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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_2012년 11월 22일

각본 : 박주석 l 각색 : 장준환, 박주석 l 감독 : 장준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니체 -

화이_2012_1122_FINAL.hwp
1. Prologue - 어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어린 아이의 겁에 질린 숨소리와 흐느낌.


어둠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어떤 형체, 아이를 보는 듯 스윽 움직인다.
순간 사방을 어지러이 뛰어다니는 발소리들이 빠르게 들리고,
아이의 시선이 소리의 정체를 쫓아 보려하지만 잡을 수가 없다.
발소리가 가까워지며 아이를 스치는 듯 아이의 질겁하는 소리가 고조되더니,
갑자기 아이를 덮치는 어떤 시선.

화이 (소리) 어둠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그 속에는......

덜컹덜컹 거리는 열차소리가 점점 커지며,

2. 1호선 열차 안 – 낮

열차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알루미늄 가방.
칼갈이를 파는 잡상인의 목소리, 다음 역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 등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가운데...

창호 (소리) 가방에 손 대지마...

쓱 선반 위 가방을 잡아 내리는 손, 맞은편에 신문을 들고 앉아있던 험학한 인상의


남자가 눈짓을 보내면 형사들의 날카로운 눈빛이 빠르게 얽힌다.

창호 (소리) 니미 씨발 손님들이 달라붙었어...

3. 경찰서 복도 끝 – 낮

어두침침한 복도 끝, 힐끔힐끔 서성이며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창호(31세).

화이_2012_1122_FINAL.hwp
앞으로 지나가는 제복 여경 둘이 창호에게 인사를 하고,

창호 (대충 인사 받으며 수화기에 난처한 듯) ...상부에서 비공개 지시했데... 그래...


...에이씨 몰랐으니까 이제 말하지. ...거 누가 탔어?

4. 도로 / 봉고차 안 – 낮

벌판 사이를 달리는 1호선 열차가 보이는 봉고차 안.


창밖을 보며 통화하고 있는 차갑고 지적인 인상의 남자 진성(31세).
왼쪽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있다.

진성 (차분한 목소리로) 범수.


창호 (소리) 내릴 수 있겠냐?

운전을 하던 순한 인상의 기태(28세), 초조한 듯 진성을 힐끔힐끔 본다.

진성 (잠시 생각하고는) 내려 봐야지.


(전화를 끊고 뒷좌석을 돌아보며) 경찰이 탔어요.

불그스름한 잎의 나무가 심어진 커다란 화분을 바라보고 있는 석태(33세).

석태 (혼잣말하듯) 왜 부모라는 것들이, 자식 귀한 줄을 몰라...

5. 1호선 열차 안 - 낮

‘삐릭삐릭’ 신호음 선행하고 문 앞에 서서 삐삐를 확인하는 범수.


범수의 행동을 주시하며 잡상인을 지나쳐 천천히 접근하는 형사들.

범수 (호출기 넣고 잡상인에게) 아저씨, 그거 좀 볼 수 있어요?


잡상인 (칼을 들고 범수 쪽으로 다가오며) 그럼요, 봐요 봐. 날이 얼마나 오슬오슬 한지...

잡상인의 칼이 범수 앞으로 다가오자 잡상인의 팔을 꺾어 뒤로 돌아서며 잡상인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범수. 순식간이다.
재빨리 총을 꺼내 범수를 겨누는 형사들.
문 쪽에 기대선 범수, 왼손을 품속에 넣었다 빼면 손에 들려 있는 노리쇠가 두 개
있는 원시적인 2발 권총.

-2-
험악남 (망설이듯 멈칫하며) 야, 저거 총이야?
형사1 (쥐어짜듯 슬금슬금 전진하며) 씨발... 그냥 덮치시죠?

범수, 형사들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방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투캉!’ 자물쇠 터지며 가방에서 쏟아지는 가짜 돈들, 따라붙는 일반 승객들의 비명.

6. 전철역 플랫폼 - 낮

전동차문 열리고, 인질 바짝 조이며 플랫폼으로 뒷걸음질로 나오는 범수.


어찌하지 못하고 문 너머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형사들.
이때 열차 문이 닫히기 시작하고, 형사1 “씨발!” 소리 지르며 문으로 달려드는데...
‘탕!’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범수. 형사1 뒤로 쓰러지자 닫히는 열차 문.
창에 붙어 욕지거리 하는 형사들을 싣고 떠나는 열차.
이 때 다시 ‘탕!’ 총소리 들리면 돌아보는 범수, 옆문으로 내린 듯 총을 겨누고 있는
어리숙해 보이는 신참 형사.

신참 (이를 악물고) 야 이 새끼야, 그.. 그 사람 안 놔줘?!


무표정하게 빈총을 쳐다보던 범수, 총을 버리더니 순순히 칼을 내린다.
잡상인, 멀뚱히 범수를 돌아보더니 형사를 본다.

신참 (잡상인에게) 일루 오세요, 천천히.

슬금슬금 형사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돌진하듯 달려들기 시작하는


잡상인, 형사의 품으로 파고들며 단숨에 명치에 칼을 쑤셔 박는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춤주춤 뒷걸음치다가 철로로 떨어지는 신참 형사.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는 잡상인, 동범(29세)이다.

동범 (칼을 보며, 낄낄) 이 걸 어쩌냐? 잘 갈렸다. 잘 갈렸어.

7. 비닐하우스 외관 – 낮

홀로 서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인상적인 국도 변 분지, 버드나무 아래 검은 차광


막으로 뒤덮인 비닐하우스가 덩그러니 보이고, 붉은 나무 화분을 들고 하우스 안으
로 들어가는 석태, 진성, 동범, 기태, 범수.

8. 비닐하우스 안 – 낮

-3-
판자와 철근으로 얼기설기 지어놓은 벽면. 어지러이 놓인 화초들, 간이침대와 싱크
대, 그 위로 느리고 성의 없이 감자 껍질을 벗기는 파르라니 한 손이 보인다.
테이블위에 놓인 불그스름한 나무 화분을 보며 낡은 소파에 둘러 앉아 있는 일당들.
범수는 사냥총을 꺾어서 내부를 손질하고 있다.

기태 (휘둥그레져서) 무...묻어? 사...살아 있는데?


동범 (캠코더로 나무를 찍으며, 낄낄) 시들시들해, 거의 맛 갔어.
진성 (석태에게 차분하게) 형, 이걸로 마무리하죠. 이제 리스크가 너무 커요.
기태 자...잘 살아있는 걸 알면 어...어떻게든 돈을 거...건네 올 거야. 그...그지?
진성 아니, 그런 차원이 아니야. 우린 경찰을 죽였거든.
동범 (낄낄) 정당방위였어, 총을 겨누고 있었다구, 그지 범수야?

대답 없는 범수, 무표정하게 사냥총에 탄을 집어넣는다.

석태 (가만히 화분을 보다가 나지막이) ...어차피 죽을 거야. 그때까지만 지켜보지.


범수 (철컥 총을 장전하더니 화분으로 다가가며) 스타일이 안 맞어...

화분에 총구를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범수. 그리고 거의 동시에 총신을 잡


아 올리는 석태.
‘탕!’ 발사된 총알, 지붕을 뚫고 나가며 우르르 무너지는 합판들.
부엌에서 감자를 깎던 손, 겁에 질린 신음 속에 파르르 떨리며 멈춰있다.

석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범수를 노려보며) 결정은 내가 해. ... 알았어?

구멍 난 지붕으로 쏟아지는 햇살, 날리는 먼지 속에 서로 노려보는 범수와 석태.

기태 (석태와 범수 사이로 끼어들며) 그...그럼 겨...결정 한 거지?

못마땅한 표정의 진성, 소파에 몸을 묻으며 관자놀이를 누른다. 기태가 나무를 뽑으


려하면 캠코더로 나무 아래쪽을 찍는 동범. 기태가 화분에 심어진 나무를 잡고 쑥
들어 올리자 이중으로 만들어진 화분이 드러난다. 화분 안에 쪼그려서 쏙 들어가
있는 어린아이, 얼굴에 씌워진 복면사이로 토사물이 흘러나와 있다.

기태 (아이를 짐짝처럼 안아들며) 어... 토...토 했네. 아...아픈가?


동범 (낄낄) 으... 드러. (부엌을 향해) 야, 형수님! 여기 좀 와봐!

칼과 감자를 내려놓고 가슴 위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는 손. 절망적인 얼굴로 일당

-4-
들을 돌아보는 멍투성이의 초췌한 여자, 영주(27세). 쩔뚝거리며 돌아 나가는 영주
의 양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있다. 그 모습 위로... 자막 - 1998년 봄
(fade out)

검은 흙 속으로 하얀 뿌리가 어지럽게 뻗어나가는 기괴한 화면 이어지며


그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타이틀

9. 고급 저택 앞 / 스타렉스 차안 - 낮

Top Credit 시작되고...


현관 옆 담벼락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작동중임을 알리는 붉은 램프가 꺼진다.
담 옆에 주차된 차안, 누군가의 무릎에 놓여 있는 노트북, 빠르게 단축키들을 누르
며 유려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다시 들어오는 감시카메라 붉은 램프.

중년 (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 으... 아... 음... 듣던 대로 죽이네...

10. 고급 저택 현관 - 낮

중년 (소리) 거 눈은 왜 그런 거야?
맹인 (소리) 날 때부터 이랬죠, 뭐.

현관 자물쇠 안으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만능키가 ‘철컥’ 소리 내며 돌아가고


차분하게 번호키를 누르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

11. 고급 저택 안방 - 낮

상의를 벗고 금빛자수 보료에 누워있는 육덕진 중년의 얼굴.

중년 (아랫사람 대하듯) 그럼 평생 아무것도 못 봤어?


맹인 아닙니다. 아주 가까이 있는 건보여요.

중년을 부드럽게 마사지하고 있는 늙은 맹인 안마사.


그 너머로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전통 자개장이 보인다.

-5-
맹인 (안마를 멈추며) 근데 누가 오시기로 했나보죠?
중년 응?
맹인 (귀를 기울이듯) 밖에 누가 온 거 같은데요?

방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CCTV 모니터. 고개를 살짝 들어 모니터를 보는 중년.


모니터에 아무도 없는 대문, 현관, 마당 등이 보인다.

중년 (무시하듯) 오긴 누가 와...
맹인 (귀를 기울이며) 아니요, 왔는데... 마당에, 아니 현관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방 문 쪽을 보려는 중년, 이때 방으로 뛰어들며 중년의 안면을


가격하는 복면 쓴 괴한들.

(cut to)

보료 위에 바른 자세로 동상처럼 앉아 있는 맹인의 뿌연 눈동자.


방안을 구경하는 복면 쓴 석태(47세), 촛대, 도자기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매끈한 정장차림에 복면 쓴 범수(39세), 손목에 수갑이 채워
진 중년을 한발로 지그시 밟고 있다.
자개장 문이 떨어진 자리에 있는 붙박이 금고. 금고 열쇠 구멍에 연장을 집어넣고
요리조리 만지고 있는 복면 쓴 동범(43세), 금고의 열쇠를 돌린다. 철컥.

동범 (돌아보며) 됐지용~. 손.

중년을 일으켜 세워 금고 앞으로 데려가는 범수.

중년 (끌고 가는 범수에게) 왜...왜 이래? 니..니들 내가 누군지 알어?


동범 (낄낄) 알어 새꺄. 열어.

동범, 손잡이를 젖혀보면, 손잡이 안쪽에 장착되어 있는 지문 인식기.

동범 (낄낄) 받아먹었으면 빨랑빨랑 빨아야지, 다 소문났잖아.


중년 뭐.. 뭘 받아? 헛소문야... 헛소문.

귀찮은 듯 중년의 오른손을 움켜잡아 올리는 범수, 손잡이를 잡게 하려 한다.

-6-
중년 (엄살 부리듯 오른손을 잡아 빼며) 아, 아, 아, 알았어 알았어 열게 열게!
(잠시 생각하고는 왼손을 들며) 그...근데 이거 이...이쪽 손이야.

맹인의 눈앞에다 손을 휘적휘적 저어보고 있던 석태, 돌아보더니 중년에게 천천히


다가온다.

석태 (물끄러미 보다가 귓속말하듯) 잘 생각해... 거짓말은 들키지 않아야 하는 거야.


중년 (왼손을 들어 보이며) 거...거짓말 아냐. 이 손, 이 손이 맞아.
석태 ...좋아... 열어.

왼손을 천천히 가져가 손잡이를 움켜쥐는 중년.


순간 ‘삐릭 삐릭’ 에러 메세지가 뜨더니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금고 뒤쪽에서 재빨리 전기 충격기 꺼내드는 중년.
3단 접이식 전기충격기가 촥 펴지며 요란하게 지지직거린다.

중년 (헐떡헐떡 웃으며) 새끼들. 사람 우습게 봤어...


(충격기 지직거리며) 니들 오늘 운 좋은 줄 알어. 시끄러워지기 싫으니까 그냥 나
가...
석태 (노려보며)......
중년 뭔 말인지 몰라? 서로 면상 안 텄으니까 빨리 꺼지라고!
석태 (씩 웃더니 복면을 벗어서 얼굴을 보여주며) ...이제 봤지?
(휙 돌아서서 맹인에게 다가가며) 죽여.
중년 (당혹) ?!
동범 (복면을 벗으며, 낄낄) 죽여도 되나?
석태 (맹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돼, 그냥 죽여.

품속에 손을 넣었다 빼는 범수,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수제 권총이 들려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중년.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범수, 퓨슉!
복면을 벗는 범수, 죽은 중년을 내려 보는 무표정한 얼굴.
석태가 맹인의 십자가 목걸이를 들어본다.

석태 (십자가 만지작거리며) ...정말 안보여?

석태 손에 튄 피 냄새를 맡는 듯 벌름거리는 맹인의 코.


천천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맹인.

석태 ...전혀?

-7-
맹인 (창백하게) ...네.

불쑥 맹인의 머리를 움켜쥐고는 다른 손으로 옆에 있는 촛대를 잡아채는 석태.


맹인의 시선, 완전 뭉개진 초점에서 불쑥 눈앞에 등장하는 예리한 금속.
맹인의 안구 바로 앞에 멈춰진 촛대 끝.
맹인의 눈동자, 파르르 떨리는 것 같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맹인을 관찰하는 석태 뒤로 중년의 손으로 금고를 여는 동범과 범수가 보이고,

동범 (금고 속 돈 다발들을 가방에 쑤셔 넣으며, 낄낄) 뭐 한데냐? 안 죽일 거야?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는 맹인, 죽음을 직감한 듯 흐느끼기 시작한다.


맹인의 머리를 감싸며 얼굴을 들이대는 석태, 이마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석태 (달래듯 나지막이) 경찰이 오면 명심해... 넌 날 못 봤지만 내가 널 봤어.

맹인의 아주 낮은 심도로 보이는 석태의 커다란 눈동자.

12. 고급 저택 앞 / 스타렉스 차안 - 낮

감시카메라의 붉은 램프가 꺼지고,


저택에서 나온 석태, 동범, 범수가 스타렉스에 승차한다.

진성 (노트북 정리하다가 룸미러로 뒤를 보며 날카롭게) 경보는 왜 울린 거야?


동범 (낄낄) 이런 게 재미지, 그지 기태야?
기태 (하나도 재미없는 듯 팩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진성에게) 추...출발할까?

손을 들어 기다리라고 신호하는 진성, 손목시계와 사이드 미러를 번갈아 본다.


사이드 미러로 언덕 아래서 빠르게 꺾어 올라오는 사설경비차량들이 보이고,

진성 (혼잣말하듯) 지금.
기태 (소주를 마시다가) 응? 지...지...지금?

13. 고급 저택 앞에서 Y자 갈림길까지 - 낮

기태의 더듬거리는 말과 달리 스키드마크를 남기며 급발진 하는 스타렉스.


경비회사 차량의 시선으로 쏜살같이 달아나는 스타렉스가 보인다. 순식간에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스타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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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추격하는 경비차량도 코너를 돌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버린 스타렉
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Y자 갈림길. 당황하는 경비원들.

경비1 뭐야? 어느 쪽이야?

이때 Y자 우측길에 넘어져 있는 교복 입은 소년을 발견하는 경비원2. 소년의 주변


에는 하얀 봉지에서 쏟아져 나온 한라봉들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다.

경비2 (무전기를 들며) 좌측! 좌측으로!

스타렉스가 달아난 듯 한 길 끝을 보던 소년, 요란하게 달려오는 경비차량 쪽을 돌


아본다. 놀람과 분함이 뒤섞인 하얗고 앳된 얼굴, 화이(17세)다. 빠르고 아슬아슬하
게 지나쳐가는 경비차량, 길에 널브러진 한라봉들 중 몇 개를 짓밟으며 내지른다.
사라지는 경비차량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화이, 가만히 한라봉을 줍기 시작한다.

14. 화원2리 버스정거장 – 낮

햇살 속에 보이는 버스, 먼지를 뿌리며 빠져 나가면 한라봉 봉지를 들고 있는 화이


의 뒷모습.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고 가만히 서 있는 화이. 보면, 버스 정거장 한
쪽에서 빠진 자전거 체인을 끼우며 낑낑대는 여학생, 유경(17세).
화이, 말을 걸까 망설이는 듯 천천히 발을 떼어 보는데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는 유
경. 다급히 눈길을 피하는 화이, 돌아서서 걸어가려는데,

유경 야! 남학생, 나 좀 도와주면 안돼?

15. 화원2리 시골길 – 낮

싱그러운 햇살, 논밭을 끼고 도는 길 위로 잘 굴러가고 있는 자전거 바퀴.


자전거 양 옆으로 나란히 걷고 있는 화이와 유경.

유경 나는 너 몇 번 봤는데, 너 이 동네 살지?
화이 (벌게져서 앞만 보고) ......
유경 근데 그 교복은 어디 학교야?
화이 (대답을 피하듯 땅만 보고)......
유경 (대답 없는 화이를 보다가 쀼루퉁) 나랑 말하기 싫은가 보구나?

둘이 가는 길에 나타난 갈림길. 멈춰서는 화이와 유경. 벌게진 얼굴로 유경을 보다

-9-
가 한라봉 하나를 꺼내주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왼쪽 길을 향해 가는 화이. 그 뒷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는 유경.

유경 (소리치듯) 야 남학생, 넌 이름이 뭐야?

우두커니 멈춰서는 화이, 천천히 돌아본다.

화이 (잠시 망설이다가) ...화이... 화이야.


유경 (재밌는 듯 웃으며) 화이? 이름도 특이하네...

머리를 긁적이는 화이, 돌아서서 다시 간다.

유경 잘 가! 화이야! (한라봉 흔들며) 잘 먹을 게!

걸어가는 화이의 뒷모습, 그 너머로 보이는 음산한 농원의 실루엣.

16.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지폐계수기에서 빠르게 넘어가는 오만원권. 고급스런 소파에 앉아 있는 일당들.

진성 (격앙돼서) 어차피 신고도 못할 돈인데 죽이긴 왜 죽여?!


동범 (낄낄) 그 인간 얘기하다보니까 도덕적으로 좀 문제가 있더라구. 사기꾼이야, 사기
꾼.
진성 (화를 참는 듯) 지금 농담이 나와? 그래도 전직 검사야. 잘못하면 일이 얼마나 커지
는 지 몰라? 그리고, 죽일 거면 다 죽여야지 왜 살려 둔거야?! 왜 일을 계획대로 안하고
감 정적으로 해? 이럴 거면 계획을 뭐 하러...
석태 (담뱃불 붙이며) 그만해... 알아들었으니까.
(쌓여 있는 돈다발을 발로 툭 차며) 어차피 이게 계획 아냐?

