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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팝 콘 필 름
그린 이. 이 한
프롤로그

1. 제작사 및 기타 크레딧이 무지에 흐르는 동안 들릴 듯 말 듯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촤르르...” 들리면서 그 소리 점점 커진다.

지환(NA)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


영화가 시작되면 들리는 이 소리를 들으면 왠지 즐거워집니다.

이때 화면, 화이트 아웃처럼 갑자기 밝아지면 화면 가득 보이는 영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인터컷. 영사기에서 돌아가는 필름의 영상)
그 빛은 다채로운 칼라가 찍혀 있는 필름을 뚫고 나와
허공에 마치 오로라처럼 춤을 추듯 움직인다.
카메라, 그 빛을 따라 앞으로 서서히 전진하면서...
밝고 경쾌한 음악 시작. (Dissolve)

2. 뤼미에르 형제의 사진이 들어있는 영화 포스터가 보이고

지환(NA) (밝게 웃으며 이야기)


정말 감사하게도 1895년 뤼미에르 형님들은 영화를 발명합니다.

멜리에르 등이 만든 초기 무성 영화의 커트들이 빠르게 보여 진다.

지환(NA) 그로부터 약 오십년 후...

3. 1950년대 허름한 중국의 어느 황토 집.


오래된 컬러 화면에 18프레임으로 찍은 듯한 빠른 무협영화 풍으로
한 아이의 탄생 장면이 소개된다.
산모는 고통 속에 중국어로 소리 지르고 있고,
아버지가 더운물이 든 대야를 산파 할머니에게 던지면
무협영화처럼 물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사뿐히 받아드는 산파.

지환(NA)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홍콩에서 일어납니다.

산모, 무협영화처럼 기합을 넣으며 힘을 준다.


옆에서 기를 불어 넣어주는 산모의 남편.
산파와 산모, 남편의 기합이 정점에 이를 무렵 아기가 태어난다.
산파, 아기를 들면 단발머리에 액션스타 성룡의 웃는 모습을 닮은 아기다.(CG처리)
그 모습에 멍해지는 세 사람, 아기의 아버지가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들이대면
아기 발로 차고 아버지는 무협영화처럼 나가떨어진다.
성룡처럼 싱글 생글 웃는 아기. (Dissolve)

- 1 -
지환(NA) 바로 액션 영화의 神 성룡님이 태어나신 거죠.
전설에 따르면 성룡은 태어날 때부터 단발머리에
발차기가 예술이었다고 합니다.

S# 1. 지환 집 - 옥탑 (늦여름. 새벽)

노트에 시나리오를 개발 새발로 쓰는 누군가의 손.


손의 주인공은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며 웃고 행복해 보인다.
뒤로 작은 산이 보이는 서울 외곽의 낡은 옥탑 집.
마당부터 높게 자라 옥탑 집까지 올라 온 나무에 여기 저기 기운 모기장 걸고
그 안 작은 평상 위에 카바이트 불을 켠 채 노트에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지환(NA) 제가 쓰고 있는 건 시나리오라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영화를 만드는 설계


도인데요.
재수 좋은 놈은 폼 나게 영화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립니다.

남자의 이름은 이지환(22세).


성룡같이 덥수룩한 긴 머리에 앞머리를 거의 일자로 잘라 우스꽝스럽고
얼굴에 개구쟁이라고 쓰여 있다.
손으로 무술의 합 몇 개를 소리까지 내며, 펼친 뒤 재빠르게 노트에 적는다.
“긍정적”이란 말이 생각날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지환 (시나리오에 도취돼 만족스러운 얼굴로) 오……케이!! 죽이네.

지환, 모기장 안에서 튀어나와 성룡 풍의 오버 액션을 취하며 좋아한다.

지환(NA) 내 이름은 이지환!!


꿈은 오직 하나 성룡을 능가하는 액션배우가 되어
늙어 고꾸라질 때까지 영화를 찍는 겁니다!!

지환, 옥상의 모서리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물구나무를 서면 지환의


단련된 근육이 꿈틀거리고 꼿꼿이 일자로 선 지환의 모습 뒤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른다.

타이틀 청 춘 만 화

- 2 -
S# 2. 지환 동네 - 수원천 (이른 아침)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 운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고


무술의 합(액션영화를 찍을 때 미리 계산하는 동작)을
연습하며 뛰어가는 지환, 동네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운동하는 여자들이 지나가자 괜히 폼 잡으려고 거꾸로 물구나무를 서면
추리닝 사이로 양다리에 찬 모래 주머니가 보이고 얼마가지 않아
중심을 잃고 꽈당 넘어지는 지환.

S# 3. 달래 집 앞 (이른 아침)

어느 한옥집 앞에 멈추어 선 지환, 작은 돌을 몇 개 집어


장난스러운 얼굴로 돌을 던진다.
언제부터인지 모래주머니가 찢어져 운동복 사이로 모래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S# 4. 달래 집 - 달래 방 (아침)

창문에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달래의 전형적인 한옥 방이 천천히 보인다.


특별할 것 없는 달래의 방에는 달래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했던 연극이며
고등학교, 대학교 때 하던 연극의 사진, 고두심이 출연한 영화 포스터
그리고 달래가 어렸을 때부터 찍어 코팅한 채 줄줄이 매달아 놓은 사진들이
보이는데, 그 중 한 남자의 얼굴엔 온갖 짓궂은 낙서(콧수염, 애꾸눈 등)가
되어 있어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다.
달래가 남자 친구 영훈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인다.
“소년”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시나리오를 얼굴에 덮고 자고 있던 달래,
다시 돌이 창문에 부딪히자 조금 더 자고 싶은 듯 끙끙거리며

달래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웬수야…. 쫌 만 더 자자.

다시 돌이 하나 날아와 창에 부딪힌다.

달래 이씨... 야!!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확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달래의 얼굴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사이-
티브이 브라운관이 보이고 그 안으로 쑥 들어오는 여인의 얼굴.
산발의 머리를 대충 묶은 수수한 모습이지만 얼굴에 건강함과 귀여움이
묻어 있는 진달래(22세)이다.

- 3 -
달래는 방에 비디오카메라와 티브이를 연결해 놓고 연기 연습을 한다.

TV 속 달래 (TV 속의 자신과 이야기를 한다.) 잘 잤어?

달래(NA) 내 이름은 진달래.

TV 속 달래 거 웬만하면 피부 좀 신경 쓰시지. (주름이 생기게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벌써 얼굴에 잔주름이 어우...

달래(NA) 취미는 TV속 나와 대화하기...

달래 너 그거 모르는구나. 진정한 연기자는 이 주름으로 인생을 말하는 거라구.

귀여운 얼굴의 달래,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눈곱을 떼어내고는


한참 동안 카메라를 쳐다보다가 입을 쑥 내밀기도 하고 눈을 크게 뜨기도 하고
환하게 웃어보기도 한다. 얼굴 근육을 푸는 모습. 구엽다.

달래(NA) 제 꿈은 고두심 씨처럼 가슴으로 인생을 말하는 연기자가 되는 겁니다.

(시나리오를 들고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연습을 한다.


심호흡을 하고 감정을 잡는다.
* 아래 대사는 6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양부모에게서 도망 친
한 여인이 성인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밤 자신이 버림받은 곳에 들러
길에서 만난 어린 들 고양이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달래는 귀여운 고양이 인형을 보고 연기한다.
시나리오의 지문(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수험생의 교과서처럼 가득하다.)이 클로즈업으로 보이고 그것을 읽는 달래.

달래 여섯 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13년을 혼자 떠돈 부랑 소녀가


자신이 버려진 장소에서 배회하다 버려진 들 고양이를 만난다.
여인은 고양이에게서 외로움을 발견한다.

TV 위의 고양이 인형이 보이고 달래 손이 화면으로 들어와 고양이 인형을 집어 든


다.

달래 (달래, 생각한다.) 넌 이름이 뭐야?


고양이 (상상 속의 소리로) 야옹.야옹.
달래 음. 야옹이. 그렇구나.
고양이 (상상 속의 소리로) 야옹.야옹.
달래 나? 내 이름은... 없어. 남들은 나를 경희라고
부르는데 그건 내 진짜 이름이 아니야. (비밀스럽게 이야기한다.)

- 4 -
너한테만 이야기 하는 건데 나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고양이 일지도 몰
라.
사람 모습을 한 고양이.(쓸쓸한 느낌으로)
고양이 야옹. 야옹.
달래 뭐? 넌 고양이 모양을 한 사람이라구? (감정이 확 오른다.)
... 그래서 그렇게 운 거구나. 아무도 너를 몰라줘서...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돈다.) 그래서 혼자... 그렇게... 돌아다닌 거구나...
(감정에 몰입해 눈물이 고인다. 한참을 흑흑거리다가)

창 밖에서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혼자 자책하는 달래의 모습이 보인다.

달래 (자신을 다그치며) 진달래 이 바보야. 여기선 울면 안 되잖아.


사람들 앞에선 대사도 제대로 못 치는 게 혼자 있다고 오바는...
다시! (창가로 다가가며)

달래(NA)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겐 끼가 없답니다. 인정합니다. 제 심장은 사람들 앞에만 서면
진동모드 핸드폰처럼 마구 떨기 시작합니다.

다시 대사를 하다가 창가로 지나가며 슬쩍 보는 여고생들의 모습과 눈이


마주치고 화들짝 놀란 달래, 황급히 커튼을 닫고는 타인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갑자기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다가 다시 힘을 내자는 의미의 긴 “하.....” 기합.

달래(NA) (힘을 주어) 하지만! 저에겐 무슨 꿈이든지 이루어준다는


마법의 주문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그건…… 비밀입니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다락방 앞에 걸려있는 비즈 발이 빛을 받아 순간 반짝인다.

S# 5. 달래 집 - 아버지 방 (이른 아침)

달래의 아버지는 거의 거동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다.


달래가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신경을 다친 후, 얼굴로만 간신히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다.
방바닥을 닦고 있는 달래의 어머니.

달래 (방으로 들어오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달래엄마 웬일이야 깨우지 않아두 일어나구...
달래 (아버지 옆으로 가며) 엄마. 뭐 타는 냄새 안나?

- 5 -
달래엄마 (코로 냄새를 맡다가 놀라서) 아! 갈치조림. (뛰쳐나간다.)
달래 또 도졌다. 건망증.

픽 웃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능숙하게 아버지를 뒤로 뒤집고 주물러 준다.


팔, 다리, 등 몸 전체를 꼼꼼히 살펴서 움직여 주고 나서
힘을 주어 다시 앞으로 뒤집는 달래.

달래 아빠. 점점 살 빠지네...

이때 무엇을 본 아버지의 얼굴에 작은 변화가 보인다.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 달래의 시선도 옮겨가고
거동을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만든 낮고 커다랗게 나있는 유리창으로
예쁜 들꽃 한 다발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뒤뚱거리고 움직이고 있다.
의아해 하는 달래.
들꽃이 불쑥 올라오면 자신의 옷 뒤에 들꽃을 잔뜩 꽂아 꼭 목도리 도마뱀 같은
모습을 한 지환의 모습이다. 괴상하지만 구엽다.

지환 (큰소리로)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저씨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 좀 꺾어 왔어요.

꽃을 창 밖 나무에 꽂는 지환. 인사를 꾸벅하고 사라진다.


달래의 얼굴에 웃음이 난다.

달래(NA) 저 자식은 제 동네 친구 지환입니다.


보시다시피 정신 연령이 열 살쯤에서 멈춘 놈인데 불쌍해서
쫌 놀아주고 있습니다.

S# 6. 대학교 운동장 (오전, 타이틀 백)

초가을. 대학교 운동장의 잔디밭


경쾌한 걸음으로 운동장을 걷고 있는 달래.
한쪽으로 태권부원들이 발차기를 하며 연습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달래의 시선이 멋지게 발차기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 영훈에게로 향한다.
태권도부원들이 돌아가며 차례로 발차기를 하고 있다.
달래를 발견한 영훈, 손을 흔들며 웃어주면 사내라는 느낌이 든다.
달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훤칠한 키에 얼굴에 진지, 남자다움이 묻어 있다.

달래(NA) 제 남자 친구 영훈 입니다. 잘 생겼죠?


태권도두 무지하게 잘해서 시합만 나가면 무조건 일등입니다.
제가 다 늦게 남자 복이 좀 있으려나 봅니다.

- 6 -
영훈, 뛰어와 달래 옆으로 서면 다른 태권도 부원들 환호를 지른다.

달래 가서 연습해.
영훈 보고 싶었어…
달래 (간지럽다) 야…. 그런 말 하지 마.
영훈 (슬쩍 보고) 머리 바꿨네. 예쁘다.
달래 …… (기분 업. 부끄…)
영훈 (달래의 손을 잡는다)
달래 (흠칫) 야…. (놓으려고 하는데 꽉 잡는 영훈)
영훈 세 달 걸렸다……. 손잡는데… 좋다.

잠시 손을 잡고 같이 걷는 달래와 영훈.
어색한 달래의 시선이 운동 중인 태권도 부원에게로 향한다.

영훈 지환이 찾아?
달래 어… 그냥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영훈 지환이 훈련 안 나왔어. 전화두 안 받구.
달래 그 자식을 누가 말려. 허리라도 한 번 접혀봐야 정신 차리지.

S# 7. 괴수 영화 촬영장 - 천막 안 (낮)

괴수 영화 촬영장인 거대한 석재 채석장 전경이 보여 진다.


아주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트럭 하나. 불쑥 카메라 앞으로 괴수 둘이
등장한다. 카메라에서 멀어질 때까지 사투리로 일상적인 대화(“밥 먹었나?”등의)를
나누는 괴수들.

울트라맨 류의 괴수 영화(괴수 악당들과 정의의 용사들이 지구의 평화를 위해


싸우는 어린이용 영화) 촬영 현장의 분장실.
분장실 안에는 각종 괴수들의 전신가면들이 있고 핑크색의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여자 우주인의 복장(아시다시피 딱 달라붙은 타이즈 류의 전형적인 의상.
모르신다면 울트라 맨이나 우뢰매 시리즈를 떠올려 보세요)을
입고 있는 지환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 우주인 모습을 하고 하반신 쪽 타이즈가 허벅지에서 걸려 잘 올라가지 않아
쩔쩔매는 지환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지환 (타이즈를 끝까지 올리려 애쓰며) 아… 참자… 참아…….


영화를 위해서……

타이즈를 올리는데 우주인 복장의 여배우 한 명이 분장실 안으로 쑥 들어온다.

- 7 -
지환, 창피해 뒤로 돌며 한번에 타이즈를 올린다.
여배우, 쓱 둘러보면 지환을 여자로 인식한다.
창피해서 아무 말 못하고 있던 지환, 슬금슬금 나가려하는데 여배우가
문을 잠그고 옷을 벗기 시작하자 멈추어서 슬쩍 바라본다.
여배우의 속옷이 드러나면 청춘의 상징인 지환의 아랫도리 동생(앞으로 동생으로
표기 하겠습니다. 적나라하게 표기하면 좀 거시기 하니까…)이 반응을 일으키며
꽉 끼어 입은 타이즈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자꾸만 뒤로 빠지는 지환의 엉덩이와 함께 “끙”하는 지환의 작은 신음소리가
들리자 휙 쳐다보는 여배우, 속옷을 입은 채로 지환의 눈과 마주친다.
여배우, 지환을 여자로 인식한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엉거주춤 한 상태로 걷던 지환, 갑자기
성룡 특유의 팔자 뛰기
(다리를 팔자로 하고 뛰는 것. 모르신다면 성룡 영화 참고)로 뛰어나간다.
그 모습에 멍해있는 여배우.

S# 8. 괴수 영화 촬영장 - 폐공장 (낮)

괴수 영화 촬영 현장.
핸드 핼드 카메라로 메이킹 필름처럼 거칠고 빠르게 스케치한다.
(영화 “본 슈프리머시” 참조)
폭약을 설치하는 특효팀. 콘티를 점검하는 연출부. 등등.
카메라 앞, 여자 외계인 분장의 지환과 괴수의 일대 혈전이 벌어지려는 순간이다.

괴수영화감독 자. 연기자. 오. 케이? (크게 “옙!!”하는 지환과 괴수) 특효 오. 케이?


(스위치를 쥐고 있는 특효맨 “오. 케이!”) 카메라!! 액션!!!

하면, 지환과 괴수가 격투를 벌이는 모습이 보인다.


지환, 발차기나 무술 동작이 제법이다.
서로 때리고 맞고 몇 번을 오간 후 넘어졌던 괴수 일어나면

괴수영화감독 자…… 광선!!

괴수, 두 손으로 광선 쏘는 흉내를 하면.

괴수영화감독 꽝!! (특효, 폭파 스위치를 누르고 지환 앞에서 폭발물이 터지면


지환, 과장해서 날아가며 떨어진다. 감독 모니터를 보고) 오케이.

스텝들 박수를 치고, 무술 감독 원진이 괴수 연기자 앞에 넘어져 있는 지환에게


달려가 괜찮냐고 하자, 씩 웃으며 일어나는 지환.

- 8 -
원진 자식. 많이 늘었는데…….

지환, 일어나면서 가슴 쪽이 이상한지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쑥 훑으면


옷이 찢어져 있고 손에 피가 한 가득이다.
폭발물 파편이 가슴에 박혀 나온 피가 지환의 배를 타고 흘러내린다.

