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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잠잠할 날 없는 도시락 배달 가게, 소풍가는 고양이
식구들을 소개합니다
01
02
까?
03
안전한 일터 만들기
꿈이 되어 버린 평범한 일상/사회 안에 작은 내 자리 만들기/함께 만들어 가는 회사
04
일상에서 즐기는 작은 소풍
‘아무나 장사하나’ 시리즈/음식을 만들어 파는 몸 되기/우리만의 고집과 상식이 생기다/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
05
노동의 희로애락
괜찮은 노동의 모습을 찾아서/안전 보장의 딜레마/일할 수 있는 이유, 일할 수 없는 이유/권리와
의무 사이
06
한 두 젊은이의 매듭 짓기
07
어른으로 행동할 기회
우연찮게 시작된 변화/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끼리 협력이 가능할까? 눈에 붙은 콩깍지가
감사의 말
식구들을 소개합니다
1997년생. 2013년 12월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소풍가는 고양이에 입사. 쫑의 10대 시절을 빼닮
은 인물. 말이 없고 움직임이 조용하며 고집부리지 않고 유순한 성격. 10대 시절에는 앞머리를 길
러 눈을 가리고 다니더니 스무 살이 되자마자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피어싱을 하는 파격적인 변신
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현재 주식을 소유한 청년 이사로 재직 중. 2017년 12월에 군 입대 예
정.
그밖에 차마, 푸푸, 아톰, 재연, 쨈, 푸첩, 홍키, 원주, 수연, 랑, 정희, 거품, 허밍, 써니, 팬더,
나무, 소얼이 예전에 일했거나 현재 일하고 있다.
─ 쫑의 글 중에서
또 다른 모험의 시작
남은 학생들과 우여곡절 끝에 가게 문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경험과 실력이 없으니 당연히 잘될 리가 없었다. 포기하는 학생도 늘었
다.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아슬아슬하게 장사를 이어 가고 있
을 무렵, 단미가 내게 물었다.
“우리는 지금 노동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교육을 받는 건가요?”
가게의 흥망성쇠가 우리 손에 달려 있으니 어느새 노동과 교육의 경계
는 무너졌고, 담임과 학생의 관계도 달라졌던 것이다. 이 질문 하나가 새
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했다. 학생들은 가게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고민
하고 있었다. 노동을 하는 것이라면 창업자로서 월급을 못 받아도 가게를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만, 교육을 받는 것이라면 수료하고 떠나면 되
니까 책임지고 감수할 일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은 월급이 보장되지 않지만 우리가 운영하기에 따라 월급이 보장
되게 만들 수 있고 매출 변화에 따른 월급 상승도 가능하잖아요. 아르바
이트와 소풍가는 고양이를 비교해 보면 공통점은 불안정하다는 점일 거
예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는 불안정한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가 없어요.
알바생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소풍가는 고양이는 불안
정한 상황을 직접 고민하며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는
주어진 일만 하기 때문에 일을 하며 성장할 수 없지만 소풍가는 고양이는
창업이고 직접 운영해 나가기 때문에 일을 하며 성장해요. 직접 운영하면
책임감도 길러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앞으로 자립하는 데 밑거름
이 되겠죠. 그래서 아르바이트와 소풍가는 고양이는 다른 형태의 일자리
라고 생각해요. 가게가 운영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와 직접 참여
하며 얻는 경험은 정말 많이 달라요.”
이번엔 쫑이 말했다. 학생이라곤 어느덧 쫑, 홍아, 단미, 이렇게 3명밖
에 안 남았지만 이들의 변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들은 내가 만난 학생
들 중에 특출하거나 근성이 탁월했던 것도 아닌데 자기들이 만든 가게를
위해 현재를 견디고 극복하고 헌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가게를 책
임지는 모험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나는 학생들의 변화를 하자센터에 알려 이후의 일을 의논했다. 그리고
하자센터 소속이었던 소풍가는 고양이를 창업자들의 회사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나갔다. 책임감을 느낀 담임들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장
사는 어른의 세계였다. 그래서 어른과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
려웠다. 한참을 고민하고 의논한 끝에 담임들(차차와 나)과 학생들(단미, 홍아,
‘내 가게’의 꿈은 이루어질까?
