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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깡패같은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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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차역 / 새벽
저만치 보이는 옅은 안개 속의 새벽녘의 바닷가. 그리고 그 옆의 어촌 풍경. 그
한쪽에 플랫폼이 보이고 조그마한 역사가 위치해 있다.
개찰구에서는 역무원이 표를 팔고 있고, 장에 가는지 보따리를 든 촌로들 한 둘
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중생 몇 명이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플랫폼 위에는 역무원 한 명이 무전기를
들고 서 있고, 그 옆 의자에는 세진이 짐가방 두 개를 옆에 놓고 벤치에 앉아있
다.

세진 아빠 갈게요.
세진부 그려. (하는데 얼굴 표정이 어둡다)
세진 왜요 또.
세진부 나는 아직도 네가 서울에 가는 게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세진 어렵게 겨우 취직했더니 무슨 말이에요.
다른 부모들은 닫힌 문도 열어줄려고 하는데, 아빠는 열린 문도 닫으려고 하네?
세진부 누가 문을 닫는다고 그랴? 걱정되니까 그러지.
세진 아빠도 참. 내 나이가 몇 인데.
세진부 남자 조심햐. 괜히 엄한 놈 만나지 말고.
세진 (핏 웃는)

그때,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온다. 세진 고개를 돌려 기차를 바라본


다. 이윽고 안개를 뚫고 나타나는 새벽 기차. 세진의 짐가방을 집어드는 세진부.
기차가 그들의 모습을 가린다.

CUT TO : 시간 경과
기차의 문이 서서히 닫힌다. 기차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세진과 세진부. 세진부
문이 다 닫혔는지 보는데 세진이 세진부를 부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세진부에
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세진부가 세진을 보는데,

세진부 뭐라고?

세진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인다. 세진부 민망한 듯 시선을 외면한다.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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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세진. 기차가 움직이고 세진부의 모습이 멀어져 간다. 이제 역사는 안개 속
으로 사라져 간다.

2. 한강 철교 / D
창밖으로 서울의 강변 풍경이 펼쳐진다.

세진(N) 나는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3. 세진의 회사 / 사무실 / D
새로 나온 명함통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보는 세진. 한세진 이름이 새겨진 명함.

세진(N) 직장에서 새 명함을 받고,

CUT TO
회의 중에 발표를 하고 있는 세진.

세진(N) 새 일을 시작하고,

CUT TO
직원들과 모여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세진. 누군가 농담을 한 듯 사람들이 와
하하 웃는다.
그때 세진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빨개진다.

세진(N) 새 사람들을 만나고,

CUT TO
운전을 하고 있는 경준. 경준 뭐라 계속해서 세진에게 얘기를 하고, 세진 웃으며
그런 경준을 본다.

세진(N) 새로운 사랑을 하면서,

CUT TO
세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노호혼이 햇빛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

세진(N) 나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인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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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거리 / D
출근길의 직장인들. 그 속의 두터운 겨울 점퍼를 입은 세진. 눈이 내리고 있다.

5. 세진의 회사 / 엘리베이터 앞 / D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진이 내린다.

6. 세진의 회사 / 사무실 / D
세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다른 직원들은 모두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세진 무슨 일이에요?
직원 부도래.
세진 부도요?

놀란 세진의 얼굴 위로 화면 어두워진다.

『내 깡패같은 애인』

7. 언덕길 / D
화면 다시 밝아지면, 언덕길을 오르는 이삿짐 차.
이삿짐센터 직원 둘의 옆 자리에 앉아있는 세진. 세진의 시야로 보이는 언덕길의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과 그에 대비되는 파란 하늘. 라디오에서는 손담비의 “토
요일밤에”가 흘러나오고 있다. 트럭이 연립 앞에 멈춰 선다.

8. 세진의 방 / D
불이 켜진다. 방안을 둘러보는 세진. 허름한 반지하방. 인부 중 한 명이 계단을
내려온다. 그 남자는 머리를 빡빡 깎고 있다.

세진 이 방이에요.
인부 반지하네? 반지하면 반지하라고 말을 했어야지요.
세진 예?
인부 계단 있으면 돈 더 줘야 돼요.
세진 얼마나 더 드려야 되는데요?
인부 이만원 더 줘요.
세진 그런 게 어딨어요? 계단이 몇 개나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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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부 몇 개든 계단 있으면 더 줘야 된다니까요.
아무튼 원칙이 그래요. 싫음 혼자 옮기든가.
세진 (어처구니가 없다) 알았어요. 놓고 가요.
인부 ?
세진 내가 옮길 테니까 내려 놓구 가라구요.
인부 그러시든지.

9. 연립 복도 / D
계단을 내려오는데 몸이 뒤뚱하며 수납함이 쓰러진다. 꽈당 소리와 함께 좌르르
바닥에 쓰러지는 물건들. 세진 얼른 물건들을 수납함에 주워 담는다.
옆집의 문이 덜컹 열린다. 그 바람에 세진이 문에 부딪혀 뒤로 벌렁 넘어진다. 문
을 나오는 한 남자. 동철이다. 동철, 뭐냐는 얼굴로 세진을 보는데, 세진이 노트,
연필 따위를 수납함 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세진 안녕하세요? 여기 사세요? 저 오늘 이사 왔어요.

동철, 대답 없이 세진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계단을 올라간다. 세진, 뭔가 더러


운 시선임을 느낀다.

10. 연립 앞 / D
밖으로 나오는 세진. 그런데 짐들 속에서 동철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 세진의 이
력서다.

동철 한세진? 남자 이름 같네.
세진 (빼앗아 뒤로 감추며) 왜 남의 걸 함부로 보고 그래요.
동철 2년제면 전문대 나온 거냐?
세진 대학원 나왔어요.
동철 (놀라서 보는) 대학원? 와. 대학원 나온 사람이랑 얘기 첨하네.
세진 !
동철 (분위기 깨며) 그런데 왜 백수냐?
세진 ! (발끈해서 보다가) 왜 반말이세요?
동철 나보다 한참 어리구만 뭘.
세진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이력서를 감추고는 매트리스를 옮기려는데)
동철 이사는 어디 가구 혼자 옮겨?
세진 계단 있다고 돈 더 달래잖아요. 그래서 그냥 가라고 했어요.
동철 돈 뜯어낼라고 그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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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울컥한다) 네.
동철 여자 혼자 이걸 혼자 언제 다 옮기라구.
세진 (살짝 말씨가 고와지며) 그러게 말에요.
동철 이삿짐 새끼들. 하여튼. (하고는 그냥 가버린다)
세진 (황당한 듯 보며 사투리로) 뭐 저런 게 다 있어라?

매트리스를 질질 끌어 안으로 들이는 세진. 세진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11. 동철의 사무실 / N


안으로 들어오는 동철. 김사장이 혼자서 신문을 보고 있다.

동철 애들 다 어디 갔어요?
김사장 파견 갔다.
동철 뭔데요?
김사장 재개발 용역이지 뭐야.
동철 (털썩 앉으며) 나한텐 연락 없었는데?
김사장 오늘은 몸 풀 일 없다고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더라.
종서가 너 챙겨주는 거 반만큼만 해라 이 새끼야.
동철 새끼가 그래도 예의를 알아요.
김사장 좋~단다.
동철 그런데 형님 그거 언제 해 줄 건데요.
김사장 뭐얼.
동철 왜 처음 들어보는 소리처럼 얘기해요.
업소 언제 해주냐구요.
김사장 기달려 봐. 그게 나 혼자서 되니? 종서가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까.
동철 언제까지 기달려요. 나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네요.
돈도 다 떨어져 가는데.
김사장 그러니까 일을 해. 수금 다니고 그럼 돈 준다니까.
동철 씨발. 가오가 있지 내가 이 나이에 빚쟁이들이나 쫓아다녀야겠어요?
김사장 아, 몰라. 나도 할 만큼 하고 있어 새끼야.

그때, 때르릉 울리는 핸드폰.

김사장 뭐? 초저녁부터 왜. 알았어. 지금 보낼게.

12. 룸살롱 /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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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오는 동철. 마담이 동철 쪽으로 재빨리 뛰어온다. 저쪽에서 아가씨들
이 웅성웅성 모여있다.

마담 가짜 양주 판다고 지랄이잖아.
동철 어떤 새끼들이길래 진짜 임페리얼 맛을 알어?
마담 첨보는 놈들인데 합기도장 사범들이래.
동철 합기도장 사범?

동철 룸 내부를 보면 버티고 서 있는 등빨 좋은 세 명의 합기도장 사범.

동철 (당황하지 않고) 니들 뭐야 이 새끼들아!

그 순간 한꺼번에 동철을 향해 튀어나오는 사범들. 사범들 순식간에 동철을 삼면


에서 포위한다.

동철 (당황해서) 뭐, 뭐야.

동철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하는 사범들. 동철 거리를 유지하며 사내들을 견제한


다.

동철 씨발 새끼들. 주글래?

하면서 한 사범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데 그 사범 동철의 주먹을 휙 피하며 공격


해 온다. 짧게 끊어치는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는 동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
를 들면 다른 쪽에서 주먹이 날아오고, 방향을 틀면 또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다.
동철 거의 정신이 없어 “에이이”하면서 주먹을 뻗는데 그 팔을 잡아 그대로 메다
꽂는 사범. 동철 바닥에 쾅 떨어진다.

13. 동철의 사무실 / N


코피가 터져있고, 눈가에 상처까지 나 있는 동철. 배를 잡고 웃어제끼는 김사장.
주위에 둘러선 용역복 차림의 사내들과 사복차림의 재영.

김사장 아이고. 건달망신은 혼자 다 시켜요.


민간인한테 맞고 기절을 해?
동철 민간인 아니라니까요. 운동하는 놈들이라잖아요.
비겁한 섀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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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 잘됐다. 너 돈도 없는데 진단서 끊어서 합의금이나 받아내.
동철 어디 사는 놈인지 알아야지요.
그리고 진단서 끊으믄 지는 거지 씨발.
어우 왜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나냐?

크득 크득 웃는 사내들.

종서 어떤 새끼가 웃어.
그 합기도장 새끼들 때문에 가게 다 망가지고, 가짜 양주 판다고 소문나서 단골
들 다 떨어지게 생길 판이야 새끼들아.
사내들 (뚝 그치는)
동철 (한쪽에 서 있는 애 보고는) 넌 누구냐?
봉수 오늘 새로 들어왔습니다.
재영 (겸손, 구십도로 숙이며) 안녕하십니까! 이재영입니다.
동철 너 어디서 나 본 적 없냐?
재영 예? (생각을 하다가) 죄송합니다!
동철 죄송할 게 뭐 있어 새끼야. 본적이 없나보지.
재영 (어쩌란 말이냐)?
동철 아무튼 이 새끼들 잡히기만 해봐.

14. 세진의 방 / D
어느 정도 정리된 집안. 옷걸이에는 정장들 몇 벌이 걸려있다. 방은 예전에 쓰던
짐들을 그대로 가져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세진. 마치 화투패를 까듯 모니터 화면
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가 천천히 내린다. 그 위로 들리는 세진의 전화 소리.

세진 아빠, 이번에도 못 내려갈 거 같아요.


일이 너무 바빠서요.
아빠는 왜 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해요. 아무 일 없어요. 진짜 바빠서 그런 거에
요.
회사 잘 다니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 빌


겠습니다.’

전화를 툭 끊는 세진. 후 한숨을 쉬고는 메일을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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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를 클릭해 즐겨찾기의 구인란으로 들어가는 세진.

15. 골목 / D
동철이 저만치 앞에 걸어 내려가고 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세진. 동철은 아직 세
진이 뒤에 따라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때 부동산 차가 가다가 멈춰선다.

세진 어? 안녕하세요?
부동산 방은 괜찮지? 높은데 있어서 그렇지 그만한 돈에 구하기 힘든 집이야.
세진 예... 그런데요 아저씨. 혹시 저희 옆방에 사는 남자 뭐 하는 사람인지 아세요?
부동산 옆 방? 거긴 내가 안 내놔서 모르는데?
세진 그래요...?

세진 동철이 간 쪽을 보면 동철은 보이지 않는다.

16. 라면 가게 / D
동네 근처의 허름한 분식집. 꺄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 여고생들의 얼굴.
문이 열리며 세진이 안으로 들어온다. 세진 어디에 앉을지 돌아보는데, 마침 물병
을 가져온 아줌마 세진을 보고는

아줌마 (바 식으로 된 곳의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 자리 하나 있네.

세진 아줌마가 가리킨 곳을 보면 그곳에 앉아 있던 동철이 세진을 돌아본다.

동철 어? 라면 먹으러 왔냐?
아줌마 (동철에게) 아는 사이야?
동철 옆방 여자에요.
아줌마 그래? 그럼 잘 됐네.

세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 어색하게 앉고는 메뉴를 보고 아줌마를


부른다. 그런데 여고생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아줌마가 듣지 못한다.

동철 (버럭) 시끄러!

“엄마야!?” 하는 얼굴로 그대로 얼어붙는 여고생들. 놀라서 먹던 걸 뱉어버리는


여학생도 있고, 세진도 놀라 동철을 당황한 듯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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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 아줌마. 라면 하나 달래요. 계란 빼고.
아줌마 알았어.

동철 무심히 고개를 돌린다. 세진 그 옆에서 긴장한 듯 앉아있는데,

동철 아직도 노냐?
세진 예? 노는 게 아니라...
동철 요새 취직하기 힘들다든데. 불황 아니냐 불황.
그래도 우리나라 백수들은 착해요.
뉴스 보니까 프랑스서는 백수들이 일자리 내놓으라고 다 때려부수고 난리든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그게 다 지 탓인줄 알어.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너도 취직 못한다고 욕 하고 그러지 마라.
정부가 다 잘못해서 그런 거야 이게. 니 탓이 아니라구.
그러니까 당당하게 살어.
세진 (코에서 콧바람이 후~ 나온다)

CUT TO : 시간경과
한 무리 여학생들 나가고 나면 다른 여학생들이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후루루룩
라면을 먹는 동철.

동철 아줌마 여기 얼마에요?
아줌마 라면 두 개? 오천원.
동철 아니, 두 개가 아니라.

마저 말을 하려는데 아줌마는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다.


동철 오천원짜리를 꺼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돈을 테이블 위에 놓
고는 일어난다.
라면을 먹던 세진 오천원짜리를 집어들고 당황해서 보는데,

17. 라면 가게 밖 / D
밖으로 나오는 세진. 문 한쪽에 동철이 세진을 기다리고 있다.