가만히 서로 노려보는 석태와 진성.


이런 상황에 관심 없는 듯 목을 빼고 창밖만 보는 기태.

17. 농원 이층집 뒷문 / 복도 – 낮

녹슨 연장들이 걸려 있는 음침한 뒷문, 열쇠로 문을 여는 손, 화이다.


문득 발쪽에 보이는 지하실 환기창을 보는 화이. 어두운 지하실 안, 거대한 뭔가 스
윽 움직이는 것 같다. 일부러 외면하는 듯 천천히 집으로 들어가는 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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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농원 이층집 복도 / 화장실 – 낮

거실에서 어둑한 복도로 걸어 들어오는 범수, 복도 한쪽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자


변기에 소변을 보고 있는 화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범수, 화이 옆으로 와서 같이 오줌을 눈다.
변기 앞으로 바싹 붙어 있는 둘. 무표정하게 오줌을 누는 둘.

범수 (싸다가 대뜸) ...이따 목욕가자.


화이 (퉁명스럽게) 싫어요.
범수 (화이의 거시기를 힐끔 보고는) 뭐 어때 임마.

지퍼를 올리는 화이, 오줌을 누고 있는 범수를 엉덩이로 툭 밀치고 나간다.


주춤주춤 밀려나는 범수. ‘어, 어?’

19.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창밖을 보고 있던 기태, 문득 복도 쪽을 보더니 얼굴이 활짝 밝아진다.

화이 다녀왔습니다.
기태 (배시시) 어...어디로 왔어? 계...계속 봤는데?
화이 뒷문.
기태 (서운한 듯) 아...아빠한테 전화하지 히...힘들게 걸어와...
화이 (피식) 힘들긴 뭘.
동범 (돈 한 묶음을 화이에게 건네며 낄낄) 아들, 오늘 고생했는데 이거 가져.
기태 (말리듯) 너...너무 많어... 애...애한테...
동범 (낄낄) 원래 남자는 주머니에 돈이 빵빵해야 돼, 알지?
화이 (피식, 오만원권 두 장만 빼며) 전 이거면 빵빵해요.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진성을 보고는) 다녀왔습니다, 아빠.
진성 (미안한 듯 올려보며) 어, 그래, (미소로) 별 일 없었지?
화이 (끄덕끄덕) ......
석태 (담배를 끄며 보지도 않고) ...오늘 수고했다.
화이 (돌아서 석태를 보며) 아니에요, 아버지.

20. 농원 이층집 부엌 뒤 수돗가 – 낮

-11-
부엌과 연결된 작은 수돗가. 커다란 대야에 상추를 씻어서 정리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으로 다가가는 시선. 후드득 대야에 쏟아져 내리는 한라봉들. 웃으며 돌아보
는 여자의 편안한 얼굴, 영주(41세)다.

영주 (한라봉 들어보며 빙긋) 내가 먹고 싶다고 말했나?


화이 (피식) 아니요... 원래 좋아하시잖아요.
영주 (화이에게 미소 지으며) 같이 먹자. 잠깐만...

둘러보더니 일어나서 쟁반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 영주, 걸음걸이가 어색하다. 자


세히 보면 엄지발가락이 잘려나간 영주의 발. 그 모습 위로... 자막 - 2012년 겨울.

21. 농원 뒤 숲 속 – 낮

햇빛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숲 속,


멧돼지머리가 쇠갈고리에 걸려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순간, 무언가 날아와 돼지머리 귀퉁이를 퍽하고 날려 버린다.
보면, 백 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화이가 저격 총으로 돼지머리를 겨누고 있다.
화이 뒤에서 망원경으로 표적을 보고 있는 석태.
화이 옆에서 화이를 내려 보고 있는 범수.
호흡이 멈춘 듯 미동도 없이 스코프를 보는 화이, 방아쇠를 당긴다. 퓨슉!
‘퍽’ 살점 날리며 흔들리는 돼지 머리.
화이의 스코프를 보면, 흔들리는 돼지머리가 빽빽한 나무 사이 얇은 틈으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다시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퓨슉!
‘퍽!’ 터지듯 박살나는 돼지머리.
스코프에서 눈을 떼는 화이.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화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석태.
그 위로 들리는 창호의 목소리...

창호 (소리) 씨바, 석태형 이제 늙어서 완전 맛탱이 간 거 아냐?


어떻게 갈수록 뻘짓만 하고 있어?...

22.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 낮

이층이라서 창밖으로 멀리 있는 숲까지 보이는 방. 벽면에는 책과 음반들이 빼곡하


고 고급 수제기타들이 장식품처럼 걸려있다. 방 한가운데 창을 등지고 있는 커다란
책상, 진성이 책을 읽으며 통화를 하고 있다.

창호 (소리)...아니 설거지하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내 구역에다 설사를 해노면 어떡해?

-12-
니미 씨발 작살까지 땡겨가지고...
진성 (책을 넘기며) 맹인은?
창호 (소리) 지금 쫄아서 제정신이 아니긴 한데, 씨발 또 모르지.

이때 노크도 없이 방으로 들어오는 화이, 두꺼운 책과 우편물들을 들고 있다.

창호 (소리) 내가 볼 때 석태형 이제 비전 없어. 좀 더 큰 바닥에서 놀아야지.

진성 앞 책상에다 우편물들을 놓고 책장으로 가서 책을 살피는 화이.

창호 (소리) 야, 내가 인천 전회장하고 쪼인해 줄까?


진성 (우편물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누구?
창호 (소리) 거 인천 전승기 회장. 비전 있잖아.
진성 (우편물 하나를 보더니 봉투를 뜯으며) 비전은, 그냥 건달들이 모여서 사업하는 거
지.
창호 (소리) 야, 예전에 인천 전회장이 아니야. 요즘 수도권 굵직한 재개발은 전부 전회
장 이 하고 있어. 이 인간 이제 대한민국 혈관이야.
진성 (내용물을 보며) 그래?

23. 재개발 단지 - 낮

곳곳에 허물어지고 있는 넓은 재개발 단지 보이고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창호(45


세), 카메라를 목에 메고 블루투스로 통화하고 있다.

창호 지금 걔네들 우리 동네에도 재개발 한 건 하고 있거든, 근데 한집이 알 박고 안 나


가서 좆 나게 골친 가봐. 어때? 이 거 한 번 해결 해볼래?
진성 (소리) 야, 우리가 무슨 용역 깡패냐?
창호 (카메라 들고 포커스 맞추며) 야, 깡패 짓은 벌써 다 했어.
부수고, 불 지르고, 협박하고, 근데 나갈 생각을 안 한데. 법적으로도 안되고...

‘찰칵,찰칵’ 뷰파인더 속에, 허물어진 벽과 불에 타버린 정원이 인상적인 80년대식


이층집이 보인다.

24. 농원 이층집 진성 방 - 낮

창호 (소리) ...그래서 방법이 없어... 죽여야 돼.


진성 (우편물 보다가, 멈칫) ......왜 그렇게 안 나가는 건데, 그 사람들?

-13-
창호 (소리) 어, 그게, 좀 골 때리게 됐는데... 임형택이 살더라구.
진성 (아리송) 누구? 이명택?
창호 (소리) 아 새끼, 성지 시멘트 임형태액!
진성 (흠칫, 화이를 보며) ......
창호 (소리) 야, 이거 쎄게 불러도 돼. 그리고 일만 깔끔하게 되면 전회장하고 안면도 트
고, 비젼도 생기고. 어때? 한번 쪼인해 봐?
진성 (둘러대는 듯) 어 그래, 근데 지금 좀 바빠서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뭐? 니가 뭐가 바빠?’하는 창호의 소리가 들리며 그냥 전화를 끊는 진성.

화이 (책들을 펼쳐 보며, 피식) 하나두 안 바쁘면서...

잠시 멍하니 있던 진성, 화이를 보며 피식 웃어 보이더니 우편물을 흔든다.

25. 재개발 단지 – 낮

경광등이 올려 진 차에 타려던 창호, 잠시 생각하더니 전화기를 든다.

26.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낮

책상 앞으로 와서 우편물을 가만히 내려 보는 화이의 굳은 얼굴. 영어로 인쇄된 태


국 대학 합격증이다.

진성 (어렵게 입을 떼듯) 입학 수속만 하면 돼. (서랍에서 여권을 꺼내며) 그리고 이거.

‘SINGAPORE PASSPORT’라고 쓰인 여권을 받아 보는 화이, 펼쳐보면 안에 화이의


사진이 붙어 있고, 영어로 쓰인 신분증도 끼워 있는 게 보인다.

진성 기본적인 건 아빠가 준비해 줄거지만, 가면... 당분간 혼자 살아야 돼, 알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신분증을 보는 화이.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석태, 진성과 화이를 본다.
왠지 정적이 감도는 실내. 주섬주섬 일어서는 화이.

화이 말씀 나누세요.

왠지 주눅 들어서 나가는 화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는 석태와 진성.

-14-
27.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오래된 연속극이 나오는 TV를 보며 소파에 앉아 뜨개질하는 영주.


교복으로 갈아입고 이층에서 내려오는 화이.

영주 (돌아보며) 어디 가?
화이 시내요.
영주 (뜨개질 하던 스웨터를 내밀며) 요즘 자주 나가네? 또 그거 입고 가?
화이 (스웨터에 어깨를 대주며) ...이게 편해요. 튀지도 않고...
영주 (살짝 웃으며) 그새 또 컸네...

가방을 둘러매며 현관으로 걸어가는 화이, 현관문에 장착된 번호키를 누른다.

영주 (표정 없이 스웨터를 다시 풀어내며) 일찍 들어와.

28.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 낮

대학 합격증을 보고 있는 석태.

석태 (대학 브로슈어 펼쳐보며 피식)... 필리핀?... 가겠다던가?


진성 (날카롭게 여권 뺏어들며) 보내야죠... 보내기로 했잖아요.
석태 ...그랬었나?
진성 (서류 챙기며) 이렇게 계속 키울 순 없어요.
(석태 돌아보며 단호하게) 화이는... 우리랑 달라요.

몸을 돌려 가만히 창밖을 보는 석태, 마당을 빠져나가는 화이가 보인다.

석태 ...근데 왜 그렇게 안 나가는 거래? 임형택.

석태를 보는 진성의 어두운 얼굴.

29. 농원 전경 – 낮

예전의 커다란 버드나무 밑으로 잘 꾸며진 비닐하우스가 여러 동 보이고 그 옆으로


고풍스런 이층 목조 가옥 서 있다. 그 앞을 걷고 있는 화이, 헤드폰을 끼고 MD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화이. 여기에 음악 흐르며...

-15-
30. 고등학교 건너편 문방구 앞 / 거리 – 낮

연습장에 꼬마들이 오락기로 오락하는 개 구진 모습이 그려지고 있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서 눈앞의 꼬마들을 그리고 있는 화이. 그런 화이 옆으로 고등
학생들이 왁자지껄 지나간다. 고개를 들어 도로 건너편을 보는 화이.
도로 건너편에 보이는 고등학교 정문, 하교 길에 몰려나오는 고등학생들의 시끌벅
적한 모습이 보이고, 누군가를 발견한 듯 연습장을 덮으며 일어서는 화이.
정문을 나오고 있는 유경, 그 모습을 길 건너에서 힐끗힐끗 보며 따라 걷는 화이.
남학생을 헤드락거는 유경의 왈가닥 같은 모습에 슬며시 미소가 걸리는 화이.
담장을 돌아 사라져가는 유경을 보고 끌려가 듯 무심결에 도로를 건너는 화이. 이
때 날카로운 경적 소리 들리며 화이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화물트럭. 화들짝 뒷걸
음 쳐 트럭을 피하는 화이. 트럭이 지나가고 보면, 돌아보고 있는 유경과 눈이 마주
치고...

31. 시내 버스정거장 - 낮

정거장에 앉아서 핫도그를 들고 있는 화이와 유경.


유경은 화이의 연습장을 보고 있다. 연습장 안에 그려진 스케치들.

유경 우와~ 너 미술 지망이야?
...미술도 돈 많이 들지 않나? 넌 부모님이 괜찮데?
화이 (끄덕끄덕) ......
유경 (연습장을 덮고 핫도그 케첩 발라먹으며) 좋겠다. 난 사진하고 싶은데...
화이 (돌아보며) ?......
유경 (빨며) 때려 치래. 돈 든다고...
(뭔가 생각난 듯 화이 돌아보며) 야.야. 너 나 좀 그려주면 안 돼?
화이 ...어?
유경 미술시간에 자화상 그려오라는데...
있잖아. 이렇게 잘 그리지는 말고 까이거 대충하는 식으로... 어? 어?
토요일 시간 돼?
화이 ...(끄덕끄덕)
유경 (활짝 웃으며) 정말? 졸라 하기 싫었는데 잘됐다.
대신 나도 작품 하나 찍어 줄게~.
(핸드폰 들어서 앵글을 잡더니 화면 보며 갸우뚱) 잠깐만... 뭔가 허전한데?
(화이에게 핫도그 물리며) 좀 물어봐. 그래 좋다 좋아.

-16-
핫도그 물고 어색한 표정의 화이, 좀 우스꽝스럽다.
‘찰칵!’ 사진을 확인하는 유경.

유경 (모니터 확인하며 만족하는 표정으로) 역쉬!! 예술가는 재료를 탓하면 안돼.


(핸드폰을 건네며) 번호.... 사진 보내줄게.

얼떨결에 유경의 전화를 받아 쥔 화이,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우물쭈물 가만히 내


려만 보는데...

유경 (재밌는 상황이 벌어진 듯 손으로 가리키며) 꺅! 어떡해! 저기봐, 저기. 변태! 변태!

화이, 고개 들면 길 건너 룸살롱에서 아가씨의 브래지어 속으로 돈을 쑤셔 넣어주


며 나오는 기태.

유경 와~! (까르르 웃으며) 저 아저씨 완전 대박!!

기태, 해롱거리다 화이를 발견하고 오두방정을 떨며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조각처럼 굳어버린 화이.

유경 (화이와 변태를 번갈아 보더니) 너? ... 아는 사람이야?


화이 ...응... 우리 아빠.

32. 도로 / 스타렉스 차안 – 낮

화이와 기태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차 앞에 장식되어 있고 창밖으로 눈 덮인 논


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창밖으로 팔을 내밀고 평화로운 경치를 즐기는 기태. 운전
을 하고 있는 건 화이다.

화이 술 먹고 운전 좀 하지 마. 위험하잖아.
기태 (히죽히죽 고개 돌리며) 누... 누구야?
화이 (퉁명스럽게) 누구, 몰라.
기태 여...여자 꼬시는 법 가..갈쳐줘?
화이 (운전만 하며) 아니, 안 배울래.
기태 (가르치듯) 이...일단 따 먹어. 가...강제로라도. 그...그럼 반은 니꺼야.
화이 (운전만) 그래, 반, 몸만.
기태 그...그 다음 마...마음을 얻는 피...필살기.

-17-
화이의 눈앞에 손을 척 내밀어 보이는 기태. 중지와 약지는 접고 엄지, 검지, 새끼
만 펴고 있는 모양이다.

화이 (어리 둥절) 그게 뭐야?


기태 이...이거 몰라? 수...수화로 사랑?
화이 근데?

갑자기 사랑의 손 모양을 앞뒤로 움직이는 시늉을 하는 기태.

기태 (움직이는 손에 검지를 가리키며) 구...구녕 (새끼를 가리키며) 또...똥구녕.


(엄지를 가리키며) 이...이건 저...저번에 아...알려준 그...그 거기.
(앞뒤로 계속 움직이며 킥킥) 이...이렇게, 이...이렇게 해주면...
화이 (벙찐 듯) 아 진짜... 아빠는 왜 맨날 그런 얘기만 해?
기태 (웃음이 사그라지며) 재...재미없어? 미...미안...
화이 (갑자기 웃음이 픽 새어나오더니) 말도 안돼 ... 그게 진짜 돼?!
기태 (화이 눈앞으로 손동작을 들이밀며) 다...당연하지! 사...사십년 넘게 여...연구했는데.

장난치듯 계속 손을 들이밀어 보여주는 기태. 웃음을 터트리며 기태의 손을 계속


밀쳐내는 화이. 즐겁게 코너를 도는 화이의 차. 근데 코너를 돌자마자 화이의 눈이
커진다. 기태가 앞을 보면 음주 단속 중인 경찰들이 보이고.

기태 저 시...시키들은... 나...낮에도...에휴... 니...니가 운전하길 잘했네.


화이 (울상이 되며) 아빠... 나 교복.
기태 (화이의 옷을 확인하며) 잉? 그...그니까... 해...핵교도 아...안 댕기는 놈이 왜 맨날
교...교복을 입고 대...댕겨?

33. 도로 / 스타렉스 차안 / 경찰차안 – 낮

화이 차에게 멈추라며 경광봉을 흔드는 경찰. 짙은 선팅이 돼 있어서 내부가 보이


지 않는 화이의 차, 멈추는가 싶더니 타이어 파열음을 내며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경찰1 어! 저...정지!

(cut to)

밀짚모자를 쓰고 갓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그만 할머니. 그 옆으로 화이의 차와 경

-18-
찰차가 쏜살같이 지나가자 할머니의 밀짚모자가 휭 하고 날아간다.
긴 직진 도로를 달리고 있는 화이와 경찰차.

기태 내... 내가 했으면... 버... 벌써 따돌렸어.

발끈하는지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는 화이. RPM이 빠르게 올라가는 계기판.


아슬아슬 앞차를 추월하며 달리는 스타렉스.
만만치 않게 따라붙는 경찰차.

기태 소...속도 맞추고... 바...바로 뒤에 붙게...

왠지 적당히 속도를 맞추며 경찰차를 자기 차 바로 뒤에 붙게 하는 화이.


흥분으로 타오르는 듯 한 화이의 표정.
저 멀리 사거리가 보인다.

기태 이.. 이번 사거리.

화이의 차, 경운기가 다가오는 사거리가 다가오는데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경찰차 안을 보면, 경찰차 보조석에 탄 경찰1이 바싹 긴장해서 몸이 시트로 파고들
려고 한다.

경찰1 경장님, 앞에 경운기, 속도 줄이세요, 속도!


경찰2 (눈에 불을 켜고) 저 새끼가 줄여야 내가 줄 일거 아냐!

다시 화이의 차안.

기태 싸..싸이드 잡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붙잡는 화이, 얼굴이 잔뜩 상기된게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기태 지...지...지금!

기태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화이, 사이드 브레이크 올리면서 핸들을 꺽는다.


경찰차의 시선으로, 화이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충돌할 듯싶더니 굉장한 파
열음을 내며 좌측으로 꺽는게 보인다.
가로수에 뒷 꽁무니를 살짝 부딪히며 튀어나가는 화이의 스타렉스.
어찌해 볼 틈도 없이 경운기를 피해 논두렁에 빠지는 경찰차.

-19-
기태 (웃으며) 타...타이밍이 조...좀 늦었어...
화이 (희열에 차서 장난스럽게) 아빠 말이 늦었어!
기태 내...내가? 아...아니야.
화이 (기태를 흉내) 아까 지... 지... 지... 지금! 이라고 했잖아!