원진 (심각하게 가슴 쪽을 보고) 이런 씨.
야, 특효!! 이 개새들. 조심하라니까.
지환 (장난기) 형. 나 진짜 여자 됐나 봐. 가슴에서 물 나온다.
원진 미친 놈. 지금 농담이 나와.
지환 (얼굴을 찡그리며) 하긴 쫌 아프다.

S# 9. 지환 집 - 옥탑 (낮)

지환이 넓은 평상에 웃통을 벗은 채 붕대를 하고, 밑창이 완전히 나간 운동화를


본드로 붙이고 있다.(아주 섬세하고 진지하다) 그 옆 지환의 아버지 이창호가
원고지에 소설을 쓰고 있다.

창호 겨울이다. 남자는 얼음이 뼈를 찌르자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캬… 죽인다.
지환 이번엔 소설가야? 아무리 생각해도 소설가는 진짜 생뚱이다.
이젠 아부지가 뭐 뭐 했는지 기억도 잘 안나.
… 트럭 운짱, 캬바레 가수, 스포츠 댄스 강사.
연기자한다구 한 달 동안 학원 다닌 건 기억나?
창호 현재는 현재일 뿐 지난 일에 연연하는 건 사내가 취할 태도가 아니지.
지환 (뭐 저러다 말겠지 하는 표정. 지환에겐 익숙하다.)

커다란 도시락을 든 달래와 영훈이 옥상으로 올라온다.

달래 (창호를 발견하고) 아저씨. 저 왔어요.


창호 아이구, 우리 달래 왔구나.
지환 (둘을 보고 손을 흔든다) 어이! 왔냐?
달래 (영훈에게) 지환이 아버지셔.
영훈 안녕하세요. 저 지환이 같은 과 친구 문영훈입니다.
창호 아… 그래. 니가 영훈이구나.
(일어나서 옆에서 키를 재보며) 거 짜식 기네.
(영훈의 손을 잡고 자신의 옆자리로 앉힌다.)
지환 (다시 운동화에 본드를 묻힌다) 영훈아. 잠깐만 기다려.
나 이거만 다 하구.
달래 (지환 앞에 서서) 많이 다쳤다더니 멀쩡하네.

- 9 -
지환 (아주 조심스럽게 본드를 묻힌다) 말 시키지 마.
달래 (근처의 빨래 줄에 눈이 간다. 양말들이 널려 있는데 때가 덜 빠지고
얼룩덜룩 구멍 뽕뽕 이다) 이게 빤 거야 만 거야.
정말… 내가 이 집구석에 오질 말아야지. (창호를 생각 못하고)
아. 아저씨 죄송해요.
창호 뭘… 지환이가 달래 오면 분명히 다시 빨아 줄 거라고
물만 대충 묻혀서 걸어 놓으라던데. 아저씨 주부습진인 거 알지?
지환 이왕이면 거기 빵구도 때워라.
달래 우... 너 진짜… 다쳤으니까 오늘만 봐준다!!! (양말을 걷으며)
이게 양말이야 걸레야.

행동이 편한 달래와는 달리 조금 어색한 영훈, 어떻게 할까 눈치를 살피는데

영훈 (창호가 계속 쳐다보자 그냥 말을 꺼낸다.) 글 쓰시나 봐요.


창호 응. 소설. (민망하게 계속 쳐다본다.)
영훈 아... 예...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계속 눈을 마주치고)
창호 왜 계속 날 쳐다보지? 내가 그렇게 잘 생겼나?
영훈 네, 잘 생기셨습니다.
창호 아부는... 젊은 친구가 안 좋은 걸 배웠구만...
영훈 (어찌할 바를 모른다.)
창호 (일어나며) 자네 잠깐 나 좀 따라와 봐.

S# 10. 지환 집 앞 골목길 (낮)

창호가 쭈그려 앉아있고 영훈이 그 앞에 서있다.

영훈 (주춤하다 같이 쭈그려 앉으며) 저… 하실 말씀은…


창호 앉어 봐.(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담배를 꺼내 필터를 자르고 입에 물
면서)
음… 달래가 내 딸 같아서 하는 소린데. 달래랑 사귄지는 얼마나 됐나?
영훈 (조금 이상하지만) 예. 세달 정도 됐습니다.
창호 (불을 붙이고 진지하게) 그럼 아직 깊은 정은 안 들었겠구먼….
영훈 예? ……
창호 지환이랑은 친한가?
영훈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호 음… 친하다…. 흠… 그럼 친구 애비로서 부탁하나 해도 되겠나?
영훈 예. 예
창호 (아이 같은 표정) 자네 혹시 삼 만원 있나? 삼만 원.
영훈 예?
창호 그… 내가 지환이 한테 딱인 운동화를 봤는데…

- 10 -
오늘이 세일 마지막 날이거든. 꼭 사주고 싶은데…
딱 삼만 원이 모자라네….
돈 생기는 데로 바로 갚을 테니까 좀 꿔줄 수 있나?
영훈 (창호의 표정은 비굴한 것이 아니다. 영훈은 이상해하지 않고
정겹게 느껴져 웃음이 나오지만 참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준다.) 네.
창호 … 고마워. (민망함…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정적)
음… 친구 애비로써 부탁하는 건데… 이 일은… 비밀. 응?
영훈 (웃으며 크게) 네! 비밀!
창호 쉿! (영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 거 자식 마음에 드네. 영훈!
영훈 네!
창호 영훈! 좋아! 앞으로 집에 자주 놀러오고 그래.

S# 11. 지환 집 - 옥탑 (낮)

달래는 양말을 빨랫줄에 널고 있고 지환은 평상 위에서


몸을 하늘로 하고 달래를 보는데 빨래를 널려고 손을 올릴 때 마다
티셔츠가 올라가 달래의 허리가 노출된다.

달래 니 인생이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너 아무나 성룡처럼 되는 게 아냐.


어디서 들었는데 성룡은 다섯 번인가 혼수상태에 빠지구,
몸땡이 속에 아주 철근을 박고 산다더라.
지환 내 목표는 혼수상태 여섯 번에 로보캅이야.
달래 (이 철없는 놈… ) 그래 뭐 니 몸뚱아리니까 회를 치던 굽던
니 맘대로 해라. 자 그럼 내가 단련 좀 시켜 줄까!!!
(지환의 몸을 철썩 철썩 때릴 때 마다 지환, 정말 아파 비명을 지른다)
지환 아... 야 진짜 아프단 말야.
달래 아니 로보캅이 뭐 이정도 갖구 그런데…

지환, 따가워서 피하려 뒹굴고 그 광경을 창호와 영훈이 올라와 보고 있다.


영훈은 둘의 스스럼없는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왠지 마음에 걸린다.

지환 (아파서 눈물이 그렁) 아부지 달래가 아부지 아들 죽여요.


창호 (자리에 앉으며) 죽을 짓을 했겠지.
지환 (입이 나와서) 씨…
영훈 달래야. 나 가봐야 되는데.
달래 먼저 갈래? 난 온 김에 이불 좀 빨아야겠어.
여기 완전히 곰팡이 천국이야.
지환 야 너. 그냥 빨리 가. 영훈아, 달래 좀 데려가라.
영훈 (웃으며) 그럼 먼저 간다. 아버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지환아. 다음 연습에는 진짜 빠지면 안돼. 코치가 너 벼르고 있어.

- 11 -
몸조리 잘하구. 달래야. 전화할게.
달래 (환하게 웃으며) 응. 가.

-사이- (오후)
빨랫줄의 이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지환이 엎드린 채로 침을 질질 흘리며 자고 있다.
달래의 눈에 비친 온통 상처와 멍투성이인 지환의 몸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달래 (지환의 입을 닦아주며) 어떻게 더러운 짓은 혼자 다할까?


창호 (그 모습을 보며) … 달래야.
달래 예?
창호 우리 지환이랑 만난지 얼마나 됐지?
달래 음… 초등학교 2학년 때니까 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창호 벌써 그렇게 됐구나…. 달래야. 아저씨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달래 네. 하세요.
창호 사실은 너랑 지환이 보면서 생각한 소설이 있는데.
내용은 간단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남자랑 여자가 있어.
그러면 보통은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면서 끝나잖아.
근데 난 요즘 말로 쿨하게 맨날 싸우면서도
우정을 끝까지 지키는 친구들 얘기를 써 볼려구.
달래 근데요?
창호 너희 둘 얘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달래 우리 얘긴 재미없는데…
창호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수첩을 꺼낸다)
달래 지금요?

S# 12. 초등학교 교실 (1993년 늦여름/낮)

쉬는 시간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는 아이들.


그 중 짧은 머리에 보이쉬하게 생긴 어린 달래(10)가 친구들과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 달래의 머리 위에(어린이의 낙서 같은 자막이) “진달래”라고 쓰여 진다.(C.G)
문득 어린 달래와 친구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
교실이 이층인데 창 가까운 곳까지 올라와 있는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사내 아이(10). (“이지환”이라고 자막이 새겨진다)

달래(소리) 어렸을 때 지환이는 요즘 흔히 말하는 왕따 였어요.


지금은 까불이지만 그 때만 해도 말도 없고 맨날 싸우기만 해서
애들이 많이 피했었죠.
창호(소리) 아마 그때가 지환이 엄마 죽었을 때 일거야.

- 12 -
선생님이 온다는 소리에 아이들 자리로 가 앉고 어린 지환, 고개를 돌리면
지금의 지환과 비슷한 헤어스타일.
심지어 옷 입는 풍도 비슷한 어린 지환이 보인다.
(지환은 황소고집. 변하지 않는 스타일) 얼굴엔 싸움 자국 옷은 먼지투성이다.
나무에서 표정의 변화 없이 붕 뛰는 어린 지환.
순간 흠칫하는 달래.
쉽게 창틀을 잡고 기어 올라오는 어린 지환,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사이-
인자하게 생기신 50대 후반의 선생님이 칠판에 “장래 희망”이라고 적는다.
똘망 똘망 귀여운 아이들의 눈.

선생님 자 어렵게 생각하지 말구요.


선생님이 사랑하는 우리 새끼들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한명씩 나와서 장래 희망을 발표하는 거예요. 알겠죠?
학생들 네!!!

달래(소리) 그러다가 지환이가 눈에 띈 건 장래 희망을 발표하던 날 이었어요.

-사이- (Dissolve)
# 상상교실 (낮)
이제부터는 교실 안이 거대한 아이들의 상상의 공간이 된다.
아이들의 상상력으로 장면 보여 진다.
상상으로 교실 안이 꽃과 나무로 채워진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상으로 입은 옷과 행동으로
그 아이들의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울트라 맨,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 새가 되고 싶은 아이도 있다.
경찰관이 되고 싶은 아이, 간호사가 되고 싶은 아이. 프로 레슬러, 군인 등
(의상 및 분장은 아이들의 몸에 꼭 맞게 모두 제작하여야 함.
꼭 어른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 알란 파커의 영화 “벅시 멜론” 참조)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
예쁜 여의사 복장을 한 달래의 모습이 보인다.
취권에 나오는 성룡의 모습을 한 어린 지환이 앞으로 나와 활짝 웃으며
어설프지만 정말 진지하게 성룡의 흉내를 내고 있다.
선생님은 딱 붙는 가죽 바지에 긴 사자 머리를 하고 있는데 락커가 꿈인가 보다.

S# 13. 어느 동네 - 산 초입 (1993년 늦여름/오후)

- 13 -
산 초입의 작고 예쁜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는 어른들이 대낮부터 과자에 맥주를 들이켜고 계시고
아이들 그 옆 작은 오락기 옆에서 오락 삼매경에 빠져 있다.
시대 배경을 알려주는 영화 포스터와 광고 포스터들이 보이고
축구공을 들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아이들 속에 어린 달래도 보인다.
뛰어가다 어딘가에 눈을 고정하고 멈추어 서는 달래,
담벼락에 자신과 지환에 대한 낙서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 진달래는 이지환을 사랑한데요. 진달래 이지환 뽀뽀. ”

달래와 지환에 대한 유치한 낙서들이 온 동네 구석구석 도배된다.


사람들, 아이들 그것을 본다.
어린 달래도 그것을 보고 입이 쑥 나온다.

달래(소리) 근데 언젠가부터 동네에 나랑 지환이랑 좋아하네. 뽀뽀했네.


누군가 그런 낙서를 쓰고 다닌 거예요.

-사이-
# 어느 동네 어귀 (낮)
동네 어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어린 지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어린 달래 너 봤어?
어린 지환 ……
어린 달래 낙서 말야.
어린 지환 (쳐다보고 모른다는 듯) ……

-사이-
# 어느 동네 - 골목길 (낮/밤)
어린 지환과 어린 달래, 같이 그 많은 동네의 낙서를 지우고 다닌다.
오후에서 밤이 된다.
두 사람 높은 담 앞에 서 있다.
낙서를 지우려는데 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
지환, 가만히 보다가 엎드리면 달래 올라가서 낙서를 지운다.
달래, 낙서를 지우고 내려와 먼저 걸어가는 지환의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
지환, 슬쩍 쳐다보는데 콧물을 흘리고 있자 손수건을 꺼내 닦으라고 준다.

어린지환 (말없이 받아 콧물을 닦고 주려고 하자)


어린달래 (더러워서) 그냥 가져. 버리던가.
어린지환 고마워…. 그럼 나두 너한테 뭐 줄게…. (손을 뒷주머니에 가져다 댄다)
어… 잘 안나온다…….

- 14 -
(하더니 방구를 뿡 뀌곤 그걸 모아 달래의 코에 정성스레 준다)
어린달래 (보통 여자애 같으면 기겁을 하거나 싫어 할 텐데
달래, 웃음을 터뜨린다)
- 이게 달래의 중요 성격 중 하나인 것 같다. 싫은 것 보다는 좋은 게 훨씬
많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아이. 사람의 감정을 긍정적인 쪽으로 해석하는
현재에는 유독 지환에게만 틱틱거리고 까분다. 난 편해서 그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도 잘 모르는 지환에 대한 애정이 있다.)
하하… 냄새나잖아…. 너… 정말 재미있는 애구나?
어린지환 (골리려다가 의외의 반응에 자신도) 풋….

S# 14. 지환 집 - 옥탑 (오후)

현재의 달래,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웃음을 머금는다.

달래 재미없죠?
창호 아니 재미있는데. 야… 지환이 자식 웬만해서 방구 안주는데,
애비인 나한테두 아주 좋은 일 있을 때나 명절 때 아니면 안 주거든….
달래 (농담하지 말라고 웃으며) 아저씨….
창호 이거 좋은 소재인데… 낙서를 지우다가 서로 친구가 됐다….
(아주 심각하게) 근데… 그 사람… 누굴까?
손이 안 닿을 정도로 높은 곳에 낙서를 했다. 지능적인데…
달래 그게 중요해요?
창호 미스테리 쪽으로 풀다가 황당하게 끝낼까? 그게 요즘 유행이거든
예를 들면 사실은 외계인이었다. 아니 천사가 낫겠다.
천사가 왕따인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낙서를
하고 다닌 거야. (트랜지션(C.G) 꿈결처럼 트랜지션.
영화 “인게이지먼트” 참조.

# 어느 동네 - 골목길 (밤)
* 창호의 상상
파란 비닐 망토로 머리까지 가린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담벼락에 낙서를 하고 있다.
“끼륵 끼륵”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낸다.
“지환 러브 달래”쓴 다음 하늘로 천천히 날아오르는데 머리와 뚫린 비닐 망토
사이로 빛이 점멸하고 하얀 깃털 하나가 망토 사이로 떨어진다. (장면전환)

창호 (자기 얘기에 빠져있다) 복선으로 천사가 남긴 깃털 하나를 슬쩍 보여주고


엔딩에 짜잔 … 천사가 나타나는 거지….
달래 (황당해서 쳐다본다) ……
창호 좋아. 이거 필이 와.

- 15 -
창호, 수첩에 글을 적는데 낙서장 같은 수첩엔 “낙서… 방구… 천사” 등이 써있고,
생각하던 창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창호, 입맛을 다시며 다시 적는다.

“배고프다……. 짜장면….”

S# 15. 대학교 - 소극장 (낮)

연기실습 시간.
같은 과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래가 무대에 나가 독백을 하려하고 있다.
날카롭게 생긴 여교수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학생들의 눈은 반짝거린다.
요가 자세로 부처 흉내를 내고 있는 지환의 모습도 보인다.
달래, 가슴은 쿵쾅거리고 어색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몰아쉰다.

달래 아악~! 너 제발 착한 척 하지 마.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표정으로 웃을 수 있어?
여교수 (날카롭게 화를 내며) 그만.
달래 …… (당황한다)
여교수 자… 지금 뭐가 이상한지 보이는 사람.
지환 (부처님처럼 앉아서) 에이. 떨고 있잖아요.
그 쪽 혹시 핸드폰 진동으로 해 놓은 거 아니에요? (학생들 웃는다)
아… 보는 사람 참 불편하다 불편해.
여교수 (지환을 모른다) 누구지? 처음 보는데
지환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예 저는 태권도 학과 3학년 이지환입니다.
평소 연기 지도에 있어서는 국내 최고라는 교수님의 명성을 듣고
감히 도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 꿈은 세계 제일의
액션배우가 되는 거구요.
여교수 도둑놈 주제에 되게 당당하네. 좋아. 그 대신 떠들지 말고 입에 자물쇠!
지환 예!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여교수 (시선을 돌려 주눅 들어있는 달래에게)
진달래. 내가 매번 지적하는 건데…
넌 발성이나 해석은 굉장히 좋단 말야.
근데 니가 아무리 정확한 설정을 해도 몰입하지 않으면 관객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말해봐.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 같니?
우리 같이 한 번 깨보자.
달래 (자신이 싫고 창피하고, 이를 악물고 창피를 참고 있다)
여교수 오케이.
달래 (오기가 턱 밑까지 차 있다. 억지로 대사를 한다.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너 제발 착한 척 하지 마.

