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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데?”
“집.”
“어떻게 갈건데?”
“걸어서.”
부드러운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여자는 힘겹게 나를 부축해주었다. 좋은 여자야, 상냥하고 다정하고
술병이 나뒹구는 거실 구석에 그녀가 시키는대로 얌전히 앉자, 그녀가 자신의 무릎을 가리키며 “누워.”
“착하네……”
착해, 정말 착하네. 당신이 여자라서 일까? 당신이 나와 완전한 타인이라서 그럴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서 유독 다정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속눈썹을 간질였다.
“간지러워……”
“응? 뭐가?”
나는 여자를 올려다보려 애썼다. 불투명 유리에 비친 것 같은, 여자의 흐릿한 모습. 어딘가 닮았다.
“처음?”
서였다.
엑스터시로 가득찬 실내에서 여자는 찌푸린 얼굴로 자신의 파트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솔브에서였지.”
“맞아.”
여자의 무릎은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무릎 위라는 착각을 들게 했다. 눈을 감자, 어지러움이
“그 때 나를 봤어?”
다.
있었다.
“응. 네가 보였어.”
밀 수 없었다.
그들이 좋았지만, 광경은 싫었다. 더욱이 내가 그 광경의 일부분이 된다는 생각은 참을 수 없었다.
“무슨 만화책이었어?”
여자가 물어서 나는 빙글빙글 도는 머릿속을 잡아채 멈춰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잡으
려 해도
“아마-”
내 말에 여자가 쿡쿡 웃었다.
“그 상황에 딱 맞는 만화책이네.”
무서워.
너와 사귀면 행복해질까?
“싫어.”
“좋아하는 사람 있어.”
“상관 없어.”
여자가 대답했다.
그녀의 무릎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기어가 벽에 기댔다. 차가운 벽 때문에 등이 시렵다. 그러자
술이 좀 더 깨는 기분이 들었다.
잘도 떠들어댔군. 어떤 놈일지 짐작이 갔다. 덕분에 환상처럼 아련하고 기분좋던 감각들은 전부 사라졌
다.
그녀가 물어서 다시 한번 그녀를 쳐다보려 애썼다. 표정은 고사하고, 얼굴도 여전히 흐렸다.
“마음에 드냐, 안드냐의 문제는 아니잖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은 네가 아니야.
“아니. 그냥, 내가 변하든 상대가 변하든 시간이 흘러 무언가가 변하길 기다리겠어. 이 세상에
야.”
것이
각이었나보다.
걷는 건 무리야.
명하게 났다.
-나 결심했어.
-나, 네 아버지랑 헤어질려고. ……좋은 사람이 생겼어. 네 아버지같이 멋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착
해.
나도 당신을 좋아했다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을까?
이대로 보내야 한다. 보내야 한다. 그녀는 조금 행복해보였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추운 게 좋았다.
서,
없이
산길을 걷다니. 돌았던 것이 틀림 없다. 머리가 돌았든 돌지 않았든, 지금 다리는 돌아가야 했다.
다는 뒤를 돌아 오던 방향으로 다시 걸어갔다.
나에게 그녀를 소개하는 순간에도 애매한 얼굴로 핸드폰을 받고 자리를 비키는 이 남자의 어디를 믿고
결혼한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그녀는 참 끈질기게 내 아버지를 믿었다. 아마도, 그녀가 완전히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추워.
제자리 뛰기를 할 정도로 춥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빌어먹을 여기는 도대체 어디야? 손목시계를
돌아가야 하는 거야?
수 없다 하더라도 몸을 피할 곳은 있겠지.
마땅치가 않았다.
일단 얼은 것으로 보여서, 나는 연못에 한발을 조심히 내딛었다. 완전히 얼어있었다. 두발을 내딛고도
어
얼음위로 올려놓았고, 중심부는 조금 깨졌을 뿐 얼음은 단단했다.
“큰일날 뻔 했다……”
얼음이 얼기 전에 나가야해, 라고 생각했지만 무언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발목을 잡아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1. 달의 신부
속의
잠시.
삼층정도의 높이일까. 천장이 상당히 높았다. 천장의 유리와 발코니로 이어지는 창에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을 등지고 외국인 아주머니가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가 선해보이는 분이었
지만,
드러운
전부 여자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제외한 여자들은 똑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유니폼일지도 모르겠
다.
갈색 머리카락도 있고 붉은 머리카락도 있고 검은 머리카락도 있었다. 파란색 눈도 초록색 눈도 있었
다.
맙소사, 전부 외국인이다.
“익스큐으지 미.”
다.
지 알아들었다!
혹시나 싶었는데, 나는 이 생소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맙소사, 이건 영어도 아니고 일어도 아니
다.
렇게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었는데,
인입니다.
라프라라고 불러주십시오.」
있었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죄송한데……」
뭐가 결례라는 거지? 아주머니는 마치 패밀리 레스토랑 점원이 주문받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
를
올려다보았다.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킨 나보다 눈높이가 낮아져서 나도 안절부절하게 되었지만 아주머니
내 말에 아주머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예?」
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요한 것은
「드와나요?」
상당히 불안해졌다. 맙소사, 그 펜션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관심이 없이 흘려 들었지만 기억하기
로는
것은
라지요.
모르시겠습니까?」
전-혀 모르겠는데요.
겠다.
느냔 말이지.
아서
을 할 것 아닌가.
아름다운 장미가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다. 그러고보니 전체적으로 디자인이 여성의 방처럼 보이기도 한
다.
무식한 크기를 제쳐두고 부분 부분을 보면 분명히 여성스러운 느낌이 난다. 가구들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고
「마마, 국무대신이옵니다.」
옆에
무릎을 꿇었다.
다.
쳐다보았다.
이것은 지도였다.
했다.
「여기가 바다입니다.」
땅은
「이 곳이 드와나 대륙입니다.」
「이게 유브라데군요.」
여기가 어디든은 이제 상관이 없어졌다. 중요한 것은 집으로 어떻게 가느냐였다. 그러나 여기가 어딘지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늘? 나는 시녀장을 멍하니 쳐다보았고, 시녀장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국무대신이 진지하게
물었다.
「기억이 전혀 없으십니까?」
술 쳐 마시고 연못에 빠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기억은 없었다. 하늘이라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집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말을 듣기는 했는데 정리가
안 된다.
달이 두개다. - 그것은 여기는 지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럼 여기는 어딜까? 나는 하늘에서 떨어졌
다고 한다.
-헤어질거야.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지.
서,
나는 무력하기만 했다.
「안녕.」
는 인상을 썼다.
남자가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부드러운 움직임이 인상적이었지만, 경계심이 들었다. 나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래……
「이런……그렇게 따분한 세계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곤란하군. 일단은 유브라데를 비롯해
서
일반 상식이야. 기억해둬.」
이쪽 세계?
「무슨 말씀이시죠?」
드디어 가까워진 남자의 눈은 선명한 금색이었다. 너무나 선명하고 밝고 깨끗해서, 고양이 눈을 박아넣
은 건
「안녕.」
「처음부터 반말이야?」
남자가 싱긋 웃었다. 아름다운 남자가 미소까지 짓자,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내가
뭐라
「아, 내가 반말을 썼지. 그래서 반말한거로군. 그건 그대가 옳아. 게다가 그대는 이세계(二世界)의 사
람.
꿈 속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자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냐. 게다가 태반이 혼잣말이고, 말투는
고색창연하다.
다. 그는
찬란한 방이
「어둠이 싫은가? 인간들은 대부분 어둠을 싫어하지. 어둠을 틈 타 손해를 끼칠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만, 어째서
남자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어둠이 물러갔다. 아니, 불이 켜진건가? 그러나 램프들은 하나같이
꺼져 있었다.
기름이 다 된 것 같다. 창 밖이 보이고 어렴풋하게 물건의 형체들도 보인다. 그런데, 아까는 칠흙같은
어둠이었다.
은 더더욱 아니야.」
계시? 누가 뭘 구한다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일단은 휴식이 필요했다. 자고, 먹고, 그리고 생각하는 거다.
「용건은 없어.」
족집게다……
생각했다.
사람같지 않은 키였다. 농구선수 같다. 아니, 농구선수도 이 정도로 큰 사람은 야오밍정도가 아닐까.
야오밍 키가 2m 20 이던가?
「재미있어. 이토록 삶이 강렬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 살아왔다해도 과언이
지금 시비거는 거냐.
「돌아갈 수 없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내 뺨에 자신의 손바닥을 갖다대었다. 분명히 사람의 손길인데도 기묘한 위화감에
오싹해졌다.
남자가 말했다.
「내가 방해할거니까.」
이 따위다.
어처구니가 없고, 말 뜻도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어딘지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금발 남자를
「마마……」
무슨 준비를요?
닌가.
하자.)은
「하오나 마마……」
시녀장도 당황한 얼굴로 침대에 옷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속옷으로 보이는 것에 민망함도 잠시 뿐,
알바할 때 에이프런 대신에 둘렀던 긴 스커트. 조끼? 저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소매부분을 장갑처
「싫어요.」
그 자체였다. 그 때 문이 열렸다.
「뭘 하는 거지?」
당황해서 손을 내리고 말았다. 이 녀석도 크기는 했지만 어제의 그 남자처럼 압도적인 키가 아니다.
이다.
「물러가라.」
「어디 사람이냐?」
「말하면 알아?」
내 말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거리로
「대한민국, 서울.」
「뭐?」
무언가가 치밀어올랐다. 이것이 분노인지 아픔인지 절망인지 알 수가 없지만, 갑자기 풍선처럼 부풀어
내가 소리를 지르자, 남자는 갑자기 싱긋 웃었다. 어젯밤의 남자와 완전히 겹쳐지는 미소였다. 미친 놈
같다 -
「역시, 사고였군.」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거뒀다. 자신이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 장난감 칼이라도 되었던 것 처럼.
구나.
근데 뭐가 사고라는 거지?
「이름이 뭐지?」
「김민후.」
나가버릴 기세였다.
「싫어.」
「뭐가 싫어?」
「왜?」
지도
「그럼 뭘 입고 다니는데?」
「바지와 티셔츠.」
결국, 그 망할 옷을 입기는 했지만 장신구는 하지 않았다. 안내된 곳으로 왔더니 황제와 국무대신이 앉
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정원에서 테이블을 펴놓고 앉아있는 그들 주위에는 경비병과 시종들이 드글거렸
다.
「좋은 아침입니다.」
같은 인사를 건네려는데.
「앉아.」
싸가지 없는 황제가 고갯짓으로 빈 자리를 가리키며 말해서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빈 자리에
앉자
맛은 있네.
「유브라데에서의 첫날 밤은 어떠셨는지요?」
눌러
「얼굴하고 다른 말을 하는군.」
누구는 저렇게 사교술을 펼치는데, 황제라는 인간은 찬 물을 들이붓고 있다. 네가 내 얼굴을 어떻게 알
아? -
「달에서는 다들 그러나보지?」
「우리에게는 그 곳이 달이겠지.」
아, 말 안통하네. 내가 우주선을 타고 온 게 아닌 이상 달은 아니야.
너무 걸렸다. 그런데 황제도 그렇고 국무대신도 그렇고 상당히 어리다. 설마하니 ‘알고보면 이백살’ 이
런 건 아니겠지.
「스……」
「열 아홉살입니다.」
「폐하는 몇 살이신데요?」
묻어가는 질문! 그런데 황제한테 나이를 물어도 되나? 황제치고는 꽤 무난한 성격인 듯 그는 바로 대답
해주었다.
「스물 일곱.」
「서른 다섯입니다.」
만.
「어떤 징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계시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폐하, 월인이 ‘남자’일 가능성이 그 계시에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
다.」
날씨는 좋고, 과일은 맛있고. 이게 무슨 과일인지, 이름이 뭔지, 과일일지 채소일지 전혀 모르겠지만,
여하간 맛있다.
아름다운 곳이다.
저 사람이 황제라면, 여기는 궁전일 것이다. 궁전이라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가 큰 곳이었다.
그리고 잘 가꿔진 정원과 아름다운 가로수들도 예뻤지만 특히 이곳은 아름다웠다. 아까 안내받아 오면서
사실 감탄했었다.
이어주고 있었다. 연못은 깨끗했고 연꽃 사이를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이 다리를 지나면서도 보였다.
「기적인가.」
사라졌다.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내게로 걸어와 내 이마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설마- 라고
키미누? 그건 또 누구래?
「계시에 따라 그대를 비(妃)로 봉한다. 혼인식은 세달 뒤 성대하게 치러질 것이다. 」
「잠깐만요, 저는 남자인데요.」
에 매달았을 것이다.」
이건 진심이다.
웃는 얼굴이 내뱉는 이 담담한 말투는 진심인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있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얼굴.
너 호모냐?
두려워서 물어볼 수가 없다. 아니, 황제라면 호모라 할지라도 지가 좋은 남자를 멋대로 취할 수 있을텐
데.
「밤에 찾아가지.」
밤에 왜 찾아온다는 거냐.
결혼할 ‘남자’가 밤에 나를 찾아온다고 그러니 두렵기 그지 없다. 아니, 두려운 정도가 아니고-
일단 돌아가야 해.
그것을 필두로 생각하다 어제부터 계속 ‘돌아가야 한다’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나치도록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돌아가서 뭘 하지? 새 어머니가 재혼하는 걸 지켜볼까?
혹시 꿈이 아닐까?
군.
닥치고나서 생각해봐야겠다.
으아아, 깜짝이야. 목소리에 놀라서 우선 창밖을 보았다. 어느 새 밤이다. 맙소사, 나 하루종일 생각만
「……뭐해?」
「아, 아무것도……」
뜻 같다.
올려다보자 그가 말했다.
「받아.」
「나만을 쳐다봐.」
「아무도 믿지 마.」
야?
내 말에 그는 눈을 깜빡이고나서 내게 물었다.
뭘 말이야?
라고 말하고, 잠시 침묵했다.
「이거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러면서 흘긋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는 묵묵히 식사만 하고 있었다. 그는 굉장히 난감한 얼굴로
성질 급한 한국인 속 터진다.
신이 왜 병을 내리지?
자비와 사랑.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의 핵심 이념 아니던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냥 넘어갔
다.
「그러세요.」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곱게 컸다. 기업인 아버지와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정신적인 괴로움은 있었지
「키미누.」
「김민후에요.」
「그래, 키미누.」
정이다.
그들은 내 이름의 발음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키미누’라고 말하고 있는것인가보다.
「틀렸나?」
으로 보이지만」
정혼자, 라는 단어에 얼굴 하나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안돼, 생각하지 말자. 돌아갈 방법도 보이
「있었나?」
황제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의 얼굴에서 불쾌감이 읽혀졌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어째서 불쾌해하고
있지?
「아니요.」
일단 대답하자, 황제가 미소지었다. 아름다운 남자의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이 남자 확실히 무섭다.
「다행이군.」
황제의 가벼운 말에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 내게 정혼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다행인거
냐?
「그건 말이지.」
없다.
다.
-얼굴뿐만 아니라 구렁이 같은 면도 황제와 닮은-인가 싶어서, 나는 빠르게 걷다가 갑자기 돌아봤다.
했던
「돌아가죠.」
시녀장이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여서 내가 새치기를 했다. 그리고 앞서 걷자, 시녀장이 곧 따라
붙었다.
었다.
-아무도 믿지 마.
그저 쳐다 본게 다인데.
여자애들은 자존심도 강하고 상처도 잘 입는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건드리면 안된다. 여자와 남자는
틀리다는 것을 나는 평생 지워지지 않은 후회와 함께 깨달았었다.
다.
시녀들이 입는 유니폼 원피스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시녀들과는 달리 허리를 강조하는 풍성한 원피스
입고 있었다. 특별히 장식은 없었지만 본인도 무척 귀여워서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더 정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 취향은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다. 조금은 슬픈 사람이 좋다. 강한 빛은 어딘가를 어둡게 할
것이다.
성기의 치수까지 재었다. 맙소사, 혼례복은 도대체 어떤 모양인걸까? 일단 이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고
「비서관 레니 데이비드입니다.」
‘데이비드’라니 상당히 친근감이 드는 이름이다. 그러나 여자의 외모는 절대로 친근하지 않았다. 그녀
서양인’에 한정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회색눈에 은발은 그녀를 약간 무섭게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사각 안경.
결혼하고 양가 친지에게 인사.(그나마 한쪽은 없다.) 그리고 신혼여행. - 그런게 결혼식이 아니던가.
「혼례식은 보름간 치러집니다. 전날, 전야제 연회가 있습니다. 각 나라의 대사들이 참석하며, 귀족은
서는
뭐라고요?
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잠깐, 잠깐만요!」
그녀는 잠시 텀을 두고 대답했다.
습니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심판의 물에서 정화의 의식은, 오일간 행해지며, 황제 폐하와 마마,
그리고 신관이 참여합니다. 신관은 황궁 내 신전에 있는 신관이 참여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
다.
아, 깜짝 놀랐네.
그 황제 얼굴은 예뻐도 몸은 체조선수 같았다. 근육이 엄청난 걸 보니 알아서 잘 하겠지.
「어디로요?」
「드래곤의 둥지입니다.」
혼자 죽으라고 할 셈은 아니지?
「만나보긴 했는데요.」
비서관이 강경한 얼굴로 말해서,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맙소사, 이런 잔인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정말 돌아가시겠다.
는 말이 되는데……
「물론입니다.」
무슨 경을 칠 소리냐는 듯이, 반쯤은 화내고 반쯤은 겁먹은 얼굴로 비서관이 큰 소리를 냈다.
연회와 합방식. 그리고 다섯째 날은 황제폐하께 작위를 받습니다. 이렇게 혼례를 마무리 짓게 됩니
다.」
어가자.
「물러가라.」
「오늘도 예쁘네.」
다.
「오늘은 언제 시간 되? 바빠?」
아니 뭐, 그건 그거대로 재수없지만.
「얼마나 바쁜데?」
대답도 해주기 싫은 모양이다. 냉정해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비서관은 굉장한 미인이었다.
「내일은?」
「바쁩니다.」
「모레는?」
「바쁩니다.」
「글피는?」
나는 놀라서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킥-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황제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
는 않았다.
「바쁩니다.」
한참만에, 불쾌감이 몇십배 가중된 목소리로 비서관이 대답했다. 그녀의 온몸에서 ‘귀찮아’라는
「바쁠겁니다.」
알겠다.
「아, 그럼……」
은 황제였다.
그가 또 웃었다.
나를 보고 웃으며 뭔가를 말하려던 황제는 그의 옆에서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국무대신을 올려다보았다.
「왜?」
「아닙니다.」
「왜인지 아시잖아요.」
그 말에 황제가 냉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비서관과 국무대신의 대립에서 황제와 국무대신의 대립으로 불
옮겨 붙은 듯 했다.
여자란 정말 대단해.
답했다.
「폐하는 안 무서우셨어요?」
「아, 그거.」
색.」
이름도 받았고.」
「신성한 이름이요?」
「그래.」
그러고보니 아무리 황제라지만 이름도 모르겠다. 나프라 시녀장. 니타우 국무대신. 레니 데이비드 비서
관.
「내 이름이 궁금해?」
「성은요?」
「아니, 세습제야.」
전에 황제가 먼저 대답했다.
라 웃었다.
황제치고 참 줏대도 없다.
까.
령?
그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나라면 외로울 것이다. 지금도 외롭지만. 바람둥이 아버지,
결벽증인 어머니, 그 둘은 이혼했고, 아들인 나를 이리저리 서로와 서로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떠넘기
했지만, 좋아하는 여자는 새엄마고, 그녀는 곧 재혼할 것이지만. 그 모든 슬프고 아프고 힘든 일들도,
천상천하 유아독존. - 그것이 진정한 권력자인가?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늘 권력자에게 밟히는 인생을
「무슨 생각해?」
겠다.
「잠깐 집에 대해서.」
「행복한 집이었나?」
「아니요, 전혀요.」
「불행했어?」
「아니요.」
행복하지 않았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남에게 기대거나 기대를 하는 성격이 아닌 것이다.
생긴 건 예쁘다.
「원래 그런 식이야?」
뭐가?
「좀 자기 중심적이기는 하죠.」
했다.
아보았다.
「폐,폐하?」
「왜?」
침을 했다.
를 들어주십시오.」
2. 계시 (1)
지방 도시는 당연히 관리를 보냈지요. 그런데, 파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670 명이 사는 마을이
비어있었던 겁니다. 관리는 텅텅 빈 마을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가정집에 허락을 구하지 않고
「무서워?」
「아니요.」
「무서운 얼굴인데?」
내 거절에 황제가 아쉬운 얼굴을 했다. 옆에서 국무대신이 샘통이라는 듯이 진하게 미소짓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하겠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일은 유브라데 뿐만 아니라 드와나 전체를 시끄럽게 했죠. 그러나 학자들을 파견하고, 신관들을
파견해보아도,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제사를 지내게 됐습니다. 라브만이 주관하는 첫 제사인 셈이었
죠. 그만큼
큰 일이었습니다.」
「라브만이요? 그게 누군데요?」
그러고보니 이 사람, 전에도 황제와 국무대신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왔었던 것 같다. 누군지 궁금해져
서 물었더니
이미 늦어버렸다.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덧붙였다.
「하지 말라니깐.」
권, 행정권을
기고 있습니다.」
정치과목 생각난다.
「그러나 신전이 복종하는 자는 폐하가 아니라 신입니다. 수천의 신들, 그 가운데서도 태양신 ‘레’와
달과 밤을
주관하는 여신 ‘데’을 중심으로 하지요. 그들은 신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말, 계시를 통해서 현재를 반
추하고
화를 좋아하지만.
은거하고 있는데,
에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예쁜 얼굴이 생긋 웃었다.
「안아줘?」
「……괜찮습니다.」
그래, 나라도 섬기기는 싫겠다. 대답을 하면서 국무대신을 쳐다보는데 황제가 갑자기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브만이 어떤 전통을 가지고 이어지는지는 모릅니다. 신관은 결혼할 수 없으니 세습제는 아닐것이라
고 생각하지만,
제로 한 시대에
이 나온 것은,
위미르께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제사는 성공적으로 치루어졌고, 그리고나서 멸망한 마을은 없었습니다. 제사가 이뤄지는 동안 파데를
제외한
마을을 두개나 더 말살시킨 병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라브만은 ‘신의 노여움이 풀렸다’고 선언했
고,
을 질렀죠.
겼습니다.
인접국 기혼의 여행자이자 학자인 슈이처의 기록에 따르면 ‘유브라데는 태양신의 노예가 되었다’라는
구절이
한 미녀셨죠.」
「내 어머니야.」
같았다.
윗대륙
있어야
청혼하고 있는 와중이었죠.」
「그리고 그녀는 위미르 황제, 즉 내 아버지를 만났다. 부성애를 전혀 느껴보지 못한 그녀에게 위미르
황제는
브라데로
시집을 온다. 첫해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으므로. 세상에 다시 없을 미
모라는 둥,
다. 그런데,
「사실, 체니 황비를 반대하는 여론은 강력했습니다. 그것은 신전을 필두로 한 것이었죠. 체니 황비가
출생한
곳에 있는
니다.
그러나 체니 황비는 얼마든지 신을 섬길 수 있다고 했고, 맹세도 했으며, 그녀의 기적같은 아름다움은
사람들의
음도 가
였습니다.
이었죠.
신전들은 불길한 계시를 늘어놓고, 황제와 신전 사이에 냉전이 계속될 때쯤, 신병이 돌기 시작한 것입
니다.」
시작되었던
것이 올라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리고 신전은 신병을 불러들인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취했지.
무신론자가 황비가 되었으니 신에게 버림받은 것은 당연하다며. 그리고 삼년간 쿠테타의 직전까지 진행
된 사건이
비를 했지.
신관들도 신성지를 지키겠다며 신성지 앞에 집결하고 있었고. 그리고 아버지는 군대를 이끌고 신성지로
갔다.
보병이 주였기 때문에 여기서 신성지까지 가는데 무려 이틀이나 걸렸어. 그리고 신성지 앞에서 그는 죽
었어.」
는 달려가
황제의 붕어소식을 전합니다. 병사들은 갈팡질팡했고, 신관들은 신성지에 집결한 김에 궁까지 쳐들어 올
기세였죠.
그리고……」
「어머니는 자살했어.」
자신의 어머니잖아.
「고마워.」
었어.」
「겨우 마흔살이셨는데, 머리가 하얗게 새셨었죠. 유브라데에서는 툭하면 신병이 마을 하나를 전멸하고,
인접국인 기혼과 전쟁까지 발발했었으니까요. 게다가 수도를 옮기느냐 마느냐, 라는 토의가 나올 정도로
「그 때, 황명을 받아서 출전했어. 이겨서 돌아왔지. 그리고 유언으로 황태자였던 둘째형이 아니라 내
가
결에
황제가 된 거지. 그리고 육년이 지난 올 해 조용하던 신전에서 갑자기, 계시가 내렸다는 공표를 했
다.」
것이다’
박질쳤지.
군.」
「그 때!」
‘황비 선언’을!」
쳐다보았다.
「이제 알겠어?
뭘?
「달에서 황비가 떨어진다는 계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떨어졌다. -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안돼요?」
「폐하께서는 절 정말 비로 맞을 생각이세요?」
「전 남자인데요.」
「안다니깐.」
「상관 없어.」
에 이름이 남잖아.
