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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종교개혁500주년 기독신문 연재 4]

오직 그리스도로(solo Christo)!

문병호 (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1.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유일한 구원의 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삼위일체론, 기독론과 더불어 삼대 교리 중의 하나라고 불


리는 이신칭의 교리가 체계적으로 수립되어 갔다. 루터는 본 교리에 대한 성경적 입
장을 천명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다. 칼빈은 다음 세 가지를 들어 이를 신
학적으로 정리하였다. 첫째, 그리스도의 의 외에 다른 구원의 의는 없다. 둘째, 그리
스도의 의는 값없이 전가(轉嫁)된다. 즉, 거저 성도의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그리스
도의 의의 전가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나 [로마서 주석] 등 여러 곳에서 구원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명하면서 그것이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음을 강조한다. 첫째, 구원의
근원적 동기는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
적 공로 혹은 의가 구원의 유일한 질료 혹은 실체, 즉 값이 된다. 셋째, 구원의 유일
한 도구는 믿음이다. 믿음은 도구일 뿐, 믿음 그 자체에는 어떤 공로도 없다. 넷째,
구원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행 16:31). 십자
가 외에 다른 것으로 꾀는 것은 모두 불법이며 미혹이다(갈 3:1). 다른 복음은 없다
(갈 1:7).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롬 10:17; 마 17:5).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값이 된다. 성도의 선택, 칭의, 성화, 영
화의 전(全) 구원 과정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와 함께 모든 것을 주신 그리스
도의 공로로 말미암는다(롬 10:3). 여기에 칼빈과 개혁신학자들이 개진한 언약신학의
핵심이 있다.

2. 구속사적 성취: 단번에 영원히 구원의 의를 다 이루심

루터가 이신칭의를 기치로 삼아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면서 성도가 누리는 구


원의 은혜 자체에 집중했다면, 칼빈은 그 은혜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중보
자 그리스도가 단번에 영원히 구원의 모든 의를 이루시고 그 의를 성도에게 전가해
주시기 위하여 지금도 계속적으로 중보하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복음의 핵심을 간파하
였다. 이로부터 개혁신학을 특징짓는 구속사적-구원론적 관점이 비롯되었다. 하나님
은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의 구원을 위한 모든
의를 다 이루게 하셨다(롬 8:3; 엡 1:4; 요 19:30). 그 의는 모든 형벌을 당하신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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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dientia passiva, 受難 혹은 受罰)과 율법에 계시된 아버지의 모든 뜻을 행하신
순종(obedientia activa, 守法)을 포함한다. 그리하여 칭의와 성화의 이중적 은혜에
모두 미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마 1:1).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레 17:11; 히 9:22).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그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요 12:2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오신
주님이 “하나님의 큰 일”을(행 2:11) 다 이루셨다(요 19:30). 그 다 이루심은 구약의
언약과 절기와 제사에 모두 미친다.
성경에 280회 이상 나오는 모든 언약을 주님이 다 이루셨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등과 맺은 구약의 언약이 모두 성취되었다. 그들은 오실 메시
야를 통하여 언약이 성취될 것을 믿었을 뿐, 그들에게 공로가 있어 그들의 후손이 복
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의 주님이 모든 언약을 다 이루셨으므로 그를 믿는 자
마다 “피로 세운 새언약”의 은혜에 동참하게 되었다(고전 11:25). 주님이 유일한 대속
의 “씨”로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르셨다. 이것이 “새언약”
(히 8:8, 13; 9:15), “더 좋은 언약”(히 7:22; 8:6), 곧 신약의 복음이다.
주님은 또한 모든 절기를 다 이루셨다. 주님이 “우리의 유월절 양”(고전 5:7),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36)이 되셨다. 이제 우리는 그의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한다(출 12:7). 주님은 또한 단번에 죽음을 죽
이시는 죽음을 죽으셔서 영원한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의
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맺혔다(고전 15:20). 뿐만 아니라 주님은 초막절의 장막이
되셨다. “성전보다 큰 이”가 자기 자신을 깨뜨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되셨다
(마 12:6). 그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의 육체를 찢어 모든 민족이 영원한 안식에
이를 수 있도록 “새로운 살 길”을 여셨다(히 10:20; 슥 14:16-21).
이렇듯 주님은 절기를 다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제사를 또한 다 이루셨다. 절
기의 중심에는 제사가 있었다. 유월절에는 죽음이 지나간 것을, 오순절과 수장절에는
생명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제사를 드렸다(출 12:43-51; 레 23:1-44; 신 16:1-17).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 자체였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의 제물로 반복해서 제
사를 드렸지만, 주님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삼아(엡 5:2; 갈 1:4; 딤전 2:6) “단번
에”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히 9:12, 26, 28; 10:10; 롬 6:10; 벧전 3:18).
그리스도는 죄를 사하는 속죄제(贖罪祭)로, 허물을 가리는 속건제(贖愆祭)로,
감사로 되돌리는 감사제(感謝祭)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화목제(和睦祭)로 자기 자신
을 드리셨다. 자기 자신 전부를 헌신제인 번제(燔祭)로 드리셨다. 허공에 달리셔서 거
제(擧祭)로, 몸을 요동치시며 요제(搖祭)로, 살이 짓이겨져 소제(素祭)로, 물과 피를 다
쏟아 전제(奠祭)로 드리셨다(레 1:1-7:38).