깔깔거리며 웃는 화이와 기태.


눈밭에 처박힌 경찰차에서 경찰 두 명이 기어 나오는 게 보이고 멀리 달려가는 스
타렉스 보인다.

34. 인천 경찰서 앞 / 로비 – 낮

경찰서 마당에서 입구를 향해 통화하며 걸어가고 있는 형사 정민(37세).


낯익은 얼굴... 프롤로그의 신참형사다.

반장 (소리) 야 똘충! 너 이 새끼, 죽고 싶어?


정민 아 씨발 받자마자 정 떨어지게. 왜요?
반장 뭐? 정? 야 이새꺄 너 땜에 난 목 떨어지게 생겼어. 너 당장 안들어와!
정민 (승질나는 듯) 에이씨, 지금 못 들어가요, 인천이예요.
반장 (소리) 야! 너.. 내가 거기 가지 말랬지!!
정민 내가 확실히 진급시켜드릴게. 이번엔 확실하다니까. 낮도깨비.
반장 또 낮도깨비? 야. 총만 쏘면 다 낮도깨비냐?
너 걔네들이랑 뭔 웬수졌어? 이 낮도깨비 같은 새꺄.?!
정민 (전화 끊어버리고 전화기에 대고) 그래 웬수졌다. 웬수졌어. 이 웬수야!!

35. 인천 경찰서 취조실 – 낮

취조실에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앉아 있는 맹인 안마사. 그 앞에 앉아 있는 장형사.

장형사 (한숨 푹) 저기요, 또 처음이랑 다르잖아요. 자꾸 이렇게 번복하시면 곤란해요.

통유리를 통해 취조실 안을 보고 있는 창호, 김형사.

창호 (포기한 듯) 야, 낮도깨비고 밤도깨비고 안 되겠다. 이제 내보내자.


김형사 (수긍하 듯) 네, 반장님.
정민 (낮게 까는 목소리) 제가 한 번 해볼까요?

-20-
창호, 돌아보면 심각한 얼굴로 취조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정민.

창호 (벙벙한 얼굴로) 넌 뭐야?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36. 경찰서 복도 - 낮

몸부림치는 정민을 복도로 끌어내려는 창호, 김형사, 장형사.

정민 씨발, 내가 할 수 있다니까!
창호 니가 하긴 뭘해? 빨리 안 나가?!
정민 (몸부림) 놔! 안 놔?! 에이 씨발, 내가 못하면 책임지고 옷 벗을게! 벗는다고!!

순간 정민의 뒷통수를 강렬하게 후려치는 사람, 형사 과장이다.


형사들 모두 얼어붙은 듯 멈춰서고, 과장을 노려보는 정민.

과장 (핸드폰에) 야, 니네 애 찾았다.
(전화를 끊고 정민을 보며) 벗긴 뭘 벗어, 임마? 남사스런 새끼.

37. 인천 경찰서 취조실 - 낮

취조실 안을 보고 있는 형사과장, 창호, 장형사, 김형사.


통유리 안으로 맹인 눈앞에 손을 휘적휘적 하고 있는 정민이 보이고,
스피커를 통해 “안보여요?... 정말요?” 정민 목소리 들린다.

장형사 저 새끼 뭔데요?
과장 (커피를 마시며) 똘충 최정민 선생이란다.
김형사 똘충요?
과장 똘끼 충만... 광수대서 똘아이로 소문난 새낀데...
(피식) 창의력이 남다르데. 한번 보지 뭐.

초조한 얼굴로 취조실 안을 보는 창호.


정민이 맹인의 눈앞에 라이터를 탁 켜본다. 순간, 확 좁아지는 맹인의 동공.

정민 (피식) 눈동자는 보인다는데?


맹인 (흠칫) ......
정민 보이는데 왜 안 보인다 그래요?
왜? 협박당했어요? 아무 것도 말하지 말래요?

-21-
맹인 (창백해지며) ......
정민 좋아, (서류들 정리하며) 그럼 나가세요.
맹인 (멈칫) ...네?
정민 조사 끝났으니까 나가시라구요.
맹인 ...정말입니까?
정민 (태연하게) 내가 언론에 당신 보인다고 발표할거야. 범인 얼굴 다 봤다고. 그 놈들
이 낮도깨비 맞으면 당신 죽이러 올 거거든? 그때 잡을라고. 그러니까 나가요.
맹인 (덜덜 떨리기 시작하며) ......
정민 에이씨 나가라니까 왜 안나가?! (벌떡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가며) 야, 김과장! 이
사 람 이제 필요 없어! 당장 내보내!

취조실 밖,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정민을 보는 형사들, 다시 취조실 안을 보는데...


공포가 휘감는 듯 부들부들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는 맹인.
가만히 맹인을 보고 있는 창호, 주머니 속으로 꼼지락 대며 전화를 누르는 손.

38.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 낮

<재개발의 부당함 끝까지 알리겠다.>


컴퓨터 화면에 뜬 임형택의 인터뷰 기사를 심각한 얼굴로 보고 있는 진성.
‘또로롱’소리와 함께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창호의 문자.

39. 인천 경찰서 취조실 – 낮

주의 깊게 맹인을 바라보는 정민의 얼굴.

맹인 (벌게진 눈으로 멍하니) 향기... 향기가 났어요.


정민 ...향기요?
맹인 (기억이 떠오르는 듯 떨리며) 그 사람 손에서 향나무 냄새가 났어요...

40. 농원 비닐하우스 - 낮

기묘한 모양의 향나무 분재에 철사를 감고 있던 석태의 손, 흘러나온 진액을 쓰윽


찍어내고, 그 너머로 기태와 함께 분재를 둘러보는 아줌마들 보인다.
이때 비닐하우스로 들어오는 진성, 석태에게 귓속말 한다.

41. 인천 경찰서 취조실 - 낮

-22-
맹인 (괴로워하며) 그 사람들 웃었어요... 시체를 만지면서도... 계속...
정민 (조심스럽게) 혹시, 범인 얼굴 보셨어요?
맹인 (눈물이 고이며) 그 눈... 사람 눈이 아니야... 그 사람...
정민 (낮지만 강하게) 보셨죠? 얼굴?
맹인 (무너지듯 눈물 흐르며) ...네.

42. 동범, 범수 정밀 공업사 – 낮

외국인 노동자 두 명이 금속을 절삭하고 있는 소규모 정밀 공장.


입구로 석태, 기태, 화이가 들어온다. 석태를 아는 듯 ‘안녕하쎄요’ 인사하는 외국인
들. 그 옆 의자에서 입을 벌리고 자고 있던 동범. 그런 동범의 허리에 찬 열쇠꾸러
미를 잡는 기태... 그 손을 날카롭게 잡는 동범, 씩~ 웃는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석
태와 화이. 안쪽에 미닫이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쇠를 깎는 듯 열중하고 있던 범수,
돌아본다.

(cut to)

동범, 철문 안쪽에 자물쇠를 채우고 돌아보면...


맞은편 벽면에 붙박이 된 거대한 문, 비밀번호를 돌리는 범수의 손.
문이 열리고 보이는 내부, 독특한 디자인의 저격총과 권총들이 진열되어 있다.

43. 빌딩 옥상 - 낮

범수가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계단 뒤로 저격총의 망원경을 조립하고 있는


석태, 그 앞에 저격총을 바라보며 겁먹은 얼굴로 앉아 있는 화이 보인다.

석태 살이 찢어졌으면 빨리빨리 꿰매야 돼. 상처가 작다고 놔두면 더 크게 찢어질 수도


있 고 곪아 터질 수도 있는 거야. (조준경을 끼우며) 무슨 말인지 알겠어?
화이 ...네.

가방에서 탄창을 꺼내 확인하더니 ‘철컥’ 탄창을 끼워주는 석태.


저격총을 고정하며 화이에게 넘겨주는 석태.

석태 그냥 돼지머리라고 생각해.
처음 한 번만 당길 수 있으면 다음부턴 방아쇠가 니 손가락을 당기게 될 거야.

화이가 자세를 잡으면 망원경을 들고 빌딩 아래를 내려다보는 석태.

-23-
망원경 시선, 경찰서에서 여경의 도움을 받으며 나오는 맹인, 그 뒤로 어슬렁 따라
나오는 창호.

석태 준비해.

창백해진 화이, 멍하니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댄다.


잠시 헤매던 스코프, 경찰서 마당을 걸어가는 맹인을 잡는다.
하지만 여경에 가려 좀처럼 십자선에 들어오지 않는 맹인.
방아쇠에 걸린 화이의 떨리는 손가락.
이상한 열기 속에 조금씩 일그러지는 스코프 속 세상.
드디어 정확히 십자선 안에 들어오는 맹인.

석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화이를 보며) ...당겨.

화이, 방아쇠에 힘을 주는데... 맹인 뒤 경찰차 옆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은빛 괴물.


흠칫 굳어버리는 화이, 다시 맹인을 찾아 스코프 돌리면 화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맹인. 환영임을 확인하려는 듯 여기저기를 훑는 스코프. 하지만 일그러진 모
든 사람들이 화이를 쳐다보고 있고... 다시 스코프 가득 보이는 거대한 은빛 형체,
화이를 응시하는 듯 우두커니 서있다. 동시에 스코프를 향해 순식간에 날아들어 덮
치는 형체. 암흑이 되버린 시야.
이윽고 눈꺼풀이 올라가며 드러나는 괴물의 눈동자... 그 안에 또 다른 괴물...
서서히 마비되듯 스코프에서 눈을 떼는 화이. 가만히 화이를 지켜보는 범수.
석태의 망원경 시점으로 여경의 부축을 받아 택시를 타는 맹인이 보인다.
망원경을 내리는 석태. 화이가 석태를 돌아보려는데 날아오는 따귀.
분노로 일그러진 석태, 화이의 저격총을 뺏어서 화이를 향해 겨눈다.
놀라는 범수, 어찌 할 사이도 없이 ‘푸슉, 푸슉’ 불을 뿜는 총구.
입이 벌어져서 석태를 보던 화이, 천천히 자기 몸을 내려 보는데 아무렇지 않다. 번
쩍 고개를 들어 석태를 보면, 총을 바닥에 탁 던져버리고 돌아서 가는 석태.

44. 택시 안 – 낮

한적한 천변도로를 달리고 있는 택시.


뭔가 이상한 듯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맹인.

기사 (소리) 히..히타 주...줄여드릴까요?

무언가 직감한 맹인, 불쑥 문손잡이를 당겨 보지만 열리지 않는 문.

-24-
울먹이며 다른 쪽 문 손잡이를 찾아 헤매는 패닉한 맹인.
이때 차가 멈추고 보조석으로 누군가 타더니 다시 출발하는 차.
보조석에서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보는 동범, 웃고 있다.

45. 농원 이층집 복도 – 낮

마구 흔들리는 화이의 시선.


화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복도를 관통하는 석태.
겁에 질려 거부하듯 버팅기는 화이, 집기들이 넘어지고 소란스럽다.

영주 (부엌에서 칼을 들고 달려 나오며) 미친놈. 그 손 못 놔!

영주, 칼을 들고 달려들지만 석태가 휘두른 육중한 손바닥에 날아가 떨어진다.


석태의 손에 빨려 들어가듯 지하실로 들어가는 화이.
그 모습을 황망하게 지켜보는 진성과 기태.

46. 농원 이층집 지하실 - 낮

백열전구 하나 켜져 있을 뿐 사방이 막혀서 밀실처럼 되어있는 지하실.


의자에 앉아 눈도 깜박이지 않고 한곳을 보고 있는 화이.
화이가 보는 곳에 피 칠갑을 하고 죽은 맹인이 널브러져 있다.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석태, 손에 쥔 렌치를 떨어뜨리고는 화이를 돌아본다.

석태 ...왜 안 쐈어?
화이 ......
석태 (다가가며) ...말해봐.
화이 ...괴...괴물이 보였어요...
석태 ...괴물... (화이의 턱을 움켜잡으며) 보여? 지금도 보여?!
화이 (눈물이 차오르며) 저 못하겠어요.
석태 (못 믿겠다는 듯) 뭐?... 다시 말해봐.
화이 (흐느끼며) 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석태 (일그러지며) ...왜? 다 하는데 넌 왜 못해?

대답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고개만 젓는 화이.

석태 (고개를 끄덕이며) 너는 아빠들이랑 다르다고... 넌 깨끗하다고? 그런 거야?!


화이 (뭔가 말하려하지만)......

-25-
석태 (이글거리는 눈으로) ...아빠가 더럽지?... 창피하지? 그래서 도망가겠다고? 엉?!!
화이 (눈물을 흘리며 중얼중얼)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버지.
석태 (잠시 내려 보다가 괴로운 듯) 벌을... 받아야 갰구나.
화이 (덜덜 떨며) ......
석태 (괴로운 듯) 말해봐,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 돼. 그렇지?
화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네...
석태 (이마를 맞대고 괴롭고 슬픈 듯) ...그래 그 괴물... 아빠가 없애줄게... 아빠가...

공포에 질려 굳어버린 화이의 숨소리에서,


47. 농원 이층집 지하실 (회상)

울부짖는 소리, 석태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열살 정도의 어린 화이, 발가벗겨져서


얻어맞은 듯 온몸이 부어있다.

화이 안돼요. 안돼요. 아버지. 이 안에 괴물이 있어요. 괴물이 절 잡아가요.


석태 (머리채 잡아 지하실 안쪽으로 돌리며) 봐!! 어디?! 어딨어?!!
(화이의 눈을 노려보며) ...약해빠진 새끼.
화이 (두려운 눈으로 눈물 글썽이며) ...아빠.
석태 괴물이든 귀신이든.. 피하지 마. 똑바로 봐... 그럼 다 없어지는 거야. 알았어?

화이를 밀쳐버리고 매정하게 돌아서서 문을 닫고 나가는 석태.


화이 문을 잡고 흔드는데 지하실 구석에서 무언가 ‘스윽’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화이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며) 저.. 저리가... 오지마... 오지마...

거칠어지는 화이의 숨소리, 잠시 뒤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은빛 괴물의 발.


화이의 뒷모습으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괴물의 그림자.

48. 농원 이층집 거실(회상/현재) - 낮

지하실 문 안쪽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비명, 미친 듯이 문을 흔들며 긁어대기


시작한다.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는 화이의 끔찍한 비명 계속되다가...

49. 농원 묘목 비닐하우스 – 밤

‘퍽’ 흙더미 위에 꽂히는 삽. 올려보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석태.


그 옆에 진성이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다.

-26-
석태 그일... 하기로 하지.
진성 (삽질 멈추고 돌아보며)......
석태 그냥 놔두면 안 되잖아.... 임형택.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삽질을 시작하는 진성.


맹인의 시체 위로 흙이 덥힌다.

50.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거실 쇼파에 둘러 앉아 있는 아빠들, 창호.


테이블 위에 열려 있는 브리프케이스, 안에 현금이 가득하다.

창호 선금 삼십프로야. 요구사항은 두가지. (검지 올리며) 강도 사건처럼 꾸밀 것,


(중지 올리며) 일요일 오전에 진행할 것.
진성 (노트북 들여다보다가) 뭐? 내일?
창호 그 인간들 교회 가니까. 그때 들어가서 잠깐 기다리면 될거야.
석태 (현관문 자물쇠 사진들을 보다가 동범에게 던지며) 얼마나 걸려?
동범 (사진을 보더니, 낄낄) 자물쇠가 글로벌하구만. 빠르면 10분?
창호 야 임마, 그럼 안돼. 거기 공사 시작돼서 보는 눈도 많고, 임형택 민원 땜에 순
찰도 겁나게 돌아.
진성 위험부담이 너무 커. 목격자가 생길거야.
기태 그...그래, 우...우리 이거 하지 말자... (석태에게) 형, 응?

석태의 반응이 궁금한 듯 보는 범수.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임형택의 사진만 가만히 보고 있는 석태.

51. 화원2리 버스정거장 – 낮

자전거를 세워두고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누르더니 누굴 찾는 듯 휘휘 둘러보는 유경.


그 모습을 보고 나무 뒤로 슬쩍 숨는 시선.
윙윙거리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발로 무언가를 슥슥 문지르
는 화이. 이내 신호가 멈추고 다시 살짝 내다보면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유경이
보인다. 멍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화이,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사슴벌레 한
마리가 나무 위에 기어가고 있다. 사슴벌레 위로 다가가는 화이의 손가락, 사슴벌레
를 지긋이 누른다. ‘빠각빠각’ 부서지며 고통스럽게 날개 짓하는 사슴벌레.

-27-
52. 재개발 단지 임형택 집 거실 – 밤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놓여있지만 소품들이 단출해서 오히려 검소한 느낌을 주는 거


실. 마주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임형택(48세)과 부인 김선자(48세).
감기에 걸렸는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 선자.

형택 (걱정스러운 듯) 병원에 좀 가보지 그래요?

이때 들려오는 핸드폰 벨소리. 형택,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고는 그냥 내려놓는다.

선자 ...또 그 사람들이예요?
형택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들어요.
선자 우리... 이제 그만 할까요?
형택 (숟가락 내려놓으며) 미안해요......

말없이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나가는 형택, 다리가 불편한지 걸음걸이가 어색하다.


축 쳐진 형택의 뒷모습... 선자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53. 임형택 집 맞은편 집 삼층 – 아침

푸르스름한 여명이 오르는 아침, 억수같이 내리는 장대비 속에 보이는 재개발 단지.
완만한 경사에 위치한 임형택 집이 보인다.
창문 프레임 안쪽으로 카메라 서서히 빠지면...
어두컴컴한 실내,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 석태와 진성, 옆 창에서 저격총을 겨누고
있는 범수, 벽에 기대 앉아 카드를 가지고 놀고 있는 동범의 실루엣이 보인다.
석태가 보고 있는 곳, 맞은편 임형택 집 주차장 문이 올라간다. 이윽고 천천히 굴러
나오는 짙게 선팅 된 구형 벤츠가 장대비 속으로 사라지고,

석태 (무전기에) 진행해.

54. 재개발 단지 도로 / 스타렉스 차안 – 아침

빗속을 운전해가는 기태. 보조석에 교복을 입은 화이가 앉아 있다.

기태 (윽박지르듯) 그...그냥 그...그러라면 그렇게 해! 너...넌 혀..현관문만 열어주고


무...무조 건 돌아 나와. 알...알았어?

-28-
이상한 듯 기태를 가만히 보는 화이, 고개를 끄덕인다.
임형택 집 앞에서 멈추는 기태의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 화이.

기태 아! 아... 비...비...비 맞지마...

사이드 브레이크 옆에 놓여있던 우산을 허겁지겁 챙겨주는 기태.


가만히 우산을 받아 들고 내리는 화이.

55. 임형택 집 맞은편 집 삼층 – 아침

석태의 시선, 빗속에서 우산을 펼치고 임형택 집 대문으로 걸어가는 화이가 보이고,
기태의 차가 떠난다. 가만히 화이를 지켜보는 석태.

56. 임형택 집 앞 대문 – 아침

우산을 쓴 채로 열쇠구멍에 연장을 넣고 만지는 화이의 집중한 얼굴.


철컥, 열리는 자물쇠.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화이, 벨트에서 클립을 뽑아 문 사이에 끼워 넣고 닫는다.

