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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第76輯 第3卷 2020年 10月 DOI : http://doi.org/10.31066/kjmas.2020.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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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제1차 북핵 위기를 중심으로*
The DPRK’s Attrition Stratgy in Asymmetric Negotiation :
Focusing on the PUEBLO Incident and the 1st DPRK’s Nuclear crisis
박 지 수 (Jisoo Park)**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ABSTRACT
This article argues that the DPRK has implemented a negotiation strategy of
“attrition” to overcome differences in power and to achieve its desired goals in
asymmetric negotiations with a superpower. To that end, the DPRK has tried to
achieve dominance in negotiations, also known as Issue-specific power. In addition,
the DPRK has designed, created, and utilized a favorable negotiation circumstance
by implementing various negotiation behaviors, such as “creating a crisis,”
“dragging time,” and so on. These DPRK’s negotiation behaviors bring the effect
of exhausting the United States and weakening the U.S. power in negotiations.
The thesis will support this argument by explaining two examples—the Pueblo
Incident, the negoti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DPRK for the Agreed
Framework. It also provides a reasonable explanation for the DPRK’s negotiation
tactics shown so far, such as “crisis-building tactics” or “Brinkmanship tactics.”
Key words : Negotiation, Negotiation Power, Negotiation between
DPRK-U.S., Asymmetric Negotiation, PUEBLO incident, 1st Nuclear Crisis
주 제 어 : 협상, 협상력, 협상 전략, 북·미 협상, 비대칭 협상
* 이 논문은 저자의 석사 학위 논문의 일부를 요약 및 발췌한 내용임.
** 육군 소령(진), 군사학 석사, 151wkrwjs@gmail.com
*** 유익한 논평을 해 주신 세 분의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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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I. 서 론
여러 상징적 의미로 가득 찬 2018년에도 불구하고,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의 협상은 여전히 교착 상태에 머물러있다. 북한은 2019년 한 해 동안 수차례
에 걸친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발사 등 저강도 도발을 멈추지 않았으며, 미
국에 연말 시한까지 부여하면서 협상에 대한 셈법 변경을 고집하였다. 한국을 향해서
는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 설 것을 요구하며,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기도
하였다. 심지어 2020년 6월에는 대북전단을 빌미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
고, 7월 27일 열린 제6차 전국노병대회에서 김정은은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국가의
안전과 미래를 담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핵을 담보로 한 북·미 간의 협상은
더 이상 2018년의 봄을 재연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왜 협상에 나서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의지
보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돌파구 형성’과 ‘체제 안전의 보장’에 더욱 방점이 있을 것
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레닌(Lenin', Vladimir Il'Ich)은 불리한 상황에서는 상대
방과 협약을 맺을 수 있어야 하며, 이 기회를 틈타 힘을 쌓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토니 클리프 저, 이수현 역 2010, 65-86). 남성욱은 북한 역시
레닌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협상을 ‘또 다른 형태의 혁명 투쟁 수단’으로 인식한다고
보았다(남성욱 2018, 62).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할 때, 협상에 대한 북한의 인식은 여
전히 ‘승리를 통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투쟁’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북한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견인하기 위해 다양한 행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의 협상 전략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학자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많은 연구가
다방면으로 이루어져 왔지만(남성욱 2018; 문성묵 2012; 송종환 2002; 양성철·이용필
1995; 이성춘 2008; 정성윤 2008; 차문석 2014; 허만호 1997; Downs 1999; Joy 1955;
Snyder 1999;),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협상 전략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
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있다. 다운스(C. Downs)는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협상 레퍼토리를 가지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독특한 협상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Chuck Downs 1999, 127). 허만호는 북한의 협상 전략이 협상을 혁명
의 도구로 보는 공산주의의 협상관을 나타내면서도 다른 공산주의의 국가들보다도 훨
씬 공격적이라는 데서 공산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협상 행태와 다른 점이 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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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한 바 있다(허만호 1997, 212). 이처럼 대부분의 연구는 북한의 협상 행태가 설명하기
어렵고, 남들과 다르며, 독특하다고 주장할 뿐, 일정한 패턴을 발견함으로써 협상 전
략의 일반화를 시도한 연구는 빈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협상 이론을 통해 과거 북·미 간의 협상을 분석 및 평가하고, 이
를 통해 북한의 협상 전략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푸에
블로호 나포 사건과 제네바 협상을 ‘소모(消耗, Attrition)’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북
한은 강대국인 미국과의 비대칭 협상에서 국력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협상력으로
정의되는 ‘이슈 특화적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다양
한 협상 행태의 ‘반복과 지속’을 통해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고, 협상력을 약화시켜 목
표를 달성하는 ‘소모적’ 협상 전략을 택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북한의 일관적인 협상 전략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가’하는 연구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는 사례는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제1차 북핵 위
기를 둘러싼 제네바 협상이다. 두 사례를 분석하기 위해 ‘협상 구조’와 ‘협상력’, ‘협상
환경’이라는 세 요소 간 삼각관계를 설명하는 분석의 틀을 사용한다. 즉, 북한의 협상
전략은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 협상 시작 단계에서부터 협상 구조를 유리하
게 조성하기 위한 전술, ◯2 협상 진행 단계에서 협상력을 최대화하기 위해 보이는 협
상 행태, 그리고 ◯3 협상 환경을 유리하게 변화시키거나, 이를 이용하는 행위를 모두
포괄하는 ‘소모적’ 협상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논문의 구성으로서, 2장에서는 비대칭 협상의 개념과 협상 구조 및 협상 환경, 협상
력 그리고 분석의 틀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다룰 것이다. 특히, 북한의 협상 전략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상 구조와 협상력, 협상 환경이라는 세 요소 간 관계
에 대한 방향과 지침을 제공한다는 개념 정의를 시작으로, 북한이 그동안 보여왔던
협상 행태를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3장과 4장에서는 푸에
블로호 사건 및 제1차 북핵 위기의 발생과 경과를 설명하고, 두 협상 사례에서 북한
이 미국을 상대로 어떠한 협상 전략을 구사했는지 살펴봄으로써 북한의 협상 전략이
다양한 협상 행태의 반복과 지속을 통해 미국을 지치게 하는 소모적 협상 전략이었다
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인 5장에서는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에
대해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향후 대북 협상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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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론적 논의
1. 비대칭 협상(Asymmetric Negotiation)의 개념
비대칭 협상이란 자원과 능력이 서로 다른 두 행위자 간의 협상으로 정의된다
(Habeeb 1988, xi). 강대국에 비해 총체적 국력은 열세이지만, 특정 이슈에 대한 힘이
우세하다면 약소국이라도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원하는 협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비대칭 협상 이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약소국은 특정 이슈에 대한 힘의 결정요
소인 대안(Alternative)과 의지(Commitment), 통제력(Control)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협상 행태를 보인다(Habeeb 1988, 19-23). 국력과 자원의 크기가 비대칭 관
계에 있는 두 국가 간의 협상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는 측면에서 비대칭적 협상 이론은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인 현실주의 관점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국가는 약소국을 상대로
한 비대칭적 협상에서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Habeeb 1988, xi). 그러
나 현실에서는 국력이 약한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미국과 파나마 간
파나마 운하 협상이나, 미국과 스페인의 미군기지 협상, 그리고 아이슬란드와 영국의
대구분쟁 협상이 대표적이며, 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북·미 간의 푸에블로호
사건과 제네바 협상을 들 수 있다. 하비브(W. Habeeb)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
하는 전통적 개념들을 비판하면서 비대칭적 협상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협
상 당사자들이 가진 힘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협상 과정 자체에서 보이는 역동성을
통해 상대적인 협상력이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체계를 발견하고자
하였다.
2. 협상 구조와 협상 환경
협상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먼저, 둘 이상의 협상 당사자가 존재해야 하며,
공통의 이익뿐만 아니라 협상 당사자 간 이익 갈등이 동시에 작용하는 상황이어야 한
다. 그리고 협상하지 않는 것보다는 협상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이익일 것이라는 믿
음이 공유되는 조건에서 힘의 경쟁 혹은 대결이 아니라 상호 이익을 위한 의사소통으
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심준섭 외 201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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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이러한 협상의 성립 조건은 필연적으로 협상 구조를 창출한다. 협상 구조는 협상
당사자들이 협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협상 당사자들은 하나 이상의 의제를 가지고 협상을 시작하며, 협상에는 제3자와 대
리인 등을 포함하는 협상 당사자 간의 관계가 존재한다(심준섭 외 2015, 4).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의사소통 기술을 활용하여 협상을 이끌어 나가고, 각자 자신에게 유리
한 협상 구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심준섭 외 2015, 4-20). 협상 구조
는 협상 이전 단계부터 협상의 성립과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로써, 협상 당사
자, 협상 의제와 성격, 협상 장소, 합의 가능 영역, 그리고 협상칩 등을 포함하는 개념
으로 이해할 수 있다.1)
특히 협상 의제는 협상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협상 의제는 협
상의 목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따라서 협상에 나선 당사자들은 협상의 목표에
따라 누구와 어떠한 의제를 가지고 협상을 할 것인지, 협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특정 의제에 대한 자신의 입
장을 끈질기게 고수하고, 상대의 양보를 강요하기 위한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마지막
으로 협상 당사자들은 협상 목표를 보다 수월하게 달성하기 위하여 협상칩의 크기를
키우려는 행태를 보인다.
합의 가능 영역(Zone Of Potential Agreement 또는 Zone Of Possible Agreement)
의 형성은 구조적으로 협상의 타결을 가능하게 한다. 각 협상 당사자들은 협상을 통
해 얻고자 하는 최상의 결과인 목표점(Target Point)과 상대의 제안을 수용할 수 있
는 최저 한계점인 유보점(Reservation Point)을 갖는다. 각 협상 당사자들 간 목표점
과 유보점 사이의 영역이 서로 겹치는 지점에서 협상의 타결이 가능하며, 이를 일컬
어 합의 가능 영역이라고 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그림 1>과 같다.

