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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Sequence

암전 상태에서
Gustav Mahler의 교향곡 9번 ‘이별과 죽음’ 이 낮게 흐르기 시작하고 화면 밝아지면...
사진과 함께 자막이 뜬다.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수단의 굶주린 소녀」


photograph By 캐빈 카터 (Kevin Carter)

뉴욕 타임즈의 사진기자인 카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취재하기 위해 수단 남부의 아요드 식


량센터로 가던 도중 자신의 운명을 바꿀 결정적인 순간을 마주친다.

굶주림으로 쓰러져 있는 어린 소녀와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매서운 독수리의 모습.

카터는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르게 되고 그 뒤 독수리를 내 쫓고 소녀를 구해주었다.

이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 세계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하


게 된다.

하지만
일부에서 촬영보다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수상 후
3개월이 지난 1994년 7월 28일에 친구와 가족 앞으로 짤막한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음악과 화면 서서히 Fade Out

Title In “ 조용한 세상 ”

Prolog - 기인열전.(15년 전의 TV 쇼)
‘TV쇼 기인열전(奇人列傳)!’ 이라는 자막과 함께 음악과 방청객 박수가 흐르면...

-1-
사회자
(등장하며) 한 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기인열전!’ 입니다. 평범하고 지루 할 수 있는 일상에서
오늘은 어떤 분이 저희를 놀라 게 해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럼 첫 번째
기인을 모셔보죠! (팔을 뻗으며) 류 정호씨 입니다.

방청객의 환호 속 등장하는 교복 차림의 중학생 소년 정호(15). 스튜디오의 세트나 촌스런


의상에서 과거가 느껴진다.

[민희의 방]
Insert : ‘쿵쿵쿵’ 방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사내의 손.

기인열전 화면이 비디오 이미지로 바뀌고...


어색하게 서 있는 정호의 모습, 마른 체구에 눈빛은 유난히 또렷하다.

사회자
오~! 잘생긴 소년이네요. (진행표를 보며) 자기소개 멋지게 부탁드려요!

카메라 뒤로 빠지면 어두운 방안, 구형 TV 속에 정호의 얼굴이 보인다.

정 호
(낯선 듯) 저는...

침대 위, TV를 바라보고 있는 소녀(민희). 깜빡이는 TV화면이 얼굴을 비추지만, 어두워 정


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Insert : 거칠게 문고리를 흔드는 사내의 손. 다급하다.

방 밖의 소음에 관심 없는 듯 천천히 일어서는 민희. TV속 사회자의 멘트 이어지고...

사회자
그럼 정호君이 보여주실 능력은요?

정 호
저는... (뜸을 들이다) 알 수 있습니다.

방 가운데에 놓인 의자로 올라서는 민희, 천정의 형광등에 걸린 벨트의 고리를 잡는다.


계속되는 고함과 부서질 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
민희, 고리 안에 고개를 집어넣자 긴 머리의 예쁘장한, 하지만 어두운 얼굴이 보이고...
이 때 화면 속 사회자 놀라는 목소리가 울리면 TV에 시선을 보낸다.

사회자
(정호를 보며) 정호君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해요... 혹시 별명 같은 거
있나요? 친구들이 지어 준 별명이나 애칭 같은 거...

멍한 표정으로 TV를 보는 민희.

민 희

-2-
(차갑게) ...괴물...

화면 속 정호, 민희와 눈이 마주친 듯 한 눈빛.

정 호
(망설이듯) ...괴물...

동시에 ‘덜컹~!’ 넘어지는 의자.


목이 꺾이며 ‘부르르’ 떨리는 민희의 실루엣, 이윽고 ‘축~’ 늘어지면
뒤 늦게 방문을 밀치고 들어오는 중년남자(45), 늘어진 소녀를 보며 절규하듯 주저앉는다.

충격으로 불규칙하게 깜빡이기 시작하는 형광등 불빛 아래 깨진 액자가 보이면...


민희가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인데,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뜯겨져 있다.

형광등의 깜빡임과 함께 사진이 보여 지다가 Cut To Black

S#1. 인천공항. 노을

Insert : 회색 빛 서울의 차가운 빌딩들, 낮은 주택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몽타주와 함께


오프닝 크레디트 흐른다.

노을 진 하늘 위로 거대한 비행기의 동체가 착륙하는 모습이 보이면

자막 - 15년 후...

[출국장]
로터리 사인이 돌아가며 ‘웰링턴(뉴질랜드)發 - 인천行’ 비행기의 도착을 표시한다.
화물을 토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몰려있는 여행객 무리에서 멀찍이 앉아있는 사내가 보이면
장신에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있는 정호, 투명한 눈을 가진 20대 후반의 청년이다.
영문으로 된 책을 읽다가 짐을 찾는 여행객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은색 브리프케이스를 바
라보는 눈빛이 무심하다.

시간경과

은색 브리프케이스가 혼자 컨베이어 벨트를 돌고 있다. 썰렁해진 입국장에 홀로 남은 사내


를 바라보는 보안 요원의 시선... 정호, 몰입하던 책을 덮고, 자신의 가방을 챙긴다.

[공중전화부스]
모던한 공항 건물을 배경으로 줄 서 있는 공중전화들이 보인다.
길게 이어지는 송화음... 착신이 된 듯 코인이 ‘딸그락~’ 떨어지면
정 호
지금 도착했습니다. 공항이에요...

다양한 표정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며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정 호
(문득) ...듣고 계신 거죠?

-3-
S#2. 지하철 역사. 저녁

요란한 소음을 내며 승강장을 빠져 나가는 지하철.


퇴근 시간인 듯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속에 정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차량 도착을 알리는 불이 들어오면 일제히 진입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하지만 정호는 맞은편 승강장의 중년사내에게 시선이 고정 되어 있다.

40대 후반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내는 낡은 서류가방을 힘없이 든 채 멍하니 철로를 내려


보고 있다.

사내를 바라보던 정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면, 차량이 진입하며 머리가 바람에 날리기 시
작하고...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는 정호, 멈춰서는 차량에 맞은 편 사내가 가려지자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다.
경쟁하듯 차에 오르는 승객들 뒤로 멍하니 서 있는 정호... 잠시 망설이다 뒤늦게 승차한다.

[차량 안]
가득 찬 사람들을 밀어내며 맞은 편 창을 향해 걸어가는 정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중년의
사내가 고갤 들어 눈을 마주친다.

슬픈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정호에 당황하는 중년 사내.


두 사람의 시선이 길게 오가고... 순간 ‘빠앙~!’ 지하철이 진입하는 경적소리가 들린다.

[승강장]
중년 사내... 쓴 웃음을 지으며 멀리 달려오고 있는 지하철 불빛을 바라본다.

[차량 안]
주먹을 쥐는 정호, 시선을 돌려 건너편 철로로 진입하는 지하철을 바라본다.

[승강장]
멍한 눈의 중년사내, 얼굴이 불빛으로 점점 밝아지다... ‘끼이익~!’ 철로로 뛰어든다.

[차량 안]
덜컹거리며 출발하는 지하철 안, 괴로운 듯 눈을 감고 있는 정호의 얼굴.

S#3. 강남경찰서. 저녁

썰렁해 보이는 휴게실 소파에 길게 누워있는 사내가 보인다. 거칠게 자란 수염에 까치집이
된 머리를 한 삼십대 초반의 김 형사... 단잠인 듯 침이 길게 늘어져 소파를 적시고 있다.
순간, 김 형사를 흔드는 누군가의 손.

조 반장
(다정하게) 형! 형! 일어나셔야죠~!

김 형사
(귀찮은 듯) 야... 내비둬라... 좀만 더 자자...

-4-
조 반장
형~! 뭐야... 더럽게 침은 질질 흘러가지고...

김 형사
(짜증) 새끼... 내가 왜 니 형이냐? (갑자기 표정이 굳으며 벌떡 일어난
다) 어! 반장님!

한심해하는 표정의 조 반장, 동네 형 같은 느낌의 40대 아저씨다.


무안한 듯 시선을 피하며 침을 닦는 김형사.

시간경과

조반장이 뽑아온 커피를 마시는 김 형사. 아직 잠이 덜 깬 듯 멍한 표정...

김 형사
아~ 달다!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면 미모의 아나운서가 저녁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조 반장
(어이없는 듯) 얼씨구? 뉴스까지 보시게?

김 형사
(말을 돌리며 홀짝인다) 음 맛있어... 누가 개발했나 몰러~! 그쵸?

조 반장
창배는? 인연파 새끼들 빨리 마무리 해야지 그 새끼 하나 못 잡아서 사건
을 질질 끄냐? (째려보며) 이 새낀 날이 갈수록 게을러져...

걱정 마시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 형사, 셔츠 주머니에서 구겨진 수배전단을 꺼


내 펼친다. 전단 속에는 30대 초반으로 얍삽해 보이는 창배의 얼굴이 박혀있다.

김 형사
걱정 마십쇼! 창배랑은 늘 함께 하니까... (전단을 다시 넣으며) 이렇게
간절한데 언젠간 만나지 않겠습니까?

순간, 뉴스에서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시선이 가는 두 사람.

아나운서
퇴근길 교통정보입니다. 조금 전인 오후 7시경에 충무로역에서 40대 남자
가 철로로 뛰어드는 사고가 일어나 그 여파로 4호선 운행이 전면 중단되
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다른 교통...

김 형사
(TV를 보며) 저런 건조한 년... 나쁜 년...

조 반장
(황당한 듯) 새꺄! 왜 욕이야? 이쁘기만 하구먼...

-5-
김 형사
사람이 죽었는데 퇴근이 중요합니까? 뉴스 참 꽃같이 하네...

조 반장
그럼 울기라도 해야 하냐?

김 형사
(잠시생각)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야 없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도
‘별 일 아니다!’라고 하는 거 같잖아요...

조 반장
(굳은 표정) 너나 잘하세요~! 예? (일어서며) 창배나 빨리 잡아와~! 요
즘 꿈자리가 뒤숭숭한 게 영~ 기분이 별로야... 꼭 이맘때면 큰 거 하나
씩 터지잖아..? 빨리 마무리 하자고!

고개를 끄덕이며 셔츠 주머니에 소중히 손을 대는 김 형사.

김 형사
(건성으로) 예~ 예~ 곧 만납니다!

S#4. 정호의 집. 저녁

논현동 주택가의 복층 형 빌라단지.


어두워진 현관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는 정호, 답이 없는 스피커에 손을 대고 있다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본다.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는 정호의 뒤로 나타나는 중년의 경비원.

경비원
누구십니까?

인기척에 돌아보는 정호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경비원.


[거실]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복층 형 집안 내부...
어둑한 집안을 둘러보는 정호,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비원(E)
주인 내외가 갑자기 보름정도 출장을 가게 됐다구, 조카 분 오시면 키를
주라고 합디다. 연락을 계속 하셨다는데 걱정 많이 하시더라구요...

[정호의 방]
2층에 올라와 방문을 여는 정호. 오래 비워 놓은 듯 썰렁하지만 단정히 정리 되어 있다.

[암실]
가방에서 여러 종류의 카메라와 필름들을 꺼내는 정호.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이 보이면 대
부분 10대 소녀들의 인물 숏이다. 웃기도, 찡그리기도, 무표정하기도 한 사진 속 인물들이
가지런히 걸려있는 액자들...

[2층 서재]
가득한 책들과 A/V 시스템이 갖춰진 서재.

-6-
한 쪽 벽에 커다랗게 걸린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을 바라보는 정호의 섬뜩한 무표정.
방 안의 불이 꺼지면 사진은 달빛을 받아 묘하게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가는 정호... 뒷모습이 무겁다.

S#5. 논현동 양옥집. 밤

비스듬히 얼굴을 기울이고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듯 한 여덟 살 소녀1의 얼굴.


묘한 표정을 한 소녀1의 시점으로 보이는 상황들...
누군가의 손이 뭔가를 찾고 있다. ‘삐거덕~!’ 열리는 우편함의 쇳소리와 ‘스윽~!’ 더듬거리는
손길, 급한 숨소리 등이 과장되게 울리고 있다.

누군가의 손에 잡히는 반짝이는 열쇠 하나, 현관문을 열고 있는 뒷모습, 소녀1의 손에 들려


있는 피에로 인형에서 ‘캬 캬 캬~!’ 하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간 누군가가 몸을 돌려 소녀에게 손을 내밀면...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짓는


거대한 피에로(소녀의 환각)가 보인다.

[거실]
소녀1을 소중히 안고 있는 피에로의 실루엣.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향하며...

피에로
(기괴한 음성) 꼭꼭 숨어야지... 꼭! 꼭!...

웃음 짓는 소녀1의 입가에 침이 길게 늘어진다.

[세탁실]
동그란 유리문이 달린 드럼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무언가에 걸린 듯 ‘틱! 틱!’ 소리를 내며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세탁기.
유난스럽게 덜컹거리는 세탁기 속에서 피에로 인형이 돌아가고 있다.

S#6. 주택가 꽃집. 아침

화사한 꽃들이 가득한 작은 꽃집.


뽀얀 얼굴의 아홉 살 수연이 행복한 표정으로 꽃들을 보고 있다.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으로 수연을 내려 보는 꽃집 주인. 뭔가 간절한 듯 자신을 올려다보
는 꼬마의 표정에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수연, 갑자기 살인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이면 졌다는 듯 한숨을 쉬며 튤립 한
개를 집고는...

꽃집 주인
(웃으며) 이것만 필요해?

수연
(밝게) 네! 엄마가 이 꽃만 보면... (뜸을 들이다) 웃으세요!

시간경과

-7-
햇살이 밝게 비추는 거리를 깡충깡충 달리는 수연. 커다란 가방이 무겁지도 않은지...

S#7. 수연母 병원. 아침

수연이 받은 각종 상장과 가족사진 등으로 꾸며져 있는 따뜻한 느낌의 개인 병실.


각종 기계장치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 의식은 없이 눈을 ‘꿈
뻑’ 거리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화병에 물을 채워 나오는 수연, 꽃을 꽂으며 웃는다.

수연
(책가방을 열며) 내가 전학 가서 서운한 지 편지랑 선물이랑 잔뜩 이에요!
글짓기 한 거 상도 받았구...

편지, 조그만 선물들과 상장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수연. 반응이 없는 엄마의 모습에 감정
의 변화가 있는지 훌쩍거리지만 다시 밝게 웃기 시작한다.

수연
아줌마, 아저씨 두 분 다 대학교 선생님이래... 말도 잘 듣고 새 학교에
서도 공부 열심히 할꺼야...
(눈물을 훔치며) 글구 앞으론 안 울께! 약속!

커다란 엄마의 손에 조그만 새끼손가락을 거는 수연... 귀엽고 씩씩하다.

S#8. 위탁보호센터. 낮

두 팔을 벌린 사람을 형상화한 위탁보호센터 동상이 내려 보고 있는 옥외 휴게소.


시원한 정장 차림의 사회복지 담당관 유진이 수연의 머리를 정성껏 땋아 주고 있다.

유진
(수연을 힐끔 보며) 우리 수연 양 떨려?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의 머리칼을 정성스럽게 묶는 유진.

유진
(다정하게)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해? 언니가 뭐라고 했지?

수연
(작게) 밝고 명랑하게...

유진
또?

수연
(유진을 돌아보며 힘을 낸다) 씩씩하게!

유진, 기특해 죽겠는지 수연의 볼을 살짝 꼬집어 준다.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담당관(40)... 뚱뚱한 체구의 사내로 커다란

-8-
뿔테안경이 음산한 느낌을 준다.

담당관
(난처한 듯) 전화를 안 받는데...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맺힌 땀을 닦는다.

유진
어쩌죠? (난처한 듯) 저는 서류 땜에 오후엔 자리를 비울 수 없는데...

담당관
어쩌긴? (누런 이빨을 보이며) 연락 될 때 까지 수연이가 아저씨랑 놀아
줘야지...

이상한 아저씨한테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는 수연.

S#9. National Geographic 사무실. 낮


어둑한 중형 회의실 스크린에 슬라이드 필름이 영사되고 있다.
남녀가 반갑게 코를 비비고 있는 사진, 담배를 태우는 슬픈 눈의 노파 등 원색 전통복장의
마우리族 모습들이 이어지고... 대부분이 느낌이 강한 인물 사진들이다.
시크한 삼십대 후반의 여성 편집장을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정호.
리모컨을 들고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편집장, 만족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지는 사진 속에 마우리族 소녀의 무표정한 정면 숏이 길게 보여 지면...


정호, 생각에 잠긴 듯 눈빛이 흐려진다.

S#10. 정호의 중학교(정호의 회상). 낮

민희의 무표정한 얼굴, ‘꾸벅’ 인사를 하면 칠판에 커다랗게 쓰인 ‘김민희’ 라는 글씨가 보인


다. 어색해 보이는 소녀를 바라보는 정호, 눈빛에 호감이 어려 있다.
비어 있는 정호의 옆 자리에 앉는 민희.

정호
(조심스레) 난 정호야! 류정호... 반가워.

