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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종교개혁500주년 기독신문 연재 1]

루터와 칼빈: 뜻으로 헤아려 본 종교개혁 500주년

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 루터의 ‘자기’ 개혁

1517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게시를 기점으로 삼아 오는 10월 31일로 종교


개혁 500주년이 된다. 그 발단은 면죄부였다. 로마 교황청은 비록 천국에 들어갈 만
큼 합당한 공로가 없을지라도 사제가 매겨주는 가액(價額)대로 돈을 지불하고 면죄부
를 구입하게 되면 교회의 보고(寶庫)에 비축되어 있는 선대(先代)의 성인들이 남겨놓
은 공로가 자기의 것으로 돌려져 천국행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혹세무민했다. 그들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열쇠의 권한’을 곡
해하여 교황과 사제 등 사람들에게 그것이 있다고 여기는 바, 면죄부도 이러한 발상
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가톨릭은 면죄부가 역사상 일시적으로만 발부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이
를 하나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려고 하지만, 그 명분은 그들이 7성례 중 하나로 여기
는 고해성사의 교리와 긴밀히 맥락이 닿는다. 그들에 따르면 회개에는 세 가지 요소
가 있어야 한다. 첫째, 마음의 통회(contritio cordis)로서, 이는 단지 죄를 인식하거
나 인정하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되며 자괴감이 들 정도로 내적으로 뉘우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둘째, 입술의 고백(confessio oris)으로서, 이 경우 비록 다수 앞에서
공연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제에게 자신의 죄를 들려주는 공적인 고백이
필요하다. 셋째, 행위의 보속(補贖, satisfactio operis)으로서, 죄와 허물로 인하여 발
생한 손해와 손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요구된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죽을 경우 사자는 연옥에 떨어진다. 면죄부가 필요한 소이가 여기에 있다.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회를 찾은 것은 자신의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전에 그는 법학을 공부했지만 법률 조문을 익히면 익힐수록 마치
용광로에 열이 가해질수록 온갖 잡티가 더없이 맹렬히 튀듯이 그의 죄의식은 더욱 강
렬하고 깊고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도 그는 영적인 불안과 근심을 떨쳐 낼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구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엄격한 자기 절제와 고행과 처절
한 몸부림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공허했다.

“만약 수도원 생활을 통해 천국에 이른 한 수사가 있었다고 친다면 그는 아


마 나였을 수 있을 것이다. 수도원에서 나는 내 영혼의 구원과 내 몸의 건강
을 모두 잃어버렸다.”1)

1) Hans J. Hillerbrand, The World of Reformation (Grand Rapids: Baker, 1981, rep.), 13.
루터가 ‘자기’ 수행을 통하여 얻은 과실(果實)은 ‘자기’에 대한 절망
(Anfechtung)이었다. ‘자기’를 텍스트로 삼았을 때 그것은 영혼이든 몸이든 ‘자기’의
상실을 초래했을 뿐이다. ‘자기’의 공로와 가능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그것은 ‘자기’ 파
멸을 의미하였다. 고행은 육체의 멍을 남기고 깨어진 유리와 같이 영혼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과연 누가 스스로 갚아서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과연 금전
을 치르고 공로를 산다고 한들 사망의 죄 값을 어떻게 치를 수 있겠는가? 루터는 자
기의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자기’에게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하여 비로소 성경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의
삶에 있어서 일대 전기(轉機)가 마련되었으니, 그의 텍스트가 ‘자기’로부터 성경으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자질이 아니라 고백으로의 전환, 수행이 아니라 들음으로
의 전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부터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
가?’에로의 전환을 의미하였다.
루터의 발견한 ‘자기’ 개혁의 도식은 간단하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롬 1:16-17; 3:21-28; 10:17). 믿음의 말씀을
들음이 없이는 구원에 이를 자 아무도 없으므로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이 차별 없이
그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롬 10:8, 14). 듣는 자에 따라 들음에 차별이 없는 것은 듣
는 자에게 아무 공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질에 따라 들어야 할 말씀도 다르
다고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의 ‘진리의 계층질서’ 교리는 이와 양립될 수 없다. 루터가
개진한 만인제사장주의는 택함 받은 백성은 누구라도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
을 차별 없이 듣게 된다는 사실과 오직 그리스도만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제
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을 모두 함의하는 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그의
의를 전가 받는 유일한 길이 됨이 이로부터 도출된다. 이것이 루터가 오랜 역정을 거
쳐 찾아 낸 답이었다. 마음의 통회도, 입술의 고백도, 행위의 보속도 아닌—면죄부도
아닌—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의 의를 전가 받아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 ‘자기’ 수행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복음—을
을 듣고 믿을 때 그리스도와 죄인 사이에 “달콤한 변환(sweet exchange)”이 일어난
다는 사실!2)

2) Timothy George, Theology of the Reformers (Nashville: Broadman, 1988),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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