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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죽음을 앞두고 (하나)

살 날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듣고,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정말 후회없는 인생이었습니다.
한 분야의 최고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경험과 실패를 거쳤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저는 성적이 월등히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오디세이학교에 가게 되고 그때 뭐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큰 동기부여가 되었고 목표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인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도 저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취업의 길은 명문대학교를 나온 저에게도 쉽지 않았고, 결국 저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한동안 방황했고, 이 길을 접어야하나 생각도 많이 했지만
저는 저의 장점인 끈기와 책임감으로 계속해서 노력했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동료들과 파트너를 만나 일은 잘 풀리기 시작했고, 저는


제 이름을 딴 회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회사는 점점 커져 어느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회사가 되었고, 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1위 자리에 오르는 명예도 안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저이기에
부담도 되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받은 사랑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죽음을 코앞에 앞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는 늘 성실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가치 중 1순위는 성실성입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성실하게 임했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성실하게, 선한 영향력을 베풀고 싶다는 저의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았기에 저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나’와 이야기했다 (살구)

‘나'는 용인시 수지구에서 태어났다. 이사를 너무너무 많이 다녀서


그곳에서의 기억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는
성동에 있는 e편한 세상에 살았고, 그 옆에 있는 벧엘유치원을 다닐때의
기억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뒷짐을 지고 걷고 있었는데 2살 많은
오빠들이 와서 “얘 좀 봐! 완전 사장님 포즈로 걷고 있어!” 라고 말했던
것이 민망하고 수치스러웠어서 그 이후로 뒷짐을 절대로 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두어번 정도 이사를 더


다녔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마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고 말했다. 사립초등학교라서 교복도 입고 1학년때부터 매일
7교시까지 했다고 했다.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그때는 학교가
너무너무 재밌어서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었다고
했다. ‘나’는 그시절에 가장 싫어했었던 것은 받아쓰기였다고 했다. 항상
한 개씩 틀려서 90점만 맞았었다고, 그래서 어느날은 너무 100점이 맞고
싶어서 전날부터 받아쓰기 공부를 해서 100점을 맞았다고 했다.

가장 괴로웠던 기억을 묻자 3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왔던 일을 꼽았다.


‘집이 없어서 교회에 작은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함께 잤는데, 정말
21세기 서울의 모습이라고 생각 할 수 없는 환경이였다. 공용
화장실에는 거추장스러운 거미줄과 함께 거미가 살고, 이사오면서
키우던 고양이 한마리는 잃어버렸다. 그래도 그곳에서는 1년정도 지낸
후 다시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갔다.’ 라며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 했다.

중학교 1학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교로 배정받았지만, 금방 반


친구들 모두와 친해졌다고 했다. 회장도 하고, 1학년 말 부터는 학생회도
했다고 했는데, 가장 후회하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선후배사이에
쓸데없는 군기가 정말 많았다고. 남자 선후배 사이에서는 구타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학생회 활동을 통해 느낀 바도 많고 얻은 것도
많다고 했다. 군기만 빼면 활동 하나하나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나’는 이제 오디세이 학교에 입학한지 1달된 17살이다. 현재는


어떠냐는 질문에 학교생활이 정말 매일매일 기대되고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단종된 제품입니다 (수빈)

안녕하세요. 가족을 만들어드리는 회사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을


함께 알아볼까요?

먼저 어디서 어떻게 살다왔는지 알아봅시다.


이 사람은 서울xx병원에서 태어나 xx동에 2살까지 살았어요. 하지만
어릴 때라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으니 물어보지는 마세요. 2살 때 지금
사는 서초 2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물어보지
마세요. 5살 때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그리고 이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았죠. 여기는 웬만하면 기억이 잘 나니
물어보셔도 좋아요. 물어보면 신나서 엄청난 정보를 쏟아낼 거예요.
2021년, 이제는 좀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위치한 서초 xx로 이사를 갔어요. 이사를 결정했을 때
쯤 오디세이 학교에 대해 알게되었고 걸어서 5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건 운명이로구나 생각하고 현재 재학 중에 있어요. 아!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이제 이 사람과 함께 하면 어떤지에 대해
알아볼까요?

