 지우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에 놓인 전기스탠드를 켜서 만
화책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월간초인동맹1998년7월호.’
3년 전 그는 수많은 초인 관련 물품들을 버렸지만, 이 책

•'T
'슨
만큼은 끝까지 버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만화책의 제목 밑
에 적힌 문구가 가르쳐주고 있었다
F위대한 구조자, 라이트 세이버 붕괴의 참극 속에서도 그
의 구조는 멈추지 않는다!J
지우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그러
자 나오는 것은 만화체로 그려진 초인 라이트 세이버의 활
약상이었다 으레 초인 코믹컬라이즈가 그렇듯 월간 초인동
맹 역시 실제로 있었던 초인의 일을 각색해서 만화로 만들
었는데, 1998년 7월호에 실린 이야기는 당시 유명했던 S모
백화점 붕괴 사고를 다루고 있었다
붕괴하는 백화점 그 안에 갇힌 어린 남매 둘 그리고 절
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는 라이트 세이버코
그렇다 지우와 은비의 이야기였다 그들 남매가 겪었던
사고가 만화로 그려졌던 것이다!
물론 사건의 딩사지들이 보기에는 실소가 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만화 판의 라이트 세이버는 빛의
검을 시용한다는 설정이었는데, 이는 라이트 세이버(Right
Saver)를 라이트 세이버 (Light Saber)로 착각한 만화가가
실수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편이 반응이 좋아
서 만화 속의 라이트 세이버가 계속 검을 시용하게 되었다
던가 뭐 라던가
“하하”
그런 소소한 차이를 제하고라도 만화에서나 현실에서나

73

제 2장 초인혐오증!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그날그가우리를구해주었기에,'
그 절망의 나락에서 우리를 데리고 나와 주었기에,
‘그랬기에지금의우리가있을수있는거야’
그것은 비단 지우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초인 라이트 세
이버에게 구원받은 여타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그러했다
라이트 세이버의 초인력이 사고를 막아주었기에, 수많은 생
명들을 지켜주었기에, 그랬기에 지금의 사회가 있을 수 있
는 것이다
F저거뭐하는초인이야?J
F하여간 엄청 오래된 초인일 걸J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어땠지? 모두 너무도 쉽게 라이트
세이버를 잊어버렸다 3년 전 자신들을 구해준 초인이 있었
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또 그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버
렸디는 것은 더더욱 알지 못한 채, 그저 해마다 쏟아지는 초
인의 홍수에 열광할 뿐이다
만약 지우 역시 라이트 세이버의 정체를 몰랐더라면 그들
과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죽은 초인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고 새로운 초인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초인따위,정말싫어”
하지만그는알게 되었다
라이트 세이버가 죽은 날 병원의 영안실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초인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

74
가의 소중한 사람이자 연인, 가족일 수도 있다는 것울
F서지응씨가족분되십니까?J
r사후 통보가 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J
F오늘 사망한 조인 라이트 세이버는 서지웅 씨 본인이셨
습니 다니
r당신의아버님은초인이셨습니다J
당신의 아버님은혁
아버님은혁
“아빠”
만화 속의 라이트 세이버에게로 뜨거운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지우는 책에 얼굴을 파묻으며 흐느꼈다 자신의
울음소리가 가족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있는 힘껏 이를 악물
며.

F흔자서 동생을 지켜주었구나. 정말이지 장한데?4

그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아빠였


다 -

75

제 2장 초인혐오증!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 리 !
밤 12시 수원 시 외곽의 한 주유소
“야,이시발것들아I다들손올리고있어!”
“현금어디있어,현금!”
“허튼짓하면당겨버린다!”
주유소의 사장과 직원들은 저마다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들의 앞에는 보기만 해도 살벌한 검은 총구들이 겨누어져
있다 평소대로 근무하던 그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웬
다섯 대의 오토바이가 들이닥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그
저 지나가는 폭주족들이려니 생각했건만, 오토바이에서 내
린 남지들은 다짜고짜 권총을 빼들고 그들을 사무실 안에
몰아넣은 것이다
“이게장난감으로보여?장난감총으로보이냐고!”
“머리에구멍이나봐야정신들차리지!”
“뉴스 봤냐? 요즘은 대한민국에서 총 없는 놈들이 병신이
야!”
오토바이 헬멧을 쓴 강도들이 앳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79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헬멧에 선 코팅이 되어 있어서 얼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많이 쳐줘도 이십대 초반, 어쩌면 그보다 연하일지도 몰랐
다 사장과 직원들은 몸을 떨며 속으로 한탄했다 대체 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걸까 저런 어린놈들까지
총을 들고 설치다니!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갑자기 강도
중 하나가 바짝 총구를 들이대 왔다 그 바람에 직원들은 울
며불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흐흐 이 새끼들 봐 존나 쫄았어”
“총 앞에서 별 수 있냐? 죽기 싫음 알아서들 기어야지.”
“이렇게 쉬울 줄 알았음 은행이나 털 걸 그랬다 쫀쫀하게
주유소가 뭐냐, 주유소가?”
강도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졌다 그런 동
료의 모습에 리더 격인 강도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동료
들이기는 했지만 정말 머리가 빈 놈들이었던 것이다. o得
런 기술도 없는 주제에 권총 하나만 들고 어떻게 은행을 턴
단 말인가? 당연히 인적도 드물고 현금도 많은 주유소 쪽이
몇 배는 낫지 않은가
‘이런녀석들의뭘보고리벨리온에서접촉해온건지’
리더는 자신의 수중에 들린 권총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그는 아직도 이 권총을 리벨리온에서
보내주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리벨
리온이 무엇이었던가 반(夙) 초인주의자들 초인동맹에 대
항하는 국제적인 범죄자들의 연맹이었다 그 구성원은 단순

80
히 운동권부터 시작해서 도둑, 강도, 살인자, 조직 폭력배,
테러리스트 심지어는 초인이면서 그 힘을 범죄에 이용하는
괴인들까지 포함된다
그런 무시무시한 조직이 왜 자신들 같은 동네 양아치들을
지원해준단 말인가? 그것도 무슨 이득이 생긴다고? 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 그들은 한 번도 리벨리온의
실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권총이 필요 하느냐’ 라는 발
신불명의 전화를 받은 게 전부였다
‘수입 일부를 바치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지
시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이토록 찝찝한 지원이 또 어디 있을까 리더는 권총에서
눈을 떼며 A碍실 밖을 살펴보았다 오늘 아침의 뉴스로 볼
때 리벨리온은 그저 권총만 제공해줄 뿐, 그 이상은 개입하
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한시라도 빨리 볼일을 마치고 여기를 떠야 한다
“다 챙겼으면 얼른들 나가!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
“나,참.뭘그렇게서둘러?”
‘컵먹었냐?쫄쫄이들(초인의은어)뜰까봐?”
“어차피 리벨리온이 뒤를봐주는데 뭔 걱정이야.”
리더는 태평한 동료의 태도에 열불이 터졌다 병신 새끼
들! 뒤를 봐주기는 누가 봐준다고...! 그는 수중의 권총을
들어 올려서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쾅l

81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꺄악!”
“아아악!”
갑작스런 발포에 사장과 직원들이 비명을 지른다 강도들
역시 깜짝 놀라서 리더를 돌아보았다 리더는 그들에게 총
울 겨누며 소리쳤다.
“그래 쫄쫄이들 뜰까봐 겁먹었다 그러니 내 말대로 당장
나가! 그 새끼들한테 우리가 가진 총알이 통할 것 같아!”
“아, 알았어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
기가 죽은 강도들은 돈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리
더는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면서 사장과 직원들에게 으름장
을 놓았다
“허튼짓 하면 기름 탱크 쏴버린다 다 날아가고 싶지 않으
면 얌전히 있어 !”
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시끄러운 머플러 소리가 그
를 반겨주었다 리더는 디들 오토바이에 탄 것을 확인하며
자신도 서둘러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다들 약속 장소 잊지 않았겠지! 삼십 분 뒤에 거기서 보
는 거다! 알았냐!”
부아아앙! 대답 대신 엔진 음이 크게 울려 퍼진다. 리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오토바이에도 시동을 켰다 좋아
출발이 다 !
팍-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주유소를 밝혀주던

82
전깃불이 일제히 꺼진 것이다. 그 바람에 성급히 출발하려
던 강도 하나가 그대로 오토바이 채 넘어지고 말았다 리더
와 강도들은 생각지도 못한 정전에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가뜩이나 시외에서 떨어진 주유소다 보니 전기가
나간 것만으로도 암흑이 따로 없었다
“뭐,뭐야?무슨일이지?”
(사람들의 피와 땀을 갈취하는 너희들 그 행동 부끄러운
줄 알라!)
순간, 어둠 속에서 웬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
성기로 증폭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낮게 깔리
는 배경 음! 바이올린의 가장 낮은 현인 G선으로 연주하는
클래식 이 었다
그것을 듣는 순간 이 자리의 모두가 사색이 되었다 클래
식에 문외한인 그들일지라도 이 선율만큼은 수십 번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이 곡을 바흐가 작곡했다는 것도, 또 제목
이 ‘G선상의 아리아 라는 것도 몰랐지만, 적어도 현재의 대
한민국에서 이 곡이 ‘어느 때에 쓰이는지' 만큼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징발키리의주제가다!”
리더의 비명과 동시에 어둠을 밝히는 스포트라이트들! 그
빛줄기들이 길가의 한 가로등 위로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옅은 핑크색의 타이즈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마스크는 입 부분을 제외한 얼굴 전

83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부를 가린 헬름(Helm) 형태였는데, 그 귓가에는 작은 날개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바로 라이징 발키리였다 최근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드는 인기 절정의 초인!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
는 초인 넘버 원! 그녀는 자신을 경악에 찬 눈으로 올려다
보는 강도들에 게 손가락을 가리 켰다
(너희의 악행, 내가 접수했다 이제부터는 징벌의 시간이
다!)
“어째서......!어떻게네가......!”
리더는 신음하다가 곧 주유소 저편에서 번쩍이는 불빛들
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카메라의 플래시 빛이었다 언제부터
인지 몰라도 주유소 주위에 각종 취재진이 몰려와 있었던
것 이 다
말도 안 돼 언제 저런 인파가 모여든 거지? 전혀 눈치 채
지 못했는데! 그렇게 할 말을 잊고 있는데, 라이징 발키리
의 앞쪽에서 뭔가가 보여 왔다. 주유소의 조명 광고판이었
다 자세히 살펴보니 거기에서 한글로 ‘넌 누구냐?’ 라는 대
사가 좌우로 지나가고 있었다.
‘혹시 저 말을 우리더러 하라는 건가?'
리더는 얼빠진 표정으로 무의식중에 전광판의 대시를 읊
었 다 .

“넌....넌누구냐?”
(악당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는 없다!)

84
등장 대사 완료! 순간 라이징 발키리는 기다렸디는 듯 가
로등을 박찼다 그러자 놀리운 일이 벌어졌다 가로등에서
부터 주유소까지 20미터. 그 먼 거리를 그녀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가로지른 것이다
“-l',

하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그다음부터였다 주유소의 녹


색 페인트 바닥에 착지하려는 찰나, 라이징 발키리의 양 허
벅지로부터 프릴 형상을 한 반투명의 광채가 나타났다 초
인력의 현현이라 할 수 있는 스티그마(Stigma)였다 그 스
티그마가 살아있는 것처럼 펄럭이자, 라이징 발키리의 몸이
다시 한 번 날아오른다
“저,저!’.
신음하는 강도들을 뛰어넘으며, 그녀는 그들의 한가운데
로 내려섰다 그 바람에 발포를 외치려던 리더가 머뭇거렸
다 이 상태에서 총을 쐈다간 서로 쏘게 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잠깐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
했 다
(선풍(旋)폐)一)
스티그마를 응축시키며 자세를 낮추는 라이징 발키라 그
바이저 밑으로 보이는 입가가 날카로운 미소를 흘린다
(一라이징 킥!)
콰콰콰쾅!
호쾌한 기술명과 함께 그녀의 몸이 제자리에서 스핀 했

85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다 그러자 스티그마에 감긴 발차기가 팽이처럼 사방을 후
려친다 “으악!” 거기에 휩쓸린 강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오
토바이 채나가 떨어졌다 한 대당 120킬로그램이 넘는
CBRI25를 차올리다니 이건 도저히 사람의 힘이 아니다
“으으으l”

이런것이초인인가!
리더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몸을 떨었다 TV에서 초인의
활약상을 지주 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초인을 보니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라이징 발키
리는 겁에 질린 강도들을 내려다보다가 앞에서의 마이크 음
과 달리 실제 육성 (肉聲)으로 말했다.
“이걸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알았겠지? 그냥 이대로
항복하는 게 어때?”
(무, 무슨 소리에요? 아직 액션 시퀀스(Sequence)의 반
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때 예의 마이크 음이 발키리의 마스크에서 터져 나왔
다 앞에서처럼 크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강도들에게는 충분
히 들리는 음량이었다 덕분에 그녀를 바라보던 강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사람에게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흘
러 나왔어 ?
라이징 발키리는 그런 강도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마스크
의 목소리와 얘기를 나눴다
.필살기는 보여줬으니 됐잖아 어차피 TV에는 하이라이

86
트만 나올 건데 편집 할 수고도 줄고 좋지 , 뭐”
(그랬다간 내 대사도 덩달아 줄잖아요! 가뜩이나 쥐꼬리
만 한 성우 비가 더 줄어든다고요!)
“대신 이번 주는출동이 많았잖아.”
(정말! 지꾸 스탠드 플레이할래요? 이러다 매니저 언니한
테 걸리면.. 아, 매니저 언니 화났다 엄청 화났어요!)
“걱정마그쪽은내7F,
라이징 발키리는 말을 멈췄다 강도들 중 겁에 질린 한 명
이 그녀에게 총을 겨눈 것이다
“죽어, 이 괴물!”
타타타탕!
네 번의 총성이 울려 퍼지며 라이징 발키리의 모습이 초
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리더와 강도들은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죽었나? 죽었겠지? 이렇게 가까
운 거리에서 맞았잖아? 무사할 리 없어 !
‘그,그래도모르니확인사살을.....'
리더는 마른 침을 삼키며 걷혀나가는 초연에 총구를 겨눴
다 그리고 초인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방아쇠를 당기려는
데 一
턱!
그보다 한 발 먼저 총구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설마! 말
도 안 돼 !
(괜찮아요? 총 맞았어요? 살아있어요?)

87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카메라로다봤잖아?당연히살아있지”
손의 주인은 예상대로 라이징 발키리였다 그녀는 바이저
밑의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총구를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그러자 발밑으로 찌그러진 네 개
의 쇠붙이들이 떨어진다 앞에서 강도가 쏜 총알들이었다
그 총알 전부가 그녀의 몸을 관통하기는커녕 입고 있던 타
이즈조차 뚫지 못한 것이다
“혜진아, 매니저 언니한테 말해”
라이징 발키리는 사색이 된 리더를 노려보며 한쪽 입 꼬
리를 올렸다
“지금부터 액션시퀀스넘치도록보여주겠다고!”
콰직l
그녀의 손에 잡힌 총구가 썩은 니무 조각처럼 으스러진
다 그 광경에 리더는 혼비백산해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은 조금도 뒤로 나가지 않았다 라이징 발키
리가 그의 목을 붙잡아 공중에 들어 올린 것이다
“으헉!”
미처 몸부림을 치기도 전에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렇게
리더를 장난감처럼 던진 라이징 발키리는 쏘아지듯 다른 강
도들에게 돌진했다 강도들은 당황하며 총을 겨눴지만, 두
번 씩 이 나 맞아줄 그녀 가 아니 었다
탕!
아무도 없는 시멘트 바닥에 탄흔이 새겨진다 라이징 발

88
키리가 강도의 손목을 잡아 총구를 빗나가게 한 것이다
‘하앗!” 동시에 그녀는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강도를 옆에
있는 강도에게로 집어던졌다 쩍 ! 그러자 강도들이 쓴 헬멧
과 헬멧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긴다
“이것으로세명째!”
“으으! 오지 마! 오지 마!”
라이징 발키리가 막 네 번째 강도를 때려눕히는데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유기 쪽이었다 그 앞에서 마지
막 강도가 연료유 미터에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오면 이대로쏴버릴 거야! 엉? 다날려버릴 거라고!”
“맥날쏴봐라그게터지나”
강도의 협박에 라이징 발키리가 한심하다는 듯 땅바닥을
가리 켰다
“기름은지하저장탱크에 있다고”
“뭐?”
강도가 화들짝 놀라며 권총을 바닥으로 가리켰다 늦었
어!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라이징 발키리가 강도의
코앞으로 쇄도한다 그녀는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강도의
혤멧에 극점치기를 꽂아 넣었다
퍼엉!
주먹으로 때렸는데 나오는 소리는 폭음이었다 그 소리에
걸맞게 강도는 주유소를 가로질러 A悰실의 유리창까지 날
아간다 와장창! 박살니는 유리창 그것을 바라보며 라이징

89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발키 리 는 한숨을 쉬 었다.
‘또매니저언니한테깨지겠네'
부우우웅!

그때 라이징 발키리의 뒤에서 요란한 머플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본 곳에는 맨 처음에 쓰러뜨렸다고 생각한 리
더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켜고 있었다 달아날 셈인가!
(놓치면안돼요!)
“알고있어!”
라이징 발키리는 고함을 지르며 있는 힘껏 제자리에서 도
약했다 그러자 그녀의 양 허벅지에서 예의 스티그마가 나
타나며 그 몸을 주유소 캐노피(Canopy) 끝까지 상승시킨
다 그녀의 초인력은 상승하는 초인력! 스티그마가 전개될
시에는 평소의 수배로 뛰어오를 수 있는 것이다
(질풍(快폐)!)
마이크에서 나오는 성우의 목소리에 맞춰 스티그마가 변
화했다 지금까지 프릴 같았던 광채가 마치 접었던 날개를
펴는 것처럼 좌우로 펼쳐진다 그 모양이 꼭 영락없는 여신
의 날개 같았기에 그녀의 초인명은 발키리였다 상승하는
초인력을 가진 여신이라 해서 라이징 발키리 !
(라이징력킥I)
투화악!
기술명이 끝나기 무섭게 허벅지의 날개가 점화되었다. 그
반동으로 생기는 무시무시한 추진력! 라이징 발키리는 하

90
나의 빛이 되어 도망치는 리더의 오토바이에 내리꽂혔다
촤아아악!
섬광과도 같은 파괴 앞에 오토바이는 소리 없이 양단되었
다 대신 들려온 것은 땅바닥에 착지하고서 수 미터를 끌고
간 라이징 발키리의 부츠 소리였다 그녀는 라이징 킥 적중
시 낚아챘던 리더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숙였던 몸을 일으
켰다 그리고 시간을 재다가 양단이 된 오토바이 쪽에서 등
을 돌렸다

(내 초인력 앞에 꿰뚫리지 않는 것은 없다!)


콰아아앙一!
성우의 피니시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오토바이가 폭발한다 그 폭발의 여파에 라이징 발키리의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고고한 자태를 만들어냈다 ‘아,
등판 얼얼해’ 그녀는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스티그미를 유지했다 아직 취재진들의 촬영이 끝
나지않았기에함부로자리를뜰수없었다 1,
피곤해이제그만좀가자.
(아,큐사인떨어졌다이제돌아오셔도돼요)' I
성우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라이징 발키리는 단숨에
날o俉랐다 그녀는 취재진들의 눈을 피해 고가 도로 위를
가로지르며 한탄했다 이것으로 오늘치 로케이션도 끝나는
건 7 F
(수고하셨어요, 은비 씨!)

92
“그래 혜진이 너도수고했고”
라이징 발키리는 기운 없이 답하며 마스크의 바이저를 해
제했다 그러자 드러니는 앳된 소녀의 얼굴 그렇게 초인으
로서의 일과를 마친 그녀는 언제나처럼 지우의 동생, 서은
비로 돌아갔다

‘Ybu are great! RV!”


합류 지점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스텝들이 은비를 반겨주
었다 가장 먼저 뛰쳐나온 것은 팀 발키리의 음향과 특수효
과를 담당하는 스티븐 레이미였다 이십대 후반의 그는 할
리우드 SFX의 실력자이자 소문 난 초인 마니아였는데, 그
런 그가 동양의 슈퍼 걸에게 반해 그녀의 스텝을 자청하게
되었다는 것은 업계에서도 이미 유명한 얘기였다
“고마워, 스티브 오늘의 라이징 킥도 최고였어”
‘Ybd re welcomel 그래도 굳이 사례를 하고 싶다면 말리

지 않겠어 Deep kiss 한 번으로 넘 어가 주지 !”


은비는 달려드는 스티븐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초인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그녀가 입고 있던 초인 슈츠
가 거짓말처럼 형체를 탈바꿈한다 슈츠의 재질로 사용된
형상기억합금(SMA), 아다만티움(Adamantium)의 특징
이었다 이 금속은 초인력을 물리력과 내구력으로 전환해주
는 것 외에도 초인력에 반응해 ‘원래의 형상 을 기억해내는
형상기 억 효과(Shape memory efTect)까지 가지고 있었다

93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Oh, Myholygod! 나의 RV가초.l”
초인력이 사라지자 마스크는 은비의 양쪽 머리띠로, 슈츠
는 아다만티움이 기억하는 한성고의 교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스티브는 대번에 달려들던 것을 멈추며 울상이 되었
다 그는 초인 그 자체에만 흥미가 있을 뿐, 코스튬이 없는
소녀에게는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은비는 실망하는 스티븐을 내버려두고 다른 스텝들에게
도 인사했다
“다들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무슨 현장의 은비가가장고생했지.”
팀 발키리의 무술트레이너 정우석.
“이번에 새로 맞춘 교복형 슈츠는 어때? 저번보다 좀 슬
림 (SIim)하게 만들어봤는데 움직 이는데 지장은 없지?”
팀 발키리의 코디네이터 차유미
“제발 립싱크 좀 맞춰줘요 화면에서 멀리 잡히기에 망정
이지 클로즈업 이 었으면 다 들통 났을 거 라고요”
마지막으로 팀 발키리의 성우 겸 오퍼레이터 여혜진 이
상 네 명이 전부 은비를 보조하는 스텝들이었다. 이 중 어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초인 라이징 발키리는 존재할 수 없다
거기다 모두 경력으로 보나 재능으로 보나 데뷔 3년 차의
초인에게는 과분한 인원들이었다 이는 팀 발키리의 프로덕

션, 빅토리(Victory)가 그만큼 은비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 었다.

94
“그런데 매니저 언니는?”
은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정작 팀의 리더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질문에 갑자기 멤버들의 표정
이 어두워진다 그나마 일행 중 제일 막내인 혜진이가 은비
의 핸드백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부디 살아서 돌아오세요”
“나, 참 알았어 갔다올게”
은비는 핸드백을 메며 차량으로 향했다 무슨 말을 들을
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더욱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
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 그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차량 뒤편으로 돌아갔다.
“왔냐”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상대 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은
비는 자욱한 담배 연기에 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정장 차림을 한 팀 발키리의 매니저 , 하지연이 차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은비는 그 발밑에 떨어진 꽁
초들의 수를 세어보며 혀를 찼다
“그새를 못 참고 또 한 갑을 다 태웠어요? 그러다 위암 걸
려 요 ”
“시끄러워 화병으로 뒈지든 위암으로 뒈지든 어차피 그
게 그거 아냐 네가 언제부터 날 걱정했다고”
“언니도 참 걱정하는 게 당연하죠 제 하나 뿐인 매니저
인 데 .”

95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매니저? 내가 네 매니저 맞냐? 정말로?”
그렇게 말하던 지연은 갑자기 피우던 담배를 이빨로 분질
렀다 그러더니 뒤이어 차 문을 있는 힘껏 후려치며 목에 핏
대를 올린다.
“내 말은 처 듣지도 않으면서 매니저는 무슨 망할 놈의 매
니 저 야- ! '’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그들에게서 떨어진 스텝들까지
도 귀가 멍해진다 스티븐은 귀를 들어막으며 감탄 아닌 감
탄을 터뜨렸다
‘Wow! Jesus Christ! She' s monster!”
“셧업,오타쿠!”
지연은 일갈하며 다시 은비를 돌아보았다 그 칼날 같은
시선에 은비는 어설프게 웃으며 사과했다
“에이~ 미안해요 중간에 투항 제의한 것 땜에 그러는 거
죠? 그게 다 예정보다 대기 시간이 늘어나서 그랬어요 다
들 밤늦게까지 고생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일찍 끝내보려
고. . .. . .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는구나 리벨리온에서 빼낸 정보


가 틀리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사건 발생 서너 시간 늦
는 것쯤은 일상다반사잖아!”
“그래서 결과적으로속행했잖아요”
“그래 속행했지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주먹질까
지 해대면서 말이야”

96
“하지만, 기름 탱크에 총을 들이댔다고요? 사정 뵈줄 틈
이 어디 있어요? 단박에 때려눕혀야지”
끄응 지연은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은비의 모습에 낮게
신음했다. 곧 죽어도 자기가 잘못했다고는 안 하지
“네 기믹(Gimmick)이 격투 계면 말도 안 해 너 마법 계
잖아? 마법 소녀라고! 그런 마법 소녀여야 할 라이징 발키
리가 우악스럽게 주먹질을 해대면 어떻게 되겠냐? 라이징
킥이야 우연하게 호응이 좋아서 피니시로 결정했다지만 손
은 안 돼 . 절대로 안 돼 ! 엘레강스 한 소녀 이미지가 사라진
다고 r,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날더러 어떻게 검
거하라는 거 예요?”
“인마, 기획사 생각도 해 줘야지l 오늘이야 뭐...... 상황
이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래도 다음부터 주
의해! 신경 쓰라고!’’
“알았어요 앞으로 애드리브는자제할게요”
지연은 그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

“정말 지친다, 지쳐. 대체 네 오빠는 어떻게 이런 황소고
집을 다 받아주는 거냐? 아니, 그 전에 네가 이런 녀석이라
는 걸 알고나 있는 거야?'.
“가, 갑자기 여기서 오빠가 왜 나와요?”
은비는 지금까지의 뻔뻔함이 무색하게 당황해서 소리쳤

97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
다 지연은 그녀가 오빠 얘기만 나오면 약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소를 머금었다
“솔직히 말해 봐 너 네 오빠 앞에서 내숭 떨지? 얌전한
척 , 순진한 척은 다 하고 있지?”
“그거야.☎龜 당연하죠 언니라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안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겠어요?”
“안 좋은 모습이란 자각은 있었냐? 거기다 대놓고 오삐를
좋아한다는 것도 참 , , . M ”
“왜요 뭐 문제 될 것 있어요?”
은비는 얼굴을 붉히며 고집스럽게 팔짱을 꼈다 그 모습
에 지연은 뭐라고 하기도 그래서 손을 저었다 담당 초인의
브라더 콤플렉스를 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것이

‘뭐, 덕분에 스캔들 한 번 일으키지 않으니 잘 된 건가. 괜
히 남자 초인들과 연애하는 것보다는 자기 오빠를 좋아하는
게 수 배는 낫지 .,
근친 쪽이 약간 걸리지만 그렇게 막가파는 아닐 테
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지연은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마치 그녀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은비가 무시무시하게 눈
을 부라린 것이다
“지금뭔가이상한생각했죠?”
“아,아니,그냥사이좋은남매구나해서~”
“흐응.”

