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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의미학 16, 2005.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김 은 영
(전남대학교)

<Abstract>

Kim, Eun-Yeong. 2005. A Study on the Range and the Meaning


Characteristics of Emotion Verbs. Korean Semantics, 16. The
definition of the range of emotion verbs should be preceded to study
them, which hasn't been made in the precedent studies. Therefore,
this study begins with observing the characteristics of emotion,
defining the range of emotion verbs and finds out general meaning
characteristics of them. In general emotion occurs on the basis of
some stimuli without any deliberate intentions and it is also
subjective responses depending upon internal experiences of the
emotion subjects. In addition it is deeply related to physical changes
and represents mental state. So the range of emotion verbs can be
defined as vocabularies suitable to verification frame of “have a mind
to ---” and “a mind at --- state” and the subjects of sentences are
always expressed ‘the subjects of experiences’. They are the verbs
premising factors of intelligence like ‘perception’, ‘judgement’ or
‘trust’ in some objects or situation. These emotion verbs have usually
such meaning characteristics as ‘connection, degree, unconsciousness,
passive control, experience, evaluation’. ‘Connection’ and ‘Degree’ in
general meaning of emotion verbs are newly-found meaning
characteristics in this study. Although ‘unconsciousness, passive
control, experience’ have been remarked in precedent studies, this
study explains emotion verbs as syntactically controlled state setting
up the objective basis of study of them. Particularly this study finds
that ‘control possibility’ of ‘passive control’ is more related to ‘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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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inct’ than ‘emotion occurrence’ and it exists more in cause-


centered emotion verbs than object-centered emotion verbs. The precedent
studies see that emotion verbs take characteristics of evaluation depending
on situation but this study discover that all emotion verbs have a bit of a
characteristics of evaluation.

핵심어 : 감정(emotion), 감정동사(emotion verb), 연접성(characteristics


as connection), 정도성(characteristics as degree), 비의도성
(characteristics as unconsciousness), 소극적 통제성(characteristics
as passive control), 경험성(characteristics as experience), 평
가성(characteristics as evaluation).

1. 머리말

국어의 동사 중에는 감정을 서술하는 부류가 있다. 이 부류의 동사는 인간


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다는 점에서, 의미론적 접근이 요구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국어 감정동사1)
에 관한 선행 논의를 살펴보면, 대체로 인지동사나 감각동사와 함께 심리동
사의 범위 내에서 다루고 있다. 인지동사나 감각동사를 제외한 개념의 감정
동사에 관한 논의로는 김선희(1990), 임은하(1998)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감
정동사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면서도 감정동사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범위의
규정 없이 몇몇 어휘만을 대상으로 하여, 개별 어휘의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러나 감정동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감정동사의 범위를 먼저 정리

1) 본고에서 사용하는 ‘감정동사’는 감정형용사까지 포괄한 명칭임을 밝힌다. ‘동사’라는 용


어는 ‘형용사’를 포괄하여 지칭하기도 하고, 형용사를 제외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감
정동사의 논의는 ‘김영희(1988)의 평가동사’, ‘김흥수(1989)의 심리동사’, ‘양정석(1995)의
느낌동사’, ‘김선희(1990)의 감정동사’, ‘이익환(1995)의 심리동사’, ‘이창용(1988)’의 자기
판단동사 등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의 ‘동사’는 모두 ‘형용사’까지 포괄한 개념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감정동사 논의에서 선행되어온 포괄적 의미의 ‘동사’ 개념을 인정하
여, ‘감정동사’라는 용어로 감정형용사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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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감정동사의 보편적 의미 특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런데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대한 이해가 바탕
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감정’이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감정’과 의미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감각, 인지’의
개념들과 함께 감정의 특징들을 정리하여, 이를 바탕으로 해서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하고자 한다.

2. 감정의 특징과 감정동사의 범위

2.1. 감정의 특징

‘감정’이란 오랜 역사 동안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본 절에
서는 감정이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감정에 대
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고자 한다. 김명훈․정영윤(1991: 127-128)2)
이나 Harbert Rohracher(1976: 409-410)에서는 감정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김명훈․정영윤(1991: 127-128)3)
① 감정은 주관적이고 전체적이다. 개인에 따라 반응 양태가 다르며 신체와 정신
양면에 걸친 전체적 반응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② 습관적 행동 이외의 모든 지각에 감정이 따른다. 감정은 보통 생활 환경에서의
습관적 행동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상 상태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는 것이
감정인 것이다. 예컨대 욕구 불만, 갈등 사태 등 새로운 자극 조건 하에서 발생
하는 것이다.

Harbert Rohracher(1976: 409-410)


① 감정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2) 김명훈․정영윤(1991)에서는 ‘감정’대신 ‘정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3) 본문에서 제시한 특징 외에도 몇 가지 특징을 더 기술하고 있으나 본고에서는 생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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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감정은 의식적인 의도의 가담 작용 없이 나타난다. 이것은 여하한 의식적 의도


없이, 원하지 않는 데도 나타난다. 따라서 감정은 자발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③ 감정은 외적 혹은 내적 사상에 대한 정신적 반응이다. 이 정신적 반응의 원인은
대개 의식적이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기뻐하며, 왜 슬퍼하는지, 왜 노여워하는
지를 알고 있다.4)
④ 대개의 감정은 유쾌하거나 불쾌하게 체험된다. 그러나 예외적인 감정도 있는데,
후회나 연민의 감정이 불쾌하거나 유쾌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위의 특징들을 정리해 보면, 감정이란 습관적 행동을 제외한 모든 지각에


나타나는 것으로, 비습관적이고, 주관적이며, 전체적인 것이다. 또 감정은 과
정이 아닌 어떤 정신적 ‘상태’이며, 의식적 의도와는 무관하게 발생하고, 외적
내적 사상에 대한 정신적 반응이며, 대개는 유쾌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나타
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실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감정이 ‘비의도적’이며 ‘주
관적’이라는 것이다. 감정이 ‘비의도적’이라는 것은, 감정의 발생이 의식적 사
고 작용과는 무관하다는 것으로, 이는 ‘사고’의 작용인 ‘인지’와 구별되는 중
요한 특징이다.5)
또한 감정이 ‘주관적’이라는 것은 감정의 발생이 개인적인 ‘경험’에 의존하
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감정이 발생
할 수 있는 것은, 감정 주체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정은 감
정 주체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6)
이처럼 감정은 자기 자신의 내적인 ‘경험’과 관련 있기 때문에, 타인의 감
정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쁘다.”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2인칭이나 3인칭을 주어로 해서, 직설법 현재형을 사용하면 비문
법적인 문장이 된다. 즉 “당신은 기쁘다.”, 또는 “저 사람은 기쁘다.”라는 말
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제외한 상대방이나 제 삼자의 감정을

