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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각본, 감독 : 정지우

등장인물

서민기 전(前) 은행원 (30대 초반)

최보라 어린이 영어학원 원장, 서민기의 부인 (20대 후반)

김일범 웹 디자이너, 최보라의 정부(20대 후반)

이미영 주부, 서민기의 대학동창 (30대 초반)

서 연 서민기와 최보라의 딸 (생후 5개월)

주인장 헌 책방 주인 (60대 초반)

배불뚝 강력반 베테랑 형사 (40대 후반)

구렛나루 강력반 신참형사 (30대 초반)

은행원 서민기의 직장 선배 (30대 후반)

양복점주인 서민기의 상복(喪服) 재단사 (50대 후반)

보모 아파트 탁아방 보모 (30대 중반)

아르바이트생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생 (20대 초반)

미스 김 최보라 영어학원의 여직원 (20대 중반)

파출부 서민기집의 파출부 (40대 중반)

긴머리 여자 김일범의 이웃집 여자 (20대 중반)

1. INT. 오피스텔 복도. 낮 - 크레딧

창문을 통과한 따사로운 햇살이 길게 이어진 오피스텔 복도 바닥에 규칙적인

마름모 꼴 문양을 만들어 내고, 빨랫줄에서 떨어진 러닝셔츠를 문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사이를 헤치고 다닌다. 주변의 작은 소음들 사이로 음악소리 작게 들리고 스 탶,

캐스트, 자막 떠올랐다 사라지는 중, 멀리 복도 중간 즈음 계단을

막 돌아 나온 여자(최보라)가 보인다. 고개를 숙인 채 느리게 다가오는 그녀,

화면 밖 소리로 현관문 열고 닫는 소리 들리자 고개를 든다.

서른이 채 안된 듯한 나이에 맑은 눈빛을 가진 최보라의 모습이 보인다.

현관문을 나선 구두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다가와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노란 셔츠를 입은 긴 머리 여자가 최보라를 스쳐 지나간다.

잠시 멈춰서 멀어져 가는 노란 셔츠의 뒷모습을 보는 최보라.

지금껏 정지해 있던 카메라는 다시 걷기 시작하는 최보라를 따르고 그녀가 멈춰서면 정지한


다.

현관문 옆에 달린 차임벨을 누르며 멀어져 가는 노란 셔츠를 쫓는 최보라의 시선,

눈썹 사이에 주름이 잡힌다. 이윽고 문이 열리면 큰 키에 건장한 체형의

호남형 남자(김일범)가 미소 지으며 나온다.

최보라

(복도 저쪽을 의식하며) 누구 왔었어?

김일범

아니...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빈 복도위로 <H APPY END> 타이틀 떠올랐다 사라진

다.

2. INT. 오피스텔. 낮

버티컬 블라인드 사이로 투명한 정오의 볕이 스며들고 스테인레스와


가죽재질의 느낌으로 꾸며져 있는 오피스텔의 실내장식은 단정한 느낌을 준다.

20인치가 넘는 컴퓨터 모니터, 디자이너를 위한 전문가용 매킨토시

컴퓨터가 보이고 선반 위에 올려진 CD플레이어는 위 덮개가 유리로 만들어져


빠른 속도로 돌고있는 CD가 들여다보인다. 하지만 CD속도와는 다른 느낌으로 느린
블루스풍의 여자 보컬의 들려오고 커피 메이커에서 커피 물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다시 카메라 느리게 이동하면 최보라와 김일범이 침대 위에서 엉켜 있는 것이 보인다.


격렬한 피스톤 운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보라의 손이 김일범의 어깨죽지를 훑고 내려가
잘룩한 허리를 어루만지고 탄력 있는 히프를 손으로 쥔다.

최보라

흐..흑..난..니...허리...선이 좋아......흐흐...내내..너랑 하는......생각만 했어...


헉헉..큰일났어...난...이제....

김일범

헉헉....정말?...헉헉......나두 그래....
여느 여자의 허리만큼 굵은 김일범의 허벅지 근육이 반복적으로 부풀어 오르고

그 다리 사이로 최보라의 가는 다리가 솟아 오른다. 과장되지 않은

신음소리와 거친 호흡이 이어지고 정상 체위에서 후방 체위로 체위가 바뀌며 최보라는 엎드

린 모습,

김일범은 무릎을 딛고 선 모습이 된다. 최보라의 허리에 잡히는 군살을 손으로 어루만지는

김일범,

고개를 뒤로 돌린 최보라가 김일범의 손을 '탁'친다. 웃음 짓는 김일범과 최보라.


김일범의 균형잡힌 역삼까형 상체위로 굵은 땀 줄기가 흘러내리고
상체를 뒤로 돌린 최보라가 숨가쁘게 몇 마디를 뱉는다.

최보라

후우..나이..드니까...후후..자 꾸.....군살이..잡혀..

김일범

헉헉...아니야...좋아.....

최보라는 상체를 더욱 웅크리며 김일범의 사 타구니로 손을 뻗는다.

최보라

흐...후...... 만져보고 싶어...

길게 손을 뻗어보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애 타는 표정을 짓는 최보라.

.....잡아보고 싶어!...

최보라의 몸이 활처럼 굽어들고 김일범의 몸은 최보라의 몸에 더욱 밀착된다.


최보라의 손이 김일범의 사타구니 안으로 들어가고 침대 앞쪽으로 밀려 나가던

두 사람은 몸 방향이 바뀌어 침대 옆면으로 떨어질 듯 하고,

김일범의 오른쪽 어깨가 버티컬 블라인드에 닿으며 블라인드가 들썩거린다.

그 틈으로 강렬한 태양 빛이 블라인드 흔들리는 리듬에 맞춰 최보라의 얼굴에 쏟아진다.

눈이 부신 듯 두 눈을 꼭 감는 최보라. 거의 동시에 절정에 오른 두 사람의

높은 신음소리가 이어지고 사정을 한 듯 몸을 뒤틀던 김일범이 최보라의 몸 위로 쓰러진다.

몰아 쉬던 호흡소리가 서서 히 잦아들고 스피 커에서 나오는 블루스 곡과 히터의 낮은 팬소리


만 남는다.

편안한 정상 체위로 위치를 바 꾼 김일범이 최보라를 꼬옥 껴안는다.


최보라의 팔도 근육이 불끈 나온 김일범의 등을 휘감는다. 한동안 그 렇게 멈춰있는 두 사람.

3. INT. 헌책방. 낮.

마른 체형, 부드러운 얼굴선, 노타이에 양복차 림을 한 30대 초반의

남자(서민기)가 헌책방의 한쪽 모서리, 야트막하게 쌓여있는 책 위에 걸터앉아


상기된 얼굴로 빨려들 듯이 책을 읽고 있다.

천장 끝까지 겹겹이 책이 쌓여있는 헌책방 내부는 'ㅁ'자 모양으로 된


소로(小路)를 따라 책방 내부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위에서 보면 'ㅁ'자의
왼쪽 상단 모서리 끝이 터져서 입구가 되는데, 'ㅁ'자의 상단은 원래 통유리로
쇼윈도가 되어야 정상이었겠지만, 쌓여 있는 책 때문에 그 틈새로
헌책방 앞거리가 부분부분 보이는 정도이다.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는 서민기가 책을 읽고 있으며, 오른쪽 하단 모서리는

주인장이 앉아있는 소위 '카운터'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카운터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데, 그 이유는 주인장의 작고 오래된 목조 책상이 하나 있어

주인장의 독서대로 자리할 뿐 그 밖에 금전등록기가 있다거나 영수증,

전자계산기 따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인장은 머리가 훌렁 벗겨진 60대의 노인이고

굵은 뿔테 안경에 때묻은 셔츠차림이다.

창밖에 내리는 비 때문에 헌책방 안은 퀴퀴한 냄새와 눅눅한 느낌이 나고,


찢어진 책들에 풀칠을 하고 있던 주인장은 서민기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주인장

(큰 소리로) 아, 그만 봐!

서민기

(책에다 고개를 묻은 채) 예....

그 렇지만 변함 없이 책을 계 속 읽는 서민기.

주인장

(큰 소리로) 그만 보라니까, 여가 도서관인가?

고개를 든 서민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듯 아 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서민기

쩝. 쩝.. 책을 골라야 사든 말든 하지...우리 선생 님 성미도 참.....

서민기는 읽던 책을 덮어 앉았던 자리에 놓고 책더미 위에서 풀쩍 뛰어 내린다.


그는 상당히 마른 체형인데도 불구하고 몸을 이리 저리 배배 꼬아 주인장이 앉아있는

'카운터'까지 왔다. 카운터 근처의 책 더미 위에 챙겨 놓았던 색 바른 하드 커버 2권


가운데 붉은 색 책은 카운터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다른 한 권은 손에 들었다.

서민기

( 손에 든 책을 들어 보이며) 이 거 어디다 둘까요?

주인장

왜?.... 마음이 바 뀌었어?

서민기
예...

주인장

재미 없어?

서민기

글쎄, 연애소설 보다는 무슨, 추리소설에 가까워서.... 아시잖아요....애절하고, 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그런 진짜 연애소설이 재미

나죠.

주인장

(눈을 흘기며) 까다 롭기는... 사는 게 다 그 렇구 그런거지, 줘 봐.

서민기의 손에서 책을 뺏어든 주인장은 뒤 페이지를 펼쳐 보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잠 깐 머리를 정리한다. 서민기는 주인장의 처분을 기다린다. 책을 서민기에게 건네며

입구에서 들어와 직진을 하면 중간 께 우측으로 고등학 교 참고서 모아 놓은 데 알지?

서민기

예,

주인장

거기서 옆으로 네 다섯줄 더 가면 추리소설 모아 놓은 데 있어. 그 위에 갖다 놔!

서민기

(과장 되게) 알겠습니다, 선생 님!

주인장

그 럼 이거 한 권만 사가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아까 저기서 보던 건 안 사?

구입하지 않을 책을 놓아두기 위해 뒤돌아 서며

서민기

그건 더 읽어 봐야 될 거 같애서...

어련하겠냐는 표정으로 밉지 않은 인상을 써보는 주인장. 중 고등학교 참고서류를 모아


놓은 소로길에는 고등학생 둘이 책을 고르고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서민기.

4. EXT. 탑골 공원. 낮.
햇살이 내리 쬐는 한 뼘의 자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다양한 탑골 공원의 군상들이 보인

다.

나름대로 멋을 낸 노인들, 실직자인 듯 양복차림에 멀끔한 얼굴들, 잠에 취한 홈리스들.


늦은 봄날의 아늑함으로 탑골공원은 활기에 넘친다.

벤치에 앉아 붉은색 커버로 된 연애소설을 읽고 있던 서민기는 눈시울이 뜨거워진채


하드

입가엔 미소가 떠오르는 데, 주위에서 나는 웃음소리가 혹 자기를 보고 그러는 것인가

싶어 잠시 주변을 살핀다. 눈가 주위를 손가락으로 쓰윽 닦아내며 다시 책으로 돌아간다.


누런 갱지로 된 내지(內紙) 어떤 페이지에는 김치 국물이 흘러 있고, 또 어떤 페이지에는

침이 흘러 지도를 그리고 있기도 하며, 어딘가는 모기가 납작하게 말라붙어 박제가 되어 버


린 페이지,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 찢겨져 나간 페이지도 있다. 붉은색 하드커버를 덮는 서민기,


감정이 복바쳐 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는다. 감상적인 음악이 시작된다.

5. EXT. 공작아파트 13동 현관 앞. 해질녘.

노을이 아름다운 공작아파트 15동 전경이 보이는데 베란다 밖으로 나오는 각


세대별 조명 빛깔에 공통적으로 TV의 푸른빛이 함께 섞여 나온다.
아파트 전체가 축구 중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축구 중계소리가 흘러 나온다.
아나운서(소리)

네, 이상헌 선 수 길게 홍명 보에게 홍명 짧
보 게 이상 윤에게, 그러나 패 스미스,

해 설자(소리)
예, 지금 한국은 미드 필 싸움
드 에서 자 꾸 밀리고 있어 요. 이럴땐짧 고 정 확 패한 스가...

탁아방이 있는 13동 현관을 막 나선 서민기는 서연이를 안고 있는 데, 동물과 꽃무늬로 장식

1 층 탁아방 베란다 창문이 열리며 보모가 나온다. 서민기에게 손짓을 하며

보모

연이 아 빠~아! , 내가 깜빡 했네 , 연이 우 유 먹 을 시간이 지 났는데, 여서 먹 이구 가지?

서민기

( 손을 가로 저으며) 집에 가서 요...

그 렇지만 서민기 품속 의 서연이는 칭얼대고 있다.


보모

(사람 좋은 얼굴로) 금방인 데~에......

보모에게 괜찮 다는 손짓을 한 서민기는 축 구중계 소리를 얼핏 듣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서민기

(서연이를 보며) 연이 야 얼른 가서 축구 보자 ! 축구.

서연이는 본 격적으로 울기 시작한다.

아나운서(소리)

흥분
( 해서) 순 간 최 용수 볼 았습니다. 예, 몰고
을 잡 들어가는 최 용수,
덴 마크 수비수 2명 우리 공격수 2명
아주 좋은 기횝 니다.

발 걸음을 서두르는 서민기.

최용수 한사람 제꼈습니다. 최용수 센터리잉, (극도로 고조된 목소리)


예, 유상철 문전 쇄도합니다. 유상처얼~, 슈웃, 골, 골인

순 간 공작아파트 15동 베란다 쪽 전 경으로 확 대된다. 아파트 전체에서 '와~이'하는 환호 소

리,

박수 소리가 터진다. 울고 있는 서연이를 안은 서민기는


오른 손을 번쩍 치켜올리며 풀쩍 뛰어오른다. 환호하는 서민기.

골인....한국 축구, 드디어 골을 넣습니다. 고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해냈습니다.


유상처얼, 유상철이 해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느린 화면이 다시 나옵니다...
시청자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안으로 들어간다.

6. INT. 공작아파트 15동 1 층승 강기. 해 질녘.

승 강기에 탄 서민기는 '9층' 버튼을 누르고 뒤로 물러선다. 막 승 강기 문이 닫 히려 하는 데


문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여자(소리)

같이 가요!
그 소리를 들은 서민기는 '열림'버튼을 누른다. 반 쯤 혔 승
닫 던 강기 문이 열리자 얼굴 선과

몸매 선이 여리고 가 늘 게 생긴 30대 초반의 여자(이미영)가 양 손에 비 닐 쇼핑백 잔뜩 을

든 채 승강기에 탄다. 쁜숨
가 을 몰아쉬며 서민기를 본 이미영은 눈이 동그 래진다.

이미영

(가 쁜숨 을 쉬며) ~
어 ....... 너어, 민기 아니 야?

서민기

야! 이미영 너 여기 살아?

이미영

어 ~쩜 , 몇 달 됐 어 난, 여기 살아? 몇 호? (서연이를 보며) 어머, 니 아들이 야?

서민기

딸이 야아 딸, 벌써 몇 년 됐 어 산지, 990 호 살어,

이미영

정 말 세 좁 상 다아.....

이미영의 비 닐 쇼핑백 가운 데 큼지막한 것 서너개를 들어주는 서민기.

서민기

( 쇼핑백을 보며) 뭘 이 렇게 많 샀 이 어?

11 층 버튼 을 누르는 이미영.

7 . EXT. 이미영아파트 문 앞. 해질녘.

이미영

..... 좋지, 우리 남 편하구 같이 식사나 한 번 하자......

현관문을 연 이미영은 자신이 들고 있던 비 닐 쇼핑백 을 현관 안에 내 려놓고, 서민기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 받 는 데, 초등학 교 1,2학 년 정도 돼 보이는 아이(김지 훈 )가 뛰어 나온다.

김지훈
엄 ~ ! 마 아

이미영
아저 씨 한테 인사해라 ! 우리 아들 김지 훈.

서민기에게 넙죽 인사를 하는 김지 훈 .

차 한 잔 하구 갈래 ? (김지 훈 의 머리를 만지며 서민기에게) 애기 이름이 뭐야 ?

서민기

서 연. 외 字야 자( ) , 근데 얘 가 지금 배고파서 짜증을 막 낸다. 다음에 보지 뭐 .

'만화영화 한단 말이야!'를 외 치며 집안으로 달 려가는 김지 훈 .

이미영

(김지 훈 을 향해) 야! 야! (서민기에게) 여기 사는지 알았으니까 자주 보겠네, 그래 얼른 가서

우 유먹 여라. (서연이를 향해) 우리 다음에 봅시다아! (집안에 대고)


지 훈 이 너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

서민기

간다아 !
이미영

가아 . 고마 ~ 워!

중 앙 향 뒤
계단을 해 돌아서는 서민기. 그의 등 뒤로 집안에서 외 치는 김지 훈 의 소리 들린다.

'안 녕히 세요!' 가

CUT T O.

IN SER T.

이미영의 현관문이 닫 히는 순 간 카메라는 공작 아파트 복도 측 전경을 잡는다.

그러니까 아파트의 베란다 측 반대 편이 된다. 각 층당 세12 대가 일정하게 배열 되어 있는데


중 앙 계단, 승 강기 등으로 나 갈수 있는 복도 입구를 중 심 으로 우 측에 6가구 좌측에
6가구의 현관문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11 층 복도입구를 향해 걷는 서민기의 모습이 보

인다.

8 . INT. 서민기아파트. 밤.

