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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열이 강한 어
머니에 손에 이끌려 서울로 와,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
했으나 6・25의 발발로 학교를 그만두고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근무
했다.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고, 마흔이 되던 1970년, 전쟁의 상흔
과 PX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교감을 토대로 쓴 『나목』이 <여성동아
>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
계하기까지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며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
의 장편소설을 포함, 동화, 산문집, 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남겼
다.
박완서는 삶의 곡절에서 겪은 아픔과 상처를 반드시 글로 쓰고야 말겠
다는 생각으로 고통의 시기를 살아냈다. “이것을 기억했다가 언젠가는
글로 쓰리라.” 숙부와 오빠 등 많은 가족이 희생당했으며 납치와 학살,
폭격 등 죽음이 너무나도 흔한 시절이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가족들을
개별적으로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처음 글을 쓴 목표였다. 그러나 막상
글을 통해 나온 건 분노가 아닌 사랑이었다. 그는 글로써 자신을 치유해
나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갇
혀 있지 않고 당대의 전반적 문제, 가부장제와 여권운동의 대립, 중산층
의 허위의식 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직간접적으로 의식을 환기시켰
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
은 보기 드문 문인이었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말대로 그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박완서는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했다.
그의 글은 그를 닮았다.
생애 마지막에, 삶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을 직접 다
듬다
박범신(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내게 평생 작가로서 늘 귀감이 되었다. 돌아가시기 직
전까지도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강력한 현역 작가로 사신
분이다.
<출처>
호원숙(딸, 수필가)
어머니의 삶 그 자체가 문학이었다.
<출처>
신경숙(소설가)
당신은 드러내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을 껴안는 분으로서도 표본이었
고, 어디에도 휘둘리는 법 없이 굳건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으며, 팔순 가까이 새 작품을 써내
시는 것으로 후배들에게 본이 되어주었다.
<출처>
김애란(소설가)
이따금 나는, 당신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이 나 같다. 생활력 강하고,
이웃을 잘 깔보는 아낙은 내 어머니 같고, 추문과 질투, 경쟁과 온정 속에
서 반목과 친목을 되풀이 하는 동네 사람들은 꼭 우리 고향 어른들 같다.
아이들, 청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소설에 일단 등장한 이상
종이 위에서 꾸준히 맥박 소리를 내며 사람답게 군다. 제 역할이 크든 작
든, 교양이 많건 적건, 활달하게. ‘생활’을 업신여기지 않는 이들을 건강
함으로. 혹은 ‘생활’에 묶여 있는 자들의 비루함으로, 수고롭고, 부끄럽
게.
<출처>
정이현(소설가)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태양
아래 까발리고, 공감하게 하고, 그리하여 위로 받게 하던 작가. 재미와 뼈
대가 함께 있는 주옥 같은 소설들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박
완서’라는 크고 높고 따뜻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음을 잊지 않겠습니
다. 그 산골짜기를 흐르던 시냇물과, 산새들의 지저귐, 또르르 발 밑을 굴
러가던 도토리의 빛깔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출처>
성석제(소설가)
나는 당대의 험난한 풍속과 삶을 철두철미하게 기록하고 재현하는 선
생님의 소설에서 작품을 산출하는 작가로서의 위대한 모성을 느꼈다.
<출처>
2012년 1월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기획위원
권명아·이경호·호원숙·홍기돈
작가의 말
1989년 11월
박완서
차문경 여사
여사가 본인의 아이를 낳았다구요? 여사의 말귀를 못 알아듣겠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여사로부터 그와 같은 협박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본인이 기억하고 있음
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허무맹랑한 협박으로 본인의 신성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시에는 여사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며 본인도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년 ×월 ×일 김혁주
차문경 여사
여사가 본인의 아이를 낳았다구요? 여사의 말귀를 못 알아듣겠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 여사로부터 그와 같은 협박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본인이 기억하고 있음
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허무맹랑한 협박으로 본인의 신성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시에는 여사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며 본인도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년 ×월 ×일 김혁주
김양선
(문학 평론가, 한림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3. 아버지의 법
4. 자궁 권력
5. 계몽과 윤리의 귀환
<권명아>
1965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연세대 불문과 및 동 대
학원 국문과 박사. 1994년 「박완서 문학 연구」로 <작가세계> 문학상 평론 부문 신인상에 당
선되며 등단했다. 『박완서 문학 길찾기』(세계사, 2000)를 공동 편찬했다. 대표 저서로는 『가
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맞장 뜨는 여자들』 『문학의 광기』 『역사적 파시즘』 『탕
아들의 자서전』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등이 있다.
<이경호>
1955년 서울 출생. 문학평론가, 한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고려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문학인들을 분석 탐구해온 계간지 <작가세계>
편집 주간을 지냈으며 『박완서 문학 길찾기』 (세계사, 2000)를 공동 편찬했다. 저서로는 『문
학과 현실의 원근법』 『문학의 현기증』 『상처학교의 시인』등이 있다.
<호원숙>
1954년 서울, 박완서의 맏딸로 태어났다. 수필가, 경운박물관 운영위원. 서울대학교 사범대
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뿌리깊은 나무> 편집 기자를 지냈다. 1992년 출간된 『박완서
문학앨범』 (웅진출판)에 어머니 박완서에 관한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쓰기도 했다. 저서
로는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공저로는 어머니와 함께 쓴 『모든것에 따
뜻함이 숨어 있다』등이 있다.
<홍기돈>
1970년 제주 출생.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앙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
학원에서「김수영 시 연구」로 석사학위, 「김동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한강
의 소설을 분석한 「그림자로 놓인 오십 개의 징검다리 건너기」로 계간 <작가세계> 문학상 평
론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비평과전망> <시경> <작가세계> 편집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페르세우스의 방패』 『인공낙원의 뒷골목』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 『김동리
연구』등이 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지은이 - 박완서
펴낸이 - 최선호·최윤혁
기획위원 - 권명아·이경호·호원숙·홍기돈
책임편집 - 황지영
기획편집 - 허윤정·이슬희·함유지
디지털 콘텐츠 사업본부 - 최동혁
· eContents - 김동훈
· 온라인 마케팅 - 권미혜·박지영
오프라인 마케팅 - 김영수·최후신·김두홍
경영지원 - 양지혜
북디자인 - 오진경
ISBN 978-89-338-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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