민희
(대꾸 없이) ...

잠시 어색해진 분위기... 가방에서 책들을 꺼내는 민희의 모습을 바라보다 그대로 따라하는
정호. ‘힐끔’ 의식하던 민희가 노트를 펴자 따라 펴고, 연필을 꺼내자 역시 연필을 집는다.
새 짝꿍의 장난을 의식한 듯 슬며시 노트에 글씨를 쓰는 민희.

바보

민희, 쳐다보면 정호도 노트에 글씨를 적고 있다.

-9-
너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는 민희, 역시 미소를 짓는 정호의 모습에 얼굴이 붉어진다.

S#11. National Geographic 사무실. 낮


커튼을 젖히는 편집장. 회의실에 빛이 쏟아진다.
빛을 의식하며 눈을 찡그리는 정호, 편집장을 본다.

편집장
기대 이상인데요? 사진들이 필이 강해서 좋아요... (얼굴을 붉히며) 물론
작가분도 필도 좋고... 이거 어렵게 섭외한 보람이 있는데요?

정호
(덤덤히) 감사합니다.
편집장
(사진첩을 넘겨보며) 이런 강렬함이 표준렌즈에서 오는 건가? (웃으며)
팬 자격으로 질문인데, 표준만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정호
(뜸을 들이다) 눈에 보이는 느낌들을 왜곡 시키고 싶지 않아서요... (편
집장을 똑바로 보며) 뭐랄까? 감당하기 힘들어서라고 할 수도 있겠고...
사뭇 진지한 정호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편집장
덕분에 뉴질랜드 특집은 안심이네... (사진들을 챙기며) 언제 출국하시죠?

정호
한 달 정도 있을 생각입니다.

편집장
(아쉬운 듯) 그래요? 그럼 가시기 전까진 저희 쪽으로만 오픈해 주세요!
다음 호 기획회의 끝나면 한 번 더 모시게... (동의를 구하듯) 괜찮죠?

쉽게 대답을 못하는 정호에게 악수를 청한다.

편집장
(힘차게 악수를 하며)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장난스럽게) 기념으로 마
우리처럼 코 인사 한 번 할까요?

정호
...

정호의 경직된 반응에 썰렁해 지는 회의실.

S#12. 논현동 양옥집. 낮

S#5의 양옥집 거실...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둑한 느낌이다.


현관문이 열리며 30대 후반의 부부가 미운 일곱 살 사내아이와 여행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10-
미운 일곱 살
(괴성을 지르며) 우와~! 자자!!!

짐을 팽개치고 방으로 뛰어가는 사내아이.

부인
야! 씻고 들어가!

남편, 힘이 든 듯 한숨을 쉬며 소파에 누워버린다.

부인
간만에 간 거 가지고 티를 내요 티를... (양말을 벗어 던지는 걸 보며)
어머! 또 저런다!

[세탁실]
세탁물을 잔뜩 챙겨 들고 분리를 하는 부인, 투덜거리며 드럼 세탁기 문을 열면 가득 차 있
던 물이 바닥으로 쏟아지며 피에로 인형이 바닥에 떨어진다. 물이 빠진 어둑한 드럼 속에
무언가의 형체가 보이고...

부인
(경악한 듯) 아악!!!

S#13. 도심거리. 낮

차들이 길게 밀려있는 도심 속 중형 세단...


조수석에 앉아 불만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김 형사. 운전석에는 똘똘해 보이는 20대 후반
의 최 형사가 있다.

김 형사
(하품을 하며) 자도 자도 또 졸린다... 이거 무슨 병 아냐?

최 형사
(웃으며) 그거 병이지~! 강력반 5년에 산전수전 다 겪고 애인도 마누라도
없이 대충 사시니까 생기는 병이죠.

김 형사
(째려보며) 까분다.

최 형사
나라도 까불어야지 뭐~ 있나요?

김 형사
새끼 말대꾸는 자동이야... (창밖을 보며) 난 여기서 내릴 테니까 너는
장물 하는 애들이나 더 만나봐!

최 형사
왜? 어디 가시게? 같이 가요!

-11-
김 형사
(주머니에 꼽힌 수배전단을 어루만진다) 갑자기 가슴이 설레는 게... 아
무래도 창배가 지하에 계신 거 같다.

최 형사
(삐죽거리며) 그 놈의 감은... 맞는 날이 오시려나? (차를 대며) 또 아무
거나 때우지 말고 밥이나 같이 먹고 가세요!

김 형사
(최 형사를 보며) 엄니~! 됐슈! (내린다) 이따 봐!

시간경과

도심 지하철 역 입구... 오가는 사람들 속에 전단을 나눠주는 남루한 복장의 여인이 보인다.
무시하며 걷는 사람들에 주눅이 들어 전단을 내밀지 못하는 모습...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김 형사.

S#14. 지하철 역 승강장. 낮

승강장 끝에서 있는 김 형사. 아까의 전단을 다 챙겨들고, 무거운 듯 짝 다리를 딛고 있다.


‘희한하네~!’ 하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투덜대며 전동차에 오른다.

김 형사
(혼잣말로) 너무 눈에 띄나?

반 정도 차 있는 내부를 직업적으로 둘러보는 김 형사,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다른 칸]
가속이 붙기 시작하는 전동차의 다른 칸. 구석 문가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 정호가 보인다.
눈을 들어 전광판에 흐르는 역 표시를 보다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리면... 다른 칸에서 넘
어오는 건장한 사내 창배(김 형사의 수배전단 속 인물)가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건성으로 미안하다는 눈길을 보내고 기다리던 사내1, 2와 귓속말을 나누는 창배.
두 사내를 바라보는 정호의 눈... 뭔가를 속삭이는 모습을 보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가면 문
가에 서서 두툼한 핸드백을 ‘꼬옥~!’ 쥐고 있는 중년 부인이 보인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전
화 중인 중년 부인의 표정과 핸드백을 번갈아 보던 정호, 낮게 한숨을 쉬며 다시 책을 읽는
다.
건너편 출입구에서 들어오는 김 형사, 주변을 살피며 발걸음을 옮기다 멀리 승객들 속 창배
를 보곤 재빨리 몸을 돌린다. 수배 전단을 꺼내 얼굴을 확인하곤 감동을 먹은 표정...

주변 눈치를 보며 슬며시 중년 부인에게 접근하는 창배무리... 어느새 부인을 포위한 느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다 사내들을 보는 정호, 고민이 되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책을 덮으며 창배무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전단지를 바닥에 놓고 달려갈 태세를 하던 김 형사의 눈에 갑자기 정호가 등장한다.


창배의 어깨를 잡는 정호, 돌아보는 창배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모습. 놀란 듯 눈이 커졌

-12-
다가 갑자기 살기를 뿜기 시작하는 사내들... 마침 전동차가 멈추자 정호의 옷깃을 잡고 끌
어내린다.

김형사
(당황한 듯) 어라? (순간 멈추며) 아차차!!!

깜빡한 듯 전단지를 챙기며 황급히 달린다.

S#15. 지하철 역 화장실. 낮


정호를 몰아 놓고 어이없어 하는 창배일당...

창배
(건들대며) 뭐하시는 분이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긴장한 표정의 정호, 대꾸 없이 사내들의 표정을 하나씩 살핀다.

사내2
(한발 짝 나서며) 형님이 묻잖아요~ 씹 새끼야!

정호, 날아오는 사내2의 주먹을 ‘턱!’ 하고 잡는다. ‘부르르~’ 주먹을 잡고 버티며 날카로워
지는 정호의 눈빛. ‘씨발~!’ 하며 다른 주먹을 날리는 사내2. 정호,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
다 가볍게 피하면 뒤에 있던 핸드 드라이어가 박살난다.

사내2
(괴로운 듯) 아악!

부서진 주먹을 쥐고 바닥을 구르는 사내, 비명이 울리는 화장실.

창배
오호~ 좀 노셨나봐!

정호
(무섭게 노려보며) 그만들 하시죠!

사내3
그럴까요?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칼을 꺼내드는 사내3, 긴장한 듯 침을 삼키는 정호.


순간 들리는 김 형사의 목소리...

김 형사
(공손하게) 사장님들 그만 하시죠!

돌아보는 창배무리, 구면인 듯 당황하기 시작한다.

창배
(한발 짝 물러서며) 아~! 김 형사님이 여긴 웬일로?

-13-
공손히 전단을 내미는 김 형사의 행동에 당황하는 창배무리.

싸구려 색감에 후진 글씨체로 써 있는 ‘앗! 뜨거 찜질방!!!’ 문구.

받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는 사내2의 얼굴에 순식간에 잽을 날리는 김 형사.


코피를 흘리는 사내2, 인상이 험악해 지면 창배도 칼을 뽑아 든다.

창배
(긴장을 감추며 웃는다) 개업하셨어요? 돈 좀 버셨나봐?

김 형사
박봉에 시달리다 부업 중이시다! (수갑을 던지며) 알아서 묶으셔!

수갑을 받아든 사내1, 창배의 눈치를 보다 한손에 수갑을 ‘척!’ 찬다. ‘저 새끼가...’ 하며
사내1을 째리던 창배, 사내2와 눈빛을 교환한다.

김 형사
(창배와 사내2를 보며) 자! 일대일이면 맞짱 뜨고 둘이 덤비면 쏜다!

창배
(멈칫하다) 포돌이가 총이 어딨어!

몸을 돌려 정호에게 달려들면... 창배의 눈을 보며 침착하게 팔목을 잡아 꺾는 정호.


동시에 김 형사에게 달려든 사내2, 연속되는 잽과 어퍼컷에 코와 턱이 깨지며 쓰러진다.
창배를 제압하고 있는 정호에게 호감어린 시선을 주는 김 형사... 쓰러진 사내2를 끌고 사
내1와 같이 수갑을 채운다.

김 형사
(창배의 옷깃을 잡고 정호를 본다) 괜찮으세요?

창배
아... 아파요!

김 형사
(창배의 뒤통수를 때리며) 너 말고 임마!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정호와 눈이 마주치는 김 형사. 순간, 방심을 틈타 뱀 허물


벗듯 재킷을 벗고 달리는 창배.

김 형사
(재킷을 보며) 새끼 명품은... (사내1,2를 턱짓한다) 쟤들 좀 부탁합니다.

창배의 재킷을 걸치며 달려 나가고...


남겨진 사내들, 무표정한 정호의 시선에 괜히 착한웃음을 짓는다.

정호
(한숨을 쉬며) ...

-14-
S#16. 지하철 역 매표소. 낮

사람들을 제치며 달리는 창배와 쫓는 김 형사. 사람들이 가득한 매표소 앞을 트랙 돌 듯 돌


고 있다. ‘아니다!’ 싶은 듯 상(上)행 에스컬레이터로 달리는 창배, 뒤 쫓는 김 형사를
의식하다 옆 쪽 계단으로 몸을 날려 다시 뛰어 내려온다. 김 형사도 몸을 날려 계단을 뛰어
내려오면 다시 에스컬레이터로 몸을 날리는 창배...
두 사람의 엇갈림이 계속 되다 서로 지친 듯 잠시 대치 국면이 된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계단의 창배와 레벨을 맞추는 김 형사.

창배
(어이없는 듯) 그걸 왜 입고 있어!

김 형사
(어깨를 으쓱 하며) 야~! 딱 맞는다. 명품은 처음이야!

눈치를 보다 계단으로 몸을 날리는 김 형사.합을 맞춘 듯 에스컬레이터로 건너가는 창배...

김 형사
(지친 듯) 야... 가자! 이게 뭔 짓이냐?

창배
(억울한 듯) 우리 새끼들 다 잡아갔잖아? 왜? 나까지 걸라고?

다시 위치를 바꾸는 두 사람.

김 형사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 한 지 알어?

순간 김 형사의 휴대폰이 울린다.

김 형사
(창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반장님?

창배
가지가지 한다...

전화 속 ‘뭐라 뭐라...’ 하는 고함소리에 표정이 굳는 김형사.

김 형사
(놀란 듯)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갑자기 진지해 지는 표정...

김 형사
창배씨... 오늘은 인연이 아닌가보다!

갑자기 제자리걸음을 멈추는 김 형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버리고...

-15-
계단에 홀로 남겨진 창배, 사태파악이 안 되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구경꾼들을 의식한다.
S# 17. 논현동 양옥집. 노을

지문을 채취하는 감식반 요원들과 현장을 지휘하는 조반장의 모습.

[세탁실]
소녀1의 시신이 담긴 듯 기다란 지퍼 백이 불룩해 보인다. 여전히 창배의 재킷을 입고 있는
김 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조 반장
8~9세 정도 되는 여아(女兒)야... 외상은 없고 세탁기 안에서 익사한 거
같아... (울먹이며) 꿈자리가 뒤숭숭한 게 내 이럴 줄 알았다. 승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혼잣말로) 바로 강등인가?

김 형사
(인상을 쓰며) 유괴된 건가?

조 반장
알아봐야지... 목격자도 지문도 없고... 일단 부검부터 해야 되니까 서로
가자고.

비닐 백에 담긴 피에로 인형을 집는 김 형사, 화가 난 듯 어금니를 깊게 깨문다.

김 형사
(혼잣말로) 어떤 새끼가... 애를...

S#18. 정호의 집 경비실. 저녁

두 평정도의 경비실, 낡은 TV가 광고들을 보여주고 있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시계를 보는 담당관, 간이침대에 곤히 잠든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
으며 경비원을 본다.

담당관
(짜증난 듯) 사무실 들렀다 퇴근해야 되는데...

무심히 TV를 보던 경비원, 창밖을 보고 눈이 커진다.

경비원
오셨네!

시간경과

‘위탁아동계약서’ 라 적힌 서류를 보던 정호, 자고 있는 수연을 본다.

담당관
(땀을 닦으며) 교통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2년 째 병원에
계십니다. 다행히 피해자라 금전적인 문제는 없는데... 다른 친척들이 없
어서 위탁보호를 받고 있어요...

-16-
정호
(냉정하게) 저는 집 주인이 아닙니다. 보름 정도 있다 오시는 게...

담당관
(말을 끊으며) 그게 좀 문제긴 한데... 전에 있던 천사의 집이 폐쇄 되서
당장 갈 곳이 없습니다. 저희 쪽 시설도 한계가 있어서... 얘가 똑똑해
서 문제는 없을 겁니다. 교육도 잘 받았구요... (고개를 숙이며) 부탁합
니다!

잠이 깬 듯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수연, 훤칠한 키의 정호를 멍하니 올려본다.


소녀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 쉬는 정호.

S#19. 정호의 집. 저녁

현관까지 배웅을 온 담당관, 긴장한 표정의 수연에게 가방을 건네주며 볼을 꼬집어 준다.

담당관
아저씨 이름이 정호래 류정호! 멋있는 아저씨랑 사니까 좋겠다!

현관문을 여는 정호를 의식하는 수연.

수연
(책을 읽듯) 저는 박수연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고 9살입니다.
청소, 설거지, 빨래를 특히 잘하고 밥도 할 줄 압니다.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응 없이 문을 여는 정호, 돌아서 당황한 담당관을 본다.

정호
그럼...

썰렁한 반응에 긴장이 더하는 듯 얼굴에 그늘이 지는 수연.

[거실]
고풍스런 집안 모습에 입이 벌어진 수연에게 방문을 열어주는 정호.
미리 준비된 듯 아담하게 꾸며진 방에 또 한번 입이 벌어지는 수연.

정호
(덤덤하게) 보름 정도 후에 오시니까 그동안 편히 쓰도록 해...

수연
(꾸벅 인사를 한다)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들면 어느새 2층 계단을 향해가는 정호의 뒷모습이 보인다.

수연
저녁은 드셨습니까?

-17-
대답 없이 어둑한 2층으로 사라지는 정호. 두 번 연속 무시에 오기가 생긴 듯 입을 오므리
며 주먹을 쥐는 수연, 거실을 둘러보다 팔을 걷어붙인다.

[2층 서재]
책이 가득 꼽힌 서재 안.
소파에 앉는 정호, 오디오 리모컨을 들어 파워를 켜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며 앰프에 달
린 이퀄라이저가 음악에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퀄라이저를 멍하니 바라보다 음악에 빠진 듯 눈을 감는 정호, 볼륨 버튼을 깊게 누르며
소파 팔걸이에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댄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드럼소리에 미세하게 떨리는 팔걸이와 정호의 손.
음악과 함께 진동을 느끼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정호의 편안한 얼굴.

크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웅~!’ 하는 묘한 음으로 Sound Dissolve 된다.

[거실]
‘웅~!’ 하는 소리의 정체는 진공청소기이다.
키보다 큰 봉을 잡고 이리 저리 밀고 다니는 수연... 마냥 아이 같은 모습이다.
잠시 소파 테이블을 정리하러 청소기 전원을 끄면 2층에서 흘러나오는 커다란 음악소리...
2층을 올려보다 음악을 흥얼거리는 수연,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들을 넘겨보며 눈이 간지러
운 듯 비비기 시작한다.