현관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선 서민기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 서연이를 소파위에 뉘 여 놓


고,

T V 를 켜고, 들고 있던 연 애소설을 식탁 위에 내 려놓는다. 추구중계가 배경음으로 들린다.


서민기

그 래, 잠깐만 기다 려라! 얼른 우유먹자!........

그렁하게 맺혀있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아낸 서민기는 상의를 벗어 의자 위에 던진다.


식탁 구석에 놓인 분유통을 열고 분유통 안을 들여다보는데, 헐겁게 닫힌 뚜껑 때문인지

분유통 안에 몇 마리 개미들이 움직이고 있다. 분유통을 식탁 위에다 소리나게 내려놓고


식기 건조기 앞으로 가 젖병을 챙기고 보리타를 데우려고 가스렌지를 켠다. 그는 TV를

힐끔거리며 식탁에 앉아 분유통 측면에 쓰여 있는 월령별 분유량을 읽고 분유통 안에 든


수저를 이용해서 분유를 뜨려 하는데 개미를 피해 분유를 뜨는 것이 쉽지 않다.

서연이가 악에 받혀 더욱 크게 우는 소리 들린다. 서민기는 개미가 들어 있는 분유통을


덮어 찬 장 구 석 넣 새 분유
에 고 통을 꺼내는 중, 축구장면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서민기

어어.............에라, 자식아 ! 동네 축굴해라!


CUT T O .

서연방의 아기 침대, 물고 있었던 젖병이 팔꿈치께에 굴러 떨어져 있고, 무슨 꿈을 꾸는지


깊 이 잠든 서연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거실, 서민기의 뚜껑이 열린 분유통에 담배재를 털어낸다. 재떨이로 사용하는 분유통에는


'아기사랑'이라는 상표가 보인다. 소파 깊숙이 앉아 연애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는 서민기.
9 . INT. 오피스텔. 밤 .

IN SER T.

스 무 살 시 절, 최보라가 찍 은 사진들이 클
로즈 업되 는데 일반 인화지 사진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폴 라로이드 즉석사진이다. 대개의 폴 라로이드 사진은 자 셀 르 잡고 찍 은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스 냅 형태의 모습이다.

'투게더' 아이스크 림 통을 들고 웃고있는 스 무 살의 최보라 사진, 김일범과 함께 찍 은 사진,

M 찍
T에서 은 단체 사진 등등. '오윤'의 판 화가 큼직하게 새겨진 무늬이거나 행사를 알리는
투박 글씨 한 가 새겨진 허름한 T-셔츠에 바지에 청 주로 입고 있지만, 빛나는 눈동자에 윤 기

있는 피부가 매끈하게 턱 선을 만들고 있다.

김일범(소리)

뜨겁 다.....

CU O T T .

최보라

( 찻잔 받 을 으며) 땡큐! ....


침대 위에 엎드린 최보라는 낡은 앨범을 펼쳐 놓고 있다가 붉은홍차가 담 찻잔 받
긴 을 아

잠시 앨 범 위에 놓는다. 뜨거운 찻잔의 온도 때문에 앨범의

셀룰 로이드 비 닐 위로 원형의 습기가 차오른다.

최보라가 찻잔 을 들지 않은 손으로 습기를 '슥슥' 닦아내자 약간 변색이 된 폴라로이드


즉석 사진에 스 무 살 시절이 그녀 모습이 나타난다. 꾸밈없는 밝은 미소. 그 시절만의 광채가

아름 답 다.

최보라

(감동한 목소리로) 와아! 이런 사진 있는지 몰랐네........


이건 한 장 밖에 없는 거잖아, 언제 찍었어어?........

침대에 걸터앉은 김일범은 아 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김일범

끝까지 넘겨봐!

김일범에게 건 네 받 은 차를 한 모금 마신 최보라는 찻잔 을 다시 김일범에게 건 네며


앨 범을 넘기기 시작한다. 스 무살 시절의 기념 사진들이 흘러가고, 최보라의 독사진들이 이어

진다.

최보라

~
와 , 이건 나 줘!.......

도리 질을 하는 김일범.

.....정말 웃겨, 나보다 내 사진을 더 많 이 가지고 있어 !

드디어 앨범의 끝 페이지가 펼쳐졌다. 그 페이지에는 편지 봉투가 붙어있다.

이 거 뭐야?

김일범

니가 쓴것 도 몰라?

최보라

뭐 ?

앨 범에서 편지봉투를 꺼내 열어보는 최보라, 봉투 안에서 반지가 굴러 떨어진다.


이제야 뭔지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 최보라. 시트 위에서 반지를 집어

든 채 봉투 안에서 편지지를 꺼낸다. 편지 내용을 읽기 시작하는 최보라.

입이 달삭거리는 사이로 감격한 표정이 떠오른다.


이 걸 아직도 갖고 있어?

김일범은 편지 봉투 안에 들어있던 1 금 반지와 8 같은 디자인의 커플링을 손가락에 끼고 있

다.

반지 낀손 을 들어 보이며

김일범

난 반지 빼 본 적 없어........

편지를 읽던 최보라는 김일범을 바라본다. 두 사람 모두 조금씩 어색해진다.


최보라가 먼 찻잔
저 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 난다. 반팔 티셔츠에 큼직한 남자 줄무늬 팬티를

입고 있다.

최보라

( 짐짓 쾌활 하게) 이 거 정 말 편하다아, 아무것도 안 입은 거 같애, (팬티 고무줄을 좌우로 당


기며)

남자들은 참 편하겠어.....그치?

10. EXT. 오피스텔 앞. 최보라 승용 밤


차. .

IN SER T.

주 황색 나트 륨 등이 휘황하게 밝혀진 도 심 야경 이 보인다.

헤드라이트가 꺼지며 시동이 꺼지는 최보라의 승용 차.

CUT T O .

최보라의 승용 차 안.

김일범

나 없을 때 올 수도 있잖아.
김일범은 최보라의 열 쇠 고리 뭉치에 자신의 오피스텔 키를 끼운다. 고개를 끄덕이는 최보라.

자동차 키를 키 홀더 꽂 에 아준다. 시동이 걸리며 헤드라이트가 들어오는 최보라의 승용 차.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11. EXT. 야구연습장. 밤 .

뿌 우연 수은등이 켜진 야구연습장 타석에 홀로 선 김일범. 자동 피 칭 머신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때려낸다. 알루미늄 배트에 야구공이 맞는 '까-앙'소리가 적막한 밤 공기를 가른

다.

'까-앙', '까-앙'

12. INT. 노 래방. 밤


.

널찍 한 크기의 노 래방 룸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 최보라. 춤 까지는 아니지만 간간 히


어 설픈 율동을 섞 어 가며 애절하게 노래를 한다.

13. INT. 서민기아파트. 새벽.

검푸 른 새벽 하 늘 이 창 밖으로 보이고, 소파에 몸을 깊 숙이 묻은 채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던

서민기는 온 몸을 뒤틀며 뻐 리적 댄 다. 손에서 떨어진 연 애소설은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 위로 샤워 물소리 들린다.

물소리에 어 렴풋 이 잠에서 깨어나는 서민기. 누 워 죽 소파 위는 서민기의 땀으로


있던 가

번 거리고 비
들 몽 몽 사 간에 소파 위에 가부좌를 튼다. 그제서야 샤워 물소리를 알아듣고

어기적거리며 욕실 앞 으로 다가가는 서민기. 온몸이 찌뿌둥한 듯 몸을 좌우로 비틀어 본다.

서민기

( 욕실 에 대고 잠이 덜깬목 소리로)

당신?.....몇 시에 들어 왔어?

최보라(소리)

나가서 얘기해 요.

다시 샤워 물소리 들리고, 불현듯 서연이가 잠에서 깬 듯 우는 소리 들린다. 욕실 을 바라보

얼굴을 찌푸 리는 서민기, 서연방으로 간다.

14. INT. 서민기아파트 욕실 같 . 은 시간.

뜨거 운 물을 틀어 놓은 샤워 기에서는 김이 뭉 뭉
게 게 피어오른다. 멀리 서연이의 우는 소리

들리고,

최보라는 연 녹색 정장을 입은 채 변기 위에 우두 커니 앉아있는데 피로에 지 친 얼굴이지만,


눈빛은 생기로 가 득찬 묘 기 한 표정이다. 한숨을 길게 쉬는 최보라. 그녀의 얼굴 위로 노랫

소리 들린다.

최보라(소리)

♬엄 마가 섬 늘 ~♬ ~
그 에 , 음 음음....으음........

15.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아침.

연 분홍색 정장에 젖은 머리로 식탁 옆에 선 최보라는 서연이를 가 슴에 안고 우 유를 먹이며

허밍으로 노래를 한다. 서연이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피 곤함 이 역력하지만 부드 럽 고 따 뜻 하

다.

담 배를 문 채 앞치마 차 림으로 요리를 하는 서민기. 길게 늘 어진 담뱃 재를 개 수대 안에다

턴 다.

가스 렌 지에 놓인 냄비에선 찌개가 끓고, 싱크대 한편엔 요리 책이 펼쳐져 있다.


전자 렌 지의 타이머 스위치가 부서져 뺀찌를 이용해 타이머를 돌리는 서민기.

최보라

( 쉰목 소리로) 그만하고 와 .. ! 흠흠 ( 목소리를 가다 듬고) 학원 투자 문제로 접대까지 하다보

니까,

흠흠 ..... 미안해.

최보라의 쉰목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서민기.

서민기

밤새 뭐했 는 데 목소리가 그래?

최보라

( 쉰목 소리로) 응 ? 으 응 , 노 래방에서 무리한 거 같은데.............

서민기는 최보라를 가만 히 바라보고, 최보라는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서연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멀리 현관문의 잠금 장치가 달그락거린다.

아 줌 마?

한 손에 열 쇠뭉 치를 쥔 채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파출부.

파출부

안 녕 세요하 ?

파출부에게 눈인사를 하는 최보라.


최보라

( 허밍으로 동요를 흥얼거리며) ♬ 음..........음음, 음음

파출부

(최보라에게) 원장 님, 연이 이리 주시고, 인 제 식사하 세요!


서연이를 고쳐 안는 최보라. 뭐 맘 가 에 안 드는지 도리 질을 하며 젖병 을 밀어내는 서연.

입가의 우 유가 최보라의 옷 에 묻는다.

쯧쯧 옷 ..... 다 버린다니까요, 얼른 주 세요!


최보라

(웃으며) 괜찮 아요, 갈 아입으면 되지.....

부드러운 봄볕이 아침식탁에 머문다.

16. INT. 영어학원 원장 실. 낮.

IN SER T.

영어학원 강의 실 복도. 백 인 강사1과 함께 율 동을 하며 영어로 노 래하는 어린이들이 창문

너머 보인다.

강의 실 밖 복도에서 5살 짜리 아들을 들어올려 교실 안을 보여주는 30대 초반의 엄 마.

최보라는 그 옆에 서서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다.


CUT T O
영어학원 원장 실. 주부 3 명과 상 담을 하고 있는 최보라, 신 명나게 열변을 토하고 있다.

최보라

음....... 예를 들어 art & craft time 은 색칠하고, 그림 그리고 만들고 하는 시간이 예요.

말이 끊 기는 최보라, 원장 실의 통유리 너머로 학원에 들어서는 김일범을 발견한다.


김일범과 눈을 맞추는 최보라, 그가 손을 들어 보이며 아는 체를 한다.
얼굴에 애정이 듬뿍 담긴 미소가 떠오르고, 이에 화답하는 최보라의 엷은 미소.

아이들한테 예를 들어서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circle 이야, circle 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모르

잖아요.
근데 가위를 가지고 와서 동그라미를 잘랐어요. 그 럼 그 자체가 circle 이에요, 동그라미는

circle ,
가위는 scissors , 자르다 cutting , 이 렇게 한국 말과 함께 외
우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circle scissors
이고 인 거예요.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주부들, 그 뒤에 앉은 김일범도 알아들었다는 듯 장 난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최보라의 시선은 주부들을 향하고 있지만, 김일범의 애교를 본 듯 만 듯 입가에 미소가 떠

오른다.

이 렇게 40분 수업하고, 10분간 break하고 또 다른 수업들.... 영어로 얘기하고 노래하고,


(신이 나서) 재밌죠? 아이들 입장에선 native speaker와 같이 노는 거예요.

주부 2

( 쑥 럽
스 게 웃으며) 수강료가 좀........

최보라

그 렇죠? 그게 차암, 저도 고민인데, 퀄리티를 유지하려니까 어 쩔수 가 없더라구요!


사실 여기 학원 나온다고 한 달만에 미국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죠?

주부들도 고민스런 미소를 짓는다. '그럼 생각 좀 더 해보구요'. 엉거주춤 인사를 하며

원장실을 나가는데, 주부들에게 김일범을 소개시키는 최보라.

최보라

그리고 여긴 우리 학원 홈페이질 만드신 웹디자이너 김일범 씨 터넷 종종


, 인 들 죠?
하시

아참, 이 얘 빼먹
네. e-mail로 부모님들에게
길 었 일주일에 한 번씩
자녀들의 학습상태를 알려 드리고 있어요.....

(주부들은 무슨 얘긴지 모르는 표정을 짓고).......

김일범

(원장 실을 들어서며) 안 녕 세요
하 ?

김일범에게 목례를
실을 빠져나가는 주부들. 그 중 주부2가 세련된 캐주얼
하고 원장

정장을 입은 김일범과 시선을 맞춘다. 환한 미소로 주부2에게 응대를 하는 김일범.

주부2의 시선과 김일범의 미소를 놓치지 않는 최보라. 김일범은 소리 없이 웃으며 소파에

앉는다.
최보라는 원장실 통 유리를 통해 학원 로비로 나간 주부들을 본다.

학원 로비에 있던 잘생긴 외 모와 건장한 몸매의 백인 강사1, 2와 얘기를 하고 있는


주부들은 부 끄러운 듯 세 사람이 서로 몸을 겹쳐 서서 외국인 강사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

데,
외 국인 강사1, 2는 능 숙하게 주부들에게 영어와 우리 말을 섞 농담어 을 건 넨 다.
소파에 앉아 있던 김일범은 최보라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는 데,
최보라는 짖궂 은 표정으로 김일범을 내려다보며

최보라

아 무한테나 웃지마 !

킬킬거 리며 작은 소리로 웃는 김일범.

7
1 . EXT. 영어학원 앞. 해질녘.

'KID SCHOOL'이라는 네온사인이 깜박거 리는 영어학원의 전 경이 보인다.


노란 가방을 든 아이들이 현관에서 쏟아져 나와 노란색 미니 버스에 오른다.

아이들 틈새로 현관 앞으로 들어가는 서민기.

8
1 . INT. 영어학원 로비. 해 질녘.

서민기는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 경리사원인 미스 김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친한 척을 한

다.

미스김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원장 실의 통유리는 블라인드로 가려져 안을 들여다 볼수


없는 상태이다.

서민기

(원장 실을 가리키며) 있지?

미스 김

예, 잠시만 요, 손님이 계셔서 요, 차 드릴까요?

서민기는 손을 가로 저으며 필요 없 다는 제스츄어를 쓴다.

9
1 . INT. 영어학원 원장 실. 해질녘.

'뚜우', '뚜우' 인터폰의 신호음이 들리고 같은 소파에 나란 히 앉아 있던

최보라와 김일범이 인터폰을 본다.

맨발의 최보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온다. 푸


른 색 카페트 위의 하 얀 발이 선명하다.
인터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는 최보라.

미스 김( 필터 )

저, 연이 아 빠 오셨는데요?
최보라

( 순간 표정이 굳으며) 뭐 ?...........

최보라를 바라보는 김일범의 표정이 상기된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김일범.

잠시만 기다리시라구 해 ! 여기 일이 안 끝나서 알았지?

미스 김( 필터 )

예, 원장님.

천천히 소파로 돌아온 최보라는 김일범의 맞은 편에 앉는다. 탁자 위를 치우는 손이 조금씩


떨린다.

최보라

오 늘 은 저 녁 같이 못 먹겠 다.

고개를 끄덕이는 김일범.

어쨌든, 연이 아빠한테 인사나 해!


조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일범. 두 사람은 소파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연결 된

문 앞으로 간다.
잠가 놓았던 잠금 장치를 소리 안 나게 푸는 최보라. 문이 열리자 로비 의자에 앉아있던 서

민기 보인다.

최보라

웬일이야, 학원 엘 다 나오고.......

서민기는 의자에서 일어나 원장 실로 들어오며

서민기

일 다 끝났어?

서민기가 원장 실에 들어서자 문 옆에 서 있던 김일범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민다.

서민기도 김일범의 손을 잡으며 악 수를 한다.

김일범

(최대한 자연스 럽 게) 얼마 만이 죠 이게?

서민기

(웃으며) 어 떻게 더 젊어지는 거 같아요!, 많 이 도와주신다는 얘 듣


긴 구 있구.
의자에 앉은 최보라는 흥 미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얘 기를 듣 고 있다.

김일범

(고개를 좌 우로 흔들며) 천만에요, 매~번 클 레임만 걸리고....

서민기(소리)

하하, 어 떻게 식사나 같이 하지 요, 어때 당신은?......

최보라

...................( 묘 한 웃음을 지으며) 김일범 씬 어 때요?

최보라의 물음에 김일범은 순 간 당황한다. 최보라는 장 난스러운 표정으로 김일범의 얼굴을


쳐다본다.