2015년에 스무 살 용한을 만났을 때 그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막 졸업
했지만 전공과 다른 곳에 취업한 상태였다. 나는 용한을 통해 특성화 고
등학교에도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울 근교에 있는 그의 학교는
‘잘나가는 학교’가 아니었다. 3학년 1학기가 되면 학생들의 진로가 대부
분 결정되는데 반은 대학입시 준비를, 나머지 반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
형 물류 센터나 공장, 콜 센터 등으로 현장 실습을 나갔다. 2학기가 되면
현장 실습을 나갔던 또래들이 취업을 확정했다. 그러나 정규직은 거의 없
고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용한도 같은 과정을 거쳐 다행히 정규직으로 취
업했다. 용한에게 취업은 최종 목표인 외식업 창업을 위해 거치는 중간
단계였다.
“고등학교 때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면서 내 가게를 갖는 꿈
이 생겼어요. 지금 직장에 취업한 것도 나중에 창업할 때 도움이 되겠다
는 생각에서 결정했어요.”
“고등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전공했잖아요.”
“전공대로 취업하는 애들 별로 없어요.”
“언제쯤 가게를 차릴 것 같아요?”
“한 10년 뒤? 군대도 다녀와야 하니까.”
“창업하려면 돈이 많아야 하지 않아요? 어떻게 마련할 생각이에요?”
“열심히 모을 거예요. 그리고 창업하면 집에서 조금 도와준다고 했어
요.”
목표가 확실한 용한의 자신감과 열정은 남달라 보였다. 그러나 용한은
1년을 못 채우고 직장을 그만뒀다. 얼마 후 집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언제까지 월급 받으며 살겠어요. 내 가게를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
잖아요.”
농담처럼 웃으며 민수가 말했다. 그의 꿈도 10년 안에 내 가게를 마련
하는 것이다. 그는 군 제대 후 2년 동안 직장을 세 번 옮겼다. 첫 직장은
피시방 알바였고, 두 번째로는 외식 업체에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1년 조
금 넘게 다녔다. 곧 프랜차이즈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비정규직 매니저
로 8개월을 일했다. 지금 네 번째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다.
민수는 두 번째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생활이 안정됐다고 한
다. 그래서 부모님 집을 나와 무리하게 독립했는데 월급이 부족했다. 그
때 마침 호프집 매니저 일자리를 접하게 됐다. 업종의 특성 때문에 새벽
까지 일하고 노동 시간도 예전보다 길었다. 그리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을 받아들이면 당장 받게 되는 월급이 이전 직장보다 많았다.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마음에 들었고, 이제 막 문
을 연 새 가게여서 나중에 내 가게를 운영할 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예상과 달랐다. 내 가게처럼 일할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장사가 안 됐다. 장사가 안 되니 근무 조건이
조금씩 달라졌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새벽 퇴근길 택시비도 받지
못했다. 일하는 사람을 줄인 탓에 주방 업무까지 병행하게 됐다. 결국 세
번째 직장도 그만뒀다.
“커서 뭐가 될래?”
“글쎄……. 꼭 뭐가 돼야 하나?”1)
1) 임진평, 『두 개의 눈을 가진 아일랜드』, 위즈덤피플, 2008, 57쪽. 감독은 영화를 찍은 후 못다
한 이야기를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커서 뭐가 될래?”
“그냥 …….”
그때부터 겨우 2년이 지난 후에 나는 표류할까 봐 내심 겁을 집어먹은
어린 젊은이 10여 명을 만났다. 대학에 가지 않고 사회로 막 나온 이들은
대부분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은 무엇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조
급해하며 빨리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고, 한 가지 일을 길게 하지 못해
일터를 수시로 옮겨 다녔다.
나중에야 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2)를 이해했고, ‘날마다 반복되
는 평범하고 안전한 일상’을 원하는 이들의 본심을 알게 됐다. 그때 비로
소 나는 세상이 바뀜에 따라 새로운 상황에 놓인 존재들을 발견했다. 과
연 이들은 아일랜드로 떠난 젊은 음악가의 ‘무모한 도전 정신과 자유로
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돌아올 곳이 없는
사람은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2) 자세한 내용은 1장 참고.
“커서 뭐가 될래?”
“평범하게 살고 싶어.”