- 16 -
여교수 (끊고 고함을 지르며) 다시!!!
달래 (소리가 커진다.) 너 제발 착한 척 하지 마!
여교수 다시!!!

S# 16. 대학교 운동장 (낮)

태권도 부원들이 발차기 훈련을 하고 있다.


영훈의 모습이 보이고 지환이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타이어를 끌며
기합 받고 있는 것이 보인다. 태권도부 코치가 소리친다.

코치 (지환의 속도가 늦자) 이지환 똑바로 못해!!


지환 (거의 탈진 상태. 쓰러질 듯 코치 앞으로 와)
코치 선택해. 성룡이야, 태권도야.
지환 둘 다 잘 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나 물기가 부족해 토할 듯 기침한다)
코치 그래? 그럼 열 바퀴 추가.
지환 (죽을 것 같다.) 아... 감독님...
코치 둘 다 해야겠다며. 전국대회가 2주일 밖에 안 남았는데
너 3키로 체중 오바잖아. 자, 스피드!”
지환 아아악~! (하며 달려 나간다)

태권부원들 사라지고
지환, 죽고 싶은 얼굴로 타이어를 끌고 뛰기 시작한다.
친구와 교정을 걷던 달래, 지환을 발견하고 장난기가 동한다.
친구의 물병을 빼앗아 “먼저가” 한 다음 지환에게로 간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지환, 목이 말라 헛구역질을 한다.

달래 또 체중감량이냐?
지환 말 시키지 마. (쓰러진다) 야 물 좀 줘. 죽을 것 같애.
달래 (놀리듯 물을 마시며) 너 영훈이랑 붙는 거 무서워서 체급 낮춘 거지?
지환 니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거듭 말하지만 내 꿈은 금메달이 아니라
졸업이걸랑. 난 단지 등록금이 무서울 뿐이야.
달래 언제까지 피해 다닐 거냐? 체중 줄이기는 점점 힘들어질 텐데…
물론 붙어두 결과는 뻔하겠지만.
지환 너야 말루 괜히 실력두 안되면서 여기 저기 오디션 같은 거
보러 다니지 마. 이 새가슴아.
떨린 다구 우황청심환 과용하다가 중독 된다.
달래 그래. 니가 아픈 데를 아주 팍팍 찌르는구나. 근데 어쩌냐.
난 니가 그럴 때 마다 의욕이 팍팍 넘치는데… 아, 물 달라 그랬지?

- 17 -
달래, 줄 듯 말 듯 약 올리며 입 근처에 떨어뜨리면 혀로 그것을 빨아먹는 지환.

지환 제대로 좀 줘봐.
달래 어. (약 올리더니) 어!
(하며 물병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물이 바닥으로 흐르고)
(말로만) 미안….
지환 아... (죽겠다. 그러나 일어나기 힘들다.)
근데 너 언제 깎았냐?
달래 뭘?
지환 웬만하면 신경 좀 써라. 너 다리 꼭 남자 턱수염 같다.
깎은 지 한 일주일 된 거 같은데. 그지? 아우 징그러. 꺼끌꺼끌.
달래 이씨, 뭐가 어디? (자기 다리를 만진다. 꺼끌꺼끌 하다.)
그래. 털 좀 있다. 그게 뭐?
지환 어우 숱이 보통 많은 게 아니야.
면도 한 번 하려면 한 시간은 걸리겠는데.
달래 (화난다.) 너 사람들이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이제 알겠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달래)한 마디만 더 해봐.

지환 주려고 물을 가지고 오던 영훈, 이 광경을 발견한다.

지환 그래. 너...

하는데 발로 세게 지환을 차는 달래, 지환의 거시기에 정통으로 맞는다.


지환 “윽!!!”

S# 17. 선유도 공원 근처 가로수 길 (오후)

걷고 있는 세 사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이 싹 바뀌어 있는 지환과 달래.

지환 아……. 통닭에다 생맥 한 잔 하면 소원이 없겠다.


달래 야, 너도 그 생각 했구나? 전기구이 통닭, 겨자 소스에 찍어서. 캬~
영훈 니네 둘 좀 전에 싸운 사람들 맞냐?
지환 그게 싸운 거냐?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거지.
달래 앞으로 까불지 마. 엉?!
영훈 (두 사람 쳐다보다가)
야. 이지환 우리 맥주 내기 레이스 한 판 어때?
지환 (영훈에게로 가서 어깨를 두르며) 거 자식 괴롭네. 괜히 가르쳐 줘 가지구.
너 태권도는 몰라도 이건 나한테 안돼”
영훈 (지환의 팔을 뒤로 내리며) 오늘은 다를 걸.

- 18 -
(뒤돌아서 반대편으로 걸어가며 다시 뒤돌아보며)
알지? 나 지고는 못 사는 거.”

S# 18. 선유도 공원 (오후)

공원의 초입에 서있는 영훈과 지환. 그 옆 달래.

달래 (걱정스러운) 하여튼 수컷들은... 꼭 이런 거 해야 되냐?


영훈 자 간다.
지환 다시 한 번 규칙.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영훈 무조건 전진... 둘 셋!!!

두 사람, 동시에 출발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대나무 숲 같은 직선 길을 달리는 두 사람, 밑으로 물이 튀고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계단 혹은 턱들을 마치 성룡의 체이스 영화처럼
뛰어 넘고 달리는 두 사람. 경쟁심이 느껴진다.
이 게임은 담, 지붕 등을 넘어 미리 정한 도착지까지
돌아가지 않고 가장 빠른 길로 달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담치기라고 부르던 놀이로 비슷한 것으로는
X스포츠 “야마카시, 프리러닝” 이라는 것이 있다)
안전한 길로 천천히 뛰며 두 사람을 지켜보는 달래.
아주 높고 좁은 담을 타고 뛰어 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위태해 보인다.
지환이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다.
두 사람의 스피드가 대단하다.
영훈, 삐끗해서 지붕에서 떨어질 뻔 하며 소리를 내자 지환, 영훈의 얼굴을 본다.
영훈은 이것을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지환,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구조물에서 떨어진다.
다시 몸을 일으켜 담을 타는 지환.
사력을 다해 높은 건물을 뛰어오르는 영훈의 악다구니.
열심히 달리던 지환, 어느 지붕 위에서 영훈에게 져주려 멈추어 서서
천천히 걸으며 영훈을 지켜보고
영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Finish 라인. 영훈 헉헉대며 골인하고 좋아하고
지환, 성룡의 추종자답게 멋있게 뒤로 덤블링 하며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S# 19. 호프집 화장실 (밤)

# 화장실 밖

- 19 -
달래가 남자 화장실 앞에 서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는 남자들을 민망해하며 제지하고 있다.

달래 죄송합니다. 수리중입니다.
(화장실에 대고) 야, 빨리 나와.

# 화장실 안
두 사람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서로 물을 부어주며
발가벗은 채로 몸을 씻고 있다.

지환 이기니까 이제 속이 시원하냐? 이 괴물아.


영훈 아니……. 더 모르겠다.
지환 …… 응?
영훈 너 임마. 너.
지환 ……
영훈 물이나 뿌려. (지환, 물 뿌리면) 전에 내가 소개팅 시켜 준다구 했지?
지환 개 새. 말루만…….
영훈 오늘 해라.

# 화장실 밖
달래가 화장실 앞에 있는 것을 보고 여자 화장실로 착각한,
용무가 급한 어떤 여자.

달래 저..
화장실여자 죄송해요. 급해서..

달래가 말릴 틈도 없이 문을 확 열어 버린다.
달래 “앗!”두 사람의 적나라한 나체를 보고 만다.
눈도 감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리는 달래.

S# 20. 호프집 안 (밤)

약간 어색하게 앉아 있는 달래, 계속 다른 곳을 보면서


호프집 안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딴청을 하고 있다.

지환 진달래. 실제로 본 소감이 어때?


달래 (인상 쓰며) 그만해라…….
지환 에이, 좋으면서 뭘 그래.
달래 어… 그래. 오늘부터 널 번데기로 명하노라.
지환 야……. 그건 찬물 닿아서 그런 거란 말야. 실제로는 더 커!

- 20 -
야. 영훈아 얘기 좀 해봐! 나 원래는 크지? 응?
영훈 … 솔직히 큰 편은 아니지?
지환 씨…… 이 정도면 됐지, 도대체 얼마나 더 커야 되는데…… 응?
(그러다 무언가를 보고) 우와…… 이쁘다……. 완전 연예인이네.

보면, 귀여운 느낌의 달래와 달리 늘씬하고 섹시함과 자신감이 풍기는


김지민(22세)이 호프집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다.

영훈 (지민를 보고) 지민아. 여기! (영훈을 발견하고 웃는 지민. 더 예쁘다)


지환 (입이 찢어지며) 쟤냐? (좋아서 표정 관리가 안 된다) 친구!!!
(하이 파이브 하자고 손을 내민다. 영훈, 맞장구 쳐주고)

-사이-
4명이 앉는 원형 탁자에 달래, 지민 그리고 영훈과 지환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고
지환과 지민이 인사를 하는 사이 달래, 럭셔리, 패셔너블 한 지민을
보고 있는데, 자신과 비교된다. 옷차림 소도구 등등.
그런 지민을 보고 있던 달래, 벌리고 있던 다리를 지민처럼 가지런히 모아본다.
지환은 기분이 좋아서 헤벌레다.

지민 (상당히 직설적이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멋있네.


전에 영훈이 시합 응원하러 갔다가 너 봤어.
마음에 들어서 소개시켜 달라구 한거구... 넌 나 만나니까 어때?
마음에 들어? (달래의 어머 어머. 쟤 좀 봐 하는 표정)
지환 (지민의 미모에 빠져있다.) 응. 되게...
지민 핏... 만나서 반가워. 자 건배.

-사이-
맥주로 건배하는 네 사람.
이미 많은 대화가 있었던 듯 지환과 지민, 편안한 기운이 흐른다.
지환, 기분 좋은지 성룡 얘기를 하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지환 난 성룡 형님 영화를 환타지라고 생각해.


사람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타지. 한마디로 경이지.
지민 나두 성룡 너무 좋아해.
지환 (좋아하며) 진짜? 너 영화 볼 줄 아는구나.

지민을 자세히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확 눈을 돌려 맥주를 마시는 달래.


급하게 먹다가 사래가 걸린다.
지환 (기분이 좋다) 지민아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지민 (기분이 좋다) 응!!
지환 (강냉이를 지민에게 주며) 손에다 하나씩 올려봐.

- 21 -
지민 …(손에 강냉이 하나를 올리면)

지환이 손 밑바닥을 치면 신기하게 입속으로 강냉이가 쏙 빨려 들어간다.


(성룡의 껌 묘기 참조)
재미있는 지민, 다시 하나를 올리면 다시 쏙 들어가고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쏙쏙쏙 잘도 들어가면 별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지환과 지민.

달래 (시시한 듯) 놀구 있네…. (맥주를 들이킨다)

S# 21. 호프집 앞 - 번화가 (밤)

지환, 지민과 함께 걸어 나온다.


영훈이 완전히 뻗은 달래를 업고 나오고 있다.

지환 (달래를 보고) 술도 못 마시는 게 오바는... 니가 고생 좀 해야겠다.


영훈 오늘은 니가 봐주지 않았어도 내가 이겼을 거야.
지환 짜식 눈치 챘냐? 너 분명히 이길 때까지 계속하자고 했을 거 아니야.
난 맨날 이런 것만 연습한다구. 니가 이길 리가 없잖아.
영훈 난 져도 정정당당한 게 좋아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넌 내가 좋아하는 친구니까…. 먼저 간다. (지민에게) 다음에 보자.
지환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 짜식, 멋있기는.
우리두 그만 가자. 난 이쪽인데.
지민 집까지 안 바래다 줄 꺼야?
지환 어?...
지민 니가 집까지 바래다 줬으면 좋겠어. 대신 업어 달라고는 안 할게.
지환 (흔쾌히) 그래. 근데 나 내 차비 밖에 없는데. 아, 쪽팔려.
지민 (팔짱을 끼며) 우리 걸어가자.
지환 (지민에 끌려가며) 너, 혹시 꽃뱀은 아니지?
지민 너 연애하는데 기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환 하긴, 21세기는 스피드~
지민 싫으면 팔 빼고,
지환 싫긴, (장난스럽게) 유지해 주세요. 제에발.

두 사람, 걸어간다.

S# 22. 달래 집 근처 - 골목 (밤)

술에 취한 달래를 업고 가는 영훈.

- 22 -
잠에서 깨어난 달래 기지개를 켠다.
아직도 술이 덜 깨 영훈을 지환으로 착각하고는 영훈의 머리를 잡고 흔들며,

달래 야. 이지환. 살살 안 갈래?
영훈 (순간 표정이 굳었다가 풀리며)… 나 영훈이야.
달래 어…. 미안. 나 내려줘.
영훈 (단호하게) 싫어.
달래 아… 챙피해 죽겠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달래, 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이다.

달래 (생각하다가) 걔 말야. 지민이. 괜찮은 애 같애.


처음엔 자존심도 없이 좋아한다고 먼저 말하고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했는데, 그 애한텐 그게 되게 자연스럽게 보여.
자신감 있고 부럽더라. 둘이 잘 됐으면 좋겠어.
너랑 만나면서 지환이한테 쫌 미안했거든.
영훈 뭐가?
달래 어, 뭐. 그냥……. 다 왔어. 나 진짜 내릴래.

달래, 영훈의 등에서 내린다.

영훈 달래야. 너랑 나랑 사귀는 거 맞냐?


달래 그게 무슨 소리야?
영훈 너 지환이랑 있을 때 더 편안해 보여.
달래 그거야, 친구니까.
영훈 미안. 나 질투한번 해봤어. 나 노력할게 니가 편해지도록.
달래 나도 노력할게..

집 앞에 다 왔다. 달래, 등에서 내리고 마주 본 두 사람.


영훈, 달래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달래의 눈빛이 떨리고 다가가는 영훈.
달래,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쥔다. 영훈의 입술이 달래의 입술에 닿는다.
영훈, 잠시 후 프렌치 키스를 하려고 하면 살짝 밀쳐내는 달래.

달래 (뒷걸음질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미안. 나 잎에서 술 냄새 나서.


영훈 …다래야. 나 부탁 있어.
달래 뭔데?
영훈 (가방에서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꺼낸다. 진지하고 단호하게)
나두 지환이처럼 양말 빨아줘.
달래 풋…. (웃다가 영훈의 진지한 눈에) 그래.
영훈 아휴. 내가 더 창피하다. (뒷걸음쳐서 걸어간다)
달래 영훈아. 니가 원하면 지환이 따로 안 만날 수도 있어.

- 23 -
영훈 내가 그러길 바래?
달래 ..... 아니.
영훈 나도 아니야. 간다. (뒤돌아서 뛰어간다)
달래 …..
(핸드폰이 울린다. 이지환이라고 써 있다. 달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빨리 끊어라. 이 자식아…….

S# 23. 신발 매장 앞 (밤)

아들 지환에게 새 신발을 사 줄 생각에 즐거워 매장까지 달려온 창호의 얼굴이


이내 굳어진다. “정기 휴일”

S# 24. 갈비집 앞 (밤)

갈비집 앞에 멈춰선 창호의 눈에 맛있게 갈비를 뜯으며 소주를 들이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 갈비집 안
창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갈비를 뜯는다.

S# 25. 초등학교 - 교실 안 (1993년 늦여름/낮)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곡명을 알 수 없다. 어린 지환이 그냥 흥얼거리는….


어린 지환과 눈물이 그렁한 어린 달래의 모습이 보인다.
달래와 아이들, 휘파람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 쳐다보지만
휘파람을 불고 있는 아이는 없다.
분명 소리는 짝꿍인 지환에게서 나오는 것 같은데 지환은 입을 다물고 있다.
달래, 눈물이 뚝 떨어질 듯하면 커지는 휘파람 소리.
달래, 쳐다보면 지환이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휘파람을 불고 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달래 픽 웃음이 난다.
칠판에 글씨를 적던 선생님도 그 소리를 듣는다.

선생님 (점잖게 하지 말라고) 누구죠? 휘파람 부는 사람.

소리가 멈추지 않자 선생님, 화가 난 듯 휙 돌아서 쳐다보지만


휘파람 소리는 계속 난다.

- 24 -
선생님 선생님, 화낼 꺼예요.

선생님, 소리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달래가 하지 말라고 툭 치지만,


웃기만 하고 멈추지 않는 지환.
선생님, 지환 쪽으로 오며 유심히 보지만 지환이 입을 다물고 있어 그냥 지나치자,
달래 울려다가 크게 웃음이 터진다.
지환, 휘파람을 멈춘다.

어린지환 (크게) 앗, 파랑새다~


선생님 (지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선생님 ??? 파랑새?