가까운 사람은 너무 좋아해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말이 엄청


많아지고 산만해져요. 좀 많이 많아져요. 혼자 있는 시간도 정말
좋아하는데 앞서 상황과는 정반대로 엄청 여유롭고 평온해져요. 그
시간은 혼자있게 내버려두세요... 드라마를 같이보기 좋아요.
감정이입이 심해서 리액션도 많고요, 슬픈 장면에서는 엄청 울어서 같이
울어줄 수 있어요... 그치만 만약 혼자 조용히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아쉽네요. 그만 들으세요. 여행다니는 것도 엄청 좋아하니 같이 다니면
재밌을 거예요. 자유를 억압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는 말은 잘 안해도
속으로 엄청 싫어하고 있을 거에요. 그 점은 좀 조심해주세요. 아, 맞다!
편식도 많이 해요. 그것도 알아두면 좋아요. 반려동물이 있다면
완벽하게 케어해줄 수 있어요. 사랑도 많이 많이 줄 수 있구요. 특히
고양이면 2배 가량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남의 감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 가족이 편안하고 재밌는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거예요... 그래도 팔리기 싫어하니 사지 마세요... 죄송해요.
언젠가 미련없이 이별할 수 있을 사이로 지내봐요 (린)

나무가 뿜어내는 꽃가루가 모래바람처럼 휘날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다행히 내겐 꽃가루 알레르기가 없어, 마스크를 더 밀착시키는
정도의 감상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 광경을 아는 사람에겐 썩
낭만적으로 들리진 않겠지만
나는 그 꽃가루만큼 오늘의 봄이 탄성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리쬐는 햇빛에 얼른 고개를 돌려도 눈이 아리다. 맨살에 들이치는
햇빛의 열기를 산들바람 한 줄기가 어루만지고 갈 때, 네가 다가왔다.
마른 꽃잎을 밟고 새 꽃잎을 휘장처럼 두른 너의 가디건은
연보라색이다.

왔어?
응. 기다렸지, 미안해.

약속한 듯, 서로의 눈이 동시에 호선을 그린다. 어쩜 이렇게 완벽한지,


처음 만난 그날과도 같다. 그땐 연분홍색 가디건을 입고있었지. 벚꽃이
잔뜩 피어있는 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그날.

벚꽃 다 졌네. 아쉽다.
그래도.

말은 시선으로 끝맺음된다. 시선을 따라가니 시야에 만개한 라일락이


가득 들어찬다.

라일락이 있지.
그러고보니, 오늘 완전 라일락처럼 입고 왔네.

제 가디건을 내려보더니 배시시 웃는 너, 입술이 달짝인다. 망설임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 훨씬 사랑하기에.

우리,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약속. 기억나?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서로의 보폭을 잘


알기에 걷는 동안에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포장되지 않은 마른
산책길을 걷는다. 시선을 그대로 둔 채, 몸을 돌려 뒤로 몇 걸음 걷다
경쾌하게 스텝을 밟는다. 길을 향해 늘어진 꽃가지를 스쳐 지나간다.
앞서가다 뒤돌아 보니 계속 내 뒷모습을 바라봤을 너의 시선과
마주친다. 몸을 돋워 목소리를 전한다.

오늘은 연습이야, 헤어지는 연습. 올 봄까지만 같이 있자. 그리고


나서는 깔끔하게, 약속했었지.
응, 기억나.
먼저 가. 보고 있을 테니까.

대답에 희미한 지체가 앞선 이유를 안다. 약속으로 귀결되는 10년의


결말은 각오 하나로는 감당하기 조금 버겁다. 그래도, 이런 결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우리니까.

오늘 정말 예뻤어. 먼저 갈게.

미소로 마무리하고 멀어지는 너. 너의 대답이 날 울려.


다음에 만날 때는 꽃이 전부 져 있겠지.
이 길 말고 다른 데에서 만나자. 우리 봄날의 마지막은 하얗게
장식하자.
수선화에게 (하양)

간단한 우연이였다. 작은 그 아이와 내가 만난 것은.


물가에 핀 그 수선화는 너무나 하얗고 아름다웠다. 어느 장소에서든
가끔씩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수선화가 더 특별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저기…”

그 수선화는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는 듯 주위의 어느 잡초들보다


우뚝 솟은 길가에 있었다. 언제 밟힐지 말지 위태로운 장소라, 나는
그것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것만이 특별함을
붙이기는 좀 애매했다.

“꼬마야?”

