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on page 1of 25

다. 그러나 웅포리 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바닷가가 다시
고즈넉이 가라앉았다. 나는 세운 무릎에다 얼굴을 박고 한동
안 그렇게 침묵을 익혔다. 한기가 등줄기를 다림질했다. 시
려웠다. 새도 아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형을 비
웃을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알지 못했다. 공부벌레. 그러나
나는 형처럼 수재도 못 되었다. 공부벌레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벌레처럼 살고 있었다. 지방대학의 입시에 매달려 주위
의 눈치만 힐끔대며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주눅이 들어 버
렸다.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앙증맞은 꼴이다.
새떼의 날개깃 치는 소리가 다시 어우러져 들려 왔다. 나
는 머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한 무리의 작은 새떼였다. 무슨
새일까. 족제비가 말한 도요새는 아닐 테지. 그 새는 이제
동진강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했으니. 자세히 보니 기억이 났
다. 형의 책꽂이에 꽂힌 『조류도감』중에 접힌 부분이 있었
다. 흰목물떼새였다. 강 하구의 갈대숲 사이를 누비며 날아
올랐다. 흰목물떼새의 등은 연갈색이고 배쪽은 흰색이었다.
김원일 - 도요새에 관한 명상 (전문) 목에는 흰 테를 두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몸통은 참새를 닮
1 았다. 그러나 뻘밭이나 물가를 걷기에 알맞게 다리가 껑충하
모든 강은 바다로 이어졌다. 그래서 강의 하구에는 크든 니 길었다. 몸집은 병아리만했다. 그래서 날개깃 치는 소리
작든 삼각주를 이루었다. 연장 오십사 킬로미터의 동진강도 가 갈매기만큼 시끄럽지가 않았다. 유치원 원아들의 박수 소
동해 남단의 바다와 닿아 있었다. 강 하구는 물살이 완만했 리 같았다. 몸짓은 율동적이고 재빨랐다. 금세 나의 시야를
다. 민물과 짠물이 서로 섞였다. 그곳에 물고기들이 서식했 휙하니 가로질렀다. 무한의 바다로 줄달음질쳤다. 새벽 노을
다. 수심 얕은 수초 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 때문이었다. 새 위로 휘돌이를 치며 차올랐다. 그 모양새가 난초잎같이 날렵
우무리와 조개무리의 민등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철새는 물론 했다. 모래사장에 사뿐 내려앉았다. 저 흰목물떼새는 텃새가
나그네새도 그 삼각주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날개를 아니라, 철새 아니면 나그네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그
손질하며 쉬다 떠났다. 러나 남으로 내려갈 나그네새인지 이 동진강 삼각주에서 월
나는 강 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 있었다. 삼각주와 넓은 동을 할 철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절기로 보아서는 이제 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이제 날이 밝아 오고 있는 참이었 을이다. 아마 아열대 지방에서 월동을 하러 하행중이겠거니.
다. 강 하구에서부터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스무 마리쯤 나는 아무렇게나 생각했다. 쪼작거리며 개펄을 거닐던 흰목
되어 보였다. 갈매기들이 요란하게 날개깃을 쳐댔다. 마치 물떼새 중에 한 마리가 호들짝 날았다. 그것을 신호 삼아 무
깊은 동굴 속에 갇혔다 풀려 나온 듯했다. 그 수다로 조용하 리가 뒤따라 날아올랐다. 창공을 질러 북쪽 해안으로 멀어졌
던 개펄이 일시에 소란해졌다. 갈매기들은 주황빛으로 타오 다. 그러자 바다와 개펄은 다시 정물화가 되고 말았다. 나는
르는 공간을 한 바퀴 선회했다 바다 위로 거꾸로 꽂힐 듯 곤 당연히 갈대숲을 보고 있었다. 갈대숲은 푸른 엽록소가 탈진
두박질했다. 그러나 수면에서 용케 직각으로 꺾어 개펄을 따 하여 누렇게 바래진 상태였다. 날이 밝아 오자 삼각주의 모
라 날아갔다. 싸늘한 새벽의 공간에 그 비상이 힘에 차 있었 래사장도 희끔하게 드러났다. 동진강의 물이 맑지 못한 탓인
다. 자유스러웠다. 한껏 해방된 그 날갯짓이 부러웠다. 주위 지 모래가 회백색이었다. 그 뒤쪽 거대한 암청색 등판을 드
의 뭇시선으로부터 나도 저렇게 해방될 수 있다면. 그 해방 러내고 있는 망망한 새벽 바다에는 파도가 없었다. 바다는
을 어른들은 방종이라고 말했다. 타락했군, 하고 손가락질했 한 폭의 큰 명주비단이었다. 수많은 잔주름이 미명의 빛 속
다. 그러나 사실 손가락질은 저들이 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에 자디잘게 쪼개졌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그림자조
세대의 타락은 그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차 보이지 않았다. 사이나를 넣은 콩을 뿌려 놓고 족제비가
자동기계로 찍어 내듯 새로운 타락의 방법을 만들어 냈다. 가버린지도 벌써 한참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는 뒤늦게 그 방법을 답습할 뿐이다. 순간, 나는 형을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오한이 가슴을 훑었다. 어깨가 으스스
생각했다. 봄부터 철새와 나그네새에 미쳐 버린 형이었다. 떨렸다. 나는 날이 새기 전에 족제비와 함께 삼각주 개펄로
형은 새처럼 자유인이고 싶어했다. 숫제 한 마리의 나그네새 나왔었다. 그리고 족제비는 일을 마치자 먼저 가버렸다. 나
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과연 형이 새가 될 수 있을까. 새 는 아마 혼자 삼십 분쯤은 이 언덕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는커녕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형은 미쳐 그 동안 내가 한 일은 수음밖에 없었다.
버렸다. 형의 피가 내 심장 속에서도 준동질할까봐 두려웠 해가 솟아올랐다. 언제 보아도 저놈의 둥근 낯짝은 참 잘
다. 나는 형의 얼굴을 떨쳐 버렸다.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 생겼다. 부끄럼 없이 당당했다. 발기하던 나의 생식기처럼
셨다. 심호흡을 했다. 나의 시선이 남쪽 개펄을 따라 멀어지 힘찼다. 왜소한 나로서는 저 해를 보기가 창피했다. 대자연
는 갈매기들을 좇았다. 이쪽으로 돌아오려니, 하고 기대했 은, 그렇다, 나를 늘 처참하게 구겨 버렸다. 나는 어두워야

- 1 -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었다. 암내나 밝히는 새앙쥐였다. 나 여기가 공업지구로 지정되기 전에는 동진강 삼각주가 그 도
는 또 윤희를 생각했다. 고고 미팅에서 오늘 처음 만난 내 래지로 유명했다는 거야. 그러나 강물이 오염되자 어느 사이
짝이었다. 고고 홀은 통금해제와 더불어 끝났었다. 홀은 거 자취를 감춘 게지.”
의 비어 있었다. 악사들도 퇴장한 뒤였다. 객석의 불도 꺼졌 “도요새, 도요새라?” 고고 홀의 어두운 비상계단을 내려
다. 비상구 쪽의 백열등만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여관으로 가며 내가 중얼거렸다.
가자고 할까 봐 윤희는 잽싸게 줄행랑을 친 뒤였다. 종호는 “도요새 중에도 동진강의 중부리도요가 값이 나가는 모양
운이 좋았다. 맞춘 짝과 함께 점잖게 꺼져 버렸다. 둘은 어 이야. 희귀하니깐 가수요가 붙었어.”
디 가까운 여관에라도 들었겠지. 그 때, 놀기만 좋아하는 덩 “좋았어. 오늘 널 따라 견습을 해보기로 하지.”
돌이인 족제비가 내게 말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맨돌부대 나는 족제비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가방을 든 채 석교 쪽
(재수생)였다. 으로 빠지는 길을 잡았다. 새벽 공기가 냉랭했다. 먼 데서
“군자는 아니지만 난 계집앨 손수 보내 버렸지.” 녀석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부는 새
말했다. 벽녘이라 매연은 별로 맡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둠을 익
“왜?” 히며 열심히 걸었다. 삼각주 개펄에 도착하자 족제비는 가방
“지금부터 돈벌이를 해야 하거든” 하며 녀석은 들고 있 에서 볼록한 편지봉투를 꺼냈다. 그 속에는 서른 개 정도의
던 가방을 힐끔 보았다. 재수생 전용물의 골통가방이었다. 물에 불린 콩이 담겨 있었다. 족제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돈벌이라니, 남의집 담이라도 넘을 작정이신가?” 내지 쪽에서 기계 소리가 윙윙 들려 왔다. 싸하니 새벽 바람
“병식아, 쇠통마우스하고(입 닫고) 날 따라갈래?” 이 바다 쪽으로 빠졌다. 지금부터 아가리 묵념, 하고 족제비
“어딜?” 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족제비는 사방 오백 미터 정도의
“동진강 하구, 삼각주로.” 면적에다 불린 콩을 띄엄띄엄 흩뿌렸다. 나는 그를 따라다녔
“신새벽부터 거긴 왜?” 다. 일이 끝났다.
“새를 좀 잡게.” “어른들이 뜨기 전에 이젠 가지.” 족제비가 말했다.
“새는 눈이 멀었나, 네게 잡히게?” “시체 수거는?”
“약을 먹여 음독을 시키는 게지.” “해질녘 우리집으로 와. 등산가방은 내가 준빌 할 테니.
“그래서?” 시내로 반입을 해야 하거든.”
“오후에 수거를 하러 가거든.” “넌 살인자야.” 내가 말했다.
“죽은 새를 구워 먹게?” “인이 아닌, 살조자인 셈이지.”
“그걸 팔지. 오늘 내 용돈도 그렇게 마련한 거야.” “너 먼저 시내로 들어가. 나온 김에 난 좀 남았다 갈
“죽은 새를 사다 뭘 하나. 포장집 술안주?” 래.”
“그 내장을 먹었다간 식중독으로 급행 타게. 박제사(剝製 “즉살 현장이 보고 싶어서?”
士)에게 중계무역을 하지.” “……”
“아무 새나 다 박제를 하나?” “죄책감 때문에?”
“갈매기 따윈 쓸모도 없고, 나그네새나 철새만. 그러니 “무슨 나발 같은 소리.”
한철 장사지. 지금 삼각주는 그런 새로 한창 성시를 이룰 철 “인간은, 인간은 물론 무엇이든 죽일 수 있어. 인간은 파
이거든.” 괴자야.”
“자연보호에 위배되잖아?” “제법인데?”
“그럼 용돈을 어떻게 만져. 눈먼 안마사도 팁 달라는 세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 왔어. 정복이란 곧 살인이지.”
상에.” “그만 해둬. 이빨에 땀 나겠다.”
“한 마리에 얼마?” “우리가 새를 잡는 것은 소나 닭을 죽이는 것과 하등 다
“청둥오리나 고니가 제값을 받지.” 를 바 없어. 너도 갈비나 통닭은 좋아하잖아? 위법을 따지자
“너 언제부터 그렇게 똘똘해졌냐?” 면 길바닥에 가래침을 뱉어도 위법이야. 오늘날 세상에 준법
“이번이 세 번째야, 척하면 착이지.” 정신 사랑했단 영양실조에 걸려.”
“조숙한 새끼, 수입이 쫄쫄한 모양이구나?” “그만 해두라니깐. 난 그저 일출이나 좀 볼까 하구.”
“잘함 독서실 비용까지. 오늘 일당은 너랑 분배할 수도 나는 윤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있어.” 하고 씩 웃으며 족제비가 내 어깨를 밀었다. 그리고 “엇쭈, 명상파셔” 하곤 족제비는 떠났다. 나는 바다가
족제비가 말했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줄곧 윤희의 알몸을 생각했다.
“너 도요새란 새를 아니?” 자리를 잡자 청바지를 까내리고 수음부터 즐겼다. 일이 끝나
“도요새라니?” 고 돌아갈까 하다가, 형이 생각났다. 새에 미치고부터 형은
“박제사 아저씨가 그 새를 좀 구해 오라는 거야.” 일출을 보기 위해 부산을 떨었었다. 내 새벽잠을 온통 망쳐
“어떻게 생긴 샌데? 아주 요사찬란한 모양이지?” 놓았다. 일출과 더불어 기상하는 새떼를 조사하기 위해서였
“나도 사진으로만 봤는데 물떼새와 비슷하더군. 그런데 다. 나도 일출을 보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 삼십 분 동안,

- 2 -
잠시 수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왜 하루에 한 번은 꼭 수음을 “……”
해야 하나. 그 질문에 나는 별 뾰족한 대답을 얻어 낼 수 없 “도둑놈.”
었다. 타성이고 습관이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왜 숨어 하 “이러다간 정말 내가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어.”
는 습관을 즐기는 것일까. 욕구가 충동적으로 나를 사로잡으 한숨과 함께 화제가 그쳤다. 나는 여공들의 얘기에는 별
면 왜 때와 장소조차 구별하기가 싫을까. 빨리 처리해 버리 관심이 없었다. 늘 습관대로 얼굴과 몸매만 대충 훑어보았
자. 왜 이렇게 조급증을 낼까. 물론 주간지에서 건강에 별 다. 예쁜 애는 없고 모두 그저 그런 여자였다. 다만 오른쪽
지장이 없다는 해답은 읽었다. 심심풀이로? 아니면, 나는 섹 애의 젖가슴이 유독 커보였다. 육칠팔(육체파)이군, 그러나
스의 노예일까? 딱 맞아떨어지는 해답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가짜일 테지. 나는 잇몸 사이로 찍 침을 뱉었다. 저 애가 수
마치 무한소수같이. 술을 한 애일지도 몰라. 그러면 가짜가 아닐 테지. 애 엄마
나는 가방을 들고 언덕길을 내리 걸었다. 길섶의 풀들이 가 되려다 도중하차를 했으니깐 말야.
바지 아랫도리에 감겨 왔다. 풀에 앉은 이슬이 아랫도리를 초인종을 누르자 젖이 큰 여공의 젖꼭지가 떠올랐다. 그
적셨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꺼풀조차 무거웠다. 독서실이 여공의 얼굴이 슬픈 빛을 띠었다. 그 얼굴을 지웠다. 종옥이
아니라 오늘은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엄마를 만나야 하기 가 문을 열어 주었다.
때문이었다. “독서실에서 오는 길이니?” 종옥이는 손에 낀 고무장갑
양켠으로 공단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산업도로에 의 물기를 털었다. 나흘 만에 나를 보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는 아직도 인적이 드물었다. 이따금 승객이 듬성한 시내버스 그 얼굴을 보니 왠지 짜증이 났다. 부엌데기인 주제에 뭘 다
가 빈 거리를 달렸다. 손수레를 끌고 가는 청소부 아저씨들 참견하겠다구.
만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에이 단지 끝까지 왔을 때였다. “그래 어쩔 테냐?” 내가 톡 쏘았다.
내 또래의 공원들을 만났다. 야근에서 풀려 나오는 참인 모 “공연히 신경질이야. 이제 막 쌀을 안쳤기에 시장할까 봐
양이었다. 대부분 여공들이었다. 뼈 없는 낙지처럼 걸음걸이 물은 건데…….”
가 힘이 없었다. 생고무같이 탄력이 있어야 할 나이에 그 얼 “엄만 아직 주무시니?” 목소리를 고쳐 내가 되물었다.
굴들이 한결 파르족족했다. 두 명의 여공이 내 뒤를 바싹 따 종옥이가 뚱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라오고 있었다. 무슨 얘기인가 낮게 소곤거렸다. 귀를 기울 “밥이고 뭐고 잠부터 자둬야겠으니 날 깨우진 마.”
였다. “딴 상 벌이려면 네가 차려 먹어.” 젖깨나 주물렸다고
“야식용 빵 있잖아?” 매사의 말투가 저랬다.
“또 크림이 변질됐던?” 나는 아래채 쪽으로 걸었다.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섰다.
“그게 아니구, 조장 말야.” “참, 종옥아, 엄마가 외출하면 삼만 원 꼭 놓고 가래. 학
“조장이 뭘 어째서?” 관비하고 식대라고 말야. 안 챙겨 두면 너 죽어.”
“결근한 순이 걸 그 녀석이 먹어 치웠어.” 종옥이가 혀를 쏙 내밀었다. 아래채로 걸었다. 아래채는
겨우 빵 한 개를 가지구. 그게 무슨 얘깃거리라고 주둥일 세를 놓기 위해 지은 무허가 두 칸 방이었다. 원래는 상추나
찧어, 너네들은 그런 생각만 하니 공순이 신세를 못 변하지. 갈아 먹던 마당귀였었다. 작년 여름, 블록으로 방 두 칸을
뒤돌아보니 서로 다정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낸 것이었다. 집이 거의 완성됐을 때였다. 그게 항공 촬영에
“어제 병원엘 갔다 왔어.” 걸려 말썽을 피웠다. 열흘 내 허물라는 계고장이 날아들었
“하루쯤 조릴 하잖구 출근했냐? 거기다 야근까지.” 다. 아버지가 구청으로, 시 건축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래서 이번 달엔 고향에 송금도 못 했지 뭐냐.” 그러나 별 무소득이었다. 시 건축과 직원과 철거반원 여섯이
“그래도 작년까진 직속 과장이었는데, 수술비도 안 대주 들이닥쳤다. “자진 철거를 안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더란 말이지?” 요.” 시 건축과 직원이 말했다. “우린 그저 법에 따라 조
“아파트로 옮긴데다 셋째딸이 장 중첩 수술을 했대. 가불 칠하니깐요.” 하며, 철거반원들은 웃통을 벗었다. 무쇠 같
이 많아 또 가불을 할 수도 없다나.” 은 팔뚝으로 해머를 휘둘렀다. 벽이 부서졌다. 시멘 도당을
“아무렴, 째째하고 치사하다, 얘.” 걷어냈다. 집은 성냥곽처럼 쉽게 허물어졌다. 그러나 수돗가
“뭐 내가 단속을 잘못한 탓이지.” 의 라일락은 청청이 푸른 잎을 드리웠다. 철거반원들은 그
“그러다 몸 다 망치겠다.” 그늘 아래 앉아 담배를 태웠다. 그들은 힘에 넘쳐 그 나무까
“만신창인걸. 벌써 두 번짼데.” 지 찍어 내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런 권리는 없었
“세 번 이상 긁어 내면 애 들기도 힘들대.” 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엄마는 그 바쁜 중에 손수 나
“이젠 끝났어.” 서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다시 미장이를 불러다 벽을 쌓
“단물만 뽑아 먹구 잊어 달라는 거로군.” 아요.” 엄마가 아버지에게 명령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말에
“기혼잔 줄 알면서 잔꾀에 넘어간 내 잘못이지 뭘. 그이 고분고분 따랐다. 집은 종전대로 다시 지어지기 시작했다.
가 날 검사과로 옮겨 주긴 했지만.” 이제 엄마가 구청으로, 파출소로, 시 건축과로 출입을 시작
“너 이외에도 당한 애가 있을 거야. 말썽을 안 피울 순진 했다. 철거반원들의 발길이 뚝 그쳤다. 역시 엄마는 중학도
한 애만 골라서 말야.” 채 졸업하지 못한 학력이었지만 믿을 만한 수완가였다. 그때