98
은비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어쨌든 그 사이좋은 남매가 이번 주 토요일 날 데이트를
한답니다. 그러니 내일은 일 못해요. 스케줄 비워두세요”
“뭐? 야! 내일은 양재동에서 이벤트 행사 있어!”
“애초에 그 건은 거절했잖아요 미팅에서도 라이징 발키
리의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 결정 났었고 뭣보다 전 이번
주 의무 시간도 다 채웠다고요? 주말은 반드시 쉴 거예요!”
의무 시간 그것은 동맹에서 정해준 초인의 활동 시간이
다 동맹에 소속된 초인은 1주일에 최소한 30시간을 의무적
으로 일하지 않으면 초인 면허증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
렇게 되면 초인은 당연히 라이센스를 재발급할 때까지 활동
을 중단해야 하고, 이는 프로덕션에게 막대한 손해로 작용
하게 된다 반면 의무 시간을 다 채운 초인은 자유의사로 휴
식을 취 할 권리가 있었으나
‘어차피추가수당을준다고해도일할녀석이아니지'
지연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나도 탐탁지 않았는데 잘 됐네 그날은 팀
크래쉬의 일정이 비니까 이벤트 행사는 그쪽에 맡기자고”
“팀 크래쉬....... 크래쉬 맨한테요?”
그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은비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
을 했다 크래쉬 맨은 그녀의 라이징 발키리와 함께 프로덕
션 빅토리의 수익을 양분하는 간판 초인이었다 인지도 또
한 높았기에 초인 랭크는 A 마이너스, 그녀와는 콘셉트가

99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달라서 구제 활동보다는 연예 활동에 치중하는 초인이다
그런 동료의 얘기를 하는데 왜 인상을 찡그리는 거지? 지
연은 영문을 몰라 물었다
‘봬?그녀석이랑뭐문제있어?”
“아뇨,그게”
그인간이자꾸만집적거려서-
은비는 그렇게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얘기하기도 한심했
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싫었던 것이다 프로덕션과의
계약에 의하면 같은 소속사의 초인 남녀는 소속사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교제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스캔들은
서로 이미지만 안 좋게 할뿐더러 각 팬들 사이에도 불필요
한 디툼을 유발하는 것이다 교제가 허락될 수가 있다면, 서
로 팬들이 인정하고 소속사에서도 그것을 허락해줄 때 그
때만이 연애하는 초인이란 콘셉트로 공개적으로 사귈 수 있
었다 그런데 이런 소속사의 방침을 무시하고 크래쉬 맨이
끈덕지게 대시를 해오니 은비로서는 민폐도 이만저만이 아
니 다
지연은 그런 사정을 대충 눈치 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말했다.
“어쨌든 오빠랑 데이트한다면 잘 됐네 이거 줄 테니까 요
긴하게 써먹어라”
그러면서 건네준 것은 웬 티켓 두 장이었다 은비는 그것
을 받아들며 대번에 화색이 되었다

1 00
“우와 웬일이에요, 언니? 서른 살 노처녀가 언제부터 남
의 데이트를 도와줬다고~”
“스물아홉이야!”
“어디 보자 영화 티켓인가? 무슨 영화에요?”
말하던 도중 은비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졌다. 티켓은 그
녀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장소의 입장권이었던 것이다 더
구나 그 장소란 곳도 하필이면코
“여, 여기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오빠랑 같
이 !”
“왜?오빠가초인혐오증이라서?”
그 반문에 은비는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가
장 좋아하는 오빠는 가장 싫어하는 것이 초인 그리고 그 초
인이 바로 자신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상황이란 말
인가? 은비는 오빠에게 자신이 초인이라는 것도 밝히지 못
하는 것이다.
‘어차피동맹의조약상밝힐수도없지만'
하지만 이대로는 초인이라는 신분이 은비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작용한다. 초인으로서나 민간인으로서나, 양쪽에게
마이너스만 되겠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연은 더욱 은
비가 이 티켓을 시용해주길 바랐다
“때론그런처방도좋지않아?”
찰칵 지연은 라이터를 켜서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
다. 그리고는 자신을 돌아보는 은비에게 길게 담배 연기를

101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내 뿜 었다
“피하기만 한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 언제까지고 초인에
대해 쉬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뭣보다 너, 이대로는 스스로한테 떳떳해지지 못할 거야


그래도 좋아? 사랑하는 오빠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은 거 아
니 었어 ?”
“언나.”
은비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불렀다 지연은 그 시선
에 멋쩍어하며 고개를 돌렸다 자식, 이 정도에 감동하기는
제법 귀여운 구석도 있잖아?
“제발 담배 연기 좀 제 쪽으로 불지 마세요. 눈 매워죽겠
네 간접흡연이 얼마나 몸에 나쁜지 알아요?”
‘귀엽기는개뿔,
지연은 이를 갈며 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분질렀다 덕
분에 그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은비가 수중의 티켓을 슬
그머니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앞에서의 불평은
그녀 니름대로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다음날아침
은비는 여느 때와 디름없이 아침 식人튼 준비하고 있었
다 어젯밤 집으로 돌이은 시각은 새벽 3시. 덕분에 채 4시
간도 잠자지 못했기에 지꾸만 히품이 나왔다 그나마 오늘

102
이 노는 토요일이기에 망정이지 학교에 가는 날이었으면 십
중팔구 수업 시간에 졸았을 것이다
그녀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잠을 깰 겸 TV를 틀었다
TV에서는 막 어젯밤의 주유소 강도 사건이 뉴스로 보도되
고 있었다
“저기서 각이 안사네 역시 동작을 크게 할 걸 그랬나?'’
은비는 화면 상의 라이징 발키리를 흉내 내며 나름대로
분석에 들어갔다 남들에게는 단순히 초인 뉴스일지 몰라도
그녀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체크할 수 있는 영상이었다. 그
랬기에 꼼꼼히 모니터링하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
는 것이다.
(질풍! 라이징-킥!)
“여기서도몸을더 들며 라이징눼”
그렇게 외치며 다리를 뻗으려는 찰나, 거실 안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인가! 은비는 화들짝 놀라며
번개같이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그리고 태연한 척 옷매무
새를 정리하며 단아한 미소를 머금는다
“오빠, 일어났어?”
그러나 상대를 확인하는 순간 말꼬리가 늘어졌다 거실로
나오는 이는 뜻밖에도 엄마인 윤미라였다 평소라면 깨워도
안 일어날 사람이 어떻게 이 꼭두새벽에 일어난 것일까?(어
제는 예외) 거기다 옷도 평소의 파자마 차림이 아닌 회색
정장 차림 ! 무엇보다 화장까지 끝낸 그 얼굴에서는 더는 잠

103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
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 엄마?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은비는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다 그런 딸의 반응에
미 라는 도도한 표정 을 유지 하다7F
“헤헤 놀랐지? 오늘은 마감 뒤풀이 겸 회사에서 근무하
는 날이야.”
코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엄마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
은비는 안도해서인지 낙담해서인지 하여간 크게 한 숨을 쉬
었다. 대체 다 큰 어른 웃음이 헤헤가 뭐야, 헤헤가?
“어, 벌써 일어나셨어요?”
그때 그들의 뒤편에서 교복을 입은 지우가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엄마의 차림새에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안경 너머의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미라는 그런 아들에게도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소파에 한쪽 발을 올리고 도도하게 물었다
“아들, 이 엄마어때?',
“뭔가웃겨요”
그 무심한 대답이 곬佺터였다 미라는 대번에 울상이 되
어 현관으로 달려갔다
“지우 바보바보l 엄미는 나름대로 자신 있었는데!”
그리고는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린
다 그런 엄마의 퇴장에 자식들은 망연자실해진 얼굴로 서
로 돌아보았다.

우리 집,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104
“야, 내 얼굴 어디 이상하지 않냐?”
그때 지우가 은비의 시선을 피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얼굴? 얼굴이 왜?”
“.“..아냐o佇렇지도않으면됐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능厚 만에 이렇게 나을
수 있는 건가?' 은비는 싱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오빠, 오늘 약속한 거 있잖아?”
“약속?무슨약속?”
지우는 식탁에 앉아 무심코 반문하다가 어깨를 떨었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오한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은비의 날카로워진 시선 때문임을 깨닫자 재빨리 고개를 끄
덕 였다
“아, 아아 그거? 난 또 뭐라고! 오늘 놀러 가기로 약속했
었지 ?”

“놀러 가는 게 아니라 데이트”


“......어쨌든 간에. 그래. 오늘 뭐할 건지 생각은 해놨어?”
지우의 질문에 은비는 치마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어젯밤 매니저에게서 받은 티켓 두 장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여주려다 갑자기 무슨 생각에선지 등 뒤로
감 췄 다
“오빠, 내가 어디에 가자고 하던 함께 기줄 거지?”
“뭐?”

105

제 3장 초인 라이징 발키리!
“내 입학선물이잖아 반드시 가주기야 알았지?”
이게 또 무슨 꿍꿍이로.. 지우는 미심쩍은 눈으로 은
비를 노려보다가, 그 가련한 척 애쓰는 꼴이 보기 싫어서 승
낙했다
“알았으니까 얼른 얘기해 대체 어딜 가려고 그러는 거
야?”
“바로여기야”
은비는 기다렸다는 듯 티켓을 꺼내 보였다 그것을 바라
보던 지우의 눈 꼬리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뭐야 지금 나더
러 여기를 가라는 건가? 진심으로?
“서울초인월드?”

1 06
제 4장

초 인 월 듸
F초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초인창작의 즐거움을 나
누고 초인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초인 마니아들의 특
별한 축제J
그 소개문에서 알 수 있듯 서울 초인 월드는 서울시에서
행해지는 아마추어 초인 창작행사였다 1995년 5월에 시작
된 이 행사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직접 만든 초인창작품을
전시 와 판매하는 동아리 판매전과 초인 캐릭터로 분장한
코스튬 플레이(Costume PIay), 초인들의 주제가나 앨범
곡을 열창하는 초인노래자랑, 프로 초인작가나 프로 성우를
만날 수 있는 특별 이벤트 등, 초인에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
들을 개 최 한다
한 마디로 초인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싫을
수 없는 행사였다.
“오빠, 기분 좀 풀어 모처럼 온 서초잖아”
은비는 자신의 옆에서 시종일관 인상을 쓰는 오빠에게 말
했다. 지금 그들은 제65회 서울 초인 월드가 개최되는 양재

109

제 4장 초인월드!
역 At센터에 와 있었다 지우는 센터 밖에서부터 한창 촬영
중인 코스튬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누가 억지로 데려오래 하고많은 장소들 중 왜 하
필 여기야?”
“중학교 이후 3년 만이잖아 옛 생각도 나고 좋지 않아?”
“하나도안좋아”
지우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안경을 쓸어 올렸다 하지만
싫어도 그 눈은 자꾸만 주위의 코스튬 플레이어들에게 힝하
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은비는 속으로 웃으면서 겉으로
는 아닌 척 너스레를 떨었다
“오빠, 저쪽에 있는 레인맨 코스프레 어때? 꽤 느낌 좋지
않아?”
“엉?뭐,고증은그럭저럭단자.'’
“단지?”
“등장 포즈가 들렸잖아 레인맨은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
을 위로 올린다고. 거기다 엄지와 중지를 펴는 것도 잊었

“듣고 보니 그러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구나”


“그것뿐이면 말도 안 해 저쪽의 라이징 발키리 좀 봐 단
지 예쁜 척만 하고 있잖아.”
“그, 그래? 예쁜 척하는 게 뭐 어때서?”
“명색이 초투사잖아. 훨씬 더 우악스러워야지 저래서야
단순히 라이징 발키리의 옷을 걸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110
아니 야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남자 초인 뺨치는 흉포함이
라이 징 발키리의 매력이라고”
6‘ Jp

“그 외에도 다들 코스튬 하는 것 좀 봐 한 캐릭터 건너가


면 그 캐릭터가 다 그 캐릭터들이지? 유행을 쫓는 게 뻔히
보이지 않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그게 코스프레지
언제부터 유행 만 쫓는 게 코스프레가 되 었는지 . . .. . . .”
지우는 열을 올리며 계속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옆에서
은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헤에 여전히 잘 알고 있네”
‘‘뭐뭐가?”
“초인 따위, 정말 싫어~ 하면서 관심 끊은 줄 알았거든
그런데 레인맨이나 라이징 발키리 같은 요즘 초인들도 잘
알고 있고”
“그거야...TV에서 뉴스라던가광고라던가줄창틀어주
니 까.”
“그런 하이라이트만 보고 어떻게 등장 포즈까지 다 알아?
따로 잡지나 인터넷 동영상을 보지 않는 한실'
‘‘나간다!''
지우는 씩씩거리며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런
너무 놀렸나’ 은비는 잽싸게 오빠의 팔을 붙잡으며 사정했
다 .
“아이 참 여기까지 왔으면서 가긴 어딜 가? 그냥 들어가

111

제 4장 초인월드!
자, 오빠야 응? 내 입학 선물이잖아~”
“그렇게 구경하고 싶으면 혼자서 실컷 하면 되잖아? 왜
자꾸 싫다는 사람 귀 찮게 해?”
“오빠 없이 구경히는 게 무슨 재미야? 그러지 말고 같이,
응? 남자가 되어서 데이트 중에 여팟든 바람 맞히면 쓰나!”
“네가무슨여자라고”
어이없어하면서도 지우는 결국 몸을 돌렸다 내심 약속한
바가 있어서 그대로 가버릴 수가 없었다 ‘하여간 어쩌자고
입학식 선물 같은 걸 약속했는자' 지우는 은비의 손에
이끌려서 다시 At센터의 입구로 향했다
“그나저나 오늘 엄청 사람 많네 무슨 날인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파가 눈
에 들어왔다 1층은 타 행사 개최이고 2층이 초인 월드였는
데, 인파 대부분은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줄을
서고 있었다 지우는 로비를 둘러보다가 벽에 붙어 있는 플
랜 카드를 발견했다
“저것때문아냐?”
“아......”
플랜 카드를 돌아본 은비가 표정을 찡그렸댜 거기에는
‘빅뱅 어택!' 이라는 문구와 함께 그녀가 가장 꺼리는 초인이
프린트 되어 있었다 같은 소속사의 초인 크래쉬 맨이었다
오른팔만 거대하게 제작된 초인 슈츠라던가 맨얼굴을 그대
로 드러낸 헤드기어 형 마스크는 틀림없이 그의 기믹이다

11 ?
‘어제 매니저 언니가 말한 양재동 행사가 이거였구나 어
쩐지 서초 입장권을 준다 했지 ’
은비는 쓴 입맛을 다시며 플랜 카드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펑크 낸 행시를 초인 크래쉬 맨이 대신 맡아준 것이
었지만, 미안함이나 고마움보디는 찝찝한 기분만 잔뜩 들었
다. 그녀가 알고 있는 동료 초인의 성격 상, 이 일을 계기로
또 무슨 수작을 걸어올지 몰랐던 것이다.
‘빚이니 어쩌니 헛소리만 해봐라 아구창을 날려줄 테니
까 '

‘은비 녀석, 혹시 서초에 오자고 한 게 크래쉬 맨 때문이


었나? 그렇게 아이돌 초인이 보고 싶었던 거야?,
남매는 하나의 대상을 두고 극과 극의 결론에 도달하다가
서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주고받다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오빠 오빠 말고 다른 남지는 아웃 오브 안중이
니까 오빠에 대한 내 마음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야 쭈
욱 !'
‘그래 네 나이 때에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지 지
극히 자연스러운 거야 그러니 후회 없이 좋아하렵 빠순이
가 될지라도 넌 변함없는 내 동생일 테니까.
그렇게 무언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입구에서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자 수많은 부스(Booth)들
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판매전에 참가한 동아리들이 비좁다

113

제 4장 초인월드!
싶을 만큼 부스에 붙어 앉아 자신들이 만든 동인지를 홍보
하고 있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회장의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절로 땀이 배어 나온다
“와! 저것 좀 봐 동인지야, 동인지 ! 다들 팔고 있어 !”
‘‘_으'’
o.

“이제 겨우 3월인데 준비들 많이 했구나~ 우리 때는 여


름철 겨울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완전 힘들었는데”
“으응.......”
흥분히는 은비와 달리 지우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3년 전과 변함없는 회장의 풍경에 기슴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도 지금의 저들처럼, 이 행사만을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동분서주했던 적이 있었

“오빠. 얼른가보자!”
은비에게 끌려가면서 지우는 부스에 전시된 포스터들을
구경했다 동인지의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들은 작게는
열쇠고리부터 크게는 사람만한 디스플레이까지 각양각색이
었다 하지만 크기만 다양할 뿐, 그려진 캐릭터들은 조금도
다양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크래쉬 맨과 라이징 발키리, 마
이티 드래건과 나인 매지션 같은 최근의 초인들뿐이다 약
간의 과장 보태서 이 네 명 외에는 다른 캐릭터는 보이지 않
는 다

.현 대한민국의 초인은 수도권만 칠십 명 이상, 지방의 초

114
인들까지 합하면 백 명'
그러나 이 자리에 전시된 초인들은 고작 네 명 안팎이다
명색이 초인창작 행사라는 서초에서 소재로 삼는 초인이 겨
우 그 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무려 이백이리는 숫자에서 !

물론 이해는 한다 유행이 지난 초인으로 동인지를 그리


면 사람들이 사지 않는다 재고가 남게 된다 자비로 하는
동인 활동에서 재고가 남는디는 것은 곧 크든 작든 생활고
에 시달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히 사람의 욕심 상 잘 팔
리는 책을 만들고 싶을 것이다 결과를 내서 자신의 실력을
인 정 받고 싶 겠지 하지 만 . . . . . .
‘역시여기도다를바없어'
잘 팔리는 것만을 선호한다 유행에 뒤처지는 것은 돌아
보지 않는다 잊어버린다.
그나마 창작에 자유로운 아마추어들마저 이럴 지언데 이
해득실을 따지는 사회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세상 모두가 초
인을 ‘상품' 으로만 보고 있다.
‘초인은엔터테인먼트다'
그것은 초인들의, 초인들을 위한, 초인들에 의한 단체인
초인 동맹에서부터 내건 슬로건이었다 그 슬로건대로 초인
들은 사회에서 오락이자 유흥이었고 연예이자 여흥이었다
그들을 상품으로 만든 것은 그들 자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초인이라는게정말상품일뿐인가?.

115

제 4장 초인월드!
지우는 단호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인들도 그들과 마찬
가지로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기뽈 때는 웃고, 슬플 때는
울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화내고 그저 남들에게는 없는 한
가지 능력을 갖춘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초인의 도움을 당연하게만 생각
하는 걸까?

어째서 그 희생을 유흥거리로 받아들이는 거지?


그리고어떻게-
‘어떻게아빠의죽음을..잊어버릴수있냔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앞에서 느낀 향수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다 그리고 그 자리를 분노가 대신했다 역시 초인 따위는
싫다 초인 따위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그 사회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비가 놀란 목소리로 지우를 불렀다.
‘‘오빠 저기 봐요!”
“응?”
영문을 몰라 돌아보다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진부한 초
인들의 향연 그 사이에서 너무나도 그리운 초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초인 라이트 세이버 ! 그의 코스프레를 한 누군가가 부스
에서 동인지를 팔고 있었다 파는 동인지 역시 라이트 세이
버에 관한 것이다. 지우는 설마 아직도 아빠의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기에 놀람 반 감동 반으로 그에게
다 가 갔 다

116
“저,저기요'’
라이트 세이버의 부스 앞에 선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
고 말을 걸었다. 코스플레이어는 마스크를 쓴 얼굴을 들어
그를 바라본다 지우는 자신의 아빠를 기억해주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뜬금없이 고맙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스에 와놓고 코스플레만 칭찬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고
‘아, 일단 동인지부터 하나 사자 그럼 얘기하기도 한결
수월해 지 겠지 '
지우는 부스에 놓인 동인지를 하나 집어 올리며 물었다
“이 동인지 사고 싶은데, 얼마인가요?”
“서지우?”
돌아온 대답은 가격이 아닌 그의 이름이었다 지우는 영
문을 몰라 코스플레이어의 마스크를 들여다보았다 누구
지? 날 이는 사람인가?
‘그러고보니이목소리....'
“오오! 드디어 와준 건가, 친구!”
코스플레이어는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며 부스를 뛰어넘
었다. 그 행동만으로도 지우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런 코믹월드에서 이런 마니악한 초인을 코스프레
하며 마찬가지로 마니악한 동인지를 파는 인간이 그 녀석
말고 또 있을 리가 없다
‘‘영웅이오빠?”

117

제 4장 초인월드!
등 너머에 들려온 은비의 탄성 그 탄성대로 마스크를 벗
은 코스플레이어는 다름 아닌 허 영웅이 었다

한편 부스에서 떨어진 이벤트 무대


‘아,시발존내힘드네’
초인명 크래쉬 맨, 본명 한상준 초인 프로덕션 빅토리의
간판스타인 그는 현재 코믹 월드에서 사인회를 열고 있었
다 마스크의 바이저를 해제한 그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일
일이 팬들의 사인에 응한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어디까지
나 영업용일 뿐 그 밑으로는 온갖 불평이 끊이지를 않고 있
었 다
‘내가 무슨 사인하는 기계도 아니고, 대체 언제쯤 끝내려
는 거야? 이러다 내 손에 무리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내 몸
값이 얼마인지나 알아? 이깟 푼돈도 안 되는 행사에 함부로
굴릴 몸이 아니란 말이다!'
상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사인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
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초인은 인기가 생명
하물며 그와 같은 아이돌 초인은 다른 초인들보다도 특히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조금만 언행을 잘못해도 시
건방지다느니, 이래서 아이돌 초인은 안 된다느니 비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울 초인 월드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서초는 분명히 푼돈도 안 되는 행사였지

118
꿇 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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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출乞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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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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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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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행사의 참가자들은 엄연히 초인 시장의 한축을 점유하
는 소비자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밑 보였다가
는 대량의 안티 팬들을 가지게 된다
‘이게다라이징발키리,그콧대높은년때문이야.
애초에 오늘의 사인회를 하기로 했던 것은 라이징 발키리
였다 그것을 그녀가 멋대로 거부하고서 다짜고짜 그에게
떠맡긴 것이다 당연히 상준의 자존심은 상할 수밖에 없었
다 인기 절정의 자신이 누군가의 대신이라니! 그것도 상대
가 선배라면 또 몰라, 라이징 발키리는 고작 데뷔 3년째에
불과한 신인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불쾌한 것은 프로덕션이
당연하다는 듯 그녀 의 땜빵을 상준에 게 명 령 했다는 것이다.
‘언제나그래 언제나그년이 우선이지 시발l 초인 랭크
도 같고, 인지도도 비슷한데 왜 다들 그년만 애지중지하는
거야?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상준은 그런 불공평함이 다 자신의 콘셉트 탓이라고 생각
했다 아이돌 초인 초인의 아이돌 성을 부각시키고자 현장
근무를 줄이고 연예 활동에만 전념시키는 마케팅 전략 그
전략 덕분에 상준은 길었던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톱 초인
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대신 그는 다른 비난에 시달려야
했으니 로케이션, 즉 초인으로서의 구조 활동을 도외시한
탓에 수많은 비평가로부터 그 자질을 질타 당했던 것이다
그들은 상준이 아이돌로서 거둬들인 수익은 생각하지도 않
고, 언제나 현장의 초인들과 그를 비교해서 깎아내리기만

120
했다 초인으로서 하는 일도 없이, 무늬만 초인이라고 비아
냥거리기 일쑤였다
‘역시프로덕션에서도내가그년보다못하다고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그 년이 버린 일을 나한테 시키는 걸 테고'
제길! 이놈이나 저놈이나! 상준은 분통을 터뜨리며 이 자
리에 없는 라이징 발키리를 원망했다 그녀에게는 공적인
일로도 유감이 많았지만 사적인 일로도 유감이 많았다. 인
기절정의 자신이 몸소 사귀자고 한 제안을,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박에 거절한 것이다
거절의 이유로 소속사의 연애 불가조항이니 뭐니를 들먹
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
녀도 상준을 깔보는 것이리라 진짜 초인인 자신에게 껍데
기뿐인 초인이 어디서 감히 들이 대냐고 생각한 거겠지
‘로케이션 좀 한다고 잘난 척하기는 진짜 초인 같은 거,
다 좃 까라 그래. 어차피 이것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돈
만 벌면 장땡이잖아? 장사일 뿐이란 말이야! 그런데 거기에
무슨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는 거 야?’
(저기, 크래쉬 맨?)
그때 상준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사인회의 진행을
보던 여자 사회자였다 그제야 상준은 자신이 인상을 쓰고
있음을 깨닫고 재빨리 미소를 지었다 다른 초인들 같으면
언제나 마스크를 내리고 있기에 표정관리가 필요 없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아이돌 마케팅의 일환으로서, 친근감 조성

121

제 4장 초인월드l
을 위해 대중에게 얼굴과 육성을 공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범죄자를 상대하는 초인에게는 꽤 위험한 행위였기에
한때 초인 업계에서는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또 그것은 상
준이 로케이션을 피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괜히 범죄자
들을 상대한답시고 얼굴을 팔다가는 언젠가 보복을 당할지
도 모르니까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사인회는 이쯤에
서 끝낼까요?)
“아, 아닙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신 걸
요 제가 피곤한 게 무슨 대수라고”
상준은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돌 초인이
될 정도로 그의 미모는 정평이 나있었기에, 사회자는 본분
을 잊고 얼굴을 붉혔다
(무슨 말씀을! 원래 예정에도 없던 일을 저희가 무리하게
부탁한 걸요! 이런 일로 크래쉬 맨이 아프기라도 했다간 큰
일이죠!)
“하지만그래도
(괜찮아요l 팬 분들도 다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렇죠, 여
러 분?)
사회자는 행사장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예, 라고 외치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상
준은 쑥스러워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살았다 사실 이제 한계였는데 사회자가 존내 어리바리

1 ??
해서 다행이네 더 부려 먹어도 모자랄 판에 알아서 끝내주
다니 .,
(그런데 크래쉬 맨? 사인회를 여기까지 하는 대신에 부탁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는데 괜찮을까요?)
부탁하고 싶은 일? 상준은 사회자의 미소에 이유 모를 불
길함을 느꼈다 하지만,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흔쾌히
승 낙 했 다
“그럼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
니다 말씀만 하세요”
(그럴 줄 알았어요! 역시 크래쉬 맨! 그래서 저희가 준비
한 게 있답니다 자, 거기 스태프들! 어서 가지고 나와 주세
요!)
사회자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무대 뒤편에서 스태프
들이 뭔가를 끌고 나온다. 그것을 바라보던 상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웬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대리석들이 수레에
실려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상준은 그것을 가리키며 얼빠
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이게 뭔가요?”
(예에~ 두께 10센티미터의 대리석 판들이랍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가지고 나오느냐고 의문은
사회자의 다음 말에 풀릴 수 있었다
(여러뷘 지금부터 크래쉬 맨이 눈앞의 대리석 판 스무
개를 격파해 보이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필살기인

1?3

제 4장 초인월드!
빅 뱅 어택으로 말이죠l)
우와아oF!
순간 회장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반면 상준은
사색이 되었으니 설마 사회자의 부탁이란 게 이런 터무니
없는 이벤트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관객들에
게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사회자에게 따졌다
“잠깐만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계약에도 없는 일을 이
렇게 시키시면!”
“어머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했잖아요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서 못하겠다는 건가
요?”