1) 박종철은 협상 구조에는 회담 형식과 합의 이행 순서, 의제 등이 있다고 보았고(박종철 2003,


123-154), 양성철과 이용필은 협상 구조에 대해 협상자와 협상 이슈, 협상 타결 과정으로 구분하는
미시적 관점과 협상자의 권력의 차이, 문화, 체제 등으로 구분하는 거시적 관점으로 설명한 바 있다(양
성철 외 1995,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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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A와 B 사이의 합의 가능 영역
합의 가능 영역이 형성되는 위치에 따라 협상의 유·불리 또한 달라지게 된다. 위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B의 양보로 B의 유보점이 A의 목표점 방향으로 이동
하면 합의 가능 영역은 A의 목표점에 가깝게 형성되어 A에게 유리한 협상이 된다.
반대로 A가 유보점을 B의 목표점 방향으로 조정하면, 협상은 B에게 유리하게 변한다.
따라서 각 협상 당사자들은 합의 가능 영역을 자신이 목표하는 지점으로 끌어당기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협상 행태를 보인다.
북한이 협상에 나서기 전, 협상 구조에 대단히 신경을 쓴다는 근거는 조이의 연구
를 통해서도 제시된 바 있다(Joy 1995, 1-9). 그에 따르면 북한은 강대국과의 단독 협
상을 통해 체제의 위상을 선전하기도 하고, 협상과 관련 없는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에게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위기 조성과 시간 끌기의 행태를 보임으로
써 협상의 타결을 갈망하는 상대방이 먼저 양보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이처럼 협상 구조를 유리하게 설계하는 것은 협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3. 협상력(Negotiation Power)
협상력은 협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협상에 직접 관련되는 자원을 종합적으로 활
용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협상에서 상대방을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유도하는 데 결정
적인 역할을 한다. 이달곤은 사용하는 자원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 상대방을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과 위치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자원을 이용하는 힘인
협상력이 협상의 과정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이달곤 2015, 20-21). 결
국 협상력은 의도된 협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협상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동원하여 협상 목표를 달성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협상 자원은 협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서, 협상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범위에 한한다. 협상 당사자의 경제력, 군사력 등으로 대표되는 국력은 광의의 협상
자원에는 포함되지만, 협상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기 때문에 협상력을 결정한다고 보
기 어렵다. 자트만(W. Zartman)은 협상 당사자의 능력을 주어진 자질이나 관계로만
보지 않고, 인과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역량으로써 협상력을 규정하였다(Zartman 1983,
15-18). 코헤인(R. Keohane)과 나이(J. Nye) 또한 총체적 힘, 특히 군사력이 강한 국
가가 모든 쟁점 영역에서 지배력을 갖고 원하는 외교적 결과를 성취할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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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주장한 바 있다(Keohane & Nye 1977, 23-27).
비대칭 협상에서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현상을 설명하
지 못하는 현실주의적 관점의 한계에 대한 대안적 개념은 ‘이슈 특화적 힘
(Issue-specific Structural Power)’이다. 이는 특정 이슈에 대한 협상 당사자의 능력과
자원을 의미하는 ‘협상력’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이슈 특화적 힘의 균형은 대안과 의
지, 통제력이라는 세 변수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Habeeb 1988,
19-21). 비대칭 협상 관계에서 약소국이라도 강대국에 비해 이슈 특화적 힘이 우세하
다면 협상에서 이길 수 있다. 따라서 약소국은 이슈에 관련된 힘의 결정요소인 대안,
의지, 통제력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협상 행태를 보인다.
첫째, 대안은 협상 이외의 대안(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이하
BATNA)을 의미한다(Fisher & Ury & Patton 1991, 99-106). 협상이 교착 상태에 진
입하거나, 결렬되는 지점을 의미하는 ‘Security Point’2)에서 협상 이외에 더 많은 대안
을 가진 당사자는 협상에 대한 의존성이 낮고, 높은 협상력을 갖는다. 하비브는 일반
적으로 약소국에 비해 총체적 힘이 강한 강대국이 더 많은 대안을 마련하고 개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강대국은 약소국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회피하면서, 국제법
이나 국제기구, 국제공조 등을 통한 해결방식을 선호한다. 반대로 대안이 적은 약소국
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상대 국가의 대안을 축소시
켜 협상 의존성을 높이는 협상 행태를 보일 수 있다.3) 하지만 협상력의 크기에 영향
을 미치는 세 변수는 상호 보완적이므로 대안의 불균형은 의지와 통제력이라는 다른
변수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Habeeb 1988, 22).
둘째, 의지는 행위자가 선호하는 결과를 바라거나 요구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Habeeb 1988, 21). 특정 이슈에 대한 관심과 욕구의 차이는 결국 의지라는 변수의 불
균형을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강대국은 관심 영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협상에 대한
의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반면, 약소국의 경우 관심 영역이 강대국에 비해 협소하
여, 상대적으로 협상에 강한 의지와 전념을 발휘할 수 있다. 의지는 가능성 있는 다양
2) ‘Security point’에 대해 오델(John S. Odell)은 유보가치(Reservation Values) 혹은 저항점(Resistance
Points)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하였다. (Odell & Tingley 2013, 146). 이는 본 연구에서 다루는 유보점
(Reservation Point)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Security Point’를 벗어나는 것은 유보점에서
이탈하는 것, 즉 협상이 교착 혹은 결렬되는 것을 의미한다.
3) 예를 들면, 약소국은 협상이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극단적인 외교정책을
취하게 되는데, 북한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은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행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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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한 옵션이 지니는 가치의 크기에 비례한다(Habeeb 1988, 22). 따라서 협상에 대한 의
지가 높을수록 선호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위한 더 많은 헌신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
리고 협상에서 보이는 행태는 더욱 직접적이고 집요해진다. 일반적으로, 필요에 기초
한(based on need) 의지는 이슈 특화적 힘을 약화시키는 근원이 되는 반면, 열망에
기초한(based on aspiration) 의지는 이슈 특화적 힘을 강화시키는 근원이 된다. 최근
북·미 간의 협상을 사례로 보면, 미국은 북한의 핵 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관심 이슈들
