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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 St Thomas East Mission [5]

성 도마가 동방선교를 시작한 장소는 에데싸였다. 거기로부터 북부인도 즉 파키


스탄의 탁실라에 약 4년간 체류했다가 인도의 최남단의 항구도시 코르카이, 지금
은 카니아쿠말리에서 서쪽 해변가의 케랄라 (Kerala) 그리고 동쪽 해변가 타밀 나
두 (Tamil Nadu)에다 교회들을 설립하면서 주후 52년경에는 인도의 동서 해안가
의 중요도시에 성 도마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회들을 건립하였다. 그 이후 20년
동안에 성 도마는 인도의 남단의 섬 세일론 지금의 스리랑카를 기독교화 하고나
서 중국과 한국에도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하는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
다. 그러한 중에는 경상북도 영풍군에는 히브리어글짜로 도마의 이름을 상징하는
문자가 크고 뚜렷한 모양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그것이 도마 자신이 한국에 와
서 자기의 이름의 첫 글자를 히브리어로 새겨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
들이 최근에 유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후 1세기 곧 사도들의 초대교회때
에 이미 성 도마가 인도와 중국을 경유하여서 한국에까지 방문한 것으로 주장하
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의 인도의 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중국의 고고
학자 및 성 도마의 동방선교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 도마가 인도를 거쳐서
세일론 스리랑카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중에 중국으로 배를 타고 여행했었다고 주
장한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한반도를 방문하여서 남부지방인 가야국을 방문하여
서 김수로왕과 그 왕후 허황옥과도 교분을 가졌고 무엇보다도 가야국에다가 당대
의 최첨단 과학기술이었던 철 제련술을 가르쳐서 가야국이 그 당시에 철의 강국
으로 유명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학자들이 이미 주후 1세
기에 기독교 초창기때에 복음이 성 도마를 통하여서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좀 과장된 이야기로는 가야국의
출범때에 도마가 방문하여서 기독교정신으로 가야국이 출범하였다는 이야기도 있
고 또 허황옥과는 도마는 인도에서부터 잘 아는 사이로서 김수로왕의 결혼을 주
선하는 중매의 역할도 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가야국이 출범한
주후 42년에는 성 도마는 파키스탄의 탁실라에 도착하여서 인도사상과 함께 산스
크리트어를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허황옥은 인도의 북동쪽 아
유타왕국의 공주였는데 도마는 인도에서 아유타에는 방문간 일이 없었다. 따라서
허황옥과는 사전에 인도에서 서로 교분을 가진 바 있다고 하는 주장은 과장된 것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보여진 석상 즉 도마의 분처석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진위가 이미 밝혀져
서 도마가 내한하여서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이라는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성 도마는 사도바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지구촌에서의 광활한 지역을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사도가 아니었
을까 생각된다. 이미 성 도마가 내한 하기 이전에도 메소포타미아의 경건한 종교
적인 분위기가 유라시아대륙을 통하여서 우리나라에까지 도달한 것은 많은 역사
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적인 토속신앙이 기독교정신과 매
우 근사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철학자, 신학자, 역사가들이 거의 공통적으
로 인정하는 학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른 바 실크로드 (비단길)라고 하는 고
대의 상인들의 동서왕래하던 경로 그리고 알렉산더대왕의 유라시아 정벌경위 등
에서 성 도마가 예루살렘에서 에데싸를 경유하여서 파키스탄과 인도전역 그리고
나서 스리랑카, 중국, 한국을 방문했다고 하는 것이 부당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특별히 최근의 중국의 카토릭 상해주고 공품매 (Kung Pin Mei)는 2000년에 타계
하였는데 직전에는 도마의 인도, 중국, 한국의 선교역사를 집필하였다. 거기에는
이미 주후 1세기에 성 도마가 인도 – 스리랑카 – 중국 – 한국 이러한 경로를 거
쳐서 아시아전역에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
고 하는 주장을 남겼다.
상해의 교구장을 맡았던 공품매 (쿵핑메이) 주교는 모택동의 문화혁명 당시에 투
옥되어서 30년간 옥중생활을 하였던 중국의 참신한 카토릭 신앙인이었다. 그는
1991년도에 출옥한 이후에 미국으로 가서 2000년에 타계하기까지 많은 성 도마
의 동방선교역사와 관련된 저서들을 영문으로 남긴바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성 도마는 중국과 한국을 방문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것이 사실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기한 바 성 도마의 내한을 과장하여서 가야국
이 기독교정신으로 출범하였다든가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을 성 도마가 주선
하였다든가 하는 것은 매우 과장된 사실과 거리가 있는 주장임을 여기에서 첨언
하는 바이다. 성 도마가 가야국에게 철의 제련법을 가르치고 또 강철을 생산해내
는 과정에 함께 하여서 가야국으로 하여금 그 당대에 철 사용의 강대국으로 부상
시킨 것은 거의 사실에 가까운 주장이라 말할 수 있다. 김해의 근처에서는 매우
오래된 가야국 때의 철 제련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광로의 모습이 출토된
일이 있다. 그리고 가야국에서의 철의 제품들도 출토된 일이 있다. 성 도마의 과
학기술의 전래보다도 기독교정신의 전래가 이미 기독교의 시작 때인 주후 1세기
에 한국에도 전파되었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도 기독교역사는 단순
히 서양 선교사 몇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
금까지 성 도마의 동방선교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서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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