강가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던 내게 말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목소리의 근원을 찾고 있었을 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한번 더 말했다.

“난 아래 있는데. 어딜 보는거야?”

목소리를 따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손가락 한마디 만한 하얀 생물체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하얀 털 코트를 입고선, 뒤의
꽃잎같은 보송보송하고 하얀 날개를 퍼덕이며 수선화의 바로 위에서
날고있었다.

“어, 어?”

나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눈을 마주보았다. 이게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볼려니 그 작은 생물체가 날아와 내 손을 잡아당겼다.

“꿈 아닌데.”
“...”
손을 내리고선, 몇 초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작은 아이는 신경질을 부리며 말했다.

“미안한데, 여기서 청승 떨 거면 좀 가 줄래? 네 눈물은 너무 짜서


마시기 힘들단 말이야.”
“...넌 뭐야?”
“네 바로 아래 있는 꽃이란다, 꼬마야.”

믿을 수 없어 눈을 잠깐 비볐다,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데 너가 더 꼬마 아니야? 키도 작은게.”


“아니거든. 너보다 훨씬 오래 살았어.”

뭔가 당당하고 자신감이 찬 목소리에 눌린 나는 그냥 믿기로 했다.

“...야, 또 왜 울어. 나 아무것도 안했다.”

자칭 꽃이라 하는 난쟁이의 말에, 눈가를 눌러보았다. 과연 촉촉하게


젖어있는 눈가. 나는 소매를 들어올려 눈물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본
난쟁이는 한숨을 푹푹 쉬더니, 천천히 날아오르며 말했다.

“왜, 뭔데. 말해봐, 얘.”

타이르듯이 나오는 말투에, 나는 여태까지 있던 일을 말했다. 그냥 뭐,


정말 가볍게 왕따에 당한 이야기.

“...걔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내 말을 들으면서 난쟁이는 화내기도 하고.

“그때 선생님은 뭐했데? 뭐? 네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대신 핑계를 대 주기도 하고.

“들으니까 넌 아무 잘못이 없네. 걔네들 잡아다 싹 다 신고해버려.”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야, 그 놈들 데리고 와봐. 내가 다 혼내줄게.”

두둔해 주기도 해 주었다.


물론 그 작은 몸으로 정말 가해자 아이들을 혼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마음이 편해졌다. 겨우 꽃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우스웠지만, 그 꽃은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내가 친구 해줄게, 이놈아. 그런 애들 상대하지 말고 학교 끝나면


여기로 와.”

그렇게 말하길래, 다음 날 학교가 끝나고도 나는 몰래 물가의 거리로


왔다. 가끔씩은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길을 걸어 물가를 걸어왔다. 그럴
때면 어느 때나 그 난쟁이는 내 말을 들어주었다. 가끔씩 꽃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자기가 수선화의 요정이라나 뭐라나… 몇개는 걸러들었다.
요정이라기엔 성격이 너무 괴팍하고, 어떨때는 폭력적이고, 항상 당당한
꽃이었다.

“...”

물론 갑작스러운 만남과 같이, 헤어짐 또한 갑작스러웠다. 길가에


위태롭게 피어있던 그 꽃은 어느 날 와보니 밟혀 바스라져 있었다.

“...뭐야, 왜 와.”

그 수선화가 우뚝 서 있을때, 분명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자랑스러워 하던 코트는 찢어지고, 보송보송한 날개는 꺾였다.

“너는 가는 거야?”
“어디를, 천국을?”
“나는 그럼 어떡해?”
“...그건 네가 찾아. 내가 하루 종일 말해줘야 되냐?”

원망스러운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걱정하는 말을 나누기도 했지만,


결국 수선화는 어느 때나 같이 괴팍한 성격과 신경질적인 말투를 썼다.
“...야. 너도 친구를 사귀어. 나도 친구가 없어서 이렇게 됐잖아.”
“친구를 사귀어서 뭐하게.”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가물가물했다. 그렇게 웅장한 만남도 아니고, 길가에서 울고 있었던


것을 수선화가 발견했을 뿐이니까.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려.”

마침 비가 왔다.

“봐봐, 딱 지금 외로우신가보네.”
“...비는 과학적 원리로 봤을때-”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건 외로워서야.”

수선화는 내 말을 끊고 계속 말했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맨날 여기 오는거고, 종도 외로워서 울려지는


거야.”