그 순간, 국무대신의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쳐들었더니 황제가 일어 서 있었다. 차가운 얼
굴이었다.
「왜지?」
당연한 이야기다.
게다가 나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더더욱 인생의 파트너는 중요하겠지. 외롭지 않게
해 줄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도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어. 내 어머니 이야기가 충분한 교훈이 되잖아?」
황제의 냉랭한 시선이 걸렸지만 일단은 대답했다. 나에게 삶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 다면 이것이다. 사
랑하는 사람과
「그래? 그럼 노력해.」
황제가 웃었다. 그러나 입가만 올라갔을 뿐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내 바른 말에 황제가 코웃음쳤다.
가. 내가
뭔가 말이 되는 것도 같고……안 되는 것도 같고……애매하다.
하나?
랑하는가.’
일단 살고 보자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틀리다. 명목상의 황비가 아니라면 문제가 크다. 세상에 어떤
놈들은
막히게
남자 대 남자라는 걸 좀 염두해두자. 어?
「왜?」
「전, 남자이니까요.」
「비마마는 남자시잖습니까!」
다.
「끼어들지 마라.」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국무대신이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머리를 조아렸다. 시녀장이 나에게 한 것 처럼.
「전혀.」
인데
지금 ‘왜’냐고 묻는거야?
「그렇겠지.」
「그래서?」
「예?」
「혹시 여자십니까?!」
답답한 나머지 소리를 치자,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아니, 남자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그대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지. 그리고 우리 둘은 남자다. 충분히 이해하
지만,
운명같은 소리하시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는다니,
분이었다.
뭐야?
또, 새 어머니 생각이 난다. 늘 슬프고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 젊고 사랑스러운 여자. 그녀는 다른 이
와 결혼하겠지.
다.
「마마께서도 준비하셔야지요?」
에?
「무슨 준비를요?」
「알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어쩌시려고 그러셨습니까?」
「뭘요?」
모르겠는데요.
「운명의 여신은 도대체 뭘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데’는 왜 마마를 보내신 겁니까?」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폐하는, ‘자신을 위한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계십니
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렸다.
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했다. 나는 당황했다.
「마마……」
「이동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이동이라니요?」
「오신김에, 말씀해주십시오.」
「여기가 아니에요?」
문에……」
었습니다.」
「왜요?」
「폐하의 화풀이 대상이 되신거죠. 폐하는 자국민에게는 관대하시지만 타국의 노예나 공녀들에게는 자비
가 없으신 분입니다.」
였다. 내가 황제를
다.
황제 폐하의 품으로요! 신이 계시를 내렸고, 황제 폐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사람을 운명의 힘으로
얻었습니다.
제 폐하가 ‘남자라도
맞춰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는 사흘이나 모습을 비추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번민에 시달렸다. 일단 도망쳐야 할 것 같다. 그
런데 그 남자 하렘의
면 가만 둘 것 같지는 않다.
도망치다 잡히면 안될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얌전히 앉아서 황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도망갈까?
다. 빠져나갈 구석이 있나
포함한 고등학교만하다.
다. 방과 욕실. 그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 한국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풀 냄새와 꽃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이런
향은, 스승의 날 때
이 곳도 시간이 흘러서 진보할까? 드래곤도 사라지고 전기가 생기고- 그리고 이 별과 화려한 궁전을
잃을까? 아니, 이 곳은
「저기, 시녀장님.」
라고 부른 뒤로부터는
더더욱 호의적이었다.
게다가 말투가 극존대어로 바뀌고 있다. 뭐야, 나 처음에는 쉽게 보인거야? 아니, 차라리 쉽게 보일 때
가 나았다.
늘 가정교사를 물색하여,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교육을 받고 컸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배웠다면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잖아.
「잘 지냈어?」
도망칠 궁리와 두려움으로 정신적인 번민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잘 지냈다. 밥도 잘 먹고, 조깅은 좀
남사스러워서 웨이트
잘 지내고 있었다. 원래
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걸로 이런 거냐.
「잘 지냈습니다. 폐하는요?」
「전혀.」
「개떡같았어.」
사방에서 하늘이 보였다. 맑고 아름다운 밤하늘이 사방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온실에서, 황제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머릿결이
걸음 으로 그는 내게
끼지 못할 정도로. 네가
모르겠어.
「옆이라면서요.」
품은 또 무슨 품이야.
것 같다.
선에 나는 웃어버렸다.
싶은 마음은 없는데.
이 ‘자자’가 어떤 ‘자자’냐.
방이라고 하기도 집이라고 하기도 애매모호한, 아름답고 매끄러운 흰 천으로 만들어진 천막으로 들어갈
때쯤 나는 슬쩍
아마도, 황제가 놓아준 것에 가까웠다. 그는 나보다 앞서 들어가서 화려한 침대에 누웠다. 그저 움직임
인데도 불구하고
「뭡니까?」
「누워. 같이 자자.」
누구 마음대로요?
어이가 없어서, 반대쪽 침대가에 엉덩이를 걸쳤다. 나는 누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에게 무언가를 말
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독수리가 먹이를 채듯이 내 손목을 낚아채는 바람에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폐하!」
「거짓말.」
황제가 나를 연인을 재우듯이 품으로 끌어당기고는 등을 토닥이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아. 달은 어떤 곳이었는지
「전 폐하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지 않는 쪽이
좋으니까.」
갑자기 졸음이 왔다. 무언가가 귓가에 속삭여지고 있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 그리고 갑자기 쏟아
지는 졸음.
-또 보네. 잘 지냈어?
다보자 그가 싱긋 웃었다.
-황제 폐하 아니시죠?
-글쎄?
-혹시, 형제인가요?
-이런, 황제는 너에게 자신의 소개도 하지 않았나. 그에게는 형제가 여러명 있지. 하지만 그의 어머니
는 그를 낳고 나서 죽었지
않은가.
은 어둠.
-당연하지.
-그런데 왜 어둡죠?
웃, 그리고 눈을 한번 깜빡.
생긴 건 황제지만, 황제는 이럴 타입은 못 될 것 같다.
이죽거려줬다. 아름다운 세계인데 복잡하고 기괴하다. 햇살도 별빛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도무지 상황
도 사람도 알 수가 없다.
-그대는 정말 재미있어.
황제와 조금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황제의 웨이브진 금발이 아니라 이쪽은 스트레이트다. 황제
는 보기 좋은 은색에
옅은데 이 쪽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금색의 눈동…… 잠깐, 황제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이 금발의 금안이라고 하지 않았던
가?
그럼 이 사람은 뭐지?
-사람맞아요?
게 쓰다듬었다.
호러물은 질색인데.
인생을 편하게 하지만, 유머러스한 연인은 인생을 즐겁게 만들지. 인간들은,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지 의심스럽지만, 일단.)
이 다 있냐.
의식속이라는데,
왜 이렇게 어두운 걸까. 며칠간의 일을 떠올리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 말에 그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대는 귀여워. 난 인간이 싫지만, 그대는 귀여워. 이세계의 사람이라 그런가? 그대에게서는 반짝 반
짝 빛이 난다.
의 언어로,
그대는 인간이다. 그렇게 보이는군. 간간히 다른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종족은 인간임이 분명해. 말해
봐라.
-이 감정은 뭐지?
-모릅니다.
은 타인의 무의식에까지
자기 멋대로 들락 거릴 수 있는 인간 아닌가.
내 말에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알면서 묻는 쪽이 나쁜 거 아니에요?
사람을 떠본거잖아.
그가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어요.
에게 연애질 거는게
습관인가?
황제는 눈을 도로록 굴렸다. 아니, 황제를 닮은 남자가 눈을 굴렸다. 그는 눈동자를 왼쪽으로 굴리고
오른쪽으로 굴리더니
웃으면서 단언했다.
랑타령이세요?
내가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대의 요지는 이런건가? 인간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주는 상대에
게 그 감정을 허락받아야
하는건가?
숨이 턱 막혔다.
「잘 자네.」
지 햇빛이 강렬했다.
「예……」
애매한 내 대답에 황제가 「안됐네.」라고 말하며 나를- 들어올렸다. 어깨에 매단것도 아니고, 영화에
서 남자가 여자를
들어올리듯이, 그렇게.
「싫……!」
「걸어갈 수 있어요.」
「알아.」
사하는 시녀장이
오늘은 안 보인다.
「위험……」
감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미끄러졌다.
른 욕조들이
락을 떼주었다.
욕조 위에서 쪼그리고 앉아도 생긴게 예술이니 왠지 멋져 보여서 나는 짜증이 났다. 잘나게 태어나어
좋겠다.
「이게 계시였어.」
닭살돋는 계시네.
뭔가 이상하다.
나는 그 얼굴에 빠져들 것 같이, 쳐다보았다. 눈길을 돌리고 싶은데 돌릴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르겠다.
제가 아니었다. 그는
「내 곁에만 있어.」
어긋나있다. 처음부터 구원을 할 월인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대단한 대우를 받으며 황비가 되어야 한다
고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늘 뭔가를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확인하고 있군. 확실히 말해서 나는 너
와 결혼하고 싶어.
하고 나서 더욱 좋았고,
해서 나는 황제를
어갔다.
깨끗한 물이다. 물 속이 훤히 보일만큼 투명하고 따듯한 물속인데, 나는 오한이 났다. 황제도 그렇고
그 귀신인지 뭔지
올라갈까 말까를 계속
갈등하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넣으려는 순간,
는 황제가 힘을 줬다.
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제껏 키스도 섹스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추억으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제껏 키스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키스로 신음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쾌
락도 주지 않는 키스를
을, 서로 공유하는 듯한
바라보았다. 실눈을 뜬
아무도, 아무 곳에서도 나를 이렇게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타인끼리도
섹스하는 걸까.
는 거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자 그는 내 손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한 팔
로 내 턱을 쥐었다. 그리고
타액을 빨아들였다.
뼈를 하나 하나 문지르는
어서 젖은 옷을 두고
뜨거워졌다.
다. 상대가 어떤 느낌을
었다지만, 후들거리는
다. 황제가 내 성기에
의 페니스는 서로에게
「미치겠군.」
「미치겠어.」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기증이 났다.
황제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 빤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왜 후회하는 얼굴이지?」
몰라서 묻습니까.
그래, 너 잘났다. 대꾸할 가치도 못 느껴서 수면만 쳐다보는데, 황제가 다정하게 나를 안았다. 아직 흥
분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너는 정말 특이해.」
황제가 속삭였다.
원래 좋아하면 이렇게 달라붙고, 무조건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가. 내 주위사람들의 연애를 돌이켜보았
다. 정상적인 연애는
알아내려 애쓰고,
황제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솔직하다. 만나지 일주일도 안되서 좋아한다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도 잘 생겼고 돈도 많고
권력도 있으면 여자는 꼬이기 마련이다. 졸부 3 세들에게도 그렇게 여자가 몰려드는데, 하물며 이 쪽은
한 나라의 지배자
차피 날 때부터 은수저
고 황제의 직속
를 끌어안는 순간,
매일 보고, 매일 입술을 부딪치다보면, 감정은 생긴다. 이런게 정이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었다. 황제와
집으로
나가서
그런데 한 번 개겼다가 이렇게 온실로 쫓겨난 상황이니 한번만 더 개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게다
가 저 황제는
나들 말에
의하면 그렇다.
다.
다.-과
황제의 분홍빛 로맨스가 있었단다. 그녀도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황제는 말할 것도 없고한 상태여
서,
그래서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그녀는 황제가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했다. 가면 갈수록 황제는 그녀를
멀리하기
했다고 한다.
사정하자마자 나가버린 황제의 뒤에서. 결국 임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낳고 황제에게 아이
를 보여주며
자신의 애정을 호소했다고 했다. 그런데 황제는 그녀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모잘라 그녀의 집안 9 대를
멸했다는 것이다.
려고 하다니,
……그래, 싫다.
그런데 몸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나에게는 잘해주는 황제다. 섹스하고 잠드는 나를 씻겨놓는 것도 황
제고, 잠깐
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들을 죽일 수 있는 권력자라니, 싫다.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자신의 아들을 위하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여자와 결혼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만을 사랑하고 아이를 위해 살다가 죽을 것이다. 평화롭고 완전한 삶을 꿈구고 있
다. 거기에 황제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망쳐야 해.
감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냐니깐.」
「아무 생각도.」
「응……」
황제의 입술이 익숙하게 느껴져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익숙해져도 안돼.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나는 황비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망가야 한다. 최종 목적은 집으로 돌아갈 방법
어진 사람들이 있는 그 곳으로.
쾌락에 잠겨 있을 때가 아니라고.
「밖에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는 아니야.
「왜?」
「답답하니까요.」
「바람이 없잖아요.」
「다리도 없고요.」
「만들어주지.」
「표정이 차가워.」
「대신에 키스해줘.」
을 시도했던 여성이 있었을 만큼 일방적인 관계들을 가지고 있던 황제로서는, 반대쪽으로 통하는 일방통
행을 참기 힘들지도 몰랐다.
다 나쁘지 않더라.
허겁지겁 내 입 안
곳곳을 빨아대었다.
절박한 키스.
안,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람.
마음은 정해졌다.
3. 어린 양 (1)
일단 황궁은 엄청나게 컸다. 예상보다도 엄청난 크기에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나는 그 황궁의 중심부
일단은 황제의 궁보다 외부와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정작 담을 본 적이 없어서 넘을 수 있을지 확신이
분명했으니까.
도망친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글을 배운 것은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유브라데어는 영어와 비슷한
어보기를 반복했다. 라프라 시녀장도 글을 알고, 시녀 누나들도 글을 알아서 대답해 줄 사람은 많았다.
다행이었다.
일단은 무리였다. 황궁을 벗어나는 것은 무리였다. 아아주 무리였다. 황궁은 지나치게 컸던 것이다. 황
궁의 주변은 숲뿐이었다. 숲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와 비교해 본 결과는 그랬다. 황궁이 중심에
가.
절망스러웠다.
하렘내도 충분히 아름답기는 하다.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수많은 화초들, 미로같은 정원, 그리고 아름
다운 소규모의 방들.
아름다운 누님들.
「괜찮아요?」
에.
은 말을 했다.
「마마……」
다.
시녀장은 그 말을 남겨놓고 시녀들을 데리고 갔다. 마지막으로 보낸 시선은 염려로 가득찬 것이어서,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 두 번째 만나는거죠?」
「저, 기억하세요?」
「예.」
마치, 연예인이 기억해준 것처럼 여자는 좋아했다. 아니, 뭐 굉장할 것 까지야. 이 곳에 와서 인간관계
「아까는 왜 울었어요?」
「유모랑 싸웠어요.」
그리고 한 시간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로로, 기혼의 공주였다. 기혼과 유브라
에서는 계속 휴전을 제시하는 입장이고, 자신들의 평화 입장을 알려주기 위해서 보내온 공주가 그녀라는
것이다.
는 모양이었다.
보다.
전쟁은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나라를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인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건 어떤걸까.
「왜 표정이 그래요?」
「그냥, 이야기요.」
「내용이 뭔데?」
「날씨같은……」
「돌아가지.」
도망쳐야 해.
해갔다.
「시오엔……」
어느 새 섹스때는 이름을 부르게 됐다. 그는 내가 이름을 부르자 잘했다는 듯이 입술에 키스를 건네고
내 엉덩이
은 내 몸을
이야.
신이
눈 앞이 흐려진다.
익숙한 사정감. 황제의 손이 세게 내 것을 잡았다. 기분좋은 아픔이 도리어 쾌락의 절정을 주었다.
사정하는 가운데, 엉덩이 사이에서 따듯한 액체가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 단단한 팔이 뒤에서 나를 끌
어안고 있었다.
내 말에 황제가 피식 웃었다.
「틀려.」
였다.
하지.」
「환생하니까.」
「인간은 영원히 환생해. 쉬고, 다시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그 영원한 여정속에서 혼자
「잡히는 쪽은 불쌍하군요.」
「서로가 서로를 잡아두는 거야. 끝 없이 이어지는 관계속에서 같이 나아가는 거지. 언제까지나 혼자이
고, 또 언제까지나 같이야.」
나?」
다.
정신 없이 잠에 빠져 들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실체가 없거든.
유령 아니랬잖아!
-귀신류 아니라면서요!
던 그가 싱긋 웃었다.
-무서운가 보지?
이럴 때 무섭다,고 솔직히 못하는 것이 대한 건아의 비애다. 무섭다고 하면 끝날 문제라는 걸 모르는
-안 무서워요.
-안 무섭다니깐요.
순간, 그를 쳐내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밀려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넘어질뻔 했다. 뒤로 꺾이는
내 몸을 잡아주면서 그가 혀를 찼다.
-흠.
마치 개처럼.
미소지었다.
-누구세요.
로 일으켜주고 손을 뗀 뒤 대답했다.
아아, 순식간에 납득이 갔다. 그렇구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금발 남자는, 골드 드래곤의 수호를 받는
그 귀에 손을 대었다.
-그……몸도?
-왜요?
을 기다렸다.
내 말에 그가 씩 웃었다.
-그래.
「키미누……」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불려지고 있는 이름은 내 이름이 아냐. 그런데도, 그 목소리
는 상당히 부드러워서,
그래서……
「키미누……」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금발머리는 자신이 드래곤이라고 말하는 남자의 것과
황제가 휘장을 거둔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천막같은 느낌으로, 천들이 가렸던 욕실의 천들이 사라져서,
「황제면서……」
을 감았다.
기분은 좋아. 확실히 말해서 이 모든 것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황제의 얼굴을
보면 두근거린다.
물건 취급인데도 기분은 좋았다. 아무도 나를 보살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호의가 눈물나게 좋다.
「합방식이 기다려지네. 너에게 작위를 주는 순간도. 이렇게 내일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처음
이야.」
심을 말로 표현한다. 잘나서 그런지, 여과없이 그대로 뱉어지는 말은……없는 양심을 찔러대고 있다.
도망가지 말까?
하루에도 수백번, 마음이 바뀐다. 도망가야 해. 그리고 도망가지 말까. 그냥 여기에 있을까. 어차피 성
았다.
일단, 해가 뜨면 ‘도망가지 말까.’라는 마음은 엷어졌다. 황제만 보이지 않으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지도를 외다시피 쳐다보고, 가능한 여행기 종류를 읽었다. 최신판으로 다른 나라는 어떤가- 그런것들
「키미누. 무슨 생각 하세요?」
「아, 다들 그래요?」
「응.」
「하긴, 그럴 만 하지요.」
라로가 웃으면서 스튜를 덜어먹었다. 나한테는 물 한모금이라도 마시면 득달같이 따라주는 시녀 누나들
이, 라로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더욱 이상해질 것 같아서, 지금은 참
「키미누는 무표정하거든요.」
「내가?」
「네.」
내 말에 그녀가 방긋 웃었다.
「다행이네요.」
아아, 너의 솔직함이 나를 갑자기 이상한 의문으로 빠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솔직함이란 좋은거지.
다.
「이제 곧 혼례식이네요.」
「황제 폐하는 무서운 분이지만, 그래도 아름답죠. 전 처음에 늑대같은 사람을 상상했었어요. 기혼에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어디서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사색이 되서 나에
보았다.
「키미누밖에 없어요.」
「아니요, 당연히 무서운 분이시죠. 저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계시는데요. 하지만 키미누는 마치…… 키
미누의 입에서
고, 씻겨주고, 아무렇지도
「키미누.」
한참 후에, 그녀가 나를 불렀다.
「응?」
「하렘의 공녀들이 밤마다 얼마나 마음 졸이는지 아세요? 황제 폐하가 오시면, 그들은 죽는 거니까. 늘
혹시 죽지 않을까 싶어서? - 그러나 내 예상은 틀렸다. 라로가 쓸쓸히 웃으며 이유를 알려주었다.
「어차피 황제폐하의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다가올 죽음이 두려운 것보다도, 하룻밤이 더 두근거리는거
주지 않으면……」
「공주 마마!」
「시녀장님!」
로한테는 가차 없으시다.
「뭘 하고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에.
「응.」
「왜 휴전하시려고요?」
「그래서, 휴전을……」
나서 나는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럼, 라로는……?」
「그게 누군데?」
「하렘에 있는……」
내 말에 황제가 물었다.
「……어머니와, 조금 닮았거든요.」
「아아……」
슬쩍 스치는 부위들이.
다.
「……가능하면, 돌려보내주세요.」
걸까. 이 남자에게
다음 날, 라로가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그녀도 황제를 좋아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날이 올 줄이야.」
어서 나는 웃고 있었다.
머니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라로.
나 명심해라. 너는 기혼을
짊어지고 있음을.
메테이스 ]
“어지간히 착한 오빠로군.”
라 치고.
줄리엣같구나.
줄리엣은 사랑을 위해서 했지만, 나는 벗어나기 위해서 쓰니 그다지 로맨틱하진 않네. 한 알을 먹고 반
그렇다면……어느쪽일까.
「폐하?」
「진찰해라.」
황제의 초조한 음성에 궁의가 「명을 받드옵니다.」라고 말하며 내 손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국무대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무슨 일이시죠?」
-기혼과 휴전이래요!
「거짓말.」
「키미누.」
다.
목소리는 차갑게 굳어있었고, 내 마음도 식어갔다. 맙소사, 사람이 죽었는데 도대체 무슨 사이냐고?
「신병(神病)입니다.」
때문에……」
겨우, 겨우 몇시간만에?
없었다.
다.
이렇게 갑자기 죽음이 다가오나? 그것이 공포스러웠다.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황제에게
매달렸다.
키스와 섹스. - 단순히 쾌락과 위로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생명줄이 된 기분이었다. 죽음이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는 정신없이 황제에게 매달렸고, 그는 다정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그는 몇 번이나 내게 속삭였다.
「괜찮아. 황궁 내는 괜찮으니까.」
당신이 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죽음에서 나를 구해 줄 수는 없어. 그런데도 황제는 힘주어 말했다.
「내가 지켜줄게.」
라로의 시체는 기혼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불쌍한 라로. 나라를 위해서 이 곳에 오더니, 이제 돌아가는
신병이 밖에서 돈다는 것을, 처음으로 손끝까지 절감하도록 깨달았다. 도망가는 것이 더욱 두려워졌다.
지켜준다는 것에 속하나?
무엇보다도- 내가 왜 지켜져야 하지? 나는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 스스로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나 나를 위해서 노력해주었다.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느낀다.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조금만 있으면 뒤집어질 것 같다.
하지만, 그 남자는 무서운 사람이야. 사람의 목숨이 사라졌는데도 무슨 사이냐고 추궁하고, 공녀나 적
무슨 소용이 있지? 어차피 황제는 아껴두었던 합방식까지 나한테 하겠다잖아. 밖도 위험해. 집으로 갈
방법은 없어. 도망쳤다 잡히면 죽을지도 몰라. 그럴바에는 차라리, 그래, 차라리……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황제가 좋아지지 않았다. 새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 애틋하게 여
약속할 수도 없었다.
은 천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서재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위까지 빽빽하게 책장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늘, 결론은 이렇게 끝났다. - 도망쳐야 해. 늘, 결론은 그런 것이었다. 황제의 품에서, 황제의 애정에
왜인지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보다, 어느새 도망쳐야 한다는 것이 더 강해졌다. 황제
내가 무서워하는 건……나도 황제를 좋아하게 될까봐, 그것이었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을 좋아할 수는 없어.
역시, 도망가야겠다.
「전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신전이 아직 황비가 월인으로서 이 세계에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병이 다시 찾아온
것이라고 하며, 앞으로 당분간은 신병의 걱정이 없지만- 그래도 황비가 적응을 할 재례가 필요하다고
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방금…… 뭐라고?
「그런 뜻이 아니고……」
「둘만 있겠다.」
「네가 필요했으니까.」
어놓고 아무런 여자 하나를 부유마법으로 내려보낼 생각이었을테지. 그리고 외척이 되서 정치를 흔들겠
다는 속셈이야. 하지만, 너는 여자가 아니었어. 너는, 신전이 준비한 사람일 리가 없었어. 그래서 나는
……」
황제가 눈을 감았다.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라고 했다고? 말해봐요, 잘나신 황제폐하.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라고, 아니면
도!」
「그래.」
「너는 유브라데 국민이 아니야. 너는, 월인도 아니지. 너는 자유민이다. 이세계에서 온 사람이지. 과
거에도 두어명 있었다는 기록을 봤어. 월인’은…… 평범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선조의 계책에 불과
했어. 그는 아주 평범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너무 평범했지. 아니 평범하다 못해, 형편없
었어. 천애고아였으니까. 그래서 내 선조는 그것을 역이용한거야. 그녀를 월인으로 포장한거지. 부유마
는 이야기야.」
하느님 맙소사.
것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너를 가지고 싶었어. 처음에는 그저 가지고 싶다, 정도였어. 그런데 가면갈
수록,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가져야만 하는 것으로 바뀌어가. 나에게 전혀 지배되야 할 이유
가 없는 너를.」
머리를 차갑게 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묵직한게 잡혔다. 황제가
「안돼, 보낼 수 없다.」
내 표정을 본 황제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져갔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싱긋 웃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얼
「나는 정말로 너를 온전하게 가지고 싶었어. 겁먹지 않은 너를, 나에게 늘 도도한 너를. 하지만, 마음
처럼 되지 않는군.」
전부, 전부……
눈 앞이 흐려진다.
되지 않아.
-화났나?
-알고 있었어요?!
-말했지 않나.