S#20. 강남 경찰서. 밤

회의실에 앉아 있는 형사들... 서류들을 넘기며 브리핑을 하는 최 형사.

최 형사
익사체라 사망추정이 힘들다는데 대략 72시간 내외라고 합니다. 신원은
아직도 미상이구요 외상없고, 성폭행 흔적도 없습니다. 영양 상태가 좋은
편이라 유괴 시점 역시 72시간 내외라고 판단했구... 옷을 봐서 중산층
이상 자녀고... 근데 좀 특이한건 혈액검사에서 마약성분이 검출 됐다는
겁니다.

조 반장
마약?

최 형사
네... 매직 머슈륨이라고 미국에선 환각성이 있는 버섯을 마약대신 사용
한답니다.

김 형사
매직... 그거 국내엔 아직 없어!

최 형사
(끄덕이며) 국내엔 아직 없지... 근데 말똥 버섯이라구 있데요... 아마도
그걸 거라고...

김 형사

-18-
그 재수 없는 인형은 뭐야?

최 형사
글쎄요... 아이 껄 수도 있고 범인이 준 걸 수도 있고... 암튼 국내에서
구하긴 힘든 거라던데...

김 형사
야! 뭔 보고가 그러냐? 대략에, 근데에, 아마도에... 쓰벌! (조 반장을
본다) 이거... 한 번에 끝날 거 같지 않은데요...

조 반장
(긴장한 듯) 그러게 괜히 떨린다.

김 형사, 펜을 물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벌떡 일어선다.

김 형사
(생각난 듯) 아차차!!! 인연파!

[강력반 사무실]
김 형사의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는 사내2. 손에 깁스를 한 사내1은 진지한 표정으
로 노트북에 타이핑을 하고 있다.

김 형사
야! 미안하다. (화면을 보며) 다 썼냐? 왜 니가 했어?

사내1
육하원칙으로 깔끔하게 정리 했습니다. (사내2를 보며) 이 새끼는 DOS도
몰라요!

김 형사
(뒤통수를 갈긴다) 일어나 임마! (내용을 보다) 응? 이게 뭔 소리야?

사내1
그게 그 소린데요?

김 형사
(진술서를 읽는다) 작전회의를 마치고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나
타난 무명(無名)씨가 ‘아주머니 아들 치료비니 그냥 두라!’ 는 말을 해서
당황한 저희는 일단 대화로 풀어보려 화장실로 향했고... 순간 갑자기 난
폭해진 무명씨가 저의 손을... (째려보며) 이 새끼가 사기치고 있어...
무명씨가 아줌마 아들이야?

사내1, 2 나란히 고개를 젓는다.

김 형사
무명씨가 니들 알어?

역시 고개를 젓는 사내1, 2.

김 형사

-19-
그럼? 니들 소곤대는 걸 들은 거야?

이번에는 서로 고개 방향이 틀리는 사내1, 2.

김 형사
(어이없는 듯) 무명씨가 육백만 불 사나이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사내1, 2
(동의하듯 동시에) 그러니까~? 희한하죠?

조서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김 형사.

Insert : S#14 지하철 안. 창배의 어깨를 잡는 정호의 굳은 눈빛.

고개를 꺄우뚱 하던 김형사, 괜히 사내1,2의 뒤통수를 번갈아 때린다.

S#21. 정호의 집. 밤
방문을 노크하는 수연, 답이 없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소파에 앉아 있는 정호의 뒷모습과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잠이 든 듯 한 정호의 뒷모습과 낯선 느낌의 사진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수연.

[수연의 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수연. 아직 꼬마라 실눈을 뜨다 말다, 몸을 꼼지락거리고 있다.

수연
엄마가 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해 주시고... 음... 위층 아저씨 안 무섭게
해 주세요...

침대에 올라 이불을 덮는 수연,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2층 서재]
서재 벽에 붙어 있는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이 잠든 정호를 내려 보는 듯 하다.
흑인 소녀를 노려보는 독수리의 눈이 매서워 보이고... 카메라 천천히 다가간다.

S#22.정호의 집.(악몽) 새벽

선잠이 든 듯 몸을 뒤척이는 정호,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혀있다.

순간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정호의 얼굴을 스치면 커다란 깃털 하나가


허공에서 떨어진다.

잠이 깨 눈을 뜨는 정호. 문득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면 독수리가 보이질 않는다.


당황해 고개를 돌리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검은 물체...
구석의 물체가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달빛을 받으면 거대한 날개를 펼치는 독수리다.
공포에 질린 정호, 매서운 눈을 한 독수리가 발톱을 벌리며 달려든다.

-20-
S#23. 정호의 집. 새벽/아침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정호.

정호
아악~!

꿈인 걸 깨달은 듯 숨을 고르다 무릎을 덮고 있는 모포를 본다.

정호
(의아한 듯) ?

테이블 위에 샌드위치와 우유가 놓인 것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다.

정호
(건조하게) 쓸데없이...

일어서 서재를 나서는 정호, 문을 닫으면 어두워졌다가 잠시 후 천천히 밝아지는 화면...

햇살이 들어오는 서재... 지난 밤 그대로지만 테이블 위 쟁반이 보이질 않는다.

[1층 부엌]
잘 차려진 아침식사 앞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수연.
맞은 편 정호가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다.

수연
(실망한 듯) 그건 야식인데... 밥을 드셔야죠...

정호
(신문과 유진을 번갈아 보며) 이따 먹을게...
수연
(젓가락을 깨작대며) 점심도 해 놨는데...

순간 거실에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반응 없이 신문을 보는 정호가 서운한 듯 고개를 숙이는 수연. 계속 울려대던 전화벨이 응
답기로 넘어가면... S#9의 편집장이다.

편집장(E)
안녕하세요? (발음을 굴리며) 저 National Geographic 치프에디턴데요...
기획 회의 끝났습니다. 컨셉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10년 만에 돌아온 코스
모폴리탄이 모국의 수도를 스케치한다!’ 라고 할까? 암튼 자세한 건 메일
로 보냈구요... 내일 갤러리 현대에서 뵙죠! 괜찮은 사진전도 보고 느낌
도 공유하고...

통화 종료 음이 들리면, 듣는 둥 마는 둥 신문만 읽는 정호. 수연, 괜히 주눅이 든다.

S#24. 수연의 학교. 아침

-21-
초등학교 정문 앞. 가족의 배웅을 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고, 혼자 교문 통과하는 수연
의 얼굴은 시무룩하다.

Insert : 하늘에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간다...

S#25. 연립 아파트. 아침

뜨거운 김이 피어나며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다.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부르며 샴푸로 거품을 내는 여인.
강하게 쏟아지던 물줄기가 ‘쿨럭~!’ 거리며 잦아들자 의아한 표정으로 샤워기를 쳐다본다.
뭔가에 막힌 듯 물방울만 떨어지자 샤워기를 ‘툭툭’ 쳐보는 여인.
반응 없던 샤워기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뭔가를 쏟아낸다. 머리카락과 검은 이끼들...

여 인
꺄아악~!!!

[옥상]
수도관을 타고 물탱크 안으로 울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비명...
뚜껑이 반쯤 열려있는 물탱크 내부에 피에로 인형이 ‘둥둥~’ 떠있다.

S#26.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낮

소녀2의 부검이 이뤄지는 수술대가 유리에 반사되어 보인다. 수술복을 입은 검시관들과 메


모를 하는 최 형사의 모습... 창 너머의 광경에 어금니를 무는 김 형사와 울상을 짓는 조
반장.

시간경과

부검실을 나오는 최 형사와 검시관. 최 형사, 비닐 백에 담긴 피에로 인형을 들어 보인다.

검시관
패턴이 같습니다.

좌절한 듯 고개를 숙이는 조 반장.

최 형사
연령대랑 성별, 익사체인 점... 환각성분까지 정확해요...

김 형사
사망 시점은?

검시관
(어깨를 으쓱하며) 역시 익사체라 정확하진 않은데 부패 정도로 봐서 1차
사건 보다 최소 1주는 먼저입니다.

조 반장

-22-
(놀란 듯) 그럼 순서가 2차 1차가 되는 거야? 피해자가 더 있는 거야?

비닐 백을 받아드는 김 형사. 이끼가 낀 피에로 인형이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김 형사
씨 발... 신원파악도 안되고... (허공을 응시하며) 세상 삭막해지네...
후~!

분을 삭이는 듯 인형을 ‘꽉’ 쥐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김 형사.

조 반장
야! 어디가?

김 형사
어디든 가야죠! 물 있는데 다 뒤져 보던가...

S#27. 주택가 놀이터. 낮

텅 빈 놀이터에 가방을 맨 초등학생 소녀3이 보인다. 그네에 앉아 고개를 숙인 모습이 우울


해 보이는데... 건너 편 입구에 멈춰서는 흰 색 세단이 눈에 띤다.

[차 안]
투명한 수술용 장갑을 낀 채로 피에로 인형을 집는 누군가의 손. 짙게 코팅 된 창문이 열리
면 그네에 앉아있는 소녀가 보인다. 소녀의 눈에 들어오는 피에로 인형의 기괴한 얼굴.

S#28. 주택가 꽃집. 낮


화사하게 핀 꽃들을 바라보는 수연... 오늘은 왠지 시무룩해 있다.

S#29.수연의 학교.(수연의 회상) 낮

여러 종류의 악기를 든 아이들과 동물 가면을 쓴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 교실 안.


20대 후반의 여성인 담임과 면담을 하고 있는 수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져있다.

담임
다른 애들은 그 동안 연습을 계속 했었는데... 수연인 뭘 잘해?

수연
(우물쭈물하다) 글짓기요... 저번 학교에서 상도 받았어요!

담임
(난처한 듯) 글짓기는 백일장이 따로 있는데... 혹시 노래 잘해? 노을이
랑 흰 구름 알아?

수연
(눈이 번쩍 뜨이며) 알아요! 노을! 흰 구름!

담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가정 통신문을 건넨다.

-23-
담임
그럼 이거 보호자한테 드리고 꼭 오시라고 해!

S#30. 주택가 꽃집. 낮


통신문을 보며 미간에 주름을 잡는 수연, 꽃집 주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꽃집 주인
(다정하게) 꽃보고 인상 쓰면 금방 할머니 된다~!

아저씨의 조크에도 흥이 나지 않는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수연.

꽃집 주인
(튤립다발을 내밀며) 누가 그러는데 이 꽃만 보면 웃게 된데...

아~!’ 힌트를 얻은 듯 살인미소가 살아난다.

S#31. 도심 스케치. 낮

한강대교, 63빌딩, 남산타워, 국세청, 고궁 등 서울을 대표 할 수 있는 랜드 마크들을 카메


라에 담고 있는 정호.
낯익은 건물들을 색 다른 시선으로 잡아내는 솜씨들이 이어지며...
작업에 열중한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S#32. 창신동 주택가. 낮

앞 서 와는 달리 내리막길이 뻗어있는 낮고 허름한 주택가의 풍경이 스틸 컷으로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빌딩 숲과 비교되는 낡은 풍경들을 찍고 있는 정호.


구불구불한 골목을 힘겹게 올라서며 뭔가를 찾으려는 시선...

순간 뒤를 돌면 확 트인 서울의 북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정호, 흐뭇한 듯 심호흡을 하며 땀을 닦다 문득, 구석에 쪼그려 있는 꼬마에게 눈이 간다.


‘축~’ 쳐진 어깨,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힐끔 힐끔’ 돌아보는 꼬마의 모습에 촬영의 욕구
를 느끼는 정호. 조심스럽게 다가가 파인더에 눈을 대면 프레임 안에서 멍해 보이는 꼬마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뭔가를 느낀 듯 재빨리 파인더에서 눈을 떼면...
몸을 웅크리는 꼬마, 음식이 남겨진 배달그릇에 느리게 손을 뻗어 하나씩,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한다. 소름 돋치는 꼬마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 버리는 정호.

시간경과

힘없이 늘어진 꼬마를 안고 언덕길을 오르는 정호, 멀리 낡은 연립아파트가 보인다.

-24-
S#33. 연립 아파트. 낮

어둑하고 좁은 집안은 부패한 음식과 여러 잡동사니로 어지럽혀 있다.


슬며시 현관을 열고 들어오는 정호, 인상을 쓰며 꼬마를 꽉 안아주는 모습이 긴장한 듯.
커튼을 걷자 햇살이 들어오며 가득 떠다니는 먼지와 살풍경이 드러나고...
옷깃으로 입을 막으며 방문을 열려는 정호의 뒤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방 안]
방 안에는 꼬마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의 시체가 이불에 덮혀 있고 이미 부패한 듯 검붉은
물기가 요를 적시고 있다.
슬픈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정호... 순간 날이 선 식칼이 빛을 받아 번쩍인다.

S#34. 정호의 집. 낮

튤립을 담은 화병을 들고 정호의 방에 들어오는 수연, 흐뭇한 얼굴이다.


하지만 책상위에 꽃병을 놓기엔 키가 모자란 듯 보이는데...
‘에잇!’ 하는 표정으로 의자에 올라서는 수연, 순간 바퀴가 움직여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
러진다.

S#35. 연립아파트. 낮

좁은 거실에 가득 차 있는 경찰들... 당황한 모습이다.


베란다에 서서 피가 흐르는 어깨를 잡고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는 정호.
꼬마를 안은 채 구석에 몰려있는 거구의 사내가 정호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거구
(술에 취한 듯) 나가! 나가란 말이야!

[주차장]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하는 차량에서 김 형사와 조 반장이 내린다.
폴리스 라인과 함께 경찰들의 모습이 펼쳐지며... 달려오는 최 형사.

김 형사
용의자라니?

폴리스 라인을 넘어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형사들 계단을 오르며...

최 형사
(수첩을 펼치며) 아이가 인질로 잡혀 있고 다른 사체도 발견 됐어.
30분 째 대치중인데 횡설수설이 말이 아니래요...

어둑한 계단을 지나자 오픈된 복도가 밝게 펼쳐진다.

조 반장
그래? 그럼 비슷하네!

잰 걸음으로 집안으로 들어간다.

-25-
김 형사
일이 그렇게 쉽게 되나요...

[집 안]
앞장서 거실에 가득한 경찰을 헤치고 나가는 김 형사, 베란다의 정호를 보고 놀란다.

김 형사
어라? 저 친구!!!

‘왜?’ 하며 정호, 김 형사를 번갈아보는 조반장과 최 형사.


순간, 거구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거구
다들 나가!!! 우리 좀 내버려둬! 안 그러면...

아들의 목에 칼날을 대는 거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칼날에 눌린 꼬마의 목을 보고 긴장하는 정호.
분노한 듯 다친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붉은 피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정호
(고함을 치며) 그 손 내려놔!

거구
(절규하듯) 니가 무슨 상관이야! 다 필요 없으니까... 내 새끼 죽이든 살
리든 내 맘이야! 나가!!!

어금니를 깨무는 정호, 표정이 점점 차가워진다.


놀란 표정으로 정호의 뒷모습을 보는 김 형사, 위급한 상황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모습.

정호
(냉정하게) 그럼 죽여...

거구
(놀라며) 뭐?!!!

정호
(큰소리로) 뭐해! 죽이라고!!!

정호의 고함에 당황하는 거구, 칼에 좀 더 힘이 가해지면 목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자신의 상처에도 아무 느낌이 없는 듯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는 꼬마.
눈빛을 세우며 거구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정호.

정호
그래... 죽여... 너 같은 놈이랑 사느니 죽는 게 나아!

거구
너... 너 뭐야?

-26-
정호, 흔들리는 남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한 발씩 천천히 다가선다.

정호
애가 뭘 먹고 있었는지 알아?

거구
가... 가까이 오지 마!!!

정호
쓰레기...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를 먹고 있었어...

정호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김 형사와 경찰들의 표정.


무서운 눈으로 다가오는 정호가 두려운 듯 ‘덜덜덜~’ 떨기 시작하는 거구.

거구
(두려운 듯 부들부들 떨며) 오... 오지마!!!
정호
지금 당신 꼴을 봐!!! 애가 무슨 죄를 졌길래... 저 어린 게 무슨 죄를
졌다고...

겁먹었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다 눈물을 쏟아내는 거구... 바로 앞에 멈춰 선 정호에게


저항하지 못한다. 무섭게 사내를 노려보던 정호, 칼을 뺏어 던져 버리면, ‘우르르’ 몰려드는
경찰들. 김형사, 재빨리 꼬마를 뺏어 안고 수건으로 목의 상처를 감싸준다.

김 형사
(달래듯) 괜찮아... 괜찮아...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경찰들을 밀어내며 나가는 정호, 슬픈 표정이다.


최 형사에게 수갑이 채워지는 거구, 무릎이 꿇린 채로 멍하니 눈물을 흘리고...

거구
마누라가 많이 아팠는데... 아무것도 못해주고... 아무도 안 도와주고...

꼬마를 달래주며 거구를 씁쓸히 내려 보던 김 형사, 문득 정호를 찾는다.

