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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땅과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를 경멸하라.


필요한 모든 이에게 자선을 베풀라.
어리석거나 제 정신이 아닌 일이면 맞서라.
당신의 수입과 노동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돌려라.
신에 대해 논쟁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참고 너그럽게 대하라.
당신이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 또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머리를 숙여라.
아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감동시키는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과 함께 가라.
자유롭게 살면서 당신 생애의 모든 해, 모든 계절,
산과 들에 있는 이 나뭇잎들을 음미하라.
학교, 교회, 책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의심하라.
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 화자는 이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며, 자신의 이익보다는 자연을, 이기적인 태도보다는
이타적인 모습을 권하며, 신앙에 대한 강조 또한 나타난다. 또한, 논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귀기울이는 모습을 권하고 있다. 젊은이들, 가족의
어머니들이라는 표현은 후세, 그리고 조상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나가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천국이나 가장 최상의 것으로부터 기대되는 모든 것을 새벽이나 겨울 숲의 광경,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 남자나 여자의 목에 팔을 두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사랑은 어떤 사랑보다도 여유로움과 광활함을 지니고 있고……그는 자신
앞에 공간을 남겨둔다, 그는 단호하거나 의심스러운 연인이 아니다…….그는 확신 있고……
도중의 휴식을 경멸한다. 그의 경험과 소나기와 흥분은 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도
그를 놀라게 할 수 없다……고통과 어둠도, 죽음과 두려움도, 불평과 질투와 부러움은
그에게는 땅에 묻혀 썩어 가는 시체와 같다. 그는 그것들이 묻혔다고 보았다. 바다가 해안을
확신하지 않듯, 해안이 바다를 확신하지 않듯 그는 사랑의 결실과 모든 완벽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확신하지 않는다.

- 시적 화자는 그가 바라보는 이상향에 대해 서술한다. 그가 말하는 ‘천국이나 가장 최상의


것으로부터 기대되는 것’ 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삶의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즐겁게 노는 아이들,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 등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살면서 인간이 겪는 여러 감정들과 순간들을 묘사하여
‘모든 완벽함과 아름다움' 에 확신하지 않는다고 하여 화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신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중략>

가장 약한 암시조차도 최상의 표현이며 그래서 가장 투명한 표현이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떨어지지 않고 연결된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앞으로 존재할 것의 지속성을
이미 존재해 왔던 것과 현재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형성한다. 그는 죽은 사람들을 그들의
관으로부터 끌어내어 다시 그들의 발로 서게 한다……그는 과거를 향해 ‘자, 내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앞에 서서 걸어라’라고 말한다. 그는 교훈을 배우고……그는 미래가
현재가 되는 곳에 자신을 세운다. 위대한 시인은 사람과 장면과 열정을 자신의 빛으로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중략>

- 화자는 과거부터 현재, 미래를 바탕으로 배울 수 있는것과, 이상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들을 묘사하는데, 과거로부터의 작은 암시,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과거에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존재하고, 과거에서부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현재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미래를
이상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를 통해 과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1 장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또한 그대가 생각할 터,

내게 속한 모든 원자는 마찬가지로 그대에게 속하므로.

나는 빈둥거리며 내 영혼을 초대한다.

몸을 기대고 편안히 빈둥거린다……. 여름 풀의 뾰쪽한 잎사귀를 바라보며.

나의 혀, 내 피 속의 모든 원자, 이 흙과 이 공기에서 생겨나왔지,

여기 부모에게 태어났고 부모도 마찬가지, 부모의 부모도 마찬가지,

나, 이제 37 세, 더할 나위 없는 건강이 시작되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기를 바라네


교의나 학파는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한 채 잠시 돌아와, 그러나 결코 잊지는 않아,

나는 선과 악 모두 용납하고,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말하리,

원천적인 에너지를 가진 거리낌 없는 자연을.