세진 안 그래도 되는데...
동철 (손을 내밀며) 줘.
세진 예?
동철 라면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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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갑을 꺼내서는 천원짜리 두 장과 백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건네준다. 동철, 돈을 주머니에 슥 넣고 돌아서는데,

세진 저기요.
동철 (돌아보며) 왜.
세진 그런데 무슨 일 해요? 그렇게 다쳐갖고 다니고?
(픽 웃으며) 꼭 깡패 같애요.
동철 (동철 잠시 세진을 빤히 보더니) 나 깡패야.
세진 !

세진 놀라는데 그 순간 세진의 뒤에서 클랙슨이 큰 소리로 빵! 하고 울린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는 세진. 바로 곁에서 한 사내가 차 안에 앉아 다시 한 번 빵 하
고 클랙슨을 울린다. 그런데 그 사내의 손짓이 서서히 멈춘다. 보면 동철이 운전
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완전히 겁에 질린 운전수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향
한다. 세진 이상한 느낌에 동철을 보면 동철이 고개를 돌린다.
세진은 그 자리에 서고 동철은 앞서 걸어가고, 자동차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한
다. 무언가 불길한 두려움을 느끼는 세진.

18. 세진의 방 / D
택배 상자를 여는 세진.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립스틱 모양의 호신용 가스 분사기
다. 사용법을 읽어보는 세진.

세진 이걸 누르는 건가?

세진 버튼을 살짝 누르려 한다. 그런데 그때 쾅 하는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서 가스 분사기를 문 쪽으로 향하는 세진.

19. 편의점 앞 / N
동철이 편의점 쪽으로 다가간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보고는 안으로 들어
가려다가 보면 진열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세진이 보인다. 동철, ?하는 얼굴
로 들어가려는데 그때 고등학교 1진쯤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동철을 부른다.

아이1 삼촌.
동철 (귀찮다는 듯) 뭐.
아이1 (동철의 외모에도 꿀리지 않고) 죄송한데요. 담배 한 갑만 뚫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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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철 뭘 뚫어?
아이2 담배 한 갑만 사 달라구요.
아이1 담배 살라고 하는데 저 씨발년이 민증 없다고 안 팔잖아요.
동철 (세진 보며) 저 씨발년이?
아이2 예. 존나게 깐깐해요.
동철 (얼른) 돈 줘봐.
아이1 (삼천원을 동철에게 준다) 레죵요.

20. 편의점 안 / N
세진의 눈이 동철을 지켜본다. 진열대에서 우유를 집어드는 동철. 세진의 손이 옆
에 놓여있는 핸드백을 향한다. 가스분사기를 꺼내는 세진. 동철 세진 쪽으로 온다.

동철 담배.
세진 무슨 담배요?
동철 담배는 마세이지.
세진 마세이요?
동철 마일드- 세븐.
세진 (담배를 꺼내 바코드를 찍는데)
동철 여기 취직한 거냐?
세진 !
아르바이트 하는 거에요.
삼천이백원이에요.
동철 이백원?

동철 돈을 내고는 돌아선다. 긴장한 채 바라보는 세진.


세진, 그러다가 문가를 흘끔 보면 아이들 문 안으로 얼굴을 내밀고 동철이 나오
길 기다리고 있다.

아이1 고맙습니다. 삼촌.


세진 (놀라서) 저기요.

하지만 동철은 이미 밖으로 나가 버린 뒤다.

21. 편의점 앞 / N
세진 유리가로 와서 동철과 아이들의 하는 양을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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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1 씨발년. 그럼 우리가 못 살줄 알고.
아이2 고마워요 삼촌.
아이1 (동철의 손에 든 마일드세븐을 보고) 레죵 사다 달랬는데.
동철 담배는 마세이지 씨발. (하고는 우유를 내민다)
아이1 (엉겁결에 받아드는데)
동철 (네이티브 발음으로) 미으크나 마셔 새끼들아.
아이2 담배는요?
동철 (아이들의 머리통을 때리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머리 썩어 머리. 공부 안 해?
아이1 에이 씨발.
동철 씨발?
요 좆만한 새끼가 어디서 씨발이야.

하면서 아이1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아이2 씨발. 너 뭐야.

하면서 동철을 공격하려는데 동철 아이2를 붙잡고는 손바닥으로 머리통을 마구


갈긴다.

동철 뭐긴 뭐야 이 새끼야. 니들 삼촌이지.

아이2 더 이상 적수가 되지 못한다 싶자 달아난다. 그러자 동철 아이1쪽으로 가


아이1의 신발을 벗겨 신발로 마구 때려댄다. 아이1 엉금엉금 기어서 달아난다.
그 모습을 유리창 밖으로 보고 있던 세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철 저 새끼들 저거 뭐가 될라고.
니들 담부터 이 근처서 얼쩡거리다 걸리면 죽어!
(신발을 집어 던지며) 가서 엄마 젖이나 쳐 먹어 새끼들아.

그런데 저만치 달아나던 아이들 돌아서서는 동철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아이1 야이 병신 좆같은 새끼야! 너나 이거 쳐 먹어라.(하고는 우유를 동철을 향해 집어


던진다. 차도 중간쯤에 퍽 하며 떨어지는 우유)
동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질러 넣고 서서 큰 소리로) 나는 다 컸다 이 새끼들아.
니들이나 많이 쳐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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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2 씨발탱이야. 너는 여자 젖이나 만져봤냐?
동철 만져 봤다 새끼야.
(손으로 이상한 걸 만지는 흉내를 내며) 이따만한 거 만져봤다.
세진 (그 소리를 듣고 질겁을 하는) !

계속해서 차도를 사이에 두고 큰 소리로 욕을 주고받는 동철과 아이들.

아이1 야이 개 좆만아!
아이2 야이 씨방새야!
동철 이런 썅 호로 개떡같은 새끼들아.
세진 (기가 막힌 얼굴로 보는)

22. 회사 / D
복도를 걸어가는 세진. 그녀를 안내하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한 곳에 다다르자 여자가 세진을 향해 문을 열어준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는 세진.
햇살이 가득 메우고 있는 사무실 저쪽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몇 명의 남자들.
그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 어서 와요. 우리 회사는 한세진양 같은 인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진을 향해 박수를 치는 사람들.


벅찬 감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세진.

세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3. 편의점 / N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말하는 세진. 그러다가 벌떡
일어난다.

24. 언덕길 / D
비가 내리고 있다. 드라이를 맡긴 정장을 찾아 언덕길을 올라가는 세진. 그녀가
지나는 곳 근처에 피아노 학원이 있다. 피아노 학원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
오고 있다.

25. 연립 복도 /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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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내려오는 세진. 우산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잠시 문밖에 내놓는다.

26. 세진의 방 안 / D
정장을 갈아입고 있는 세진. 머리를 다듬고, 옷매무새를 손본다. 가방을 들고 밖
으로 나가는 세진.

27. 연립 복도 / D
세진, 문을 나오는데, 우산이 없다. 주위를 돌아보는 세진. 그러다 현관 쪽을 보면
비는 아직 퍼붓고 있다.

28. 연립 앞 / D
세진, 현관으로 나와 시계를 본다. 망설이다가 결국 빗속으로 뛰어드는 세진.

29. 언덕길 / D
세진, 언덕길을 뛰어내려온다.
그러나, 이미 온몸이 비에 젖어버렸다.
언덕길 중간쯤을 내려올 때 문득 세진의 얼굴이 굳어진다.
저만치에 동철이 세진의 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라면과 두루마리 화장지 두 개
를 들고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세진, 동철 앞에 멈춰선다.

세진 저기요.
동철 어?
세진 (우산을 보면)
동철 뭐.
세진 그 우산... 제 거 아니에요?
동철 어, 이거? 뭐 좀 사러 갈려고 하는데, 비가 오잖아. 산성비를 맞을 수도 없구.

세진이 동철의 손에서 재빨리 우산을 낚아챈다.

세진 말도 안 하고 남의 우산을 가져가면 어떡해요. 나 오늘 면접 보러 가야 되는데,


옷 다 젖어버렸잖아요.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동철 어? 그랬어? (두루마리 휴지를 뜯으려고 하며) 이걸로 좀 닦지.
세진 됐어요.

하면서 가려고 하는데, 순간 동철이 세진의 우산을 잡는다.

-15-
동철 잠깐. 나 집에 까지 데려다 주고 가야지.
세진 예?
동철 나보고 비 맞구 가란 말야?
세진 (버럭) 지금 늦었단 말이에요!

하고는 우산을 들고 뛰어 내려간다.

동철 어? 야!

동철 휴지가 젖지 않도록 비닐을 꼭 싸서는 우왕좌왕 하다가 위로 뛰어올라간다.

동철 어우 씨발.

30. 면접장 / D
회사 전경 위로 한 여자가 영어로 떠듬떠듬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 소리가 들린
다. 비는 이미 그쳐 있다.

CUT TO
무심하게 듣고 있는 면접관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면접생들. 영어
로 얘기하는 여자의 옆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는 세진. 그녀의 옷은 비에 젖어 후
줄근해져 있다. 자기의 행색을 살펴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세진.

면접관1 잘 들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면접관1.


흘깃 시계를 보고는 다음 원서들을 집어든다.
세진의 원서다.
잔뜩 긴장한 세진. 황급히 구겨진 옷을 손으로 편다.
그런데, 면접관1 세진의 이력서를 잠시 보더니, 세진의 원서를 한쪽에 밀어놓고
다른 원서를 집어든다.

면접관1 강동훈씨.

세진 자신의 이름이 불릴 줄 기대하다가 다른 사람의 이름이 불리자 당황한다.

-16-
세진 저...

면접관1이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본다.

세진 저한테는 질문 안 하셨는데요.
면접관1 아, 시간이 별로 없어서. 다른 사람들 하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물어볼게요.
됐죠?
세진 예?...

31. 부동산 / N
소파에 앉아있는 세진. 부동산 세진이 내민 방 열쇠를 집어든다.

부동산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집을 내놔?


방에 무슨 문제 있어?
세진 (힘없이) 그건 아니고요. (뭔가를 생각하다가) 아무튼 내 놔 주세요.

32. 연립 복도 / N
세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이 열리며 동철이 밖으로 나온다. 세진, 문
을 열려고 하는데, 동철 계단으로 가다가

동철 야, 옆방 여자!
세진 (돌아보면)
동철 면접 잘 봤냐?
세진 그쪽 때문에 다 망쳤어요.
동철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세진 비 맞아서 옷 다 버렸잖아요.
면접에서 인상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알아요?
동철 (찔끔해서는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33. 동철의 사무실 / N


종서의 책상 쪽으로 다가가는 동철. 한쪽에서 봉수와 다른 사내가 종서에게 혼나
고 있다.

종서 배째란다고 그냥 오냐? 그냥 와?
봉수 아 진짜 웃통 까고 뱃가죽을 들이대는데.

-17-
종서 그럼 째야지 새끼야. 병신새끼.

동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한쪽에서 가만히 보고 있는 김사장에게 다가가서


동철 왜 그래요?
김사장 (잘 됐다는 듯) 동철이 너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 봐라.
이 새끼가 엄청 끈질기게 구는 모양인데 그거 받아오면 오프로 줄게.
동철 아이 애들 놔두고 내가 그걸 왜 해요.
종서 (끼어들며) 동철아 이거 일 억짜리다.
동철 (눈동자 굴리며 계산하는데) 일억의 오프로면 얼마야.
오백?
종서 내 차 타고 갔다 와라.
(재영에게) 재영이 너 동철이 형님 따라 가서 일 좀 배워.
이 형님이 어떻게 하는지 보라구.
재영 예!

34. 차 안 / N
그랜저에 타서 담배를 피며 조수석에 앉아있는 동철. 운전하고 있는 재영.

동철 재영이.
재영 예. 형님.
동철 넌 새끼야. 왜 이런데 들어올라고 그러냐? 곱상하게 생겨갖구.
재영 학교서 짤리고 나니까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해서요.
동철 학교서 짤렸으면 검정고시를 보면 되지 새끼야.
8월은 물 건너갔고 공부해서 내년 4월에 검정고시 봐 새끼야.
내 경험으로 보면 말이야. 지 나이 때 할 거 안하면 후회하는 법이야 마.
재영 학원도 가봤지만 공부는 적성이 아닌 거 같습니다 형님.
동철 그럼 차라리 다른 일을 하든지 새끼야. 어디 가서 발레라도 해.
재영 발레를 말입니까?
동철 발레파킹 말이야 새끼야.
아직 창창한 새끼가.
재영 ...

35. 정사장 사무실 / N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동철과 재영.

-18-
동철 수금하러 왔습니다. (하다가 동철의 표정이 굳는)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동철을 배시시 웃으며 보고 있다.

박반장 오동철이 오랜만이다.


동철 여긴 웬일이십니까?
박반장 정사장이 내 친구여. 어떤 놈들이 자꾸 귀찮게 한다길래 와봤더니 너였냐?
하이고. 이 새끼. 어떻게 너는 빵에 갔다 왔어도 변한게 없냐?
맨날 츄리닝 차림에.
하긴. 오동철이가 순수한 맛은 있지.
(동철의 뺨을 귀엽다는 듯 툭툭 매만지며) 니네 큰 형님이 저 대신 빵에 갔다 왔
다고 잘 해주냐?

보다 못한 재영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데,

동철 가만있어 새끼야.
박반장 앞으로 여기 또 얼씬 거리면 니네 조직 다 엮는다.
알었냐?
동철 ...
박반장 알았냐구 이 새끼야.

하면서 동철의 얼굴에 주먹을 먹이는 박반장.


동철, 쾅 쓰러진다.

재영 형님.

하며 동철을 일으키고는 벌떡 일어나려고 하는데 그런 재영을 붙잡는 동철.

동철 가만 안 있어?
박반장 얼마전에 니네 술집에 합기도장 애들 찾아갔었지?
김사장한테 전해라. 전처럼 안하면 계속 걸리적거릴 거라고.
동철 !
재영 ?

36. 동철의 사무실 / 사장실 / N

-19-
코를 솜으로 틀어막고 있는 동철.

종서 어쩐지 씨발 경찰에 신고는 안 하고 난리를 쳤나 했더니 박반장이 시킨 거였어.