-방해할거라고.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저 황제 원래 저렇게 미친 놈이에요?!
-씨발, 진짜 미친 놈 아냐……
러서 내 앞에 멈추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추지 않는, 금을 녹인 색.
아, 생각할수록 빈정상한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널 보고 싶거든.
-전 별로 안 보고 싶어요!
그 말에 드래곤이 시무룩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켰다. 말이 심했나? 평소에 이러지 않는데 이번만은 제
-얼굴이 같아서?
-아, 역시?
아니고 연기였다.
일어날테다!
-어?
-거부라……
다.
또 보지.
오지 마!
「비 마마, 마마……」
「무슨 일이세요?」
내기는 했지만, 그들은 늘 조심했고, 나한테 이야기하고 후회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토록 조
심스러운 어투로……
「신성지로부터의 전언입니다.」
란 얼굴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시녀가 조금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수수한 얼굴이다. 이런 스파이짓을
가슴이 쿵쾅거렸다. 달도 돌아간다고? 달로? 달이란 말이야? 맙소사,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
황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이세계에서 온 사람이 있었다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다고는 말하지
돌아갈 수 있다고?
이 무력하지 않았다.
어쨌든 해보는 거다. 만약에 돌아갈 수 없는 거였다 하더라도,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만약 안되면
수도를 빠져나갈 수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기혼이고 밑으로 내려가면 펠하임. 기혼은 적대국이니 입
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키미누?」
심장이 발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진정해야 해. 황제에게 화를 내서는 안된다. 어찌되었든 신성지로
「예.」
「잘 있었나? 밥은 먹었어?」
「예.」
황제의 입술이 귓가를 맴돌았다. 아, 귀찮아. 스멀스멀 올라오는 쾌락도, 이 지분거리는 입술도 귀찮았
일단 대답은 해주었다. 그러자 황제가 나를 홱 돌렸다. 깜짝이야…… 놀라서 황제를 쳐다보는데, 황제가
이를 갈 듯이 말했다.
「넌 못 가.」
그거야 네 생각.
「안돼.」
든 할 수 있어.
「널 잡아먹을 거야.」
「신이, 널 데려갈거야.」
……뭐?
니까.
「폐하?」
「보내지 않아.」
난 갈건데.
그건 네 생각.
다.
한국으로.
「폐하?」
때문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황제는 나를 보내지 않기 위해서 상당히 애썼지만, 남자 황비를 탐탁치
웠지만 괜찮았다.
데.
다. 그래서 안 입겠다고 그랬었지. 그런데 지금은 이 스커트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스커트 안쪽
없이 꼈다.
「가자.」
「안녕하십니까.」
생각보다 성격이 쾌활한 타입인 비서관은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게 싹싹한 얼굴로
었고, 게다가 너무나 화려했다. 눈이 아플정도로 금색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커텐, 아름다운 가구까지.
「신성지에 같이 가십니다.」
황제면서 안 바빠? 같이 간다고? 맙소사- 도망칠 수가 없잖아. 순식간에 희망이 물거품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하실 것 까지는……」
「입구입니다.」
반대쪽으로 도망쳐야겠구나.
길거리를 쳐다보며 동정을 살피다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가 미소를 보내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
했던가.
을 좋아하면 되고.
이제는 바이바이.
4. 탈주 (1)
숲을 보고 나는 한숨을
목들이 즐비한 숲은
더니 다들 표정이
「들어라, 신관.」
리라.」
귀기 힘들었겠다.
「물론입니다, 폐하. 여섯시간의 제례가 끝나면, 비 마마께서는 곧 폐하의 곁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주머니속의 보석이 아프다. 다리를 찌르고 있나보다. 뾰족하게 가공되어 있었더랬지……아니, ‘가공’이라
는 황제에게 웃어주었다.
황제도 내게 웃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
고 나는 믿어.
신관이 나를 재촉했다.
안녕.
「마마, 말을 타실 수 있으신지요?」
「탈 수 있어요.」
그렇구나.
요령이 생겼다. 승마를 배워둔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조기교육에 감사할 뿐이다.
말에서 내리고 고삐를 쥐었다. 내가 하는 것을 보더니 신관이 먼저 길 안내를 했다. 아까부터 팔목에
자박자박, 풀을 밟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 그리고 물소리.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담쟁이덩쿨로 뒤덮인 곳은, 아름답지만 을씨년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
푸려졌다.
「들어가십시오.」
아보았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초라한 신관 하나가 말 두 마리를 데리고 허리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
다.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인사는 충분히 했지.
었다.
내가 뭐라고 입을 열기 전에 그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오십시오, 여행자여.」
‘황비’가 아니다. 갑작스럽게 실감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안도가 되었
「안녕하세요.」
자는 녹색이었다.
「돌아가고 싶어요.」
뺨에서 아주 희미한 냉기가 느껴졌다. 그것이 바닥에 닿았기 때문이라는 걸, 바닥을 보고 나서야 알았
다.
「시작해볼까요?」
남자의 말에 숨어있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뭐야, 왜 숨어있었던 거지? 하나같이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들은 지하실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와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사이, 아까 나를 데리고 왔던 신관은 여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설마.
오싹해졌다.
그들은 내 몸에 칼집을 내고, 베어나오는 피를 마셨다. 그것은 라브만이라는 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숨이 막혀, 토할 것 같다.
위해 애썼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하나는 분명히 안다. 이것은 모욕적인 일이다. 그들은 내게 수치
「아픔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분합니까?」
달로 돌려보내준다는 건 거짓말이었냐?
에 칼집을 내고 상처를
「자주 뵙고 싶군요.」
을 다 쏟아부은 것에 가까웠다.
미쳤다.
앞으로 한시간.
으면서 쓰러졌다.
「미안해요.」
멀리 황제의 군사들이 보였다. 분명, 친위대겠지. 그래도 황제가 반대쪽에 있고, 그들이 보호하는 것은
황비가 아니라 황제이기 때문에 반대쪽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근위대에서 황비를 모르는 자
는 많았다.
후드를 눌러 쓰고 나는 달렸다. 황제의 근위대가 가까워져 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서라.」
그 말에 말을 천천히 멈췄다.
「어디를 가는 거지?」
「마을에……」
「아아.」
어서 가자, 어서!
‘시오엔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보건대 아무래도 황제를 좋아하는 곳인가 보다. 여관도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다.
다’는 말도 흘려넣었다.
전야제가 이뤄지기로 되어있는 날 아침에는 ‘셴’이라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셴’으로
「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남자가 아내로 보이는 여자에게 물어보자 여자도 줄의 앞을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그 말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나왔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러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며 기
맥주를 내주었다.
「그러시오.」
그래서 나는 맥주를 들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감았다. 제발, 제발 탈색되라, 제발! 처음에
「잠깐, 머리색이……」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다.
데, 전야제도 못하고 있다고. 그러고보니 푸줏간 주인네 아들이요. 지금 감옥에 있는데 이번에 사면될
황비마마 시해범?
고? 내가?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지만, 그래도 좀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정한 사람도, 그렇게 나를 원한
절대로 그래서는 아니야.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감정과 시간의 공유. 그리고 다정함과 열정.
을 넘을 생각이었다.
「국경이 폐쇄되요?」
내 말에 보초가 그것도 몰랐냐는 얼굴로 「어느 나라 사람이야, 도대체!」라고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국경이 폐쇄되? 왜?
「왜요?」
「아, 아뇨……」
「그러고보니 생긴 게 특이하네.」
그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해서 나는 황급이 고개를 숙였다. 실수다, 티나면 안되는 거였는데.
「왜요?」
…」
그래도 ‘셴’의 보초는 글을 알던데. 그 쪽은 큰 도시라서 그런가? 어차피 국경도 폐쇄되었다고 하니,
가 안전할 것 같다.
「제가 써드릴까요?」
배웠으니까……이기는 한데. 뭐라고 둘러댈까 하다가 신관이 생각났다. 그래,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놈들
이니 글정도는 알겠지.
「사랑하는 아들 로즈에게.」
처럼 고개를 퍼뜩 돌렸다.
「날씨인사……라도 하시는게?」
썼다.
「읽어봐줘.」
내가 편지를 쓰는 동안 목마르면 안된다며 차까지 가져다 준 아저씨가 건너편에 앉아서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 대단하구만.」
「예?!」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네는 어차피 기혼으로 갈거잖아. 하지만 당장 국경은 열리지 않을걸세. 황비마마 시해범이 아직 잡
히지 않았다고 하지 않나.」
다들 상당히 간절한 얼굴이었다. 그들의 요지는 자신들의 아이를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글을 가르치는
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과연…… 과연!
「이게 뭐라고?」
「코끼리요!」
「이건?」
「사과요!」
린 것이다.
다.
「잘 먹을게요.」
「황제폐하의 최측근이죠.」
「비서관이 여자야?」
「그럴걸요.」
「그런 걸 다 우찌 알아?」
니는 그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들었어요.」
「그……렇죠, 뭐.」
「예……」
도피 생활은 이제 ‘생활’이 되어가면서 두렵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일주일에 한번씩 맥주로 머리를 감
자, 머리가 푸석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았다. 가면갈수록 나는 황제가 뿌리는 정보와 멀
어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리를 낮춰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데요?」
뿐이었다고
은 황비의
밖에 더 되.」
말인가.」
「하지만 말야, 나라도 황비자리는 싫을 것 같아. 뭐니뭐니해도 사내놈 첩인거 아닌가? 누가 좋겠어.
게다가 황제라면……」
「그나저나 사실일까.」
그 말에 다들 이상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눈짓을 교환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 눈짓을 주었
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도 안돼. 그는 내 피는 마신 적이 없다고.
은 아니었어.
날씨가 쌀쌀했다.
겨울의 길목에서, 북쪽은 좀 더 추웠다. 국경을 넘든 말든, 우선 파인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마……」
아, 진짜 왜들 이러세요……
「아니라니깐요.」
「그럼 와 옷 보따리를 가지고 가는 건데?」
까 했을 뿐이었는데.
맛있는 거에 약한 건 또 어찌 아시고……
노려보았다.
「우리집 야채도 공짜로 드렸잖아요, 선생님 드리라고 드렸더니. 어머, 진짜 저 팔목이 아주……」
론, 쌈질이라면지지 않겠지만……
「거기 서라.」
파인으로 말을 모는데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나인가 - 싶어서 놀라 뒤를 돌아보았더
아 우선 말을 멈췄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뭘까.
「그러세요.」
거기 사람은 아니지만.
「예, 그런데요?」
심장이 덜컹.
잘 해야 해. 잘 해야 한다, 김민후.
동자도 없었습니다.」
황제의 서재에서 닥치는 대로 읽은 여행기들에 의하면 파인은 수도 다음으로 화려한 도시였다. 그럴만
한 것이, 파인을 지나면 하루 밤낮을 달려야 하는 ‘신의 길’이 이어지고 그 다음은 윗대륙인 것이다.
큰 땅덩어리 사이를 연결하는 ‘신의 길’은 유일한 육로였고, 그래서 그 ‘길’바로 앞에 있는 파인이 성
다.
「이 곳은 멀쩡하잖아요.」
「그럼요?」
「도대체 어디 사람이야? 황제 폐하는 기혼의 모든 도시를 불태웠어요. 기혼같이 큰 나라도 그러니까
그래서 유난히 거지들이 많은 거구나. 성문 근처에는 수백명의 거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으로 들어오
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붙어서 돈을 달라고 했다. 누군가 한명이 돈을 주었더니 그 사람에게 수십명이
떼로 몰려드는 것을 보고 나는 주지 못했다.
몸은 칼집 투성이고, 나는 옷을 벗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주세요.」
「됐으니까 그냥 주세요.」
「아니, 그래도……」
인지를 몰라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글자를 좀 아는 사람들이 틀리게 읽기까지 해서 정보는
「젊은이, 저게 뭔 말이우?」
「정말이우?」
「일주일 뒤에, 국경이 열린다. 들어오는 자는 자유로우나, 나가는 자는 엄중한 검문을 거칠 것이다. -
라네요.」
마지막에 쓰여 있는 문장이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국경이 열린다는데, 그래도 마음이 무겁다. 이제까지의 상황으로 보건대
벌써 저녁이구나.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꽤 화려해보였다.
는 모양이지.
시고 있을 때였다.
「저 사람이오!」
아닌가.
설마……설마……!
빌어먹을.
나는 절망감으로 눈을 감았다.
「오랜만이야.」
「많이 말랐군.」
깜깜해졌다.
「머리는 왜 이래?」
했는데.
죽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빨리 잡힌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안 걸까.
지?
「윽……」
「어떻게 날 찾아냈죠?」
결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질문이 의외라는 듯이 황제가 웃음소리를 냈다.
-사실 못 찾아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는 했지만, 잡힐 것 같기는 했었다. 그래도 스스로는 완벽한 노력
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의 서재에서 지도를 뜯어가다니. 당분간 서재 출입금지야. 덕분에 이쪽도 엉망진창이야. 혼례식은
개판이 되고.」
황궁에서의 엄청난 크기만 보다가 드디어 방 다운 방에서 황제랑 둘이 있자니 뭔가……새삼스러운 생각들
이 들었다. 필살 한방으로 해치우면 되지 않을까?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수도로 한방- 될지도 몰라.
될지도 몰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보여야 했다.
「신관 놈들이로군.」
다.
다.
견딜 수가 없어.」
자가 나는 가여워졌다.
지. 하지만 나는 호기심으로 점철된 애정보다는, 오래가는 평온한 사랑을 바라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월인’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 뿐이야.
「이젠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요.」
「지켜준다고 약속했었는데……」
「미안해.」
이건 당신 탓이 아닌데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고, 자신의 그런 마
보낼 수 없는 것이다.
「키스해도 되?」
「……」
「키스해도 되?」
게 좀 마음이 아파서……
「하세요.」
은.
이 애매한 관계를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가 잡은 거다. 그러니까 그에게 문제가 있다! -라고만은
입술을 입술로 문지르던 황제는 천천히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혀를 내밀어서, 그는 온 입술을 맛본뒤
입술을 갈랐다. 치아와, 잇몸, 혀와 혀뿌리, 입천장과……볼 안쪽까지, 그는 남김없이 핥았다. 그것은
황제의 말에 가슴이 지끈거렸다. 황제씩이나 되서 이럴 이유가 없잖아. 당신은 황제고, 그리고 나는……
「말랐네요.」
「많이 말랐어요.」
겠다. 사랑은 아니고, 동정은 더더욱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동질감에 가까운. 아니, 동료애에 가까
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어떨까?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는 걸 알겠다. 그래서 이 남자는, ‘원하지 않은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연인도
「잘 먹고 잘 지냈었어요.」
그래보이네요.
거야.」
절대로 도망가지 못해. 이제 더 이상은. -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여행은 재미있었나?」
있었다.
그가 말했다.
「마마, 오랜만이옵니다.」
시녀장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까지 지으며 다가왔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얼떨떨할 지경이었
정이 있는가-싶었다.
시녀 누나들이 대거 바뀌어있다. 나한테 신성지에서의 전언을 알려주 시녀도 보이지 않았다. 황제가 바
5. 구속
머리가 어지럽다.
그동안 어떻게 되었던 것이었더라. 한참을 생각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는 것은…… 그래, 궁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황제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어디에 있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몸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아. 왜 이
「물을 마시겠나?」
「여기는……?」
내 목소리도 멀게 느껴졌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선이 맑아지지 않
아.
「그대의 방.」
내 방이라고? 아니, 여기는 내 방이 아니야. 내 방에는 이렇게 화려한 침대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도
없어. 아무도 없는 내 방에는 책상과 침대 그리고 옷장…… 플레이 스테이션, 그리고…… 그래, 나는 유브
라데에 있지. 한국이 아니라 유브라데에. 이 아름다운 사람은 황제다. 굉장히 무섭고, 가여운 그 남자.
물은 차가웠다. 갈증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머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계속 흔드는 것
같다.
「내게……무슨 짓을 한 거……에요?」
「미……쳤군요……」
황제가 작게 쿡쿡거렸다.
「어릴때부터 늘 들어왔지.」
것만 같아서 황제에게 매달리게 되는데, 잘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
에서 울리고 있다.
여기는 어디지?
앉고 있어.
문득, 린트인 사람들이 생각났다. 가지마요, 가지마요…… 그 얼굴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나 없으니 어떻
내가 누구더라……
하고, 달이 두개,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상한 점액질에 갇혀서 옴싹 달싹 못하고 있었
-괜찮나?
-안 괜찮아 보이는군.
지금의 당신은 아까의 당신보다는 나아보이는데. 아니, 내쪽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까보다는 정신이
덜 흐릿한 것 같거든.
-내 이름……발음, 되시네요……황제폐하?
자꾸 점액질이 나를 먹어가. 내 몸이 사라져 가. 이젠 끝……
-이런, 안되지.
았다. 정신은 여전히 희미하지만, 여전히 힘은 없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
오고 있었다.
-김민후, 정신 차려봐.
황제가 나를 흔들었다. 황제가 무척 크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보이는 황제의 머리카락은 샛노랗다.
이 사람은 골드 드래곤이다.
-용 형님.
들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이것도 재미있다. 팔까지 같이 붕붕붕 흔들자 더 재미
있었다.
고 지금 나는……나는……나는 누구더라?
-그냥 즐기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길고, 삶은 지루해. 고통도 재미가 될만큼, 지루한 시간은 의미없
이 흘러간다.
목소리는 진지했다.
-이제 내게 결정을 요구하는 시간이 온 건가? 아니, 아직은 아니라고 믿고 싶어. 그대를 어떻게 하지
아직 내가 모르는 감정.
아직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
-정신은 내가 잠가 두지.
이 말을 듣지 않아.
무도 없고, 날씨는 맑았다. 시야는 여전히 흐릿하고, 심장이 머리에서 울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눈
역겹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데 뭔가가 찰랑거려서 발목을 내려다보았더니, 사슬이 달려있었다. 사람의
……갑자기 떠올랐다.
영원한 잠을.
수 있었다.
반 나절의 잠……
일어날 때는 머리가 맑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황제고 뭐고 반드시 때려눕혀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
쥴리엣……
대해서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겠다. 둘 다 겪었기 때문이다.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정도로 힘들다.
정신은 말짱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런데, 이번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차륵, 하고 커텐치는 소리.
「신전쪽의 동향은?」
「조용합니다.」
「첩자의 보고는?」
‘무조건’이래…… 그거, 나야. 애꿎은 부하들만 죽겠구나. - 그렇게 생각한것과는 달리 비서관의 각오어
린 목소리가 들렸다.
「명을 받듭니다.」
「궁의.」
남은 진지한 목소리로 ‘명을 받듭니다’라고 하는데 이 황제는 듣지도 않는다. 그는 궁의를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혼수상태인가?」
「깨어날 가능성은?」
「명을 받듭니다.」
이 목소리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황제의 품이라는 건 알겠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황제의 체향이 느껴
「폐하-」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도 들렸다. 라프라 시녀장이다. 저 고상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흥분에 쩔
어있었다.
「궁의.」
「명을 받드옵니다.」
황제의 목소리가 무시무시하다. 황제면 황제답게 좀 다정하면 안되나. 본인은 어차피 우위에 서 있잖
아.
「복명하겠습니다.」
나에게 현상금이 걸렸다는 부분도 걸리지만……이 황제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사람을 날파리라고 표현
신전도 그렇고, 황제도 그렇고- 사람은 그저 굴러다니는 돌에 불과할 정도로 미천하게 생각하는군. 믿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알고 있어.」
것이 느껴졌다.
전쟁? 그는 전쟁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전쟁에 능하고 미쳐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뭐라고? 맙소사-
전쟁같은 사랑. - 그런 노래가 있었다. 유행가 중에서 그런 구절을 가진 노래가 대 히트를 했었지. 그
래서, 그 커플은 잘 되었던가? 유행가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다 그 노래는 상당히 오래전 것이었다. 기
「죽고 싶었단 말인가? 그 정도로 힘들었던가? 말도 안돼, 웃기지 마라. 그대는 죽지 못해. 내게 와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문제는 아니지.
「장례식을 준비할까요?」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성분일까.
리가 무섭기는 무서운가보다.
하지만 궁의, 좀 이상한 사람 맞네. 왜 여자 운운이냐. 맞아도 싸지. 그리고 비서관의 미모는 착하기
지만.
다.」
궁의가 서둘러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죽어가는(것으로 알려져 있는) 내
「시간 있어?」
「없습니다.」
「바쁩니다.」
「모레는?」
「바쁩니다.」
이쯤에서 멈춰. 너무 비참하지 않냐고. 그러나 국무대신은 비참하지 않은가보다. 지단을 닮았지만, 지
「글피는?」
「대신님.」
차갑지는 않았다. 황제의 목소리는 주로 노여움으로 차가웠다. 그러나 비서관의 목소리는 무관심으로 냉
면……
「……나는 너 포기 못해.」
「부추기셨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비서관의 예리한 지적, 그리고 국무대신은 침묵했다. 뭐야, 댁이 부추긴거야? 일어나기만 해봐라, 댁하
고는 이제 상대 안할거야.
「폐하께는 이 분이 필요해.」
주였지. 잘해오셨어. 다 끝났다고 생각되었던 전쟁의 판도를 뒤집고, 유브라데의 영광을 마련하셨어.
그런데 이제는 전쟁이 끝날 때야. 말해봐, 나를 비난하는 데이비드 비서관. 폐하께서는 전쟁광이시다.
우리는 무슨 수로 그 분의 관심을 전쟁에서 국내로 돌려야 하지? 기혼이 문제가 아냐. 영토의 확장이
이상은 전쟁을 할 수가 없어. 물자도 없고, 사람들도 지쳤다고. 이제 이 땅에서 살아나가야 할 준비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글피 다음 날도 바빠?」
「평생 바쁩니다!」
정말 끈질기다. 방에 남아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목소리가 작아진 국무대신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
거렸다.
「되게 튕기네.」
이 떠져서 정말 다행이다.
것이길 바랄 뿐이다.
우선 자자.
이라는 것을 알았다.
「폐하?」
미소를 지었다.
「응.」
「뭐하시는 겁니까?」
「하니안의 효과입니까?」
「어쩌다보니……」
「폐하는 좋으셨나보죠?」
독에도? 나도 마약에는 꽤 적응이 되어있다고 자신하는데. 사실은 적응이 되어있는게 아니라, 몸에서
안 받는 거지만.
「속상하다는 얼굴.」
「왜 그랬어요?」
「하늘에서 떨어져서?」
「기분 좋아……」
「이번만은 못 넘어가세요.」
를 그런 눈으로 보시죠.
저희가 마마를 구속하고, 마마를 감시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저희도 사람이에요!
……네?
을 흘리면서도 할 말은
죠. 저희가 부담일
하나라도 물어보셨어요?
일 싼 거나 가져가시고,
그런 거 보고 안한다고요.
어쩌면, 어쩌면 나이도 어리신 분이 이렇게……이렇게……」
「시녀장님.」
나를 노려보았다.
으로 국경까지 가시다니,
마지막의 고함소리는 너무 컸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고상한 눈에서 흘려내리
는 눈물이 따듯하게
져내렸다.
녀장의 놀란 얼굴이었다.
신 탓입니다. 그리고
지 사이의 이동에서
수도 있고. 시녀장이
찌푸리며 무슨 뜻이냐는
애 태웠을 것이다.
리고 기분 나쁘지 않아요
황제의 표정이 살벌하다. 그는 라프라 시녀장이 나에게 뭔가 한게 아닐까 의심하는 눈치였다. 곤란해,
곤란해. 나는 시녀장에게서
있다가 다들 나가자
「시녀장이랑 무슨 말 한거야?」
「있어요, 그런게.」
「시녀장이 너의 적이야?」
이 황제는 확실히 이상한 이분법을 가지고 있다. 적, 아니면 아군. 그에게는 물리칠 것과 지킬 것밖에
없다. 그는 이름만으로
「아니요.」
락 먹으며 다시 말했다.
「그래.」
나는 무책임해서겠지.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황제가 갑자기 물어서 당황했다. ……그럼, 사람에게 마약을 써서 그 사람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든게 최
저선이 아니면 뭐가
「그렇죠.」
「힘들군.」
「네?」
「그래도 해볼게. 나는 너에게 최저선을 넘겨서 행동하고 싶지는 않아. 네가 그렇게 느끼게 하고 싶지
「하지만 나는……」
나는?
「하명을 기다립니다.」
「잘 돌봐.」
귀여워?
끔 가슴이 두근거렸었지.
……지금처럼.
곤란한데.
인사도 없었지.
「시녀장님.」
「저……저도 남자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뭐야, 그게……
「저는 모실 따름입니다. 제게는 비 마마를 진단하거나 비 마마를 판단할 능력도 권리도 없사옵니다.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지 마세요.」
도 마세요.」
잠깐, 닿았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때때로 감정은 빛의 속도로 공간을 날라다니는 것
같아. 가끔 부딪치면 감동이 되지만, 결국은 다른 속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감동에 씁쓸해하면 안된다.
고 싶었던 거야? 나도 알고 있다. 부모도 사람이고, 부모의 인생을 자식이 간섭할 수는 없다는 것을.
부모를 욕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야. 나는 지금 지나치게 외
롭단 말이야.