[현관]
사람들을 비집고 나오는 김 형사,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정호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응급요
원이 꼬마를 대신 받아 안는다.
수갑을 차고 경찰차에 실려지는 거구를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건조한 눈빛...

구경꾼1
그렇게 패 대더니 결국 마누라 잡았네... 내 그럴 줄 알았지...

구경꾼2
안 그래도 삭막한데 집 값 떨어지겠어... 쯔쯔...

다른 편에선 젊은이들이 뭐가 재밌는지 시시덕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구경꾼들의 어이없음에 분노한 김 형사, 눈에서 불을 뿜는다.

-27-
김 형사
(큰소리로) 야이 새끼들아 뭘 안다고 지랄들이야?!!! 사람이 죽었는데 집
값이 걱정이냐? (젊은이들을 보며) 니들은 이게 재밌어? 재밌어 보여?!!!

폭발하는 김 형사의 모습에 고개도 못 드는 구경꾼들과 젊은이들...


조 반장과 최 형사,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S#36. 정호의 집. 저녁

지친 듯 방안으로 들어와 윗옷을 벗는 정호. 상처에 묶인 하얀 붕대가 보인다.


넘어져 있는 의자, 책상 위에 엎어져 책들과 필름들을 적셔놓은 화병과 튤립 등...
엉망이 된 방안 모습에 화가 난 정호, 계단을 달린다.
[수연의 방]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호, 아무도 없는 방안에 의아해 하다 비스듬히 열려있는 옷장
문을 보고 소리친다.

정호
나와!

옷장이 슬며시 열리며 울먹거리는 수연이 나오면, 바닥에 책과 필름들을 던지는 정호.

정호
이게 뭐야!!! (언성을 높이며) 누가 아저씨 방에 들어오라고 그랬어? 엉?
어떻게 된 거야!

수연,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며 중얼거린다.

수연
죄송합니다. 아저씨 튤립 보고 웃으시라고...

답답한 듯 수연의 팔을 잡고 소리치는 정호.

정호
아저씨 똑바로 보고 말해! (수연을 흔들며) 어서!

수연
(울음을 터트린다) 죄송합니다! 아... 아저씨 웃으시라고... 흑... 근데
의자가 미끄러져서 넘어졌어요... 으앙~ 아저씨 아파요!

자신이 잡고 있는 수연의 팔에 검붉은 멍이 보이자 당황해 벌떡 일어서는 정호.


울음을 참으려는 듯 숨을 고르며 책과 필름들에 묻은 물기를 옷으로 닦기 시작하는 수연.

수연
(눈물이 계속 흐른다) 죄송합니다... 안 아파요... 안 울께요...

상처 입은 수연의 행동에 절망하는 정호... 괴로운 듯 몸을 돌려 집을 나선다.

-28-
‘쾅!’ 하고 닫히는 현관 소리에 움찔하다 바닥에 웅크려 흐느끼는 수연의 작은 몸.

S#37. 도심 거리. 밤

도심거리를 표정 없이 무작정 걷고 있는 정호의 모습들...


아무도 없는 골목, 차들이 길게 밀린 도로,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 속의 정호.

[번화가]
비를 피해 사람들 사이를 달리다 정호와 부딪치는 어떤 청년... 눈이 마주친다.

청년(E)
뭐야 씨발! 짜증나게...

청년의 마음이 들리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


정호, 청년을 빠르게 외면하면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중년 아저씨의 모습이 보인다.

중년(E)
웬 비가 이렇게 오는 거야? 걱정이네...

다시 외면하는 정호, 괴로운 듯 인상을 쓰고...

거리에 가득한 인파들 속에서 비틀거리는 정호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근심, 행복,
울부짖음이 써 라운드 사운드로 들리며 이미지와 함께 몽타쥬 된다.

텅 빈 거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보고 있는 정호. 멍해진 얼굴 위로 부딪히는 빗방울들...

S#38. 수연母 병원. 밤

반응 없는 엄마의 얼굴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 주는 수연.

수연
너무 늦어서 안 올라구 했는데... 아저씨가 엄마한테 인사는 꼭 하고 다
니라고 하셔서...

힘없이 펼쳐진 엄마의 손을 닦으며...

수연
(자랑처럼) 내가 아저씨한테 꽃을 드렸는데 굉장히 좋아하셨다? 엄마도
봤어야 하는데...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수연
그럼?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학예회도 같이 가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괜
찮다고 했어... 나중에 엄마랑 같이 가려구... (억지로 웃으며) 수연이
이쁘지?

-29-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수연의 눈. 엄마의 손에 볼을 기대고 슬며시 눈을 감는다.

수연
(혼잣말로) 따뜻해...

하얀 김을 뿜는 가습기 너머로 비 내리는 도심이 보인다.

S#39. 강남 경찰서. 밤

창가에 서서 멍하니 빗줄기를 보는 김 형사. 최 형사, 다가와 담배를 권한다.

최 형사
왜? 센치해요? (대답이 없자) 아까 갠 누구야? 아는 사람이야?

김 형사
아니... 창배 얘들 잡을 때 본 친군데... 좀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최 형사
뭐가?

김 형사
(답답한 듯)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는 거 아니냐? 애들은 죽어 나가고 이
상한 놈이랑 계속 마주치고...

몸을 돌려 벽에 걸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 액자를 보며...

김 형사
(문득) 야!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거냐?

진지한 모습에 농담할 타이밍을 놓치는 최 형사.

최 형사
(창밖을 보며) 애들 신원파악이 안돼서 길어지겠어... 위에선 난리고 반
장님은 패닉이고... 그렇다고 애들 얼굴 TV에 때릴 수도 없는 거고요...

김 형사
(곰곰이 생각하며) 죽은 얘들은 어떤 애들이었을까? 실종신고도 없고...
가족들은 걱정도 없나?

최 형사
(연기를 뿜으며 가볍게) 가족이 없나보지...

순간 날카로워진 김 형사의 시선에 당황한 듯 변명을 한다.

최 형사
왜 그래...? 농담 한 거에요...

-30-
민망해하며 웃는 최 형사의 어깨를 꼭 잡는 김 형사.

김 형사
그래! 가족이 없는 거야! (‘미쳤어?’ 하는 표정의 최형사에게) 가족이 없
으니까 실종신고나 다른 연락이 없는 거야...

최 형사
(깨달은 듯) 고아?

김 형사
(힘이 난 듯) 오케이 비슷한 거 다 털어보자고!

S#40. LOUNGE BAR. 새벽


비에 잔뜩 젖은 모습으로 들어오는 정호의 모습... 미모의 바텐더가 잔을 닦다 놀란다.

바에 앉은 정호 앞에 위스키가 가득 담긴 잔이 놓여진다.
이미 취한 듯 눈이 풀려 있는 정호, 술을 단숨에 마시고 더 달라는 듯 테이블을 친다.

계속 해서 술잔을 비우는 모습들이 이어지다...

만취한 듯 테이블에 얼굴을 기댄 정호, 흐린 눈으로 잔을 바라보고 있다.


빈 잔에 남은 얼음이 ‘딸그락~!’ 소리를 내며 어긋나는 모습.

정호
(중얼거린다) 민희...

S#41. 정호의 학교 옥상.(정호의 회상) 낮


커다란 풍향계가 돌아가고 있는 옥상.
정호와 마주선 민희, 원망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호
나한테 말해... 다 애기하란 말야...

민희
도대체 뭐가 알고 싶은 거야?!!!

슬픈 눈으로 민희의 눈을 응시하는 정호의 눈... 커다랗게 확대 된 동공에 화가 난 민희의


얼굴이 맺힌다.

[정호의 동공에 떠오르는 이미지들...]


소녀의 치마 속 하얀 허벅지를 더듬어 올라가는 손이 보인다.
소름이 돋는 듯 눈을 질끈 감는 민희의 얼굴.
침대보를 꼭 쥐는 손.

[옥상]
슬퍼지는 정호...

-31-
정호
난 알 수 있잖아...
울부짖는 민희...

민희
그래 새 아빠가 날 만졌어! 그걸 꼭 내가 말해줘야겠니? 속이 시원해?
(원망하듯) 니가 뭘 해줄 수 있다고... 나도 미치겠어... 소름끼쳐! 더
러워 죽겠단 말야!

순간 민희, 말을 멈추면 정호의 너머로 아이 한 명이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민희의 말을 들은 듯 놀란 표정으로 서있다 계단으로 달리는 아이.
당황한 정호, 민희를 보면 넋이 나간 듯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S#42. LOUNGE BAR. 새벽


중얼거리는 정호,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정호
(떨리며) 민희야...

S#43. 범인의 지하실. 밤

어둑한 계단을 따라 얇은 빛이 올라오고 있다.


굳게 닫힌 철문의 창살로 누군가의 웃음, 음악 등 여러 소리가 엉켜서 흘러나오고 있다.

서로 다른 종류의 구형 TV 여러 대가 역시 서로 다른 화면들(만화, 광고, 드라마, 영화 등)


을 비추며 어지러운 소리를 토하고 있다.
누렇게 변색 된 형형색색의 동물, 곤충들이 그려져 있는 벽지, 옷걸이에 길게 걸려있는 철
지난 여자 아이의 옷들... 고장 난 장난감과 블록들...
유독 커다란 TV화면에선 유아 살인건과 S#35의 인질극에 대한 보도가 흐르고 있다.
뭔가를 찢어내 풀을 바르고 있는 수술용 장갑을 낀 손...
누런 도화지에 조각을 붙이고 여러 표정이 기괴하게 콜라주 된 얼굴을 애무하듯 어루만지면
소녀3의 얼굴과 흡사하다.
순간, TV화면들 속에 소녀3과 피에로 인형의 모습이 여러 각도로 보이기 시작한다.
입가에 침을 흘리며 멍한 표정으로 TV를 응시하는 소녀3. 낡고 긴 소파에 묻힌 듯 앉아 버
섯 스프를 떠먹고 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철문이 닫히면 계단을 올라가는 누군가의 그림자.

S#44. 정호의 집. 새벽

칠흑같이 쏟아지는 장대비...


이불을 눈 밑까지 덮고 있는 수연에게 천둥에 번개까지... 혼자 있긴 무서운 밤이다.
무서워 잠이 깬 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천정을 보고 있는데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
가 난다. 깜짝 놀라 이불을 뒤집어쓰는 수연, 아무 일도 없자 천천히 눈만 드러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32-
[거실]
거실 불이 켜지면 쓰레기통과 베개를 들고 경계의 눈빛을 하고 있는 수연이 보인다.
소파에 엎어져 있는 정호를 보고 안심하는 수연,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 어깨에 묶여있는 피
묻은 붕대를 보고 놀란다.

시간경과

정호의 상처에 새 붕대를 감아주는 수연. 꽃무늬가 프린트된 이불을 들고 나와 덮어주고는


졸린 듯 하품을 하는데... 몸을 뒤척이던 정호, 중얼거린다.

정호
(잠꼬대처럼) 불쌍한 꼬마를 봤는데... 니 생각이 나서...

낮게 한숨을 내뱉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괜히 자기도 울상이 되는 수연.

정호
미안해...

사과를 받아준다는 듯 눈물을 훔쳐 주는 수연의 작은 손. 다정해 보이는 두 사람...

시간경과

아침이 된 거실.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뜨는 정호, 정신이 든 듯 거실을 둘러보다


새로 맨 붕대와 꽃무늬 이불을 본다.
부엌에선 뭔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소리가 들리고...

[부엌]
샤워를 한 듯 편한 복장에 젖은 머리. 미안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 정호.
아직 삐져 있는 수연이 콩나물국이 든 커다란 그릇을 ‘탁!’ 놓는다.
꼬마의 신경질에 주눅이 든 정호... 순순히 콩나물국을 떠먹으며 맛을 음미한다.

정호
(수연의 눈치를 보며) 맛...있네...

뜻밖의 칭찬에 웃어버리는 수연. ‘아차!’ 싶은지 다시 표정을 감춘다.

정호
무가 많아서 국이 시원하다...

수연
(거듭 칭찬에 웃어버리며) 아저씨가 너무 무뚝뚝하셔서 무를 많이 넣었습
니다!

꼬마의 조크가 이해가 안가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 정호.


수연, 뻘쭘 해지며 분위기 썰렁해 진다.
S#45. 위탁보호센터. 아침

-33-
S#8의 담당관 유진이 두꺼운 자료들을 들고 ‘또각또각’ 걸어온다.
긴장된 표정의 김 형사와는 달리 유진의 몸매를 감상하는 최 형사.

유진
(걱정스런 표정) 새벽에 연락 받고 밤새 작업 했어요...

최 형사
(괜히)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많나요?

유진
(두꺼운 쪽을 가리키며) 이쪽은 확인 된 가정이구요 (다른 파일을 들며)
이건 아이가 사라졌다고 통화된 세 군데 가정입니다.

마지막 파일을 펼치는 김 형사.


파일 속 신상명세서에 붙은 여자 아이들의 사진을 넘겨보다 최 형사에게 건넨다.
사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

김 형사
(눈이 빛난다) 맞지? (유진을 보며) 보호자들이 실종신고를 안 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진
(난처한 듯) 사실 위탁아동들이 적응에 실패해서 가출을 하는 경우가 있
거든요... 아마 이전 보호시설이나 다른 친척한테 간걸로 생각들 하셨을
겁니다.

최 형사
(괜히) 보호를 할 거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김 형사
(소녀3의 사진을 보며) 한 명이 더 있다... (최 형사를 보며) 이 사진 서
울에 뿌려... (유진을 보며) 나머지 자료들... 카피 받을 수 있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유진...


파일들을 넘겨보는 형사들을 보다가 다른 자리에 앉아있는 직원들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김 형사, 문득 고개를 들면 파티션 너머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담당관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뭐야?’ 하는 표정을 짓는 김 형사.

[주차장]
자료들을 챙겨들고 차에 올라타는 김 형사, 최 형사.

최 형사
덕분에 술술 풀리겠어. (입을 벌리고) 얼굴은 순한데 몸이 완전 쭉빵이야!

김 형사
새끼...

순간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손... 뭔가 망설이는 표정의 유진이다. ‘


딱~!’ 걸린 듯 합죽이가 되는 최 형사, 웃다가 창문을 여는 김 형사.

-34-
유진
(어렵게) 사실 연락이 안 되는 가정이 있는데...

김 형사, 차장으로 파일을 건네받아 펼치면... 밝게 웃고 있는 수연의 사진이 보인다.

유진
위탁과정에서 저희 쪽 실수가 좀 있어서요... 원래 계약한 보호자가 안
계셨는데... (수습하려는 듯)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사무실]
주차장에서 얘기를 나누는 유진과 형사들을 보는 누군가의 뒷모습...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의 훔치는 모습이 낯익다.

[주차장]
유진을 빤히 쳐다보다 미소 짓는 김 형사.

김 형사
아무튼 감사합니다. (슬며시) 그리고 깜빡했는데 직원들 신상명세서 좀
보내 주실 수 있나요? (놀라는 유진을 보며) 아니... 그냥 참고용입니다.
원래 수사의 기본 원칙이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유진.

S#46. 정호의 집. 아침

서재 벽에 걸린 카터의 사진을 보고 있는 수연, 청소 중이었는지 손에는 걸레를 들고 있다.

정호, 문 밖에서 수연의 뒷모습을 본다.

정호
케빈 카터라는 사진가가 찍은 거야.

수연, 놀라 돌아보면 천천히 다가와 곁에 서는 정호... 사진을 올려본다.


수연
(괜히 주눅이 든다) 청소하려구요...

정호
(독백하듯) 소녀는 지금 죽음 한 가운데 있어. 배고픔에 움직일 수도 없
고... 나약한 소녀를 독수리가 먹잇감으로 보고 있지...

수연
(놀라며) 네? 그럼 얼른 독수리를 쫓아버려야죠!

정호
(수연을 보며) 맞아...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은 아저씨를 욕했어...
(슬픈 눈으로 사진을 본다) 먼저 저 소녀를 구했어야 했다고...

수연

-35-
(끄덕이며) 맞아요! 사진사 아저씨 나빠요!

정호
(말끝을 흐리며) 그래서 그 아저씬...

수연
(궁금한 듯) 어떻게 됐어요?

정호,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수연을 본다.

정호
2층은 아저씨가 청소할게... 수연인 학교 가야지?

수연
(생각난 듯) 아! 늦었다!

‘콩! 콩! 콩!’ 계단을 달리는 수연을 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 정호.

S#47. 양재동 양옥집. 낮

두꺼운 커튼이 쳐 있는 어두운 거실. ‘덜그럭’ 거리는 쇳소리가 들리다 현관문이 열린다.
주머니에 연장을 챙겨 넣고 가죽 장갑을 끼며 등장하는 창배, 거실 불을 켠다.
검소하게 꾸며진 집안 내부.

창배
(실망한 듯) 기대 좀 했더니 졸라 검소하네... (고개를 저으며) 나이 먹
어 감이 떨어 졌나~?

[안방]
장롱을 열고 이것저것 뒤져보는 창배. 네모난 상자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상자 안에는 디지털 카메라와 6mm 비디오테이프 여러 개가 담겨있다.