- 3 -
나는 다시 한번 대학물까지 먹은 아버지를 비웃었다. 그 두 장난에 말려들었다. 내가 생각기로 그 점은 순전히 객기였
칸 방 중에 하나는 형과 내가 거처를 했다. 다른 한 방은 세 다. 아니 형은 수재였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스스로 자초했
를 내주고 있었다. 위채는 큰방을 아버지와 엄마가 썼다. 마 는지 몰랐다. 미인박명, 재사박덕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 짓
루 건너 골방은 종옥이가 혼자 쓰고 지냈다. 거리였다. 형은 하숙집에 등사기를 빌려다 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미닫이 방문을 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자고 있 그리고 정부가 금기로 지목하는 문구가 삽입된 선언문을 찍
던 형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멍한 눈으로 잠시 나를 치켜떠 어 냈다. 형의 행위는 분명히 긴급조치법에 위배되었다. 형
보았다. 핀이 잘 맞지 않는 사시(斜視)의 눈이었다. 형은 말 은 당연히 입학했듯, 당연히 퇴학을 당했다. 형은 햇병아리
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눈의 열림과 닫힘이 양로원의 백 같은 노란 얼굴로 초라하게 낙향했다. 그리고 이태가 흘렀
살쯤이나 먹은 노인 같았다. 호흡도 낮아 꼭 죽은 듯 보였 다. 그 동안 형에게 변한 것이라곤 하루 한 끼를 줄여 일일
다. 형은 이불을 정강이께에다 말아 붙이고 있었다. 러닝셔 이식을 한다는 점뿐이었다. 형의 얼굴을 더욱 야위고 노래져
츠와 팬티를 내보인 채 아무것도 덮지 않고 있었다. 꾀죄죄 갔다. 형의 얼굴에서 청춘은 사라졌다. 적극성 탐구욕, 그런
한 면팬티는 이미 벗어 내어놓을 때가 늦었다. 면팬티의 사 싱싱함이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 식욕 따위의 동물적인 습
타구니, 그 중심부가 들썩 포장을 치고 있었다. 형은 목이 성조차 메말라버린 듯, 하루 두 끼조차 달갑잖게 먹었다.
칼칼한지 된기침을 두 번 캑캑거렸다. 팔짱을 끼더니 입맛을 나는 구석에 뭉쳐진 내 이불을 폈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쩝쩝 다셨다. 아직 자고 있는가, 아니면 가수상태에서 자는 덮어썼다. 세든 옆방에서 현자누나의 말소리가 들렸다. 코에
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창 쪽 책상 위에다 가 감긴 맹맹한 목소리였다. “엄마, 냉수 한 그릇 줘.” 어젯
방을 놓았다. 바지를 벗으며 형의 얼굴을 유심히 내려다보았 밤에도 숙취 끝에 자정 가까이 귀가한 게 틀림없었다. 눈을
다. 올 여름을 넘기며 형의 얼굴은 유독 까맣게 타버렸다. 감자 졸음이 퍼부어 왔다. 고고 홀의 숨막히던 더위가 끼얹
형의 여윈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겉늙어 보였다. 머리는 아 어 왔다. 귀를 차고 나가던 사이키 음악이 새삼 뒷골을 쑤시
마 한 달쯤은 감지를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은 비듬과 기 시작했다. 섞갈리는 세트라이트가 어지러웠다. 몸을 비틀
기름때로 엉켜 있었다. 식어 퍼져 버린 라면가락 꼴이었다. 며 땀 흘리던 윤희, 번들거리던 이마와 비누 내음의 긴 머리
가파른 콧날 양쪽의 뺨에는 살 한 점 없었다. 움푹 꺼진 눈 칼. 교성의 열락. 흔들림과 깨어짐의 환희. 그 끈적한 타액
자위 주위에는 맞은 자국 같은 검푸른 기가 돌았다. 형이 아 같은 어젯밤의 회상이 환각으로 옅은 잠을 달랬다. 정욕 같
직도 건재하다는 점은 오직 한 군데서밖에 찾을 수가 없었 은 시간. 고고 홀의 벽에 갈겨 쓴 낙서가 떠올랐다. 그렇다.
다. 새벽의 저 힘찬 발기. 형에게 남은 것은 정녕 배설할 길 정욕 같은 이 지겨운 시간이여 어서 끝막음하거라. 겨울 끝,
없는 성욕뿐일까. 형의 피폐한 모습이 순간적으로 나를 두렵 대학 입시가 끝날 그때까지.
게 했다. 어찌 보면 꼭 자살 직전의 그런 몰골이었다. 만약 몇 시쯤 됐을까. 눈을 뜨자 손목시계부터 보았다. 열시 반
형이 죽어 버린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형은 더 이 지나 있었다. 전신이 나른했다. 머릿속은 아직도, 잠을
이상 모든 사람을 계속 실망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더 자두렴 하고 유혹했다. 오늘 하루쯤은 오후까지 그냥 내
더욱, 좋은 대학의 입학에 연연하는 우리 또래의 후배에게 처 자버릴까. 아니다. 엄마를 만나야 했다. 그리고 이번 주
는. 형의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자 나는 잠시 혼란에 빠 까지 적분응용을 훑어보기로 하지 않았는가. 나는 벌떡 일어
졌다. 대학의 합격이 성공의 보증수표인지 실패의 부도수표 났다. 방 안에 이미 형은 없었다. 무심코 형의 책상 위에 눈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문제를 형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이 갔다.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무엇인가
놓았기 때문이다. 주윗사람들은 형의 앞날에 대해 모두 부정 적어 놓은 게 보였다.
적이었다. 어느 점으로 보나 옛 상태로 회복될 가망이 없다
고들 말했다. 아까운 청년이 폐인이 됐어. 어쩜 사람이 저토 1, 물은 생활, 공업, 농업, 어업 등 모든 현대문명의 근원
록 탈진해 버렸을까. 이제 조만간 연기나 증기처럼 사라져 이며 자연이다. 근대 이전에 있어서 물은 주로 양에만 치중
버릴 거야, 하고 두려워했다. 그런 견해는 나도 마찬가지였 하고 그 화학적․물리적․생화학적 성질과 이것의 생물학적 영
다. 형은 한때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열렬히 형을 존경했었 향에 관해서 등한시되어 왔다. 이제 지구상에 인구가 급증하
다. 그러나 형의 이카로스 날개는 완전히 퇴화하고 말았다. 고 도시가 비대해지고 많은 공장이 건설되었다. 거기서 흘러
형의 텔레파시 회로선은 오직 ‘절망’이란 단어만을 남발하 나오는 대량의 폐하수와 유독 물질이 한정된 수계에 집중적
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의 절망을 배울까봐 전전긍긍하고 으로 방출됨으로써 자연정화수는 완전히 상실되어 가고 있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아직 절망에 이르는 길을 다. 2, 개발이나 공해로 자연환경이 파손되면 그곳에 살고
몰랐다. 나는 작년에 부산 K대 공대에 응시하여 낙방을 했었 있던 생물은 생존치 못한다. 설령 명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다. 며칠을 부끄럽게 지냈다. 고민은 그 며칠뿐이었다. 그러 입지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그 영향은 절대적이다.
나 형은 수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이름이 이 동진 바닥 특히 조류는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에 그 영향을 정면으로
에 잘 알려졌다. 형은 서울의 명문 국립대학 사회계열에 너 받는다. 최근 각 지방의 물가에 물촉새의 자취를 볼 수 없게
무나 당연한 듯,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이학년 때 형은 되었다. 논과 산림에 사용하 농약이나 공장의 폐수로 하천이
나쁜 시력 탓으로 방위병의 혜택을 받았다. 그래서 일 년 만 오염되어 그곳에 살고 있던 물고기나 조개가 줄어들기 때문
에 쉬 군무를 끝냈다. 복학을 한 지 육 개월 남짓, 형은 불 이다.

- 4 -
라고 말했다. 그 구멍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무엇으로도 메
이어 형은 두 행을 비우고, 중부리도요라는 새 이름을 여 울 수 없다고 자탄했다. 그러나 고향을 잃고 살기는 엄마도
러 번 반복해서 낙서해 놓았다. 족제비가 떠올랐다. 형도 족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이유는 타당치가 못했다.
제비처럼 중부리도요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형이 박제를 위 아버지는 저 유명한 금강산을 끼고 있는 강원도 통천군 두백
해 찾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오랫동안 형과 대화를 리가 고향이었다. 들은 바로는 그곳에 배 열 척과 큰 어장까
나누지 못했었다. 내가 줄곧 도서실에서 생활한 탓이었다. 지 가진 재력 있는 수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전에
간혹 집에 들러도 형이 없을 적이 많았다. 또 얼굴을 대해도 는 일본서 전문학교까지 다녔다. 해방 후로는 서울서 대학에
별 할 말이 없었다. 그럴 사이 형은 새의 문제에서 좀 발전 적을 두었다. 전쟁이 나던 해 유월, 약혼을 하기 위해 고향
한 모양이었다. 새와 공해. 형은 이제 공해 문제에 미치고 으로 올라간 것이 그만 발이 묶여 버렸다. 그해 칠월 아버지
있음이 틀림없었다. 흥, 정부나 도나 시에서도 엄두를 못 내 는 고향서 징집을 당해 인민군 소위로 참전했다. 지난 봄,
는 이 도시의 근본적인 공해 대책을 형이 어떻게 해결하겠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나도 끼인 자리에서 형의 질문에 대답했
구. 어쨌든 형은 너무 이상적인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상식의 다.
궤도를 완전히 벗어났다. 거기에 비해 족제비는 얼마나 실속 “그러나 난 공산주의가 원래 새, 생리에 맞지 않았어. 객
주의자인가. 광부가 금을 캐면 금덩어리는 다른 자의 금고에 관적으로 어느 주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들은 매사에
들어간다. 그렇다면 형은 광부이고, 족제비는 금의 실소유자 너무 과격했거든. 마치 사나운 맹수가 인간의 탈을 쓰고 인
인 셈이었다. 간을 집단으로 기, 길들이려 덤벼 들었어. 그들은 인간을 생
나는 대청마루에 홀로 앉아 아침과 점심의 어중간한 밥을 각하는 동물로 버려 두지 않았다니깐. 혁명, 투쟁, 반동, 처
먹었다. 밥상 위까지 내려앉은 가을볕이 따스했다. 수돗가에 단 아, 단어만 드, 들어도 얼마나 끔찍하니. 사람이란 다 개
현자누나가 앉아있었다. 나일론 속치마를 하이타이 거품물에 성이 다름으로 해서 가, 각자의 꿈과 소망이 다르듯, 그런
서 헹구어 내는 참이었다. 화단 가운데 심어진 라일락 잎이 자유와 창의력을 나는 존중하지. 또 너들이 알다시피 이간이
현자 누나의 등짬에 얇은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얇은 티셔 생산과 노동 이외 사색도 피, 필요…….”
츠 안에 브래지어끈이 선명했다. 작년, 공장에 다닐 때만도 내가 아버지의 말을 꺾었다.
현자누나의 허리는 날씬했었다. 그런데 올봄부터 가냘픈 곡 “아버진 역시 사색파시다, 이 말이시겠죠. 너무 사색이
선이 무너졌다. 맥주 홀에 나가고부터였다. 깊으셔서 결단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 오히려 소
큰방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방에서 신문을 보 나 말처럼 잘 길들여진, 심지어 엄마에게까지 꼼짝 못 하는
고 있었다. 돋보기 너머 촘촘히 짜인 구인광고란이었다. 노예…….”
“엄만 언제 나갔나요?” 내가 아버지께 물었다. 이제 형이 내 말을 꺾었다. “아니야. 아버지는 정말 전쟁
“음, 곧 돌아온댔어.” 의 희생자야. 통일을 못 이루는 이 분단의 현실이 아버지의
“마땅한 일자리가 있나요?” 신문을 보는 아버지를 빈정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갔어. 요컨대 아버지 삶의 근간을 끊어
거려 보았다. 버린 거야.”
“아니, 뭘. 그저 보, 보는 거지.” 아버지는 신문에서 눈 “형, 잠깐만” 하고 내가 말했다. “교과서에서도 노래삼
을 떼지 않고 어물쩍 대답했다. 재떨이에서 피우다 남겨 둔 아 나오는 통일, 통일이란 말은 귀에 못이 박일 정도야. 그
담배꽁초를 집어 들었다. 런데 뭐야.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다시피 지금 이 상태에서
“놀고 지내기도 심심하죠?” 저쪽 놈들과 무슨 대화가 통하겠어. 선생도 민주주의와 공산
“허긴 그래.” 주의가 이 지구상에 공존하는 한 무력의 길 이외는 통일이
“저하고 좀 바꿔 됐음 오죽 좋겠어요.” 힘들다고 말했어. 나도 동감이야.”
아버지는 대답 없이 꽁초를 입술에 끼웠다. 성냥을 켜댔 “힘들기는 히, 힘들지. 그러나 누가 지금 토, 통일의 길
다. 아버지의 연세는 올해로 쉰하나였다. 노동은 모르지만 을 포기하고 있어? 남북 오천만이 넘는 인구 중 통일을 막고
아직 사무 일은 충분히 볼 수 있는 나이였다. 다리를 잘름거 있거나 포기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아버
리고 말은 약간 더듬긴 하지만 건강도 별 이상이 없었다. 작 지는 머리를 쩔레쩔레 흔들며 말했다.
년 초까지 아버지는 시내 공립 중학교의 서무과장이었다. 그 “포기가 아니라 체념이지요. 아버지도 냉정히 생각해 보
런데 작년의 학기말을 끝으로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 점은 세요. 통일을 위해 누가 전쟁을 원해요? 오천만이 넘는 인구
순전히 엄마 탓이었다. 엄마는 아버지 학교의 공금을 빼내 중 몇 할이 전쟁을 원하고 있겠어요? 모르긴 하지만 전쟁은
썼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려요. 차라리 전쟁을 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엄마의 농간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금을 빼내 영구적인 분단이 더 좋아요. 우선 내가 살고 사회가 안정되
어 사용(私用)으로 쓰다니. 꽁생원인 아버지는 숫제 그럴 만 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내가 말했다.
한 인물이 못 되었다. 비단 그 문제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 “너희 세대는 왜 통일이 중요한지 몰라. 그런 사고방식을
니라, 한마디로 아버지는 소심하고 옹졸했다. 말이 없고 겁 갖게 한 건 순전히 교육 탓이야.” 형이 강한 어투로 내 말
이 많았다. 이를 아버지는 전쟁 탓으로 돌렸다. 언젠가 아버 을 반박했다.
지는, 고향을 잃을 때부터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 “교육 탓만은 아니야. 이 물질 위주의 기계주의 사회가

- 5 -
저 저, 젊은 애들을 다른 쪽으로 몰아가고 있어. 도덕적 가 “서울의 부동산 경기 침체가 벌써 예까지 쳐들어왔나
치판단의 기준을 잃게 하는 거야.”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 요?” 내가 물었다.
었다고 아버지가 말을 둘러댔다. “아파트에 손댄 게 잘못이었어.” 엄마가 한숨 끝에 말했
“저는 통일이 절실하다고 외치는 아버지나 형이 되기보단 다. 아버지가 신문에서 눈을 떼고 엄마를 보았다. 한마디 침
차라리 통일을 모르는 쪽이 좋아요. 그리고 두 분을 절대로 을 놓을까, 하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나 잔기침만 뱉고
닮지 않겠어요.” 는 다시 신문에 눈을 주었다.
내가 말했다. “프리미엄만 떼이면 그만 아녜요?” 내가 말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저, 정직이 중요해. 네 생각은 정직 “이제 전매가 안 된다잖아. 실수요자가 아님 집을 살 수
하지 못해.” 가 없대.”
아버지의 말이었다. “우선 아파트를 은행에 담보로 잡혀 돈을 좀 돌리지요.”
아버지의 그 말에는 잘못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정직과 “넌 하란 공부 안 하고 머리가 그쪽으로만 트이니? 그래,
청렴결백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빼낸 공금 요즘 어때? 독서실은 배겨낼 만하더냐?” 엄마가 팩 소리쳤
을 보름 안으로 메워 놓겠다는 엄마의 허튼 약속을 절대 믿 다.
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파산, 집단자살,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그렇죠, 뭐.“
나 혼자 감옥에 가거든 잘 먹고 잘 살아라는 극단적인 위협 “올해 또 낙방하면 걷어 치워라. 뭐 꼭 대학을 나와야 돈
조차 사양치 않았다. 그렇게 협박과 울음을 섞어 아버지를 잘 번다는 법도 없다. 너도 이젠 네 밑 닦을 줄 알아야지.
설득시킨 것이다. 그 결과 겨우 오백만 원의 돈을 돌려 낼 여자가 벌면 얼마를 번다구. 엄마도 내리막길이다.”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해 돌아 나는 돈이 필요했다. 엄마의 푸념에 쉬 물러설 수가 없었
왔다. “이건 나, 날강도다. 이젠 나도 책임질 수 없는 일이 다. 엄마의 저런 넋두리와 짜증에 나도 만성이 되어 있었다.
다. 끝장이다.” 아버지는 우리의 방으로 건너와 형과 나를 “엄마, 삼만 원쯤 줘야겠어요. 학관비를 내야겠구, 잡비
잡고 투정했다. 엄마는 그 돈으로 깨어지려는 계를 겨우 수 도 없구.”
습한 모양이었다. 아버지와 약속한 보름이 지났다. 그러나 “맨날 무슨 놈의 돈이니. 넌 내 낯짝이 돈으로만 보이냐.
엄마는 그 돈을 메워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했 나만 보면 걸신들린 듯 돈타령이게.”
다. 엄마도 안달이었다. 이제 아버지가 매일 자살 타령을 읊 “사실은 돈이 더 필요한데 깎아서 부른걸요.”
조렸다. 부정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하는 게 낫다는 것이었 “이젠 옛날하구 달라. 돈 버는 사람이 누가 있냐. 절약을
다. 아버지는 결국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로써 아버지의 스 해야지.”
물네 해 공직생활은 불명예로 끝났다. 퇴직금을 받았으나 그 “밤샘을 하며 라면만 끓여 먹었더니 속이 쓰려서.” 나는
돈으로 구멍을 막기에는 모자랐다. 나머지 돈은 엄마가 어떻 끝말을 죽였다. 늘 이렇게 구걸하듯 동정을 해보는 것이 버
게 융통한 모양이었다. 학교에서 송별회를 마치고 오던 날, 릇이 되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엄마는 정에 약하기 때문이었
아버지는 우리들 앞에서 오랜만에 울었다. 그러나 끝내 엄마 다. 그것도 번번이 액수가 싹둑 깍이긴 했지만.
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암탉이 울면 지, 집안이 망한다더 “공부구 뭐구 때려 치워라. 네 형 꼴 좀 봐라. 네 형만
니 끝내 그 꼴을 보, 보고 말았구나.” 한숨 끝에 이 말을 보면 억장이 무너지니……” 하더니, 엄나는 던져 둔 백을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좋게 말해 아버지는 제상에 오른 선한 당겼다. 백 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오천 원권 석 장을 집어냈
양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집 안에 들어앉고 말았 다. “옛다. 강습소고 독서실이고 집어 치워. 집에 들앉아
다. 매달 일만천 원씩 나오는 삼급 상이용사 연금이 이제 아 공불 한다고 안될 게 뭐냐. 대학엔 붙들 떨어지든 내 모르겠
버지의 유일한 벌이였다. 그러나 역시 엄마는 수완가였다. 다.”
엄마는 우리 식구를 거리에 나앉게 하지 않았다. 물론 끼니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골목 입구 약방 앞까
를 거르게 만들지도 않았다. 엄마의 능력으로 우리 식구는 지 왔을 때였다.
그런대로 옛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직 경제권이 전폭 “병식아, 나 좀 보자.” 누가 뒤에서 불렀다. 뒤돌아보니
엄마에게로 옮아 간 점이 달랐다. 아니, 전에도 경제권은 엄 아버지였다.
마가 쥐고 있었다. “왜 그래요?” 걸음을 멈추고 내가 물었다.
벨이 울렸다. 내가 한 그릇 밥을 다 먹고 숭늉으로 입 안 아버지는 잘름거리며 쫓음걸음으로 달려와 내 옆에 섰다.
을 헹굴 때였다. 건너방에 있던 종옥이가 대문께로 달려갔 “저 말야. 돈 오천 원만 빌려 주겠니? 워, 월말이면 돌려줄
다. 엄마가 치맛귀를 싸쥐고 들어왔다. 나를 힐끔 쳐다보았 테니.”
다. 엄마는 늘 들고 다니느 가죽백을 마루에 던지고 그 옆에 “내가 쓰기도 모자라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
털썩 주저앉았다. 실이 그랬다. 어젯밤 고고 홀에 갈 때 족제비가 오천 원을
“참말 망했네. 빚 내어 이자 치르면 또 새 이자빚이 늘어 빌려 주었었다. 그 돈만은 오늘 갚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나고…… 도대체 돈이 씨가 말랐나, 이렇게 융통이 안 돼서 “원호금 타면 꼭 돌려주마. 급히 쓸 일이 있어서 그래.”
야. 이제 우리도 끼니 거르기 꼭 알맞다.” 엄마는 넋두리를 아버지는 내 눈치를 살폈다.
늘어놓았다. “엄마한테 돌려 쓰지, 왜 날보구 이래요? 돈 받아 낼 때