「나가주세요.」
「몸은 좀 어떠하신지요?」
아름다운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그러나 모든 ‘과한 것’은 과해서 좋지 않고, 사실 남자들은 아
「이런- 들으셨습니까?」
「들린거죠.」
「듣긴 했는데.」
브라데의 전 국민수는
마치 자아를 가진 것처럼
마을에 나타나 모든 것을 죽음으로 휘감습니다. 그 곳에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만
이 죽을 뿐이죠. 본래
병은 틀립니다.
신병이 어느 마을에 상륙하면, 그 마을은 끝장입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새도, 나무도 그
대로입니다. 쥐도 개도
권이나 그 사람의 삶을
말투가 차가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나 하나를 망가뜨려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그는 할 것이다.
‘5,000,000 명?’
양은 필요한 곳에
전혀.
「모르겠는데요.」
이 곳에 계셔주셔야겠다는 말입니다.」
「대신님!」
「아시겠습니까?」
지 않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이래도 되는걸까. 이건 정말로 ‘배신’에 걸맞는
「알겠어요. ……그러나 변화가 안 보이면 어쩌실래요? 일년이 지나도, 이년이 지나도 변화가 안 보이면?
저보러 평생
여기서 입닥치고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치라고 할 셈이라면 포기하는게 좋을거에요.」
채 말했다.
「그 이후에는?」
어. 그가 잔인한 것은
지 않았고, 누구도 내
사람이야. ……싫어할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어.
제 운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대신님!!」
황비로서 최선을
아니라 삶을
3 년.
「맹세해주십시오.」
국무대신이 말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삼년. 한번 더 버텨보지, 뭐.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야, 얼마든
「맹세합니다.」
「신성한 계약이, ‘레’와 ‘데’의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양이여, 우리를 지켜보소서. 달이여,
우리를 단죄하소서.
섭다, 빌어먹을,
「피는 섞였습니다. 상처는 이어집니다. 모든 것은, 계약대로 행해질 것입니다. 태양이여, 이 모든일에
순조로움을 부여하소서
에서 퍼져나가 서로의
씀을 들어드리지
‘개인적인 시간’?
「그러세요.」
……갇.
「바쁩니다.」
다. 그는 천막을 나가서,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심장이 멈춥니다. 국무대신은 비 마마와 자신의 동맥을 연결하여 계약을 부여
했으니, 제한은
을 이행할것입니다.
그제야 알았다.
「꼭 말해야 합니까?」
다.
「신성지 중심부에 건물이 있었어요. 그 건물을 들어가자- 남자가 한면 있었고요. 그 남자가 라브만인
-그 당시에도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때를 떠올리면 모욕과 수치를 느꼈다. 그런데…
「피를 먹었어요.」
술을 깨물었다.
「데이비드, 이빨 상해.」
「계약인가.」
황제는 한숨을 뱉으며 시녀장에게 상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빠르고 다정하게 내 손목에 붕대를 감아
주었다.
하게 물어서 당황했다. 그러나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목에 붕대를 매고, 담담히 물었다.
「아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지 보이지 않았다.
「반대급부는?」
「달로의 귀환입니다.」
「폐, 폐……하?」
「밤에 보지.」
그 목소리는 엄중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였다. 국무대신은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점심 같이 할래?」
라고 물었다.
「바쁩니다.」
내가 3 년간은 황비로서 의무를 다하겠다고 하자, 황제는 내 숙소를 처음에 있었던 방으로 옮겨주었다.
「황제 폐하의 방은, 시종들이 늘 상주하고 있습니다. 암살을 피하기 위함입니다만, 아마도 황제 폐하
왜?
「이해가 아니 가십니까?」
닌지 모르겠다.
생각. 그 다음은 왜 안도감이 드는 거냐 하는 의문. 그리고 나서는 금발과 금안과 잔인한건지 상냥한
온실이 좋았지. 별이 사방에서 보였으니까. 누구더라, 칸트였나.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쳐다보면
황비라니 가당치도 않아. 웃기지도 않아. 하지만, 뭐 어때-라는 기분이 있다. 내가 황비라고 해서, 내
이 몸이 익숙해지다니.
「왜 한숨을 쉬지?」
「예?」
「왜 한숨을 쉬냐고.」
「한심해서요.」
쳤다.
「정말로요?」
「자신이 늘 자랑스러우세요?」
「아니.」
「나는 의무를 다할 뿐이야. 그건 당연한 것이고, 자랑스러워할 이유도 한심해할 이유도 없어.」
「아픈가?」
황제가 물었다.
「아니요.」
「아팠나?」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황제폐하.」
「시오엔이라고 불러.」
실은, 문제가 좀 있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는데 있다는 걸 자각했다. 나는 칼이 무서웠다. 국무대신
「약속하겠어.」
황제가 내 이마에 입술을 대었다. 건조한 입술의 느낌이 이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황제가 입술을 떼
순간, 끌리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이 남자는 나를 좋아해. 그 이유가 뭐든, 나에게 굉장히 충실
해. 내가 아프다고 난리치면 그는 신성지로 들이닥쳐서 그 빌어먹을 놈들을 다 죽여버릴지도 몰라. 그
가능성만으로도 잠시 심장이 뛰었다. 그러고 싶었다. 사람의 간절한 면을 후벼서 유인하고, 불로장생
따위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람의 피를 먹은 놈들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나는, 사슴피
죽여버리고 싶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모르겠어. 왜 죽이면 안되지? 그들은 내
「됐어요.」
그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됐다고?」
「그대가?」
서 나에게 묻고 있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 자신도 사실 의심된다. 당장 황궁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몸인데, 무슨. 그러나 황
제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요?」
「응.」
피식 웃었다.
「너는 내 손에서 벗어났던 사람이야. 그 정도의 능력이면 무엇이든 못 해내겠어. ……신성지는 너의 적
인가?」
「네.」
좀 해보자고.
6. 필요한 힘 (1)
는 부분이
렇지만……
「지금이 조실 때입니까아아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브라데의 이천년 역사를 나보고 하루만에 외우라니. 자랑은 아니지만 이번 수능에서 국사가 최악이었
고, 게다가 황후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자신이 월인이라는 점을 자각해주세
요.」
있었다.
왕비는 한명뿐이지 않나. 사실, 제국과 왕국의 차이라고는 대빵이 황제와 왕의 차이라는 것 밖에 모르
「폐하께 내색 안 하실거죠?」
얼굴을 보면서 더욱 몸이 달아오른 듯, 비서관이 달콤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고, 미인도 옆에 있군.
진짜 천국이네.
생각 좀 해보고요.
「살라메이가 누군데요?」
‘살라메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시녀장과 비서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무래도 금기시 되는 이름인
가보다.
뭐야, 황제의 첫사랑? 그렇게 생각하고 갑자기 가슴이 지끈거려서 놀랐다. 아니, 그 남자 나이가 스물
건가?
면 벌써 사단이 났지요.」
「좀 집착하셨더라면 좋았을텐데……」
또 다른 시녀누나가 말참견을 하다, 이번에는 비서관의 무시무시한 눈길을 받고 재빨리 고개를 떨구었
다.
황궁의 그녀의 게스트룸에서 나왔기 때문인데. 그리고 나서는 황제와 그녀의 딸과 스캔들이 터졌다.
사람들의 모의에 주동자는 아니지만, 아주 적극적인 가문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들의 처형은 황제가 직
「저, 저 동기에요!」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마치 천사같으셨죠……」
이 동시에 같은 말을 뱉었다.
「외모는.」
그럼 그렇지.
나부끼는 금발, 옅은 황금색 눈동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같은 얼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
나?
「마르가리타라는 분이 뭘 어쨌는데요?」
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황제를 정-말로 사랑했다. 미친듯한 사랑이었고, 황제가 전쟁터에 출
진할 때마다 세상이 끝난것처럼 굴었다고 한다. 따라가겠다고 난리친 적도 있었다. 황제의 그 성질머리
말을 못 잇는 내게 시녀장이 말해주었다.
그래서 두 번째 애인인 시녀 마르가리타는 하렘에 갇혔다. 황제는 확실히 애인에게 무르다. 그녀가 자
둬둘 뿐이었다.
국가 기밀을 기혼에 팔아먹다 걸렸고, 그녀도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지만 추방으로 끝났다. 그녀를
그리고 네 번째, 살라메이 그리안. 그녀는 황제가 전쟁터에 나갈때마다 황제가 죽을까 두려워하다 못해
결국 황제의 연애사는 전부, ‘차였다’로 통일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차인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말로
누가 듣고 싶댔냐.
기를 해주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내게 무엇을 했느냐고
의 서재에 들어가도
좋다고 했다.
결혼한 사이?
정혼한 사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신은 마음을 주지도 않으면서 타인의 마음만 드러내라니, 그건 비열하
다.
그는 열 여덟살에 처음 연애를 했다. 십년간 네명의 여인. 그렇게 많다고도, 그렇게 적다고도 할 수 없
이상하단 말이야. 사랑은 대화와 비슷한 것 아닌가? 인간의 감정이란 결국 자신 혼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 흘러가는 것이잖아. 누군가와 부딪치고, 또 누군가와 교류하고. 대화처럼, 상황처럼,
감정도 그렇게 흘러가게 될터인데, 더욱이 ‘상대’가 반드시 필요한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면 반드시 상
대와 교류하게 될텐데.
살짝 당황했다.
「누구면요.」
잘해주니까. 하지만
정하게 미소지었다.
반역을 해도, 자신을 팔아 뇌물을 먹어도, 자신을 죽이려해도, 부정을 해도 봐주는 게 겨우 ‘잘해주는
편’이야?
「왜?」
왜라니…… ?
당연한거잖아. 왜라니. 당신은 지금 부조리한 관계를 이어간거라고. 왜라니, 당신이 잘해준 사람들이,
당신의 연인이란
「왜 그런 것이 궁금하지?」
왜 그런 것이 궁금하지?
……그러게, 나는 왜 이런 것이 궁금하지?
었다.
「하늘에서 떨어져서.」
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나를 사람처럼 여겨. 너와 있는 나는 황제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야. 너는 나를 그대로 판단
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지. 그대를 구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어. 황제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앞에서 떨어져 내가
야.」
「너는 나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그래서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최저선을 지키라고 말하지. 내게서 도망
치려 하고, 나를 비난하는
「그래서, 너를 사랑해.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야. 수많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입으로 정확하게 전
황제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남겨둔……사람.
‘없다’고 대답하기에는 너무 슬퍼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아서. 나
「짝사랑이라는 뜻이군.」
그 순간,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짝사랑이다. 도무지 핑계를 붙여볼 구석이 없는 완전한 짝사랑
알아, 라고 하고 싶지만.
짝사랑이라는 것은 또 사실이어서.
황비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계약한 것을 후회한다. 아침부터 일어나 이런저런 공부를 했고, 덕분에 지금
다.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여자라면 당연히 안되
지만, 상대가 황제라면 뭐- 내 몸을 어떻게 하든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하면 꽤 낭만적인 것
가 살인적인 것이다.
덕분에 요즘은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다. 외우라면 외우고, 걸으라면 걷는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는 지
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도 어딘가 사납다. 차라리 주먹으로 치고 박는 쪽이 낫지, 여자들은 눈으로 광
선을 내뿜는 것 같다.
리 싫어하시더니,
이제 비의 책봉을 받으신다고요?」
뭐가 별 수가 없냐.
아니, 대놓고 해도 문제가 있다. 여자를 팰 수는 없지만, 여자와 말싸움으로 이길 수도 없다. 여자들과
고?
「괴물이라는게……」
트롤?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게 뭔지는 알 것 같다. 아니, 잠깐 뭐였지? 머릿속을 뒤져봐도
나? 털이 있었나, 없었나?
「어디에 있는데요?」
공포. 그리고 무겁게 짓눌리는 책임감……같은 것. ‘구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 어둡고 슬
프고 차가운 감각들뿐이다.
님들도 전부 죽었겠지.
당연히 흘려 들으려고 하는데, 그러기에는 꽤나 심각한 얼굴들이 많았다. 하루 종일, 수많은 스케쥴에
「그거 정말이에요?」
「뭐가요?」
하렘의 중심부에?
내 말에 시녀장이 미소지었다.
「위험하지요.」
황궁에는 하렘이 있다. 황궁의 중심부에는 황제의 사궁이 있고 그 오른쪽 위쪽에 하렘이 있다. 하렘은
거대한 정원이고, 그 안에는 ‘황제의 여자들’의 숙소가 포진되어 있다. 그런데, 이 하렘의 특징은 무작
정 걸으면 반드시 중심부로 통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숙소에는 다다를 수 없고, 중심부에
서 괴물이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의 여자고, 여기는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고. ‘감금’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흥미 본위로 들은 이야기는 상당한 찝찝함을 남겼다. 여자들은 어쨌든 납치당한 상태가 아니다. 하지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단지 나가고 싶어서, 단지 만나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로 하렘에 들어온 사람들을 그쪽으로 내 몬다.
물론 그것은 전부 안되는 일이었어. 하지만 그런걸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계한 자와,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본 적이 없으세요?」
「위험하지 않나요?」
내 말에 황제가 피식 웃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니라?」
황제는 여전히 다정한 얼굴로 물어보고 있지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그렇다, 내게는
는 거지?
트롤은 갈색의 몸을 가지고 있다. 곰보다도 크고, 늑대보다 사나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앞발로
도 트롤을 이길 수 없다.
-뭐하나, 그대?
-분부대로.
트롤이 사라져간다. 하지만 트롤이 실재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게 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가.
-그대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그대? 민후?
트롤? 나를 구한 남자?
그래, ‘심장’이다. 그것이 살인자의 심장이라 할지라도, 괴물의 심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토끼의 심
-사람의……
-대답하세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전 이미 충분히 컸어요.
-그러시겠지.
-아니요.
-안 연약해요!
그의 차가운 말이 귀로 흘러들어왔다.
-너는 단 한번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나? 다시 묻지. 너에게 힘이 있다면 상대를 죽일
수 있다. 그렇다면 넌 누군가 한명쯤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대는 가학심을 가져 본 일이 없
을 생각하며 그대는 참는다. 하지만, 그 규칙이 무너져있다면? 네가 누구를 죽여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해도 이건 틀려요. 우리나
라에도 사형이 있지만, 가능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죽인다고요. 약물이라던가, 교사형이라던가
……
-또 거부인가?
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심장을 터트린다. - 그것은 즉사이고, 상대는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심장을 잡은 이에게,
「예산 건입니다.」
「비 마마!」
자, 잠깐.
나 방금 무슨 생각을?!
「비, 마마……!!」
「아, 그러니까요, 저기…… 일단 지금은 휴전한 상태이니, 군비보다는 다른 쪽으로 금액을 돌려야……」
황제는 내게 말했었다. ‘너를 전쟁터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 휴전해야 겠다’고.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
구나.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였던 거구나. 나는 어떻게 말했지? 되는대로 지껄일 뿐이었는데.
마음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국무대신의 그 절절한 이야기도, 마음속을 녹이는 듯 했지만 결국 잔상을
「마마……」
아.
심이 가지 않아.
머리가 복잡하다. 아픈 것 같기도 해. 예산안. 트롤. 황제. 국무대신. 계약. 드래곤. 심장이 터져서……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복잡해. 실타래의 색이 여러 가지로 마구 엉켜있다.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의 비를 그만 괴롭히도록.」
황제가 왔다.
황제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
「나의 비는 사람이야. 키미누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황제가 이렇게 짜증내는 것을 처음 본다. 그는 진심으로 불쾌한 얼굴을 하고, 나를 제외한 모두를 노려
다. 더욱이 황후도 단
「한 분은 계시잖아요.」
역시 국무대신은 강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릿하고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그 말투는 더
욱더 ‘고의적’으로 보였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황제는 한마디로 일축하고 국무대신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황제
를 쳐다보았다.
처럼 보였다.
「크리스티.」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저는 단지 승리를 위해서 폐하를 보필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제게 약속을
명령했다.
가는 건 우리가 해야 해.」
「화난 거 맞잖아요.」
였을까? 단순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고 보면, 그 아이는 어디 있
「화난 거 아니야.」
「속상해?」
았다.
도였다.
「키미누?」
를 안아 올렸다.
는 시녀누나에게 눈짓을 했고, 시녀누나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더
「왜 그래요?」
「취향이야?」
「뭐가요?」
잘 못 본 것일지도.
「왜, 그런 얼굴이세요?」
「내 얼굴이 어떤데.」
「사람 하나 죽일 얼굴이요.」
기가 안 좋다.
어느 시녀?
았다. 나 때문에 질투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괜찮은 사람이고, 다른 이 에게는 어떻든 여하간 나에게
어서 죄책감에 휩싸였다.
「다시 말해.」
무엇을?
「시오엔이라고 다시 해봐.」
「……시오엔.」
었을지도 모른다.
「전하, 황비마마십니다.」
다.
아이는 황제를 닮지 않았다. 금발도 금안도 없었다. 더욱이 황제의 미모도, 황제의 카리스마도 없었
다.
당황했다. 황제의 아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당연하게 ‘금발과 금안, 아름다운 아이’를
「비 마마, 예의를!」
나도 모르게 비틀린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사람으로 봐줘서 좋다’라는 요지로 줄일 수 있었던 시오
모르겠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인 것으로 모자라 어머니의 집안 전부를 멸했다. 나라면 바로 삐뚤어졌을 텐데,
고?!」
「전하-!」
반대로 나의 시녀 누나들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엉뚱한 곳에서 날아온 돌이 아프기는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이는 정당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
그렇기는 한데……
「황태자 폐하.」
혹한 목소리로 비웃었다.
「-전하다. 달에서는 예의범절도 안 가르치는 건가? 평민도 그 정도는 알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도 그 남창을 원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은 알 텐데, 아이는 전적으
「전하, 죄송합니다!」
「아, 괜찮아요.」
보자.
「으윽……」
「너 같은 건……」
을 깨물어야 했다.
「나 같은 건, 뭐?」
「아니요, 폐하.」
「그럼 어디 아파?」
「아니요.」
결국 누구나 눈치보고, 화장실가고, 소심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
다.
「배고파?」
「아니요.」
「안 자? 너 잘 시간 지났어.」
「안 졸린데요? 먼저 주무세요.」
라고 생각하고 넘겨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많은 부분들에서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린
「시오엔?」
「-화난 건 아니군.」
라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서관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볼 서류가 너무 많아서 비
는 비서관은 꽤 귀여웠다.
겨울에도 아름답기만 하다. 얼어붙은 호수도 눈으로 뒤덮인 나무들도 아름다운 곳. - 하지만 이 미로의
트롤.
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차가운 공기를 느끼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을 때였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스
순간이었다.
그녀가 누구더라. 기억이 애매했다. 하지만 분명히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생각하는데 그녀
「괴물이에요!」
‘나는……’
새어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아버지도 생각났다.
‘나는……’
라로가 생각났다.
황제의 아이는 이제
겨우 여섯 살에 불과해. 도와야 한다. 그리고 달려갔을 때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아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갈색머리의 황태자였다. 그 옆에는 시녀나 시종들과는
달리 아이를 구하려고
했는지, 소년이 엎어진 채로 기어가고 있었다. 괴물을 향해서, 황태자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달렸다.
아이는 살려야 해. 아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아이를 살려야 했다. 움켜쥐고 들어올리던 아이를 놓
치고 트롤이 한 발짝 물러났다.
엄청난 크기였다. 빌어먹을, 이층높이는 되는 괴물이 서 있었다. 허공에 들리려다가 떨어진 황태자가
굴렀다.
「가!」
물이 날 것 같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지켜야 해.
았다. 너무 느리다.
안돼.
너무 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거야.
도저히 이길 수 없어!
트롤이 다가온다. 도망쳐야 하는 걸까? 아니면 맞서 싸워야 하는 걸까? 저 높이의 트롤과 어떻게 싸울
트롤이 고개를 갸우뚱 움직이더니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고릴라 같기도 하고, 오랑우탄 같기도 한 모습
에 소름이 끼쳤다.
다.
내가 움직이는 경로대로 트롤이 넝쿨들을 부서트린다. 이대로라면 이 아름다운 하렘의 정원은 벌판이 될
어진 것 같았다. 눈을 질끈 감는 순간이었다.
굴렀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물체가 옆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굉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나도 모르
게 나를 안은 사람에게 파고들었다.
「괜찮아?」
나를 안고 있는 사람도 떨리고 있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시오엔
「괜찮아요.」
가?」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지독한 악몽을 꿈꿨다. 신관들이 내 몸을 가늘고 예리한 칼들로 가지고 놀고, 결
정타로 트롤이 나를
새벽, 나는 시오엔이 깨워주지 않고도 일어났다. 나는 그의 옆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욕실에는 면도
강해질 거야.
내가 황비가 아니었다면? 황제가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살았을까. 살 수 있었을까!
부숴버렸을 것이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 해.
7. 지켜줘 (1)
「푸하하하하하하!」
일어나서 나를 보자마자 시오엔은 침대를 구르며 웃어대었다. 그가 얼마나 웃어대는지 처음에는 얄밉다
에 일정이 늦어져 들어왔던 비서관은 거의 쓰러질 뻔 했고, 나프라 시녀장은 무시무시한 눈길을 보내고
뺨을 비볐다.
「깜찍이요?」
「응, 깜찍.」
「정말 귀엽군. 귀여워. 그대는 정말- 타인을 즐거워지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어.」
그리고 그가 간신히 걸어 나가자 귀신보다 무서운 얼굴의 시녀장이 회심의 눈빛을 번뜩였다.
「됐으니까, 먼저 웃으세요.」
「우하하하하하하하하」
「시오엔도 웃어요.」
「그대는 정말 신선해.」
윽. 그거 땜통이라는 이야기잖아.
무언가가 맨살에 닿는다. 그것이 황제의 입술이라는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살한
어머니가 대륙 최고의
스톱!
있다.
「키미누?」
「민후에요.」
금 깨닫고 있는 거지?
「미누.」
「미누……?」
황제의 손이 내 얼굴을 끌어당겨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삼년 뒤에는 돌아가야 한다. 아무도 기다려주
지.
「풀네임인가.」
못하게 되어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황제의 입술이 보였다. 아까 내 머리에 닿았던, 수없이 키스했던,
그 아름다운 입술.
손이 눈이 뜨였다.
혀가 핥아지면서, 눈을 마주쳤다.
다. 황제의 손이 올라와 내 눈을 감겼다. 어둠 속에서 황제의 입술과, 혀와, 숨소리에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
「미누.」
「미누.」
「망설이지 마라.」
는 거니까.」
거야?
「시오엔, 저는요」
뭔가 말해야 해.
쾌락에 흔들리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마음에 흔들렸다. 차라리 쾌락을 줘. 엉망진창으로 흔들어줘.
으니까, 차라리……
마치 그는 나를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고 다정한 목소리.
안돼, 그만 떠올리자.
주술처럼, 못 박히는 듯 했다. 키스하는 듯 했고, 그에게 분신을 빨리는 것 같기도 했고, 그의 성기를
핥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안돼, 그만 떠올리자구.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흔드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았다. 뒤에 있는 그 사람의 몸이 나체라는 것
「시오엔.」
「응?」
「……뭐?」
「어제, 싫었어?」
「아니……」
「다정하네.」
내 말에 황제가 눈을 떴다.
「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제의 입으로 듣자니 뭔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
말든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거니까.
오랜만의 운동은 숨이 찼다. ‘황비의 기품을 생각하라’고 시녀장이 뭐라 그래도 꼭 스트레칭과 윗몸일
욱 힘들었다.
「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운동을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검도, 유도, 태권도 할 것 없이 전부 초단을
땄고, 어릴 때부터 이런
가 여섯 살짜리에게
나뿐만 아니라 ‘티엔’이라고 불리는 황태자의 비서관이 될 소년도, 무술 선생도, 하다못해 황태자의 시
종들도 어이가 없는
아, 귀찮아.
일단 오늘치의 수련은 끝났기에 나를 선생에게 목례를 해보이고 등을 돌렸다. 뒤에서 황태자가 난리를
이고, 유일한 괴물은 황제가 죽여 버렸다. 그러니까 이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도, 강해지고 싶다. 하
「너 말이야!」
적이다.
「안 그럴게.」
어디가 아픈 걸까?
시녀 누나들에게 들은 바로는, 황제는 황태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황태자의 생일이 되어도, 황태
자가 감기가 폐렴으로 발전해 생사가 흔들려도, 그는 보고를 한 신하에게 짜증을 내었다고 할 정도이
「어디 아파?」
「아바마마는……」
「건강하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하고 같이 수업을 받겠다고 한 건가?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서? 아버
「어, 건강하셔.」
다.
고.」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모두 핥고 그의 타액을 먹고 그의 혀를 빨았다.
황제가 내 몸을 힘주어 안았다. 더욱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허리가 부러져도 좋으니까, 이것으로는 만
족할 수 없다.
「더……」
「침대까지는 가만히.」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항의하려고 했는데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황제의 손이 애널에 닿았다. 이상했
「핥아 버릴 거야.」
지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더러울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 사라졌다. 황제의 유려한 목선을 혀
「상관없어요.」
황제가 으르렁거렸다.
「핥는 걸로 안 끝나.」
않다.
「상관없다고요.」
「무슨 일이지?」
황제가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목소리에서는 욕정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한 기운
만이 느껴졌다.