김일범

( 말을 더듬는다) 어.....어 떻게 하나, 전 선 약이 있어서..........

김일범의 당황한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짓는 최보라.

서민기(소리)

그 래요? 아 쉽네 .......학원엔 자주 오시 죠? 그 때 한 번 , 이 앞에 곱창 죽이게 하는 집이 있어

요....

20. EXT. 도로, 최보라 승용 밤 차. .

최보라의 승용 차가 미 끄러지듯이 부드럽게 코너링을 한다. 운전석에 앉은 서민기는

능 숙하게 핸들을 돌리고, 조수석의 최보라는 생각에 잠겨 있다.

서민기

요즘에 많 이 피 곤 하지?.................(최보라를 힐끗 보고) ..........

학원에선 늘 상 맨발로 다니나?............

여전 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최보라. 서민기는 힐끔 최보라의 옆모습을 다시 본다.

부드 럽 게 코너링을 하는 최보라의 승용 차. 이 번엔 최보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최보라

( 혼자 중얼거리며) 택시 기사 해도 되겠다......

못 들은체 하는 서민기. 앞 유리 위로 도 심 의 네온사인과 가로등이 스쳐 지나가고,

횡단보도 앞 빨간 불이 들어오자 브레이크를 밟는 서민기.


IN SER T.

횡단보도. 최보라의 차가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의 백색 선까지 침범한다.

CUT T O
다시 최보라의 승용 차 안

서민기

브레이크 너무 밀리는데!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는 서민기.

브레이크 라이닝 언제 갈았 지?

최보라

글쎄, 난 괜찮 든 데.....

운전 석 계기 판 으로 고개를 들이 밀어 주행계를 보는 최보라.

2만 5 천 키로, 아직 괜찮네 , 3만키로 지나서 바 꾸면 돼!

서민기

여자들은 브레이클 자주 밟으니까 빨리 닳아!

최보라

괜찮 다니까, 난!

서민기

공업사가면 2만5 천원, 카 센타 가면 3만원 정도 할거다.

최보라

(중 얼거린다) 누가 은행원 아니 랄까봐.........

정색을 하고 고 갤 돌 려 최보라를 본다.

서민기

갈꺼야 말꺼야, ?

달리고 있는 차안에서 전방을 보지 않고 최보라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서민기.

질겁을 하는 최보라.
최보라

앞에 봐, 앞에, 간다니까......가.

최보라의 얘기를 들은 후에 야 전방으로 시선을 옮기는 서민기.

당황한 최보라는 눈을 껌벅거린다.

21. EXT. 도로변. 밤 .

도로변에 정차한 최보라 승용 차. 조수석 문이 열리고 최보라가 내린다.

서민기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최보라를 바라본다.

최보라

( 평범하게) 금방 끝내고 들어 갈게.......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최보라는 승용 차 키와 함께 키 홀더에 매달린


김일범 오피스텔의 키를 흘낏 본다. 서민기가 탄 승용차 떠나고, 최보라는 손을 들어 택시를
부른다.

22. INT. 오피스텔 복도. 밤 .

계단을 지나 오피스텔 복도로 나선 최보라는 멀리 앞서가는


노란 셔츠의 긴머리 여자(크레딧 했던)를 발견한다. 씬에 등장

김일범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긴 머리 여자. 잰걸음으로 쫓아가는 최보라,

상기된 얼굴로 김일범 오피스텔의 현관문을 노려본다. 잠시 후 작심을 한 듯 벨을 누르기

시작한다.

반 응 이 없다. 노크를 시작으로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는 최보라.

최보라

( 거칠은 숨 사이로) 문열어....... (소리를 지른다) 빨리이이 ~ 열어 나 쁜 새끼야 ........

문을 발로 차고 주 먹 으로 두들기는 최보라. 쿵, 쿠쿵, 쿵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치던

최보라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데, 난데없이 옆집 문이 열리며
주 먹 을 감 싸쥐 는

고개를 내민 노란 셔츠의 긴머리 여자가 이게 웬 소란이냐는 듯 그녀를 노려본다.

아픈 주먹 때문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쵭라는 그제서야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안다.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아리는 최보라. 한번 더 다짐을 하듯 '흥'하고

콧방귀를 낀 긴머리 여자는 소리나게 문을 닫고 들어간다. '휴'하고 숨을 내쉰 최보라,


다시 김일범 오피스텔의 문을 보면 어느 새 문이 열 려 있다. 천천히 문안으로 들어서는 최보

라.

23. INT. 오피스텔. 밤.

책상에 앉은 김일범은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최보라를 보지 않는다.


최보라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김일범 옆에 놓인 소파로 가 앉는다.
최보라는 자기만 아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김일범을 바라본다.

최보라

............우리 냉면 먹으러 갈래 ?

김일범은 모니 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이 없다.

보고 싶어서....다시 왔잖아..........

묵묵부담의 뻗어 김일범 코앞에 손등을 들이댄다.


김일범. 최보라는 손을 길게

손가락에는 결혼반지 대신 김일범과 커플링인 18금 반지가 끼워져 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율동을 하듯 손등을 좌우로 흔들어 보이는 최보라.

........(자랑하듯이) 자 ! 어때?

김일범은 놀람과 동시에 기 분이 좀풀 졌어 다.

김일범

( 퉁명스럽게) 열쇤 어디다 팔아먹었어?

최보라

다음부 터 꼬옥, 가지고 다 닐


게.......

김일범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최보라는 주 먹 싸쥐


을 감 며 인상을 쓴 다.

~
아 , 너 무 아프다.........

이 제야 고개를 돌 려 최보라를 보는 김일범.

김일범

........어디 봐!
24. INT. 문방구. 밤 .

열 쇠 고리에 매달린 열 쇠 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가늠해 보는 서민기.

얼추 여덟, 아홉은 되어 보인다.

문방구 점원(소리)

몇 장이나 드 릴까요?

서민기

음..........한 10장 주 세요 ............

문방구 벽
매달린 여러 가지 인형놀이 세트를 보고 있는 서민기.

미니어처로 오밀조밀하게 꾸며진 분홍색 2층집 한가운데 팔등신의 금발 미녀가

금박 무늬 의상을 입고 서민기를 바라보고 있다.

서민기

이 런 건 몇 살 때부터 가지고 놀아요?

문방구 점원

서너 살만 되면 사가시 더라구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25. INT. 서민기아파트 건 넌방. 밤 .

희고 얇은 종 이로 만들어진 이력서의 뒷면이 확 대 되어 보인다.

종 이 뒷면에는 서민기가 만 년필 로 이력서의 빈 칸을 채우고 있는 글자들이 좌우가


바 뀐 채 잉 크가 배어 나온다. '입학', '졸업', 스윽, 스윽 글자가 쓰여지면서
펜이 종 이에 긁히는 소리가 난다.

서민기(소리)

입학, 졸업, 입학, 졸업.........

이력( 履歷)이 쓰여져 내려가던 중간에 '**은행 입사 라는' 글자가 얼핏 보인다.

IN SER T.

부 엌.
싱크대에서 설거지하는 서민기. '아차'하는 표정과 함께 설거지를 멈추고 고무장갑을 벗는
다.

CUT T O .

가지 런히 정리 되어 있는 이력서 10장의 측면이 보인다. 사진을 붙 인 자리만 두 툼하게 올라

와 있다.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책상에 앉는 서민기. 정 성을 기울여 이력서 한 장 한 장에 무언가 가

필 加筆
( )을 한다.

26. INT. 오피스텔. 밤.

오피스텔 벽 에 부 딪히며
격렬하게 정사를 나누는 최보라와 김일범.
선 자 세로

벽을 따라 직이며 빨려들 듯이 입을 맞춘다. 급하게 벗은 옷가지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책상에서 떨어진 사진 자료들, 책들, 그 옆으로 길게 매달린 컴퓨터 마우스가 보인다.

미끄러지듯이 바닥으로 밀려 나간 두 사람. 최보라의 멍든 손을 빨고 핥는 김일범.

7
2 . INT. 오피스텔 욕실 밤 . .

IN SER T.

오피스텔 외 부.

블라인드 틈새로 카메라 플래쉬 터지는 섬광 이 새나온다. '팡', '팡', '파방'

CUT T O
욕실 문이 벌컥 열리면 최보라가 뛰어 들어오고,

문을 닫으 려 하지만 문 틈으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들어오면서 플래쉬가 '팡'하고 터진다.


최보라는 김일범의 손을 문밖으로 밀어내며 문을 잠 근다. 세면대 위로 수돗물이 쏟아진다.
IN SER T.

욕실 문 앞에 선 김일범은 조금 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바라본다.


최보라의 모습이 서서히 선명해진다. 사진 속의 그녀 모습을 홀린 듯이 보는 김일범.

CUT T O .

최보라는 찬 물을 입안에 가 득 머금고 자신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며 양치를 한다.


입안에 든 물을 세면대에다 뱉어 내는 데, 물거품 사이로 꼬불꼬불한
음모( 陰毛)가 흰색 도기위에 한가닥 남는다. 쑥 스러운 웃음을 짓는

최보라 물을 세게 틀어 음모를 흘려 보낸다.

8
2 . EXT. 공작아파트, 영어학원, 도 심거 리, 햄버거 집 몽타쥬 밤 . , 낮.

바이 엘 상권의 서툰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밤 , 공작아파트 15동 베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여러 가구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아파트 주차장에는 함 팔러온 신랑 친구들의 소란스 런 모습이 보이고,

이를 내다보는 건너동 베란다의 신부집 가 족들. 그 옆으로 에어로 빅을 하는 중 년 줌아 마 보

인다.

낮,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서민기가 서 류봉투를 옆구리에 끼 고 걷는다.

낮, 공작아파트 베란다의 풍경, 창 밖으로 테이 블 보를 터는 할머니,


김지 훈 의 머리를 직 접깎 아주는 이미영 등이 베란다 창 너머로 보이고, 맞은 편 베란다에는

이 삿짐 이 사다리차에 실려 공중으로 오른다.

낮, 영어학원 원장 실. 외국인 강사들과 이 야기를 하는 최보라.

낮, 고 층빌딩 입구 앞에서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시며 담 배를 피우는 서민기.

다른 손에는 서류봉투를 들고 있다.

밤 공작아파트 베란다의 풍경, 소파에 앉아


, T V 를 보는 집, 저 녁을 준비하려고
주부가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집.

밤 , 공작아파트 풍경, 신부를 안고 침대로 뛰어드는 첫날밤의 신혼부부집. 곧 불이 꺼 진다.

그 위로 ARS자동 응답기 소리가 들린다.

ARS응답(소리)
**그룹 경력사원 모집에 응 모해 주신 여러 분께 진 심으로 감사드 립니다.

낮, 정장차 림으로 패 스트 푸 드 매장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서민기.

귀하의 수험번호와 별표 를 눌러주십시오. (삐, 삐, 삐~... 음악소리가 짧 게 이어진다) 죄송합


니다.

귀하의 수험번호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그룹 인력관리위원 회에서는


수시로 경력사원을 모집하고 있사오니, (딸깍)
낮, 바람이 심 하게 부는 고 층빌딩 사 잇길, 넥타이가 어깨 위까지 날린다.
팔랑거리는 넥타이를 양복 안으로 넣 는 서민기. 앙상한 나 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위태롭게 걷던 서민기는 아차하면 바람에 날릴 것만 같다.

FADE OU T.

FADE IN.

9
2 . INT. 헌책방. 낮.

어지 럽 게 책이 쌓여있는 헌책방 앞
놓여 있고, 한 구석 에는 낡 은 전 축이

LP판이 돌아가는 턴테이블도 보인다. 김추자의 육감적인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 사이로 부유하듯이 카메라는 헌책방안으로 들어간다. 야트막한 헌 책 위에 걸터 앉은

서민기는 츄리닝에 운동화를 꺾어 신고(이제 실직자의 모습이 완연하다)

언제나처럼 웅크린 모습 그대로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주인장(소리)

이 거 한 번읽 볼 어 라나?

무릎 높이 정도로 쌓인 책이 소로(小路)를 막고 있고, 그 너머에


고개를 드는 서민기.

변함 없이 뿔테안경에 때묻은 셔츠 차림인 주인장이 책 더미에서 책을 한 권씩 빼내 벽 쪽

으로 쌓고 있다.

주인장

이 앞에 살던 소설가 놈이 이사 간다구 책을 많 이 내 놨는데 중에 연 애 소설이 몇 권 있어....

글쓰는 놈이 책이나 팔아먹고 쯧쯧........

서민기

그 래요?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주인장은 색 바랜 붉은 색과 푸른 색 하드 커버로 제본이 된 2 권과 최근에


발간된 듯한 양장본 1권을 손에 들어 보인다.

( 얼굴에 감정이 잔뜩 들어가며) 애절하면서도 해피엔 딩으로 끝나는 그런.....

주인장

쯧쯧 .. , (통달한 듯한 웃음을 띄며) 자기는 책 좀더읽 어야 겠어!

서민기

( 못알 아들었다) 예?
주인장

(안면을 바 꾸며 소리를 친다) 아, 그만 읽어! 여가 도서관이 야?

주인장이 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서민기. 주인장도 소로를 막고 있는

책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주인장(소리)

이게 뭔 가! 하하하.........

고개를 들어보면 서민기, 주인장이 들고 있는 책 뒷장이 갈 라져 있고,

그 사이에 비상금으로 넣어 둔 만원 권이 보인다. 서민기를 보며 폼을 잡는 주인장. 입 맛을


다시는 서민기.

이 때 헌책방 문이 열리며 이미영이 고개를 내민다.

이미영

연이 아 빠!

이미영을 보는 서민기.

30. INT. 비디오 가게. 낮.

벽 면 가 득히 비디오가 빼곡 이 들어차 있는 비디오 가게. 카운 터에 곱상하게 생긴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 생이 인상을 찡그리고 서 있다. 카운터 위에는 조잡하게

인 쇄 된 에로비디오 상 표가 보인다.

'애들은 재웠수 2', '똑딱단추'. 아르바이트생은 소리나게 비디오 테 잎을 잡으며

아르바이트생

아저 씨, 일주일이 넘으면 어떻게 해요?

그 앞에 선 서민기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거리며 아르바이트생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서민기

미안해 ! 미안해 !

아르바이트생

( 놀림을 당하는 듯 해서 기 분이 나쁘다) 연체 료 3500원이 요.


서민기

(계 속 웃으며) 그 래?

손에 쥐고 있던 돈을 건 네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서민기.

31. EXT. 도로, 이미영 승용 차. 낮.

비디오 가게 앞 도로에 정차한 티코 안에 이미영과 서민기가 앉아있다.


웃음을 감 추지 못 하는 서민기. 잔돈 을 이미영에게 건 넨 다.

이미영

( 잔돈 받 을 으며) 웃지마 ! 어때?......괜찮지?.......애가 아주 귀엽게 생 겼잖아!

서민기

그 래애, 귀엽더라! 으흐흐흐.....

이미영

웃지 말라니까!

서민기

흐..흐.....흐...흐 ( 짐짓 정색을 하며) 그 래 편지엔 뭐


라고 썼는데?

이미영

난 니가 좋다! 만나고 싶다!

서민기

( 흥 미진진한 얼굴로) 만났어?

이미영

미 쳤어?.....원래 만 날 생각도 없었어....근데, 히~이(혀를 쏙 내민다)

걔도 약속 장소에 안 나온 거 있지? 존심 상해서 참..... 내가 지한테 이 쁘게 보일라구 찜질방


10 회권이나 끊 어서 다니고 있었는 데 말이야, 번 볼래


한 가 ?.......다 섯 번이나 남 았어.........

서민기

약속 에 안 나온 건 어 떻게 알아?

이미영

오나 안오나 볼 라구 맞은 편 카페에서 지키고 있었지 뭐 ........


시동을 걸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푼 이미영은 차를 출발시 킨다.

으이그, 날도 우라지게 좋은데 연애나 한 번했 으면 좋겠다아!

서민기

학부모가 되가지고 그러구 싶어?

급브레이크를 밟아 몸이 앞으로 쏠린 서민기에게 눈을 흘기는 이미영.

이미영

학부모는 이 슬 먹 고 사나? 댁두 학부모 돼봐!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는 이미영의 티코 승용차.

32. INT. 대형 할인매장 낮.

카트(CART)의 바퀴가 빠른 속도로 구른다. 창고형 대형 할인매장의 벽처럼 쌓여 있는


물건들 사이로 얼핏얼핏 지나가는 2대의 카트. 한 대의 카트는 서민기가 밀고 가고,

다른 하나는 이미영이 밀고 있다. 서민기는 1회용 기저귀를 이것저것 살피더니

7 6개들이 하기스를 4개 집는다.

CUT T O .

먼 산을 마친 서민기는 두루마리 휴지를 푼 것처럼 긴 영수증을 꼼꼼히 살펴본다.


저 계

영수증 하단 부분에 '식품 17'이라는 항목을 발견한 그는 손끝으로 그 곳을 가리키며

계산기 앞에 선 여직원에게 묻는다.

서민기

식 품 7 뭐예요
1 이 ?

여직원

1 이 7 요?..........팽이버섯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멀리 카트를 밀고 오는 이미영 보인다.

33. INT. 백 화점 < 폴로 >매장. 낮.

IN SER T.

탈의실(FITTING ROOM ).
시원한 느 낌이 드는 푸 른 색 계통의 체크 무늬 셔트를 입은 최보라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 를

살 핀 다.