“그건......아니지만.그래도!’’
“자자 팬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죠 모두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라고요, 크래쉬 맨!”
상준은 윙크하는 사회자에게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당했
다. 이제 보니 이 여자, 어리바리한 게 아니라 완전 능구렁
이잖아?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사인회를 그만두게 한 거
였어!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세팅된 대리석 앞에 걸어갔
다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중의 모습에 이제 와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젠장 뭐 상관없겠지 내 초인력이라면 이 정도 돌조각
쯤이 야.'
상준은 사인하느라 벗어두었던 슈츠의 글러브를 다시 오

1 24
른손에 꼈다 왼손이 평범한 글러브인데 반해 오른손의 글
러브는 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런 언밸런
스적인 기믹을 차용한 데에는 그의 초인명, 크래쉬 맨을 강
조하기 위함이었으니 크래쉬라는 뜻 그대로 상준의 힘은
‘무엇이든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
제로도 그의 거대한 오른손은 지금껏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이번 대리석 역시 거뜬하게 부술 수 있으리라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렇게 제대로 초인력을 사용해보는 게 얼마 만이려나
데뷔 초창기 때는 꽤 사용했던 것 같지만, 아이돌 초인이 되
고서는 거의 초인력을 人僊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마 동
맹의 연말 검진 때 초인력을 측정한다고 사용했던 게 고작
일까 아, 그러고 보니 엊그제 뮤직 비디오를 찍는다고 해서
한 번 사용했었자
어쨌든 그렇게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초인력을 자제하다
보니, 대리석을 부수는데 얼마만큼의 힘을 써야 할지 자신
이 없었다. 척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데, 괜히 약하게 쳤다
가 실패라도 하면 망신만 당할 것이다
‘되도록멋지게,단한방에부서뜨리지않으면..'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에게 말하며 상준은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초인력
을 끌어 모으자, 그의 거대한 오른손으로 빛의 문양, 스티그
마가 떠오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크래쉬 맨의 필살기명

125

제 4장 초인월드!
인 ‘빅 뱅 어택 을 소리쳐 불렀다 회장의 스피커에서도 크
래쉬 맨의 2집 앨범에 수록된 동명의 곡이 홀러나온다
“하아아앗!”
상준은 스티그마의 빛이 최고조에 이르자 있는 힘껏 오른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 손에 닿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
져 나갔다 20개의 대리석도, 무대장도,
콰지직!
심지어는회장의 바닥까지눼

그 시각, 다시 판매전의 부스
“하하하하! 내가 뭐랬나 넌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하지
않았나 ! ”
영웅은 주변의 동인들이 자신을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
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앞에서는 얼굴을 붉힌 지우가
안절부절 못하며 대치하고 있다
“시끄러워 돌아오긴 누가 돌아왔다는 거야? 이건 그냥
어쩔 수 없아.”
“그래! 어쩔 수 없이 돌아왔겠지l 너와 니는 애초에 그런
동족이니까! o悍리 초인을 거부하더라도 소용없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초인을 기억하기에, 어쩔 수 없이 ! 불가항
력적으로l 다시 초인을 찾게 되는 거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그만해 ! 그리고 자꾸 도매금으로
싸잡아 넘길래? 누가 너하고 동족이야l”

126
“그래 마음껏 부정해도 좋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라 초인에 대한 마음은 절대로 변
치 않는디는 것을! 그 마음만을 잊지 않는다면 너와 나는
피를 나누지 않아도 뜻을 함께하는 동료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동족, 혼을 불태우는 초인사랑!”
“농楞'
지우는 더 반박하기도 지쳤는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자식과 한때나마 친구로 지냈던 건지 자신도
이해할 수없었다 영웅의 언행이야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저 모양이었으니, 결국 변한 것이 있다면 지우 자신일 것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예전의 자신도 지금의 그와 비슷한 상
태였다는 건데.. 새삼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기가 두려워
진 다
“어쨌든 네가 무슨 말을 하던 상관없어 ! 난 초인 따위 정
말로 싫으니까!”
‘‘나야말로 네가 무슨 말을 하던 상관없다 서지우, 너는
정말로 초인을 좋아하니까!”
“그럼 계속 그렇게 생각하던가 은비야, 가자!”
지우는 진저리를 치며 여동생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조마
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은비가 재빨리 그의 옆으로 다가
왔다
“아. 그럼 영웅이 오빠! 우린 이만 기볼게. 서초 잘 끝내
고 학교에서 봐”

127

제 4장 초인월드!
“아직 내 얘기 안끝났다, 서지우!”
영웅은 은비의 안K든 무시하며 덥석 지우의 어깨를 붙잡
았다. 지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더
무슨 얘기를 하자고?
“이 이상 네 아버지를 핑계로 초인을 싫어히는 건 그만
둬 !”
혁l

생각지도 못한 일갈에 지우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그것은


옆에 있던 은비도 마찬가지였다 영웅은 그런 남매를 진지
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초인을 싫어하게 된 건 그날부터였지 않나? 3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만둬
“정확한 이유까지는 몰라도, 그 일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말하지 마 거기까지만해
“그래서 네가 초인에 거부감을 보일 때도 잠자코 있었지
초인 연구회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말리지 않았다 왜
냐하면, 그것이 네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네가 슬픔을 이겨냈을 때 그
때가 되면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했지 그렇
게 믿었기에 줄곧 너를 기다려올 수 있었다”
시끄러워.시끄러워!

128
“그리고 너는 자의든 타의든 여기까지 돌아왔다 긴 시간
에 걸쳐서 간신히 말이야! 그런데 이제 외서 다시 돌아간다
고? 아니 될 소리 ! 그것이 진정 아버지에 대한 슬픔 때문이
라고 생각하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건 그저 네 고
집일 뿐이다 아버지를 핑계로 투정부리는 것뿐이야!”
그 말에 지우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은비가 말리고 자
시고 할 틈도 없이 영웅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투정을 부려? 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웃기지 마! 아무것
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지껄이지 마! 네가 우리 가족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모르지! 하지만, 네가 나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초인을
좋아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이 자식이 끝까지一! 지우는 이를 갈며 영웅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정작 나가떨어진 것은 지우 자신이었다 영
응은 놀리운 반사 속도로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지우의 뺨
에 규陪터를 날린 것이다
‘이, 잊고 있었어 이 자식, 초인 폐인 주제에 체력장을 1
등급으로 패스한 괴 물이 었지 .’
지우는 얻어맞은 뺨을 멍하니 감싸다가 곧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잘못한 것은 저 자식이면서 왜 계속 나만 맞
아야 하는 거야? 지우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안경
을 벗었다
“네 녀석은 옛날부터 그랬어. 언제나 항상 자기 좋을 말만

129

제 4장 초인월드!
하다가 말문이 막히 면 주먹부터 날렸지 ”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이 나는군 우리가 처음 초등학교
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던가 그때도 초인에 대해 말싸움하
다가 결국 치고받고 싸웠지 후후 그렇게 내가 누군가와 서
로 혼을 부딪쳐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다”
“웃지 마! 그때도 나만 일방적으로 맞았잖아! 그 이후에
도 계속!”
“그럼에도 넌 네 의견을 결코 꺾지 않았다 확실히 너의
그런 부분은 친구로서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해”
“그럼 때리지를 말던가! 젠장! 어쨌든 더는 못 참아! 오늘
은 반드시 널 흠씬 패주겠어 !”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하는 건가 좋지 . 서로 오해를 푸는
데 있어서 사나이들의 주먹다짐만큼 좋은 것은 없다!”
지우와 영웅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이를 갈았다 그런
오빠들의 모습에 은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굴
렸다 이러다 정말 씨움이라도 나면 안내요원들에게 퇴장당
할 텐데 !
“혁l”

그때 은비의 안색이 날키롭게 변했다 그녀가 숨기고 있


던 힘, 초인력이 갑자기 뭔가에 이끌리듯 개방되려 한 것이
다 평소에는 의식해서 힘을 각성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이
런 일이 없었는데! 그녀는 허벅지 부근에 발현되려는 스티
그미를 억누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경험상 초인력

130
이 이런 반응을 보일 때는 한 가지 경우 밖에 없었다 비
로-

‘근처에다른초인력의소유자가있을때r
그녀는 곧 힘의 발신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판매 부스의
뒤편에 있는 이벤트 장이었다 거기에서부터 그녀의 초인력
을 끌어 당기 는 무언가가 느껴 진다
이벤트 장이라면 분명하 한창크래쉬 맨의 사인회가
열리는 중일 텐데?
쿠웅!

순간 멀리서 뭔가를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폭


음을 잇듯 회장의 바닥으로 미약한 진동이 퍼져 나간다
‘지진? 아냐,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은비의 생각은 거
기까지였다 진동파가 이내 체감으로 느껴질 만큼 커지며
회장 전체를 뒤덮은 것이다. 은비는 막 서로에게 주먹을 날
리려는 지우와 영웅에게 소리쳤다
“오빠!조심-!”
콰지지직!
뒷말은 갈라지는 시멘트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이어
지는 아비규환 부스의 사람들은 갑작스런 붕괴에 비명을
지르며 입구로 도망쳤다 지우는 몸을 낮추며 은비와 영웅
에게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건물이, 건물이 무너지나봐r,

131

제 4장 초인월드!
“우리도빨리 나가자! 어서!”
그렇게 도망칠 준비를 하는 오빠들과 달리 은비는 침착하
게 자신의 복장을 살폈다 지금 그녀가 입은 옷은 평상복 세
번째 타입의 초인 슈츠였다 은비는 어제 입은 교복 버전의
슈츠 외에도 소속사에서 총 다섯 벌의 초인 슈츠를 지급받
았는데, 지금 옷은 그 중 한 벌이었다
좋아이거라면라이징발키리로변신할수있겠어!’
은비는 자신의 초인력에 옷이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며 주
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수중에 있던 핸드백을 오빠에게
떠맡기며 소리쳤다
“오빠! 영웅이 오빠랑 먼저 나가 있어 l 난 좀 있다 따라나
갈게 !’'
“뭐?무슨말도안되는소리야!”
엉겁결에 핸드백을 받아든 지우는 기겁하며 은비에게 손
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닿지 않았다 천장에서 떨어진 콘
크리트 조각이 둘 사이를 가로지른 것이다 그 바람에 지우
는 뒷걸음질 쳤고. 그 사이에 은비는 이벤트 장 쪽으로 뛰어
갔다.

‘오빠, 미안!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변신해서 사람들을


구해내야 해 r
동맹의 규정 상 초인 슈츠를 착용하지 않고서 초인력을
사용했다가는 초인 면허증을 취소당하게 된다 그 때문에
그녀는 최우선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초인 슈츠부터 착

132
용해야 했다.
‘여기라면되겠지!.
그녀는 일러스트를 전시하는 칸막이 뒤로 들어가 스티그
미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평상복 상태의 아다만티움이 초인
력에 반응하여 자신이 기억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은비의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묶은 머리띠들이
팽창하여 라이징 발키리의 마스크가 되고, 그녀의 상의와
하의가 각각 레오타드와 부츠 형상으로 변해 그녀의 몸을
죄어온다 이런 질량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은 아다
만티움의 형상 기억 효과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비선형 법
칙이었다 그 자세한 메커니즘은 동맹의 기술부만 알고 있
는 기밀 중의 기밀!
“하앗!''
라이징 발키리로 변신한 은비는 기합을 지르며 양 허벅지
의 스티그미들 전개했다. 그러자 그녀의 상승하는 초인력은
단숨에 그녀의 몸을 회장 꼭대기까지 올려 보낸다
쿠르릉

천장에 다다른 그녀의 눈에 저편의 출구 위로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지려는 것이 보였다 그 밑에서는 한창 대피 중
인 사람들이 낙석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은비는 스티
그마의 날개를 펼쳐서 점화에 들어갔다
간다!'
투화아아악!

133

제 4장 초인월드!
양 허벅지의 날개가 불꽃을 튀기며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은비는 그대로 회장의 공중을 대각선으로 가로
지르며 출구의 낙석에게로 돌진했다
‘이대로부수면밑의사람들에게피해가갈테나.....'
순간, 허벅지의 날개를 접어 공중에서 급정지한 그녀는
그대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낙석의 밑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두 다리를 내뻗으며 낙석을 출구의 반대 방향으로
걷어차 버 린다
“역풍(逆)회)코라이징킥!”
투앙!
낙석이 사람들이 없는 벽에 부딪히며 폭음을 터뜨렸다
“아야야.”
은비는 제자리에 착지하며 미약한 신음을 홀렸다 역풍
라이징 킥은 이단 점화로 낙하 방향을 선회히는 만큼 몸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픈 시늉조차 낼 수
없었다 출구에서 대피 중인 사람들이 그녀에게 갈채를 보
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라이징발키리!”
“당신덕에살았어요!’'
감시는 고맙지만.“. 그래도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
나? 은비는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어서 피하세요! 위험하니까어서요!”
경고가무색하게 다시 위에서 낙석들이 떨어진다 은비는

134
스티그마를 다리에 휘감으며 마치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공
중으로 발차기들을 날렸다 어젯밤 주유소의 강도들을 퇴치
할 때 시용한 선풍 라이징 킥이었다
“으아아아!’,
그녀의 도움으로 낙석을 피한 사람들은 그제야 위기감올
느꼈는지 출구로 도망쳤다 그렇게 어느 정도 주변이 정리
되자 은비는 이벤트 장의 무대 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부서진 대리석들과 부서진 바닥,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주저
앉아있는 크래쉬 맨의 모습이 있었다
은비는 그것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크래
쉬 맨이 격파 시범인지 뭔지를 하다가 자신의 초인력을 주
체 못하고 과도하게 힘을 쓴 것이리라 그 바람에 건물에 금
이 가서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일 테고
‘한심하네 초인력의 컨트롤 미스는 현장 경험이 적은 신
인들한테나 나오는 실수인데'
은비는 혀를 차며 그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크래쉬 맨. 일어나요! 지금부터 다른 초인들이 올 때까
지 당신과 내가 사람들을 지켜야 해요!’,
“나,난...난이제끝이야.”
크래쉬 맨, 한상준은 한껏 실의에 빠진 채 일어날 줄 몰랐
다 o佇래도 자신의 실수로 이런 사고를 일으킨 것에 패닉
에 빠진 것 같다 은비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의 멱살을 잡아
올 렸 다 .

135

제 4장 초인월드!
“자책할 때가 아니잖아! 당신도 초인이라면 뭐가 우선인
지는 알 거 아냐r,
“하지만, 하지만나는...... 내가......’'
“이래서 아이돌초인이란!”
은비는 탄식하며 상준을 놓o悍었다 그러자 그는 혼자
설 힘도 없는지 엉덩방아를 찧는다 그 모습이 도저히 전력
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은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혼자
서라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구해낼 생각이었다
줄구는 대피가 끝난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입구 쪽
록 으

“은비야!”
그때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들렸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
간, 그녀의 얼굴에서 피가 사악 가셨다 그도 그럴 것이 목
소리의 주인은 그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인 것이다
“오빠?”
그럴 리가l 오빠는 아까 대피했는데! 영웅이 오빠와 함께
입구 쪽으로
‘..,.맙소사.날찾으러온거야?’
은비는 사색이 되어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어서 도통 지우를 찾아볼 수 없었
다 ‘안 돼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니는..r 그러다
곧 바이저 너머의 두 눈을 크게 떴다 부스 저편에서 돌아
나오는 지우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다행이다! 아직 무사

136
했어 ! 그녀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이 초인 슈츠 차림이
라는 것도 잊고서 그를 불렀다
“오빠!”
지우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무대 쪽을 돌아보려고 했
다 그러다 발밑에 눈이 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의
주위로 검은 그림자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혁퍽!
일순 몸속 깊은 곳에서 그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거꾸러진다 아픔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느껴지는 거라곤 무력감, 감
당할 수 없는 충격에 몸뚱이가 부서졌디는 인식뿐이었다
“아아!오빠!오HHF!”
어디선가 은비의 비명이 들려온다 지우는 점점 점멸해가
는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 붙어 있어야 할 대리
석 타일들이 그의 근처에 흩어져 있었다. 저런 것에 얻어맞
으면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너무도 쉬이 납득하는 자
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한심해나라는녀석은또다사“.아무것도하지못하
고. . .. . .

지우는 눈을 뜬 채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이번에는 그


를 구해줄 라이트 세이버도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죽는다
죽을 것이다. 어린 시절 구원받았던 목숨을 되돌려줄 시간
이 찾아온 것이다

137

제 4장 초인월드!
‘저것 봐 역시 그때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날 데리러 오는 천사의 모습이-
지우는 어린 시절 보았던 빛의 고리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숨을 거뒀다

138
제 5장

초 인 스크P-트 !
“하아!하아!”
윤미라는 하이힐이 벗겨진 것도 모른 채 병원의 로비를
달리고 있었다 한창 출판사에서 마감 뒤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레 그녀의 폰이 울리더니, 딸이 다급한 목소
리로 비보를 전했던 것이다
r엄마, 오빠가 다쳤어! 빨리 와줘! 의사 선생님이 빨리 오
시 래 !J
아들- 지우가 다쳤다고? 미라는 그 즉시 모든 일정을 취
소하고 딸이 가르쳐준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은 양재
역 근처에 있는 종합 병원이었다 오면서 들은 라디오 뉴스
에 의하면 양재역의 서울 초인 월드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고 한다 아마도 지우와 은비는 그 행사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한 모양이 었다.
‘여보, 제발 그 아이를 지켜줘요 제발 그 아이를 데려가
지 말아요, 제발 제발.!'
미라는 3년 전 고인이 된 남편에게 애원하며 접수처에 도

141

제 5장 초인스카우트!
착했다접수처의 간호원은 머리고 차림새고 잔뜩 헝클어진
미라의 모습에 당황하며 물었다.
“무,무슨일로오셨나요?’'
“제 아들이 여기에 입원했습니다 이름은 서지우, 대략 한
1시간 전쯤에 응급환자로 들어왔을 거예요 신속하게 찾아
주세 요 ”
미라는 예상과 달리 침착하게 용무를 밝혔다 여기서 울
며불며 난리쳐봐야 아들을 만나는 것만 늦어진다는 것을 알
고 있었던 것이다 간호사는 그녀의 의연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접수처의 왼편을 가리켰다
“오늘 At센터 사건의 환자들이라면 전부 응급환자실에
있어요 이대로 왼쪽 복도의 끝으로 가시면 되니지F”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미라는 이미 간호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우야!”
미라는 그대로 응급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응급실에 누워있던 환자 일동이 일제히 그
녀 쪽을 돌아본다 하지만, 미라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
지 않으며 연신 아들을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우야! 우리 아들 어디 있니? 엄마 왔어l 이제 괜찮으
니까 얼른 나와! 얼굴 좀 보자!”
‘‘손님, 정숙해주세요 이러시면 다른 환자 분들께 폐가 됩
니 다..’

1 42
접수처에서 쫓아온 간호사가 말리자, 미라는 그녀를 돌아
보며 애원했다
“간호사 님. 우리 아들 좀 찾아주세요! 여기 있다고 했잖
아요 ! ''
“치, 침착하시고요 환자분 성함이 서지우라고 하셨죠?”
간호사는 수중의 차트에서 뭔가를 찾더니, 미라를 데리고
응급실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이동식 커튼 칸막이
에 가려진 한 침구가 있었다 미라는 커튼 끝자락에서 거무
스름한 혈흔을 발견하고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저기에 지우가, 저기에 우리 아들이솰
미라는 간호사를 젖히며 난폭하게 칸막이의 커튼을 걷어
냈다 그리고 침구를 보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침대에는
누군가 누워있던 흔적만 남아있을 뿐, 정작 누워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그녀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일련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은비의 빨리 오라는 연락, 응급실, 피가 묻은
칸막이, 그리고 자리에 없는 환xF 순간, 침구를 응시하던
그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
“소,손님?”
“미안해, 아들 이 엄마가 못나서너무 바보 같아서 네
마지 막 모습도 지 켜 뵈주지 못했구나. ”
마지막 모습? 미라의 독백에 간호사의 표정이 이상하게

143

제 5장 초인스카우트!
변했다 이 사람 설마.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클'
미라는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
도로 흐느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서러워보였던지 간호사는
뭐라고 말도 붙이지 못하고 무안해했다 저기, 잠시 만요,
잠시만 제 얘기를..
“엄마?”
그때 그들의 뒤편에서 미라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본 곳에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의 딸과 번개 머리 모양을
한 낯익은 소년이 서 있었다 은비와 영웅이었다
“은비야눼''
미라는 간호사에게서 은비로 갈아타며 엉엉 소리 내어 울
었다. 그런 엄마의 행동에 은비는 적지 않게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 엄마? 무슨 일이야?”
“은비야, 이를 어떡하면 좋으니! 네 오빠가. 지우가......!”
“오빠가왜?”
은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미라는
딸의 가슴에 묻었던 얼굴을 들며 울먹거렸다
“네가 그랬잖아..... 오빠가, 혹빨리 와달라고, 오빠
가 다쳤다고. . .. .
“응. 그게 뭐 잘못됐어?”
“그런데내가늦어서,엄마가너무늦어서지우가.”
“제가뭘요?”

144
불현듯 모녀의 대화 사이에 끼어드는 불청객이 있었다
미라는 글썽이는 눈동자로 옆의 번개머리 소년을 돌아보았
다 끼어든 것은 그가 아니었다 불청객은 그 소년의 뒤편에
있는 다른 누군가 안경을 쓴 환자복 차림의 소년이다
소년, 서지우는 미라와 시선이 마주치자 인상을 찡그렸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에요? 여기에 저희들만 있는 것도
아니 고”
“지,지우...”
“CT 촬영하고 오는데 깜짝 놀랐네 하여간 사람 놀래 켜
시는데 뭐가 있다니까”
“지우야지우야아아!”
으악! 지우는 갑자기 달려드는 엄마의 모습에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늦었다 미라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처럼 몸을 날려 지우의 기슴팍에 매달린 것이다
“엄마, 떨어져요! 왜 이러는거예요?”
“어어엉一 우리 아들 살아있는 거 맞지? 죽은 거 아니지?
그렇지 ?”
“죽긴누가죽어요!살아있으니까제발좀떨어져요!’'
“안 돼! 두 번 다시 안 떨어져! 이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거야!’'
“어휴, 내가 못 살아! 야, 니들이 좀 말려봐! 보고 있지만
말고 어서 !..

145

제 5장 초인스카우트!
지우는 옆에 있는 동생과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
나 은비는 뭘 감격했는지 손으로 눈물을 훔쳤고, 영웅은 팔
짱을 낀 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흑. 우리 가족은 정말사이가 좋은 것 같아”
“좋은 것을 보여주는군 이 허영웅, 너희 가족의 뜨거운
사랑에 진심으로 감복했다!.'
왜 내 주변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없는 거야? 지우는 자
포자기하며 홀쩍이는 엄마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런 그에
게서는 어떠한 부상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괜찮다니까요 고작 하루 입원하는 건데 무슨 특실을 빌


려 요?”
지우는 병실의 정경을 둘러보면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
했다 그는 지금 앞의 응급실에서 인터넷 랜 선까지 달린 특
'

실로 방을 옮긴 상태였다.
“육십 만원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당장 취소하러 가요
지금이면 물릴 수 있을 거예요.”
“안돼l오늘은여기서묵어!’’
미라는 단호하게 외쳤다 지우는 엄마가 왜 이렇게 고집
을 부리시나 싶어 한숨을 쉬었다
“그 돈이면 우리 집 한 달 생활비잖아요 엄마 혼자서 힘
들게 버신 돈을 이런 일에다 막 쓰면 어떻게 해요?”
“이런 일이니까 막 쓰는 거야! 이 엄마는 그걸 위해서 일

1 46
하는 거지 보험이나 적금 같은 걸 들려고 일하는 게 아니
다! 뭐니 뭐니 해도 가족의 건강이 가장 소중한 거야!”
“엄마....”
지우는 미라의 말에 가슴이 찡해졌다 그러다 자신의 등
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그의 뒤
에는 아끼부터 미라가 업혀 있었다
“그렇게 가족의 건강이 소중하다면 좀 내려오시죠 죽다
가 살아난 아들 힘들게 하지 말고”
‘‘그치만~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했는걸 자기 평생 이
렇게 멀쩡 한 환자는 처음 본다고 하셨단 말이 야~”
미라는 긴장이 풀렸는지 예의 응석받이로 돌아가 은비에
게 물었다
“근데 우리 딸은 왜 그렇게 전화로 빨리 오라고 한 거야?
난 그래서 영락없이 큰 일이 난 줄 알았지”
‘‘그거야 응급실 이용료가 비싸서 그랬지. 거기는 누워있
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간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오빠는 괜
찮다고 말하려는데 , 엄마가 금방 전화를 끊었으면서 ”
“헤헤 그랬구나~ 이 엄마가또 덤벙거렸네”
“응 앞으론덤벙거리지 마?”
은비와 미라는 화사하게 웃으며 모녀의 정을 과시했다
그 모습에 지우는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두 사람
은 들림없는 가족이야. 나만 피가 다른 게 분명해.' 그런 그
의 어깨를 두드리며 영웅이 웃음을 터뜨렸다

147

제 5장 초인스카우트!
“그나저나 그 낙석에 맞고도 상처 하나 없다니. 너도 참
대 단한 녀 석 이 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대로 죽었어도 할 말 없어”
“아니,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나 무사하지 않았나
단순한 운만이 아니다”
두 번? 그 말에 지우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영웅은 9년
전 지우 은비 남매가 겪었던 백화점 붕괴 사건을 말하고 있
었던 것이었다 분명히 그가 말한 대로 지우는 그때 구멍이
난 바닥에 떨어져서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운이 아니면 뭐라는 건데?”
지우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투덜거렸다 그런 그에게
영웅은 손가락을 가리키며 기세 좋게 외쳤다
“서지우! 사실 넌 초인이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
든 수수께끼는 풀린다!”

일순 병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사람, 그럴 줄 알았디는 듯 쓴웃음 짓는 사람, 정말 놀라서
경악하는 사람 그 중 마지막 반응을 보이던 미라가 감탄하
며 지우에게 물었다
“우와! 우리 아들 초인이었어? 이 엄마는 전혀 몰랐어~”
“그럴리가없잖아요!”
지우는 일침하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잖
아 그럴 리가.