- 6 -
엄마 잔소릴 아버지도 들었잖아요?” 로 날아와 앉을 텐데.” “우리가 만약 산탄총을 갈겨 댄다
나는 몸을 휙 돌렸다. 더 이상 아버지의 발소리가 나를 따 면?” 친구가 불쑥 물었다. “총알에 맞은 새는 한 점 순수
라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기원으로 돌려질 것이다. 로 떨어질 테지.” 하며 나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며
거기 나가면 함경도 출신의 같은 삼팔따라지인 바둑 친구 강 웃었다. “만약 총알에 맞지 않은 새는?” 친구가 빤한 질문
회장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강회장에게 돈을 빌릴 것 을 했다. “멀리로 날아가 다시 오지 않을 테지.” 우리는
이다. 나는 내처 걸었다. 독서실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큰 소리로 함께 웃었다. 동심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우리는
는 족제비네 집으로 갈까. 그래서 박제품 수거에나 참가해야 파카를 껴입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시린 바닷바람이 소금
지. 나는 쉽게 결정을 내렸다. 냄새를 흠씬 풍겼다. 밤새 바다와 하늘을 맞물려 놓았던 어
둠이 열심히 퇴각하고 있었다. 수평선은 상하로 쪼개지며 분
명한 선을 그었고, 그 선을 중심으로 붉은 빛살이 장엄하게
2 살아나고 있었다. 바다의 어둠이 붉은 빛살을 빨아 들인다면
하늘의 어둠은 그 빛살에 튀어 터지는 참이었다. 우리는 맨
구월 중순을 넘기면서 가을도 한 발 성큼 다가섰다. 여름 발로 개펄을 향해 뛰었다. 발바닥에 닿는 습기찬 모래땅의
동안 무성했던 뭉게구름이 하늘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고 건 깔깔한 감촉이 좋았다. 야호. 산정도 아닌데 친구는 함성을
조한 바람이 대기를 꽉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 질렀다. 우리는 새벽 노을을 배경으로 점점이 뿌려져 나부끼
고기나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벌써부터 는 새떼의 힘찬 비상을 볼 수 있었다.
겨우살이 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대 오 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수십 마리, 또는 그 이상
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들의 싸댐도 한층 분주했다. 으로 떼를 이룬 도요새 무리를 볼 수 있었다. 메추라기 같은
이런 절기쯤이면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에는 여러 종류의 몸 모양에 머리 위와 눈썹 부분이 크림색이던 그 도요새를,
나그네새와 철새를 볼 수 있었다. 천둥오리 바다오리 황오리 지금 생각해 보면 중부리도요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왜가리 고니 기러기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 가까이 가도 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삼각주 개펄에서 가
도요 원앙이 농병아리 등 수십 종의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먹 늘고 긴 부리로 조개나 게, 새우 따위를 쪼던 모양이 지금도
이를 쫓아 싸대는 그 수다스런 행동거지가 꽤 볼 만했다. 각 눈에 선히 떠오른다.
양각색의 목청으로 새떼들이 우짖는 소리와 날개 치는 소리 “중부리도요는 울음 소리로 금세 구별할 수 있지.” 그
가 강변 갈대밭을 자욱 덮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동남만 일 방면에는 나의 스승격인 정배형이 말했었다. 그는 이 시의
대가 공업화의 거센 도전을 받자 그런 새의 종류와 수효는 유일한 관립 초급대학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육 년
갈수록 줄어들었다. 근년에 와서 그 현상은 더욱 현저해져 선배였다. 그는 공해문제 중 특히 수질오염에 각별한 관심을
공해에 비교적 강한 새들만이 찾아들 뿐, 천연기념물로 지정 가지고 있었고, 그 방면의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된 새나 보호조는 숫제 날아들지 않는 종류까지 생겼다. 내 “어떻게 우는데요?” 내가 물었다.
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늦가을이니 벌써 오 년 전이었다. 문 “글쎄, 입소리로 그걸 어떻게 흉내를 낼까. 폿폿, 폿폿폿
리대생들의 교내 소요사건이 있자 학교당국은 일 주일 동안 폿 또는 폿폿폿, 폿폿폿폿 하고 예닐곱 번씩 계속 소리를 내
가정학습을 실시했다. 나는 급우 하나와 함께 고향집으로 내 지.”
려왔다. 우리는 닷새 동안 바다와 맞닿은 동진강 하구의 삼 “혹시 녹음이라도 해둔 건 없나요?”
각주 개펄에다 천막을 치고 야영을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녹음기가 한 대 있긴 있지. 그러나 성능이 좋지 못해.
공해나 자연보호에 관심이 컸다든지 나그네새나 철새를 관찰 테이프레코더는 갖춰야 하는데, 선생 박봉으로 어디 엄두가
한다는 따위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야영을 했던 것은 나야지” 하며 정배형이 웃었다.
아니다. 우리는 라디오조차 휴대하지 않았고 오직 자연의, “며칠 전에 사흘 동안 삼각주 갈대밭에서 야영을 했지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고 즐겼다. 자연 속에 함몰되어 문 그런데 그렇게 우는 새는 못 본 것 같은데요.”
명이라든지 지식, 또는 우리 연령층 특유의 열정이나 고뇌, 나는 동진강 하구 삼각주 갈대밭에서 나그네새와 철새의
분노조차 망각한 채 외곬으로 한쪽만을 편애하며 닷새를 보 종류와 어림잡은 수효에 대한 관찰기록 노트를 정배형에게
냈을 따름이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흠뻑 빠져있 내보였다. 정배형이 노트를 검토했다. 한참 뒤 정배형이 말
던 무렵이었지만 나는 닷새 동안 책을 손에 잡지 않았다. 했다.
“병국아, 잠 깼니? 또 우짖기 시작하는군그래.” 친구가 말 “낙동강 하구가 도요새의 도래지이지만 예부터 동진강 하
했다. 미명 무렵이었다. 새떼들이 기상을 시작한 것이다. 천 구는 중부리도요의 도래지로 알려진 곳이야. 우리나라 동남
막 밖은 어둠이 그치어 가고 있었다. 한랭한 공기가 천막 안 해안 일대에서는 유일한 중부리도요의 서식처인 셈이지. 그
까지 밀려들었다. “바닷가에서는 도무지 늦잠을 잘 수가 없 래서 서울의 조류 연구가들도 중부리도요의 습성을 관찰하러
어.” 친구가 다시 말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제처럼 봄가을로 이곳을 찾아오곤 햇었지. 그러나 수 년 사이 중부
개펄로 신나게 달려 볼까?” 머리맡의 안경을 찾아 끼며 내 리도요는 나도 못 보았어.”
가 말했다. “우리들에게 쫓긴 수백 마리의 새떼들이 또 아 “형님, 수질의 오염으로 먹이가 없어서 도래를 않는다면
우성을 치게?” “재밌잖아? 날려 보내면 금세 우리 뒤쪽으 동남만 부근의 다른 못이나 개펄로 옮겨 간 게 아닐까요?”

- 7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찾아보면 새로운 도래지를 발 타병에 걸린 십칠 세의 딸을 목욕시키고 있었다. 전면에 부
견할 수도 있으니깐.” 각된 딸은 몸통을 욕조에 담그고 다리와 상체를 욕조 밖으로
“형님, 언제 한번 자전거라도 빌려 타고 해안의 일대를 내놓고 있었다. 백치의 딸은 눈을 치켜뜬 채 허공을 응시하
수색해 볼까요?” 고 있었으나 그 눈은 태어날 때 이미 장님이었고 두 다리는
“좋은 생각이야. 토요일 오후쯤 수업이 끝나고가 좋겠 장작개비같이 앙상히 말라 있었다. 그 딸의 어깨를 씻어 주
군.” 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은 곧 울듯 일그러져 있었는데, 딸의
“일박 이일로요?” 얼굴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애절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좋았어. 취사 일체는 내가 준비를 하지.” 십칠 년을 식물인간의 상태로 숨쉬고 있는 딸을 지켜보아야
“참, 쓰시던 논문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어갑니까?” 했던 어머니의 정신적 고통은 어떠한 보상으로도 해결될 수
“뭐 논문이랄 것까지 있나. 겨우 원고지 백 장 분량인걸. 없으며, 문명의 부산물인 공해병이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으
이젠 대충 끝난 셈이지.” 로 인류사회에 침투되고 있나를 증언한 충격적인 사진이었
“수질 오염도가 어때요?” 다.
“문제야.” “우선 논문이 정리되는 대로 곧 학계에 보고하겠어.” 정
“문제라뇨?” 배형이 말했다.
“동진강 하구 삼각주 지역의 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웅포 정배형이 쓰고 있던 논문은 「동남만 생산 식용해조(東南
리 개펄의 수은 농도가 평균 0.013피피엠이야. 허용 농도가 灣 生産 食用 海藻) 중 수은 카드뮴 납 및 구리의 함량 분석
0.005피피엠이니 허용 기준치 열다섯 배를 초과하고 있는 셈 (含量分析)」이었다. 형은 그 논문의 자료․수집을 위해 지난
이지. 더욱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病)을 일으키는 카드뮴 겨울방학을 몽땅 동남만 개펄에서 보냈던 것이다. 우리가 이
의 함량이 0.016피피엠이야.” 런 대화를 나눈 것은 올봄, 내가 정배형을 찾아가 인사를 나
“그럼 시장에서 파는 미역이나 다시마는 물론, 웅포리의 눈 일 주일 뒤였다. 내가 정배형을 찾은 이유는 나그네새의
회도 못 먹겠군요. 대부분이 동남만 인접 어장에서 수거하거 습성과 도래에 관해 자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정배형은 나의
나 잡아오는 거니깐요.” 질문에 소상한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 “외로운 작업에 동지
“작은 문제가 아니라니깐.” 한명을 얻어 기쁘군” 하며 정배형이 말했었다. “자네도 이
“제가 서울 Y신문 주재기자 한 분을 잘 아는데 자리를 마 신흥 공업도시의 공해문제에 관심이 크군그래.” 정배형은
련해 볼까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우리는 금세 동지가 되었던 것이
“이런 발표일수록 신중해야지. 여러 층의 피해도 무시할 다. 그로부터 나는 매일이다시피 정배형의 학교로 형의 집으
수 없으니깐. 환경오염의 피해는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 나 로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우리는 형의 연구실에서, 술집에
타나지만 이런 고발 기사의 역효과는 단박 조건반사가 오거 서, 동진강 하구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특히 나그
든. 하루벌이 목판장수들, 또 영세어민 등, 그들이 대책도 네새나 철새의 수질오염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
아울러 강구를 해야지.” 즈음 나는 새에 미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의를 위해서는 부득이하잖습니까. 더욱 그 보 학교 대형 게시판의 제적자 명단에 내 이름이 나붙기는 이
고는 사실에 입각한 것이니깐요.” 년 전 가을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열흘 동안 서울에 머물러
“그렇긴 하지. 조치가 빠를수록 우리들의 식탁이 건강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의 세 끼 식사 중 두 끼만 먹기
지니깐.” 로 결심했다. 일일 이식이 건강에 좋다 해서 그 말에 따른
“진실은 알릴 필요가 있어요. 일본의 미나마타 공해병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내 육체를 학대하면서 이룰
보더라도 말입니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행 끝에 달관의 경지에 도
미나마타병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 있는 신니치 달하려는 저 인도의 힌두교인처럼 그런 극기의 초기 단계로
질소 비료공장이 아세트 알데히드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 절식을 결심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긴장의 한 방법
물로 나온 메틸수은이 함유된 폐수를 미나마타강에 그대로 을 택했을 뿐이었다. 나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우선 나의 생
배출함으로써 야기된 공해병이었다. 메틸 수은에 오염된 어 리적 욕구부터 절제시킴이 필요했다. 자기 수련은 가득 찬
패류를 장기간 섭취한 현지 주민들이 그 병에 걸리자, 앓는 상태보다 비어 있는 상태가 홀가분함을 나는 알기 때문이었
환자가 일천육백여 명, 그 병으로 죽은 환자가 이백팔십여 다. 나는 열흘 동안 서울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내가 할
명이나 되었다. 미나마타병의 증세는 지각장애 청각장애 혀 일을 찾아보았다. 그저 입이나 살 정도의 일거리는 마련할
굳어짐 등을 일으키며, 임산부의 경우에는 태아가 그 수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끼니나 때우며 숨쉬어 보아
흡수한 경우 태아성 미나마타병에 걸려 출생 후부터 일생을 야 현재 상태보다 더 나아질 아무런 조짐이 없어 보였다. 상
식물인간으로 마치게 되기도 하는 공해병이었다. 나는 라이 한 가슴을 위로받을 길 없어 아직도 어떤 기미를 찾아 끓는
프지의 기자 유진 스미스 부부가 현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 열정을 삭이고 또 삭이는 친구, 이미 웬만큼 익숙해져 세상
에 부딪혀 실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미나마타 마을을 취재해 형편에 적당히 얹혀 버린 친구들 사이에서 답답한 마음을 달
서 찍은 사진 중 한 장을 라이프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 래느니 차라리 낙향이 나을 것 같았다. 고향에서 내가 할 일
진은 일본식 욕조 안의 광경이었다. 어머니가 태아성 미나마 이 없더라도 그곳은 나의 성장지가 아니냐. 나는 짐을 챙겨

- 8 -
다시는 서울에 걸음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고속버스에 올랐 나를 따뜻이 위로했다. 돌아온 탕아를 맞이한 예수처럼 나를
다. 나는 밤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파리하게 시든 맞아들였다. 경제권이 없어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
병약한 청년이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미 지는 못했지만, 인생이 반드시 한 번은 넘어진다, 그러나 결
나는 적극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못한 소심한 벙어리 청년이 코 그 한 번에다 인생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비로소 나는 어떤 면에서 말더듬이 내 손을 꼭 잡고, 이 세상의 영화나 권력이나 재물과 닿지
아버지를 닮았음을 깨달았다. 구치소에서도 울지 않았던 내 않더라도 인생에는 본받을 만한 여러 길이 있음을 더듬는 말
눈에 한 방울 더운 눈물이 거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광야 로 이야기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는 명
에서 초인을 기다리던 설레임과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를 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살과
그리던 내 열정이 한갓 노래로만 남고 삶의 열정조차 덧없는 뼈를 지치게 만들고 그의 육체를 주려 마르게 하고 그의 생
한때로 받아들일 때, 나는 나의 낙향을 젊음의 끝으로 해석 활을 궁핍하게 해서, 하는 일마다 그가 꼭 해야 할 일과는
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고 그 어긋나게 만든다는 맹자의 비유까지 들먹였다. 방 안에서 감
저 참담한 느낌뿐이었다. 고향 역에 도착하니 밤 열시, 깜깜 금 상태의 생활에도 한도가 있었다. 또 내가 꼭 방 안에서
한 하늘이 가을비를 뿌리고 있었다. 고향에서 나는 당분간 갇혀 지내야 한다는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열흘 뒤부
칩거를 각오했다. 엄마는 마치 거지가 되어 돌아온 이도령을 터 나는 고등학교의 친구를 찾거나 시립도서관의 출입으로
맞이하듯 시종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하나 믿은 아들이 송장 외출을 시작했다. 그러자 나를 보는 이웃의 시선이 의외로
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시장바닥을 싸대며 일 차가운 데 나는 또 한번 곤욕을 치러 내지 않으면 안 되었
수놀이를 해서 가정교사도 말라 하고 공무원 봉급만큼이나 다. 모두들 나를 경원하고 두려워했다. 그로써 나는 가족이
비싼 서울 하숙까지 시켰더니 그 결과가 이 꼴이냐고 며칠을 나 사회나, 어느 곳에서도 내가 적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식음조차 놓았다. 내가 결코 암행어사가 될 수 없음을 나도 환경을 내가 거부했는지 환경이 나를 도태시켰는지 한동안
알고 있었지만 부모를 실망시킴도 죄악이라는 것을 처음 느 갈피를 못 잡은 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나는 홀로인 채 이
꼈다.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너무 컸던만큼 나의 낙향은 도시의 매연 낀 거리와 더러운 골목길과 폐수로 오염된 개펄
그 반비례의 배반이었다. 공학박사로서 이 동진시 공업단지 을 끝없이 방황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나의 실
를 총괄할 행정책임자 정도는 반드시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 체만 남고 나의 정신은 이미 나로부터 떠난 뒤였다. 흘러간
던 엄마로서는 그 넋두리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시간은 다만 공간이며 흐르는 시간이 진정한 시간이라는 베
며칠의 넋두리가 끝나자 엄마는 그 전에 내게 보였던 사랑을 르그송의 말에 동의한다면, 진정한 시간조차 각성치 못하는
증오로써 갚기 시작했다. 넋두리가 욕설로 변했다. 용돈은 상태에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나는 어느
십 원 한 장 줄 수 없다. 앉은 자리에서 자결을 해라. 자결 덧 삶을 비극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나는 때
을 못 하겠담 문 밖 출입을 말아라. 대역죄인이니 시민들 보 때로 자살을 생각해 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음의 선택이
기가 부끄럽지 않느냐. 엄마의 말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 자유스러운만큼 그 결단에는 단순한 사고를 요청하지 않았
으므로, 나는 그 말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낙향 닷새째, 다. 나는 도대체가 너무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인지도 몰랐
엄마는 돌연 표범으로 돌변했다. 내 방의 책을 마당으로 꺼 다.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 불씨로 남은 지극히 감정적인 욕
내어 모조리 불살라 버린 것이다.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은 원 망과 미련이 나의 결행을 주저케 했다. 나는 약육강식의 이
한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화가 돋친 엄마는 방으로 뛰어들어 시대에 아직도 내가 맡아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나를 부끄
내 옷가지를, 심지어 구두까지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 친구 럽게 살펴보았다. 거기서는 오히려 절망밖에 얻을 수가 없었
나 이웃 사람에게 늘 자랑하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다. 그러나 우리 나이가 중년층을 넘어섰을 때쯤 이 시대가
의 상장들도 그 불길 속에 휩쓸려 버렸다. 그때, 나는 엄마 당도할 좌절이나 희망만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가 내게 걸었던 기대가 자식으로서의 애정보다도 더 윗자리 죽음을 거부하면서도 삶답지 못한 생존의 늪을 허우적거릴
를 차지한 허영심임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증오할 때, 이 도시의 생활환경이 왜 자연을 파손시키느냐의 또 다
수가 없었다. 다만 내 마음에 차지하던 엄마의 비중이 좀 낮 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동진강 하
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허영심 정도를 실망시켰 구의 삼각주 개펄에서 새떼를 만나 것이다. 실의의 낙향생활
다면 그 분노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제 엄마에게 더 미안해야 로 술만 죽여 내던 내 깜깜한 생활 안으로 나그네새의 울음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는 엄마의 욕지거리나 소리가 화톳불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 새가 내 머릿속으로
잔소리가 귀 밖으로 흘러갔다. 병식이가 나를 보는 눈도 엄 자유자재 날아다녔다. 수백 마리로 떼를 이루어 의식의 공간
마에 못지 않았다. 아우는 얼굴에다 노골적으로 경멸을 보였 을 무한대로 휘저었다. 새 중에서도 동진강 하구에서 자취를
으나 나에게 그 경멸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감춘 도요새였다. 나는 도요새를 찾아 헤매었다. 그 중 중부
그 나름대로의 삶의 길에서 내가 배척 당했다고 그의 생각을 리도요를 발견하기 위해 휴일에는 정배형과 함께, 그 외의
수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의 사리분별력이 객관적이긴 했 날은 나 혼자서 동남만 일대의 습지와 못과 개펄을 싸돌았
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객관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가 다. 그러나 봄은 짧았고 곧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그때는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그의 생각도 자유였다. 그 두 가족에 이미 물떼새목의 도요새과에 포함된 그 무리는 우리나라 남
비하면 오직 아버지만은 내 편이었다. 아버지는 낙향 첫날, 단부를 거쳐 휴전선 하늘을 질러 북상한 뒤였다. 다시 도요

- 9 -
새 무리가 도래할 시절을 만해의 님처럼 기다렸다. 그래서 내가 들고 있는 열 개의 미터글라스 중 여덟 개에는 이미 삼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의 툰드라에서 편도 일만 킬로미터 분의 이쯤 물이 차 있었고 두 개만이 빈 글라스였다. 석양
를 날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는 그 작은 새떼의 길고 긴 여 무렵이었다. 해안 쪽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점점이 널려 있었
정에 밤마다 동참했던 것이다. 나의 일상이 너무 권태스러울 고, 그 구름들의 한쪽편이 노을빛에 잘 물들어 입체감이 뚜
정도로 자유스러우면서, 전혀 자유스럽지 못한 내 사고의 굳 렷했다. 도수 높은 내 안경알이 노을을 담뿍 흡수했다. 나는
게 닫힌 문을 도요새가 그 날카로운 부리로 쪼며 밀려들었 석교천을 내려다보았다. 석양 탓만이 아니라 개울물은 검은
다. 그리고 떠남의 자유와 고통에 대해 여러 말을 재잘거렸 주단처럼 칙칙했다. 이따금 회백색의 거품이 냇물 표면에 응
다. 어리져 떠내려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 사십오분
-- 우리는 여름에 그 한대의 추운 지방에서 번식하여 가을 이었다. 나는 둑에서 개울가의 자갈밭으로 내려갔다. 자갈밭
이면 지구의 반을 가로지르는 여행길에 오른다. 우리는 떠나 에 쭈그리고 앉아 농구화와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 시험관꽂
야 할 때를 안다. 얇은 햇살 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 있던 이에서 빈 미터글라스를 집어내었다. 검정 바지를 둥둥 걷어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잿빛으로 시들고, 긴 밤이 저 북 올리고 개울물 속으로 들어갔다. 싸한 냉기가 발목에서부터
빙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우리는 여정의 채비를 차린 차오름과 동시에 검은 개울물이 금세 장딴지를 가리었다. 나
다. 여름 동안 부쩍 큰 새끼들도 날개를 손질하며 출발의 한 는 바지를 허벅지까지 더 걷어올리고 물 가운데로 계속 걸어
때를 기다린다. 우리의 여행은 자유를 찾기 위한 고통의 길 들어갔다. 물빛은 더욱 검어져 숯가루를 뿌려 놓은 듯했다.
고 긴 도정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룬다. 그러 개울물의 가운데 지점까지 오자 물이 정강이 위까지 차올랐
나 창공을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다만 혼자 날 뿐이 다. 나는 거기서 멈춰 섰다. 미터글라스의 삼분의 이쯤 차게
다. 마라톤 선수가 사십이점 일구오 킬로를 완주할 때는 오 냇물을 떠내었다. 그것을 눈위치보다 높이 들고 들여다보았
직 자기 자신의 극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듯, 작은 심장으로 다. 좁은 유리관 속에서 혼탁한 물이 벽을 따라 맴돌았다.
숨가빠하며 열심히열심히 혼자 날아간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물결의 소요가 차츰 가라앉자 물빛은 회색으로 변했고, 나는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기 때문 그 물속에서 수많은 검은 수포가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는 모
이다. 우리는 각각 떨어진 개체의 몸이지만 나는 속도가 일 양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은 유액이 여러 겹의 명주실처
정하고 행로가 분명하므로 우리는 낙오되거나 결코 헤어지지 럼 긴 띠를 이루어 유리관 벽을 감아 돌고 있는 모양도 보았
않는다. 오백만 년 전 신생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그런 고통 다. 자세히 보니 또 다른 기름 입자들이 물속에서 용해되지
의 긴 여행을 터득해 왔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 않은 채 노랗게 떠돌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유리관 안에는
는 바다와 하늘이 맞물려 있는 무공천지에 길을 열어 봄가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다량의 중금속 불순물이 떠돌고 있
두 차례를 대이동으로 장식해 온 것이다. 오직 생활환경에 을 것이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개울물을 다시 내려다보았
적응키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치부해 버린다면 인간도 거기에 다. 안경알을 통해 노을빛에 반사되는 검은 개울물이 독극물
서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같았다. 그것이 내 다리의 땀구멍을 통해 전염해 오고 있지
사악하고 간사하고 탐욕하고 음란하고 권력욕에 차 있어, 자 않은가. 문득 정배형의 연구실에서 본 사진 한 장이 떠올랐
연의 환경을 파괴하고 끝내 너희들 스스로까지 파멸시키기 다. 육가(六價)크롬화(禍)로 코의 중앙연골에 구멍이 뚫린
위해 기계와 조직의 노예가 되고 있지 않은가…….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초로의 남자 얼굴이
나는 여름 내내 도요새의 이런 재잘거림을 꿈을 통해, 또 뒤로 젖혀져 있었고 양쪽 콧구멍에다 핀셋으로 약솜을 넣는
는 환청으로 들어 왔다. 가을이 왔다. 그러나 이제 동진강 사진이었다. 그는 일본화학공업이란 직장에 이십 년간 근무
하류의 삼각주에서 중부리도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하다 정년퇴직한 일본인이었다. 육가크롬이란 중크롬산소다
중부리도요보다 몸집이 좀 큰 마도요, 등이 불그스름한 민물 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연소의 하나로 폐환, 신경장
도요도 볼 수가 없었다. 동진강은 이미 공장 지대에서 흘러 애, 관절통, 빈혈, 궤양, 턱의 뼈가 썩는 증상, 이가 빠지고
내린 폐수로 수질이 크게 오염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많은 상하는 증세 등 각 병을 일으키는 독극물로서, 크롬이 오염
철새나 나그네새 중에 이제는 공해에 비교적 강한 몇 종류의 된 땅에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그 폐수는 독한 경우 들어
철새와 나그네새만이 도래할 뿐이다. 바다쇠오리 청둥오리 간 사람의 다리가 썩을 정도라고 정배형이 말했다. “1970년
등의 오리무리와,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등의 물떼새무리가 일본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지. 일본화학공업의
그것이다. 네 개 회사 크롬회사 여섯 개 공장에서 폐암 등으로 죽은 사
나는 열 개의 미터글라스가 꽂힌 시험관꽂이를 들고 동진 람의 수만도 삼십 구 명, 약 백 명이 코 속에 구멍이 뚫리는
강의 지류로 수질 오염도가 아주 높은 석교천 둑 위를 걷고 비중격천공(鼻中隔穿孔)의 피해를 입는 중증을 보였어.” 하
있었다. 석교천은 이쪽 둑과 건너 둑 사이가 불과 사십 미터 며 정배형은 신문 스크랩북을 펼쳤다.
남짓한 큰 개울이었다. 국민학교 적 소풍을 자주 갔던 진양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육가크롬화 환자가 있었다는 공
산이 발원지로, 길이도 불과 오킬로미터 정도였다. 석교 마 식 기록은 없지요?” “왜, 73년에 비중격천공의 피해 환자
을은 그 개울과 동진강이 만나는 언덕기슭에 자리잡고 있었 가 나왔었지. 그 외에도 모르긴 하지만 다수의 환자가 있을
다. 개울 양편으로는 일만여 평의 넓은 공한지였고, 개울 상 거야.” “담양 고씨 일가족의 전신 마비사건도 분명 수은
류 멀리로 웅장한 비 공단의 공장 건물들이 임립해 있었다. 중독에서 온 거죠?” “그렇게 보는 게 일반적 견해지” 하