이런 현상은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방영한
EBS 다큐멘터리 4부작 <2017 시대탐구 청년, 평범하고 싶다>에는 저성
장 시대에 평범한 삶조차 허락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청년들이 등
장한다. 일터에서 일회용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청년,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감내해야 하는 청년, 정부가 정하는 최저 임금
에 자신의 생존을 맡겨야 하는 청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높은 월급이 보
장된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장시간 노동과 수직적인 조직 문화 때문에 퇴
사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청년들 말
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먹고사는 평범한 삶을 원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꿈이 되어 버린 평범한 일상
8년 전, 대학에 가지 않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되고 싶은 게 없어요.”라
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척 복잡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최근
에는 희망 직업이나 꿈을 묻는 것이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
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이 고단해졌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의 ‘미
래 희망’은 정착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되었다. 이 ‘희망 사항’은 로또
당첨을 꿈꾸는 것처럼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
일까, 아니면 개인의 꾸준한 노력으로 실현될 수 있는 희망일까? 뛰어나
지도, 색다르지도 않은 보통을 뜻하는 평범한 삶이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삶이 되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자본주
의라는 개념이 묘사하는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다.3)
3) 리처드 세넷,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조용 옮김, 문예출판사, 2002, 7쪽.
사회 안에 작은 내 자리 만들기
11) 앞의 책, 278쪽.
함께 만들어가는 회사
2011년 7월 27일 이른 아침
피곤한 얼굴로 모두 출근. 주먹밥 2종류를 각각 300개씩 모두 600개
를 만들어야 한다. 압력 밥솥으로 밥만 11번을 해야 한다. 한쪽에서 쌀을
씻고 밥을 올린다. 다른 한쪽에선 우엉을 다지고 조린다. 조림 간장 냄새
가 진동한다. 먼저 햄주먹밥부터 시작. 시간 계산을 잘못했는지 빠듯하
다. 전날 밤늦게까지 일하면 고단해서 다음날은 평소보다 속도가 느려진
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다. 손이 모자라 요리 선생님의 반찬 가게 식구들
까지 동원해 미친 듯이 주먹밥을 만든다. 점심도 거른 채 저녁이 되어 간
다.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비 때문에 강변북로 통행이 금지되었다는 소식
이 들려온다. 우리가 예상했던 배달 시간보다 더 걸린다는 말이니 더 일
찍 출발해야 한다. 초조해서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그래도 손은 계속 주
먹밥을 찍는다. 찍어 낸다는 표현이 맞다. 공장이다. 10분에 50개씩 만들
어 내고 있으니 상상도 못했던 빛의 속도다. 도저히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서 한꺼번에 출발하지 않고 완성된 것만 갖고 1차로 먼저 출발한
다. 정신이 없다. 한 차례 출발한 뒤 이번엔 음료를 포장한다. 마음이 급
하니 모두들 우왕좌왕. 겨우 마치고 2차 출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빗속을 뚫고 달린다. 가게에서는 모두 출발해 상황 종료다.
그런데 곧 다른 국면이 시작된다. 이날 폭우로 서울시 전역의 교통이
마비 상태에 빠진 것이다. 주문한 곳에서 10분에 한 번씩 전화가 걸려 오
고, 가게에서는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한다. 점점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두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고…….
겨우겨우 도착하니 행사는 이미 끝나 버린 상황. 행사에 참석한 분들이
모두 가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1차로 보낸 주먹밥은 상해 버려서 먹지 못
했다고 한다. 우리가 서툰 줄 알면서도 의미가 있다는 것 때문에 일부러
주문해 준 손님에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돈을 못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 행사를 망친 것 같아서 몹시 부끄러웠다.
눈물을 머금고서 주먹밥과 음료를 들고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이젠 정
리할 시간.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주방 안을 가득 메운다. 한밤중이 돼서
야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우리는 이날 유례없는 폭우로 우면산이 무너졌
다는 소식을 그제야 듣는다. 천재지변이다. 이날은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었던 거다.
2012년 어느 날
“식사하신 도시락 그릇 가지러 왔습니다.”
“아, 소풍가는 고양이죠?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
겠는데, 작년 이맘때 우리가 소풍가는 고양이에 주문했었어요. 우면산이
무너진 날 주먹밥이요.”
“어머나! 그때 큰 피해를 드렸는데 오늘 또 주문하신 거예요?”
“소풍가는 고양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궁금해서 주문했어요. 오늘 완
벽했어요. 맛도, 배달도! 고생하셨어요.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주변에 소
문 많이 낼게요.”
1년 후 응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주문해 준 손님은 기적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 실력이 쌓여서 손님을 실망시키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마음
속 깊이 박혀 있던 미안함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자신감이 불끈 솟는다.
# 3탄, 기똥찬 하루
AM 11:50
“안녕하세요? 소풍가는 고양이입니다. 말씀하신 월드컵 경기장 주차장
에 도착했는데, 정확히 어디로 갖다드리면 될까요?”