그래서 나도 가만히 들었다.

“너는 외로워서 이 물가에 있었고, 나도 외롭게 이 물가에 피어있었어.”


“...”
“그래서 우리가 만난 거야. 네가 외롭다고 물가에 있었으니까.”

다 식어가는 목소리로 수선화가 말했다. 언제나 작았던 그 몸은 더욱


작아지고 있었다.

“울지 마. 나도 울고 싶으니까… 에이씨, 그냥 나만 생각하지 말고 잘


살라고.”

그 작은 꽃은 가느다란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며, 마침내


끊겼다. 그 뒤로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불어난 물가에 진흙이
꺾인 꽃을 덮어 쓸어갔다. 나는 멍하니 쓸린 진흙을 바라보다가, 일어서
하교길을 밟았다. 마침 종이 울려퍼졌다.
다음날 가보니, 수선화가 피어있던 장소엔 잡초들이 한가득 비집고
자라있었다.
비 내리는 날,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도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우산을 쓴 사람들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퇴근시간의 불편한 이동, 젖어서 미끄러운 계단, 축축함과 습함에 의한
찝찝함. 불쾌함의 삼 박자가 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청역에
들어가 우산을 털어낸 뒤 카드를 찍고 1-1번 칸 앞으로 이동하였다.
기다리다 지루함에 폰을 끄고 주위를 보았다.

뭐 역시나 별 거는 없었다라고 생각할 때 즈음 눈 앞에 전 여친이 나타나


있었다. 당황함에 다시 폰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녀가 나에게 가볍게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주자 나도
따라서 인사하였다. 지하철에 탄 후 우리는 서로 간단한 안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너랑 헤어지고 몇 번 정도 연애를 더 했는데 다 깨졌다,
내일 선보러 간다, 오늘 날씨 참 구리다 등등.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너도 혼자냐고 물어봤다. 그녀와 내가 헤어진 가장 큰 이유가 결혼과
아이였기에 당연히 연애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겨우겨우
사귀었으나 결혼에 망설였고, 아이계획과 관련된 이야기에 말을 돌리기
바빴기에, 나와의 연애가 첫 연애였기에,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기에. 정해진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른 답이
왔다. 귀가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말들이 믿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별게 아니었다고, 아 참 아이도 낳았는데


귀엽다고,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이 있다고. 길가다 우연히 남편을 조금
도와주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친해졌다 결혼하였다고 말이다. 그녀는
살며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 뒤에는 약간의 슬픔도
느껴진 듯 하였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가 되던 도중 어느 역에
도착하였다. 그녀의 이야기가 끊어지며 내리려는 인파와 함께
밀려나갔다.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아직 미련이 남아있는데. 아직
우리가 그때 했던 약속은 유효한지 물어보려 했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와 사귀었을 시절에 주로 들었던 그 노래를 틀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자 익숙하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때의 일들이 생생해졌다.
미련이 머리를 가득 채웠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릴 역을 지나쳤었다.
상관없지 않은가. 어차피 2호선은 뱅뱅 도니까 몇 시간 후면 도착할테니
말이다. 빗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빗물이 창을 찔렀다. 창 밖 풍경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였다.
엄마야 누나야 (가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와 누나와 산다.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에 비해서 돈이 없고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우리 가족은
항상 행복하다. 얼마전에 최신 노트북이 나왔는데 그 노트북은 엄청
비싼 노트북이였다. 나는 그 노트북을 사고 싶어서 누나와 엄마에게
계속 졸랐다. 우리 집은 돈이 없는 것도 알고 힘든 것도 알지만 난 계속
부모님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우리 누나도 일을 하러 나갔다. 누나가 일을 몇 달 한


후에 어머니와 누나가 노트북을 가지고 방을 들어오셨다. 처음에는 엄청
놀라고 좋았지만 그 몇달 동안 우리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을 하고 어머니와 누나의 손이 많이 까진 것을 보고 어머니와
누나를 껴안고 울었다. 그리고 그날은 엄마와 누나를 껴안고 그날 내내
울었다.
사춘기 (살구)

학원을 빠졌다. 부재중 전화가 6통이나 와 있었다. 친구에게 2통,


선생님에게 1통, 엄마에게 3통. 전화가 오는 걸 보고 있자니 휴대폰이
미웠다. 주말에 놀자는 친구들의 말도 뒤로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도 뒤로 한 채, 매일 꼬박 독서실에서 공부만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부모님께서 근성이 없다느니 실수도
실력이니 하는 핀잔을 주셨다. 조용히 듣고 있자니 억울했다. 집을
뛰쳐나와서 공원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주말이라 사람도 많고, 다들
웃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 같아서 괜히 화가 났다. 그래서
학원을 빠졌다.

