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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잎․서른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엘리자베스 애쉬비 지음 | 이금주 옮김
OUR REACTIONS TO DUKHA
Dr. Elizabeth Ashbye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1965, Bodhi Leaves No.26)
일러두기
․이 책에 나오는 경經의 출전은 영국 빠알리성전협회PTS
에서 간행한 로마자 본 빠알리 경임.
․로마자 빠알리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함.
․각주는 원주原註이며, 역주는 [역주]로 표기함.
․이 글은 불교 잡지 《상가 Sanga》 1959년 7월호에 실렸던
원고임.
차례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7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7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비구들이여, ‘고苦’라는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


가?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병듦이 고다. 슬픔 · 비탄 · 괴로움 · 근심 · 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헤어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
이함이 고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
[五取蘊]이 바로 고다.
《상응부》 Ⅴ권 421쪽

이처럼 엄중하고 단호한 것이 바로 사성제 중


8

첫 번째인 고성제苦聖諦입니다. 이 진리를 본질에


의거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진지한 명상을 통해서
예류과豫流果에 든 분이 얻는 특권입니다. 그러나
우리 범부들도 고苦가 그러한 것임을 알고 그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지혜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되
면 언젠가 때가 무르익어 진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가 무엇인
지 알면 알수록 자신이라는 존재가 처한 불만족스
러운 상태를 좀 더 명확히 보게 될 것이며, 우리
는 그러한 ‘이지적인 접근방법’에 의해서 무수하게
그 모습을 바꾸어 등장하는 고를 놓치지 않고 직
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빠알리어의 둑카dukkha가 가진 의미를 모두 담
을 수 있는 낱말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苦’라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9
는 말이 그 중에서도 제일 가까운 말이겠지만, ‘괴
로움’이니 ‘고통’이니 하는 낱말들도 얼추 비슷한
뜻으로 쓸 수 있겠습니다. 둑카에는 좀 더 깊고도
보편적인 의미가 들어있는데, 그것은 에볼라 의 1

말처럼 “괴로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하고 흔


들리는 일종의 동요상태로서 … 요지부동의 절대
평온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우리 자신이 고를 경험하는 경로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역주] 율리우스 에볼라 남작Giulio Cesare Andrea


1 [
Evola(1898-1974) :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전秘傳연구가,
작가, 시인, 정치가. 저작으로는 《현대세계에의 저항》, 《깨
달음의 교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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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공동으로 겪는 고
보편적으로 겪는 고苦에는 전쟁, 기아, 돌림병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겪는 집단적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그보다 잘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는 고苦로서 모든 사람이 공통적
으로 갖고 있는, 근본적인 불안과 불만 때문에 일
어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한 불안과 불만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마찰과 좌절에 기인하기
도 하고, 소위 ‘영적’인 생활을 해치는 이런저런
기분과 정서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피
조물들은 지금껏 고통 속에서 다함께 신음하고 고
생해 왔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1
둘. 남이 겪는 고
고苦 중에서도 우리가 직접 목격은 하되 우리
자신이 고통의 당사자는 아닌 경우로서, 가령 교
통사고를 목격하거나, 병을 앓고 있는 이웃을 만
나거나, 또는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는 새를 볼 때
느끼게 되는 고통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합니다.
셋. 자기가 겪는 고
고苦 중에서도 우리 모두가 각자의 업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겪는 고를 말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
문에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자아ego에 매달리는 우
리로서는 개별적으로 겪는 그 고통이 다른 무엇보
다도 가장 크게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이 점에 대
12

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사람들이 고를 만났을 때 일반
적으로 보이는 반응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1. 곁눈 가리기
대개 고통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몹시 불쾌한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외면하려 듭니다. “난 무척 예민
해서 차마 그런 얘기는 들을 수가 없어요.”라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나는 알 바 아니야.”라고 해버
립니다. 유복한 환경의 사람들이나 ‘행운을 타고
난’ 사람들은 곁눈가리개를 씌운 말처럼 괴로움을
회피하기 십상입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3
그들은 불교에 접하면 우선 인생이 근본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에 질색부터 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행복, 즉 지나갔거나 현재 겪고 있
거나 또 앞으로 있을 즐거움만을 생각하며 일상생
활에서 매일 겪는 사소한 골칫거리들은 모르는 체
합니다. ‘곁눈 가리기’식의 사고방식에서 한술 더
뜨면 ‘장밋빛 색안경’을 쓰게 됩니다. 이 안경을
쓰면 볼테르가 《깡디드》 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낙
2

천주의자처럼 “매사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돌


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역주] 깡디드 :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며 문학가인 볼


2 [
테르의 대표작.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낙천주의를 풍자한
단편소설의 제목이며 주인공 이름이기도 함.
14