CUT T O
.

다시 폴 로 매장.
붉은 계통의 체크무늬 셔츠 어깨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자기 몸에 견 주어 보는 최보라.

그 앞에는 여점원이 서있다.

최보라

언 니, 어느 게 나아 요?

여점원

셋 다 괜찮 은 데요......

여점원은 푸 른 색과 녹색 계통의 체크 무늬 셔츠를 양 손에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체크 무늬가 참 ~잘 어 울리세요.

씩 웃어 보이는 최보라. 매장 안에 놓인 전신 거울 앞으로 가 다시 녹색 계통의

체크 무늬 셔트를 몸에 대본다.

34. INT. 백화점 커피숍 앞 매장. 낮.

결국푸 른 색 체크무늬 셔츠를 사서 입은 최보라. 원 래 입고 있었던 옷을 담은


쇼핑백 을 손에 들고 커피숍 앞으로 오는 데, 창가를 향해 앉은 김일범의 옆모습이 보인다.

창 너머로 강남의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있고,

그 앞에 홀 로 앉은 김일범은 목이 타는지 생수를 들이키고 있다.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려던 최보라는 김일범의 옷차 림을 보고 흠칫 놀 라 커피숍을 지나쳐 간

다.

최보라가 입고 있는 푸 른색 체크 무늬 셔츠와 거의 같은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은 김일범.


최보라는 커피숍 맞은 편에 있는 가구 매장 뒤로 몸을 숨기며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김일범을 본다.

가구점에 전시 되어 있던 화장대 거울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 점점 우 울한 표정이 되어간다.


뒤돌아서 가구점을 떠나는 최보라.

35.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주방. 밤 .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해 우유팩을 가위로 자르는 서민기.
맥주 캔을 일렬로 늘어놓고 율동을 하듯이 발로 밟아 납작하게 만든다.
손에 든 맥주 캔을 길게 한 모금 털어 마시고 그 마저도 발로 밟아 납작하게 만든다.

다용도실에는 우유팩이 쌓여 있고, 그 옆에는 알루미늄캔은 캔대로 유리병은 병 대로 모아져

있다.

그 사이 누 렇게 변색된 신문지가 겹겹이 끼 여져 있다.

현관 문소리가 나자 거실로 나오는 서민기. 푸 른 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피 곤한 얼굴의


최보라가 서연이를 안고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선다.

최보라

먼 저 들어 왔으면 연이 좀데 리고 오지.....

서민기가 뭐 라 말을 하려하는 순 간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드는 서민기. 이를 보는 최보

라.

서민기

여보 세요 ? (아 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여보세요?............

찰칵하고 끊어지는 전화. 뚜 뚜 뚜


우, 우, 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최보라

( 무심한 척) 누구 야?

서민기

장 난 전화...(기 분전환 삼아 과장 되게) 어이구 우리 새끼, 잘 놀았어?

서민기가 최보라로부 터 서연이를 건 네 받아 공중에서 회전을 시키자 서연이는 까르 륵 댄 다.

서민기의 등 뒤에서 전화기를 쳐다보는 최보라. 서민기는 급하게 마신 맥주의


트 림을 일부러 서연이의 얼굴에 '꺼억'한다. 인상을 찌푸 리는 서연.

.........저녁 안 먹 었지?

CUT T O.

깔끔 하게 정 돈되어 있는 냉장실, 냉동실에서 각각 야채와 고기를 꺼 능


내 숙한 손놀림으로
음식 준비를 시작하는 서민기.
36.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밤 .

IN SER T.

T V화면.

배 꽃 무 밭 사잇길을 청춘남녀가 걸어 간다.


이 만발한 배나

배 꽃
너머로 그림같이 생긴 예배당이 나타난다.

의미 장한 눈빛을 보내는 청춘남, 수줍은 미소의 청춘녀.



결혼 행진곡이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차분하게 연주되기 시작한다.
손을 맞잡고 예배당으로 향하는 두 사람, 아름다운 5월의 빛이 부드럽게 펼쳐진
예배당 안으로 들어선 청춘남녀는 단상 앞에 마주보고 섰다. 청춘남의 결연한 표정.

청춘 필터 남( )

고 맙다.

청춘 필터 녀( )

( 조용히 웃으며) .... 결혼식 시작해, 오 빠.

CUT T O
T V속 으로 빨 려 들어 갈 것처럼 연 속극에 몰입하고 있는 서민기.

청춘 남(소리)

저 희 두 사람, 오 늘
렇게.......결혼합니다.
이 만일 신이 계시다면....저 흴 용서해 주세요!
(비 둘기가 날아오르는 소리 난다)

마른 침을 '꼴깍' 삼키는 서민기.

저 희들....잘못이 있다면 서로 너 무 사랑한 잘못 밖엔 없습니다.


그게 잘못이라면 조금 덜 사랑하겠습니다.

건 넌방에서 최보라의 신 경질적인 소리가 들린다.

최보라(소리)

여보오, 텔레비전 소리 좀 줄여어 !

서민기

(고개를 끄덕이며) 으 응 ......

시선은 여전 히 T V 에 둔 채 볼륨 을 줄이지는 않는다.

IN SER T.
T V 화면.

눈가에 눈물이 그 렁거리는 청춘 남과 청춘 녀의 얼굴이 교차되며 보여진다.

청춘 필터 남( )

그 대신 미연이 병좀낫 게 해주 세요 , 제 목숨 다 미연이한테 주 세요 ....

둘이서 함께 서른 살 까지만...... 같이 살게 해주 세요 . 너 무 사랑한 게 죄라면 이 제 미워하구


싸우겠습니다.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따르 릉, 따르 릉

CUT T O
서민기, 시선은 T V 화면을 향한 채 손으로 더듬더듬 무선전화기의 수화기를 찾는다.
이윽고 수화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연속극 장면을 놓칠까 싶어
통화를 미 룬 채 T V 화면을 본다.

건 넌방에 있는 최보라가 소리 친다.

최보라(소리)

(화가 났다) 소리 좀 줄이라니까?

서민기는 T V 화면으로 시선을 둔 채 소리는 줄이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다. 최보라의 신 경질


적인

소리에 거실에 누워 있던 서연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청춘 남(소리)

서른 살까지만 살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게 해주 세요 . 서른 살까지만......

청춘 녀(소리)

오 빠! (결혼 행진 곡이 애처로운 멜로디로 변주된다)

연 속극에서 음악이 나오며 대사 없이 흐르는 장면이 나오자 그 제서야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는 서민기.

여전 히 눈은 T V 로 향한 채

서민기

여보 세요 ?.............여보 세요 ?

최보라가 건 넌방에서 뛰쳐나온다.

최보라

누구 야?
서민기

응 ? (정신을 차리며) 여보 세요 ? .....여보 세요 뚜뚜? ( 소리가 난다) 끊겼는데?

다시 T V 화면에 시선을 돌리는 서민기. 서연이는 악에 받 쳐 울기 시작하고

최보라

(소리를 지른다) 여보오 ! 지금 뭐 하는 거야! 연 속극이 그 렇게 재밌 어? 당신이 무슨 아줌 마

야?
내가 전화 올 데 있다고 그 랬잖아, 그리고 애가 울면 좀 안아 주든지.......

서민기

엄 마가 좀 안아주면 되잖아!

최보라

일하 잖아 지금 !

서민기

누가 집까지 일을 가지고 오 래?

최보라

뭐 ? ......일을 못 끝냈 으니까 집까지 가지고 와서 하는 거지, 누군들 집에서까지 일하고 싶겠


어?

그 런데 내가 애까지 봐야 돼 ?....

다시 울리는 전화벨. 따르 릉, 따르 릉, 숨을 고르며 수화기를 드는 최보라.

최보라

(짜증을 내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상냥한 목소리로) 여보 세요 예.....잠시만


? ..... 기다리 세
요!
(수화기를 서민기에게 내밀며 다시 화난 목소리로) 당신 전화 !

수화기를 받아드는 서민기.

서민기

여보 세요 ?

이미영( 필터 )

연이 아 빠? '레인 트리 ' 봤어? 정말 닮았지?

자신을 빤하게 바라보는 최보라 때문에 엉거주춤한 상태인 서민기.


비디오 가게 애랑 꼭 닮지 않았어? 어 우~. 너무 멋있어, 글쎄 서른 살까지만 산대잖아!
우리 몇 살이니 지금!.... (서민기의 분위기를 이제야 눈치챘다) 여보세요? 전화 받기 곤란한
가 보구나?

서민기

으 응좀 , ......

이미영( 필터 )

그 래 나중에 얘기해 ! 연이 아 빠 끊 는다아 . (딸 ~ 깍)

서민기와 최보라는 어 색한 표정이 됐 다.

CUT T O
최보라와 서민기는 심 각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다.

최보라

당신이 쉬는 건 이해하는 데.... 도가 좀 지나 친 거 같지 않어? 인제 당신 이력서도 안 쓰지?

아 무 말도 없이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서민기.

무슨 말
.... 좀 해 봐.....

묵묵부답으로 앉아 있는 서민기를 바라보던 최보라의 표정의 점점 일그러진다.

최보라의 뒤편에서 가스렌지 위에 올 려놓은 주전자에서 물이 끊는 소리가 들린다.

주전자를 힐끔 보는 최보라.
최보라

주전자에 물 끊잖 아....

서민기

......... 뭐 ?

최보라

(아주 독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밖에서 돈 벌 고, 당신이 정말 집에서 살림하기로 하자면

저 거 불 끄는 일은 당신 일이 야!

서민기

........

최보라

(화난 목소리로) 당신, 쥬스 값은 어느 슈퍼가 싼지, 빵집은 어디가 맛있는지,


새 빵은 몇 시에 나오는지, 그런 거 신경 써봤어? ..그런 거까지 신경 쓰지 싫지? ..... 싫잖
!
아 .....

주전자의 물은 계 속 끓 어 넘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다시 일을 시작해 야될거 아니 야! 근데 왜 이모 냥으로 패잔병처럼 못 나게 굴어?

서민기

야, 니가 돈 번다구 너 무 유세한다......

최보라

( 흥분 이 점점 상 승 된다) 뭐 ? 도대체 왜 그러는 건 데? 헌 책이나 사 모으고, 파고다 공원이


나 가고.....

벌떡 일어나는 서민기. 코 바람이 세 진다.

서민기

당신, 남의 취미 생활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

그리고 파고다 공원이 아니라 탑골 공원이야...

황당 한 표정을 짓는 최보라.

3 . 7 EXT.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앞, 최보라 승용 밤


차. .

동대문에서 뺨맞고 남대문에서 화 풀이 하듯, 승용 차의 발 판 카 펫을 나무 둥 치에 냅다 치며

먼 지를 털 어 내는 서민기. 승용 차의 문 4개를 모두 열고 환 기를 시키고 있다.

발 판 카 펫을 다시 깔 던 서민기는 차 바닥에서 작은 종잇 장을 줍는다.

CUT T O
문이 닫힌 승용 차 운전 석 에 앉은 서민기는 계기 판 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
누적 주행계의 누적 거리가 2만 9천km 로 표시가 되어 있고, 그 밑 주행계에는 11 .4 8 km 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대학 노트 절반 크기의 차계부를 운전대 위에 올려놓고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을 한다.

손에 쥐고 있던 종이장을 차계부에 끼우는데, 그것은 '속초' 톨게이트 영수증이었다.


버릇처럼 주행계의 버튼을 반복해 누르는 서민기. 주행계의 수치가 118.4km에서 000.0km가
된다.

8
3 . INT. 서민기아파트 침실. 밤 .
스탠드 켜진 어두운 침실. 벗은 어깨가 드러난 최보라는 침대 시트를
등이 하나

가슴 위까지 올린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고, 팬티차림의 서민기는 침대 옆 수납장에서

무엇을 찾는 듯 이곳 저곳을 열어보다가 손바닥만한 직사각형 박스를 찾아낸다.


박스를 열고 흔들어보지만 빈 박스이다. 서민기는 박스를 방구석에다 던져버리고 침대에 눕
는다.

서민기

그냥 자자 !

침대에 나란 히 누운 두 사람.

집에서 살 림할라치면, 콘돔 사는 것도 내 일이니까 !

픽 웃음을 머금는 최보라.

CUT T O
정사를 나누고 있는 최보라와 서민기. 무심한 표정의 최보라 몸 위에서
헐떡 이는 서민기 숨소리만이 요란하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천장에 달린 야광별을 본

다.

DISSOLVE

9
3 . INT. 오피스텔. 낮

IN SER T.

프로젝터 화면.

밤 늘 별
하 에 들이 반 짞이고 먹 이를 찾아나선 숫사자의 눈동자가 번득 이는

'내쇼날 지오그 래픽'의 다큐멘터 리 화면이 보인다.

CUT T O
반짝이는 망울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최보라. 서서히 화면 확대되면 김일범과

최보라는 홑이불을 덮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VTR과 연결된 소형 액정 프로젝터를 천장으로 쏘아 동물다큐멘터리가 대형화면으로 영사

되고 있고,
천장에 달린 조명등이나 얼룩무늬 때문에 화면부 분 부분이 왜곡되고 변색되어 보이기도 한

다.
전반적으로 아 늑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최보라

...........아직도 기 분이 안풀려?

김일범

...아니, 나, 기 분 좋아..
최보라

........... 몇 시간이나 기다린 거야?

김일범

( 씩 웃으며) 좀 기다리다가,

IN SER T

백 화점 커피숍.
창 밖으로 강남 아파트 단지의 야경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김일범의 목소리 이어진다.

김일범(소리)

.............금방 갔어.

커피숍 안 좌석 은 거의 비어 있고, 그의 등 뒤로 청 소를 하는

종업 원이 마대 자루로 바닥을 훔치며 지나간다.


피곤 한 얼굴의 김일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소리를 듣고 있다.

서민기가 보던 연속극 소리가 핸드폰으로 들린다.

핸드폰 소리( 필터 )

( 청춘 남의 소리) 서른 살까지만 살다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죽게 해주 세요 .

서른 살까지만.......

(최보라의 화 난 목소리) 소리 좀 줄이라니까 !

( 청춘 녀의 소리) 오 빠! (결혼행진곡이 애처로운 멜로디로 변주된다)

CUT T O
다시 오피스텔.

더욱 더 김일범에게 감 겨드는 최보라. 한동안 움 직이지 않는다.


김일범의 몸을 어루만지던 최보라는 갑자기 홑이불을 걷으며 그의 옆구리를 들여다본다.

이 거 왜그래?
김일범

(아 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야구공에 맞았어!

김일범의 옆구리에 둥
그 렇고 퍼런 멍자국이 보인다.

최보라

데드볼 맞았어? 야구 시 합
도 해?

김일범

아니 연습장에서........

최보라

쯧쯧 , 그 걸 못 피해서 ! (멍자국에 입을 맞추는 데드볼


최보라)...... 연습도 하니?

김일범

데드볼이 뭐냐, 영어선생이 '힛 바이 피치드 볼' 몰 라?

최보라

(여전 히 멍자국에 맞추며) ........난 몰라 그런거.......... 아프지?


입을 ..

(나즈막 하게)............너랑 하면 좋은 게 뭔지 알아?

아 무 대 답 이 없는 김일범.

친절하다는 거야.
.....................음...........

김일범

(일부러 퉁명스럽게) 내가 무슨 자원 봉사자 냐? 친절하게? (몸을 일으키며) 자 뺀다.

최보라

아니 아니, 조금만 더........

그대로 다시 안는 두 사람. 한동안 움 직이지 않는다.

김일범

먼 샤워할래
저 ?

최보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김일범은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인 크리넥스


티슈를 뽑아 최보라의 손에 쥐어주며 몸을 일으킨다. 김일범은 담배를 피워 물고,
홑이불 밑으로 사타구니를 닦는 최보라의 손동작이 보인다. 최보라는 홑이불을 제치고
벗은 몸으로 이불 밖으로 나와 쥐고 있던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침대 옆에 기대앉은 김일범이 목욕가운으로 최보라를 감싸준다.
40. INT. 오피스텔 욕실 . 낮.

치약 뚜껑 을 열어 '멈칫' 행동을 멈춘다.


칫솔에 짜내려던 그녀는 순간적으로

칫솔 담겨
이 있는 스테인레스 컵 안에 포장을 뜯지 않은 붉은 색 새 칫솔이 들어있다.

고민스러운 최보라의 표정이 잠시 스쳐 간다. 그녀는 새 칫솔을 뜯지 않고

그 옆에 놓인 김일범의 초록 칫솔에 치약을 바르고 이를 닦기 시작한다.

최보라가 이 닦는 모습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김일범. 하지만 최보라의 표정이 밝

아지지 않는다.

CUT TO
욕실 문이 열린 채 문턱에 걸터앉은 최보라와 세면대에 기대 선 김일범이 말없이 마주보고
있다.

두사람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느 껴진다.


김일범

...............그만 일어나..

최보라

.........너한테 해줄 게 아 무것도 없어.....잘 알잖아....

김일범

누가 뭐 해달 래?

최보라

.............우리 다시 만 난 게 언제 지? ..............

난 여기 오피스텔 오면 정 말 아무 부 담없 어서 너 무 좋았어......

김일범

................. 뭐...지금은 문 제 있어?........

최보라

...칫솔......왜, 샀 어?

김일범

(의 외 라는 듯) 칫솔?

최보라

(눈 짓으로 가리키며) 저기 새 칫솔.......왜 샀 어?