이 존재하지만, 북한에 있어 미국과의 협상은 사활적 이슈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
한은 미국에 대해 열망에 기초한 의지를 가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셋째, 통제력은 비용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선호하는 결과를 일방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Habeeb 1988, 22). 통제력 역시 Security Point와 관련이 있
는데, Security Point에서 선호하는 결과를 더 얻을 수 있는 측이 상대보다 더 큰 통
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약소국이 협상의 대상물에 대한 통제력을 장
악하고 있다면, 이는 강대국인 다른 협상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는 매우 결정적인 힘
이 될 수 있다. 북한은 이러한 통제력을 보다 증대시키기 위해 모호성, 극단적 정책,
방해 전술, 오리발 전술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 통제력이 대안과 다른 점은,
Security Point에서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통제력의 우
세를 통해 협상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는 데 있다.
협상에 대한 의존과 협상력 간에는 일종의 ‘역설(Paradox)’이 존재한다. 둘 이상의
당사자가 벌이는 상호 의존관계라는 협상의 본질적 속성상, 협상에 덜 의존적인 측이
더 의존적인 측보다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상호 의존 관계란 서로 의존하면서 형성
된 관계를 의미하며, 각 협상 당사자들은 선호하는 결과를 서로 차지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협상에 의존한다(Habeeb 1988, 19). 따라서 상호 의존 패러다임은 협상 당사자
의 관계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협상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것은 정해진 상
대와 협상하지 않을 경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
서 협상 의존성이 높으면 협상력이 낮아, 상대방에게 많은 양보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대로, 협상 의존성이 낮으면 상대와 협상하지 않고서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많으므로 상대방에 비해 협상력의 우위를 점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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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4. 분석의 틀 :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협상에서 이기는 전략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를 ‘협상 전략’이라 부른다. 협상 전략
은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심준섭은 카니발(P. Carnevale)의 연구를 인용하여 협상 전략에 대해 “포괄
적인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협상 당사자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접근방법을 규정
하는 협상의 행동 계획”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심준섭 외 2015, 10). 협상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는 어느 일방의 선택이 다른 일방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다. 동시에 협상 당사자들이 가진 힘의 크기가 서로 다른 불균형 상황에 놓이
게 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협상 당사자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힘의 불
균형을 해소하고,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Deutsch 1973, 84-93).
북한의 독특한 협상 전략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분석 모형의 설계가
필요하다. 협상에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협상력’이다(Habeeb 1988, 14-17). 따라서 협상에 나선 국가들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
해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보이는 협상 행태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동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은 협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협상 무대를 세심
하게 준비하거나, 그들에게 유리한 결론으로 구성된 의제를 제시하고, 협상의 전(全)
과정에서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건과 잡음을 생성하는 등 독특한
행태를 보여왔다(Joy 1955). 따라서 특정 이슈에 대한 대안과 의지, 통제력이라는 세
변수의 변화를 통해 협상력의 열세를 극복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북한의 협상 전략에
대한 분석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북한의 협상 전략을 ‘소모’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지금까지 알
려진 북한의 독특하고 다양한 협상 행태는 결국 협상 타결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을 지치게 하고, 협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과 관련이 있다. 강
대국인 미국에 비해 국력 면에서 취약한 북한은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리한
협상 환경이 조성되기까지 관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협상력을 최대한 높이고, 위기를 조성하거나, 시간을 끄
는 등의 다양한 전술적 행태를 통해 상대방을 지치게 함으로써 협상에서 원하는 목표
를 달성하고자 한다.
소모전략은 개별 전투들의 지속과 반복을 통해 적을 약화, 패배시키는 전략이다.
즉, 적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반복해서 타격하고, 적의 전투력을 고갈시킴
264
韓國軍事學論集
으로써 궁극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전략이다(Mearsheimer 1983, 29). 소모적 협상 전략
역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전술과 행태를 통해 상대방을 약화시키고, 협상 목표를 달
성하기 위해 사용된다. 전쟁에서는 군사력이 강한 강대국이 소모전략을 추구하지만,
협상에서는 ‘협상력’이 우세한 국가가 소모전략을 택한다. 따라서 약소국은 특정 이슈
에 대한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다. 협상에서 협상력의 우세를 확보한 약소국
은 ‘소모와 지연’이라는 행태적 권력을 통해 유리한 협상 구조를 설계하고, 협상 환경
을 조성 및 이용하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강대국을 심리적으로 약화시키고자 노력하
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아래 <그림 2>와 같은 분석의 틀
을 제시한다.

<그림 2> 분석 모형 :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구체적으로 협상력의 우세를 확보한 북한은 협상 의제를 관철하고, 목표를 달성하


기 위하여 협상 구조와 환경 측면에서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구조적 측면에서 최초
의제를 협상 기간 내내 끈질기게 고집함으로써 협상에서 다른 상대방이 먼저 양보 의
사를 보이고 유보점을 조정할 때까지 관망하는 자세를 보인다. 그리고 협상 환경 측
면에서는 확보된 통제력을 바탕으로 위협과 강압, 압박, 혹은 유화적 제스쳐 등을 통
해 상대방의 양보를 강요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러한 북한의 끈질기고, 집요한 행태는
결국 협상 상대방을 지치게 만들고, 협상력을 더욱 약화시켜 양보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본 연구에서는 위의 <그림 2>와 같은 분석의 틀을 통해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협상력을 키우는 행태를 보이고, 미국의 협상력이 약화될 때까지 시간을 끌거

265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나, 유리한 협상 구조와 협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고 주장한
다.

