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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오직 한 권으로서--목회자의 손에 들릴 책인가?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1. 교훈적, 신앙고백적, 변증적 서책

그는 1509년 7월 10일에 났으며 1535년 8월 23일에 당시 철권(鐵


拳)을 휘둘렀던 불란서 국왕 프란시스에게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즉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헌정하는 편지를 썼다. 프랑스 피카디 지방에
속한 작은 도시, 그러나 대성당이 위용을 자랑하던 노용에서 예앙 꼬뱅
(Iehan Cauvi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지 26년 이후의 일이었다. 후에 그
는 요아네스 칼비누스(Ioannes Calvinus)라는 라틴어 이름을 가졌으며 이로
써 불란서 이름도 장 깔뱅(Jean Calvin)으로 바뀌었다. 이렇듯이 그의 이름
의 연원(淵源)이 칼비누스에 있으니, 우리가 그의 이름을 칼빈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1)

편지를 쓴 후 몇 계절이 지난 후 이듬해 3월에 출판된 이 책에는 다


음과 같은 부제(副題)가 달려 있었다: “경건에 관한 전체 개요 대강(大綱)과
구원의 교리를 앎에 필요한 모든 것들, 경건에 힘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합당한 작품으로서 최근에 편집된.” 그것은 경건과 교리를 담고 있는 책이며
경건에 힘쓰는 사람을 위한 책임이 처음부터 천명되었다. 국왕에게 보낸 편
지의 초입(初入)은 부제에 대한 부연 설명에 다름 아니었다.

이 작품을 쓴 유일한 목적은 종교에 대해서 여하한 열심을 내는 사람


들이 참 경건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어떤 근본적인 사항들을 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이 일에 땅을 흘리며 애쓴 것은 제가 목도
(目睹)한 그리스도를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을 지닌 수많은 모국 프랑
스인들을 위해서였습니다—그들 중에 단지 소수만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조금 젖어 있을 뿐입니다. 이 책 자체가 말하는 바와 같이 저
의 저술 의도는 간단한 그리고, 말하자면, 근본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제시함에 있습니다.

1536년 『기독교 강요』초판은 신약 성경의 사분의 삼 정도가 되는


작은 분량이었다. 절의 구분이 없이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 1장은

1) 어거스틴을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라거나 터툴리안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라고 부르지


않듯이 학문 세계의 일관성을 위해서 최소한, 당분간 칼빈을 굳이 칼비누스(Calvinus)라고 부르는 것은 과하
다고 할 것이다. 그의 이름을 깔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모국어가 불어였으며 또한 불란스인으로서 불어권
에서 그렇게 불렸으므로 합당하다고도 할 것이다. 다만 위에서 지적했듯이 깔뱅을 칼비누스라고 부른 것이 아
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으므로 칼비누스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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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교리에 기본적으로 할애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과 이신칭의 교
리 등 주요한 신학적 논제들이 망라되었다. 제 2장은 신앙의 개념과 조목을
다루는데 집중되었다. 제 3장은 기도에 관한 바른 이해를 제시했다. 제 4장
은 성례론을 개론, 세례, 유아 세례, 성찬의 순으로 다루었다. 제 5장은 잘못
된 카톨릭의 성례를 비판하는데 할애되었다. 여기에서 교황청의 잘못된 성경
관과 구원관 그리고 교회론이 역사적이며 신학적인 증례들에 의해서 여지없
이 비판되었다. 마지막 제 6장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교리에 돌려졌다. 여
기에서 이미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자유라는 개념이 아디아포
라 교리와 함께 고급스럽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가 입
법권, 사법권, 재판권이라는 측면에서 비교적 정치(精緻)하게 전개되었다.
『기독교 강요』 초판은 익명으로 출판되었으나 이 책으로 말미암아
칼빈의 이름은 오히려 인구에 회자되었으며 이후 그가 개신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의 교리 논쟁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이미 약관의 칼빈은 충분히 변증적이었다. 그는 1553년 11월 첫날
에 읽힌 콥 총장 연설문을 기초하면서 “사랑이 이끄는 믿음” 즉 “행위로 말
미암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랑” 즉 “사랑과 함께하는 믿
음(fides cum caritate)”을 변호한 바 있다. 카톨릭의 칠성례(七聖禮)를 비판
한 제 5장의 분량이 핵심적인 교리를 다룬 제 1장과 제 2장을 합한 분량과
거의 같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책이 또한 매우 변증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강요』초판은 또한 신앙고백적이었다. 이는 이 책이 신앙교
육서(catechismus)와 같은 형식을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1장의 많은 부분이 십계명에, 2장의 대부분이 사도신경에, 그리고 3장의 대
부분이 주기도문에 할애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이 책이 교육을 위
한 근본교리의 요체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왕 프란시스에게
말했듯이 칼빈은 이 책에서 경건과 교리에 대한 “간단한 그리고 근본적인
가르침의 형식”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가르침의 속(裏)이 신앙고백이며, “우
리”의 신앙고백을 변호하기 위해서 변증적이어야 했다. 왕에게 보낸 서문에
서 말하듯이 1536년에 칼빈은 이미 “거의 완벽한 변증이라고 할 수 있을 만
큼(ad iustae paene apologiae modum)” 나아갔다.