김일범

무슨 얘 기라구 ! 그냥, 산거야.


최보라

(김일범의 말을 끊 으며) 내가 오피스텔 온 첫날 랬지.....


여기 내 물건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구.........그냥 니 물건 같이 쓰고......


그 냥 스쳐가듯이 왔다 가면 좋겠다구.........

김일범은 촉촉한 눈으로 최보라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얘 기한다.

김일범

..........보라 야............

감정에 겨워 말을 멈추는 김일범. 최보라가 일어나 김일범의 몸을 감싸 안으며 포옹을 한다.

최보라

(김일범의 머 릿결을 어루만진다) 니가 또 상처받을까봐 그러는 거야.....(김일범의 팔이 감겨온


다).......

우리 어 떻게 하니.........어 떻게 할까?.........
41. INT. 오피스텔 복도. 낮.

길게 이어진 좁 은 오피스텔 복도를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 실루엣이 보인다.

복도 중간 쯤 에 멈춰서 좌우를 살피고 주머니에서 조악하게 생긴 복사 열쇠를 꺼낸다.


열 쇠 구 멍에 열 쇠 를 넣
밀어 고 문을 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손등의 핏줄들이 굵게 일어서는 남자의 얼굴 위로 카메라 올라가면 미간을 찌푸 린 서민기

얼굴 보인다.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 장치가 열리고 오피스텔 문을 여는 서민기.

42. INT. 오피스텔. 낮.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온 긴장된 표정의 서민기는 재 빠르게 문을 닫고 잠금 장치를 잠 근다.


문에 기대서 호 흡을 고르며 오피스텔 안을 찬찬히 살피는 서민기. 반 쯤 내려진 블라인드 사

이로

투명한 빛이 스며들고, 단 순 하지만 세련 된 디자인의 가구들, 전문가 용 매킨토시 컴퓨터,


벽 면에 빽빽이 꽂 힌 CD들 보인다. 욕실 내부에는 세 면대 수도꼭지가 잠기지 않아 물이 가

늘 게흘러나오고,
세 면대 위에는 붉은 색 새 칫솔이 놓여 있다.

헝클어진 침대 시트 위에는 목욕가운이 던져져 있고, 그 머리맡에 압정으로 꽂혀 있는


폴 라로이드 사진도 보인다. 남녀의 몸통 부위를 찍은 사진인데 큼지막한 줄무늬 남자 팬티

를 입고 있는
여자 정면과 분홍색 여자 팬티를 입고 있는 남자 뒷모습이 보인다. 분홍색 팬티가 남자 엉
덩이
절반을 가까스로 가 렸다. 해돋이 풍경을 배경으로 바닷가에서 찍은 남녀의 사진, 등대 밑의

두 남녀,

놀이동산 청룡 열차에 탄 남녀, 라이 브 공연장의 남녀 등등. 그 런데 이 모든 커플 사진들이

두 사람 모두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구도이거나 초점이 흐려진 상태이고 그나마 김일범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이 몇 장 보인다. 이마에 배어있는 땀을 손등으로 닦 아내는 서

민기.

CUT T O
오피스텔 안의 모든 수납공간 문이 열려 있고, 김일범의 앨범들이 침대 위에 올려져 있다.
서민기는 침대에 걸터앉아 앨범들을 빠른 속도로 넘겨보고 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
어 있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은 조금씩 떨린다. 서민기가 세 번째 앨 범을 무릎 위에 올 려놓고 펼치기


시작한 순 간,

그의 모든 움 직임이 얼어붙은 듯 정지한다.

앨 범에 붙 어 있는 폴 라로이드 사진들이 보인다. 바 닷가를 배 경으로 행복하게 미소 짓는 김일

범과 최보라,

알몸으로 침대 위에 있는 두 사람, 앨범의 페이지가 넘어가자 산부인과 신생아 실에 있는

갓 태어난 서연이 사진이 보인다.

43. INT. 흑룡강. 낮.

붉은 색 바탕 위에 금 박 무늬 치장을 한 고 급 중국음식점 흑룡강. 출입구에는 '부티'나 보이

옷 차 림에 넉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식사를 마 친 한 가 족이


문밖으로 나가자 대기 줄의 맨 앞 순번 일행이 입장한다. 그 일행 따라 카메라 이동하면

구 석 테이 블에 요리 접시를 사이에 두고 앉은 최보라와 김일범 보인다.

맛나게 요리를 먹 는 김일범을 물 끄러미 보는 최보라.

최보라

맛있어?
..........

입안에 음식을 가 득넣 고 고개를 끄덕이는 김일범.


44. EXT.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앞. 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공작 아파트 15동 앞으로 택시가 한 대 선다.
택시 뒷자 석 에서 비 틀거리며 내리는 서민기, 술에 취한 듯 다리가 후들거린다.

서민기에 이어 취객이 한사람 더 내린다.

45. INT. 공작아파트 15동 1 층승 강기. 밤.

열 려 있는 승 강기 앞으로 걸어가던 취객이 서민기에게 악 수를 청한다.

취객
(혀가 꼬부라지며) 이렇게 같은 동 사는 사람끼리 합승 을 다하고 인연이 깊 습니다 !
우리 언제 한번 (술잔을 꼴깍하는 손동작)

두 사람이 승 강기 안으로 들어오고 문이 닫힌다.

서민기

조오치요! 선생 님, 몇 층 십사 니까?

취객
14층 부탁 합 시다 !

층수 버튼 을 누르 려던 서민기는 야간 의아한 표정으로 취객에게 묻는다.

서민기

선생니임 ! 그런데 말입니다. 여긴 12 층밖에 없는데요?

승 강기는 올라가기 시작한다.

취객
그 럴 취하셨구만! (층수버튼을
리가?........... 누르 려 직접 다가간 취객)
이상하 네..여기 15동 맞잖소?

서민기

그 렇죠오, 15동 입니다마안....

취객
맞는데 공작아파트 15도 옹.........
서민기

선생니임, 혹시 말입니다아, 여기는 공작 7


아파트 1 참니다만.........

취객
(웃으며) 무슨 소리, 내 분명 택시 운전사한테 7 차 가자구 그 랬는데, 선생도 들었지?

46.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밤 .

서민기는 지 친 얼굴로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TV뉴스를 보고 있고,

아파트 단지에 울리는 취객의 주정소리가 멀리 들린다.

취객(소리)
날 무시하는 거야? 14 층 어디 갔어? 나아 ~ RO T C 1기 야........ RO C!!!!! 알어?
T

화면 밖에서 최보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최보라(소리)

(입안에 무언가 우물 거리며) 피곤 해?

저 녁을 먹 고 있는 최보라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서민기.

최보라는 밥을 먹 으며 서민기와 두어 차 례 시선이 맞닿는다. '왜 그런데?'


하는 표정으로 서민기를 바라본다.

서민기

................( 혀가 풀렸다) 최보라 씨 , 최보라 씬 사는게 재 밌 어?

그 얘 기를 들은 최보라는 씨익 웃는다.

최보라

.......시원한 데, 콩나물국 줄까? 배 안고파?

서민기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해 애?

7
4 . INT. 서민기아파트 베란다. 밤
쿨럭거리며 마른기 침을 하는 최보라. 가디건에 쫄바지 차 림의 최보라가 베란다

창 틀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긴 한 숨에 가 늘 고 기다란 담배연기가

흘러 나와 바람에 흩어진다.
초상집에서 흘러나오는 곡소리가 들린다. 베란다 밖으로 상체를 내 밀어
어디서 곡 소리가 나는지 찾아보는 최보라.

6층께 에 상(喪)을 당한 표시가 되는 근조(謹弔)등이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순 간 강한 바람이 '휭'하고 불자 담배에 붙어 있던 길다란 담뱃재가 뚝,

끊 어지며 집안으로 떨어지고,

6층께 에 매달려 있던 근조등이 끊 어져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천천히 솟아오르던


근조등의 연결선이 8층 베란다에 걸려 9층 최보라의 침실측 베란다 창에 멈 춘 다.

근조등은 바람에 하늘거리고, 최보라는 손을 뻗어 근조등을 만져 보려 하지만

닿을 듯 말 듯 손에 잡히지 않는다.

8
4 . INT. 서민기아파트 침실. 밤 .

황토색 근조 침실 안에 가득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등 불빛이 베란다 창을 통해

서민기의 흐느낌이 들린다.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 자욱이 황토빛으로 반질거리고,

소리를 죽인 흐느낌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천천히 하늘 위로 멀어지는

근조등 때문에 침실은 어둠 속에 묻힌다.

9
4 . INT. 서민기아파트 서연방. 밤 .

등이 밝
켜진 아기방에서 서연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게 있는 서민기.

눈가는 짓무러 있고 코끝이 빨갛다. 서연이의 발과 무릎,

귀와 입주위를 어루만지며 섬세하게 훑어보는 서민기.

50. EXT. 공작아파트 15동. 밤 .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공작아파트 15동 전경이 보이고 황토색 근조 등이 아파트 하 늘 위

로 날아오른다.

길쭉한 타원형의 달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51. INT. 양복점. 낮.


무반주 첼로 곡이 굵은 음색으로 차분하게 양복점 실내에 흐른다. 얼굴이 더욱 꺼칠해지고
눈매가 한웅큼 들어간 느낌을 주는 서민기가 검은 색 상복을 입은 채 양팔을 벌리고 서있

다.

초로( 初老)의 양복점 주인은 핀침 을 입에 물고 허리 어깨 등을

부드 럽
손으로 짚어보며 가 을 하고 있다.
게 봉
양복점 주인이 어깨를 툭 치자 버린 양팔을 내리는 서민기.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눈매로 목선, 어깨선, 허리선을 살펴보던 서민기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본다.

양복점 주인

어디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티슈를 건네며) 땀 좀닦 으시죠, 옷 은 불 편한 데 없으시


죠?
그럼 윗도리 벗으시고......

티슈로 이마와목덜미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윗도리를 벗는 서민기. 러닝셔츠 차림의


상체가 드러나는데 땀에 젖어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다. 반면 서민기 몸매에 비해 검은


상복 바지의 허리 사이즈가 지나치게 커 보여 '채플린' 의상 처럼 불균형을 이룬다.

서민기

허리가 너무 큰데.....!

서민기는 바지에 손을 넣어 앞으로 툭툭 밀어보며 너무 크지 않느냐는 시늉을 해 보인다.

양복점 주인

내가 이 자리에서 30 년 양복 맨드는데, 상복은 원 래 크게 입는 겁 니다 ! 지금 허리 9


2 입는다

9맞춰놓으면 금방 못 입습니다. 나이 들면 몸이 날 수
2 로 밖에 없고, 장 례식이란 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많아지지 않습니까!.....

장인의식이 넘치는 주인의 설득이 이어 졌 지만 동의하는 표정을 지어주지 않는 서민기.

서민기

선생 님, 전 한 번만 제대로 입으면 됩니다.

양복점 주인


...............그 시다, 어차피 선생 옷 인데.

상복(喪服)상의를 들고 있던 주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남는다.


52. INT. 영어학원 교무실. 낮.

책상에서 사 무를 보고 있던 미스 김이 전화벨이 울리자 수화기를 든다.

미스 김

안 녕 세요하 ? 키드스 쿨입니다.........어머, 원장 님 외근 중이신 데요.........잠시만요.

수화기를 턱 사이에 끼 고 메모를 시작하는 미스 김.

미스 김(소리)

..아, 대구 요? ..........3일장 끝내구 돌아오신다구 요?

메모지에는 '연이아빠', '대구', '선생님 장 례', '3일장'이 순 서적으로 적힌다.

예에, 그렇게만 전해드리면 되지요? ........예.....

53. EXT. 도로, 이미영 승용 차. 낮.

이미영이 운전을 하고 있고 상복을 입은 서민기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

이미영

국어 선생 님이면 멋있는 사람이었 겠다.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너어, 우리 나이도 안 심못 한다아. 뭐 보 험같은 거 들었어?

묵묵부답의 서민기, 그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이미영은 수다를 계속 떤 다.

나는 재작 년에 우리 삼촌 돌아가시는 거 보고 암보 험 하나 들었다.......원금도 보장 받 는

상 품 인데 한달에 얼마씩 내더라?.......한꺼번에 자동이체가 되니까, 생각이 잘 안나네.....

서민기

( 손가락으로 차창 밖을 가리키며) 여기 서부 역 쪽으로 들어가 !

창 밖으로 서 울역의 전경이 보인다.


54. EXT. 서울역 기차 탑승장. 낮.

기차 차창 안으로 좌석표 확 를 인하며 통로를 걸어가는 서민기가 보인다. 좌석 확


을 인한

서민기는 창쪽에 앉아 플랫포옴에 서있는 이미영에게 이제 그만 가라는 손짓을 한다.

이미영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고 플랫포옴의 출구 쪽으로 걸어나간다.


창 유리에 이마를 댄 채 멀어져 가는 이미영을 바라보는 서민기.

CUT T O .

기차가 플랫포옴을 빠져나가자 그 너머 플랫포옴이 드러나는 데 기타에서 내린 서민기가 보

인다.

55. EXT. 도로, 버스 . 낮.

움 직이는 버스 유리에 반영되는 도심의 풍경들도 따라 움직이고, 차창 안 좌석에 앉아 있는

서민기의 긴장된 표정이 보인다. (H.A.)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따라붙는다.

56. INT. 오피스텔 복도. 낮.

강 렬한 햇빛으로 굵게 음영이 드리 워진 복도를 걸어가는 서민기의 실루엣이 보인다.

7
5 . INT. 오피스텔. 낮.

오피스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서민기. 살기 어린 눈 빝으로 오피스텔 안을 살 핀다.

그는 수술용 고 무장갑을 양 손에 끼 고 침대와 바닥에 떨어진 김일범의 머리카 락 과 음모( 陰


毛)를
조심스럽게 집어 흰색 여자용 손수건 위에 모은다. 옷장을 열자 김일범의 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는데 여러 가지 색상의 체크무늬 셔츠가 절반을 넘는다.

책상 서 랍을 열자 각 종 세
악 사리가 모아져 있는 서 랍이 나온다.

그 안에서 등 산용 나이 프를 꺼 내는 서민기.

손잡이가 안으로 접혀있는 칼날을 꺼내 검지손가락에 스쳐보는데,


검지 부분의 고무장갑이 날에 닿자마자
'팽'소리와 함께 찢어져 손바닥 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침을 '꿀꺽' 삼키는 서민기.
8
5 . INT. 백화점 함흥냉면집. 낮.

스피커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고 창 너머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창가 옆 테이블에서


최보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비빔 냉면을 먹고 있다. 매운맛 때문에 입김을 내며 '후후' 거린

다.

옆에 서 있던 종업 원에게

최보라

언 니 ! 여기 사리 하나 더 줘요!

9
5 . EXT.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앞. 밤.

최보라는 승용 차를 주차시 킨 후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차에서 내린다.

60. INT. 서민기아파트. 밤


현관문이 열리고 최보라가 들어온다. 거실과 부엌에 있는 등을 켜는 최보라.

상의를 벗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컵에 부어 한 모금 마신 후 컵을 들고 침실로 들어간다.


침실등을 켜는 최보라. 화장대에 앉아 클린싱 크림으로 화장을 지우기 시작하다 의자 뒤로
떨어질 만큼 놀라는 최보라. 화장대 거울 끝에 김일범과 최보라가 알몸으로 안고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끼워져 있다. 그녀는 급하게 무선 수화기를 찾아 들고 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가고 '딸깍'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난다.

최보라

(다 짜고짜) 니가 한 거지?

김일범( 필터 )

여보 세요 ? 누 구, ~
최보라

사진 니가 갖다 놓은 거 아니 야?

김일범( 필터 )

~
아 , 보라 야, 무슨 사진, 무슨 말하는지 모르 겠네,

최보라

우리 사진이 여기,

IN SER T.
무선전화기 본체에서 전화를 끊 는 장 갑 낀손 이 보인다.

CUT TO

다시 침실의 화장대

딸깍, (전화 끊 어지는 소리가 난다) 여보 세요 ? 여보 세요 뚜~ 뚜~ 뚜~ 뚜~


? ... , , , ,

수화기의 통화 버튼을 두어 번 누르던 최보라는 화장대에서 일어나 침실 밖으로 나가려 하


는데,

어둠 속에서 검은 손이 빠르게 들어와 최보라의 목을 잡아챈다. 순식간에 침대 위로 나자빠

지는 최보라.

그녀의 목을 조이는 남자의 억센 손놀림. 그의 눈동자가 살의로 이 글거린다.

공포에 떠는 최보라. 무언가 말을 하려 하지만 기도가 눌려 '컥컥'대기만 한다.

김일범의 체크 무늬 손으로 침대 위에 굴러 떨어진


셔츠와 바지를 입은 남자는 다른 한

무선 전화기를 들고 '재다이얼' 버튼을 누른다. '삐삐, 삐삐삐' 빠르게 전화가 다시 걸리고


'따르릉' 첫 번째 신호가 들리자 마자 김일범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일범( 필터 )

여보 세요 ? 여보 세요 무슨
? 일이 야?
김일범의 목소리를 확 인한 남자는 최보라의 입에다 수화기를 갖다댄다.
캑캑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김일범에게 전달된다.