2. 무조건 받아들이기
동물들이나 몇몇 원시 종족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이들은 불행한 사태로 인한 고통이나
생존의 위험 같은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맙니
다. 그들은 이러한 불행이나 위험을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하기
신앙심이 강한 이들이 고苦에 부딪칠 때 보이는
반응은 초월적인 존재에게 도와달라고 비는 것입
니다. 기도에는 어떤 재난을 당했을 때 따로 날을
받아 거국적으로 치러지는 기도처럼 의례적인 것
도 있으며, 고난을 당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는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5
기도도 있습니다.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도와달라고 비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며, 설혹 신
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온당한 행동이라고는 보지
않는 것이 불교의 입장입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기도를 한 그 개인은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어떤
더 높은 권능자에게 맡겼다는 생각에 위안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4. 비탄에 빠지기
아끼던 귀중한 재물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할 경우 사람들은 비탄에 빠지고 맙니다. 마
치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금쪽같은 내 자식아,
어디 있느냐? 금쪽같은 내 자식아, 어디 있느
냐?”(《중부》 87경, Ⅱ권 106쪽)라며 울부짖듯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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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걸핏하면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고


탄식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
도 없지 않습니까? 업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5. 투덜대기
투덜댄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오히려 또
다른 고나 보태기 십상이지요. 불평분자로 호가
난 사람은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고, 필경 주위의
친지들도 그를 멀리하여 ‘자기가 한 일 때문에 괴
로워하건 말건’ 내버려두게 됩니다.
6. 안달하기[들뜸과 회한]
이것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 가운데 하나로,
3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7
평온함을 깨뜨리는 요소입니다. 불행하게도 늘 안
달복달하는 이런 사람은 일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머지않아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저
좋아서 하는 걱정, 그것도 팔자다.’라고 한다면 좀
혹독하게 들리겠지만, 곰곰이 짚어보아야 할 문제
입니다.
7. 임시방편 찾아내기
“아이고 머리 아파. 두통약 어디 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는 않고 임시방편만 찾
으려 합니다.

역주] 법륜 · 아홉 《다섯 가지 장애와 그 극복방법》 참조.


3 [
18

8.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기


“그 친구는 속상하다고 술독에 빠지더니, 술병
으로 죽을 지경이래!” “그 여자는 줄담배를 피워대
더니 기침이 고질병이 되었어.” 소위 복지국가라
는 데에서도 ‘진정제’나 ‘각성제’에 중독되고 코카
인과 헤로인의 밀매가 성행하는 등 딱한 일들이
벌어지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중독’은
꼭 약물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거나 지적인 형태의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라디오나 텔레비
전을 늘 켜놓고 있어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선정적인 글이나 공상과학 소설이나
추리물 같은 것을 끊임없이 봐야 하는 것도 중독
의 또 다른 예입니다. 이런 내용의 책들은 특히
한밤중에 볼 경우,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기보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9
오히려 신경을 피곤하게 합니다.
9. 미움과 악의 품기
이 또한 다섯 가지 장애 가운데 하나입니다. 누
군가로부터 괴롭힘을 실제로 당했거나,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걸핏하면 미움과 악의의 태도를
보이기 십상입니다. 쉬운 예로는 자동차 접촉사고
가 났을 때 으레 벌어지는 ‘욕 퍼붓기 시합’을 들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 상대방을 멍청이라고 쏘아
대면 그 쪽에서도 즉각 응수를 하게 되어, 사고로
인한 충격도 고통인데 그런 식으로 서로서로가 고
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그보다 좀 더
사소하게는 쇼핑을 하다가 불손한 점원을 만나게
되거나 줄을 서있는데 새치기를 당할 때, 미운 생
20

각이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럴 때 사람들은 밀쳐 내거나 “흥, 별꼴이야.” 하기
쉬운데, 이러한 사소한 불쾌감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앙금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습니다.
이와 같은 ‘미움 반응’이 극단에 이르면 앙갚음
으로 나타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
이지요. 최악의 경우에는 살인에까지 이르고, 또
대를 물린 집안간의 유혈극이나 복수극 같은 결과
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미움 반응’의 문제에 관하
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톱의 비유’ (《중부》 21경,
Ⅰ권 129쪽) 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

4[역주] 톱의 비유 : 비록 도둑떼가 달려들어 톱으로 팔다리


를 자르고 악행을 저지를지라도 그들에게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태연히 견디며 오히려 그들을 감싸 안는 자비의
마음을 내야 할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해주신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1
10. 시샘하기
“학기말 시험 때문에 나는 고생 고생했는데, 우
등상은 엉뚱한 놈이 받다니.” 사람들은 매사에 이
런 식으로 시샘을 합니다. 불법을 닦아가는 사람
으로서 우리가 특히 주의해서 삼가야 할 것이 있
습니다. 자기 자신은 수행이 잘되지 않는데, 누군
가가 ‘한 소식’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시샘하는 마
음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 자칫하면 초조해지고
낙담하게 되어 불행하게도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기뻐해 줄 5

유명한 설법. 보리수잎 · 일곱 《미래의 종교, 불교》 참조.