2. 교훈적, 신앙고백적, 변증적 목회

『기독교 강요』초판은 칼빈을 목회자의 길로 내몰았다. 그는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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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한 프로테스탄트 도망자였다. 진
리를 향한 서릿발 같은 엄밀함은 있었으나, 그러해야 할 당위는 있었으나 현
장의 경험은 전무했다. 성례에 관한 유래 없는 명문의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
고 정작 자신은 그 때까지 성례를 거행해 본 적이 없었다.2) 이제 말씀을 선
포하는 자로서, 성례를 거행하는 자로서, 권징을 시행하는 자로서, 즉 목회자
로서 칼빈은 자신의 책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17장으로 획기적으로 증보, 재편되어 1539년에 출판되었다.
새 책에는 여전히 신앙교육서적인(catechetical) 요소가 남아 있었지만 구속
사적 관점에서 교리가 조직화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
는 지식이 각각 처음 두 장을 차지함으로써 교리의 교훈적 요소가 전면에
부각되었다. “앎” 자체가 계시를 내리받음과 예배를 올려드림과 함께 파악되
어야 함이 논구됨으로써 지식의 경건성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회개의 장
이 신설되었다. 당시 카톨릭 신학자들은 회개가 고해성사와 보속을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서 이해하여 잘못된 공로사상을 신학적으로 변호하고자 했다. 칼
빈은 오직 은혜를 통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회개를 교리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개혁주의 구원론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이신칭의 교리와 선행에 대한 교리
가 첨가되었다. 이 역시 변증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또한 신구약의 일치와
차이에 대한 장을 신설함으로써 신약과 구약은 실체(substantia)에 있어서는
동일하나 경륜(oeconomia, admistratio, dispensatio)에 있어서는 다르다는
원리를 수립하였다. 이로써 구약이 성경의 예비가 아니라 성경 자체임이 확
정되었다. 이러한 변증적 성격과 더불어서 신앙고백적인 요소가 강화되었으
니, 특별히 처음으로 『기독교 강요』가운데서 “황금의 작은 책”이라고 불리
는 기독교인의 삶의 교리라는 이름의 장이 신설되었다. 여기에서 칼빈은 기
독교인의 철학(philosophia Christiana)은 그리스도의 철학(philosophia
Christi)임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를 “미래를 묵상하면서 자기
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삶”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1539년의 제 2판은 1540년에 초판이 출판된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거의 같은 시기에 저술되었다. 로마서 주석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자연법과
일반계시론, 우리의 인격 뿐만 아니라 행위조차도 의롭다 받아 주시는 그리
스도의 의의 전가에 대한 교리, 칭의와 성화의 역동성, 의의 종으로서의 그
리스도인의 삶의 교리, 구약과 신약의 교회의 연속성(continuitas)과 하나임
(unitas), 아디아포라 교리 등이 새로운 판에서도 깊이 새겨져 나타난다. 이
시기는 대체로 칼빈의 스트라스부르에서의 망명기와 일치한다. 칼빈은 이곳