창배
뭐야? (음흉하게 웃으며) 포...르노~?

[부엌]
작은 부엌 창 앞에는 각종 허브들과 버섯이 길러지고 있다.
냉장고를 열고 이것저것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 커다란 냄비에 든 버섯스프를 떠먹는 창배.
아쉬운 듯 ‘뭐 더 없나?’ 하는 표정으로 싱크대를 살피며 냄비를 비운다.

S#48. 도심도로. 낮

횡단보도 앞을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들...


네 댓 명의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이 스윽 나타난다.
사람들이 이상하단 표정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누군가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창배다.

-36-
창배
(침을 반쯤 흘리며) 헤...해해해...

초점 없는 창배의 시선에 명품 가방을 맨 늘씬한 여성의 각선미가 들어온다.

창배
아... 이쁘다...

행복한 표정으로 여성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만질 듯 손을 뻗더니... 핸드백 줄을 잡는다.

창배
히히... 명품! 이쁘다...

각선미
어머? 으악~!!!

당황한 여성 비명을 지르며 핸드백을 놓으면 자신의 손에 들린 명품에 신난 듯 그대로 차도


로 달리는 창배.

창배
내꺼다~! 내꺼다~!

‘폴짝폴짝!’ 뛰는 창배 앞으로 승용차 한대가 급정거를 하지만 이미 늦은 듯...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에 차를 돌아보는 창배의 표정은 여전히 환희에 차 있다.

S#49. 갤러리 현대. 낮


세계 각국의 도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내부.
오프닝 파티가 열리는 듯 가벼운 술과 음료를 들고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그 중 상해의 풍광을 담은 커다란 사진 앞에 서 있는 정호, ‘뭐라 뭐라~’ 하는 편집장 얼굴
을 빤히 쳐다보며 경청하는 중이다.
멀리서 정호를 감시하는 누군가... 샴페인이 맛있는 듯 홀짝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최 형사
다.

최 형사
(혼잣말로) 이것도 인연인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든다.

S#50. 정호의 집. 낮
경비원과 함께 정호의 집에 들어온 김 형사.

김 형사
(둘러보며) 워... 으리으리하네... (경비원을 보며) 좀 둘러 볼 테니까
잠깐 계세요!

소파에 앉아 김 형사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경비원.


안방, 수연 방, 부엌 등을 둘러보던 김 형사의 전화가 울린다.

-37-
김 형사
알아봤어?

S#51. 갤러리 현대. 낮


구석에 기대 수첩을 꺼내들고 있는 최 형사.

최 형사
지금 통화 끝났는데... 현 보호자 이름은 류정호, 28세 남자, 양친은 초
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사망, 집주인은 숙부인데 호적상 양아들이에요. 17
세 때 미국으로 가서 거기서 쭉~ 있었고... 전과도 없구요...

김 형사(E)
(2층으로 올라가며) 아이는? 박수연이라고 했나?

최 형사
무사해! 수업 중이야... 아무튼 빨리 와봐! 이 친구 보면 깜짝 놀랄걸요?
(웃으며) 놀란 표정 보고 싶네...

S#52. 정호의 집. 낮
정호의 방에서 이것저것 살피며 통화를 하는 김 형사.

김 형사
뭔 소리야? 암튼 여기도 별루니까 바로 그 쪽으로 갈께!

전화를 끊고 방을 나서다 이층 구석에 있는 방문을 본다.

[암실]
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오면 어둑한 암실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사진들이 보인다.
소녀들의 다양한 표정들과 묘한 느낌을 살피다 미간을 찡그리며...

김 형사
(의심스럽게) 롤리타?

S#53. 갤러리 현대. 낮

갤러리 뒤뜰에 위치한 한옥 스타일의 카페.


커피를 시켜놓고 사진집을 넘겨보고 있는 정호가 보인다.

[잔디밭]
초록색 잔디밭 구석에서 정호 쪽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김 형사의 얼굴. 당황한 듯 반가
운 듯 이상한 듯... 여러 감정이 섞여있다.

김 형사
(멍하니) 내가 직업이 이래도 이유 없이 누굴 의심하고 그러지는 않잖아?

김 형사의 표정을 감상하던 최 형사, 고개를 끄덕인다.

-38-
최 형사
(성의 없이) 그렇지...

김 형사
(머리를 긁적이며) 근데... 온갖 구린데만 다니는 우리랑 며칠째 동선이
붙으면 수상한 거 아니냐? 거기다 하는 짓들도 묘~하니 이상해요~?

최 형사
(약간 동의하듯) 그렇지...

김 형사
그지? 직업상 의심해 줘야지?

최 형사
(완전 동의하듯) 그렇지... 해줘야지...

김 형사
근데 스타일이 범죄 과는 아니잖아? 그렇지 않냐?

최 형사
(복잡한 듯) 그러니까~?

깊은 고민에 빠진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벌떡 일어서는 김 형사.

김 형사
하교 시간 됐으니까 넌 아이한테 가봐!

최 형사
(놀라서) 어디가?

김 형사
(당당하게) 정면 돌파!!!

[카페 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김 형사를 올려보는 정호.

정호
(놀란 듯) 김... 형사님?

시간경과

커피 잔을 놓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창 밖에 서 있는 최 형사는 ‘먼저 간다!’는 제스처를 남기고 사라진다.

김 형사
(어색하게 웃으며) 벌써 세 번째죠? 참...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는데...

-39-
테이블을 두들기는 손가락, 굳은 얼굴... 김 형사의 어색한 표정과 동작을 유심히 보는 정
호.

정호
제가 어떤 의심을 받고 있군요...

김 형사
(손가락을 멈추며) 어? 그렇게 티가 나나요? (무안한 듯) 하하하... 제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 지하철 일도 그렇고... 인질극도 그렇고...

정호
(김 형사를 바라보며) ...

어색한 듯 괜히 얼굴을 만지는 김 형사. 정호, 시선이 멀리 보이는 인왕산으로 향한다.

정호
저기 산... (김 형사를 보며) 보이시죠?

김 형사
산? (고개를 돌려보고) 네... 보이죠...

정호
아름답죠? 푸른 하늘, 단풍진 나무들... 누구나 바라보면 편안해지죠...

고개를 끄덕이는 김 형사.

정호
그런데 산을 볼 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알게 된다면 그렇게 편
하지만은 않겠죠? 가령... 그 속에서 짐승들이 먹고 먹히고... 썩어가
고... 그런 모든 걸 알게 된다면 어떨 거 같으세요? (씁쓸하게 독백하듯)
물론 나만 눈을 감고 있으면 세상은 조용해지겠지만...

알 듯 말 듯 고개를 ‘갸우뚱’ 하는 김 형사의 눈을 바라보다 옆 테이블로 시선을 돌린다.


정호의 시선을 따라가는 김 형사, 보면... 다정해 보이는 연인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
다. 뭐라 말하는 남자의 손을 쓰다듬고 있는 여자, 여자도 뭐라 대꾸를 하고...

정호
(김 형사를 보며) 저 연인들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김 형사
(유심히 보며) 글쎄요... 좋아 죽겠다는 거 같은데...

정호
보이는 것도... 우린 놓칠 때가 많죠...

김 형사, 자세히 보지만 도통 모르겠다는 듯... 연인들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하는 정호.

정호
여자가 남자한테 행복하라고 하는군요... 자길 잊지는 말아달라고...

-40-
여자,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달래듯 손을 ‘꼭~!’ 잡아주며 고개를 숙이는 남자.
깜짝 놀라는 김 형사, 눈을 돌려 정호를 본다.

정호
말하는 투와 행동을 유심히 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겠죠? 전 그냥 조금 더 아는 것 뿐입니다.

할 말을 다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면 ‘턱!’ 손목을 잡는 김 형사.

김 형사
수연이 알죠?

김 형사의 눈을 보며 당황하는 정호.

S#54. 수연母 병원. 노을

역시나 튤립을 들고 병원 로비로 들어가는 수연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뒤 주변을 살피며 따라 들어가는 최 형사...
멀리 보이는 차의 창문이 닫힌다. 미끄러지듯 출발하며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S#27의
흰 색 세단.
[병실]
웃고 있는 수연, 엄마의 얼굴을 닦아준다. 규칙적인 파동을 그리며 흐르는 심전도 그래프...

수연
아저씨가 콩나물국이 맛있다고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엄마의 얼굴
을 보며) 엄마도 일어나면 꼭 끓여드릴게요... (생각난 듯) 참! 내일 학
예회 때 부를 노래 불러줄까요?

순간, 수연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수연
(노래를 부른다) 가을바람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이상한 듯 눈을 비비기 시작하는 수연, 다시 눈을 뜨지만 엄마의 모습이 점점 사라진다.

수연
(당황한 듯) 엄마... 나... 이상해요...

시야가 화이트 아웃되며 ‘스스륵~!’ 쓰러지는 수연. 감정 없이 눈을 ‘꿈뻑’ 거리던 엄마의 심


전도 그래프가 급격한 파동을 그리며 ‘삐! 삐! 삐!’ 경고음이 울린다.

[화장실]
상황을 모르는 최 형사,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소변을 보고 있다.

[병실]
바닥에 쓰러진 수연의 뒤로 천천히 열리는 병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의 그림자...

-41-
S#55. 정호의 집. 밤

붉은 등이 들어온 암실 안. 나무집게에 물려있는 도심풍경 사진들이 인화 액을 ‘뚝뚝’ 떨어


뜨리고 있고...
또 한 장의 음화를 인화지에 노출시키며 버닝과 닷징(노출을 조정하는 작업)을 하는 정호,
플라스틱 밧드(bath)에 인화지를 담그고 이미지가 올라오는 걸 바라보다 생각에 잠긴다.

[갤러리 현대-정호의 기억]


사뭇 진지한 김 형사의 얼굴.

김 형사
여자 아이만 대상으로 하는데, 전부 위탁아동들입니다. 수연이가 다음 대
상일 확률이 높아요... (시선을 피하며) 정호씰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당
분간 서울을 떠나지 마십쇼...

[암실]
걱정이 깊은 정호, 정신을 차리면 밧드 속 인화지가 까맣게 변해버렸다. 아쉬운 듯 짧게 한
숨을 쉬다가 시계를 보면 열 시를 넘어버린 시간.

[거실]
비어있는 수연의 방을 보다가 급히 현관으로 달리는 정호.
신발을 구겨 신고 문을 열면 초인종을 누르려다 깜짝 놀라는 담당관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놀라는 두 사람... 정호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S#56. 수연母 병원. 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수연의 얇은 팔에 커다란 링거바늘이 꼽혀있다. 안정을 찾은 듯


잠든 모습...
피곤해 보이는 응급실 의사가 안경을 닦는다.

의사
순간적인 쇼크에요... 안정을 찾았으니까 링거 끝나면 데려가셔도 됩니다.

정호
쇼크라뇨?

의사
(의외라는 듯) 모르셨나요? 2년 전 사고로 안구에 미세한 출혈이 있었어
요. 그땐 너무 어렸고 보호자도 없는 상태라 수술시기를 놓쳤는데 (씁쓸
하게) 천천히 시력을 잃게 될 겁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는 수연.

[병실]
엄마의 병실을 찾은 정호,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수연을 안고 있다.
안정을 찾은 듯 규칙적으로 흐르는 심전도 그래프...
물끄러미 수연엄마의 멍한 눈을 내려다보는 정호, 수연과 많이 닮은 인자한 얼굴과 눈매를

-42-
한참을 보다 슬며시 웃는다.

정호
걱정 마세요... 감기래요...

미세하게 변화가 생기는 심전도 곡선.

정호
그래요? (웃으며) 자랑스러우시죠?

마치 대화를 나누듯 심전도 곡선 또 다른 모양을 그리며 흐른다.

정호
울긴요? 얼마나 씩씩한데요... 걱정 마시고 어렵더라도 좀 더 힘을 내세
요... 빨리 일어나셔야죠...

엄마의 손을 슬며시 잡아 주는 정호.


정말 힘을 내려는 듯... 심전도 곡선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비]
수연을 소중히 안고 걸어가는 정호.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김 형사에게 최 형사가 다가온다.

최 형사
(휴대폰을 끊으며) 1차사건 실종날짜가 보름 전이고 저 친구 입국일은
4일 전이니까 아닌 건 아니네요...

김 형사
(다행이라는 듯) 거봐... 아니라니까...

수연을 안고 택시에 오르는 정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김 형사, 왠지 감동을 먹은


표정인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김 형사
여보세요? 반장님?

S#57. 개인병원. 밤

황당해하는 세 형사의 표정.


침대에는 팔, 다리에 깁스를 한 창배가 잠을 자고 있다. 가방을 건네며 말하는 간호사.

간호사
신원파악 때문에 소지품을 봤는데... 지갑이 한 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혈액에서 환각물질도 검출됐고...

조 반장
(어이없는 듯) 새끼 이제 약도 건드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김 형사의 표정이 가관이다.

-43-
김 형사
(중얼중얼) 아무래도 로또나 한 번 해야겠다.

S#58. 범인의 지하실. 새벽

TV화면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범인의 지하실...


책상 위에서 뭔가를 오리고 있는 범인의 장갑 낀 손. 빛을 받으면...

기괴하게 콜라주 된 수연의 얼굴... 종이를 든 손이 부르르 떨린다.


S#59. 정호의 집. 아침

아침 햇살에 눈을 뜨는 수연. 지난밤이 생각난 듯 방 안을 어리둥절 둘러보다 시계를 본다.

수연
(벌떡 일어나며) 아침밥!!!

[부엌]
부엌으로 달려온 수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조리대 앞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정호의 뒷모습... 낯설어 보인다.

시간경과

식탁에 앉은 수연 앞에 정호의 요리가 서브된다.


잘 익은 스테이크와 신선해 보이는 샐러드... 거한 아침과 낯선 정호에 당황하는 수연.

수연
어떻게 된 거에요?

정호
(외면하며)수연이 영양실조래... 의사 선생님한테 혼났어! 잘 먹이라고...

조금은 다정해진 말투에 입을 벌리고 쳐다보는 수연.

정호
(고개를 들고) 나이프 쓸 수 있지?

포크와 나이프를 집으며 신나게 대답한다.

수연
넵!

[거실]
소파에 앉아 식후 커피를 마시는 정호. 이리 저리 잡지들을 넘겨보다 문득 시계를 본다.
방에서 나와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수연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는 정호.

수연
(조그맣게) 아저씨...

-44-
등을 보인 정호, 못 들은 듯 2층으로 사라지면 실망한 표정으로 입을 내민다.

[정호의 방]
스웨터를 대충 걸치는 정호, 수연을 바래다주려는 듯...

[거실]
텅 빈 거실을 살피다 테라스로 달리는 정호.
창문을 열고 수연을 찾으면... 고개를 숙이고 멀리 걸어가는 수연이 보인다.

정호
(부르려다 멈칫) 수연...?

멀찍이 쫓아가는 최형사의 모습에 안심을 한다.

S#60. 강남 경찰서. 아침

지난번의 회의실 같은 자리에 같은 분위기...


커다란 뿔테 안경을 낀 담당관의 사진이 붙어있는 개인 프로필을 보고 있는 조 반장.

조 반장
(서류를 보다) 그럼 이쪽으로 몰겠다는 거야?

김 형사
(끄덕이며) 40세 기혼남으로 전체적으로는 평범한데... 특이한건 작년에
딸 아이가 폐렴으로 죽었어요... 당시 나이가 10살, 초등학교 4학년으로
피해 아동들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조 반장
최 형사는?

김 형사
다음 목표로 추정되는 아이한테 붙여놨습니다. 그 아이도 (프로필을 흔들
며) 이 놈이 담당이었거든요...

조 반장
류정혼가? 걔는 확실히 아닌 거지?

김 형사
(고개를 끄덕이며) 입국 날짜가 확인 돼서 확실 합니다.

조 반장
(담당관의 사진을 보며) 마약은 왜 먹인 거야? 기분 좋으라고? 아이들 영
양상태도 좋았고 비싼 옷에 잘 다듬어진 손톱... 그러다 심적 변화를 보
이고 아이를 죽인다?

김 형사
(곰곰이 생각하다) 뭔가 이상하죠? 죽기 전까지 잘 돌봐줬고 특별한 외상
이 없었다는 건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라는 거고... (눈을 감으며) 범인은

-45-
아이가 행복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돌본다... 감춘다... 숨긴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을 번쩍 뜬다.

김 형사
보호한다?

S#61. 수연의 학교. 낮

동물 가면을 쓴 아이들이 어설픈 발음으로 영어 연극을 하고 있다.


교실 뒤편, 학부모와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과는 달리 풀이 죽어있는 수연의 얼굴.

S#62. 정호의 집. 낮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정호, 마지막을 넘기고 책을 덮는다.


몸을 일으켜 테이블 위 잡지들을 뒤적이다 뭔가를 발견하면... 학예회 초대 글이 적혀있는
수연의 가정통신문이다.

