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41 ( )
41 ( )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 참 교회와 참 성도
2. 참 교회의 표지
- 1 -
“말씀의 순수한 선포”는 성령으로 영감(靈感)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조명
(照明)으로 감화(感化)된 성도가 수납(受納)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말씀 가운
데 친히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활력이 있다(히
4:12). 전함이 없이는 들을 수 없고, 들음이 없이는 믿을 수 없으며, 믿음이 없이는
영생에 이를 수 없으므로, 말씀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살아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
고 할 수 없다(롬 10:14, 17).
“성례의 합법적 거행”은 주님이 제정하신 말씀에 따라 세례와 성찬을 받음으
로 성도가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와 계속적으로 교제하고 교통하며 살
아가는 은혜를 인친다. 이로써 성도는 거듭난 자녀로서 자녀답게 살아가는, ‘살아남’
과 ‘살아감’의 이중적인 은혜를 새기게 된다. 성도는 지상의 생을 위하여 광야의 이스
라엘 백성과 같이 날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받아야 하듯이, 천상의 생인 영생
을 위하여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 곧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요 6:55).
“권징의 합당한 시행”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로서 거룩함을 유지
하고 그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는 자리에 서도록 단련(鍛鍊)시키는 치리(治理)의 장치
가 된다. 권징은 단지 무너뜨리고 배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세우고
포용하기 위한 것이다(롬 14:19). 일시적으로 잘라내야 할 경우가 없지 않으나, 그 때
에도 돌이켜 아물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 땅의 성도는 거듭났으나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사도 바울이 한탄했듯이, 여전히 “곤고한 사람”으로서(롬
7:24), 죄나 허물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내적 회개와 더불어 외적 권징은 성도의 삶
에 있어서 치료하는 약(藥)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필수불가결하다. 말씀과 성
례는 교회의 목과 심장과 같으나 권징은 그 자체로 생명의 기관이 되지는 못한다. 그
렇다고 해서, 권징이 없다면 면역이 전무(全無)한 말기의 환자와 같아서 작은 질병이
나 바이러스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3. 참 성도의 됨됨이
- 2 -
을 모두 그 대상으로 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를 심중에 고백하
는 믿음을 지니게 된다. 이는 성령의 내적 감화로 말미암는다. 이러한 고백은 그리스
도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소명을 포함한다(고전 4:1). 성도는
먼저 자신이 말씀의 조명과 감화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충만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는 건전한 교리를
수납하여 고백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바대로 심령에 새겨
전해야 한다. ‘불신이 섞인 확신’에는 그리스도의 전적인 공로를 믿는 믿음과 지식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삶의 모범”도 성도에게 마땅히 요구된다. 믿음은 말씀에 대한 성령의 감화로
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담고 있으며 사랑의 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 믿음
은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한다(갈 5:6). 신앙의 고백은 입술에 속한 것이 아니
라 행위로 드러나는 전인(全人)적인 것이다. 그것은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
서 나오는 사랑”으로 열매를 맺는다(딤전 1:5). 이러한 두 번째 요소는 첫 번째 요소
인 “신앙의 고백”과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를 향한 진정한 고백에는 그를 믿는 믿
음 가운데 그를 본받아 사는 삶이 필히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성도는 생활이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하며, 기도에 전념하고, 옳고 그름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은
맡겨진 소명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의와 거룩의 완전한
기준을 하나님의 뜻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선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식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예배도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참 성도의 척도는 단지 내
적 헤아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외적 순종에 달려있다.
“성례의 참여”는 광의(廣義)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
가 됨은 성례로써 인쳐진다. 세례는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작의 표이며, 성찬
은 그 계속의 표이다. 세례는 물로 씻음으로 그와 함께 죽고 살아나는 거듭남을, 성
찬은 떡과 잔으로 그의 살과 피에 참여함을 드러낸다. 성례가 인치는 은혜는 새 생명
과 새 생활을 모두 아우른다. 성례는 거듭남과 자라감을 인친다(롬 6:3-5; 고전
11:23-28).
주님은 성례를 통하여 말씀을 가르치시고, 우리 마음의 문을 여셔서, 그 교훈
을 확증하신다. 성례에 참여함으로 제정된 말씀의 효력이 나타난다. 이것은 그 말씀을
듣기 때문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성례가 작용한다. 성례는 믿음을 지탱하
고, 자라게 하고, 확증하고, 증진시킨다. 성례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성도의 어떠함을
드러내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성도가 마땅히 성도답게 자라가는 길이 된다. 성례는
수직적이며 수평적인 의의를 지닌다. 성례의 은혜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린다. 그것은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의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삼아주심을 인친다. 또한 성례를
통하여 머리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은혜가 수평적으로 이웃에게 전달된다.
요약하면, 참 성도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구원을 받았음을 고백
- 3 -
하고, 그 은혜를 좇아 새 생명 가운데 새 삶을 사는 모범을 보이며, 그리스도와 연합
하여 그와 함께 자라가야 한다. 이는 순서를 달리할 뿐, 교회의 세 가지 표지에 각각
상응한다.
4. 사랑: 자유자의 멍에
- 4 -
도 사랑할 수 있다(마 5:44). 주님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며, 진정한 능력이다.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
다. 주님의 멍에는 독수리의 날개와 같아, 그것을 메는 자만이 높이, 멀리 날 수 있
다. 그러므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학교에서 배우자(Discamus in schola
Christi)!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