2) 제 1차 제네바 체류는 1536년 8월부터 1538년 4월까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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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부써(Martin Bucer)를 통하여서 목회와 교회 행정에 대한 안목을 얻고
이후 그가 평생 살아가는 전형적인 목회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즉 그는 교회
를 행정적으로 다스리고, 설교하고 심방하며, 주석을 쓰고, 신학논쟁을 통하
여서 적극적으로 참 교리를 변증하는 일을 부지런히 감당했다. 특히 그는 스
트라스부르에 있어서의 교회의 국가에 대한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일가견
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삶은 제네바에 귀환했을 때에도 계속되었다.
1541년 9월 제네바에 다시 돌아와서 칼빈이 시급하게 한 일들을 살
펴보는 것은 이후의 새로운 판의 『기독교 강요』의 성격을 가늠하는데 중
요하다. 칼빈은 먼저 교회규칙서를 제정해서 목사, 교사, 장로, 집사의 교회
의 네 가지 직분을 선포하고, 오늘날 당회의 기원이 되는 장로들과 목회자들
로 구성된 감독회(Consistoire)에 권징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문답 형
태를 취한 제 2차 신앙 교육서를 작성하였다. 그리하여서 단지 서술형으로만
기록된 제 1차 신앙 교육서의 단점을 보완해서 교육 효과를 높였다. 또한 공
예배 양식을 정한 예배 규칙서를 제정하였다. 비로소 개혁주의 예배 모범의
전형이 최초로 수립되었다. 특히 우리는 이때부터 칼빈의 설교사역이 규칙적
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세 교구의 교회들(쌩 삐에르,
라 막달렌, 쌩 제르베)에서 주일 새벽과 아침 9시에 설교가 있었으며 교구에
따라서는 오후 세시에 설교가 있었다. 칼빈은 주일날 두 번 설교 했으며 월,
수, 금요일에도 설교했다. 1542년부터는 더욱 자주 설교했으며 1549년 이후
에는 주일날 두 번 하는 설교 외에 격주로 매일 설교했다.
제 3판 『기독교 강요』는 1543년에 출판되었다. 칼빈은 맹세에 관
한 장을 신설하고 교회와 시민정부에 대한 논쟁들을 광범위하게 추가했다.
천사들에 관한 교리를 새롭게 다루었으며 진정한 예배를 수립하기 위해서
형상들에 대한 새로운 비판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시민정부와 자연법에 대한
논의를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판의 기독교 강요를 가장 교부적이라
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칼빈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 특히 어거스
틴의 작품들로부터 상당한 수의 인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도신경에 대한 해설 부분이 네 개의 장으로 분리되었다
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전에 함께 다루었던 신앙에 대한 부분이 한 장
으로서 독립해서 나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세 부분으로 사실상 사도신경 고
백 자체에 대한 해석으로 남았다. 첫 번째 부분은 믿음, 하나님, 그리고 창조
에 할애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그리스도와 성령을 다루었다. 세 번째 부분
은 교회, 죄용서, 그리고 부활에 대한 고백을 해석했다. 두 번째 부분을 기독
론과 성령론으로 나눈다면 네 부분이 되는데 이는 네 권으로 이루어진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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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기독교 강요』마지막 판의 각각의 주제에 해당한다. 칼빈은 사도신경을
부분별로 나누어서 이해함으로써 로마서에서 특징적으로 제시된 교리들을
제 편성하는 길을 열게 되었다. 새로운 관점이 목회 경험과 전망으로부터 배
태(胚胎)되었다. 신앙고백적 요소와 교훈적 요소가 함께 조직화, 체계화 될
길이 열려졌다. 그리하여 변증의 효과가 극대화 될 것이었다. 제 4판 1550
년 『기독교 강요』는 1543년 판의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다만 성경 구절들
과 교부의 작품들에 대한 인용이 크게 확대되었다. 제 4판은 칼빈의 신학과
목회가 심오하게 깊어지는 시기에 저작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장 아래에 절
을 세분했다. 이 구조는 마지막 판 기독교 강요에 있어서의 이해(서책)-목회
-삶으로의 심화를 우리에게 예기하게 한다.

3. 교훈적, 신앙고백적, 변증적 삶

마지막 판 『기독교 강요』는 무려 80장에 달하는 큰 책이 되었다.