Ⅲ. 푸에블로호 사건과 북한의 협상 전략


1. 협상 구조 : 선전 및 선동에 유리한 협상 구조 설계
푸에블로호 사건을 일으킨 북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미국과 단독으로 협상에 마주
앉아,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체제의 우월성을 대내·외적으로 선전 및 선동하는 데 있었
다(Lerner 2002, 191). 푸에블로호 사건을 둘러싼 북·미 간의 협상에서 북한은 협상 대
상과 장소, 의제 등의 측면에서 체제의 선전 및 선동에 최적화된 협상 구조를 설계하
기 위해 노력하였다. 북한이 푸에블로호 사건을 통한 협상의 성립과 구성을 위해 어
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협상 대상과 협상 장소, 협상 의제와 성격 등의 측면에서 구
체적인 근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은 협상 상대로 미국만을 끈질기게 고집하였다. 당시 미국은 북한과 단독
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을 최악의 해결책으로 여겼고, UN과 국제 적십자
기구 등 국제기구와 다른 공산권 국가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북한은 이
와 같은 미국의 시도를 모두 거부하고 오로지 미국과의 단독 협상만을 고집하였다
(Lerner 2002, 141-143). 북한이 푸에블로호 사건 자체를 주체사상의 우월성을 선전하
고 선동하는 데 활용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때(조선신보 1968/02/10; 인민군 창군
20주년 기념대회 1968/02/08), 냉전 시기 미·소 양극 구도의 한 축을 차지했던 미국과
정부 대 정부로서 단독으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북한의 입장
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유리한 구조였던 것이다.
둘째, 북한은 최초 협상 제의 당시부터 협상 장소로 판문점을 고집하였다(Lerner
2002, 143).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진 장소이다. 북한은 정전협정
에 대해 미 제국주의의 ‘항복 선언’으로 선전 및 선동 해오고 있다. 결국, 판문점이라
는 장소는 미국이 북한에 ‘항복한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4) 이러한 역
4) 북한은 푸에블로호 협상의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는 미측 대표단의 모습에 대해 “미제침략자가 사죄하는
문건에 사죄하는 그 몰골은 사람들에게 15년전 조선인민앞에서 항복문건에 서명하던 패전장군 클라크
의 몰골을 련상시켰다”고 하였다(조선중앙연감 1969, 189-196).

266
韓國軍事學論集
사적 기억을 토대로 보면, 북한이 왜 협상 장소를 판문점으로 고집하였는지 추측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는 기선을 제압하고, 협상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함과 동시
에 선전 및 선동을 위한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Lerner 2002,
137).
셋째, 푸에블로호 사건을 둘러싼 협상은 구조적으로 단일의제 협상이었다. 북한의
유일한 협상 옵션은 영해 침범에 대한 3A5)를 미국 측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푸에
블로호 사건에서 북한은 하나의 의제를 놓고 승무원 생명을 담보로 함으로써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 내었다. 즉, 미국 측이 다른 옵션을 제시함으로써 타결을 이끌어 낼 빌
미를 처음부터 차단하였던 것이다. 북한은 승무원의 생명을 담보로 한 기자회견과 허
위 자백 강요 등을 통해 선전 및 선동을 지속함으로써 어느 정도 이익을 취할 수 있
는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북한은 협상의 결렬 혹은 고착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미
국 측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협상 의제로 제시하고, 미국이 망설이는 시간을
통해 협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고집스러운 태도는 구조적으로 합의 가능 영역의 생성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을 위한 북·미 간의 협상 기간 중, 합의를 위해 유보
점을 조정(양보)하고 다양한 옵션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강대국인 미국이었다. 협상
초기 북한과 미국은 각자 목표점과 유보점을 일치시킨 상태에서 상호 양보 의사를 보
이지 않고 팽팽하게 맞섬으로써 합의 가능 영역이 존재할 수 없었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문제 외에도 다양한 국내·외적 이슈를 다루어야 했
으며 북한과의 협상에 오랜 기간 국력을 집중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점차
지치기 시작했고, 협상력이 점점 약화됨에 따라 협상을 신속하게 마무리 짓기 위하여
유보점을 조정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최초 북한의 요구인 3A 수용을 거부하다가,
북한이 수용할 법한 다양한 옵션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목표점을 향해 유보점을 조정
해 나갔다.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은 사
건이 발생한 해를 넘기기 직전에 ‘레너드 안(Lenard 案)’6)을 제안하면서, 북한과의 합
의 가능 지점을 겨우 형성할 수 있었고,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그림 3>은 협
5)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북한 영해 침범 및 적대행위에 대한 인정(Admit)과 이에 대한 사과
(Apologize), 그리고 재발 방지를 보장(Assure)하는 이른 바 ‘3A’를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6) 미 국무부 한국지부장 레너드(J. Lenard)가 제안한 것으로, “미국은 북한이 제시한 사과문의 내용을 전
면 부인하며, 오직 승무원의 송환만을 위한 서명”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이후 사과문에 서명하겠
다는 방안(양승함, 박명림, 윤민재, 2010, pp. 29-30). 북한 체제의 특성 상, 언론 통제가 용이했으므
로, 매체를 통한 미측 대표의 성명은 북한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김창규 2012, 192).

267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상의 진행에 따라 미국의 유보점이 점차 북한의 목표점 방향으로 이동해 가는 모습이
다.

<그림 3> 푸에블로호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와 유보점 조정

북한은 결국 체제의 선전 및 선동이라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적화된 협상


구조를 설계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푸에블로호 사건을 통해 북한은 세계 초강대
국인 미국과 단독으로 협상 테이블에 국가 대 국가로서 마주 앉았으며, 사건에 대한
미국의 책임 인정과 이에 대한 사과, 재발의 방지를 약속하는 문건에 서명을 받아내
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구조적으로 단일의제를 설정한 뒤 이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매 협상마다 동일 의제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미국을 지치도록 만든 소모적
협상 전략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 협상력 : 북한의 통제력 장악과 협상력 우세
북한은 협상력으로 정의되는 이슈 특화적 힘의 극대화를 위하여 대안과 의지, 통제
력 변수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대안의 측면에서 북한은 미국이 가진 다양한
대안을 모두 거부하거나, 대안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하여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7) 의지의 측면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푸에
블로호 사건이 다른 이슈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는 달리, 북한은 사건 자체
를 1년 가까이 끈질기게 선전 및 선동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협상에 대한 동력을 유
지할 수 있었다. 통제력의 측면에서 북한은 승무원의 생명을 담보로 삼음으로써 협상
이 교착 혹은 결렬되더라도 기존의 목표였던 선전 및 선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은 협상이 교착 혹은 결렬될 경우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7) 북한은 다양한 대안이 모두 축소되어 마땅한 해결책이 없이 고심하던 미국 측 정전위 간부에게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은밀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Lerner 2002, 142-143; Downs 1999, 127).