148
‘내가초인일리없잖아'
아빠가 초인이니까 그 아들도 초인일 거다 지우도 한때
는 그런 안이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아빠의 영정을 바
라보며 당신이 못다 한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
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것
이 아니었다, 초인이라는 것은
초인 학회에서 제시한 초인의 정의는 세계의 목소리를 들
을 수 있는 자 애초에 혈연이나 기타 요소가 개입될 여지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빠가 초인이었다고 해서
그 아들까지 초인일 리 없었다
지우는 안경을 고쳐 쓰며 영웅에게 핀잔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애초에 내가 초인이었으면 거기서 한
심하게 기절이나 하고 있었겠냐”
“으음. 그것도 그렇군. 때마침 라이징 발키리가 구해주지
않았더 라면 건물을 빠져 나오지도 못했겠지 ”
그 말에 동요한 것은 정작 지우가 아닌 은비였다. 그녀는
영웅이 자신의 초인명을 입에 담자 잔뜩 긴장했다. 오빠가
자신을 구해준 초인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되는 한편
기대도 되었던 것이다
“흣. 어떠냐? 그렇게도 싫어하는 초인에게서 도움을 받은
기 분은?”
영웅의 싱글거리는 물음에 지우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149

제 5장 초인스카우트!
답했다
“최악이야”
쿵코 은비는 맥없이 격추당했다 하지만, 지우의 말은 그
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날 구해준 것은~고맙게 생각해 이무리 대단
한 힘을 지녔더라도, 그렇게 선뜻 위험에 뛰어드는 것은 아
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아무나할수있는일이아니니까
o保나할수있는일이아니니까
은비는 지우의 마지막 말을 무한 반복시키며 얼굴이 달아
올랐다 물론 라이징 발키리가 자신인 줄은 모르고 한 말이
겠지만, 저 무뚝뚝한 오빠가 자신을 칭찬해준 것이다 이 감
동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으랴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초
인이 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나어떡해완전감동이야눈물이날것같아!’
‘‘아, 맞아. TV 틀어봐, TV! 지금쯤이면 오늘 사건 나오고
있겠다!”
그때 미라가 눈치 없게 외치며 지우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 바람에 지우는 언제 초인을 칭찬했냐는 듯 대번에 인상
을 찡그렸다.

“그런 건 또 왜 보려고 그래요? 어차피 초인 나부랭이를


칭찬하는 것만 나올 텐데”
‘초인나부랭이클

150
혼자서 들뜨다가 혼자서 가라앉는 은비였다 미라는 TV
를 켜며 아예 병실의 침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근무 시간도 끝나지 않았는데 조퇴한 거잖아 이
렇게 모니터링이라도 하지 않으면 동료들 볼 면목이 없다고

“그렇다고 아들 병문안까지 와서.“..”


“쉿니온다!”
미라는 입술에 검지를 대며 진지하게 TV를 시청했다 저
런 상태의 엄마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지 지우는 가
볍게 체념하며 자신도 TV를 돌아보았다 뉴스에서는 한창
서울 초인 월드 건에 대한 조사발표회가 보도되고 있었다
(뺘저희 초인월드는 회장을 찾o듀신 모든 분들께 심심
한 사과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번 사고는 저희들에게도 날
벼락 같은 일이었으며 , 국민 여러분들에 게도 마찬가지의 일
이었을 겁니다 그나마 그런 사고 속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
도 나오지 않았던 것은 신속하게 초인을 파견한 동맹의 처
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동맹과 초인 라이징 발키리에게 김사의 인A튼 올립니다)
“사망지는 나오지 않았구나 정말 다행이네~”
초인월드 관계자의 말에 미라는 크게 안도했다. 하지만,
그 옆에서 TV를 보던 은비는 씁쓸하게 중얼거 렸다.
“그래도 부상자는 꽤 많았을 걸. 초인 한 명으로 그 붕괴
를 막기 엔 역부족이 었으니까”

151

제 5장 초인스카우트!
거기다 사고를 막은 초인이 있는가 하면 사고를 일으킨
초인도 있다 아무리 동맹의 덕으로 피해를 줄였다고는 하
지만, 비난을 피할 순 없으리라 예상대로 관계자는 크래쉬
맨의 실수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과 사고의 책임은 별개의 것입니다 이번 사
태는 엄연히 동맹의 초인이 저지른 실수 그 책임은 동맹에
게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희 초인월드는 초인을 사랑하
는 사람들의 단체로서, 그 초인에 의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
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디 초인 동맹이 언제
나처럼 바람직한 대답을 들려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노골적으로 책임 전가시키네 어디까지나 행사를 주최한
건 자기 들이 면서 .”
미라의 말에 지우는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언제나 저런 식이다 다들 초인에 열광하면서도 그 초인이
단 한 번만 실수를 하면 등을 돌리지 냉혹하고도 비정하게
마치 효력이 다한 건전지를 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초인을 내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새 건전지를 찾아내겠지 자신들의 활력
을 충전시켜줄 새로운 초인을'
초인이란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오히려 초인
보다도 위에 있는 것은 인간이지 않을까? 그들은 철저한 사
회적 약자일 뿐인 게 아닐까.

152
‘이 래서 초인 따위는 정 말 싫어 '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싫은 것은뢰
‘정작 o呼것도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야

“우리 아들 정말 괜찮겠어? 정말 흔자 자도 괜찮아?”


저녁 6시 면회 시간이 끝났다는 간호사의 말에 지우네
가족은 병실을 나서야 했다 하지만, 자식 사랑이 유별난 엄
마는 병실 문을 나서다가도 몇 번씩이나 아들 쪽을 되돌아
본다 그 모습에 지우는 속으로 한탄했다 혼자서 지는 거
랑 병세가 호전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도 그
마음만은 고마웠기에 웃으면서 답했다
“어차피 하릇밤만 묵고 퇴원하는 거잖아요 괜찮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요?”
“혹~ 언젠기는 떨어져 사는 게 부모 자식 간이라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이야 이 엄마는 슬퍼~ 슬퍼서 가
슴이 막막 찢어지는 것 같아~”
“.☎이 정도로 가슴이 찢어지시면 전 군대도 못가겠네
요 ”

“아니 그래도국방의 의무는수호해야지.''


의외의 부분에서 냉정한 엄마였다 지우는 간호사가 또
재촉할까봐 서둘러 미라와 은비의 등을 떠밀었다
“자자 다들 내일 봐요 영웅이 너도 조심해서 가고 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차 가져오셨지? 거기에 같이 타고 가면

153

제 5장 초인스카우트!
되 겠다”
“아니, 그렇게 신세를 질 순 없다 나에게는 튼튼한 두 다
리 가 있으니 스스로 걸어 가도록 ”
“잔말 말고 타요, 영웅 학생 아니면 이 아줌마를 아들 부
탁도 못 들어주는 무능한 엄마로 만들 셈이야?”
“부디 태워주십시오”
그렇게 미라가 영웅을 끌고 나기자 은비가 그 뒤를 따르
며 지우에게 말했다
‘‘오빠 혼자 있다고 너무 심심해하지 말고 내가 이따가
밤에 러브콜 할게”
“그딴거 필요없어”
지우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모두가 나간 병실 문을 쾅 소
리가 나게 닫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며 그 위
에 지친 몸을 기댄다 대체 저 팔불출 모녀는 병문안을 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자☎. 아무리 상처가 없다고 한들 그는
붕괴 현장을 겪은 딩사자였다. 사고의 피로가 몸에 남아있
었던 것이다
“잠이나한숨때릴까”
지우는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려다가 멈췄다 이불 위에
웬 핸드백이 놓여 있었다. 핸드폰부터 시작해서 지갑, 열쇠
까지 들어있는 동생의 잡동사니 가방이었다 아무래도 앞에
서 가지고 가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칠칠맞기는 이래가지고 무슨 밤에 전화를 하겠다는 거

154
야?’
지우는 고소하며 핸드백을 집어 들었다 은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돌려줄 수 있겠
지 그렇게 생각하며 병실 문을 나서 려다 걸음을 멈췄다
‘아니지 내가 뭐 하러 귀찮게 그래야 돼? 그래봤자 니중
에 그 러브 뭐시기 인지나 받을 뿐이잖아'
그냥 내일 돌려줘야겠디- 그러면서 다시 발걸음을 돌리
는데, 때마침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우는 핸드백과
문을 번갈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가다가 뭔가 허전
했나 보지 ?
“네에네에나갑니다”
지우는 잠긴 문을 열고 동생을 반겨주려고 했다 그러다
문밖의 상대를 보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거기에는 은비가
아닌 웬 생판 본 적도 없던 선글라스의 외국인이 서있었다
목덜미까지 기른 실버 블론드에 앵글로 색슨계 특유의 상아
색 피부, 거기다 소녀로 착각할 법한 이목구비와 선글라스
로도 가려지지 않는 청옥 빛 눈동자 무엇보다 차이나 드레
스를 개량한 듯 한 남성 정장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소년이
었다 키도 은비만한 것이 어쩌면 지우보다 어릴지 모른다
‘그런 외국인이 왜 내 병실 앞에 있는 거야?'
지우는 무슨 일이냐고 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외국인이니
까 뭔가 영어로 말을 걸어야 하는데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
던 것이다. 아. 이래서 대한민국 교육은 잘못됐어! 초등학

155

제 5장 초인스카우트!
교 때부터 달고 산 영어가 정작 회화에서 무용지물이라니!
이래서야 뭘 위한 영어이고 뭘 위한 공부란 말인가?
‘외국어영역.,나위험한거아닌가'
그렇게 수능생으로서 반성하는데, 뜻밖에도 외국인 쪽에
서 먼저 말을 걸었다
“서지우씨,본인맞습니까?”
“어,한국말?',
지우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였던 것이다 지우는 소년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서지우인데요?”
“잘 됐군요 그럼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소년은 지우의 승낙도 받지 않고 성큼 성큼 병실로 들어
왔다 지우는 그 당돌함에 어이가 없어서 o呼런 제지도 하
지 못했다 소년은 병실 안을 둘러보더니 곧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마실 거라도 안 내옵니까?”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다. 이 인간은 원래 이런 거야.


지우는 확신하며 그때부터 경계의 표정을 지었다 그는
냉장고에 엄마가 사다놓은 캔 주스를 꺼내 소년에게 가져갔
다.

156
“아, 그거 말고 옆에 있는 우유로 부탁드립니다 캔에 있
는 것은 먹지 않는 주의라서요”
“너,뭐하는놈이야?”
지우는 존칭 생략하고 반말로 들어갔다 이 외국인 하는
꼴을 보아하니 손님 대접을 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소
년은 그런 지우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사태평이었
다 오히려 그 곁을 지나치며 기어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
내 들 었 다
“남는 컵 없습니까? 이 병실은 어째 제대로 갖춘 게 하나
도 없군요”
“뭐하는놈이냐고물었잖아!”
안하무인도 정도가 있지 ! 그렇게 지우가 폭발하려는데 소
년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쳤다 그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뭔가
를 꺼내 지우의 코앞에 내밀었다
“소개가 늦었군요 일단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명함?
지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건네받은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명함의 새하얀 여백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
었 다
초인 프로덕션 저스티스(JUSTICE).
‘자장.케이 케이?”
지우는 척 보기에도 가명일 듯한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의 이름 앞에 적혀있는 직장명이 무엇

157

제 5장 조인스카우트!
을 뜻하는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초인프로덕션?그러니까,그초인의그초인?’
설p}
지우는 명함에서 눈을 떼며 사기꾼 보듯 소년의 행색을
살폈다 소년은 그런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이번에는 또 다
른 뭔가를 꺼내들었다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초인 동맹의 드래프트제에 따
라 이번 라이센스를 받은 초인을 스곬佇트하기 위해서입니
다 ”

“물론 프로덕션을 고르는 것은 초인 본인의 叉倧입니다


저희는 그저 다른 프로덕션보다 우선적으로 당신에게 접촉
할 권리를 보장받은 것뿐이죠 당연히 저희와의 계약이 마
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프로덕션을 찾아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 쪽 조건도 결코 다른 프로덕션에 비해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인의 인격적인 대우 면에서는
저희 프로덕션을 따라올 곳이 없다고 지부합니다 절대로
동맹이 정한 의무 시간 외 일을 시키지 않고, 특별히 어느
한 팀을 편애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사원 간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요시하고 있죠 즉 당신과 같은 신인이 처음으
로 활동하기에는 저희만한 프로덕션이 없다는 소리입니
다 ”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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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케이 케이는 목소리의 고저 없이 사무적으로 자신
의 프로덕션을 PR했다 하지만, 지우의 귀에는 그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신경은 케이 케이
의 손에 들린 작은 카드에게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카드가 아니었다 플


라스틱이 아닌 금속제 그 위에 일련의 인식 번호와 초인동
맹의 로고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초
인력과 초인명이란 항목 옆에 약간의 공백이 있었다 케이
케이는 그 공백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에 이제부터 당신의 초인명이 들어가게 됩니다 실
명은 동맹의 규정 상 A焙할 수 없으므로 프로덕션에서 정
한 초인명을 ‘기억' 시켜야 하죠 그리고 초인명이 기억됨으
로서 그 면허증은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코I’'

지우는 반신반의하던 부분이 확실해지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지금 그의 손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선망해마지 않
는 물건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억만큼을 떠넘겨준다고 해
도 가질 수 없으며, 오직 동맹이 인정하는 극소수의 초인들
만 보유할 수 있다는 초인 면허증!
“자 면허증을 한시라도 빨리 갱신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서 저희 프로덕션과 계약하십시오 당신의 초인
력에 어울리는 초인명과 기믹을 정해드리겠습니다”

160
44

“혹시 시장의 유행 때문에 원치 않는 기믹을 얻게 될까봐


두렵습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다른 프
로덕션과 달리 계약자의 희망을 최우선으로 반영하고 있습
니다 행여 초인명을 개명시키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안심
하셔 도 . ”
거기까지 말하던 케이 케이는 살며시 왼쪽 눈 밑의 미인
점을 실룩거렸다 초인 면허증에 정신이 팔린 지우가 자신
의 얘기를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이대로는 백
날 얘기해봐야 헛수고지 그는 날쌔게 손을 움직여서 지우
의 손에 들린 면허증을 낚아챘다
“뭐,뭐하는거예요?''
“방해물을 치운 것뿐입니다 그럼 다시 계약 얘기를 하도
록 하죠”
......이 인간은 계약 못하다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지
우는 불만스런 눈으로 케이 케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일단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야 계약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뭣보다 저에게 초인 면허증이라니, 뭐
가 잘못 된 거 아니에요? 전 그런 거 받을 이유가 없다고
요 ''

“그 말은 동맹의 결정에 이의가 있다는 것입니까?”


“이, 이의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왜 그런 결정이 나왔
나 궁금해서요 그도 그럴 것이 저한테 초인력 같은 건 없다

161

제 5장 초인스카우트!
고요? 초인도 아닌데 면허증을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쓸데없는걱정입니다동맹에서당신에게면허증울발급
했다는 것은 당신에 게 초인력 이 있다는 확실한 결과를 보고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과? 보고? 지우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걸 동맹에 보고한단 말인가
“당신, 예방 접종을 제하고 병원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닙 니 까?”
“예?”
지우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
니 케이 케이의 말대로 자신이 제대로 병원에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별 의식하지는 않았지
만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다치거나 해서 병원에 온 적은 없
었던 것이다 이무리 건강한 체질이었다고 해도 한번쯤은
병원에 올 법 한데
“동맹의 초인 감별법은 대부분 병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병원 관계지들조차 모르게 환자의 검사 사이에 감별법을 끼
워 넣죠 그러니 병원에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동맹
의 눈에 띠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에 지우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설
마 동맹의 감별법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질 줄이야! 확실히
그 방법대로라면 종적을 남기지 않겠지 거기다 수많은 사
람들을 대상으로 효과적 으로 감별할 수 있을 테고 .

히 " 內

.l o 스
“무엇보다 당신의 초인력은 꽤 특이한 케이스라서 말이
죠 대부분 초인들이 스티그미를 외부로 발현시키는 방출
(政田)계라면, 당신은 내부로 흡수하는 축적(蓄橫)계라고
합니다 아마 이 때문에 더 자각이 없었던 거겠죠 일상생활
올 하면서는 전혀 사용할 일이 없는 힘이니까”
방출? 축적? 지우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 케이도 당장에 그가 이해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뭐 , 그건 앞으로 차근차근 알아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
니 일단 계약부터 하도록 하죠 계약서는 가져왔으니까 그
대로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지장은 지문을 남기기 때문에
할 필요 없고, 도장은 후에 기믹이 만들어지는 데로 파서 찍
는 걸로 합시다 계 약료는 선금으로 지불되며 , 로얄티는 활
동 건수 한 번에 8퍼센트 이건 신인 기준이라서 타 프로덕
션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계약 갱신은 1년
에 한 번이나’’
“자, 잠깐요! 잠깐만 있어 봐요!”
지우는 참지 못하고 케이 케이의 말을 끊었다. 가뜩이나
초인이 되었디는 것도 실감나지 않는데 그 이상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 초인 동맹과 그
프로덕션에 대해 이무것도 몰랐다 이런 상태에서 섣불리
계약했다가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이게 무슨 번갯불에 콩 구워

163

제 5장 초인스카우트!
먹는 일도 아니고 최소한 삼일... 아니, 일주일! 일주일
은 여유를 주세요 그 사이에 가족들과도 의논해볼게요”
일주일. 그 말을 듣는 순간, 케이 케이의 미인점이 다시
실룩거린다 그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됩니다결정은내일까지하는것으로하죠”
“예에? 내일은 너무 빠르잖아요! 일주일이 길면 사일, 아
니 삼일 이 라도 좋으니까 . !”
“내일까지입니다그이상은기다려줄수없습니다”
케이 케이는 별다른 협상의 여지가 없디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병실 문으로 걸어가면서 수중의 면허증
을 흔들어 보였다
“그때까지 이것은 제가 맡o斤도록 하죠 돌려받고 싶다
면 내일, 제가 드린 명함의 약도를 보고 프로덕션을 찾아오
시기 바랍니다”
“너무해! 이런 게 어디 있어요? 동맹의 일을 그렇게 멋대
로 처리해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저희에게 우선 접촉 권이 있는 이상, 당신의 모든
권리는 프로덕션 저스티스에 있습니다 즉 저희들이 먼저
손을 떼지 않는 한 당신은 어느 프로덕션과도 계약을 맺을
수 없디는 것이죠”
그럴 수가! 그 말은 결국 처음부터 선택권은 초인 개인에
게 없다는 거잖아? 지우는 기가 막혀서 케이케이에게 뻗은
손을 거두지도 못했다. 문을 나서던 케이케이는 그런 그에

1 64
게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리고 아까 기족 분들과 의논해보겠다고 하셨습니
까? 그럴 생각이라면 그만두십시오. 동맹의 규정 상 초인은
가까운 친지는 물론이고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정체를 밝혀
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어길시에는?
“초인 면허증은 해지되고 일생을 동맹의 감시 하에 살아
야 합니다 설마 노악(霞患) 쪽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
지 요?”
탕!

그 말을 끝으로 케이 케이는 병실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


고는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을 무시하며 수중의 면허
증을 갈무리한다 그렇게 막 병실을 떠나려는데-

발걸음을 멈췄다 방금 전만 해도 누군가 있었던 것처럼,


복도의 공기가 흐트러져 있었던 것이다 케이 케이는 병실
문에서 멀지 않은 한 모퉁이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 병원 방음시설이 형편없군.'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제
야 모퉁이 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 냈다
“거짓말.거짓말이지?”
오빠가,.
저 초인을 싫어하는 오빠7F

165

제 5장 초인스카우트!
“초인이라고?”
복도의 불빛에 비친 이는 다름 아닌 서은비였다 병실에
핸드백을 가지러온 그녀는 앞에서 오빠와 외국인이 나눈 얘
기를 모두 엿들었던 것이다!

166
제 6장

초 인프로덕 션 JUSTICE !
다음날정오
지우는 짧았던 입원 생활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고 있었
다 입원비는 어제 미라가 다 계산한 뒤였기에 따로 퇴원 수
속을 밟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간단히 간호사에게 주의사
항을 듣고 처방전을 받기만 하면 되었다
‘어디아픈데도없는데또무슨약을사먹으라는건지,
지우는 이 이상 병원 측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에 약국
에 가는 건 패스하기로 했다. 만약 이 자리에 미라가 있었더
라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겠지만, 다행히도 그의 엄마는
부재중이었다 어제 있었던 서울 초인월드 건으로 출판사에
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오빠,약국은이쪽이야”
‘..대신이녀석이온건가'
지우는 병원 입구를 나서려다가. 엄마의 대리로 온 은비
에게 간단히 저지당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동생에게
붙잡힌 손을 흔들었다

169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아, 됐다니까 가뜩이나 입원비도 아까운데 약은 또 무슨
약이 야?”
“안 돼 그러다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리고
처방전대로 따르지 않으면 병원에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준
단 말이야 왜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느냐~ 피해 보
상은 못 해주겠다~ 이 러 면서 ”
“어차피 보상받을 일도 없어”
지우는 약국으로 끌려가며 푸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
머니에 들어있는 명함을 만지작거린다 사실 그는, 오늘 퇴원
하자마자 명함의 프로덕션을 찾아갈 계획이었다 어제 이상
한 외국인의 협박도 있겠다, 자신이 초인이리는 것도 믿어지
지 않겠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야자 걱정도 할 필요 없고 말이야.
“그런데 정작출발하기도 전에 붙잡혀버렸으니, 원”
“지금뭐라고했어,오빠?”
지우의 혼잣말이 들렸는지 은비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 묘하게 경계가 서린 눈초리에 지우는 즉각
정 색 했다.

“주말 아침부터 달려와 주는 동생을 둬서 난 참 행복하다


“그 말은 꼭 내가 늦게 오길 바랐다는 말투네.”
“그, 그래도 면회시간 시작하자마자 오는 것도 좀 그렇지
않냐? 너도 주말에 친구를 만난다거나 이런저런 할 일이 많

1 70
을 거 아냐? 그런데 괜히 나 때문어F”
“걱정 마 나에게 오빠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은비는 환하게 웃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지
우는 고개를 돌려서 혀를 찼다 쳇 이래서야 씨알도 먹히지
않겠 군 .

‘어떻게든이진드기를떼어내야하는데'
“혹시 오늘 따로 볼 일 있어?”
그때 은비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지우는 도둑
이 제 발 절인다고 괜히 안절부절 못했다.
“어? 아니 뭐 볼 일이야 있으면 있다고도..없으면 없
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구나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거네 그럼 내가
함께 있어도 되는 거지?”
“뫼一?”
II •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어쩐지 아까부터


묘하게 엉겨 붙는다 싶더니 결국 처음부터 물고 늘어질 속
셈이었던 것이다 ‘젠장 이대로는 곤란한데' 가뜩이나 초
인임도 밝힐 수 없는 마당에 동생까지 데리고서 프로덕션을
찾아갈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그 괴팍한 외국인의 협박
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니 결국, 지우는 이러지도 저러지
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미안’오빠하지만이것도다오빠를위해서야’
은비는 속으로 사과하며 붙잡고 있던 오빠의 팔에 힘을

171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I
넣었다 그녀로서는 이대로 순순히 지우가 프로덕션에 가도
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업계의 사정을 몸소 체험해온 그녀
는 프로덕션이 신인을 상대로 어떤 횡포를 부리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덕션 저스티스라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
야 십중팔구 삼류 프로덕션일 게 분명해 아니, 그나마 삼
류라면 차라리 낫지 죽어 라, 일만 시키고 로얄티도 주지 않
는 악덕 프로덕 션이 라면. ’
그런 곳에 지우가 속하게 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이다 은비는 초조한 표정으로 연방 손톱을 물어뜯었다
‘절대로 그런 곳에 오빠를 맡길 수는 없어 어떻게든 더
좋은 프로덕션을 소개해주지 않으면 최소한 메이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신용할만한 프로덕션으로 하지
만, 내 정체도 밝힐 수 없는 마당에 무슨 수로 프로덕션을
소개시켜준다지? 역시 매니저 언니한테 부탁해볼까? 간판
초인인 내가 사정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그녀의 핸드백에서 진동이 느껴졌
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때마침 매니저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나이스타이밍!'
은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잡고 있던 지우의 팔을 풀
어 주었다
“오빠 나 잠깐만 전화 좀 받을게”

1 72
“아,저번의그남자친구?”
그농담,한번만더하면키스해버릴거야”
그 한 마디에 지우를 침묵시키며, 은비는 일부러 그에게
서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예상대로 하지연이었

“언니, 마침 잘 됐어요 제가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낼'


(오늘밤7시 여의도공원이야)
“예?”
다짜고짜 들려온 지시 사항에 은비의 말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는 전화기에 귀를 붙이며 낮게 윽박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지금 저더러 거기에 오라고요?”
(지금이 아니라밤7시.)
“그게 그거잖아요! 제가 분명히 말했죠? 의무 시간 초과
라고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란 말이에요!”
(알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다 알아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 사장님 명령이란 말이야)
“말도 안 돼 최 프로듀서님은요? 그 분이 반대 안 하셨어
요?,'

(반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시더라 어쨌든 잔말 말


고 제시간에 튀어나와. 알았지? 안 그러면 혜진이한테 위치
추적 시 킨 다)
뚜뚜뚜뚜 항의를 하기도 전에 전화가 무심하게 끊어졌
다 은비는 수중의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이내 허탈한 표정

173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을 지었다 사장과 프로듀서의 지시가 떨어진 이상 소속 초
인인 자신이 반대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히려 매
니저 언니와 팀 발키리의 동료에게 폐만 끼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럽잖아 프로덕션에 무슨 일이
라도 생긴 건가?'
은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우를 돌아보았다 어쨌든
저녁 7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그때까지는 오빠를 붙
잡아둘 생각이었다. 그 이후라면 엄마도 돌아오실 테고, 해
도 질 시간이니 외출은 단념하게 될 테지
‘그래, 오빠 내일이면 내가 좋은 프로덕션과 연결시켜줄
게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그녀가 돌아본 곳에는 방금 전만
해도 옆에 있었던 지우가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당했
다! 그 사이에 도망칠 줄이야!’ 은비는 다급하게 핸드폰으
로 오빠에 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기가 꺼져있사오니, 삐 소리가 나면-)
“어휴! 오빠 바보! 이 고집불통!,'

‘역에서내려서,주유소를못가왼쪽이라고?,
지우는 명함에 그려진 약도대로 프로덕션 저스티스를 찾
아가고 있었다 프로덕션은 의외로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망원역에 있었다. 으레 초인 프로덕션이라면 강남이나 삼성
같은 으리으리한 동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꼭 그

1 74
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지 초인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는가
‘....아니면정말마이너라서돈이없는걸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인도를 따라가자 곧 약도에 그려진 곳
과 비슷한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척 보기에도 왠지 모를
유서가 느껴지는 허름한 6층 빌딩이었다 빌딩 입구에는 음
각으로 한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지우가 짧은 한자 실력으
로 읽어보니 대충 연세 빌딩이라고 적혀 있었다
‘연세 빌딩 6층, 이 위에 프로덕션이 있는 거구나’
지우는 주머니에 명함을 집어넣으며 빌딩의 옆문으로 들
어갔다 빌딩은 무슨 공사라도 하는지 곳곳에 모래들이 흩
어져 있었고. 구석에 각목과 철골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괜
스레 뭐라도 넘어뜨릴까 싶어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
렀다 그러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타이머에 한숨을 쉬었다
o佇래도 건물에 전기가 나간 모양이다
‘이런 데서 정말프로덕션이 돌아가기는하는걸까?'
지우는 계단으로 올라가며 층마다 분위기를 살폈다 2층,
3층, 4층, 5충 어디에도 불이 켜진 층이 없었다 사람의 기
척이 느껴지는 곳도 없었고, 심지어는 도배도 되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는 층도 있다
‘그나마6층은낫군적어도사람사는흔적은보이니까'
지우는 혀를 차며 6층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그 옆으

175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로는 누군가 대문을 뜯어냈는지 실내가 훤히 보이는 A保실
이 있었다 만약 밑에서부터 확인하며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원래 문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저기요!누구안계세요?”
건물이 넓다 보니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지
우는 잠시 기다리다가 응답이 없자 그대로 시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초인 프로덕션의 실체에
할 말을 잊었다.
‘이걸뭐라고해야하나’
골동품가게?아니면창고?
하여간 그 비슷한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정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실 안에는 초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잡동사니들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저편에 보이는 것은 당
구대 그 옆에 보이는 것은 다트 판, 저편의 바닥에는 셀 수
도 없이 많은 도미노가 늘어져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책을
꽂아놓은 건지 쑤셔 넣은 건지 모를 책장과 학교 과학실에
서나 볼법한 해골과 인체 해부 모형 , 그리고 임시로 만든 듯
한 볼링장과 스쿼시 장, 그 외에도 은빛으로 번쩍이는 서양
갑옷이라거나 검도 호구라거나 먼지가 쌓인 드럼과 기타 등
등. . . . . . .