- 10 -
고는 정배형은 75년 8월의 신문에서 스크랩한 곳을 지적했 굽이 사이로 내려다보면 물밑의 길동그란 자갈들이 맑게 들
다. 일본의 육가크롬화 사건 기사였다. 도쿄 발 특파원의 기 여다보였다. 길도 먼데다 추위 때문에 겨울철은 예외였지만,
사 내용 중 붉은 줄을 쳐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 정년퇴직한 학교가 파한 뒤 반 애들과 어울려 조갑지나 불가사리 따위를
지 오 년째, 흉부의 심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느 육가 주우러 바다로 나갈 적이면 늘 석교 마을 앞을 지나곤 했었
크롬화 환자 딸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예전 우리집은 고마 다. 그러면 그 맑은 냇가에 늘어앉아 빨래를 하던 아낙네와
스가와 일가의 다리 밑 고마스가와 제이공장 근처에 있었지 처녀들의 웃음 소리도 해맑았다. 60년대, 그때만 하더라도
요. 낡은 사택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크롬 찌꺼기의 황색 흙 이곳의 자연상태는 아주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었다. 아니,
이 산처럼 쌓였고 게다가 화시의 트럭이 유산가스를 매일 실 누가 보호를 해서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다. 물빛은
어다 날랐습니다. 여름에는 남풍이 불어 붉은 먼지 때문에 하늘보다 더 맑았고 석교 마을의 사십여 호 초가들이 정답게
세탁물을 말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어깨를 비비며 모여 있었다. 석교 마을 앞까지 오면 석교천
아버지는 태풍 때면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공장으로 급히 달 과 동진강이 합쳐지고, 우리는 비로소 거대한 바다를 볼 수
려갈 만큼 애사심이 강했어요.” 내가 그 기사를 읽고 나자 있었다. 동진강 하구에서 시작되는 삼각주의 갈대밭과 다복
정배형이 말했다. “직무에 그토록 충실했던 근로자의 말로 솔이 울창한 해안 구릉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철에 따라 그
가 어떤 결과를 빚게 되었나. 만년엔 결국 불치의 병에 시달 색깔이 달랐다. 봄이면 녹청색을 띠다가 여름이면 짙푸른 파
리게 된 거지. 공해병이란 이렇게 그 증상이 즉시 나타나지 랑, 가을이면 감청색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겨울이 되면
않는 게 특징이야. 십 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체조직에 이 짙은 남색으로 변했다. “아, 바다다” 하더니 한 친구가 재
상이 생기거든. 또 유전인자를 통해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롱을 떨듯 노래를 불렀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
미치는거구.” “우리나라도 이제 강 건너 불 보듯 한 얘기 골…….” 다른 친구가 상급생이 부르는 노래를 목청껏 흉내
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일본의 공업화를 답습하는 내었다. “초록바다 물결 위에 황혼이 지면…….” 그 노랫
셈이니 상황이 똑같다고 봐야지. 벌써 학계의 관심을 넘어서 소리들을 짠 바닷바람이 읍내 쪽으로 몰아갔다. “이젠 계집
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은 자네도 알지 않는 애들처럼 조갑지를 줍진 않겠어. 배를 타고 저 바다 가운데
가.” 로 나가 볼 테야” 하고 내가 말했지. 나는 어릴 적부터 꿈
나는 시험관꽂이를 들고 자갈밭으로 되돌아 걷기 시작했 이 큰 소년이었어. “오징어배를 타겠단 말이지?” 한 친구
다. 이제 석교천은 살아 있는 물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 가 물었다. “오징어배는 작년 여름방학 때도 타봤어. 이번
했다. 석교천 물은 이미 죽어 버렸다. 아니, 악마의 혼으로 에는 나 혼자 배를 탈 거야.” “누가 조그만 너한테 배를
살아 있다. 이 폐유가 결국 동진강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는 빌려 줄까 봐.” 다른 친구가 빈정거렸다. “치, 네가 어떻
가. 그렇다면 강폭이 팔십 미터에 가까운 동진강은 몰라도 게 노를 저어?” 한 친구도 빈정거렸다. “방학만 되면 쉬고
이 석교천에는 분명 인체에 절대적인 영향을 줄 만큼의 크롬 있는 거룻배를 몰래 타거든. 난 노를 저을 수도 있어.” 내
산이나 수은을 함량하고 있을 것이다. 또 석교천 주민 중 십 가 말했다. “바다 가운데는 파도가 집채보다 크다는 걸 몰
년이나 이십 년 뒤 육가크롬화로 앓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라?” 한 친구가 말했다. “거룻배 따위는 금세 뒤집히고 말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자갈밭에 앉아 양말을 신었다. 걸.” 다른 친구도 말했다. “난 자신이 있대두. 파도를 타
“두고 봐라. 내가 기필코 석교천은 물론 동진강까지 예전의 는 요령을 알거든. 사흘 정돈 저 수평선까지 나갔다 돌아올
자연수 상태로 만들고 말 테니.” 누가 들으란 듯 내가 말했 수 있어. 필요한 연장이나 먹을 것도 다 준빌 해서 말야.”
다. 나 자신도 수천 번을 반복하여 이미 자기 최면에 걸린 중학교 일학년 학생이 거룻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나가다
말이었다. 누가 이 말을 듣는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헛된 니. 나는 참 거짓말도 그럴 듯하게 잘했다. 그러나 그럴 듯
집념이라고 나를 비웃을는지도 몰랐다. 아니 미쳤다고 손가 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꿈속에서 바다로 나갔고, 파도
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의 절반을 한 해에 두 번씩이나 와 싸울 적마다 늘 이겼다. 끝내는 파도가 내게 지쳐 잠들곤
건너다니는 그 작은 도요새의 고통보다는 그 일이 내게 결코 했다. 짠 바닷바람이 내 마음을 부쩍 달구었다. 나는 늘 바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다의 꿈만 꾸었다. 거룻배를 타고 연안 바다로 나가 보는 꿈
우리나라가 60년대부터 경제성장에 발돋움을 시작하여 대 도 꾸었지만 더 거창한 꿈도 꾸었다. 기선이나, 어떤 때는
망의 중화학공업시대로 돌입했던 70년대 벽두, 구 년 전이 터무니없이 고래가 나를 싣고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는 꿈이
다. 내가 중학교 삼학년 때 정부는 이 동남만 일대를 대단위 었다. 큰 빙하 위에 펭귄이 쪼작걸음을 하는 남극과, 키 큰
중화학공업단지로 고시했다. 이태 뒤 가을, 군청소재지조차 야자수가 바다를 보고 너울너울 인사를 하는 열대의 해안과,
못 되었던 동진읍은 일약 시로 승격되었다. 그 이전까지 이 마천루가 즐비한 뉴욕항의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꿈과, 안데
읍은 인구 불과 일만을 윗돌던 동해남부선의 한 작은 역이었 르센의 나라 덴마크의 코펜하겐 항구와, 마젤란 해협의 희망
다. 석교 마을은 읍내에서도 해안 쪽으로 치우친 변두리였 봉을 돌아오는 그런 긴 여행을 꿈속에서 만끽하곤 했다.
다. 읍내에서 석교 마을까지 나오자면 이 석교천 둑방길로 석교천의 물을 떠내 온 미터글라스에 나는 흰 종이를 붙여
삼 킬로는 족히 걸어야 했다. 내가 중학교에 갓 들어갔을 적 두었었다. 거기다 볼펜으로 날짜와 시간을 적어 넣었다. 코
만 하더라도 석교천의 개울물은 투명한 은빛이었다. 깊은 곳 르크마개로 주둥이를 닫고는 시험관꽂이에 꽂았다. 나는 시
이라야 겨우 허리를 채울 정도였지만 물속에서 눈을 뜨고 물 험관꽂이를 들고 둑 위로 올라섰다. 갈대와 풀조차 말라 버

- 11 -
린 일만 평의 공한지가 양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 마 이시 공장엔가 들어가긴 들어갔지. 그러나 제놈이 무슨 배운
리의 곤충은 물론 지렁이류의 환형동물조차 살 수 없는 버려 기술이 있어야지. 월급이라고 몇 푼 받아 와야 제 밑 닦기에
진 땅이었다. 이 공한지에도 내년에 연간 오만 톤의 아연을 바쁘고, 딸년은 바람이 들어 돈벌이한다고 서울로 떠났어.
생산할 아연 공장의 착공식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읽었었 이젠 거기서 짝을 찾아 셋방을 살고 있지.” 임영감은 가래
다. 내가 중학을 졸업하던 해까지 이 들판은 일등호답이었 침을 내뱉었다. “여보게 젊은 양반, 안됐네만 이 가래침 한
다. 가을이면 누런 벼들이 알 굵은 벼이삭의 무게에 못 이겨 번 보게. 새까맣지 않은가. 서남풍이 불 때면 저 굴뚝의 매
머리를 꺾고 가을 바람에 일렁였다. 참새떼의 접근을 막느라 연이 모두 이쪽으로 날아와 우리 마을만 하더라도 기관지를
고 군데군데 허수아비가 서 있었고, 사방으로 연결된 새끼줄 앓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네. 이게 어디 사람 살 동넨가 말
에 매단 비닐띠가 기폭처럼 날리며 햇살에 반짝였다. 줄을 일세.”
채면 깡통종이 쟁그랑쟁그랑 울렸다. 석교 마을은 해안 가까 “그 당시 땅값이 몇 배는 올랐을 테니 땅을 팔아 벼락부
이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이 들을 안고 있어 대부분 농사를 자가 된 사람도 많겠군요?”
지었고, 부촌으로 알려진 동네였다. 불과 사십여 호의 마을 “목돈을 쥔 사람도 있었지. 그러나 돈이란 상용 써본 사
이었지만 해마다 꼭 한두 명의 대학 입학자가 나오곤 했었 람이나 제대로 쓰지, 어디 그 돈이 온전할 리가 있겠나. 이
다. 핑계 저 꾐으로 빠져나가 이태를 못 넘겨 거덜이 나고, 백수
“저기, 저 공업단지가 들어서고 말인가?” 석교 마을의 건달이 된 치들은 도회지로 나가 막노동이나 하겠다고 식솔
경로회 부회장 임영감이 내게 물었었다. 그는 회갑 나이로 을 데리고 다들 떠났지. 난리가 따로 있겠나. 그런 것도 난
석교 마을에서 삼 대 째 살아 오고 있는 전직 읍서기 출신이 리야.”
었다. “정말 석교도 많이 달라졌어요.”
“이곳도 참 많이 변했죠?” 내가 건성 물었다. “세상이 확 바뀐 거지. 개벽 이래 말일세.”
“변하다말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공업단 “그런데 어르신은 요즘 어떻게 소일하고 계시나요?”
지가 들어찬 지도 벌써 팔 년이네.” “젊은이가 원, 창피한 것까지 다 묻는군그래. 이 사람아,
“언제부터 농사를 못 짓게 됐나요?” 그 뭔가 통닭집에 닭 싸주는 봉지 있지? 그 종이를 날라다
“이태 동안은 그럭저럭 농사를 지어 먹었더랬지. 그런데 풀칠도 하고 손잡이 끈도 달아 주곤 하지. 그래도 아직은 정
그 이듬해부터 농사를 망치기 시작했어. 못자리에 기름물이 정한데 어디 손 재놓고 놀수야 있나.”
스며들지 않나, 비싼 돈을 들여 모를 내도 뿌리째 썩어 버리 나는 죽은 공지를 건너 저 공단 쪽을 바라보았다. 주로 화
니 결국 폐농을 하고 말았지.” 임영감의 목소리는 허탈했 학공장들로 이루어진 비 단지였다. 삼영정유공장, 동산플라
다. 스틱공장, 진화화학 석교공장, 동진유기화학 제이공장 등의
“그럼 보상문제는 어떻게 해결지었나요?” 굵직굵직한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물론 그 전에 ‘폐수분출금지가처분신청’인가 뭔가도 솟아오른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 노란 연
내긴 냈었지. 그러나 폐농한 마당에 소장이 문젠가. 용지보 기, 회색 연기가 바닷바람에 날려 시내 쪽으로 꼬리를 늘이
상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공단측에도 시청에도 항의를 했더랬 고 있었다. 저 공장들 중 집진기가 제대로 가동이 되는 공장
지. 공장에서 마구 쏟아 내는 기름찌꺼기 때문에 땅을 망쳤 이 거의 없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고장으로 집진기가 못 쓰
다구 말야. 일 년을 넘게 끌다가 끝장에는 동남만개발공사에 게 되었거나 노후화되어 성능이 부실하다 보니 있으나마나한
서 땅을 사들이기로 하고 삼년연차로 보상을 받긴 받았지. 매연 대책이었다.
그런데 그 값이 어디 제값인가. 우리만 톡톡히 손해를 봤지 나는 제방길을 따라 동진강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안
뭔가. 그러나 예로부터 그런 사람들하고 싸워 이로운 일이 쪽 하늘은 노을이 자주색으로 침침해지고 있었다. 나는 석탑
있던가 말일세.” 서점을 들러 오후 세시에 바닷가로 나왔었다. 그러므로 다섯
“그럼 저 공단측에서는 수수방관을 한 셈입니까?” 시간 가까이 석교천을 오르내리며 시간차를 두고 미터글라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들 세도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에 석교천 물을 수거하고 있는 참이었다. 피로와 허기가 전
만하지 않은가. 지도에도 등재 안 된 촌이 자기네들의 입주 신을 휩쌌다. 밤을 몰아 오는 바닷바람도 더욱 차가워지고
로 크게 발전을 했는데 그까짓 자질구레한 피해가 대수롭냐 있었다. 나는 시험관꽂이를 땅에 놓고 잠바의 지퍼를 목까지
는 게지. 땅값이 천장같이 올랐으니 오히려 팔자를 고치지 당겨 올리며 석교 마을에 눈을 주었다. 잿빛 하늘 아래 눌려
않았느냐구 뒤집어씌우더군. 이젠 다 귀에 익은 소리지만, 있는 석교 마을은 읍 시절의 옛 모습이 아니었다. 사십여 호
그때만 해도 생경한 수출입국이니 중공업시대니 지엔피니 하 의 초가는 그 절반으로 줄어들어 알록달록한 기와지붕의 새
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 그래서 그저 입막음 동네로 변했고, 포장된 앞길에는 시내버스 한 대가 달리고
으로 잔돈이나 선심을 쓰고 대책위원들을 초정해서 술이나 있었다. 그리고 병풍처럼 마을 뒤를 가렸던 얕은 언덕의 소
받아 주다, 나중에는 마을 청장년을 자기네 공장에 취직을 나무숲은 매연으로 이미 고사해 버려 민둥산으로 벌겋게 버
보장해 준다고 해서 그저 흐지부지 끝났어.” 려져 있었다. 그 산 뒤쪽으로 늘어선 열 동의 오층 아파트가
“어르신님 댁도 무슨 혜택을 봤나요?” 모서리를 보이고 있었다.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신축된 저
“우리집 둘째놈이 마침 제대를 하고 와 있던 참이라 피브 아파트를 석교 단지라 부르고 있었다. 지난 여름, 엄마가 저

- 12 -
단지 중 십팔 평형 두 채를 빚을 돌려 잡았으나 곧이어 발표 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나그네새를 볼 때마다 간절하게 사무
된 부동산 투기억제법에 묶여 매기를 잃은 채 지금은 전세를 쳤다. 윤회설을 믿지 않지만 이승에서 새로 변신할 수 없다
놓고 있었다. 면 내세에서라도 새가 되어 태어나고 싶었다. 인간이 되고
내가 동진강 제방둑길을 한참 내려가 하구의 삼각주 갈대 싶어하는 새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새와 나를 바꾸고 싶
밭이 멀리로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 저쪽에서 남자 둘이 었다. 선택권을 준다면 새 중에서도 시베리아나 저 툰드라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둘의 더펄 머 고향인 도요새가 되어 날고 싶었다.
리칼이 드러나, 나는 그들이 공단의 공원이거나 아니면 학생 나는 동진강 하구로 내려가다 삼각주 갈대밭을 채 못 가
으로 짐작했다. 한 녀석은 등산백을 메고 있었고 복장도 등 남쪽으로 뚫린 큰길로 접어들었다. 한쪽으로 바다를 낀 그
산복 차림이었다. 거리가 오십 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내 도 길로 오백 미터쯤 내려가면 해안경비 파견대가 있고, 다시
수 높은 안경을 통해서도 등산백을 메지 않은 녀석의 걸음걸 그만한 거리를 더 내려가면 웅포리라는 옛 포구가 나섰다.
이가 퍽 눈에 익어 보였다. 병식이었다. 개펄에 작은 배들이 닿아 있고 그물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던
“어, 형 아냐?” 병식이가 손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웅포리는 이제 포구가 아니었다. 동남만 연안이 폐수의 오염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동진강 하구가 형의 서식처다 보 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을 즈음, 때마침 웅포리까지 포장도로
니 형을 만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더랬지. 예감 적중이군.” 가 닦이자 그곳은 유흥가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삼 년 전이
병식이가 씩 웃어 보였다. 었다. 처음, 어민들은 해변가에다 포장주막을 차리고 즉석
“형님, 안녕하슈?” 병식이 친구가 등산모를 들썩해 보이 매운탕과 생선회를 팔기 시작했다. 물론 물고기는 부근 어촌
며 아는 체했다. 에서 받아 왔다. 그러자 작업복에 안전모를 쓴 공장 기술자
“어디들 갔다 오는 길이니?” 아우를 보고 내가 물었다. 들이 출퇴근용 자전거나 오토바이 편으로 이곳까지 몰려 나
“뭐, 바다 밑에서 곧장 걸어나오는 길이지.” 병식이가 왔다. 장사가 쏠쏠히 잘 되자 버스노선까지 생겼다. 그러자
내 말을 농으로 받았다. 돈깨나 만지는 시내의 투기꾼들이 웅포리에다 여자까지 갖춘
“형님, 그 들고 있는 건 뭐요? 설마 냉장고에 넣어 하드 큰 방석집을 벌이기 시작했다. 웅포리는 단박에 소문난 유흥
를 만들 건 아니겠죠?” 정배형의 실험실로 넘겨질 시험관꽂 가로 발전한 것이다.
이의 미터글라스들을 보고 병식이 친구가 물었다. 나는 웅포리로 가는 참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내가 늘 찾
나는 아우에게 별 할 말이 없었다. 독서실에 박혀 입시공 는 집이 있었다. 유흥가에서 좀 떨어진 암벽 아래 해주집이
부나 하잖고 놀러만 다니느냐 따위의 충고는 이미 내 역할이 란 해묵은 소주집이 있었다. 이제 칠순에 가까운 할머니가
아니었다. 또한 대학을 도중하차한 나로서는 그런 자격도 없 손자 하나를 데리고 소주에 재첩국을 파는 숨은 술집이었다.
었다. 그 점보다 이미 나는 아우의 어떤 면에도 관심을 갖고 그 할머니는 황해도 해주에서 육이오 때 피난 온 삼팔따라지
있지 않았고, 나를 보는 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로, 나는 그 술집을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았던 것이다. 서울
“가봐.”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들 옆을 지나 어둠에 가 서 내가 낙향했을 무렵,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해주
라앉아 가는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노을빛은 이제 완전히 집을 찾았던 것이다. 그때 목조식탁에서 소주잔을 놓고 마주
사그라지고 바다는 암청색을 띠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귓 않아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었다. “이젠 너도 애비와 같이
볼을 훑었다. 잔, 잔을 나눌 나이가 된 것 같아. 너가 어릴 적부터 나는
“형, 곧장 걸어가면 바닷속으로 들어가게 돼.” 아우가 사실 오늘과 같이 이, 이런 날을 기다린 셈이지. 내 맺힌 얘
등뒤에서 소리쳤다. 기를 들어 줄 놈은 여, 역시 맏아들밖에 없으려니 하고 말
“난 새가 될 텐데 왜 바다 속으로 들어가니? 비상을 하 야.” 그날 나는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지.” 뒤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다시 몇 발을 떼어 놓자, 이 가 바다를 볼 때 느끼는 의미며, 도요새에 대한 뜨거운 사랑
제 병식이 친구가 외쳤다. 의 근원을 처음으로 가슴 깊게 새겨들었다. 아버지는 말했
“형님, 실례의 말 같지만 새가 되더라도 개펄에 떨어진 다. “…… 내가 유엔군의 포로가 되자, 나는 곧 전향을 했
콩은 주워 먹지 마슈.” 어. 내 뜨, 뜻에 따라 국군으로 자원입대를 한 셈이지. 육
말을 마치자 두 녀석은 한바탕 신나게 웃어 젖혔다. 별 새 개월 뒤 금화 전투에서 훈장 하나를 받고 육군 소위로 승진
겨들을 말 같지가 않아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잿빛의 하늘 되었어. 그때가 이, 일사후퇴가 끝난 뒤였으니 그로부터 다
을 배경으로 멀리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바람 소리 속에 시는 고, 고향땅을 못 밟고 말았잖은가. 고향땅이 수복되면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여리게 들려 왔다. 새 가족을 데리고 이남으로 내려오려고 꿈을 꿨던 게 모두 수,
의 울음 소리, 그 소리는 들을 적마다 내 가슴을 새로이 두 수포로 돌아갔어.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야. 껍
근거리게 하고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이상한 쾌감으로 마취시 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던 벼, 병아리가 다시 달걀집 속
키는 힘이 있었다. 마치 자기 짝을 부르듯 나를 부르는 소리 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으나 이미 워, 원상태의 복귀가 불가능
로 변용되는 정다움과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병식에게 한 그런 경우랄까……” 하며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말한 것처럼 나는 정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모든 구속 꺼냈다. 그리고 수첩 속을 뒤지더니 낡은 편지 봉투 하나를
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내 고통의 근원을 심어 집어냈다.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또
준 이 땅을 떠나 멀리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 이상의 세계 고향 통천에 두고 온 조부모님과 두 삼촌, 고모 두 분과 함