4) 감정 자체는 비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이며 자발적인 것이지만, 감정 발생의 원인은 지각


이나 인지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고 2.1.2.에서 이루어진다.
5)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고 2.2.에서 이루어진다.
6) 김흥수(1989)에서는 ‘내적 경험’ 개념을 상정하여 심리동사가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
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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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기 때문에 직설법 현재형으로 사용할 수 없다. 감정이란 자신의 내


적 경험을 통해서 느끼는 주관적인 것이다.
그리고 감정은 심신 양면에 걸쳐 전체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게 되며, 역동
적이고 시간적인 경과를 보인다. 즉 어떤 감정 상태가 일어나면 그것은 곧
생리적․신체적 변화가 일어나서 신체 외부의 변화를 유발하게 되며, 이것이
원인이 되어 긴장 해소의 행동이 나타나게 되고, 감정이 발생하기도 한다. 요
컨대, 신체 변화와 감정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7)
또한 감정이 내․외적 사상에 대한 정신적 반응이라는 점은 감정이 어떤
‘자극’을 전제로 하여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감정의 발생은 생리적․신체
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고, 감정 주체의 요구 수준에 의한 심리적인 사
항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기도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서, 혹은 문화적인
원인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감정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
라, 감정 주체가 신체적인 자극을 경험하거나, 그 외의 외적․내적 자극들을
경험하게 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이란 대체로 어떤 자극을 전제로 해서 발생하되, 의식적 의도
와는 무관하게 발생하며, 감정 주체의 내적 경험에 의존한 주관적 반응이고
신체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신적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
리해 볼 수 있다.8)

7) 감정이 신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철학, 심리학, 감성 공학 등 모든 분야에서 감정의


중요한 특성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국어학적인 연구로는 임지룡(1999, 2000,
2001)이 있다.
8)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성적이 떨어져서 우울해 한다고 하자. 이 때 학생이 느끼는 우
울한 감정은 ‘성적이 떨어졌다.’라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생한 것이고, 학생이 의식적
으로 의도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발생한 것이다. 성적이 떨어진 것에 대해
의도적으로 우울해지려고 해서 우울해진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울해
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우울함은 학생이 경험한 자신의 내적 경험에 의존한 반응이
다. 성적이 떨어져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학생이 지금껏 경험해 온 여러
가지 경험들에 의존하여 나타난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해서 모두 다 우울해 하지는 않
을 것이다. 감정 주체에 따라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며, 창피함을 느낄 수도 있고, 질투심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자극 조건 하에서도 어떤 감정을 어떻게 느끼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감정 주체의
내적 경험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느끼는 우울함은, 체험적인 과정이 아
니라 정신적인 상태이고, 가슴이 답답하다든지 하는 신체적 변화를 수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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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감정동사의 범위

이제 2.1.의 논의를 토대로 하여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해 보자. 지금까지


이루어진 감정동사의 논의가, 대체로 심리동사 내에서 인지동사나 감각 동사
와 함께 다루어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감정’은 ‘인지’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하는 데, 인지동
사나 감각동사와의 차이점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본고 2.1.의 논의를 보면, ‘감정’이란 자극을 전제로 하여 발생하는 ‘비의도
적인 반응’이라고 하였다. ‘비의도적’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감정이
‘의식적 인식’인 ‘인지’와는 다른 것이며 다른 동사류와도 차이를 보인다는 것
이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1) ㄱ.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김치를 담그셨다.


ㄴ. *미국은 한국에 이라크 파병을 자신들도 모르게 요구하였다.
ㄷ. *그는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2) ㄱ. *요즘 그는 오직 돈벌이만을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다.
ㄴ.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자신들도 모르게 이해했다.
ㄷ. *영이는 철수가 오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알았다.
(3) ㄱ. 채널을 돌리 던 중 갑자기 귀신이 보이는 바람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깜
짝 놀랐다.
ㄴ.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되었다.
ㄷ. 가을이 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슬퍼졌다.

위 예문(1)의 ‘담그다, 요구하다, 입사하다’는 모두 주체의 의식 작용의 요


소가 있는 동사들이다. 따라서, 의식적인 인식의 요소가 배제되어 있는 ‘자신
도 모르게’와는 호응하지 못한다. 예문 (2)는 ‘생각하다, 알다, 이해하다’라는
인지동사 구문인데, 이들 또한 ‘자신도 모르게’와 호응하지 못하거나 매우 어
색하다. 그러나 예문 (3)의 감정동사 구문은 ‘자신도 모르게’와 아주 자연스럽
게 호응한다.
따라서 감정동사를 인지동사나 다른 동사 부류와 구별하는 의미에서, 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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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동사를 규정짓는 어휘로 ‘나도 모르게’를 사용하기로 한다.


그리고 감정동사는 심리동사의 하위 부류로서 그 심리 영역이 ‘마음’으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9) 이는 감각동사가 ‘신체 부위’를 그 영역으로 가지는
것과 구별되는 것이다.

(4) ㄱ. *그녀의 살결이 (마음에) 부드럽다.


ㄴ. *아내가 만든 된장찌개는 (마음에) 너무 짰다.
ㄷ. *오늘 날씨는 (마음에) 꽤 덥다.
(5) ㄱ. 그녀는 그가 (마음에) 믿음직스러웠다.
ㄴ. 며칠 간 굶었는지, 고개도 못드는 노인을 보고 (마음이) 안타까웠다.
ㄷ. 자꾸 말을 바꾸는 그의 태도에, (마음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4)는 감각동사 구문이다. ‘감각’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신체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감각을 표현한 감각동사는 심리 영역인 ‘마음’과는 호응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감정동사는 위 (5)처럼 ‘마음’과 아주 자연스럽게 호응한
다. 따라서 감각동사와 구별하는 의미에서, ‘마음’도 감정동사를 규정하는 어
휘로 설정하기로 한다.
위의 두 가지를 기준으로 하여, 감정동사를 검증하는 장치로 “나도 모르
게~한 마음이 {생기다/들다}”라는 틀을 제시하기로 한다.
또한 감정은 ‘정신적인 상태’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감정의 상태성은 감정
동사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감정동사는 동사이면서도 동작이 겉으로 드러나
지 않는 동사로서, ‘상’에 관한 논의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
태성도 감정동사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보고 ‘마음{이/에}~한 상태”
도 그 검증 틀로 삼기로 한다.