3. 구원론적 적용: 보혜사 성령의 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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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신 후, 고
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내려주실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상세히 가르쳐주셨다(요 14-16장). 보혜사 성령의 임재로 성도
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녀요 상속자로서 그가 이루신 모든 의를 누리게 된다(롬
8:17).
첫째,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영원히 계
신다(요 14:16-17; 마 28:20). “임마누엘”이신 주님이(마 1:23) 우리 안에 사시기 때
문이다(갈 2:20; 골 1:27).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요 1:1), 이제 우리
안에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요일 2:24-25). 성령의 임재는 ‘단회적,’ ‘절
대적,’ ‘인격적’이다. 성령은 두 번 임하시지 않고, 양적으로 임하시지 않고, 물질적으
로 임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성령을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내
안에 마음껏 사시도록 성경 읽고, 기도하고, 경건하게 살고, 회개하는 것이다(엡
5:18).
둘째,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가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진리의 영”이시다(요 14:26; 16:13; 요일 2:20, 27). 보혜사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증언”하신다(요 15:26).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요 14:20). “진리의 영”이 임하면 우리의 눈이 밝
아져 주님 못 박히신 십자가가 밝히 보인다(갈 3:1). 그리고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
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심을 믿게 된다(요 14:6).
셋째, 보혜사 성령은 ‘능력의 영’이다. 이는 ‘은혜의 영’이라고 부를 수도 있
다. 성도에게는 은혜 외에는 어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유
일한 능력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능력이다. 보혜사 성령을 양자의 영으로 받은 자는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이 친히 행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된
다(롬 8:15; 갈 4:6; 요 14:13-14). 성도의 순종은 ‘아멘의 순종’ 외에는 없다. 모든
순종은 주님이 다 하셨다. 우리의 순종은 오직 그의 “예”에 대하여 “아멘”하는 순종
밖에 없다(고후 1:20).
이와 같이 보혜사 성령은 임마누엘 되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
가 우리 안에 거하는 영이시므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일컬어지신다(롬 8:9; 빌
1:19). 이러한 보혜사 성령의 세 가지 특성이 주님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 가운데
하신 다음 말씀에 모두 나타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임마누엘의 영) 내 말이 너희 안에 거
하면(진리의 영)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
리라(능력의 영)”(요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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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스도의 삼중직: 선지자, 제사장, 왕

중보자 그리스도는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대속의 의를 다 이루셨다. 그


의를 우리의 것 삼아 주시기 위하여 지금도 그는 우리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중보하신
다. 칼빈과 그를 잇는 개혁신학자들은 언약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이 점에 특히 주
목하였다.
첫째, 그리스도의 선지자직이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 나라
의 “모사”와(사 9:6; 28:29) “증인”이(사 55:4) 되셨다. 그가 “영원한 의”를 드러내셨
다(단 9:24). 사람들에게 “큰 빛”이 비추어(사 9:2) 그들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요 4:25). 그는 곳곳에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셨다(마 4:23). 하
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히 1:1-2).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
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 2:3). 오직 그의 얼굴에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다(고후 4:6).
둘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다. 이는 구약의 제사장들이 그랬듯이, 우리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시는 일과 기도를 드리시는 일을 포함한다. 주님은 자신을 제물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요 17:19; 벧전 1:19; 히 7:26-27;
10:10-14). 이삭이 그 유일한 예표이다(창 22:1-13; 6:5).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
들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마 20:28; 롬 5:8). 그가 우리의 “화목자”로 세움을 받았
으며(롬 3:2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다(롬 5:10). 그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은 죽음에 삼킴을 당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삼키시기 위함이셨다(요 1:29; 10:15; 롬 4:25; 벧전 3:22). 그리하여
죽기를 두려워하여 일생 동안 죽음에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 주시고자 하셨다(히
2:14-15). 그가 하늘에 있는 참 성소에서 그들을 위하여 지금도 간구하신다(히
7:24-25; 9:11-12).
셋째, 그리스도의 왕직이다. 교회가 영원하듯이 그리스도의 왕국도 영원하다
(단 2:44; 눅 1:33; 엡 1:20-23). 그리스도의 통치는 단지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은혜의 선물을 부여하심이 다스리심이
다(엡 4:7). 성령을 부어주시고, 성령의 은사를 내려주시고, 자신의 의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능하게 하시고, 자신의 부요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
게 하심에(고후 8:9) 왕권이 있다.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오르셔서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서 친히 다스리신다(엡 1:20-22; 빌 2:9; 고전 15:27). 보
혜사 성령을 내려주심이 주님의 통치방식이다. 그 영의 임재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영의 임재의 확산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산이다. 전도와 선교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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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립니다(Soli Deo gloria in aeter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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