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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소설가)
서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바리스타 구합니다.
하루 여덟 시간, 주 5일 근무입니다.
급여는 면담하면서 알려드릴게요.
커피를 맛있게 내릴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 객관적인 시선
객관적인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자. 내가 ‘좋아하는 책’이 아닌 손님에게 ‘좋을 책’을 추천하려면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 질문
책을 추천하기 전에 먼저 손님에게 물어보자. ‘최근에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가장 감명 깊게 읽
은 책은요?’ ‘평소에 어떤 장르 책을 주로 읽으시는데요?’ ‘요즘에 주로 하는 생각은?’ ‘좋아하는 작가는?’
작가와의 일문일답. (블로그 업로드 시간 오후 10시 30분. 요약본 인스타그램 업로드 시간 오후 10시 41
분.)
영주 곁에 서게 도와준다는 말이 좋네요.
영주 어떤 면에서요?
영주 그게 많이 읽는 건데요? (웃음)
영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주 …….
금요일 오후 1시 4분 / 인스타그램 문구
오늘 오시면 수세미 드려요. 서점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께 드려요. 수량은 70개 한정이에요:)
#휴남동서점 #동네책방 #동네서점 #동네서점이벤트 #70개한정수세미가지러오세요 #책안사도드려요
금요일 오후 5시 2분 / 인스타그램 문구
수세미가 이렇게 인기 있을 줄 몰랐어요. 남은 수량 33개:)
#휴남동서점 #동네책방 #동네서점 #동네서점이벤트 #불금엔수세미
“노동 과정에서 인간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끌어들이고 착취하는 특징을 지닌 소외가 나타난 것
이다. 여기서 문제는 노동자가 노동을 하면서 자기를 표현하거나 동일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게 아니라,
• 위의 책, 73페이지.
•• 위의 책, 78페이지.
• 위의 책, 125페이지.
• 위의 책, 263페이지
- 바리스타 없는 월요일
- 오늘 휴남동 서점에선 커피를 주문받지 않습니다.
- 커피 외 음료는 주문 가능합니다.
#바리스타는_주5일근무 #바리스타_삶의질을위해 #우리모두의_워라밸을_응원합니다
1년 후.
영주는 민준이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책 속 문장을
좇았다. 아는 작가라곤 J. D. 샐린저뿐이라던 민철이 얇다는 이유 하나만으
로 고른 책이었다. 영주는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이』를 읽으며 이 책을 고
른 민철에게 속으로 ‘쌤통이다’를 외쳤다. 짧지만 심오한 이 책을 고 녀석이
과연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지금은 영주와 민준만 출근해 있지만 15분이 지나면 상수도 출근할 것
이다. 상수는 반년 전부터 휴남동 서점의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르
바이트생이 아닌 직원으로 일을 해달라고 영주가 제안했을 때 그의 첫 질문
은 머리 길이에 관한 거였다. 머리를 잘라야 한다면 직원이 될 수 없다는 상
수의 말에 영주는 그렇다면 직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담담
하다 못해 무뚝뚝한 태도로 제안을 받아들인 상수지만 직원으로서의 첫 출
근 날 그는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며칠 후 상수는 영주에게 살짝 귀띔
을 해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직원이 되어보는 거라고.
상수가 직원이 된 다음 달부터 휴남동 서점엔 작은 책장이 하나 더 생겼
다. 상수가 읽는 책들만 모아둔 책장이었다. 책장 제일 위 칸엔 ‘단발머리
책벌레 상수 씨가 읽은 책들’이라고 써 놓았다. 그 옆엔 ‘손님들도 함께 읽
고 상수 씨와 이야기해보세요’라고도 써놓았다. 이젠 일을 하느라 하루에
책을 한 권밖에 못 읽는다는 상수는, 그럼에도 여전히 책벌레의 본분을 다
하며 손님들의 혼을 쏙 빼놓곤 했다. 휴남동 서점에 자주 오는 손님들은 이
제 자연스레 영주보단 상수에게 먼저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다가오는 손님들 중엔 상수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
았다. 이에 착안해, 영주가 상수만의 코너를 만든 것이다.
민철이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건 3개월 전이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민철은 3개월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지난봄 집으로 돌아왔다. 유럽
여행은 대학을 가지 않는 조건으로 희주가 민철에게 내건 것이었다. 방구석
에 틀어박혀 시간을 썩힐 바엔 낯선 세상이라도 보고 돌아오면 민철에게 도
움이 되리라 희주는 생각했던 것이다. 민철이 여행 중일 때, 희주는 영주에
게 설레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철의 몫으로 모아둔 대학 등록금
은, 이제 쓸데가 없어졌으니 집안 식구가 돌아가며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됐다고. 민철이 돌아오면 다음 바통은 희주 부부가 받기로 돼 있었다. 민철
아빠는 이번 여행을 위해 휴직계까지 썼다고 했다. 희주 부부는 지금 세계
여행 중이다.
민철은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영주를 찾아왔
다. 알맞게 그을린 피부와 한층 어른스러워진 표정으로 민철은 영주에게 자
기를 휴남동 서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써달라고 했다. 영주는 그 자리에서 승
낙했고, 민철은 다음 날부터 주 2일, 하루 세 시간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
이 되었다. 민철이 휴남동 서점에서 일을 하기 위한 조건도 하나 내걸었다.
휴남동 서점 이벤트에 무조건 참여하기. 네 사람이 매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이벤트였다.