(6) ㄱ. *마음{이/에}{오는/가는/싸운/먹는/만든/보낸/가꾼/입힌/만든/떨어진……}
상태
ㄴ. 마음{이/에} {슬픈/기쁜/서먹한/싫증난/불편한/실망한/후회하는/서운한/

9) 김흥수(1989: 110)에서 심리동사가 ‘마음’과 ‘몸’의 심리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기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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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원망하는/외로운/괴로운/막막한/화난/속상한/가여운……} 상태

예문 (6 ㄱ)은 ‘오다, 가다, 싸우다, 먹다, 만들다, 보내다, 가꾸다’ 등의 동사


들로, 이들은 상태성을 띄지 않아서 ‘~한 상태’와는 공기할 수 없다. 그러나
(6ㄴ)의 감정동사들은 상태성 동사로서 ‘~한 상태’와의 공기가 자연스럽다.
결국, 감정동사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 마음이 {생기다/들다}”와 “마음
{이/에}~한 상태”의 틀을 모두 만족시키는 어휘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감정동사는 어떤 대상이 사태에 대한 ‘지각’이나 ‘인지’를 전제로
하는 동사이다.10)

(7) ㄱ. 사장님은 나 여사님 뵙기 창피하다고 말했다.


ㄴ. 그렇게 놀기만 하면서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다니, 가소롭구나.
ㄷ. 밖에 비가 오니, 맘이 쓸쓸해진다.

위의 예문을 보면 ‘창피하다’나, ‘가소롭다’라는 동사는 어떤 대상이나 사태

10) 감정동사가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서 ‘지각’이나 ‘인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감
정이 ‘비의도적’인 반응이라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인지’란 사고의 작용으로 의식
적인 것인데, 사고의 작용과는 무관하게 비의도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이 ‘인지’를 전제
로 한다는 것이 모순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이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
이다. 감정동사가 지각이나 인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감정이 ‘발생하기 전’에 필요한
요소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감정이 비의도적이라는 것은 발생한 감정 자체가 가지
는 특성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어떤 자극이 있다고 하자. 그 자극을 전제로 감정이 발
생하기 위해서는 이 자극을 지각하거나 인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동일
한 지각에 동일한 인지를 거쳤더라도 어떤 감정이 발생하는 가의 문제는 비의도적이
고 자발적이다. 예를 들어 ‘비가 온다’고 지각하였다고 하자. 지각한 사실을 그대로 표
현한다면 이것은 감정동사 구문이 아니다. 그 지각에 대해서 ‘슬프다, 기쁘다, 누군가
가 보고 싶다, 옛날 어떤 때가 그립다’ 등 저절로 발생한 감정을 표현하였다면 이것이
감정동사 구문이 된다. 이때의 감정동사는 ‘비가 온다’는 지각을 전제로 하여 저절로
발생한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비의도적’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호랑이
를 보고서 ‘저 호랑이가 내게 덤빌 것처럼 보인다’라고 인지하였다고 하자. 인지한 사
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이는 호랑이에 대한 판단이나 믿음을 표현한 인지동사 구문이
된다. 그러나, ‘나는 호랑이가 무서워’라고 한다면, 호랑이가 자신에 덤빌 수도 있다는
등의 판단이나 믿음을 전제로 하여, 발생한 감정을 표현한 감정동사 구문이 된다. 이처
럼 감정은 지각이나 인지를 전제로 하되, 발생한 감정은 비의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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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서 주관적 ‘판단’이나 ‘믿음’과 같은 ‘인지’의 요소를 전제로 하고 있


고,11) ‘쓸쓸하다’는 사태에 대한 ‘지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예문 (7 ㄱ)에서
사장님이 ‘창피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나 여사에게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거나, ‘보여서는 안 될 뭔가를 보여 버렸다’는 등의 주관적 판단이
나 믿음이 작용하여 발생한 감정이다. (7 ㄴ)은 놀기만 하는 대상이 시험에
떨어질 것으로 ‘믿거나’ ‘판단’하고서, 그 대상에 대해 가소로운 감정이 생긴
것이다.12) (7 ㄷ)은 비가 오는 사태를 ‘지각’하고서 그에 대한 반응으로 ‘쓸쓸
한’ 감정이 생긴 것이다.
또 ‘원하다’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데, 이러한 욕구를 표현한 감정동사도,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나 ‘믿음’이 작용할 때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8) ㄱ. 나는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


ㄴ. 나는 편안한 안식처를 원한다.

예문 (8 ㄱ)의 남북한 동포의 화해와 통일을 원하는 ‘나’는 통일과 화해가


국익 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거나’ ‘믿기’ 때문에 생길 수 있
는 감정이다. 또 (8 ㄴ)의 ‘나’가 편안한 안식처를 원하는 것은 편안한 안식처
가 내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하거나’ ‘믿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감정이다. 이처럼 욕구와 관련된 감정은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아무런

11) 감정의 발생에 인지적 요소가 있음은 감정 발생에 관한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자극 → 생리적 각성 → 인지적 해석 → 감정
(2) 자극 → 인지적 해석 → 감정
Schachter-Singer는 (1)과 같이 외부 자극에 의해 유발된 ‘생리적 각성’ 상태를 한 개
인이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강도와 질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또 Lazrus는 Schachter-Singer 이론 가운데 생리적 각성의 측면을 경시하고 자극에
대한 인지적 해석을 중심으로 감정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 과정은 (2)와 같다.
위의 (1)이나 (2)의 견해 모두 생리적 각성의 유무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어떤 자극 상
황에 대해 감정의 주체가 인지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내용이 달라
진다는 견해는 같다.
12) 이 때의 믿음은 반드시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감정은 세계에 대한 어떤 사람의
‘주관적’ 믿음에 의존한다.
108 김 은 영