S#63. 수연의 학교. 낮

주근깨 가득한 악동둘이 만담을 하고 있다.


아이들 수준을 뛰어 넘는 기막힌 만담을 쏟아내던 두 녀석 멋진 마무리로 교단을 내려서면
옆에서 대기하던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교단 위에 오른다.

담임
자 다음은 합창 순서입니다. 곡명은 흰 구름과 노을입니다. 크게 박수쳐
주세요~!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인사를 하는 아이들의 앞줄에 잔뜩 긴장한 수연이 보인다.


반주 시작되고 노래가 이어지면... ‘스르륵~’ 열리는 교실 뒷문.
아들, 딸들을 찍어주는 학부형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간간이 터지고 더욱 주눅 드는 수연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면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게 보인다.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를 내리면 ‘놀랬지?’ 하는 표정으로 수연을 보고 있는 정호.
살인 미소가 살아나는 수연... 노래에 흥이 붙기 시작한다.
다음 곡인 ‘노을’ 의 반주와 노래가 이어지면 멍하니 수연의 얼굴을 보던 정호, 문득 옆의
아줌마한테 질문을 한다.

정호
(조용히) 노래 제목이 뭐죠?

아줌마
노을이요!

노래를 부르는 수연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생각에 잠기는 정호.


합창이 끝난 듯 큰 함성과 박수소리가 들린다.

-46-
주위의 반응에 정신을 차리며 천천히 박수를 치는 정호.

시간경과

정호와 나란히 앉아 다음 차례인 차력 쇼를 보는 수연.


구겨진 PT병을 콧바람으로 피려는 차력1. 어지러운 듯 다리가 풀리고...
톱질을 한 각목으로 머리를 치고, 맞는 차력2, 3. 하지만 각목은 멀쩡하고 차력3은 과장된
액션을 하며 기절하는 척 한다.
관객들 뒤집어지고... 정호의 얼굴에도 웃음이 보이자 환해지는 수연.

시간경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담임 앞에 어색해 하는 정호와 수연이 있다.

담임
키 차이가 너무 나는데요?

무릎을 굽힌 정호와 살인미소를 짓는 수연의 모습이 프리즈 되며... ‘찰칵!’

S#64. 위탁보호센터. 낮

휴게소 벤치에 앉아 있는 수연, 잰 걸음으로 오는 유진을 보며 손을 흔든다.

유진
잘 지냈어? (걱정스러운 듯) 별 일 없었지?

수연
네! 밝고! 명랑하고! 씩씩했습니다!

다행이라는 듯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유진.

유진
(난처한 듯) 어떡하지? 언니가 지금 너무 바빠서 바로 들어가야 되는데...

수연
(실망한 듯) 언니랑 인사시켜주려고 아저씨 데리고 왔어요!

유진
(놀라며) 아저씨?

수연
네! 음료수 사러 가셨는데...

따뜻한 음료를 들고 있는 정호... 멀리 벤치에서 수연과 가볍게 포옹을 하고 서둘러 들어가


는 유진을 본다.

시간경과

벤치에 나란히 앉은 정호와 수연.

-47-
수연
(아쉬운 듯) 제가 엄마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언닌데...

정호
그럼 아저씬 세 번째야?

미안한 듯 웃다가...

수연
학교에 와 주신 건 아저씨가 첨이에요... 엄마는... (이상한 듯) 어?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눈을 비비는 수연. 걱정스러운 듯 무릎을 굽혀 시선을 일치


시키는 정호.

수연
(나아진 듯) 엄마는 주무시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아주 긴 잠이랬어요...
(눈물을 글썽인다) 근데 그건 의사 아저씨가 모르는 소리에요! 왜냐하면,
엄마는 제 말 다 알아들으시거든요...

정호
(뭉클하다)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정호를 보는 수연.

정호
수연이 글짓기 상 받은 거 자랑스러워 하셔... 그래서 힘나신다고...

수연
(귀가 쫑긋) 엄마랑 얘기하셨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정호에 환하게 밝아지는 수연의 얼굴이 천사 같다.


무의식적으로 수연의 머리를 소중히 쓰다듬는 정호의 손...

정호
아저씨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수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비밀 좋아요!

수연의 귀에 뭔가를 속삭이는 정호.

수연
(모르겠다는 듯) ...???...

멀뚱히 눈을 깜빡거리는 수연을 웃으며 바라보는 정호.

정호
(문득) 수연이 지금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

-48-
S#65. 롯데월드. 낮

공포에 질린 수연의 얼굴.

수연
으아~~~악!

유아용 비행접시에서 신난 듯 비명을 질러댄다.


회전목마, 신밧드의 모험 등 각종 놀이기구를 타며 행복해 하는 수연의 모습을 필름에 담는
정호의 카메라... 정호 역시 모처럼 밝은 표정이다.

기다란 놀이기구 줄에 서 있는 수연의 표정이 긴장된 듯...


자를 들고 있는 너구리 인형이 ‘저보다 작으면 위험해요!’ 라고 적힌 표지판 옆에 서있다.
드디어 수연의 차례...
모자란 듯한 키가 ‘쑥~!’ 올라가면 수연의 발 밑에 정호의 신발이 보인다.
노려보는 듯한 너구리 인형의 눈을 피해 딴청을 피우는 정호.

[매직 아일랜드]
석촌 호수가 보이는 산책길을 솜사탕을 들고 걷는 두 사람. 수연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자
‘왜?’ 하듯 쳐다보는 정호.

수연
(귀엽게) 저도 찰칵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호수를 배경으로 한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고, 듣고 있는 정호와 수연의 모습


이 다정하게 보여 진다. 소형 클래식 카메라를 수연의 목에 걸어주는 정호.
어색한 자세로 파인더에 눈을 대고 굳어있는 정호를 찍으려 하는 수연.

수연
어... 너무 무뚝뚝이다. 김치~! 해 주세요~.

어색하게 웃는 정호의 얼굴이 초점이 맞으며 ‘찰칵!’ 프리즈 된다.

[화장실]
화장실 앞에서 수연을 기다리는 정호,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있다.
참새 한 마리가 나무 주위를 날며 요란스럽게 지저귀는 모습에 다가서는 정호.
흙바닥에 떨어진 솜털이 보송한 참새 새끼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정호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다가오는 수연,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로 정호를 찍으려 한다.
파인더로 보이는 정호의 모습...
안절부절 못하는 어미 새가 요란스럽지만 그냥 그대로 지켜보고 있다.
셔터를 누르다 이상한 듯 카메라를 내리는 수연.
새끼 새가 마지막 숨을 토하며 죽자 씁쓸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정호, 수연을 본다.
눈물을 그렁거리며 정호를 보고 있는 수연.

수연
(놀란 듯) 도와주셨어야죠...

-49-
정호
(당황하는 눈빛으로) 어차피 죽을 거였어...

수연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그래도...

정호
어쩔 수 없는 건 참견하는 게 아니야... (슬프게) 상처만 남으니까...

수연
그래도... 엄마 품에는 돌려줘야죠...

정호
모두 언젠가는 죽어... 아기 새도... 어미 새도... (변명하듯) 내가 뭘
해줄 수 있겠니?

수연, ‘죽는다!’ 는 말에 충격을 먹은 듯 표정이 굳는다.

수연
(큰소리로) 우리 엄마는 안 죽어!!! 아저씨... 독수리 아저씨처럼 나빠
요!!!

울먹이며 몸을 돌리는 수연... 걸음걸이가 빨라지다 달리기 시작한다.


뒤늦게 상처를 준 걸 깨달은 정호...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린다.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최 형사.

S#66. 교보문고. 저녁

기다란 서가에서 책들을 둘러보고 있는 담당관, 발걸음을 옮기다 아동서적과 간단한 놀이기
구들이 전시된걸 보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멀리서 감시하며 실눈을 뜨던 김 형사. 문득 가판에 놓여있는 심리학 서적에 손이 간다.
정호가 생각난 듯 이런 저런 제목을 둘러보다 하날 고르고...

S#67. 정호의 집. 저녁

이불을 뒤집어 쓴 채 훌쩍이고 있는 수연의 조그만 뒷모습.


펼쳐진 앨범 속에는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이 있다.

수연
(슬프게) 엄마... 죽지 마요...

[암실]
붉은 빛을 받으며 나무집게에 걸려있는 필름들...
인화 액이 담긴 밧드(bath) 속에서 이미지가 올라오는 인화지가 보인다.

수연이 찍어준 정호의 얼굴... 어색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내려 보는 정호의 얼굴이 아파 보인다. 시간이 오버하며 점

-50-
점 까맣게 변하는 인화지 속 자신의 얼굴...

정호
(중얼거린다) 넌 웃으면 안 돼...

화가 난 듯 나가버린다.

[정호의 방]
침대 옆 낮은 테이블에 물 잔과 감기약 박스가 열려있다.
고열에 시달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정호... 선잠이 든 듯 계속 뒤척인다.

S#68. 주차장. 새벽

정호의 집 앞 주차장 공터.


드문드문 주차돼 있는 고급 외제 차 사이에 김 형사의 낡은 차가 주차되어 있다.

김 형사
(혼잣말로) 가을인데 독서 좀 해야지...

시간경과

자신의 구형 지프 안에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보다 정호의 집을 올려보는 김 형사.

늦은 시간이지만 불이 꺼지지 않은 모습에서 Fade Out...

S#69. 정호의 집. 아침

잘 차려진 아침 식탁 앞에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수연.

[정호의 방]
바싹 마른 입술, 이마에 가득한 식은 땀... 정호,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실]
책가방과 카메라를 매고 현관에 선 수연, 걱정스런 눈으로 2층을 올려보다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정호의 방]
창을 통해 수연의 등교 모습을 보는 정호.
뒤이어 걸어가는 김 형사에 안심하듯 미소를 짓다 ‘스스륵~!’ 바닥에 쓰러진다.

S#70. 위탁아동센터. 낮

주차장에 앉아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는 최 형사.


신문을 읽다 창밖을 보는 눈빛이 규칙적이다. 멀리 현관에서 나오는 담당관과 유진의 모습
이 보이자 시동을 걸고...

-51-
S#71. 수연母 병원. 낮

엄마의 병실로 가는 수연과 김 형사가 엘리베이터에 타 있다.


둘 만 있어 썰렁한 분위기에 김 형사를 올려보는 수연의 눈망울. 목에는 정호가 준 소형 카
메라를 걸고 있다.

김 형사
(튤립을 보며 괜히) 꽃이 참 이쁘다!

대답 없이 계속 쳐다보는 수연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딩동댕~!’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수연.
김 형사는 내리지 않고 문이 다시 닫힌다.

S#72. 도심도로. 낮

지하철 역 앞에서 서 있는 택시에서 유진과 담당관이 내린다.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로 내려가는 유진과 골목 안으로 걸어가는 담당관을 본 최 형사, 차에
서 내려 담당관을 쫓기 시작한다.

[골목]
여러 갈래로 뻗은 골목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난처한 표정으로 담당관의 흔적을 찾는 최 형사, 하지만 쉽지가 않다.

최 형사
(주머니를 뒤지며) 앗! 휴대폰!

S#73. 수연母 병원. 낮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수연, 자랑스럽게 엄마의 얼굴 앞에 내밀면... 학예회 때 정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수연
아저씨가 학예회 와 주셨어요! (숨도 안 쉬며) 나, 노래 부르는 것도 찍
고, 롯데월드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솜사탕도 먹고, (목에 건 카메라를
들며) 찰칵하는 것도 가르쳐 주고... 이것도 주셨어요!

카메라를 들고 엄마를 찍는 수연. 죽은 듯 누워 있는 엄마를 보다 ‘슬쩍’ 꼬집어본다.


당연히 반응이 없는 엄마...

[주차장]
병원 로비를 나와 주차장을 걷는 수연.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쨍한 햇살에 눈을 찡그리다 시야가 흐려지며 ‘풀썩’ 쓰러지면... 멀리서 달려오는 김 형사.
순간 굉음 내며 돌진하는 흰 색 세단이 보이며 미처 피하지 못한 김 형사를 받아 버린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기절하는 김 형사.
쓰러져 있는 수연을 안고 차에 태우는 누군가... 다시 급출발을 한다.

-52-
S#74. 도심도로. 노을

차 안에 낯익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다.


피에로 인형을 안겨주고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누군가의 음성.

S#75. 양재동 양옥집. 저녁

S#47의 양옥집... 창가 화분들에서 말똥 버섯을 따내는 누군가의 손.


‘송송송’ 썰리는 버섯. 부글부글 끓는 냄비 속으로 들어간다.

[거실]
피에로 인형을 안고 소파에 잠들어 있는 수연.

S#76. 정호의 집. (악몽) 저녁


아직 회복이 안 된 듯 초췌해 보이는 정호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달빛뿐 인 어두운 거실을 보다 스위치를 올리는 정호. 불이 들어오지 않자 의아한 표정인
데... 테라스 쪽 수연의 방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정호
...?

조심스럽게 수연의 방문을 열면 천정 위 흔들거리는 실루엣이 보인다.


방 안으로 들어오는 정호의 눈에 목을 맨 체 매달려 있는 민희가 보인다.
놀라 주저앉는 정호.

정호
(떨리는 목소리로) 민희...

순간, 민희의 눈이 ‘번쩍’ 뜨이며 정호를 노려본다.

S#77. 정호의 집. 저녁

‘번쩍’ 눈을 뜨는 정호, 침대를 벗어나면 온통 식은 땀이다.


1층에서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

[거실]
계단을 내려오는 정호.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벨이 멈추고... 어두운 거실에 스위치를 올리
면 꿈과는 달리 불이 들어온다. 안심하는 표정으로 수연의 방을 보는 정호.

[수연의 방]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정호. 아무도 없자 불길한 예감이 드는 듯, 여덟 시를 훌쩍 넘긴 시
계 바늘을 본다.

-53-
S#78. 수연母 병원. 밤

‘벌컥~’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오는 정호.


보이지 않는 수연, 급하게 수연 엄마에게 다가간다.

정호
수연이! 수연이가 왔었나요?

멍하니 떠있는 수연엄마의 눈동자에 집중하는 정호.

정호
방과 후에... 혼자...

[주차장]
병원에서 나와 주위를 살펴보는 정호, 보도블록을 따라 천천히 걷다 순간 멈칫한다.
풀숲에 떨어져 있는 검은 물체를 집어 들면 자신이 준 소형 카메라다.
초조한 표정에 ‘부르르’ 떨리는 정호의 손. 순간 ‘툭!’ 하고 보도블록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음산하게 먹구름이 낀 하늘...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S#79. 도심도로. 밤

도심을 달리는 차 안.
팔에 깁스를 한 채 전화를 하는 김 형사와 심각한 표정으로 핸들을 돌리는 조 반장.

김 형사
(전화를 끊으며) 왜 안 받아! 이 새끼 저처럼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조 반장
(걱정되는 듯) 연락하겠지... 성질 좀 죽이고 기다려 보자고...
깍~깍~’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자동차 와이퍼.

김 형사
씨발... 까마귀도 아니구 재수 없게 깍깍거려...

조 반장
(운전대를 돌리며) ...

[강남 경찰서 주차장]


깜빡이를 켜며 경찰서로 들어가면 비를 맞으며 비틀비틀 걷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비키라는 듯 클락숀을 울리는 조 반장, 계속 길을 막으며 걸어가자 신경질적으로 하이빔을
날린다. 사내 뒤늦게 돌아보면 하얗게 질려있는 정호다.

김 형사, 조 반장
어?

차 안의 김 형사를 보고 넋이 나간 듯 달려오는 정호, 차 유리를 치며 다급하게 소리친다.

-54-
정호
(화를 내며) 수연이! 수연이 어딨어? 당신이 같이 있었잖아?

차에서 내리는 김 형사, 정호를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시간경과

뒷자리에 마주보고 앉은 정호와 김형사.

정호
(놀란 듯) 그... 담당관?

김 형사
(고개를 끄덕인다) 정호씨 집에도 찾아가고 전활 계속 드렸는데 연락이
안됐어요... 범인한테 붙여 논 후배도 연락이 끊겼고... 저도 이 꼴이 되
버려서... (애써 힘내며) 일단 수연이 사진 뿌려놨고 범인도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까 곧 연락이 올 겁니다.

김 형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정호의 눈에 근심이 깊어진다.

정호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군요... (고개를 숙이며) 제 잘못입니다. 제가
실망시켜서... 나 땜에 수연이가...

침통한 분위기의 차 안에 조반장의 휴대폰이 울린다.

조 반장
(큰소리로) 뭐라고?

S#80. 재활용 센터. 밤

경광등을 돌리며 세워져 있는 경찰차들 너머...


폐가전제품들이 쌓여있는 야적장에 경찰과 구경꾼들이 비를 맞고 있다.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제치며 들어가는 정호와 김 형사...
높다랗게 쌓여있는 가전제품들 위에 뒤집혀 문이 열려있는 커다란 냉장고가 보인다.
올라서려는 정호를 잡고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김 형사.