「예?」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다정한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황제가 다정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겠지만, 내게는 상냥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부드러워지고 있다. 발기한 채로도 그는
「무슨 일이야?」
「아이가 싫어요?」
내 대답이 늦어져서 중간에 침묵의 텀이 생긴 동안 황제는 입술로 나를 더듬고 있었다. 황제의 입술이
「아이가 싫냐고요.」
「그럼요?」
시녀장도 비서관도 하도 엄포를 놔서 그가 난리를 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황제는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관심 없어.」
황제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심장이 지끈거렸다. 그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자신의 아이인데도?」
황태자의 아명을 언급하는 황제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가 목으로 입술을 내렸다.
「아……무짓도.」
「나요……」
아마도 내가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황제에게 불쌍해 보이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
혹시라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가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심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잔혹한 황제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
도 듣고 싶지 않았다.
황제의 입술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 기대감에 하반신을 쳐들었다. 부끄럽지 않다. 머릿속이 자꾸 녹아
「응……」
굽힐 수조차 없었다.
까.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 사정할 때까지는 제대로 된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황제가 그렇게 두지도
조금만 더……!
하는 옷을 그는 손쉽게 벗어 던졌다.
「내 이름을 불러봐.」
「왜요?」
황제가 눈을 내리깔 때면, 긴 속눈썹 때문에 그림자가 진다. 애처로운 것 같기도 하고 잔인한 것 같기
「이게 무슨 스트립이에요.」
내 말에 황제가 웃었다.
을 마주친 채로 옷을 벗어
던지고 나에게 키스했다. 잠시 저 입술에 내 물건이 들어갔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찝찝하지는
않았다.
「누가 너를 키운 건데?」
「아버지요……」
「흐음.」
시오엔의 입술이 내 유두를 물고, 빨아들인다. 그의 이빨이 한 번 더 물더니 입술이 움직였다. 유두의
「아파?」
「핥아도 된다니까요.」
었다. 황제의 입술이 엉덩이에서 점점 중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할짝, 하고 애널이 핥아졌다.
「허리가 떨려.」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온다. 아프지는 않았다. 낯선 이물감이 두렵지도 않았다. ‘다음 생에도 이어지기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전후로 움직이는 그 손가락에 맞춰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조
까.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순간, 모든 쾌감이 사라졌다. 엎드린 채로 나를 고개를 돌렸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황제는 「왜, 할
에 없었다.
이기도 하다. 황제의 여자는 나보다 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아이를 빌미로 그들과……
「울지 마라.」
이야기는 전부 옛날이야기
싫으면서도, 그대가 나를
「이런 게 기뻐요?」
없다. 나는 황제에게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키스해도 될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서 죽어버리고 싶어졌다. 왜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친 거지?
눈살을 찌푸리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예뻤던가. -뭐, 남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아름다운 것에는 약한 편이라
「으흠.」
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누군가 왔다는 생각만이 멍하니 들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야겠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황제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황제가 천천히 눈을 감고, 내가 좋아하는 속눈썹이 보이
「으,흠흠흠흠!」
쥐어짜내는 헛기침이 들렸다. 웃음이 나와서 쿡, 웃었는데 황제가 「웃지 마.」라고 엄포를 주더니 내
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명령했다.
「꺼지거라.」
「폐하.」
라.」라고 불렀다. 그러자 시녀장이 빠르고도 조용한 걸음으로 종종걸음쳐 다가와서는 황제의 앞에 공손
히 엎드렸다.
「미누를 보살펴라.」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가 웃는다. 온 얼굴로, 감정이 물감이 되어 퍼지는 것
「아, 그게……저에요.」
「마마의 존명은……」
내 말에 시녀장이 눈을 깜빡였다.
마, 폐하께 말씀 좀 올리셔요.」
빡빡이보다 조금 길 뿐인 머리카락이 상하면 얼마나 상한다고. 하지만 시녀장은 부드러운 손길로 마사지
너무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아들이 있으세요?」
「못 보셨어요?」
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비서관이 싸늘하게 ‘황제 폐하께서 비 마마의 일을 충당하시는 겁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니, 이미 마음이 어떤지는 알았는데 생각하고 싶지가 않은 것일지
도 모르겠다.
명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수르트 장군은 정말 놀라웠다. 나프라 시녀장하고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우아한 나프라 시녀장과는 달
기분이 들었다.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정도일 줄이야. 그런데 국무대신보다 늙어 보이는 저 아들
「시녀장님의 나이는요.」
「날을 잘 고른 모양입니다. 폐하와 수르트 장군이 결투를 할 모양입니다. 유브라데 최고의 볼거리일거
에요.」
길을 가셔서는 안 되지만.」
지만 입은 황제가 나에게는
워지는 것을 보면서,
황제와 턱수염이 마주쳤다가 떨어진다. 검은 겨누고, 맞대고, 동시에 떨어진다. 어느 한쪽이 조금만 힘
이 없었더라도 무너질
것 같은 균형상태. 멋지다.
아슬아슬하게 칼이 움직인다. 황제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턱수염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머리
카락이 베어진 듯
「정말……폐하께서는 대단하십니다.」
뭐야 이게?
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수르트 장군은 폐하의 가슴에 베인 상처를 만들었고, 폐하는 수르트 장군의 다리를 부러트리셨
죠.」
황제와 눈이 마주쳤다. 황제의 목에서 땀이 흘러내려 쇄골에 고였다. 햇살이 반짝여 황제의 몸을 비추
고 있다. 황제의 목,
쇄골, 그리고 유두. ……빌어먹을, 난 원래도 그다지 건전한 청소년은 아니었지만 이정도로 타락하진 않
았었다고!
트 장군의 9 족을 멸해야
일거야.
내가 황제를 좋아한다면……
황제가 밉살스럽게도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못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은 두근거
렸다.
빌어먹을, 빠진 거야.
「수르트.」
대신과는 사뭇 틀린
느낌이다.
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를 악물고 노려보자, 천천히 장군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인자해보였고, 어딘가 시녀장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비 마마를 뵙사옵니다.」
「네……안녕하세요.」
「아뇨!」
황제의 몸에서 늘 나는 향기가 아니라 땀냄새가 느껴졌다. 어지러울 정도로 체향이 강해져 있어서, 한
숨이 나왔다. 이런 것이
사랑일까? 새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그녀의 체향도 그녀의 습관도 특별히 기억이 남는 것이 없다. 늘
슬퍼 보이는 얼굴만이
기억에 있을 뿐이다.
쾌락은 아니야.
나에게 쾌락을 알려준 것도 황제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쾌락과 감정을 구별할 수 있다. 이건 쾌락이
아니다. 하지만, 이게
황제는 내게 자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의자를 권하고,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고 황제와 수르트 장군은
황제가 움직인다. 황제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수르트 장군의 검을 피하느라 흙바닥을 뒹굴수록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흥분만이 자리잡는다. 야성적인 잔인한 얼굴. 황제의 모든 시선을 잡아채는 것은 오로지 수르트 장군
뿐이다.
어넘었다.
황제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해서 수르트 장군이 콧등을 찡그렸다. 진심으로 분해하는 얼굴이라는 것
을 깨닫자 왠지 웃음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물러서지 않았고, 이겼다. 아마 황제는 굉장히 강한
‘지켜주고 싶다’
은가보다.
다. 내가 무슨 수로
그를 지켜? 그런데도 지켜주고 싶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켜주고 싶어. 강해져서 지켜주고 싶어. 당
신이 나를 지켜주지
이거 진짜 사랑인가.
다고? 내가?
다. 지켜주고 싶다고
「폐하.」
가 내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시오엔.」
「마마!!」
놀란 나머지 뒤에서 시녀장이 펄쩍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서 놀랐는데 황제가 고개를 웃으며 시녀장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뭐가.」
「글쎄…… 뭐, 됐어. 태자하고 밥을 먹을 생각은 없지만, 너라면 기분이 나쁘지 않아. 하지만 아무리
너라고 할지라도.」
다.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비서관이 거품을 물었다. 비서관은 냉정하게 생긴 미인상인데 꽤 다혈질
이다. 귀엽다, 라고
「황제폐하 앞에서는 누구를 지칭할 때도 경칭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본래 폐하의 앞에서 선황 전하만
큼은 경칭을 붙입니다만
수 없는 고귀하신
말한 적은 없었던
「왜요?」
「폐하께서 싫어하시니까요.」
「그건 나쁘잖아요.」
「이런 비 마마가 좋습니다. 마마께오서는 상냥하신 분이세요. 제 걱정을, 린트인 아이들에게 글자를,
황제 폐하께도 진심으로
십니다. 비 마마께서는 그
상황을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 마마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마마께서 아시는 것
과는 조금 다른 진실이
있습니다.」
님 등은 전부 친황제파인
비서관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용납이 안 된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를 보고 똑바로 말했다.
아이인데?
못이 없잖아.
「그만.」
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
옵니다.」
나서고 있었다.
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나는……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뭐야,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내 방 침대
에 앉아있었다. 이
워졌다.
「오랜만이군.」
바로 뒤에 황제가
골드 드래곤.
는 습관은 드래곤으로
서의 습성인지도 모르겠다.
「남이사.」
이 작자 스토커냐?
못하고, 황궁에 골드
드래곤이 산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으며, 무엇보다.
잠깐.
갑자기 어둠이 몰려가고, 침대가 보였다. 그 옆의 협탁도, 아름다운 인공 폭포도 보였다. 매일같이 바
뀌는 수많은 꽃들도
쳐들어야 겨우
「그대는 나의 신부다.」
으로 그의 손을
하지 말라는 식의
물론 ‘반려자’라는 것은
음 생까지 같이 갈
이 미간을 좁혔다.
드래곤이 씨익 웃었다.
「이것이, 운명이 정한 나의 신부란 말이지. 운명의 여신의 장기말이 되어도 재미있을 거라고만 생각했
는데, 설마 이토록
「손 떼세요.」
「이 새끼야, 당장 손 안 떼?!」
황제에게 업무를
면 우린 수간이야,
친 듯이 화를 내려다가
「아, 너 진짜 귀엽다.」
고 다시 웃어제끼느라
계속 흐려져갔다.
하는 건데 그대 그
그리고 흐려졌다. 그러더니 갑자기 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새끼가 지금 사람을 놀리나!
았다. 아까와……뭔가
분위기가 틀린 것 같……
맙소사, 차가운 얼굴로 성큼성큼 들어서는 그는 오리지널 황제였다. 이런, 어쩌면 좋으냐. 당황한 얼굴
로 드래곤 이야기를
「이런 상황에서도……」
짜증이 났다. 좋냐? 나는 기분이 더럽다. 뭐라고 말하기 굉장히 어렵지만, 기분은 좋지 않아서 나는 황
제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황제가 한숨을 쉬면서 침대에 누워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들어오라는 싸인을
무시해줄 생각이었지만.
「마이- 그러니까 그대의 ‘황태자 전하’에 관해서 이야기해줄 테니까 이리 와. 제대로, 말해줄게.」
그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손짓이 기분 나빴지만, 호기심이 그것을 이겼다. 다들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
는 것인지 알 수가
안았다.
「음……」
은 관직에 등용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지. 나머지 반은, 집안을 돌보거나 신관직에 있었지. 그녀도 신관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고.
- 그녀가 신관놈들과
였고, 신관놈들은
하게 될 것이라고.
신은 황태자를 선택했다고.」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은 아니어서.
것은 ‘연인’일
말?」이라고 물었다.
「그래.」
다.
삼년 뒤는 너무 멀어.
렇게 무책임한 약속은
아니야.
수백 번 되뇌이면서.
8. 가면무도회 (1)
그 증거로는.
살스럽게 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무대신이 나에게
「정말 너무 하시네.」
국무대신이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더니 비서관을 보면서 머리카락을 지분거렸다. 비서관이 짜증난다
는 얼굴로 고개를
기도 전에 나가버렸다.
어지간히 싫었나보다.
마지막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평소에 비서관의 ‘바쁩니다’ 한마디면 끝나던 국무대신이 왠지
적극적이다. 사랑의
「우리는 뭘로 할까?」
곳은, 몸을 아늑하게
「뭘, 뭘로 해요?」
이게 뭔 소리래.
은 걸로 가리고
가까웠던 것이다.
사랑의 파티. 일명 서바이벌 파티. 황제고 국무대신이고 없는, 가면 쓰고 대거리하는 파티에 가까운 이
파티는 매년 푸른
새싹의 달(3 월인 듯) 첫 날밤에 시작한다. 커플은 자신의 정절과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 솔로는 인재
를 낚기 위해서, 심사
더러운 놈들은 커플을 찢어놓기 위해서, 각자의 야망(?)을 가지고 하룻밤 술래잡기가 펼쳐지는 것이
다. 사실 이 파티는
파티인데 어쩌다가
굴로 말했다.
「가지 말죠?」
빠져나갈 수는 있어도
앞과 뒤에는 반드시 참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황제 자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
각이 든다.
을 일이 절대 아니었다.
「웃을 일이 아니세요.」
「그 파티는 정말, 저질이에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늘 저질스럽게 간다니까요. 미리미리 싸인을 생각해
두셔야 해요.」
「국무대신님하고 싸인 정하셨어요?」
각을 하고 계셨나보다.
「그렇습니다, 마마.」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다시 한번, 아까와 똑같은 말투로 말하자 국무대신이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펴졌다. 그 얼굴은
「저와 데이비드 비서관이 싸인을 정하도록 하지요. 그 싸인을 보고 대신님은 비서관을 데려가면 되는
거잖아요.」
「빚으로 달아주세요.」
해 노력했다.
려다보았다.
저함이 없이 말했다.
「말도 안……!」
무대신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폐하께서 4 월생이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폐하는 곧 스물여덟 살이 되십니다. 서른이 다 되어 가시는
데 후사가 없으십니다.
정도 없으십니까? 그것이
국무대신이 웃었다.
지면 사람은 달라지기
가 한번은 막아드릴 수
이 되셔서 명령하시고,
나눠 가져?
그 남자는 내 것이다.
해보지는 않았다.
군지 똑똑히 쓰여지겠지요.」
순간 눈이 뒤집힐 뻔 했다.
「생각 좀……해볼게요.」
혼란스러워져서 국무대신을 외면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국무대신이 갑자기 뭘 내밀었다. 뭔가, 이러고 봤
더니 붉은 보석으로 된 귀걸이였다.
의중을 알 수 없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맞다. 황후 소리가 나오는 바람에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국무대신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꼭입니다, 꼭.」
「네네.」
오산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황제도 귀로는 보고를 들으면서 치장을 해야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제고 남자인데 그렇게 치장해야 하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황제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어째
「달은 안 그런가보지?」
황제가 피식 웃었다.
가와 내 목덜미를 물었다.
「아파!」
「홀에서 보자.」
창피한 것보다 어이가 없어서 욱신거리는 목을 손으로 눌렀는데 시녀누나들이 동시에 긴 숨을 뱉었다.
「대……대단하시네요.」
뭐가요?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그나저나 이거 은근히 아프다. 인상을 쓰면서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던 비서관이 내 얼굴에서 시선이 점
점 밑으로 가더니 내
목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이건……」
그 말에 비서관도 싱긋 웃었다.
뭡니까, 이 분위기.
뭐야, 이거.
「부러우신가보네요.」
시녀 누나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봄바람 같은 미소와 시베리아 냉풍의 눈빛으로 이어지는 악랄한 공습
이었다.
「아멜리아는 어쩌고?」
었다. 시녀장조차 한심하다는 얼굴로 경멸의 시선을 보내자, 국무대신이 「아니, 그게 아니고……」라고
뭐라 변명하려 했다.
「아멜리아면, 그 아멜리아?」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말씀하십시오, 각하.」
……
시녀장이 저렇게 풀네임을 부르니까 압도되는 부분이 있었다. 죄인이 아닌 나도 이럴진대 당사자인 국무
시녀장의 말은 엄숙했다.
「아멜리아?」
황제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정신 못차렸군.」이라고 말하며 국무대신을 노려보았다. 다들 진저리치며
「바람피우면 죽여 버리겠다.」
황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창녀’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그녀가 정말로
이라고 생각한다.
가 없어.」
「창녀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녀는 쓰레기야. 저 더러운 유혹에 넘어간다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
안 넘어가!
에 힘 준 기분이 든다.
「안됩니다, 비 마마.」
보고 싶은 ‘광경’?
황제가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가면을 건네고, 자신도 가면을 썼다. 그 순간, 회장이 술렁
이기 시작한다.
「모르는 게 약이야. 내가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대부분은 눈치를 챘을 거고. 오늘은 사랑의 파티를 빙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자신가요?」
「혼자기는 하지만.」
곤란한데.
해야 하는 거지.
「아니요.」
「있습니다.」
「황금을 녹여 만든 분이겠지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간에, 나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나쁜 느낌이 아니었다. 그녀는 창녀라고
다.)
돌렸다. 그녀를 경멸하는 척 하면서도,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
다.
향기다. 깨달은 즉시 소매로 호흡기를 막고, 조용히 빠져나오려 했다. 이 향기는 질색이다. 나는 나를
친 순간, 그저 그 사람과 마주보고 있는 순간, 세상이 정지한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난잡해지는 광경
빌어먹을.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그도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갔다.
황제가 신호를 정하자고 했었는데 그 때 결국 신호를 정하지는 못했다. 그 생각이 떠올라서, 부질없다
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시선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알아볼 수 있는데- 신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시오엔.」
「나인지 알고 있었어요?」
「나인지……알고 있었어요?」
지. 내가 조금 실망하려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자국보다 먼저 눈이 마주쳤는데.」
그의 낮은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이 곳에 있을 건가?」
황제가 물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러워서 뒤에 있는 기둥으로 뒷걸음질 쳐 기대는데 황제가 샹들리에
「비 마마?」
「비 마마?」
가면무도회에서 상대의 정체를 캐묻는 것만큼 비신사적인 일이 또 뭐가 있을까. 나는 눈을 감았다. 대
-김민후.-
정확한 이름으로 발음되어진 내 이름이 들리는 듯해서 눈을 크게 떴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나보다 훨
「비 마마……」
곤의 목소리였는데?
이상하네.
「비 마마……」
「윽……」
넌 자리가 자리니만큼, 재수가 좋았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하니안 때문에 머리가 멍해져 있지만
-김민후.-
「비 마마?」
-왜 혼자 있는 거지?-
-나의 신부여.-
「신선한데?」
신이다.
「놔.」
「못 놓겠는데.」
민 중이었다.
「놔.」
굴은 무표정해서 더욱 무서웠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쩌지? 싸워야 하나, 아니면 양보해야 하나.
팔리고 있다.
「다들 신이 났군요.」
국무대신이 혀를 찼다.
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좀 말려보시는 거 어떠세요?」
「싫습니다. 저 연약하거든요.」
지단을 닮아서 ‘연약’같은 소리 하시네. 그러고 보니 유난히 금발이 많이 보인다. 유브라데의 금발은
기에, 드래곤과는 하룻밤을 지낼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하고 교미한다고 하죠. 골드 드래곤이 인간과
니, 뭔가 믿기가 어려웠다.
「골드 드래곤의 아이로 태어난 자들 중에는 영웅이 많습니다. 유브라데에 전해 내려오는 영웅의 반은
골드 드래곤의 아이로 알려져 있죠. 유브라데의 수호자인 드래곤은, 상당히 변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드래곤의 아이를 받아 나라를 강하게 하고 싶었던 거지요. 자신의 아이가 있는 한, 드래곤은
니다.」
이 연회는 골드 드래곤에게 사람을 바치는 제단과 다름없는 것이다. 놀라서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남자를 임신시킨다고? 얼굴은 황제와 똑같은데- 소름이 돋았다. 더 이상은 듣고 싶지도 않다. 앞을
나의 도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골드 드래곤의 이름을 걸고, 이 도전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의기양양 소리치는 남자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쩐지 아프더라니 군인이었군. 그나저나 저렇
이는 정도였다.
「네 이름을 밝혀!」
「유브라데의 시오엔.」
황제가 선언하는 순간, 테란티오 가의 둘째아들은 유브라데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가 되었다. 사색이 된
다.
수르트 장군하고 맞붙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 되니 그 실력은 더욱 눈에
띄었다. 황제는 강했다. 그와 저 남자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황제는 상대를 가지고 놀았고, 상대는 황
제가 무서운 나머지 - 그가 황제라는 사실이 무서운 건지, 황제가 휘두르는 칼이 두려운 건지는 알 수
결국은 이야기를 듣고 파티장에서 뛰쳐나온 테란티오가의 장남이 애원해서, 황제가 넘어가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자 좌중의 구경꾼들(라고 해도, 대부분은 파티장에서 끈적한 분위기에 휩싸인 듯 사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기분이 암울했다.
「왜요?」
「뭐가.」
「왜 쫓아 오냐고요.」
황제의 금발이 달빛은 받아 창백하게 빛나고 있다. 아름다운 남자. 돈도 많고 권력자고 힘도 세고- 게
무력감에 화가 났다.
헛다리짚으시네.
어서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도망칠 생각은 아니군. 정말로 그대가 도망치려고 마음먹었으면 분명히 나 모르게 했겠지. 그 때처
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좋겠어요.」
않는다.
「뭐가.」
없고-」
「별로 안 좋아.」
고 있던 내 턱을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정말, 좋지 않아.」
아이도 필요 없는 사람이다.
「지켜준다고 했잖아.」
「지켜줘.」
아무래도 약점을 잡힌 모양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황제의 입술이 다가오는 순간, 그 입술이 족쇄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프거나 피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후회할지도 몰라.
계속 키스했다. 황제의
입술이 목으로 내려가고 나도 적극적으로 황제의 머리를 안으며 그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고 흐릿한
시선을 들어 앞을 보았…
…
웬 발이?
「으------흠흠흠흠흠흠!」
국무대신이었다.
는 나에게 ‘자신의 방’
에 가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왠지, 연상 누나의 원룸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어서 얼굴에서 불이 났다.
다. 거기에 앉았다가 쓰러졌다. 굉장히 기분이 좋고, 황제의 냄새가 난다. 황제는 이런 곳에서 자는 거
나른하다.
낄 정도였다.
‘황제가 오면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멋진 밤을 보내야……’
어둡다. 그리고 습기도 느껴진다. 뭐지?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는 음악처럼 영
「아.」
다 꾼단 말인가.
「민후.」
압도되고 말았다.
열리지가 않았다. 천천히, 마치 계시라도 받은 사람처럼 나를 고개를 숙였다. 황제와 똑같은 얼굴, 옷,
부 피였다.
이를 악물었다.
달라져 있을 거야.
래곤뿐이야.」
나는
「이건 실제야.」
그 때 나는 발견했다. 테란티오가의 둘째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배를 움켜쥐고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고 있었다.
……뭐지……?
없이
「곧 죽을 거다.」
「살려내요.」
어안았다.
「못 가.」
「이거 놔! 살려야……」
있었다.
「너……!」
아서
나는 쉽게
넘어갔다. 뒤로 쓰러졌다.
물컹.
절대로 정신 잃지 말자.
드래곤이 미소 지었다.
「너는 운명이 정한 나의 신부.」
어. 이 꿈 속에서 깨게 해줘.
이 꿈 속에서 깨게 해줘!
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물이 붉은 빛을 띠는 것을 보고 숨이 막혔다.
「피가……」
「그럼 누구의……」
이야.」
「그 남자……」
「테란티오 가의 둘째아들.」
「그대가 피해자 신분을 어떻게 아는 거냐? 그 자리에 있었던 건가? 범인을 봤나?」
가? 범인을 봤나?」
「봤어요.」
머리가 멍하다.
누는 영혼과 심장을
이를 가지라고 한 것 따위는 말하지 않았다. 해서는 안 될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도 나에게 ‘거짓이 아
하지는 않을 거다.」
난교 파티의 끝은 씁쓸했다.
‘지켜줘’
황제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황제를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해요.」
었다.
「합방식이라는 거, 무슨 절차가 필요한건가요?」
는 순간, 입을 열어 신음
소리를 뱉었다.
게 애무를 돌려주고
는 할 수 없었다.
제의 성기가 ‘남자로서
고 싶지는 않았다
「미누?」
「해요.」
나는 망설이지 않을 거야.
사람의 피, 사람의 팔, 사람의 시체. 나는 절대로 당신을 그렇게 만들지 않겠어. 어떤 희생을 치르던
들어가는 뒤를,
이것은 각오.
일단 귀두가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찢어질 듯 찢어지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
고 있었는지, 내
「아파?」
「다시 한번 불러줘.」
「시오엔.」
그러고 나서 나는 덧붙였다.
「좋아해요.」
그 순간 시오엔이 그대로 자신의 것을 박아 넣었다. 이거, 진짜로 아프다. 장난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
는 것 보다 아프지만 버틸 수 있다.
기 시작했다.
로 움직인다.
지는 게 싫어서,
「아……」
것이 싫어서, 이 광적인
락이 키스하고 있다.
액이 떨어지는데도
의미를 생각할 수도 없이 그렇게 떠올렸을 때 시오엔이 강하게 삽입했다. 내장이 눌린 기분이 든다. 몸
안에서 커져가던
「안돼……!」
지옥 같은 동굴의 꿈을
채로 그가 속삭였다.
「사랑해.」
삼키는 게 고작이었다.
9. 예언 (1)
이 어리다 할지라도
입 밖으로 나가지
미안해!
-누구야?
-남이사.
-화난거야?
보다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내게 화난건가?
혹시 바보냐?
대놓고 말하기에는 그 피와, 성기가 잘려진채 기어가던 남자와, ‘아이를 낳아’라고 강요하던 드래곤의
바보 맞구나.
그는 살인자다.