268
韓國軍事學論集
첫째, 사건 초기 미국은 다양한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신속하게 논의하였다. 태평양 지역의 군 지휘부는 6가지 군사적 옵션을 고려
하였고(정성윤 2008, 172), 미 공군은 수백여 기의 전투기들을 한반도로 전개시킬 계
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미 국방장관 맥나마라(R. McNamara) 역시 단호한 대응의 필
요성을 주장하면서, DMZ 일대의 북한군을 납치하는 것,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하는
것, 미 해군을 포함하여 26대의 B-52 폭격기를 오키나와로 파견하는 방안 등을 고려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실제 1968년 1월 말경에는 수많은 전투기와 폭격기, 정찰기 등
이 오산과 군산 등 한국 내 여러 공군 기지에 집결하기 시작하였다(Cheevers 2013,
112-113).
하지만 이와 같은 군사적 옵션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다. 당시 1월 21
일 발생한 청와대 기습사건으로 인해 한국 정부와 군부는 ‘즉시 강력한 보복에 나서
야 하며, 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이를 다독이던 상황이었다. 하물며
자국의 선박이 나포된 사건으로 인해 DEFCON 단계를 격상시키는 것은 오히려 한국
정부에 좋지 않은 인상만 심어줄 뿐이었다. 또한 주한 미군이 DEFCON 단계를 격상
하면, 한국군도 이를 빌미로 DEFCON 단계를 격상함으로써 한반도 내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양승함 외 2010, 16).
군사적 옵션을 통한 사건 해결은 베트남전에 대한 부담으로도 작용할 수 있었다.
당시 베트남으로 증원되어야 할 병력의 일부가 한반도로 전환됨으로써, 베트남으로의
전력 집중이 어려워질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군사적 보복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제2
의 한국전쟁이 발발한다면 미국은 동시에 두 개의 전역을 담당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
야 했었다. 또한, 중국과 소련의 반발로 북한의 군사력 증강을 지원하는 형식의 대응
을 야기할 우려가 있었다(임재학 2012, 131-170). 따라서 워싱턴에서의 군사적 옵션에
대한 논의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결국 미국은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이 베
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역량을 분산시키려는 국제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보
았다. 따라서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이 국제 분쟁의 일부일 것이라 여기고, 승무원과
선체의 송환, 북한의 대남 공격 종식을 돕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최대한 신
속하고 단호하게 행동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유엔의 개입을 요청하였다(양승함 외
2010, 12). 이에 유엔 안보리는 북한과 남한을 초청해 서로의 입장을 개진하게 하는
것, 중재를 위한 위원회의 설립, 비밀리에 중개를 위한 루마니아 대표의 파견 등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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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방안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유엔 주도의 다양한 방안들은 모두 김일성에 의해 거부되
면서 사건의 해결은 난항을 겪게 되었다.(Lerner 2002, 141-142).
둘째, 의지의 측면에서도 북한은 미국에 우세를 보였다. 강대국인 미국은 넓고 다양
한 관심 영역으로 인해 푸에블로호 협상에 많은 역량을 오랫동안 집중할 수 없었다.
반면, 북한은 1968년 1월 24일 푸에블로호 사건에 관한 첫 보도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 31일까지 총 275차례나 관련 보도를 내면서 체제의 우월을 선전하고, 과시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하였다(박형준 2019, 304). 북한은 사전에 계획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푸에블로호 사건이라는 이슈를 일으키고, 이를 통해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열
망’에 사로잡혀 있었던 반면, 미국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필
요’에 의해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열망에 의한
의지’와 ‘필요에 의한 의지’라는 구분을 형성하였고, 결국 특정 이슈에 대한 북한의 권
력(협상력)은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푸에블로호 사건 초기 미국 여론의 관심은 오직 푸에블로호 사건에 집중되어 있었
다. 푸에블로호 사건이 발생한 1월 말, 뉴스의 주요 기사, 지방 신문의 첫 페이지는
온통 푸에블로호 사건을 다루었으며, 어느 모임에서나 대화와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Armbrister 1970, 302-303; Lerner 2002, 151).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진전되지 못
하고 오히려 교착국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자, 푸에블로호 사건은 점차 다른 이슈에
가려지기 시작하였다. 사건 발생 9일 후, New York Times 지는 제1면에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국채발행 요청을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하였고, 푸에블로호 사건에 관한
기사는 제13면에 게재하였다. 사건 발생 한 달이 되자, 신문 1면에 있던 사건 내용이
4면으로 실리더니 점차 뒷면으로 이동하였고, 신문의 면을 차지하는 크기와 분량도
줄어들게 되었다(Lerner 2002, 151).
반면, 미국과는 달리 북한은 11개월 동안 푸에블로호 사건 자체를 선전 및 선동에
끈질기게 이용하였다. 이는 최고지도자가 관심을 가지거나, 집중하는 이슈에 대해 모
든 국력이 오랜 기간 집중될 수 있는 북한체제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북
한은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승무원 고문 및 자백서, 기자회견 등을 통한 선전 및
선동 활동을 지속하였다(김일성 2001, 323-333).
푸에블로호 함장이었던 부처(L. Bucher)에 의하면, 북한이 구금 중인 승무원들에게
대한 행태는 선전을 위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Bucher 1970, 257). 북한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사진을 지속적으로 대외에 공개하였고, 이외에도 기자회견 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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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취록, 승무원의 자백 내용을 배포하며 이 사건을 여론화하기 위해 끈질기게 시도하였
다. 예를 들면, 북한은 부처를 비롯한 승무원들을 고문하고 협박하여, ‘미국으로부터
간첩행위를 지시받고,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약속받았다’거나, ‘북한에 대한 간접행
위 및 범죄행위를 인정한다’는 식의 허위 자백을 강요하기도 하였다(Armbrister 1970,
250-256).
셋째, 통제력의 측면에서 북한은 승무원을 인질로 삼음으로써 미국에 협상력의 우
세를 보일 수 있었다. 협상 상대방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한 측은 Security Point에서
협상이 결렬 혹은 교착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 협상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북한이 푸에블로호 사건을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에서 얻고자 했던 목표는 바로 체제에 대한 인정과 선전 및 선동이었
다.8) 북한은 협상의 교착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의 생명을 담보로 선전 및 선동이라는
협상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얻어낼 수 있었고, 결국 이를 바탕으로 협상력을 높임으로
써 미국으로부터 사과문까지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북한의 끈질긴 선전과 선동은 미국이 포기할 수 없는 확실한 대상물을 북한이 차지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은 위기 시에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하
고, 이를 위해 무엇이든 양보하는 행태를 보인다. 박호섭은 미국이 푸에블로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옵션을 가졌지만, 결국 푸에블로호 승무원을 석방하기 위해 초
강대국으로서의 체면을 포기하는 결정도 감수하였다고 보면서, 푸에블로호 승무원들
의 생명은 그만큼 미국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호섭 2003, 181-185).
3. 협상 환경 : 내·외부 환경의 조성 및 이용
북한은 협상의 내부적 환경인 협상 분위기를 유리하게 조성하고, 미국이 처한 외부
적 환경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
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도록 만듦으로써 협상력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이 시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지치게 하거나,
북한과의 협상에만 전념하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외교적 환경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
8) 북한은 구금 중인 승무원들에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교육하려 하거나, 승무원들을 통
해 서방 어느 국가들보다도 공산주의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압박
하였다(Cheevers 2013, 210-211).