- 이 시에서 화자가 묘사하는 ‘나’는 자연에서 태어난 존재로, 자신을 찬양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대’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든 원자 또한 ‘그대’에게
속한다는 표현을 통해 ‘그대’ 역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연에 의해 태어난 존재라고
나타낸다. 이로 인해 성악설, 성선설처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2
연에서는, 편하게 빈둥대나, ‘뾰족한’ 잎사귀에서 알 수 있듯 항상 주의를 하며
살아가야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지막 행에서 다시 한번 알 수 있듯, 자연에 대한 찬양을
이어가며, 자연으로부터 선천적인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VS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

수정본에서는 ‘그리고 노래한다’를 더하여 운율감을 더해주었다고 할 수 있어.

이러한 운율성으로 시의 리듬을 형성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지. ‘나’도 그렇듯 ‘그대, 당신’도
그렇다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우주의 일부이며 같은 존재라는 화자의 생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는 나= 우리 의 개념이 아니라, 나+우리 = 우주 라는
개념일거야. 즉 우리 모두 동일한 존재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 당신은 다른 존재이지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같은 존재… 따라서 나, 당신은 ‘우주’를 형성하는 한
일부분인 존재. 

나 그리고 당신(또는 그대)은 서로 존중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야.

내게 속한 원자가 그대에게도 속해 있다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도 가지고 있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합쳐져서 우주가 되는 것.

- 원자 atom 을 주목해야하는데, 우리들은 다 같은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고 본 거라 이해하면된다. 맨 마지막 행 자연 역시 나와 당신 – 부모가 되고 부모가
다시 자연이 되는 것은 같은 원자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휘트먼에게
있어서 나는 곧 자연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2.
집들과 방들은 향기로 가득하다……. 선반들은 향기로 북적인다,
나는 홀로 그 향기를 들이마시며, 그것을 이해하고 좋아한다.
그 증류주가 또한 나를 취하게 할 수 있으나, 나는 그리 되는 것을 허락치 않는다.
대기는 향기가 아니다…… 그것은 증류주의 향취를 지니지 않으니……. 그것은 무취이다.
그것은 영원히 내 입을 향한다…….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나는 숲 가의 강둑으로 가서 어떠한 가면도 쓰지 않고 벌거벗는다.
나는 내게 와 닿는 것에 미칠 것 같다.

나 자신의 숨결,
메아리, 잔물결, 웅웅거리는 속삭임…… 미나리, 명주실, 갈래와 덩굴,
나는 호흡과 영감…… 내 심장의 박동…… 내 허파를 통과하는 피와 공기,
초록 잎사귀들과 메마른 잎들, 해안과, 어두운 바다 바위와, 헛간 속 건초의 냄새를 맡는 것,
내 목소리가 분출한 어휘들의 소리…… 바람의 소용돌이들로 흩어지는 말들,
몇 번의 가벼운 입맞춤….. 몇 번의 포옹…… 감싸 안은 팔들, 나긋나긋한 가지들이 흔들릴
때 나무에서 노니는 빛과 그림자,
혼자만의, 혹은 부산한 거리에서의, 들판이나 언덕배기에서의 즐거움,
건강의 느낌…… 한낮의 떨림…… 침대에서 일어나 태양을 만날 때의 나의 노래.

그대는 천 에이커가 많다고 여겼는가? 그대는 이 대지가 대단하다고 여겼는가?


읽는 것을 배우려 그토록 오래 연습해 보았는가?
시의 의미에 도달하여 그토록 자부심을 느껴 보았는가?

이 낮과 밤에 나와 함께 머무르라, 그러면 그대 모든 시의 기원을 갖게 될 터,


대지와 태양의 이득을 누릴 터…… 수백만의 태양이 남아 있으니,
그리고 그대 더 이상 두세 번 쓴 것들을 갖지 않을 터….. 죽은 사람들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
…… 책 속 유령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 터,
그대 내 눈을 통해 보지 않고, 나로부터 사물들을 취하지 않을 터,
그대 사방에 귀 기울여 그대 자신으로부터 그들을 걸러 내리라.

- 화자가 묘사하는 ‘향기’는, 집들과 방 등등, 모든 공간에서 느낄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나,


증류주의 향으로 인해 취하게 허락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인위적인 것들로 인해
자신의 가치관 등이 변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숲 과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표현을 통해, 좀 더 순수하고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화자의 애착을 볼 수 있다. 2 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숨결을 메아리, 잔물결 등 자연에 빗대 표현하고, 목소리를 바람의
소용돌이등에 빗대어 표현하는 등 자신을 자연으로 비유하며 자기 자신이 자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21

나는 육체의 시인이다,

또 나는 영혼의 시인이다,

천국의 기쁨이 나와 함께하며, 지옥의 고통이 나와 함께한다,

나는 최초의 것을 나 자신에게 접목시키고 점점 더 증가시키고…… 이후의 것을 새로운


언어로 번역한다.