정호
(결심한 듯)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다른 물건들을 딛고 천천히 올라서는 정호의 떨리는 눈...


냉장고로 다가서면 가득 고인 빗물에 ‘둥둥’ 떠 있는 피에로 인형이 보인다.
자세히 보려 몸을 천천히 숙이면... 물 속에서 기괴하게 웃고 있는 소녀3의 얼굴!!!
불행 중 다행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는 정호... 김 형사도 왠지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김 형사
(정호의 어깨를 잡고) 일단 집으로 가시죠... 용의잘 찾는 대로 바로 연

-55-
락드리겠습니다.

S#81. 범인의 지하실. 밤

어둑한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품에 안고 있던


수연을 기다란 소파에 눕힌다.
이어 커다란 보온병에 담긴 버섯 스프를 접시 따르는 누군가의 손.
잠꼬대 하듯 중얼거리는 수연.

수연
아저씨...

정신이 든 듯 천천히 눈을 뜬다.

S#82. 정호의 집. 밤

집 앞 도로에 정호를 내려주는 김 형사.


힘없이 돌아서는 정호를 바라보다 씁쓸한 표정으로 차를 출발시킨다.

[수연의 방]
수연의 침대에 앉아 있는 정호. 잘 정리된 방 모습에 수연의 어른스러움이 새삼 느껴진다.
잘 개어진 이불, 가지런한 옷장 안, 바르게 꽂혀있는 책들... 그 중 ‘천사의 집’ 이라 써진
앨범이 눈에 띤다. 한 장씩 넘겨보면...

천사의 집 현판 밑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단체사진 속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수연이 보인다.

수연의 얼굴에 손가락을 대며 미소 짓는 정호.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수연.


실내 놀이방인 듯 친구와 함께 V자를 그리는 수연.
나비 문양 벽에 기대어 웃고 있는 수연.

정호, 눈시울이 뜨거워지다 문득, 주머니에 있는 소형 카메라를 꺼낸다.

S#83. 도심도로. 밤
도심을 달리는 김 형사의 차 안, 순간 휴대폰이 울린다. 깁스한 팔로 전화를 받으려다 ‘에
잇!’ 하며 노견으로 핸들을 돌린다.

김 형사
(전화를 받으며) 누구십니까? (버럭) 너 어디야 이 새끼야!

S#84. 포장마차. 밤

썰렁한 포장마차 내부...


전화를 들고 있는 최 형사 너머로 쓸쓸히 소주를 마시고 있는 담당관의 모습이 보인다.

-56-
최 형사
(조용히) 미안해! 너무 급해서 전화를 차에 놓고 내렸어요... (담당관을
슬쩍 보며) 야~! 종일 얼마나 싸돌아다니는지 다리 아파 죽겠어요...

전화 주인인 옆자리 술집 여자의 호감어린 시선을 의식하는 최 형사.

S#85. 도심도로. 밤
뜻 밖의 정보에 당황하는 김 형사.

김 형사
종일? 계속 같이 있었어?

최 형사(E)
그렇다니까... 전화 못한 건 미안한데 저도 힘들었어요...

김 형사
확실해?

최 형사(E)
그럼? 고아원에 유치원에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데... (짜증내며) 차도
견인 됐을 텐데...

김 형사
차고 지랄이고 당장 서로 들어와!!!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차를 출발시킨다.

점점 잦아드는 빗줄기... 비가 그친 뒤 썰렁한 도심의 모습.

S#86. 강남 경찰서. 밤

심각해진 김 형사와 조 반장, 최 형사가 나란히 휴게실에 앉아 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연쇄살인 관련 속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담배를 무는 조 반장.

조 반장
(힘없이) 완전히 헛 다리 집었어...

최 형사
어디부터 다시 시작하죠? 머리가 돌지를 않네... (슬며시)
밥이나 먹을까?

반응 없이 허공을 보고 있는 김 형사... 수사 선을 정리하는 듯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다.

김 형사
여자아이... 위탁아동... 익사체... 말똥 버섯... 초등학생...

-57-
순간 복도가 시끄러워지며 휠체어에 탄 창배와 의경이 등장한다.

창배
(의경을 보며) 살살 밀어... 나 지금 환자야! 환자!

조 반장
(반갑게) 오! 창배, 퇴원했냐?

놀라는 창배 ‘어~!’ 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려다 심각한 분위기에 멈칫한다.

창배
(눈치를 보며) 아... 반장으로 승진하셨다던 데... 늦었지만 축하드립니
다.

조 반장
(웃으며) 지금 축하받을 입장이 아니다.

창배
(눈치 없이) 왜 그러세요. .. 저도 이렇게 왔는데 승진 한 번 더하셔야
지...

창배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올라오고... 집중이 되질 않는지 짜증을 내는 김 형사.

김 형사
제발 좀 닥쳐라! (문득) 지금 이감 되냐?

창배
아니~! 지금 퇴원했는데? (웃으며) 형사님들한테 인사 쭉 돌려야쥐~!

김 형사
그래? 그럼 밥이나 먹고 하세요... (최 형사에게) 저 놈 꺼도 시켜라!

조 반장
그래 창배도 먹여야지... 뼈 붙으려면 사골이다! 설렁탕?

좋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창배, 김 형사가 입은 재킷을 보며...

창배
옷 잘 어울린다. 형 가져!

‘피식~!’ 웃어버리는 김 형사.

시간경과

배달된 식사를 하는 형사들과 창배.


김 형사는 책상에 앉아 위탁아동관련 서류를 재검토하며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한다.
수갑을 찬 채로 우악스럽게 설렁탕을 떠먹는 창배.

-58-
최 형사
(째리며) 흘리지 말고 먹어 임마! 밥 맛 떨어지게...

웃는 입으로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넣는 창배, 유독 버섯 무침은 손대지 않는다.

창배
(김 형사를 흘끔하며) 저분은 왜 저러셔요?

조 반장
몰라도 돼 임마! 골고루 먹어 새끼야... 가리긴...

창배
버섯은 안 먹어! (젓가락으로 버섯을 집으며) 내가 이 꼴 난 게 요거 먹
고 하이 된 거잖아? 거 기분 묘하데~! 크크...

재밌는지 낄낄대는데, 김 형사와 형사들이 시간이 멈춘 듯 창배를 보고 있다.


당황한 창배, 슬며시 버섯을 입에 넣는다.

시간경과

디지털 카메라가 컴퓨터 본체와 연결되어 있다. 모니터에 이어지는 여러 장의 사진들...

놀이방인 듯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슬라이드 되면... 살해된 아이들이다.


소녀1부터 수연까지 범인이 콜라주에 사용한 얼굴 사진들이 이어지고...

이어 재생되는 6mm 테이프에는 지하실에 홀로 갇혀있는 소녀들의 모습이 보여 진다.


피에로를 안고, 멍하니 웃는 표정 위로 ‘캬! 캬! 캬!’ 하는 인형의 기계음이 들린다.

불쾌한 듯 인상을 쓰는 김 형사가 창배를 다그친다.

김 형사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심상치 않은 눈빛에 주눅이 든 창배.

창배
양재동 그린 빌라 옆 단독주택인데...

조 반장
출동하자!!!

달리는 형사들.

S#87. 정호의 집. 밤

수연이 찍은 사진들을 인화하는 정호.


나무집게 물려 인화 액을 떨어뜨리는 사진들...

놀이동산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정호, 새끼 새를 바라보는 정호의 뒷모습, 침대에 누워

-59-
있는 수연엄마의 얼굴 등 어설프지만 느낌이 있는 사진들이다.
사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정호.

[화장실]
눈물을 지우려 거칠게 세수하는 정호, 물기로 가득한 얼굴을 들어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정호의 눈.
정호와 거울 속 정호의 눈이 교차되면서 빨려들어 갈 듯 보여지면...

어느새 거울 속 정호는 15년 전의 소년으로 변해 있다.

15년 전의 소년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정호.


소년 정호의 눈빛은 얼음같이 차갑다.

소년 정호
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정호
(고함치며) 그렇지 않아!!!

주먹을 뻗어 거울을 박살내는 정호... 손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정호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며) 더 이상 안 돼... 수연인 안 돼!

[거실]
거실을 울리는 전화벨... 무시하고 급히 집을 나서는 정호.

S#88. 도심도로. 새벽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최 형사의 세단.


조수석에서 휴대폰을 들고 있는 김 형사, 짜증나는 듯...

김 형사
왜 안 받아?

S#89. 범인의 지하실. 새벽

여러 대의 TV화면에 흐르고 있는 각기 다른 만화영화들...


무서운 듯 피에로 인형을 꼭 안고 있는 수연의 눈에 여러 대의 비디오카메라가 보인다.

[밀실]
두려운 듯 눈을 굴리는 모습, 막힌 공간을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 등... 수연이 보이고 있는
조그만 화면들...
등을 보이고 있는 누군가가 장갑 낀 손가락을 테이블에 신경질적으로 두들기고 있다.
테이블 위 버섯 스프를 보는 수연의 화면에 손가락을 멈추고...
숟가락을 들던 수연, 겁먹은 듯 다시 내려놓으면 화난 듯 잡동사니들을 밀어버리는 누군가.

-60-
S#90 강남 경찰서. 새벽
정호 들어서는데, 형사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여경 혼자 남아있다.

여경
왜 이제 오셨어요? 모두 출동 하셨어요.

정호
출동이요?

여경
새로운 용의자가 발견됐어요... (김형사 책상을 가리키며) 저기...

달려가 모니터를 보는 정호.

놀이방인 듯 웃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이 슬라이드 되고...


소녀1부터 수연까지 범인이 콜라주에 사용한 얼굴사진들이 이어진다.

화면에 집중을 하며 클릭하는 정호.

살해된 소녀1이 카메라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이 연속 촬영 된 스틸 컷이 나오면...

커다랗게 확대되는 정호의 동공...


정호, 뭔가 이상한 듯, 소녀1의 연속촬영 컷들을 다시 이어본다.

S#91. 범인의 지하실. 새벽


어둠 속에서 밀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형체가 조용히 걸어 나온다.
소파에 앉아 있는 수연의 뒤로 다가서는 뒷모습. 두터운 코드에 검은색 빵모자를 쓰고 있다.

기척을 느낀 수연이 ‘바르르’ 떨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고...

S#92. 강남 경찰서. 새벽
사진이 한 장씩 넘어가면 점점 클로즈업 되는 소녀1의 입술을 따라 발음하는 정호의 입술이
교차된다.

정호
(깨달은 듯) 언... 니...

S#93. 범인의 지하실. 새벽


천천히 손을 들어 모자를 벗어버리면 길게 늘어지는 생머리...
고개를 돌린 수연, 놀란 눈으로 중얼거린다.

수연
언니?

-61-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누군가는... 담당관 유진이다!!!

수연
(울먹이며) 무서워요... 집에 갈래요...

유진
(멍한 목소리로) 안돼... 집에는 아빠가 있어!!! 보호해 줄게... 내가 돌
봐줘야해...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는 유진의 손. 공포에 질린 수연의 바지가 천천히 젖어든다.

S#94. 양재동 양옥집. 새벽

유진의 단층 양옥집. 창들은 모두 커튼으로 가려져있다.


골목 한 쪽에 정차되어 있는 기동대 밴과 최 형사의 세단.

[기동대 밴]
조 반장과 김 형사, 구식 리볼버에 든 총알을 확인하고 있다.

조 반장
상황이 위급하면 딴 건 제끼고 애부터 챙겨!

김 형사, 고개를 끄덕이면 차문을 열고 최 형사가 들어온다.

최 형사
(황당한 듯) 박유진이래요! 위탁센터!

김형사
(어이없는 듯) 누구? 그... 그 여자?!!

Insert : S#45의 유진, 두꺼운 자료를 들고 ‘또각또각’ 걸어오는 모습의 Slow Motion

S#95. 강남 경찰서. 새벽

커다란 TV에 재생되는 화면은 지하실에 홀로 갇혀있는 소녀3이다.


배가 고픈지 스프를 떠먹고 있는 소녀3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정호... 지하실 벽에 도
배되어 있는 낡은 벽지에 시선이 간다.

정호의 눈동자와 교차되는 화면 속 벽지의 모양이 점점 확대되면... 희미한 나비문양이 드


러나기 시작한다.

Insert : S#82의 사진들... 나비 문양 벽에 기대어 나비처럼 팔을 벌리고 있는 수연.


천사의 집 현판 밑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단체사진.

깨달은 듯 여경을 돌아보는 정호.

-62-
정호
어디로 가셨다고 했죠?

여경
(당황한 듯) 양재동 집으로...
벌떡 일어서는 정호 달리기 시작한다.

S#96. 양재동 양옥집. 새벽

‘쾅~!’ 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김 형사, 뒤이어 쏟아져 들어오는 형사들.


거실과 부엌, 방들을 뒤지는 형사들의 몽타쥬가 이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듯 난처한 표정의 형사들 사이로 김 형사, 지하로 뛰기 시작한다.

[지하실]
총구를 들이대며 지하실 문을 여는 김 형사, 보면 평범한 보일러실이다.
내려오는 최 형사, 다시 올라오는 김 형사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김 형사
씨발~ 뭐야...!

형사들이 가득한 거실... 허탈한 듯 분위기가 썰렁한데 순간 김 형사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김 형사
네... (놀란 듯) 뭐라구?

여경(E)
천사의 집이랬어요...

김 형사
이런 씨발~!

전화 끊고 달리는 김형사.

S#97. 도심도로. 새벽

도심을 달리는 택시 안. 뒷자리의 정호, 초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본다.

[김 형사의 차]
클락숀을 울리며 미친 듯이 운전하는 김 형사. 신호위반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S#98. 범인의 지하실. 새벽

묘한 표정을 짓고 수연을 내려 보고 있는 유진의 얼굴.


약물이 반쯤 남은 주사기가 테이블에 놓여 있다.
울먹이는 수연의 시야로 보이는 유진의 묘한 미소가 약물 때문인지 점점 흐려진다.

유진

-63-
천천히 잠이올 거야... 아무 걱정 말어...

눈을 감는 수연, 잠이 든다.

S#99. 천사의 집. 새벽

폐쇄된 모습이 을씨년스러운 천사의 집 전경.


잠시 건물을 올려보다 현관문을 돌리는 정호. 잠긴 듯 꿈쩍도 않는 손잡이에 힘을 주다 포
기한 듯 건물 뒤편으로 걸어간다.
깨져있는 창 너머로 어둑한 실내가 보인다.
날카로운 유리, 넘어진 책상, 가득한 쓰레기들... 암흑 속으로 망설임 없이 넘어가는 정호
의 모습. 지저분한 마룻바닥에 정호의 무게가 실리며 ‘삐그덕~!’ 소리가 난다.

S#100. 범인의 지하실. 새벽

잠이 든 수연과 다정하게 누워있는 유진. 행복한 듯 과장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순간 천정에서 들려오는 ‘삐그덕~!’ 소리...
눈을 ‘번쩍!’ 뜨는 유진의 표정이 돌변하며 천정을 올려본다.
정호의 걸음을 따라 ‘삐그덕~!’ 소리가 이어지고...
입을 벌리고 소리의 방향을 따라 눈을 돌리는 유진.

유진
(당황한 듯) 아빠?

S#101. 천사의 집. 새벽

어두운 실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흐린 달빛만으론 부족한 듯...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는 정호, 주위를 집중해서 살핀다.
가득한 먼지로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이 없어 보이는 방들을 둘러보다 답답한 듯 소리친다.

정호
(큰소리로) 수연아!!!

[지하실]
정호의 외침에 놀라는 유진, 재빨리 수연의 입을 막아 세우고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약물이 도는지 ‘축~’ 늘어지는 수연의 무게에 유진이 중심을 잃으며 세발자전거를 건드린다.
탄성을 받으며 구르던 자전거가 박스에 부딪히면 장난감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우르르’ 쏟아지며 바닥을 때리는 진동이 1층 바닥으로 이어지고...

[1층 복도]
손바닥으로 벽을 짚고 있던 정호... 뭔가 미세한 진동을 느낀 듯 눈을 감는다.
잠시 정적이 이어지고...
손바닥을 댄 채로 눈을 뜨는 정호, 천천히 벽을 따라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면, 먼지가 쓸린
자국이 약하게 이어져 있는 게 보인다.

-64-
[지하실]
소동이 정리된 듯 고요한 지하실. 여전히 수연의 입을 막은 채로 죽은 듯 멈춰 있는 유진,
겁먹은 듯 한 눈동자만이 생생하다.
다시 ‘삐그덕~!’ 거리는 정호의 발소리가 머리 위로 다가오자 갑자기 눈빛이 변하는 유진.
유진
안돼... 오면 안돼!!!

수연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고 석유난로 옆 기름통을 집어 든다.

[1층 복도]
먼지가 쓸린 자국이 끊겨진 바닥 위로 비스듬히 열린 문이 보인다.
호흡을 고르는 정호, 문을 조심스럽게 열면 지하로 뻗은 기다란 계단이 펼쳐지고...
계단 끝 구부러진 복도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는 걸 본 정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S#102. 도심도로. 새벽
비상등과 사이렌을 울리며 질주하는 김 형사의 차, 거칠게 앞의 차를 추월하는데 트럭에 앞
이 막힌다.