“대체이게다뭐야?”
지우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곳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뭔가 번쩍이는 것들이 잔뜩 들어 있는 장식

1 •'
l /O
장이었다 그는 안에 진열된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점점 얼굴이 상기되었다
“농F”
그것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아니, 적어도 지우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진열대 안에서 번쩍이는 물건들은 다이캐스
트 합금으로 만들어진 초인 피규어였던 것이다!
“맙소사! 초인횐 설마 저 시리즈들을 다 모았단 말이야?
초창기 모델까지? 저거 엄청 프리미엄 붙은 건데!”
지우는 진열대에 달라붙어서 연방 감탄을 터뜨렸다 그도
어린 시절 눈앞의 피규어들을 모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
지만, 피규어는 작은 것 하나가 가볍게 오 만원을 넘었기에
당시 어렸던 그로서는 감당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만 가끔 사고, 나머지는 카탈로그를
뚫어져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모은 것도 아빠가 돌아가신 뒤에는 다 처
분해 버 렸지 만 . ’
지우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간신히 장식장에서 눈을 뗐
다 불현듯, 자신이 어린 시절 포기한 컬렉션의 주인이 누굴
까 궁금해졌다 같은 컬렉터로서의 동질감이라고 해야 할까
경외감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장난감에 불과할지라도 저
정도 시리즈를 완성하려면 보통 이상의 열정이 필요했던 것
이 다.
‘역시 어제의 외국인이려나 저런 돈지랄이 기능한 건 사

177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rlCE!
장뿐일 테니까.
피규어를 좋아하는 사장이라니 정말 갈수록 정체가 모호
해지는 프로덕션이다. 사장이 그 모양이라면 그 밑의 직원
들은 과연력
콰당탕!
“꺅!'.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사무실 안쪽에 있는 방
에서였다 그 방은 떨어져나간 대문과 달리 제대로 문짝을
붙이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사장실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
었다. 지우는 조심스레 문의 손잡이를 돌리며 들어갔다.
‘‘이, 이를 어떡한다지 안경 내 안경”
방안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많은 책이 바닥에 쓰
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책 한가운데에서 아까부터 웬 검은
머리의 여성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
우는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어 살펴보다가 곧 자신의 발치
에 떨어진 안경을 발견했다
혹시 이걸 찾는 건가? 지우는 안경을 주워서 여자에게 가
져 갔다 .
“저기요.이거......”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적절한 순간에 오셨네요”
지우는 자신의 손을 더듬어 일어나는 여성에게 당황했다
자신을 그 괴팍한 사장과 착각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지만,
여자의 키가 생각보다도 커서 놀라웠던 것이다 저 정도면

1 78
가볍게 170은 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우 자신보다도 클지
모르겠다
그는 여자의 손에 안경을 지워주며 슬그머니 붙잡힌 손을
빼 냈다
“그래도 앞의 김사는 취소할래요 애초에 이런 곳에 책을
천장에 닿도록 쌓아두시는 사장님 이 잘못하신 거잖아요 또
지선 선배님과 내기라도 하신 거죠?”
여자는 안경을 쓰며 핀잔하다가 뒷말을 흐렸다 그제야
눈앞의 소년이 사장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라....”
그녀는 지우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곧 뭔가를 오해했는지
정색하며 말했다
“저희 사장님이 또 뭔가를 주문하신 건가요? 죄송스런 말
씀이지만, 우리 회사는 귀사의 물건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
니다 얼마나 돈이 없냐하면 현재 전기세와 수도세, 전화비
와 가스비가 끊긴 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 실정이죠 그러니
부디 가지고 돌아가 주세요 이미 카드로 결제하셨다는 거
짓말은 하지 마시고요 저희 사장님의 카드 한도액은 초과
된지 오래-”
“안녕히 계세요.”
지우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방을 걸어 나
갔다 그는 그저 속았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대체 저
직원과 이 방의 어디가 초인 프로덕션이란 말인가? 이건 그

179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I
저 도산한 회사일 뿐이잖아!
“저기.물건가지고오신분아니었어요?”
지우는 뒤편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사무실을 가
로질렀다 여자는 그런 그의 뒤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혹시 서지우 씨? 그쪽 이름이 서지우 맞죠?''
“아닙니다”
“맞잖아요? 사장님이 그러셨어요 오늘쯤에 안경 쓰고 성
질 나빠 보이는 꼬마가 올 거라고”
“아닙니다!’’
지우는 진저리를 치며 더욱 보폭을 빨리했다 누가 이런
미심쩍은 회사에 발목 잡힐 줄 알고? 당장에 나가주마 당
장에 도망치지 않으면눼
“가지마세요!”
一붙잡혔다?!
뒤에서 따라오던 여자가 그대로 몸을 던져 지우를 끌어안
았다 그 바람에 사색이 된 지우는 몸부림을 치며 여자에게
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그럴수록 끌어안
은 여자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제발 가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무려 삼년 만에 찾아온
기회란 말이에요l 그동안 저희가 신인 우선권을 따내려고
얼마나 동맹 측에 사정사정했는지 알아요?”
“커......수,숨아.....!’’
“이대로 당신을 놓치면 두 번 다시 저희한테 올 초인은 없

180
을지도 몰라요 서지우 씨, 당신은 실로 저희들의 희망! 아
니, 프로덕션 저스티스의 구세주인 거예요!”
“허리가..,등뼈가..!”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마세요! 하다못해 얘기라도 들어주
세요! 사장님이 오실 때까지만 이라도 제발요! 네?”
여자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했다 그런 그녀에게 안긴
지우도 덩달아 눈물을 홀렸다 왜냐하면 죽을 것 같이 아팠
기 때문에 그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내서 답했다
“알았어요 얘기는 들어볼 테니까 제발 제발 이 손
좀 . .. . . !”
“아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너무 감사드려요!
이것으로 저희도 동맹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생겼어요. 더
는 자금난에 허 덕 일 필요가 없다고요!”
“잠깐... 나는 들어가겠다는 말은 아직, 한 마디

○ 亡
~ 下 극 ~

항의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전에 먼저 지우의 허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댜 여자는 자신의 품
에서 지우가 축 늘어지자 예의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죽었다.”
‘아직안죽었어r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기쁜 나머지 그만...”

182
위이이잉
잡동사니의 산인 人悍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물
건인 소파 위에 두 남녀가 앉아있었다 여자의 거듭하는 사
과에도 지우는 묵묵히 전동 마사지기로 허리를 지압하기만
했다 마사지기는 여자가 건네준 사장의 컬렉션 중 하나였
는데, 조악한 플라스틱에 접합선 수정도 안 된 것이 척 봐도
홈 쇼핑에서 산 물건이었다
‘‘아, 그거 옥션에서 산 최초의 전동 마사지기래요 그런
걸 프리미엄 붙여서 이십 만원이나 주고 사다니 정말 이해
할 수 없다니까요? 저희 사장님이지만 어딘가 좀 이상한 사
람이 에 요”
‘내가보기엔댁이나사장이나다똑같아’
지우는 그렇게 말하려는 것을 참으며 전동 마사지기의 스
위치를 껐다 아직 허리의 결림이 풀리지 않았지만, 마사지
기가 점점 과열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괜히 고장이라도
내서 이십 만원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렇게 그가 마사지 기를 내려놓자 여자가 소매를 걷으며
나섰 다
“역시 그거로는 시원하지 않죠? 제가 직접 주물러드릴게
요 이래 뵈도 제가 악력이 좀 있어서 미사지에는 자신 있거
든요 . ”

“돼, 됐어요 이미 충분히 풀렸어요! 아무렇지도 않습니


다!”

183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지우는 사색이 되어 재빨리 사양했다. 그녀의 괴력은 이
미 앞의 베어 허그로 충분히 체험한바, 또 다시 그와 같은
고통을 맛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행여 여자가 다른 제안을
해올까 봐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내 정신 좀 봬 이제부터 같이 일하게 될 동료하고 통성
명도 하지 않았네요”
그러니까동료아니라니까
“서문연정이라고 해요 프로덕션 저스티스의 회계와 사무
를 맡고 있죠 원래는 초인 매니저로 입사한 건데, 지우 군
도 알다시피 저희 프로덕션에는 보유 초인이 적어서..”
여자, 서문연정은 그렇게 말하며 어설프게 웃었다 지우
는 한숨을 쉬며 그런 그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꽤 동안인
얼굴, 하지만 콧잔등으로 흘러내린 안경과 어리바리한 표
정, 거기다 퍼석퍼석한 머리카락을 대충 짚어놓은 머리핀,
마지 막으로 정장 바지 밖으로 뼈져 니온 셔츠 자락까지
‘믿음이안가..
대체 저런 사람이 어떻게 초인을 관리할 수 있다는 거야?
초인 매니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누군가를 관리
하려면 자기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전해졌는지 연정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래도 걱정하지는 마세요 실력도 경험도 부족한 저이
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초인 매니

1 84
지먼트는 첫째도 사랑! 둘째도 사랑! 담당 초인을 내 몸같
이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어련하시려고 지우는 속으로 조소하며 안경을 쓸어 올렸
다 그러다一
“그러니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게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
운 일이 있더라도 저만은 당신 편이 되어줄게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힘내서 함께 좋은 초인을 만들어 보자고요!”
一손을 멈춘다 그는 눈앞의 연정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절대로포기하지않는다고?’
초인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주제에, 인기가 없어지면 곧바
로 잘라버리는 프로덕션 주제에 마지막까지 함께해준다고?
그걸 지금 진심이라고 말하는 건가? 아니면 지우 자신이 무
지하다고 생각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럼 내 아빠는 왜 버림받았어?'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아빠는, 초인 라이트 세이버는
왜 잊혀 졌어야 했던 거야? 왜 동맹에서는 그를 없는 초인
취급하지? 연정이 말한 대로라면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지우씨?”
그래 다 똑같아 어차피 초인 동맹이나 그 밑의 프로덕션
이나 다 똑같은 장사꾼들일 뿐이다 겉으로는 세상을 위하
는 척 사람들을 위하는 척해도 결국은 자신들의 이익이 우

185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I
선이지 그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대며 사람들
을 속여 넘겨
‘바로지금의이여자처럼r
지우는 주먹을 움켜쥐며 눈앞의 연정을 노려보았다 그
적의 어린 시선에 연정은 영문을 몰라 반문했다
“지우 씨, 역시 많이 아프죠? 지금이라도 허리 주물러드
릴까요?”
읏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지우는 차마 연정에게
화를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저 얼빠진 미소만은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기 에 , 일부러 차갑게 쏘이붙였다
“그렇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 처음부터 여
기에 들어올 생각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여길 찾아온 건 그저 내가 초인이라니까,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려고 온 거예요”
“그,그랬군요”
연정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실망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
다 그 모습에 지우는 저열한 쾌감을 느끼는 한편 회의감을
느꼈다 이래서야 단순히 괴롭힘일 뿐이지 않은가 언제나
남에게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정작 자신은 그보다 나을 것도
없으나 .
그때 연정이 숙였던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럼 하는 수 없죠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일단

1 86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가르쳐드릴게요''
“예?”
지우는 뜻밖의 전개에 당황했다 계약을 거부하면 당장에
태도가 돌변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과분한 호의를 보인
것이다 이건 단순히 호인이라서 일까, 아니면 회유책인 걸
까? 그는 아무래도 후자일 거라 생각하며 경계심을 풀지 않
았다
“잘 대해준다고 제 생각이 바뀔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계약 때마다 그런 기대를 하면 여기서 삼년
씩이나 버틸 수 없어요”
그 절절한 대답에 지우는 단숨에 납득했다 과옌 이런 프
로덕션에, 그런 사장 밑에서 일하려면 체념도 빨라야 한다
는 건가! 연정은 그런 지우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 했 다
“저는 그저. 앞으로 초인이 될 지우 씨에게 조금이나마 불
안함을 덜어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솔직히 지금껏 민간인으
로서 살다가 깁자기 초인이 되면 겁이 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이고. 당연히 동맹 소속인 제가 지우 씨의 가이드를 해줘야
죠 이런 일에 사심을 집어넣는 건 관계자로서 실격이라고
요 ”

그 말에 지우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깐이라고 해도 이


런 사람을 의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뭐 눈에는

187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I
뭐만 보인다고, 자신의 의심 많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다
나 .
자실은책임감이강한사람이었던거야’
“아, 그래도 약간의 사심은 어쩔 수 없으려나 그도 그럴
게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잖아요 이러다 지우 씨가 마
음을 고쳐먹어서 저희와 계약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 도 하고
.‘내초인력이뭔지나가르쳐줘요”
지우는 연정의 말을 끊으며 쌀쌀맞게 물었다 그의 물음
에 연정은 테이블 위에 쌓인 서류더미들을 뒤적였다
“어디 보자 여기에 동맹에서 보내온 통지서가 있을 텐
데 아, 여기 있다 초인등록번호 184523번 서지우”
“184523번?초인이그렇게나많아요?”
“일단 동맹에 등록된 수는요 하지만 이중에서 초인으로
활약하는 분들은 반의반도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 중간마
다 결번도 있으니까 그리 많은 수는 아니죠 뭣보다 초인대
전 때 워낙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연정은 치분히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이름 서지우 나이 19세 생년월일은 1989년 7월 23일
키 178센티미터에 몸무게는 67킬로그램 쓰리 사이즈는 위
부터 92 85 88”
“뭐, 뭘 멋대로 읽는 거예요? 내 초인력만 가르쳐달라니
까요 I ”

188
“아. 미안해요 그래도 자신의 쓰리 사이즈 정도는 알이두
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왜냐면 나중에 초인 슈츠를 제작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대부분의 남성은 통 자기 사
이 즈를 모르는지 라 ‘ ”
“됐으니까초인력요r,
지우가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치자 연정은 곧바로 초인력
항목으로 넘 어 갔다
“동맹의 검사 결과, 귀하의 초인력은 외부의 충격을 자신
의 초인력으로 되돌리는 축적 계 능력으로 판명이 났습니
다 이는 대단히 희귀한 초인력으로서, 여태껏 국내에 선례
가 없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본사의 정밀 검사를 받길 추천
합니 다”
“외부의충격을초인력으로?”
지우는 연정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연정
도 이 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였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

“축적 계라나...... 저도 이런 계통이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 그도 그럴 게 초인력은 대부분 외부로 방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왜 능력을 전개하면 나타나는 스티그
마라거나 초인 슈츠로 발휘되는 물리력이라거나 그런데 축
적이라면 그 반대라는 건데. 이건 대체 무슨 뜻이려
나”
“말그대로외부의충격을흡수한다는뜻입니다”

189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그때 연정의 의문에 대답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깜짝 놀
라며 돌아본 곳에는 선글라스를 쓴 은발의 미소년이 서 있
었다 지우가 어제 본 프로덕션 저스티스의 사장인 케이 케
이였다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어느 새““. 지우가 그
신출귀몰한 등장에 망연자실하는 것과 달리 연정은 자리에
서 일어나서 사장을 반겼다
“오셨어요,사장님?마침서지우씨가오셔서...”
“붙잡o悍고 계셨군요 잘하셨습니다”
케이 케이는무표정하게 말하며 연정이 일어난소파위에
풀썩 몸을 던졌다 그 상전 같은 태도에 지우는 나지막이 혀
를 찼다 솔직히 자기보다 어린 외국인이 사장이라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의 태도를 보아하니 사장은 사장
이었던 것이다
케이 케이는 소파에 깊게 몸을 피묻으며 말을 이었다
“외부의 충격을 흡수한다, 라는 것은 어떠한 사고를 당해
도 상처를 입거나 죽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죽지 않는 초인력 쯤이 되겠지요”
“죽지 않는...... 초인력? 제, 제가죽지 않는다고요?”
“예 적어도 병이 들거나 수명이 다하지 않는다면 말이

“말도 안 돼 ! 그럴 리가 없어요. 제가 지금까지 죽을 뻔한


적 이 얼마나 많았는데 . !”
지우는 그렇게 외치려다 말꼬리를 흐렸다 확실히 죽을

190
뻔한 적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은 살아남았던 것이다 9
년 전 백화점 붕괴 때도, 엊그제의 초인 월드 때도 아프거
나 고통스러운 적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으로 생
각 했 는 데 코
“제가 어제 병원에 오는 것이 처음이냐고 물었지요? 그건
단순히 동맹의 감별법 때문에 물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당
신의 초인력이 제대로 기능(機龍)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
었 습니 다 . ”
케이 케이는 혼란스러워하는 지우에게 쐐기를 박으며 테
이블 위에서 서류 하니를 집어 들었다
“그 불사(下yE)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여기에 사인부터 하시죠”
사인? 그 말에 서류를 건네받던 지우는 황급히 손을 멈췄
다. A4용지의 첫 장에는 프로덕션 계약서리는 글자가 찍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 ! 이게 왜 안 나오나 했어 ! 지우는 행여
서류에 자신의 지문이라도 묻을까 봐 서둘러 케이 케이에게
돌려 주었다
“있어 봐요! 갑자기 무슨사인이에요?”
“역시 사인만으로는 불안하십니까 그럴 줄 알고 미리 당
신의 도장까지 파왔습니다 여기 인주도 있으니까 과감하게
찍 으십 시 오”
그러면서 케이 케이는 품에서 갓 피온 싸구려 도장을 꺼

191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내 들었다 그 모습에 지우는 기가 막혔다 아니, 저가 무슨
악덕 사채업자도 아니고 왜 남의 도장을 피온단 말인가? 그
러다 멋대로 도장 찍고 계약했다고 우기면 완벽한 사기 아
닌 가 !
‘자장남 지우 씨는 이미 저희랑 계약하지 않겠다고 하셨
는 데 요 .”
보다 못한 연정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케이 케이는 예
의 미인 점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그럼 여긴 왜 왔답니까?”
“그게 자신의 초인력에 대해 알아보러 왔을 뿐이라
고. . .. . .

“서지우 씨, 당신 맞을래요? 우리가 당신 궁금증이나


풀어 주는 사람입 니 까?”
그 노골적인 면박에 지우는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다 솔
직히 자신이 생각해도 염치가 없기는 없었던 것이다 계약
은 하지도 않을 거면서 자기 편할 대로 업계의 정보만 물어
보다나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갈 생각이었어요 바쁘실 텐데 시간 뺏어
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가면? 우리 말고 당신을 받아줄 프로덕션이라도
있 답니 까?”
케이 케이는 턱을 괸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제가 어제 말했지요 당신에 대한 우선 접촉 권은 저희가

192
가지고 있다고 저희의 허락이 없는 이상, 어떤 프로덕션도
당신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허락할 생각이 없
지요 결국, 당신이 초인이 되려면 저희 프로덕션괴읔,
“초인 따위 되고 싶지 않아요.”
지우는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의외
의 반응에 케이 케이와 연정은 서로 돌아보았다. 초인 따위
되고 싶지 않다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어요 어차피 이제 와서 깨달
은 초인력 따위, 무슨 소용이란 말이에요? 지금껏 모르고
살았어도 아무 문제없었잖아요?”
‘하지만, 지우 씨, 일단 동맹의 눈에 든 이상 초인이 되지
않으면 . . . . . .”
‘알아요 평생 동맹의 감시를 받게 된다는 거”
지우는 안절부절못하는 연정에게 미소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사람들한테 내가 초인력을
가졌다고 떠벌리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나만 입 다물고 있
으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요? 비밀만 지키면 동맹에서도 별
다른 제지는 하지 않겠죠”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지우 씨 자신의 사
생활이 없어지는 거라고요? 그 뿐만 아니라 니중에 결흔할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감시대상자가 될 텐데, 정말 그런 게
괜찮단 말이에요?”
“그래도초인이 되는것보다는나아요”

193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지우는 고집스럽게 말하며 人保실 현관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연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대체 왜 저렇
게 초인이 되길 거부하는 걸까? 아니, 그 이전에 어째서 저
토록 초인을 싫어할 수 있는 거지?
“그러고보니-”
그때 뭔가를 생각하던 케이 케이가 말문을 열었다
“-지우 씨의 부친이 초인 라이트 세이버였던가요?”
우뚝 지우의 발걸음이 멈춘다
“1986년 프로덕션 데스티니 소속으로 데뷔 의무 시간 대
부분을 구조 활동에 전념. 덕분에 연당 로케이션 횟수는 업
계에서 톱 처음에는 그다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
만, 후에 S모 백화점 붕괴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일약 레전
드(Legend)가 되었죠 아마 국내에는 최초로 SA랭크를 획
득한 초인이었을 겁니다”
그 설명에 놀란 것은 지우보다도 연정이었다 그녀는 얼
마나 흥분했던지 목소리까지 떨면서 소리쳤다
“저, 정말이에요, 사장님? 지우 씨가 그 초인 라이트 세이
버의 아들이란 말이에요? 정말의 정말로요? 프로필에는 그
런 거 전혀 적혀있지 않았는데!”
“자사가 보는 문서에 타사의 초인명을 기입할 리 없잖습
니까 요즘 라이센스 비가 얼만데 저도 직접 본사에서 물어
보고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럼 부자가 동시에 초인인 거군요! 그것도 아버님이

1 94
SA랭커의 레전드! 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센세이션
인 데 요?”
연정은 지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연방 탄성을 터뜨렸
다 케이 케이는 잠자코 등을 돌리는 지우에게 재차 물었다
“그런 훌륭한 부친을 둔만큼 아들인 당신도 초인이 되는
것이 꿈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어
째서 당신은 초인이 되길 거부하는 거죠?”

‘혹시 그 일 때문입니까? 3년 전 있었던 한강 대교 붕괴,


거기서 라이트 세이버가 사망한 것 때문에?”
一I

지우는 두 눈을 부릅뜨며 케이 케이를 돌아보았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의 그가 그러하리라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케이 케이는 여전히 심드
렁하게 말했다.

“그 일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맹의 사후 보장


제도는 확실하니까요 의무 시간 중에 사망하는 초인에 한
해서는 거 액의 보상금이一”
“사, 사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순간 지우를 대신해서 연정이 버럭 소리쳤다 좋게 좋게
말해서 사람을 붙잡아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막장으로 가면
어쩌지는 것인가? 솔직히 그동안 프로덕션에 신인이 들어
오지 않은 데에는 지금과 같은 사장의 언변도 큰 공헌을 해

195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왔다 연정은 안절부절 못하며 지우에게 말했다
“지우 씨?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원래 저딴 식으로밖
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것도 그럴 것이......외국
인? 그래! 외국인이잖아요! 한국말이 서투른 거예요!”
“실례로군요 저는 한국어 능력 시험을 6급으로 통과한
전적이 있습니다”
“사장님은좀조용히하세요!”
연정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고 다시 지우를 돌아보
았다 다행히 그는 그렇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입가에는 해맑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다 아, 역시
농담으로 생각해준 것일까?
“안녕히 계세요 당신네와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
수습불가!
지우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떠나버린다
연정은 차마 그를 쫓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속이 타들어갔
다. 아아. 이렇게 또 한 명의 초인이 떠나가는 구나. 이제 다
음번 초인이 오는 것은 언제이려나 반 년? 일 년? 그것도
아니면 십 년?
.그 전에 프로덕션이 망하는 게 먼저일 거야.'
“아쉽군요. 이번에는 잘 해보려고 했는데”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 사장의 말에 연정은 고개를 떨어뜨
렸다 프로덕션 저스티스가 부흥하려면 신인의 스카우트 이
전에 사장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것이

196
다 그녀는 자포자기하며 케이 케이의 앞자리에 주저앉았

“하아 그나저나 한강 대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러
는 걸까요?”
“라이트세이버가죽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요 단지 지우 씨가 그 일만으로 초인
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케이 케이는 테이블에 놓인 지우의 프로필을 가
리 켜 보았다
‘체가 앞에서 라이트 세이버의 초인명이 기입되지 않은
이유를 뭐라고 했었죠?”
“그게......라이센스비때문이라고.”
“그것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동맹의 초인 명단
에서 라이트 세이버의 이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연정은 안경 너머의 두 눈을 크게 떴다. 명단에서 찾이볼
수 없다고? 어째서?
케이 케이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지우가 나간
현관을 응시 했다
“32명이 사망한 한강 대교 붕괴. 그 사고의 책임을 지고
라이트 세이버는 동맹에서 제명당했던 겁니다”

저녁 7시. 여의도 광장에서 팀 발키리와 합류한 은비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197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I
“크래쉬 맨아제명당했다고요?'’
“그래 동맹에서 퇴출당했고 팀 크래쉬도 오늘 부로 해체
되 었어 .”
지연은 씁쓸하게 말하며 담배의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
옆에 있던 팀 발키리의 스태프들도 다들 침통한 표정을 금
치 못한다 은비는 마치 자신이 퇴출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말도 안 돼 !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너무 몰인정하
잖아요 ! ''
“몰인정해도할수없어”
“고의로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냥 실수였는데! 그것도
나대신 참가한 행사였는데 !”
“그 실수가 컸던 거야 부상자만 없었더라도 어떻게든 무
마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해요! 어쩜 디들 그렇게 냉정할 수 있어요? 사장님
도 프로듀서 님 도, 디들 어 떻 게 l'’
“서은비!’'
지연의 노기 어린 외침에 은비는 입을 다물었다 지연은
잠시 묵묵히 담배를 태우다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네 기분도 이해 못하는 거 아니다 초인인 너로서는 충분
히 부당한 처사겠지 하지만 우리도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
야. 크래쉬 맨의 퇴출은 널 위한 것이기도 해. 이번 일로 프

198
로덕션 빅토리의 이미지가 추락하면 그건 곧 간판 초인인
라이징 발키리의 추락으로 이어진다고 가뜩이나 한쪽 날개
를 잃은 마당에 나머지 날개까지 잃을 수는 없잖아.”
“그, 그러니까 그럴수록 크래쉬 맨을 감싸줘야죠 한 번
실수 했다고 내치는 건 프로덕션의 이미지에도.
은비의 표정이 점점 흐려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자
신의 의견은 억지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초인에 열광한다 하지만, 결코 초인에게 관대
하지도 않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초인들은 동맹을 결성
하여 지금과 같은 체제를 구축해왔다 조금이라도 더 사회
에 받아들여지려고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고,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으려고 초인력을 무상으로 공헌하고
그것은 이 사회에 초인이 존재히는 한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이 살아가는 한 변하지 않을 이데올로기였다 이제 와
서 초인 하나가 부정해봤자 꿈쩍도 하지 않을 시스템인 것
이 다
“어쨌든 결정된 사항이니 더는 토 달지 마 한동안 크래쉬
맨의 로케까지 우리가 뛰어야 하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질 거야 미리 각오나 해두고 있어”
지연의 통보에 은비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공허함
때문인지 무력감 때문인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너
무도 어지러워서- 왜 자신이 초인이 되었는지도, 왜 그러
한 결심을 했던 건지도 알 수가 없어졌다.