271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였다.
첫째, 북한은 내부 협상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승무원의 생명을 담보로
협상에 이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미국과의 협상이 시작되고, 북한의 요구안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자, 북한은 승무원 생명을 담보로 위협과 공갈, 협박을 일삼았다. 결과적
으로 미국은 북한의 요구안에 최대한 근접한 대안(레너드 안)을 제시하였고, 이를 북
한이 수용함에 따라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승무원 생명을 담보로 한 북한의
위협과 협박은 미국이 협상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는 미국이 매
우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인 자유와 생명을 담보로 통제력의 우세를 달성한 것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다.
둘째, 북한은 외부적으로 미국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대내적으로는 미국 행정부가 이듬해의 대선을 고려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
해 어떻게든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입장에 있음을 교묘히 이용하였다. 이러한 측면에
서 미국은 위기 협상 시 북한보다 시간에 대해 더 많은 압박을 받는다고 주장한 박호
섭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9)
북한은 이외에도 승무원에게 편지를 쓰게 하거나, 언론 매체에 등장토록 하여 미국
내 여론을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3월 4일 열렸던 제10차 협상에서 박중국은
스미스 제독에게 구금된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전달하였
다. 이 편지는 포로들이 수용 기간 중 작성한 것으로 자백과 사과의 내용을 담고 있
었다. 푸에블로호가 북한의 영해를 침범하여 적대행위를 하였으며, 함장을 비롯한 승
무원들은 이에 대한 강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 미국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
기를 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인들의 미래 행복과 가정의 수백 명의 생활이 대
통령의 손에 달려 있으니, 신속히 송환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편지에 적혀있었다
(Lerner 2002, 169).
대외적 환경 측면에도 북한은 한·미 관계 및 베트남전이라는 미국의 대외 환경을
이용하였다. 승무원을 인질로 삼은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강경책을 꺼리
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미 관계와 베트남전이라는 미국의 대외 환경이
었다. 이는 북한이 승무원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도 북한이 협상 기
간 내내 미국을 위협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의 배경이 되었다. 이를
9) 미국은 승무원의 안전과 조기 귀환 문제, 국내 여론의 압력,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 등으로 인해 문
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하는 시간적 압박에 시달린 반면,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역이용하여 최대
의 이익을 획득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박호섭 2003, 188-191).

272
韓國軍事學論集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통제력 변수에서의 우위 달성은 곧
협상 환경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Ⅳ. 제1차 북핵 위기와 북한의 협상 전략


1. 협상 구조 : 다중 의제 설정을 통한 실리 추구
제네바 협상을 통해 북한이 얻고자 했던 핵심 목표는 탈냉전기 구공산권 국가들의
연쇄 붕괴로 인한 고립 상황을 타개하고, 고조된 북한발 핵 위기를 잠재우는 것이었
다. 이를 위해 북한은 대미 창구의 개설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핵 능력이
완성될 때까지 이를 감추면서 시간을 끌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협상 전략은
NPT 체제로의 복귀와 IAEA의 사찰 수용이 아닌, 이를 담보로 한 실익 챙기기에 초
점이 맞춰져 있었다. 제네바 협상의 구조적 측면에서 북한이 보인 행태는 첫째, 협상
상대로 미국만을 고집하였다는 것이고, 둘째, 협상 의제를 단일의제가 아닌 다중 의제
로 설정함으로써 단계별 협상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마지막
으로 북한은 협상칩의 크기를 키움으로써 강대국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이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내고자 하였다.
첫째, 북한은 푸에블로호 사건과 마찬가지로 제네바 협상에서도 국제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을 거부하고, 오로지 미국과의 단독 협상만을 고집하였다. 북한은 미국을 상
대로 한 협상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연이은 공산 국가들의 붕괴로 인해 국
제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해 있던 북한에 있어,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
국 미국과의 단독 회담은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자신
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핵 문제를 미국과 북한만의 문제로 한정했다는 성취를 이
룩했으며, 대미 채널을 개설했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었다(조선일보 1994/10/19).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의 NPT 탈퇴 목적이 미국과 직접 흥정을 벌이기 위함이었다
는 이춘근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한·미의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가 북한
의 NPT 탈퇴를 야기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이춘근은 팀스피리트 훈련과 북한의
NPT 탈퇴는 별개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지
한 이유는 남·북 간 상호사찰을 유도하기 위함이었고, 북한이 사찰을 지속적으로 거부
함에 따라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었을 뿐이었다(이춘근 1995, 76). 미국은 북한과
273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의 직접 협상을 벌이기보다는, IAEA 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핵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다. 하지만, 미국과 직접적인 흥정을 바랐던 북한은 미국을 직접적으로 끌어들일
만한 자극적인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결과가 바로 NPT 탈퇴로 나
타났던 것이다.
둘째, 푸에블로호 사건과 달리 제네바 협상은 단일의제가 아닌 다중 의제 협상이었
다. 의제들 간 이해득실을 계산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단일의제보다는 다중 의제 협
상이 타결에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심준섭 외 2015, 6), 북한
은 의제를 다양화하고 단계별로 합의에 도달하고자 함으로써 시간을 지연시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살라미 전술을 보였다(한승주 2017, 91-92). 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
져 온 북한 고유의 협상 행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제1단계 회담에서 NPT 탈퇴를 유보하는 것만으로 협상을 종결지
었고, 특별사찰에 대한 논의는 후속 회담으로 미루었다. 하지만 제2단계 회담에서도
북한은 특별사찰에 대해 합의하지 않고, 원자로 교체라는 새로운 의제를 제시함으로
써 논점을 흐리기 위한 행태를 보였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미신고 핵 시설 두 곳
에 대한 확답을 얻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에 많은 것을 양보해주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북한은 정작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제는 뒤로 미루고, 부수적인 의제만을 우선
다룸으로써 상대방의 요구에 합의해 주지 않으면서도 협상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행태
를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나타냈다(한승주 2017, 92).
북한의 이와 같은 행태는 결과적으로 합의 가능 영역의 측면에서 미국이 유보점을
지속적으로 조정하도록 강요하였다. 미국은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유보점을 조
정함으로써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지만, 북한은 끝까지 유보점을 조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에 대한 요구를 고집하였다. 그 결과 북한은 특별사찰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
으면서도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과 경수로 지원 등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데 성공하
였다. <그림 4>는 제네바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점차 양보하며 유보점을
조정해 가는 모습을 도식화한 것이다.

274
韓國軍事學論集
<그림 4> 제네바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와 유보점 조정

셋째, 북한은 구조적으로 협상칩의 크기를 점차 키워나가는 행태를 보였다. 북한은


IAEA의 사찰을 허용하면서도 2개의 의심 시설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초기
단계 회담에서는 미공개 시설에 대한 사찰 여부가 주요한 쟁점을 이루었다. 북한은
IAEA의 임시사찰 요구에 14개의 핵 시설을 공개하였으며, 여기에는 운전 중인 원자
로와 건설 중인 원자로 현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위성 사진에 의해 노출된 두
개의 시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IAEA 측은 당연히 나머지 두 개의 시설을 공개할 것
을 요구하였으나, 북한 측은 자위적인 군사시설이라고 고집하면서 공개를 거부하였다.
이렇게 두 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자, IAEA 측은 특별사찰을 요
구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북한의 강한 반발을 사고, 북한은 NPT를 탈퇴하겠다고 선
언하게 된다(이은철 1996, 17-21; Oberdorfer & Carlin 2014, 200-218). 결국, 2개의 미
공개 시설에 대한 특별 사찰문제가 북한의 NPT 복귀 문제로 확대되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이듬해인 1994년 6월 급기야 IAEA마저 탈퇴하겠다고 선언하
였고, 이로 인해 북·미 협상의 위기는 최고조에 달하였다. 북한은 1994년 4월 폐연료
봉 인출을 일방적 통보만으로 감행하였고, 미국의 비난과 IAEA의 제재가 강화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IAEA의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한승주 前 외무장관은 카터 前 대
통령의 방북을 미리 알고 있었던 북한이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IAEA 탈퇴를 선언했
을 가능성이 높다고 회고한 바 있다(한승주 2017, 96-101).
탈냉전기 국제적 고립위기에 처해 있던 북한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즉, 북한은 미국과의 단
독 협상을 통해 대미 창구를 개설하고, 관계 정상화와 핵 선제 불사용 및 남한 내 핵
무기 철수 등을 요구해야 하는 필요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핵
문제를 통한 협상을 시도하였고, 구조적 측면에서 협상 상대를 미국만으로 제한하는
한편, 협상 의제를 다변화하고, 미국의 협상 참여와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협상칩
의 크기를 키우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협상 행태는 협상 목표
를 달성하는 데 유리한 협상 구조를 조성해주었다.
2. 협상력 : 핵 능력의 모호성을 담보로 한 통제력 우세
첫째, 북한은 문제해결을 위한 미국의 대안을 모두 거부하고, 협상 테이블에 마주