아이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와!!! 창가로 달려가고


선생님도 어리벙벙해 창가로 간다.
달래를 끌고 창가로 가는 지환.
보면 아이들의 눈에 진짜 파랗게 생긴 새가 운동장에서 빙빙 돌다가 멈춘다.
새, 카메라를 쳐다본다. 눈이 정말 크고 맑다. 하늘로 날아간다.

S# 26. 초등학교 - 운동장 (1993년 늦여름/오후)

지환, 달래네 반 선생님, 긴 막대로 나무 위에 걸려 있는 파란 종이비행기를


건드려 떨어뜨리면서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고
아이들 모두 운동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데 달래만 구석 벤치에 앉아 있다.
벤치 옆에 종이 박스로 만든 작은 상자가 보인다.
지환, 그 앞을 쓱 지나가지만 달래, 말없이 바닥만 바라볼 뿐이다.
다시 돌아와 달래 옆에 가만히 앉는 지환.

어린달래 (잠시 말이 없다가) ...뿌삐가 죽었어.

S# 27. 산 속 - 산길 (1993년 늦여름/늦은 오후)

산의 아주 작은 길을 거의 헤치듯이 걸어가고 있는 어린 지환과 달래.


달래는 힘들어 뒤쳐지고 있다.

어린달래 야. 어디까지 가? 힘들어….


어린지환 거의 다 왔어.

- 25 -
지환 달래에게 손을 내밀고 달래는 그 손을 잡는다.

-사이-
도무지 사람이 다닐 것 같지 않은 길을 손을 잡고 걸어 간 어린 지환과 달래.
도착한 곳은 산 중턱의 끝자락 벼랑 같은 곳으로 빨간 열매의 보리수나무로
둘러 쌓여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공터가 있는 곳.
모양이 꼭 산속의 작은 무인도 같다.
지환이 자신의 아지트인 듯 각종 반짝이고 소리 나는 물건들을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어린지환 다 왔다.

지환, 그 곳 바위 사이에 솔가지로 가려 놓은 곳을 열면 온갖 잡동사니들이 있다.


그 중 작은 장난감 삽을 꺼내 땅을 판다.
상자를 열어 죽어 있는 다람쥐 뿌삐를 정성스레 꺼내는 달래.
볕이 잘 드는 곳에 묻어준다. 달래, 눈물이 그렁그렁.

어린지환 (종이에 크레파스로 무언가 그리고 있다) 크게 울어도 돼.


여긴 나 밖에 모르거든. 아니다. 이제 너랑 나……. 둘.
(달래와 지환 서로 쳐다본다. 지환, 말하지 말라고 입에 손을 가져다 대며)
대신 여긴 비밀…….
어린달래 (입에 손을 대고) 비밀…(하다가) 앙……. (슬픔에 복받쳐 울어버린다)

엉터리 다람쥐의 그림이 작은 무덤 앞에 있고 눈이 벌건 달래.


어린 지환, 무덤 앞에 도토리를 꺼내 놓아준다.

-사이- (석양)
어린지환 저기 나무 구멍 사이로 해가 들어올 때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져.
어린달래 진짜?
어린지환 (해가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리다가) 됐다! 나 먼저 할게.
(소리 지른다) 빨리 어른 되게 해주세요!!
빨리 성룡처럼 되게 해주세요.
어린달래 …… (머뭇하다 소리 지른다) 우리 뿌삐 행복하게 해주시구요!!
혼자 외롭지 않게 친구도 만들어 주시구요!!
맨날 맨날 하나두 안 아프게 해주세요!!

두 사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뿌삐의 무덤 주위에서


다람쥐들이 다 모여서 놀고 있다.

어린지환 봤지?
어린달래 헤…. 뿌삐 심심하지 않겠다.

- 26 -
서로 보며 아이처럼 웃는다.

-사이-
지환, 가방 안에서 깨진 유리 조각, 크리스마스 장신구, 등
반짝이고 예쁜 물건들을 꺼내 실로 돌과 연결한다.
달래, 같이 도와주고 나무를 능숙하게 올라 나무에 매달아 놓는 지환.
달래는 올라가지는 못하고 돌을 던져 나무에 돌돌 말리게 한다.
석양에 반사되는 모습이 예쁘다.
거기에는 유리병 속에 구슬을 넣은 것도 있고 작은 종도 있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소리가 난다.
이 화면 위로 지환의 아버지 창호의 소리가 들린다.

창호(소리) 오십 평생 한번도 보지 못한 파랑새를 니가 봤다고?

S# 28. 지환 집 - 옥탑 방 (밤)

사방이 책과 영화 포스터로 채워진 좁은 옥탑 방.


창호는 로또 복권의 빈칸에 정성들여 칸을 채우고 있다.
부엌에 서서 설거지를 마친 지환 고무장갑을 벗으며

지환 (진지하다.) 진짜 봤다니까,(창호 앞으로 와서 앉으며)


아부지 하얀색 까마귀랑 빨간 백조가 있는 건 알어?
창호 짜식이. 까매서 까마귄데 하얀색이 어디 있냐?
지환 내가 좋아하는 동생 중에는 손가락이 세 개인 애도 있어.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만 다르면
돌연변이라고 하면서 못 본 척 할 뿐이라구.
창호 (그럴듯하다. 수첩에 글씨를 쓴다. 파랑새? 돌연변이? 라고 쓴다.)
그래 뭐 파랑새야 어딘가 있겠지 뭐 그렇다 치구.
우리 동네 뒷산에 그런 곳이 있단 말이지?
어디냐? 속는 셈치고 나두 가서 소원 좀 빌어보게.
로또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네?
지환 (생각에 잠긴 듯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산 쪽을 바라보면서) 이젠 못 가.
창호 왜?
지환 어디 있는지 잊어버렸거든.
거기 찾으려구 달래랑 며칠을 헤맸는데. 못 찾았어.

S# 29. 대학교 - 강의실 복도 (낮)

- 27 -
사람들의 다리 사이를 질주하는 rc 카. 다리 사이로 요리조리 피해 가다가
물구나문 선 지환의 얼굴을 맞닥뜨리고 깜짝 놀란 듯 멈추는 카메라.
피하듯 뒤로 도망간다.
달래 복도를 걷고 있는데 달래의 눈앞으로 거꾸로 선 다리 두개가 다가오고 있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의 눈이 모두 그 다리로 쏠린다.
그 다리의 운동화는 금방이라도 발가락이 나올 듯 많이 낡아있다.

달래 (밑을 쳐다보며) 간만이네. 몸무게는 많이 줄었냐?


지환 오늘은 다리 면도 했네.

달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없이 지환을 확 밀면,


지환 뒤로 꽈당 넘어간다.

지환 (일어나며) 너 전화기 잃어버렸냐? 안 받더라.


달래 헛소리나 툭툭 하는 니 전화는 받아서 뭐하게.
그럴 시간 있으면 지민이 한테나 잘해. 잘 되고 있는 거야?
지환 응. 겁나게. 볼래? (하며 핸드폰에 있는 스티커 사진을 보여 주면
지민이 지환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사진이다.) 히…….
달래 (기분이 이상하다. 약간의 표정변화) 으아. 닭살이다. 닭살.
지민이 그렇게 안 봤는데 좀 헤픈 거 아냐?
만난지 얼마나 됐다구….
지환 (비꼬듯) 순진한 척 하기는……. 나 간다. (걸어간다.)
달래 (기분 상함. 돌아서 가는 지환을 붙잡고) 야. 너 말이 꼬였다.
순진한 척 하다니?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지환 너 옛날부터 그랬잖아. 혼자 착한 척. 알면서 모르는 척.
달래 내가 언제?
지환 그거 다 말하려면 삼박 사일이야. 나 지금 시간 없걸랑.
달래 죽었어. 하나두 빼먹지 말구 다 말해.
지환 그래. (오케이. 잘 걸렸어.) 작년 어린이날 새한 서점.
너 잡지에서 뭐 찢었어?

# 인터컷 새한 서점 안(1년 전/낮)


달래가 잡지에서 배우 브래드 피트의(거의 벗은 양면 사진)
사진을 눈치를 보며 몰래 뜯어내고 있다.
몰래 잡지사진을 찢어 가방에 집어넣는 달래.

달래(소리) 내가 뭐얼?

# 인터컷 달래 집 - 달래 방(1년 전/낮)


달래가 방 안 책상에서 정우성 사진 위에 얼굴을 묻고
좋은 꿈을 꾸는 듯 히죽거리며 잠들어 있다.

- 28 -
지환이 문을 쾅 열고 들어오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는 달래.
정우성 사진이 침에 붙어 달래의 얼굴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달래, 급하게 사진을 떼어내면 얼굴에 사진의 건더기가 묻어있다.

지환(소리) 브래드 피트 사진 몰래 찢었잖아.

# 강의실 복도

지환 침까지 줄줄 흘리면서 그렇게 좋았어? 좋았냐고.


달래 그런 넌 작년 겨울에 나 독감 걸려서 입원했을 때
병문안와서 내 가슴 몰래 만졌잖아. 말해 봐. 내 가슴 만졌어, 안 만졌어?
지환 어. 그래 너 그때 안 자고 있었구나? 거봐. 거봐.
그때 이불 덮어 줄려구 하다가 그런 거지 내가 아픈 사람
가슴이나 만지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

# 강의실 안
두 사람의 말싸움 계속되고 카메라, 두 사람 바로 옆 강의실로 가면
교수와 학생들 모두 달래와 지환의 대화를 듣고 있다.

달래(소리) 니가 민망해 할까봐 자는 척 해줬는데 너 내 뺨까지 쓰다듬었잖아.


징그러 죽는 줄 알았어.
지환(소리) 그 때 니 얼굴에 침딱지 묻어서 닦아 준거야.
학생 교수님.(손을 들며) 나가서 조용히 시킬까요?
심리학교수 (장난스러운) 아. 아니 됐어요. 사랑싸움 같은데 우리가 좀 참죠.
(계속 떠든다. 유치한 대화 내용에) 허... 거 재밌네. 좀 들어 볼까요?

교수와 학생들 모두 벽에 붙어 대화 내용을 듣는다.


두 사람의 싸움은 싸움 같지 않고 왠지 구엽게 느껴진다.
서로의 소소한 것까지 알고 짚어주는 달래와 지환에게서
오랜 친구임을 알 수 있다.

# 강의실 복도
수업이 끝나고 교수와 학생들 한 사람씩 나와 몰래
지환과 달래를 훔쳐보며 킬킬거린다.

달래 (진짜 화났다.) 진짜. 왕따 당하는 거 불쌍해서 좀 친한 척 해줬더니 말야.


너 앞으루 전화두 하지 말구, 만나도 아는 척 하지 마.
지환 (달래의 말에 상기된 표정) 달래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말하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 진짜 미안해…….
달래 (지환이 너무 저 자세로 나오자 마음이……)
지환 (표정이 싹 바뀌며 놀리듯) 이럴 줄 알았지? 미 투다 미 투.

- 29 -
달래 너 당장 내 핸드폰 번호 지워.
지환 알았어.

두 사람 핸드폰을 열고 서로의 이름을 지우려 한다.


달래, 잽싸게 지환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지환은 핸드폰을 열고 한참을 쳐다본다.

달래 이씨 너 왜 빨리 안 지워.
지환 가만 있어봐. 이거 어떻게 지우는 거야? 뭐가 이렇게 어려워….
학생 (옆에서 조심스럽게 참견한다.) 거기 옆에 메뉴 버튼 누르시구요.
지환 (쳐다본다.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지워 주실래요?
학생 (받아들고) 저 여자분 성함이…….
지환 진달래요.
학생 (입으로) 진..달..래.. (핸드폰 버튼을 여기 저기 누르고)
여기 확인 버튼 누르면 지워 지거든요?
(주려다 잠시 망설이며)…… 저 한 번 만 더 생각해 보시면 안 될까요?
지환 예? 뭘요?
학생 아닙니다. (안타깝게 준다)

확인을 누르려는 지환의 손가락과 이를 지켜보는 달래와 학생, 교수들의


모습이 교차되며 아주 중요하고 긴박한 장면같이 화면으로 보여진다.
약간은 과장된 표정과 커트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마침내 지환의 손가락이 확인을 누르고 핸드폰에서 달래의 전화번호가 사라진다.
그 위로 지환의 소리가 들린다.

지환 자. 봐 지웠지. 니 번호 공일일 구칠팔일 공팔사사 여기 없지?


분명히 지웠다. (Fade Out)

S# 30. 액션 스쿨 - 연습장 (낮)

지환과 무술 연기자들이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고 있는 액션 스쿨.


무술 연기자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닥과 몸이 모두 땀이고 저러다 다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난이도 연습이다. (*실제 훈련 장면을 촬영)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지환과 무술 연기자들.
연습을 하던 지환, 무술 감독 원진에게 다가간다.

지환 (불만인 표정. 진지하게) 저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원진 뭔데?
지환 감독님 아무리 영화라지만 제가 여자역할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 진짜 쪽팔리게.

- 30 -
원진 (지환의 머리를 잡고) 그럼 상범이 시킬까?

연습하고 있는 상범은 조폭 같은 얼굴에 아주 큰 머리.

원진 쟤가 여장을 했다고 생각해 봐.

지환의 상상으로 상범이 여장을 한 모습이 보인다. 으악, 괴물이다.

원진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럼 영준이 시킬까?

보면 종아리가 보디빌딩 선수에다 털 복숭이다.


지환의 상상으로 치마를 입히자, 으악 보기 민망하다.
진짜 아니라는 지환의 표정.

S# 31. 영화사 - 오디션장 (낮)

영화“소년”의 조. 단역을 뽑는 소규모의 오디션 현장.


정면 테이블에는 감독과 PD. 제작자가 프로필을 앞에 두고 앉아 있고
오디션을 보는 바로 뒤 구석 의자에 다른 후보들과 나란히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달래, 215번을 달고 있다.
모두들 화려하고 세련된 후보들 속에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심호흡을 하고 우황 청심환을 뜯어서 먹는 달래.

진행요원(남) (소리만)211번부터 220번 들어오세요.


달래 (긴장하여 지나치게 큰 소리로) 네!

그런 달래의 모습에 대기하던 사람들 웃는다.

# 오디션장 안
앞에선 늘씬하고 과다노출의 여인이 섹시 춤을 선보이고 있다.

달래감독 그만. 됐구요. 혹시 준비해 온 독백 같은 거 있어요?


배우지망생 (자신 있게) 네! 있습니다.

연기의 꿈을 두고 있는 쟁쟁한 후보들이 자신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정에 몰입 오열을 하며 울부짖는 후보.
자신이 출연한 뮤지컬의 노래를 부르며 대담하게 감독 앞 책상에 올라가
연기를 하는 후보 등 기본이 안 되어 있는 후보도 있지만 하나같이 열의에 넘친다.
그런 후보들을 볼수록 달래는 자꾸만 자신이 작아만 지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 31 -
-사이-
달래를 가만히 쳐다보는 감독의 모습.
감독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달래.

달래감독 여기 앞을 봐야죠. 그러고 있으면 눈빛을 볼 수가 없잖아요.


달래 (억지로 힘을 주어 쳐다보는 모습이 귀엽다. 눈도 감지 않는다)
달래감독 (픽 웃음이 터진다) 오디션 처음이에요?
달래 아니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대답하려 머리를 굴리지만
긴장해서 몇 번인지 잘 모르겠다.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센다.)
한 삼십 번 쯤이요?
달래감독 근데도 그렇게 떨어요? 화면에서 그러고 있으면 관객들 다 나가겠다.
됐어요. 자, 다음 (프로필을 넘기며)
달래 (용기를 내어) 저…… 우연히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막 웃다가 울다가 했어요.
그래서 여기 정말 오기 싫었습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아직 연기자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요.
달래감독 (한참 쳐다보다가)예. 알겠습니다. 자~ 다음!
달래 근데 막상 여기 오니까 그냥 못가겠어요.
감독님 저 욕이라도 먹고 가게 해 주세요.
달래감독 (냉정하게) 여긴 준비된 사람을 뽑는 곳이지, 연기학원이 아니에요.
달래 (용기를 내서) 요양원 환자 연기 대사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달래감독 (조감독을 쳐다보며) 조감독, 뭐해? 오늘 다 안 끝낼 거야?
자, 다음~(약간 화내며) 다음!
조감독 (달래를 끌어내며) 저, 죄송합니다.
달래 (충격을 받은 듯 뒷걸음치며 끌려 나간다)

S# 32. 폭파 영화 촬영장 - 공사장 건물 (오후)

촬영장 전경. 잠시 촬영이 중지된 현장. 앰뷸런스가 긴급하게 오는 것이 보인다.


-사이-
스텝들 지환, 걱정스러운 표정.
상범이 팔이 부러진 상태로 앰뷸런스에 실리고 있다.
응급으로 팔에 부목을 댄 상태.

상범 (웃으며) 저 죄송합니다.
원진 ..... 촬영은 끝내야 되니까, 가 있어. 금방 갈게.
저 감독님 제가 하겠습니다.
폭파영화감독 원 감독은 몸 차이가 너무 나서 안돼요. 그냥 오늘은 접죠.
현장 분위기도 그렇고.

- 32 -
원진 ..... (이때)
지환 (큰소리) 저 준비 됐습니다!!!

사람들 쳐다보면 지환이 5층 정도 높이에 파이프 등이 삐죽 튀어나와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건물 위에 어느 샌가 올라가 있다.