야 무슨 소리 야 이거, 최보라 ! 보라 야!.........,딸깍

전화기의 '꺼짐' 버튼을 누르는 남자. 전화기를 방바닥에 던지고는


주머니 속에서 등산용 칼을 꺼내 든다. 등산용 칼이 머리 위까지 천천히 솟아오르는데
카메라 느리게 칼을 따르면 땀으로 번질거리는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서민기 !! 이를 악문 서민기의 얼굴이 보인다. 순 간, 최보라의 가 슴에 칼이


박히 고 피가 솟아오른다. 최보라의 몸이 경련을 일으 킨다. 서민기의 얼굴에도 굵은 핏 물이

번진다.

손수건에 싸여있던 김일범의 머리카 락 과 음모들을 침대 위에 흐트려 놓는 서민기.

CUT T O.

침대 위의 최보라 몸 위로 둥그 렇게 피가 번 져가는 것이 부감으로 보이고,

다시 상복차 림으로 갈 아입은 서민기가 화장대 앞에 서서 스 킨 로션을 바르고 있다.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서민기.


61. EXT. 공작아파트 15동 9층 복도. 밤
피가 묻은 옷을 담은 종이뱃을 복도에 내려놓고 현관문을 닫은 서민기는
문을 잠근 후 얄쇠를 뽑아 든다. 손수건으로 열쇠에 묻은 지문을 섬세하게

닦 아 낸 후 다시 열쇠를 열쇠구멍에 꽂아 놓고 중앙 계단이 있는 복도 출입구로 걸어나가는


서민기.

62. EXT.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앞, 쓰레기장. 밤 .

15동 현관 전 경, 자동차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15동 현관 앞에 정차하는

택시에서 김일범이 뛰어내린다.

김일범

( 택시 기사에게 다 급한 목소리로) 잔돈 필요 없어요!

현관으로 뛰어 들어가는 김일범.

산문지, 폐지 등을 분리 수거하여 쌓아 놓는 쓰레기장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서민기의


모습이 드러난다.

피가 배어 나와 얼룩이 생긴 종이백을 눈에 잘 띄도록 폐지 사이에 끼워 놓고 9층을 올려다

본다.

잠시 후 복도를 달리는 김일범의 상체가 보인다.

99 0 호 문 앞에 서서 문을 '탕탕' 치는 김일범.

김일범(소리)

최보라 ! 보라야!

63. EXT. 서민기아파트 문 앞. 밤 .

'딩동', '딩동'. 반복적으로 벨을 누르던 김일범은 문 손잡이를 좌우로 돌리다


손잡이에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상체를 숙여 열쇠 구멍에 꽂힌 쇠
열 로 문

을 연 후,

무의식적으로 열 쇠를 뽑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64. EXT. 공작아파트 정문 앞 택시. 밤.


서민기가 탄 택시가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간다. 서민기는 택시에 설치된 핸드폰을 들고 전

화를 건다.

서민기

여보 세요 ? 미영이니? .......... 응 , 가구 있는 중인 데, 연이 지금 탁아방에 있 거든, 근데 연이

엄 마가 오 늘늦 거야,.....응........ 지금 들어올 수가 없대, 참........


어진다는

그래 잠깐만 봐줄래.......12시까진 꼭 들어온다구 그랬으니까 12시에 연이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면 돼!............그래 그래, 미안해애!

서민기가 전화를 끊 자 택시기사가 말을 붙인다.

택시기사(소리)
가끔 이럴 때가 있어요, 이 앞 손님이 미성 오피스텔에서 공작아파트 가고,
손님은 공작아파트에서 미성 오피스텔 가시고, 그럼 요금이 똑같이 나와야 되는데,
손님은 한 200원쯤 덜 나올거 같죠?

택시기사의 말을 흘려들으며 창 밖을 쳐다보는 서민기.

65. INT. 오피스텔, 욕실 밤 , .

오피스텔에 들어선 서민기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주머니에서 비닐로


싼 피묻은 손수건을 꺼내 걸려 있던 수건에 문지른다. 희미하게 핏자국이 수건에 묻어난다.
손수건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서민기.
그는 주의 깊게 실내 구석구석을 확인하고 오피스텔을 나간다.

66. INT. 기차. 밤 .

IN SER T.

어 둠을 가르는 야간 열차가 좌 에서 우로 빠르게 빠져나간다.


CUT T O .

천장 커에서는 잠시 후 조치원역에 1분 동안 정차할 것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스피

홍익회 판매원이 식음료를 가득 담은 손수레를 밀고 지나가면 단정하게 앉아 있는 서민기


보인다.

7
6 . EXT. 조치원역. 밤 .
기차가 정차해 있는 조치원역의 전경.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플랫포옴 한켠에 선 서민기는 두 팔을 하늘 향해 뻗으며 기지개를 크게 켠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긴 호흡이 이어진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서민기. 첫 모금을

길게 빨아들인다.

8
6 . EXT. 객차사이 연결부. 밤 .

손목시계의 초침이 고속촬영으로 느리게 보인다. 현재시간 12시 7분.


지방도시의 어두운 야경이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객차사이 연결부에 섰던

서민기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객실 출입문의 유리창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을 발견한다. 무언지 영문을 알 수는 없고, 출입문 쪽으로 한두 걸음 다

가서자

유리창에 달라 붙어 그를 쳐다보던 사람들이 화들 짝 놀라며 흩어진다.

출입문 유리창 앞에선 서민기가 객실 안을 들여다보는데 멀리 기차 승무 원이 다가오고,

서민기의 시선을 피하는 몇몇 승객들이 보이는 순간 자신이 앉았던 좌석 받등 이가

피범 벅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손을 뒤로 제껴 등을 더듬어보는 서민기.

IN SER T.

승 강기의 벽 , 택시의 뒷 좌석
에 피가 묻어있는 것이 짧 게 보여진다.

CU T T O .

다시 기차 출입구.

등 판 훑은 손등에 피가 묻어 나온다.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출입구 쪾으로 다가오는


승무원이 피가 묻은 좌석을 발견한다. 옆자리에 앉았던 40대 아줌마가 승무원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며 비수처럼 날카롭게 그를 가리킨다. 아줌마의 손가락을 따라
승무원의 시선이 서민기를 향한다. 피묻은 손으로 유리창을 짚고 있던
그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다.

IN SER T.

눈 쌓인 평야를 가로지르던 길다란 야간열차의 실내등 불빛이 산등성이


밑 터널로 빨려 들어가며 그 길이가 점점 짧 아진다.

DISSOLVE.
9
6 . INT. 헌책방. 낮

야간열차의 긴 불빛과 책의 문장 한 줄 -[ 쇳소리를 내며 속도를 더해 가는 남도행

야간 열차에서 그는 몸을 던 졌 푸 다. 른 눈밭 사이로]- 이 DISSOLVE 되는데 터널이


뚫린 눈 덮인 산등성이의 곡선과 일치 되게 찢어진 책의 페이지가 보인다.

CUT T O
의아한 눈빛으로 서민기를 바라보는 주인장.

서민기는 책 속에 파묻었던 창 백
얼굴을 들어 주인장을 보는데, 평소와 달리

'ㅁ'자 모양의 오른쪽 상단이 아니라 왼쪽 중간쯤, 야트막한 헌 책 더미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주인장의 관 심 이 부 담
래로 시선을 향하는
스러운 듯 다시 아 서민기. 그의 손위에 펼쳐진
소설책은 마지막 삼, 사십 페이지의 아래쪽 귀퉁이가 '부욱'

찢겨져 나가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주인장

자기, 어디 아 퍼? 이쪽은 연 애소설 읎어, ( 턱짓 을 하며) 저쪽이 잖아.......

반 응 이 없는 서민기.

주인장

쯧쯧 ( 혀를 찬다)..........인제 추리소설이야?

7 0. INT. 서민기아파트 침실. 아침.

한적한 아파트 단지의 소음이 간간이 들 려오고, 화장대 앞에 앉은 최보라는


온 갖 정 성을 들여 화장을 하고 있다. 눈썹을 그리고, 속눈썹을 세우고, 루즈를 바르는 등

등.....

최보라의 화장 과정이 섬세 하게 보여진다.

7 1.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아침.

침실 문을 나선 최보라는 공들여 한 화장 때문인지 젊고 생생해보인다. 거실 소파에 널 부러

져 박찬 호

야구 중계를 보고 있는 서민기를 가만 히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야구중계에 열중해 있는 서민기.

최보라

............(미안해하며) 파출부 아 줌 마 늦네, 연이 금방 깰거 구,


우 유 타놨으니까 전자 렌 지에 뎁혀 먹 이면 될거야.......

서민기

(T V 를 보며 눈을 맞추지 않는다) 40도 !

최보라

맞아, 40도........사람 나가는 데 얼굴도 안 봐?

여전 히 T V 만 보는 서민기. 잠시 서있는 최보라. 조금 우울한 표정이 된다.

그러다 등을 돌 려 구두를 신는다. 바라보는 서민기.

7 2. EXT. 공작아파트 주차장. 아 침.

운전 석 에 오른 최보라는 키를 꽂고 시동을 거는데,


그 뒤로 초보운전 팻말 을 단 승용 차가 후진해 온다. 초보운전의 서 투른 주차과정을 기다리

최보라는 우연 히 계기판의 주행계를 본다. 000.0km로 영점이 맞추어진 상태이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고갤르 갸웃거리는 최보라. 그렇지만 곧바로 초보운전 승용차가 빠져
나가고 ,

최보라도 차를 후진 시 켜 빠져나간다.

7 3. EXT. 해안도로, 최보라 승용 차, 낮.

IN SER T.

파란 하 늘 이 수평선과 맞닿아 있고 해안도로에 홀 로 서있는 최보라의 승용 차가 새끼손톱만


해 보인다.

CUT T O
검 은 선 글래스를 낀 최보라는 창 밖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운전 석 문을 열고 차안으로 들어오는 김일범. 폴 라로이드 카메라를 뒷자리에 놓으며 최보라

에게

방금 막 찍 폴 은 라로이드 사진을 준다.

김일범

우리.......그 냥 돌아가자.

상( 像 )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폴 라로이드 즉석 사진 밑 에는 '도망 '


중 이라는 제목이 붙

있다.

서서 히 상이 떠오르는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씬의 도입에 사 용되었던 인서트와 똑같이


파란 하 늘이 수평선과 맞닿아 있고 해안도로에 홀 로 서있는 최보라의 승용 차가 서서 히 떠오

른다.

7 4. INT. 은행원 집. 낮.

식탁의자에 앉은 서민기는 사 가지고 간 음 료수 봉 지를 식탁 위에 올 려놓는다. 그 맞은 편


에는

금테 안 경을 쓴 30대 중반의 남자(은행원)가 보인다.

은행원

뭐 하러 이 런걸 사와? (집 안쪽을 향하여 소리 친다)


아저 씨한테 인사해라 !

벽 모서리 뒤편에서 은행원의 아이들이 하나 씩 나 타난다. 7


살 된 딸이 나오고, 5살 된 딸이

다음,

끝났나 싶은데 그 다음엔 8 살 된 큰딸이 나오며 '안녕하세요?' 한다. 놀란 표정의 서민기.

이 번 엔 은행원의 와이 프가 벽 모서리 뒤편에서 뒤늦게 나타난다.

와이 프
오 셨어요?

서민기

형 수님 이거 오랜만. ('앗'하는 심 정으로 말을 잇지 못한다)

은행원의 와이 프가 인사를 하며 부 엌 안쪽으로 들어가는 데 등 뒤에 애기를 업고 있다.

눈이 동그 래진 서민기.

은행원

넌 그 냥 계 속 노는거야?.......어때?

서민기

아직은 모르 겠어요...

은행원

(고개를 들고새삼스럽다는 듯 서민기를 바라보며) 하긴 든든한 빽 있겠다......(미소지며)


제수씨 학원은 잘 되고?

서민기

( 쓰게 웃으며) 근데 어떻게 된거에요, 선배 님? 아까 은행에 찾아갔었어요!


은행원

( 짐짓 웃어 보이며) 무급휴가! 돌아가면서 6개월 씩 ......영업 장 나가보니까 분위기 살 벌하지?

서로 눈치만 보고 스트레스만 늘 고....집에서 놀면 더하구, (조금 소리를 줄여)


요즘은 집에 와서 이게 ( 손으로 가볍게 주 먹 을 쥔 채 엄지손가락이 약지와 중지 사이에 나

오게,

그러니까 '좆까'할 때 하는 손동작) 안 된다니까?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서로 어 색한 분위기가 됐 다.

CUT T O
테이 블 위에는 서민기가 사 가지고 온 음 료수 가 컵에 담겨 있다.

서민기

내 딸 본 적 없지요? (웃으며) 내가 형 님 따라 갈 라면 멀었지만.

수첩에서 사진을 자랑스 럽 꺼


게 내 보이는 서민기. 사진을 보는 금테 은행원.

은행원

씨 름 선 수 같다!

서민기

형 님은........황신혜 닮은 거 같지 않아?

행복한 얼굴로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는 서민기.

은행원

( 갑자기) 대출 때문에 온거지, 민기 야?

사진을 들여다보던 서민기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은행원을 본다.

서민기

예에, 사실은............인제 놀 수가 없어서....작은 사 업 이라도 해 볼 까 싶거든요.

은행원

박 대리가 대부계로 간 거 아냐? 근데 요즘에는 대출심살 본점에서 일괄로 하니까


크게 도와주지는 못할 거야. 어차피 신용대출은 안되고 담보가 문제겠지.....
니가 해 봤으니까 잘 알잖아!

서민기

(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죠?


7 5. INT. 오피스텔. 낮.

검 색 닐봉투
은 비 를 들고 오는 김일범과 최보라. 수대 안에 싱 크대 개

검 색 닐 봉투
은 비 를 내려놓는 김일범. 개수대 안의 비닐 봉투가 꿈틀꿈틀 움 직인다.

봉투 안에는 살아 있는 바다장어가 들어 있지만 보이진 않는다.

김일범

아직도 살아 있 네.......

최보라

( 욕실 로 들어가며) 맛이 있을 래나 모르 겠다.........

욕실 세 안 면대에서 수돗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검은 색 비 닐봉투 가

꿈틀거 퉁 리며 , 퉁! 스테인레스 개 수대를 친다.

7 6. INT. 오피스텔 욕실 . 낮.

비누 거품이 난 손바닥을 문지르던 최보라는 칫솔 컵 안에 든 포장을 뜯지 않은


노란색 유아용 칫솔을 발견한다. 거울 밑에는 미키마우스,

구피 등 디즈니 만화 캐릭터로 디자인 된 유아용 화장품이 있고,

그 옆에는 저자극성 비누가 놓여 있다.

얼굴이 창백해지는 최보라. 마른침을 삼킨다. 샤워 커튼을 젖히자 욕실 구석엔


유아용 욕조가 보이고, 그 안에 들어있던 유아용품 비닐 백에 매달린 이름표에는
'김 서연'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본래 이름을 쓰는 칸에 '서 연'이라고 씌여 있고,
칸을 넘어 '김'이라는 성을  ㅅ붙인 모양이다. 이름표를 잡아뜯는 최보라.

77 . INT. 오피스텔. 낮.

최보라는 욕실 문을 거칠게
분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있던열고 나온다. 차

김일범이 고개를 든다. 최보라는 김일범을 노려보고 그도 최보라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식탁 앞으로 발소리를 내며 다가선 최보라는 식탁 위에 이름표를 소리나게 올려놓는다.

최보라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어서) 무슨....생각하고


너...... 있는 거야?
김일범

( 무심하게) 뜯었어? 아무래도 갖출 건 갖춰야 겠더라구.........


(최보라의 눈치를 보며) .......그러면 가져 가든가!

최보라

( 거친 숨만 씩씩거 린다) ......................

핸드백을 집어 든 최보라는 문을 박 차고 나간다. 괴 로운 표정의 김일범.

78 . EXT. 야구연습장. 낮

타석에 선 김일범이 피칭머신에서 날아온 공을 힘있게 쳐낸다.


'깡', '깡', '깡' 빨랫줄처럼 날아가 그물을 흔드는 김일범의 타구.
진지한 표정으로 제 4구를 기다리는 김일범. 순간 피칭머신을 떠난

야구공이 피할 틈도 없이 그의 옆구리로 파고든다. 옆구리를 감싸며 쓰러지는 김일범.


벌건 얼굴로 벌떡 일어나는데 연이어 날아온 5구에 배를 맞는다.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김

일범.

김일범

야, 이 새끼야! 기계 고 친다든 게 언젠데 ,

다시 날아온 6구를 가까스로 피하는 김일범.

야 아!

하지만 피 칭머신 뒤에는 빈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자리를 지키는 주인이 없다.


얼굴이 벌 개진 김일범은 다시 타격자세를 갖추고 공을 때린다. '깡', '깡'

79 . EXT. 도로, 최보라의 승용 차. 낮

'쿵'하는 함께 앞차와 충돌하는 최보라의 승용차. 그녀의 몸이 앞으로 밀려 나갔다


소리와

안전벨트에 걸려 휘청하며 다시 돌아온다. 담배를 꺼내 물고 시가 잭을 뽑아 불을 붙이려는

순간 일어난 충돌로 시가잭을 바닥에 떨어뜨린 최보라. 앞차의 문이 열리며


30대 중반의 뿔테안경이 최보라의 승용차 쪽으로 다가온다.

뿔테안경
(중얼거린다) 니이미,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
안전벨트를 푼 최보라가 위 축된 얼굴로 차에서 내린다.