김사장 종서야 차라리 그거 상납해 버리자.
종서 짤린 짭새까지 챙기다간 우리 살림 거덜납니다 형님.
김사장 그럼 어떻해 마. 이대로 놔뒀다간 사사건건 재 뿌릴 텐데.
동철 씨발새끼. 뇌물 먹고 짤렸으면 그만이지. 아우 씨발 나는 아직 경찰인줄 알고.
그 새끼 그냥 확 담가버릴까?
종서 경찰이랑 전쟁할 일 있냐?
동철 이젠 경찰 아니라매.
종서 씨발. 서대문 강력반이 다 그 새끼 밑에 있던 놈들이잖아 새끼야.
김사장 종서 말이 맞어. 걔 건드렸다간 우리까지 다 끝장이야.
손끝하나 대지 마.
동철 씨발. 그래도 가오가 있지.

동철 화가 풀리지 않는 듯 책상을 발로 걷어찬다.

37. 동철의 사무실 앞 / N


밖으로 나오는 동철. 종서가 저만치 서 있다.

종서 괜찮냐?
동철 씨발. 마가 끼었나?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종서 이거 넣어둬라.
동철 (보면 현금 뭉치다) 병신새끼 장난 하냐? 네가 이런 걸 왜 줘 새끼야.
종서 받아 마. 돈이 있어야 동생들 밥이라도 사주고 할 거 아냐.
예의라는 게 동생들만 차리는 게 아냐 마.
형님이 동생들 밥 챙겨주고 그게 예의인 거지.
예의 안차리다간 동생들한테 무시당해 새끼야.
알지? 이 바닥에서 동생들한테 무시당하면 어떻게 되는지.
동철 그래서. 내가 예의를 안 차리면 동생들이 나를 깔지도 모른다는거냐 지금?
종서 야 이 새끼야 누가 그렇대?
새끼 말을 해도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있지.
동철 (피식 웃으며) 농담이다 새끼야.
(돈을 주머니에 넣으며) 암튼 담부턴 이런 쓸데없는 짓 하지마 새끼야.
종서 저 새끼는 꿍시렁대면서 돈은 다 가져가요.
동철 (돈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야 이 씹새야 그럼 도로 가져가든지.

-20-
종서 그냥 한 말이다 마.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하며 다시 돈을 주머니에 찔러 넣
어주면)
동철 지 성의 생각해서 받아주니까 새끼가.
종서 알았다. 알았어. 고맙다. 생각해줘서.
동철 간다.
종서 타. 태워다 줄게.
동철 (뒤도 안 보고) 됐어 새끼야.

38. 동철의 방 / D
반쯤 열어놓은 창밖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들
려오는 알람 소리.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동철. 몸을 뒤척인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난다.

동철 아우 씨발. 도대체 몇 시간째야.

39. 연립 복도 / D
쾅쾅 문을 두드리는 동철.

동철 야. 야. 야! 야!

세진의 방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런데 부동산이 한 여자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온다.

동철 뭐요?
부동산 집 보러 왔는데요?
동철 집 내놨어요?
부동산 옆방 깡패 때문에 못 살겠대요.
동철 !
여자 (놀라서) 옆방에 깡패 살아요?
부동산 (당황해서 얼른 문을 열며) 에이 그럴 리가 있어요?
일단 방이나 보시구.
(하다가) 그런데 누구신지?
동철 (말없이 옆방 문을 열며) 알람이나 꺼줘요.
부동산 (잠시 당황한 듯 문을 열고는 여자에게) 들어와요.
여자 (마땅찮은 듯 동철을 보다가 방안을 보고는 갑자기 악! 비명을 지른다)

-21-
부동산 뭐, 뭐야.

방 안쪽에 세진이 쓰러져있는 게 보인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는 동철. 무슨 일인


가? 보면 안쪽에서 부동산이 세진을 깨우고 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는 동철. 세
진의 손에는 약병이 들려있다.

동철 왜 이래요?

40. 언덕길 / D
세진을 들쳐 업고 나오는 동철.

부동산 119 지금 온다는데.


동철 그 전에 죽으면 어떡해요.
부동산 (약병을 동철의 주머니에 넣어주며) 이거 가져가요. 뭘 먹었는지 알아야지.
동철 (세진을 업고 뛰어가고)
여자 저 사람 진짜 깡패에요?
부동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같기도 하고...

동철, 세진을 업고 언덕길을 내려간다.

41. 병원 로비 / D
간호사들이 이동침대를 가져와 세진을 뉘인다. 세진을 진찰하는 의사. 땀에 흠뻑
젖은 동철 세진을 흔든다.

동철 야! 정신 차려봐!
의사 어떻게 된 겁니까?
동철 (약병을 꺼내 보이며) 이거 먹은 거 같아요.
의사 그게 뭔데요?
동철 모르겠는데요? (혼잣말로) 그걸 알면 내가 의사하지 씨발.
의사 (약병을 보고는 단호하게) 뉴트리션!
간호사2 (놀라서는 약병을 받아들며 챠트에 기록한다) 뉴트리션요?
동철 (안타깝고 화가 나서) 이 병신아 아무리 취직이 안 돼도 그렇지.
뉴트션을 왜 먹어!

의사와 간호사들 세진을 끌고 안으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는 동철.


동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22-
간호사1 밖에 나가 계세요.
동철 (조금 진정이 되어) 그런데 뉴트션이 뭐요?
간호사1 뉴트리션요? 영양제요.
동철 영양제 먹어도 죽어요?
간호사1 영양이 좋아지죠.

들어가는 간호사1. 혼자 남겨진 동철.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

CUT TO : 시간 경과
대기 의자에 앉아있는 동철. 간호사가 동철에게 다가온다.

간호사1 한세진씨 의식 돌아오셨거든요?


동철 왜 그런 거래요?
간호사1 영양실조로 실신한 거에요.
동철 영양실조?
아우 씨발.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영양제 먹고 영양실조는 또 뭐야.
간호사1 제대로 된 밥 안 먹고 영양제로 때우니까 그러죠.
동철 그래서 그런 거래요? (안으로 가려는데)

42. 병원 / 응급실 안 / D
링거를 맞고 있는 세진.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커튼 사이에서 동철이 머리를
들이민다.

세진 (놀라는) 여긴 왜 왔어요?
동철 너 내가 데리고 왔다.
어떻게 된 건지 기억 안나?
세진 영양제 먹는데 알람 울린 거 빼고는...
내가 방에 쓰러져 있었어요?
동철 그래.
세진 내 방에... 들어왔다고요? (보다가 긴장하는) 내 방엔 어찌해서...
동철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다는 듯 가만히 보다가 갑자기 인생이 피곤해진다)
부동산이 방 보러 왔다가 너 발견했다.
네가 나 때문에 방 내놨다매.
세진 (무안하니까 꾀병 부린다) 아~ 또 쓰러질 거 같애.
동철 (버럭) 누워있는데 어떻게 쓰러져!

-23-
세진 (같이 버럭) 아픈 사람한테 왜 소리를 질러요!
동철 (서로를 노려보는) !
세진 !

43. 언덕길 / N
앞서 걷고 있는 동철.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세진.

세진 그런데요, 정말 깡패 맞아요?
동철 왜 아닌 거 같애?
세진 무슨 깡패가 매일 맞고 다녀요?
동철 (자존심이 상하는) 깡패라고 안 맞냐?
그게 씨발 성질 급한 일반화의 오류야.

동철 짜증난다는 앞서 걸어간다.

세진 (혼잣말로) 성질 급한이 뭐냐. 성급한이지

44. 동철의 방 / D
TV에서 교육방송이 나오고 있다. 고등학교 국어 강의가 끝난다. 리모컨으로 TV를
끄는 동철. 일어나서 옷을 걸쳐 입는다.

45. 연립 복도 / D
문이 열리며 동철이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세진이 현관 쪽에 서 있는 게 보인다. 면접 복장을 하고 있다. 세진 동철
을 흘끔 보고는 긴장하며 외면하는데,

동철 에이 또 비오네. (하다가 세진의 옷차림을 보고는) 오늘도 면접 가냐?


세진 ...
동철 하늘이 알어요. 누구 면접 볼 때만 되면 비오는 걸 보면.
재수가 없는 거지.
세진 (짜증이 치미는데)
동철 (자기의 슬리퍼를 보고는) 어? 신발.
(도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세진 저기요.
동철 왜.
세진 혹시 우산 있어요?

-24-
동철 있으면 네 걸 썼겠냐?
왜. 우산 또 없어졌어?
세진 저번에 면접 갔을 때 놓고 왔나 봐요.

세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인데 동철 그런 세진을 가만히 보다가

동철 돈 줘봐.
세진 예?
동철 우산 사다줄게.
세진 ... (약간 의심) 정말요?
동철 (이게 하는 얼굴로 보면)
세진 (얼른 돈을 꺼내준다) 제일 싼 걸루요.

동철 돈을 받아 들어서는 빗속으로 뛰어든다.

46. 언덕길 / D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동철이 슬리퍼를 신고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그때마다 언덕 위를 흐르던 빗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런데, 동철이 언덕을 거의 중간쯤 내려갔을 때 그만 슬리퍼가 벗겨지며 동철의
발이 지이익 미끄러지면서 동철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
진다. 쿵 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찧는 동철.
비는 계속 쏟아져 내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철의 움직임은 완전히 멈춰있다.

47. 연립 앞 / D
세진이 초조하게 동철을 기다리고 있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세진 잠시 망설이다가 빗속으로 잠시 나가볼까 하지만, 빗방울이 굵어 다시 얼른
현관 안으로 들어온다.
세진, 원망하듯 하늘을 올려다본다.
세진, 다시 빗속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세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미소가 인다.
저만치서 희미하게 동철이 달려오고 있다.
그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져 있다.
동철은 우산을 피지도 않고 접힌 그대로 들고 오고 있다. 동철이 세진에게 우산

-25-
을 건네준다. 세진 우산을 들고 재빨리 빗속으로 달려간다.
동철, 잠시 서운한 듯 그 모습을 보다가 엉덩이를 만져본다. 무척 고통스런 표정
이다.
그런데, 그때 세진이 갑자기 돌아선다. 세진이 큰 소리로 동철을 부른다.

세진 저기요.

동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순간적으로 허리를 주욱 편다.

동철 왜?
세진 고맙습니다.
동철 어? 어. 면접 잘 보고 와.
세진 예...

세진, 활짝 웃어보이고는 다시 돌아서서 뛰어간다.


동철의 입가에도 미소가 인다.

48. 동철의 사무실 / D


동철 앞에 서 있는 재영. 그런 동철과 재영을 가만히 보고 있는 사내들. 김사장
사장실을 나오는데,

동철 고향은.
재영 마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봉수 유년시절이 뭐냐?
사내1 어린 시절입니다.
동철 가족은?
재영 외아들로 태어나서 엄격한 아버지와 너그러운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랐
습니다.
김사장 동철이 쟤 간만에 일찍 나와서 뭐하는 짓이냐?
종서 면접 본답니다.
동철 이 새끼 여기 있을 놈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래서 면접 한번 볼라 구.
너 이 새끼 똑바로 대답 안하면 안 받아줘.
재영 예!
동철 그래서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재영 고등학교 때 친구랑 싸우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동철 왜 싸웠는데?

-26-
재영 윤미를 친구새끼가 뺏어갔습니다.
동철 윤미가 누군데? 네 이거냐?
재영 예...
동철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 거네?
종서 (장난으로) 넌 새끼야 안 되겠다.
재영 예?
종서 이 바닥은 여자 생기면 끝인거야 마.
재영 왜 끝입니까?
종서 여자 있는 놈이 일을 제대로 하겠어?
일을 소홀히 한다 그럼 그날로 까이는 거지.
재영 앞으로는 절대로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습니다.
일단 한번 믿고 써주신다면 100프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킬킬 대는 동철과 김사장, 종서 그리고 사내들.

49. 회사2 / 면접장 / D


회사 전경.

면접관1(E) 마지막인가?
면접관2(E) 예.

CUT TO
세진의 얼굴 위로,

면접관1 지방대 이공계 출신에, 더군다나 대학원을 나왔으니 나이도 많고...


경력은 회사 생활 딸랑 삼 개월 빼고는 전무하고...

면접관1이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다.


모두들 면접을 보는 게 상당히 지루한 듯한 얼굴이다.

면접관2 한세진씨 애인 있어요?


세진 예? 아뇨... 없습니다.
면접관2 취직 공부하느라고 연애할 시간도 없었구나.
세진 예? 예...
면접관2 그럼 마지막 연애 한 게 언제에요?
세진 회사 다닐 때... 했습니다.

-27-
면접관1 한세진씨, 노래 잘해?
세진 예?
면접관1 손담비 토요일밤에 알어?
세진 토요일밤에요?
면접관1 어, 그거.
세진 (자신있게) 예. 압니다.
면접관1 한번 해봐요? 춤추면서?
세진 여기서요?
면접관2 왜요. 못하겠어요?
세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세진,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세진 토요일밤에. 토요일밤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세진. 그런데 세진은 그다지 노래와 춤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면접관들 웃음을 참는 듯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서류로 얼굴을 가리기
도 한다. 문득 노래를 멈추는 세진.

면접관1 왜. 계속하지.

분노와 수치심으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세진. 돌아서서는 문가로 간다. 면접관


들 민망한 듯 서로의 눈치를 보는데, 문을 열려다가 돌아서는 세진.

세진 원래, 면접을 이런 식으로 봐요?


면접관들 (찔끔하는)
세진 당신들 습관인 거 같은데.
가뜩이나 취직 안 돼서 괴로워 죽겠는데, 사람을 갖고 놀아?
아무리 약자라도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대우를 해줘야 될 거 아냐!
이런 썅 호로 개떡 같은 새끼들아!
면접관들 !

50. 동철의 사무실 / 사장실 / D


김사장 동철 앞에 전단지를 내민다. “여 아르바이트 급구, 룸 서윤희”라 씌여져
있다.

-28-
동철 뭐요 이게?
김사장 네가 이것 좀 붙여라.
동철 내가 이딴 걸 왜 해요.
김사장 아가씨가 딸려서 가게가 안 돌아간다잖니.
애들 다 일 나가고 없잖아.
빈둥거리고만 있지 말고 이럴 때라도 네가 좀 도와줘 새끼야.
동철 아우 씨발. 진짜 가오 상하게.

51. 유흥가 거리 / N
동철 테이프와 광고지를 들고는 한 장 한 장 광고 전단을 붙이고 있다.
전봇대며, 공중전화며, 쓰레기통이며 죽죽 전단이 붙여진다.

