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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軍政實記 二
갑오군정실기 1
출진 영관 죽산부사 이두황, 영관 구상조, 안성군수 홍운섭, 원세록에
게 전령함
│10월 12일│
임금께 아룀
갑오군정실기 2 167
서산군수 성하영에게 전령함
출진 영관 구상조에게 전령함
갑오군정실기 2 169
라서 마구 섞여 못된 행실을 부렸다는 것을 옆에서 얻어들었다. 비록 그
들에게 협박을 받아서 그렇다 하더라도 평상시에 충성을 다한 상민들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혹 저들 무리가 받아들이
지 않는다면, 군대를 일으켜 무찔러 없앨 것이다. 대진(大陣)이 이르게 되
면 상민과 동학도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이에 전령한다. 너희들
두목은 상민을 단속하되, 정말로 표호(標號)한 후에 와서 대진에게 아
뢰어 약속한 것을 지켜, 죄다 무찔러 죽게 되는 화를 면하는 것이 마땅하
다.
전 친군영에게 감결을 보냄
갑오군정실기 2 171
습니다.
제(題) : (첩보가) 도착했다.
갑오군정실기 2 173
사들을 출발시켜 그들의 소굴을 소탕할 생각입니다.
제(題) : 선봉진과 일본 군사가 이미 출발하였으며, 그들이 도착하기
를 기다려서 며칠 전에 전령한 것을 거행하도록 하라.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임금께 아룀
일본 육군 보병 소좌 우마야하라(馬屋原)가 지금 바로 출발하였다. 잠
시 화성부(華城府)에 주둔하였다가, 그들 행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려라.
진퇴를 조절하는 절차는 하나같이 해당 사관(仕官)의 지휘를 듣고 시행
하라. 상황을 빨리 보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갑오군정실기 2 175
병정들이 거쳐 가는 연로에 있는 각 읍과 진의 관에게 전령함
강화 중군 황헌주에게 전령함
의정부가 상고함
│10월 13일│
병정들이 거쳐 가는 연로에 있는 각 읍과 진의 관에게 전령함
임금이 전교함
갑오군정실기 2 177
천하라는 내용으로 묘당(廟堂)에서 빨리 말을 만들어 지시하여 의논하
도록 하라.”고 하였다.
갑오군정실기 2 179
충청감사 박제순이 원본을 베껴서 보고함
갑오군정실기 2 181
도착한 관문을 첩보함
후(後)
선봉장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183
임금께 아룀
군수조납단자(軍需助納單子)
銀貨 1백 원(元) 좌 찬 성 이유승(李裕承)
1백 원 학무대신 박정양(朴定陽)
1백 원 공무대신 서정순(徐正淳)
6백 5십 원 탁지부에 덜어서 두었음
8원 농상협판 성기운(成岐運)
엽전 5백 냥 호분위별장(虎賁衛別將) 홍계훈(洪啓薰)
임금께 아룀
│10월 14일│
영평군수 홍태윤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185
다. 그래서 10월 6일에 충주로 전진하여 응원할 생각입니다.
제(題) : 뒤를 따라서 행군하니, 적을 하나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후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는가? 다만 지금부터 닥칠 것을 살피라.
왕이 이름
갑오군정실기 2 187
진실로 우리 백성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따르지 않을 리
가 없다. 전날의 잘못된 습속을 다 같이 고쳐 새롭게 하여, 나의 백성들
로 하여금 마치 호랑이의 입에서 벗어나 부모의 품 속으로 돌아온 것처
럼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
다.”라고 하였다.
갑오군정실기 2 189
에서 새로 임명된 부영관 안성군수 홍운섭은 안성을 막고 지키느라 아직
도 진에 나아가지 않았고, 전임 부영관인 성하영은 군사들의 수를 전달
하지도 않고 군사를 이끌어 청주병영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출발한
군대의 행진에 대해 통솔하고 조절하여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안성은 남쪽으로 통하는 중요한 곳으로, 잠깐 동안이라도 비울 수 있
는 곳이 아니므로 홍운섭에게 안성을 견고하게 지키게 하였고, 성하영은
이미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사람들 또한 참아내고 군심을
많이 얻어서 많은 군인들이 한목소리로 남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중망을 얻고 있으며 재주가 쓸 만한 자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
니다. 영관으로 다시 임명하는 일을 삼가 처분을 기다립니다. 급히 임금
께 아룁니다.