-난 드래곤이니까, 이게 당연한거야.
-뭐가 당연한데요? 그 죽은 사람들이 그쪽에게 죽여달라고 했어요? 그쪽의 일용한 양식이 되고 싶대요?
-그런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닌데?
-먹이사슬이라는 게 있잖아.
-일단은.
거짓말.
두 손을 들었다.
-방금은 식인이라며!
-‘일단’이랬잖아, 일단.
-사람을 안 먹는다고요?
고함을 지르자 드래곤이 당황하더니 갑자기 뭐라고 주문을 왼다. 그러자마자 나는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
살인자.
눈을 떼지 않은 채 속으로 비난했다.
살인자.
싫어.
니, 말도 안돼.
그거야 네 사정이고! 그리고 너보다야 시오엔이 낫지. 아니 무엇보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걸 정하고 지
랄이야! 감은 눈을
만, 최종적으로는
너는 나의 것이 될거다.
그 순간, 체온이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주먹으로 드래곤의 뺨을 갈겼다. 뺨에 주먹이 닿는 그
순간 몸이 풀렸다는
끌어안듯이 절박하게.
드래곤이 내 주먹을 잡고 천천히 손가락을 폈다. 그가 무섭지 않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와 이 드래곤의
에. 아니, 내가
은 없으므로.
도 아니야.
죽어……?
누가, 죽는다고?
었다. 마치, 계시와 같았다. 그것은 당연하고, 그것은 옳은 말이었다. 거짓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그
그는 신이 아니야.
-당연히 죽죠.
내 말에 드래곤이 피식 웃었다.
-시오엔은 좀 더 빨리 죽을거야.
-무슨 소리야?
누가 죽는다고?
누가?
-내 아이를 낳을래?
드래곤이 다시 물었다.
울리지 않는다기
-나와는 관계없어.
-마음이 뒤틀려서.
-마음?
-그래, 마음.
‘마음’?
-무슨 마음?
-내 마음.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시오엔과 닮은 얼굴을 훑어보고 한숨을 뱉었다. 뱉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시
오엔이 죽는다’고
지는 않겠어.
드래곤이 나에게 자신의 아이를 가지라고 했을 때를 기억해냈다. 그 피내음이 자욱한 동굴. 그리고 발
뒷꿈치에 밟히던
인체의 조각.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시오엔을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야.
이 드래곤의 입에서 시오엔이 죽는다고 말한 근거가 뭔지 캐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천천히
-나를요?
-그래.
-내 어디를요?
머리가 핑핑 돈다. 시야가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머릿속이 혼잡했다. 내 질문이 의외인지 그는 또 고
개를 갸웃거렸다.
-네 어디를?
그가 나에게 되물었다.
-네, 나의 어디를요.
-모르겠어.
-그러니까, 어디가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떻게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반드시 대답을 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방법이
-이름?
-그래.
한달? 두달?
하느님, 제발. 제발, 드래곤이 아니라고 말하게 해주세요. 제발, 제 말을 무시하거나 돌리거나 하지 말
고 대답하게 해주세요.
제말, 제발.
-그렇군. 내 이름따위는 안중에도 없는거군. 그대가 궁금한건 오로지 시오엔의 남아있는 생이 얼마인
지, 그것뿐이란 말이지.
-알려줄까보냐.
그리고 바로 사라진 드래곤 때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리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드래곤의 흔적도 보이
지 않았다.
‘알려줄까보냐.’
‘미누?’
좀 있다 깨는 것도……
갑자기 어둠이 흔들린다. 엄청난 속도,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아. 그러나 꿈속에서 왠 지진? -지진?
그리고 눈이 떠졌다.
「시오엔?」
누가 그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죽는지 알아야 막을 수 있다. 그건 드래곤이 안다. 드래곤은 어
「미누?」
조중에 흑조도 있었듯이 모든 일에는 아닐 가능성이 있다. 그래, 우선은 맞는지 틀리는지를 먼저 확인
해야해.
「키미누?」
누구에게 확인을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안되면 드래곤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야 해. 그러나 드
「키미누!」
마하려 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었다는 것도 알지만, 들었을 당시의 공포까지 그 사정이 가져가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싹해졌다.
「‘키스였죠’라……」
시오엔이 음습하게 중얼거렸다. 아아, 금발놈들. 드래곤이든 시오엔이든 이토록 아름답고 찬란한데, 어
아아, 이거 생각하면 할수록 지고지순하지 않은가. 열부문이라도 세워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황제폐하.
아, 인간이 쪼잔하네.
만든다.
-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이리 저리 비우고 몰아서 시오엔의 서재에 처박힌지 두시간만에 나는 양손을 들
고 말았다. 나름 유브라데 글자를 안다고 믿었는데 도무지 뭔말인지 모르겠다. 일단 골드드래곤이 어떤
존재인지 그에게 예지능력이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골드드래곤에 대한 말들은 하나같이 추상적이
아니, 골드 드래곤의 능력이 뭐야? 불을 내뿜냐? 예지능력이 있냐? 아아아악- 도대체 뭐냐고! 이 빌어
하나씩 써라, 하나씩. 나라연. 그러고보니 나라연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나라연이라는 단
아, 생각났다.
결국 알만한 자를 찾아 물어보는 수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데리러
「뭔지 아는거에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럼 뭔지 좀……」
「그 전에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비서관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어서 덩달아 신중한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비서관의 회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지십니다.」
「아니에요!」
「아니신데, 왜 서재에 매달리시는 겁니까?」
「골드 드래곤이요?」
열었다.
쫄아야하는거냐- 대답해주었다.
그것이 나라연입니다.」
지금 그걸 설명이라고……
「예?」
「아니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죽여서는 안된다’
록 좋을테니.
니.」
「골드 드래곤은 드래곤들의 중심. 드래곤 전부와 싸워야 할 겁니다. 승산이 없어요.」
「드래곤끼리는 친한건가요?」
로 골드 드래곤을 지킬거에요.」
예지능력……이 있다고?
내 말에 비서관이 싱긋 웃었다.
「얼마나라니요. 다 맞는거죠.」
다……?
다,라고? 다? 다?
일단, 그래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크리스티?」
다. 도중에 몇 번이나 솔직히 말할까 했지만 ‘내 아이를 낳아라’라는 발언을 시오엔이 들으면 썩 좋아
하지 못했다.
「마마.」
합니다.」
「어째서요?」
마음은 한없이 조급하다. 시오엔이 죽는다고 그 망할 해물탕 거리(드래곤)가 지껄였단 말이다. 그런데
「신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요?」
「아니요.」
「레니!」
그 미소보다 독성이 열배는 짙은 냉소를 지으며 시녀장이 덧붙였다. 시녀장이 가져온 허브티를 마시면서
아미?
「아미가 누군데?」
「아아, 정말 미치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국무대신이 차를 마시려는 순간, 시녀 누나가 그 찻잔을 우아하고 날렵하게 빼앗았
「죄송합니다.」
했다.
「마마……」
시선이 마구잡이로 내 뺨과 목등을 찌르고 있지만 열심히 무시하기로 했다. 여성 여러분의 공격은 참혹
하고 집요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발을 빼는게 낫다. 게다가 국무대신이 잘못한게 맞잖아. 아니, 왜
「마마, 좀……」
다.
시오엔이었다.
범인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시오엔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그리고
시녀장과 시녀누나들이 동시에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지으며 다과상을 재빨리 치워서 물러갔다. 그 전에
「시오엔.」
돌아가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 할 상대. 상냥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인 저 남자를 지켜줘야
해.
너한테 말할 수 없는 생각.
「미누.」
갑자기 오싹해졌다. 뭔가- 뭔가가 나를 억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압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아름답구나.
저 잘빠진 뒷모습. 부드럽게 구불거리는 금발. 단정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알맞은 근육. 정말로 아름다
운 남자다. 저 정도로 아름답다면, 남자든 여자든 중요하지 않겠지. 알맹이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
을 정도의- 압도적인 미모. 저 정도쯤 되면, 사람같지 않다. ‘조각같은’이라는 형용사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조각 같지도 않다. 외계인같다.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쳐다보고 쳐다봐도 질리지
않고 그저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봤는데……나 사실은 외모에 약한 걸까? 아니 사람은 누구나 외모에 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그는 상냥하다.
운운한 적이 있었지.
「괜찮아요.」
정때문이리라.
「나는 안 괜찮아.」
뭐?
내가 어떤식인데?
섹시한 목소리. 낮은데다 위협적이어서 멋지다. 등골이 오싹한 것이- 성감을 자극한다. 그런데, 내용은
최저선인데?
……정말 나쁜 놈이 된 기분이다……
「키스해줘.」
「좀 생각할 거?」
「그런게 있어요.」
하지만 안하면 정말 화를 낼 것 같다. 으아, 미인 누님을 사귀는 놈들의 심정이 단번에 이해가 간다.
하긴 해야지……
내 입안을 휘저었다.
「미누.」
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움켜잡는다. 고통과 쾌락. 두려운과 환희. 어느쪽이라도 좋다.
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손바닥으로 내 허벅지를 문지르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손가락에 동조해서 다리를
벌렸다.
다른 손이 내 유두를 긁어서 그 예리한 감각에 얼굴을 찌푸렸다. 항의를 위해서인지 무엇을 위해서인지
「다시 키스해줘.」
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입술에 매달려 오래도록 견뎠다. 온 몸이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뒤를 자
뒤 천천히 내 가슴에 입술을 대었다. 입술이 감질나게 움직여 밑으로 내려간다.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
「빨아줘.」
「뭐하는 거지?」
시오엔의 옆에서 애틋한 무드를 풍겨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시녀장은 나에게 ‘팔굽혀 펴기를 하는
「운동이요.」
지킬 수 있을 거야. 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거야.
「힘들지 않아?」
「그래, 운동해야지.」
동네에 체중계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런데 체중계가 없으면 내 몸무게가 얼마인지 어떻게 아나.
키스의 끝은 멀리에 있었다. 타액의 실이 연결된 것이 꽤 부끄러웠다. 그러나 여기서 얼굴을 붉히면 더
시오엔이 활짝 웃었다.
「그래서, 나를 지켜줘야지.」
이든!
-라고 결심은 했고, 의도도 좋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국무대신의 형은 멀리에 있다고 하고,
인해볼 어떤 수. 그게 뭘까.
「마마?」
「네.」
「마마, 아무리 마마라 하실지라도 사람이 눈앞에서 말을 하는데 듣지 않으시는 건 지나친 오만이시군
다.
이름을 알려주긴 했는데 기억이 안나서 대충 ‘누나’라고 했더니 여자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나. 유두가 보일듯 말듯한 저 옷차림 때문에 아까부터 당황하여 고개를 돌리고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딴
당연히 모르지.
「미안해요.」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는게 상책이다. 무엇보다 시녀장의 눈길도 타오르고 있다. 전에 라로에게 하던 것
여자들끼리 싸우는 건 질색이다. 음험하고 어처구니없이 싸움이 길어지는데다가 명확한 결론도 안 난다.
아니, 솔직해지자. 무섭다. 여자들은 무섭다. 특히 싸우는 여자들은 더 무섭다. 여자의 한이 서리면 오
지 않단 말이다.
「마마!」
은 아닌가보다. 그러고보면 여자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남자의 본능일지도 몰라. 아무래도 남자와 여
래.
「오늘 오찬에서 난리났었다면서요?」
국무대신이 오후에 오자마자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그윽한 눈길로 비서관의
「오늘 바빠?」
「바쁩니다.」
「그럼 내일은?」
다.
「모레는?」
「바쁩니다.」
「글……」
「황제 폐하!」
황제를 눈치챈 비서관이 국무대신을 살짝 무시하며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무대신이 평소에는 이
렇게 예의를 챙기지 않던 비서관의 행동에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결국 무릎을 꿇었
다.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부라리는 국무대신과 황제의 발만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물러간다는 비서관. 시오엔은 팔짱을 끼고 한숨
을 쉬었다.
안됐다, 비서관.
골적으로 귀찮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닐 수가 있나. 이런 내 생각에 대해서 시오엔에게 물어보려고 고개를
「으흠흠흠!」
언제나처럼, 국무대신은 날카롭고 무겁고 억지스러운 헛기침소리로 자신의 컴백을 알리기전까지 계속되
「저기요, 국무대신님.」
트를 하자던가, 아니면……」
내 말에 국무대신이 지적했다.
「그렇게 지겨우세요?」
「네.」
「응.」
렸다.
다.」
‘황제의 얼굴’이 되었다. 나만 그 사이에서 멍하니 보고를 듣고 있었다. 보고는 다양했는데 시오엔이
비서관의 보고는 사적인 것이지만 국무대신의 보고는 한없이 공적이다. 국무대신은 하렘이나 신전이나
누가?
생각해서도 죽음을 선택해서도 안된다고 느끼지만,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관심이 사라져
「그렇사옵니다.」
「이유는?」
「단순변심이옵니다.」
「봐.」
황제의 눈이 다정했다. 그는 나에게 이 서류를 보여주는 걸까? 그러나 나는 황제의 금안이 다정함과 같
마이 유브라데.
마이라는 건 그 황태자 아닌가. 오늘도 만났었다. 오늘도 평소와 똑같이 그는 티엔이라는 미래의 비서
「미누.」
시 불렀다.
「미누. 키미누.」
「예.」
보았다.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내가 왜 네 아이를 키워!’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라브
「니타우 라 크리스티.」
「물러가라.」
국무대신이 잠시 나를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고, 그는 곧 사라졌다. 그
「미누.」
아름다운 조각들로 가득찬, 호화찬란한 천장을 보며 시오엔의 입술을 느꼈다. 몸안으로 파고드는 시오엔
은 시오엔이 낮게 말했다.
뭐?
졌다. 사람을 심심풀이로 죽이는 황태자. 그리고 황태자의 어머니이자 자신이 안은 여자에게 버림받은
황제. 갑자기 어릴 때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가 생각난다. 희미한 이성으로 그 기나긴 이야기의 끝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술탄이 하룻밤 지낸 뒤 여자들을 죽여버리는 그 잔혹한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되더라?
럼.
「아……!」
내 자제의 영역을 벗어난 신음이 내 귓가에 울리고, 시오엔의 행동이 더욱 거칠어졌다. 다시 발기하는
시오엔의 향기가 난다. 숨막히도록 매혹적인 향기. 그러나 ‘숨이 막힐 정도’의 매혹이라면- 소용이 없
시오엔의 얼굴이 옆에 있다. 아름다운 얼굴. 아니, 잠깐.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달라.
다르다!
나는 재빨리 침대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그 움직임을 감지한 시오엔이 팔로 머리를 바치고 비스듬히 누
운 채 눈을 떴다. 역시 틀리다.
「감도 좋단 말이지.」
「뭐가?」
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딱 치자, 드래곤의 몸 아래에 있는 어둠이 침대모양으로 솟아났
다. 시트나 배게가 어둠이라는 것을 빼면, 그 모습은 시오엔과 누워있던 시오엔의 침대와 상당히 비슷
했다.
「됐습니다.」
「시끄럽습니다.」
「윽……」
「시끄럽다고 했잖아요.」
「와, 이젠 완전 구박이네.」
이 자식이 진짜.
「키스해줘.」
방금, 뭐라고요?
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
「아니면.」
「……뭐라고요?」
「이름을 물어봐줘.」
얼레?
참으로 구차하다.
「……이름이 뭔데요.」
렬 순정파 소년같으시다. 그런데 솔직히는 어느쪽이든 반갑지가 않다. 왠지 동정심을 사려는 수작같아서
기분이 더럽다.
「리안.」
이 자식이 진짜 죽어볼래?
곤이 대답했다.
서른살?
「거짓말.」
「거짓말!」
「정말.」
「놀랐어?」
놀랐냐고?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여기 사람들은 이토록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고 있지? 이것 봐-
죽는다고?
「이상해, 너는 정말로 이상해. 그대는 정말로 신선하고, 너무나 이상한 사람이야. 월인이라서 그런걸
까?」
만지작거렸다.
「그대는 왜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걸까. 나는 이토록 그대에게 관심이 많은데. 그대는 왜 시오엔을 좋아
하는 걸까. 시오엔은 별
죽는다고?
「시오엔은 결국……」
죽는다고? 말도 안돼. 서른, 서른 살이라면 내후년. 내가 집에 돌아간 뒤에 그가 죽는다고! 당연하게,
안 죽어.
「왜, 죽는데요?」
「그게 중요해?」
「그거 말고 그럼 뭐가 중요한데!」
「살리고 싶어?」
드래곤이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모든 행동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뺨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드래곤
왜 그가 죽어야 하는데?
「울지 마.」
「왜 죽는건지 말해줘요……」
「왜 죽는 건데요……」
「왜 죽냐니깐요……」
「허락된 삶?」
다.
죽어? 죽는다고?
말도 안돼, 죽는다고?
「당신이……」
시오엔이 부드럽게 나를 토닥이더니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 앞뒤로 요람을 흔들듯 자신의 몸을
흔들며 물었다.
「꿈에서?」
「꿈에서.」
「뭐?」
「그런 소리라면 늘 듣는걸.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어? 마이가 빨리 황제가 되어야 이 나라가 안정될
서른살.
「기억 안나는데?」
다.
「왜?」
「죽을지도 모른다잖아요.」
「그걸 믿어?」
「만약……이라는게 있잖아요.」
「만약?」
「너를 가졌으니까.」
바보냐?
넌 이 상황에서 폼을 잡고 싶냐?
돌렸다.
헛소리 집어치워.
해.
없어져.」
「미안해요.」
마이 유브라데.
한 모양이니까. 나만 해도 저 나이엔……
그러나 나는 저 황태자가 아니다. 시오엔의 말은 옳다. 그러나……저 황태자는 그저, 교육이 부족한 것인
가 없지. 한숨이 나온다. 새삼스럽게 몇가지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흔들리며 잔상을 남겼다. 대부분은
조차 않다.
분명히 후회 할텐데.
「비서관님.」
「예, 황비마마.」
「황태자가 몇 살이었죠?」
「올해 다섯 살이 되셨지요.」
그래, 그래서 한국 나이로 여섯 살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목숨이 뭔지나 알고 있을까?
볼 수만은 없지 않나.
「아니……」
걸 참고 나는 용건을 꺼냈다.
「뭐?」
「사람을 죽인다며.」
두 마리?
기가 막힐 정도로 썩어있었다.
두 마리?
이상하게도, 나는 황태자를 때리지조차 못했다. 저런 놈은 두들겨패서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고, 황
오던 비서관이 물었다.
불편한 일은 많은데, 불편해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 사람을 죽이는
정말?
「미누?」
누군가는 나에게 비겁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실은, 나 자신도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셋째. 계약의 내용이 한쪽에게 불리하여,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 - 불리한 쪽이 계약을 보호하는 신이
걸리는 것 투성이다.
「어?」
「살모사 누님.」
「크리모사입니다!」
도끼눈을 뜨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긴장해버렸다.
「죄송합니다.」
했다. 나 싫어하는 거 아니였어? 혹시, 날 갈구려고 그동안 주의깊게 날 본건가? 이 여자라면 그러고도
「아, 좀.」
「그게……」
황태자 건이라 이야기하기는 곤란하지. 한숨이 나왔다. 한숨을 쉬니 크리모사가 또 도끼눈을 했다.
이 누님, 상당히 무서운 분인듯. 이제까지 이 누님의 뒤에서 참새떼처럼 나를 씹던 여자들이 한없이 조
용하다. 침묵속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혹시 시오엔이 뒤에서 뭐라고 쪼기라도
한 걸까?
「마음대로 하사와요!」
그리고 보여지는 뒷모습이 굉장히 빠르게 사라져간다. 뭐야, 뛰고 있는거야?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다시
앉자 여자들의 눈초리가 한없이 사납다. 나 뭘 잘못한건데? 으아, 싫다. 여자들의 한은 무섭고 질기다
일에 화를 내는 걸까.
「왜요?」
타당한 선 아닌가. 당신들이 비난해야 하는 건 황태자 아니야? 그 아이가 황태자이기 때문에 비난할 수
없는 건가?
「예?」
「우울해?」
당황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는 시오엔과 착각하지 않는, 드래곤
드래곤이 손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갑자기 의자채로 쓰러진 나와, 나를 부축한 채 의원을 부르라고 소
나의 꿈 속.
-쓰러졌어.
-말을 해봐.
-왜 자꾸 오고 그래요?
-네가 보고 싶으니까.
-난 별로 안 보고 싶은데.
였다.
-혹시……
그리고 그가 물었다.
가 서른살에 죽든 말든 나는 내 갈길을……
맞다, 서른살!
-용형님.
-좋아, 리안형님.
‘형님’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건 동서고금 범우주적인 남자의 성향인 모양이다. 리안이 마치 시오엔처
럼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응.
-시오엔은 왜 죽어요?
-생이 다해서.
계속 같은 말. 같은 자리.
-나는 언제 죽어요?
삶이 치열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로 신비롭지 않구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휘장을 들추
내 말에 드래곤이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위화감을 느꼈다. 너무나 당연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드래곤에게서.
-몰라요?
전부 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 좋겠어, 이 꿈 속에서.
-씨발, 장난 치지 말고!
-아니야.
-그럼 왜?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드래곤이 슬픈 얼굴을 했다. 애틋하고 안타깝기는 한데 그 이상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시오엔이 이
런 얼굴을 했다면 무척 애절할거야. 그래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질거야. 끌어안고 괜찮다고 속삭이고
는 것처럼.
-없어요.
-절대로.
다.
-좋아, 기대해보지.
것이다.
아까 드래곤이 손을 내밀어 보여줬던 곳에서는 여전히 내 주변 풍경이 보이고 있다. 시오엔이 달려온
듯 하다.
‘의원!’
‘혹시 또 그 약을……’
옆에서 저렇게 말 끊으면 안될텐데, 너무 걱정된 나머지 물어본 것이다. 하긴 상대가 시오엔이니 가능
아니야? 배라면 어디? 대장은 아니겠지, 설마. 아아아아 어디선가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날 것만 같아.
엄청나게 흔들렸다. 지진이 따로 없다. 윽, 흔들지 좀 말아봐! 도리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알았
했다.
「괜찮은건가? 의원, 진찰을!」
「실례하겠습니다.」
「비 마마, 요즘 어떠십니까?」
이와중에 팔을 걷어부치고 고개를 삐딱하게 숙인채 목선을 드러내보인 저 남자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다
니. 나도 정말 제대로 된 놈은 아닌가보다.
「심장이 아프시다던가……?」
「전혀요.」
마치 암환자를 대하는 듯한 태…… 담배를 좀 피기는 했었는데 설마 그 정도로 폐암은 아닐테고. 아니,
「그럼 괜찮습니다.」
그리고 의원과 시오엔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그 잠깐이 내 몸상태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말해주는
오겠지.
「자고 있어.」
그러다 정말 잠이 들어버렸다.
꿈속인지 알 수가 없다.
기억나는 것은 한 마디.
‘그렇게는 안돼.’
기분이 된다. 그리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이 기껏 마음을 먹었는데……시오엔은 당분간 운동하지 말라며 내게 약속을 요구했다. 절대로 운동을
해서도, 과로를 해서도 안된다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몇가지 주어진 일 외에는 탱자탱자 놀기 바쁜 내
가 무슨 과로냐, 과로는. 그러나 그는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어서 나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는 걸까?
여자애였다. 댕기머리를 한 여자애. 팔에는 깁스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생각이 안나도 저 얼굴만
멀게 느껴졌다.
‘야, 미안하다니까.’
‘평생?’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드래곤이 물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내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어느새 나왔는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진 여자애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지만, 찾지 못했다. 한숨이 나왔다.
픔이 느껴져 나는 눈을 감았다.
드래곤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깨리라고 생각했는데 드래곤이 나
를 끌어안았다. 사내놈끼리 스킨쉽이라니, 징그러워서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데도 드래곤의 힘은 강했다.
-이제, 나는 결심했어.
-무슨 결심이신데요?
이 자식이 귀가 먹었나!
드래곤이 말했다.
변태다.
쳤다.
오랜만에 손가락 관절을 꺾었더니 심상치않은 소리가 난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아
주었구나. 서울에서야 당연히 한달에 한번은 쌈질이었고, 여기 와서도 도망치니 잡히니 하면서 긴장하고
설때마다 드래곤의 금발이 찰랑거렸다. 그러고보니 드래곤의 금발은 직모이다. 시오엔의 금발은 반곱슬
어간 것인가. 나름대로 인기도 있었고, 사귀자는 여자 다 뿌리치고 남자를 사귀는데, 결국은 미모에 넘
그러면서 뒤로 왜 물러나시나?
영생? 긴 삶?
-얼마나 오래사는데요?
일단 저 용 새끼가 나한테 반드시 변태짓을 한 건 아니고. 변태여도 변태짓을 안한다면 괜찮아. ……일단
은.
-뭐, 관두죠.
-왜?
-할지도 몰라.
-하지만 넌 나를 너무 믿고 있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린 동성이야!
는 등을 돌리려 했다.
-자, 잠깐.
의 체온이 전해져온다.
댕기머리 여자애는 말했다. ‘너랑 다시는 안 놀아.’ 그 말은 진심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과거의 잘못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칠 수 없게 된다. 나중에 크면, 황태자도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
「황태자.」
황태자를 만나러 가서, 말해주자. 내 이야기를 해주자. 그래, 걔가 반성하든 말든은 걔 문제. 일단 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안돼.」
죄송한데 다시 한번?
