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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살다 보면, 말이다.
이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 고시원의 밀실이 생각난 것은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는 쥐’의 뉴스보도를 보고 있을 때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
는 쥐’를 보고 있는데 그냥 그 고시원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오른 것이다. 마치 쥐의 몸
에서 자라난 사람의 귀처럼. 엉뚱하게, 쑥쑥.
잘 둘러보면
살다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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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봄을 맞이하기도 하겠지만, 정말이지 그런 봄은 처음이었다. 우선
봄이 오기 전 겨울에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집 안 곳곳에 차압딱지가 붙고, 빚쟁
이들이 들이닥쳤다. 막대한 규모의 사기성 부도에다 지독한 사기를 친 주인공은 아버지의
친동생이었다. 물론 삼촌이란 얘기지만, 그런 인간을 삼촌이라 부를 수는 없는 거겠지. 집은
사라지고 가족들은 흩어졌다. 부모님은 시골을, 형은 막노동판을, 나는 나대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월 9만 원. 식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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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날 나는 친구의 집을 나왔다.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간편한 짐이었으므로,
그것은 ‘이사’라기보다는 ‘이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이동’마저도 친구가 차로 도와주었
으므로 마치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나는 이사에 임했다. 힘들면 언제든 다시
찾아오렴. 인사를 올리는 나에게, 친구의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실내 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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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켰고, 어느새 두 발꿈치를 들고 있었다. 방은 복도의 맨 끝에 있었다.
그럼 짐을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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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럽지 않고, 대신
외로웠다.
언덕을 내려선 빨간색 스포츠카의 후미가 사라지자, 어디선가 완연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다시 한 대의 담배를 더 피워물었다. 세상은 정숙했고, 진입로의 입구에서는 몇 그루
의 벚꽃나무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별일 아닌 듯해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
던 1991년의 봄이었다.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화창한 봄이었을까.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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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
조심하겠습니다.
주의를 기울여보면, 인간의 몸에선 참으로 여러 가지의 소리가 난다. 한마디로, 인간은 꽤나
시끄러운 동물이다. 김 검사의 성격은 그야말로 예민한 편이어서 내가, 아니 나의 몸이 아
주 작은 소리를 내기만 해도 불쾌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는 했다. 예를 들어 끄응, 이
라든가 아니면 벽을 딱, 하고 때린다거나.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이 또한 여지없이 접촉이
나쁜 형광등처럼 불안한 파장으로 몸을 떨고는 했다.
피…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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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아무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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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우아하다”란 얘기를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계절은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은
더 이상 불어오지 않았고, 내 인생은 더 이상 한가롭지 않았다. 쟁쟁쟁쟁 매미들이 우는 소
리가 들려왔다. ‘쟁쟁쟁쟁’ 목놓아 울 수 있는 것은 매미들뿐이었다.
말을 말자.
그는 완전한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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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대개가 옥상이나 식탁에서였는데, 딱 한
번 아르바이트를 하던 호프집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인사를 하던 나도 놀랐고, 인사
를 받던 그도 상당히 얼굴을 붉혔다. 잘은 몰라도, 뭔가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들켰다는
표정이었다. 안주도 없이 혼자 처량히 술을 마시고 있었기에, 나는 주방장형에게 부탁을 해
오징어를 내다주었다. 마침 손님도 주인도 없던 터였다. 뭐냐?
서비스예요.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말을 말자.
이하동문이다.
그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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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는 생각했다. 무렵의 나는 여러 가지로 지쳐 있었다. 장학금을 받아내긴 했으나 과
중한 아르바이트와 ‘정숙’의 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심신을 지치게 했다. 늘 이런 곳에서
잠을 자야 하다니, 이건 마치 닭이 아닌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
작은 방 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잠만 잘 뿐이다.
1cm 두께의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빼곡히 남자나 여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가며 방귀를 뀌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살아간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장관이다. 뭔가 통해 있고, 비릿하고, 술렁이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것은 세
포막이 아닐까? 베니어의 벽에 손을 얹은 채, 나는 그런 생각에 잠기고는 했다. 문은 늘 잠
겨 있고, 창문은 없다. 그저 질식을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폐는 이미 퇴화
된 게 아닐까? 어느새 나는, 아가미 호흡과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겨드랑이 아래
의 흉곽을 짚어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기포와 같은 것이
컴퓨터 때문이었다.
컴퓨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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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터도 예외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386 DX-Ⅱ’. 당시로선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는
고급 기종의 컴퓨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김 검사였다.
쿵.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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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의 과식을 탓하며 나는 조심스레 엉덩이를 잡아당겼다. 최대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화가 난 백상어를 달래고 또 달래었다. 결국 튀어나온 것은 한 마리의 참
치였다. 그나마 성공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백상어가 작아
져서 참치가 된 것이 아니라―한 마리의 백상어가 여러 마리의 참치로 쪼개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마리의 참치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 씨.
휴지를… 좀 얻을 수 있을까?
형이 죽었다.
사고였다. 잘못된 전기공사에 의한 감전, 추락사였다. 7층의 높이에서 하늘을 날았던 형은,
화장이 끝난 후 한줌의 가루가 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형의 마지막 거처는 마치 ‘갑을
고시원’의 일부인 듯, 작고 어두운 방이었다. 통조림 속에 보관된 참치처럼, 형은 그 작고
어두운 방 속으로 들어갔다. 참치도 인간도, 결국은 밀실에서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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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나는 문득
라는 생각을, 했다. 통풍구의 점검이 끝났다는 외침이 들리자, 사람들은 우루루 자신들의 밀
실로 돌아갔다. 나는 그곳에 남아 다시 한 대의 담배를 더 피워물었다. 세상은 얼어붙었고,
진입로 입구의 벚꽃나무들은 긴 긴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나무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인간
은―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누군가
그런 낙서를 끄적여놓았다면, 정말이지
이하동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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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두의 주인이 누군지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오로지.
물론 천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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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여전히 그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이다. 또 혹시나, 우리가 소유한 이
모든 것들이 실은 ‘386 DX-Ⅱ’와 같은 것들은 아닐까 걱정이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 이
모든 것들은 나나 당신에게 실로 소중한 재산이고, 또 우리는 누구나 그것을 모으고 지키기
위해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거나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것이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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