동철 씨바 왜 이렇게 많어.

그런데, 문득 동철의 시선이 멈춘다.


세진이 방금 자신이 전단을 붙이고 온 전봇대 앞에 서서 진지한 얼굴로 전단을
읽고 있는 것이다.

동철 옆방 여자. 거기서 뭐 하냐?


세진 이런 거 하면 얼마나 줘요?
동철 얼마면!

동철 다소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세진을 벽에 몰아세운다.


세진, 뒤로 주춤 물러서는데,

동철 취직 어쩌구 까불더니만 벌써 포기한 거냐?


그래서 이런 데나 갈려구?
너 여기가 어떤 덴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엉?
그리고 이런 거 할려면 이뻐야 된다구!
세진 그게 아니라요.
동철 그럼 뭐야.
너 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세진 그거요! 전단 붙이는 거 하면 얼마 주냐구요!

동철, 세진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세진도 지지 않고 동철을 노려본다.

-29-
동철 (창피해서 뒤로 감추며) 돈 받고 하는 거 아니다.
그냥 우리 업무 중 하나야.

동철 가려고 하는데,

세진 저기요, 저녁 먹으러 갈래요?


우산 사다 준 것도 있고.
동철 네가 사는 거냐?

52. 라면 가게 / N
라면을 먹고 있는 세진과 동철.

동철 고작 산다는 게 라면이냐?
맨날 이딴 거나 쳐 먹으니까 픽 픽 쓰러지지.
세진 취직할 때까지 버티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죠!
동철 그런데 너 라면에 원래 계란 안 넣어서 먹냐?
세진 예. 왜요?
동철 나도 그런데.

씩 웃는 동철. 웃긴다는 듯 보는 세진.

세진 그런데요. 앞으로는 옆방 여자라고 부르지 말아줄래요?


동철 왜?
세진 이상한 관계 같잖아요.
동철 옆방 여자가 왜?
세진 아무튼요.
동철 그럼 뭐라고 부르냐?
세진 (잠시 생각하다가) 옆방 세입자로 불러주세요.

고개를 숙이고 라면을 먹는 세진.

동철 옆방 세입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라면을 먹는 동철.

-30-
동철 (그러다가 생각난 듯) 너 빨리 취직하고 싶니? 내가 취직하는 법 알려줄까?
세진 ?
동철 면접 볼 때 사장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빌어. 울면서 무조건 비는 거야. 제발 취
직 좀 시켜 달라고.
세진 (어이없다는 듯 보는데)
동철 하긴 가오가 있지.
세진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제 면접 볼 데도 없어요...
동철 ...

53. 회사3 / 사무실 / D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세진. 40대의
한 남자가 다가와서 앉는다.

과장 내가 인사과장인데요? 무슨 일로?
세진 안녕하세요? 이거 드릴려구요.
과장 (봉투를 열어보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다. 흘깃 보고는) 우리 회사는 경력직만
뽑는데?
세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신입사원 뽑게 되시면 연락 부탁드린다구요.
과장 여자들은 취직하기 더 힘든 거 알죠?
세진 예...
과장 대학을 지방에서 나왔네요?
세진 4년간 성적 우수 장학금 받고 다녔구요. 여기 석사 학위랑, 자격증 리스트랑 그
리고 토익도 상위 3프로 안에 들어요.
과장 알았어요. 놓고 가요.
세진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세진 인사하고 돌아서서 가면, 젊은 직원 기호 다가온다.

기호 과장님 누구에요?
과장 어? 원서 내러 왔다나봐.

무심히 세진의 원서를 들어 바라보는 기호.

54. 빌딩가 거리 / D
빌딩들이 길게 늘어선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세진. 그녀의 주위를 지나치는
몇 명의 여자 직장인들.

-31-
55. 편의점 / N
안으로 들어오는 동철. 세진이 동철을 보며 씨익 웃고 있다.

동철 왜 미친년처럼 웃냐?
세진 어쩌면 나 취직할지 모르겠어요.
동철 뭐? 진짜야? 어떻게?
세진 (다시 한번 씩 웃는데)

56. 까페 / N
실내에서 들려오는 재즈풍의 음악 소리. 세진과 기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
고 있다. 기호의 명함이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그 위로,

기호 원래는 경력직을 뽑으려고 하는데 회사들이 그렇잖아. 신입사원 뽑아서 교육 시


키느니 경력 있는 사람 쓰려고 하고. 그런데, 이번만큼은 신입사원을 한명 뽑기
로 했어.
세진 그런데 정말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거에요?
기호 이력서를 보니까 아까운 인재드라구. 그래서 내가 과장님한테 말해서 특별채용을
하기로 했어.
경력직이야 위에서 결정하지만 신입사원 정도는 내 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이거만 써서 내면 돼.
세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기호 고맙긴. 열심히 하니까 기회가 찾아온 거지.

감격하는 세진.

기호 취직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지?


한창 나이에 오죽 답답하겠어.
세진 ...
기호 원서 내러 온 거 보니까 옛날 내 생각 나드라구.
나도 여기저기서 다 채이고 서른 딱 채워서 취직했거든.
세진 그러셨어요?
기호 (미소 짓고는)
그럼 그만 일어날까?
세진 예.
기호 뭐 타고 가. 가는 데까지 태워 줄게.

-32-
세진 아니에요. 괜찮아요.

57. 모텔 주차장 / 차안 / N
모텔 전경 위로 자동차 한 대가 안으로 들어간다.

세진(E) 여기가 어디에요?

CUT TO
기호가 세진의 손을 잡고 있다.

세진 이거 놔요.
기호 왜 싫어?

저만치 보이는 모텔 현관. 그리고 차 속에 보이는 세진과 기호.

기호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


세진 내가 여길 왜 들어가요.
기호 사회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어?
그냥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어.
세진 !
기호 취직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냐?

세진 겁먹은 얼굴로 기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세진 여기 들어가야만 취직할 수 있는 거에요?


기호 나 믿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세진 당신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세진 얼른 손을 빼서는 안전벨트를 풀고 달아나려 한다. 그 순간 다시 세진의 손


을 잡아 돌려세우는 기호.

기호 아직도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겠냐?


아직도 네가 특별한 사람인 거 같애?
정신 차려라. 너 같은 애들은 차고 흘러넘친다.
평생 그렇게 살고 싶어?

-33-
한번만 눈 딱 감으면 돼.
세진 ...

기호 세진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그러자 고개를 돌리는 세진.

세진 이러지 마요.

기호 세진을 강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려고 한다.

세진 이러지 말라니까요.

세진 기호를 밀쳐내려 한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다. 힘으로 세진을 제압하려는


기호. 세진이 손이 무언가를 더듬는다. 그 순간 가스 분사기가 치이익 하며 가스
를 내뿜는다. 악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는 기호. 당황한 듯 그 모습을 보는 세
진. 얼른 차를 뛰쳐나간다.

58. 거리 / N
세진이 터덜터덜 밤길을 걷는다. 그녀의 주위로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

59. 복도 / N
세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동철이다.

동철 야, 어떻게 됐어.
세진 뭐가요?
동철 뭐긴 뭐야 씨발. 취직. 누가 너 취직 시켜준다고 했다매.
세진 (명함을 꺼내 보여주며) 이 사람이요. 자기랑 자주면 취직 시켜주겠다잖아요.
동철 (당황해서는) 뭐? (하다가) 하 씨발새끼. 그거 웃기는 놈이네. 그래서 자고 오느
라구 늦은 거냐?
그럼 이제 취직 하는 거야?
세진 (노려보는)
동철 (당황하는) 안 잤냐?
세진 (명함을 확 집어 던지고는)
그래서 나도 후회하는 중이에요!

세진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간다.

-34-
동철 후회되면 씨발 다시 연락을 해보든지!

60. 사무실 / D
동철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문가에 있는 여사원에게 뭐라고 묻자 여사원이 한쪽을 가리킨다.
그곳에서 기호가 일을 하고 있다.
동철 기호 쪽으로 다가간다.

동철 (기호에게 명함을 내밀며) 이거 당신거야?


기호 그런데요. 누구신지?
동철 누구시기는 그건 네가 알아서 뭐해. 이 개새끼야.

동철 기호를 향해 드롭킥을 날린다. 기호가 의자에 앉은 채 뒤로 벌렁 넘어진다.


그 위로 키보드를 집어 던지고,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컴퓨터 모니터까지 집어
던진다.
몸을 웅크린 채 소리를 질러대는 기호.

기호 왜 이래요. 예?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동철 왜 이러긴 개새끼야. 네가 네 잘못을 몰라?
어젯밤에 한 짓을 생각해봐 이 새끼야.

동철 기호의 몸 위로 마구 발길질을 해댄다.


여자들이 비명을 질러대고 남자 직원들이 주위로 몰려든다.
그러나, 동철의 기세 때문에 차마 말리지 못하고 떨어져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61. 지구대 / N
세진이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쇠문이 열리고 동철이 경찰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세진.
경찰1 동철의 손에 묶인 수갑을 풀어준다.

경찰1 오동철씨.
저쪽에서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해서 특별히 봐주는 거요.
전과도 있던데 다시 이런 일로 들어오면 그땐 못 나가요.
알아요?

-35-
대답하지 않는 동철.

경찰1 아가씨. 이 사람이랑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정신 차리는 게 좋을 거요.

동철을 보는 세진. 동철 시선을 외면한다. 다가오는 세진.

세진 가요.
동철 ...
세진 (버럭) 빨리 가요!

동철과 경찰들 놀라서 보는

62. 동철의 방 / N
맥주캔을 홀짝이는 세진. 동철도 말없이 맥주캔만 들이킨다.

세진 왜 그랬어요?
동철 뭘.
세진 혹시 나 좋아해요?
동철 미쳤나 이게.

세진 민망한지 고개를 돌리는데, 동철 TV를 켠다. 교육방송이다. 가만히 교육방송


을 보는 동철.

CUT TO : 시간 경과
멍하니 교육방송을 보고 있는 동철.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진.

세진 교육방송은 뭐 하러 봐요?
동철 (화들짝 놀라며) 그냥 보는 거다. 요새 애들은 뭐 배우나 궁금해서.
다른 거 볼래?

하고는 채널을 얼른 돌린다. 재미없는지 툭 다시 돌리고, 또 돌리는데 갑자기 야


리꾸리한 음악과 함께 성인방송이 나온다. 남녀가 하아 하아 거리며 섹스를 하고
있다. 동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본다. 그러다가 문득 세진을 보고는 깜짝 놀
라 TV를 끈다. 동철 당황해서 세진의 표정을 살피는데 세진은 그 상황에 전혀 관
심도 없다는 듯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그녀의 얼굴은 삼분의 2가 수심이고
삼분의 1은 근심이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그저 맥주만 들이키

-36-
는 세진. 동철 얘가 왜 이러나? 하는 얼굴로 보는데,

세진 (갑자기 아이처럼 히이이잉 운다)


동철 야. 왜 그래.
세진 (히이이잉)
동철 (당황해서) 왜 그러냐니까?
세진 히이이잉.
동철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서 세진에게 건네 준다)
세진 히이이잉.
사는 게 이게 뭐야. 취직은 언제 될지 모르고,
반지하방에서 깡패랑 술이나 마시고.
동철 (어이가 없어져서) 너 취했냐? 주사 있냐?
세진 히이이이잉.
이렇게 살라고 서울 온 거 아닌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동철 야 뚝! 뚝!

세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자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데,

동철 (휴지를 건네면)
세진 (그걸 받아 눈물을 닦는다)
동철 (기다렸다가 다시 휴지를 뜯어서 건네면)
세진 (그걸로 닦고)
동철 (세진 앞에 앉아) 심호흡해봐. 심호흡. 후~
세진 후~
동철 후~
세진 후~

하다가 서로 점점 심호흡이 멈춰진다. 그렇게 점점 호흡이 안정되어 가는 두 사


람. 이제 숨은 멈춰지고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동철과 세진. 잠시 말없이
눈빛이 오가고, 그들 무슨 생각인가를 하며 머릿속의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동철 안 되겠지...?
세진 돼요...

헐레벌떡 서툴게 서로를 끌어안는 두 사람. 동철 세진의 옷을 벗기려는데 잘 되

-37-
지 않는다.

CUT TO : 시간 경과 : D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세진. 동철은 일어나지 않고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다.
문 쪽으로 가는 세진.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던 동철 일어난다. 그의 뒷모습이 어
렴풋이 보인다. 등에 새겨진 문신.

63. 연립 복도 / N
세진의 방문이 열린다. 세진이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잠시 후 밖으로 나오는 동
철. 둘이 시선이 부딪힌다. 어색해 하는 두 사람. 세진 계단을 올라가버린다.

64. 연립 앞 / 언덕길 / N
밖으로 나오는 세진. 잠시 후 따라 나오는 동철.

동철 너... 내가 처음이냐?
세진 (잠시 멈칫 보았다가 고개 돌리는) 그럴 리가 있겠어요?
동철 그렇지? 아하하. 난 또 괜히 걱정했잖아.
세진 저기요.
동철 응?
세진 앞으로 그런 일 다신 없을 거에요.
에스키모인들은요. 너무 추운 밤에는 혼자 자지 않고 개를 끌어안고 잔대요.
그래야만 얼어 죽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추운 밤을 그들은 ‘개의 밤’이라고 부른
대요.
나한테는 그러니까 어제가 바로 개의 밤이었어요.
동철 야, 씨발. 그럼 내가 개라는 거냐?
세진 아 왜 이러세요. 창피하게.
동철 씨발 누가 듣는다구. 말해봐. 내가 개냐구.
세진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예요.
비유가 뭔진 알죠?
동철 그러니까 아무튼 내가 개라는 거잖아.
그럼 너는 씨발 개랑 한 거냐? 응?
세진 내가 개랑 하긴 뭘 해요.
동철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비유하자면 너는 개랑 한 거라구.
세진 왜 이래요 진짜 저질스럽게.

-38-
달려가는 세진. 동철 쫓아가며 소리 지른다.

동철 내가 저질이면 너는 고질이냐?

65. 동철의 사무실 밖 / N


동철 계단을 올라온다. 그런데, 박반장이 내려오고 있다.
박반장 동철을 보면, 동철 슬쩍 시선을 피하는데,

박반장 잘 있었냐?
동철 (대답 없이 외면하는데)
박반장 새끼.

하고는 아래로 내려간다.