「안돼.」
「왜요?」
「싫으니까.」
이것이 이유의 다였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시오엔이 입술을 겹쳤다. 나도 모르게 평소처럼
「이제까지는 아무 말 안했었잖아요!」
「그랬었지.」
밤에는 쓰러질 때까지 섹스하고 아침에는 ‘왜 싫냐’와 ‘그냥 싫다’의 의미 없는 공방전을 하던 사흘.
시오엔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아니.」
「싫은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진짜로, 단지, 그냥, 이라는 이유로 내가 못가게 하는 건 아니겠
죠?」
「말하기가 싫어.」
완전 애다.
좋아지는 건가.
「그리고 그대 이제 슬슬 바빠질거야.」
그리고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할 소리냐.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으흠. 정말입니다.」
「아무리봐도 거짓말 같은데.」
「외울게요.」
「총 회의라는 건 귀족 회의인거죠?」
「예. 그렇습니다.」
관이 싱긋 웃었다.
「어째서요?」
「있어봐야 소수겠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자꾸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 결혼식은 정말로 ‘일’인 것이다. 비서관만 해도, 이미 그것을 일로서 잡고 있지 않은가. 시오엔을
정말 좋아해서 -비록 삼년뒤에 두고 날아갈 예정이긴 해도- 남자에게 시집(맙소사)을 가는 내 마음과는
일절 상관 없는 커다란 프로젝트.
「마마……」
「빛의 달입니다.」
잠깐, 잠깐. 지금이 푸른 새싹의 달. 그러니까 삼월. 그 다음이 부드러운 바람의 달. 사월. 돌아오지
실제로 서민들은 숫자로 센다는데, 귀족은 숫자로 안 센다고 한다. 왜 인지는 귀족들만이 알 일이지.
「유월 언제부터요?」
「보름정도죠?」
다.」
잠깐, 전 황족?
전?
질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전 국민과 다른 황족들 앞에서 남자에게 장가가야 하는 거야? 아니, 시집.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소름이 끼쳤다. 남자랑 결혼하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해서 결심한건데, 그걸 수많은 인간들 앞에서
그 때 시오엔이 뛰어들어왔다.
「쳐라!」
「옵니다.」
아무것도 없잖아.
「빌어먹을, 넌 진짜 미쳤어!」
「안녕, 달링.」
달링같은 소리 하시네.
예언 아니야, 라고 골드 드래곤이 바유를 달래며 말했지만 바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아, 여기에도
일까.
내 앞에서는 여전히 ‘백년이나 이백년이나 천년쯤 곧이잖아, 곧.’라고 친구를 달래는건지 놀리는건지
의도 모를 짓을 하는 황금룡 한 마리와 생크림룡 한 마리가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에요?」
「전에 와봤잖아?」
이건 똥색용.
이건 아이스크림색용.
「프러포즈요?」
아니, 깨끗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굴에는 엄청나게 큰 짚더미와 책장, 걸상과 책상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긴 어디에요?」
을 썼다.
‘너랑 안 놀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댕기머리 여자애. 그것은 내 최악의 과오. 다시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싶지 않은
「전 여기 왜 왔는데요?」
「납치되었기 때문이지.」
「납치라니? 초대야!」
마득한 절벽이었다.
시오엔, 이제 난 어쩌지?
「시오엔……」
당황한 나머지 주저앉아서 시오엔을 불렀을 때 갑자기 골드 드래곤이 달려와 나를 낚아챘다. 바유가 눈
나는 아예 눈을 감았다.
다.
「놈에게 너를 준건가?!」
내 머릿속에서 울렸다.
‘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공간이 어떤 공간과 혼합되고, 뭉뚱그
짐승같다.
이것은 누구의 피지?
보여서, 당장이라도 소리를 칠 것 같다. 놀라는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나는 시오엔
을 올려다보았다.
「그대는 내게 해줄 말이 있을 것 같군.」
시오엔이 중얼거렸다.
「무슨 말을?」
갔고 -나는 그것이 늘 드래곤을 만났던 것과 같은, 일종의 유체이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이든 현실이
손길을.
「각인이다.」
각인?
무슨 각인?
입은 것 같다고 느껴졌다.
「신관, 신관!」
「니타우, 고하라.」
「아, 그게……」
「크리스티!」
출했기 때문이었다.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나는 감옥으로 숙소를 옮기게 되었다.
쪼잔하다.
내 눈동자를 보았더니 이상한 문양이 있어서 놀라고 화나기는 했다. 그러나 시오엔이 이럴 줄은 정말로
주지.
창살 너머로 보이는 달은 여전히 예쁘다. 창백한 빛이 시오엔을 떠올리게 한다. 아, 나쁜 자식. 순진한
좋아하고 l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아,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한 에스코트(를 빙자한 감시)를 받으며 면회를 왔다. 한국에서는 면회실이 따로 있지만, 이 빌어먹을
「아.」
시오엔을 부르느라 단식을 한다는 소리를 하면, 비서관은 걱정하겠지. 찬바람이 부는 외모와는 달리 상
이다. 그리고 만약 보고받지 않을 정도로, 시오엔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오싹해졌다. 관심이 없다
……나, 정치범인거야?!
범 수용소?
한 손가락을.
그렇구나……
음과 의심의 갈팡질팡 댄스를 일주일 내내 초단위로 추었기 때문인지, 안심의 강도는 컸다. 갑자기 긴
단식 사흘째.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시오엔도, 시오엔의 측근인 국무대신도, 하다못해 시녀장이나 비서관도 아니었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렘의 일을 잘 모르는 나도, 그녀가 정치범 수용소에 제멋대로 드나들 수 있을
있던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녀를 맞았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성적인 매력이 폴폴 풍기는 얼굴을 한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겁니까?」
로 걱정하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움직인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특별히는.」
「아니에요!」
「아니, 그건 맞는데요.」
「맙소사!」
「왜, 왜요?」
을 받고 있자니 불길해졌다.
상상이 되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났다. 남의 거에 뭐하는 짓이야!! 상상속의 내가 고함을 쳤다. ……절대
로, 가만두지 않지.
그러나 자신의 예시가 맞다고 생각하는지 살모사 누님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불쾌하긴 하겠죠.」
「왜 그러셨어요?」
「아니, 제가 뭘요!」
아, 진짜. 이건 실수도 뭣도 아니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한거라니깐요. 내가 당한거야. 억울해서 팔
예?
「황제 폐하는 굉장히 노하셨어요. 골드 드래곤의 문양은 하루 아침에 새겨지는게 아니에요. 비 마마는
「아니, 나는……」
이 되어버렸다.
「나는……」
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나저나, 웬일이세요?」
에이, 그럴리가요.
말도 안되는 말에 웃으면서 얼굴을 찡그리자 살모사 누님이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녀가 이윽고
뭐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나는 그녀보다도 그녀의 뒤에서 다가오는 시오엔을 보고 있었다. 맙소사, 진
「보초.」
「데려가라.」
간다는 건가? 갑자기 옛날 시오엔이 하룻밤에 공녀의 목을 한명씩 치던 남자라는게 떠올랐다. 설마, 죽
일 생각은 아니겠지?
문이 열리고 시오엔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커졌다. 아아, 내가 단식을 하던 이유가 뭐였더
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멈추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말아.」
그리고 나서, 나는 밥을 먹었다. 아주, 잘 먹었다. 편식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매일같이 운동했고,
촛대를 검대신 휘두르며 검술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것들을 복습해보려 노력했다. 믿는다,고 결심했으니
믿는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나는 검대신 촛대를 휘둘렀다. 밥을
미치면 그게 더 이상하지.
보다. 정말 다행이다.
「물에 담그세요.」
이상한 펜던트 하나를 두고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어디서 봤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식으로 접촉해
건너편이 투명하게 비치는 라브만의 모습을 보며, 이건이 홀로그램이나 혹은 환상류의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주먹을 움켜쥐고, 최대한 무덤덤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멱살을 잡
-오랜만입니다.
「용건만 간단히.」
까.
지랄!
라브만이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아니, 개처럼 짖고 있다. 하긴, 저 놈에게 ‘개’를 갖다대다니 미안
저 놈에 비하면 개가 훨씬 낫지. 암.
「좆까시네. 꺼져.」
-정말입니다.
「네가 무슨 수로, 황궁에 들어와서 날 보내줄건데?」
-가업비밀입니다.
-어차피 황제도 저도, 비슷한 입장입니다. 저희가 없이, 황제가 비 마마를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마
찬가지로 심판의 물이 없다면, 아무리 저라도 보내드릴 수 없지요. 그러나 저는 심판의 물의 조건을,
더 유리해?
호숫물을 가져갔다는 뜻인가? 그러나, 어떻게 해서? 예전의 그 시녀누나가 아직도 황궁에서 일하고 있
잖아.
나지 않았다.
「조건은?」
-당신입니다.
「날 어디다 쓰게?」
「지랄.」
욕나오네, 진짜.
않았었다.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원하는 남자,라는 조건이라면 셋을 알고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한다
「섹스상대로?」
-즉물적으로 말하자면.
너, 신관 아니였냐.
-그 때 반했습니다.
그 시녀누나. 도대체 어떻게 생겼었지? 평범한 얼굴이었다고, 생각했다. 잠깐, 평범한 얼굴? 내가 생각
-당신을 원합니다.
「나의 피겠지.」
「그러고도 네가 신관이냐?」
이런 도발에 넘어갈만큼, 다혈질적인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신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말
-신관이기전에 앞서 남자지요.
「거절이다.」
-달로의 귀환이라는 말만으로 신성지까지 오셨던 분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의, 소심한 대답이시군요.
-꼭 여쭤보고 싶군요.
이 새끼하고 왜 이런 대화를 계속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시녀누나의 얼굴은 죽어도 생각이 안나지
아니었다.
누구 마음대로?
-후회하실겁니다.
-잠시만요, 아직 할 말이 남아있습니다.
-잠시만, 비 마마!
흥이다.
창밖으로 대야의 물을 버리자, 환영은 사라졌다. 시녀 중 누군가는 스파이다.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낼
찾아봐야겠다.
갑자기 쇠창살밖에서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대야를 놓고 다가가자, 보초가 새파래진 안색으로 나를 부
「비 마마는? 무사하신건가?!」
「맙소사, 비 마마!!」
다.
-힘이여, 나의 명에 따르라.-
-대지여, 움직여라.-
「비 마마 힘내세요!」
「당겨, 당겨!」
의 힘으로 창살이 부서졌다. 그리고 내 옷자락을 잡고 있었던 보초들의 손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아아아악!」
어, 얼레?
-배신자.-
「마음대로 지껄이세요.」
-너는 나를 이길 수 없어!-
-얍삽한 놈!-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
뭐랄까……잠시 절박했던 순간 때문에 아직도 심장이 날뛰고 있는데, 입가에서는 웃음이 흘렀다.
익숙한 목소리다. 경련하는 입가를 제어하려 애쓰며 고개를 들자, 시오엔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차
「웃지 마.」
시오엔이 속삭였다.
방식의 효과일까?
「데이비드!」
「개인적인 친분일겁니다.」
「블랙신관?」
뭐랄까.
이 세사람의 관계랄까, 연애사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어디까지 맞추고, 어디가 틀린 것일지
내심 궁금해졌다.
왜 감옥에 보냈느냐-던가. 아니, 그 이야기는 들었지. 왜 감옥에 보낼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느
냐,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하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된 것은 얼마 후였다.
비서관의 분노 모드는 무섭지만, 그러나 오늘의 비서관은 유난히 요염하고 아름답다. 아무래도 화장에
아니, 착각이 아니다. 저 옷하며, 저 헤어스타일하며. 아무래도 누군가를 의식하고 정성을 다한 모습이
「저는 이제껏 마마께 진실만을 고해왔습니다. 그것은, 마마께 제 진심을 전하면 마마께오서도 진심으로
비서관의 눈에 눈물이 어리는 것을 보고, 새삼 반성했다. 화가 난 여자의 앞에서 그녀의 미모를 즐기고
「미안해요.」
한참이나 새근거리며 숨을 몰아쉬던 비서관이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꽤 오랫동안 허공을 노려보며 진정
비서관이 새침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난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인데,
것. 월인의 피가 불노불사의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그래서 국민들은 ‘어떤 효용’으
아무리 황궁내의 일이라 할지라도, 소문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더욱이 황비의 눈동자에 골드 드래곤
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황궁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서 ‘월인 황비는 황궁에 호의적이며, 드래곤또한 여전히 유브라데를 수호하고
있다. 월인황비와 드래곤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었지만, 인간의
고 있었다.
그리고 소문은 이제 ‘라브만, 드래곤, 황제가 월인을 노린다.’라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황비
곤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물로 바치라고 주장했던 쪽은, 시오엔이 서슬이 퍼
런 얼굴로 「나보러 내 마누라를 어쩌라고?」라고 되묻는 바람에, 조용히 (아마도 목숨이 아까워서) 사
그라들었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골드 드래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 말에 비서관이 「그런 절차가
렵다고! - 아니,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해야 했었는지도 모르겠
하면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월인도 드래곤도 시오엔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소문은 계속
퍼져나가고 있고, 나라연을 계승한 시오엔의 위치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하면서도 비서관은 더 이상 나
를 책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린 황태자에게 성급한 접선을 시도하는 자들까지 생겼다고 한
힘들게 했다.
「비 마마.」
시녀장의 목소리가 들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그냥 고개를 돌렸다. 시녀장과 함께 모르는 군인들이
같이 서 있었다.
「네.」
「시오엔이?」
나에게 대답했지만, 내게는 뒤통수만 보여주고 있었다. 비서관이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군인들이 가볍게
「의장의 요청입니다.」
그러나 비서관은 난감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이 깜빡거리는 것이 어지간히 당혹스러
운 상황인 듯 했다.
「가겠습니다.」
준비된 마차를 타고, 회의장까지 움직여야 했다. 아름다운 정원이다. 하렘의 조각들과 식물들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영국같은 곳에선 정원도 하나의 예술이라더니, 그것을 이곳에서 깨닫는다. 무엇하나 더
잠깐, 저 여자?!
「세워요!!」
않았다. 마차가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듯 마차를 벗어나 나는 달렸다. 뒤에서 군인과 비서관이 연유도 모
「기다려주십시요!」
「마마, 비 마마!」
끝에 달린 희미한 불안. 저 여자, 맞다! 저 갈색머리, 수수한 얼굴. 나에게 ‘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팔목을 붙잡았다.
「비 마마……」
「비서관님.」
「하,하,하명……하시옵소서, 마마.」
「달리기, 잘하세요?」
「그다지……잘 한다고는……」
나는 빠른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릴레이니 하는 달리기 시합에 나가기도 했고. 그러나, 군인보
「비서관님.」
「예, 마마.」
「마차로 가세요. 지금 당장. 뛰세요.」
「자, 잠깐!」
「비 마마?」
어쩌면 생사람 잡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시오엔의 군대는 당나라 군대다. 군대 교육을 제
「너네, 누구세요?」
내 뒤에 있는 여자와 한패잖아?
-많이 다쳤잖아.
오랜만에 보는 드래곤은 야위어있었다. 야위든 야위지 않든은 내 알바 아닌데, 시오엔의 얼굴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요?
-오랜만이군.
-잘 지낸 것 같군.
천히 피가 멎는 것이 보인다.
아하세요?
-아니.
-아니.
시오엔의 얼굴에서 나오는 말이라 그런지 조금 귀엽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 남자의 빛 때문에 또 문양
처럼.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부모가 그렇듯이, 언젠가는 시오엔의 감정도 사라지고 내 마음도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사랑이란 그런거잖아? 드라마를 보아도, 책을 보아도, 게임을 해도- 인간은 결
-방해할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이방인이다. 이렇게 사람을 찌르고 온갖 암투가 횡횡하고, 마법에 각인에 알지도 못하는 기술이 총 동
했을 새 어머니에게 축복도 해주고 싶다. 내일을 걱정 없이, 그리고 내가 의도한대로 내 인생을 조절할
시오엔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를 정말 지켜주고 싶지만.
-너를 사랑해.
린애인 것 같다. 다섯 살? 여섯 살?
「깼군.」
「창녀같으니.」
었다.
「너같은 건!」
‘마이는 네가 아니야.’
「읍읍!」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이 꼭 이런식이다. 린트인 아이들이 그립다. 그 아이들은 착하고 총명하고
「당장 안 닥쳐?」
황태자의 방은 삼층이라 들었다. 화려한 내장으로 보건대 황태자의 숙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을 여니 바닥이 멀리 보였다. 이 황궁은 유난히 천장이 높아, 삼층이라 할지라도 거의 육
터져나갔다.
다.
「시오엔 불러와.」
하는 거겠지. 그러나 불러오지 않으면 황태자가 죽고, 그럼 신전파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지랄한다.
데려올래, 아님 정말 죽여버릴까.
그 말에 신관들이 움찔거렸다.
「타협은 없다, 황제를 데려와!」
거 외에는 계속 문가의 놈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티엔이 황제에게 갔고, 티엔을 제외하면 황태자를 진
심으로 위하는 인간이 이 멤버중에는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끝이다.
다.
그리고 그들이 강제로 무릎을 꿇은 채 옆으로 비켜지고, 시오엔이 들어왔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마이 유브라데.」
리로 선언했다.
「아, 아바마마!」
「전하!」
티엔이 비명을 지르자, 시오엔이 티엔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황제의 병사로 보이는 남자가 티
「죽여라.」
시오엔의 명령에, 모든 사람의 목에 대어졌던 칼이 서슴없이 움직였다. 비명도 무엇도 없이, 사람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거의 동시에 그들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방금전까지 움직였던 사람들이,
「우와아아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누가 나를 흔들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뭔가 말하고 있어. 그러나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다. 사람
다.
한참을 고함을 지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쓰러지고 있다. 정신이 멀어진다. 이 감각이, 이토록 고마웠
던 적은 없었다.
「지켜준다더니……」
비서관의 목소리다.
「아직입니다.」
「잡아내. 분명히, 대신들 중에 협력자가 있다. 그들은 회의장을 지키는 부대의 완장을 차고 있었어. -
「명을 받듭니다.」
「반드시 잡아내라.」
그저 잡아내라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에 질리게 했다. 그는, 죽여버릴 것이다. 어쩌면 마이
「완장의 원 주인들은?」
「제대시켜.」
「명을 받듭니다.」
「그대는 늘 내 손을 벗어나는군.」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대는 내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상하지. 그대를 아무리 잡아놓아
시오엔의 몸이 내 몸위로 덮였다. 그 체온과 무게가 느껴졌다. 그리고 숨결이 귀에서 흩어졌다.
황제가 속삭였다.
힘으로는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럴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 가운데, 가만히 그에게
안겨있는 수밖에 없었다.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시종들을 인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깨어나……!」
랑일까? 이렇게 지치고 힘들고 화나는데도, 상대가 깨어나라고 하자마자 눈을 뜨는 것이? 너무 바보같
지금 나는 억울해하고 있다.
을 받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어나긴 일어났는데……」
다.
「뭐에 대해서?」
「뭐에 대해서든.」
「도망칠건가?」
「못 친다는 거, 아시잖아요.」
「도망 안 쳐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방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시오엔은 나를 자신의 방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고, 시오엔의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엄중한 감시와 몸수색 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치수재기.
절차외우기.
연설문외우기.
황궁에 만들어지는 외국인 숙소의 방을 배정하기. 역시 그들의 자리를 배정하기. 그들에게 편지쓰기.
수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내게 떨어졌다. 나도 그것들을 하려고 애를 썼지만, 내 체력은 떨어져 있어서
내 마음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시오엔도 비서관도 나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도리어
「잠이 오지 않나?」
시오엔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물었다.
「조금.」
「황태자를 처형한다.」
「언제요?」
「오늘, 오후에.」
내 등으로 흘러 간지럽혔다.
그럼 왜 물어보는거지?
「글쎄.」
는 걸지도 모르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엉덩이 사이에 물건을 끼우고, 노골적으로 귓가에 신음을 내지르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뿐, 내 몸은 내 통제밖으로 터져나갔다.
「좋아……」
「좋아…… 움직여줘……」
를 잡고 흔들었다. 차라리 엎드리고 싶은데 엎드릴 수가 없다. 시오엔이 뒤에서 나를 붙잡고 있다. 허
락을 추구할 수가 없다.
「미누, 더, 더 움직여줘……」
느리게 요구하는 말투는 더없이 순종적이고, 내 뒤에서 움직이는 몸은 나를 강탈할 것 같다. 실제로 앞
「좀 더……」
그리고 시오엔이 나를 내려주었다. 드디어 허공에서 침대로 무릎이 닿아서, 안도하기도 전에 시오엔이
내 허리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눈앞이 계속 흔들린다. 눈을 감으려는 순간, 시오
엔의 성기가 내 뒤에 조금 들어왔다.
아프다. 찢어지지 않도록 시오엔이 뭘 바르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절대로 익숙해질
들어왔다.
「숨을 쉬어봐.」
이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억지로 벌어진 뒤는 입까지 관통된 것처럼 아프고, 온몸이 간헐적으로 떨
다. 마치 배설행위를 보인 것처럼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기분이 들어서 약간의 수치심이 생긴다.
금 익숙해지자마자 나는 목을 움츠렸다.
「간지러워요.」
「간지럽다니깐요.」
오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좋다. 이 고통속에서, 쾌락이 도착하길
해서 조금 아쉬웠다. 갑자기 빨라졌다. 시오엔이 허리를 마구잡이로 흔들어서 쫓아갈수가 없다. 허공으
「잠깐, 잠깐만……」
헐떡이느라 고개가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며 시오엔을 쳐다보자, 시오엔이 입술이 닿지 않은채 오
입술이 떨어지면서, 가볍게 키스할 때의 소리가 났다. 그리고 시오엔이 입술을 핥은 뒤 말했다.
「더 허우적대봐.」
그리고 시오엔은 내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사람처럼 거칠게 움직였다. 마라톤을 백미터 달리기 속도로
귓가에서 헐떡이는 숨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였다. 한 사람은 웃고, 한 사람은 헐떡이고 있을것이다. 아
른 것을!
「안돼, 아직이야.」
엔은
온다. 일단 한계점을 지나자 그 때부터는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몸을 흔드는 것도, 시오엔의 입술을 핥
는 것도, 아무것도.
처음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시오엔의 몸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아직도 밤인가,라고 생
각했는데-
「일어났군.」
몸이 결합된 상태로, 시오엔이 가볍게 입술을 댔다. 잘 잤어,라는 식의 가볍고 건전한 키스였다. 지금
일어났는데도, 몸은
사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절했던 것일까, 잠이 든 것일까. 어느쪽인지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아……」
시오엔은 거침없이 신음을 뱉었다. 내 눈을 마주하고서 일부러 자신을 흩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신음은 짐승과 창녀, 그 중간쯤에 있었다. 교태로운 입술로 신음을 뱉으면서, 짐승의 눈으로 나를 보고
「핥아줘……」
「말을 해봐.」
「무슨……」
이 내려와서 시오엔의 물건이 흉기로 느껴질 지경이다. 그의 성기가 내 내장을 찔러 터트릴 것 같다.
「아무 말이나.」
울을 핥고 나는 불만을 터트렸다.
「짜잖아……」
비볐다.
사랑이…….
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숨결이 공유되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몽롱해졌다.
쳐올랐다.
「사랑해요……」
그 순간 몸 안쪽이 뜨거운 액체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시오엔의 정액을 몸으로 받으면서 나는 웃다가
없는데도, 몸이 알아서
로- 그리고 제대로 한
유일한 생각이었다.
때 조금씩 더 위험해지는
「사랑해요.」
‘오늘, 오후에.’
아들이잖아.
나는 단순한가보다. 패닉상태를 일으켜 소리를 지르고 시오엔을 물어뜯었던 것도 기억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 그건 과거. 황태자 처형은 미래. ……잠깐, 미래? 정말 미래일까? 나는 얼마나
……황태자는 살아있는건가?
「누나, 시녀누나!」
앨리스 누나가 귀엽게 고개를 움직이며 물었다. 그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는데, 지금 쪽팔린게 문제가
아니다.
「일단은?!」
식 때문에 무척 바쁘시거든요.」
「시, 시녀장님은요?」
그것은 내 일이었다.
지 못했기 때문에 비서관과 시녀장은 암담한 얼굴을 했었다. ‘달은 왜 이렇게 척박한 환경으로 만든겁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허리가 무지하게 당겼다. 옆구리에 팔을 걸치고 끙끙거리는 내 앞에서 앨리스
누나가 만류했다.
「시오엔은?」
「자숙?」
내가 뭘 잘못해서, 자숙?
「나가면 안되는거에요?」
「실은,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감금상태인 모양이다. 오늘밤에도 돌아오겠지. 돌아오면 황태자 이야기를 해보라고 해야겠다.
-라는 나의 기대를 저버린 시오엔은 저녁에 돌아오자마자 물어본 내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로 대답했
다.
「처형할건데?」
「아, 아들인데?」
얼굴로 해도 되냐.
「그럼, 내 것이 될래?」
「그럴래? 내 것이 될래?」
「……진심이에요?」
「응, 진심이야.」
너 정말 머리를……
「기억하고 있어.」
뭐야, 깜짝 놀랐잖아.
문신?