제(題) : (등보가) 도착했다.
갑오군정실기 2 191
이 안성에서부터 충주, 진천 광혜원(廣惠院) 등지에 널리 퍼져 있어서 장
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이미 소모관
지평현감 맹영재에게 전령을 내려 앞으로 나아가 무찌르도록 하였으니,
공문을 보내어 서로 날을 기약하여 진을 합쳐서 변화하고, 때에 따라 적
을 물리치고 사로잡으라. 상황을 먼저 빨리 보고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안성군수의 공이(公移)를 보니, “지금 여기에 순무영에서 내린 전
령[令旨]이 있습니다. ‘소모관 맹영재가 오기를 기다린 후, 마땅히 진천
주진소(駐陳所)에서 군무와 관련된 임무를 교체하고, 병정을 이끌고 절
대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주둔하는 사이에 고을의 폐단
과 백성들의 사정이 실로 걱정이며, 영관은 지금 이미 체직된 것이어서 또
한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우니, 부득이 그대로 머물게 하고 사방으로 쫓
아서 탐지하니 근처에 있는 비류들이 모두 도피하였으며, 우두머리들의
몇몇 집을 수색하였더니, 남은 군물(軍物) 중에 안성군수가 잃어버린 화
살 1부ㆍ활 1장(張)ㆍ철질려(鐵蒺䉫) 2두(斗)ㆍ새로 만든 화살 8부 50
개ㆍ철창(鐵槍) 1자루ㆍ철촉롱(鐵燭籠) 4개 및 민간에서 탈취한 백미
(白米) 7석ㆍ정조(正租) 19석과 약간의 솥[釜鼎] 종류 모두를 거두어들
였으며, 기록하여 안성현에 맡겨 두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10월 8일 술시 무렵에 도착한 호서부원수(湖西副元帥)의 전령
내용에, “행군의 거동이 얼마나 어렵기에 진천에 도착하여 이틀을 머물러
묵고 있으니, 어떠한 이유가 있는가. 이와 같이 부서져 힘이 없는 읍에서
중요한 군대를 대접하는 것은 하루일지라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어찌 이
틀을 대접할 수 있겠는가. 읍의 형세와 백성들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아
이와 같이 명확하지 않으며, 의심하여 나아가지 않아서 군심이 태만하여
크게 기세를 잃었으니, 그 죄에 해당하는 법을 적용하여 마땅히 군대의
갑오군정실기 2 193
약ㆍ연환(鉛丸)ㆍ염주(念珠) 등과 같은 물건을 탈취하였습니다. 9월
29일에는 전의현(全義縣)에 숙소를 마련하였는데, 고을 내에 소위 동학
의 우두머리 김철용(金哲用)ㆍ송동이(宋同伊)라는 자가 자칭 각 고을의
도인(道人)들을 모은다고 칭할 때에 군막으로 쓰일 것이라고 하면서 상
민(商民)들에게 양목(洋木)과 마필들을 빼앗아 와서 지금 가까운 마을
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그 마을을 포위하여 2놈을 찾아서 붙잡은 후에, 양
목 5필을 찾아냈습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김철용과 송동이를 잡아와
서 9월 30일 공주로 들어갔더니, 충청감사가 분부한 내용에, ‘청주병영이
지난 9월 24일 동도와 접전한 후에 일이 위험에 처해 있어 시급하니 곧바
로 연이어 출발하라.’라는 뜻을 담아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의소(全
義所)에서 잡은 죄인 김철용과 송동이 2놈과 양목 5필을 함께 공주감영
에 맡겨 두었습니다.