66. 동철의 사무실 / N


사무실로 동철이 들어온다.

김사장 왔냐?
동철 (못마땅한 듯 보다가) 돈 뜯겼어요?
김사장 종서가 일단은 그냥 주래잖아.
동철 그런다고 줘요? 형님은 가오도 없어요?
김사장 (안으로 들어가며) 없어 새끼야.
동철 아우 씨발. 건달 망신은 다 시키고들 있네.

67. 이미지 / D
한강 철교. 그 위로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린다.

68. 골목길(라면가게 근처) / D


비닐봉지를 들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동철.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벨
이 울리자 전화기를 꺼내는 동철. “옆방 세입자”라고 뜬다.

동철 왜 전화질이냐?
세진(E) 뭐 해요?
동철 라면 사들고 집에 간다. 너는 뭐 하냐?
세진(E) 나도 집에 가는 길이에요.
동철 어디 갔다 오는데?

-39-
세진(E) 도서관. 자료 찾으러.
동철 무슨 자료?
세진(E) 취직 자료.
동철 면접 볼 데도 없다매?
세진(E) 그래도 준비는 해야죠.
근데 있잖아요. 내 앞에 가는 사람 똥꼬에 바지 꼈다.
동철 지지배가 똥꼬가 뭐냐 똥꼬가.
근데 존나 웃기겠다.

하고는 자기의 엉덩이에 끼인 바지를 빼낸다. 그 위로 들리는 “와하하하” 웃음 소


리. 동철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면 세진이 뒤에서 동철을 보고 웃고 있다.

동철 (쪽팔린 듯) 에이 씨발. 너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하며 다시 바지를 고쳐 입는데)

여전히 크게 웃는 세진. 동철도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 봉고


차 한 대가 멈춰 서 있다. 어린 아이들이 봉고차에서 내리고 한 남자가 아이들을
차에서 내려주고 있다. 그 남자는 바로 합기도장 사범이다. 사범 차에 타서는 다
시 봉고차를 출발시킨다. 동철 멀어져 가는 차를 유심히 바라본다. 차 뒤에 써져
있는 성도관.

세진 뭘 그렇게 봐요?

69. 합기도장 앞 / N
동철과 재영, 길 건너 합기도장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다.

동철 여기냐?
재영 예. 제가 등록하러 온 척 하고 미리 들어가 봤는데요. 사범이 세 놈 있는데 형님
이 말씀하신 인상착의 하고 똑같았습니다.
동철 새끼들. 바로 코앞에 있는 걸 몰랐네.
잘 했다 새끼야. 너 졸라 마음에 든다. 응? 재영아.
재영 저도 형님이 좋습니다. 다른 형님들 같지 않고, 진짜 친형님 같습니다.
동철 (흐뭇한 듯) 새끼.
재영 형님. 쳐 들어갈까요?
동철 재영아.
재영 예, 형님.

-40-
동철 저 새끼들은 그냥은 못 당해.
무조건 기선제압이다.
재영 기선제압요?
동철 그래. 가자.

길을 건너서 건물 쪽으로 향하는 동철과 재영.

재영 그런데요 형님. 종서 형님이 박반장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이래도 괜찮을까요?


동철 박반장 건들지 말라고 했지 이 새끼들 건드리지 말란 얘긴 안 했잖아. 새끼야.
우리가 건달 가오를 세우는 거다.
재영 예, 형님.

그들 건물 안쪽으로 사라진다.

70. 합기도장 안 / N
도복을 입은 합기도 사범들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그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
어오는 동철과 재영.

동철 어이. 오랜만이다.
사범1 뭐야 늬들?

재영 재빨리 도장의 전원을 내린다. 그 순간 동철 사범들을 향해서 달려든다. 어


렴풋한 불빛 속에서 동철의 발이 사범의 다리를 쓸어찬다. 그러자 넘어지는 사범.
동철 넘어진 사범을 발로 사정없이 짓이긴다. 다른 사범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
리고 동철을 말리려 하는데 재영이 그를 향해 날라차기를 날린다. 그가 쓰러지자
그대로 달려들어 위에 올라탄 채로 주먹을 휘두르는 재영. 재영의 싸움 실력도
만만치가 않다. 다른 사범 한 명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보고 있는
데 동철 그를 향해 다가간다. 재영 동철의 후방을 막는다. 사범을 향해 공격해 들
어가는 동철. 사범이 맞지 않으려 몸을 웅크린다. 그대로 발로 밀어 버리고 두들
겨 패는 동철. 다른 사범들이 일어나는지를 경계하는 재영. 교육을 받던 남자들
차마 말릴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보고 있다. 동철 드디어 분이 풀린 듯 돌아선
다.

동철 가자.

동철과 재영 밖으로 나간다. 나가면서 불을 켜는 재영. 쓰러진 채 널브러져 있는

-41-
합기도 사범들. 동철과 재영 신이 나 있다.

71. 언덕 위 / D
동철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세진이 저만치 한강 철교를 바라보고 있다.

동철 왜 여까지 사람을 올라오라 그래.

세진 웃으며 동철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놓는다.

세진 봐요.
동철 이게 뭔데.
세진 1차 합격증.
내가 보여줄려고 출력해 왔어요.
동철 너 면접도 안 봤잖아.
세진 또 떨어질까봐 말 안하고 봤죠.
동철 그럼 취직한 거야?
세진 1차 합격이라니까요.
2차까지 붙어야 돼요.
동철 뭐야 씨발. 난 또 취직한 줄 알고.
세진 이번에는 면접만 잘 보면 붙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 회사 사장님은요 학벌이니
남자니 여자니 이런 거 상관 안하고 실력으로만 뽑는대요.
내가 1차에 합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동철 진짜야?
세진 예. 그리고 거기 연봉도 많이 준대요.
동철 얼마나?
세진 초봉이 3천만원이 넘는대요.
동철 삼천?
우와 씨발. 그럼 거기 취직하기만 하면 반지하방서 안 살아도 되겠네?
세진 말이라고 해요?
(가면서) 취직하면 당장 집부터 옮겨야지.
햇빛 잘 드는 집으로...

동철 그 말에 세진을 본다. 한껏 기뻐하는 세진의 얼굴. 동철의 얼굴이 어두워진


다.

동철 (내색하지 않고 따라가며) 너 취직하면 나 명함 한 장 줘야 된다?

-42-
세진 한 장 뿐이겠어요? 한 통이라도 주지.
동철 한통을 내가 어디에 쓰냐?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세진 아빠... (깜짝 놀라며) 예?


아빠, 지금 제가 외근 중이라요. 바로 갈게요.
동철 ?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는 세진.

72. 세진의 회사 로비 / D
건물 회전문이 열리고 세진이 뛰어 들어온다. 저만치 앞에 세진부가 경비실 앞에
서 있다가 세진을 발견한다. 얼른 달려가는 세진.

세진 아빠.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세진부 연수 있어서 서울 왔다가 니 얼굴이나 보고 갈라고...
네가 하도 안 내려오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다냐?
회사가 없어지다니?

73. 연립 복도 / D
동철. 세진을 빤히 바라본다.

동철 이게 취직을 못 하더니 점점 이상해져 가네.


내가 니네 집엘 왜가.

동철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세진 문에 자기의 발을 끼워 넣는다.

세진 오동철씨!
동철 아무튼 나는 안 해. 내가 왜. 나 못해. 딴 놈한테 알아 봐.
세진 이러다간 취직도 못하고 꼼짝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야 된단 말에요.
동철 잘 됐네. 이 기회에 차라리 내려가. 되지도 않을 취직한다고 그러고 있지 말구.
세진 (화가 난) 오동철씨 정말 이럴 거에요?
우리가 남도 아니구.
동철 남이 아니면.

-43-
세진 (당황해서) 같은 세입자잖아요. 세입자끼리 그런 거 하나 못 해줘요.
동철 세입자가 그런 걸 왜 해.
세진 단순 세입자가 아니잖아요.
동철 아니면.
세진 나랑 잤잖아요!
동철 (띵하다)

74. 동철의 방 / D
넥타이를 매고 돌아서는 동철. 세진 동철의 양복에 붙은 세탁소 꼬리표를 떼 준
다.

동철 이거 주인이 회사원이란다.
어떠냐? 회사원 같냐?

회사원 안 같다. 세진 후~ 한숨이 나온다.

75. 기차 안 / D
학생처럼 얌전하게 세진 옆에 앉아있는 동철.

세진 부서가 뭐라고요?
동철 전산부우.
세진 하는 일은?
동철 컴퓨터 프로그래머.
세진 그게 뭐하는 거라구요?
동철 뭐긴 뭐야.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거지.
세진 자세하게요.
동철 다 알아.
세진 (할 수 없이) 부모님은?
동철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
세진 아버지는 전에 무슨 과목 가르치셨는데요?
동철 무용. (하다가) 야 좀 이상하지 않냐? 남자가 무슨 무용을 가르쳐.
교련이면 몰라도.
세진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외워요. 형제는?
동철 이남 일녀. 형은 꽃집하고, 조카가 둘.
누나는... 뭐한다고 했지?
세진 동사무소 직원하고 작년에 결혼.

-44-
동철 (좀 기분이 상한다) 근데 내가 왜 이딴 거나 외우고 있어야 되는 거냐?
세진 (후, 한숨을 쉬다가)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했죠?
동철 될 수 있는대로 말을 하지 말 것.

CUT TO : 시간 경과

동철 근데, 나한테 외우라고 한 거 말이다.


누구 얘기냐?
세진 !
동철 네 옛날 이거냐?
세진 ...
동철 왜 차였는데?
세진 누가 그래요? 채였다고?
동철 그럼 네가 찬 거냐?
세진 차고 채이고가 어딨어요. 그냥 헤어진 거지.
동철 그러니까 그냥 왜 헤어졌냐구.
세진 취직을 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 회사가 다닌 지 몇 달도 안 돼서 부도났어요.
그 사람은 경력이 있으니까 다시 취직했고... 나는... 그래서 헤어졌어요.
동철 다시 취직하더니 헤어지재?
세진 그 사람은... 내가 제일 힘들 때 내 곁에 있을려고 하지 않았어요.
동철 차인 거 맞네.
세진 ...
동철 아우 새끼들 하여튼.
그러니까 씨발 남자 새끼들 좀 똑바로 봐.
보면 꼭 똑똑한 년들이 양아치 같은 새끼들만 만나요.
너 취직하더라도 남자 좀 골라 사귀어.
얼굴 반반한 놈 말고 제대로 된 놈으로. 알었냐?
세진 오동철씨는 연애 안 해요?
동철 씨발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하겠냐.
세진 왜요. 오동철씨도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여자 만나게 될 거에요.
동철 그럴까?
하긴 내가 또 알고 보면 진국이긴 한데 말이야.
세상 여자들이 그걸 몰라줘요.

묵묵히 창밖을 보는 세진. 세진의 얼굴이 왠지 어둡다.

-45-
76. 기차역 / 역무원실 / D
옷을 갈아입고 있는 세진부.

역무원 (창밖을 보며) 세진이 저기 내렸네요.

세진부 창가로 가 역무원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세진이가 보이고 세진이 누군가


를 기다리는데 잠시 후 한 남자가 내린다. 위풍당당하게 내리는 동철. 그를 유심
히 바라보는 세진부와 역무원. 동철 깡패들이 하듯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는데,

역무원 회사 다닌다고 했지요?


세진부 그려.

77. 세진의 고향집 / 방안 / D


세진부에게 절을 올리는 동철, 그리고 세진. 읍하고 서는데,

세진부 앉게.
동철 예.
세진부 그래, 고향이 어디라고?
세진 서울이에요.
세진부 누가 너한테 물었냐?
동철 고향은 서울입니다.
세진부 그건 얘가 말했잖아.
동철 (당황해서) 그, 그럼 다른 걸 말씀 드리자면,
저는 저, 전산부에서 컴퓨터 (말문이 막힌다)
세진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 해요.
동철 맞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에 관해서 말하자면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는 무용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교장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계시고요.
형제는 이남하고 일년데, 형은 조카가 둘이고,
조카들은 지금 꽃집을 하고 있습니다.
누나는 작년에 동사무소에서 결혼을 했구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사실은 별로 말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저는 말을 별로 하지 않겠습니다.
세진 (당황하며 세진부를 보면)
세진부 자네..

-46-
긴장해서 서로를 보는 동철과 세진.

세진 아빠, 제가.. (‘말씀 드릴게요’생략)


세진부 생긴 건 안 그런데 숫기가 영 없네.
편하게 해. 편하게. 이제 한가족인디.
동철 예...

동철과 세진 안도로 서로를 본다.

78. 횟집 / N
바닷가의 작은 횟집. 동철과 세진부가 소주를 기울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떠들썩
하게 러브샷을 하고 있는 대기 일행이 보인다.
동철에게 소주를 따르는 세진부.

세진부 그래, 결혼은 언제 할거냐?


동철 (당황) 아직 준비가...
세진부 젊은 놈들이 준비가 뭐가 필요해? 올해 안에 해. 알았어?
동철 예? 예... 세진이 취직만 하면.
세진부 취직은 무슨 취직이냐 그냥 결혼해.
동철 예...
세진부 근데 세진이 얘는 어디 갔어?

79. 방파제 / N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세진. 그때 저쪽에서 동철의 목소리가 들린다.

동철 야, 너 거기서 뭐해?

돌아보는 세진.

동철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다, 야.
그런데 아버님이 내가 아주 맘에 들었나봐.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신 거 같애.
세진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단 결혼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나중에.
동철 (끊으며) 우리가 왜 결혼을 해!
세진 ?
동철 지금 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47-
너 우리가 여기 왜 온지 잊어버렸어?
세진 (기분이 상한다) 누가 진짜 한대요?
난 그냥 아빠가 원하시니까...
그냥 한다고 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안 해도 되니까 그런 거잖아요!
동철 근데 너는 왜 다른 사람이랑 있을 땐 얌전 다 떨다가 나랑 있을 때만 바락바락
대드냐?
세진 깡패한테 지기 싫어서 그래요!
동철 그런다구 이겨?
세진 내가 못 이길 거 같애요?
동철 아이구 이걸 확.
세진 (빤히 보는)
동철 확!
세진 (꿈쩍 않는) !
동철 (그래도 꿈쩍 않는) 확!

하는데 세진 동철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붙어있는 동철의 입술과 세진의 입술.
굳은 듯 그렇게 있다. 동철 먼저 입술을 떼고는 세진을 보는데,

동철 나 깡패야...