나는 남자로서 시인인 것처럼 여자로서 시인이다,


그리고 나는 남자인 것이 위대하듯 여자인 것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또한 나는 인간의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 21 장에서 화자는 자신이 육체의 시인임과 동시에 영혼의 시인이라고 이야기하며, 육체와
영혼을 동일시한다. 이는 2 장에서와 같이 영적인 사상으로부터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는
태도이다. 3 행에서는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고통이 대조되는데, 이 둘이 내면에 함께
실존한다는 것은 화자의 수용성, 즉 만물과 접촉하고자 싶은 마음을 극대화하는 장치이다.
그는 자연의 존재들로부터 가치를 접목시킴으로써 성장을 추구한다. 이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한다는 표현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며 앎을
소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2 연에서 그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시한다. 남녀평등의 사상이
드러나고, 위대함이 언급되면서 인간의 존엄성 또한 강조된다. 인간의 어머니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화자는 또다른 자연의 창조(출산)의 무한한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20 장
<중략> 
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그보다 크지도, 보리 이삭만큼 작지도 않은 나 자신을 본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또 나쁘게 말하는 것만큼 그들에 대해 말한다.

나는 내가 단단하며 건전하다는 것을 안다,


우주의 무리를 이루는 대상들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흐른다,
모든 것이 나에게 쓰이고, 나는 그 글들이 의미하는 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불사의 존재임을 안다,


나의 이 궤적이 어느 목수의 컴퍼스로 지워질 수 없음을,
어린애가 밤중에 불붙인 막대기로 조각한 장식 조각처럼 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나는 내가 당당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영혼 자체를 변호하거나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인 법칙들은 결코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이해한다,
나는 나란 이가 결코 내가 집을 지은 그 지면보다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음을 인식한다.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 그대로 존재한다, 그로써 족하다,


이 세상의 다른 누구도 내가 만족스럽게 앉아 있음을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또한 모두가 하나 같이 의식한다 해도 나는 만족스럽게 앉아 있다.

한 세상이 알고 있는바, 이제까지 나에게 가장 큰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오늘 나 자신이 되든지 만년 혹은 수백만 년 후에 그리 되든지,
나는 지금 그것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다, 혹은 똑같은 즐거움으로 기다릴 수 있다.

내 발 딛는 곳은 화강암 속에서 장부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당신이 분해(사멸 dissolution)라고 부르는 것을 비웃는다,
그리고 나는 시간의 크기를 안다.
- 화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들보다 특별하게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남들과 비슷하고
평범하지만, 2 연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신념이 굳건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것들이 화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3 연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자신에 대해 떳떳하고, 변호, 즉, 일말의 죄에 대한 혐의 조차 없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49

너 죽음, 너 필멸의 쓰라린 포옹…… 나를 놀라게 하려 해도 부질 없다.

자신의 일을 피하지 않고 산파가 온다,

나는 경험 많은 손이 누르고 받고 돕는 것을 본다,

나는 아름답고 유연한 문가에 기대어 그 분출을, 그 구출과 유출을 목격한다.

그리고 당신의 시체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당신이 좋은 비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언짢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달콤한 향을 풍기며 자라나는 하얀 장미의 향기를 맡고,

그 잎사귀들의 잎술에 닿으며…… 멜론의 깨끗한 가슴에 닿는다.

또한 당신 삶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숱한 죽음의 찌꺼기라고 여긴다,

의심할 바 없이 나는 이전에 수천 번이나 죽었다.