10월 1일에 연기현에서 숙소를 마련하였고, 10월 2일에 청주병영에 도
착하였더니, 충청병사가 분부한 내용에 ‘접전한 이후부터 충청병영의 병
정은 성 머리[城頭]에 배열하여 서서 밤낮으로 견고하게 지키라.’라고 하
였고, 저들 무리들은 30리 밖으로 물러가서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각처의 동도가 어느 날 밤에 병영의 군기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날마다 이르렀으니, 지금 이곳에 내려온 경병과 본영 병정이 함께 합세하
여 출정하겠다는 내용으로 명령하여 알렸습니다.
그래서 10월 4일에 청주병 1백 명이 본영병과 일본 군사가 함께 30리
밖에 있는 송산리(宋山里)로 나아갔더니, 동도 수천 명과 서로 겨루면서
접전하였습니다. 저들 무리의 선두에 있는 자 10여 명이 총에 맞아 곧바
로 죽었고, 나머지 무리들은 도망하였으므로, 곧바로 그 마을에 들어가
갑오군정실기 2 195
없는 장수가 군대를 이끌어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황송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題) : 일본 군사가 이미 출발하였으니, 며칠 전 전령한 대로 시행하라.
훈칙함
22 훈칙(訓飭):훈령을 내려 경계함.
갑오군정실기 2 197
서 정지하라. 인천에서 출발한 중대의 사관과 만나서, 위로부터 명령을
받아라. 목적한 곳에 도달하면, 충분히 부대와 협조하여 다시 출발하라.
조선의 군대는 각지에서 용무를 띠며 이르렀으며, 후방에서도 따라 이르
게 될 것이니 서로 투합할 때에 시의(時宜)에 알맞게 하라. 교도 중대를
편입하는 것은 오로지 귀관의 지휘 하에 속한 것이다.
임무상 이루어낸 것은 각 부대와 연락하여 통하는 것에 한하여 완급을
조절하여 상응함이 매우 필요하다.
1894년[明治 7年] 11월 10일 경성 수비대장 우마야하라(馬屋原) 소
좌가
히라키(白木) 보병 중위
미야모토(宮本) 보병 소위에게 보냄
갑오군정실기 2 199
는 부대(陣中)에서 와서 대기한 자는 다만 17명으로, 지금 어찌 50명이
라 하겠습니까?
또한 죽산부사의 회이(回移)를 보니, “나의 직임은 순무영의 영칙을 받
아서 비류를 무찌르려고 괴산을 향하여 가는 것인데, 음성에 이르러 탐문
하였더니, 비류들이 이미 그곳에서 흩어졌다. 그래서 나아가 도움을 주려
고 지금 청주로 간다.”라고 하였습니다. 청주영이 염려가 되더라도, 이미
경리청 영관이 이끄는 2소대의 병정이 있고, 또한 죽산부사가 가서 힘을
합치게 될 것이니, 모두 순무영 병정과 함께 하면 수가 매우 많아져 족히
부대를 합하여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겠지만, 안성 고을은 몇 개의 외
로운 군대로 화(禍)가 바로 앞에 이를 염려가 있어, 군수가 결코 잠시라
도 비울 수 없습니다.
생각건대 대진(大陣)이 며칠 사이에 내려와서 반드시 영칙할 것이지만,
전 군수[성하영]가 아직 병사들을 되돌려주지 않으니, 매우 송구스럽고
민망합니다.
제(題) : 선봉진이 이미 출발하였고, 인근의 병사들도 연이어서 차례로
내려갔다. 군대의 진퇴를 모두 지휘받아 행하면 안성군은 자연히 염려가
없을 것이다. 청주영에서 절제하는 것까지는 모르겠다.
│10월 15일│
총어영에게 감결을 내림
갑오군정실기 2 201
평민들을 몰고 갔다고 들었습니다. 때문에 듣고 나서 매우 놀랐습니다.