김 형사
(경적을 누르며) 차 빼! 씨발~!!!

S#103. 범인의 지하실. 새벽

지하실의 철문을 조심스럽게 여는 정호, 바닥에 뿌려진 석유 냄새가 코를 찌른다.


불 꺼진 실내...
넘어진 TV들에선 만화 영화가 흘러나오고 깜빡거리는 화면 불빛이 벽을 비추면 6mm 테이프
로 보았던 나비 그림과 여자 아이의 옷가지, 여러 종류의 인형들이 보인다.
벽면에 비춰져 깜빡이는 정호의 그림자... 움직이며 앞으로 나가면 무언가에 ‘툭’ 하고 부딪
힌 듯 멈추고, 정호 내려 보면 소파에 누워있는 수연이다.

정호
수연아!

수연을 일으켜 흔드는 정호.

정호
괜찮니?

수연
(힘겹게) 아... 저씨...

수연의 흐릿한 시선으로 정호의 뒤로 다가오는 유진이 보인다.


반짝이는 주사 바늘이 정호의 등을 찌르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정호, 수연을 놓친다.
등에 꼽힌 주사기를 뽑고 재빨리 수연에게 가는 정호,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다시 수연을 감싸 안고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는 정호.

유진(E)

-65-
(음산한) 내 아이... 내 아이 만지면 안돼...
밀폐된 공간, 어지러운 TV의 불빛들... 약 기운이 도는 듯 혼란스러워 하는 정호.
순간, 철제의자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유진.

유진
그 손! 그 손 치워!!!

수연에게 날아오는 의자의 모서리를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등으로 받아내는 정호.


괴로운 듯 몸을 잠시 굽혔다 재빨리 어깨로 유진을 밀어낸다.
비명과 함께 넘어지는 유진, 석유난로를 넘어뜨린다.
인화 물질과 기름으로 순식간에 불이 붙는 지하실... 거칠게 위협하는 불길을 피하다 넘어
지는 정호.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속에서 기다란 송곳을 집는 유진, 불길을 보며 겁에 질린다.

유진
(간절하게) 아가야~ 숨어야 돼... 빨리!!!

송곳을 들고 출구를 막은 유진의 모습에 난처해하는 정호... 수연을 내려놔 뒤로 감춘다.


불길이 점점 심해지며 연기가 눈을 가리기 시작한다.

정호
이러지 마!!! 수연인 당신 애가 아니야!!!

유진
아빠, 안돼요!!! 제발 돌려줘요... 제발...

광기어린 눈빛의 유진을 보는 정호의 눈. 확장되는 정호의 동공에 유진의 얼굴이 맺힌다.

[정호의 동공에 맺히는 이미지들...]


‘응애~ 응애~’ 어둠속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문틈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중년 남자가 보인다.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이 어딘가 모르게 위험스
러운데... 문이 확~ 열리면 중년 남자에게 달려드는 번쩍이는 칼날!
피를 흘리며 중년 남자가 쓰러지면 칼을 들고 서 있는 유진의 모습.
넋이 나간 얼굴로 욕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아이를 집어넣는 유진...

유진
(기괴한 음성) 더러워... 더러워...

미친 듯이 울부짖는다.

[지하실]
유진의 과거를 보고 충격을 받는 정호,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문득 유진이 들고 있는 송곳을 보고 결심한 듯 수연을 돌아본다.

정호
수연이... 뛸 수 있어?
기운이 조금 돌아온 듯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

정호
아저씨가 뛰라고 하면 무조건 달리는 거야... 알았지?

-66-
몸을 돌려 유진을 향해 팔을 내리는 정호, 천천히 다가간다. 눈빛이 변하며 달려드는 유진.

유진
더러워... 더러운 놈!!! 내 아기를 우리 아기를...

정호의 복부에 송곳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한번, 두 번, 세 번...


괴로운 듯 피를 토하다 유진의 손을 ‘꽉’ 잡는 정호.

정호
수연아 뛰엇!!!

정호와 유진을 보고 경악을 한 수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움직이질 못한다.

정호
(화를 내며) 뭐해! 빨리!!!

커다란 고함 소리에 정신이 든 듯 ‘으앙~!’ 울음을 터트리며 달리는 수연.


계단을 뛰어가는 수연을 확인하고 유진을 쳐다보는 정호.
피가 흐르는 정호의 몸을 보고 ‘덜덜’ 떠는 유진...

정호
(담담하게) 이제 마음이 편하세요?... 이해해요... 얼마나 힘들었을지...
외로웠을 지도... (유진의 눈을 바라보며) 이해해요...

유진, 송곳을 쥔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천천히 뒷걸음질 한다.


벽에 기대 무너지는 정호, 배를 움켜쥔 손가락 사이로 피가 뿜어 나온다.

유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계속 뒷걸음질 하는 유진, 불길 속으로 들어가면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고...


슬픈 눈으로 정호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는 유진, 불기둥으로 변한다.

정호의 눈 천천히 흐려지며 표정이 편안해져 가는데... 흐려진 시야에 들어오는 수연의 발.
정호, 눈이 번쩍 뜨인다.
뜨거운 열기에 겁을 먹은 채로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는 수연, 연기 때문인지 기침을 계속
해대며 정호를 찾는다.

수연
(힘없이) 아저씨... 앞이 안 보여요... 무서워요...
정호, 힘을 내야한다.

S#104. 천사의 집 공터. 새벽

깨진 유리창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천사의 집 외경.


김 형사가 모는 세단이 공터에 급정거를 하면, 멀리 경찰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67-
김 형사
(연기를 보고 놀라며) 뭐야?!!!

차에서 내려 달리기 시작한다.

S#105. 천사의 집. 새벽

시커먼 연기가 복도를 가득 찬 가운데 정호와 수연이 힘겹게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아까의 약물로 가물가물해지는 정호의 의식...
연기를 마셔 정신이 혼미한 수연을 꼭 잡고 있는 손.
순간, 마치 살아있는 듯 한 불길이 가스관을 타고 들어가며 폭발이 일어난다.
폭격을 맞은 듯 크게 흔들리는 천사의 집.

[식당]
식당에 뚫려있는 창을 통해 들어오던 김 형사, 폭발에 놀라며 미끄러진다.

[복도]
불길을 품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두꺼운 나무 벽들 사이로... 정호, 자신의 코트를 벗
어 수연을 감싼다. 갑자기, ‘우지끈’ 무너지는 기둥이 정호를 내리치면, 쓰러지며 한 쪽팔로
겨우 버티는 위급한 상황.

정호
수연아! 수연아!

천천히 눈을 뜨는 수연, 힘겨운 듯 마른 침을 삼킨다.


겨우 수연만 나갈 수 있는 틈을 내고 버티는 정호의 몸. 정호 마음이 다급하다.

정호
움직일 수 있겠어?

수연, 고개를 가로 젓는다.


또 다시 벽 한 쪽이 허물어지고, 그 여파로 더욱 무게가 실리는 기둥.
난처한 듯 불길이 거세지는 복도와 위태롭게 쌓여있는 철제책장을 올려보는 정호의 시선이
흐려지며 눈이 자꾸 감긴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입술을 ‘콱~!’ 깨물어 피를 내는 정호.

정호
수연아... 자면 안돼! 알았지?
수연, 힘없이 끄덕인다.

정호
(계속 말을 시킨다) 수연이가 물어 봤었지? 나쁜 사진작가 아저씨...

수연
... ?

정호

-68-
어떻게 됐냐고...

수연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정호
사실 그 아저씬 독수리가 무서워서 도망갔었어... (수연에게 웃어 보이며)
근데... 결국엔 용기를 내서 소녀를 구해 줬어...

수연
착한 아저씨네요...

정호
그래... 그 아저씬 착한 사람이야...

수연, 눈을 감으며 희미하게 웃는다.


순간, ‘끼이익!’ 정호를 향해 떨어지는 기다란 철제책장.
꼼짝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순간인데... 책장을 막아내는 누군가의 손, 김 형사다.

김 형사
(무게를 버티며) 정호씨! 괜찮아?

정호
김... 형사님...

책상을 막고 버티는 김 형사. 피를 흘리며 꼼짝 못하는 정호의 상황을 파악하지만, 깁스한


팔을 쓸 수 없어 난감하다.

정호
(이해한 듯) 전 괜찮습니다. 수연이를... 어서...

김 형사
(다급하다) 무슨 소리야! 힘을 내야지!

정호
(소리친다) 빨리... 시간이 없어요!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보는 정호와 길게 시선을 마주치는 김 형사.
호소하는 듯한 정호의 눈빛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인다.

정호
(수연을 보며) 수연아! 수연아!

수연, 희미하게 눈을 뜨면...

정호
아저씨가 하는 말 잘 들어!

수연
응...

-69-
정호
지금부터 눈 꼭 감고, 속으로 아저씨 이름 백 번 말하는 거야! 알았지?

수연,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꼬옥~!‘ 감으면 정호, 미소 짓는다.


정호의 품에서 수연을 꺼내 안는 김 형사... 김 형사와 눈이 마주치는 정호.
‘수연일 부탁한다...’는 눈빛, 끄떡이는 김 형사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르면 역시 고개를
끄떡이는 정호.
김 형사, 수연을 안고 뛰기 시작한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는 정호의 눈이 편안해 보인다.

현관에 다다른 김 형사, 슬쩍 정호를 돌아보지만 시커먼 연기가 복도를 휘감아 버린다.

자신을 감싸는 불길을 보다 기둥을 버티던 손을 천천히 떼는 정호...


거세진 불길에 휩싸이며 사라진다.

S#106. 천사의 집 공터. 새벽

불타오르는 천사의 집 앞. 뒤늦게 도착한 형사들이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는데...


불길이 역류하는 현관을 뚫고 달려 나오는 김 형사.

‘펑~!’ 또 한번 폭발음이 들리며 불길이 솟아오르고 불덩이로 변하는 천사의 집.

숨을 고르는 김 형사의 뒤로 소방관들이 호스를 뽑고 진압에 나선다.


품속의 수연이를 보는 김 형사.

수연
(눈을 감은채로) 아저씨... 백 번 다 했는데... 아저씨?

모포 위에 수연을 눕히는 김 형사.


수연, 눈을 뜨고 힘겹게 일어난다. 앞이 보이지 않아 허공을 짚으며...

수연
(불안한 듯) 아저씨?

바닥에 쓰러지는 수연, 달려가 일으키는 김 형사.

김 형사
(안타깝다) 수연아... 아저씬...

김 형사의 떨리는 목소리에 뭔가 잘못된 걸 느끼는 수연.

수연
(울먹인다) 아저씨! 정호 아저씨는요? (힘이 빠지며) 아저씨... 어디 있
어요? 수연이 무서워요...

바닥에 무너지는 수연을 끌어안는 김 형사, 등이 가늘게 떨린다.

-70-
시간경과

화재 진압이 거의 끝난 현장. 어느 새 해가 뜨고 있다.


현장을 바라보며 길게 담배연기를 뿜는 김 형사. 조 반장, 다가와 어깨를 잡는다.

조 반장
그만 가자구..

김 형사
(씁쓸히) 네..

김 형사, 돌아서려는데 소방관들이 앞을 지나쳐 간다.

소방관1
저렇게 희한하게 죽은 사람은 첨 봤어.

소방관2
그러게... 눈을 꼭 가리고 말야... 참...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화재현장 한 쪽에 모여 있는 구급요원들이 보인다.

김 형사
(놀란 듯) !!!

조 반장
야! 어디가

현장으로 달려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오는 김 형사.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다.


검게 그을린 정호의 시체... 한 쪽 팔로 눈을 소중히 가리고 있다.
구급요원 한명이 정호의 손을 풀면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정호의 얼굴이 보인다.
그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김 형사.

김 형사
정호씨...

눈물을 삼키고 멍하니 서있는 구급요원들의 멱살 잡는 김 형사.

김 형사
(큰소리로) 뭐해 새끼들아! 빨리 병원으로 옮겨! 빨리!!!

당황한 구급요원들 영문도 모르고 서두르기 시작한다.


들것에 실린 정호를 보며 같이 달리는 김 형사...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차가워진 정호의
손을 잡는다.

평화로워 보이는 정호의 얼굴에서... 화면 천천히 White Out 된다.

S#107. 기인열전.(15년 전의 TV쇼)


Prolog에 이어지는 방청객의 박수와 환호가 들리고... 정호 무대 위에 서있다.

-71-
사회자
(당황한 듯) 정말 놀랍습니다. 상대방의 입모양과 눈빛을 읽는다는 건 정
말 대단한 게 아닐 수 없군요... 놀라워요...

사회자 ‘놀랍다’ 는 말을 연신 해대고 있다.

사회자
(정호를 보며) 정호君 정말 대단하네요! 대단해요... 혹시 별명 같은 거
있나요? 친구들이 지어 준 별명이나 애칭 같은 거...

정호
(망설이듯) ...괴물...

사회자
(웃으며) 괴물이요? 하하하 그런 무시무시한 별명을 누가 지어줬나요?

정호
좋아하는 사람이요...

사회자
이런...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소릴 들었다면... (웃음) 좀 문제가 있
네요? 여기 나온 김에 한마디 해줄까요?

정호, 잠시 망설이다 용기를 낸다.


정호
민희야... 너 땜에 여기 나온 거야... 나보고 꼭 나가라고 했잖아? 지금
보고 있지? 니가 오해한 거 같아서... 꼭 해줄 말이 있어... (눈시울이
붉어지며) 참견 하지 말라고 해도... 니가 많이 힘들어해도... 아무리 힘
들어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널 지켜 줄 거
야...

미소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정호...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천천히 Fade Out 되고 긴 암전이 이어진다.

Epilog - 납골묘지.(5개월 후) 낮

화면 밝아지며... 파릇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하늘을 길게 배회하던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으면 그 밑으로 보여 지는 납골 묘.

어색하게 웃고 있는 정호의 얼굴(수연이 찍어준)이 붙어 있는 묘비.

꽃을 놓는 작은 손, 정호의 카메라를 목에 건 수연이다.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으로 눈을 살며시 감고 있는 모습... 수연의 뒤로 김 형사가 서있다.

김 형사
아저씨가 좋아하실 거야...

-72-
말이 없는 수연의 뒷모습.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지저귀기 시작하면 수연, 천천히 눈을 떠 새를 올려본다.
정호처럼 유난히 투명한 눈동자.

김 형사
새소리, 바람소리가 참 좋다. (수연을 쓰다듬으며) 아저씨도 듣고 있겠지?

수연, 묘한 표정으로 정호의 사진을 바라본다.

수연
아저씬... 못 들으세요...

김 형사, 무슨 말인지 갸우뚱하면.

[정호의 사실들]
S#1의 공중전화 : 동전이 떨어지면 자동응답기 안내가 흐르는 중에 말을 하는 정호.

수연(E)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귀가 안 들리셨대요...

S#14의 지하철 : 수군대는 창배일당과 전화하는 중년 부인의 입을 유심히 바라보는 정호.


S#23의 부엌 : 수연과 식사를 하는 정호, 신문만 보며 전화벨 소릴 듣지 못한다.

수연(E)
그치만 눈으로... 마음으로 사람들이랑 얘길 할 수 있다고 그랬어요...

S#56의 병원 : 수연 엄마와 눈으로 대화를 하는 정호.


S#64의 위탁보호센터 : 수연에게 귓속말을 해 주는 정호.

[납골묘지]
김 형사, 놀라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묘비에 박힌 정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수연의 손.

수연의 동공이 천천히 커지면(정호가 그랬듯이) 확대된 동공에 맺힌 정호의 얼굴...

수연
(정호에게 말하듯) 아저씬... 이제 나쁜 꿈은 안 꾸실 거예요... (미소를
지으며) 그쵸?

미소에 답하듯 웃고 있는 정호의 사진으로 카메라 천천히 다가가고...

[언덕길]
언덕길을 내려가는 김 형사와 수연.
길에서 떨어진 묘지 앞에 슬퍼하는 사람들과 오열하는 가족들이 보인다.
상주가 들고 있는 사진은 앳된 여대생이다.
씁쓸히 바라보던 김 형사... 수연의 손을 잡고 길을 재촉하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수연의
머리를 훑고 지나간다.
순간, 무심코 묘지를 바라보는 수연. 사람들 속 한 남자를 보고 걸음을 멈춘다.

김 형사

-73-
왜?

수연의 동공에 맺힌 남자의 얼굴.

수연
(손가락을 들며) 저기...

김 형사, 수연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유난히 하얀 피부의 남자가 보인다.
창백한 얼굴로 영정을 바라보는 눈빛이 묘해 보이는데...

수연
저... 아저씬... 웃고 있네요?

남자를 바라보는 수연의 눈이 길게 보여 지다... Cut To Black. 음악이 시작된다.


- THE END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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