장을 묶는 “권”을 넷으로 했다. 그리하여서 권-장-절의 점강적(漸降的) 구조
를 취하게 했다. 이제 책은 성경 전체와 맞먹는 분량이 되었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새로운 “강요”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기본적으로 따랐다. 칼빈은 새로
운 책이 “가장 합당한 순서와 방법”에 따라서 저술되었다고 믿었다.
제 1권의 전반부에서는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 대한 개괄적 고찰을 한 후 일반계시(자연법)와 특별계시(성경)를 다
룬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삼위일체론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논구한다.
대체로 제 1권은 조직신학에 있어서 서론과 신론에 해당한다.
제 2권에서는 먼저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다루고 이로부터 중
보자 그리스도의 필연성을 논한다. 여기에서 칼빈은 바로 이어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지 않고 먼저 율법과 신약과 구약의 일치와 차이에 대해
서 몇몇 장들을 할애한다. 이로써 칼빈은 전체 성경의 실체가 그리스도임을
가르침의 순서상(ordo docendi) 이미 부각시키고 있다. 제 2권은 인간론과
기독론을 주로 다루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전통적인 주제인 로고
스와 노모스 즉 그리스도와 율법의 교리가 중심 교리로서 자리잡고 있다.
제 3권에서 칼빈은 먼저 성령에 관한 논의에 한 장을 할애하고 이어
서 믿음-회개-기독교인의 삶-이신칭의의 원리를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이
러한 순서 자체를 구원서정(ordo salutis)으로 보는 것은 금해야 한다. 사실
칼빈은 이 부분에서 비록 따로 장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의 교리를 전체 구원론의 기초로 삼고 있으며 그 위에 이신칭의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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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세우고 있다. 처음 세 가지의 주제들(믿음, 회개, 기독교인의 삶)을 다룬
장들은 개인 구원의 서정을 다루었다기 보다는 이들 주제들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밝히고 이를 기독교인의 삶에 적용하고자 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전체 구원 서정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다룬 장 안에서 함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전의 판들을 통해서도 칼빈은 동일한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이 이
해해야 우리는 칼빈이 왜 이신칭의의 장을 바로 이어서 나오는 기독교인의
자유를 다룬 장을 “칭의의 부록”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제
3권의 나머지 부분은 예정론과 기도론 그리고 최후의 부활이라고 제목을 붙
인 종말론에 할애된다. 예정론이 은혜의 한 방편인 기도와 함께 다루어졌다
는 사실은 칼빈이 이를 단지 선택자와 유기자를 나누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의 교리로서만 경직되게 이해하지 않고 구원 받은 백성의 삶 가운데서의 확
신이라는 측면에서 역동적으로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종말론적 언급이 구
원론의 마지막에, 교회론 이전에 나타나는 것은 마지막 판 기독교 강요가 사
도신경의 순서를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칼빈에게 있어
서 종말론은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지금” 의미 있는 교리로서 이해
된다. 이렇듯이 제 3권은 구원론과 종말론에 할애되었다.
제 4권은 교회론과 시민국가론을 다루었다. 교회와 국가 모두 입법,
행정, 사법의 관점에서 논구되었다. 특히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를 함
께 논의하면서 참교회는 양자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을 통하여서 그 일치를
추구해야 함을 전체 문맥 가운데서 도도하게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수직적
인 진리와 수평적인 사랑이 모이는 바로 그 점--십자가의 가로대와 세로대
가 만나는 점으로서 제시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례의 언약성과 공동체성이
함께 강조된다. 마지막으로 한 장을 할애하여 다룬 시민국가에 대한 교리도
이러한 가시성과 비가시성, 수직성과 수평성이 함께 깔려서 전개된다.
마지막 판에서 칼빈은 그리스도의 중보직과 중보사역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삶의 부유함을 부각시킨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칭
의의 의의 전가로서, 성화는 그리스도의 성화의 의의 전가로서 다루어진다.
칭의는 단회적이며 성화는 반복적이다. 칭의와 성화가 구별은 되나 분리가
되지 않음은 성도들의 그리스도와의 단회적 교제(communio)와 반복적 교통
(communicatio)이 분리되지 못함과 다를 바 없다. 칼빈은 지금도 보좌 우편
에서 여전히 중보하시는 중보자의 사역에 중점을 두고 성도의 구원의 역동
성을 추구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성도 개개인은 각자에게 맡겨
진 삼중직을 감당하고 살고 있으며 또 그러해야 함이 파악된다. 그리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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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날개와 같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좇음으로서 값 싼 은혜에
허덕이지 않고 위로부터 내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성도만이 누리는
삶을 미리 맛보고 살게 된다.
우리가 주로 읽는 마지막 판 “강요”는 고질적이며 치명적인 질병 가
운데서 저술되었다. 성경 전권에 대한 주석을 대체로 마치고 성경에 붙들린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한 제네바 대학교에 대한 구상도 끝낸 시점이었다. 비
록 반쪽이지만 제네바 시민권도 얻게 되었다. 여전히 교리 논쟁은 더욱 깊어
만 가고 설교와 강의로 쉴 틈 없이 바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영혼을 보게 했다. 그는 이즈음해서 출판한 책에서 자신이 살아 온
나그네의 삶을 쫒기는 다윗의 삶에 유비하면서 시편에는 일종의 영혼에 대
한 해부(解剖)가 가해져 있다고 말했다. “영혼의 해부.” 칼빈은 1559년 판에
서 “한” 사람이 어떤 존재이며 어떠해야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탐구에 진력
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서 한 사람이 되셨으며, 지금 하나님으로서 한 사람
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앎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추구되었다. 오직
교훈은 주의 중보로 인한 보혜사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다. 성령이 역사함
으로써 말씀을 받음이 곧 존재의 변화를 의미했다. 말씀에는 십자가에서 의
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한 계속적인 의의 전가가 그의 영을 통
하여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중보로 말미암아 “내”가 고백에 이르
게 된다. 삶이 고백이므로 경건이 논해진다. 경건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
데서 계시를 받고 받은 대로 올려드리는 예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모든 삶이 받음이며, 모든 삶이 드림이며, 모든 삶이 고백이어야 한다. 이
러한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변증적이다. 칼빈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원치
않았다. “De me non libenter loquor(나는 자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꺼
워하지 않는다)!” 성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변증하는 것이 아
니라, 자기 자신이 변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칼빈의 “나”는 불가분리하게 그의 교리에 부착(付着)해 있다. 루터의


