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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C 이강준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12C 이강준
시적 상황
<거룩한 식사>에서 화자는 이면적으로 나타난며 시상을 전지적 3인칭 시점으로 전개한다.
화자는 주변 상황을 묘사하고, 내면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며 이를 통해 시상을
전개한다. 1연에서 화자는 나이든 남성이 분식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고 있는 애처로운
장면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이와 함께 화자는 나이든 남자가 자신의 눈물겨운 유년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모습을 서술한다. 가난 때문에 먹는것이 부족하여 동생과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다투는 기억은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한다. 다음으로 2연에서
화자는 밥 먹는 행위의 거룩함을 청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또한 ‘나이든
남성’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이라는
구절을 통해 청자 대상을 확대 시킨다. 마지막으로 ‘파고다 공원 뒷편 순댓집’이라는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배경 묘사와 ‘노인’의 식사 장면을 화자가 묘사하고, 화자가 연민을
드러내며 작품은 끝맺는다.

소재의 사용

본 작품에서 드러난 소재인 ‘나이든 남성’과 ‘노인’은 사회적 빈곤층에 대한 대유법이라고


볼 수 있으며, ‘찬밥’은 가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제1연에서 나타나는 ‘나이든
남성’은 혼자 분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나이가 들었음에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는’ 남성의 모습은
암울한 상황에 놓여 떳떳하지 못하는 비굴한 모습을 형상화한다. 제2연에서 등장한 ‘노인’이
혼자 국밥을 먹는 시각적 묘사 또한 청자들의 연민을 자극하고 애처로운 상황을 연출한다.
작품의 중심 소재중 하나인 ‘찬밥’은 먹다 남은 음식을 연상시키며, 이는 곧 음식이 부족해서
가난하고 고달픈 상황을 나타낸다.

작가는 ‘식사’라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화자는 ‘식사’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의 소중함을 노래하며, 곧 한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거룩한 행위라는 것을 화자의 주관적 변용을 통해 청자에게 전달한다. 1연에서
나이든 남성이 가난한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고
남성의 서러움을 전달한다. 배고픔은 이성으로 조절되지 않는 감각이며, 남성은 유년
시절에 ‘식은 밥’을 두고 동생과 필연적으로 다퉈야 했던 절망적인 과거를 겪었다. 이러한
남성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즉, 이 장면 묘사를 통해
화자는 기존에 식사를 당연시 여겼던 청중들에게 ‘먹는것은 소중하다’ 메시지를 깊히
각인시킨다. 또한, 2연에서 화자는 독백체와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라는 영탄법을 통해
‘식사’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대해 거룩함을 서술한다. 2연 에서 ‘몸에 한세상 떠 넣어 주는
먹는것’이라는 표현은 식사라는 행위에 대한 예찬을 표현한다.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에, 화자는 이를 ‘한세상’이라는 비유를 통해 음식은 생명의 원천이다
라는 것을 전한다. 끝내 화자는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라는 문장에서 설의법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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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식사에 대한 소중함과 예찬적 정서를 직접적으로 표출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소한 일상의 거룩함이라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재차 강조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 작품에서 드러난 ‘식사’의 또 다른 의미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각각의 어두운 삶에 한줄기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이든
남성’이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은 남성이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가 겪고 있는 고초를 전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는 식사를 삶의 원천으로
바라보고, 한 개인의 생명을 불어넣는 거룩한 것이라고 서술한다. 나이든 남성이 ‘라면발을
건져올리것’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경제적 불확실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직면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이와 동시에 남성은 유년 시절에 겪은 가난으로 인한
음식 부족으로 가족과도 싸워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결국 이러한 고난을
극복 했기에 현재 분식집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것이다. 즉, 작가는 ‘나이든 남성’의 상황
설정을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고된 삶의 희망을 제기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2연에서 화자는 홀로 식사하는 노인의 모습을 묘사하며, 그의 강력한 삶의 의지를
청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들면 기력을 잃고 보편적으로 삶의 의지가
약해지고 생동감을 잃게 된다. ‘노인’은 나이가 들며 죽음과 가까워지고 노쇠화를 겪으며,
심지어 홀로 식사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노인의 쩍 벌린 입’은 이와
대비되어 희망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노인은 자신의 부정적인 상황을 체념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승화시키며 그의 치열한 몸부림은 ‘쩍 벌린 입’이라는 시각적
묘사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시화하고 있다.