나는 당신이 저기 천국의 별들이네, 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아 태양…… 아 풀잎들…… 아 영원한 이동과 상승…… 당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찌


내가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가을 숲 속에 있는 흙탕물 웅덩이에 대하여,

윙윙 소리 내는 별빛의 가파른 계단들을 내려가는 달에 대하여,

흔들림, 낮과 어둠의 불꽃, 오물 속에서 썩어가는 검은 줄기 위의 흔들림,

메마른 사지의 이해할 수 없는 신음으로의 흔들림에 대하여,

 
나는 달에서부터 오른다…… 나는 밤에서부터 오른다,

햇살이 비추는 유령 같은 광휘를 인식한다,

크든 작든 그 파생물로부터 고정된 중심부로 나온다.

- 1 연에서 화자는 ‘너’의 죽음이나 필멸성이 전혀 놀랍지 않다고 한다. ‘나’에게 너의 죽음은
단면적이지 않고, 유대감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연은 출산의 과정을 다룬다. 산파가
아기를 받고, ‘나’는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분출,구출과 유출을 목격한다. 3
연에서 화자는 당신의 시체를 좋은 비료, 즉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로 사고하는데, 이는
언짢기보다 긍정적인 것이다. 그 시체가 대지 위의 하얀 장미와, 잎사귀들과, 멜론의 근원이
되어 주는 까닭이다. 시인은 공감각적인 사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죽음과 땅, 재탄생의 과정을
은유한다. 4 연에서는 이 사상이 확장되는데, 삶을 숱한 죽음의 찌꺼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삶의 요소가 수많은 삶(=죽음)들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나’도 이전에 수천 번이나
죽었지만, 5 연에서 나타나듯 죽음은 ‘천국의 별들’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한 ‘영원한
이동의 상승’으로 태양, 풀잎들, 혹은 그 어떤 것들로 창조되고 오롯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자는 자연물들을 자세히 묘사하며 죽음과 삶의 연결성을 어떻게 이들 없이 얘기할
수 있겠냐고 설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7 연에서의 달, 밤, 햇살 그 모든 것이 고정된 중심부,
즉 죽음을 경험한 너와 나에서 비롯된다고 추측할 수 있다. 

6.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적조된 깃발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손수건이라고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구석 어디엔가 그 주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그것을 본 우리가 누구 것이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것.

아니면 나는 풀잎은 아이 그 자체라고…… 식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불변의 상형 문자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곳에서든 좁은 곳에서든 똑같이 피어나며,

흑인들 사이에서, 마치 백인들 사이에서처럼,


프랑스계 캐나다인, 버지니아 사람, 하원 의원들,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 사이에서처럼
자라난다는 것,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주고 똑같이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그것은 내게 깎이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의 머리칼로 보인다.

나 너 둥근 풀잎을 부드러이 사용하겠다,

아마도 너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들을 알았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나이 든 사람들과 여성들로부터, 그들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곧장 받은 후손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이곳에서 어머니들의 무릎인 것이다.

이 풀잎은 나이 든 어미들의 하얀 머리에서 비롯되어 무척 어둡다,

늙은 남자들의 무채색 수염보다도,

붉고 흐릿한 입천장 아래에서 비롯된 어두움이다.

아 나는 결국 이렇게나 많은 말들을 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그저 공짜로 입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안다.

죽은 젊은 남녀들에 대한 암시를 내가 번역할 수 있다면,

나이 든 남자들과 어미들, 그들의 무릎에서 곧장 나온 후손들에 대한 암시들 또한.

당신은 젊은이들과 나이 든 이들이 무엇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여성들과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살아 있고 어딘가에서 잘 지낸다,

가장 작은 새싹이라 할지라도 진정 죽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령 존재한다 해도 죽음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고, 그것을 붙잡으려고 종점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삶이 나타난 순간 멈추었다.

모든 것이 앞으로, 밖으로 나아간다…….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더 운 좋은 것이다.

- 이 시에서 화자가 말하는 풀잎은 굉장히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여러가지로 정의될수
있는데 희망찬 초록뭉치들 이라는 은유적인 비유로 희망의 표식을, 하나님의 손수건에
비유하여 신성함 및 경건함을, 또한 아이 자체, 불변의 상형문자, 인종에 상관없이 어디서나
자라날 수 있다 하여 풀잎의 본질적인 것들은 살아있음을 보인다. 이러한 영속성을 가진
풀잎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밝음이 아닌 때로는 어두움도 존재하여 화자는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는 것에 감탄하며 영탄적 어조로 표현한다. 풀잎은 소멸하지 않는다고
하여 만일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었다고 하여 죽음이 삶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화자는 죽음이 사람들이 보통 생각했던 것과
다르며 어쩌면 더 좋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17 장

이러한 생각들은 모든 시대 모든 땅에서 모든 사람들이 했던 생각들, 그것들은 내 고유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들이 내 생각이자 동시에 당신 생각이 아니라면 그것들은 무(nothing)이거나 무


(nothing)에 가깝다.