- 13 -
께 찍은 옛 사진을 보여 주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이미 그 아내가 내 말을 답삭 낚아 올렸다. “이 답답한 양반아.
낡은 사진을 수십 번도 더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꺼낸 사 날아다니는 구름 잡는다더니, 젠장. 이건 또 무슨 고상한 유
진은 명함 크기의 그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색 낡아 누렇게 람 취미라고 허공중에 나는 새에 다 미쳐. 잉꼬나 십자매를
바래진 우표만한 증명사진이었다. “너, 넌 이제 이해를 할 키워 돈이라도 만진다면야 그것도 벌이랄 수나 있지. 어휴,
거야. 이 사진을 보더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줄을…….” 집구석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그저 복통이 터져. 벌써 햇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을 내게 건네 주었다. 모서 수로 이거 언제냐. 당신이 이 바닥에 주저앉고부터 봄가을이
리는 이미 다 닳았고 거북등같이 가로 세로 주름마저 져버려 면 얼빠진 개처럼 바다새를 찾아 싸다니더니 이젠 자식놈까
윤곽조차 희미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처녀였다. 지 대를 이어 그 발광이야.” 숭늉으로 입 안을 획획 헹구더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흰 저고리의 어깨 앞에 내리고 초롱 니 아내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내가 대답이 없자 이제 맞
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그 사진의 임자를 나는 대뜸 짐 대 놓은 면박이 날아왔다. “자식이 이틀이나 집구석을 찾아
작할 수 있었다. “통천에 계시는 옛 약혼자시군요?” 아버 들지 않음 당신도 수소문을 해봐얄 게 아녜요? 제정신 아닌
지는 그 사진을 빼앗듯 내 손에서 앗아 갔다. 그리고 사진을 자식인 줄 뻔히 알면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구석 사
곰곰이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소학교 저, 접장이었지. 장이나 하면 다요?”
그러나 이제 다 흘러간 시절이야. 그 동안 이 여자도 느, 늙 “당신이 언제부터 병국이 거, 걱정을 다 했소? 아는 사람
었을 거야.” 아버지는 사진을 봉투 속에 소중히 다시 넣곤, 인사받기가 차, 창피하다느니 당장 뒈졌음 좋겠다 할 땐 언
나를 바라보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파먹고 산다는 것이 제구.”
어, 얼마나 괴롭다는 걸 넌 아냐?” 하고 묻는 아버지의 주 “당신 오늘 동진강 삼각주로 안 나갈 참이오?” 아내가
름진 눈이 물기로 번쩍였다.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리고 나갈 채비를 하는지 집에서 입
헤벌어진 입술이 풍기를 만난 듯 떨렸다. 아버지는 그런 외 는 스웨터와 통치마를 벗었다.
롭고 어눌한 모습을 감추기나 하듯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 “나가 본 지가 다, 닷새쯤 됐나. 그러잖아도 강회장하고
어 단숨에 잔을 비워 냈다. 몇 방울의 술이 수염 듬성한 턱 바람이나 쐴까 하던 참인데…….”
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럼 잘 됐수. 뽕도 따고 임도 본다더니, 나가는 길에
병국이 녀석 주릴 틀어쥐고 와요. 그리고 참, 나선 김에 웅
3 포리를 들러 그 동해식당 정매담 알지요. 그 매담을 만나 이
잣돈 팔만 원을 받아 내 와요. 은행이자 갚을 날이 내일이니
병식이는 제 어미로부터 만오천 원의 돈을 타내어 가던 날 꼭 받아야 해요. 정매담이 날짜가 내일이라고 우기면 지난
로 독서실에 박혔는지 사흘째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팔월이 서른하루로 큰달이니 오늘이 제 날짜라고 따져요. 죽
때맞춰 병국이도 집을 비우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우리 도 못 얻어먹은 개처럼 비실비실 물러서지 말고 남자가 따질
내외만의 단출한 아침밥상을 받았다. 병국이가 서울서 대학 땐 뱃심 좋게 대거리도 좀 놓아요. 목청 돋우는 데도 어디
을 다닐 때도 병식이가 새벽반 과외공부를 나간다고 일요일 돈 드남.”
외는 줄곧 내외만이 아침상을 받았는데, 요즘은 가족이 모여 처음부터 심부름이나 좀 가라고 이를 일이지, 하고 한마디
있어도 이런 호젓한 아침식사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우리 할까 하다가 나는 말을 삼키고 말았다. 상동 큰시장으로 일
내외는 늘 그런 관행대로 그저 묵묵히 숟갈질만 해댔다. 아 수를 걷으러 나갈 참인지 아내는 치마저고리의 외출복으로
내가 가자미조림의 간이 맞지 않다고 찬투정을 읊조리다가 갈아입었다. 방을 나서기 전에 아내는 차비에나 쓰라고 백
또 무슨 짜증이 보채는지 불쑥 한마디했다. 원짜리 동전 두 개를 상 옆에다 던졌다. 아침상을 물리고 동
“에그, 미친자식. 어쩜 그렇게 제 애비 성질내미를 족집 전 두 닢을 손바닥에 올려놓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
게 뽑듯 쏙 뽑았을까.” 병국이를 두고 하는 소린 줄 뻔히 새어 나왔다. 나는 또 부질없이 내가 무엇 때문에 스물다섯
알면서도 나는 묵묵부답했다. 아내는 나를 힐끔 쏘아보고는 해나 이 여편네와 한솥밥을 먹으며 살고 있나를 곰곰이 되씹
젓가락을 상 모서리에 소리나게 놓았다. 그리고 치미는 울화 었다. 사흘을 주기로 아내의 잠자리나 즐겁게 해주는 역할도
를 풀 양으로 톡 쏘아붙였다. “당신도 병이 도질 철이 돌아 이제는 힘에 부쳤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그
왔는데 개펄로 안 싸돌아다녀요? 강남갈 철샌지 뭔지 날아들 러나 거기에는 역시 아무런 결론도, 어떤 결단도 내릴 수가
시절이 아니냐 말예요?” 없었다. 이미 나는 더 나갈 데가 없는 지점까지 와버린 셈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웬 참견은. 새구경 다니는 데도 었다.
무, 무슨 돈이 드남.” 내가 아내를 만난 것은 휴전이 되던 해, 상이군경재활원에
“개펄까지 나가자면 차비는 어디 공짜예요?” 서였다. 왼쪽 허벅지에 박힌 다섯 개의 파편을 꺼내고 좌대
“걸어가지 뭘.” 퇴골 이음수술, 좌비복근의 이식수술, 바스라진 좌족근골의
“애비나 자식이나 다 한통속으로 미쳤어. 병국인 또 개펄 맞춤수술 끝에 내가 부산 군통합병원에서 상이 제대를 하게
에서 새나 보고 허송세월을 보내나.” 된 것이 그해 가을이었다. 왼쪽 다리를 잘룩거리게 되었지만
“그놈도 다 소, 속요량이 있겠지. 방구석에 박혀 있기보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몇 차례 왼쪽 다리 절단 위기를
담은 운동도 되고 좋으니…….” 용케 넘겼던 것이다. 막상 군복을 벗었지만 불구의 내가 찾

- 14 -
아갈 곳이란 아무 데도 없었다. 수중에 재산이라곤 얼마간 구차스런 자취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였다.
타내어 온 전역금 뿐이었고, 남한땅에는 친척붙이라곤 단 한 아내가 홀연히 나를 만나러 왔다. 지금도 아내는, 일요일을
사람도 없는 실정이었다. 일 년여 전쟁터를 떠돌며 생과 사 보내기가 심심하여 그저 나들이 삼아 동진읍으로 외출을 했
의 갈림길을 헤맬 때 이미 나의 학구열은 거덜이 나버린데다 는데 그만 절름발이에게 걸려들고 말았다는 입방아를 곧잘
이런 시국에 공부를 계속하면 병신인 주제에 그걸 도대체 어 찧지만, 어쨌든 나는 혼자의 외로움에 한 사람과 살을 섞음
디에 써먹느냐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나는 으로써 그 외로움을 잊어 보려 했다. 아니다. 그 일요일의
장교 출신이었고 입대 전 대학에 적을 두었다는 학력 덕분으 첫 잠자리는 분명 아내의 적극성으로 이루어졌다. 필경 아내
로 해운대를 지나 송정이란 곳에 있는 상이군경재활원에서 는 몸으로 부딪쳐 와 나를 잡음으로써 재활원을 빠져 나올
총무 일을 보게 되었다. 백 명 남짓한 재활원의 상이용사들 구실을 삼으려 했음이 분명했다.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그
은 대부분 미혼으로 척추장애자여서 휠체어에 몸을 의탁하고 러나 성격 차이에다 서로의 심부에 도타운 애정이 없다 보니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거동이 불편한 그들의 잔시중을 드는 싸움이 잦았고, 그 싸움은 늘 심성이 나약하고 말주변이 없
심부름꾼과 취사를 맡은 여자들, 잡역부 등을 합쳐 재활원의 는 나의 양보로 끝났다. 만약 병국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연인원이 이백 명을 웃돌았다. 일 년 남짓 그곳의 재산 관리 우리는 갈라섰을지도 몰랐다. 자식이란 부부의 애정을 되살
를 맡을 동안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재활원에 리는 화해의 징검다리이기에 병국이는 고집 세고 독점욕 많
서 부엌일을 보던 열한 명의 종업원 중의 한사람이었다. 아 은 아내로부터, 또 외로움으로 찌든 나로부터 도타운 사랑을
내는 경기도 개성의 어느 장사꾼 딸로 태어나 전쟁중 피난길 나누어 받았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내의 등세에 눌려 지냈
에 가족을 잃고 어떻게 이 남단 끝까지 홀로 떠돌아와 그곳 고, 직장에서도 가까운 동료를 얻지 못해 실향민으로서의 적
에 정착하게 된 모양이었다. 아내는 그런 등쓰린 과거에도 막감은 가중되었다. 이미 나는 시간이나 쪼아 먹는 한 마리
불구하고 무척 쾌활하고 똑똑한 처녀였다. 나와는 나이가 다 의 날개 꺾인 새로 변신해 버리고 말았음을 알았다. 고향이
섯 살 차이니 그 당시 아마 스물하나쯤 되었을 게다. 지금도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어느 유행가에도 이런 구절이
별 달라진 구석이 없지만, 그 시절 나는 산다는 자체에 거의 있지만 특별한 취미나 마음 붙일 오락도, 그렇다고 나같이
탈진한 의욕상실자였다. 또 사람을 대하는 데 왠지 두려움을 붙임성 없는 위인에게는 고향이란 오직 한 군데밖에 없었다.
느끼는 대인공포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 휴전이 됐지만 언젠가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루하루의 권태스러운 일과에 진력이 나 있었던 참이었다. 오 고향 통천으로 갈 수 있으려니, 하는 환상으로 나를 지탱하
히려 병상생활은 그런대로 회복기의 가뿐해지는 몸과 퇴원의 며 내가 처음 정을 붙인 곳이 바다였다. 그 시절에 만약 이
희망이 있음으로써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없이 타관땅이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에다 낙을 붙
초조해하고, 사람을 피하고, 그런 나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 이고 지금껏 살아왔을까. 나는 자살을 하고 말았을지도 모른
그럴 때면 바닷가로 나가 홀로 통음했다. 만취함으로써 나는 다. 아니, 그럴 용기조차 없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환상이
재활원의 얼굴들과 내 일상을 의식으로부터 지워 버릴 수가 나를 붙잡는 한 나는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생각만
있었다. 해도 참으로 끔찍한 세월이었으리라. 나는 막힘 없이 탁 트
그런 중에 한 가지 소망만은 끊임없이 나를 보채었다. 어 인 바다 구경을 좋아했고, 그 바다를 보러 다니다가 동진강
서 휴전이 깨어지고 그래야만 고향에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하구의 삼각주가 철새나 나그네새의 유명한 도래지임을 알게
그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나는 옛날의 나를 되찾을 수 있 되었다. 사철을 가리지 않고, 특히 봄가을의 환절기가 돌아
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희망은 차츰 환상으로 변해 갔다. 오면 사흘이 멀다하고 나는 동진강 하류의 개펄을 찾곤 했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만이 고향으로 달려가는 향수병을 나 다. 학교 근무가 끝나면 영 집발이 붙지 않아 도시락 가방
는 술로써 달래었다. 술 속에서는 그 환상도 다 녹아 없어져 안에 소주 한 병을 챙겨 넣고 석교천 방죽길로 자전거를 달
버렸다. 나는 사무에 필요한 말 이외는 진종일 일체 말이 없 렸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빗물인지
었고, 더듬는 말버릇도 그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런 나의 음 땀인지 모를 물기를 우산 든 소매깃으로 닦아 가며 힘주어
울한 마음 한귀퉁이를 터삼아 아내가 재잘재잘 지껄이며 헤 페달을 밟았다. 꼭 숨겨 둔 여자라도 만나러 가는 그런 뜨거
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짬짬이 식은 가슴에다 따스한 모닥불 운 마음이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
을 피워 주었다. 전쟁 뒤의 경황없는 세월에 학력이나 서로 었지만, 사실 나는 내 살을 가르고 나온 자식만큼 개펄과 새
의 성격 따위가 결혼조건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무겁 들을 사랑해 온 것만은 틀림없었다. 개펄에 도착하여 모랫바
지는 않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그 지경을 헤매다 보니 우리 닥에 다리를 뻗고 앉으면 우선 수백 마리의 새떼들이 아귀아
는 그저 한울타리 안에 사는 동료의 관계였지 연정이니 하는 귀 우짖으며 나를 반겼다. 동진읍에 정착했던 그해 가을이던
달콤한 쪽으로는 결코 발전될 수 없었다. 재활원에서 일년을 가, 사변 전 고향땅에서 본 도요새무리를 동진강 삼각주에서
보낼 동안 바깥 사회도 제법 안정을 찾아 지체가 자유로운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헤어진 부모와 동기간과 약혼녀를
상이 군경에게는 취직의 문이 열렸다. 나에게도 송정에서 동 만난 듯 반가웠다. 너들이 휴전선 위의 통천을 거쳐 여기로
남해안을 따라 십오 킬로 북쪽에 위치해 있는 동진읍 어느 날아왔으려니, 하고 대답 없는 물음을 던질 양이면 그만 울
공립중학교 서무과에 일자리가 구해졌다. 나는 보퉁이 하나 컥 사무쳐 오는 향수가 내 심사를 못 견디게 긁어 놓곤 했
만 들고 부담 없이 재활원을 떠났다. 학교 옆에 방을 얻어 다. 가져온 술병을 기울이며 나는 새떼들과 많은 이야기를

- 15 -
나누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새가 되어 대답하는 그런 대화 었는데 녀석이 그 돈으로 무슨 큰 말썽을 피웠구나, 하는 생
를 누가 이해하리오. 새가 고향땅의 부모님이 되고, 또는 형 각이 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마루로 나섰다. 이런 종류의 일
제가 되고, 어떤 때는 약혼자가 되어 나에게 들려주던 그 많 은 올 여름 들고 벌써 두 차례였다. 지난 여름, 한창 더위가
은 이야기를 나는 기쁨에 들떠, 때때로 설움에 젖어 화답하 찔 무렵이었다. 비 공단 성창비료 석교공장의 노무과장이 어
는 그 시간만이 내게는 살아 있는 진정한 시간이었다. 그러 깨가 딱 벌어진 젊은이 셋을 거느리고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
나 세월의 부침 속에 고향에 대한 나의 향수도 차츰 식어만 닥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종옥이까지 시장으로 나가고 없어
갔다. 이제 개펄도 내 인생과 함께 황혼을 맞아 명상의 장소 홀로 집을 지키던 참이었다. “김병국이란 작자가 누구요?
로 내 마음에 넓게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보 도대체 어떤 위인인가 상판이나 좀 봅시다.” 젊은이 하나가
는 바다는 예전보다 파도가 훨씬 높았고 헤엄을 쳐 북상을 불끈 쥔 주먹을 내두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내, 내 아
하면 며칠내 고향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넓이가 더욱 들놈인데 당신네들은 누, 누구요?” 그 기세에 눌려 내 목소
까마득히 넓게 보였다. 그리고 철새나 나그네새는 휴전선을 리가 더욱 더듬거렸다. “그럼 아직 마빡이 새파란 놈이겠
넘어 자유로이 왕래하건만 나는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안타 군. 그 새끼 좀 꺼내 주시오!” 다른 젊은이가 윽박질렀다.
까움만이 해가 갈수록 내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길 뿐이었 “아들은 지, 지금 집에 없소.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요?”
다. “그 자식 간 데를 불어요. 당장 작살을 내고 말 테니. 암모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고 나는 여느 날처럼 신문을 펴들 니아 가스가 아니라 진짜 똥물을 아가리에 퍼넣어야 정신을
었다. 특별한 읽을거리나 속시원한 기사가 눈에 띌 리 없었 차릴 개새끼 같으니라구.” 또 다른 젊은이가 방문이 열린
다. 그래도 별 할 일이 없어 일 면부터 팔 면까지 샅샅이 읽 큰방과 건넌방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마흔쯤 되어 보
고 저녁 텔레비전 프로를 다시 훑어보았다. 좋아하는 권투중 이는 노무과장이란 자가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계는 없었다. 벽시계를 보았다. 이제 겨우 열시였다. 지금 젊은이들을 제지시키곤 말했다. “이거 소란을 피워 죄송합
기원으로 나간다 해도 강회장이 벌써부터 출근해 있을 리는 니다만, 병국이란 자제분을 좀 만날 수가 없겠습니까?” 옳
없었다. 강회장은 이 시의 함경도 도민회 회장으로, 나와는 거니, 이 사람을 상대로 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곤 노무
십오 년을 넘어 형제같이 사귀는 사이였다. 강회장의 고향은 과장에게 말했다. “자, 우선 마루에라도 조, 좀 앉으십시
부전령 아래 송화였고 나이는 나보다 팔 년 연상이었다. 홍 오.” “앉구 자시구 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한 젊은이가
남철수 때 처와 세 명의 자녀를 고향에 둔 채 홀로 피난을 말했다. “가만있자, 병국일 차, 찾자면…… 아무래도 힘들
내려와 구제품 따위를 파는 행상을 시작해선 오일륙 전에 이 겠네요. 자정이나 돼야 돌아오니 나, 난들 행선지를 알 수가
곳에 정착하여 상동시장에서 포목점을 내어 왔었다. 동진읍 있어야죠.” 그러나 노무과장이 병국이를 찾아온 이유를 설
이 시로 승격되자 강회장의 점포는 부쩍 커졌다. 그러나 일 명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자제분이 우리 회사
년 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로는 이제 포목업도 이 를 상대로 관계 요로에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자, 여기 시
남에서 새장가를 들어 얻은 여편네에게 넘기고 나와 바둑으 보건과에서 접수한 진정서 사본을 좀 보십시오.” 노무과장
로 소일하고 지냈다. 은 마루에 걸터앉아 주머니에서 복사판 서류 한 장을 꺼냈
내가 신문의 바둑란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대 다. 그것을 받아 든 내 손이 떨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 돋보
문의 초인종이 세 번 길게 울렸다. 마루 끝에 앉아 껌을 소 기 안경을 찾아 낄 틈도 없이 어릿어릿한 글자들을 대충 훑
리 나게 씹으며 라디오의 유행가를 듣고 있던 종옥이가 쪼르 어보았다. “…… 성창비료 석교공장은 연간 사십 억 규모의
르 대문께로 달려갔다. 초인종 소리로 보아 두 아들녀석 같 흑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폐기(廢棄) 처리과정에 대한 근본적
지는 않았고 여편네가 또 뭘 빠뜨리고 나갔다 황망히 되돌아 인 개선책이 전혀 없음이 입증되었다. 지난 팔월 사일 새벽
왔으려니 생각했다. 두시 이십분, 당 공장은 야음을 틈타 암모니아 가스를 다량
“누구세요?” 종옥이가 철문의 쇠빗장을 달그랑거리며 물 으로 배출하여 그 가스가 폐수천(석교천)을 따라 안개처럼
었다. 덮쳐 와 동진강 하류로 확산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새벽
“김병국이라고, 이 집에 살지요?” 바깥의 무뚝뚝한 목소 네시 십분 동진강 하류에서 오징어잡이에 출어하려던 어민
리였다. 십팔 명이 심한 두통과 구토증으로 실신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하며 종옥이가 문을 열자, 장교 한 명과 당사는 기계의 밸브가 고장나서 가스가 샜다고 변명하고 있
사병 한 명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장교는 중위였고 사병은 지만 이런 사건은 일 주일을 주기로 이미 수십 차 반복되었
상등병이었다. 둘의 거동이 당당한데다 사병은 총을 메고 위 음을 입증하며(관계 자료 별첨), 이로 미루어 당사는 일부러
장망을 씌운 철모를 쓰고 있었다. 두 명이 마당 가운데 서자 밸브를 틀어 못 쓰게 된 가스를 배출하고 있음이 객관적으로
금세 마당을 꽉 채운 듯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 입증됨으로써…….” “정신병자가 쓴 낙선 뭐 더 읽을 필요
자 오른쪽 턱에 경련이 왔다. 육이오 때 철원전투에서 왼쪽 도 없소.” 하며 한 젊은이는 내가 읽던 진정서를 나꿔채 갔
다리에 중상을 당한 후부터 놀랄 때나 흥분이 차오를 때면 다. “저게 제 아, 아들놈이 낸 진정서가 틀림없습니까?”
언제나 있게 마련인 부교감신경의 실조증이었다. 병국이가 노무과장을 보고 내가 물었다. “예, 분명합니다. 알고 보니
제 어미에게 돈을 못 타내다 보니 나한테 오천 원을 돌려 달 자제분은 이런 방면에 상습범이더군요. 지난 유월에는 풍천
라던 것이 그저께였다. 내가 강회장한테 돈을 빌려 건네 주 화학을 상대로 또 진정서를 낸 바 있었습니다. 풍천화학 역