CUT T O
명함을 건네며 굽신거리는 최보라. 뿔테안경은 도도한 표정으로 최보라의 명함을 받고
깨진 미등을 만지작거린다. 복잡한 도심의 체증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한 도로의 차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음을 울린다. '차 빼', '차 빼-애', 크락션 소리 빵, 빠앙-. 차에 타는 최보

라.

8 0. INT. 서민기아파트 - 몽타쥬 , 낮.

최보라는 진공청소기로 거실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가끔씩 혼자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며, 걸레로 서연방을 닦고, 세탁기를 돌리고,
가스렌지 상판을 수세미로 닦는다.

욕실 , 거울 앞에선 최보라는 가위를 들어 자신의 머리를 조금씩 자른다.

욕실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 락 들. 가위를 내 려놓는다.

침실, 화장대 앞에 앉은 최보라는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본다.

최보라

(작은 소리로) 그만 두자, 최보라.........그만 두자.......

최보라는 연습을 하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 데 거울 모서리에 폴 라로이드 사진의 형체가

초점이 흐려진 상태로 보인다. 긴장감 있는 짧은 음악이 이어지고 거울에서 폴 라로이드

사진을 빼 내 멍하니 들여다보는 최보라. 스 무살의 최보라가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사진이다.

기 억을 되살리려는 듯 양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최보라.

장 롱 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 동안 들고 다 녔 백 Bag


던 ( )들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는 데
그 중 갈색 백 의 안 주머니에서 서너 장의 폴 라로이드 사진들이 떨어진다.

#씬9 오피스텔에 나왔던 폴 라로이드 사진 가운 데 최보라 독사진 몇 장이 담겨 있다.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표정이 복잡해지는 최보라.

거울에서 빼낸 사진을 함께 포개 다시 백속 넣
에 어둔다.

8 1. INT. 서민기아파트. 밤
투명한 유리냄비 밑 으로 푸 른 가스 렌 지 불 꽃 이 보이고,

멸 치국물을 내기 위하여 끓 는 물 속에 든 마른 멸 치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치고 있

다.

카메라 움 직이면 전기 밥통에서 김이 오르는 것이 보인다.

싱 크대 주변을 돌며 부 산하게 요리 준비를 하고 있는 최보라.

거실 소파에 앉은 서민기를 힐끔거리다 두어 번 눈이 마주 친다.

서민기

...........자 꾸 뭘봐 뭐
? ....... 도와줄 거 있어?

최보라

T V 나 봐!, ( 씩 웃으며) 심심 하면 수저나 놓든지!

국이 끓 고, 김이 오르고, '타닥 타닥' 도마 질 소리가 들리고 부 엌 풍경이 따 뜻


해 보인다.

CUT T O
식탁에 앉은 두 사람. 서민기는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을 맛있게 먹 고,

최보라는 보행기에 태운 서연이를 어르면서 동시에 식사를 하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다.

최보라

.........우리 연이 크면 가 수 시 킬까? ........... 얘 , 우는 소리 들으면 우 렁차잖아.........

최보라는 입안 가 득히 음식을 넣 고 우물 거리다 꿀꺽 삼키고는 난데없이

요즘........내가 좀예 민 했지?

국을 뜨 다 말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서민기.

.............. 좀 복잡한 일들이 있었고 인 제 해결 됐 어! 깨끗하게 해결됐어..

잠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무심한 표정으로 최보라를 바라보는 서민기.

서민기

............난 그냥 우리 딸한테 좋은 엄 였마 으면 좋겠어..당신이!

고개를 끄덕이는 최보라. 그리고 다시 밥 먹 는 것에 열중하는 두 사람.

( 무심하게 툭 던진다) 대출 받 아서 장사나 해 볼 까?


최보라

........... 돈은?

서민기

글쎄에, 아파트를 잡 히든가.......

최보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날 수도 있겠다. 봉급쟁이 하는거 보다.

서민기

퇴 직금 남은 거 하구,

서민기의 말을 자르며 불현 듯 울리는 전화벨. 서민기는 자기가 받겠다는

시 늉을 하며 식탁에서 일어나 수화기를 든다.

서민기

여보 세요 ?.......여기 아닌 데요, 가정집입니다.

최보라

누구 야?

서민기

사진관이 냐구.....

최보라

참 ! 거기 전화 온 거 메모 해 놨어..... 선생 님 돌아가 셨다구,

긴장감 있는 음악이 최보라의 대사에 따라 붙


는다. 서민기의 얼굴에도 작은 흔들림이 보인

다.

메모지에는 '강석천 선생', '대구대학부속병원 420호', '3일장' 이라는 글씨가 보이고


'대구대학부속병원 420호'라고 적힌 글 밑에 '7시 이후 영안실'이라는 글이 덧붙여져 있다.

메모지를 만지작거리는 서민기.

아 침에 산소 호흡기 뗀다구, 7 시 이후에는 영안 실로 오래, 당신도 안다구 그러던 데?


서민기


................... .

이 때 다시 울리는 전화벨. 수화기를 드는 서민기.

여보 세요 ? ........여보 세요 뚜 뚜 끊? ( 우, 우, 기는 전화)
수화기를 내 려놓은 서민기는 메모지를 뜯어내고, 전화기를 바라보는 최보라의 표정은 불안

해진다.

각자 다른 생각이지만 고민이 깊어지는 두 사람.

서민기

.......나 밥, 다 먹 었 거든, 차 키 어 딨 센타
지?..............카 나 갔다올게.........

점 퍼를 걸치고 현관문을 나서는 서민기. 그가 나가는 것을 배웅하는 최보라. 현고나문이 닫

히자,
멀리 거실 탁자 위에 놓은 전화기를 노려보는데 '따르릉, 따르릉'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날 듯이 뛰어가 수화기를 움켜쥐는 최보라.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는 그녀,
상대편도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

최보라

( 조심스럽게) 여보 세 ,

김일범( 필터 )

( 말을 끊으며) 너 무 하잖아!

최보라

(한 숨을 쉬며) 하아 , ~ 야, 너 지금 뭐 하는 건지 알아?

수화기를 들고 베란다 쪽으로 붙어서는 최보라.

김일범( 필터 )

무 화가 나는데, 그렇게 가버릴 수가


나두, 너 있어?, 난 정말 이해 할 수가 없다.
왜 니가 날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지 말이야.

최보라

우리 나중에 얘
기하자, 나중에.......

김일범( 필터 )

너 진 심 뭐야
이 , 오피스텔에서 니 태도는 뭐냔 말 이야?

최보라

그게 아니라, 너 술먹었니? 술 먹 었지? 지금 니가.........

8 2. EXT. 공작아파트 단지 앞. 밤 .

승용 차 운전 석 에 서민기가 앉아 있다. 운전대 위로 두 손을 올려 '영안실'


메모를 펼쳐 보는 서민기.

서민기

(긴 한 숨을 내쉰 ~
다) 후우 ..............

메모지를 구 겨 주머니에 넣고 차를 출발시키는 서민기. 범퍼가 덜렁거리는


최보라 승용차가 단지 정문을 나서 작은 4거리를 지난다.

서민기가 탄 승용차와 엇갈려 공작아파트 방향으로 들어오는 택시.

그 안에는 핸드폰을 들고 핏대를 올리는 길임범이 타고 있다.

단지 정문에서 김일범이 내리고 되돌아 나가는 택시를 따라 카메라 이동하면

4거리 조금 옷 미쳐 승용차에 탄 서민기가 아파트 단지 쪽 정문을 뒤돌아보고 있다.

8 3. EXT. 공작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밤 .

그 네에 앉은 김일범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최보라(소리)

너 미 쳤구나 정 말!........

김일범

잠 깐이면 돼 려오면, 나 정말 커피
, 안 내 한 잔먹 !
으러 올라 간다아 ........

그러니까 잠깐만 내려와...........

8 4.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밤 .

거실에서 수화기를 들고 애원하다시피 하는 최보라.

최보라

그러지마 제발......연이 혼자 두고 나 갈수 가 없어......

김일범(소리)

연이도 데리고 나오면 되잖아.......

최보라

(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야!..너어~................쾅

전화를 내 팽개치듯이 끊 는 최보라. 전화기를 노 려본다. 그러나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전화


벨.

어 쩔수없 이 수화기를 다시 드는 최보라.

김일범(소리)

할말이 있어, 오 래 걸리지 않을거야........

INSER T

9층 복도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는 김일범의 모습이 보인다.

김일범

...여기 니 네 집 앞인데 어떻게 할래?

SW S I H PAN

순 간 얼굴이 굳는 최보라.

최보라

분명히 미쳤어!!............................좋아, 딱 30분이야.


...너..........

아파트 단지 앞으로 가면 <타워>라는 카페가 있어. 아니, 아니 (혼잣말로) 너무 가깝다.

쭈욱 나가면 사거리 좌측에 <장미빛 인생>이라는 카페로 가....거기서 기다려.........


글루 빨리 가...응?..........그래 바로 나간다니까.............

수화기를 내려놓은 최보라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서연이를 바라본다. 베란다 창으로


나가 맞은편 동에 있는 탁아방을 내려다보는데 불이 꺼져 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이미 9시가 넘었다. 거실과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하는 최보라.


이윽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이 된다.

최보라는 거실 서랍장 안에서 비상 구급약 통을 꺼내고 그 안에서 수면제를 꺼낸다.


식탁 앞으로 수면제를 가지고 간 최보라는 포장을 벗긴 수면제 한 알의 절반,

또 다시 절반, 즉 한 알의 4분의 1을 만든 다음 컵 안에 넣으려다


1/4 조각을 다시 잘게 나누려 하는데 잘 되지 않자, 식기 건조기에서 과도를 가지고 와

그 1/4의 1/5 만큼의 잘라 내고 컵 안에 넣는다. 그 다음, 패밀리 쥬스 병에 담긴 생수를 컵

에 따른다.

작은 수면제 알갱이에 어울리는 작은 기포가 뽀글거리며 올라온다.


그리고 식기 건조기에서 젖병을 꺼내 들고 식탁 위에 놓인 분유통을 여는데 빈 통이다.

떨리는 손으로 물 컵을 들어보면 아직 수면제가 남아 기포가 올라온다.

그녀는 티스푼으로 물 컵을 저으며 찬장 구석에 놓인 분유통을 꺼낸다.

식탁 위에 수면제가 녹고 있는 물컵,

분유통, 젖병이 나란히 놓이고 최보라는 티스푼으로 물 컵을 계속 저으며 분유를 몇 수저


푼다.
이제 수면제가 완전히 녹은 물을 생수와 함께 젖병에 붓 는다.

그녀는 우유분말이 녹도록 젖병을 좌우로 흔든다.


전자 렌 지 안에 젖병 넣 뺀찌
을 고 를 이 용해 타이머를 돌린다.

8 5. INT. 서민기아파트 침실. 밤 .

옷 장 앞에 선 최보라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옷 을 고르지도 못 한 채 멍하니 서서 머리를 빗


고 있다.

전자 렌 지가 '딩동'하며 가열이 끝났다는 알람 신호 소리가 들린다.

8 6.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밤 .

결국 베이지 색 면바지에 분홍색 폴 로 셔츠를 입은 최보라는 서연이에게 젖병 을 물리고 있

다.

달고맛있게 젖병을 빠는 서연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최보라.

서연이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고 있다.

최보라

................( 웅얼거림이 간 헐 적으로 이어지고).............나중에,

(간 절하게) 나아중에, 엄 마가............ 엄마, 마지막이 야...............

CUT T O
서연이의 눈이 천천히 껌벅거리며 아기침대 위에서 잠에 빠져든다.
최보라는 서연방의 문틀에 기대 서연이를 바라보고 있고,

빈 젖병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거실 등을 끄고 작은 부엌등만 남겨둔다.

87 . INT. 카 페 <장미빛 인생 >. 밤 .

인상을 잔뜩 찌푸 린 최보라의 얼굴 위로 술에 취한 김일범의 말소리가 들린다.

김일범(소리)

나두 이러면 안된다는 거 아는데, 내가 스무 살이 아닌 걸 아는 데,


내 마음을 어떻게 정리할 수가 없어..... 어쩌면 좋냐?

최보라

이러지 마 ........ !
칸막이가 쳐져 있는 구 석 앉은 김일범과 최보라 보인다. 그 옆 유리창에
자리에 마주

'장미빛 인생' 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다. 테이블에는 맥주가

대 여섯 병 비어 있고 무슨 자살할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일범이 느리게 말


을 잇고,
최보라는 손수건을 손에 들고 주 무르고 있다.

김일범

(떨리는목소리로) 너 왜 그렇게 사람 헷갈리게 해......최보라! 그 반진 뭐야!......


결혼반지 뺄 때는 각오가 선 거 아니야? 응?....... 정말.......우리...........
마지막 기횔지도 몰라...........지금이....

최보라

정신차 려 너!...........난 유부녀구, 애기 엄 마 야!

김일범

그래 아는 데, 서연이 낳 고 내가 병 원에 갔을 때 니가 그 랬잖아.
'우리' 딸 이 쁘지? 그랬어! ' '
............. 우리 딸.

최보라

(단호하게 말을 끊 으며) 미 쳤어? 너 정 말 미쳤어!

말을 멈추는 김일범. 손수건을 의자에 팽개치며 앞의 맥주 잔 숨에


을 단 마시는 최보라.

88
. INT. 서민기아파트 거실. 밤 .

작은 부 엌 등 아 래 커니 앉았던 서민기는 식탁중간에 놓인


의자에 우두

젖병 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놀란 표정으로 거실, 부엌 등 할 것 없이 모두 켠다.


젖병 을 등 가까이 대고 보는 서민기. 우유자국이 말라붙은 젖병 위에 개미 몇 마리가 눌러

붙어 있다.

얼굴이 일그러지는 서민기.

서연이 방으로 가 서연이를 보는 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서연이의 얼굴을 만져보고 눈이 동그래진 서민기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왼손으로는 서연이의 이마를 짚어본다. 그 왼손으로 서연이를 흔들어 보지만


서연인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다급해진 서민기는 서연이를 소파로 데려와 눕히고,

서랍장 안 구급약통 속에 있는 체온계를 꺼내 서연이의 옆구리에 끼워 놓고 욕실로 뛰듯이

간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서 물 수건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 서민기는

서연이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문지르며 체온계를 꺼내는 데 온도가 3 도를 9 넘어 섰다.


체온계를 본 서민기는 그 자리에서 차 분하게 일어나 의료보험 카드,
서연의 병 원카드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큼지막한 기저귀 가방에 서연이의 옷과 기저 귀를 챙
겨 넣는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서민기(소리)

미 친 년 ..........

89 . EXT. 응급실 주차장. 밤 .

어두운 종합병 원 주차장.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응급실' 간판 보이고 승용 차가 급정거를


한다.

용수철이 튀 듯 차에서 뛰어 내리는 아이를 안은 남자의 실루엣, 응급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

다.

9 0. INT. 응급실 밤 . .

대기 실에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는 카메라.


진료구역을 나눈 칸막이를 지나 예진실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무테 안경을 쓴

30대의 퉁퉁한 의사가 지극히 일상적인 표저을 지으며 손전등으로 간이 침대에 누워있는

서연이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입안을 살펴보고 있다. 서민기는 땀을 훔치며

기저귀 가방을 들고 침대 옆에 서 있다. 디지털 체온계에 서연이의 체온이 39도 7부로 나온

다.

의사의 행동이 조금 빨라 졌 다.

의사

언제 부 터 깨어나지 않은 거죠?

서민기

(간 절한 목소리로) 두 세시간?.........사 실잘 모르 겠습니다.

의사

특별히 잘못 먹 은게 있습니까?

서민기

우 유에 개미가 들어 갔습니다.

의사
그 런 게 아니라.........(옆의 간호사에게) 여기 혈액 검 사 !

간호사

혈액 형이 뭐죠 ?

서민기

........... 혈액 형이 죠?.........잘 모르 겠는데....

간호사는 의아한 얼굴로 서민기를 힐끗 본다. 그 옆에서 의사는


차트 위에 무언가 기록을 하고 있고 간호사는 서연이 팔에 투명하고 동그란

외투 단추처럼 생긴 혈액 채취기를 눌러 피를 뽑는다. 그 아픔 때문인지 서연이는 울기 시

작한다.

고열로 추위를 느 끼 는지 부들부들 떨며 눈도 뜨 못


지 한 채 가 늘고 여린 울음소리를 낸다.
금방이라도 툭 하고 끊 어 질 것만 같다. 그 옆에서 피를 뽑는 동안 서연이의 몸이 움직이지

못 하도 록 두 팔을 잡고 섰던 서민기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간호사

창구 가서 접수 하고 오 세요! 열 때문에 아무래도 검 사를 몇 가지 더 해야 된다고 말씀하시


니까 요!

서민기

(눈물을 흘리며) 예에..........

눈물을 계 속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서연이의 조막만한 손을 놓지 못 하는 서민기.

9 1. INT. <장미빛 인생 >앞 도로. 밤 .

맥주가 흥 건하게 엎질러져 있는 테이 블 위에는 양주 병 이 서너 개 비어 있고,

그 옆으로 깨진 맥주병이 널려 있다. 한바 탕의 술자리가 파한 뒷모습은 어지 럽기 그지 없고,


카메라 천천히 창 밖으로 빠져 나오면 2 층 계단에서 내 려오는 김일범 보이는 데,
만 취한 최보라를 등에 업 은 그의 발 걸음도 휘청거린다. 적막한 밤거리를 걸어가는 두 사람.
이윽고 최보라가 김일범에게 무언가를 웅얼거린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김일범.