당황한 세진. 그때 인기척을 느낀 동철, 돌아보면 저쪽에 세진부가 엉거주춤 서있


다.

세진부 하두 안 오길래... (돌아서며) 어여 들어와.

그 자리에 서있는 세진과 동철. 동철 다시 세진을 보는데 세진 황급히 돌아서서


가버린다. 아직 멍하니 세진을 보는 동철.

80. 횟집 앞 / N
동철 횟집 쪽으로 걸어간다. 횟집 안에 보이는 세진부와 세진. 가만히 세진을 보
는 동철. 혼란스럽다. 동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횟집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는 동철. 저쪽으로 대기의 자동차와, 그 곁에서 대기
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이 보인다.

81. 룸살롱 / N
우르르 안으로 들어오는 정복 경찰들과 사복 경찰들. 마담과 웨이터가 놀라서 다

-48-
가간다.

마담 무슨 일이세요?
사복 (영장 보여주며) 가짜 양주를 판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여기 영장.
마담 도대체 누가 그런 제보를 했어요!
사복 샅샅이 뒤져!
마담 이보세요.

경찰들 룸살롱 안으로 흩어진다.

82. 룸살롱 밖 / N
종서의 고급 승용차가 끼익 멈춰 선다. 전화를 하며 차에서 내리는 종서.

종서 오동철. 너 이 개새끼 지금 어디야!

잠시 후 봉고차 한 대가 급정거를 하고 사내들이 차에서 내린다.

83. 횟집 앞 / N
전화를 하고 있는 동철.

동철 무슨 일인데.

84. 룸살롱 밖 / N
룸살롱을 향해 걸어가는 종서. 그 뒤를 따르는 사내들.

종서 너 합기도장 애들 건드렸대매?
너 때문에 지금 룸살롱에 경찰 떴어 새끼야.
박반장이 경찰 동원해서 쳐들어왔다고.
당장 튀어와 새끼야.

85. 횟집 앞 / N

동철 지금 안 돼.
종서(E) 어디 있는 건데 새끼야.
동철 ... 어쨌든 나 지금은 못가.

-49-
종서(E) 너 자꾸 이렇게 할래? 어디냐니까.
동철 아무튼 못가 새끼야.

동철 전화를 끊는다.

86. 룸살롱 밖 / N
종서 황당한 듯 핸드폰을 끊고는 룸살롱 입간판을 발로 걷어찬다.

종서 아우 씨발. 개새끼. 사람 돌게 만드네.

사내들 그런 종서를 본다. 한쪽에 걱정스러운 듯 보는 재영.


종서와 사내들 룸살롱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자동차 한 대가 주차돼 있다. 그 차의 운전석에서 사이드미
러를 보고 있는 박반장.

87. 횟집 앞 / N
동철 짜증이 나는지 넥타이를 헐겁게 맨다. 기분이 안 좋은 듯 담배를 물어 피우
는데 라이터가 없다. 그때 동철 곁을 지나치는 대기.

동철 (대기에게) 불 좀 빌립시다.
대기 예.

대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으려는데 동철 다짜고짜 대기의 담배를 빼앗아 가서


는 불을 붙인다. 대기 황당해서 보는데 동철 대기의 담배를 바닥에 끄고 담배를
피워댄다.

대기 어이.
동철 (돌아보면)
대기 시방 뭐 하는 짓거리다냐?
동철 (영문을 모른 채) 뭘...?

동철 재떨이를 보고 나서야 자기가 방금 한 짓을 알게 된다. 난감해서 어색하게


웃는 동철. 대기는 지금 술에 많이 취해 있다.

대기 완전 싸가지가 바가지네. 잘못을 했으믄 잘못을 혔다 사과를 할 일 이지.


동철 (잠시 망설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50-
대기 (갑자기 동철의 뺨을 치며) 씨발놈이 똑바로 못 허냐?
동철 (황당해서 보는데)
대기 뭘 봐 이 새끼야. 해 보자는겨?
동철 (횟집 쪽을 흘끔 보고는) 죄송합니다. 됐습니까?
대기 (다시 동철의 뺨을 치며) 되긴 뭐가 되어 새끼야.
무릎 꿇어라잉.

동철 후 한숨을 쉬고는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대기 어딜 가?
동철 (슥 보고는) 그만 하지요(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대기 그만 하긴 뭘 그만 해 이 새끼야. (동철의 팔목을 잡고 매달리며)
동철 놔요.
대기 안 논다. 못 논다 이 새끼야.
동철 (나즈막이) 놔라.
대기 못 놔.
동철 놓으라니까?
대기 안 놔!

동철 대기의 팔을 확 뿌리치고 가려는데 대기가 이번에는 아예 훌쩍 뛰어올라 동


철의 목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대기 어딜 가 이 새끼야.
동철 에이 씨발.

하며 대기를 확 떼어내는데, 대기가 동철의 옷을 잡고 뒤로 넘어진다. 그 바람에


동철의 와이셔츠 단추가 와드득 뜯겨 나간다.

동철 이 개새끼가.

동철 자신의 옷이 찢겨나간 것을 보고는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대기를 발


로 짓밟는다. 머리를 감싸는 대기. 그 모습을 본 여자들이 아아악 비명을 지른다.

그러자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그 속에 보이는 세진부. 그리고 세진. 사람들이


몰려든다. 동철 이상한 느낌에 주위를 돌아본다. 동철 등을 의식하면 등에 선명히
드러나 있는 문신. 동철 자신의 등을 보고, 쓰러져 있는 대기를 보고, 그리고 자

-51-
신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 속에 보이는 세진. 동철과 세진의 눈이 마주친
다. 동철 더 이상 세진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사람들을 향해,

동철 뭘 봐 씨발. 깡패 첨 봐?

동철 양복을 주워들고는 사람들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좌악 길을 비켜주는 사


람들. 동철 그 사이를 지나 걸어간다. 저만치 뒤쪽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보고
있는 세진.

88. 플랫폼 / N
참담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동철. 기차가 들어오는 게 보인다.

89. 세진의 고향집 / N


세진 밖으로 나오는데 세진부가 밖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세진과 세진부가 마루에 앉아있다. 말이 없는 두 사람.

세진부 그 놈하고는 어떤 사인겨?


세진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 사이도 아네요.
그냥 옆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에요.
세진부 그럼 내가 본건?
세진 (부인하며) 그냥... 아빠 나오는 소리 듣고 그러는 척 한 거에요.
세진부 나 속일라구 말여? 내가 취직 그만두게 할까봐?
세진 예...
세진부 정말이여? 정말로 아무 사이 아닌겨?
세진 정말이에요...
세진부 ...
세진 ...
세진부 서울 가는 건 그만 둬.
수협같은 데나 취직햐. 어떻게 말만 잘 하면 자리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거여.
그러다가 그냥 선봐서 시집이나 가.
세진 수협에서 커피 심부름이나 하려고 힘들게 공부한 거 아니잖아요.
다음 주에 면접 있어요. 이번엔 최종 면접이에요.
세진부 대학교 내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어렵게 취직했더니 부도난 회사였다
매.
세진 이번 회사는 좋은 회사에요. 알아볼 만큼 충분히 알아봤어요.
세진부 그런 회사가 너를 왜 뽑는댜?

-52-
서울은 사람 읍댜? 그 많은 사람들 놔두고 너 뽑아줄 회사라면 뻔하지 뭐.
세진 아빠!
딸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저를 그렇게 못 믿어요?
세진부 못 믿는게 아니고 부아가 나서 그라제.
세상이 너를 안 알아주니께.
분하고 억울해서...

세진부 고개를 숙인다. 세진부는 지금 울고 있다.

세진 아빠...

세진도 눈물을 흘린다.

90. 동철의 사무실 / 계단 / D


계단을 터덜터덜 올라오는 동철.

91. 사무실 안 / D
동철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데 사내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에
앉아있는 종서.

종서 (흘끔 보고는) 오동철. 너 어디 갔다오는 거냐?


동철 일이 있었다고 했잖아 새끼야.
종서 말해 봐. 어디 갔다 온 거야.
동철 어딜 갔다 오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씨발 새끼야.
종서 (벌떡 일어나며) 오동철. 너 때문에 피해가 얼마나 큰 줄 알어?
영업정지 당하고 박반장한테 상납까지 할 판이야 새끼야.
무슨 일을 벌리려면 나한테 먼저 보고 해야 될 거 아냐 이 새끼야.
동철 보고?

붕 뛰어오르며 종서의 가슴팍을 차는 동철. 종서가 쓰러지자 발로 짓이긴다.

동철 네가 씨발 뭔데.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이 새끼야!

김사장 밖으로 뛰어 나온다.

-53-
김사장 뭐해 새끼들아! 안 말려?

그러자 사내들 우르르 달려들어 동철을 붙잡는다. 봉수 종서를 온몸으로 막는다.

봉수 형님. 그만 하세요!

그 말에 숨을 헉헉이며 봉수를 보는 동철. 보면 사내들이 동철을 슬쩍 슬쩍 바라


보고 있다.

동철 뭘 봐! 뭘 봐 새끼들아!

하지만 사내들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그런 사내들과 동철의 분위기를 흘깃거리


는 재영.

92. 동철의 사무실 / 사장실 / D


김사장 피로한 듯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다. 그 앞에 앉아있는 동철.

김사장 동철아. 오동철. 너를 어쩌면 좋으냐?


네가 내 대신 빵에 갔다 온 건 고맙다.
그런데 네가 그 좆지랄을 하고 와도 왜 에이스가 못 되는지 아냐?
딴 놈들은 대충 봐도 견적 딱 나와. 저 새끼가 뭐가 되고 싶은지.
그런데 넌 모르겠어 새끼야.
동철 씨발. 그러니까 빵에 갔다 오믄 에이스 되게 해 준다며요.
김사장 에이스 될 놈을 빵에 왜 보내 새끼야!
동철 !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김사장 (외면하며) 그래도 꾸역꾸역 데리고 있었던 건 너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가뜩이나 분위기 안 좋은데 너 자꾸 왜 이러냐.
너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동철 ...
김사장 동철이 너 박반장 찾아 가.
동철 박반장을 왜요?
김사장 영업정지 푸는 대신 박반장한테 상납하기로 했다.
그런데 박반장이 너 데리고 오래.
너 무릎 꿇고 빌어야 받아들이겠대.
동철 내가 미쳤어요? 박반장한테 무릎 꿇게?

-54-
김사장 새끼야. 이게 다 너 땜에 이렇게 된 거 아냐.
동철 씨발. 가오가 있지 건달이 어떻게 무릎을 꿇어요.
김사장 분위기 파악이 그렇게 안 되냐? 이러다간 동생들이 너 깔 거야 임마.
동철 나를 까요?
김사장 너 깐다는 게 뭔지 알아?
담근다는 거야!
박반장한테 가서 무릎 꿇고 이 일 수습해.
동철아, 이게 마지막 기회다.
동철 !

93. 연립 복도 / D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 동철. 그런데 이삿짐들이 짐을 싸고 있다.

동철 뭐요?
부동산 고향으로 짐을 부쳐달라고 하길래.
저번에는 집 안 내논다더니.
이번에는 방 빠지기도 전에 이사를 하고. 별 일이네.

94. 세진의 방 / D
사내들이 세진의 옷가지며, 서랍이며를 빼든다.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동
철. 주위를 돌아보는 동철. 벽에 가득히 붙어있는 회사의 자료들. 책상 위에도, 그
리고 방바닥에도... 잡지 오린 것부터 시작해서 신문 스크랩까지. 회사의 모든 것
들이 조사돼 상자에 담겨있다. 동철 인부들을 보면, 인부들이 성의 없이 짐들을
상자에 담고 있다.

동철 씨발 이삿짐을 싸는 거야 쓰레기를 싸는 거야.

동철 한 인부의 손에 든 자료들을 빼앗아서 자기가 상자 안에 넣는다. 그러다가


문득 동철의 눈길이 멎는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세진의 출력된 1차 합격증. 가만
히 그 종이를 들여다보는 동철.

95. 세진의 고향 집 / 옥상 / D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세진.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세진의 치마와 머리카락을 날
린다.

96. 동철의 사무실 / D

-55-
김사장 앞에 서있는 동철과 재영, 그리고 사내들과 저만치 앉아있는 종서.

김사장 박반장한테는 내가 전화해놨으니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재영이.
재영 예, 사장님.
김사장 너 잘 모시고 갔다 와.
재영 예.

동철 종서 쪽을 본다. 시선을 외면하는 종서. 동철 다른 사내들을 보면 사내들 못


마땅하다는 듯 동철을 바라본다. 고개를 돌리는 동철.

97. 차 안 / D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동철. 그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사연.

소리 2157번으로 김연희씨가 사연 보내주셨네요. 오늘 면접을 보신다고 꼭 취직할 수


있게 파이팅 해 달라구요.
알았습니다. 파이팅 해드리지요. 김연희씨 파이팅! 김연희씨 파이팅 하시라고 넌
할 수 있어 띄워드릴게요.

전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동철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재영 금요일입니다, 형님.
동철 ...

98. 세진의 고향집 / 마당 / D


세진 마당 한쪽에서 자료들을 태우고 있다. 불꽃이 세진의 얼굴가에 일렁인다. 면
접 지원표 속에 보이는 자기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세진. 그런데 그때 핸
드폰이 울린다. 세진 핸드폰을 보면 역시 “옆방 세입자.” 세진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세진 여보세요?
동철(E) 이사 갔드라.
세진 네...
동철(E) 그럼 취직은? 여기서 끝내는 거야?
세진 ...

-56-
동철(E) 면접 보기만 하면 붙을 수 있다며.
세진 ...
동철(E) 하고 싶어했잖아.
세진 어차피 지금 가도 늦었어요.
동철(E) 내가 어떻게 해볼게.
세진 (화가 나는) 뭘 어떻게 해요.
동철(E) (풀이 죽어) 아무튼 어떻게든 해본다니까...
세진 그만 해요. 그게 오동철씨랑 무슨 상관이라구!
오동철씨는 깡패잖아요. 깡패 인생을 살아요.
난 내 인생을 살 거니까!
동철(E) ...
세진 ...
동철(E) 그래. 나 깡패다. 너랑 아무 상관없는 깡패.
그렇지만,
네가 오든 안 오든 나는 가서 기다린다. 너랑 상관없이.

동철 세진에게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세진 오동철씨!