- 16 -
시 야음을 틈타 카드뮴 수은 등 중금속 물질을 다량으로 배 을 따라 남하해 온 간첩도 아니요, 부대경계 배치 상황을 탐
출시켜 동진강 하류 삼각주 지대의 각종 새 삼백여 마리와 지하려는 첩자도 아닌 이상 무사히 풀려 나올 것임이 분명했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했다나요. 사람이 아닌 한갓 새나 물고 다. 녀석은 새에 대한 무슨 조사를 목적으로, 아니면 공해와
기가 말입니다.” 노무과장의 목소리가 비로소 열을 띠더니 관련하여 경계지구 안으로 잠입했음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
‘새나 물고기’ 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내참, 기가 이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군용지프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
막혀서, 뭐 제놈이 실신을 했다거나 가족이 떼죽음당했다면 었다. 사병이 운전수 옆자리에 타고 중위와 나는 뒷좌석에
또 몰라.” 한 젊은이가 가소롭다는 듯 시큰둥 말했다. “국 앉았다. 차가 시내로 빠져나올 동안 중위가 굳게 입을 다물
민소득 일천 달러 달성에, 오늘날 조국근대화가 다 무엇으로 고 있어 무료한 시간을 쪼개느라고 내가 자기소개를 했다.
이루어진지는 선생도 잘 알지요?” 다른 젊은이가 내 눈을 나는 스물여섯 해 전에 전역된 대위 출신이다. 52년 정월,
찌를 듯 손가락질했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 삼간 태우겠다 철원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현재도 상이장교로서 연금의 혜택
는 미친놈이 짓거리는 이번으로 뿌릴 뽑아야 해!” 또 다른 을 받고 있다. 현역 시절 세 개의 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젊은이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차례 병국이 소재를 대라고 그러므로 지금도 나는 늘 반 군인의 잠재의식을 떨치지 못하
이구동성 삿대질을 하고, 그놈이 돌아올 자정까지라도 기다 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더듬더듬 엮자 비로소 중위는 동지
리겠다며 세 젊은이가 우르르 마루로 올라왔다. “선생님, 적 친근감을 보이며, 그럼 상사님 되시는군요, 하고는 굳었
진정도 진정 나름입니다. 그러니 이번 문제는 순전히 명예훼 던 안면 근육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손으로밖에 볼 수가 없어요. 간혹 기계 고장으로 가스가 새 “파견대장님의 소관이라 저는 그저 심부름을 왔습니다
는 수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고의로 몰아붙이는 이런 진정 만” 하고 중위는 서두를 뗀 뒤, “아드님이 성인이기 때문
에는 우리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자제분을 고발할 수도 있 에 굳이 보호자를 대동할 필요는 없지만, 아마 그 언행의 진
어요. 선생님도 지난번 반상회엘 나갔다면 우리 비 공단에서 부와 가족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부르는 것 같아요” 하고 말
돌린 공문을 받아 보셨을 겁니다. 공단측에서도 공해문제에 했다.
관심을 가지고 아황산가스․일산화탄소․폐수 풍속 측정 등 8대 “그럼 혹 제 아들놈이 철새의 수, 수면 장소나 그 은신처
공해 검증기구를 사들이기 위해 예산을 책정했다는 것 말입 를 찾기 위해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요?”
니다. 또 오염가능 지역을 삼 단계로 분류하여 오백여 가구 “글쎄요…….”
의 이주 계호기을 세워 놓았다는 점도 읽으셨겠죠.” 노무과 “아, 아니면 동진강 하류의 폐수 오염도를 조사할 목적으
장은 잠시 숨을 돌리더니 담배를 꺼내어 한 개비를 자기가 로?”
물고 한 개비를 나에게 권했다. 그로부터 한시간 남짓 집에 “둘 중의 하나겠죠.” 중위는 알 만하다는 얼굴로 나를
머물러 있었다. 그 동안 노무과장은 이론을 앞세운 설득으 보고 빙긋 웃었따.
로, 세 젊은이는 힘을 과시한 위협으로 나를 곤비케 했다. “그럼 경찰서로 이첩되는 건가요?”
그동안 병국이는 용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도 그는 “가보시면 만나겠지만 저희 파견대장님은 무척 인간적이
이틀째 집을 비우고 있었다. 동진강 하류에서 텐트를 치고 십니다.”
야영을 하거나, 아니면 해주집 토방 구석에서 잠을 잤음이 나는 더 이상 물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중위의 어투로 보
틀림없었다. 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나 스스로에게 안심을 심
“선생님이 김병국의 부친 되십니까?” 중위가 정중한 목 었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느덧 차는 시내를 빠져나와 석
소리로 물었다. 교천을 끼고 사면이 확 트인 해안지대를 달리는 참이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만…….” 지프의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황량한 공한지 멀리로 비
“보호자로서 저희 부대까지 동행을 좀 해주셔야겠어요.” 공단의 공장 굴뚝들이 보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
“병국이는 지금 어, 어디 있습니까?” 려 연기들이 시내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중 삼영정유
“부대에서 보호중입니다.” 공장으로 짐작되는 굴뚝엔 가스를 태우는 중동의 유전지대처
“보호중이라니. 녀석이 무, 무슨 사건을 저질렀나요?” 럼 붉은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불꽃을 휩싼 검
“아드님이 통금시간에 우리 통제구역 안으로 무단출입을 은 연기가 분진을 날리며 미친 여자의 머리칼처럼 서쪽하늘
했어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 시간에 무단출입자는 발포 로 흩어져 날려 갔다. 삼각주 갈대밭과 해안구릉 사이로 바
까지 할 권한이 있습니다.” 다가 보이자, 지프는 휘어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꺾어 들었
“그, 그럼 발포를 해서 병국이가 다쳤나요?” 다. 나는 차창을 열었다. 소금내 섞인 바닷바람을 마시자 눙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만, 하여간 잠시 시간을 내셔야겠 쳐 누웠던 희열이 서서히 내 몸을 달아올렸다. 나는 바다에
어요.” 다 시선을 주었다. 가을 햇살 아래 푸른 바다의 잔물결이 반
“부대가 어딘데요?” 짝반짝 빛났다. 나는 마음껏 바닷바람을 마시며 심호흡을 했
“동남만 일대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부댑니다.” 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해석을 달리 “어릴 적부터 병국이 그, 그놈은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했
하면 까다로운 사건일 수도 있으나 병국이의 경우를 따져 볼 더랬지요.”
때는 그리 큰 걱정은 안 해도 좋을 듯했다. 병국이가 해안선 중위를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 17 -
“저도 고향이 인천입니다만, 소년들에게 바다는 늘 큰 꿈 와 짙은 숲의 타는 듯한 단풍이 원색 영화장면처럼 스쳐갔
을 키워주지요.” 다. 나는 정말 언제 그곳에 다시 발을 닿으랴. 두 눈에 흙이
큰 꿈, 그렇다, 병국이는 어릴 적부터 바다를 보며 큰 꿈 들기 전에 그 산을 오를 수 있으랴. 만약 내가 한번 더 그
을 키웠더랬다. 두 녀석이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일요일이 산에 오를 수 있다면 나는 거기서 눈을 감아도 좋으리라, 하
면 자전거 앞에다 병식일 태워 나는 곧잘 동진강 삼각주나, 고 생각하자 더운 눈물이 핑글 고이고 코끝이 찡해 왔다.
동남만 남쪽 돌기에 자리잡은 장진포까지 바다 구경을 나갔 “야, 정말 멋지겠구나. 아버지, 저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었다. 병식은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그때의 일이 별로 기억 올라가면 금강산에 닿겠네요?” 병국이가 나를 올려다보았
에 남아 있지 않지만, 병국이는 바다로 나오면 기선을 보는 다. 천진난만한 그 눈동자가 기쁨으로 차 있었다. “그럼,
것이 소원이었다. 이 동남만이 공업화의 거센 물결을 타자 아버지의 고향 통천에도 다, 닿지. 두백리라구, 참 경치 좋
한갓 고기잡이의 기지였던 장진포가 항만 준설공사를 마쳐 은 어촌이란다. 해방 전에 네 할아버진 그곳에서 큰 어장을
이제 몇만 톤급의 배까지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정 가지고 계셨어. 지금 사, 살아 계신담 연세가 쉰아홉, 내년
박한 배 중 발동선 정도가 큰 배에 속했다. “아버지, 저는 이 회갑이로구나.” 마침 갈매기 두 마리가 해안선을 따라
외국 깃발을 단 큰 기선이 보고 싶어요.” 병국이는 곧잘 이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나의 시선과 함께 병국이의 시선
렇게 말했다. 노를 젓거나 돛대를 치는 바람의 힘으로 움직 이 그 갈매기를 따라갔다. “저 갈매기를 타고 갈 수 있다면
이는 거룻배나, 통통배라 부르던 발동선은 그의 안중에 차지 내, 내일 아침쯤 그곳에 도착할 수 있을거야.” 내가 긴 한
않았다. 노랑머리의 코 큰 선원이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숨 끝에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닐스의 이상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인사를 하는 기선이 한적한 개펄에 한 여행』이라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병국이가 물
닿을 리는 없었지만, 그는 바다 저 멀리라도 그런 기선이 지 었다. “아니.” “그 책을 보면 닐스가 꼬마요정 톰테를 못
나가 주기를 바랐다. “너는 큰 배가 그, 그렇게 타보고 싶 살게 굴다가 요술에 걸려 키가 십 센티도 안 되는 난쟁이로
니?” 내가 물었다. “예, 그래요. 아버지는 기선을 타보셨 변하지요. 그래서 큰 거위를 타고 기러기떼를 따라 정처 없
나요?” 하며 병국이는 조갑지 하나를 주워 파도 위로 힘껏 는 여행을 떠나요.” “참 재, 재미있는 동화책이로구나. 나
내던졌다. 작은 조갑지를 삼킨 큰 파도가 해안 쪽으로 밀려 도 꼬마요정의 요술에나 걸렸으면 좋겠구나.” “그럼 아버
왔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그 파도의 뿌리를 밀쳤다. 큰 파도 지만 거위를 타고 고향으로 가버리면 어떡해요?” “아니지.
는 작은 파도로 허물어져 발밑까지 따라왔다. “나야 물론 너들을 태워 고향으로 떠, 떠나야지.” “야, 신닌다. 정말
여러 번 타보았지. 부산서 일본 시, 시모노세키란 곳까지.” 그런 요술이 동화가 아님 얼마나 좋을까.” 병국이가 까르르
내 목소리가 시무룩했다. 해방 전 나는 오사카에서 전문학교 웃었다.
에 적을 두고 있었다. 대동아 전쟁의 말기 때 강제학병이 실 지프는 부대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본부 막사 앞에 차가
시되지 않았다면 나는 종전을 그곳에서 맞을 뻔했다. 44년 멎자, 우리는 내렸다. 중위는 나를 본부 막사의 파견대장실
여름,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해방은 금강산 유점 로 안내했다. 대장은 자기 책상에서 서류철을 뒤적이다 우리
사의 말사인 매하연에서 맞이했다. 이듬해 봄, 나는 대학입 를 맞았다. 그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시를 위해 서울로 내려갔다. “아버지, 기선을 타면 거룻배 “김병국의 부친 되십니다.” 중위가 나를 소개했다. 그리
보다야 훨씬 기분이 좋겠죠?” “배가 크니까요, 요동도 없 고 덧붙여, 내가 예편된 대위 출신으로 육이오에 참전한 영
구 꼭 방 속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갑판이 학교 운동장 예의 상이용사라고 말했다.
만하다면서요?” “그래, 병국아. 통일이 되면 우리 그런 배 “예, 그렇습니까. 저는 윤영굽니다. 자, 좀 앉으십시
를 타고 아버지 고향으로 가자구. 거기도 바닷가니깐 금강산 오.” 윤소령은 나를 회의용 책상 쪽으로 안내해 철제의자를
구경도 하고. 내가 원산서 중학교를 다닐 때 금강산에 수학 당겨 내어 권했다. 서른댓쯤 되어 보이는 그는 나이에 비해
여행을 갔더랬지. 또 해방이 되던 해는 일 년 가까이나 징용 이마가 넓었고 체격이 당당했다. 목소리도 시원시원하여, 중
을 피하느라고 금강산의 기, 깊은 암자에서만 숨어 살았 위의 인간적이란 말에 한결 신뢰감을 주었다.
어.” “금강산은 정말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이라면서 “불비한 자식을 둬서 죄송합니다. 얘기를 해보셧다면 아,
요?” “무, 물론. 그림으로도 나는 금강산만큼 아름다운 산 알겠지만 천성은 착한 놈입니다.” 의자에 앉으며 내가 말했
을 본 적이 없어. 너도 들었지, 삐죽삐죽한 보, 봉우리가 일 다.
만이천 개나 된다는 것 말야. 차, 참 볼만하지. 내금강만 하 “어젯밤 마침 제가 부대에서 숙식할 일이 있어 장시간 그
더라도 젤 높은 비로봉이며 며, 명경대 동석동 망군대 백만 친구와 얘기를 나눠 봤지요. 별난 데는 있지만 똑똑한 젊은
봉 조양봉 시, 십이폭포 진주담이며, 외, 외금강은 또 어떻 이더군요.”
구. 만물상 비봉폭포 연주담 집선봉 오, 오류동 구룡천의 구 “요즘 제딴에는 뭐 조류와 공해 관계를 여, 연구한답시
룡연폭포…….” “그만 하세요. 아버진 언제 그걸 다 외었 고…… 모르긴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시, 심려를 끼치지 않았
나요?” “어디 그, 그뿐인가. 해금강 신금강은 또 어떡하 나 하는데요?”
구. 장안사 표, 표훈사 유점사, 그말고도 절은 또 얼마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제분은 군 통제구역의 출입이 어
구.” 나는 신이 나서 입술에 침을 튀겨 가며 지껄였다. 금 떤 처벌을 받게 되냐를 알 만한 식견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
강산을 일주하듯 눈앞에 기암절벽의 산봉우리와 청청한 폭포 고 무모한 행동을 했어요. 설령 그 일이 어떤 정당성을 가졌

- 18 -
다면 사전에 부대의 양해나 협조를 요청해야지요.” “갑자기 떼죽음을 하는 게 이상하잖아요? 물론 그 전에도
“물론입니다. 야영을 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워, 월 새나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이번은
경을 했겠죠. 어떻게 한번 용서를 바랍니다. 아비 된 제가 뭔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주의는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물 탓이야. 이제 동진강은 강물이 아니고 도, 독물이야.
윤소령은 내게 담배를 권하고 사병 한 명을 불러 차를 끓 조만간 이곳에서 새떼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 게야.”
여 내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68년 십일월 울산 삼척지구의 지난 여름에 해주집에서 본 물고기가 생각났다. 중금속에
무장공비 출현으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예로 들었다. 오염된 이른바 꼽추붕어였다. “저런 물고기가 잡히다니 참
“……그들은 야음을 틈타 쾌속정을 이용하여 동해안을 따라 세상도 희한해졌어.” 해주댁의 말이었다. “할멈 당장 버려
남하했던 것입니다.” 하고 윤소령은 말했다. 아울러 국내 요. 그걸 끓여 먹었다간 내 등뼈도 휘어지겠어.” 강회장이
유수의 공업단지 보안과 경비가 얼마나 중요함을 강조했다. 말했다. 해주댁이 등이 휘어진 꼽추붕어의 꼬리를 포개어 쥐
최후로 “선생님, 우리는 실전(實戰)이 없달 뿐 아직도 전쟁 자 가운데에 묘한 타원이 생겼다. “설마 이걸 먹었다구 죽
중임을 알아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고 그 평화를 확보하기 기야 하겠어. 아까운걸.” 해주댁이 말했다. “허허, 먹으면
위해서는 한시도 경각심을 풀 수가 없어요. 기실 국민복지와 안 된대도 그러네. 할멈, 내장 안 딴 복을 국 끓여 먹어 보
제반산업의 향상이란 것도 안보의 확립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슈. 그 꼴이라니깐.” 강회장이 해주댁으로부터 꼽추붕어를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빼앗아 땅바닥에 때기장을 쳤다. “늙었다구 사람 속이네.
차를 마시고 나자 윤소령은 사병을 불러, 김병국 군을 데 지난 봄에도 이런 놈이 걸려 손주놈과 끓여 먹었는데도 멀쩡
리고 오라고 말했다. 한참 뒤, 그 사병과 함께 병국이가 파 합디다그려” 하며 해주댁이 꼽추붕어를 다시 집어 들었다.
견대장실로 돌아왔다. 쑥대같이 엉킨 머리칼에 땟국 앉은 꾀 “해주댁도 이젠 어, 얼마 못 살겠어.” 내가 웃으며 말했
죄죄한 그의 몰골이 한눈에 보아도 중병환자 같았다. 잠바와 다. “더 살아 무슨 단재밀 보겠다구. 어차피 내 생전에 고
검정 바지도 뻘투성이여서 하수도 공사라도 하다 나온 듯했 향땅 밟기는 글렀는데…….” 해주댁은 굽은 자기 허리를 콩
다. 움푹 꺼진 눈자위에 번들거리는 눈만이 살아, 나를 건너 콩 쳤다.
다보았다. “저는 간혹 새의 깃털이나 뼈가 갈대밭에 흩어져 있는 걸
“넌 이놈아 도대체 어, 어떻게 돼먹은 놈인가! 통금시간 봤지만 이번은 그게 아니래두요.” 병국이가 말했다.
에 허가증 없이는 해안 일대에 모, 못 다니는 줄 뻔히 알면 “그 새는 물 탓으로 주, 죽은 새일 거야.”
서.” 내가 노기를 띠고 아들에게 소리쳤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아버지?” 병국이가 걸음을 멈추고
“본의는 아니었어요. 사흘 사이에 동진강 하구 삼각주에 나를 바라 보았다.
서 갑자기 새들이 집단으로 죽기에, 그 이유를 좀 캐내 보려 “왜?”
던 게…….” 병국이는 머리를 떨구었다. “밤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병식이가 그들과 한
“그래도 변명은!” 패거린 듯 해요.”
“그만들 하십시오. 자제분의 의도나 진심은 충분히 파악 “벼, 병식이가 새를 죽여?”
을 했으니깐요.” 윤소령이 말했다. “예” 하고는 병국이가 조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전
병국이는 간밤에 쓴 진술서에 손도장을 찍고, 각서 한장을 전혀 식욕이 없으니 그냥 시내로 들어가요. 독서실을 찾아가
썼다. 그리고 내가 그 각서에 연대보증을 섬으로써 우리 부 서 녀석을 만나야겠어요. 그래서 그 독살 이유를 캐내고 말
자가 파견대 정문을 나온 시간은 정오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겠어요.”
부대를 나올 때 집으로 찾아왔던 중위가 병국이의 물건을 인 “아, 아니 병식이가 그럴 리가……” 하다가 나는 순간적
계했다. 닭털침낭이 묶인 배가 부른 등산 배낭 한 개, 이인 으로 생각을 고쳤다. 병국이와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두 아
용 천막 일 구, 손전등 하나, 그리고 걸레조각처럼 축 늘어 이들이 서로 싸우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병국이가 좀더
진 바다오리와 꼬마물떼새의 시체가 각 일 구씩이었다. 냉정을 되찾을 때까지 우선 시간을 벌어 둬야 할 것 같았다.
“죽은 새는 뭘 하게?” 웅포리 쪽으로 걸으며 내가 물었 “조급할 건 어, 없어. 어차피 만나게 될 테니깐. 그때 따져
다. 도 늦을 건 없지. 참, 병국아, 밤새 고생은 안 했냐?”
“해부를 해서 사인을 캐보려구요.” “뭐 아무 일도 없었어요.”
“폐, 폐수 탓일까?” “너 내, 내가 언젠가 서울을 다녀온 거 생각나냐? 아마
“글쎄요…….” 네가 고등학교 때였지. 내가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네
“너도 시장할 테니 해주집으로 가서 저, 점심 요기나 하 가 이 애비한테 처음 물은 말이 ‘아버지 고생 안 하셨어
자.” 나는 웅포리 장마담을 만나 이잣돈을 받아 오라는 아 요?’ 하던 말?”
내 말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병국이는 식사 따위에 다섯 해 전, 초겨울 저녁이었다. 내가 먼저 식사를 끝내고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신문을 보던 참이었다. 아내와 두 아들은 식사중이었다. 신
“아버지, 아무래도 새를 밀살하는 치들이 따로 있는 것 문을 보던 나는 광고면 한구석에 눈이 머물자 나도 모르는
같아요.” 사이에 외마디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아니, 그것은 고함이
“그걸 어떻게 아니?” 라기보다 탄성이었다. “이 양반이 못 먹을 걸 먹었나 왜 이