만약 그것들이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무(nothing)에 가깝고,

그것들이 수수께끼이자 동시에 수수께끼 풀이가 아니라면 그것들은 무(nothing)이다.

또한 그것들이 멀리 있으면서 동시에 가까이 있지 않다면 그것들은 무(nothing)이다.

이것은 땅과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자라는 풀이다.

이것은 지구를 가득 채우는 흔하디흔한 공기다.

이것은 법률의 숨결이며 노래이며 행동이다.

이것은 영혼의 맛없는 물이다….. 이것은 참된 내용이다.


그것은 문맹자들을 위한 것이며…… 대법원의 판사들을 위한 것이며…… 연방 정부의
수도와 주 정부의 수도를 위한 것이다.

또한 문학가들, 작곡가들과 가수들, 강연자들과 엔지니어들, 석학들을 위한 것

노동자들과 농부들, 어부들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 화자는 17 장에서 ‘풀잎’이라는 소재를 ‘이것’과 ‘그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묘사하는데, ‘그것’


이라는 표현을 통해 ‘풀잎’이 가진 절대적인 정의, ‘그것’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 등을 통해 나타낸다. ‘이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좀 더 사람들에게 가까운
소재를 통해 ‘풀잎’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법률, 문학, 예술, 노동 등의 것들을 전부 포괄하는
것이 ‘풀잎’이라고 묘사한다. 

23 장

끝없이 펼쳐지는 세월의 언어들!

그리고 나의 것 현대의 언어 …… 집단의 언어.

결코 멈추지 않는 신념의 언어,

다른 때와 마찬가지인 한때……여기든 다음이든 그것은 내게 마찬가지다,

현실의 언어……앞서는 상업주의와 마지막 물들이기.

긍정적인 과학이여, 만세! 정확한 논증이여, 장수하길!

비름나물을 뜯어다 삼나무와 라일락 가지와 섞어라,

이것은 사전 편찬학자나 화학자……이것은 오래된 소용돌이 장식의 문법으로 이루어진 것,

이 선원들은 배를 타고 위험하며 알 수 없는 바다를 지났다,

이 사람은 지질학자이고, 이 사람은 외과용 칼로 일을 하며, 이 사람은 수학자다.

신사들이여 나는 당신들을 환영한다, 그리고 당신들과 손을 잡는다,

사실은 유용하고 실제적이다…… 그것들은 내 거주지가 아니다…..나는 그들로 인해 거주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나는 재산이나 질을 상기시키는 자이기보다 삶을 상기시키는 자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거래한다,

중성과 거세한 것들을 짧게나마 설명하며, 완전히 갖춰진 남자들과 여자들을 좋아한다,

반역의 종을 치고, 반역자들, 음모를 계획하는 자들과 머문다.

- 화자는 ‘세월의 언어’, ‘현대의 언어’라는 표현을 통해 시대별로 언어의 발전을 나타내며,
그중에서 집단, 현대, 신념의 언어는 화자의 것에 포함된다고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는
멈추지 않는다 라는 표현을 통해 계속해서 진행되고,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과학과 문학도 마찬가지인데, 3 연에서 알수 없는 바다는 시대를 나타내고, 시대를 지나서
과학, 언어 등등을 발전시킨다고 볼 수 있다. 

24 장

월트 휘트먼, 미국인, 불량자들 중 하나, 하나의 우주,

무질서한 살집에 감각적인…… 먹고 마시고 자식을 낳는, 감상주의자는 아닌…….남자들과


여자들 위에 서 있는 자는 아니며, 그들과 떨어져 있지도 않은……뻔뻔스럽지 않듯
겸손하지도 않은.