판단이나 믿음도 없이는 나타날 수는 없고, 믿음이나 판단이 전제되어 나타


난다.
위와 같이 감정동사는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지각’이나 판단이나 믿
음과 같은 ‘인지’의 요소를 전제로 하여 발생하는데, 이들은 또한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
(7)′ㄱ. 생색은 자네가 내고 있으니, ( 자네를 지켜본 적도 없이, 자네를 지켜 본
바에 의하면) 가히 가소롭다.
*
ㄴ. 나는 놀기만 하면서 시험에 붙기를 바라는 ( 너를 지켜본 적도 없이, 너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네가 가소롭다.
*
(8)′ㄱ. 나는 ( 남북 분단의 현실을 경험해 본적도 없이, 남북 분단의 현실을 경험
해본 바에 의하면)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
*
ㄴ. 나는 ( 불편한 생활을 해 본적도 없이, 불편한 생활을 해본 바에 의하면)
편안한 안식처를 원한다.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가소롭다’고 표현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나 사


태에 대해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 (7)′에서 보면 감정 주체는 ‘자네’
나 ‘너’라는 대상을 본 적도 없이, 즉 ‘자네’나, ‘너’를 경험하지 않고서,13) ‘가
소롭다’고 말할 수 없다. (8)′에서도 뭔가를 원하려면, 원하는 대상이나 사태
에 대해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감정을 표현한 감정동사는 감정 주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는 점에서, 구문의 주어는 항상 ‘경험주’로 실현된다.14)
따라서 감정동사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한 마음이 {생기다/들다}”와
“마음{이/에}~한 상태”의 검증 틀에 모두 적합한 어휘로, 구문의 주어는 항
상 ‘경험주’로 실현되며,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지각’이나, 판단이나 믿
음과 같은 ‘인지’의 요소를 전제로 하는 동사이다.

13) 홍대식(1993: 478)에서는 William James(1884)의 논문에 “‘지각’ 자체가 바로 어떤 주


관적 경험”이라고 제안하였음을 기술하고 있다.
14) 감정동사 구문의 주어가 ‘경험주’임에 대해서는 김흥수(1989), 유현경(1998), 우형식
(1996), 임은하(1997), 한송화(2000) 등에서 언급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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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정동사의 의미특성

3.1. 의미의 연접성

감정동사는 의미의 연접성이 있다. 감정동사의 의미의 연접성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복잡하고 미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화자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하나의 서술어로 표현했다 할지라도, 그 감정이 한 가지 감정만
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울하다’라는 동사는,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 따라, ‘슬프다, 답답하다, 두렵다, 쓸쓸하다’ 등의 많은 다른 감정동사
의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감정동사의 연접성은 감정동사가 아닌 어휘에서
도 일부 보이지만, 감정동사처럼 해당 동사 류 전반에 걸쳐서 전체적으로 나
타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의미의 연접성’을 감정동사의 중요한 의미 특성으로
보고, 몇몇 어휘를 대상으로 해서 그 연접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감동하다’의 예를 보자.

(9) ㄱ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 깊은 말에 깊이 감동했다.


ㄴ. 종애는 그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너무나도 감동해서 소리 없이 울었다.
ㄷ. 상사의 선심에 젊은이들이 감동하고 있다.
ㄹ. 박동수는 그 사나이의 성실성에 감동하고 있었다.

위의 예문 (9 ㄱ~ㄹ)의 ‘감동하다’는 모두 ‘기뻐하다’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감동하다’는 ‘기뻐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물론이고, 문맥에 따라서
‘반갑다’, ‘자랑스럽다’, ‘믿음직하다’, ‘고맙다’, ‘좋다’ 등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
다. 그런데, ‘감동하다’가 포함하고 있는 의미는 모두 또 다른 감정동사이다.
이것은 감정동사가 다른 감정동사들과 의미상 밀접하게 연접되어 있다는 것
을 보여주는 것이다.
(9 ㄱ)의 ‘아들의 생각 깊은 말에 아버지가 감동하는 마음’에는 아들을 자
랑스러워하는 마음과, 아들에 대해 믿음직해 하는 마음, 아들이 생각 깊은 말
110 김 은 영

을 했음에 대해 만족해하고, 기뻐하는 마음들이 복합되어 있다.15) 즉 (9 ㄱ)


의 ‘감동하다’는 ‘자랑스러워하다, 만족해하다, 기뻐하다, 믿음직스러워하다’
등의 감정동사 의미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9 ㄴ)의 ‘그가 무사하다는 소
식에 감동하는 마음’에는 그가 무사해서 기쁘고, 반가우며, 안심되고, 그가 무
사한 상황에 만족해하는 마음들이 복합되어 있을 수 있다. 즉 (9 ㄴ)의 ‘감동
하다’는 ‘기쁘다, 반갑다, 안심되다, 만족해하다’ 등의 감정동사의 의미를 포함
한다. (9 ㄷ)의 ‘상사의 선심에 젊은이들이 감동하는 마음’에는 선심 써주는
상사가 고맙고, 그 선심에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마음이 복합된 것이며, (9
ㄹ)의 ‘그 사나이의 성실성에 감동하는 마음’에는 그 사나이의 성실성이 보기
에 만족스럽고, 그 사나이에게 신뢰감이 가는 마음이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감동하다’는 (9 ㄷ)의 문맥에서는 ‘고맙다, 기쁘다, 만족하다’ 등의 감정동사
의미를 포함하고, (9 ㄹ)의 문맥에서는 ‘만족하다, 신뢰하다’ 등의 감정동사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감동하다’라는 동사는 문맥에 따라서 ‘기뻐하다, 만족해하다,
반갑다, 안심되다, 신뢰하다, 고맙다, 믿음직하다’ 등의 또 다른 감정동사 의
미를 포함한다는 것인데, 이는 ‘감동하다’의 의미가 ‘기뻐하다, 만족해하다, 반
갑다, 안심되다, 신뢰하다, 고맙다, 믿음직하다’의 의미와 연접된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16)
특이한 것은 위의 모든 예문에 ‘만족하다, 기뻐하다’가 공통적으로 포함되
어 있다는 점인데, 이는 감정동사가 문맥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
는 동사 의미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게 한다. 다음의 예들을 보자.
다음은 ‘실망하다’의 예이다.