275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앉았다. 북한의 NPT 탈퇴로 인해 심화된 북한발 핵 위기에 대응해 미국을 비롯한 국
제사회가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3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국이 직접 나서는 것이 아
니라 국제기구인 IAEA와 북한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었고, 두 번째는 연변
핵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군사적 대응 방안,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이었다.
하지만 IAEA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은 미국과 직접적인 협상을 원했던 북한에 의해
지속적으로 거부되었고, 군사적 대응 방안은 자칫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의해 꺼려졌다. 따라서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여론은 세 번째 대안인
대북제재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대북제재라는 대안이 북한의 NPT 복귀를 보
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며, 중국의 반대 등으로 인해 제제의 효과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겼다(조선일보 1993/03/24).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
한 문제해결 가능성을 내비침에 따라 미국은 ‘별수 없이’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대안인 군사적 옵션은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의해 우선순위가
밀리게 되었다.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하던 시기 새로 출범한 한국의 김영삼, 미국
의 클린턴 행정부는 전쟁의 우려로 인해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자제하고 있었다(김영
삼 2001, 316-317; 임정규 2014, 208-209; Pardo 2014, 24-25). 따라서 한·미는 북한의
NPT 탈퇴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기보다는 무력 충돌이 없는 평화적인 해결 방
안을 선호하였다(Wit & Poneman & Gallucci 2005, 383-384). 당시 미국은 북한 정권
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고, 북한과의 협상 기간은 북한 정권의 붕괴까
지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관대한 태
도로 임하게 된 것이다(글린 포드 저, 고현석 역 2018, 258-259; Lankov 2015, 185;
O’Hanlon & Mochizuki 2003, 44).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스
스로 축소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즉,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응 방침에 따라 군사적 대
안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 문제해결을 위해 대북제재라는 대안이 대두되긴 하였지만,
대북제재가 북한의 NPT 복귀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당시 미국 정부 인
사 중 제재만으로 북한의 굴복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재는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하기 위한 목적과 북한이 국제사회
의 결의마저 무시할 경우, 보다 강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한 목적이

276
韓國軍事學論集
었다(J. Wit, D. Poneman, R. Gallucci 2005, 385).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 역시 문제였다. 중국은 1993년 3월 23일, 북
한에 대한 특별 핵사찰 문제 및 북한의 NPT 탈퇴와 관련하여 유엔 안보리 등 국제사
회가 북한에 대한 제재에 나서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조선일
보 1993/03/24). 나아가 중국은 유엔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경우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기까지 하였다(한승주 2017, 94). 이러한 상황에 의해 북한
의 핵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은 점차 축소되고 있었고, 마땅한 대안의 부재로 인해 고
민하던 미국에게 북한이 대화의 가능성을 제의함으로써 미국은 반색하지 않을 수 없
었던 것이다.
둘째, 북한은 의지의 측면에서 미국에 대한 우세를 달성하였다. 협상 당시 북한은
공산 국가들의 붕괴와 중국의 정책 노선 변경 등 복합적 상황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한용섭 2018, 26). 체제 생존의 문제가 달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북한의 주된 협상 목표는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따라서 북한에
있어 미국과의 제네바 협상은 사활적 이익이 걸린 협상일 수밖에 없었고, 북한은 열
망에 기초한 의지를 기반으로 모든 국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홍현익 또한 북한 정권
의 목표는 체제 생존과 정권 유지에 있고, 핵이 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비중과 가
치가 더욱 커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홍현익 2018, 7). 반면, 강대국인 미국에 있어 북
한의 핵 문제는 다양한 관심 이슈 중 하나에 불과하였으며, 여기에 국력의 많은 부분
을 할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발 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
는 필요에 기초한 의지를 기반으로 협상에 나서게 된 것이다.
북한의 협상력이 미국의 협상력보다 앞섰음이 틀림없다고 분석한 연구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이춘근은 북한이 생각하는 핵 이슈는 미국이 생각하는 핵 이슈에 비해 훨
씬 더 사활적인 문제였으며,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협상력도 함께 강해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보았다(이춘근 1995, 175). 당시 북한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연이은 붕괴, 중국과의 관계 약화 속에서 국제적인 고립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고, 생존의 진로를 찾기 위해 핵무기 개발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북한은 협상의 전(全) 과정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핵무장 계획은
북한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살아가는 데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인 카드로서 탁월한 기
능을 담당하였다(Oberdorfer & Carlin 2014, 194). 반면 미국은 국내·외의 다양한 비판
론을 견디면서 단호하고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77
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셋째, 북한은 핵 능력의 모호성을 바탕으로 통제력을 장악함으로써 협상력의 우위
를 확보했음을 알 수 있다. 즉, 북한은 핵 능력의 모호성을 바탕으로 미국으로부터 많
은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였고, 이는 협상의 교착국면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협상판을 쉽게 깨지 못하도록 관리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북한이 지니는 핵 능력의 모호성이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되었다고 주장한 윤덕민
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북·미 간 협상에 개입하려는 한국과 IAEA의 움직임
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이 의도적으로 합의사항을 깨뜨리고, 추가 사찰문제를 지렛대
삼아 특사교환 및 IAEA의 개입 없이 3단계 회담으로 가기 위한 고차원의 전술을 활
용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즉, 뉴욕 합의에 의해 북·미 간 3단계 회담 일정이 잡히는
등 북·미 간 직접 대화라는 협상의 관성이 생긴 이상, 북한이 IAEA와 합의한 사항에
최소로 혹은 어느 정도 못 미치게 대응하더라도 협상 자체가 결렬되지는 않을 것으로
계산했다는 분석이다(윤덕민 1995, 85-86).
북한은 핵 개발 의혹이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당시부터 핵 능력의 모호성을 유지하
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였다(Oberdorfer & Carlin 2014, 197-198). 그 이유는 핵 능
력의 모호성에 대한 북한의 딜레마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북한이 충분
히 위협적인 핵 능력을 보유했다고 밝혀진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비롯하여 강력한
제재가 불가피할 것이며, 반대로 핵 능력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고 밝혀진다면, 핵을
통한 체제 안전보장이든, 협상의 레버리지든 북한은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었다. 따라
서 북한은 핵 능력의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해 IAEA의 특별사찰을 지속적으로 거부하
였다. 북한은 최초 사찰에서 14개의 관련 시설만 공개하고, 2개의 의심 시설에 대해서
는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며 공개하기를 꺼렸다. 그리고 이 2개의 미공개 시설에 대
한 특별사찰의 수용 여부가 16개월간 협상의 주요한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3. 협상 환경 : 위기 고조를 통한 유리한 환경 조성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외부적으로 협상 환경을 유리
하게 조성 및 이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협상 기간 내내 핵 능력의
모호성을 바탕으로 협상 상대인 미국과 그의 파트너인 한국을 반복적으로 위협하였
고, 외부적으로는 남·북 관계 및 주변국에 대한 압력을 통해 미국이 협상 판을 깨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1년이 넘는 협상 기간 북한은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면, 남·북 관계를 내세우거나 협상 가능성을 제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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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는 등 유화적 제스쳐로 위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10) 이는 협상 환경을 오직
필요에 따라 조성하고, 이용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외부적으로 협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위기를 고조시키거
나 위협, 협박, 공갈 등의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김일성은 1993년 12월 31일
평양 금수산 의사당(주석궁)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핵 문제는 어디까지
나 조·미 회담을 통해 이룩되어야 한다. 조·미 쌍방이 합의된 원칙을 지키고 이행한다
면 핵 문제는 공정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한국을 철저하게 배제하
기 위한 목적에서 한국 정부를 비열한 용어로 비판하였다(김일성 2011, 183-192). 이
는 전형적인 통미봉남 전술이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음으로써
외부적으로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려는 북한의 전술적 행태였다. 이러한 위협은
남·북 간의 협상에서도 나타났다. 남·북 회담에서 있었던 박영수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대표적이다.
둘째, 북한은 내부적으로도 협상 과정에서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협상 환경을 유
리하게 조성하고자 하였다. 북한은 1994년 1월 말, 미국과 IAEA의 전면사찰 요구에
대해 ‘대화 상대방에 대한 파렴치한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이러한 요구가 계속될
경우 NPT 탈퇴 유보 결정을 철회할 수 있다고 위협하였다(로동신문 1994/02/01). 그
리고 같은 해 4월 초에는 외교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힘에는 힘으로, 대화에는 대
화로 대답하겠다”면서, “미국이 압력 일변도로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조·미 회담을
통해 동결시키고 있던 우리의 평화적 핵 활동들을 정상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힘
으로써 안보리 의장 성명을 공식 거부하기도 하였다(로동신문 1994/04/04). 파르도에
의하면 NPT 탈퇴는 북한이 실행한 가장 심각한 수준의 벼랑끝 전술이었다(Pardo
2014, 27-28).
북한은 외부 위협에 대해서는 이처럼 강 대 강으로 대응하였으나, 위협의 강도와
신빙성이 높아질 경우, 일단 후퇴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강경 대응이 이루어지면, 북한은 유화적 제스쳐를 보이면서 다시 대화의 분위
기를 조성하였다. 1994년 2월, 지속되는 핵 협상의 교착으로 인해 미 행정부가 강경책
으로 선회하자(조선일보 1994/02/12), 북한은 NPT 탈퇴 유보 결정을 철회하겠다고 위
협하는 한편, IAEA의 국제 핵 사찰 요구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당시 북한을
10) 북한은 제3차 북·미회담과 남·북 특사교환 문제를 연계하여, 비밀 메시지 등을 통해 협상 의지를 은밀
하게 내비추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하였다(Wit & Poneman & Gallucci 2005,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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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방문 중인 빌리 그레함 목사를 통해 미·북 관계의 개선을 희망한다는 김일성의 메시
지를 클린턴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이춘근 1995, 135).
이처럼 북한은 협상 기간 중 대내·외적으로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고,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행태를 보였다. 통상 제3자는 중재자, 촉진
자 등의 역할을 하지만(심준섭 외 2015, 13), 제네바 협상에서 한국의 역할은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다. 북한은 꾸준히 남·북 간 실무
접촉 회담을 병행함으로써 대미 회담의 조건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북한은 주한 미군과 한·미 연합 훈련 등의 이슈를 핵 문제와 연결 지으려
하였고, 핵 문제해결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적 발언을 일삼으면서
대미 협상의 레버리지로서 남·북 회담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협상의 결렬과 교착을 지속적으로 위협함으로써 협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였고,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강경책으로 선회하면 유화적 제스쳐로
위장함으로써 그들의 예봉을 꺾는 전술을 구사하였다. 북한의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
조성 전략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강경 옵션을 재고하도록 하였고, 북한의 요구에
대한 양보를 가져오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였다.