199

제 6장 초인프로덕션 JUSTICE!
F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내가 지켜줄 테니까쉑
‘나는 그저.... 그저 그때의 오빠처럼'
은비는 문득 이 자리에 없는 오빠가 보고 싶어졌디

20 0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프로덕션 빅토리 소속의 초인 크래쉬 맨이 전격 제명당
했습니다 초인 동맹 한국 지부는 오늘 아침 기자회견을 연
뒤 지난 토요일 날 벌어진 초인 월드 건에 유감을 표하며
오늘 중으로 크래쉬 맨의 면허증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습
니 다)
“시발!”
챙그랑!
크래쉬 맨, 한상준은 자택에서 TV를 보다가 울분을 터뜨
렸다 그의 발밑에는 방금 내던진 샴페인 잔 외에도 오만가
지 살림기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찬장에서 새로운 잔
을 꺼내 샴페인을 채우며 씩씩거렸다
“개새끼들!존나간사한새끼들!”
상준은 단숨에 샴페인을 들이키고서 비어 버린 술잔을 다
시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새 잔을 찾다가 더 이상 잔이
보이지 않자 병째 샴페인을 들이켰다
(한편, 프로덕션 빅토리에서는 동맹의 처분에 따라, 크래

203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
쉬 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피해보상금으로 10억 원을 청
구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처사에 네티즌들은 너무하다는
의 견과 당연하다는 의 견으로一)
“웃기지 마! 내가 저들을 위해 얼마나 좃뼁이를 쳤는데!
간도 쓸개도 빼놓고 시키는 데로 다 했는데l 그런데 뭐? 피
해보싱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썅!”
상준은 샴페인 병마저 바닥에 집어던지려다 신음했다 바
닥의 흩어진 유리 파편에 발바닥을 찔린 것이다 평소의 그
라면 항상 초인 슈츠를 입고 다녔기에 이런 상처쯤은 입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침에 퇴출 선고를 하러온
본사 직원들이 그의 집에 있는 초인 물품들을 모두 회수해
가버 렸다.
“어떻게 저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엉? 그토록 떠받들
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갑자기 ! 이렇게!”
상준은 아픔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눈시울을 붉혔다
너무나 억울해서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하소
연이라도 하면 그나마 나으련만, 불행히도 그의 말을 들어
줄 이는 o悍도 없었다 프로덕션의 사람들도, 그의 팬들도
전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두가 떠나
버린 것이다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이럴 수는 없는 거라
고. . . . . .

상준은 흐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껏 프로덕션에

204
데뷔해서 초인으로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
갔다 서러웠던 무명 시절, 그러다 프로듀서의 눈에 띠어 간
신히 자신만의 팀을 가지게 된 일, 그리고 아이돌 초인이 되
어 첫 앨범을 발매했다가 대박을 터뜨린 일 힘들고 고
된 스케줄 언제나 이등日信한 나날이었지만, 그것은 상준
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너무나도 값진 추

억이다 ‘
물론 그런 인기가 오래갈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언젠
가는 나이가 들고 유행에 뒤처지면 은퇴하게 되겠지 그때
는 초인이었던 경력을 살려 초인 매니저가 될 생각이었다
그러다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 자신만의 프로덕션도 차릴 수
있게 될 테고.
‘하지만이제끝났어'
동맹에서도 제명당하고 프로덕션에게도 버림받았다 거
기다 언론의 비난까지 받게 되었으니 실상 크래쉬 맨은 업
계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테고, 재기한다 한들 누구도 그를 달가워하지 않으리

그렇다면 민간인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 상준에게는
그것마저도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아이돌
초인으로서 자신의 얼굴과 육성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아무리 그가 크래쉬 맨을 그만두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를 크래쉬 맨으로 알이볼 것이다. 끊임없이 욕하며 손가락

205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질을 하겠지 그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인기 가도를 달리던
상준에 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몽이 었다
(이렇게 크래쉬 맨이 몰락한 것과 달리 동사의 다른
초인은 세븐 암즈에 정식 입단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
습니 다)
그때 상준의 귀로 익숙한 초인의 주제가가 들려왔다 힘
없이 돌아본 곳에는 막 핑크색의 슈츠를 입은 여자 초인이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초인 랭크 A의 초인 라이징 발키
리입니다! 현 검거율 1위의 그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
해 초부터 세븐 암즈의 입단 권유를 받아왔고, 이번 크래쉬
맨의 퇴출을 계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라이장발키라.’,
TV를 바라보던 상준의 눈빛이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그
는 마치 뭔가에 흘린 사람처럼 깨진 유리조각들을 밟으며
TV 앞으로 걸어갔다 그 바람에 발바닥에서 흘러니온 피가
섬 뜩한 붉은 발자국들을 찍 어 낸다
(라이징 발키리가 입단하는 세븐 암즈는 레인 맨과 마이
티 드래건, 나인 매지션과 같은 국내 최고의 초인들로 결성
된 초인 집단으로서 작년 초에 부상을 입고 휴식에 들어간
레이디 블레이드도 원래는 이 세븐 암즈의 멤버였습니다
평론가들은 이번 그녀의 입단이 한층 세븐 암즈의 전력을
상승시킬 계기가 될 거라고 밝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206
“그래.다저년때문이야”
라이징 발키리가 이벤트 행사를 거부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자신이 대신 행사에 참여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
라면 이번 같은 일은 없었으리라 상준 자신이 초인 면허증
을 해지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업계에서도 추방당하지 않았
겠지 그대로 승승장구해서 언젠가는 자신이 저 세븐 암즈
에 들어갈 수도 있었으리라
“저년만없었더라면,그랬더라면나도
TV를 보는 상준의 눈이 점점 분노에 물들어간다 같은 프
로덕션 출신이면서도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추락해야 되고,
그녀는 저토록 빛나야 한단 말인가? 마치 그녀가 자신의 모
든 것을 빼앗아간 것 같았다 그런 피해망상을 지울 수가 없

F이래서 아이돌초인이란lJ
무엇보다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행사장에서 자신
을 향해 그녀가 내뱉던 비웃음을!
‘‘크크큭그래”
상준은 어깨를 들썩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취기에 자
제력이 떨어졌는지 그의 오른손으로 예의 스티그마가 발현
되 었다.
“그렇다면 나도 빼앗이주지 라이징 발키라 네년의 소중
한 것을 부숴주겠어 내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으로 반드시 !
반드시 나와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주마!”

207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것이라면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
다 초인의 프로필은 같은 소속사의 초인도 알 수 없도록 기
밀로 부쳐지지만, 그래서 그는 라이징 발키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r아아! 오빠! 오HHF!J
초인 월드에서 그녀가 오빠라고 불렀던 소년 그때 소년
이 입고 있던 교복은 분명하

한성 고등학교
그 이름이 새겨진 교문 아래로 수많은 학생이 지나가고
있었다 놀토 부터 시작된 삼 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등교생들은 저마다 우거지상
들이었다 무슨 비교 체험 극과 극도 아니고, 가뜩이나 오기
싫은 학교를 삼일이나 쉬고 오려니 디들 죽을 맛일 수밖에
“하아”
물론 지우 역시 그런 학생들 중 한 명이지만 지금의 한숨
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말해봤자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었다 얼마나 중요한 선택이냐 하면 서울대 특차를 받
아들이느냐, 아니면 거부하고 수능을 치르느냐 정도의 압박
감이 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수험생아니랄까봐'
지우는 스스로의 빈곤한 상상력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

208
쉬었다 어쨌든 그는 남들이 보기엔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
도 이미 전자를 택했다 초인이 되지 않기로, 이대로 민간인
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
다 평생 자신을 혐오하며 사느니 차라리 후회를 남기는 편
이 몇 배는 나았던 것이다
‘그래초인따위는싫어정말싫으니까.,
“오빠, 정말 일요일에 별 일 없었지?”
그때 옆에서 들린 은비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린다. 지
우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여동생을 돌아보았다.
“몇 번을 묻는 거야? o呼 일도 없었다고 했잖아”
“그렇지만아까부터 계속한숨만쉬던걸”
“그거야...뭐.나만그런것도아니고”
지우는 말을 얼버무리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
럼에도 은비는 쉽사리 의심을 풀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지
우가 일요일 날 프로덕션 저스티스를 찾아갔디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그의 멱살을 붙잡고 추궁하
고 싶었지만-

느안돼자착한동생착한동생’
은비는 조바심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했다. 그리고는 이번
에는 약간 우회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오빠, 오빠는 만약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 야?”

209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숨겨?뭘?”
“그러니까 가령 사기 계약을 했다던가? 아니면 이상한 모
임에 가입했다던가 그런데 그걸 오빠가 알게 된 거야 그런
데 내가 도통 말을 하지 않아 그럼 오빠는 어떻게 하겠어?
일단 궁금해지겠지? 답답할 거 아냐? 어떻게든 가족으로서
도와주고 싶지 않겠어?”
“..대체 뭔 소리래 너, 나 몰래 무슨 피라미드 사업이
라도 했냐?”
어이없어 하는 지우의 반응에 은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역시 돌려서 말하는 건 나하고 안 맞아.
그렇다면 여기서는 좀 더 스트레이트 하게一
“그런 게 아니라.“뭐랄까 만약내가초인이 되었는데
그걸 오빠한테 숨긴다면복’
순간, 얼어붙는 지우의 표정 그 표정에 은비 자신도 아차
하는 기분이었다 바보! 이건 너무 스트레이트잖아? 거기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격?!

‘자기 자신도 초인이면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해버린 거야,


서 은비 ! '
남매는 긴장한 눈으로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하고 있었을까 “농F”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느하하하하 이야! 방금 그거 나이스다! 은비, 너 오랜만
에 제대로 웃겨주는데 !”

210
“호호, 호호호 그렇지? 재미있는 농담이었지?’.
“그, 그래도 너무 생뚱맞은 거 아니야? 갑자기 초......인
이 라니”
“그러게 갑자기 초 어. 어째서 그런 말이 나왔던 거
지 ?”
하이一 지우와 은비는 어색한 웃음을 거두며 한숨을 내쉬
었다 눈 가리고 이웅 이라고,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려니 이
게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어쨌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자 태평한 고1은 모
르겠지 만, 고3은 아침 x陰학습부터 보충 수업 이 란다”
그렇게 말하던 지우는 얼마 못가 발걸음을 멈췄다 전방
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싶어 다급히 안경을 고쳐 썼지만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검은 단발에 장신, 어수룩한 안경과 단정
치 못한 차림새, 거기다 저 한시도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
는력

첸장내가분명히말했을텐데”.非'
지우는 작게 혀를 차며 옆에 있는 은비를 돌아보았다 그
리고는 다짜고짜 그녀를 교문 쪽으로 떠밀었다
“은비야, 너 먼저 들어가 난좀 있다들어갈게”
“어,왜?”
“그냥 그런 게 있어 잔소리 말고 들어가 어서”
“하지만......”

211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은비는 영문을 몰라 주춤거렸다 하지만, 자꾸만 지우가
등을 미는 통에 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거기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영 오빠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
았다 이럴 때는 잠자코 그의 말대로 하는 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은비는 할 수 없이 교문으로 향했다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오빠도 늦지 말고 들어와”
“그래이따점심시간에보자”
“응청문회는그때하는것으로”

청문회? 무슨 청문회? 은비는 그렇게 묘한 여운을 남기고


서 교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우는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을 쓸어 내 렸 다
좋아.일단이것으로하나는해결했고......
지우는 심호흡을 하며 교문 앞 전봇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뒤에서 아까부터 몸을 숨기고 있는 인영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말 안 했던 가요? 두 번 다시 그쪽과 보고 싶지 않
다고 . ”
“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도 무리해서 찾아온 거란 말
이 에 요 .”
쑥스럽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 그녀는 다름 아
닌 프로덕션 저스티스의 직원 서문연정이었다.

?1 2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전 절대로 계약할 생각 없어요”
한성 고 근처의 편의점 지우는 크怪터에서 계산한 캔 커
피를 따며 단호하게 말했다 장소를 옮기자고 한 것은 그의
제안이었다 교문에서 외부인과 얘기를 나누기에는 여러모
로 눈에 띠었던 것이다 하물며 그게 초인 동맹 관계자라면
더 더 욱
“하야 어제도 들었지만 다시 들어도 참 가슴 아픈 말이네
요 역시 재고의 여지는 없는 건가요?”
‘없습니다”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할 것까지야.”
연정은 지우에게서 캔 커피를 건네받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지우는 괜히 가슴이 불편해졌다 7悟이
나 장신의 여자가 이렇게 지꾸 몸을 움츠리는 것이 영보기
가 안쓰러웠던 것이다 솔직히 그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자
신에게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죄가 있다면 다
그 이상한 외국인을 상사로 둔 죄밖에 없지
‘하여간이래서사람은줄을잘서야해’
지우는 냉혹한 사회의 룰을 되새기며 일부러 더 쌀쌀맞게
말 했 다 .
“어쨌든 그거만 드시면 곧바로 돌아가세요 지꾸 이렇게
학교로 찾아오시면 제가 곤란해진다고요”
“아, 미안해요 집으로 가면 문전박대 당할까봐 학교로 온
거였는데 역시 폐가 된 모양이네요”

213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됐어요 어차피 다 그 사장이 시키는 대로 한 거잖아요
사과할 거 없어요”
“예? 아, 아니에요 오늘 제가 온 건 사장님하고 관계없는
데 요?”
지우는 커피를 마시려던 것을 멈췄다 사장하고 관계없다
고 ?

“지우 씨를 찾아온 건 제 개인적인 용무 때문이에요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연정은 그렇게 말하며 편의점 구석의 휴식 터를 가리켰
다 지우는 턺險터의 아르바이트생을 곁눈질하며 연정의 뒤
를 따랐다 ‘남이 들어서는 안 되는 얘기란 건가?. 연정은
휴식 터의 테이블에 다다르자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어제 사장님이 말씀해주셨어요 레전드 라이트 세이버
지우 씨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사건에 대해서요”
두근눼

“2005년 4월 21일 한창 리벨리온과 초인동맹 간의 대립


이 심해지는 시기였죠 괴인들과의 싸움이 계속되던 중 한
강 대교의 5, 6번째 교각이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어요. 승
용차 5대와 버스 1대가 떨어졌고 32명이 사망, 17명이 부상
을 입었죠”
두근! 두근!

지우의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한다 그는 기슴


자락을 붙잡으며 짧게 신음했다 설마 연정이 그때의 일을

214
들춰내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연정은 그런 지우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나마 그 정도 피해에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라이
트 세이버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괴인들과의 싸움으
로 목숨이 오고 가던 중, 지우 씨의 아버님만이 조금도 주저
하지 않고 사람들을 위해 초인력을 사용하셨죠 그 때문에
정작 자신의 몸을 지키지 못했고, 그 사이에 괴인의 공격
o F”
“그만!”

지우의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다 그 바람에 카


운터에 있던 점원이 깜짝 놀라서 그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
았다 하지만. 지우는 이무것도 느끼지 못하고서 재차 소리
질 렀다
“그만해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기껏 사람을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 가 이 게 무슨 . .. . . !”
“끝까지 들어보세요, 지우 씨 제 말은......”
.듣기 싫어요! 당장에 때려치워요! 왜 내가 당신한테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해? 당신이 뭔데 그런 얘기를 끄집어내는
거야! 왜!''
“지우씨의 아버님 얘기니까요!”
연정의 호통이 지우의 말을 앗아간다 그 목소리가 크기
도 컸지만 그 표정이 지금까지와 달리 너무도 진지했던 것
이다. 뭐랄까. 박력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연정은 그렇게

215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지우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헛기침을 하며 예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끝까지 들어주세요. 라이트세이버의 노력에도불구
하고 그때 사람들을 전부 구해내는 것은 무리였어요 사망
자가 나오고 말았죠 그리고 얄궂게도 사람들은 그 부분에
만 주목했어요 초인 라이트 세이버가 사람을 죽게 했다!
그 하나만을 앞세운 채, 그동안 그가 쌓아온 업적을 무시하
고 헐뜯고 비난하는 데에만 열중했죠”

“그건 정말이자운이 없었던 거예요 시기가 너무 좋


지 않았죠 리벨리온과 초인동맹의 기믹 의혹이 있은 지 얼
마 되지도 않았고 또 한강 대교를 붕괴시킨 장본인들도 동
맹 소속은 아니지만 초인은 초인이었으나 결국, 라이
트 세이버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들을 모두 책임지고
서 제명당하고 말았죠 가장 명예로웠던 초인이 죽었는데,
그 죽음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그 명예마저 빼앗고만 거예
요 그건 이무리 동맹의 존속을 위해서였다고 한들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요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에
요I”

지우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테이블에 올려진 그의 주


먹은 분노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
다 연정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주

216
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까 지우 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
할 수 있었어요 분명히 아버님을 내친 동맹이 원망스러웠
겠죠 떠받들 때는 언제고 냉정하게 등을 돌린 사람들이 야
속했을 거예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초인은 너무나 쉽
게 잊혀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듯 마구잡이로 초인을 찍어
내는 프로덕션에게도 허무함을 느꼈을 테죠”
꾸욱 지우의 손을 잡은 연정의 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지우 씨, 당신이 진정 혐오하는 것은 초인이 아니라 그
초인의 희생마저 일회성으로 만드는 현 시장과 소비자들이
아닌 가요 ? , '
그 말에 지우는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연정을 바
라보는 그의 눈은 금세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붉어져 있
었다 .
“그래요.당신말대로에요.”
그는 연정의 손을 뿌리치며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당신 말 대로 난 초인을 유흥거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이 싫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꼭두각시놀음이나 하는
초인들도 싫어요. 전부 지긋지긋해요. 다 역겹다고요!”
“지우씨”
“초인력을 가지고 있으면 뭘 해요? 그걸로 사람들을 구해
봤자 아무도 알o튜지 않잖아요? 어차피 나중에는 잊혀질
텐데! 그럴 바에는 그냥 이대로 사는 편이 나아요 초인 따

217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위는 되지 않는 것이 낫다고요!’’
“지우씨.그마음은이해해요하지만”
‘뭘 지꾸 이해한디는 거예요? 프로덕션 소속인 당신이 이
해할 리 없잖아l”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3년 전에는 초인이었는걸요”
어엉력?
순간 그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불신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반응에 연정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듯 말
했다
“그게 3년이나 지나기도 했고또 그렇게 랭커도 높은
초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니름대로 열심히 활동했다
고요? 당시에 쉐도우 레이디(Shadow Lady)라고 하면 모
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 ”
‘줴도우레이디?!”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외치다가 입을 디물었다 아
까부터 그들이 계속 시끄럽게 떠들자 키운터 점원의 눈초리
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한층 목소리를 낮춰서 , 그렇지
만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연정에게 물었다
“정말쉐도우레이디였어요?당신이정말로그?”
“제 초인명, 들어본 적 있었어요?”
.듣다마다요! 쉐도우 레이디가 얼마나 유명했는데! 당시
에 국내 최초의 SM 초인이라고 해서 난리가 났잖아요''
“SM.....그러고보니그런오명도있었더랬죠”

218
연정은 달갑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이맛살을 찌푸렸
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한 지우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지
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인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쉐도우 레이디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3년 전 섹시와 도
발을 콘셉트로 나타난 초인이었다 물론 그뿐이었다면 지우
가 지금처럼 열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쉐도우 레이
디는 국내에서는 파격적이게도 일본 AV물에서나 니올 법한
검은 가죽 치마와 가죽 부츠, 채찍을 기믹으로 삼은 여왕님
캐릭터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아이돌 콘셉트에도 활동
은 로케이션 위주의 정통파였기에 적절한 대중성과 영웅성
을 가진 초인으로 평가받았다
r너희들의 죄, 내 발 밑에서 모두 읊게 해주마 뜨거운 밤
을 보낼 준비는 됐나!J
지우는 쉐도우 레이디의 등장 대사를 떠올리며 새삼 추억
에 잠겼다
‘그 도발적인 자태와 채찍 소리에 수많은 남자들이 밤잠
을 설쳤지 거기다 그 환상의 G컵이라던가, 허리라던가, 각
선 미 가. . . . . . .’
그렇게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그의 앞에
있는 연정에게서는 전혀 색기라거나 볼륨이 느껴지지 않았
던 것이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그냥
멀대 같이 크기만 한 키. 도저히 그때의 쉐도우 레이디와는

219

제 7장 초인 크래쉬 맨!
동일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환상의 G컵이어야
할 부분이 조금도 . 조금도
“저기그건어떻게..?”
지우는 차마 노골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하고 자신 없게 연
정의 가슴 부위를 가리켜보았다 다행히 연정은 질문의 의
도를 파악했는지 거리낌 없이 답해주었다
“아, 가슴요? 그건 슈츠를 제작할 때 패드를 넣었던 거예
요 솔직히 한국 사람한테서 G컵이 나올 리가 없잖아요? 그
런데 이미 프로필은 G컵으로 공개되어버렸던지라.”
‘속았다!내어린시절을돌려줘!’
지우는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깨닫고서 크게 실망했
다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가 가장 행복하다더니
그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나 보다
“그,그런데그런쉐도우레이디가어째서...?”
지우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연정은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
을 벗어보였다
“사고로 눈을 다쳤어요 어떻게 인가 수술을 받아서 실명
을 면하기는 했는데, 떨어진 시력이 회복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은퇴해버렸죠 눈도 보이지 않는 초인이
버텨낼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이 초인 업계는”
“그런 전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안경을 쓰지 않으면?”
“예 동맹에서 제작한 이 특수 안경이 없으면 봉사나 다름
없 어 요 .”

2?0
연정은 다시 안경을 쓰며 빙긋 웃어보였다 그 미소에 지
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잘나가던 초인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렸는데 그리고
모두에게 잊혀져버렸는데
‘그런데어째서저토록.'
그런 지우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연정이 진지하게 말했
다.

“비록 이렇게 된 몸이지만 전 후회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고 또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니까요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그때의 노력이 전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또 무의미하디는 생각이 든다면 무의미
해지지 않게 만들면 되는 거예요”
알아주지 않으면 알o斥도록
잊혀졌다면 다시 기억해내도록
“적어도 저는 그런 생각으로 초인 매니저가 되었던 거예
요 제 자신은 더 이상 초인이 아닐지라도.. 아직 이 손
으로는 사람들을 구히는 초인을 키워낼 수 있으니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서
마지막까지 최선을다하면,
‘그러면아빠도.醍..초인라이트세이버도클
‘현재의 초인 업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불평만 하지 마세요 불평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
니까요 초인이 될 수 있다면 초인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 ? ?
거예요. 아버님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우 씨 자신이
증명 해 보 이 라고요 ! ”
그 말이 결정타였다. 지우는 떨리는 눈으로 연정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손을 잡o듀며 상냥하게 물었다.
“지우 씨, 아까 제가 묻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죠? 지금
물어 볼 게 요”
초인 따위 정말 싫어
“당신은 정말 초인이 싫은 건기요?”
초인따위......

초인따위.,....
“나는......”
지우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뒷말을 흐렸다 평소에는 너
무나 쉽게 나왔던 그 말이 지금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손
을 붙잡고 있는 연정의 모습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
다 지우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나는 초인을 어떻게 생각하
는 거지? 나에게 있어서 초인은 뭐인 거야?
‘나는정말로초인을싫어하는건가?'
딸랑
그때 편의점의 입구 쪽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의
식중에 돌아본 곳에는 웬 훤칠한 키의 미청년이 가게 안으
로 들어오고 있었다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던 지우는 고개
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인데...
“후후후후후후”

223

제 7장 조인 크래쉬 맨!
의아해하며 시선을 거두려는데 갑자기 청년이 웃음을 터
뜨렸다 그는 가게에 들어온 내내 지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
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이내 지우의 옆에 있던 연정에
게로 옮겨진다
“하하하하찾았다!”
위잉혁

순간, 청년의 몸에서 기이한 광채가 발현되었다 오른손


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듯 나타나는 스티그마l 그리고 그 스
티그마에서 번져나가듯 청년의 옷이 오른손에서 전신으로
변이되어간다 연푸른색의 타이즈, 얼굴 절반을 가리는 헤
드기어 형 마스크 마지막으로 몸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
한 오른손 장갑 !
그 언밸런스한 기믹에 연정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맙소
사 저 사람은코
‘느크래쉬 맨?”
어째서 그가여기에 나타난거지?
의문은 크래쉬 맨이 휘두르는 오른손에 의해 사라졌다
빅 뱅 어택! 그 모든 것을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이 편의점
을 엄습했던 것이다!

??4
제 8장

초인각성 !
“얘. 아까 교문 앞에 있던 사람, 크래쉬 맨 닮지 않았니?”
자리에 앉아있던 은비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교실의
뒤편에서는 한창 클래스메이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
다를 떨고 있었다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예전에 크래쉬 맨이 얼굴
공개 했을 때 랑 판박이 더 라니 까”
“뭐, 닮은 사람인가 보지 근데 생기긴 엄청 잘 생겼더라
말이라도 붙여볼 걸 그랬어 .”
“아서라. 잘도 우릴 상대해주겠다.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
라도 있는 것 같던데”
거기까지 들은 은비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
렸다. .난 또 뭐라고. 닮은 사람 얘기였나., 면허증이 취소
된 초인은 한동안 동맹에서 외출을 허가받지 못한다 신변
정리라거나 증거 인멸이라거나 민간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크래쉬 맨이 무슨 수로 한성
고를 찾이온단 말인가? 동맹의 뒷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227

제 8장 초인 각성 !
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뒷사정이라,
은비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책상에 턱을 괴었다 동맹에
서 제명당한 크래쉬 맨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의는 그다지 좋은 관계였던 것은 아니지만, 같은 초인으
로서 그의 부당한 처사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
는 별개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o悍것도 없었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하지 않았다 동맹의 지시를 거역했다간 그녀
의 면허증 역시 취소될 테고. 그것은 팀 발키리의 해체, 동
료의 피해로 이어질 테니까 그녀 혼자 나댄다고 해결될 문
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래서 프로덕션을 독립하는 초인들이 있는 건가 나도
동맹의 뜻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슬슬 솔로를 준비해야할지
도. . .. . . '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은비의 등을 두들기는 손이 있


었다 돌아본 곳에는 구면인 여학생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
들고 있었다 은비는 시큰둥하게 여학생을 바라보다가 마지
못해 인시를 건넸다
“왔냐, 반장”
“야 너무하다 앞으로 같이 학급을 꾸려나갈 처지에 너무
쌀쌀맞은 거 아냐, 부?반?장?”
“부반장이라고 하지 마! 쪽팔려! 입학식 날 담임이 멋대
로 정 한 거 잖아?”