15) 심리학이나 사회학 등의 ‘감정’에 관한 이론에서는, 대체로 감정이 기본 감정과 복합


감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기본 감정이란 선천적인 감정이고, 복합 감정이
란 여러 감정들이 복합되어서 나타나는 또 다른 감정이다. 몇몇의 기본 감정을 제외한
나머지 감정들을 복합 감정으로 보는 관점은, 감정동사가 의미의 연접성의 특성을 가
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관점이다.
16) 물론, ‘감동하다’가 반드시 ‘기뻐하다, 만족해하다, 반갑다, 안심되다, 신뢰하다, 고맙다,
믿음직하다’의 어휘 의미와만 연접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본고에서 예로 든 문
장들을 통해 본 결과가 그렇다는 것으로, ‘감동하다’는 좀 더 다양한 동사 의미들과 연
접될 수 있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11

(10) ㄱ. 박 과장은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다.


ㄴ. 천박한 말씨 때문에 금방 실망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ㄷ. 그들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크게 실망하였다.
ㄹ. 잔뜩 기대했던 호텔 여행업계가 실망하고 있다.

(10 ㄱ)의 ‘일을 계획대로 못했다고 실망하는 감정’에는 실천하려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불만스럽고 싫으며,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답답해하는 마음이 등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 ㄴ)의
‘천박한 말씨 때문에 누군가에게 실망하는 감정’에는 상대에게 어느 수준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상대가 의외로 그 기대만큼의 수준이 되지 못한 것에 대
해 다소 놀라워하는 마음과, 상대에 대해 거북해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
다고 볼 수 있다. (10 ㄷ)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크게 실망하는 감정’에
는 뭔가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발견하지 못하게 된
현실이 불만스럽고, 싫으며, 기대대로 뭔가를 발견했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마음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
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0 ㄹ)의 ‘잔뜩 기대했던 호텔 여행업계가 실망하는
감정’에는 호텔업계가 뭔가 좋은 일이 생기리라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만스럽고 싫으며, 그 기대가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는 마
음 등이 복합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실망하다’라는 감정동사는 ‘기대하다’라는 동사 의미를 전제
로 하여, 문맥에 따라서 ‘불만스럽다, 싫다, 아쉽다, 안타깝다, 답답하다, 놀랍
다, 거북해하다’ 등의 또 다른 감정동사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실망하다’도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동사의미들이 있는데, ‘불만
스럽다, 싫다, 아쉽다, 안타깝다’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심심하다’의 예이다.

(11) ㄱ. 아이들은 모두들 심심하게 앉아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ㄴ. 한 잔만 마셔요. 혼자 마시려니 심심해서 그래요.
112 김 은 영

ㄷ. 사실 나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ㄹ. 그 개는 오래도록 텅 빈 집을 지키고 있는데, 어쩌면 심심해서 미쳐 버
렸을지도 몰라.

(11 ㄱ)의 ‘아이들이 모두들 심심해하는 감정’에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싫고, 불만스러우며, 싫증나고 답답해하는 마음이 복합되어 있
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면 하고 기대하는 마
음도 있다. (11 ㄴ)의 ‘혼자 마시는 것을 심심해하는 마음’에는 누군가와 같이
마시고 싶어 하는 마음과 마실 사람이 없는 상태가 불만스럽다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1 ㄷ)의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감정’에는 인간 세상이 싫증나고 불만스럽고 답답하며 싫다는
감정과 인간 세상이 좀더 재미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1 ㄹ)의 ‘오래도록 텅 빈 집에서 어쩌면 미쳤을 지도 모
를 만큼 심심해하는’ 마음에는 외로워하는 마음과, 혼자인 상태에 대해 불만
스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 더불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
등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심심하다’는 어떤 상태가 불만스럽고 싫다는 마음과 그런 상황에
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복합되어 나타나고, 맥락에 따라 싫증나거나 답답
해하는 마음이 나타날 수 있고, 그 심심함의 정도가 심하게 되면 외로운 감정
으로도 연결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심심하다’의 의미는 ‘불만스럽다, 싫다,
바라다’의 동사 의미와 공통적으로 연접되어 있으며, 문맥에 따라서 ‘싫증나
다, 답답하다, 외롭다’ 등의 동사 의미와도 연접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감동하다, 실망하다, 심심하다’가 문맥에 따라 포함하고 있는 의
미를 살펴보았는데17), 감정동사가 문맥에 따라 포함하고 있는 의미는 곧 또

17) 모든 감정동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이들 어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감정동사의 연


접 양상이 모든 감정동사에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동사의 연접 양상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문을 대상으로 하여 공통적으로 연접된 동사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
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지면을 할애해야 한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몇몇 동사만
을 대상으로 하여 감정동사가 의미 연접성의 특성이 있다는 것만을 밝혔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13

다른 감정동사의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감정동사들의 의미가 서로 밀


접하게 연접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2. 정도성

감정동사는 ‘정도성’의 의미 특성이 있다.

(12) {가장/지극히/아주/훨씬/더욱/상당히/꽤……}. {슬프다/화난다/밉다/부러워하


다/지루하다/기쁘다/만족하다/좋아하다/시원하다/예뻐하다……}.

감정동사는 (12)와 같이 정도 부사어와 자연스런 호응 관계를 이룬다. 정


도 부사어는 상태성 동사를 수식하면서, 상태성 동사가 가지고 있는 [+상태
성]의 의미에 [+정도성]의 의미를 더해주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감정
동사가 정도 부사어와 공기한다는 것은 [+상태성], [+정도성]의 의미를 지니
고 있다는 것이고, 아울러 정도 부사어의 수식을 받게 되면 그 감정의 정도도
부사어에 의해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의미를 띠는 어휘 사이에 정도의 등급을 매길 수도 있어서
감정동사의 정도성은, 어휘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감정동사 어휘 간에도 보
이고 있는 특성이다. 예를 들면, ‘조금 슬프다’나 ‘약간 슬프다’는 ‘울적하다’,
‘우울하다’와 가깝고, ‘아주 슬프다’, ‘매우 슬프다’는 ‘비통하다’나 ‘침통하다’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조금 화나다’는 ‘속상하다, 짜증내다’에 가깝고, ‘매우
화나다’는 ‘격노하다, 격분하다, 분통터지다’ 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18)
다음은 감정동사 어휘 간에 보이는 감정 정도에 따라 감정동사의 등급을
설정해 본 것이다.