57. 재개발 단지 도로 / 경찰차 안 – 아침

천천히 빗속을 굴러가고 있는 경찰차.


뒷좌석에 불만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는 두 명의 학생.

경찰1 갑자기 왠 비가 이렇게 온데...


경찰2 야, 니들은 집 나오면 왜 이런데서 자냐?
학생1 아, 집 안 나왔다니까요.

코너를 돌아 나와 임형택 집 앞을 지나치는 경찰차.


보조석에서 창밖을 무심히 보던 경찰2.

경찰2 박순경 잠깐.


경찰1 네?
경찰2 (갸웃) 저 집에 애 있었나?

-29-
58. 임형택 집 맞은편 집 삼층 – 아침

임형택 집 대문 옆, 벽이 허물어진 곳에 스르륵 멈추는 경찰차.


낭패한 얼굴의 진성. 범수가 저격총 스코프에 눈을 대고 겨누기 시작하고, 동범도
일어나서 밖을 본다.
스코프 시선으로, 창문을 내리고 화이 쪽을 살피는 경찰2.

석태 (가만히 창밖을 보며) ...기다려.

59. 임형택 집 현관 – 아침

긴장이 역력한 화이의 얼굴. 느낌을 잡지 못하겠는 듯 초조하게 열쇠 구멍에 꽂힌


연장을 만지는 화이. 이때 들리는 소리,

경찰2 (소리) 저기 학생!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이, 연장을 돌리려는 화이의 손이 더욱 더 떨린다.

경찰2 (더 크게) 학쌔앵!

창백하게 경직되는 화이의 얼굴, 순간 틱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열쇠 구멍.

60. 경찰차 안 – 아침

의심스러운 듯 차문을 열고 내리려던 경찰2.


이때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화이의 모습.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경찰1을 보며 피식 웃고는 창문을 올려버리는 경찰2.

61. 임형택 집 맞은편 집 삼층 – 아침

저격총 스코프에서 눈을 떼는 범수의 무표정한 얼굴.

62.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고요한 집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화이가 신발장 옆에 가만히 얼어있다. 현관 간유


리를 통해 뿌연 밖을 보는 화이. 이때 집 안 어디선가 ‘빠직’하고 균열이 가는 소리
가 들린다. 순간 흠칫 놀라는 화이, 거실을 돌아본다. 문이 열린 서재에 이젤과 유

-30-
화 액자들이 벽에 기대져 있는 것이 보이고, 아무도 없는 거실의 정적.
천천히 거실로 들어가며 살피는 화이의 시선, 테이블 아래 바닥에 흩어진 성경책과
손수건이 보인다. 다가가는 화이, 손수건을 집어 성경책을 싸고 들어보는데 툭 떨
어지는 사진 한 장.

63. 임형택 집 안 어딘가 – 아침

암흑 속에 핸드폰 불빛을 받고 있는 겁에 질린 선자의 얼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선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발신버튼을 꾹 누른다.

64. 도로 / 구형 벤츠 안 – 아침

차에 놓인 핸드폰, 띠링 소리와 함께 문자 뜨면, ‘ㄴ누가지ㅂㅇㅓㅣ들어오ㅏ씨오요.’


안경 너머로 핸드폰 문자를 보는 형택, 갸웃하고는 그대로 발신버튼을 누른다.

65.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는 화이, 사진 속에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순간 작지만 또렷한 ‘위잉’ 진동소리가 들리고, 번뜩 눈앞에 다락을 보는 화이.

66. 임형택 집 거실 다락 안 – 아침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억제할 수 없는 듯 신음을 내는 선자, 허겁지겁 핸드폰 배터


리를 떼어내는데, 문이 열리듯 스윽 밝아지는 선자의 얼굴. 보면, 조금 열린 문틈으
로 선자를 보고 있는 화이의 창백한 얼굴. 이때 현관으로 아빠들이 들어오는 소리
가 들리고, 현관 쪽을 돌아보는 화이.

67.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현관으로 들어오며 덧신을 신는 동범과 범수.


재빨리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는 화이.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화이에게 다가오는 석태.

석태 (창백한 화이를 가만히 보다가) ...왜 그래. 뭐 잘 못됐어?


화이 (뒤로 물러서 벽장 문 닫으며) 아.. 아니요.
동범 (화이 발자국 닦으며 낄낄) 첫 콧데 당연히 후달리지... 그래도 잘했어. 아들.
(덧신을 내밀며) 이것부터 신어라.

-31-
화이 (석태를 지나쳐 동범에게 다가가며) 네, 아빠.

68. 임형택 집 맞은편 집 삼층 –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는 푸른 하늘. 초조하게 창밖을 보고 있던


진성, 시계를 보더니 무전기에 입을 가져간다.

진성 (날카롭게) 화이 왜 안 나와? 지금 빨리... (멈칫, 침착해지며) 잠깐!

69. 임형택 집 대문 – 아침

빠른 속도로 달려와 대문 앞에 멈추는 형택의 차. 형택, 서둘러 내리더니 집을 한번


올려보고는 대문으로 걸어간다.
초인종을 누르려던 형택, 멈칫하더니 열쇠를 꺼내 대문 열쇠 구멍에 끼운다.

70.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현관문 자물쇠가 ‘틱’하며 돌아간다.


천천히 문을 열어보는 형택. 보면, 아무도 없는 정적이 감도는 거실. 한걸음 들어가
며 오른쪽 거실을 보는 형택, 창으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햇살에 빠르게 부유하는
먼지들이 보인다.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한 형택,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누르며 천천히 거실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데, 순간 형택의 시선이 거실 장식장에
고정된다.
장식장 유리에 반사된 형상, 반대쪽 구석 벽에 붙어 있는 화이다.

형택 거...거기 누구요?

이때 형택 바로 옆에 문이 벌컥 열리고, 돌아보면 서있는 석태의 실루엣. 놀란 형택,


현관 쪽으로 뒷걸음치는데, 철컥하며 닫히는 현관문 소리. 돌아보면 진성이 현관을
닫고 들어와 있고, 순간 휘잉 소리에 돌아보면, 날아드는 범수의 골프채, 퍽!

71. 임형택 집 안방 - 아침

방 입구에 형택의 의족이 널브러져 있고 방구석에 처박히는 피투성이의 형택, 덜덜


떨며 아빠들을 올려본다.
화장대 위에 놓인 청동 십자가를 만져보는 석태, 그 뒤로 보이는 진성, 동범, 범수.

-32-
석태 (십자가를 들어보며) 오늘은 기도 안하세요?... 기도 좋아하잖아요.
형택 (둘러보며) ...당신들 누구야?
진성 ...부인은? 부인 어딨어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는 형택.


진성, 눈짓하면 동범이 낄낄거리며 형택 목에 칼을 들이댄다.

진성 말해...부인 어딨어?!
형택 (망설이다가 힘겹게) ...시...시골집... 친정에...

의심스러운 듯 천천히 형택에게 다가가는 석태.

석태 (얼굴 가까이하며) 시골 어디?

이때 거실에서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허겁지겁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거


실을 노려보는 석태와 아빠들. 진성이 거실을 내다보려는데, 누군가 빠르게 마당을
뛰어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커튼을 휙 걷어 창밖을 보는 석태. 맨발로 허겁지겁 마
당을 빠져나가는 선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72.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거실로 나오는 괴물 같은 얼굴의 석태.


석태의 시선으로 열려진 현관 앞에 넋 나간 듯 서있는 화이가 보인다.
그런 석태와 화이를 지나쳐 바람처럼 뛰어나가는 범수.

73. 임형택 집 옆 언덕 – 아침

미친 여자처럼 길을 올라가고 있는 선자, 언덕 위쪽에 공사를 하고 있는 포크레인


과 인부들이 보인다. 우락부락한 인부 한명이 선자를 발견하고...

인부1 (옆 인부에게) 어이, 저 여자 왜 저래? 미쳤나?

주위 인부들도 하나 둘 선자를 본다.


자기 집 쪽을 손짓하며 뛰어올라오던 선자, 무언가 소리치려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
라 캑캑거리더니 이내 거품을 물며 쓰러져 버린다.
놀라서 달려가는 인부들, 그리고 선자가 가리키던 곳을 보는 인부1, 골목코너에서
돌아서 사라지는 범수를 발견한다.

-33-
74. 임형택 집 앞 - 아침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걸어가는 범수.

범수 (무전기에) 놓쳤어.

75. 재개발 단지 어딘가 – 아침

시동을 걸고 타이어 파열음을 내며 출발하는 기태의 스타렉스.

76. 임형택 집 거실 – 아침

얼어붙어 있는 화이를 가만히 내려 보고 있던 석태, 쥐고 있던 무전기 안테나로 화


이의 뺨을 후려친다.

77. 임형택 집 앞 / 마당 – 아침

임형택 집으로 들어가려는 범수의 뒷모습을 따라잡는 시선. 범수의 어깨를 잡아 돌


리는 인부1.

인부1 이봐요, 잠깐만. 당신 저 아줌마 알아요?

대답 없이 주위를 살피는 범수,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순간 인부1의 팔을 비틀며 마당으로 들어가는 범수.
인부1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으려는 듯 발버둥 쳐서 빠져나오지만,
순식간에 인부1의 무릎, 명치, 목을 가격하는 범수. 힘없이 무릎이 꿇어지는 인부1.
바로 인부1의 뒤로 돌아서더니 목을 비틀어버리는 범수, ‘우두둑’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인부1.

78. 임형택 집 거실 / 안방 – 아침

석태의 손에 거침없이 끌려가는 화이의 시선,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칼로 임형택의 목을 따려 하고 있던 동범. 덜덜 떨면서도 동범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형택.

석태 (화이를 끌고 들어가며 동범에게) 비켜.

-34-
진성 뭐하는 거야?! 시간 없어!

총을 쥐고 있는 석태의 서슬에 자리를 비켜주는 동범.


자기 앞으로 와서 서는 화이를 보는 형택.
석태, 화이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는,

석태 죽여.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이, 천천히 석태를 본다. 놀라는 진성과 동범도 석태를 본다.

석태 (총구를 형택에게 맞춰주며 화이에게 얼굴을 들이대고) 안 들려? 죽여.

넋 나간 듯 혼란스러운 표정의 진성, 기가 막힌 듯 허허 웃는 동범.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덜 떨리는 총구너머 형택을 보는 화이.

석태 (고함) 죽여!!!

순간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퓨슉!


형택 머리 옆 벽에 박히는 탄환.
이런 와중에도 홀린 듯 화이를 보고 있던 형택, 다시 석태를 본다.

석태 다시 쏴.

눈물이 차오르며 겁에 질린 사람처럼 한 발 물러서는 화이.

석태 이 새끼가... (화이의 뺨을 연속으로 날리며) 죽여! 죽여! 죽이라고!!

한대, 한대, 맞을수록 두려운 것이 보이는 듯 점점 몸을 크게 떠는 화이.


석태와 동범을 번갈아 바라보던 형택, 무슨 기억이 떠오른 듯 미간이 좁혀진다.

형택 (석태를 보며) 당신들... 너... 혹시... (번뜩, 화이를 본다.)

순간 퓨슉! 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되는 총알. 화이의 확대된 동공, 핏줄이 터져 붉


은 눈동자. 한번 쏘기 시작하더니 마구 방아쇠를 당기는 광기어린 화이. 퓨슉, 퓨슉,
퓨슉...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계속 쏘는 화이. 퓨슉, 퓨슉... 마구 튀어나가서
굴러다니는 탄피들. 결국 총알을 다 발사했는데도 계속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빈총
이 철컥철컥 소리만 내고 있다.

-35-
갑자기 휘몰아친 광기 속에 아무도 꿈쩍하지 못하는 상황.
어느새 들어온 범수가 화이에게 다가와 빈총을 붙잡는다. 방아쇠를 멈추는 화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은 형택을 내려 보는 화이.
여기에 빠르게 다가오는 사이렌 소리.

79. 임형택 집 앞 – 낮

임형택 집 전경 보이며 서서히 하강하는 카메라. 여러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 취재


하기위해 몰려든 기자들, 통제하는 경찰들로 어지러운 현장 보인다.

창호 그래서, 얼굴은 못 보고... 근데 학생인 줄 어떻게 알아?

창호 앞에 순찰을 돌던 경찰2가 죄진 사람처럼 서 있다.

경찰2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창호 (띠껍) 교복? 확실해? 어디 학교?
경찰2 어 그게... 비도 오고... 교복은 다 그게 그거라 놔서...
창호 (수첩으로 경찰2의 머리를 때리며) 교복은 니미, 이게 애들이 할 짓이냐?
애들이 총이 어서나?!

이때 창호에게 다가오는 장형사.

장형사 선배님, 김선자씨가 범인 중에 한 명을 봤답니다.


창호 (경찰2를 때리다가 멈춰서) 뭐?
장형사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데요?

머리위로 수첩을 치켜든 채로 굳어버린 창호.

80. 인천 병원 병실 – 낮

병실 침대에 미친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선자. 옆에선 간호사가 링거에 주사를 놓


고 있고, 문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창호와 장형사.

창호 (의심스러운 듯) 야, 진짜 본거 맞아? 저 여자 퓨즈 끊긴 거 같은데...


장형사 (송구스러운 듯) 예 그게 쫌, 들락날락 하긴 해요.

이때 빠르게 다가오는 김형사.

-36-
김형사 (창호에게) 전회장 쪽에 갔다 왔는데요. 왠지 걔네들 아닌 거 같아요.
장형사 왜?
김형사 오늘 전직원 단합대회 있었대요. 원하면 동영상도 줄 수 있다는데요?
창호 그렇지... 걔네가 바보냐? 이건 백프로 원한이야.
장형사 (수첩을 펴며) 저기.. 몇 군데 알아봤는데요. 이 사람들 완전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칭 찬이 자자해요. 최근 몇 년 동안 성지재단 일 말고는 활동도 거의 없었고요.
창호 야야. 부자잖아. 부자. 남한테 피해 안주고 돈 모으는 사람이 어딨어?
거 찾아보면 누구나 나와 원한. 더 뒤져봐.
김형사 (돌아서는 장형사에게 나지막히) 선배, 이 것도 낮도깨비 아냐?
장형사 아냐. 뭔가 지저분한 게 좀 달라... 일단 넌 근처 고등학교들 좀 돌아봐...

뒤로 쑥덕이는 김형사와 장형사 보이고, 짜증나는 얼굴로 선자를 돌아보는 창호.

81. 임형택 집 안방 – 밤

선명한 형택의 핏자국, 그 앞으로 다가서는 눈군가의 구둣발.


정민이 손으로 총모양을 만들어서 형택이 죽은 자리를 겨누고 있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방아쇠 당기는 시늉을 하는 정민. ‘탕... 탕... 탕...’
문득 동작을 멈추고 쭈그려 앉는 정민, 벽면에 빗나간 총자국을 만져본다.

82. 임형택 집 거실 / 현관 / 마당 – 밤

머릿속이 복잡한 듯 미간을 찌뿌리며 2층 계단에서 내려오는 정민.


전단지 같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정민 (종이 접어 넣으며) 하. 골 때리는 새끼들... 골 빠개지게 만드네...

나가려다 비가내리는 현관문 밖을 바라본다.

정민 (투덜투덜) 에이 씨발... 날씨도 지랄 같아 가지고...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집어 들려던 정민, 곱게 말아져 있는 우산 가운데 대충 말아


진 우산 한 개를 뽑아든다. 우산을 들어 접혀지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러
보는 정민, 아직 물기가 남아있다. 우산 손잡이를 돌려보는 정민. 손잡이에 인쇄된
‘파주 화훼 영농조합’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37-
83. 농원 하우스 안 – 밤

하우스 안, 간이 테이블 앞에서 통화하고 있는 진성, 그 옆에 동범.


그 뒤로 석태가 리본에 붓글씨를 쓰고 있고 옆에 범수가 철사가 감긴 소나무 가지
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창호 (소리) 어휴, 씨발! 니들 진짜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대체 애새끼는 뭐 하러 달고


가 가지고. 니기미 걔네들이 사람 못 죽여서 니들한테 맡긴 거냐? 전회장하고 잘못
꼬이면 진짜 좆 되는 거 알아? 몰라? 일을 어떻게 이렇게 좆 사발로 만들어놔?
중간에 낀 나는... 어휴 씨발!!......

폭격처럼 퍼붓는 창호의 전화를 끊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 진성.

동범 (낄낄) 이제 어쩌냐?
진성 (손가락으로 미간 잡으며) 일단 인천 애들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
잘못하면 화이까지 위험해져.
동범 (갑자기 낄낄낄 웃더니) 근데 화이... 처음부터 그럴라구 데려간 거지?

석태를 주목하는 아빠들.

석태 (‘축개업’ 리본 테이블에 던지며) 여기 다섯 개 철사 풀고 이 거 달아놔.


목초액도 좀 뿌리고... 낼 일산에 들어갈 거야.

진성, 매서운 눈으로 석태를 노려보는데... ‘두두둑’ 가지 부러지는 소리.


석태 돌아보면 범수가 개업식에 배달 할 소나무 분재의 가지를 부러뜨리고 있다.
범수를 차갑게 노려보는 석태, 침묵 속에 흐르는 긴장감.

84. 농원 이층집 이층 화이 방 – 밤

책과 음반들이 다소 많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의 방처럼 깔끔하게 정리되


어 있는 화이 방. 침대에 벽을 보고 가만히 누워 있는 화이.
살짝 문이 열리는 듯 빛이 새어 들어오고,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기태.
잠시 화이의 등을 보던 기태, 다시 문을 닫고 나간다.
보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화이, 그 뒤로 어둠 속에서 은빛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

화이 (떨리는 목소리 나지막이) 오지마... 죽여 버릴 거야... 오지마...

-38-
85. 전회장 빌딩 회장실 – 아침

고층 사무실, 창밖으로 탁 트인 공간이 보인다. 창밖을 보고 서있는 전회장(60세),


인자한 얼굴에 백발을 잘 정돈한 신사다.

전회장 (부처 같은 미소로 창밖을 보며) 사람이든 일이든 남의 손 타서 좋을 게 없어요.


다 내 맘 같지가 않으니까... 안 그래요?

전회장 뒤에서 경건한 자세로 보고를 하고 있는 비서실장 지원(37세).

지원 (허리 숙이며) 죄송합니다, 회장님.


전회장 김선자씨는 좀 어떠신가요?
지원 쇼크 상태로 입원중이십니다.
전회장 (안타까운 듯) 그래요? 저런... 그럼 언제쯤 퇴원하실 수 있는 거죠?
지원 아직 확실하겐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전회장 (부드러운 미소로) 실장님은 사람이 제일 많이 죽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원 ......
전회장 면회한번 다녀오셔야 하지 않을까요?
지원 네 회장님.

86. 농원 이층집 이층 화이 방 – 낮

영주 (커튼을 젖히며) 밥 먹어. 안 일어 날거야?

커튼이 걷어지며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햇살. 벽을 보고 가만히 누워있는 화이.

영주 어디 아파? 어제도 계속 안 먹었잖아.


화이 (가만히) ......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하던 영주, 손을 뻗어서 무언가를 집는다.


임형택 집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사진을 잠깐 보더니 빙긋 웃는 영주.