문에서 자물쇠를 풀라!

문들을 기둥에서 풀라!

다른 이를 저급하게 만드는 자는 누구든 나를 저급하게 만든다……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을 하든 결국 내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이든 내가 말한 것이 무엇이든 나는 되돌려준다.

나를 통해 신의 계시가 밀려오고 또 밀려온다…… 나를 통해 물결과 지표가 흐른다.

나는 태고의 암호를 말한다……. 나는 민주주의의 신호를 보낸다.[JYK1] 

맹세코! 나는 똑같은 조건으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 무엇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를 통해 오랫동안 말이 없던 목소리들이,

끝없는 노예 세대들의 목소리들이,

창녀들과 불구자들의 목소리들,

병들고 낙담한 자들, 도둑들과 난쟁이들의 목소리들,

준비와 증강의 순환의 목소리들,

별들을 잇는 실들의 목소리 – 자궁의, 아비 되는 것의 목소리,

다른 이들이 경렬하는 이들의 권리의 목소리,

별 볼 일 없는 이들과 의기소침한 이들, 바보스러운 이들과 무시당하는 이들의 목소리,

궁기 중의 안개와 똥 덩어리를 굴러 가는 풍뎅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통해 흘러 나온다.

나를 통해 금지된 목소리들이,

성과 욕정의 목소리들이…… 가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그 장막을 걷는다,

상스러운 목소리들이 나로 인해 맑아지고 거룩해진다.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지 않는다,

나는 머리와 가슴에 하듯 창자 주변도 섬세하게 유지한다,

죽음이 천한 것이 아니듯 성교 역시 그러하다.

나는 육체와 식욕을 신임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기적이다, 또한 나의 각 부분과 부속품들 하나하나가 기적이다.

나는 내면으로나 외면으로나 신성하다, 내가 만지는 것, 나를 만지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성화시킨다.

이 겨드랑이의 냄새는 기도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이며,

이 머리는 교회나 성경이나 믿음 이상의 것이다


- 화자는 1 연에서 자신에 대해 밝히고, 자신에 대한 묘사를 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나타낸다. 이 부분에서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고 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편견등을 풀어 없애자는 표현을 하고, 이는 자신을
통해 전달된다는 표현을 통해 화자가 사회적 평화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민주주의에 의거한다는 표현도 나타난다. 또한 이후에 금지된 목소리, 즉 사회에
적합하지 않는 부분들을 자신을 통해 정화한다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평화적인 사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44.

나 자신을 설명할 시간이다… 자, 일어서자,

알려진 것을 나는 벗어 버린다……나는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을 나와 함께 미지의 것을 향해


진출시킨다.

시계가 그 순간을 가리킨다……그런데, 영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영원은 밑바닥 없는 저수지 안에 있다…… 그 물통은 영원히 계속하여 올라온다.

그것들은 쏟아 내고 쏟아 내고 증발하여 사라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조(trillion, 10 , 10 에 해당하는 수) 번의 겨울과 여름을 소진해 왔다.


12 18

앞으로 수조 번이 있고, 그들 앞으로 또 수조 번이 있다.

탄생은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가져왔다.

그리고 다른 탄생들이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어느 것이 더 크다고도 어느 것이 더 작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 때와 장소를 채우는 것은 어느 것과도 동등하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잔혹했나? 당신을 시기했나?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그들은 내게 잔혹하지도, 나를 시기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내게는 신사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탄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내가 한탄해서 무엇 하겠는가?

나는 성취된 것들의 절정이며, 나는 존재하는 사물들의 포괄자다.

내 발은 계단들 각각의 끝을 찬다.

각각의 계단 위에 세월의 꾸러미들, 그리고 그 계단들 사이의 더 큰 꾸러미들,

그 모든 아래를 충분히 밟으며 – 그렇게 여전히 나는 오르고 오른다.

오르고 오르자 내 뒤에서 환영들이 고개를 숙인다,

저 먼 아래에서 나는 거대한 최초의 무(nothing), 죽음의 코에서 나온 증기를 본다,

나는 내가 정녕 그곳에 있었음을 안다 – 나는 들키지 않고 늘 기다렸다.