(13) ㄱ. 끌리다-좋아하다-사랑하다
ㄴ. 심심하다-외롭다-고독하다

18) 김기홍(1979)에서는 감정의 특징을 5가지로 들면서 ‘감정 어휘는 서너 가지 정도의 강


도를 표시한다’고 하면서 ‘분통터지다-노엽다-귀찮다’, ‘끔찍스럽다-무섭다-두렵다-불
안하다’, ‘비애-슬픔-풀죽다’ 등을 예로 들고 있다.
114 김 은 영

ㄷ. 답답하다-억울하다-한스럽다
ㄹ. 싫어하다-경멸하다
ㅁ. 놀라다-경악하다

(13)의 감정동사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을 갈수록 그 감정의 정도가 더 강해


진다. ‘끌림’의 감정보다 그 정도가 더해지면 ‘좋아함’의 감정이 될 수 있고,
‘좋아함’의 감정보다 그 정도가 강해지면 ‘사랑함’의 감정이 될 수 있을 것이
다.19) 이와 같이 감정동사의 정도성은 개별 어휘가 내포하고 있는 특성이기
도 하고, 동시에 어휘 사이에 나타나는 특성이기도 하다.

3.3. 비의도성과 소극적 통제성

감정동사는 감정을 표현한 어휘이다. 감정이 의식적 의도와 무관하게 저절


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감정동사 또한 의도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20) 감정은 그 발생이 ‘자신도 모르게’ 되는 것이지 ‘계획적으로’ 실
현되는 것이 아니다.

(14) ㄱ. *나는 계획적으로 {슬퍼졌다/갈등했다/걱정했다/긴장했다……}.


ㄴ. 나는 나도 모르게 {슬퍼졌다/갈등했다/걱정했다/긴장했다……}.

이러한 감정의 ‘비의도성’은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 ‘명령법’처럼 ‘의도’


와 관련 있는 서법 실현에 제약이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5) ㄱ. * 키우던 개를 잊어버려서, 내가 노심초사하겠다.


ㄴ. * 하얀 눈이 밤새 내리니, 내 마음이 싱숭생숭하겠다.

19) 위의 (13)에서 설정한 등급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상황에 따라 그 정도의 등급이


달리 나타나는 경우도 있겠다. 다만, 그 등급이 달리 나타나는 경우라도, 감정동사는
동사들끼리 정도의 등급을 매겨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
20) 감정동사의 비의도성과 통제성에 관해서는 김흥수(1989)와 임은하(1998)에서 언급된
바 있다. 본 절에서는 서법 제약이나 부사와의 제약 양상을 통해 좀 더 면밀히 고찰키
로 한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15

ㄷ. * 그 사람이 그렇게 재주가 좋으니, 내가 질투하겠다.

(16) ㄱ. * 시간이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니, 내가 참 허망하마.


ㄴ. * 그를 떠나보냈으니 내가 후회하마.
ㄷ. * 몇 달을 칩거하다보니, 내가 외로워하마.

(17) ㄱ. *저 사람 참 매력 있어 보이는데 우리 같이 좋아하자.


ㄴ. *오늘 할 일도 없는데 우리 같이 심심해하자.
ㄷ. *일이 자꾸 꼬여 가는데, 우리 같이 심란해 하자.

(18) ㄱ. *슬픈 영화를 봤으니 슬퍼해라.


ㄴ. *답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궁금해해라.
ㄷ.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를 미워해라.

위의 예문 (15)은 ‘의도법’, (16)은 ‘약속법’, (17)는 ‘청유법’, (18)은 ‘명령법’


의 예이다.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 명령법’은 모두 주체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서법이다. 감정동사가 주체의 의도가 개입된 서법들에서 제약을 보이는
이유는 감정동사가 감정 주체의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감정동사가 감정 주체의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열심히, 당돌히,
경솔히, 못’ 등의 의지가 개입된 동태부사어와 대체로 결합할 수 없다는 점으
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의 예를 보자.

(19) ㄱ. *나는 {열심히/당돌히/경솔히/못} 슬퍼했다.


ㄴ. *이렇게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을 벌려 놓고 떠난 그가 {열심히/당돌히/경
솔히/못} 기막히다.
ㄷ. *인사하는 면전에서 그렇게 돌아서 가버려서, {열심히/당돌히/경솔히/못}
무색해했다.
ㄹ. *{열심히/당돌히/경솔히/못} {슬퍼하다/답답해하다/처량해하다/못마땅해
하다/우울해하다/서러워하다/비통해하다/초조해하다/창피해하다/허탈해
하다……}.
116 김 은 영

이처럼 감정이란 감정 주체의 의도가 개입될 수 없다. 따라서 감정동사는


‘비의도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21)
그런데, 위에서 확인한 서법 제약이나, 의도 표현 부사어와의 호응 관계에
제약이 있는 현상은, 감정의 ‘통제성’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22) 즉, 감정
동사가 의도의 의미를 내포한 서법에서 제약을 보이거나, 의도 표현 부사와
의 공기에 제약이 있는 것은,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과 소멸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명령법의 제약 현상에서 확인해 보자.

(20) ㄱ. *그가 떠났으니 {기뻐해라/슬퍼해라/고마워해라/만족해라/즐겨라……).


ㄴ. *그 친구가 말없이 가버려서, {실망해라/서운해라/걱정해라……}.
(21) ㄱ.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조마조마해라.
ㄴ. *그 사람이 섭섭하게 굴었으니 섭섭해해라.
ㄷ. *소설이 읽기에 지겨우니, 따분해해라.

감정동사 구문이 ‘명령’의 서법을 취한다든 것은 감정의 발생을 명령하거

21) 다만, ‘바람’의 의미를 내포하는 감정동사들은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다.