Ⅴ. 결 론
본 연구에서는 협상 이론을 통해 푸에블로호 사건과 제네바 협상에서 보인 북한의
협상 전략을 분석 및 평가해 보았다. 그 결과, 북한은 비대칭적 협상 관계에서 협상력
의 우세를 달성하기 위해 통제력을 장악하고, 협상의 구조와 환경을 유리하게 설계
및 조성, 이용함으로써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이른바 ‘소모적 협상 전략’을 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전협정 이후 북한과 미국이 단독으로 마주
앉았던 대표적 협상 사례인 푸에블로호 사건과 제네바 협상은 북한의 협상 전략 연구
에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비대칭 협상 관계에서 북한이 소모적 협상 전략을 택한다는 본 연구의 결과는 2018
년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제공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은 앞으로도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협상력 강화에 방점을 둔
협상 전략을 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새로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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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軍事學論集
략적 대안을 개발하거나, 혹은 대북 제재를 극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는 것이다. 둘째, 유리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남·북 관계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북한은 민족 공조를 내세우며 한국과의 경제협력 등의 구실로 미국의 제재
망에 구멍을 내거나,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창구로써 남·북 관계를 이용할 수도 있다.
셋째, 협상 구조의 측면에서 의제의 양보를 요구하기 위해 협상칩의 크기를 키우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 2019년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통해 제재
해제를 위해 내놓은 ‘영변 카드’가 충분한 크기의 협상칩이 아니었음을 눈치챘을 것이
고, 제재 해제와 맞바꾸기 위한 협상칩을 더욱 키우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아직 많은 한계를 노정 한다. 특히 푸에블로호 사건
과 제네바 협상이라는 두 사례만으로는 북한의 협상 전략을 규정하고 일반화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본 논문의 주장이 더욱 적실성 있고 타당한 논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협상 사례에 대한 분석 및 평가가 요구된다. 특히 남·북 간의 협상도
국력에 차이를 보이는 비대칭적 협상이며, 위기 조성과 시간 끌기 등 북한의 다양한
협상 행태들이 유사하게 발견된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2018년부터 현재
까지 진행 중인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에서도 북한이 협상 구조와 협상력, 협상 환경
의 측면에서 어떠한 행태를 보일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본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북한이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특정 이슈에 대한 협상력의 상대적 우세를 달성하거나, 협상력의 열세
를 극복하는 시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협상의 구조와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 이용, 관망함으로써 상대방을 지치게 하여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소모
적 협상 전략을 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논의를 기초로 할 때, 앞으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많은 도전과 과제에 직면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향한 북·미 간의 협상은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을 시작으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 상황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
으며,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지에 대한 예측 또한 불분명하다. 따라서
협상 이론을 통해 북한의 협상 전략을 분석 및 평가하고,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협상
행태에 대비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협상 전략에 적절
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협상 전략을 개발함으로써 북한
이 보이는 행태를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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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협상에서 북한의 소모적 협상 전략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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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접수: 2020. 7. 31. / 수정 접수: 2020. 9. 1. / 게재확정: 2020.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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