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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사료(史料)와 역사
‘사료’ 해석과 시대적 맥락
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기록으로 남은 사건
 “텍스트”로 존재하는 역사
 문헌자료와 고고학적 자료  편찬자의 주관에 의해 ‘의도’을 가지고 남긴 자료
 문헌 : 공적, 사적 문서들
 주관에 의해 ‘편집’될 가능성 : 역사가의 주관성
『삼국사기』, 『고려사』
 작성될 당시의 언어, 관념, 개념을 통해 고정된 상태로 전승
『조선왕조실록』, 『화랑세기』
고문서, 문집, 일기  작성자의 의식세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해석’ 필요
 금석문 : 칠지도, 광개토대왕비, 진흥왕순수비,  출처 확인(sourcing heuristic)
무령왕릉 지석,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  문서의 원본[1차 사료]을 읽는 방법
 옷, 무기, 가구, 화폐 등의 생활용품  시대적 맥락에 대한 이해
 조각, 동상 등의 기념물
 구술자료와 구술사

실증주의 역사관 사실(事實)과 사실(史實)

 수집한 사실(事實)들의 상호 관련성 중시  사실(事實)로서의 역사


 개인적인 주관을 배제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서술 1945년 한국이 독립하였다.
 단순한 사료 해석과 역사 서술 1914년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났다 등등
 랑케(1795-1886)  객관적 사실의 결합과 역사의 서술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 사료에서 비롯된 객관적인 사실이 스스로 역사가 되지 않는다.
역사학의 독립  사건의 사실(事實)과 역사적 사실[史實]
[원]사료에 충실한 객관적인 사실 기술에 치중  누가 사실(事實)을 사실(史實)로 만드는가?
 주관을 배제할 수 없는 해석
주관적 해석/ 자의적인 해석의 위험

『역사란 무엇인가』(E.H.Carr, 1961) 일본이 창안한 식민사관

 일본이 한국 지배를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역사관


 제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 타율성론
 제2장 사회와 개인
 정체성론
 제3장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 제4장 인과관계  당파성론
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 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 내선일체(內鮮一體)
 제6장 지평선의 확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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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5

일본의 자유주의 사관 일본의 역사 부정 사례


 1946-1948년까지 진행된 동경의 극동국제군사재판소의 전범처리과정에서 형성된 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 성 노예제(sexual slavery)로서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없었다.
‘동경재판사관’에 의해 일본을 부정하는 사관이라는 생각  ‘종군위안부'란 성 노예가 아니라 ‘단순한 상행위’, ‘매춘부’에 불과하다.
 일본의 역사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기술하므로써 부끄러운 역사라고 자학한다는  난징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수는 중국 측이 말하는 30만도,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채
주장
용하는 십 수만에서 20만도 아니며, ‘최대한 만 명'으로, 일반 시민 사상자는 안전구
 암흑사관, 자학사관이라는 비판 국제위원회의 보고가 ‘전부 옳다고 해도 47명’에 불과하다.
 자유주의사관 도입/ 토론식 수업기법 도입  조선의 식민지화와 중일전쟁의 책임은 일본에 없다. 책임은 오히려 러시아와 구미의
‘토론’의 주제 : 러일전쟁/ 한국병합/ 원폭투하 위협에 위기의식을 가지 못해 근대화가 늦은 조선과 중국 측에 있다.
 과거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 재평가 유도  일본의 아시아 진출 시기에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진정한 위협은 일본이 아니라 러
 기존의 인식과 반대되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도록 유도 시아[소련] 및 구미 열강이었다.

 일본의 군국주의적 행위에 대한 긍정적 인식  난징 대학살, ‘종군위안부’ 문제는 ‘국내외의 반일 세력’의 선전 활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역사수정주의 <Historical revisionism> 유럽의 역사 부정의 사례

 유럽에서 1980년대에 대두된 나치의 유태인 학살(홀로코스트) 부정론에서 비롯  제노사이드는 발생하지 않았고, 가스실도 존재하지 않았다.
 역사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축소시켜서 기존의 역사인식을 호도하려  유대인들은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 동부 지역에서 추방당했다.
는 반동적 경향
 학살된 유대인들의 수는 주장되어온 것보다 훨씬 적다. 총 사망자는 20만
예) 가스실은 연합국에 의해서 날조된 것 명에 불과하고 그 중 상당수는 연합국의 폭격의 결과였다.
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 등의 침략전쟁의 책임과 전후책임을 부정하는 입장 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주된 책임은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있다.

 동경대학의 이토오 타카시(伊藤隆): 파시즘 부정/ 대동아전쟁 긍정론  1930년대와 1940년대 동안 인간성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는 독일이 아니
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독일은 단지 볼셰비즘-공산주의 위협에 대항해 자
 일본대학의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실증주의적 학풍
력 방어를 한 것이었고, 유대인들은 공산주의자라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 동경대학의 사카모토 타카오(坂本多加雄): 역사수정주의의 대중화  연합국 프로파간다는 시온주의 계획의 일부로 제노사이드를 발명했다.

집단극화(集團劇化)

 집단 극화(集團劇化; group polarization )


 집단의 의사결정이 구성원 개개인의 평균치보다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는 현상
 집단이라는 익명성에 의존
 반인도적 범죄와 국가 폭력의 가해자
뉘른베르크 재판/ 동경 재판/ 광주 청문회
 가해자의 시선으로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는 행위
 뉴라이트와 교과서 포럼
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 정치 선전의 도구로 역사를 이용/활용하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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