작품에서 사용되는 심상/이미지

화자는 나이든 남성을 비굴하면서 초라한 시각적 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남성의 ‘큰 덩치’와 대비되는 작은 공간인 ‘분식집’은 남성의 초라한 상황을 크기의 대비를
통해 조명하고 있으며, 연민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는
장면은 남성이 자신의 현재 상황에 부끄러움을 나타내고 그의 비굴한 식사 장면을
청중들에게 전달된다. 이를 통해 화자는 애상적 분위기를 조성하며 연민을 느끼게 한다.

이와 더불어 화자는 촉각 심상의 냉온 대비와 공감각적 심상을 활용하여 식사라는 거룩한 행위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를 가시화한다. 2연에서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라는 문장에서 ‘찬밥’은 가난한 상황과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며 동시에, 한 개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거룩함을 가미하고 있다. 본 문장에서 사용된 ‘더운 목숨’이라는 비유는 한
개인의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찬밥’이라는 초라한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인의 투철한 의지를 촉각적 심상으로 청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더
나아가, 2연에서 사용된 청각 심상 중 ‘쩍’이라는 음성 상징어는 노인이 밥을 먹기 위해 입을 아주
크게 벌린 모양을 나타낸다. 즉, 청각적 요소를 통해 밥먹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형상화 한것이다.
이는 곧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노인의 강력한 의지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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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 공원의 상징성
2연에서 배경으로 나타나는 ‘파고다 공원’은 노인들의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비록
표면적으로 봤을때는 현장감을 부여하고 노인의 밥 먹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지정된 배경으로 보이지만, 이는 특별한 역사적인 유래를 지니고 있다. 파고다 공원은
일제에 대한 최대 규모의 민족 저항운동이었던 3·1 운동이 시작된 장소다. 즉, 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니는 파고다 공원은 일제강점기라는 비통한 현실과 막강한
고난을 이겨낸 우리나라 민족의 강력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징적인 배경
설정을 통해 시인은 노인의 살고자 하는 강경한 의지와 일제의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우리의 민족처럼, 고된 현실에 굴복하지 노인의 의지 또한 나타낸다.

표현 특징과 효과
본 작품은 서정시의 형식을 띄고 있으며, 황지우 시인의 특유의 해체주의적 특성, 풍자적
요소와, 냉소적 시선이 배제되었다.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라는 시행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내면을 청중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점에서 서정시라고 볼 수 있다. 제1연에서는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나이든 남성’의 초라한 식사 장면과 가슴 아픈 과거를 전달하여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2연에서 시상 전환이 일어나며 분위기 반전을 도모하며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를 통해 비록 식사가 초라할지라도 생명을 불어넣는 거룩한 행위이기에
화자는 이에 대해 예찬하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출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라는 주제 의식을 강조한다. 시상 전환과 더불어 작가는 2연 3행에서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에서 시적 대상을 구체적인 개인에서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키며
시상을 전개한다. 이를 통해 화자는 한 개인의 가난한 삶에 대해 연민을 표현 하는것이 아닌
모든 사회적 빈곤층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표현함으로서 주제 의식을 강화시킨다. 이와
별개로 혼자 밥을 먹는 ‘나이든 남성’의 이미지와 ‘노인’의 이미지가 긴밀히 연계되는 병치
구조를 사용한다. 이러한 병치 구조는 ‘나이든 남성’과 ‘노인’이 각각 처한 고된 삶의
유사성을 보여주며 가난한 서민의 대한 연민을 느끼는 화자의 정서를 강조한다.

화자는 어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화자는 독백체를 활용함으로서 누군가에게 말하는듯한 효과를 얻고, 이로서
자신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제2연에서 나타나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라는 시행에서 화자의 영탄적 어조가 돋보이며, 먹는 행위에 대한 화자의
예찬적 태도가 강화된다. 또한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라는 시행에서 화자는 설의법을
활용하여 사회적 빈곤층의 대유법인 ‘나이든 남성’과 ‘노인’에 대한 연민의 호소력을 높이며
주제를 부각시키는 극적인 효과를 내고 시상을 끝맺는다. 화자가 시상을 전개할때 사용한
현재법 또한 작품의 주제인 ‘먹는 일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현재법을
사용함으로서 시적 대상인 ‘나이든 남성’과 ‘노인’의 식사 장면이 더욱더 생동감 있고,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즉, 음식을 먹는 것은 개인에게 활력과 생명을 불어넣는
효과를 가시화하며, 이를 통해 작가는 먹는 일의 거룩함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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