지환 상범이형! 내가 형 대신 죽이게 해낼 테니까,


여기 걱정말구 몸조리 잘 하고 있어.
내가 족발 사가지고 금방 갈게. 감독님! 저 준비 됐습니다!!
원진 야! 너 맞을래? 빨리 안 내려와!! 넌 아직 안돼!
지환 내려가서 맞겠습니다!!! 저 준비 다 됐습니다!
원진 ........
상범 저, 감독님. (못 듣자 더 큰 소리로) 감독님!
시키시죠. 우리도 옛날에 저랬잖아요. 지환이 잘 할 거예요.
원진 ... (고민하다가) 감독님 찍어보죠.

카메라 돌아가고

폭파영화감독 자, 카메라 원!!(준비한다)


자, 카메라 투!!! (다른 각도의 카메라)
카메라 쓰리!!!
지환 (머리 위에서 부감으로 잡고 있던 카메라를 향해) 파이팅!
폭파영화감독 자, 특효 준비됐어요?
특효담당 (멀리서 소리로) 네!
폭파영화감독 카메라, 정신 차리고!
지환 (몸을 풀고 심호흡을 하고) 악!
원진 이지환! 준비됐어?
지환 (기합이 잔뜩 들어간 채로) 옙!!

“레디. 카메라 액션” 하면


지환이 건물에서 이리저리 파이프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카메라 앞으로 이동하며 한 컷으로 보여준다.
(모션 컨트롤 카메라로 지환의 얼굴을 갈아 낀다.C.G)
바닥에 지환이 떨어지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되면 정속으로 카메라,
빠르게 지환에게로 간다.

폭파영화감독 컷 오케이!!! 좋아!!! 지환씨 괜찮아요?

동료, 스텝들 지환에게로 달려가고

지환 (쓰러진 상태에서) 아. 씨발. 존나 재밌어!! (하며 벌떡 일어난다.)

- 33 -
폭파영화감독 자 박수!

사람들 박수를 쳐주고 부러진 팔로 아파하며 박수를 쳐주는 상범.


지환, 개구쟁이처럼 브이자를 그리며 좋아한다.
이 때 원진, 주먹으로 지환의 아구를 돌려 버린다.

지환 (벙...) 악!
원진 (뒤돌아서 걸어가며) ... 잘했어.
지환 (순간 눈물이 핑... 하는데 저쪽에 낯익은 얼굴. 지민이다.) 지민아...

S# 33. 촬영장 근처 공원 (밤)

그네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지민 이상해.
지환 어?
지민 너, 내가 볼 땐 태권도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이상한 일이나 하고 있잖아
지환 이상하다니.. 뭐가?
지민 그럼 안 이상해? 죽을 수도 있는데 일부러 떨어지구, 맞구... 뒹굴구.
그리고는 좋다고 웃기까지 하잖아.
지환 (말을 끊으며) 지민아.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돼.
촬영 전날엔 무서워서 잠도 못자.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병신이라도 되면 아니 죽기라도 하면 그런 생각하면
그냥 머리카락이 빠져서 흘러내려 심할 땐 가만있어도
오바이트가 나오고 머릿속에서 도망가라고 만 번도 더 넘게 얘기해.
근데,, 근데, 촬영장에 오면 너무 좋아 진짜 좋아.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돼.
지민 … (조금 풀려서) 그래. 뭐, 솔직히 너 멋있어. 우리나이에 너처럼 확고한
생각 가지고 사는 애들 별로 없으니까. 솔직히 그만두라구 하고 싶지만 너 보니까 말하나
마나인 것 같구. 뭐 하나만 물어볼게….
달래가 그만 두라고 해도 할 거야?
지환 (뉘앙스가 이상하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지민 그냥 물어 보는 거야. 달래랑 넌 워낙 특별한 사이니까. 부랄 친구라며.
지환 (당연하다는 듯 단호하게) 달래는 그런 말 안 해. 그런 말 할 애가 아니야.
지민 …… (표정의 변화. 질투가 난다) 나 집에 갈래.
지환 .....
지민 (걸으며) 넌 진짜 남자친구로 빵점이야.
지환 … 왜?
지민 거짓말을 못 하잖아. 나 쫌 전에 상처 받았어.

- 34 -
지환 … 왜? 왜? 내가 뭐 잘못한 거야?
지민 너 둔한거야? 아님 모자란 거야?…….
지환 (지민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
지민 (걷다가) ...좋아 이대로 집에 갔다가는 잠도 안 올 것 같구
너한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줄께.
(지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키스해 달라는 느낌으로 눈을 감는다)
지환 …(어 지금 어떻게 해 달라는 거지?하는 느낌의 표정)
지민 (잠시 그러고 있던 지민 큭 웃으며 눈뜨고) 유치해.
지환 … (혼자 이해가 안 돼서 멍하다)
지민 나 유치해. 나 다른 애들하고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잖아. (지환을 쳐다보며) 챙피해.

지환 이제야 지민의 말뜻을 알 것 같다


지환이 지민에게로 손을 올리고 두 사람 천천히 키스를 한다.

S# 34. 버스 안 (밤)

20여명의 승객이 있는 버스 안.
달래가 올라타더니 무엇을 결심한 듯 버스 중간에 선다.

달래 큼. 저 달리는 차 중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을 꾹 참고) 저는…… 연기자가 되고 싶은 학생입니다.
그런데 전 사람들 앞에만 서면 너무 떨려서 집중 할 수가 없습니다.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변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시끄러우시더라도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달래, 연기를 하려는 듯 감정을 잡고 있는데 뒷자리에 조폭 같은 껄렁남.


생긴 대로 괜히 시비를 건다.

껄렁남 야! 시끄러. 얼굴도 안되는 게 무슨 연기를 한다구

같은 버스에서 달래를 지켜보던 지환.

지환 (조용히 껄렁남 귀에 대고) 씨발. 좀 조용히 합시다.


달래 (껄렁남의 야유를 못 들은 척 하고 대사를 한다) ...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뭘 더 원 해. 너 그런 기분 알아?
껄렁남 (지환의 말에 발끈하며) 뭐? 씨발?
지환 (껄렁남의 눈을 매섭게 노려본다. 순하던 눈에서 카리스마가 보인다)
껄렁남 이 새끼가!! (하는데 지환, 빠른 손놀림으로 껄렁남의 국부를 움켜잡는다)
헉!! (아프다) 아… 아…….

- 35 -
지환 (귀에 대고) 개새 조용히 안하면 뿡알 터뜨려 버린다.
달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분노에 찬 연기)
꿈속에서 매일 어떤 놈이 나타나는데,
이 놈은 매일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 좀 보려고 다가가면……

이때 버스가 멈춰서고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달래, 몇몇 사람 웃기도 하는데


다시 벌떡 일어나 연기를 한다.

달래 개새끼……. 내가 간만큼 멀어져 있어. 그게 한달이고 일년이고 계속이야.


(울음이 난다.) 그러다 나중엔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내가 아닌 것 같아.
난 없는 것 같아. 난 그냥 그놈이 어떤 놈인지
왜 계속 내 꿈에 나타나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야.

가만히 바라보는 지환과 행여나 자기 것이 터질까봐 어쩔 줄 몰라 하는 껄렁남.


달래, 연기가 끝나고 몇몇 사람들 힘내라고 박수를 쳐준다.

달래 저 죄송했구요. 역시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네요.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달래, 아직도 떨리는지 심호흡을 하며 내리려고 준비하고 있고


계속 껄렁남의 국부를 쥐고 있는 지환의 손을 할머니 한 분이 대놓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마치 게이 커플인 것처럼 착각)
상황 파악을 한 지환, 주위를 둘러보면 힐끔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설명도 못하고 어색한 표정의 지환과 껄렁 남.
달래가 버스에서 내리고 서서히 출발하려 하면

지환 (껄렁남에게 다정하게) 자기. 나 간다.

하고는 열려있는 버스 창문으로 빠른 동작으로 빠져 나간다.


혼자 남은 껄렁남, 게이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쩔 줄 모른다.

S# 35. 지환과 달래 동네 - 버스 정류장 (밤)

달래, 가슴은 아직도 뛰고 있지만 뭔가 작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짜릿한 느낌이 든다.
달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지환,
친구의 용기에 진심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달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보인다.
지환, 혹시 자신에게 거나 싶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어본다.
달래, 영훈과 정답게 통화를 한다.

- 36 -
지환, 마음이 이상하다. 허전하다.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S# 36. 국기원 - 복도 (아침)

000배 전국 태권도 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꽃을 든 달래, 복도를 서성이는데 낯익은 발 두 개가 거꾸로
선 채 다가오고 있다. 물구나무 선 지환이다.
낡을 대로 낡은 운동화와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 그리고 파스 투성이의
다리가 달래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지환은 달래를 보지 못한다.

달래 (머뭇하다가 작은 소리로) 야. 이지환.

지환, 듣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간다.

S# 37. 국기원 - 테라스 (아침)

지환, 오리털 파카를 입고 줄넘기를 하면서 감량을 하고 있다.


줄넘기를 하고 침을 뱉고를 반복하고 있다.
코치, 저울을 들고 온다.

코치 그러니까 자식아 평소에 했어야지.


(지환 저울에 올라가고) 칠십 이점 일오(72.15). 150개 남았네.
자……. (약을 준다.)
지환 (받아들며) ... 감독님 저 다음 시합 땐 체급 올릴 겁니다.
코치 자식… 농담은. 영훈이랑 붙겠다구? 너 금메달 따기 싫구나?
지환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이건 진짜 내가 아니잖아요.
체중에 날 맞춘 거잖아요.
자연스럽지가 않잖아요.(지환의 눈빛이 단호하다.)
코치 …… 그래 시합 끝나고 생각해보자. 백 오십 개다. (하며 줄넘기를 준다.)

S# 38. 국기원 - 경기장 (오전)

관중석에 달래, 경기장 안의 영훈을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영훈, 자신 있게 브이 자를 그리면 달래, 지환을 찾는다.
핼쑥한 지환, 고개를 푹 숙인 채 위를 쳐다볼 생각도 안한다.
응원 온 지민이 달래를 발견하고 옆으로 와서 앉는다.

- 37 -
-시합 몽타주-

1. 마치 지환과 영훈의 시합처럼 서로의 대전 직전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상대와 싸우는 두 사람.
편집은 두 사람이 싸우는 것처럼 한다.

2. 박력 있는 태권도 경기.
지환의 눈빛이 다른 때와 달리 아주 진지하다.
지환의 파이팅. 뒤돌려 차기로 상대의 복부 포인트에 꽂는다.
“아자!!”큰 소리. 보면 달래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는 민망한 달래. 지민도 깜작 놀랄 정도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지민과 달래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다시 지환의 앞 찍기. 달래“와우!!”

3. 영훈의 일방적인 경기.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한 영훈의 실력.


달래, 오늘 기분 째진다. 영훈과 지환 둘 다 잘한다.

4. 지환의 경기. 박빙의 승부에서 지환 지고 만다.


아쉬워하는 달래와 지민.

5. 시상식.
영훈은 금메달.
다음 시상식에서 이등 자리에 올라 은메달을 받는 지환의 표정이 좋지 않다.

S# 39. 국기원 앞 (오후)

꽃을 들고 지환과 영훈을 기다리고 있는 달래와 지민.


영훈이 나온다.

달래 축하해. (영훈에게 꽃을 건네고, 보면 지환이 힘없이 걸어오고 있다.


꽃을 주며 두 사람 약간 서먹) 안녕.
지환 안녕. (살짝 웃어주곤 지민에게로 간다.)
지민 잘했어. 너 멋있다.
지환 (지민에게) 가자. (달래가 민망할 정도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간다.)
영훈 니네 이번 싸움은 좀 오래 간다…. 지환이 녀석. 많이 늘었어.
요즘 훈련할 때 보면 내가 무서울 정도라니까.
달래 (사력을 다한 경기로 축 처진 지환의 뒷모습을 본다)……

S# 40. 번화가 - 카페 (다른 날/오후)

- 38 -
영훈과 달래가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있다.
영훈은 달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달래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다.
달래 좀 기운이 없어 보인다.

영훈 (가만히 쳐다보다가) 나… 니 옆으로 간다.

영훈, 달래의 옆으로 가 앉자 달래 조금 움찔하더니 엉덩이를 옆으로 뺀다.

달래 (말없는 두 사람. 잠시 정적)…… 저기… 오늘 지환이 생일인데…


나 일찍 들어갈 테니까 니가 술이나 한 잔 사 주라.
그 자식 멍청해서 아마 자기 생일도 모르고 있을걸.
영훈 … 걱정 마. 지민이가 알고 있던데 뭐.
달래 맞다. 지민이가 있었지? 깜박 했다. 그럼 됐구.

달래 옆에 예쁘게 싼 작은 상자가 보인다.

S# 41. 번화가 - 옷가게 (오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가게 탈의실 앞에 지민이 서있다.

지환(소리) … 지민아 나 진짜 이런 거 싫어.


지민 나 오늘 큰 맘 먹구 사주는 거니까. 빨리 나오기나 해.

쑥스러워하며 나오는 지환, 아르마니풍의 셔츠와 바지를 입었는데 근사하다.

지민 역시…… 내 애인 멋지다. 일루와 봐, 내가 머리 만져 줄게.

S# 42. 번화가 - 거리 (오후)

지나가던 여자들, 머리를 정돈하고 셔츠의 가슴까지 버튼을 풀어


근육이 살짝 보이는 지환이 멋있는지 흘끔흘끔 쳐다본다.
지환은 어색해 죽겠는데 지민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지민 (팔짱을 끼며) 야. 애들이 너만 쳐다본다. 아…. 기분 좋다.


지환 (옷도 팔짱도 불편하다) 하 …. (한숨을 쉰다)
지민 (지환의 낡은 신발을 보고) 아…. 신발만 갈았으면 완벽한 건데.

- 39 -
S# 43. 번화가 - 노래방 (밤)

달래와 영훈, 노래방에 앉아있다.

달래 진짜 오래간 만에 와본다. 근데 갑자기 웬 노래방.


영훈 잠깐만 기다려봐.

지환과 지민이 팔짱을 끼고 노래방으로 들어오면


달래와 지환 서로 “어??”하며 서먹해한다.

영훈 앉아. 둘 화해하라구. 니네들 그러구 있으니까 내가 더 불편해.

지환과 지민 자리에 앉고

영훈 지환아. 생일 축하한다.
지환 어. 고마워.
영훈 나이 들어서 케잌 자르는 건 좀 그렇구. 자 선물.
(운동화를 지환에게 주며)
이거 운동환데 달래가 내가 산 것처럼 해서 너한테 전해달래.
달래 (왜 그러냐고) 야…….
지환 … 고마워.
영훈 자… 그럼 화해하는 의미루 같이 노래하나 불러라.
달래 됐어.
지민 그러지 말구 같이 불러라.
지환 (서먹해 하며 노래책도 보지 않고)… 그거 할까? (달래, 작게 끄덕거리면)
음…. 팔.오.삼.구. (누르려 한다)
달래 바보야. 팔.오.사.구야.
지환 아. 맞다. 팔.오.사.구.

조용히 그리고 서먹하게 앞으로 다가오는 두 사람.


천천히 마이크를 잡는다.

달래 (조그맣게 여전히 삐진 듯) 생일 축하해.


지환 고마워.

아시겠지만 인터넷 노래방은 노래 부르는 사람이 화면에 나옵니다.


화면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지환과 달래, 빠른 전주가 나오자
갑자기 돌변해 괴상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웃기다.
* “투투 의 ”일과 이분의 일“ 부르는 거 어때요?
서로 노래를 번갈아 부르며 춤추는 호흡이 척척 맞는다.
지민과 영훈도 화면 안으로 뛰어들어 한바탕 신나게 논다.

- 40 -
S# 44. 지환과 달래 동네 - 버스 종점 (밤)

지환과 달래, 말없이 걷고 있다.

지환 (정적을 깨고 입 다물고 휘파람을 분다) 휘… 휘….


달래 (픽 웃음) 너 그거 … 웃겨 ….
(지환처럼 해보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집으로 갈라지는 길. 멈추어 선다.

달래 가.
지환 …. 달래야. 간만에 그거 한 번 할래? (주먹을 내민다) 기억나?
달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 웃으며 주먹을 부딪치고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하던 특이한 인사를 한다.
* 힙합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서로 주먹을 여러 번 부딪치기도 하고 안기도 하면서
인사를 한다. 지환과 달래는 둘만의 특이한 인사법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주 오랜만에 하는 것이다.
달래의 주먹을 두 번치고, 기억을 더듬는다.
지환. 이젠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이 지환과 달래를 재미있게 한다.
여자들이 쎄쎄쎄 놀이를 하는 것처럼 꽤 길다.

# 인터컷 어렸을 적 지환과 달래가 인사하는 모습.


현재의 두 사람과 교차되어 편집된다.

두 사람, 좋아하다 마지막에 삑사리. 쿡!! 웃음.


엔딩은 서로의 어깨를 두들겨주는 것이다.
어색하게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는 두 사람, 천천히 떨어지고.

달래 잘 가. (멀어진다)
지환 잘 가. (지켜본다) 달래야…. 거기 다시 한 번 안 찾아볼래? 뿌삐 무덤.
달래 그 고생을 또 하자구? 난 싫다. 그리구 생각해봤는데 추억은 추억일 때가
가장 좋은 게 아닐까?… 간다.
지환 (달래 멀어지고 혼자 중얼 중얼) 추억. 추억. 과거의 일. 지나간 일.
그럼 진행형이 되려면 추억 중…… 추억하고 있다.