그리고 하느님이 (God, 신이) 졸음에 겨운 안개 사이로 나를 데려가는 동안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내 시간을 누렸고 …… 고약한 냄새 나는 탄소부터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오래오래 나는 꼭 안겼다…… 오래오래,

나를 위한 준비는 거창했고,

나를 도운 손길들은 충직하고 친절했다.

자전거가 내 요람을 실어 날랐다, 마치 쾌활한 선원처럼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며,

나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별들은 그들 각자의 원을 그리며 곁을 지켰고,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을 보살피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 전 여러 세대들이 나를 보호했다,

나의 태아는 무기력한 적이 없다…… 아무것도 그 위를 덮을 수 없었다,


성운이 그것을 위해 구체로 응집했고…… 길고 느린 기충이  그 위에 쌓여 계속 지지했고…
… 거대한 식물들이 그것에 지속성을 부여했다,

괴물 같은 도마뱀들이 그것을 입으로 날라 조심스럽게 놓아두었다.

모든 힘들이 점차 나를 완전케 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지금 나 내영혼과 함께 여기 서 있다.

- 44 장에서 화자는 시작하기 앞서 자신을 설명한다하고, 벗어버린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의


본질 자체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다른 존재이며, 모든 남자와 여자라는 개별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을 신격화한다. 또한, 영원과 탄생의 반복됨을 강조하는데, 영원은 저수지, 즉 넓게
포괄할 수 있는 매개체로, 탄생에 있어 순환 또한 받아들일수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또한
여태껏 수조번의 반복이 있고 앞으로도 있을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탄생과 영원의 순환을
강조한다. 

- 44 장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설명한다며,알려진 것을 벗고 본질 자체를 바라보는
태도를 보인다. 모든 남녀와 함께 미지의 것을 향해 진출시킨다는 것은 
개개인이 힘을 합쳐 성취를 이뤄낸다는 것인다.화자는 시계(시간)과 영원을 
설의적으로 비교한다. 4연에서, 영원은 '밑바닥 없는 저수지'에 은유되어 
계속 차오르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끊임없는 영원의 연속성을 
뜻한다. 5연에서 이 영원은 '수조'의 계절의 순환을 통해 더 강조되는데,
화자는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방대한 삶의 연속성을 형상화한다. 화자는
탄생이 계속됨으로써 인간은 성장하고, 영혼이 세월을 겪음으로써 신성해 
진다고 믿는다.이 과정은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는 과정을 통해 은유된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죽음과 탄생을 경험한 화자의 영혼이 그를 성취된 것들의
절정과, 존재하는 사물들의 포괄자로 만든 것이다.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모든
힘(자연과 타인을 비롯한)이 그를 도와주었다며 감사하는 태도를 보이고,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인식한다.

48 장

나는 영혼이 곧 육체라 말한 바 있고,

또 육체가 곧 영혼이라 말한 바 있다.

그 무엇도, 하느님조차도 자신의 자아가 위대한 것 이상으로 위대하지 않다.

동정심 없이 얼마간의 거리를 걷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장례식장으로, 수의 차림으로


걸어간다.

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나나 당신은 지구의 한 줌 정도를 살지도 모르고,

한쪽 눈으로 흘깃 보거나 꼬투리 속에 든 콩알 하나를 보여주는 것은 모든 시대의 학문을


부끄럽게 한다.
또한 일이나 직업을 좇는 젊은이가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아무런 일도 직업도 없는 것이다.

바퀴 달린 우주의 중심이 되지 않고서는 그 사물은 그리 부드러운 것이 될 수 없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라도 백만의 우주 앞에 냉철하고 오만하게 서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명한다, 하느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말라고,

각자의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나는 하느님에게 호기심이 없으니,

어떤 말을 늘어놓아도 내가 하느님과 죽음 앞에서 얼마나 평화로운지 말할 수 없다.

나는 모든 객체들 속에서 하느님을 듣고 본다, 내가 하느님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또한 나 자신보다 더 놀라운 누가 있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해도,

왜 내가 다름 아닌 오늘 하느님을 보길 원해야 하나?

나는 스물 네 시간 내내 매 시간마다, 매 순간마다 하느님의 무언가를 본다.