- 19 -
래?” 아내가 숟갈을 들다 말고 가자미눈으로 내게 핀잔을 익은 얼굴은 아니었으나 그가 바로 신문광고의 주인공임을
놓았다.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병국이 옆으로 알고 나는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기쁨과 설움으로 목울대
바짝 다가앉았다. “병국아, 이, 이걸 좀 봐. 이 과, 광고를 까지 들먹였다. 무슨 말부터 꺼낼까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가
좀 보란 말이야.” 신문을 병국의 코 앞으로 바짝 디밀고 안 먼저 말했다. “선생님, 수사 협조를 위해 저와 함께 서울로
내광고란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육이오 전 강원도 통천군 좀 가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증명서를 내보였
두백리에 살던 분을 찾습니다’란 일단 이행짜리 광고가 실 다. 서울서 내려온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던 것이다. 집에다
려 있었던 것이다. “정말 묘한 광고네요.” 병국이가 말했 그 사실을 알리고, 그날 오후 기차 편으로 나는 그 요원을
다. “그, 글쎄 말야. 그런데 연락처가 서울이잖아. 어떡함 따라 상경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자정 무렵, 나는 어깨에
좋지? 여기서 처, 천리길이 아닌가.” 나는 기쁨에 겨워 이 힘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내용인즉, 통천군 두백리에
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이틀 정도 결근계를 내는 한 서 피난 온 고향 사람이 남파된 간첩과 접선이 되어 구속된
이 있더라도 서울로 찾아갈까, 하며 신문을 쥔 채 나는 자리 사건이었다. 그러자 그 아내가 구속된 남편을 찾기 위해, 신
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전화번호조차 없고 주소만 있으 문의 안내광고란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낸 편지
니……” 하며 나는 다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 는 증거물로서 수사기관에 제시되었다. 나는 나이 쉰줄에 들
와 병식이도 나로부터 신문을 건네 받아 광고 기사를 읽었 어선 그 고향 사람의 집안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의 아
다. “무슨 일로 만나자는 걸까요?” 병국이가 물었다. 그러 버지는 어부여서 명태잡이로 출어할 적이면 우리집 배도 더
자 아내가 냉담하게 그 말을 받았다. “뭐 피난 온 동기간 러 탔던 것이다. 그러나 장본인이 반공청년단원이었는지 어
소식이나 묻는 거겠지. 그 사람이 어디 당신한테, 내 죽기 쩐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해방 뒤부터 육이오 사이에
전에 유산 처분을 하자니 친척붙이가 없어서, 하고 빈말이라 는 고향에서보다 주로 서울서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
도 할 것 같아요? 공연한 군침일랑 삼키지 말아요.” 그러나 나 나는 그가 온건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말했고, 그 외
그때만은 나도 아내의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여편네 에도 그를 도울 수 있는 한 유리한 증언을 해주었다. 다만
는 도, 돈밖에 몰라. 세상에 돈이면 제, 젤이야? 사람은 정 안타까운 점은 그와 나에게 개인적인 정담이나 고향 소식을
에 죽고 정에 사는 법이야. 내 경우 고향 사람을 만나 하룻 나눌 기회가 젼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설령 그런
저녁 회, 회포를 푼다는 건 억만금을 주고도 못 사는 게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그 역시 나와 비슷한 때에 피난을 내려
야.” 나도 이럴 때가 있나 싶게 목소리가 우렁찼다. “참 왔으므로 휴전 이휴의 고향 소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
말, 정 좋아하시네. 삼시 세 끼 정만 파먹고 살지 그래요.” 처지였다. 다만 나는 이 남한 땅에서 유일한 고향 사람을 이
아내가 픽 코웃음을 치며 숟갈을 놓았다. “넌 모, 몰라. 이 십이 년 만에 처음 만나 보았다는 소득만 안고 집으로 돌아
심정을 모른단 말야.”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는 응원을 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뭐랬소. 혹 떼려 갔다 혹 붙이고
청하듯 병국이를 보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온 격이지.” 아내가 고소하다는 듯 빈정거렸다. 그러나 병
병식이가 말했다. “엄마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아버지가 국이는 도수 높은 안경알 속에 불안한 눈을 껌벅이며 내게
그 광고에다 너무 기대를 걸 것까진 없어요.” 병식이의 말 물었다. “아버지, 고생은 안 하셨어요?”
에 병국이가 중재 역할을 나섰다. “아버지, 우선 편지나 한
장 내보죠 뭘.” 그 말에 비로소 나는 냉정을 되찾았다. 4
“그, 그렇군. 나도 학교에 매인 몸이니 우선 편지부터 내
자.” 나는 신문의 그 광고를 가위로 오려 내어 수첩 사이에 살아 있던 것이 죽어 버린 상태, 시체는 어느 것이나 추하
다 소중히 간수했다. 그리고 서둘러 잠바를 걸치고 휑하니 다. 그러나 꼬마물떼새는 죽어 있어도 그리 추하게 보이지가
마당을 나섰다. “강회장을 잡고 또 회포깨나 풀겠군그려.” 않았다. 이십 센티가 못 되는 축 늘어진 작은 몸매가 오히려
아내가 내 등뒤에서 조롱조로 말했다. 그날 밤, 나는 자정이 안쓰럽고 귀여웠다. 등은 갈색의 성긴 털로 덮여 있었고 배
가깝도록 강회장과 술잔을 나누며 그 광고를 두고 여러 경우 쪽의 흰 털은 부드러운 융단 같았다. 꼬마물떼새의 특징은
를 추측하며 즐거워했다. 아직 광고의 임자를 만나지 못했으 검은빛 굵은 줄이 마치 머플러처럼 목을 감았고, 눈가에도
나 죽은 형제를 삼십 년 만에 만난 듯한 흥분이 내 마음을 길쭘한 검은 무늬가 있었다. 살풋 감은 눈꼬리로 노란 둘레
뿌듯이 채웠다. 이튿날, 나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등기우편 테가 조금 엿보였다.
으로 띄웠다. 나는 편지 내용에다 통천군 두백리의 내 집안 이씨는 꼬마물떼새의 시체를 답삭 집어 들어 도마 위로 올
내력과 육이오 후 나의 이력과 현재의 거주지를 소상히 밝혔 려놓았다. 칼자국의 흠마다 자줏빛 피가 밴 크고 두꺼운 도
다. 그리고 내가 상경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그쪽에서 동진 마였다.
까지 내려올 수 있느냐, 거리 관계로 그것도 힘들다면 서로 “도마가 꽤 관록이 붙어 보입니다.” 족제비가 이씨에게
의 중간 지점인 대전이나 대구에서 만나자고 썼다. 나는 회 말했다.
답이 돌아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 한차례 학교 서무 “수백 마리는 참살한 형틀이지.” 뒤돌아보지 않고 이씨
과로 한 뭉치씩 편지묶음을 던져 놓고 가는 우체부가 올 때 가 말했다. 이씨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오후 네시경의 기운
마다 내 가슴이 숯등걸 타듯 열기로 뜨거웠다. 그런데 그로 햇살이 칼날 끝에서 튀어 반짝 빛났다. 이씨는 그 메스로 힘
부터 일 주일 뒤, 학교로 중년남자 한 사람이 날 찾아왔다. 하나 드이지 않고 아주 간단히 꼬마물떼새의 목을 싹독 잘랐

- 20 -
다. 이름 그대로 작은 새여서 이씨의 손놀림이 가래떡 베듯 “껍질을 홀랑 벗기는 거지.”
경쾌했다. 병식이와 족제비는 이씨 뒤에 서서 눈 한번 깜박 씩 웃는 족제비의 누런 이빨을 보다 병식이가 이씨 쪽으로
하지 않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떨어져 나간 새의 목과 몸 머리를 돌리니, 아니나다를까 그는 항문 쪽에서부터 껍질을
통에서 맑지 못한 묽은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검붉은 그 피 벗겨 내기 시작했다. 병식은 문득 지난 겨울, 대학입시원서
는 곧 도마 바닥에 응고되었다. 이씨가 다리 날개 꽁지를 싹 를 낼 때가 생각났다. 명함판 사진을 찍어 입시원서에 붙일
독 잘라 버리자 새는 몸통만이 동그마니 남고 말았다. 제 모 때, 사진 뒷면의 한 겹을 벗겨 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
양을 갖추지 못한 그 몸통을 보자 병식은 비로소 어깨를 으 었다. 얼굴이 찢길까 봐 침칠을 해가며 한겹을 두 쪽으로 조
쓱 올렸다. 징그러운지 얼굴을 찡그리며 개수구 쪽에다 침을 심조심 나눌 때에 비해, 이씨는 거기서부터 콘돔을 까발길
뱉었다. 이씨는 메스를 놓고 야구공보다는 조금 작고 탁구공 때처럼 껍질을 익숙하게 벗겨 나갔다. 오징어 껍질을 벗길
보다는 큰 꼬마물떼새의 대가리를 쥐었다. 잘라 낸 목 쪽에 때처럼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새란 날짐승은 원
서 기관과 식도의 일부와 심줄을 잡아 빼고, 거기로 핀셋을 래 필요 없는 살점을 붙이고 있지 않지만, 꼬마물떼새의 경
쑤셔 넣더니 융기가 심한 한 덩이 뇌를 뽑아 냈다. 그것은 우는 얇게 싸발린 대흉근 안쪽에 용골돌기가 그대로 불거져
붉은 실핏줄로 싸발린 핏덩이였다. 나와 있었다. 박피를 끝내자 껍질 벗긴 새의 몸통은 누가 보
“새대가리란 말이 있듯이, 새들이란 뇌가 작지.” 이씨가 아도 무슨 살덩이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변하고 말았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다. 이씨는 새의 몸통을 도마 옆으로 던지고 껍질 안쪽을 하
“새도 새 나름이죠. 그놈은 고향이 저 먼 시베리아가 아 늘로 보게 도마 위에 펴놓았다.
녜요?” 족제비가 말했다. “그 몸통은 내버리나요?” 병식이가 이씨에게 물었다.
“허긴 그래. 그 먼 데서 여기까지 날아와 죽게 될 줄이 “내장을 추려 내고 볶아 먹자는 거군.” 이씨가 말했다.
야.” 이씨가 말했다. “참새구이 정돈 안 될까요?”
“그 새는 죽어도 박제품으로 남으니 호랑이가 가죽을 남 “마음대로 하렴. 먹어도 죽진 않을 테니깐.”
기듯 쓸모 있는 죽음이죠.” 병식이가 말했다. 이씨는 솜에다 아비산액을 묻혀 껍질 안면에다 칠해 나가
“혼이 없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말짱 끝장난 거야. 껍질 기 시작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일이 끝나자
만 남으면 누구 좋은 일 시키게.” 이씨가 말했다. 이씨는 이제 새의 대가리를 쥐고 박피할 채비를 차렸다.
“이 세상 바닥에 살아 있어도 혼 없이 걸어다니는 놈이 “대가리의 박피는 특히 눈 귀 주둥이 부분을 조심해야
어디 한둘이에요.” 병식이가 말했다. 그는 잠시 형을 생각 돼.” 이씨가 말했다.
했따. “사자나 하마 정도 박피를 한담 볼 만할까, 새는 스릴이
“세상엔 새만도 못한 인간이 많긴 많지.” 이씨가 말했 없어.” 병식이가 시큰둥 말했다.
다. 그 말을 족제비가 받았다. “그래도 고니나 오리류는 좀 낫지. 덩치라도 크니깐.”
“물떼새는 굉장한 놈이야요. 『조류도감』을 보니깐 미국 족제비가 말했다.
보스턴 가까운 어느 곳에서 다리에 표지(標紙)를 붙여 날려 “이제 박제도 한물 갔어. 야생조류가 자꾸만 귀해지니
보냈더니 엿새 뒤에 삼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서인도제도의 깐.” 이씨가 말했다.
한 섬에서 포획됐대요. 그러니 하루 평균 오백 킬로를 난 셈 “그러니 값은 천장 모르고 뛰잖아요.” 족제비가 말했다.
이지.” “이삼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물떼새 종류는 어디 박제감
“자네도 이젠 전문가가 다 됐군.” 이씨가 뒤돌아보며 말 으로 쳤나. 죽은 병아리나 다를 바 없었지.” 이씨가 메스로
했다. 꼬마물떼새 주둥이의 기부를 도려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
“돈벌이도 주제 정도는 파악하고 해야죠.” 족제비가 말 다. “내 한가지 얘기해 줄까. 이 물떼새나 도요새가 생김새
했다. 도 비슷한 한 종류지만 이놈들이 얼마나 꾀가 많은지 아
“조 중병아리만한 놈이 하루 오백 킬로를 날아?” 병식이 나?”
가 신기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꾀가 많다니요?” 병식이가 물었다.
“뭐, 고속버스가 따로 있나. 아침 먹고 서울서 뜨면 저녁 “어미새가 냇가 자갈밭에서 곧 부화될 알을 품고 있을 때
에 부산이지.” 족제비가 말했다. 갑자기 뱀이 나타났다 이거야. 그러면 어미새가 어떻게 알을
이씨는 아비산 용액이 묻은 솜을 새의 잘린 목구멍을 통해 보호하냐 하면, 갑자기 절름발이 시늉을 내며 비적비적 걷거
빈 기관 안으로 쑤셔 박았다. 핀셋에 집힌 한 뭉치의 솜이 든. 그러면 뱀이, 옳다구나 저놈은 날지 못하는 병신이니 저
그 속으로 다 들어갔다. 이어 이씨는 새의 몸통을 왼손바닥 놈부터 잡아먹자, 하고 어미새 뒤를 쫓아가지. 그러면 어미
위에 뒤집어 놓더니 메스로 목에서부터 배를 거쳐 항문까지 새는 곧 잡힐 듯하며 절뚝절뚝 걸어서 달아나지. 그래서 알
얇게 갈랐다. 을 버려둔 곳에서 멀찌감치까지 도망가 뱀이 되돌아간다 해
“이제 박피를 시작하는 거야.” 족제비가 병식이를 보고 도 알을 못 찾을 지점에 와서야 비로소 화들짝 하늘로 날아
소곤소곤 말했다. 이씨의 재빠른 손놀림에 감탄하고 있던 병 오르지.”
식이는 족제비의 말을 채 새겨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거짓말.” 병식이가 말했다. 그는 잠시 절름발이 아버지
“박피라니?” 를 생각했다.

- 21 -
“그럴듯한 얘긴데.” 족제비가 머리를 주억거렸따. “판매 루트는?”
“비싼 밥 먹고 왜 거짓말을 해.” 이씨가 말했다. “직업적인 세일즈맨이 따로 있어” 하고 족제비는 주머니
“이제 작업장이나 구경할까?” 족제비가 병식이에게 말했 에서 담배를 꺼냈다. “피울래?”
다. “아니, 여긴 숨이 막혀.”
작업실은 안채 지하실로, 부엌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었 “습기가 끼면 박제품은 썩게 마련이거든. 그래서 불을 피
다. 족제비가 지하실 문을 열자 병식은 확 끼얹어 오는 이상 우는 거야.”
한 악취에 순간적으로 숨을 끊었다. “더위보다 냄새가.”
“뭘 쭈뼛거려. 들어오잖구.” 족제비가 말했다. 병식이가 “뭐 매연이 끼기는 바깥도 마찬가지지. 사실 썩고 있긴
코를 싸쥐고 뒤따라 들어갔다. 지하실은 건조했고, 마치 화 그쪽이 더할는지도 모르지만 말야. 그래도 여긴 저놈들의 혼
덕 안처럼 후끈거렸다. 병식이가 주위를 둘러보니 구석지 한 이라도 떠도니 엄숙한 셈이지.”
켠으로 연탄난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곳이 지금 한창 발열 “나가자.” 병식이는 입구 쪽으로 등을 돌렸다.
중이었다. 병식은 비로소 잠시 멈췄던 숨을 나직이 내쉬었 “나흘 치 셈을 오늘 받으면?” 족제비가 뒤따라오며 물었
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실내의 공기를 빨아들였다. 지 다.
하실로 막 들어섰을 때보다는 심하지 않았으나 역시 고깃덩 “한번 더 올나이트로 흔들지 뭐.”
어리가 썩고 있는 역한 내음과 노린내가 흠씬 풍겼다. 그 냄 “너도 이젠 철이 들어 제법이야. 일곱시에 끝나지? 그때
새만이 아니었다. 좁은 지하실 안은 유황을 태운 듯한 매캐 내 학관으로 나가마.”
한 화기와 텁텁한 구린내와 병원 특유의 소독수 냄새까지 합 “오늘도 윤희를 만날 수 있을까?”
친, 이상야릇한 냄새로 꽉차 있었다. 구역질이 치밀어올랐 “순정파셔. 어디 까이가 한둘이니. 대일밴드(임시 애인)
다. 야 바겐세일 아냐.”
“으시시한데?” 병식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족제비는 이씨로부터 만 칠천 원을 받았다. 그 중 칠천 원
“심령영화를 보듯 짜릿한 그 무엇이 있지?” 족제비가 배 을 병식이에게 넘겨 주었다. 둘은 각각 가방을 들고 이씨 집
시시 웃으며 말했다. 맞은편 벽에는 삼층으로 선반이 마련되 을 나와 버스를 탔다. 중앙공원의 로터리에서 둘은 헤어졌
어 있었다. 그 위에는 여러 종류의 완성된 조류 박제품과, 다. 병식은 시계를 보았다. 네시 반이었다. 다섯시부터 수업
철사에 석고를 이겨 발라 머리와 몸통이 새와 흡사한 모양틀 이 시작되니 아직 삼십 분의 여유가 있었다. 병식은 학관이
이 진열되어 있었다. 병식은 조류 박제품 중 우선 눈에 띄는 있는 역 쪽 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담배를 피워 물고
매를 보았다. 매는 큰 날개로 힘차게 벌리고 마치 먹이를 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계집애들의 얼굴과 몸매를 요모조모 눈
리덮칠 듯 나뭇가지 위에 위태로이 앉아 있었다. 매의 날개 요기했다.
가 벽면에다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의안임에도 불구 학관 입구는 여느 날처럼 붐비고 있었다. 대부분이 재수생
하고 전등불빛에 반사되는 눈동자가 매서웠다. 곧 썩은 나뭇 이었고 간간이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섞여 있었다. 병식이가
가지의 받침대를 떠나 병식이 쪽으로 덮쳐 올 것 같은 긴장 정문 앞 돌계단 앞까지 갔을 때였다. 열두 개의 계단 맨 윗
기가 서려 있었다. 족제비의 시선이 병식이의 시선을 따랐 계단에 병국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다. 퀭한 눈을 부릅뜨고 계단을 오르는 학관생들을 눈여겨보고
“혼만 불어넣는다면?” 족제비가 말했다. 있던 참이었다. 낡은 갈색 잠바와 헐렁한 검정 바지에는 여
“그러나 누구도 혼을 불어넣을 수는 없지. 하느님은 물 기저기 뻘이 묻어 있었다. 병국이가 계단을 오르는 아우를
론, 그 어떤 신(神)도.” 병식이가 말했다. 먼저 보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아우 쪽으로 계단을 내리밟
“저 고니를 봐?” 았다. 병식이도 그제서야 형을 알아보았다.
“얌전한 폼이 해수욕을 즐기는 것 같군.” “어, 형 웬일이야?” 병식이가 피우던 담배를 구두 밑창
“인간도 박제를 해서 지하실에 보관하면 좋을 거야.” 으로 뭉개며 말했다. “우리 학관에 선생 자리를 뚫었담 내
“미라가 있잖아.” 정돈 무료 패스가 되겠군.” 병국이는 말없이 아우의 눈을
“아니 모든 인간을. 세종대왕이나 나폴레옹 쪽보다 마릴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근데 행색이 너무 남루하잖아. 혹시
린 먼로나 히틀러 같은 치들이 보고 싶군.” 공사판에서 달려온 거 아냐?”
“저기 흰목물떼새도 있네?” 하며 병식이는 형의 물낡은 농구화를 내려다보았다. 바지
“죽이긴 내가 죽이고, 이씨는 저렇게 살려 내지.” 와 농구화 사이의 발목에는 양말도 신지 않은 맨살이었다.
“예술가셔.”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병국이가 말했다.
“이씬 죽어도 천당 갈 거야. 지옥으로 떨어질 찰나에 저 “무슨 얘기야?”
새들이 답삭 물어 올려 하늘나라로 모셔 갈 테니” 하며 족 “어제 오후부터 널 찾아다녔어. 독서실에서 잠을 안 잔
제비는 지하실 가운데에 놓은 낡은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쳤 모양이더군.”
다. 책상 위에는 가위 바늘 핀셋 철사 핀 솔 코르크판 따위 “입시까진 바쁜 몸인 줄 알잖아?”
가 널려 있었다. “이씨의 손에 잡히면 중치의 새 정돈 삼십 “어디 조용한 데로 가서 잠시 얘기 좀 하자.”
분 만에 저렇게 완성되지.” “수업 빼먹구?”