??8
“그럼너도지혜라고부르던가안지혜”
넉살 좋은 여학생, 안지혜의 태도에 은비는 인상을 찡그
렸다. 그녀는 솔직히 눈앞의 클래스메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 강제로 임시 부반장이 된 것만으로도 억울해죽
겠는데 임시 반장이라는 녀석이 묘하게 친한 척을 해왔던
것이다 어차피 투표도 하지 않고 선출된 임원직이면서 뭐
가 좋다고 실실거리는 걸까? 바보 같이 !
‘거기다 힉급 일 따위를 하고 있으면 오빠를 만나러 가기
힘 들다고 .’
은비는본심을삭히며 지혜에게서 고개를돌렸다
“반장이든 안지혜든 알 바 아니니까 신경 꺼 학급 일은
내 선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참 정 떨어지게 말하네 넌 자기 오빠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니 ?”
‘‘一l,’

무엇보다 은비가 지혜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바로 지금처럼 지혜가 자꾸만 그녀의 오빠를 들먹인다는 것
이었다 언제 그녀와 지우의 관계를 알아냈는지 집요하게
그 부분을 걸고넘어진다 은비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지혜를 노려보았다
“너 말이야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네가 언
제 우리 오빠를 봤다고끌’
“언제보긴.아까교문에서도봤는걸.”

229

제 8장 초인 각성 !
그 말에 은비는 따지는 것도 잊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를 봤다고? 교문 앞에서? 그 반응에 지혜는 고소하며
말을 이었다
“어떤 여자하고 같이 편의점에 들어가더라 엄청 키가 큰
여자였는데 아무래도 외부인 같더라고”
“외,외부인?”
말도 안 돼 오빠가 그런 여자랑 왜 그렇게 생각하던
중 은비의 뇌리로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볼 일이 생겼다며
다짜고짜 그녀를 보내던 지우 그때의 당황스러워 하던 언
행 확실히 이상했다 심히 부자연스러워 학교에 올 때까지
만 해도 이무런 말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볼 일은 무슨 볼 일
이 란 말인가?
‘그런데그게여자를만나기위해서였다면클
그러면 모든 게 분명해진다 확실해진다고! 우발적이든
돌발적이든 오빠한테 여자를 만날 일이 생긴 거야 그래서
날 따돌린 걸 테지 !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억측)
'절-대력로용납할수없어!’
화르륵! 결론에 도달한 은비의 등 뒤로 불꽃이 일어난다.
아니. 적어도 지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은비는 즉각 자
리에서 일어나며 교실 문으로 향했다.
.‘1교시 수업 전까지는 돌아와! 그 이상은 부반장이라도
못 봐줘 !”
싱글거리는 지혜의 외침을 무시하며 은비는 곧바로 신발

230
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발을 찾아 교정을 나
서려는더F 때마침 그녀의 핸드백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이럴때웬전화야l,
은비는귀찮디는듯폰을꺼내다가액정의번호를확인
하고 걸음을 멈췄다 번호는 그녀의 매니저였다.
은비는 신발장 주변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
리 전화를 받았다
“언니,무슨일이에요?저바빠요!”
(은비야! 괜찮냐? 별 일 없어?)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지연의 외침이 들려온다 은비는
영문을 몰라 반문했다
“별일이라니,무슨일이라도있었어요?”
(아, 아냐 없으면 됐다l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학교
는 조퇴해라 조퇴하고 바로 프로덕션으로 와 알았지?)
“예?그게무슨......갑자기조퇴를왜해요?”
은비는 느낌이 좋지 않아서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까지의
경험 상, 그녀의 매니저가 이렇게 당황할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연은 이번에도 최악
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게.젠장! 오늘 아침, 프로덕션에 크래쉬 맨이 찾아
왔다 이주 제대로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가버렸더라! 그뿐
이라면 모를까 그 망할 자식이 동맹에서 처분하지 않은 초
인 슈츠까지 들고 가버렸어 !)

231

제 8장 초인 각성 l
“초인슈츠를요혁?”
은비는 깜짝 놀라서 언성을 높였다 무면허인 초인이 슈
츠를 소지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동맹의 규정을 어
긴 것은 고사하고 잘못하다기는 이 레귤러 . 괴 인으로 간주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되어버리면 평생
올 동맹의 초인들에게 쫓겨 다니거나 리벨리온에게 몸을 의
탁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 왜? 왜 크래쉬 맨이 그런 짓을 저질러요? 뭣 때문
에 !’.
(그거야 모르지 한창 악에 받친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내가 어떻게 알아? 어쨌든 동맹에도 연락해놨으니까 너도
빨리 귀환해!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 자식. 혹시나 너를 찾
아갈 수도 있으니까)
“나를요?어째서...'.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전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
리가 교정에 울려 퍼진 것이다 은비는 황급히 신발을 신으
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이렌 소리는 교내에 한한 게
아닌 거리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건혁
“괴인경보?!”

희미하게 들리는 사이렌 소리 지우는 멀어져가던 의식을


붙잡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었다 그러자 칠흑 같던 시야
가 옅어지며 그 자리로 빛이 들어온다 무너진 가게, 부서진

232
유리 파편,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손 지우는 자신의 손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천천히 힘을 불어넣었다 낯설게만 느껴
지던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이내는 뜻대로 움직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마비되었던 감각이 깨어난다.
‘으아,아.’
처음으로 느껴진 것은 전신의 구석구석이 찢어지는 고통
이었다 지우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들었다 눈
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식은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니, 땀이 아니라 피? 피가 흘러나오는 건가?
‘아니야’
피는 아니다 지우는 눈으로 땀자국을 확인하며 안도했
다 그러자 긴장이 풀렸는지 한결 몸의 고통이 가셨다 지우
는 사지를 허우적대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투두둑- 몸
위에 쌓여있던 유리 파편이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낸다.
.뭐가.....어떻게돌아가는거지?'
몸을 일으키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앞의 폭발로 안경이
날아갔는지 시야가 흐릿했던 것이다 그래도 눈은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별로 위안이 안 되는 혼잣말을 하며 주
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곧 자신이 편의점 바깥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의 폭발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왔던 모양이다
‘다른사람들은?'
‘‘• • • ''

內 터 勺
스$⊃㉠

제 8장 초인 각성 !
그때 지우의 옆에서 미약한 신음이 앓는 소리 들려왔다
돌아본 곳에는 편의점의 곬任터를 보던 점원이 쓰러져 있었
다 그 모습에 지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점원에게 달려갔

“이, 이봐요 괜찮아요?”
“으으‘살려...”
점원을 일으키려던 지우는 하마터면 헛구역질을 할 뻔했
다 점원의 상태가 생각보다 지독했던 것이다 깨진 유리 파
편에 전신을 베였는지 입는 유니폼이 피투성이였고, 어디를
잘못 부딪쳤는지 팔과 다리가 전부 부러져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심하게軸齷 니는, 나는 o悍렇지도 않은
데. . .’
그렇게 생각하던 지우는 작게 신음했다 자신의 죽지 않
는 초인력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외부의 충격을 자신의 초
인력으로 되돌리는 능력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멀쩡한 것을 보니 정말 그런 힘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뭘감탄하는거야?지금이러고있을때가아니잖아!.
스스로를 꾸짖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에게 도움
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곧 이상함을 느꼈다 거리
가 너무도 한산해져 있었다 그렇게 많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차도에서도 x孺차들이 사라져 있다 거기다 근처의
가게들도 전부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234
‘괴인경보인가!,
지우는 그제야 사이렌 소리를 의식했다 그는 자신의 교
복 상의를 벗어서 유리투성이인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
점원을 눕혀주었다 팔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 잘못 옮기
다간 상처가 덧날 수도 있었기에 일단 그 정도가 최선이었
다 출혈도 어떻게 해보고 싶지만, 유리 파편을 제거할 엄두
가 나지 않아서 손을 댈 수가 없다
“제길! 대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지우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치다가 불현듯 편의점 쪽을 돌
아보았다 그래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 분명히
편의점에 누군가가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크래쉬
맨으로 변신했고 그 초인력으로 편의점을 뒤엎으면서-
‘크래쉬맨?'
지우는 자신이 떠올린 초인명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크래쉬맨이라면 그 아이돌 초인이지 않은가? 말도 안 돼.
그가 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초인이 민간인을 공격하다
니 그런 건 리벨리온의 괴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동맹 소속
의 초인이 할 짓이 아니라고!
‘그래 뭔가 잘못 본 걸 거야 초인이 그럴 리가 없지 사
람들을 지켜내는 초인이 사람을 공격할 리가. .. , ’
“네년 라이징 발키리였냐? 시발 존내 반갑다”
그때 폐허가 된 편의점 안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
다. 지우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편의점을 돌아보았다. 유리

235

제 8장 초인각성!
창이 부서지고 전기가 나간 가게에서는 아까부터 희미한 불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불빛은......스티그마?!
‘정말인가 정말 이런 짓을 초인이 했다는 건가! 정말
로. . .. . . I,

그것을 깨닫자 두려움보다 분노가 먼저 치밀었다 지우는


쓰러진 점원과 부서진 폐허를 둘러보다가 힘껏 주먹을 움켜
쥐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편의점 쪽으로 발걸음을
옮 겼 다
‘말도 안 돼 지금 뭐하려는 거야, 서지우? 뭘 할 생각인
거야!'
얼마 못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 자
리에 없는 서문 연정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점원이나
지우 자신처럼 밖으로 튕겨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가게 안에 크래쉬 맨과 함께 남아있는 모양이다
‘일단 도망쳐. 도망쳐서 경찰에게 연락해! 그럼 경찰에서
동맹에 연락할 테고, 동맹에서 초인을 보내줄 테지 이 상황
에서는 그게 최선이야 초인이 일으킨 문제는 초인이 해결
하도록 놔두자고 ! '
마음속의 외침과 달리 지우는 다시 가게 안으로 향했다
그는 부서진 문을 통과하며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나도초인이야.나도
스티그마는 가게의 안쪽에서부터 홀러나오고 있었다 지

236
우는 행여 상대에게 들킬까봐 스낵 바 사이를 기어서 통과
했다 그리고는 코너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레 불빛의 근원
지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크래쉬 맨과 그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연정이 있었다
“내가 너 찾아내느라 얼마나 좃뼁이질 쳤는지 알아? 시발
놈의 새끼들, 누가 저들 보물단지 아니랄까봐 엔간히 꽁꽁
숨겨 놨어 야지 ”
‘‘••,,

“그래도 다 찾아내는 수가 있더라고 내가 이래 뵈도 아이


큐가 좀 높거든 네까짓 년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지. 식은
죽 먹 기 였다고”
“아아아r,
크래쉬 맨이 우악스럽게 머리채를 잡아당기자 연정이 고
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채 연정을 자신의 눈높이까지 끌어올렸다.
“크크! 평소 개떡으로 알던 놈한테 붙잡혀서 기분 엿 같
지? 시발! 꼴좋다, 라이징 발키리! 그러게 진즉에 작작 무
시할 것이지 뭐가 정통파고 뭐가 로케이션이야? 어차피 벗
겨보면 네년이나 나나 똑같잖아!”
“나.나는라이징발키리가아니에요!”
연정은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간신히 반박했다 그러나 크
래쉬 맨은 수중의 힘을 풀지 않으며 되레 연정을 붙잡지 않
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복부를 후려쳤다 “아악!” 그러자 그

서㉠每
스 ㉠ /

제 8장 초인각성 !
녀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새하얀 빛으로 변한다 크래쉬
맨은 그것을 가리키며 이죽거렸다
“깝치고 있네 라이징 발키리가 아니면? 아니면 저건 뭔
데? 누굴 눈먼 봉사로 알아!”
“그건......”

연정은 신음을 삼켰다 무슨 변명을 하던 지금의 크래쉬


맨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림자의 빛은
그녀가 쉐도우 레이디 때 남겨둔 스카(Scar;상흔)였지만,
그는 그것을 라이징 발키리의 성혼으로 오인하고 있었다
“내가 다 알고 왔는데 어디서 오리발이야? 그리고 아니라
고 하면? 그러면 내가 풀어줄 줄 알았냐!”
그렇게 외치며 크래쉬 맨이 스티그p든 끌어올렸다. 산산
이 부수는 초인력! 그것을 바라보는 연정의 안색이 새하얘
졌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인가 그녀의 초인력으로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었지만, 상대가 초인력을 쓴다면 얘기가 달
랐다. 스카를 뛰어넘는 물리력일 경우 단번에 즉사할지도
모른다
‘‘그만둬!',
그때 크래쉬 맨의 만행을 보다 못한 지우가 스낵바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근처에 부러져 있는 진열대를 주워들고
그대로 크래쉬 맨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
투앙!
나무판자로 때렸건만 나오는 소리는 폭발음이었다. 아니.

238
실제로 폭발이 일어났다 크래쉬 맨이 연정에게 날리려던
빅뱅 어택을 나무판자에 사용한 것이다 그러자 나무판자는
지우가 붙잡은 부분을 제외하고 전부 날아가 버렸다 말 그
대로 분쇄, 크래쉬다!
“이참새좃만한새끼가!”
퍼억l
분노한 크래쉬 맨의 발차기가 지우의 아랫배를 후려쳤다
그것만으로도 지우는 거짓말처럼 허공을 날아 반대편의 냉
장고에 들이받혔다
“커헉I”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 캔들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지
우는 그 캔들에 전신을 얻어맞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배가.怪.‘허리7Fr
지독한 고통에 허리를 매만져보았다 다행히 척추가 부러
지거나 탈골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두 다리도 멀쩡하게 붙
어있고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죽지 않
는 초인력 ! 이 정도쯤은 문제없다는 건가?
‘문제없기는 뭐가 고통은 그대로잖아? 죽을 것 같이
아프다고 l '
지우는 눈물을 쏟아내며 가쁘게 숨을 헐떡거렸다 어떻게
든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런 그를 대신해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이가 있
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크래쉬 맨이었다. 그는 연정과 지

239

제 8장 초인 각성 !
우를 한 손에 각각 잡아들며 비 아냥거 렸다
“뒈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살아있었냐 그럼 살았
으면 곱게 도망이나 칠 것이지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다시
들어 와?”
‘‘••”

“거기다 감히 이 크래쉬 맨 님께 덤비다니l o序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네깟 우민이 초인인 나를 어떻게 할 수 있
을 거 라 생 각했냐?”
“웃키지마”
그때 지우가 이를 악물면서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크래쉬
맨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귀를 가져갔다. 이 다 죽어가
는 놈이 지금 뭐라고?
“너 같은놈아....무슨초인이야!’’
-l

생각지도 못한 일갈이 크래쉬 맨의 귀청을 두들겼다 그


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지우를 돌아보았다 너무 화가 나
다 보니 되레 웃음만 나왔다 하하, 하하하하-
“-하l 이제는 별 거지 같은 게 다 사람을 무시하는구만!’.
“크학!’'
“야. 이 시팔 새꺄. 너도 내가 우스워 보이냐? 우스워 보
여 ! 아이돌 초인은 초인도 아니라 이거야? 엉 !”
“컥! 어억!”
“개새끼, 그럼 어디 한 번 아이돌 초인한테 죽어봐라 아

240
주 배때기를 걸레로 만들어주마!”
크래쉬 맨은 난폭하게 지우를 흔들어대며 그의 아랫배에
계속 무릎치기를 꽂아 넣었다 그때마다 지우의 몸이 위아
래로들썩이며애처로운비명을토해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연정이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
“그만해요! 내가 라이징 발키리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만 풀어줘요l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사람을 괴롭히다니.
초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아요!.’
“다, 닥쳐!.’
아픈 곳을 찔린 크래쉬 맨이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닥쳐 ! 닥치란 말이야! 그 초인에서 날 끄집어 내린 게 누
군데? 바로 너희 년 놈들이잖아! 사람을 멋대로 떠받들다가
버려놓고서 뭐? 부끄럽지도 않냐고? 웃기지 마! 내가 왜 그
런 소리를 들어야 해? 난 피해자야! 너한테 모든 걸 빼앗긴
피 해자라고 !”
그는 고글 너머로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라리며 연정을 노
려 보 았다
“이런 내 심정 따윈 조금도 모르겠지? 아마 잘 나신 라이
징 발키리께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알게 해주지!
“너도 똑같은 피해자로 만들어주마l 똑같이 소중한 것을
빼 앗아주 겠 어 l ”
그러면서 크래쉬 맨은 지우를 들고 있는 손에 스티그마를

2센

제 8장 초인 각성 !
끌어모았다 그 모습에 연정은 비명을 지르며 지우에게 손
을 뻗었다.
“안돼!지우씨!’'
콰지직!
그녀의 손은 닿지 않았다 그 전에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
이 지우의 몸을 후려친 것이다!
“으아아악!”
전신을 구성하는 입자가 산산이 흗어지는 느낌! 지우는
크래쉬 맨에게 붙잡힌 교복 상의가 찢어지며 그 반동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는 편의점 벽을 관통하더니, 그대로 차
도 쪽으로 날아가 떨어진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즉사였을
테고, 초인이라도 슈츠가 없이는 무사하지 못할 공격이었
다 이번만큼은 죽지 않는 초인력이라 한들 지우의 몸을 지
켜주지 못했으리라
“으..’'

그러리라생각했는데.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편의점에서 연정을 데리고 나오던 크래쉬 맨은 지우의 신
음소리에 아연실색했다 분명히 죽일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
건만 여전히 상대가 살아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저 자식, 정체가 뭐야? 어떻게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을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최소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상 폭사되어야 정상이거늘!

2 산 2
절마녀석도초인인건가?'
하지만, 그런 우려와 달리 지우는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빅 뱅 어택을 받아낸 것만으로도 기력이 다 했는지 그대로
탈진했던 것이다
“하, 하하 그래! 그럼 그렇지! 네깟 게 내 초인력을 견뎌
낼 리 없지! 어차피 뒈질 거면 빨리 뒈지든가 할 것이지 어
디서 버티고 지랄이야? 건방지게시리 !”
수선을 떠는 것과 달리 크래쉬 맨의 표정에서는 초조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지우에게 다가가며 초인력을
끌어올렸다 괜히 후환을 남기느니 없앨 수 있을 때 없애버
릴 생각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돌 초인이었던 주제에
과격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었지만 양심의 거리낌은 없었다
초인력을 마음껏 발산할수록 할수록 묘한 해방감이 그를 지
배했던 것이다
“이걸로끝이다, 이 지긋지긋한놈!”
크래쉬 맨은 지우를 내려다보며 그 머리 위에 자신의 발
을 올렸다 그리고는 발꿈치에 힘을 실으려는 찰LF
“그더러운발떼.”
싸늘한 여인의 목소리가 그를 제지한다

“그더러운발떼.”
그 말을 하는 은비는 현재 화가 나있었다 얼마나 화가 났
느냐하면 전신의 피가 머리꼭대기까지 역류해 당장이라도

243

제 8장 초인각성!
모세혈관을 찢고 폭발해버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괴인
경보가 울렸을 때 밖에 있을 오빠를 걱정했던 그녀였다 그
때문에 자신의 활동 시간도 아니건만 초인 슈츠를 입고 현
장에 뛰어든 그녀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편의점에 도
착해보니 세상이 두 쪽 나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있
었던 것이다
쑥대밭이 된 편의점 유래 없이 엉망이 된 오빠의 모습
그리고 그런 오빠를 밟고 있는 크래쉬 맨-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그것만 봐도 상황을 알 수 있었
다 아니, 애초에 자초지종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
요한 것은 그저 저 머저리 같은 초인이 그녀의 오빠를 저렇
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소중한오빠를 감히,
‘감히감히감히-!’
무참히 상의를 찢고! 폭행하고! 실신 시키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머리를 밟아 죽이려고 했다 이건 뭐 더 이상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사형이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여주지 지옥 끝까지라
도 따라가서 죽여주겠어 ! 오빠에게 손댄 것을 피눈물이 나
도록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렇게 은비가 두 눈이 시뻘게진 줄은 꿈에도 모르며 크
래쉬 맨은 갑자기 나타난 그녀와 자신의 손에 들린 연정을

244
번갈아 보았다
“어째서 라이징 발키리가.어째서.?”
“그더러운발떼라니까”
은비의 종용이 그의 의문을 일축시킨다 그래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슈츠를 입은 라이징 발키리
가 나타났다 그럼 그걸로 되었다 누가 라이징 발키리인지
는 알 바 아니지 그에게는 화풀이를 할 대상만 있으면 충분
하 다
“악!’’
크래쉬 맨은 연정을 바닥에 팽개치며 은비에게 다가갔다
“오냐 너무 싱겁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 이제야 좀 붙
어 볼만 하겠구만!”

“零 지금껏 네가 무시해온 내 초인력을 보여주마 그


리고 로케이션 따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강하다는 걸 증
명해보이겠어! 그럼 세상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 정통파니
아이돌이니 구분히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복’
쾅!
크래쉬 맨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전에 은비의 번개
같은 일 권이 그의 마스크를 후려친 것이다 그녀로서는 크
래쉬 맨의 사연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저 오빠가 당한 것 이상을 그에게 되갚이주겠다는 생각밖에
없 었 다

245

제 8장 초인 각성 !
“자,잠깐비겁.!”
크래쉬 맨이 당황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
런 가드가 무색하게 은비의 발차기가 상단 위쪽으로 날아들
었다 앞의 스트레이트에 이은 브라질리언 킥! 크래쉬 맨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오른쪽 어깨와 가
슴 부위를 정통으로 가격 당했다.
“크억!”
빌어먹을! 이 꼬마계집아.l
크래쉬 맨은 뒷걸음질 치며 거대한 오른손에 스티그마를
끌어올렸다 제법 잔재주가 있는 것 같다만 어차피 한 방이
면 형세 역전이다 단숨에 가루로 만들어주지 l 그리고는 풀
파워의 빅 뱅 어택을 날리려는더F
‘어설퍼!'
은비는 크래쉬 맨의 펀치 안쪽으로 파고들며 되레 그의
명치에 무릎 치기를 날렸다 어차피 초인 대 초인의 싸움은
접촉 싸움 얼마나 상대의 스티그마에 닿지 않으면서 자신
의 스티그마를 닿게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평소 리벨리온의
괴인들을 상대해온 은비는 초인전의 요령을 체득하고 있었
지만, 로케이션이 전무한 크래쉬 맨은 이무것도 알 리 없었
다 애초에 이건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웃기지 마l 어차피 같은 초인이잖아 같은 초인력이라
고! 힘의 세기에서 패한다면 모를까, 로케이션 따위에 밀릴
까 보냐!'

246
크래쉬 맨은 은비의 중단 차기에 옆구리를 허용하며 신음
했다 그는 악에 받친 눈으로 은비의 움직임을 쫓으며 소리
쳤다 한 대만 맞아라 한 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대만 맞아라 제발 맞으라고!
“크아아앗!”
크래쉬 맨은 괴성을 지르며 은비의 어퍼컷에 배를 맞았
다 하지만,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좋아 이걸로 끝이다! 그는 오른손에 스티그마를 끌어올리
며 은비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산산이부서져랏!”
콰직!

크래쉬 맨의 오른손이 은비의 마스크에 적중한다 하지만


분쇄는 일어나지 않았다 스티그마가 채 전개되기도 전에
은비가 일부러 그의 주먹을 머리로 들이받은 것이다 초인
전의 두 번째 요령 l 스티그미를 피할 수 없다면 그 전에 스
티그마에 뛰어들어라! 스티그마의 위력이 극점에 다다르기
전에 먼저 접촉을 해버리면 그 위력은 반감되어버린다
주룩

은비의 바이저 밑으로 선혈이 홀러내렸다 스티그미를 감


소시키기는 했지만 완전히 중화시키지 못한 탓이었다 마스
크 속의 이마가 깨졌는지 피가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
린다. 하지만, 뇌에서 엔도르핀(endorphin)이 분비된 은비
는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허벅지의 스티그미를 전개

247

제 8장 초인각성 !
했 다
“싸움은-”
기합과 동시에 펼쳐지는 여신의 날개!
‘느파워 인플레이션이 아니야!”
투화악!
순간, 빛의 날개가 불꽃을 일으키며 점화한다 그러자 그
반동으로 그녀의 몸이 앞으로 내쏘아졌다 은비는 그 기세
그대로 크래쉬 맨을 들이받은 채, 그 뒤를 추격하듯 쉴 새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마치 그녀의 발차기들에 그
의 몸이 딸려 오르는 것처럼 상승하기 시작한다 평소의 라
이징 킥이 최고조에 달한 추진력을 적중시키는 거라면 지금
의 라이징 킥은 최고조에 이르기까지의 추진력을 이용한 연
격이 었다. 그 이름 하여 ,
별풍(褻夙)라이징킥l'
퍼엉!
은비의 마지막 발차기에 튕겨나간 크래쉬 맨이 비명도 지
르지 못한 채 허공에서 추락한다 그 일방적인 승부에 지상
에서 지켜보던 연정이 낮게 탄식했다
‘대단해 저것이 프로덕션 빅토리의 라이징 발키라 차기
레전드 후보로 거론되는 초인 !'
저대로라면 크래쉬 맨은 더는 문제가 안 될 지도l 그
렇게 판단한 연정은 서둘러 쓰러진 지우에게 다가갔다 그
의 가슴팍에 귀를 대자 미약하나마 심장의 고동 소리가 들

248
려왔다 연정은 그제야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
이다 살아있어! 그런 지독한 꼴을 당하고도 아직도 숨이
붙어있다니. 과연 죽지 않는 초인력의 소유자!
하지만 어째서 스티그마가 보이지 않는 거지? 초인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응당 그 흔적이 나타나야 정상일
텐데’
연정은 의아해 하며 지우의 몸을 부축했다. 일단 지금은
그를 깨워서라도 이 자리를 피히는 게 급선무였다. 크래쉬
맨이야 라이징 발키리가 처리한다고 쳐도 그 뒤에 인파가
몰려오면 상황이 곤란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죽지 않는
초인력만 믿고서 지우의 부상을 내버려두기엔 꺼림칙한 구
석이 있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그를 병원에 데려가야만
한다 .
“일어나봐요,지우씨.어서요!”
그렇게 막 지우를 일으키는데, 연정의 눈에 뭔가가 보여
왔다 저편의 골목 어귀에서였다 그 사이로 빛나는 무언가
가 지나가고 있다.
‘저게뭐지?'
그 빛을 눈으로 쫓자 이번에는 다른 장소에서도 비슷한
빛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그녀를 중심으로 일대
에 거대한 빛의 원이 생겨나 있었다
‘나를중심으로?아니야..이건내가아니라....'
연정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지우를 내려다

249

제 8장 초인 각성 !
보 았다
설마 저 빛이 바로 이 소년의코
콰앙!
그때 그녀의 옆에서 들린 굉음이 상념을 깨뜨린다 돌아
본 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크래쉬 맨이 부서진 보도블록의
잔해에 파묻혀 있었다. 그는 압도적인 라이징 발키리의 무
용에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전방에서 은
비가 다가오려고 하자 실성 한 사람처 럼 소리 친다
“히익 l 괴물 괴물 같은 년! 저리 가! 다가오지 마!”
“괴물이라고?”
은비는 민간인도 아닌 초인한테서 저런 소리를 듣자 기가
막혔다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자신
은 정작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을 초인력으로 괴롭힌 주
제에 자기보다 조금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고 대번에 꼬리를
빼는 작태라니 ! 은비는 한때나마 이런 인간을 동료라고 걱
정했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이런 근성이 썩은 놈은 자신
이 당한 그대로를 되돌려줘서 몸으로 깨우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으으,안돼안돼!”
크래쉬 맨은 은비가 멈추지 않고 다가오자 허겁지겁 구덩
이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머릿속에는 현재 도망쳐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저 괴물에게 붙잡혔다간 자
신은 맞아 죽으리라 그러니 그전에 도망치지 않으면. 하다

250
못해 몸을 보호할 무언가라도 찾지 않으면 . . . !
그때 크래쉬 맨의 눈과 연정의 눈이 미주친다 연정은 불
길한 예감에 지우를 안고 뒷걸음질 쳤다 이래서 빨리 몸을
피하려고 했던 건데!
“악!”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크래쉬 맨이 연정의 목을 잡아챘다
그 사이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품안의 지우를 옆
으로 밀쳐내는 것뿐이었다 은비는 설마 명색이 초인이었던
놈이 인질극을 벌일 줄은 몰랐는지라 그만 허를 찔리고 말
았다

“정말 막나가는구만 제명당했다고 더 이상 초인도 뭣도


아니 라는 거 야?”
“시, 시끄러워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바로 네년이잖
아!”
크래쉬 맨은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러웠는지 깨진 고글 사
이로 얼굴을 붉혔다 멋지게 복수할 생각이었는데 되레 궁
지에 몰려 인질을 붙잡다니 왠지 서글퍼지는 기분을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갈 데까지 간 몸 여기서 인질을 풀어주다간 제 명만 재촉하
게 되리라. 그는 수중의 연정을 라이징 발키리에게 들이대
며 협박했다

“어쨌든 꼼짝 마!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움직


이면 이 여지를 죽여 버린다!”