네 사람뿐만 아니라 휴남동 서점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진행
하는 이벤트였다. 매달 1일 휴남동 서점은 ‘이번 달 서점 직원들이 읽을
책’을 선정하고 그 책을 SNS와 블로그에 공개한다. 마지막 주 목요일 그 책
을 함께 읽은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처음엔 휴남동 서점 직원을
제외하고 서너 명만 참여하던 모임이었는데 이젠 제법 인원이 늘어 지난달
엔 열다섯 명이 모임을 찾았다. 이번 달 모임에선 샐린저의 『프래니와 주
이』로 이야기를 나누게 될 터였다.
지난 1년간 휴남동 서점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 하면 뭐가 있을
까.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 영주는 한동안 휴남동 서점을 전과 똑같이 운
영했다. 2개월쯤 그대로 운영하다가 지난 2개월간 머릿속으로만 해오던 작
업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영주는 휴남동 서점만의 개성을 깊이와 다양
성에서 찾기로 했다. 손님들이 조금 어렵게 느끼더라도 깊이 있는 책 위주
로 큐레이팅을 다듬었고, 다양성을 위해 베스트셀러를 배제했다.
휴남동 서점을 운영하면서 영주는 늘 베스트셀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곤 했다. 베스트
셀러에 오른 그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한번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계
속 베스트셀러로 남는 현상이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베스트셀
러라는 존재가 다양성이 사라진 출판문화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영주는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섹션에 가면 출판 시장의 일그러진 자화상
을 보는 듯했다. 베스트셀러 몇 권에 의지하는 서글픈 현실. 이는 누구의 탓
일까. 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속 모든 면면이 반영
된 결과일 뿐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해야 할 건, 그
럼에도 작은 노력을 기울여 독자들에게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것일 터였다.
이 세상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몇 권의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쓴
몇 명의 작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좋은 수많은 책, 수많은 작가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일 터였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배제하는 것이었
다. 어제까지 베스트셀러가 아니던 책이, 며칠 전 유명인이 TV 프로그램에
서 언급한 뒤 오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그 책을 재주문하지 않았다. 그
책이 안 좋은 책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다양성을 위해서였다. 대신, 그 책과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을 골라 서점에 들여놓았다. 혹 베스트셀러 책을
찾는 손님이 있다면 그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영주의 이런 운영 방식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참신하게 비쳤는지는 모르
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성철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이다. 성
철은 “그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이미 그 책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
죠”라고 말했다. 성철은 영화계나 출판계나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
다면서 영주와 동지 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성철은 더 좋은 영화와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길 바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사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영주가 휴남동 서점의 미래를 위해 세운 계획 3이 이것이었다. 베스
트셀러 없애기.
이 외에도 지난 1년 휴남동 서점은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지만 사실 어
떻게 보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과거의 휴남동 서점에도, 현재의 휴남
동 서점에도 영주의 이상과 생각이 반영된다는 점이 그렇다. 영주가 해외
독립책방을 둘러보며 깨달은 점은 모든 책방이 그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는 점이었다. 그리고 개성은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개성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건 용기였다. 주인의 용기가 손님에게 가닿기
위해 필요한 건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용기와 진심.
영주는 용기 있게 생각을 현실화하면서 진심을 잃지 않는다면 어쩌면
휴남동 서점도 영주가 찾았던 그 서점들처럼 지속 가능한 서점이 될 수 있
으리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계속 반성하고 변화할 수 있다면, 휴남동 서
점의 미래가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 모든 생각 아래
엔 책을 사랑하는 영주의 변치 않는 마음이 있어야 할 터였다. 영주가 책을
사랑하고, 또 서점 직원들이 책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손님들에게도 전
해지지 않을까. 우리 네 사람이 책으로 의사소통하고 책으로 농담하고 책으
로 우정을 다지고 책으로 사랑을 이어간다면 손님들도 우리의 마음을 알아
주지 않을까. 책을 읽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삶의 결이 휴남동 서점
에서 느껴진다면, 책을 읽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휴남동
서점에서 흘러 나간다면, 사람들도 한 번쯤 책을 펼치려 하지 않을까. 살아
가다가 문득 이야기가 필요해지는 시점이 올 때 사람들이 책을 찾을 수 있
게끔, 영주는 계속 책을 읽고 책을 소개하며 살고 싶었다.
영주의 오늘 하루는 어제와 비슷할 것이다. 책에 둘러싸인 채 주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책에 관한 일을 할 것이며, 책에 관한 글을 쓸 것
이다. 그러는 틈틈이 먹고, 생각하고, 수다도 떨고, 우울했다가 기뻐할 것이
며, 책방을 닫을 즈음에는 오늘 하루도 이 정도면 괜찮았다며 대체로 기쁜
마음으로 서점 문을 나설 것이다. 집으로 걸어가는 10분 동안에는 승우와
통화를 할 것이고, 집에 도착해서는 승우와 더 통화를 하다가 씻고 쉴 것이
다. 그러다가 윗집으로 이사 온 지미의 방문을 받게 될지도 모르고, 지미 뒤
를 따라 들어온 정서와 오랜만에 맥주 한잔하게 될지도 모르며, 그것도 아
니라면 직원이 늘어난 통에 이사 온 집의 전망이 이전 집보다 못하다는 생
각에 약간은 침울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어젯밤에 읽다 만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독일 것이고, 그러다가 책을 덮고는 침대에 누울 것이
다. 영주는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인생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읽
은 문구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작가의 말
소설을 써볼까.
2022년 1월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초판 1쇄 발행 2022년 1월 17일
전자책 발행 2022년 1월 17일
지은이 황보름
편집 윤성훈
교정교열 김정현
디자인 studioforb
표지 그림 반지수
마케팅 신동익
제작 (주)공간코퍼레이션
ISBN 979-11-973771-8-1(05810)
전자책 정가 10,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