제가 곧바로 안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 17명을 이끌고 급히 그곳에
갔더니, 그 사이 도주한 자가 20여 명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로잡은
자는 7명으로, 접주 박병억(朴秉億)은 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
에서 효수하였습니다. 나머지 6명은 잡아와서 여러 차례 조사하였더니,
5명은 강제로 들어갔으므로 엄하게 신칙하여 풀어 주었으며, 1명은 직산
에 사는 민영훈(閔泳勳)인데, 폐해를 일으킨 것은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여서 죄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안성군의 목촌면(木村面) 보체(保
體)에 사는 임상옥(林尙玉)은 원래 양반가의 비부(婢夫)로 동도에 들어
가 패악을 자행하였는데, 마을에서 잡아서 바쳤습니다. 그래서 10월 13
일 민영훈ㆍ임상옥 등 2놈은 많은 백성을 모아 놓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
는 거리에서 모두 효수하였습니다.
제(題) : 더욱 찾아서 살피고, 모두 없애도록 힘쓰라.
임금이 전교함
임금께 아룀
갑오군정실기 2 203
는 것이 마땅하다.
│10월 16일│
임금께 아룀
임금께 아룀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205
제(題) : (첩보가) 도착했다.
선봉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207
경계하도록 하였습니다.
제(題) : 더욱 찾아내어 사로잡도록 하라.
│10월 17일│
의정부에 보고함
임금께 아룀
임금께 아룀
선봉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209
지른 군인은 수갑과 칼을 채워서 잡아 올리고 해당하는 군율을 시행하
며, 이후 단속하는 절차는 더욱 거듭 신칙하여 조금이라도 고을과 마을
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10월 12일에 군대의 행진이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수원부로 들어갔으
며, 수많은 사람과 말들이 돌아가는 편에 휴식을 취해야 했으므로 머물
러 묵었습니다. 그래서 기수(旗手)에게 이속(吏屬)들을 불러오도록 하였
는데, 그가 처소를 변별하지 못하고 영내에 난입하여 적발되기에 이르렀
습니다. 비록 소란을 피우고 폐해가 없었다고 해도, 일의 체모로 말하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그들을 수원부의 옥에 임시로 단
단히 가두고,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오는 날을 기다려서 적용할 법을 살
폈더니, 안렴(按廉)하기에 이르렀고, 이와 같은 영칙을 받들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죄인을 압송하여 올릴 겨를이 없어서, 찬 옥에 오래 가둔 지 이
미 며칠이나 되어, 지금은 몸이 쇠약해져 삶과 죽음을 판별할 수 없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나아지기를 기다려 압송하여 올려보낼 생각입니
다.
제(題) : 본진(本陣)에서 죄의 무거움을 경중으로 나누어 처리하라.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211
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10월 13일에 현감이 죽산부에 도착하였으며,
이후 상황은 일이 발생하는 것에 따라 빨리 보고할 생각입니다.
제(題) : (첩보가) 도착했다.
갑오군정실기 2 213
리 2백~3백 명이 군기를 묶은 것을 풀어서 정원갑(鄭元甲)의 빈집에 쌓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곧바로 총을 쏘면서 전진하였습니다. 이때
부상을 입고 넘어진 자가 3명이었고, 피하다가 잡힌 자가 9명입니다. 군
기들은 남아 있는 대로 빼앗았으며, 모여 있는 저들 무리들은 모두 흩어
졌습니다. 민병은 곧바로 돌아왔으며, 잡은 9명은 임시로 엄하게 가두었
으며, 획득한 군기와 집물은 성책하여 감사에게 올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민병 중에 대장(隊長)과 몸을 바쳐 먼저 올라간 자를
격려하고 권장하기 위해 마땅히 두터운 상을 내리는 은전이 있어야 합니
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목사와 전후로 미리 준비하여 막아서 무찌른
것은 여타의 것과는 크게 구별되는 일이며, 지금 또 잃어버린 군기를 되찾
고, 여러 놈을 붙잡았으니 더욱 그에 따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
장과 먼저 올라간 자는 충청감영에서 넉넉하게 시상할 생각입니다.