“(화들짝 놀라며) 네? 오늘 오셨어요? 저희 행사는 내일인데요?”
“(순간 당황하며) 네? 내일이요?”
“ 날짜를 잘못 아셨나 봐요. 어떡하나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아,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괜찮습니다. 저희 실
수인걸요. 내일 다시 시간 맞춰 오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떤 상황인지 가늠해
야 했다. 가게로 전화해서 상황을 알리고 서둘러 출발했다. 가게로 돌아
와 원인을 찾은 끝에 주문받은 사람이 달력에 날짜를 잘못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조금 진정이 되자 이번엔 걱정이 밀려왔다. 52개나 되는 도시
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PM 12:30
동네 이웃들에게 돌리는 다섯 번째 전화.
“안녕하세요? 소풍가는 고양이인데요. 혹시 아직 점심 안 드신 분 계시
나요?”
PM 1:30
“애고,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대요. 잘 먹을게요. 고맙습니다.”
“(웃으며)저희가 잘못한걸요.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 배달 완료.
PM 2:00
우리 셋은 우리가 싼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었다. 남은 도시락
3개는 냉장고에 넣었다. 내일 마저 먹을 예정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묵
묵히 주방에 들어가 쌓여 있는 도시락 통을 설거지했다. 그. 리. 고. 오늘
과 똑같은 내일 아침 주문을 준비하려고 부지런히 재료를 손질했다. 며칠
있으면 소풍가는 고양이 창업 2주년. 이웃이자 단골들에게 맛난 점심 식
사를 대접하라고 하늘이 계시를 내린 모양이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몸 되기
그러던 어느 날, 쫑이 말했다.
“신메뉴를 선보인 게 오래된 것 같지 않아요? 손님들이 지겨워할 것 같
은데……. 우리 메뉴에 닭고기 요리가 부족한데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 건가요? (웃음) 쫑이 만들어 보겠다는 거죠?
메뉴 개발비를 책정할 테니 한번 해 봐요.”
쫑이 이 일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이루어진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쫑은
곧바로 신메뉴 개발에 들어갔다. 소풍가는 고양이의 메뉴가 되려면 손님
층, 가격에 알맞은 식재료비와 재료 선정, 정확한 레시피와 대량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조리법, 도시락에 담았을 때의 모양새까지 모두 완벽해야
한다. 우리는 몇 차례 품평회를 거쳐 조언과 검증을 하며 쫑이 모든 과정
을 제대로 하나하나 밟아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드디어 ‘허브닭구이’를 소풍가는 고양이의 정식 메뉴로 올렸다.
이 메뉴는 소풍가는 고양이를 창업하고 이곳에서 요리를 배우고 장사하
면서 우리의 손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구성원이 만든,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요리다. 물론 반응도 좋아서 손님들이 자주 찾는
인기 메뉴가 됐다.
우리의 음식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는 손님들이다. 창업 5년 차로 접어
들자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우리도 지금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자
각했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고만고만한 가게가 될 게 뻔
했고, 그것은 우리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일이었다. 무엇이 부족한지, 손
님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단골손님과 주문이 뜸해진 손님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모두들 흔쾌히 허락해 주어 인터뷰를 했다.2)
2) 인터뷰 내용은 개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을 쓰고, 여러 손님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이
야기로 합쳐 재구성했다.
안전 보장의 딜레마
게 된다.)
메일 보낸 이 : 홍아
받는 이 : 씩씩이, 차차, 쫑, 혁
답장 보낸 이 : 씩씩이
받는 이 : 홍아, 차차, 쫑, 혁
홍아, 훌륭하네. 이런 메일을 다 보내고.
그리고 고맙네.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러게, 왜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메일이 도착하기 전날. 올해 마지막 일정이자 마지막 주문이며 가장 큰
주문을 준비하다 말고 갑자기 차차와 홍아가 큰소리로 말다툼을 벌였다.
“홍아, 내가 물어봤잖아. 왜 대답을 안 해요? 무시하는 거예요?”
“차차가 짜증 내면서 말하니까 말하기 싫어요.”
“홍아가 무시하니까 짜증이 나는 거잖아요.”
“차차가 먼저 짜증 내면서 말했잖아요!”
두 사람의 팽팽한 말싸움은 홍아가 유니폼을 집어 던지고 뛰쳐나가면
서 끝났다.
“홍아 안 돌아오겠네.”
쫑이 혼잣말을 했다.