「진심으로?」
「반정도만.」
「반정도만……?」
「그래, 반정도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반은 진심이라는 건데, 반은 아니라는 거다. 그런 말을, 자기 아들의 목숨을
왜 나한테 이러는거냐?
「그랬지.」
못하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상대를
부둥켜 안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의 시간은 제멋대로 흐르는 법이라,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안고 있었
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시오엔이 돌아왔을 때는 창밖이 밝았으나, 지금은 달빛이 아스라이 아름다
을 가는 것 같은 어조로 속삭였다.
건 내 알바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그 꼬맹이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꼬맹이가 불행하게 버려진
은 안 받는것이 낫다. 받을 때마다 간질거리니까. 그러나 이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던 것이, 재단사가
놀란 얼굴로 비서관을 쳐다봤기 때문이었다.
것이다.
‘평생 너를 미워할거야.’
‘내 것이 될래?’
유일하게 걸리는 것은 시오엔의 저 말이었다. 내것이 될래? 문신을 새기는 것이, 시오엔의 것이 되는
고, 그리고 지금도 미래의 이별을 약속하고 있다. 시오엔은 내가 ‘보내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는 거기
는 것을, 알고 있다.
「무관심하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겁니다.」
조함에 졌다.
「곧 시작할겁니다.」
비서관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내가 처형장에 갈 것이라는 걸 예상했
다는 얼굴이었다.
황제의 방은 황제 직속 부대가 경호하고, 그들의 경호 대상에는 차기 황후인 나도 포함되어 있다. 황궁
특수부대에 들어갔는데 ‘대빵의 애인을 잡아와라’ ‘대빵의 애인을 지켜라’ 따위의 임무만 있다면 짜증
날거다.
라고 말을 건넨 것도 아마 그런 작은 죄책감 탓이다.
처형장이 작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뭐니뭐니해도 상대는 황태자가 아닌가. 황제의 유일한
아들, 황제가 될 뻔한 아이. 게다가 그 아이는 (그게 진짜든 거짓말이든은 좀 제쳐두고) 신이 ‘위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시오엔은 나를 보자마자 거리낌 없이 내 어깨를 안았다. 남자끼리, 그것도
였다.
「시작하는군.」
아이의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질질 끌리는 걸음이긴 해도 스스로 걷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
가 아니었다.
「저기 보여?」
「문신의 도구다.」
정감을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뭔가에 쫓기고 있고,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굴고 있
살려둔 다음에, 내가 이년뒤에 도망치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가서 말하는 거다. ‘내가 지켰
「하게?」
끔직할 것이다.
「비 마마, 정말 하시게요?」
뭐 대충 그런 내용의 뉴스.
애도 견뎠고, 안 죽었다는데.
비서관이 물었다.
계단에서 이어지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병사의 안내를 받으며 처형장에 발을 내딛었다. 모래바닥에 신
「하늘이……」
누군가의 중얼거림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보자,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까는 분명 화창한 날씨였
자기를 구해러 왔다고 생각한건지, 황태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의 팔이 허공으로 조금 올라가는
한 짓이었다.
크게 들이키고 볼품없이 내뱉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화로앞의 병사가 달궈진 쇠막대의 손잡이를 내밀
었다.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는대도, 그 뜨거운 온도를 느꼈다. 식은 땀이 이마와 등에서 동시에 흘렀
다.
눈을 감았다.
이를 악물었다. 팔뚝 가까이 그것을 대고, 거기서 느껴지는 온도에 치를 떠는 순간, 병사가 말했다.
「비 마마, 멈추십시요!」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빌어먹을.
시오엔이 이층 높이의 난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는 순간, 나는 망설임
「으아아악-」
「웃기지 마!」
을 수 없었다.
시오엔은 뭐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기다릴 수 없었다.
말해야 했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모순된 생각은 하나는 가슴에서 하나는 머리에서 오는걸까.
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지럽다.
그가 들었을까.
오엔이 내 손을 제지했다.
다정하고 상냥한 얼굴. 여자와는 다르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부드럽게 웃고 있는 시오엔이다.
시오엔이 아름다운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듣는 그 목소리는 노래를 듣는
나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어. 나는 당시에 힘을 원했거든. 특별히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는 아니었지
만, 부모를 빼앗기고 형제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고 툭하면 신전이나 세워달라고 하면서 남의 인생을
달라고. 식사에 들은 독, 시녀들의 은근한 학대, 심심하면 나를 죽여야한다고 부르짖는 대신과 신관들.
다.
「나는 원한다고 대답했지.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
도 같다.
날려버렸지만.」
「……날……려요?」
리고 그 빛이 사라진
순간, 시체들을 발견했지. 그것은 아마도, 유일하게,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이겠지. 그들에게는
죽을 이유가 없었어.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을거야.」
그를 끌어안고 다독여주고 싶은데 하니안 때문에 어지럽다. 예전에, 파인에서 잡혀왔을 때도 이랬었지.
행선은 계속되겠지.」
「당신은 신을 믿는구나.」
「당신은 신을 믿는다고.」
「당연하잖아.」
「신은 없어.」
「신은 없어.」
없다는건가?」
시오엔의 부정을 듣고 있자니, 내가 다른세계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로 워프한 기분이 들었다.
「신은 없어. 구원은…… 다른…… 것에서 찾아야 해. 당신은 잘못…… 생각한거야. 당신의…… 힘은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었을
지도 않았다. 의원은 ‘심장이 약하시니 다시는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강조했고, 시녀장과 비서관은
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누구냐.」
「민후.」
아마, 그는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하리라.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 이름을 정확히 말해주었
다.
「아아……」
소리를 했다.
나른한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린다. 좀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매력이다.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잘 잤어요?」
지 말라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신병까지 나도는 상황이니, 그에게 신을 믿지 말라는 건 너무한 소리인 것 같다. 게다가
드래곤도 존재하는
당신한테는 내가 있는데.
는 모른다. 당신이 왜
고,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옳은 방식이라는 건 알 수 있다.
오월의 첫째 날.
린타우 라 크리스티가 나에게 알현 신청을 했다. 나도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에 타이밍이 절
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누가 그런 말을……」
지를 갖다대었다.
「어째서요?」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마마께오서는 조금씩 ‘그’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은 제가 주술을
무슨 캔디맨이냐.
……누가 뭘 어쩐다고요?
지요.」
달려있다는 이야기야?
시오엔을 죽일 수는 없다.
머리를 굴리는 게 귀찮다. 너무 오랫동안 머리를 굴리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은 만사 귀찮고 힘들다.
「예?」
한다.
빈말로도 신관들하고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나쁘지. 아주 나쁘지. 신관놈들이 나에게 이
「어떻게 할까요?」
다.
「들어오라하세요.」
「이 형님들이 지켜주시겠죠.」
「맡겨만 주십시요!」
음, 뭔가 믿음이 간다.
게다가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시오엔의 직속 부대는 상당한 엘리트라고 한다. 시오엔은 자신의
퍽이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월인께오서는 지금 속고 계……」
인내심 오링.
「닥쳐!」
「하명하십시오.」
누군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아니, 낯설다. 그리고 내키지가 않아서 나는 입을 다물고만 있
「내보낼까요?」
「신이 우리를 버렸으니, 이제 모두가 멸망할겁니다. 유브라데는 지도에서 사라져, 가장 불행한 나라로
남을 겁니다. 누구의 기억에서도 버려져, 이대로 파멸하게 될겁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는데,
상도 하지 못했을거야. 너도 그렇잖아.
악마……?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치부했는데, 가면 갈수록 동화된다. 그들의 통탄에 밀려, 뿌리도 없는
아니, 그러지 마.
태도를 확실히 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엔이 자신의 아들을 인질로 나를 저울질 했듯이
지 않다. 그 남자가 악마든 전쟁광이든간에, 그 남자를 살리고 싶다. 그 남자가 정말로 악마라면……
나는 같은 죄를 짓겠다.
처럼 반복해야 했다.
마음한쪽이 무거워졌다.
알현신청에 응한지 나흘. 시오엔은 진지하게 「알현을 미뤄줄까?」라고 물었다. 시오엔뿐만 아니라 대부
생각도 못했다는 분위기였다. 알현신청은 공개적으로 받기 때문에, 순서를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것이
속했다.
「오랜만이야.」
「무엄하다!」
「당장 예를 갖춰라!」
시오엔 부대의 형님들은, 의외로 다혈질이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나를 좋아했다. 내가 월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황재의 애첩이 아닌 월인을 경호한다는 측에서 임무가 막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
……지금처럼.
남자가 빈정거렸다.
「무엄한 건 너희쪽이야.」
그 말에 병사들이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민후.」
평범하게 생긴 남자였다. 그 남자는 정확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말했다. 그제야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정말 어디 안 좋은 거야?」
「용건!」
「무슨 일 있었어?」
「시오엔.」
그 이름에 드래곤이 「아아, 그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지 않을 리 없지.」라고 가볍게 불평을 늘어
「대답하세요.」
「거짓말. 다 알아봤어요. 시오엔은 나라연을 계승한 자이기 때문에, 당신의 영역내에 있다며? 그래서,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보여주지 않는 감정들.
「됐어요.」
「뭐가 돼? 내가 아니면……」
「……됐어요.」
「미누.」
서 그는 나를 부른 것이다.
나는 그를 지키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신이 죽는대요.」
시오엔이 애무하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감미롭게 키스하며, 시오엔은 마치 별 거 아니라는
말투로 물었다.
「누가?」
「골드 드래곤이.」
「언제?」
「아아, 그렇군.」
닿은 채 살짝 미끄러졌다.
「믿어요?」
「뭘?」
했다.
「그래서?」
「대답 안했어요.」
곳을 긁어대었다.
「뭘 말이야?」
시오엔은 바로 대답했다.
「거절해.」
「거절할거지?」
「응……」
는 입밖으로 대답해야했다.
「이미 거절했어……」
「착하네.」
가장 흔한 거짓말은 ‘자기 아이를 예뻐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다. 그런 부모는 있다. 그것도 상당히 많
다. 이 진실은 두 가지의 부작용을 낳는데 집착과 방관이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는 그들을 잘 키우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자기 아이를 예뻐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고. 또 그들은 말한
「스스로 구하세요.」
있을만한 방식이었다.
「예?」
「신병은 전염병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그럴지언정 이 동네는 틀린 모양이다. 최소한 내 눈앞의 신관은 확실히 틀리다.
다.
「미누, 제발 좀……」
그 목소리는 시오엔의 것이었다. 시오엔이 난처한 목소리로 「진정 해봐.」라고 나에게 속삭였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광경이 있다. 사람들의 목에서 일시에 피가 뿜어져 나오던 소름끼치던 장면이,
「내보내세요.」
속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시오엔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황제로서의 시오엔이 무섭다. 그
라고 믿고 싶었다.
「추워?」
「아뇨.」
않지? 자꾸 속이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뭔가가 자꾸, 내 안에서 비밀로 되어버린다.
시오엔을 사랑하는데도……
「아아……」
아닌 것 같다.
「맛이 별로야?」
그러나 그 월인은 사람을 구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 황제와 혼례를 치룬다고 한다. 그들 입장에서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전은 너의 적인가?]
러나- 신전은 너무나 큰 단어였다. 그 단어에 속한 자는 대신관 세명과 라브만 정도가 아니다. 그 이상
이었다.
나는 왜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
「엇……」
「레니……」
어어어어어……
아니, 이거 못 올 데를 온 것 같은 기분이 살짝, 들려고 하는데.
시오엔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비서관에게 늘 ‘시간 있느냐?’고 물어보는 황궁
애원했다. 국무대신은 일단 레니 데이비드 비서관이 걸리면 황제고 나발이고 집어치우는 경향이 강하기
프러포즈가 아니었다. 이것은 자신의 동생을 대신해서 건넨 프러포즈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국무대신의
「레니……」
고,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린타우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 시오엔과 나에게 목례를 해보인 뒤 가려다가
「내가 하지 말랬지!」
국무대신이 주먹을 사정없이 내지르는 것을 슬쩍 피하며, 린타우는 경악으로 가득찬 나에게 느끼한 윙크
를 날린 뒤 사라졌다.
온갖 분란거리를 남겨두고서.
차가운 침묵속에서 시오엔과 나는 양쪽의 눈치를 보며 스프를 떠먹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난
질렸다.
「난 너를 좋아하는 거, 너도 알잖아.」
「헛소리!」
「그랬다면, 좀 더 진지하셨어야죠.」
「친구사이.」
「거짓말.」
「말도 안돼.」
시오엔의 목소리가 현저히 낮았는데도, 국무대신은 시오엔을 노려보았다. 시오엔은 딴청-나를 응시하기-
았다.
이런 폭풍우 모드의 비서관은 천하무적이다. 아마 유브라데 최강일 것이다. 잘은 몰라도 드와나 대륙까
「쫓아가세요.」
헉. 다리 사이에 얼굴이……
「나도 봤어.」
뭘?
「헉, 정말이요?」
만, 그래도 비서관에게는
불망 비서관을 쫓아다니는거지?
알 수가 없네.
시야가 흐려진다.
상대밖에 보이지 않고, 이성이 희미해지고, 알 수 없는 감각들이 덮친다. 상대를 더듬는 나의 손도, 정
거지?
「세상에는.」
다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그정도라면……나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마이를 좀 더 키워서……」
「……이러지 마.」
난처하게 웃는 것이 진짜 딱 내 취향이다. 알고보면 나 취향 나쁜 거 아닐까?
내 빈정거림에 시오엔이 울컥한 얼굴로도 웃었다. 이야, 저것도 재주다. 게다가 굉장히 가련해보인다.
「늙은이.」
「……후회 안하지?」
시오엔의 물건은 이미 내 손안에 있었다. 시오엔의 얼굴이 천천히 변했다. 나는 사실 아름답고 어딘가
위험함.
「시오엔이야말로.」
「아……」
「더 벌려줘.」
「다리 잡아줘.」
통스럽다.
「그냥 해줘요……」
손가락을 넣었다.
「아……제발, 그냥……」
「물어줘.」
「무리……」
밖으로 나올때는 오무라들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부채살처럼 펼쳐졌다. 입구가 아닌 안쪽이 넓혀져 나는
「싫어……」
「뭐가 싫은데?」
「자세가……」
「지금은 뺄 수 없는데.」
시오엔이 난처한 목소리를 냈다. 말을 제대로 할 수조차 없다. 시오엔의 손가락이 내 혀를 애무하고 있
「이대로 돌아볼래?」
뺨이 더울 지경이다.
「아, 아니 그건 싫……」
「닿지 않지?」
「읏……응……」
천천히 몸을 뒤집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고, 시오엔이 도와줘야 했다. 뒤집자마자 시오엔의 손가락
이 빠져나갔다. 이제 겨우 닿을 수 있었는데!
「안돼!」
다. 방금까지 학대받았던 뒤가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와 시오엔의 시선이 동시에 느껴져
「더러워, 하지 마!」
「거짓말쟁이.」
데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한 맛이네.」
맛?
순간, 진짜 놀랄 뻔 했지만……
시오엔의 충고는 한없이 옳았다. 알현실에서 나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앉아도 편치가 않아서
뒤척이게 된다. 아직도 거기가 벌려져있는 느낌이었다. 안쪽에서 이물감이 느껴져 난처하게 입술을 깨물
어야했다.
오늘은 만사 귀찮다.
「그래요.」
뭐가 문제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월인이시여, 월인께서는……」
「황비에요.」
은 걸 보냈냐니. 왜냐하면-
신은 없기 때문이야.
나는 그냥 길을 잘못 든 인간일 뿐이야.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안됐네.
나도 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인정사정 없구나.
신관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었다. 자세히 보니 이 신관, 나이가 그렇게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몇 살일
르겠다.
「니타우 라 크리스티.」
는 그 목소리에 오싹해졌다.
한숨을 섞어 물었다.
로 처벌받겠습니다.」
굴은 신중하고 진지했다.
요.」
「예?」
아아, 그거.
걸까요? 신관을 족쳐서 알아낸 바로는 그 계시가, 정말이라고 하더군요. 깃털이니 뭐니 하는 건 거짓말
마마의 목숨을 구하고, 비 마마에게 프러포즈하는 걸까요? 비 마마가 오시자마자 신병이 사그러들었습니
「모든 것이 어떻게 이토록 비 마마의 사정에 맞춰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 마마, 아
니 이계의 객이시여. 계약은 지킵니다. 이년이 조금 더 남았지요. 시간이 되고, 그 때에도 비 마마께서
귀환을 원하신다면 반역을 해서라도 돌려보내 드릴 겁니다. 제 목숨을 걸지요. 그러나 그 전에 여쭤보
‘내 곁에만 있어.’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시오엔의 뜻이 그렇다면.」
「예?」
「시오엔이 유브라데를 구하라고 한다면, 그리고 제 능력이 되는 한도내에서 방법을 알려준다면 최선을
다할거에요.」
「폐하가 원치 않으시면요?」
「안 구해요.」
사람이 죽는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간다. 신관들
의 자리를 잡고 있다.
뒤는 돌아보지 마, 김민후.
수는 없어.
「이야, 열렬하신데요.」
「뭐가요?」
잘 모르겠지만.
다.」
악역?
너무나 낯설어서 어지러울 정도였다. 악역이라고? 내가? - 그렇게 놀라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어이가
었다.
되어있지 않다. 할 수 있을리 없다. 악역이라고? 악역을 해야 한다고? 사람을 존경하는 것. 약자를 지
그게, 당연한거잖아.
「악역하죠, 뭐.」
나는 자존심이 좀 높은 편이다.
「아뇨.」
각오라니-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요.」
「아니요.」
「차라리 화를 내세요!」
「화 안났다니깐요.」
「네.」
아뇨.
「정말이시죠?」
「물론이죠!」
다정하게 웃는 그가 정말 좋다.
악역, 하지 뭐.
‘하면 된다’고.
있다. 나에게만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어. 그에게 기대면 그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그가 아무리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랑하거든요. 시오엔……
그러니까 약속해주세요.」
「뭘?」
「이년 뒤에는 나를 보내준다고.」
「싫어.」
「시오엔!」
쳐다보게 했다. 그의 시선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절망감이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
다.
성을 바꿀 수 없어.
그러니까, 시오엔-
달콤한 꿈을 꾸게 해줘.
건 다른 남자애들이
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그냥 싸움이었으니까.」
시오엔이 속삭였다.
어, 뭐라고?
나를 안은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내가 옛날에 기도소를 날려버렸다는 이야기 했었잖아. 네 상황은 잘 알아. 그리고 말해두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아무도 너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이도 나도 너와는 달라. 미누……마이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아이가 아니야.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 빌어먹을.
「미누.」
「나는 잔인한 당신을 볼 자신이 없어. 정말이야. 나에게는 다정하지만 온 세상 사람에게 다 다정한 건
「미누.」
시오엔이 눈을 감았다.
사를 존중하겠다는 표현이 중요했다. 나는 약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제 악역을 자청하게 될지도 몰라.
「단 한번이야.」
시오엔이 이를 갈았다.
은 못해. 그러나, 단
「결혼해주세요.」
「뭐?」
시오엔이 되물었다.
「뭐?!」
이년뒤에 떠나겠다면서 결혼을 운운하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시선이다. 아아, 그럴지도 몰라. 그런
「나는, 황비역 때문에 당신과 혼례식을 올리는게 아니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거야. 비록
헤어진다 하더라도,
「얼굴은 웃고 있는데?」
엔. 뭘 믿고 이렇게 귀여운거냐.
갈 구석을 마련하고
얼굴은 웃고 있다니깐……
「당신이 원하는대로 해줄게. 그러니까 당신도 내가 원하는거 하나만 들어주면 돼.」
나는 웃었다.
그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당신을 기억할거야.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당신에게 제안하는 거야. 내 마음의
「영원은 없어요.」
「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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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본문 끝.
에필로그 하나 남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또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이 소설을 동인지로 낼 생각이었다면 좀더 일, 이부를 명확히 나누었을텐데
컨트롤 부족입니다.
Epilogue
사내가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그 뒤에서 사내의 직속 부대원들을 무표정한 얼굴을 하
래곤들이 그들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영원의 시간동안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눈앞의 사내였다. 눈앞의 사내는 고문과 협박의 대가였으므로. 현생의 안전과 후생의 행
상대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였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조차 없었다.
사내는 무서운 주군이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불가능한걸 가능하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내렸다. 그것은 눈이 내리는 것 같기도 했고, 깃털이 흩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재가 드래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내의 검술선생이자, 사내의 총애를 받는 수르트 장군이 나직하게 물었다. 그것은 사내가 괜찮냐는 의
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소년이 생각났다. 사내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하고 총명하고 정
에서는 어둠을 담아 검고, 낮에는 짙은 갈색으로 순결한 마음을 숨기고, 빛을 받으면 밝은 갈색이 되는
「안 괜찮아.」
사내는 수르트가 어떤 의미로 물었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인간으로
사내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특별히 소심해서가 아니라, 들을 상대가 없는데 지껄이는 취미는 없기 때
문이었다. 사내의 등 뒤에서 고고하게 타오르는 사내의 분노를 온 세포로 느끼며 수르트 이하 군인들은
황제가 정확히 일주일만에 환궁했을 때, 황제의 부대원들은 탈진했고,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황제
황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황비는 탑에 갇혔고, 황제는 황비일로 열 받아 있었
속에 각인을 집어넣은 것에 육체를 찾아내서 죽이다니- 황제는 사랑의 파티때부터 골드 드래곤을 의심하
모든 인원은 황제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조아린채 황제의 말 혹은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슬쩍 황제를 지켜보던 레니 데이비드 비서관의 죄책감을 동하게 했다. 이런 사내라
답은 바로 레니의 마음속에서 나왔다. 답은 아니었다. 남보다도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법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레니 데이비드.」
「단식중입니다.」
「단식? 누가 말이냐?」
「황비가 단식중입니다.」
「이유는?」
「건강은?」
「건강에 아직은 이상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틀 더 단식을 하시면 좋지 않다는 궁의의 판단이
「사흘이옵니다.」
차며 자신의 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긴 꼬리가 붙었다. 나프라 시녀장, 국무대신, 비서관, 수르트
그냥 방에 둘 것을 그랬나?
사내는 그로서는 드물게 후회했다. 하지만 정치범들을 가두는 저 탑은, 골드 드래곤의 마법을 소진하는
효과가 있었다. 옛 선조가 골드 드래곤을 가두려다가 실패한 탑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저 곳
에 넣어둔 것이었다. 자신 없는 동안 혹시라도 소년이 골드 드래곤과 만난다면-그게 꿈이든 현실이든-,
이라는 가정만으로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런 자신의 독점욕을 들키는 날에는 소년의 사랑
다.
설명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며 느긋하게 목욕을 하는 사내의 옆에서 시녀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사지부터 손톱손질, 머리카락에
「데이비드, 그래서?」
다. 보고를 들으며 모든 치장을 끝낸 사내가 당연한 듯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사내를 보필하는 자들
도 당연한 걸음을 했다. 사내가 이 정도로 치장을 했다는 건 단 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가 분명
하기 때문에.
‘골드 드래곤을……’
국씩 내딛다가 자신을 발견한 소년과 시선을 교환했다. 소년은 사내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채 그저
소년의 커다랗게 뜨인 눈동자는 소년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사내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일
사내는 웃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소년과 사내의 중간에 있는 여자가 걸렸다. 어렴풋이 생각날 것
‘보초.’
‘데려가라.’
베일을 쓴 공녀가 흘끗 소년을 보고 움직였다. 사내가 없어졌던 사이 황궁 내 질서가 개판이었다. 피바
람을 일으킬 작정을 하면서 사내는 감옥 안으로 발을 옮겼다. 사내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소년이 뚫어
지게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섞인 염려와 슬픔과 애정을 느끼면서 사내는 속으로 웃었다. 이렇게 길들
는 보석보다 예뻤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저렇게 외로운 얼굴로, 사내앞에서. 사내는 소년을 잘 알았
「울지 말아.」
이 나올 것 같았다. 소년의 사랑이 기뻐서 지금이라도 소년을 눕히고, 탐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내는
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촉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것이 온 몸을 불태우는 질투를 낳았다. 그 질투 때문에 불사의 존재이자 자
사내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사내는 소년에게 아무 대답도 주지 못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도, 소년에게 진심으로 부딪칠 수도 없다. 세상은 대가가 따르는 법. 소년을
너는 나를 지킬 수 없어.
분명 너의 적은 나일테니까.
네가 지켜야 하는 것은 너 자신이야.
사내는 소년을 안은 채 눈을 감았다. 하지만 외곬수인 소년은 사내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목
없었다.
고 있었다.
「그렇지, 뭐- 어쩔 수 없지.」
소년의 목소리가 생각나서 사내는 피식 웃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애절하게 매달리는 소년
-미안해-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이 그렇게 속삭였다. 정직한 눈물을 감추지도 않은 채, 사내의 품에서 떨고 있었
다.
-불안하게 해서……-
사내는 웃었다. 소년이 정신을 잃는 것을 보면서 사내는 그저 웃었다. 소년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사내
가 본 적이 없는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사내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더 욕심이 커져간다. 소년이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알아주길 바란다. 소년이 자신을 지켜주길 바란다. 소년이 자신을 믿어주길 바라고,
사내가 소년의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소년은, 사내의 앞에서 그 깨끗한 목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전혀 미안하지 않아.
좀 더 몸부림쳐줘. 좀 더 나를 사랑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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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추가합니다!
골드 드래곤은 안 죽었습니다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