S# 45. 지환 집 - 옥탑 (늦은 밤)

- 41 -
창호, 화단 앞에 서서 소주를 병째 들이키며 큰 달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의 지환도 같이 달을 보고 있다.

지환 (빼앗아 마시며) 아부진 언제부터 그렇게 망가졌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원망 같은 건 없다.)
창호 (웃으며) 니가 태어난 순간부터 … 니 엄마 가면서 본격적으루…
지환 그럼 낳질 말지….
창호 그건 안 되지. 내가 사는 이윤데.
지환 (픽.) 말은 항상 그럴 듯해요….
아부지두 젊었을 땐 정말 하고 싶은 거 하나 정도는
있었을 거 아냐.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거 같애. 진심.
창호 (진심이다. 술도 취했다.) 바람… 바람처럼 여기저기 떠도는 사람.
집, 자동차, 필요 없고 비까번쩍 옷과 구두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지.
(말을 하는 동안 행복해 보인다.) 역시 쓰레기지?
이 나이 되도록 제대로 된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으니 말야.
그래도 넌 이렇게 잘 자라 주었으니까. 고맙다.
지환 그지? 나 잘 자랐지? 아부지 꺼 다 뺏어먹구 혼자 이렇게 키도 크고 말야.
아부지 고마워…. 안 도망가서….
… 나 오늘 아부지랑 같이 취하고 싶다.
창호 (빈 소주병을 흔들며) 다 먹었다.
지환 (일어나며) 오늘 내가 쏜다. 나 요즘 돈 버는 거 알지?
창호 (기분 좋아서) 진짜? 그럼 달래도 부르자.
지환 (크게) 좋지!!!

S# 46. 지환 동네 - 골목길 (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구옥들 사이로 난 골목길.


보름달이 떠있고 별들도 보인다. 골목길과 잘 어울린다.
창호와 지환이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있다. 친구 같다.

창호 (취했다) 거참. 달도 좋고 별도 좋고 참 잘 어울린다.


우리 지환이랑 달래도 잘 어울리지.
지환 잘 어울리긴. 맨날 싸우기만 하는데….
창호 짝사랑 너무 오래 하지마라. 습관 된다더라.
지환 .....

S# 47. 달래 집 - 아버지 방 (밤)

- 42 -
달래가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으로 아버지 안마를 하고 있다.
옆에서 빨래를 개키시는 어머니.

달래 엄마. 엄만 아빠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어?


달래엄마 착해. 엄청 착해서… 이 사람 나 없으면 험한 꼴 많이 당하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고 불쌍해서 한두 번 만나다가 정도 들고
결혼할 나이도 되고…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야. 아빠 자나 봐라.
달래 (아버지를 보고) 자.
달래엄마 만난지 한 일년 쯤 됐나? 이 사람 도대체 진도가 안 나가는 거야.
손도 못 잡구 말이야.
그래서 하루는 소주도 한 병 먹고 먼저 키스해 버렸다.
달래 오… 엄마가…?
달래엄마 그랬더니 니 아빠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달래 어떻게 됐는데?
달래엄마 (키득 이며) 기절했어.
달래 (…후) 진짜? 하하… 아빠 좀 놀려야겠는데.

아버지, 몸을 움찔거리며 히프를 움직인다.


아빠를 보는 달래.

달래 (웃으며) 헤… 아빠 쉬 마려운가보다.

능숙하게 환자용 소변기를 가져오는 달래.

S# 48. 달래 집 - 마당 (밤)

수돗가에서 아버지의 소변기를 비우고 깨끗이 닦는 달래의 손이 야무지다.


지환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지환 달래야. 놀자.
창호 달래야. 아찌도 같이 놀자….

픽 웃음이 나는 달래.

S# 49. 번화가 - 거리 (오전)

오늘따라 유난히 멋을 부린 달래. 화장도 하고 머리에도 신경을 썼다.


짧은 치마에 달라붙는 티를 입은 모습이 매력적이다.

- 43 -
눈이 가려운지 자꾸 눈을 긁어 댄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옆에 서있는 자전거 백미러에 얼굴을 비쳐본다.
백미러로 지환이 보인다.
지환, 다가와 달래를 아래위로 쳐다본다.
약간 민망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달래.
달래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대며 쳐다보는 지환.

달래 웬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하구.


지환 화장했네?
달래 야. 가까이 오지 마. 나 눈병 걸린 것 같애.(눈을 부빈다.)
지환 (망설임 없이 눈을 비빈 달래의 손을 잡고 자기 눈을 벅벅 비빈다) 됐지?
달래 (찡한 감정) ...
지환 (짧게) 너. 오늘 진짜 예쁘다. (손을 잡고 끈다)
달래 (업!!) 야. 근데 너 왜 손은 잡고 그러냐.
지환 (달래,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손을 팍 놓아버린다)
달래 (이런 노무 시키) …

S# 50. 번화가 - 악세사리 샵 (오전)

악세사리 샵 앞. 의아해 하는 달래.

지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구. 맨날 받기만 했잖아.


그냥 너한테 뭐하나 사주고 싶어서.
달래 그냥? 짠돌이 이지환이?
지환 아니. 사실은 기분 좋을 것 같애. 날 위해서.
대신 귀걸이였으면 좋겠어.
달래 야. 싫어 나 귀 뚫는 거 무섭단 말야.
지환 그래두 귀걸이. 나중에 하면 되잖아.
달래 왜 하필 귀걸이냐.
지환 옛날부터 니 귀에 어울리는 귀걸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달래 (기분이 좋지만 괜히) 옛날 언제?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으유 똥고집. 결국 또 지 맘대로잖아.
그래…. 하긴 반지 보단 낫다. 그럼 이상하잖아.
안하구 다닌다구 뭐라고 하지 마. 나, 왕 비싼 거 고른다.

달래, 진열장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한다.


포도송이처럼 파란 큐빅이 여러 개 달려있는 귀걸이다. 비싸다. 포기.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지환, 달래가 본 것으로 “저거 주세요.” 한다.

- 44 -
S# 51. 새한 서점 (낮)

오래된 서점. 규모가 꽤 크다. 헌책방과 서점을 같이 하는 곳.


서점의 가장 후미진 곳. 옛날 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구석에서 지환, 달래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고

달래 야. 이 말 죽인다. 어울림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바위와 나무들이 없는 바다를 생각해보라.
“새들의 비상은 오직 공기의 저항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너무도 당연한 것은 쉽게 잊혀진다. 삶이 그렇다.”
지환 야. 그런 얘기는 나도 할 수 있어. 음… (진지하다)
나는 고기 덩어리다. 눈은 뜨고 있어도 한 곳 밖에 볼 수 없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한다. 그 사람 옆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기 덩어리가 된다.
달래 음… 소괴기야? 돼지괴기야? 난 돼지 괴기가 더 좋은데.
지환 개고기. 복 날 견공님들의 비애를 시로 승화시킨 거지.
달래 쉬워서 좋네.

달래, 책을 골르며 지환을 보면 책을 보는 모습이 꽤 진지하다.

지환 “사랑은 관찰을 낳고 관찰은 사물의 변형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성복.


달래 ……
지환 너 이 시인 꽤 좋아했었잖아.
달래 팬레터 보냈는데. 답장 안 해줘서 싫어졌어.
지환 나도 언젠가 이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해주잖아.
시인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달래 (이 자식 오늘 멋있네) ……
지환 옛날에 내가 너한테 왜 매일 이 구석에 있는 책들만 읽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잖아.

# 새한 서점(흑백) (1년 전 겨울/낮)


(겨울옷을 입고 있다. 창문에 눈이 있다. 난로도 있다.)

현재의 지환 옆에서 과거의 달래가 이야기를 한다.

과거달래 음… 그건. 왠지 정겹다고 해야 하나.


대부분 오래되고 잘 찾지 않는 책들이라 디자인도 별루구
(먼지를 닦아내며) 먼지도 많지만 너무 하얗지 않은 종이가 좋구
무엇보다 이 오래된 책들의 작은 글씨가 마음에 들어. 집중하게 되잖아.
이 안에 무슨 글자가 숨어있나 보물찾기하는 기분.

- 45 -
그리구 진짜는 헤… 좀 특별해 보이지 않냐? 독서광인 것 같잖아.

-현재-
지환 기억나?
달래 … 아니.
지환 고마워.
달래 … 뭐가?
지환 나 그때부터 책이 좋아졌어.

S# 52. 자동차 극장 (밤/무드 있는 비)

지환의 왼쪽 어깨로 비가 내리고 있다. 젖어있다.


보면 한 우산 속의 지환과 달래.
지환은 달래가 비를 안맞게 하려 우산을 달래 쪽으로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달래, 지환 쪽으로 우산을 밀자, 다시 달래 쪽으로 우산을 미는 지환.

달래 (서서) 우리 그냥 비 맞자. 비 맞고 싶다.


지환 ... 그래.

달래, 쓱 지환의 손을 잡고 뛴다.


빗속의 두 사람 자동차 극장 안으로 들어간다.
-사이-
컨테이너로 된 영사기 앞에서 50대의 영사기사가 우산을 들고 있고
지환, 그 사람과 반갑게 포옹한다.
인사하는 세 사람의 먼 모습.
-사이-
컨테이너 영사실 위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있고
비를 막아주는 파라솔, 그 앞에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이어폰.
그리고 두 사람의 젖은 몸을 말려 줄 작고 따듯한 빛을 뿜는 전기난로.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다리를 덮고 있는,
유치한 꽃무늬의 앙고라 담요도 무지 따듯해 보인다.
두 사람의 젖은 머리가 뒤로 장식된 별 모양의 전구들과 달빛에 반짝이고
몸에사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달래 (행복하다.) 너 나중에 결혼 프로포즈할 때 이렇게 해라.


내가 볼 땐 백프로 성공.
지환 ... 오 케이. 알았어.

달래, 추운지 몸을 살짝 떨자 어깨를 부벼주는 지환. 따뜻해...

- 46 -
달래 어깨 좀 빌려도 돼?
지환 (웃으며 기대라고 자신의 어깨를 툭툭 쳐준다.)
달래 (지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아... 편하다.
이상하게 영훈이한텐 이렇게 못하겠어.
지환아. 우리 오래 오래 친구하자.
늙어서 머리 하얘져두 가끔 이렇게 영화두 같이 보구, 서로 챙겨주구.
지환 싸우기도 하고.
달래 그럼 그래야 재밌지.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 기분이 야릇하다. 애써 감정을 자제하는 두 사람.


영사기에서 필름 돌아가고 빛이 비가 보슬 내리는 허공으로 뿜어지고
하얀 영사막에 맺히고 (어떤 영화여도 상관없다.)
카메라, 그 빛을 따라 영사기 위의 두 사람으로 천천히 전진하면
서로에게 기댄 채 영화에 빠져드는 두 사람.

S# 53. 국도 (다른 날/낮)

시원하게 뚫려 있는 국도를 달리고 있는 네 대의 자전거.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파란 구름, 녹음이 좋다.
그 풍경과 네 명의 청춘이 잘 어울린다.
지환과 달래는 예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서로를 느끼고 있다.
지환, 달래를 보면 자신이 준 귀걸이를 하고 있지 않다.
지환, 기분이 쫌… 앞으로 박차고 나간다.
영훈도 이에 질세라 페달을 밟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뒤에 나란히 가는 달래와 지민.

지민 (앞에서 서로 앞서 나가려 경쟁하는 두 사람을 보고 툭.)


넌 누가 이겼으면 좋겠어?
달래 응?
지민 영훈이랑 지환이.
달래 음… (생각 중… 어렵다.) 뭐 그게 중요한가?
지민 … 오케이.
달래 ??? (뭔 소리지?)
지민 진짜 답답한데… 뭐 그게 니들 매력인 것 같아.
달래 ???

지민, 앞으로 차고 나간다. 뒤쳐진 달래도 힘내서 앞으로 가고


신나는 음악이 스피커가 터질 듯 뿜어져 나오며
자연을 신나게 질주하는 네 사람의 모습이 싱그럽다.

- 47 -
S# 54. 몽타주

음악 이어지며 지환, 달래, 영훈이 서로의 꿈을 좇는 모습이


빠른 커트로 보여진다.

# 지환 동네 - 수원천 근처 (새벽)
지환, 운동을 하고 있는데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계단을 두 손으로만 오르내리고 나무에 매달아 놓은 로프를 전속력으로 오를 때는
심장과 근육이 터질 것 같다.

# 영화사 - 회의실 (낮)


달래, 감독과 스텝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회의실로 무작정 들어간다.
모두 벙쪄서 쳐다보면

달래 … 저 감독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달래감독 (픽 웃으며 PD에게) 십만 원 내놔.
달래 (무슨 말인가) ……

# 대학교 - 태권도 연습실


영훈이 연습하는 모습.

# 지하철
자전거 스턴트 연습을 하는 지환, 계단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고
사람 많은 지하철을 자전거로 질주한다. (실생활에서의 연습)

# 영화사 - 회의실 (낮)

달래, 감독 앞에서 자신이 준비해 간 연기를 열연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긍정적이다.

S# 55. 액션 스쿨 (늦은 오후)

액션 배우들. 커다란 보드 판 앞에 모여 있고 지환,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그 사이에 앉는다.
보드 판에는 거리가 그려져 있고 자석으로 만든 모형 차들이 붙어 있다.

원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 설명하기 전에 지금 이 시간부터 술, 섹스 금지.


수면 하루에 여덟 시간 이상 그리구 부정 탈 만 한거 알아서 피해.

- 48 -
자신 없는 사람은 미리 빠지구….
자… 지금부터 머릿속으로 그려봐.
자. 여기 일 번차. 박상범. (모형차를 움직인다) 90킬로로 달린다.
2번차 트레일러 정철이 이쪽에서 60키로 차.
일번 차 달려오는 거 발견하고 좌측으로 급회전.
그 다음 자전거. 이지환. 일번 차를 옆에서 쫒는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거리유지 타이밍이야.

지환의 상기된 표정.

S# 56. 지환 집 - 옥탑 (새벽)

지환, 잠을 한 숨도 못 잔 얼굴로 옥탑 방 창문에서 나온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지환 (해를 보고 소리 지른다) 아… !! 난 할 수 있다!!!

S# 57. 달래 집 - 달래 방 (새벽)

달래, 결연한 표정으로 거울을 쳐다보며.

달래 달래야. 드디어 기회가 온 거야. 잘 할 수 있지?

S# 58. 추격 영화 촬영장 - 고속도로 (낮)

*추격씬은 무술 감독님과 상의. 상황이 달라질 것 입니다.


자전거 추격 씬 촬영이 있는 도심 도로의 전경이 보인다.
규모가 큰 촬영으로 여러 대의 카메라가 보이고 갖가지 촬영장 풍경이 보인다.
봉고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한 사람씩 나오는 무술 팀. 긴장된 표정이다.
차 안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지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다.

원진 떨리냐?
지환 (고개를 들고) 무슨 소리야. 재밌을 거 같아서 피가 거꾸로 솟는데.
원진 (무전기와 함께 이어폰을 끼워주며) 연습한 대로만 하자.
지환 오. 케이. (하며 폼 잡고 벌떡 일어나다 봉고에 머리를 부딪친다) 아……

- 49 -
S# 59. 달래 영화 촬영장 - 오픈 세트 (낮)

촬영 준비로 한창인 오픈 세트장.


구석에 쭈그려 앉아 대본을 앞에 둔 달래, 떨리는 듯 손톱을 물어뜯고
우황청심환을 먹는다.
지나가던 감독, 들고 있던 대본으로 살짝 머리를 치며

달래감독 자식 떨려?
달래 (힘차게) 네. 아… 아니요!!!

S# 60. 추격 영화 촬영장 - 고속도로 (낮)

카메라에 필름이 장전된다.


여러 대의 모니터에 불이 하나 둘씩 들어오고
한 사람씩 각자의 오토바이와 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인다.
지환, 자전거에 탄다.

S# 61. 달래 영화 촬영장 - 오픈 세트 (낮)

연기를 준비하는 달래의 얼굴에 카메라의 포커스가 맞추어 진다.


그 앞으로 커트의 시작을 알리는 슬레이트가 보인다.

달래감독 레디. 카메라. 사운드 앤 액션.


연출부 씬 삼십오에 커트 삼 테이크 원.

슬레이트가 내려오고

S# 62. 추격 영화 촬영장 - 고속도로 (낮)

슬레이트와 스타트 총소리와 맞물려 들리면 빠른 속도로 출발하는


지환의 자전거와 자동차들.
이어 여러 대의 차와 지환의 자전거가 굉음을 내며 동시에 출발한다.

S# 63. 달래 영화 촬영장 - 오픈 세트 (낮)

- 50 -
달래, 혼신을 다해 연기를 해보지만 감독의 “커트”소리와 함께.
신경질적인 "NG" 소리를 듣는다.
연달아 NG를 내는 달래,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S# 64. 추격 영화 촬영장 - 고속도로 (낮)

지환의 자전거, 쫓아오는 자동차를 따돌리려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360도 회전을 한다.
카메라, 자전거 위의 지환 모습을 생생히 잡는다.
자동차 하나가 지환의 자전거를 옆에서 들이받는다.
덜컹하는 지환의 자전거 비틀대다 다시 일어선다.
다시 패달을 힘껏 밟는 지환.