남자들과 여자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거울 속 나 자신의 얼굴에서,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길거리에 떨어져 내린 편지들을 본다.

그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있던 자리에 두고 떠난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때가 되면 영원히


계속하여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 48 장에서 화자는 영혼과 육체를 같은 것으로 비유하며, 둘의 합을 중요시한다. 또한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둘의 결합과 조화가 하느님보다 위대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신격화된 존재인
하느님 조차도 자아가 위대한 것만큼 위대할 수 없다고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에게조차
호기심을 갖고 있지 않은 화자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의 고귀함, 즉 신격화된 존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어서 마지막행에서 화자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무언가를 본다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가치 자체가 하느님을 뛰어넘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33 장 
<중략>
이 모든 것을 나는 받아 삼킨다, 달게 맛본다……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그것은
내 것이 된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나는 고통을 겪었고…… 그곳에 있었다.
순교의 경멸과 평온함,
마녀라고 저주받아 마른 장작으로 불태워진 어머니, 바라보는 그 아이들,
경주에 뒤처져 쫓기는, 울타리에 기대 입김을 내뿜는 땀으로 뒤덮인 노예,
그의 다리와 목을 마치 바늘처럼 찌르는 아픔,
살인적인 산탄과 총알,
나는 이 모든 것을 느끼거나 이 모든 것이다.
나는 쫓기는 노예…… 나는 개에 물려 움찔거린다,
지옥과 절망이 내게 엄습한다…… 탕, 탕, 사수들이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울타리의 난간들을 움켜쥔다…… 내피가 피부에서 스며 나와 가늘게 질금거린다,
나는 잡초와 돌멩이 위에 쓰러진다,
말 탄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고 바짝 끌어 당긴다,
그들은 내 어지러운 귀에 조소를 보내고….. 회초리로 내 머리를 격렬히 내리친다.

고통은 내가 바꿔 입은 옷들 중 하나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묻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상처받은 사람이
된다,
내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바라볼 때 내 상처는 내게 격노로 화한다

나는 가슴뼈가 부서져 곤죽이 된 소방관……무너져 내린 벽들이 그 잔해 속에 나를 묻었다,


열기와 연기를 나는 들이마셨다…… 나는 동료들이 고함시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들의 곡괭이와 삽들이 내는 아득한 쩔렁임을 들었다,
그들은 멀리 빛을 비췄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나는 붉은 셔츠 차림으로 밤의 공기 속에 누워 있다……사방의 고요함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결국 아무 고통 없이 누워 있다…… 기진 맥진하지만 그리 불행하지는 않다,
하얗고 아름답다,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 머리에서 소방 모자들을 벗고 있다,
무릎 뚫은 대중들은 횃불과 함께 사라진다.

멀리 죽음에서 소생하여,
그들은 글자판으로 보여 주거나 내 손으로 가리킨다…..그래서 나 자신 시계가 된다.

나는 늙은 포병, 그래서 어느 진지에서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그 곳에 있다.

다시 북 치는 병사들의 기상 신호……다시 공격하는 폭탄과  박격포와 유탄포들,


다시 공격받은 자들이 응수의 포탄을 쏜다.

나는 참여한다……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듣는다,
비명과 욕지거리와 함성……명중한 총알에 따르는 박수,
느리게 지나가며 붉은 핏방울을 흘리는 구급차,
손상된 것을 찾아 필수 불가결한 보수를 치르는 인부들,
찢어진 지붕 사이로 떨어지는 수류탄…… 부채 모양의 폭발, 
팔다리 머리 돌멩이 나무 철사들이 높이 허공에서 윙윙대는 소리,

다시 내 죽어 가는 장군의 입이 꼴깍거린다……그는 격력하게 손을 흔든다,


그는 핏덩이 사이로 헐떡인다……나는 신경 쓰지 마…..신경 써……참호들을.

- 화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는 모두 경험에 의거한


것으로, 겪어본 모든 경험, 고통등이 전부 화자의 것이 된다고 말하며, 이를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는 특히 고통은 바꿔입는 옷이라는 표현을 통해 잘
나타나는데, 다른이의 고통을 자신이 입는다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타인의 고통 공감).
화자의 공감능력은 후에 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것에서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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