영주 이 사진 어디서 났어?
화이 ......
영주 (피식) 너 어렸을 때 되게 귀여웠는데. 눈이 꼭 그거 같았어, 그거 있잖아 그거, 귀
이 렇게 큰 개. 근데 크면서 얼굴이 좀 변하더라? (사진과 화이를 비교해보며) 그래도
아 직, 남아있네.

-39-
화이 (가만히) ...그거 저 아니에요.
영주 너 아니야? 아닌데 넌데...

화이의 뒷모습을 보던 영주, 얼굴 어두워지며 다시 천천히 사진을 본다.


사진에는 화이를 쏙 빼닮은 아이가 웃고 있다.

87. 파주 화훼 영농조합 전경 – 낮

‘파주 화훼 영농조합’ 커다란 간판이 걸려있는 허름한 건물.

여직원 (소리) 한 이 백 개 나눠줬죠. 아마?

88. 파주 화훼 영농 조합 내부 - 낮

우산을 살펴보는 심드렁한 표정의 어린 여직원과 마주하고 있는 정민.

정민 이.. 이 백 개요?
여직원 (깐족거리는 톤으로) 우리 조합이 쫌 커요.
정민 (애써 누르며) 저.. 그럼 그 중에 향나무 키우는 곳 좀 알 수 있을까요?
여직원 (빙글빙글 의자 돌리며) 향나무?... (약 올리듯) 쫌 많은데...

한 대 때려주고 싶은 표정으로 여직원을 노려보는 정민.

89.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거실 소파에 목석처럼 앉아있는 영주의 뒷모습. 그 뒤로 온 석태.

석태 화이 어디 갔나?
영주 (꿈쩍도 않고) ......

영주 손에 들려 있는 어린 화이 사진을 보는 석태, 사진을 뺏어 본다.

석태 (표정이 굳어지며) ...화이는?


영주 (미동도 없이) ......

석태, 영주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확 꺾어 얼굴을 본다.

-40-
석태 (일그러지며) 어디 갔어, 화이...

겁에 질린 듯 처참하게 일그러진 영주의 얼굴,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다


.
90. 임형택 집 앞 – 낮

길 아래에서 임형택 집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선, 화이다.


전봇대 뒤에 숨어 있듯이 서있는 화이, 멍하니 임형택 집을 보고 있다.

91. 농원 앞 마당 – 낮

수첩에 적힌 여러 개의 향나무 농원 목록. 처음 아홉 개는 줄이 그어져 있다.


이때 비닐하우스를 돌아 나와서 정민의 차 옆으로 빠르게 빠져 나가는 랜드로버.

92. 농원 이층집 현관 – 낮

초인종을 찾는데 초인종이 없는 듯 문을 두드리는 정민.


안에서 아무 소리가 없자, 창문을 들여다보는 정민. 집안이 어둑해서 잘 안 보인다.
이때 창 앞으로 불쑥 튀어 나오는 영주, 절망적으로 흐트러진 영주의 얼굴.
귀신을 본 듯 놀란 정민, 가슴을 쓸어내리려는데 갑자기 영주의 몸이 뒤로 확 끌어
당겨지듯 사라지더니 현관문이 열리고 나오는 진성.

진성 무슨 일이시죠?
정민 (얼떨떨해서) 아 네... 분재, 분재 좀 보려고요.

93. 임형택 집 거실 – 낮

가만히 어딘가를 보고 있는 화이의 창백한 얼굴.


거실과 안방 사이에서 화이가 보고 있는 곳, 임형택이 죽어간 자리.
그 순간의 흥분을 떠올리는 듯 멍하니 보고 있는 화이의 쌕쌕거리는 숨소리.
이때 문득 대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94. 임형택 집 대문 – 낮

대문에 쳐져 있는 폴리스 라인을 휘적휘적 걷어내는 가녀린 손.

95. 임형택 집 거실 / 이층 아이 방 –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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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방문 틈으로 일층을 내다보는 화이의 시선. 집으로 들어온 건 환자복의 선자
다. 살며시 문을 닫는 화이,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려 방을 본다.
작은 침대와 장난감들, 작은 옷가지들... 너무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아이의 방.
그 한 구석에 이질적으로 손때를 탄 작은 책상과 나무 궤짝 하나.

96. 농원 비닐하우스 – 낮

정민 (향나무 분재를 만지며) 와 여긴 분재가 많네... 이 걸 전부 혼자 하세요?


진성 아니요, 저희 형님하고 같이요.
정민 (이층집 쪽을 가리키며) 안에 저분은...
진성 아, 형수님이요? 아깐 놀라셨죠? 좀 편찮으세요.
정민 아... 네...

건성으로 대답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정민.


커다란 가위로 가지를 다듬으며 안보는 듯 예리하게 정민을 살피는 진성.

진성 찾으시는 게 없나 봐요?
정민 아니. 그냥... 좀 특이한 걸 찾는데...
(옆에 불그스름한 나무 분재를 보고) 이것도 특이하네. 아... 나 이거 아는데...
진성 화이목이라고... 제주도산 사철나무예요.
정민 아! 맞다, 맞다. 화이목. 와~ 이렇게 큰 건 첨 보네...
(꽃을 잡아 냄새를 맡아보며) 이런 건 얼마나 해요?
진성 글세요. 형님이 워낙 아끼는 거라 팔기 힘들 것 같은데...
굳이 판다면 한 일억 오천...?

놀란 정민, 얼른 꽃에서 손을 떼려는데 꽃 하나가 툭 떨어진다.


정민, 얼른 꽃을 뒤로 숨기고 돌아보면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진성.

97. 임형택 집 이층 아이 방 – 낮

조그만 의자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있는 화이.


그 앞에 열려진 궤짝 그 안에서 나온 듯 한, 종이뭉치들...
그 가운데 보이는 ‘아이를 찾습니다.’ 전단지와 유괴범 수배전단.
수배전단 안에 유괴 용의자 몽타주. 엉성하지만 분명 동범과 범수의 얼굴이다.
창백한 화이, 고개를 돌리면 아기침대 위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모빌.
손수 만든 듯 한 모빌엔 반짝이는 은색 천으로 돌고래와 곰, 날개달린 아기천사 등

-42-
이 달려 있다. 어디선가 오르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데...
이때 일층 거실에서 무언가 쿵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고개를 돌리는 화이.

98. 임형택 집 이층 아이 방 앞 / 거실 – 낮

이층 방문을 살며시 열고 나오는 화이. 거실 어딘가에서 거칠게 분절된 숨소리가


들려오고...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던 화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안방에 넘어져 있는 식탁 의자, 그 위로 대롱대롱 매달린 선자의 발.
달려드는 화이. 선자의 허벅지를 안아 올리려 기를 쓰는 화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화이의 얼굴.

99. 임형택 집 앞 – 해질녘

경찰차가 서 있는 임형택 집 앞. 멀리서부터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랜드로버 속 석태. 전화기가 울리고, 보면 <창호>다.

석태 (전화기에) 말해...

임형택 집 앞을 지나가는 차, 창밖으로 집을 노려보는 석태.

100. 인천 병원 뒤 주차장 – 밤

앰뷸런스들이 주차된 곳에 랜드로버가 보이고, 차에 기대서 멍하니 있는 기태.


병원을 바라보고 있는 석태. 주위를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창호.

석태 (다가온 창호에게) 화이는?


창호 몰라, 나도 와 보니까 없었어.
석태 화이가 신고한 게 확실해?
창호 (비아냥) 뭐야?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야?
이제 애새끼 어떡할 거야? 가만두면 안 되잖아?
석태 (차가운 얼굴로 노려보며) ...가만 안 두면?
창호 뭐? 지금 김선자가 애 얼굴을 봤다고!! 그런데 이렇게 설치고 다니게 놔둘 거야?!!
석태 (노려보며) 그년이 애를 봤으면 그 년을 어떡할지 물어야지, 안 그래?

어이없는 표정의 창호, 그 뒤로 불안한 눈으로 석태를 보는 기태.

101.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 밤

-43-
책상 스탠드만 켜져 컨트라스트가 짙은 방안, 쏟아지는 빗소리 속에 책상위에 놓여
진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하고, 머리를 감은 듯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들어오는
진성. 화상으로 일그러진 진성의 왼손 처음으로 보인다. 책상에 앉으며 전화 발신인
을 확인하는 진성.

진성 (핸드폰에) 화이 찾았어요?
석태 (소리) 아직 안 들어왔나?
진성 네. ... 낮에 경찰이 왔었어요.
석태 (소리) ...경찰?
진성 왠지 느낌이 안 좋아요. 더 조여 올거 같아요. 화이 찾으면 바로 내보내죠.
석태 (소리) ...애가 싫다고 하면?
진성 내가 데리고 나갈게요.
석태 (소리) ...들어가서 얘기하지.

전화를 끊는 석태. 전화를 끊는 진성의 어두운 얼굴.


책상에 있던 화이의 여권을 보는 진성. 잠시 보다가 여권을 덮고는 생각에 잠기는
듯 여권으로 책상을 톡톡톡 치는데, 조용히 들려오는 컴퓨터 팬소리.
컴퓨터로 눈을 돌리는 진성, 마우스를 휙 움직여 본다.
밝아지는 모니터 화면 속에 ‘보안파일’ 창들 무수히 열려있고,
그 속에 보이는 전회장과 임형택의 자료들...

소리 (힘없이) 저랑 같이 가실 거예요?...

방 한구석에서 들려온 소리. 놀라며 돌아보는 진성.


책장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화이, 어둠에 묻혀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진성 ...화이냐?
화이 ... 근데 저 못 갈 것 같아요...
진성 무슨 소리야? (여권을 내려놓으며) 어디 갔다 왔어? 걱정했잖아.
화이 집에 갔다 왔어요... 제가 죽인 사람... (떨리며) ...죄송해요...
진성 (찡그리며) ......
화이 사진 속에 그 아이... 아는 아인가요?...

책상 위를 보는 진성, 책상 위에 어린 화이의 사진이 있다.

진성 화이야,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영주 아줌마가 잘못 안거야.

-44-
화이 (진성에게 다가오며) ...그 아이... 아는 아인가요?
진성 ......피곤할 텐데 내일 얘기하자. 방으로 가.

진성 앞에 선 화이, 스윽 총을 겨눈다.

진성 (당황해서 노려보며) 무슨 짓이야...


화이 사실대로 말해줘요...
진성 ...뭘?
화이 그 아이가 누군지.
진성 ......
화이 ...알고 싶어요...
진성 니가 알아야 할 건, 널 키운 게 나란 거야.
화이 그 사람들, 왜 안 나가고 있었는지 알아요?
진성 뭐?
화이 ...기다렸데요... (목소리 떨리며) 아이가 돌아 올까봐... 기다렸데요...
진성 ......
화이 ...아빤, 다 알고 있었죠?
진성 ...총 내려놔.

한걸음 다가오며 진성의 머리에 붙는 총구, 드러나는 화이의 표정, 비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화이, 아픔을 참는 듯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화이 ...근데 왜 말리지 않았어요?


진성 (벌떡 일어서서 노려보며) 총 안 내려놔!
화이 (총구 떨리며) 왜... 왜 말리지 않았어요?

102. 농원 전경 – 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 음산한 정적만 흐르는 농원의 전경.

103. 농원 이층집 거실 – 밤

총에 맞은 듯 박살나 있는 현관 디지털 락으로 다가오는 손.


부서진 디지털 락을 가만히 보고 있는 석태.

석태 ...누가 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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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 켜진 컴컴한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영주의 뒷모습.

영주 ...화이.
석태 들어왔어?
영주 (눈물이 고이며) ...아니, 나갔어.

104. 농원 이층집 이층 진성방 - 밤

방문이 삐걱 열리고 방으로 들어오는 석태, 가슴에 총을 맞은 진성을 발견한다.


내려 보는 무감각한 석태의 표정.

105. 주차장 – 밤

주차장에 세워진 포르쉐.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바로 도어를 잡는 손, 그대


로 멈춘다. 보면 핸드폰을 귀에 대고 가만히 듣고 있는 범수.

106. 도박장 – 밤

핸드폰을 끊는 동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낄낄거리고 웃는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명의 남자가 동범을 멍하니 보고 있고,
테이블 위로 펼쳐진 카드판, 자기 앞에 수북한 돈을 모두 밀어내고 일어서는 동범.

107. 인천 병원 물리치료실 – 밤

지원 (소리) 긴 말 안하겠습니다. 병원에서 마무리 지을 생각이니, 협조해 주세요.

불이 꺼진 물리치료실, 커튼이 쳐진 침대들 너머로 보이는 창호와 지원. 그 뒤로 서


있는 지원의 부하들.

창호 (콧방귀) 뭐? 야, 내 입장은 생각도 안 해? 난 뭐 호로좆이냐?


지원 형사님, 저 그런 지저분한 말 별로 안 좋아합니다.
창호 씨발, 좆까고 있네. 깡패새끼가.
지원 (피식)...
창호 내가 병원을 보고 있는데 병원에서 일이 생기면 어떡해? 야, 박지원이. 너 내가 뭘
로 보이냐? 요즘 니네 일 좀 봐줬다고 내가 니 좆으로 보여?

잠시 창호를 보던 지원, 불쑥 창호의 재킷을 젖히고는 창호의 리볼버를 뽑는다.

-46-
창호 (피식) 뭐야, 이 새끼야? 안 내놔?
지원 (총을 들여다보며) 완전 구식이네요? 이거 나가나요?
창호 (피식) 너희 같은 새끼들한텐 잘 나가지. 내놔.
지원 귀는 잘 들리시죠?
창호 뭐?

빠르게 실린더를 젖히며 총알을 쏟아내는 지원,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총알들.

창호 (버럭) 뭐하는 거야?! 이 새끼가..

이때 철컥 실린더를 장전하더니 창호의 입 속으로 총구를 쑤셔 넣는 지원.


놀라서 자신의 입안에 들어온 총구를 내려 보는 창호,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다.
따라가며 입안에 총을 쑤셔 넣는 지원.

지원 말해봐, 탄이 들었 겠나 안 들었겠나?

말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창호.


이때 그대로 노리쇠를 젖히고는 방아쇠를 당기는 지원. ‘틱!’
소스라치는 창호.

지원 넌 내가 뭘로 보이나?
창호 (겁에 질려서) ......
지원 (다시 방아쇠를 당기고, 틱) 말해, 내가 뭘로 보여?
창호 (벌벌 떨며 어버버) ......
지원 (다시 방아쇠를 당기고, 틱) 뭐라고? 내가 뭘로 보여?!
창호 (울먹이며 어버버) ......
지원 (천천히 노리쇠를 젖히며) 착각 하지마, 판을 짜는 건 니가 아니라 나야. 알았어?
창호 (울먹이며 끄덕끄덕) ......

귀신같은 얼굴로 창호를 노려보며 방아쇠를 당기는 지원, ‘틱!’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굳어버린 창호, 심장이 멈춘 듯 지원을 본다.
입에서 총을 꺼내는 지원, 실린더를 젖혀서 바닥을 향한다.
톡하고 떨어지더니 굴러가는 총알 한발.

108. 범수 정밀 공업사 앞 –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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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사 옆 도로에 포르쉐를 세우는 범수.
차에서 내려 공업사 골목을 본다. 자신의 공업사 문틈으로 불빛이 희끗희끗 새어나
오는 것이 보이고, 전화기를 꺼내는 범수.

109. 범수 정밀 공업사 안 – 밤

어두운 공업사 내부, 안쪽 범수의 작업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인다.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범수, 작업실을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는 작업실 안, 활짝 열려진 금고가 보이고, 비어있는 저격총 자리. 그 밑
으로 살짝 보이는 스포츠 가방 하나.
가방에 시선 모으며 한 발 다가서는데... 이때 어디선가 다가온 총, 범수 옆머리에
붙는다.
귀신처럼 씨익 웃는 범수, 빠르게 화이의 총을 쳐내며 품에서 총을 꺼내 화이를 겨
눈다. 동시에 범수의 총을 잡아채는 화이, 빙글 감아 돌며 화이의 총을 잡는 범수.
아래로 꺽인 총구를 살짝 올려 화이의 발을 겨누는 범수, 당긴다. ‘퓨슉!’
살짝 발을 빼며 무릎으로 범수의 팔을 가격하는 화이, 범수의 목을 겨눈다.
놓치지 않고 화이의 총구를 감아 돌리는 범수의 손놀림.
총을 겨누기 위해 주고받는 공격들. 물 흐르는 듯 한 움직임들. 빠른 손놀림.
마치 서로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듯 한 공격과 방어.
‘철컥’ ‘철컥’ 마침내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겨누게 되는 화이와 범수.

범수 (씨익 웃으며) 왜? 나도 죽이려고?


화이 ......
범수 (귀신처럼 갸웃거리며) 한 번에 죽여야 돼. 안 그러면 넌 백프로 죽어.

화이, 망설이는 듯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순간 총을 겨눈 상태로 저벅저벅 다가가는 범수, 마치 귀신같다.
슬쩍 몸을 빼며 화이 옆으로 붙는 범수.
제도판 위에 놓여 있던 컴퍼스를 집어 들어 화이의 팔에 꽂으면 손에서 총을 떨어
뜨리는 화이.
발로 총을 쳐내며 순식간에 화이 무릎 안쪽에 컴퍼스를 꽂는 범수.
화이, 쓰러지듯 무릎 꿇고 ‘철컥’ 머리에 겨누어지는 범수의 총.

범수 김선자를 살렸다며? 진성이형은 죽이고.


화이 ......
범수 왜 그래? 니 기억엔 우리밖에 없잖아.
화이 ......

-48-
범수 어차피 김선자는 죽을 거야.
화이 ...그 사람은 내버려 둬요.
(올려보며 애원하듯) 내가 죽일게요... 인천 사람들 내가 다 죽일게요...
범수 (비웃듯 피식)니가?... 잘 생각해. 김선자가 죽어야 니가 사는 거야.

이때 공장 앞에서 급정거하는 차 소리가 들리고, 헤드라이트에 시선을 뺏기는 범수.


순간 범수의 총을 든 손을 잡아 꺾는 화이.

110. 범수 정밀 공업사 앞 – 밤

‘탕!탕!탕!’ 총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는 공업사 문.


들어오던 기태와 동범, 몸을 움츠리며 숨는데, 그 뒤로 성큼성큼 빛을 가르며 들어
오는 석태의 거대한 실루엣

111. 범수 정밀 공업사 - 밤

범수의 총이 바닥에 떨어지고... 날아오는 컴퍼스를 피하며 쓰러지는 화이


범수의 다리를 걷어차더니 범수의 팔을 꺾어 컴퍼스를 범수의 손에 꽂는다.
비명도 없이 화이를 노려보는 범수.
이때 “화이야. 화이야” 부르며 걸어오는, 너무나 담담해서 서늘한 석태.
화이, 용수철처럼 몸을 날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총과 가방을 낚아 채 뛰어간다.
창문의 쇠창살을 향해 연속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쇠창살 한 쪽이 떨어져 나가고, 가방을 들어 얼굴을 가리더니 그대로 창문을 향해
뛰어드는 화이.

112. 범수 정밀 공업사 뒷 골목 – 밤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골목에 드럼통들 위로 떨어지는 화이.


다시 한 바퀴 굴러 바닥에 떨어진 화이, 신음을 토해낸다.
가방을 들고 맞은편에 주차된 스타렉스 쪽으로 비틀거리며 뛰는 화이.