(1) ㄱ.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가 사라져 버리길 바라고 있었다.
(2) ㄱ. 이번 시험에 네가 꼭 합격하기를 바라마.
ㄴ. 나는 지수가 원하는 대로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겠다.
‘바람’의 의미를 내포하는 감정동사는 위 (1)과 같이 주체의 의지가 배제되어 있는 ‘나
도 모르게’와 호응한다는 점에서는 ‘비의도성’을 띤다. 그러나 (2)처럼 의도의 의미가
개입되어 있는 약속법이나 의도법이 실현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의도성’을 띠고
있다. ‘바람’의 의미를 내포하는 감정동사들이 ‘비의도적’이면서 동시에 ‘의도적’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동사류에 비해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어하다’류의 타동사도 ‘나도 모르게’와 호응하면서 동시에 약속법이나 의도법
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고, ‘화내다, 사랑하다, 원망하다’ 등처럼
감정의 소멸에 감정 주체의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 동사도 마찬가지로 ‘나도 모르게’
와 호응하면서 약속법이나 의도법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은 것
으로 볼 수 있다.
22) ‘감정’을 통제 가능성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관점은 Ekman(1992, 1994) Ekman &
Davison(1994), J. Reeve(1997) 등에서도 보이는데, 이러한 감정의 통제 가능성 여부는
감정동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17

나 소멸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동사 구문은 위와 같이 감정의 발생


에 관한 명령법에 제약이 있다. 이는 곧 감정의 통제에 제약이 있다는 의미
이다. 감정 주체가 ‘기뻐해야지’, 혹은 ‘슬퍼야지’ 하고 의도한다고 해서 슬픔
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슬퍼해라, 기뻐해라’는 식의 명
령법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조마조마해
하는 감정’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그 감정의 발생을 타인이
강요할 수는 없다. 타인이 어떤 감정의 발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감정
주체가 그 감정을 의도대로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즉, 감
정이란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의 (15)의 의도법 제약, (16)의 약속법 제약, (17)의 청유법 제약도 마찬
가지로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에 의도적으로 관여하여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감정동사는 ‘비통제성’의 특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감정동사는 주어진 자극 조건에 따라서 의도법, 약속법, 청유
법, 명령법이 실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22) ㄱ. 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너에게 화내겠다.


ㄴ. 내 맘을 그렇게 몰라준다면, 당신을 원망하겠다.
ㄷ. 당신이 시험에 합격해준다면, 나는 당신을 자랑스러워하겠다.
ㄹ. 네가 그렇게 계속 내 말을 안 들으면, 앞으로 나는 너를 미워하겠어.

(22)은 감정동사가 예외적으로 의도법을 취한 예이다. 그런데 예에서 보인


‘화내다, 원망하다, 자랑스러워하다, 미워하다’는 모두 대상 중심 감정동사이
다. 대상 중심 감정동사의 경우는 주어진 자극 조건에 따라, 위와 같이 의도
법을 취할 수 있다.23)

23) 원인 중심 감정동사와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 관한 논의는 유현경(1998)에서 논의된 바


있다. 감정동사는 의미의 초점이 감정 발생 원인에 있는지 감정의 반응 대상에 있는지
에 따라 양분할 수 있다. 원인 중심 감정동사는 ‘NP1은 (ADVP/NP2가) V’의 구조를 갖
는 동사로 ADVP나 NP2의 실현은 수의적이며, 이들은 감정이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상 중심 감정동사는 ‘NP1은 NP2가 V’ 나 ‘NP1은 NP2를 V’의 구조를 갖는
동사로 NP2의 실현은 필수적이다. NP2의 의미 기능은, 감정의 반응 대상의 기능을 하
118 김 은 영

또 감정이란 ‘앞으로 어찌 어찌하게 발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약속법이 실현되기도 한다.

(23) ㄱ. 내 말을 잘 들으면, 이뻐하마


ㄴ. 앞으로는 너만을 사랑하마.
ㄷ. 내가 원하는 대로 조건을 수정해준다면, 고마워하마

(23)은 약속법이 실현된 예인데, 약속법도 의도법과 마찬가지로 ‘이뻐하다,


사랑하다, 고마워하다’처럼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경
우가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감정동사가 ‘청유법’이나 ‘긍정의 명
령법’을 취하기도 한다. 다음은 그 예이다.

(24) ㄱ.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제, 다같이 회개하고, 감사하고, 기뻐합시다.


ㄴ.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우리 선수들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이와 같이 감정동사는,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을 예외적으로 취하기도 하


는데, 이것은 감정 주체가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의미
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위에서 보인 예에서 ‘화내겠다, 원망하겠다, 미워하겠
다’ 등의 동사 의미는 감정 주체가 그런 감정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감정 주체가 어떤 감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여, 발생한 감정은 NP2에 작용한다. 각각의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 원인 중심 감정 동사
고독하다, 기쁘다, 긴장하다, 난처하다, 놀라다, 당황하다, 무안하다, 벅차다, 불안
하다, 비장하다, 서글프다, 서럽다, 속상하다, 속타다, 수줍다, 슬프다, 심란하다, 심
심하다, 싱숭생숭하다, 쓸쓸하다, 애타다, 외롭다, 자괴하다, 좌절하다, 즐겁다, 지
루하다, 창피다, 초조하다, 흐뭇하다 ……
(2) 대상 중심 감정동사
가소롭다, 가엾다, 걱정하다, 귀엽다, 그립다, 꺼리다, 무섭다, 밉다, 부럽다, 불쌍하
다, 사랑하다, 싫어하다, 싫증나다, 예쁘다, 원망하다, 자랑스럽다, 증오하다, 질투
하다, 혐오하다 ……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김은영(2004)를 참조하기 바란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19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감정의 통제 가능성은 감정동사 구문의 부정 명령법이 제약 없이 나타나
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5) ㄱ. 내가 떠난다고 {슬퍼하지마/기뻐하지마……}.


ㄴ. 시험에 떨어졌다고 {실망하지마/섭섭해하지마/부끄러워하지마…}.
ㄷ. 이번 일에 너무 {갈등하지마/걱정하지마/감동하지마……}.

감정동사 부정형 명령법은 감정의 소멸을 명령하는 것이다. 부정형은 긍정


형과 달리 명령법 실현에 제약이 없다 이것은, 감정의 주체가 감정을 소멸시
키는 일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함을 전제로 한다.
또한 드물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긍정의 명령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24)

(26) ㄱ. 애들아 기뻐해라, 우리가 이겼다.


ㄴ. 안심해라, 내가 잘 처리하마.
ㄷ. 밤늦도록 가족이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도 하고 그래라.