우울하게 공원에만 앉아있고 싶지 않아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시내로 나가 기분전환도 할 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밀크티를
시켜먹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는지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보다 머리도 더


길었고, 키도 조금 더 큰 사람이었다. 그녀가 건네오는 말에 담긴
따스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설움이 밀려왔다. 남들의
시선이, 기대가 두려웠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상황이 너무너무
힘들다고, 모두 털어놓았다.

한참을 묵묵히 듣고 있었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정말 맞더라고”

“나도 매일매일 상처받는 나날의 연속이였어, 그래도 어쩌면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을까봐, 아픔을 딛고서라도 세상과 마주해보자고
결심했었어”

“너도 힘내, 고작 그런 걸로 상처받기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날 이후


나도 그녀처럼 상처입은 사람에게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녀처럼 아픔을 딛고 세상에 빛을 내볼 수 있기를, 하고 작은
소망이 생겼다.
야, 출발! (괴델)

가방을 열었다. 오래된 가방은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안까지


침투하지는 못했다. 때묻은 지도 가방에 작은 수통과 카메라 하나
몇가지 생필품과 야영에 필요한 물건들, 조난과 유사시에 쓸 수 있는
구호용품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오늘은 아주 멀리까지 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탐험을 하고 싶었다. 오대양을 누비고 육대주를


횡단하고 한번도 가본적 없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물론 어린마음에
무심코 든 생각들이었다. 인간이 세계를 전부 탐사한 이 시대에
미개척지 따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따위 있을리 만무했다.

나이가 들면서 나도 그런 꿈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살기


시작했다.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최대한 부합하기 위해 살아가던
인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그저 스쳐지나가는 생각으로 치부했던 이 질문은 어느새 내
머리를 가득 채워 버렸다.

그 생각이 든지 3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결심했다. 이곳을 벗어나


어딘가로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떠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볼리비아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끊고 지금까지 모은 적금, 주식,
물건도 전부 처분하여 돈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떠났다.

하늘에서 본 한국은 나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비행기를 처음 탄 나는


저 수많은 빛 만큼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가 어찌 그렇게
삭막한지 의문이 들었다. 빛이 가득한 저곳, 어쩐지 저 빛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에 잠겼다. 심경이 복잡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 과연


누군가가 이미 발견한 것, 보고 온 곳을 가는 것이 탐험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결국 생각을 하다 말고 잠이 들어 버렸다.

꿈을 꾸었다. 비행기 위에서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꿈을 꾸었다.


친구들과 노는 꿈이었다. 그때는 동네 뒷산을 정글이라고 부르며
그곳에서 탐험가와 원주민을 흉내내며 놀았다. 꿈에서 나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꿈의 시점이 바뀌었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때 같았다.
어렸을 적 나는 성장이 더뎌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앳된 얼굴은 두꺼운 책에 묻혀 쉴새 없이 문제를 풀고 있었다.
우스웠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저렇게 매달렸을까?

꿈의 시점이 다시 바뀌었다. 일터에서였다. 나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날은 왜인지 기억에 남았다. 동료가 새 신발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이 정도로 인상깊은 날로 기억하지는
않았을텐데, 그 순간 누군가가 파쇄기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시점이 바뀌어 나는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 파쇄기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눈을 떴다.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사건은 2년 전이었다. 그 동료는 고향의 친구였다. 그는 나와 함께
정글놀이를 하던 아이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미 동네를 전부
돌아봤을텐데도 매일 지치지도 않고 산으로 들로 놀러 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만날때마다 물어보았다. 지치지 않냐고, 하지만 그


친구는 언제나 웃으며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번은 어떻게 그러냐고
같은 것을 보는데도 좋냐고 묻자 그 친구는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는 없는 법이야.” 하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그런 말도 안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그저 허세같아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알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매번 같은 곳에서 다른 것을 보았던 것이었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었다. 매 순간은 대체할 수 없는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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