113. 범수 정밀 공업사 안 - 밤

공업사 안으로 튀어 들어오는 문 열린 랜드로버


차에 뛰어드는 석태와 범수. 굉음을 내며 공업사를 빠져나가는 랜드로버.

114. 도로 / 차안 - 밤

-49-
멀리 공업사 단지가 보이는 경사진 길, 요란한 엔진소리, 타이어 마찰음 들리며 나
뭇가지 사이로 요란하게 흔들리는 빛줄기들.
카메라 서서히 하강하면 절묘한 코너링으로 미친 듯이 추격전을 벌이며 올라오는
스타렉스와 랜드로버, 공사중 팻말을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동범 (흔들리며 낄낄) 못 잡는 거야?


기태 자...잡을 수 있어.

창문을 내리는 범수, 고개를 내밀고 화이의 차를 총으로 겨눈다.


룸미러로 범수를 본 기태, 갑자기 차를 흔들며 범수의 균형을 흩트린다.
차 밖으로 튀어나갈 듯 흔들리는 범수, 기태를 노려본다.

기태 쏘...쏘지마!! 내...내가 내가 잡을게!!!

부릅뜬 눈으로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는 기태.


이내 빨간 물통들이 줄지어 있는 공사 중인 도로가 나오고 각종장비와 트럭들로 좁
아진 도로를 서로 힘 겨루듯 밀고 밀리며 돌진하는 스타렉스와 랜드로버.
연속으로 물통을 쳐내며 돌진하는 랜드로버, 더욱 피치를 높여 랜드로버의 머리를
밀며 가속하는 스타렉스.
멀리 앞에 도저히 차 두 대가 빠져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좁은 구간 보이는데...
창문너머로 “호.. 화이야!” 안타깝게 부르는 기태 보이고 그 옆에 차가운 얼굴로 노
려보는 석태.
팔에 통증이 느껴지는 듯 미간을 좁히던 화이, 더욱 사납게 핸들을 꺾는다.
조금씩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좁은 구간으로 돌진하는 두 대의 차.
세워진 트럭의 옆면을 긁으며 스파크를 튀기는 스타렉스, 지게차의 날카로운 칼날
이 랜드로버의 옆면을 가르고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옆면 유리창, 아슬아슬 석태와
동범을 스쳐가는 칼날. 괴성을 지르며 웃는 동범.

앞서 나가며 터널구간으로 들어가는 스타렉스, 무서운 속도로 코너를 도는데 앞을


막아서는 공사차량, 무리하게 틈을 빠져나가려던 화이의 스타렉스 옆 꼬리를 부딪
히며 뱅그르 돌아버린다.
절묘하게 공사차량을 피해빠지는 기태의 시선, 뒤돌아선 화이의 차가 흔들거리며
후진하고 있다.
“잡았다. 밟어!” 동범 소리 지르면 엑셀을 최대한 밟아 가속을 붙이는 기태.
랜드로버 굉음을 내며 내지르는데, 힘껏 엑셀을 밟으며 기태를 막아서는 화이.
마주보며 터널을 빠져나가는 스타렉스와 랜드로버.

-50-
기태의 얼굴에 불안한 느낌이 스치는 순간, 상향등을 올리는 화이.
기태의 시야 하얗게 변하고 눈부심에 고개를 돌리는 아빠들.
백미러를 보며 도로를 확인하고 엑셀과 브레이크 동시에 밟으며 핸들을 꺾는 화이.
뿌연 연기 일으키며 회전하는 스타렉스.
끼이익 마찰음과 함께 마술처럼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스타렉스.
바로 앞에 나타나는 낭떠러지...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꺾는 기태.
하지만 관성이 붙은 기태의 차량,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도로를 이탈해 갓 길 쪽으
로 밀려간다. 미친 듯이 핸들을 감는 기태.
115. 도로 / 화이 차안 - 밤

피가 흐르고 있는 화이의 팔.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쓰는 화이.


더 속력을 내서 내지르는 화이의 차.

116. 언덕 정상 - 밤

절벽 가드레일 덕분에 가까스로 멈춰져 있는 차량, 타이어와 보닛에서 연기가 풀풀


나오고 있다. 차에서 내려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범과 기태. 화이가 달아난 방향
을 보고 있는 석태와 범수.

동범 (허탈한 듯 낄낄) 이거 우리 죽이려고 한 거지?


기태 아...아마...
동범 (낄낄) 뭐?
기태 (울컥) 내...내가 가르친 거야.

낄낄 웃는 동범. 일그러지는 범수. 괴물 같은 미소를 짓는 석태.

117. 인천 병원 복도 – 밤

병실 앞 복도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장형사.
장형사를 흔들어 깨우는 창호.

창호 야, 야, 내가 볼 테니까 들어가서 좀 쉬어.


가끔 애들한테 니가 아빤 건 알려줘야지. 응?

비몽사몽 일어나서 목을 긁적이는 장형사.

118. 인천 병원 로비 / 엘리베이터 – 밤

-51-
한가한 병원 로비, 마스크와 비니를 쓰고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
고 있다.
‘띵’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안에 보이는 모자를 쓴 화이, 구석에서 가만
히 고개를 숙이고 서있다.

119. 인천 병원 엘리베이터 / 7층 복도 – 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걸어 나오는 화이 그 뒤를 따라오는 휠체어.


휠체어를 의식하며 오른쪽 복도로 방향을 트는 화이, 따라오던 남자가 화이가 사라
진 쪽을 확인하고 휠체어를 굴린다.
‘쾅’ 화장실 문을 닫아 소리를 내더니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화이.
방향을 틀어 코너에 다다르자 살짝 머리를 내밀어 복도를 살피는 화이.
아무도 없는 선자 병실 앞, 고요하다. 이상한 느낌이 드는 화이.
벽에 기대서 잠시 생각하는 화이의 창백한 얼굴.

120. 인천 병원 병실 – 밤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는 바이탈 사인음과 그래프. 그 옆으로 호흡기를 끼고 있는


선자가 보인다. 마스크를 벗으며 선자를 내려다보는 남자, 어딘가 낯익은 곱상한 얼
굴의 남자는 지원을 따라다니던 부하 중 한 명이다.
천천히 약병에 주사기 바늘을 꽂고 약을 빨아들이는 남자.
선자의 링거에 주사기를 가져가는 남자, 튜브에 주사기를 꽂는다.
이때 문이 살짝 열리며 바닥으로 들어오는 빛. 놀라서 돌아보는 남자.
문 앞에 서 있는 화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순간 주사기를 누르는 남자, 반쯤 들어가는데...
남자에게 달려드는 화이, 주사기를 뺏어 그대로 남자의 목에 꽂는다.
뒤로 나가떨어지는 남자. 선자의 팔에서 링거를 뽑아버리는 화이.
휠체어 밑에서 사시미 칼을 빼들더니 달려드는 남자. 반사적으로 피하며 링거 줄로
남자의 손과 목을 감으며 돌아서는 화이. 켁켁거리던 남자, 칼로 링거 줄을 자르더
니 돌아서며 화이의 배에 칼을 긋는다. 화이, 움찔하며 잠시 물러선 순간 선자의 목
에 칼을 찌르려는 남자. 발로 침대를 차는 화이. 칼이 빗나가고 한 바퀴 굴러 떨어
지는 남자.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다리사이에 팔을 넣고 꺾으면 ‘투득’ 소리
내며 완전히 꺾이는 팔. 남자, 칼을 놓치며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 이어지는
데 남자의 목젖에 꽂히는 사시미 칼. 일순간 갑자기 조용해지는 병실, 침묵을 파고
드는 화이의 기괴한 웃음소리. 낄낄거리는 화이의 표정이 왠지 슬퍼 보인다.

-52-
121. 인천 병원 입구 – 밤

초조한 듯 몸을 흔들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창호.


이때 어디선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창호 옆 앰뷸런스 위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환자복을 입은 남자의 시체.
놀라 자빠지며 시체를 보는 창호, 멍하다.
그 주위로 소란스러워지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122. 파주 병원 앞 – 밤

병원 입구에 택시가 와서 서고, 내리는 사람 유경이다.


차에서 내려 누굴 찾는 듯 두리번거리는 유경. 입구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이가 보인다.
화이에게 다가가는 유경. 가까이서 보니 덜덜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이.
천천히 고개를 드는 화이, 곧 무너질 것처럼 나약해 보이는 얼굴.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유경.

123. 인천 병원 통제실 – 밤

CCTV 영상을 보고 있는 창호, 장형사, 김형사.


선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어수선한 로비를 가로질러 밖으로 사라지는 화이.
일그러지는 창호의 얼굴.

124. 국도 변 어딘가 / 차안 -밤

한가한 국도변, 불 꺼진 화원 앞에 세워져 있는 정민의 차.


수첩에 빼곡히 적어 놓은 농원 목록을 보고 있는 정민의 골똘한 표정.

정민 (수첩을 집어 던지며) 에이 씨발, 대한민국에 향나무 없는 곳이 어딨어!!

의자를 뒤로 확 젖히며 드러눕는 정민,

정민 (궁시렁) 하필이면 향나무야 향나무가. 좆도 무슨 특이한 나무든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는 정민,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


시동을 거는 정민.

-53-
125. 파주 병원 복도 – 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유경, 병실 쪽으로 걸어간다.


병실 앞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화이.
그 옆으로 와서 서는 유경.

유경 다 됐어...
화이 ...고마워... 그냥 하루만 봐주면 돼.
유경 (끄덕이고는) ...왜 밖에 있어? 들어가 봐.

순간 울음이 터질 듯 일그러지는 화이의 얼굴.

유경 (괴로운 듯) 왜 그래... 엄마라며... 안 들어 갈 거야?

울음을 참는 듯 덜덜 떨리는 화이의 몸.

126. 파주 병원 병실 - 밤

호흡기를 끼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선자의 얼굴.


문이 열리고 천천히 들어오는 화이, 선자 옆에 선다.
가만히 선자를 내려 보던 화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선자의 손에 쥐어준다.
아무 반응 없이 누워있는 선자.
선자의 손을 꼭 쥐는 화이의 손. 조심스럽게 내뱉는 화이의 말.
화이 ...엄마...

순간 무너져 내리듯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화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격분을 참을 수가 없는 듯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하는 화이.

화이 엄마... 엄마......

127. 농원 비닐하우스 – 밤

구덩이 속에 파묻힌 진성의 시체와 어린 화이의 사진 그 위로 흙들이 빠르게 덮이


고 있다. 열심히 흙을 덮고 있는 석태, 동범, 기태, 범수의 괴상한 열기.
이때 석태의 전화가 울리고 전화를 받는 석태.

창호 (받자마자 소리) 지금 애새끼 어디 있어? 김선자는 왜 데려 간 거야, 어?!

-54-
석태 ...뭐?
창호 (소리) 뭐는 뭐야 뭐가! 애새끼 어딨냐고?! 아, 몰라 몰라 됐고, 말 안 통하니까 진
성이 바꿔, 진성이. 이 새낀 왜 전화 안 받아?!
석태 ...죽었어.
창호 (소리) 뭐?
석태 김선잔 누가 데려갔어?
창호 (소리) 화이.
석태 (잠시 생각하다가) ...찾으면 다시 연락해.

그냥 전화를 끊는 석태, 아무 말 없이 삽질을 계속한다.


석태를 가만히 보고 있는 아빠들.

128. 광역 수사대 사무실 - 밤

‘낮도깨비’ 라고 쓰여진 캐비닛을 열어젖히는 정민.


많은 박스 중에 맨 밑 칸 ‘1998 임근영 유괴사건’ 박스를 꺼낸다.
박스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각종 서류와 녹음 테입, 비디오 테입.

(cut to)

TV로 나오고 있는 화질 나쁜 비디오테이프 영상.


핸드 헬드로 찍히고 있는 어린 아기, 전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해맑게 두리
번거린다. 이때 갑자기 아기의 얼굴에 검은 복면을 덮어씌우더니 아기를 한 손으로
잡아들어 커다란 화분에 집어넣는 손. 미친 듯이 우는 아기의 소리, 그 위로 올려
지는 불그스름한 나무... 화면 위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화이목이다. 화분 앞으로
쓱 들어오는 스케치북. 거기에 적힌 요구사항으로 줌 인 하는 카메라.

‘만원권 2억, 3월 24일 14시 20분 출발 수원행, 신도림역 매점 앞 열차...’


TV를 보고 있는 정민의 미간이 구겨진다.

129. 석회공장 앞 – 밤

멀리 밤기차가 지나가는 모습 보이고 그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


가로등만 드문드문 켜진 인적 없는 도로변, 문 닫은 듯 황폐한 석회 공장 입구.
그 앞으로 가서 자물쇠를 만지는 화이, ‘철컥!’ 열리는 자물쇠.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는 화이.
밝은 달빛에 낡고 오래된 석회창고들, 그 옆으로 높게 올라간 석회타워가 보인다.

-55-
130. 농원 이층집 거실 – 새벽

조용하게 TV가 틀어진 거실, 뜨개질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 영주의 뒷모습.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들. 전부 심각한데 동범만 자고 있다.
석태의 전화가 울리고 발신인을 확인하는 석태, 전화를 받는다.

석태 화이냐?

화들짝 놀라서 깨는 동범. 석태를 보는 기태와 범수. 뜨개질을 멈추는 영주.

화이 (소리) ...물어볼게 있어요.


석태 ......
화이 (소리) 왜 절 키우신 거예요?
석태 그 게 무슨 소리야? ...아빠한테.
화이 (소리).......
석태 어디냐 지금?
화이 (소리)...아빠 ... 저 데리러 와 주실 건가요?
석태 (사이)...그래야지.
화이 (소리) 저 처음에 데려갔던 곳, 열시까지 아빠들 모두 모시고 오세요. 기다릴게요.

그냥 전화를 끊는 화이. 천천히 전화를 끊는 석태.

131. 타워 위 어딘가 – 새볔

짙고 푸른 여명. 화이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
기둥에 기대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화이.
화이 앞에 서있는 거대한 괴물, 허리를 숙여 화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괴물, 마지막 발악하듯 입을 벌려 몸부림친다.
솟아오르는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며 증발하는 은빛 괴물.

132. 파주 병원 데스크 – 아침

데스크에 틀어진 작은 TV, 뉴스가 나오고 있다.


간호사2가 들어오고 교대를 하려는 듯 정리를 하던 간호사1.

간호2 밤새 고생 많았어.

-56-
간호1 (소지품을 챙기며) 고생은, 밤에가 한가하지.

피식 웃으며 데스크에 앉아서 TV를 보는 간호사2.


뉴스에서 간밤에 병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환자를 탈취당한 사건이 나온다.

간호2 (나가려는 간호사1에게) 야~ 진짜... 우리도 조심해야 겠다.


이젠 뭐 훔칠게 없어서 환자를 다 훔쳐가네.
간호1 뭐?

TV를 가만히 보고 있는 간호사1.

133. 어딘가 갓길 – 아침

갓길에 세워져 있는 다 찌그러진 스타렉스. 뒷좌석에 놓인 김선자의 전화기.


그 모습을 차창으로 보고 있던 창호, 열 받는 듯 타이어를 걷어찬다.
이때 울리는 창호의 핸드폰.

창호 뭐?... 어딘데? 알았어. 아니 우리가 갈게!

134. 전회장 빌딩 회장실 – 아침

넓은 소파에 앉아 책을 보며 혼자 바둑을 두고 있는 전회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원.

지원 (전회장 앞에 서서) 예, 부르셨습니까?


전회장 (책을 보고 수를 놓으며) 간밤에 무슨 일 있었나요?
지원 일에 좀 차질이 생겼지만... (고개 숙이며) 곧 해결하겠습니다.
전회장 (테이블에 올려진 편지를 지원에게 건네며) 경비 아저씨가 이런 걸 주시던데...

편지를 보는 지원, 싸늘하게 굳는다.

전회장 이분들 지금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걸까요?


지원 (편지를 보며) ......
전회장 아시겠지만, 난 적을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알고 계시죠?
지원 네, 회장님.

135.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57-
뒤로 하늘만 보이는 난간에 기대 앉아 있는 화이, 시계를 본다.
천천히 가방의 지퍼를 여는 화이.

136. 파주 병원 병실 – 낮

침대의 누워있는 김선자의 얼굴을 내려 보고 있는 창호와 장형사.

창호 이 여자, 누가 입원시켰어요?

뒤로 모여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

간호1 (조심스럽게) 저한텐... 딸이라고 했는데... 좀 전까지 여기 있었어요.

침대의 이름표를 확인하는 창호, 이름이 양문숙이다.


병실로 들어오려던 유경, 안을 보고는 그냥 지나쳐 간다.

137. 석회공장 창고 앞 / 차안 - 낮

석회창고에서 좀 떨어진 공간에 차를 세우는 기태.


석회창고 안쪽에 늘어선 세단들을 보는 아빠들, 차에서 내린다.

동범 (차들 보며 낄낄) 이 건 다 뭐냐? 파티냐?

의심스러운 듯 주위를 보는 범수.

범수 (기태에게) 형은 밖에 좀 살펴봐.
기태 어? 시...싫어. 나...나도 갈래. 내...내가 얘기할게, 응?
석태 (걸어가며) 범수 말대로 해.

못내 아쉬운 듯 서 있는 기태. 기태를 뒤로하고 창고로 걸어가는 아빠들.

기태 (범수의 팔을 덥썩 잡으며) 주...죽이면 안돼. 아...알았어?


범수 (잠시 보다가) ...알았어.

다시 돌아서 창고로 걸어가는 범수. 아빠들의 뒷모습을 보던 기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58-
138. 석회창고 앞 / 석회창고 안 - 낮

창고 입구 처마 아래로 들어가는 아빠들. 문을 열어젖히는 석태, 창고 안으로 한걸


음 들어가려는데...
안쪽 문 옆에 서있던 건달의 총구들이 철컥, 철컥, 석태에게 겨눠진다.
흠칫, 그대로 멈춰선 아빠들.
음침한 실내, 중앙에 놓인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그 모습을 보던 지원.

지원 늦으셨네요? 이리 오시죠.

아빠들의 무기를 찾아 빼내는 건달들... 매섭게 건달들을 훑어보는 석태.


씩 웃는 건달, 고갯짓으로 지원 앞으로 가라고 신호한다.

지원 (건달에게) 무례하잖아요. 총 치우세요.

걷고 있는 아빠들에게서 총을 거두는 건달들.

지원 (의자에서 일어나며) 굳이 이런 데로 부르신 걸 보니까


낭만적인 성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제 취향은 아닙니다.
동범 (주위를 보며, 낄낄) ......
지원 뭐가 재밌죠?
동범 (낄낄) ...우리가 안 불렀거든.
지원 뭐라구요? (피식) 이제 와서 발뺌하시는 겁니까? 김선자씨는 어딨습니까?
석태 ...안됐지만, 나도 몰라.
지원 이러시면 곤란하죠. 요구하신대로 돈을 다섯 배 가져왔으니 김선자씨를 넘기셔야죠.
아님 죽여주시던가.
동범 (낄낄) 다섯 배? 고놈 많이도 불렀네?
지원 (잠시 얼굴 굳다가 피식) 뭡니까? ...지금 연극하십니까?

서로를 노려보는 석태와 지원.

지원 (편지를 꺼내) 이걸 보낸 게 당신들이 아니라 이거죠?


여기 전화번호도 남기셨던데... 한번 전화해 볼까요?