이렇게 보면,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통제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극적인 통제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슬퍼하지 마라’라는 명령을 받고서,
슬퍼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대로 반드시
‘슬퍼하지 않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또 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하고 있는데, 타
인이 ‘이제 그만 기뻐해라’ 하고 명령했다고 해서, 명령과 함께 그 기쁨의 감
정이 소멸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기뻐하는 내색을 하
지 않는 정도는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감정동사는 ‘소극적’ 통제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24) 특히 성경에는 감정동사가 명령형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1) ㄱ. 범사에 감사하라.
ㄴ. 네 이웃을 사랑하라.
ㄷ. 시기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120 김 은 영

결국, 감정동사는 ‘비의도성’과 ‘소극적 통제성’의 특성을 지닌다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비의도성’은 감정동사 구문이 ‘의도법’, ‘약속법’, ‘청
유법’, ‘명령법’의 서법 실현에 제약이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소극
적 통제성’은 이러한 서법 제약이 예외적으로 실현되는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이 예외적으로 실현되는 경우는, 대상 중
심 감정동사 구문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통제 가능성’이 원인 중
심 감정동사보다는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명령법이 부정의 명령형만 취할 수 있는 것은, 감정의 발생보다는 감정
의 소멸에 ‘통제 가능성’이 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4. 경험성과 평가성

본고 2.1에서 언급했듯, 감정동사는 경험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감


정동사 구문의 주어는 항상 경험주로 실현된다고 하였다. ‘기쁘다, 슬프다’ 등
의 감정동사 의미는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 주체가 경험한 것임을 나타
내는 것이다.

(27) ㄱ. 나는 이 번 일이 {기뻤다/슬펐다/괴로웠다/아쉬웠다/안타까웠다/암담했
다……}
ㄴ. 나는 이 번 일로 {기쁜/슬픈/괴로운/아쉬운/안타까운/암담한……} 감정을
경험했다.

(27ㄱ)의 의미는 (27ㄴ)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감정동사가 ‘경험’


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동사가 지니는 경
험성은 ‘평가’의 의미도 함께 내포한다.25)

25) J. Reeve(1997, 정봉교 옮김, 2000: 502)에서는 감정 주체가 느끼는 감정은, 지각에서
평가로 그리고 이 평가가 다시 감정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21

(28) ㄱ. 내가 그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참 망신스럽다.


ㄴ. 매일 같은 나날들이 반복되니, 권태롭다.
ㄷ. 시험에 합격해서 기쁘다
ㄹ.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맘이 한결 가뿐하다.

위의 예문의 ‘망신스럽다, 권태롭다, 기쁘다, 가뿐하다, 걱정스럽다’는 모두


감정 주체가 어떤 사태를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감정들을 표현
한 동사이다. 그런데 이 때 발생한 감정은 감정 주체가 내면적으로 느끼는
감정 상태로, 어느 정도 평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28 ㄱ)에서 ‘망신스럽다’라
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28 ㄴ)의 ‘권태롭다’라는 표현은 매일 똑같은 날들이 반복되는 ‘사태’
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28 ㄷ,ㄹ)은 시험에 합격한
일에 대해, 일을 다 처리한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감정동사의 이러한 평가성은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9) ㄱ. 네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다니, 가증스럽구나.


ㄴ.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는 유아는 누가 되었든 귀엽다
ㄷ. 말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은 듬직하다.
ㄹ. 거동이 불편한데, 가족이 하나도 없는 노인은 불쌍하다.
ㅁ. 언제나 투덜거리며 불만거리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밉살스럽다.

(29)의 ‘가증스럽다, 귀엽다, 듬직하다, 불쌍하다, 밉살스럽다’는 감정 주체


가 내적으로 경험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대상에 대한 평가성의 의미도 함께
지닌다. (29 ㄱ, ㄹ, ㅁ)은 대상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 의미가 내포어 있고,
(29 ㄴ,ㄷ)은 대상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감정동사는 경험주를 주어로 한다는 점에서 모든 감정동사가 경험
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모든 감정동사는 어떤 사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평
가의 의미가 내포어 있다.
122 김 은 영

4. 맺음말

감정동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감정동사의 범위 규정이 선행되어야 하나,


선행 연구에서는 이에 관한 논의가 이루지지 않았다. 논의 대상에 대한 명확
한 정의나 범위의 규정 없이, 몇몇 어휘만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감정의 특징을 통해서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으
로 논의를 시작하였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특징을, 언어학
적으로 풀어서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한 방법은, 감정동사의 범위설정에 객
관적 타당성을 확보한 것으로 본다.
감정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의 감정이란 대체로 어떤 자극을 전제로 해서 발생한다. 또한 의식적 의도와
는 무관하게 발생하며, 감정 주체의 내적 경험에 의존한 주관적 반응이다. 그
리고 신체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정신적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
한 감정의 특징을 바탕으로 감정동사의 범위를 규정해보면, 감정동사란 “나
도 모르게 ~한 마음이 {생기다/들다}”와 “마음{이/에}~한 상태”의 검증 틀
에 모두 적합한 어휘로, 구문의 주어는 항상 ‘경험주’로 실현된다. 또한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지각’이나, 판단이나 믿음과 같은 ‘인지’의 요소를 전
제로 하는 동사이다.
또한 감정동사는 보편적으로 ‘연접성, 정도성, 비의도성, 소극적 통제성, 경
험성, 평가성’의 의미 특성을 지닌다. 감정동사가 지니는 보편적 의미 중 ‘연접
성’과 ‘정도성’은 본 논문에서 새롭게 밝힌 의미 특성이다. ‘비의도성, 소극적
통제성, 경험성’에 관해서는 선행 연구에서 언급된 바가 있으나, 본 논문에서
는 이들을 통사론적 제약 현상으로 풀이하여 그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특히 소극적 통제성에 관해서는, ‘통제의 가능성’이 감정의 발생보다는 ‘감
정의 소멸’에 더 관여하고, 원인 중심 감정동사보다는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
더 많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선행 연구에서는 감정 동사가 ‘경우’에 따라
평가성의 특성을 갖는 것으로 보았지만, 본 논문에서는 ‘모든’ 감정동사가 ‘어
느 정도’ 평가성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다.
현대 국어 감정동사의 범위와 의미 특성에 대한 연구 123

그런데 본 논문에서 밝힌 감정동사의 의미의 특성 중 의미의 ‘연접성’은 감


정동사가 가지는 중요한 특성으로, 그 양상을 밝히는 일은 곧 감정동사의 의
미 체계를 밝혀내는 일이 될 것이다. 만약 개별 어휘별 의미 연접 양상을 객
관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면, 감정동사의 미묘하고 복잡한 의미 체계를 밝혀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할 뿐 아니라,
그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감정동사 개별 어휘의 연접
양상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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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확정일: 2005년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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