제(題) : 들으니 매우 다행스럽다. 이후 상황을 연속하여 보고하라.
갑오군정실기 2 215
를 기약하고 상황을 빨리 보고하라.
│10월 18일│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임금께 아룀
갑오군정실기 2 217
것을 보니, “군대의 행진이 10월 16일에 수원부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무사히 묵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임금이 답하기를, “알았다.”라고 하였다.
갑오군정실기 2 219
경기감사 신헌구가 원문을 베껴서 보고함
선봉장이 첩보함
임금께 아룀
갑오군정실기 2 221
수원유수 조병직이 장계함
의정부에서 임금께 아룀
갑오군정실기 2 223
청산(靑山)으로 옮겨서 모였다고 합니다. 비류들이 살던 풀로 만든 움
집[草窖] 4백여 곳과 마을에 있는 집이 수백여 호인데, 한 마을이 또한 이
미 텅 비어 있었고, 살고 있던 20여 놈들 또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수
색하여 잡은 3놈은 그 자리에서 총을 쏘아 죽인 후에 그들이 풀로 만든
움집과 가사(家舍)를 모두 태웠습니다. 보은으로 돌아오던 길에 한 놈
을 잡았는데, 이는 거괴를 따라다니면서 행패를 부린 자였으므로, 그 자
리에서 처단[結果]하였습니다. 처단된 자들의 성명과 죄목ㆍ장물을 모두
성책하여 올려보냈습니다.
당일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보은읍에 도착하였으며, 삼영(진남
영ㆍ장위영ㆍ경리청)의 장졸들은 함께 주둔하여 묵었습니다. 전진하여
무찌를 대책을 세워서 병사들을 나아가게 하는 것을 상의할 것입니다.
제(題) : 이미 진행하였으나 1명의 괴수는 잡지 못하였고, 다만 머물러
있으니, 일본 군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후에 진퇴를 상의하라.
│10월 20일│
경기감사 신헌구가 원문을 베껴서 보고함
갑오군정실기 2 225
다. 억지로 그들을 따른 자 23명은 잘 타일러서 풀어 주었으며, 15명은
모두 처단하였습니다.
진남영의 장졸은 곧바로 보은읍으로 가서 머물러 진을 쳤으며, 장위영
의 장졸들은 곧바로 장내(帳內)로 들어가서 동도 4명을 잡았는데, 이들
또한 처단하고 풀로 만든 움집[草窖]을 모두 태운 후, 3영(진남영ㆍ장위
영ㆍ경리청)의 장졸들이 함께 전진하여 상의하고 그들을 물리칠 생각입
니다.”라고 하였기에, 급히 임금께 아룁니다.
제(題) : 임금께 아뢰기 위한 보고문이 도착했다.
임금께 아룀
임금께 아룀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선봉이 첩보함
갑오군정실기 2 227
하여 무사히 묵었습니다. 직산 고을에서 소 1마리와 술 4동이를 가지고
와서 진(陣)에 바쳐, 병사들에게 먹일 것으로 삼았습니다. 각 소대 및 진
에 나와 있는 여러 인원들에게 나누어 먹였으며, 오늘 진시(辰時, 오전 7~9
시) 무렵에 천안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제(題) : 임금께 아뢰기 위한 보고문이 도착했다.
임금께 아룀
전 용호영에 사통23을 보냄
갑오군정실기 2 229
품처하도록 하였으며, 변경에서의 경보를 알리는 문보(文報)가 여러 날
지체되고 있어서 징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회덕의 수향과 이향들을 진남
영에서 무거운 형벌로 다스릴 생각입니다. 급히 임금께 아룁니다.
제(題) : 비도들이 도처에서 창궐하니, 매우 통탄스럽고 놀랍다. 그들
을 무찔러 사로잡는 방법을 더욱 신칙하여 실효를 거두도록 하라.
갑오군정실기 2 231
임금께 아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