세진 다시 동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런데 벨소리만 울릴 뿐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세진. 세진 불에 타고 있는 자료들을 바라본다. 마지막 자료
가 불 속에서 완전히 재가 된다.

99. 거리 / D

동철 차 세워.
재영 예?
동철 차 세워 새끼야.

재빨리 핸들을 돌리는 재영.


차가 서자 동철이 차에서 내린다. 얼른 따라 내리는 재영.

재영 형님. 그럼 박반장은요.

대답 없이 걸어가는 동철. 어쩔 줄 모르는 재영.

-57-
100. 플랫폼 / D
기차가 안으로 들어온다.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린다. 그리고 다시 출입문
이 닫힌다.

101. 역무원실 / D
CCTV로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세진부. 그때 무전기에서 들려
오는 소리.

역무원(E) 역장님 저기 세진이 오는데요?

세진부 CCTV를 보면 정말로 세진이 기차를 향해서 뛰어가고 있다. 그녀는 정장


을 입고 있다. 역무원에게 뭐라고 말하자 역무원이 무전기를 내민다.

세진(E) (무전기에 대고) 아빠. 기차 문 좀 열어줘요.


세진부 어디 가는 거여?
세진(E) 아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해볼게요.
이번에 면접 안보면 정말 평생 후회할 거 같애요.
그러니까... 저 좀 보내줘요.
세진부 세진아!
세진(E) 아빠...
제발 문 좀 열어줘요.

서로의 시선이 오간다.


안타깝게 세진부를 보는 세진. 그런데 그 순간 기차의 문이 스르르 열린다.

세진부(E) 세진아. 설사 떨어져도 맘 상해 할 거 없어.


너를 못 알아보는 회사라면 그딴 회사는 볼짱 다 본 회산겨.
알었지?
세진 네...

세진 무전기를 건네주고는 얼른 기차에 오른다. 세진이 자리에 앉자 기차 문이


닫힌다.
서로를 보는 세진과 세진부. 신호 버튼을 누르는 세진부. 그 순간 신호가 빨간색
에서 녹색으로 바뀌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세진 세진부를 돌아보는데 세
진부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세진.

-58-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102. 바닷가 / 횡단보도 / D


눈앞에 펼쳐진 파란 바다. 종소리가 울리고 기차가 바닷가를 스쳐 지나간다.

103. 회사 / 이미지 / D
면접장을 안내하는 화살표를 붙이는 직원들.

CUT TO
사무실 한쪽의 집기들을 옮겨서 면접장을 만드는 직원들.

CUT TO
정장을 입은 채 엘리베이터를 내려 복도를 걸어오는 면접생들.

104. 동철의 사무실 / D


김사장 밖으로 나온다. 한쪽에서 얼굴이 엉망이 된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재
영.

김사장 동철이 아직 연락 안 돼?
봉수 전화 안 받습니다.

김사장 종서를 보면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종서.

김사장 이 새끼 도대체 어딜 간 거야.

105. 대기실 / D
대기실의 면접생들 틈에 앉아있는 동철. 다른 면접자들, 동철을 흘끔흘끔 돌아보
고 있다. 안내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호명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초조
하게 세진을 기다리고 있는 동철.

CUT TO : 시간 경과
또 다시 들어오고 나가는 면접생들.

CUT TO : 시간 경과
일군의 면접생들이 밖으로 나온다. 이제 면접생들은 반 밖에 남지 않았다.

-59-
안내 33번, 정상훈씨.
상훈 예!
안내 34번 이미려씨?
미려 예!
안내 35번 김도훈씨?
도훈 예!
안내 36번 한세진씨?

동철 번쩍 고개를 든다.

106. 기차 안 / D
창문 너머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초조하게 시계를 보는 세진. 그 위로,

안내(E) 한세진씨?

107. 회사 / 대기실 / D
동철이 안내를 향해 다가간다.

안내 한세진...씨세요?

동철 말없이 면접실 쪽으로 걸음을 향한다.

안내 이보세요. 어디 가는 거에요.

안내 동철의 뒤를 쫓아가는데 동철 불쑥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안내 이보세요.

흘끔 그쪽을 보는 면접생들.

108. 회사 / 면접실 / D
면접실 안으로 들어오는 동철. 면접관들 무슨 일인가 보는데,

안내 (따라 들어오며) 여기 들어오면 안 된다니까요.


동철 안 되긴 뭐가 안 돼 씨발.

-60-
안내, 동철의 기세에 바짝 쫀다. 동철 면접장 안에 놓여있는 의자를 번쩍 집어든
다.
허걱 놀라는 안내와 면접관들.
동철 의자를 질질 끌며 문 쪽으로 가서는 문을 걸어 잠근다.

면접관1 (일어나며) 뭐하는 거요.

그러자 동철 의자를 위로 번쩍 들어올린다. 무섭게 면접관들을 노려보는 동철. 면


접관1 스르르 자리에 앉는데,

동철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날아간다.

굳어버리는 면접관들.

CUT TO : 시간 경과
동철, 의자를 뒤로 돌려 앉아있다.

면접관2 그런데 무슨 일로...

동철 말없이 일어나서는 의자를 다시 집어올린다. 눈을 내리까는 면접관2.

CUT TO : 시간경과
의자를 뒤로 돌린 채 앉아있는 동철. 그리고 면접관들.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린다.
동철 째려보면 얼른 핸드폰을 끄는 면접관.

109. 서울역 / D
기차가 멈추고 세진이 기차에서 뛰어 내린다.
에스컬레이터를 달려 올라가는 세진.

110. 회사 대기실 / D
술렁대는 면접생들.

111. 면접장 / D
면접생 한명이 문을 두드린다. 그 주위에 둘러서 있는 또 다른 면접생 한 명.

면접생1 저기요, 저기요.

-61-
동철이 의자에 앉아 문 쪽을 돌아본다. 긴장해서 문 쪽을 보는 면접관들. 면접관
한 명 뭐라고 하려고 하는데 동철 다시 의자를 집어 올린다.

심각하게 서 있는 직원들과 면접생들. 경비원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가온다.


경비원 문을 연다. 경비와 직원들의 시선으로 보이는 상황.
동철이 의자를 번쩍 집어들고 뒤돌아 서 있다가 그들을 돌아본다.

경비 뭐 뭡니까?
면접관2 쫓아내.
동철 저리 가. 저리 가 씨발.

하며 의자로 경비와 직원들을 위협하는 동철.


직원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직원1 잡아!

그러자 동철 의자를 직원들을 향해 휙 집어던진다. 의자를 피하고 동철을 향해


달려가는 직원들. 동철 창 쪽으로 도망간다. 그러자 동철을 잡기 위해 포위해 들
어오는 직원들. 동철 면접관들의 책상을 타고 넘어간다. 그런데 그만 책상이 쾅
쓰러진다. 그 바람에 철푸덕 넘어지는 동철. 그 위로 몰려드는 직원들.

동철 잠깐. 잠깐만. 내가 얘기할게. 내가 왜 이러는지 얘기할게.

직원들 당황한 듯 사장 쪽을 보면, 사장 말을 하게 해보라는 듯 눈짓을 한다. 그


러자 직원들 동철을 잡은 손을 놓는다. 동철 사장 쪽으로 주춤 걸어간다. 당황해
서 한발 물러나는 사장. 그런데 순간 동철이 사장 앞에 무릎을 털썩 꿇는다. 사람
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보는데,

동철 나는요. 고등학교도 못 나왔어요.


공부를 해야 되는데 그게 참 그때는 그렇게 하기 싫드라구요.
맨날 쌈질이나 하다 보니까 어영부영 시간이 가드라구요.
사람이란 게 그래요. 해야 될 걸 하지 않으면 꼭 후회를 하게 되드라구요.
그래서 검정고시라도 해 볼라고 하는데 나이 들어서 하니까 잘 안돼요.
그래서 지금 요모양 요꼴로 살고 있어요. 밑바닥에서.
사장 그런데요?

-62-
동철 그런데요. 한 애가 있는데요. 걘 나랑은 진짜 다른 앤데요. 그냥 놔두면 꼭 나처
럼 되겠드라구요. 그게 아까워요. 그래서요 내가 걔를 위해서 뭔가를 좀 해주고
싶은데,
나는 아는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사람이란게 그런 거 아네요.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하라고 태어난 거 아니에
요?
그래서 나도 좀 뭔가 해주고 싶은데, 나는 이런 거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사장 당신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누구를 위해서라는 거요?
동철 그게요. 그냥 그런 애가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러고 있게 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잖아요. 예?
사장 (가만히 동철을 보는)
동철 (애원하듯 보는)
사장 뭐해. 빨리 내쫓아.

직원들 일제히 달려들어 동철을 집어 든다.

동철 사장님. 사장님.

발버둥을 치는 동철.

112. 회사 건물 / D
세진이 회사 건물을 향해 뛰어간다.

113. 회사 로비 / D
세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다. 엘리베이터를 누르는 세진.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온다.

114. 복도 / D
세진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그런데 대기실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지는
세진의 얼굴.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동철(E) 놔. 안 놔?
직원1 가만 안 있어?
직원2 미친 놈 아냐 이거.

직원들이 동철을 붙잡아서 면접장을 끌고 나오고 있다. 발버둥치는 동철. 눕기도

-63-
하고 발을 구르기도 하고 별별 짓을 다 하고 있다. 직원들 동철의 머리를 찍어
누르는데 그때 동철의 눈으로 세진이 들어온다. 그 순간 동철이 발버둥을 멈춘다.

동철 알았어요. 알았어. 내 발로 가요. 내 발로.


내 발로 간다니까.
직원1 진짜지?
동철 진짜라니까.

동철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는 직원1, 2.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세진.

면접생1 저 사람 뭐에요?
안내 몰라요. 갑자기 들어와서 문을 걸어 잠그잖아요.
면접관1 다시 시작하지.
안내 다른 분들은 대기실로 돌아가시구요.
33번, 정상훈씨.
상훈 예!
안내 34번 이미려씨?
미려 예!
안내 35번 김도훈씨?
도훈 예!

동철과 세진이 서로를 지나쳐 간다. 말없이 동철을 바라보는 세진. 그리고 세진을
보는 동철.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고개를 돌리는 동철. 가만히 동철의 뒷모습
을 바라보는 세진. 동철이 점점 멀어져 간다. 사운드 오프 상태에서 누군가 부르
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진다.

안내 36번 한세진씨?
세진 예!

그 말에 돌아보는 세진.

115. 면접장 / D
세진, 의자에 앉아 있고 면접관들, 서류를 살펴본다.

사장 오래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자 이제 시작해 볼까요?

-64-
긴장한 얼굴로 보는 면접생들, 그리고 세진.

116. 건물 앞 / D
직원들이 동철을 건물 밖으로 밀어낸다. 걸어나오는 동철. 물끄러미 건물을 올려
다 본다.

117. 면접실 / D
세진, 의자에 앉아 있고 면접관들, 서류를 살펴본다.

사장 한세진씨? 우리 회사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세진 예. 나름대로 조사를 했습니다.
사장 조사해 봤다면 알겠지만 우리 회사는 그렇게 규모가 큰 회사도 아닐 텐데요.
우리 회사에 지원한 다른 이유가 있나요? 아니면 우선은 취직을 하고 싶어선가
요?
세진 회사의 가능성과 사장님의 도전정신을 보고 지원했습니다.
사장 (팔짱을 끼며) 구체적으로 말해 줄래요?
세진 스토리지 시장이 점점 HDD에서 SSD로 변하는 추세는 최근의 일인데 사장님은
작년부터 이런 변화를 추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경쟁 회사보다 2
년이나 앞선 거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임원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신 사
장님의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장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지요?
세진 관련 분야의 기사를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사장 준비를 많이 했네요. 항상 이렇게 준비합니까?
세진 네.
사장 그런데 왜 그 동안 면접에서 떨어졌지요? 그 정도로 준비를 한다면 당연히 붙었
을 텐데?
세진 (망설이다가)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돌아보는 사장과 임원들.

118. 동철의 사무실 / 사장실 / E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는 종서와 김사장.

김사장 대답해봐. 박반장한테 왜 안 간 거야.


이제 어쩔 건데!

-65-
너 땜에 수억 날리게 됐단 말야 새끼야. 룸살롱 영업 취소야 이 새끼야.
동철 (굳은 얼굴로) 종서야. 박반장 내가 담근다.
김사장 뭐 담궈?
담그긴 뭘 담궈 새끼야. 세상이 어느 땐데 지금.
동철 건달새끼들이 근성이 없어!
그깐 놈들한테 그럼 평생 밟히고 살 거에요?
내가 보여줄 겁니다. 건달이 뭔지.
김사장 이 새끼가 미쳤나 이게.

그 순간 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종서. 김사장 놀라서 보면,

종서 새끼. 역시 오동철이다.
동철이 말이 맞아요. 그런 새끼들한테 뜯기다간 우리 남어나는 거 없어요.
건달은 건달식으로 하는 거지.
그렇지 오동철?
동철 내 대신 빵에 갈 놈이나 하나 골라줘.
종서 칼은 재영이가 갖고 들어가면 돼.
동철 (멈칫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 꼭 재영이가 해야 되냐?
재영이 그 새끼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구.
종서 그래서 그래. 아직 짭새 라인에 안 잡혔으니까 그냥 단순 강도 살인으로 하면
돼. 그래야 우리가 의심을 안 받어.
재영이 그 새끼 지금 하라면 뭐라도 할 걸?
동철 ...
종서 그렇게 하시지요 형님.
김사장 ...
동철 ...

119. 동철의 사무실 / N


사무실을 나오는 동철, 그리고 따라 나오는 종서. 사내들이 소파에 주욱 둘러앉아
있다가 동철을 바라본다. 동철과 눈이 마주치지만 피하지 않는 사내들. 동철 한
쪽을 보면 얻어터진 재영이 보인다. 시선을 피하는 재영.
동철 문가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사내들을 노려보는 동철. 그러자 사
내들 엉거주춤 일어나는데, 봉수만 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동철 많이 컸네 봉수. 형님 가는데 인사도 안 하고.


봉수 (시선을 피하려는데)

-66-
동철 인사 똑바로 안해 이 새끼들아?

하며 동철 갑자기 옆의 화이트 보드를 밀어버린다. 사내들 위로 꽈당 무너지는


화이트 보드.
그러자 봉수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사내들도 기립 자세를 취하는데,

동철 나 들어간다.
사내들 드, 들어가십시오 형님.