홍아는 다투다가 뛰쳐나간 전력이 많았다. 하지만 늘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이튿날 홍아는 출근하지 않았다. 대신 전체 메일을 보낸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4명의 이사(차차와 홍아, 쫑, 나)로 구성된 긴급 운영 회
의가 열렸다. 다행히 홍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참석했다. 홍아의 메일은
우리가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제 출근하지 않은 건 죄송해요. 하지만 생각을 깊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홍아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충돌 사건’을 되짚어 보았다. 모두 이런
일을 하루이틀 겪었던 게 아니어서 그런지 감정은 이미 사그라들었다. 이
시기에는 끔찍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연말이라 주문이 많았는데,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새 가게에 부분적으로 입주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보따리장수처럼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이웃 업체 주방으로 옮겨 다니며
주문을 소화했다. 나는 나대로 새 가게 입주 잔금을 마련하느라 이리 뛰
고 저리 뛰었다. 게다가 그 무렵에 신입 구성원이 많아서 그들을 돌보느
라 품이 두 배로 들어갔다. 각자 감당해야 할 일감의 범위가 너무 많아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누가 좀 거들어 줬으면 싶은데 상대의 무심함과
부족한 역량에 자꾸 화가 나고 분위기는 점점 나빠지던 때에 홍아가 폭탄
을 터뜨린 것이다. 즐겁게 일하면 좋겠다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
인가. 그러려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
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를 결정
했다. 이날은 기분 좋게 헤어졌고, 모두 이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문제였다. 나는 영 개운치가 않았다. 정말 충돌 사
건이 해결된 게 맞나? 홍아가 질문한 것들에 대한 답을 얻었나? 홍아만
이성적으로 노력했던 건 아닐 게다. 나의 노력, 차차의 노력, 쫑의 노력,
혁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했나? 우리의 노력은 어디로 향
해 있었던 걸까? 충돌 사건의 원인을 우리가 제대로 찾아낸 게 맞는지 자
꾸 되물어 보았다.
며칠 뒤 2차 회의를 열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여전히 청소년과 청년 구성원들의 주인 의식과 자율성, 일감 완
수 능력을 의심하고 있어요. 획득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포기해
야 하는 건지, 아니면 벌써 충분한데 내가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건
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자신과 상관없는 것처럼 심드렁하게 일
하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실제로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요?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포기하는 건가요?”
“초기에는 내가 저지른 실수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몰라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누가 해결할 테니까 또는 어차피 못할 테니까’ 이런
식으로 넘어갔고, 내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실수를 하면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서 다른 사람에게도 짜증을 내게
돼요. 해결법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손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어
요. 그래서 주문과 관련해서 실수를 해도 잘못했다거나 고쳐야겠다는 생
각이 들진 않았어요.”
쫑과 홍아가 차례로 말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몹시 당황한 나는 속
으로 ‘내가 어린아이들 데리고 뭐 하는 건가.’ 읊조렸다. 그만큼 둘의 존
재는 남달랐다. 연금술사프로젝트부터 시작해 창업을 같이 했고, 모든 고
비를 함께 넘고 의지하며 든든한 동료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던
가.
실망감에 휘청대는 찰나에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쫑이 느닷없이 퇴사를
선언했다. 셰프에게 직접 배우는 요리 수업 후 서양 요리 셰프를 꿈꾸게
된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점점 쓸모없고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더욱
이 소풍가는 고양이는 한식 중심이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조바심이
생긴다고 했다. 허드렛일을 해도 좋으니 서양 요리 전문 레스토랑에서 경
험을 쌓고 싶어 했다.
“지금 제가 안고 있는 한 가지 문제점은 다른 일터에 가서 일하게 될 날
을 기다린다는 거예요. 잘못된 생각이라는 건 알아요. 어떻게 보면 영혼
없이 일한다고 볼 수 있잖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다른 일터에 가는 것
을 구분해서 생각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소풍가는 고양이를 생각하며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터에 나갈 때까지 버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
하고 있으니까요.”
쫑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회사가 어떤 상
황인지, 차차와 내가 왜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사람은 “일을 적당히 할 순 없나?”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이 떠났다.”며 다른 곳으로 가겠다니. 연이은 폭탄 세례에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휑해졌다.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
일하면서 배운다는 것
소풍가는 고양이의 유통 기한
평범한 두 젊은이의 매듭 짓기
2017년 가을
박진숙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지은이 박진숙
인쇄 코리아피앤피 제책 J&D바인텍
Ⓒ 박진숙,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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