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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혜 「동아시아의 문화냉전과 영화의 위상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인문과학논총 39 2020.
위경혜 「동아시아의 문화냉전과 영화의 위상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인문과학논총 39 2020.
181-209
위경혜**
2)
국문초록
I. 서론
1. 동남아시아영화제가 남긴 문제의식
3) 이에 대하여 다음을 참고. 안청시 · 전제성 엮음, 『한국의 동남아시아 연구: 역사,
현황 및 분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4) 반둥회의는 인도네시아, 중화인민공화국, 인도, 이집트 그리고 유고슬라비아를 중
심으로 열렸다. 한국과 북한, 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이스라엘 등은 반공
과 호전성 그리고 인종 차별주의 등을 이유로 회의에서 제외되었다. 강준만, 『세
계문화 사전: 지식의 세계화를 위하여』, 인물과 사상, 2005, pp. 653-657.
5) 중화인민공화국은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의 기치 아래 ‘중국인민
지원군’을 동원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한국전쟁 참전은 새로운 국가로서 중국
건설과 구성원의 통합 그리고 냉전 구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위상을 재고시켰다.
강월전(康月田), 「항미원조 전쟁 동원의 회고 및 고찰(抗美援朝战争动员的回顾
与思考)」, 『군사역사(军事历史)』 2000년 제5기(期), 2000, pp. 34-39; 진탁,
동아시아의 문화냉전과 영화의 위상
: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185
2. 문화냉전과 영화 그리고 영화 상영 공간
33) 1965년 인도네시아의 사건을 냉전기 대학살의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는 다음을
참고. (Eds.) Katharine McGregor, Jess Melvin, Annie Pohlman, The
Indonesian Genocide of 1965: Causes, Dynamics and Legacies,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17.
34) 교도 민주주의는 수카르노 대통령을 중추로 삼고 그를 이념적으로 동조하는 정
당들의 연합과 무장 세력이 지방에서 지지하는 권위주의적 정부 체제를 말한다.
클라이브 크리스티 편저 · 노영순 옮김, 앞의 책, p.343.
35) 수카르노는 이 연설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혁명은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나는 전 세계에, 모든 우방과 적국에, 어떠한 악마도 신령
도 망령도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인도네시아가 서로 친구가 되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않은 신세계로 힘을 합쳐 행진해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한다.”라고 밝혔다. 클라이브 크리스티 편저 · 노영순 옮김, 위의 책,
194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제39권 3호
p.383.
36) 최소 50만 명에 달하는 대학살에 참여한 자들이 반세기 동안 “인도네시아 민족
주의라는 정서에 가려져 있던 강력한 내적 분쟁에 대응한 자들”이라는 점은 주목
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점이 문화적 정체감과 종교적인 신념이라는 근
본적인 요인들과 결합하여 발생한 마르크시즘과 반공산주의 사이의 분쟁이었다.
이에 대하여 다음을 참고. 클라이브 크리스티 편저 · 노영순 옮김, 위의 책, pp.
426-437.
37) 홍재현, 「인도네시아 화교사회 형성과 반화교폭동에 대한 연구」, 『중국인문과
학』47, 2011, pp. 410-413.
동아시아의 문화냉전과 영화의 위상
: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195
V. 결론
참고문헌
https://asiasociety.org/blog/asia/galleryinterview-preserving-sout
heast-asias-movie-palaces-through-photography에서 인출.
(2018.08.01.)
경향신문. 「동남아영화제의 수확, 차기 주최국 결정에 한국 의사 반영」.
1955. 6. 1. 4면.
경향신문. 「1주일 동안에 평온 잃었던 곳 세계의 난동지대」. 1964. 12.
12. 4면.
경향신문. 「미공보원에 방화, 인니 데모대」. 1964. 12. 9. 2면.
경향신문. 「월남사태, 극도로 악화 / 반미 반정부시위 확대 / 다낭 · 키농시
선 학생들이 데모 / 불교도 청년 백 명 체포」. 1965. 1. 25. 1면
경향신문. 「반정운동 각지파급 / 사이공=데모대 군경과 대결 / 다낭=키 수
상, 불도와 회담 / 후에=전차대 시내에 진입」. 1966. 4. 6. 1면.
동아일보. 「미공보원을 습격 인니(印尼) 군중 월맹 폭격 항의」. 1965. 2.
19. 1면.
동아일보. 「월맹 위한 의용군 인니 3천명 지원」. 1965. 4. 22. 4면.
동아일보. 「방화 네 편을 공개: 명년도엔 마련(馬聯)서 열기로」. 1965. 5.
12. 3면.
동아시아의 문화냉전과 영화의 위상
: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207
ABSTRACT
Southeast Asian Film Festival was held for the purpose of the
formation of ‘New Asia’ led by Indonesia's ideology. However, it
showed its impossibility. In other words, film showings were
interlinked with the contexts of historical and political phases: the
building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the construction of the
anti-communist base of South Korea, the introduction of ‘New Japan’
to South Korea led by the Korea-Japan Treaty of 1965 and the
practice of socialism in Indonesia.
The cultural landscape surrounding movie theaters in Southeast
Asian countries manifested their locality while resisting against, and at
the same time, cooperating with the Cultural Cold War regime amidst
their political circumstances. This is also correlated with nationalism
issues such as ethnic politics, diaspora, and cultural translation in
multi-layered ways, along with the problems of the old and new
imperialism - remnants of World War II. Even these locality have
molded the daily lives of their people and construction of their cultural
ident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