S# 65. 달래 영화 촬영장 - 오픈 세트 (낮)

달래의 연기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달래감독 (괜찮은 듯) 오케이! 자 다음 커트 쓰리.


달래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꾹 참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람이 없는 곳으로 뛰어가 길길이 날뛰며 좋아한다) 오케이. 오케이
(혼자서) 들었지? 감독님이 오케이라고 했단 말야. 오케이. 오케이.

조명 때문에 지붕에 있던 스텝이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있다.


달래, 으… 창피… 어쩔 줄 몰라 함.

S# 66. 추격 영화 촬영장 - 고속도로 (낮)

자전거 몸통이 흔들릴 정도로 빠르게 패달을 밟고 있는 지환.


옆에 오토바이가 따라 붙는다. 레이싱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온 신경을 모으고 운전을 하는 지환의 이어폰에 소리가 들린다.

원진 야. 이지환. 너무 빨라.

뒤에서 자동차 끼리 충돌을 한다.


급커브 길에 들어선 지환의 자전거, 땅에 거의 닿을 듯 회전을 하며 돌고
간신히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갈 만한 승용차 사이를
전속력으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 51 -
추격영화감독 (모니터의 화면을 보고 흥분한다) 좋아!!

지환의 이어폰으로 무술 감독의 소리가 들린다.

원진 자 지환아 마지막이야. 속도 좋아. 간다. 둘 셋. 스타트.

무술감독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형 트레일러가 출발하고 커다란 길을 막아서면


앞서가던 다른 한 대의 오토바이 굉음을 내며 멈추어 서지만
지환의 자전거는 멈추지 않고 미리 슬쩍 넘어져 스케이트를 타듯 미끄러져
트레일러 밑을 통과한다.
감독의 오케이 사인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스텝들.
지환의 부상이 염려스러워 달려가면 누워 있는 지환.
원진, 지환의 모자를 벗기면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며 일어서는 지환.
환호성이 터진다.

추격영화감독 괜찮아?
지환 네!! (하며 백덤블링까지 넘어 보인다)
추격영화감독 자. 박수!!!

사람들 지환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지환, 입이 찢어진다.

-사이- (촬영장 근처.)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있는 지환의 얼굴, 행복 그 자체이다.
날아갈 것 같다. 달래에게 핸드폰을 걸어 보지만 받지 않는다.
입이 근질거린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지환.

지환 아부지? 아들! 아부지 나 해냈어!!!


아부지 아들이 오늘 한 건 했다구!!!

하는데 사거리에서 정신을 놓고 있는 지환을 트럭이 그대로 받아버린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 참고)

S# 67. 달래 영화 촬영장 - 오픈 세트 (낮)

기분이 좋은 달래, 촬영장을 돌며 스텝들의 일을 도와주는데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진동이 울린다.
메시지를 확인하자, 갑자기 얼굴이 흙빛이 되는 달래.

- 52 -
S# 68. 거리 (오후)

정신이 나가있는 달래, 택시가 서지 않자 있는 힘을 다해 뛴다.

S# 69. 병원 - 응급실 (오후)

응급실 안. 많은 환자들이 보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의사들.


병상 위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지환.
그런데 지환의 얼굴이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다.
창호와 무술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창호 (눈물을 글썽이며) 자식. 지금 웃으라는 거야. 울라는 거야.

지환, 계속 웃고 있고 달래,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온다.


달래, 병상 위 지환을 본다.

달래 지환이… 괜찮은 거죠? (넋 나간 사람처럼 지환에게 간다)


어? 지환이… 지환아. (손을 잡고 흔든다) 지환아……
창호 (와서 달래의 어깨를 감싸주며) 괜찮을 거야. 쟤 얼굴 봐라.
달래 (웃고 있는 지환을 본다. 눈물을 참으며 픽 웃는다)
맞아요. 지환인 한 번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두 꼭 지키는 애거든요.
나랑요. 늙어서 머리 하얘질때까지
맨날 싸우구 챙겨주구 그러기로 했거든요.
지환이는요. 약속은 꼭 지키거든요…….

-사이- (밤)
지민이 지환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 뒤 영훈과 달래.

달래 (감정을 꾹 참고 있는 것이 보인다) 걱정 하지 마.
지환이 금방 일어날 거야.
영훈 알아. 저 자식 오뚝이잖아.

영훈, 달래의 지환을 향한 간절한 눈빛을 본다.

S# 70. 산 속 - 산길 (오후)

길이 보이지 않는 산 속. 흐린 날씨로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산속을 헤매고 있는 달래, 길을 잃은 것 같다. 사방이 흔들리는 나무뿐이다.

- 53 -
이때 어디선가 작은 종소리도 들리고 무엇이 부딪히는 투명한 소리가
작게 들린다.
그 곳으로 발을 천천히 옮기는 달래, 바람이 더 세게 불고 발걸음을
옮길수록 무엇이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어렸을 때 매달아 놓았던 유리병이며 작은 종 들이 부딪혀 내는 소리다.
달래,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기 시작한다.
가서 보면 바로 지환이 뿌삐를 묻어준 곳.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의 장소가 지금은 보리수나무의 숲이 되어 있다.
온통 빨간색을 닮은 주황색과 푸른색이다.
거기에 어렸을 때 나무에 매달아 놓았던 갖가지 동심(童心)들이
아직도 매달려 있다.

달래 …… 찾았다.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사이- (석양)
감회에 젖은 달래, 천천히 지고 있는 해를 향해 앉아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달래 저 기억하세요?
해 .....

해와 달래의 대화를 마치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쇼트를 나눈다.

달래 옛날에 지환이랑 여기 같이 왔었는데… 지환이 아시죠.


해 ……
달래 지환이한테 사과할 게 있어서요. 제가 한 자존심 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말 못하겠어요.
지환이 자식 쫌만 틈을 보이면 막 기어오르거든요.
그러니까 지나가다 우연히 들은 것처럼 지환이한테 전해주세요.
해 ……
달래 (낮은 목소리로) 지환아. 미안해. 말로만 친구라서 미안해.
잘 해줘야지 하면서 맨날 구박만 해서 미안해.
남자 친구 만난다고 너 피한 거 미안해.
해 ……
달래 고마워. 나 같이 성질 더러운 애랑 친구해줘서,
맨날 나 재밌게 해줘서 고마워.
지환이 니가 내 친구여서 고마워…
(일어서서) 저요 솔직히 미신 같은 거 믿지 않는데요.
…… 지환이. 다시 일어 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주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부탁드립니다.

- 54 -
S# 71. 병원 - 병실 (새벽)

창호, 혼자 병실 안에서 잠들어 있다.


새벽의 푸른빛이 병실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후 지환의 아랫도리 동생이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기지개를 펴는 듯하더니 동생이 벌떡 일어난다.
잠시 후 목을 꿈틀거리더니 “끙” 소리를 내며 눈을 뜨는 지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은 얼굴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갑자기 어딘가 심한 통증을 느끼는 지환, 통증을 느끼는 곳으로
손을 가져가 본다. 다리다. 그런데 다리 한쪽이 허전하다.
지환, 모포를 뒤집으면 왼쪽 다리 아래쪽이 없다.
멍하니 없어진 다리 쪽을 보는 지환,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
지환의 소리에 잠이 깬 창호, 지환과 눈이 마주친다.

지환 (넋이 나가) 아부지…… 내 다리. 내 다리 아부지가 먹었어?


창호 …… (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터질 것 같지만 꾹 참고 티내지 않으며)
미안하다.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Dissolve)

S# 72. 병원 - 잔디 벤치 (다른 날 낮)

달래, 지환을 찾고 있다.


목발을 옆에 놓고 잔디밭 벤치에 앉아있는 지환,
그 앞에 지민이 서있다.

지환 (화가 나 욕을 한다.) 씨발 좀 가란 말야.


너 왜 그래. 오지 말라는데 싫다는데 왜 지랄이야.
사람 미치는 거 보고 싶어!!!
지민 (말도 못하고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지환에 눈물이 맺힌다.
발걸음을 옮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달래와 마주치고 스치는 두 사람.)

벤치에 앉아 있는 지환의 뒷모습, 잘린 다리의 병원 복이


바람에 쓸쓸히 흔들린다. 천천히 다가가는 달래.
지환의 깎지 않은 수염으로 시간의 경과를 알 수 있다.

달래 소리 지르고 싶음 나한테 질러. 난 괜찮아...


지환 (쳐다보지 않는다.) 달래야. 나 혼자 있고 싶거든.
달래 …… 그래 …. (지환의 옆에 비디오테이프와 편지 봉투를 놓는다)
내 핸드폰 번호 말해 봐.

- 55 -
지환 ……
달래 언제든지 전화해.
지환 …… (Dissolve)

S# 73. 병원 - 병실 (다른 날 낮)

퇴원 준비를 하는 어두운 표정의 지환, 의족을 하고 목발을 짚은 채


창호와 함께 병원 문을 나선다.

S# 74. 달래 집 - 아버지 방 (밤)

아버지와 달래, 얼굴을 마주하고 누워있다.


달래가 가위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잘라준다.
아버지,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눈만은 그윽하게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 있다.

달래 … 아빠. 나 말야……. 솔직히 아빠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근데 말야. 만약에 아빠가 없다면 어떨까 생각하니까
으아… 막 살기 싫어지는 거 있지. 정이 무섭긴 무서워 응?
…… 이거 아빠한테 말 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
아빠가 나 때려줬으면 좋겠는데… 맞은 것 보다 더 아프니까.
아빠 그냥 용서해주라. (아버지 살짝 웃어주신다)
…… 아빠 지환이 알지 개구쟁이… 지환이가 너무 힘들어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지환이는 내가 힘들 때마다 도와주고 그랬는데,
나도 뭔가 해주고 싶은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거 같아서 너무 싫어.
아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달래아빠 (얼굴에 힘껏 힘을 줘 웃는다)
달래 …… 웃어 주라구? 맞다. 나까지 우울해하면 지환이가 더 힘들겠다. 그치?

S# 75. 달래 집 - 달래 방 (새벽)

달래, 거울을 보고 열심히 웃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주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습하고 있다.
그 모습 묘하다. 마음이 아프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습하는 달래.
얼굴의 뉘앙스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 56 -
S# 76. 지환 집 - 옥탑 방 앞 (아침)

지환의 집 앞에 서서 웃는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는 달래,


방문 앞에 지환의 신발이 없음을 발견하고 문을 열면
창호, 놀라서 깨고 지환이 떠난 것을 알게 된다.

S# 77. 거리 (아침)

배낭을 짊어 멘 지환, 목발을 집고 아주 힘들게 발을 움직여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데 그 눈은 어디로 가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정신이라곤 없는 사람 같다.

S# 78. 몽타주

지환의 방황하는 모습이 보여 진다.

# 태백
1. 술에 취해 술자리 사람들과 괜히 시비 걸고 싸움을 벌이는 지환.

2. 걷다가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지환,


화가 나 소리를 지르며 목발을 바닥에 부러뜨리고도 화를 삭이지 못하는 지환.

3. 허름한 여인숙 안.
술병과 구토를 하여 쏟은 음식물과 온몸을 모두 가린 이불이 보인다.
초췌한 얼굴로 일어나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고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지환.

S# 79. 호프집 (밤)

영훈과 달래가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꽤 취한 달래, 전에 지환이 한 것처럼 강냉이를 툭툭 치며 입으로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눈에 맞고 코에 맞고 하나도 안 들어간다.

영훈 그만해……. (달래, 계속한다) 갈수록 너란 애 잘 모르겠다.


달래 … 맞아.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한 잔 해.

- 57 -
(술을 마시고는 지환이 한 것처럼 코로 휘파람 소리를 낸다)
히힛… 이제 이거 되네….

S# 80. 태백 - 여관 (오후)

초췌한 모습의 지환,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달래가 준


편지와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망설이던 지환, 다시 집어넣으려다 테이프를 VTR 속으로 집어넣는다.
지환, 바닥에 앉아 티브이를 본다.
달래가 준 비디오테이프의 영상이 흘러나온다.

화면 속에 팔 한쪽이 없는 투창 국가 대표 선수가 등장한다.


이어 의족을 한 채 100M를 전력 질주하는 장애인 육상 선수가 보인다.
잘린 팔로 킥 복싱을 하고 있는 선수가 보인다.
잘린 두 팔로 투병중인 아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팔이 마비된 채 발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모두 당당한 얼굴들이고 실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환을 향해 웃어주고 희망의 말들을 건넨다.
힘내라고 장애가 절망이 아니라고...
지환의 감정 변화와 비디오 화면이 교차되어 보여 진다.
지환,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처럼 소리 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Fade Out)

S# 81. 거리 (겨울/낮)

이제는 겨울의 정취가 완연한 거리.


지환이 커다란 배낭에 목발을 집고 절뚝거리며 어디론가 열심히 걷고 있다.
거리 전광판의 시계를 본다.
아주 급한 일인 듯 차까지 막 세우며 뛰듯이 걸어간다.

S# 82. 영화사 - 사장실 (낮)

영화사 안으로 들어서는 지환.


지환, 영화사 사장과 마주하고 앉아 있다.

영화사사장 (시나리오 뭉치를 뒤적이며) “내 친구 진달래”

- 58 -
이거 정말 그 쪽이 쓴 거예요?
지환 네.
영화사사장 (시나리오를 넘기며. 손으로 쓴 것을 복사한 것이다.)
이렇게 손으로 쓴 시나리오는 정말 오래간만이네...
내가 그쪽 부른 건 칭찬하려는 게 아니라.
지문이 산만해요 대사도 좀 그렇고……
뭐. 아직 어리구 처음이라니까 이해하구요…
나한테 넘겨요 우리가 작가 붙여서 고쳐볼 테니까.
지환 ……
영화사사장 (전화를 들고) 김 팀장. 준비한 계약서 좀 가져와.
지환 … 저. 계약 할 수 없습니다.
영화사사장 예?
지환 이 시나리오는 고칠 수 없습니다.
이건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S# 83. 거리 - 가전가게 앞 (낮)

원고 뭉치를 들고 힘없이 걷던 지환.


전자제품 가게의 쇼 윈도우에 멈추어서면 달래가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 모습(설원속의 달래)이 보인다.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지환.
사람들 몇 명이 지환 옆에서 구경하고 있다.
달래의 모습이 TV를 통해 나오고 있다. 편안한 미소를 짓는 지환.

지환 예쁘죠? 제 친구 달래에요……
자식 이젠 안 떠나 보네. (지환, 무엇인가를 보고 울컥한다)

TV 안에서 달래의 클로즈업이 보이는데


달래가 지환이 선물해 주었던 귀걸이를 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지환에게 “너 보고 있지?”라는 듯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는 달래.
진짜 예쁘다.
그 모습에서 카메라, 천천히 빠지면 지환은 없다.

S# 84. 번화가 - 거리 (청담동/늦은 오후)

달래와 영훈, 약간은 서먹한 기운으로 걷고 있다.


달래는 웃음기가 없다.

영훈 너 웃는 거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아.

- 59 -
달래 (딴 생각하다가) 응?
영훈 맨날 딴 생각이구.
달래 아... 미안...
영훈 맨날 미안하다구 하구...
달래 .....
영훈 (마음 좋게 웃으며) 이해해. 니 마음... 한 백번쯤.

S# 85. 번화가 - 레스토랑 (늦은 오후)

달래가 영훈과 함께 들어온다.


음식값이 꽤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달래 야. 뭐야. 나 이런데 싫어. 가자.


영훈 (깊게 쳐다보며) 오늘은 그냥 내 말 들어라. 나한테 미안하다며
달래 ... 그럼. 제일 싼 거 먹는다.
영훈 (웨이터에게) 문영훈으로 예약했습니다.

# 레스토랑 룸 안
달래, 룸 안으로 들어서면 촛불이 켜진 생일 케잌을 들고 지환이 서있다.
달래, 표정이 굳는다.

지환 ... 달래야 생일 축하해.

순간 자신에게 연락도 없이 몇 개월을 사라졌던 지환에게 화가 난다.


지환의 따귀를 때린 후 몸을 돌려 나가버리는 달래.

영훈 (어떻게 해야 하나) 후... 이해해라. 달래 니 걱정 많이 했어.


지환 따라 가봐.
영훈 나까지 맞으라구? 지금은 그냥 두자.

-사이-
룸 안에 앉아있는 지환과 영훈.

영훈 이제 어쩔 거야?
지환 ..... 정리가 잘 안돼. 좀 더 돌아다녀 볼라구
영훈 연락은 좀 하자.
지환 노력할께. (일어나며) 나 화장실 좀.
영훈 그래...

지환이 나간 후 지환 배낭 옆에 끼워져 있는 시나리오를 발견한다.

- 60 -
꺼내어 보는 영훈.

-사이-
인기척이 나자 얼른 시나리오를 감추는 영훈.

S# 86. 달래 집 - 달래 방 (저녁)

달래, 방 안에서 거울과 말을 하고 있다.

거울 속 달래 달래야. 그냥 몇 대 때리고 말지
너 답지 않게 그렇게 화를 내면 어떻게 해.
지환이 힘든 거 알잖아.
달래 씨… 갑자기 보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화부터 나는 걸 어떻게 해.
거울 속 달래 솔직히 너 반갑잖아. 지환이 와서 좋잖아.
그러다가 더 멀어지면 어떻게 할래?