지원을 노려보는 석태. 이상한 낌새가 드는 듯 주위를 살피는 범수.


전화를 거는 지원.

-59-
잠깐의 정적이 창고 안을 감돌더니 이윽고 창고 밖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소리.
창고 밖, 처마 어딘가에 놓여 있는 진성의 전화기.
소리의 방향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동범.

지원 (진심으로 웃긴 듯)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그냥 들어오라고 하세요.

옆에 건달에게 전화기를 주더니 건네주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지원.


상황이 이상해짐을 느끼는 아빠들, 자신들을 에워싼 정장들을 살핀다.
전화기를 들고 다가와 석태에게 내미는 건달.
전화를 받으려고 천천히 손을 뻗는 석태.
이때 전화기를 내밀은 건달의 손이 천장 구멍을 통해 들어온 직사광선에 닿는다.
그러자 갑자기 퍽하고 터져 버리는 건달의 손목.
석태의 얼굴에 피가 튀며 건달의 손이 사라졌다. 눈이 번쩍 떠지는 석태.
마술 같은 상황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창고 안.
순간 손이 날아간 본인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듯 정지해 있다.
바닥에서 전화기를 그대로 쥐고 있는 손을 본 건달, 그제야 손이 날아간 걸 깨달은
듯 비명을 지른다. 이때 건달의 좌측 목이 다시 햇볕에 가서 닿는다. 닿자마자 다
시 퍽하고 터져버리는 목.
마치 햇볕이 몸을 터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순식간에 패닉상태가 되어버리는 창고 안.
아무도 꿈쩍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빠르게 움직이는데,
뒤쪽에 건달 한명이 겁이 나는 듯 눈동자만 굴리다가, 자신의 발에 와서 떨어지는
햇볕을 본다.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순간 퍽하고 터져버리는 발. 비명을 지르며 쓰
러지는 건달. 햇살 속으로 머리가 들어간다. ‘퍽!!!’
그 순간 창고 안에 모든 사람이 일제히 총과 칼을 빼든다.
지원을 향채 총을 겨누고 있는 석태. 석태를 겨누고 있는 지원
부하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범수. 범수를 겨누고 있는 건달 넷.
뒤로 돌아 건달들을 노려보며 칼을 겨누는 동범. 칼을 빼들고 있는 부하 넷
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이 창고
를 메운다. 석태의 얼굴에 튄 피가 흘러내리고...

139. 석회공장 마당 – 낮

멀리 타워 옥상 쪽을 보는 기태. 옥상에 화이가 저격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


다. 타워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는 기태.

140.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60-
총구 위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창고를 내려 보며 저격총을 겨누고 있는 화이, 미동도 없다.
창고 천장의 구멍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내부.
화이의 땀이 흘러 바닥으로 한 방울 떨어진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내부에서 문득 천장 구멍으로 누군가의 몸이 슬쩍 보이고,
기다렸다는 듯 그 구멍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퓨숙!
휘리릭 사슴벌레 날아오르고 폭발하듯 울리기 시작하는 총성들.

141. 석회공장 창고 안 – 낮

총구에서 발사되는 화염과 탄환들. 마구잡이로 당겨지는 방아쇠들. 석회가루 뿌옇게


날리는 가운데... 범수의 등에 박히는 탄환, 돌아서서 총을 쏜 건달을 명중시키는
범수. 곧이어 칼을 들고 달려드는 건달을 붙잡고 턱에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범수.
건달의 목에 미친 듯이 칼을 쑤셔 박는 동범, 뒤에서 달려들어 동범의 목에 칼을
쑤셔 넣는 건달. 피가 솟구치는 목을 움켜잡으며 돌아서서 건달을 찌르는 동범.
정확하게 한 명씩 겨눠서 방아쇠를 당기는 석태.
지게차 뒤에 숨어서 벽에 붙은 볼록거울 통해 여유롭게 아비규환을 지켜보던 지원,
일순간 튀어나가며 탕! 배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범수, 범수가 쓰러지며 쏜 총에
다리를 맞지만 아랑곳 않고 걸어가며 돌아서는 석태를 향해 또 한 발. 어깨에 총을
맞고 석회가루 속으로 사라지는 석태. 연속해서 방아쇠를 당기는 지원. 다른 방향
에서, 귀신처럼 석회가루 뚫고 나오며 방아쇠를 당기는 석태, 목에 총알이 스치며
터져나더니 벌집처럼 총알을 받아내는 지원.

142. 석회공장 창고 앞 – 낮

격렬하게 울려대는 총성 속에... 마지막으로 ‘탕’하고 울리더니 찾아오는 정적.


잠시 후 문이 벌컥하고 열리며 안에서 피칠갑을 한 범수가 탄창을 갈며 비틀비틀
걸어나온다. 미치광이 같은 얼굴을 한 채 그대로 차양 밖으로 나가는 범수. 걸어나
가며 범수가 노려보고 있는 곳은 타워의 한 지점이다.
차양을 벗어나자마자 타워를 향해 마구 총을 갈기는 범수.
태양을 등진 타워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은빛 괴물 같다.
순간적으로 타워의 실루엣에서 어떤 한 점이 날아와 범수의 시선을 덮친다.
그대로 멈춰진 범수의 다리, 갑자기 무릎이 풀썩 꺾이며 바닥에 처박힌다. 그대로
넘어가는 범수.

-61-
143.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미동도 않고 스코프를 보고 있는 화이, 목에 총알이 스친 듯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


다.

144. 석회공장 타워 사다리 – 낮

사다리를 기어 올라가고 있는 기태,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145. 석회공장 창고 안 – 낮

아비규환인 내부. 여기저기 흩어진 시체들, 아직 죽지 않고 신음하는 건달들. 터덜


터덜 걸어 다니며 신음하는 건달들을 확인 사살하는 석태, ‘퓨슉, 퓨슉!’
이를 악물고 피를 토하는 지원, 다가오는 석태를 노려본다.
눈을 뜬 채로 죽어버린 동범의 얼굴을 보는 석태, 지원에게 총을 겨눈다. ‘퓨슉!’
악귀처럼 노려보던 지원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찾아오는 정적.
곧 이어 창고 안에 작게 들리는 전화 진동소리, 보면 날아간 손에 그대로 쥐어진
지원의 전화다.

146. 파주 병원 복도 – 낮

누굴 찾는 듯 빠르게 걸어가며 두리번거리는 창호, 전화를 하고 있다.

창호 (전화기에) 김선자 찾았으니까 처리할거면 지금 빨리 와.


석태 (소리) ......
창호 야, 박지원이? 안 들려?

147.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허망한 듯 창고를 내려 보고 있던 화이, 저격총을 쥔 손에 힘이 빠지는 듯 총구가


내려가는데... 순간 눈이 번쩍 떠지는 화이, 창고를 나오는 석태가 보인다.
이를 악물며 다시 저격총을 잡는 화이, 스코프로 석태를 잡는다.
이때 사다리를 통해 옥상으로 올라오는 기태, 구르듯 옥상에 안착한다.
화이의 스코프 시선, 화이를 정면으로 노려보는 석태.
왠지 망설이는 듯 한 화이,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준다.
석태와 화이를 번갈아 보는 기태.

-62-
기태 (화이에게 달려들며) 하...하지마!!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푸슉!

148. 석회공장 창고 앞 - 낮

화이를 가만히 보고 있는 석태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스치는 총알, 뒤로 가서 박힌


다. 그 모습을 보고 괴물같이 웃는 석태.

149.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화이에게 달려드는 기태, 돌아보는 화이를 덮친다.


저격총으로 기태를 막는 화이.
저격총을 뺏으려고 용을 쓰는 기태, 화이를 난간으로 밀어붙인다.

기태 (힘쓰며) 그...그만해!
화이 ......

저격총을 잡고 확 당기는 기태, 그 힘을 이용해 기태를 밀어붙이는 화이.


반대쪽 난간으로 달려가는 둘, ‘텅’하는 소리와 함께 난간에 기대는 기태.
순간 우지끈 소리와 함께 난간이 부러지려한다.

화이 (기태를 누르며) ...아빠도 똑같애...


기태 (일그러지며) ...그...그만해...
화이 (일그러지며) ...똑같애... 아빠도 날 속인거야...
기태 (눈물이 차오르며) 이...이...이제 됐잖아... 이...이제 그만해...
화이 (눈물이 차오르며) ...그만? ...그만 하라구?! ...왜?!! 왜 그만 둬야 되는데?!!

순간 우지끈하며 난간이 무너져 버리고,


한손엔 총을 한손엔 난간을 부여잡고 매달린 화이. 그리고 화이가 잡고 있는 총에
매달려 있는 기태.
팔 근육이 끊어질 듯 당겨지는 화이,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총을 놓지 않는 화이.
아득한 아래를 내려보는 기태, 멍해지며 화이를 올려본다.
기태를 내려보며 악을 쓰고 있는 화이, 배에 칼을 맞은 곳이 더 벌어지는듯 피가
솟구쳐 나온다. 그리고 점점 뜯겨져 나가는 난간.

기태 괜...괜찮아... 괘...괜찮아 아빠는...

-63-
더 뜯겨 나가는 난간, 조금 더 버티면 둘 다 떨어질 것 같다.

기태 화...화이야...

기태를 내려보는 화이.

기태 미...미안해... 화이야.

총을 놓는 기태, 화이를 보며 아래로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숨을 몰아쉬는 화이, 눈물 차오르며 천천히 저격총을 놓아버린다.

150. 석회공장 마당 – 낮

‘퍽!’ 솟아오른 철근 위로 허리를 관통하며 떨어지는 기태.


걸음을 멈추고 기태를 바라보는 석태, 얼굴 근육이 꿈틀꿈틀 점점 일그러지더니 휙
돌아서서 가는 석태.

151. 석회공장 타워 옥상 – 낮

난간을 기어 올라가는 화이. 멍하니 석태를 보는데, 건달들의 차 타이어에 총을 쏘


고 있는 석태. 의도를 알 수 없는 듯 그 모습을 보는 화이.
이때 울리는 전화 진동.

152. 파주 병원 여자 화장실 – 낮

화장실 칸에 들어가서 전화를 하고 있는 유경.

유경 (조용하게) 화이야 난데, 여기 어떤 아저씨가 막 너 찾고 있어. 어떡해야 돼?

153. 석회공장 타워 위 – 낮

전화기를 들고 있는 화이, 머릿속이 비어버린 듯한 얼굴.


다시 석태의 행동을 보는 화이.

154. 석회공장 마당 – 낮

-64-
엷은 웃음 번지며 화이를 노려보더니 차를 타고 떠나는 석태.

155. 파주 병원 여자 화장실 – 낮

유경 (겁나는 듯) 야, 듣고 있어?

이때 갑자기 문을 잡고 흔드는 누군가.

유경 (전화기 막으며) 여기 사람 있어요.


창호 (문을 잡아 부술 듯 흔들며) 알아 이 썅년아! 문 열어!!

156. 농원 이층집 현관 - 낮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불안한 눈빛의 영주가 보인다.

정민 안녕하세요. 저기 저 번에 한 번 왔었는데...
영주 (문을 닫으며) ...영업 안 해요.
정민 (닫히는 문을 손으로 잡고 신분증 내밀며) 경찰입니다.
영주 .......
정민 (문틈으로 안을 살피며) 좀 들어가도 될까요?

거부하듯 정민을 노려보고 있는 영주.

157. 석회공장 앞 도로 – 낮

석회공장 앞 도로를 지나가고 있는 차속 운전자의 시선으로, 공장에서 달려 나와서


차를 가로막는 화이가 보인다.

운전자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뭐야, 씨발!!

귀를 찢는 끼이익 소리와 함께, 화이 무릎 바로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서는 차.


거침없이 운전석으로 다가가는 화이.

화이 (차문을 열며) 내려.


운전자 (안전벨트를 푸르며) 뭐 이 새끼야?! 이 새끼가 돌았나?!
화이 (총을 꺼내 뒷자리 시트에 두발 발사하고) 내려.
입이 턱 벌어져서 화이를 보는 운전자.

-65-
(cut to)

허망하게 서있는 운전자를 뒤로하고 굉음을 내며 떠나는 차.


떨리는 화면 안에 가득 찬 화이의 괴물 같은 얼굴

정민 (소리) 이 아이는 누구죠?

158. 농원 이층집 - 낮

정민이 화이와 아빠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영주.
사진을 들고 영주 맞은편에 가서 앉는 정민.

정민 (화이 가리키며) 여기 이 애 누굽니까?


영주 ...아들요.
정민 (미간 좁히며) 아들요?
영주 네. 아들이요.
정민 장영주씨?
영주 (흠짓)......
정민 (서류 꺼내 넘겨보며) 장영주씨 맞죠? 1973년생.. 이 집 소유주시고.. 남편이 윤석
태 씨, 그리고 동거인이 윤기태씨, 이진성씨... (떠보듯) 아들은 없던데......
영주 (가슴의 십자가 목걸이 만지며) ...주...죽었어요. 이 년 전에...
정민 아... 그래요? (영주를 똑바로 보며) 제가 쫓고 있는 놈들이 있거든요? 낮도깨비라
고...
그런데 그 놈들이 이번에 임형택이라는 사람을 죽였어요.

정민, 불쑥 임형택 사건의 현장 사진을 영주에게 들이민다.


눈을 감았다 뜨는 영주, 벌벌벌 떨기 시작한다.

정민 (사진을 넘기며) 원래 아무런 감정이 없는 놈들인데.


왜 이렇게 많이 쐈을까요? 망설인 흔적도 있고...
(영주 얼굴 살피며) 감정이 있다는 건 면식범일 수 있단 얘기에요.
영주 (애써 정민을 똑바로 보며) 용건만 말씀하시고 가 주세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정민 좋아요... 임형택씨 아시죠?
영주 모... 몰라요.
정민 모른 다구요? (서류를 꺼내 보이며) 윤석태, 윤기태, 그리고 장영주.

-66-
모두 인천 성지보육원 출신이던데. 그 당시 임형택의 부친이 성지재단 이사장이었
구요.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몰라요?

프린트 된 사진 속에 십자가가 선명한 성지보육원 건물이 보이고 그 옆에 젊은 임


형택의 얼굴이 보인다.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듯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영주.
영주의 반응을 보는 정민의 얼굴에 번지는 승리의 미소.

159. 파주 병원 뒷골목 / 차안 - 낮

한적한 병원 뒷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창호의 차.


뒷좌석에 수갑이 채워져 떨고 있는 유경이 보이고 운전석에서 초조한 듯 두리번거
리고 있는 창호.

창호 (조심스레 권총의 총알 확인하며) ...그러니까 친구를 잘 사겨야 되는 거야...


(유경 보며) 아저씨가 원래 나쁜 사람 아닌데 친구를 좆같이 사겨서
지금 아주 좆되게 생겼거든...

이 때 갑자기 창가에 귀신처럼 나타나는 횟가루를 뒤집어쓴 석태.


권총을 석태 안보이게 창문 아래로 붙이는 창호.

창호 (깜짝 놀라며) 어?! 왔어?... 애새끼는? 죽였어?


석태 (창호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창호 (쫄아서) 유..육층이야. 잠깐 비워놨으니까 얼른... (얼굴 굳으며) 에이.. 씨발...

‘푸슉’ 순식간에 창호의 이마에 뚫리는 총알구멍.


창호 쓰러지고 벌벌 떨고 있는 유경을 바라보는 석태의 무심한 표정.

160. 국도 - 낮

국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화이의 차.


배에 상처를 막고 한 손으로 운전하고 있는 창백한 화이.
멀리 병원이 보이고 속도를 높이며 무리하게 중앙선을 넘어 회전하는데..
달려오는 관광버스, 날카로운 경적소리 속에서 급하게 핸들을 꺾는 화이.

161. 파주 병원 병실 – 낮

-67-
‘끼이익~’ 마찰음에 번쩍 눈을 뜨는 선자,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손수건을 본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 힘겹게 고개를 돌리는 선자.
세면대 앞에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는 석태, 거울을 통해 선자를 바라본다.
어리둥절한 선자, 멍하게 석태를 바라보고 있다.

162.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형택집에 붙어 있던 동범과 범수의 몽타주를 테이블에 펼쳐 놓은 정민.

정민 (아빠들 사진과 비교하며) 맞지? 이 사람들?


영주 (눈동자만 내리깔고 보며 덜덜) ......
정민 당신들이 애를 유괴한 거야. 맞지?
영주 (일그러지듯 눈물 흘리며)...그만 나가....
정민 아직 안 끝났어. 임형택도 니들이 죽였지? (사진 속에 화이를 가리키며) 얜 누구야?
현장에서 목격된 고등학생. 얘도 가담한 거지? 죽은 거 아니지?!

정민을 노려보던 영주, 무너지듯 눈물이 흘러내린다.

영주 (무너지듯) ...화이는 착한 아이야... 그 애는 잘못 없어...


정민 뭐?... 화이?... 화이..목?

갑자기 혼란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는 정민.


사진 속 화이와 어린 화이의 사진을 번갈아보던 정민.

정민 (혼란스러운 듯) 씨발...뭐야 이거...


영주 (횡설수설 하며) ...니가 뭘 알아...
정민 (영주를 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니들... 애를 키운 거야?

163. 파주 병원 병실 – 낮

햇살이 들어오는 따스한 병실.


의자에 앉아 창가에 놓인 조그만 화분을 보며 담뱃불을 붙이는 석태.
그 모습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자.

석태 못 봤지?... 애 크는 거.
(손으로 높이를 가늠하며) 처음엔 이만했는데 지금은... 아, 한 번 봤다고 그랬나?
말 잘 듣고 착한 아이야. 똑똑해서 뭘 가르쳐도 금방 배워...

-68-
(선자를 보며 미소로) 그림도 엄청 잘 그리고...

선자가 무언가 직감한 듯 눈이 커지며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164. 파주병원 근처 국도 - 낮

반파되어 뒤집어져 있는 화이의 승용차, 운전석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카메라 다가가면 피 뭇은 에어백 너머로 병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화이 보인다.
있는 힘을 다 해 달리고 있는 화이의 처절한 얼굴 위로...

165. 파주병원 병실 - 낮

석태 (소리) 진짜 멋진 놈인데.. 병이 좀 있어...


자꾸 뭐가 보인데, 심하면 발작도 하고, 보기 힘들어...
(담배연기 길게 뿜고 피식 웃으며) 그런 건 날 닮았나봐... 나도 그랬거든.

166.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죽은 형택의 사진 앞에서 미친듯이 서성거리고 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정민.

정민 하! 말도 안돼. 미친놈들... 왜? (영주의 어깨를 잡으며) 말해봐! 도대체 왜 그런 거


야?
(서류를 뒤적이며) 82년에 윤석태는 소년원에 갔어. 당신은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
졌 고... 이 때 무슨 일이 있었어... 어?
영주 (절래 절래 고개 흔들며) 아니야... 오빠... 그러지 마...
정민 말해! 임형택! 윤석태!... 도대체 뭐야?!

167. 파주 병원 병실 – 낮

석태 형택이형... 예수님이 그렇게 착했을라나? 진짜 착했는데...


(소리) 그 형이 그러더라고... 무섭고 화가 나서 내 맘이 더러워진 거라고...
(소리) 기도하면 괴물이 사라질 거라고...
(소리) 그래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는데... 크크큭 사라지긴 씨발...