- 22 -
“잠시만.” 에 끼여들었다. 개시도 안 한 술집에서 웬 행패냐고 주모가
형제는 학관 앞을 떠났다. 마침 다방 간판이 병국의 눈에 소리쳤다.
띄었다. 병국이가 지하다방 계단을 밟자 병식이가 말했다. “난 못 불겠다. 그래, 고발 좋아한담 고발해 봐. 형 손에
“형, 술 할래?” 병국이가 뒤돌아보았다. “놀래긴. 나도 아우가 쇠고랑을 차지!” 병식이가 형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
옛날에 성년식을 마쳤어.” 꺾었다. “형도 구치소깨나 출입했으니 아운들 햇볕만 보란
“그냥 들어와.” 법은 없으니깐.”
“내가 한잔 산다는데그래.” 병식이가 형의 잠바 허리를 “이 자식, 말이면 다야!” 순간 병국의 주먹이 아우의 턱
끌었다. 을 갈겼다. 병식이의 머리가 뒷벽에 부딪히자 금세 입술 사
형제는 뒷골목의 간이주점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이 이에서 피가 내비쳤다.
라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자리를 잡아 병식이가 주모를 불 “쳐, 정말 형이 날 쳤어!” 병식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
러 막걸리 한 되를 시켰다. 그리고 잠시의 무료를 깨며 병식 났다. 그리곤 의자와 술상 사이로 빠져나오더니 형의 허리를
이가 말했다. 억세게 조여 안았다. 병국이의 몸이 마른 장작개비처럼 번쩍
“형, 내 친구 종호 알아? 종호 형이 형과 고등학교 동창 들렸다. 병식은 형을 홀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옆에 있던 의
이라며? 근데 말야. 죽동 사창가 골목에서 형제가 딱 마주쳤 자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형의 면상에다 내리찍
다는 거야. 그 형은 나오는 참이고 종호는 들어가는 길이었 으려 하다 손에 힘을 뽑더니 그만 내려놓았다. “형, 오늘은
고. 종호 말이, 내 쪽은 오히려 당당한 편인데 형은 영 쥐구 내가 참는 거야. 내가 정말 다구리 탈 짓을 했담 형한테 얼
멍을 찾는 상판이라나.” 마든지 맞아 주겠어. 그러나 내가 새를 죽인 것도 아니구,
“시끄러.” 병국이가 말했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족제비란 친구를 따라 심심풀이로 같이 다녔는데, 뭐 치사하
“괜히 너무 엄숙하지 마.” 게 동생을 고발해!”
“너 그날 석교천 방죽에서 말야, 새를 독살하고 오던 길 병식은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술상 위에 소리 나게 놓았
이지?” 다. 입술의 피를 닦았다. 그리고 가방을 들더니 재빨리 출입
“그래서, 그게 뭘 어쨌다는 거야?” 병식의 표정에서 비 문을 열었다.
로소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는 조금 전 얘기의 종호처럼 아 “병식아, 학관 끝나면 집으로 꼭 들어와!” 모잡이로 쓰
주 당당한 얼굴이었다. 러졌던 병국이가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그러나 병식이는
“뻔뻔스런 자식. 언제부터 그 짓을 시작했냐? 그건 그렇 이미 술집을 나서 버린 뒤였다. 병국이는 허리가 결리는지
고, 왜 새를 죽여, 죽인 새로 뭘 하나?” 병국의 언성이 높 앉은 자세 그대로 잠시 늘어져 있었다.
아졌다. 여윈 목에 푸른 심줄이 불거졌다. 그때 늙은 주모가 주모가 병국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봐요, 젊은이
술 주전자와 안주를 날라 왔다. 안경알이 깨어졌군.”
“나 원. 별 말코 같은 소릴 다 듣는군. 아니, 날아다니는 안경의 왼쪽 알이 가운데를 정점으로 방사선의 금을 긋고
새도 임자 있나? 형, 지구의 새를 형이 몽땅 사들였어, 어쨌 있었다. 넘어질 때 아마 술상 모서리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어?” 하고는 병식이가 스텐 잔을 형 앞에 밀어 놓았다. 그 병국은 술집을 나섰다. 가로의 건물이 길 가운데까지 긴 그
리고 그 잔에다 술을 쳤다. 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병국은 학관을 뒤져 족제비란 병식의
“자, 우선 한잔 꺾지. 형제의 우정을 위해서.” 친구를 찾아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몇 번 본 얼굴이
“누가 네게 그 일을 시키고 있어? 그 사람을 대?” 병국 라 기억은 나지만 그가 학관에 다니는지, 또 지금 시간에 나
이가 술이 찬 잔을 한쪽으로 밀며 소리쳤다. 출렁거린 술이 왔을는지 어떤지를 알 수 없었다. 저녁에 병식이가 집으로
반쯤 식탁 위에 쏟아졌다. 들어오면 그를 잘 구슬러 박제사의 거처를 알아내는 일이 쉬
“왜 그래? 자연훼손으로 고발하겠다구? 날아다니는 새를 울 것 같았다. 병국은 경찰을 앞세워 박제사의 집을 덮치거
잡아 박제를 해서 호구를 잇는 건 죄가 되고, 돈 많은 놈이 나 그를 고발할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 또 박제품이 지정된
허가 낸 사냥총으로 새를 잡아 구워 먹는 건 죄가 안 된다 보호조가 아닌 이상 그 처벌법규도 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씀이야?” 병식이가 코웃음을 치고는 자기 잔의 술을 동진강 하구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채취하는 일과 새
죽 들이켰다. 를 잡는 일이 무엇이 다르냐고 따질 때 강력하게 반론을 제
“이 지구상에 희귀조가 계속 멸종되어 간다는 건 너도 알 시할 근거가 없기도 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도 처벌을 받
지? 인간이 새로운 새를 창조해 낼 순 없어.” 는 산림법 정도의 벌칙이 조류에는 도무지 해당이 되지 않았
“그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쳐. 내가 알기론 이 지구상에 다. 수렵금지 기간이 있지만, 총포류를 사용하지 않은 이상
는 삼십억이 넘는 새들이 살고 있어. 그 중 내가 오십 마리 그 벌칙도 용케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또한 짐승이나 조류
를 죽였다 치자, 그게 형은 그렇게 안타까워? 그렇담 숫제 의 박제품은 연구용 내지 관상용으로 버젓이 판매가 되고 있
참새구이도 없애 버리지 뭘, 닭도 진화를 도와 하늘로 해방 지 않은가. 다만 자연보호의 명목을 원용한다면, 야생조류의
시키구.” 남획이 경범죄 정도에는 해당될 것 같았다. 그래서 병국은
“박제하는 놈을 못 대겠어?” 병국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 박제사를 만나면 그를 잘 설득시켜 그로 하여금 조류 중 특
어서더니 아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모가 달려와 둘 사이 히 나그네새나 철새의 박제만은 금해 달라고 간청해 볼 작정

- 23 -
이었다. 그 목적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취시키지 않으면 만에 품행이 방정치 못했다나?”
안되었다. 새의 독살이란 바로 그 자신의 살점 한 부분을 도 “품행이라니?”
려내는 고통과 같기 때문이었다. 박제사가, 왜 남의 생업까 “뭐, 다 부는 나발 아니겠어.”
지 막느냐고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 부산에 있는 야생동 “일이 점입가경이로군.”
물보호협회 경남지부와 연락을 취하여 차선의 강구책은 그때 “그렇게 되자 밀린 노임 때문에 불만이 많던 차라 농성이
가서 세우기로 작정했다. 전 종업원으로 확대된 거야.”
병국은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꽂고 중앙공원 쪽으로 걸음 “노조가 조직되어 있었던 모양이지?”
을 옮겼다. 다리가 천근이나 되게 무거웠고 마음도 편치가 “어용노조가 있긴 있었다더군. 그런데 말야. 사장이 타고
못했다. 집으로 들어가기도 싫었다. 역시 그가 찾아갈 곳은 다니는 벤츤가 하는 외제 승용차가 마침 사무실 앞에 대기하
개펄밖에 없었다. 황혼 무렵, 바다를 향해 자맥질하는 새떼 고 있었는데, 공원 몇이 돌팔매를 던져 그 차에 흠집을 낸
나 보자. 결정을 내리자 마음에 금세 공기주머니라도 달린 거지.”
듯 걸음이 가벼웠다. 석교 아파트나 웅포리로 가는 버스를 “결국 경찰이 출동을 했겠군?”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걷던 병국은 석탑서점을 보자 잠시 걸 “여부가 있겠나. 가까스로 수습은 되었는데 아직도 술렁
음을 멈추었다. 그가 자주 찾는 신간과 헌책을 함께 취급하 술렁하는 모양이야.”
는 서점이었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 민씨가 같 “공장은 계속 가동이 되고?”
은 또래의 안경 낀 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노조 간부들이 앞장을 서서 돈이다, 짜장면 공세다 해서
“동진도 이제 큰일이야. 애들 키울 데가 못 돼. 성범죄가 겨우 일손을 울궈 내어 정시 근무는 한다더구먼. 그런데 결
사흘에 평균 일 회라잖아.” 안경잽이가 말했다. 과는 뭔가. 피를 보는 쪽은 항시 목 잘린 종업원 아닌가. 열
“주로 공단 주변이라며?” 민씨가 물었다. 댓 명이 결국 쫓겨났다더구먼.” 화제가 대충 매듭지어지자,
“어제도 에이 공단 삼환합섬 있지, 그 뒷골목에서 칼부림 병국이가 민씨에게 말을 붙였다.
이 났다더군. 여공원 하나를 두고 사내 두 놈이 붙은 거 “저, 아저씨.”
지.” “오, 자네군. 요즘도 새와 더불어 살고 지내는가?” 민씨
“어디 그뿐인가, 이 사람아. 수삼 년 사이 중심가에 비어 가 병국의 깨진 안경을 보았다.
홀과 살롱 늘어난 것 봐. 밤 열한시만 되면 거기서 쏟아져 “새와 더불어 살다니?” 안경잽이가 민씨를 보고 물었다.
나오는 여급들이 수백 명도 더 돼.” “공장 폐수가 흘러내려 동진강이 오염되자 철새가 날아오
“여관은 꽉꽉 차구.” 지 않는다잖아.”
“참, 저 비 공단 플라스틱 공장 있잖은가.” “나도 신문에서 그런 기사는 읽었어.”
“수출 완구용 제품 만드는 공장 말인가?” “그것도 다 저 친구가 신문사에 자료제공을 한 걸세.”
“글쎄, 거기 여공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다는 소식 들 “그, 제가 부탁한 책 왔어요?” 병국이가 민씨에게 물었
었나?” 다.
“왜, 무슨 일로?” “주문서를 띄우긴 띄웠는데 아직 안 왔을걸. 참, 책이름
“사장은 벤츤가 뭔가 외제 차를 타는데 여공들 야근수당 이 뭐랬지?”
이 석 달이나 밀렸다잖아. 그런데 그것까지는 참아 왔는데 “마거릿 미드 여사가 지은 『조용한 봄』이라구요.”
나흘 전에 완제품의 납품 숫자가 모자란다고 검사과 여공원 “맞아, 그랬군. 아직 안 왔네. 일 주일쯤 후에 한번 더
들을 알몸 수색했다더군.” 들러 주게?”
“홀랑?” “조용한 봄이라, 사춘기 애들이 읽는 연애소설이겠군.”
“아무렴. 아무리 막돼 가는 세상이라도, 브래지어나 팬티 안경잽이가 아는 체했다.
는 입었겠지.” “에끼, 이 사람아. 공해로 인하여 새들이 멸종되는 관찰
“그래서?” 안경잽이가 다잡아 앉으며 물었다. 기록을 쓴 거라니까, 아마 그렇지?” 민씨가 병국이를 쳐다
“여공원들이 울며불며 야단이 난 모양이라. 그런데 엎친 보았다.
데 덮친 격으로 납품 숫자를 채울 때까지 검사과 종업원은 “안녕히 계셔요.” 병국은 그 물음에 대답을 않고 되돌아
전부 퇴근을 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잖아.” 서고 말았다.
“그건 너무한데.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병국이가 서점을 나가자 민씨가 낮은 목소리로 안경잽이에
제 돈 주고 부려먹는 공원이라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나. 제 게 말했다.
놈은 어디 그만한 딸애 안 키우는가 말일세.” “저 젊은 친구 말야, 자네 모르나?”
“글쎄 말이야. 그러자 검사과의 제법 똑똑한 여공애 둘 “몰라.”
이,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 맞서자는 의견을 내세워 농성을 “한때 수재로 소문났잖아? 외양은 저 꼴을 하고 다녀도
시작한 게지. 일이 그렇게 커지자 회사 측에서도 당황하여 똑똑한 녀석이야. 그런데 그 있잖은가, 대학교 데모로 말일
밤 열한시에 모두 귀가를 시킨 모양인데, 이튿날 농성을 주 세…….”
도했던 애 둘이 그만 일방 해고가 됐다잖아. 이유는 근무 태 병국은 정배형의 학교로 전화라도 한 통 걸까 하고 공중전

- 24 -
화 박스를 찾았다. 퇴근시간 무렵이라 개펄로 같이 나갈 수 그였지만 사람들은 이럴 때 한 개비 담배로 공복을 다스리는
있겠느냐고 권해 볼 심산이었다. 그럴 사이 마침 버스 정류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주집 술청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소에 도착했고, 웅포리행 차가 와서 올라타고 말았다. 제일 가겟문도 반쯤 열려 있었다. 가겟문 안으로 들어서려다 병국
뒷좌석이 비어 있었다. 뒷자리에 앉아 병국은 등받이에 머리 은 그만 발걸음을 묶었다.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기
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는 잠을 자듯 그렇게 늘어져 있었 때문이었다.
다. 눈앞에 수백 마리의 도요새 무리가 바다와 하늘 사이 무 “물론 히, 힘든 문제지요. 그렇다고 이 세월이 세상 끝날
공천지를 가르며 점점이 날고 있었다. 날개를 파닥파닥 상하 까지 갈 건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벌써 엔간히 취해 있었
로 쳐대며 바람에 쫓기듯 삐라처럼 남으로 남으로 떠내려가 다.
고 있었다. 그런데 병국의 눈앞에 한 마리의 도요새가 무리 “아무래도 내 평생 통일은 글렀네. 생이별한 처자식은 영
에서 떨어져 나와 힘없이 처져 날더니 저공으로 떨어져 내려 영 못 볼 것 같아. 삼십 년을 하루같이 기다려 오다 백발이
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낙오된 새는 지쳐 더 날 힘을 잃고 다 된 마당 아닌가. 사람 목숨도 한계가 있는데 살면 언제까
꽃잎 지듯 바다로 향해 떨어졌다. 암흑천지의 밤이었다. 파 지 산다구.” 강회장의 허탈한 목소리였다.
도는 높았고 바람은 드세었다. 멀리로 깜박깜박 등대불빛이 “형님, 역사란 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세상의 변
보였다. 도요새 무리는 등대불빛을 향해 곧장 날아가고 있었 혁이란 아무도 예, 예측을 못 해요.”
다. 그러나 어둠 속에 가린 등대의 몸체를 미처 피하지 못한 “에끼, 이 사람아. 마른 땅에 물 고이랴. 남북한 서로가
몇십 마리의 새가 등대 벽에 머리를 박고 떨어졌다. 다시 낮 닮은 점이 있어야지. 평화통일은 어렵네, 내남없이 강병책만
이었다. 강 하구와 벼를 베고 난 논바닥에서 도요새 무리가 일삼으니 언제 가서 형 아우 하고 지낼 것이며, 양보하는 맘
쉬고 있었다. 하늘 높이 점처럼 떠있던 매 한 마리가 갑자기 들을 가지겠는가.”
수직으로 쏜살같이 떨어져 왔다. 매는 미처 날 틈을 못 찾고 “허허, 형님도. 요즘 바, 밤잠이 없다 보니깐 한밤중에
쫓음걸음을 하는 도요새 한 마리를 쉽게 포획했다. 포획당한 문득 잠이 깨지요. 그러면 세상이 온통 쥐, 쥐죽은 듯 조용
도요새가 매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채 애처롭게 울 동안 하고 깜깜한 게 영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딥니다. 시간은 또
다른 도요새 무리는 재빠르게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또 사냥 왜 그렇게 더, 더디게 가는지, 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
꾼이 도요새를 수렵하고, 중금속에 오염된 폐수와 그 폐수 면 그만 아주 날이 안 새, 샐 것 같은 맘까지 들거든요. 무,
속에 살고 있는 먹이가 도요새의 새로운 적으로 부상되었다. 무슨 재주로 세상이 온통 환해지고 자던 사람을 다 깨워 놀
자유로운 삶의 터를 찾아 고통의 길고 긴 도정 중에 나는 그 까, 하고 생각하면 세상 이치가 묘하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
렇게 낙오되는 도요새가 아닐까. 대열에서 낙오되는 그 수요 나 어김없이 새, 새벽은 찾아오지요, 이 고비만 넘기면 토,
가 몇백 마리, 아니 몇천 마리 중의 하나일지라도 내가 바로 통일도 그렇게 찾아옵니다. 설령 내가 죽을 때까지 고향땅
그 하나가 되어 죽어 버린 것이 아닐까. 설령 이렇게 숨쉬며 못 밟는다 해도 아들놈은 바, 반드시 이 애비 뼈를 거기다
살아 있어도 혼이 빠져 버린 가사상태일는지도 몰라. 스스로 옮겨 묻어 줄 거예요.”
를 괴롭히는 자책이 꼬리를 물고 그의 얼을 뽑았다. “아우, 자넨 그렇게 새벽같이 통일이 올 거라고 믿는다
“종점이에요. 손님은 안 내리셔요?” 이 말이군.”
병국이가 눈을 뜨니 버스 안내원이었다. 버스 안은 비어 “다른 사람은 관두고라도 형님하고 저하고 매, 맺힌 구천
있었다. 병국은 쫓기듯 버스에서 내렸다. 웅포리였다. 그는 의 한만 합치더라도 하늘이 필경 그 원을 드, 들어 줄 겁니
주차장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풍이 시원하 다. 새벽이 그렇게 오듯이…….”
게 그의 얼굴을 핥았다. 그는 모래톱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술집 안으로 들어가 그들 사이에 섞일까 어쩔까 하다가 병국
리고 끝닿은 데 없이 펼쳐진 바다 멀리로 시선을 주었다. 서 은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리고 말았다. 저들의 맺힌 한에 그
편으로 기운 햇살을 받아 먼바다의 물결이 은빛 광택을 띠고 자신의 말이 아무런 도움이 못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있었다. 그는 그때부터 그 먼 데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바다와 하늘은 이제 잔광마저 어둠에 묻혀 지워져 버렸고
바다가 그 붉은빛에 반사되어 금빛 어룽으로 번질 때까지 그 저 멀리 장진포 쪽의 등대만이 빤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동안 그는 갈매기 외 한 무리의 런데 병국의 눈앞에 홀연히 한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청둥오리떼가 동진강 하루 쪽으로 북상하는 것을 보았고 작 도요새의 유연한 비상은 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나는 날개
은 물떼새들이 암벽이 돌출한 장진포 쪽으로 점점이 날아가 치기의 비행이 아니었다. 날개를 펼친 채로 기류를 교묘하게
는 모양도 보았다. 이용하여 나는 돛 역할의 비행이었다. 맞바람의 상승 기류를
바닷물이 암청색으로 변하고 바람이 차가워지자 병국은 자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중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옆으
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내 쪽으로는 이미 어둠살이 내리고 로 받아 활공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섬세한 율동이 눈앞에
있었고 비 공단의 임립한 굴뚝들도 그 어둠 속에 잠겨 가고 잡힐듯 떠올랐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
있었다. 그는 식당이란 간판을 내걸고 벌써부터 색등을 요란 에다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느냐? 병국이가 낮은 소리로 중
하게 켠 유흥가를 지났다. 해주집 쪽으로 가는 외진 오솔길 얼거리며 도요새를 따라갔다. 그러자 도요새의 비행은 그의
로 접어들자 다리가 후들거려 발걸음이 정확치가 못했다. 위 눈앞에서 곧 사라지고 말았다. 병국은 종점 쪽으로 걸음을
벽을 긁으며 허기가 전신을 저려 왔다. 담배를 태우지 않는 빨리했다. (『연』, 나남, 1994 )

- 25 -

You might also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