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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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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호(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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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으신 것은 오직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른 것이었다. 사람의 존재이유가 하나님
의 뜻에 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자유롭다. 사람이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
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는 것과 같이,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품속에 거하여 그를 앙망하며 그에게 모든 소원과 간구와 소망을 둘 때에만 복된 삶
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떠나 이룰 수 없다. 아들이 안식할
곳은 아버지의 집이다(눅 15:11-32). 인생의 열매는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었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 것은 일차
적으로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선히 사용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셨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
은 사람이 그 자신과 함께 만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드리게끔 하려 하심
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여 그 자리에서 일탈했고, 그 결과 사망이 세상에 들어
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다(롬 8:20). 구원은 하나님
이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원래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
을 온전한 찬양의 도구로 삼는 것이었다.
2.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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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지, 그와 하나가 될 때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더한 영광을 올려야 한다(요
1:18, 21; 고전 13:12; 요일 3:2).
중세 로마 가톨릭은 영광을 하나님과 사람이 나누어 취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 외에 성인(聖人)들에 대한 숭경(崇敬)을 인정하였고, 교황을 위시한 사제들이 중
보자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탐하였다. 사람에게 공로가 돌려지니 오직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이 사람에게 돌려지게 된 것이었다. 그 극단적인 폐해가
고해성사나 연옥설, 마리아 숭배사상 등으로 표출되었다. 종교개혁은 오직 영광을 하
나님께만 돌리자는 운동이었다. 루터가 주창한 이신칭의 교리의 근저에는 우리에게는
아무 공로도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영광도 우리가 취할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
상이 놓여있었다. 칼빈은 이를 더욱 신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유일하신 중보자 그리스
도의 의만이 구원의 유일한 공로이자 값이 되므로 오직 그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기
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야 하며 그 은혜의 빚을 진 자로서 성도는 각
자에게 주어진 본분을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수행하여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칼빈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의 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하였
다. 칼빈주의에 관한 고전적 명저를 남긴 미터(H. Henry Meeter)는 이를 다음과 같
이 간명하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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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마땅히 올려드려야 하는 영적 예배이다(롬 12:1).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의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의 주요하고 가장 고상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전적으로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데 있다”라는 웨스
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조와 이와 대동소이한 소요리문답 제1조에도 잘 나타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이 그로 인하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 돌아감
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롬 11:36).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
의 존재, 사역, 계시를 기뻐할 뿐만 아니라 그의 뜻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지
칭한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듯이, 우리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요 17:1, 5-6). 아들이 자기 자신 곧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하여 제물로 드리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이다(엡 5:2; 갈 1:4; 롬 12:1-2).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우리가 즐거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만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된다.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의 영광 가운데 우리가 기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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