경우, 주관적 요소는 종종 어떤 진술에 나타난 객관성 요소를 “변모
(transfigures)”시킨다. 정반대로, 칼빈의 경우, 객관적 요소는 주관적
요소를 압도한다. 그러나 주관적 요소를 압도함으로써, 객관적 요소는
주관적 요소의 실체(reality)를 보존한다.3)

3) Alexandre Ganoczy, The Young Calvin, tr. David Foxgrover and Wade Provo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7),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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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그의 작품을 읽자. 그를 이용
하지 말고, 그에게서 듣자.4)

4. 말해져야 할 우리의 객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분주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고자 하면 되고, 우리 자신이 말하게끔 하면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
이 되는 것, 우리가 객관이 되는 것은 우리가 우리를 조종해서 되는 것이 아
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할 기준조차 스스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여
기에서도 역시 우리는 자기부인을 말할 수밖에 없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를 통하여서 자기부인을 전개했다. 그러므로
이 책으로부터 우리가 자기에 대해서 말하기를 배우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이 책을 통하여서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
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2). 칼빈은 “강요”를 통해서 문체의 간결성(brevitas)과
유용성(facilitas)을 추구했다. “간결성”은 정의함으로써 실천적 지식에 이르
고자 함이다. “유용성”은 하나님의 헤아림에 맡기고자 함이다. 칼빈은 『기
독교 강요』한 권의 저자가 아니다. 비록 이 책이 칼빈을 대변하지만, 우리
가 칼빈의 전체 객관을 말할 때, 그것은 그의 작품 전체를 망라한다. 그것은
58권의 전집(opera)의 글들과 수천편의 분실된 설교문들을 포함한다. 그러
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
고, 정리된 몇 줄로 그를 판단하지만 말고, 꾸준히 그의 작품을 읽을 일이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말하는 이상,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강요』을 읽어야 하는 제일의 당위성은 우리가 그에 대해
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의 신학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
학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으로 알기 때
문이다. “강요”는 주석과 설교와 함께 읽혀야 한다. “강요”의 순서에 따라서
설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요”를 읽고 말씀을 택해서 매일 가정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강요”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당(穩當)하게 말해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A clever theologian can accommodate Calvin to nearly any agenda; a faithful thrologian--and a
good historian--will seek to listen to Calvin, not to use him.” Richard A. Muller, The
Unaccommodated Calvin: Studies in the Foundation of a Theological Tradi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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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현재 『기독교 강요』초판을 라틴어로부터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다. 이 작업 중 간혹은 감격하여 가슴을 치기도 하고, 멈추고 기도하기도
한다. 평생 읽을 명문으로 가장 최근에 줄쳐 놓았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한 칼빈의 전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믿는다; 소망은 그 분께서 시


의적절한 사건으로 자신의 진리를 보이시기를 기대한다. 믿음은 그
분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 소망은 그 자신께서 우리를 향
하여 항상 그렇게 행하시기를 기대한다. 믿음은 영생이 우리에게 주
어졌음을 믿는다; 소망은 언젠가 그것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믿음
은 소망이 기대고 있는 기초이다. 소망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보존한
다. 먼저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도 하나님으로
부터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신앙의 연약함은 마치
지쳐서 쓰러지듯 하지 않도록 꿋꿋이 소망하고 인내함으로써 보존되
고 양육되는 것이 합당하다. 사랑에 대한 증거는 조금도 더 불명확하
지 않다. 왜냐하면 믿음이 그리스도를 아버지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
어지신 분으로서 파악함에 있어서[참고. 요 6:29] 참으로 그는 사함,
의, 평화,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일 뿐만 아니라 성화와 생수의 샘이
시기 때문이다.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성령의 은사
와 열매[갈 5:22]이자 그의 성화의 일로서 사랑을 발견한다[참고. 엡
5:26]. 보라 소망과 사랑이 믿음으로부터 한 쌍으로 나란히 태어나
고, 나타나는 것을—그들이 그곳에 나눌 수 없는 끈으로 매여서 결합
되어 있음을!

Soli Deo Gloria in Aeternum(하나님께 영원히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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