251
제 8장 초인 각성 !
“쳇”
은비는 혀를 차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성격 상 상대
방 좋을 대로 휘둘리는 인질극은 취향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동맹의 최우선사항이 인명 보호인 이상 여기서
는 일단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동맹에서 내놓은 대책이 괴인 경보였다 경보에는 사
람들을 대피시키는 것 외에도 초인이 마음 놓고 싸울 수 있
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크래쉬 맨은 순순히 은비가 인질극을 받이들이자 한결 마
음이 놓여 기세등등해졌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슈츠도 벗어버려! 날 이긴 것도 다
그 옷 덕분이겠지! 그래 그 옷에다가 뭔가를 장치해놓은
거야 틀림없어! 안 그러면 내가 너 따위에게 질 리 있겠
냐I”
‘.그냥인질이고나발이고다날려버릴까.
은비는 눈 꼬리를 떨며 진심으로 강경책을 고려했다 그
때문에 그녀도 크래쉬 맨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들의 발치
에 쓰러져 있는 소년 그 소년이 아까부터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디는 것을

‘초인은엔터테인먼트다.
그래. 그 말대로다. 초인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엔터테인
먼트일 뿐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겉으로만 보이는 이미지

252
이고 실상은 그 이미지로 이윤을 추구히는 징사다 거기에
는 어떠한 신념도 정의도 없었다. 모든 것이 거짓투성이였

그 때문에 사람들은 초인의 이미지에만 관심을 가진다
초인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는 알지도 못
한 채, 그저 그들의 헌신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그들의 희생
을 재미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재미가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않는 순간, 냉혹하게 등을 돌린다 잊어버린다 망각
해 버 린 다
r저거 뭐하는초인이야?J
r하여간 엄청 오래된 초인일 걸J
그렇게 내 아빠 또한 잊혀졌다 나의 영웅이었던 아빠는,
초인 라이트 세이버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음에도 불구
하고 버림받았다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책임을 지고서 생
전의 업적까지 부정당한 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牢軸.그래, 그래서 초인 따위는 싫은 거다 아삐률 잊어버
린 사람들도, 아빠를 저버린 동맹도, 무엇보다 무기력하게
잊혀 지는 초인이 나는 정말 싫어 !
‘아니야!'
지우는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었다 분명히 지금 세상에서
초인은 영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였다. 아이콘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고 있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여동생을 구하고 자신의 앞에 나타났던 영웅

253

제 8장 초인 각성 !
의 모습춘
r괜찮나,소년?J
감겼던 지우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다

“거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여자를


죽여 버린다!”
귀청을 두드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크래쉬 맨 그의 목소
리였다. 지우는 감았던 눈을 뜨며 힘겹게 눈동자를 움직였
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뜨였다 거기에는 크래쉬 맨이 서문 연정의 목을 붙잡고 웃
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라이징 발키리가
분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인질?인질을붙잡은건가!'
“그리고 그 빌어먹을 슈츠도 벗어버려! 날 이긴 것도 다
그 옷 덕분이겠지! 그래 그 옷에다가 뭔가를 장치해놓은
거야 틀림없어! 안 그러면 내가 너 따위에게 질 리 있겠
냐I”
크래쉬 맨의 협박에 라이징 발키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
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지우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라이징 발
키리가 크래쉬 맨의 말을 따랐다간 그녀의 목숨이 위험해질
게 뻔하다 그렇다고 그의 말에 불응하다간 붙잡힌 연정이
위험해질 텐데l
어느 쪽을 택하든 희생은 피할 수 없었다 누가 죽든 한

254
명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
다 !

“싫아”
순간, 지우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홀러나왔다 그리
고 그는 마비된 팔 다리를 채찍질하며 필사적으로 몸을 일
으키기 시작했다
“싫어 더 이상불평만하는건.싫어”
초인이었던 아배倡 잃고 나서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바로 무력감이었다. 초인으로서 사람을 구
한다, 그런 아빠의 유지를 잇고 싶었지만 초인이 될 수 없는
현실에 그는 좌절했었다 그 때문에 자포자기하고 초인을
미워해야 했다
r혼자서 동생을 지켜줬구나 정말이지 장한데?J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o得런 도움도 안 되는 힘일지라
도 지금의 그는 초인이었다 초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면 一

r초인이 될 수 있다면 초인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거예


요 아버님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우 씨 자신이 증명
해 보이 라고요 ! J
연정이 말한 것처럼 초인으로서 그녀를 구해내야 한다
그의 아빠, 라이트 세이버가 그러했던 것처럼! 최후의 최후
까지 포기하지 않고서 !
불평은그다음에나하란말이다!’

7 녁 民
←닌냅

제 8장 초인 각성 !
“으아아앗!”
지우는 고함을 지르며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전방의 크래쉬 맨을 향해 주먹을 내찌른다 탈진한 상태에
서 행한 그것은 일견 부질없어 보이는 몸짓이었다 너무나
보잘 것 없어서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저항이다 크래쉬 맨
또한 그렇게 느꼈기에 굳이 지우의 주먹을 막지 않고 내버
려 두었다.
위잉코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지우의 주먹이 크래쉬 맨에게
닿는 순간, 일대에 퍼진 빛의 고리가 놀라운 기세로 수축되
었다 그리고는 수축된 고리가 지우의 머리 위에 모여들더
니 이내 손바닥만한 크기로 압축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예전부터 보아온 천사의 고리가 바
로 스티그마였음을!
F귀하의 초인력은 외부의 충격을 자신의 초인력으로 되돌
리는 축적 계 능력으로 판명이 났습니다J
r말그대로외부의충격을흡수한디는뜻입니다J
외부의 충격을 흡수한다! 그 말은 곧 모든 충격을 저장한
다는 것. 그리고 저장하는 게 가능하다면 해방시키는 것 또
한 가능하리라! 거기에 생각이 미친 순간 죽지 않는 초인력
이 진정한 힘을 발휘했다 크래쉬 맨에게 닿은 지우의 주먹
을 통해 지금껏 그가 받아온 모든 충격을 원주인에게 되돌
렸던 것이다!

256

..' ” w竟' 넒 처. 폐세F빼휸뺌.“ ,‘빼 빼력떼헤귀'됐.'#'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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熙,
뺑 ''J:r▽쪘.
투아아아앙-
크래쉬 맨은 수중의 연정을 놓치며 무시무시한 힘의 폭포
에 휩쓸려나갔다 더는 그의 초인 슈츠는 제 기능을 하지 못
했다 몇 배나 증폭된 산산이 부수는 초인력 앞에 슈츠의 아
다만티움이 분자 단위로 조각났던 것이다 그것으로도 모자
라 그는 편의점 앞의 차도를 따라 한 블록 가까이 날아가더
니 공중의 도로 표지판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야말로 자업
자득이리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맙소사““”
“주, 죽은 거 아냐?”
연정과 은비는 경천동지할 지우의 힘 앞에 벌린 입을 다
물지 못했다 둘 다 초인업계의 관계자로서 지금과 같은 광
경은 생전 보도 듣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을 수직으
로 오백 미터 넘게 날리는 물리력이라니! 이건 이미 괴력이
라는 말로 표현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슈퍼 파워l
전무후무한 초 인 력 이 다 I
털썩.

놀람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시에 힘을 해방한 탓


인지 지우가 그녀들의 앞에서 거꾸러진 것이다
“오빠!”
“지우씨!”
지우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천천히 숨을 거
뒀다. 예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던 가사 상태였다. 죽지 않는

258
초인력을 사용한 대가로 그는 그때마다 죽음을 체험해야 했
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이 죽음과도 같은 휴
식이 끝나면 다시 눈을 뜰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때는 지금보다 좀 더 솔직해진 자신과 만날 수 있으리라 생
각했기 에 .
그랬기에 그는 웃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었

‘아빠..'
사실은나,
초인이 좋아요
너무너무좋아해요,아빠

259

제 8장 초인각성 !
p
F

에 필로그

초언동맹에 어서 오세요!
그 일이 있은 지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초인 슈츠의 내구력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크래쉬 맨은
영구 제명을 당했고, 지금은 동맹이 관리하는 교도소에 수
감되 었다고 한다
남부러워할 것 없던 인기를 받다가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
초인의 기분은 어떠할까 그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했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크래쉬 맨의 기분을 십
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되레 절감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와 다를 게 없었으니까 아베듣 잊어버린 세상을
원망하며 끊임없이 불평만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로 알게 되었다. 불평만 해서는 이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무언가를 바꾸려면 나 스스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랬기에 나는 뛰어들기로 했E뚱

그날 저녁

263

에필로그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식사를 거르고 내가 찾아간 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시
립 도서관이었다 평소에는 시험공부를 하거나 야자 대신으
로 들르는 곳이지만 오늘은 그런 이유로 찾아온 게 아니었
다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그 포스터에 적혀있는
장소가 여기였기 때문이다
동아리 방을 이런 데로 잡다니 영웅이 자식,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나는 도서관 2층의 구석에 도착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내
앞에는 게시판의 포스터와 똑같은 포스터들로 도배된 문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저기가 포스터의 출처, 그의 죽마고우
가 운영하는 초인 연구회이리라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다가 곧 할 수 없
이 손잡이를 돌렸다
“실례합니다”
“잘 왔다, 친구여 I 드디어 돌이올 결심이 선건가!”
빨召峠! 문을 열기가 무섭게 니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
었다 거기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2층 복도를 지나
는 사람들이 일제히 내 쪽을 돌아본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흠. 그토록 열성적으로 들어오다니 네 각오를 엿본 것
같아 조금은 기쁘군”
“시끄러! 지금의 어디가 열성적이야! 그냥 쪽 팔려서 들
어온 거잖아!”

264


“부끄러워할 것 없다 이 방에 들어온 이상 너도 한 명의
흘륭한 초인 인이다”
나 돌아갈래! 그렇게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누
르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이 방의 주인이자 초인
연구회의 부장,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 팔년 지기 친
구인 허영웅이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찾아온 것이 기뻤는지
연방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젠장 그렇게 웃으면 돌아갈 수가 없잖아 나는 힘없이 어
깨를 늘어뜨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왜 이런 데다 동아리 방을 빌린 거야? 번거롭
게 스라”
“그야 학교에 남는 부실이 없으니까”
간단한 이유였다 확실히 이 대한민국에 교실이 남아도는
학교가 있을 리 없다 또 있다한들 대부분 운동부의 차지였
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그나마 서클 활동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초인 연구회는 학교에서 인정한
동아리도 아니니 더더욱 부실은 꿈도 꿀 수 없었겠지
“매 주마다 방을 신청해야 한다는 게 귀찮지만 그 외에는
여러모로 학교보다 쾌적한 곳이다 일단 선생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까 만화나 동인지도 맘껏 볼 수 있고 뭣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면 흔쾌히 야자도 빼주시지 !’.

왜 나는 영웅이 녀석이 선생님의 눈치를 봤다는 게 더 놀

265

에필로그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라울까?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아리 방은 영웅
이가 꾸민 것치고는 제법 쾌적하게 꾸며져 있었E\ 라기
보다는 필요 이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TV에다 디브이디 플레이어. 게임가....거기다 심지어는
냉장고까지? 아니, 저걸 다 어떻게 옮겨왔대? 다른 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서 무슨 수로! 뭣보다 관리인
이 저런 걸 허락해준단 말인가?
그렇게 놀라워하는 내게 갑자기 영웅이 손을 내밀어 왔다
“어쨌든제자리에돌아온것울축하한다,서지우”
“뭐?”
제자라라고? 나는 멍하니 그 말을 되새기다가 안경을
고쳐 쓰는 척했다 그 제 자리라는 게 초인 연구회를 말하는
건지, 다른 무엇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괜히 코끝이
찡해졌던 것이다
‘멋대로 떠난 건 나였는데. 그러다 멋대로 돌아온 건
데 . ,
그럼에도 여전히 내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것도 예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것이 너무나 기뻐서 나는
힘껏 영웅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줄곧 내 자리를 지켜
준 그에게 진심으로 감A튼 표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둘이서말이지!.'
악수를 하던 손이 엇갈리며 하이파이브로 변한다 나와

266
영웅은 그렇게 서로 p序 보며 씨익 웃었다 비록 3년을 허
비해버렸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우리 둘의 초인 연구회
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이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한창 영웅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던 나는 영문을 몰라 문 쪽을 돌아보았다 이런 동아리
에 나 말고 또 누가 찾아온 거지? 설마 관리인? 우리가 너
무 시끄럽게 굴어서 주의를 주려고 온 건가?
‘누구세요......’
문을 열던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문밖의 방문객이 생각
지도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l 뒤로 묶어 내린 단발 한
성고의 여자 교복 거기다 낯익은 그 얼굴은?
“하나야?”
내 클래스메이트인 정하나l 어,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있
는 거지? 그보다 어떻게 여기를 찾아올 수 있었던 거야? 나
는 너무나 뜻밖이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네, 네가 여긴 웬 일이야?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어쩐일이냐고해도
하나는 덩달아 당황하며 손에 쥐고 있던 뭔가를 들어보였
다. 그것은 초인 연구회의 포스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봤음
에도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하나가 그 초
인 연구회에 무슨 볼 일인데? 설마 이런 정체도 모를 동아
리에 가입하려는 건 아니겠지?

267

에필로그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별 뜻이 있는 건 아니고 그, 그냥 궁금해서! 지우가
여기에아니, 지우 친구가 여기에 있다니까 난 그
냥 . ’'
“내 친구? 허영웅이 궁금해?”
저번에는 내 여동생이 궁금하다더니 이번에는 내 친구가
궁금하다고? 뭐야 전혀 모르겠어 대체 거기에 무슨 의미
가 있는 거야? 차라리 궁금해 할 거면 날 궁금해 하던가 할
것이지 . 왜 지꾸 내 주변 사람들만 궁금해 하는데?
그런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하나가 더욱 얼굴울
붉혔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할 말을 찾더니 갑자기 내 뒤
편에 있는 영웅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그래! 얘l 저번에 네가 말했지? 크래쉬 맨은 초인이 아
니 라고?”
“음 확실히 그 말을 한 건 내가 맞다”
영웅이 동의하자 하나는 대번에 화색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크래쉬 맨에게 그런 일이 있었잖아? 그걸
보니까 ‘아~ 난 진짜 초인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
라고 그래서 한 번 제대로 초인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말이
야 괘 괜찮다면 동아리 에 들어가 볼까 하고”
어이, 아가씨 어떻게 들어도 급조한 거짓말 티가 팍팍 나
잖아 니는 한숨을 쉬며 영웅의 눈치를 살폈다 하나가 저토
록 애쓰는데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면 좋으련만 저 직설
적인 놈이 그런 요령이 있을 리 만무하고.

268
‘역시여기서는내가중재해야-'
.좋아! 가입을 허락한다! 널 오늘부로 우리 연구회의 부
원 1호로 임명한다!”
속여 넘겼다?l 거기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거짓말조차 눈
치 못 챘어! 나는 하나와 거칠게 악수를 하는 영웅의 모습
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엉겁결에 이런 수상쩍은 동아
리에 가입하게 된 하니률 진심으로 동정했다 또 한 명의 멀
쩡한 애가 망가지게 생겼구만
‘이렇게 되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으로 시작하게 되는 건
가?'
뭐, 이런 것도 괜찮겠지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문의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그
리고는 포스터에 그려진 초인을 향해 재차 다짐했다 라이
트 세이버라는 초인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또 그가 우리를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음을.
‘모두가 기억해내게 하겠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도록
만들 거야I’
초인으로서 내가 반드시-!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정식으로 프로덕션 저스티스에 등록한 나를 기다리고 있
던 것은 냉혹한 업계의 현실과 무자비한 사장의 횡포였다.
“이걸 입고 일을 하라고요?”

269

에필로그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몸에는 동맹에서 갓 발급한 따끈따
끈한 초인 슈츠가 입혀져 있었다 그런데 그 초인 슈츠가 보
통 비범한 디자인이 아닌지라
해골에!
흑백에!
붉은머플러까지!
그야말로 지금껏 내가 보아온 어떤 초인보다도 희귀한 몰
골이었던 것이다 이런 옷을 입고서 앞으로 초인으로 활동
하라고? 싫다 그런 건 죽어도 싫어 l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엘
프 코스프레를 하고 명동을 뛰어다니는 게 백배는 낫다 이
건 정말 아니야!

그렇게 좌절하는 내가 딱해 보였던 걸까 사장, 케이 케이


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초인 슈츠는 그 초인의 얼굴입니다 간판이지요 그리고
그런 간판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임팩트입
니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주목성 ! 얼핏 보고도
기억하게 하는 파격성 ! 일단 그런 임팩트가 있어야 사람들
의 관심을 끌 수 있고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게 할 수 있습
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언데드 맨(Undead man)의 디
자인은 정말 훌륭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잊어줘요! 제발 잊어줘요! 그리고 그 초인명은 절대로

270
안 한다고 했잖아요!”
언데드 맨, 죽지 않는 남자라니 l 그야말로 대충 지은 티가
팍팍 니는 이름이다 십중팔구 죽지 않는 초인력이니까 죽
지 않는 남자라고 지었을 거야 뭣보다 초인명이 언데드 맨
이라니 ! 무슨 RPG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라도 된단 말인가?
‘이건죽어도개명시켜야돼!’
하지만, 그런 바람은 케이 케이가 내미는 카드에 의해 사
라 졌 다 .
“당신의 초인 면허증에도 이미 기억 처리가 끝났습니다
참고로 면허증은 당신이 입는 슈츠와 동일 재질인데, 이 형
상기억합금에 한 번이라도 정보를 기억시키면 좀처럼 갱신
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최소한 재계약 전까지는 그 초인명을
사용해야 할 겁니다”
힁포다 부조리다! 이런 게 어디가 인격적이고 가족적인
프로덕 션이 란 말인가!
“뭔가 불만이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듣지 않겠습니다 이
건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결정된 사항이니까요 당
신은 스스로 자신 있어 한 탁구 승부로 저에게 패했습니다
그렇다면 패자는 승자의 말을 따라야지요 당신이 뜻대로
하고 싶다면 승자가 되었으면 그만입니다”
“그거야 그냥 하자는 건 줄 알았잖아요! 그딴 내기를 할
거면 처음부터 말을 하던가! 그리고 탁구 한 판으로 중대사
를 결정짓는 게 어느 나라 민주주의에요l”

271

에필로그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실력이야말로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
다 서지우 씨는 사회 시간에 그런 것도 안 배웠습니까?”
“어휴! 뭐 말이 통해야 말이지! 연정이 누나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담당 매니저를 보고 하소연했다 그
러자 아까부터 곤란한 표정만 짓던 연정은 어색하거l 入淏실
의 볼링장을 가리켰다
‘‘그게저도패자라서 말이에요”
하! 기가 막혀서 망연자실하게 시무실을 둘러보았다 그
제야 니는 사무실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저 당구대도! 스쿼시장도! 볼링장도! 탁구대도! 그
모든 것이 사장의 민주적인 방법들이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집과 학교 측에는 적당히 말해뒀으니 이박삼
일동안 초인 연수에 다녀오십시오 때마침 동맹에서 주최하
는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코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배울 점들이 많을 테니 가서 쓸 만한 초인이 되어
돌아오십 시 오”
그 말에 지우의 마지막 남은 인내심이 폭발했다. 그는 세
입자 하나 없는 연세 빌딩이 떠나가라 크게 소리 질렀다
“완전히 속았에 이건 사기야. 사기눼”
“잘 부탁드려요, 지우 씨 l 이왕 이렇게 된 것 업계의 톱이
되 어 보자고요 ! ”

때 勺 可
손/옮
흣날 세계를 구할 초인, 언데드 맨은 그렇게 한 악덕 프로
덕션에서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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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디 작가후키

이전에 뵈었던 분들도 있을 테고 이번에 새로 뵙는 분들


도 있겠지만
안녕하세요! 언제나 새로운 걸 쓰고자 다짐하면서도 막상
쓰고 나면 그렇지 않은 글쟁이 반재원입니다() 이번에
선보인 초인동맹 역시 처음에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
했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결국 나온 것은 부대찌개 같
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초인! 열혈! 하지만 시니컬한 현
실! 그리고 고뇌하는 주인공! 마지막으로 그 옆을 철벽 가
드 하는 여동생 !
.아, 마지막은 좀 아닌가 어쨌든 그런 이유로 꽤 취향
을 타는 글이 되겠지만 부디 느긋하게 지켜봐 주세요. 이야
기는 이제 정말 ‘시작 했으니까요(애초에 언데드맨 프리퀄
Prequel이기도 했고)
그럼 글에 대한 이야기는 그쯤에서 해두고, 마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마감은 정말 피와 살을 깎는 고통입니
다 이건 글을 쓰는 저뿐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주는 Eika
도 그렇고 편집부 일동도 마찬가지죠 그야말로 책 한 권 만
드는데 여러 사람이 죽어납니다 하물며 이번 마감은 전무
후무한 크라우칭 스타트! 이건 뭐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퀄러티를 뽑아내느냐의 싸움이었죠 에이카는 직장 다니랴

77덕
쓰'닙

작 가 후 기
밤 잠 줄여 그림 그리랴 말도 아니었고, 편집부 측은 홈페이
지 광고하랴 작품 기획하랴 작가들 관리하랴 피를 쏟았습니

무엇보다 저는 게임도 못하고 프라모델도 못 만들며 만화
책이나 간간이 보는엥? 이, 이게 아니라! 아침 9시에
집 근처의 독서실로 출근하여 새벽 2시까지 노트북과 싸우
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사투였
습죠! 네! 애초에 이 업계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잖습
니 까 ! (누가 뭐 래-)
어쨌든 그렇게 모두가 피땀 흘려 만든 것이 이 한 권의 책
입니다. 누구 한 사람 빠졌더라도 나올 수 없었을 테고, 나
왔다 한들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겠죠 책 표지에야 제
이름 석자가 크게 찍혀있지만 실상 이 책의 주인공들은 작
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초인동맹
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신 시드 노벨 일동과 Eika에게
감사의 인시를 올립니다
하지만
감사야 감사인 거고 마감은 마감인 거죠.(...) 원래 9월 일
정이었던 것을 7월로 줄이는 바람에 저와 Eika는 넝마가
되어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하얗게 불태워버렸죠 거기다
시일이 급박해지다 보니 트러블도 많았습니다 편집진과의
불완전한 의사소통, 그로 인한 리테이크, 늘어나는 작업량,
그에 비해 잔인하리만큼 그대로인 마감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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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톡톡히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아무래도 선발진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었겠죠 그래도 이번 경험을 바
탕으로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듯하니 다음번 작업은 좀 더
수월해질 듯합니다 아니, 반드시 수월해져야지요()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을 겪다 보니 이번 초인동맹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런 내용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꼭 이번일 뿐
만이 아니라 제가 지금껏 글을 쓰면서 겪었던 경험이라든가
고충이라든가, 투정이라든가.. 덕분에 글을 다시 읽다
보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네요 어째 픽션을
쓴 게 아니라 논픽션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낯 뜨겁기도 하
고 (실제로 사장 케이 케이의 말은 제가 일하면서 업계에
서 수시로 들어온 말들입니다) 그래도 현재의 나 자신을
돌이켜본 것 같아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반성을
하는 것도 때로는 좋은 약이 될 수 있겠죠. 물론 뜻하지 않
게 참회록(?)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는 심심한 사과를
표하는 바입 니 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초인동맹을 간단히 예고하고 마칩


니 다
초인은 엔터테인먼트다! 그와 같은 슬로건으로 21세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초인 그리고 그런 초인들을 관리하
는 초인 동맹! 하지만 그와 같은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이
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 하여 리벨리온(반역)! 온갖 범죄로

277

작 가 후 기
사회를 어지럽히는 괴인들의 집단이었다 결국 물과 불인
그들은 공중파로 전면전을 선포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
희대의 이벤트를 숨죽여 주목하게 되는데.
하지만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이저의 이야기 마이너 초인
인 지우에게는 업계의 현실과 악덕 사장의 횡포가 전부인
나날이었다 과연 언데드 맨은 쏟아지는 신인들의 홍수 속
에서 무사히 자신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 결과는 차후
출간될 언데드 맨 리턴즈(가칭)에서 확인해주세요
자, 이제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다!

BGM “巳女 훈 y ~선홍⊃尤L '. 분 5 疋~’.


BvOkuiMas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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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 1

초판 1쇄 발행 2007년 7월 25일

지은이 반재원
발행인 신현호
편집팀장 주성민
편집자 박천인
편집디자인 한방울

펴낸곳디앤씨미디어
등록2002년4월25일제20一260호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85-37 연세빌딩 6증
전화02-333-2513(대표)
팩시밀리02-333-2514
E-mallseednovel@hanmailnet
흠페이지wwwseednovelcom

값 5,900원

희반재원 2007

lSBN 978-89-6145-068-3 04810


lSBN 978-89-6145-067-6 (세트)

*저자와협의하여인지는붙이지않습니다.
*이 책은 디앤씨미디어(시드노벨)가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띠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와 저자의 허락없이는 어떠한 형태나 수단으로도 내용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麾 시드노벨이 만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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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원차iika콤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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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 둥짜∋. ‘ 지금이자리에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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