사내들 억지로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밖으로 나가는 동철. 화난 얼굴로 그런 동


철을 보는 봉수. 종서 눈짓을 하자 봉수 화를 참는다. 밖으로 나가는 종서.

120. 동철의 사무실 밖 / N


동철 밖으로 나오는데 종서가 따라 나온다.

종서 동철아.
동철 (돌아보면)
종서 애들 신경 쓰지 마라. 내가 알아듣게 얘기할 테니까.
동철 씨발. 누가 신경 쓴대 새끼야?
두고봐 이 새끼야. 내가 저 새끼들한테 건달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테니까.
간다.
종서 그래. 가라.

동철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런 동철을 바라보는 종서. 그때 봉수가 밖으로


나온다.

봉수 형님. 저 새끼 어쩌실 겁니까?


종서 박반장 끌어들일 미끼나 하나 만들어라.
동철이는 그 다음이다.

121. 연립 앞 / N
동철이 터벅터벅 걸어온다.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저만치 계단 한쪽에
세진이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멈칫하는 동철.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돌아선다.
언덕길을 다시 내려가는 동철.

122. 거리 / D

-67-
잔뜩 찌푸린 하늘. 거리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있는 종서, 동철, 재영.

종서 박반장 새끼. 여기 저기 조직 돌아다니면서 돈 뜯어다 룸살롱 차릴려고 했나 보


드라.
우리 사업에 초치고 길게 살줄 알았나 보지?
동철 ...
종서 일 치르고 나면 재영이 네가 칼 들고 경찰서 찾아가.
내가 그랬습니다. 하고 몇 년 있다 나와. 잘 할 수 있지?
동철 (흘깃 보는)
재영 예. 형님.
종서 그래. 네가 차세대 에이스다.

동철의 손에는 신문지에 싸인 칼이 들려져 있다.


차가 멈춰선다.

종서 동철아.
동철 (보면)
종서 성공해라.
동철 너 새끼. 너도 나 못 믿냐?
종서 믿는다.

동철 차에서 내린다. 종서 차를 출발시킨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


철과 재영.

동철 어떻게 한다구?
재영 형님이 박반장을 담그면 그 칼을 갖고 경찰서를 찾아갑니다.
동철 너 씹새끼 똑바로 해라.
경찰서 가서 횡설수설했다간 우리 조직 개박살나는 거야 새끼야.
알았어?
재영 예, 형님.
동철 씨발 새끼 병신 새끼.

동철 갑자기 둘러서서 주위를 돌아본다.

재영 뭐 찾으십니까?
동철 오줌마려워서 그런다 새끼야.

-68-
123. 골목 / D
돌아서 있는 동철의 뒷모습.

동철 씨발. 오줌도 안 나오네.

동철 재영쪽으로 오는데 재영은 한쪽에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그런


재영을 잠시 바라보는 동철.

동철 뭐해 이 새끼야.
재영 형님, 오늘 눈이 올까요?
동철 뭐?
재영 아까 라디오에서 오늘 첫눈 온다고 했거든요.
동철 ...

동철 재영을 보면 재영 실수했다는 듯 시선을 피한다.

재영 죄송합니다, 형님...

동철 앞서 걸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는 재영. 그런데 어느 순간 동철이 걸음을 멈


춘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동철.

재영 형님. 왜 그러십니까?
동철 재영아.
재영 예, 형님.
동철 너 가라. 이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재영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철 너 이 일이 어떤 건지 알고 있어?
재영 알고 있습니다.
동철 병신새끼. 알긴 뭘 알어 이 새끼야.
너 이러고 갔다오면 잘 될 거 같지? 세상이 널 기다릴 거 같지?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말이야. 세상이 그렇지가 않어.
차라리 다른 일을 찾아 봐. 기술 없으면 세차라도 하든지.
그럼 밥은 떳떳이 먹어.
재영 형님... 왜 이러세요.
동철 가라고 이 새끼야!

-69-
동철 다짜고짜 재영의 배를 발로 걷어차는 동철. 재영 뒤로 콰당 넘어진다.

재영 형님 저 잘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동철 잘 하긴 뭘 잘 해 이 새끼야.

하지만 대답 없이 사정없이 재영을 두드려 패는 동철. 재영의 얼굴에서 피가 흐


른다.

동철 (재영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는) 너 이 새끼 똑바로 들어.


앞으로 너 이 판에서 다시 내 눈에 띠면 그땐 너 죽는다. 알았어?
재영 형님...
동철 (재영의 얼굴을 치고는) 알았냐구 새끼야.
재영 예, 형님.

동철 종이에 싸인 칼을 뒤에 허리춤에 집어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쪽으


로 간다. 멍하니 바라보는 재영.

124. 건물 안 / D
동철 지하 계단을 내려 와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빛이 잘 비치지 않아 주위는
어두컴컴하다. 룸살롱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는 듯 내부는 잔뜩 어질러져 있고,
벽 한쪽엔 각종 색깔의 페인트가 쌓여있다. 한쪽에 몸을 숨기는 동철.

125. 건물 앞 / D
흰색 승용차가 한 건물 앞에 멈춰서고, 박반장이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
가는 게 보인다.

126. 건물 안 / D
동철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때 박반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반장 뭐? 내 여기 둘러보러 와 있는데?


공사를 하기로 했으면 몰아쳐서 해야지.
아 공사가 끝나야 대금을 주지. 공사 하다 말고 돈을 달라면 어떡하나.

박반장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온다. 박반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스위치를 켠


다. 그러자 불이 켜진다. 한쪽에 숨어있던 동철 신문지를 버리고 칼을 빼든다.

-70-
박반장 돈 주기 전에 못해? 진짜 그런 식으로 나올거야? 이거 되게 서운하네.
알았어. 알았어. 당신이 내 사정 안 봐주면 누가 봐주나.
뭐? 그래. 내 이번 주 안에 확실히 해결해줄게. 빨리 인테리어가 끝나야 돈을 벌
어들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동철 뒤에 칼을 숨기고 박반장을 향해 걸어간다. 아직 박반장은 동철을 보지 못


한다. 이제 동철은 박반장의 바로 뒤에 와 있다.

박반장 알았어. 알았어. 그래요. 끊어.


(전화를 끊고는) 개새끼들. 일도 못하는 놈들이 돈만 밝히기는.

그런데 그때 박반장이 동철을 돌아본다.

박반장 오동철이 니가 여기 웬 일이냐?

하다가 이상한 느낌에 굳는데, 그 순간 동철 칼을 빼내서 박반장을 찌른다.


하지만 박반장이 동철의 손목을 잡는다.
동철의 칼이 박반장의 배를 쑤시고 들어간다.
동철이 칼을 잡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밀고 들어온다.
박반장은 동철의 손목을 잡고 더 이상 칼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으며 뒤로 주춤주
춤 물러난다.
박반장은 페인트 통이 쌓여있는 벽에까지 몰리게 되고, 페인트 통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그 바람에 동철도 균형을 잃고 같이 넘어진다.
쌓아놓은 빨간색 페인트 통의 페인트들이 쏟아진다.
동철과 박반장, 그 페인트들을 온몸에 묻혀가며 서로 한데 엉킨 채 몸싸움을 한
다.
박반장의 힘이 만만치가 않아 이내 동철에게서 칼을 빼앗고 만다.
그러나, 동철이 다시 박반장의 팔을 치는 바람에 칼은 저만치에 나가떨어진다.
동철과 박반장은 서로 칼을 집으려고 주먹다짐을 벌인다.
동철의 손이 칼을 잡는가 싶으면 어느새 박반장의 손이 동철의 손을 쳐내고 박반
장의 손이 칼을 잡는가 싶으면 동철이 발로 칼을 밀어낸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몸은 온통 새빨간 페인트로 범벅이 된다.
그러던 순간 결국 박반장이 먼저 칼을 집고 만다.
박반장, 칼을 집어든 채로 동철에게 달려든다.
칼이 동철의 배를 찌른다. 동철의 동공이 커진다.

-71-
박반장 이성을 잃고는 다시 한번 동철을 연거푸 찌른다.
고통으로 털썩 쓰러지는 동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박반장 당황해하며 황급히 지하를 뛰어 나간다.

127. 건물 밖 / D
텅빈 계단. 그 위로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재영이 주위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듯 계단 쪽으로 온다. 재영 어둠 속을 응시
하는데, 누군가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온다. 동철이다.
그러나, 동철의 배에 칼이 꽂혀 있다.
그것이 페인트인지 피인지 모를 만큼 새빨간 액체들이 주르르 흐르고 있다.
동철, 자신의 배를 감싼다.
그러나, 힘이 빠지는 것 같다.

동철 좆같네 씨발...

동철, 계단에 주저앉아 위를 바라본다. 재영이 얼른 다가온다. 사이렌 소리는 점


점 더 가까워져간다.

재영 형님!
동철 그냥 가. 가 이 새끼야. 빨리.
재영 형님...
동철 가라니까.

재영,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서 달아난다.


동철 다시 한걸음 한걸음 기다시피 계단을 올라간다. 동철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
이 “쏴아- 쏴아”하며 풀무질 하는 소리와 함께 새나온다.
동철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결국 계단에 눕는다.
동철 “흐응, 흐응”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마치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가만히 허
공을 응시한다.

동철 (마치 세진에게 말하듯) 취직은 했냐?

동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동철 계단 쪽을 보면 사이렌 소리는 점점 커지고


계단 밖 입구 쪽으로 진눈개비가 날리고 있다.

128. 연립 앞 / D

-72-
진눈개비가 연립 현관문 위로 쏟아져 내린다. 현관 밖으로 나오는 세진. 진눈개비
를 올려다본다.
화면 어두워진다.

129. 이미지
화면 다시 밝아지면 연립 복도, 계단, 현관문, 연립 외관, 동네 풍경, 그리고 한강
대교 위를 달리는 기차 등이 보여지며 그 위로 세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세진(E) 그 시절이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였다는 것을...

130. 세진의 새 회사 / 복도 / D
화면 다시 밝아지면,
누군가의 시점으로 보이는 넓은 사무실의 모습.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남직원의 얼굴이 카메라에 나타난다.

남직원 자자, 여기 봐요. 이번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이 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제서야 보여지는 신입사원들의 모습. 그런


데 그 속에 세진은 보이지 않는다.

남직원 한 대리는 어디 갔지?

하고 주위를 살피는데,

여직원 PT 준비하신다고 아까 회의실에서 자료 정리하고 계셨는데...


남직원 어? 저기 오네.

신입사원들이 남직원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 세진이 노트북을 켠 채 분주하게 다


가오고 있다.

세진 어머. 신입사원들이에요?
남직원 응. 그럼 인사를 시작할까? 이쪽은 우리 회사 최연소 대리 한세진 대리.

신입사원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세진. 세진 신입

-73-
사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다.
세진의 눈가가 뜨거워진다.

세진 반가워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미소 짓는 신입사원들. 카메라 한쪽으로 가면 세진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노호혼.

131. 편의점 앞 / D
세진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운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
오는 세진.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며 물건들을 고른다.

세진 홈쇼핑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에요. 그 김치는 맛있는 거에요.


...
알았어요. 다음 달에 휴가니까 그때 뵈요.
...
알았어요. 아빠.
...
아빠. 사랑해요.
...
사랑한다구요.

전화를 끊는 세진. 다시 물건들을 고르는데 그때 들려오는 소리.

남자(E) 마세이 하나요.


여점원 마세이가 뭐에요?
남자(E) 마일드 세븐.

세진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132. 세진의 새 회사 / D
텅빈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동철과 세진.

동철 니가 이 회사를 다닌다고?
세진 예.
동철 그럼 진짜 취직한 거냐?
세진 (브이자를 그리며) 취직 했어요.

-74-
동철 야. 취직 했구나.
세진 네. 했어요.
동철 잘됐다. 정말 잘 됐어.
세진 (미소 짓는데)
동철 그럼 명함도 있어?
세진 명함요?
동철 취직 했으면 명함 한 장 줘야지.
세진 (명함통에서 명함을 꺼내) 여기요 명함.
동철 우와 차장이네? 차장이면 높은 거잖아 씨발.

서로를 보는 세진과 동철.

세진 하나도 안 변했어. 똑같애...


동철 너는 조금 변한 거 같다.
화장도 했네. 화장 안 한 게 더 이쁜데.
세진 화장 안 해도 이쁜 나이는 지났어요.
동철 그때 너 진짜 이뻤는데.
세진 지금은 안 예뻐요?
동철 이뻐. 지금도 이뻐.
세진 (미소 짓는데)
동철 (같이 웃는데)
세진 나 지금까지 기도했었어요.
단 한번이라도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다고
오동철씨한테 단 한번이라도 지금의 내 모습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철 이렇게 보고 있잖아.
세진 (다시 웃는데)
동철 그러니까 여기가 네 자리란 말이지?
우와. 좋네. 이 의자...
이거 꿈은 아니지?

동철 의자에 앉아 한바퀴 빙그르르 돈다. 그런데, 의자가 도는 순간 동철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놀라는 세진. 주위를 돌아본다. 당황한 세진의 얼굴.

CUT TO
세진이 눈을 뜬다. 주위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세진. 실루엣으로 보이는 창밖 풍
경.

-75-
세진의 쓸쓸한 얼굴.

133. 주유소 / 세차장 / D


뿜어져 오는 물줄기와 위 아래로 움직이는 브러시. 차 안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세진.

세진(N) 언젠가 유니콘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니콘은 함께 있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지만 그 사람 옆에 남아있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는 어쩌면 나의 유니콘이 아니었을까?

그 순간 세차가 모두 끝나고 차가 밖으로 나온다. 하얗게 밝아지는 화면 위로,

세진(N) 그가 어디에 있든 그도 이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화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한 남자가 마른 걸레를 들고 다가온다. 그는 바로


재영이다.

재영 이쪽으로 오세요. 조금만 더. 됐습니다.

재영이 차를 닦기 시작한다. 가만히 정면을 보고 있는 세진. 그런데 한 남자가 세


진의 옆 유리를 닦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남자의 손길이 멈춘다. 세진 무심코 고
개를 돌리는데 한 남자가 자기를 보고 있다. 그는 바로 동철이다. 유리창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진과 동철.

재영 형님, 빨리 안 닦고 뭐 하고 있어요.

하지만 동철은 대답 없이 세진만 바라본다. 이상하다는 듯 동철을 바라보는 재영.


세진이 동철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가만히 보기만 하던 동철도 미소를 짓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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