김일범

( 혀가 풀린 채) 뭐라구?

최보라

웅얼웅얼) ....................일버마,
..............( 이대로............

우리...같이.......죽을까?
김일범

( 픽 웃으며) 좋지이~

두 사람의 그 림자가 인도( 人道 )위에 길게 늘어진다.

9 2. INT. 응급실 새벽.

얼굴빛이 평상시 피부 빛깔로 돌아온 서연이는 침대에서 편안히 잠들어 있고,


그 옆에 기대앉은 서민기는 피로에 지친 얼굴에 남루해 보이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하루밤

새 몇 년은 늙어 버린 것 같다. 처음 진료했던 의사가 챠트를 손에 들고 서민기에게 다가온


다.

부스스 일어나는 서민기.

의사

입원 할 정도는 아니니까, 오후 쯤 에 소아과로 한 번 나오시고 지금은 데리고 가 십시오.

의사를 쳐다보는 서민기.

9 3. EXT. 도로, 최보라 승용 차, 새벽.

푸 른 기운으로 가 득찬 심 도 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창문을 절반쯤 연 채

무심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서민기는 옆에 누인 서연이를 보고 바람이

닿지 않도록 점퍼를 벗어 서연이를 감싼다.

9 4. EXT. 공작아파트 15동 현관 앞. 새벽.

공작아파트 15동 옥상에서 층


1 지면이 부감으로 촬영된다. 15동 현관 앞에 멈추는 승용차.
서연이를 안은 서민기가 현관 안으로 들어간다.

9 5. INT. 승강기. 새벽

점 퍼를 포대기 삼아 서연을 안은 서민기가 승 강기 벽 에 기대 서 있다.


층수 를 알리는 숫자 램프가 3, 5, 7순 으로 느리게 켜진다.

9 6. EXT. 공작아파트 15동 9층 복도. 새벽

서연을 안은 서민기가 승 강기에서 내 려 중 앙계단의 출입구를 통해 99


0 호 쪽 복도로 나서는

데,
99 앞에서 부둥켜 안은 김일범과 최보라를 발견하고 뒷걸음질을 친다.
0 호

화면 좌측으로 부둥켜안은 두 사람이 초점이 흐려진 상태로 보이고,

우측으로 벽을 등지며 몸을 숨긴 서민기의 얼굴 보인다. 창백해지다 못해 파랗 게 질려 가는

그의 얼굴.

최보라

!
................가아 .............인 제 가!....................

온 힘을 다해 최보라를 다시 한 번꼭껴 안는 김일범,

마치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마지막 이 별처럼 .........

김일범

(최보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벌써 , 보고 싶어......

그는 최보라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현관문을 닫는다. 9층 앙 중 계단을 향해 걸어오는 김일

범.

서민기는 김일범의 발소리를 듣 황급히 몸


고 을 피한다. 중 앙 계단의 복도 출입구를

통해 승 강기에 도달한 김일범은 버튼 을 누르고, 잠시 후 '댕' 하는 신호음과 함께 승강기 문

이 열린다.

'1층' 버튼을 누르고 승 강기 벽 에 기대서는 김일범. 곧이어 문이 닫힌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다시 열리는 승강기 문, 고개를 든 김일범의 표정엔 의연한 결심이 보인

다.

9층 복도로 걸어나온 김일범은 99 0 호를 향해 위태로운 걸음을 걷고 그 바로 위,


10 복도에서는 서연이를 안은 서민기가 김일범과는 반대로 중 앙 계단을 향해 가는 것이 보

인다.

김일범은 99 0 호 안으로 사라지고, 10 층 의 서민기는 조심스럽게 중 앙계단으로 들어간다.

5, 4, 3, 2, 1 층수 가 내 려가는 승 강기의 숫자표시를 쳐다보는 서민기. 9층 복도를 향해 몸을


돌린다.

공작아파트 15동 복도 쪽 전경. 중앙계단을 통해 9층 복도로 나온 서민기가 보인다.


909호를 향해 느리게 걷는 서민기. 이윽고 909호 앞에 멈춰서고 현관문을 연다.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움 직이지 못 하는 서민기.

DISSOLVE.

97 . INT. 편의점. 새벽

뜨거 '후, 후'거리며 먹는 서민기의 얼굴 보인다.


운 김이 올라오는 사발면을

보는 사람이 식욕이 돋을 정도로 국물을 홀짝거리며 맛있게 라면을 먹던 서민기는

사발면 용기 옆으로 포장을 뜯지 않은 스프가 놓여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다.

라면 스프를 넣지 않아 맹물에 풀어진 면발을 먹고 있었던 그는 골똘한 생각에 스프를

넣지 않은 라면 맛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국물에 스프를 뜯어 넣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시는 서민기.

98 . EXT. 공작아파트 주차장. 아 침.

트레이닝복 차 림의 이미영은 약수터 물통을 들고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 질러 간다.

목에 건 땀을 훔친다. 그녀는 가늘게 드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수건으로 이마의

귀를 세우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간 최보라 승용차가 보인다.


최보라승용차 뒷자리에서 울고 있는 서연을 발견 한 이미영.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잡아보는데 문이 열린다.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는 이미영.


이미영

( 혼잣말로) 무슨 일이 야? (서연을 안으며) 아 빠 어디 갔니?

99 . EXT. 공작아파트 15동 수위실. 아침.

서연이를 안은 이미영이 수위실 앞에 서있고 수위는 인터폰 수화기를 든 채

반복적으로 신호를 넣어본다.

수위
안 받는 데요?

이미영

(의아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한다) 앨놔 두고 어 딜 간 거야? ...................

(수위에게) 내가 가볼게요!

수위실에서 승 강기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 이미영.


100. INT. 서민기 아파트 거실, 침실. 아침.

서연이를 안은 이미영은 집안으로 들어선다. 현관에 선채로

이미영

(집안을 살피며) 민기 씨! 연이 엄 !
마 ...........이상하다.

집안으로 들어선 이미영은 거실과 건넌방을 살펴보다 한 뼘 정도 열려 있는


침실문을 조심스럽게 밀어본다. 침실문이 스르르 열린다. 침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미영.

이미영

연이 엄 !
마 ...............아악 !

외마디 비 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는 이미영. 얼결에 서연이를 꽉껴 안아 서연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이불은 방바닥에 떨어져 있고, 침대 위엔 원피스 잠옷을 입은 최보라가 가슴에
손을 모으고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원피스 잠옷과 침대 시트가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가슴 위에 겹쳐 모은 두 손이 보이는데 왼손 약지 손가락이 뒤로 꺾여 부러져 있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진다.

CUT T O
키가 크고 구렛나루가 난 형사(구렛나루)의 얼굴 보인다.

화면 확 대 되면 초동 수사를 하고 있는 형사 2명,

침실문 앞에선 순경 서너명이 보인다. 구렛나루 형사가 최보라의 왼손 사진을 찍 데


부러진 손가락에는 반지 자국만 남아 있다. 다시 후레 쉬가 터진다.

구렛나루

반지를 억지로 빼 다가 손가락이 부러 졌습니다.

구렛나루가 뒤로 물러나자 퉁퉁하고 짝달막한 형사(배불뚝)가 한 손엔 핀셋을,


다른 한 손엔 비닐봉투 를 들고 침대 위를 세밀 하게 살피고 있다. 머리카 락 ,

음모( 陰毛)들을 비 닐봉 지에 담는다.

배불뚝

아-따 ! 트래기(터럭) 천지 빼까리 네.

배불뚝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현관 께에서 순경이 외 치는 소리가 들린다.

순경 1
배형사 님 잠시만 요.

배불뚝

왜-애?

순경 1

남 편이 왔는 데요?

101. EXT. 공작아파트 15동 9층 복도. 낮.

현관에 나온 배불뚝은 '주의, 촉수금지' 팻말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던

의 경 1, 2와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서민기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서민기

.........( 울부짖으며) 놔! 새끼들아~, 이거 못놔 ? 마누라가 죽었다는데.........이거 놔아~

동정 어린 표정으로 서민기의 시선을 피하는 배불뚝 형사.

102. INT. 경찰서 사무실. 낮.

철제 책상이 연이어 이어져 있는 삭 막한 경찰서 사무실 내부가 보이고,

컴퓨터 모니 터를 앞에 두고 앉은 배불뚝 형사가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으로 얘 기를 시작한

다.

배불뚝

괜찮 습니 꺼 ?

서민기는 앞머리가 물기에 젖 어 있고 얼굴은 눈물이라도 곧 떨어 질 것 같다.


가만 히 배불뚝 형사를 바라본다.

미안 합 니더. 마, 묵고 사는 일이 이 거다 보이........... 멫 가지만 물어 보입시 더?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일단 최보라 씨 시신은 확 인 하 셨지예?

서민기
(고개를 끄덕이며) 예...

배불뚝

밤새 병 응급실, 원 에 계 셨다고예?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103. INT. 경찰서 취조실. 낮.

한쪽은 투명한 유리이고 그 반대쪽은 거울인 전형적인 경찰서 취조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김일범은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다.

날카로운 눈매로 김일범을 바라보고 있던 구렛나루 형사. 국립과학 수사


연구소 마크가 찍힌 보고서를 넘기며 중얼거린다.

구렛나루

.......... 질 안에서 정 액 나왔고............ 손톱 밑의 피부 조직 일치하고............

폭 행 후 강간........살해........

턱 괴 을 며 김일범을 바라본다. 석 연치않은 표정이지만 미진한

기 분을 털어 버리려는 듯 힘차게 의자에서 일어난다.

........... 분명히 종료 껀 된 이다........

구렛나루 형사가 출입구로 나가자 그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던 비 닐봉 지 보이는데


피묻은 체크무늬 셔츠와 칼이 담겨 있다. 오피스텔에 있었던 김일범의 등산용 나이프와

푸른 색 체크무늬 셔츠이다.

104. EXT. 공작아파트 15동. 밤.

공작아파트 15동 전 경이 보인다. 화면 확 대 되면 베란다 창을 통해 몇몇 가구들이

이어지며 보인다. 78
0 호 베란다 창을 통해 딸과 엄마로 보이는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780 호 딸 (소리)

엄 ! 마 한다, 한다 ! (T V앞 으로 엄 마를 끌어 당긴다)

78 엄
0 호 마(소리)

어디 ! 어디 !
정민 홍 기자(소리)

......이웃 주민에게 발 견이 되었으며, 유력한 용의자로 내연의 관계에 있던

김모 씨 붙 를 잡아 조사중에 있습니다.......

78 엄0 호 마(소리)

어머, 어머 ! 저기, 저기 ! (손바닥을 치며) 저 뒤에 우리 집이 야!

9 03호 전 경이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는 데, 펄쩍 펄쩍 뛰는 초등학생 아들과 엄 마가 보인다.

초등학생(소리)

(신이 나서) 엄마아, 수위 아저 씨 텔레비전 나온다.

405호 전 경이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고, 30대 부부가 다소 곳이 T V 를 보고 있다.

부인(소리)

이를 어 째, 안 그 래도 전 세 가 안나가 걱 정인데 가을에도 이사하기 글렀다!

남편(소리)
재수가 없을려니까!

97 0 호 전 경이 베란다 창을 통해 보이고 아이를 안은 주부와 남 편이 T V 를 보고 있다.

97 0 호 주부

여보, 여보 ! 나 어 제 저녁에 저 여자 봤다!

97 0 호 남 편
언제 ?

97 0 호 주부

민영이 젖먹 이고 잠이 안 와서 설거지하고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오는 데, 엘리베이터 안에

99 0 호 아 줌 마가 술에 취해서 완전 인사불 성이 되가지고 남자랑 껴안고 난리가 아닌 거야......


민 망해서 참........

97 0 호 남 편
헛헛 아직도 신 혼이네 그려......

97 0 호 주부

아니이......(작게) 딴 남자랑 !

97 0 호 남 편
니가 남 편이 아닌 줄 어 떻게 알아?

970 호 주부

얼굴은 알지.

970 호 남 편
아 무튼 여자가 밖으로 나돌면.........

970 호 주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사람이 범인인가 봐, 경찰에 신고 할까?

970 호 남 편
냅둬 , 범인 벌써 았데잖아!
잡 전화하는 순 간 경찰서에 열 댓번 은 불 려 갈꺼다.

970 호 주부

정 말?

등이 환 하게 켜진 공작아파트 15동 전 경 보인다.

FADE OU T

FADE IN

105. EXT. 공작아파트 15동 9층 복도. 낮.

배불뚝

......... 옛날 에 우리 마누라가 몇일 입원한 적이 있어서 잘 아는 데 아따 내 혼자 아

볼 라 칸께 고마 그런 고역이 없데......

비가 내리는 공작아파트 15동 복도측 전경. 909호 현관문을 가로지른 노끈에 '수사중'
'출입금지' 등이 쓰여진 팻말과 문틀에 A4지로 봉인이 되어 있던 것을 떼고 있는
배불뚝 형사와 의경 보인다. 그 뒤로 잠든 서연을 안은 서민기.

기저귀 가방 옷가방 등을 잔뜩 매고 있다.

혼자
....... 우 찌 키 울랍니까?

서민기

(서 글프게 웃으며) 심청 이 키우는 심 정인 데........어떻게 안되겠습니까?

집안을 막고 있었던 노 끈과 봉 인을 전부 제거한 배불뚝 형사.

배불뚝
쯪, 이 거 고생이 많
으 셨습니더. 또
근데 오라가라 칼겁니더, 미안해 죽겠는데
사실 관계는 확
인을 해 야 안되껬심 꺼 니 ? 양해하 십 !
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서민기.

106. INT. 서민기아파트. 낮.

집안 바닥에 수북히 쌓인 먼지 위로 침실 안까지 신발을 신고 들어 왔던


경찰들의 발자국들이 찍혀 있다. 서민기는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집안을 둘러 본다.

열린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고 널어놓은 빨래는 다시 비에 젖는다.

창문을 닫은 서민기는 서연을 소파위에 눕히고 현관문을 잠근다.

건넌방, 책 꽂
이에 있던 여 성지와 차계부를 뽑는 서민기.

7
10 . INT. 서민기아파트 화장 실. 낮.

차계부의 페이지가 넘어간다. 주행계의 수치들이 가지런히 기록이 되어 있다.


몇 페이지가 넘어가자 톨게이트 영수증이 나온다. '속초' 영수증이 보이고,
다시 몇 페이지가 넘어가자 비닐 수납봉지 안에 비상열쇠, 주머니칼,

푸른색 성냥갑이 보이는데 성냥갑에는 'CAFE 장밋빛 인생' 이라고 씌어있다.


비닐 수납봉지의 지퍼를 열어 성냥갑을 꺼낸다.

화장실 타일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그가 성냥갑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밀어내면

그 안에는 성냥알 서너 개와 김일범이 끼고 있었던 반지와

커플링인 최보라의 18금 반지가 들어 있다. 성냥갑에서 반지를 꺼내 타일바닥에 내려놓는다.

이 번 엔 한쪽 구 석
려놓았던 여성지를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데 책 중간의
에 내

'굿나잇 굿 섹스'라는 제목이 붙은 밀봉 페이지가 보인다. 밀봉 페이지를 뜯어내는 서민기.

폴라로이드 즉석사진 3장이 나온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행복하게 미소짓는 김일범과 최보라.

알몸으로 침대 위에 있는 두 사람. 마지막 사진은 자전거 도로에서 김일범이


서연이를 멜빵으로 메고 안장 위에 앉아 있고, 그 뒷자리에는 최보라가 수줍게 웃고 있다.

폴라로이드 사진 위로 서민기의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을 훔치는 서민기,

타일바닥에 내려놓았던 반지를 좌변기 안에 던져 놓고 물을 흘려 보낸다.


물과 함께 반지가 흘러 내려간다. 서민기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성냥으로 불을 붙 인다.

타들어 가는 김일범과 최보라 그리고 서연.


8
10 . INT. 서민기아파트. 새벽

밤이 새도록 서민기가 집안 정리하는 것이 몽타쥬 된다. 냉장고 안에 들었던

썩은 음식을 버리고 때에 절은 서연의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작동시 킨다. 서연에게 우 유를


타 먹이고,
진공청소기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물걸레질을 한다.

DISSOLVE.

창 너머로 들어오는 비 온 다음 날의 맑은 햇살 아 래 똑같은 포즈로 누운

서민기와 서연을 부감으로 보여 준다.

가는 숨소리를 내면 잠든 서연이를 바라보는 서민기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다.

이 즈음 '산울림'의 '불안한 행복' (김창완의 조용한 읖조림이 있는 노래이다)

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한다. 헝클어진 서연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모아주는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른다.

<불안한 행복 >의 가사가 느리게 흐른다.

예쁜 아내와 아담한 집과 새로 산 신발,


창틀을 긁는 아침 햇살 모르는 채 잠들어 있는 내 아이의 포근한 이불,

이 아침 부엌에서 들리는 수돗물 소리 나는 일어나 면도를 해야지,

향긋한 비누냄새 앞치마를 두른 아내의 모습이 즐겁다.


집이 좀 어질러져 있어도 좋다. (간주)

FADE OU
T.

음악소리 작아지며 영화 제목 <H APPY END> 떠올랐다 <H APPY>만 E D>


사라지고 < N 남

는다.

음악은 변주 되고 스탶 , 캐스트 자막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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