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쏜살 같이 받는 달래.


지환을 기대했지만 영훈이다.

달래 (실망) 어... 영훈아.

S# 87. 달래 집 앞 (저녁)

문 앞에 영훈과 달래.

영훈 (예쁜 포장지에 싼 선물) 생일 선물.


달래 ... 고마워. 그리구 오늘 미안해...
영훈 (한참 쳐다본다) 이거 ...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긴 연애편지야.
달래 응????
영훈 간다. (하고 뛰어간다.)

S# 88. 달래 집 - 달래 방 (밤)

달래, 영훈이 준 선물의 예쁜 포장지를 벗기면 지환이 쓴 시나리오.


제목은 “내 친구 진달래”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이지환”이라고 써있다.
첫 장을 넘기면 “이 영화를 내 부랄 친구 진달래에게 바칩니다.”

- 61 -
달래. “풋…”
다시 시나리오를 넘기면 시나리오의 영상과 현재가 교차 되면서 보여 진다.

자막 “첫 만남. 아이스 케잌”

시나리오 영상

# 초등학교 - 수원천 (늦여름/낮)


지저분한 얼굴에 상처투성인 어린 지환이 홀로 걷고 있다.
그런 지환을 피하듯 지나가는 아이들.
배경으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끼리끼리 물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가운데에 달래도 있다.
삼삼오오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홀로 수원천을 걷고 있는 어린 지환.

지환(NA) 열 살 무렵 난, 잘하는 것이라고는 싸움 밖에 없는


왕따 였습니다. 참고로 아이에게 친구가 없다는 건, 칠 대 팔 미팅에서
혼자 폭탄이 된 다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 쉰 김치에
소주 나발 불 때랑 기분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어떤 애가 말을 걸었습니다.

물놀이를 하고 있던 어린 달래가 지환에게 말을 건다.

어린달래 (젖은 머리와 몸으로) 야. 같이 놀래? (웃으며)

지환(NA) 바로 제 친구 진달랩니다.
세상에 치마가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애는
처음 봤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예쁘고 환한 웃음을 가졌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난,

어린 지환, 천천히 달래 앞으로 간다. 치마를 들치며 “아이스 케잌!!”한다.


어린 달래는 남자용 하얀 면 팬티를 입고 있다.

지환(NA) 했습니다.

치마를 들추는 순간, 하늘의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time lapse 촬영)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아저씨도,
물놀이 하던 아이들도, 물방울도, 지나가던 개와 닭들도,
날아다니던 잠자리와 떨어지는 나뭇잎도 모두 멈춘다.

- 62 -
잠시 후, 멈춰 있던 나뭇잎이 스르르 하고 떨어지는 순간,
다시 정상 속도로 움직이는 배경들

지환(NA) 그 때 처음 봤습니다. 하얀색 남자 팬티를 입은 여자아이를.

어린달래 (웃으며) 바보야. 그럴 땐 아이스 케키라고 하는 거야.


어린지환 … 우리 동네에선 그렇게 해.
어린달래 니네 동네가 어딘데.
어린지환 …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어린달래 나도 거기 사는데. 아이스 케키라고 해.

지환이 혼자 고독하게 걸어오던 그 길을 흠뻑 젖은 두 아이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젖은 발로 함께 걸어간다.

지환(NA) 전 아직도 왜 아이스 케익이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치마가 무지하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아이를 만난 때가
1993년 8월 23일, 해가 '쨍' 이었고,
집에 가는 길에 심장이 마구 뛰는 바람에
내 가슴 속에 개구리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기억뿐입니다.

지환이의 그림일기 속에 두 사람이 걷고 있는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고,


그림 아래쪽에 개구리가 조악하게 그려져 있다.
일기에다 "내 칭구 진달래"라고 쓰는 어린 지환이의 글자 위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현재-
책상에 앉아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 달래. 픽 웃으며 회상에 젖어 페이지를 넘긴다.

자막(지환의 그림일기 글씨) “내 친구 진달래”

시나리오 영상

# 골목길 (밤)
어린 지환이 주위를 살피며 벽에 낙서를 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어린 지환, 골목으로 숨으면
파란 우비의 남자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어린 아이의 글씨를 흉내 내며 달래와 지환이 좋아한다고 벽에 낙서를 하고 있다.
다 쓰고는 아이처럼 씩 웃는 사람을 보면 바로 지환의 아버지 창호이다.
멀리서 누군가 나타나고 창호 황급히 사라지면 달래가 나타나 낙서를 발견하고
어린 지환, 우연히 나타난 듯 달래에게 다가가 함께 낙서를 지운다.

- 63 -
지환(NA) 오늘도 열심히 낙서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울 아버지입니다.
이상하게 아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어쨌든 아버지 덕분에 제 마음이 들키지 않은 건 정말 잘된 일입니다.
그랬다면 달래랑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요.

-현재-
엎드려서 시나리오를 보고 있는 달래. 뒤돌아 누우면서 시나리오(그림일기장)를
가슴에 품는다. 천장의 벽지 무늬를 바라보면,

자막(달래방 벽지 패턴 위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시나리오 영상

1. 지환, 혼자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잔 안에 달래의 얼굴이 떠오른다.


술집 주인을 보면 달래로 변해있다. 손님들도 모두 달래다.

2. 사랑에 빠진 어떤 여자 혼자 좋아 웃으며 거리를 걷고 있다.


빨간 불인 줄도 모르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기다리던 사람들 따라 걷다가
횡단보도가 아수라장이 된다.

3. 상사에게 큰소리로 혼쭐이 나고 있는 남자 직원, 얼굴엔 미소를 띠며


자기 손가락의 반지를 매만지고 있다.

지환(NA)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고작 사랑 타령이냐?


사실 세상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어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불면증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에 하루 종일 실실 웃어대는 바람에
정신병자로 오해 받기도 하고 질투와 실연의 아픔을 겪어야 하며
“넌 아직도 사랑을 믿니?”라는 가시 돋친 말도 듣게 됩니다.
하지만 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좋은 점을 한 만개쯤 알고 있습니다.

-현재-
달래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 달래의 뒷모습)

이 부분은 지환과 달래, 그리고 일반인 배우들을 모집.


지환과 달래, 일반인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촬영 팀과 연출팀이 직접 거리로 나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찍습니다.
나레이션은 거기에 맞게 쓰겠습니다.

- 64 -
지환(NA) 하나, 받는 것 보다 주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환이 달래에게 귀걸이를 사주며 즐거워하는 모습.

지환(NA) 친구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고마워.

지환(NA) 둘, 나쁜 것 보다는 좋은 것이 먼저 보입니다.

지환과 달래의 즐거웠던 한 때.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일반인들의 행복한 모습들

-현재-
달래 (달래, 아주 천천히 감동하기 시작한다)

지환(NA) 친구야. 항상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내 친구여서 고마워.

달래 (훌쩍거리며) 또라이.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누가 보냐?

S# 89. 달래 집 근처 - 골목길 (밤/비,눈)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골목길.


달래와 어머니, 서로의 우산을 쓰고 걷고 있다.
달래, 생각에 잠겨 멍해있다.

달래 … 엄마 ……. 지환이가 나 좋아하나봐.


달래엄마 바보야. 그걸 이제 알았니?
달래 …… 지환이 보고 싶어.
달래엄마 달래야. (못 듣는 달래) 달래야!
달래 응?
달래엄마 너한테 지환이는 어떤 사람이니?
달래 …….

이때 두 사람 앞으로 우산 하나를 같이 쓴 연인이 지나가면


달래가 멈춰 서서 몸을 돌려 바라본다.
따라서 보는 달래의 어머니.
남자는 여자친구가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우산을 여자 쪽으로 하고
자기는 비를 흠뻑 맞고 있다.

- 65 -
달래 … 우산. 지환이는 나한테 우산 같은 사람이야.

남자는 우산을 여자 쪽으로 하고 계속 비를 맞고 있는데


비가 서서히 눈으로 변한다. (Dissolve)

S# 90. 달래 집 - 달래 방 (늦은 밤, 새벽/눈)

책상 앞에 사진들이 보인다.
S#4에서 보여 졌던 낙서한 사진들이다.
달래, 하얀 손수건에 물을 조금 묻혀 사진의 낙서를 조심스럽게 지우고 있다.
약간씩 번지며 장난스런 낙서가 지워지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달래와 같이 찍었던 지환의 얼굴이 보여 진다.
물에 얼굴이 번질까 아주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달래.
초등학교 졸업식 사진. 중학교 수학여행 사진. 놀이동산에서 찍은 사진.
그동안 달래와 함께 했던 지환과의 시간들이 천천히 보여 진다.
달래의 얼굴에 그리움이 깊어진다.
낙서를 지우는 달래의 모습이 오랫동안 보여 지면 어느새 새벽이 찾아오고
책상 앞은 달래와 지환이 찍은 사진들로 가득 찬다.
창가로 불어온 새벽바람에 사진들이 조금씩 들썩거리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달래.

S# 91. 달래 집 - 방 문 앞 (새벽/눈)

잠이 오지 않는 달래, 방문을 열고나서면


주변을 응시하다가 발밑에 무언가를 발견한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진하게 찍혀있다.
그리고 모래...

# 방 문 앞 (이른 새벽)
달래의 방 문 앞에 서있는 누군가의 발.
그의 다리는 달래의 방문을 향하고 있다. 지환이다.
다리를 강화하기 위해 매단 모래주머니가 터져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 방 문 앞 (현재)
지환이 오랫동안 있다가 간 것을 느끼는 달래.

# 방 문 앞 (이른 새벽)
지환의 다리 방향을 바꿔 떠나면 지환의 움직임에 따라 눈에 발자국이

- 66 -
생기고 모래 자국이 생긴다.

# 동네 - 길 (현재)

달래 지환아…. (눈 발자국과 모래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달래, 걸음이 빨라진다. 그렇지만 오래 가지 않아 발자국이 끊긴다.


달래,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다.

S# 92. 지환과 달래 동네 - 버스 종점 앞 (이른 아침)

아침 일찍 산에 오르려는 등산객 몇 명이 보이고


첫 차를 기다리고 있는 지환이 의자에 앉아 의족이 있는 바지 쪽을 걷고
모래주머니를 풀고 있다. 옆의 여자가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다.

지환 좀 징그럽죠? (모래주머니가 터져있다) 이 자식이 또 터졌네.


좋은 점두 많아요. 군대 안가니까 남들보다 2년 벌었죠?
무좀 걸릴 염려도 없구. 거기다 이렇게 시선 집중이잖아요.
(차에 타던 사람들이 모두 의족의 지환을 본다)

# 버스 안
첫차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타는 지환의 시선이 자꾸 산 쪽을 향한다.
차가 출발하고 멀어지는 종점을 바라보던 지환, 주머니에서
달래가 비디오테이프와 함께 주었던 편지를 꺼낸다.
한참을 망설이다 편지 봉투를 뜯는 지환,
편지지를 꺼내 보면,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 자국만 남아있고
아무 글도 써있지 않은 백지다.
가만히 편지를 바라보는 지환, 달래의 마음을 느낀다.
그리움이 밀려드는 지환.

지환 (혼잣말) ……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죽을 것 같다.

S# 93. 달래 집 근처 (아침)

달래,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간다.

S# 94. 버스 정류장 - 도로 (아침)

- 67 -
버스가 멈추고 지환, 내려 천천히 절뚝거리며 뛰기 시작한다.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다리가 아파 얼굴이 찡그려지지만
달래를 보고 싶은 지환의 마음은 그걸 잊게 한다.

S# 95. 달래의 집 근처 - 등산로 (아침)

사람들이 한명 두 명 산으로 오르기 위해 지나가고


달래,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발을 옮긴다.

S# 96. 지환 동네 - 수원천 (아침)

조금씩 뒤뚱거리던 지환,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로 사력을 다해 달리면


거의 정상인처럼 뛰기 시작한다.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S# 97. 지환 동네 - 수원천 (아침)

달래도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뛰어가다 걸음을 멈춘 달래, 순간 눈물이 핑 돈다.

달래 …… 지환아 ….

보면 지환이 뛰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환과의 거리가 20미터 정도 남았을까 지환도 달래를 발견하는데
· 달래 소리친다.

달래 (양손으로 멈추라는 시늉을 하고)


그만! 더 이상 오지 마! 더 이상 오지 말란 말야. 그냥 거기 서있어.
지환 (당황해서 멈추어 서는 지환) ……
달래 …… 이제 내가 …… 너한테 갈 거야. 내가 너한테 간다구 ….

천천히 걸어서 지환의 앞에 서는 달래.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

달래 이 나쁜 놈…… 심심해 죽는 줄 알았단 말야.


지환 … 나두.

- 68 -
지환, 달래의 앞으로 주먹을 내밀면 그들만의 인사를 아주 천천히 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인사의 마지막 포옹. 두 사람 떨어질 줄 모른다.
산등성이로 해가 떠오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카메라, 아주 천천히 뒤로 빠진다.
카메라, 천천히 올라가면 등산객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키스를 하고 있는 지환과 달래. 천천히 페이드아웃.

S# 98. 번화가 - 카페/바 (밤)

화면 밝아지면 바(BAR) 위에 술을 놓고 앉아있는 영훈과 지민.


두 사람 다 얼큰하게 취해있다.

지민 (혀가 꼬여서) 영훈아. 우리 두 사람한테 이용당한 거지? 그지?


영훈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야 지민!!!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
이럴수록 더 쿨하게… 응? … 우리 축복해주자.
지민 후… 그래야겠지? 쿨하게….
영훈 (갑자기) 아이 씨… 근데 지환이 아버지는 왜 내 돈 삼만 원 안 갚는 거
야?
지민 풋... (웃음, 술에 취해 어깨를 감싸며)
하 하. 너 몰랐는데 되게 재밌구나.

두 사람, 서로를 쳐다보며 이상한 눈빛. 잘될 것 같은 …

S# 98.5 지환 동네 - 골목 (밤)

어디론가 떠날 듯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 창호.


예전에 낙서했던 골목길 벽에 커다랗게 무언가를 쓰고 휙 돌아 걸어간다.
창호가 빠져나간 골목에 ‘축, 달래지환 커플’이라는 커다란 낙서만 남아 있다.

S# 99. 엔딩 촬영장 (오후)

화면 밝아지면 분주하게 움직이는 촬영장.


촬영장 옆 구석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떨리는 듯
대본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달래.

- 69 -
먹으려하던 우황청심환을 쳐다보다가 이를 악물고 힘껏 던져 버린다.

달래(NA) 제 꿈은 고두심 같은 진정한 연기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오늘도 떨려서 죽을 것 같습니다. 인정합니다. 저 끼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무엇이든 이뤄주는 마법의 주문이 있습니다.
그… 주문은 바로 파이팅!!! 입니다.

달래, 귀엽고 활기차게 화이팅!!!

-사이-

엔딩감독 야! 연출부. 연출부 어디 갔어!!

약간 뒤뚱이며 뛰어오는 지환의 얼굴이 활기차다.

지환 예. 감독님.
엔딩감독 보조 출연자들 미리 연습시켜야 될 거 아냐? 시간 없어.
지환 (크게) 예!!! 저 감독님…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며)
제가 상황을 좀 바꿔봤는데요 ….
엔딩감독 … 줘봐. (본다. 나쁘지 않다) 한번 시켜봐. 좋으면 쓰고
지환 (신이 나서 죽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들을 데리고 열심히 오버하듯이 지도하는 지환, 모습이 보기 좋다.

지환(NA) 제 꿈은 성룡 같은 액션 배우가 되는 겁니다.


압니다. 제 다리로는 액션 배우가 될 수 없다는 걸.
전 다리 하나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됐습니다.
세상엔 성룡 영화 말구도 좋은 영화가 무지 무지 많다는 거죠.

S# 100. 산 속 - 산길 (오후)

지환과 달래, 숲에서 헤매고 있다.


다시 옛날처럼 티격태격한다.

지환 (신경질) 잘 좀 기억해 봐. 어느 쪽이야.


달래 야. 이 또라이. 왜 나한테 그래? 이상하네. 분명히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지환 표시라두 해두지, 지금 이게 몇 시간째냐구. 아 진짜….
달래 (화났다) 됐어. 그만 내려가. (내려간다)
지환 화났어?

- 70 -
달래 몰라.
지환 (헤 웃으며) 미안해… 힘들지. 자 업혀.
달래 (금방 풀려서) 됐어. 너 다리 아프잖아.
지환 괜찮아… (달래를 업어준다)

말없이 산길을 가는 달래와 지환. 카메라 천천히 숲 위로 올라간다.

달래 야. 너 어딜 만져!!
지환 아. 미안. 미안.
달래 너 자꾸 그러면 죽어!!

나무 위로 완전히 올라간 카메라, 더 높이 올라가서 보면


달래와 지환이 헤매던 숲의 아주 가까운 곳에 보리수나무 숲이 있다.
주황색의 예쁜 열매를 달고 있는 보리수나무들이 바람에 춤을 추며
“탁 탁” 소리를 내고 있고, 지환과 달래의 동심(매달아 놓은 것)들이 반짝인다.
파랑새 한 마리가 날고 있는데 아주 작아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있다.

- THE END -

*다시 보니 아직 고쳐야 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콘티 작업과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할 것이며 촬영 5분전 까지 고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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