Insert.
승용차에서내리는 형택의 부모와 십대의 형택. 보육원 아이들이 달려간다. 아이들에
게 둘러싸여 손을 흔드는 형택. 싸늘한 석태와 그 옆에 손을 흔드는 기태.

-69-
석태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 형택, 석태의 눈에도 눈물이 흐
른다. 예배당에서 혼자 부들부들 떨며 기도하는 석태. 그 뒤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괴물의 그림자.
뿌리가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심겨진 꽃나무, 그 흙을 다지고 있는 멍한 얼굴의
석태, 멀리 형택과 함께 꽃을 정성스레 심고 있는 어린 영주, 발그레한 얼굴로 환하
게 웃는다.

석태 (화분에 담배 비벼 끄며) 지겹더라라구... 전부 다...


크크큭 그래서 한번은 내가 그 형이 좋아하는 애를 따먹었거든?
나도 좋아했는데 그년은 날 안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어?

선자를 향해 빠구리를 뜻하는 손동작을 격하게 하며 큭큭큭큭 웃는 석태.

Insert.
문틈으로 꽂은 쇠꼬챙이 젖혀지며 열리는 창고 문. 창고 안, 벌거벗은 채 울고 있는
어린 영주, 피 묻은 옷으로 빛이 쏟아지는 얼굴을 가린다. 형택,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영주를 내려 보는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각목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석태.
쓰러지며 비명을 지르는 형택, 내려 보면 형택의 종아리에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꼽
혀있다. 두려움과 희열이 섞인 눈으로 그 모습을 내려 보는 벌거벗은 석태.
수갑을 찬 석태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형택.
형택의 다리가 잘려나가 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웃고 있는 석태의 묘한 표정.
석태 (소리) 그렇게 완전히 더러워지니까... 없어지더라구... 괴물이...

테이블 위에 권총을 들어 소음기를 돌려 끼우는 석태.

석태 근데 나중에 자꾸 생각나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좆같이 깨끗한 형은...


선자 (뜨거운 눈물 흘리며) 아... 하느님!...

선자 팔목에 주사바늘 위에서 피가 역류한다.

168. 농원 거실 - 낮

영주 그 인간... 절대 포기 안 해.
(불안한 듯 문 쪽을 보며) 나가... 너도 죽어... 어서 나가!

영주가 벌떡 일어나 정민의 옷을 잡고 떠밀려 하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70-
영주 (무너지듯 흐느끼며) 나가... 제발 나가...

슬리퍼가 벗겨진 영주의 발... 잘려진 발가락을 보는 정민.

정민 (영주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당신 여기서 그냥 살고 있는 거 아니지?!!

넋 나가서 벌벌 떨고 있는 영주.

정민 말해!! 당신 여기 붙들려 있는 거지?!!


영주 (넋 나가서) 잘 못했어요......
정민 (영주를 일으켜 세우며) 일단 여기서 나가요. 우리가 보호해 줄게요.

169. 파주 병원 입구 - 낮

병원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는 창백하고 처절한 얼굴의 화이.

170. 파주 병원 병실 – 낮

석태 (창밖을 보며) 그래도 오늘 화이가 한 짓은 너무 했어... 안 그래?

씁쓸한 미소 짓는 석태,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자.

석태 (일어서서 다가오며) 걱정 말아요. 화이도 다 겪고 나면 좋아질 거야...

171. 파주 병원 1층 엘리베이터 앞 - 낮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오는 화이, 근데 엘리베이터가 모두 고층에 잡혀있다.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하는 화이.

172. 농원 이층집 거실 - 낮

영주의 팔을 끌고 나가는 정민,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영주, 벌벌 떨며 정민에게 조금씩 끌려 나간다.

영주 (혼잣말하듯) ...보호해준다구...?

-71-
반장 (다짜고짜 소리) 야 똘충! 너 무슨 염치로 전화질이야!! 당장 안 들어와!!
영주 (넋이 나가서 끌려 나가며 중얼중얼) 보호...이제와서...
정민 에이 씨발, 잡았어! 잡았다구. 낮도깨비!! 주소부를 테니까 지원이나 보내!!

불쑥 현관에 장식용 괴석으로 정민의 머리를 후려치는 영주.


그대로 뻗어버리는 정민. 전화기에서 반장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영주 (바들바들 떨며) ...이제 와서... ...개새끼들 이제 와서...

173. 파주 병원 복도 - 낮

천천히 다가오는 석태를 증오와 공포와 연민이 섞인 눈으로 가쁜 숨을 쉬며 바라보


는 선자.

선자 (석태를 증오로 놀려보며) 왜?...


석태 .......
선자 (답을 구하며 애원하듯) ...왜??!
석태 .......
선자 (터져버릴 듯 붉은 얼굴로) ....왜애애애?!!!!

어떤 거대한 존재에게 진정으로 답을 갈구하는 듯 한 선자의 애절한 물음이 따라오


는 침묵 속에서 강렬하다.

174. 파주 병원 복도- 낮

병실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 화이, 총을 빼든다.

175. 파주 병원 병실 - 낮

멈춰선 석태... 선자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석태 (천천히 총 겨누며 피식) 나도 몰라. 위에 가서 물어봐요. 그 분은 아시겠지...

176. 파주 병원 병실 - 낮

총을 겨누며 병실을 향해 돌아서는 화이.


침대 앞에 겁에 질려 서있는 간호사가 보인다.

-72-
가쁜 숨이 서서히 진정되는 화이, 비현실적인 것을 보듯 멍하니 보고만 있다.
처참한 엄마의 시체... 한 손에 꼭 잡은 손수건을 타고 핏물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
져 고인다.
점점 점멸되듯 초점이 사라지는 화이의 눈동자.
자기의 숨소리만 들리는 패닉상태의 화이, 몇 걸음 물러난다.
느린 그림으로... 총을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으며 포효하는 화이.
화이의 절규가 긴 복도를 메우고... 소리 없이 느리게 번져가는 핏물.

177. 농원 이층집 현관 / 거실 – 해질녘

현관 신발장, 바닥에 흥건한 핏자국을 천천히 따라가는 석태.


핏길 따라 거실을 가로질러 복도를 꺾어 들어가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걸레질을 하고 있는 영주.
핏자국이 끊어진 지하실 입구, 문을 열어보는 석태.
계단 아래 정민이 쓰러져 있고 서류와 가방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석태 저 건 뭐야? 경찰?... (큭큭 웃으며) 제법이네...


영주 (걸레질하며 중얼중얼)......
석태 (돌아와 소파에 앉으며) 어때? 해보니까 별거 아니지?

피를 흘려서 창백한 얼굴. 겉옷을 벗은 석태의 흰 남방이 피로 물들어 있다.

석태 (천장을 보며) 우리 다 같이 더운 나라로 갈까?


있잖아...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나라...
영주 (땀 닦고 다시 걸레질)......
석태 (배 만지며) 일단 밥부터 먹자... 화이가 올거야.
영주 (중얼중얼) 안돼... 화이는 안돼.......
석태 (돌아보며) 안들려? 식사 준비해.
영주 (걸레질하며) 니가 해 먹어.
석태 뭐?

석태, 몸을 일으켜 영주에게 다가간다. 그대로 무지막지한 주먹을 영주의 얼굴에 내


리 꽂는 석태. 고통에 신음하는 영주.
석태, 영주의 머리채를 덥석 잡아 부엌으로 질질 끌고 간다.
부엌 싱크대에 영주의 머리를 처박는 석태, 옆에 칼을 들어 영주의 눈앞에 내리 꽂
는다. 그대로 싱크대에 푹 박히는 칼. 숨이 턱 멈추는 영주.
석태 식사 준비 해!

-73-
영주 (부들부들 떨며) 싫어, 이제 안 해...
석태 뭐? 안해?... 그럼 왜 안 나갔는데? 뭘 더 빨아먹을라구 여기 있는 거야?
영주 ......
석태 (영주 얼굴 끌어당기며) 말해봐... 무섭지?
(영주 시선 부엌 창밖으로 향하게 하며) 이제 밖이 더 무섭지?
여기가 더 편하고 좋잖아? 안 그래? 여기 다 있잖아. 다 해줬잖아!
영주 (벌건 입으로 크크크 웃으며) 그래... 너도 무섭지?
석태 ?......
영주 무서워서 그런 거지? 형택이 오빠도, 화이도...
당신이랑 다르니까... 무서워서.. 그런거지?
석태 (픽 헛웃음 새며) 뭐라는 거야?...
영주 그만해요... (눈가 붉어지며)
이제 화이 그만 놔줘요... 제
발...
석태 그만? 뭘 그만해? 이제 시작인데...
뭐야? 그래서 기다린거야? 또 화이랑 도망갈려고?
(꽂힌 칼날 쪽으로 영주 머리 들이밀며) 왜? 발가락도 모자라? 목젖까지 잘라줄까?

있는 힘을 다해 버티는 영주의 목에 칼날이 닿는다.


이때 들리는 권총 장전 소리, 철컥.

화이 ...그만 하세요.

돌아보는 석태, 보면 총을 겨누고 있는 화이가 있다.


영주를 놓아주고 돌아서는 석태.
싱크대 아래로 스르륵 쓰러지는 영주.

석태 (영주를 내려 보며) 거봐, 온다고 했잖아.


(씨익 웃으며) 너도 나가보니까 집이 제일 좋지?

석태를 바라보는 화이의 분노에 찬 얼굴.

화이 ...왜 죽였어요?
석태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며) 뭐? 누구?
화이 왜?... (폭발하듯) 왜 그랬어요?... 나한테! 왜 그랬냐구!!!
석태 (주전자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괴물이 보인다며.

-74-
화이 (눈물 차오르며)...그 게... 이유에요?
석태 아빠들이 다 괴물인데 너도 괴물이 돼야지. 안 그래?
화이 .......
석태 그래야 같이 살지...
화이 (미간 구기며) 같이.. 산다구?
석태 왜? 아직도 복잡해? 아직도 아빠가 더러워?
(돌아서 천천히 다가오며) 잘 생각해봐. 니가 얼마나 더러워졌나...
화이 (흔들리는 총구 바짝 겨누며).....
석태 훨씬 편해졌잖아... 안 그래? 이제 안 보이지? 괴물 같은 거...

흔들리는 듯 한 화이의 눈빛. 이를 악 물고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소리 전부 움직이지 마!! 니들 다 죽었어 씨발!!

소리나는 쪽을 보는 석태.
피 떡이 돼있는 정민이 지하실 쪽에서 총을 겨누며 다가오고 있다.
정민, 상황을 본다. 대치하고 있는 화이와 석태. 널브러져 있는 영주.

석태 뭐야? 지하실에서 괴물이 나왔네...크크큭


정민 씨발 움직이지 마, 경찰이야 이새끼야!
(화이에게) 야, 총 안버려?!

굳어 있는 화이, 총을 거두지 않는다.

석태 ...자, 누굴 쏠거야?... 아빠야?... 저 괴물이야?

흔들리는 화이의 눈동자, 정민을 본다.


괴물 같은 미소가 번지는 석태. 순간, 석태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며 얼굴이 뻘게
진다. 뒤 돌아 보는 석태,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아 넣은 영주가 보인다. 그대로 주먹
을 휘둘러 영주를 날려버리는 석태.

석태 (고통스러운 듯) 이런... 개 같은...


(영주를 미친 듯이 짓밟으며) 그래 끝까지 잘났지? 엉?! 이 미친년!! 더러운 년!!
화이 (석태를 겨누며) ...멈춰요.
정민 (화이에게) 총 버려, 이 새끼야!!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 석태.

-75-
방아쇠를 당기는 화이, 석태의 허벅지에 박히는 총알.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정민, 화이의 팔에 맞는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돌아서는 석태, 화이를 본다. 총을 맞고 넘어진 화이.
그 모습을 잠시 보고는 그대로 품에서 총을 꺼내 정민을 향해 당기는 석태.
총을 뽑는 석태를 보는 순간, 머리를 관통당해 버리는 정민.

석태 (죽은 정민에게 다가가며) 벌레만도 못한 새끼들이... (두발을 더 쏘며) 지금 누굴


쏘 는 거야...

그런 석태를 보는 화이, 괴롭고 복잡한 듯 얼굴이 일그러진다.


석태, 숨을 몰아쉬며 화이를 본다.
고통스러운 듯 팔을 잡으며 일어서는 화이.

석태 (다리의 상처를 보더니) 왜? 아직도 모자라?


그래, 애비도 뭐도 다 맘에 안드는 거지?
(영주에게 다가가 총을 겨누며) 그럼 이제 혼자 사는 거야...
화이 (놀라서 석태를 겨누며) ...하지마세요.
석태 당겨.

총구가 부들부들 떨리는 화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일그러진다.

석태 바보 같은 새끼... 죽여!!

‘탕!’ 소리와 함께 영주의 다리에 박히는 총알. 비병을 내지르는 영주.

화이 (울먹이며) ...하지마...
석태 왜? 왜 못당겨? 아직도 괴물이 보여?
(총구를 영주 머리에 겨누며) 아직도 보이냐구!!!
화이 아니!!... 아니예요... (고개 저으며) 하지 마세요... 제발...
(총 떨어뜨리고 무릎 꿇으며)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

총을 겨눈 채, 다리를 절며 울고 있는 화이에게 다가가는 석태.


눈물 가득한 눈으로 석태를 올려다 보는 화이.

석태 일어나...

가쁜 숨을 쉬며 천천히 일어나는 화이. 화이 머리를 따라가는 총구.

-76-
영주 (고개 저으며) 안 돼. 화이는 안 돼...

양손을 올려 화이의 얼굴을 잡고 화이의 눈을 쳐다보는 석태.


뚫어지게 화이를 바라보던 석태, 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껴안는다..

석태 (화이 껴안으며) 그래... 힘들었지? 이제 다 끝났어. 아빠가 정리해줄게...


난 너만 있으면 돼... 너만...

흔들리는 석태의 총구가 서서히 영주에게 향하는데...


‘탕!’ 들려오는 총소리. 눈을 부릅뜨는 석태.
석태, 화이와 떨어지며 내려 보면 배에 총구멍이 나 있다.
화이의 손에 들려진 작은 2발 권총.
석태가 뒤로 물러나며 총을 들려는데 노리쇠를 젖히고 남은 한 발을 쏘는 화이.
총을 맞은 석태가 뒤로 물러나 벽에 기대며 주저앉더니 화이에게 총을 겨눈다.
그런 화이에게 뭔가 말을 하려는 석태, 붉은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우는듯 웃는듯 묘한 표정의 석태... 눈물이 흐르고 있지만 서늘한 미소가 떠오르는
화이의 얼굴... 두 사람의 표정이 닮아있다.
천천히 총을 내리더니 마지막 숨을 길게 내뱉으며 얼굴 굳는다.
바로 밖에서 들리는 듯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며, 커튼에 붉은 경광등 불빛이 어
릿어릿 스치기 시작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화이의 실루엣이 웬지 거대해 보인다.

178. 고등학교 – 낮

축제를 준비하는 듯 복도를 화려하게 단장하고 있는 학생들 따라 교실로 들어가면


디딤발을 하고 신중하게 사진을 걸고 있는 유경의 뒷모습.
여학생 두 명이 다가와 유경의 허리를 간질인다.

친구1 요.. 요 여우같은 년.


유경 (까르르 웃으며) 하.. 하지마. 뭐야?
친구2 (커다란 봉투 내밀며) 졸라 잘생겼던데?
유경 (어리둥절) 응? 뭐? 누가?... (봉투 받아들며) 뭔데?
친구 너 주라 그러드라. 어떤 남학생이.

잠시 꾸러미를 보던 유경, 천천히 봉투에 들은 상자를 꺼내본다.


상자를 열어보는 유경, 천천히 굳어버리는 것 같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중형 DSLR 카메라, 그리고 유경을 그린 세필화.

-77-
카메라를 보며 호들갑을 떠는 친구, ‘어머 어머 이걸 준거야? 너 완전 짱이다!’

유경 (멍하니 세필화를 보며) ...남학생, 지금 어딨어?


친구 (카메라를 꺼내 보며) 어? 운동장에 있겠지?

허둥지둥 일어서는 유경, 복도로 뛰어 나간다.


운동장이 보이는 창문 밖으로 여기저기 화이를 찾는 유경의 얼굴.

179. 전회장 빌딩 회장실 - 낮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빌딩 숲...


빌딩 미니어처를 내려 보고 있는 전회장. 그 앞에서 보고를 하는 부하.

부하 착공식은 이달 십오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전회장 (인자한 얼굴로) 그날 우리 막내 졸업식인데, 하루 미루면 안 될까요?
부하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서류에서 사진 한 장을 건네며) 그리고 이거.

사진을 받아서 물끄러미 내려 보는 전회장.

전회장 (미소가 스미며) 그러니까 전부 이 아이가 한 일이란 말인가요?


부하 그런 것 같습니다.
전회장 재밌네요... 내가 좀 이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
부하 그게... 경찰 쪽에서도 전혀 단서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라...
전회장 (부하를 보고 미소지으며) 그래도, 만나볼 수 있는거죠?
부하 (눈을 깔며) 네, 회장님.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전회장 그래요. 고마워요.

부하 묵례하고 돌아나가면 다시 사진을 내려 보는 전회장. 사진 속에는 화이가 쑥


스러운 듯 미소 짓고 있다. 이때 전회장 얼굴 위로 잠깐 스쳐가는 엷은 반사광. 전
회장이 미간을 좁히며 맞은편 건물을 본다.
반대편 건물 유리창 안에 어렴풋이 보이는 어떤 거대한 형체...

180. 전회장 빌딩 회장실 문앞 - 낮

복도를 걸어 나가는 부하 스치며 여비서가 방송장비를 든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회장실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하는 여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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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 ...회장님, 방송국 분들 오셨습니다... (계속 노크하며) 회장님... 회장님...

181. 전회장 빌딩 회장실 - 낮

노크 소리 이어지는 가운데... 미니어쳐 빌딩 숲 위로 흐르는 핏물 보이고 그 아래


머리통이 박살나 쓰러져 있는 전회장.

182. 전회장 빌딩 앞 도로 - 낮

미친 듯이 사이렌을 울리며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찰차들과 앰뷸런스.


그 모습을 보는 커다란 알루미늄 기타케이스를 맨 교복 입은 소년의 뒷모습.
맞은편 난리 통을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 그 사이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은
빛 기타를 맨 소년. 그 위로 음악 들리며 화면 어두워진다.

올라가는 End Credit 옆으로 한 장 한 장 넘어가며 보이는 화이의 세필화...


시골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유경, 꽃을 머리에 꽂고 환하게 웃는 기태, 총을 들고
우스꽝스럽게 서 있는 범수, 마술사처럼 카드를 날리는 동범, 나무 아래서 기타를
치고 있는 진성, 엄지발가락을 곧게 들고 우아한 모습으로 발레동작을 하고 있는
영주, 왠지 고독해 보이는 석태의 옆모습, 그 사이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일상
들... 화이가 소망하던 어떤 것들이 꿈처럼 넘어가고 스케치북을 덮는 누군가의 손.
환자복을 입은 영주, 벤치에 앉아 햇볕을 즐기듯 눈을 깜박이고 있다. 이 때 그 앞
으로 다가서는 한 사람, 손에 한라봉을 담은 봉다리를 들고 있다. 앞을 보며 살며시
미소 떠오르는 영주의 모습에서... 화면 서서히 어두워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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