5 [역주] 사무량심의 희심[喜 muditā]. 더불어 기뻐함. 남의
행복을 자기의 것처럼 기뻐함. 보리수잎 · 다섯 《사무량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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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있겠지요. 그것이야말로 온당한 반응이라


할 것입니다.
11. 감정 폭발시키기
고에 맞부딪쳤을 때 보이는 반응 중에는 감정
폭발도 있는데, 거기에는 상당히 묘한 구석이 있
습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고, 욕지거리를 퍼붓고,
살림살이를 박살내는 짓을 하면 남들은 눈살을 찌
푸리지만, 이런 행동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淨化]
작용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잔뜩 쌓였던 감정
이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사
자가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는 그런 감정을
터트려버렸기 때문에 기분이 좀 후련해졌다고 느
끼는 것입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3
12. 고통을 즐기기
다행히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반응 가운데
가장 나쁜 현상은 남의 고통을 보고 즐기는 가학
증(사디즘)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고대 로마의
검투나 스페인의 투우, 심한 사고를 내기 일쑤인
운동경기를 통해 남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기쁨
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경기를 보면서 관중들은
짜릿함을 맛보고, 감각적 흥분의 욕구를 만족시키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대 그리스 비극
은 또 다른 목적을 겨냥했습니다. 즉 관객에게 연
민과 공포를 일으키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정화淨化, 곧 카타르시스 효과를 얻게 하려는 것
으로, 관객들은 고대 그리스의 장중한 비극이 연
출하는 엄청난 고苦를 바라봄으로써 균형감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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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게 되며, 쌓여있던 감정을 풀어버리게 됩니다.


그 효과가 매우 극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이 영국
에서 상연되었을 때, 그 공연장은 온통 눈물바다
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응은 고통과 야릇
한 고양감이 묘하게 뒤섞여 일어난 것입니다.
이 고통 즐기기 중에서 좀 더 미묘한 형태는 자
신의 고苦를 즐기는 순교자인척하는 기분입니다.
자기는 굉장한 고통도 감내할 능력이 있고, 그렇
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둔한 무리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쭐하
는 자만심의 소치가 아닐까요.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5
13. 불행을 이용하기
자신의 불행을 이용하는 예로는 난쟁이나 지체
기형아 또는 신체의 일부가 붙은 쌍둥이들이 신체
적 결함을 대중의 시선 앞에 노출시킴으로써 생계
를 꾸려가는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또 남의
불행을 통하여 이득을 얻는 가장 저질적인 예로는
어린 아들의 뒤틀린 다리를 보여주며 구걸하는 스
페인 거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때로
맹인이나 지체 장애자가 자기에게 모두들 길을 내
주리라는 것을 알고서 혼잡한 차량의 물결 속을
아랑곳없이 건너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불행
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심보가 드러나는 경우입니
다. 우리들도 병을 앓고 난 후의 회복기를 괜스레
길게 연장해 보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있지 않습
26

니까?
14. 치암癡暗 moha 상태로의 퇴행
때로 우리의 자아는 삶과의 싸움을 더 이상 버
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패배를 자인하며 포기
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 당사자는 정신적으로
일탈상태가 됩니다. 어떤 형태의 정신적인 장애가
일어날 수도 있고, 그래서 환자가 모든 책임감에
서 해방되었다는 엉뚱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
다. 또 다른 형태로는 생활의 어려움과 단조로움
에 지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반응인데, 병이 나
았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거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까지나 내내 그렇게 누
워서 쓸모없는 기생충 상태에 만족하려 들겠지요.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7
15. 신체적 반응
고苦는 어떤 종류든 늘 감정과 연결되고, 그 때
문에 여러 가지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납니다. 갑
자기 나쁜 소식을 들으면 복부에 강한 주먹을 한
방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왠지 속이 더부룩해지고, 게다가 끊일 줄
모르는 근심 걱정은 흔히 습관성 위장장애를 일으
키기도 하고, 또 충격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머리
카락이 하얗게 세기도 합니다. 공포로 인해 머리
칼이 곤두서는 것은 부처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
가지입니다(《장부》 2경,Ⅰ권 49쪽). 진땀이 나거나
가슴이 뛰는 것도 두렵거나 초조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놀란 상태를 나타낼 때 우리는 흔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말을 씁니다.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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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일로 인해 화가 나면 순환기 계통에 변화


가 생기는 것이 예사여서 얼굴이 벌겋게 되고, 심
지어는 흙빛으로 변하고, 그보다 더 심하면 새하
얗게 질리기도 합니다.
16. 자살
고통을 당한 사람의 마지막 선택은 자살입니다.
서방 교회의 눈에는 자살은 ‘지옥에 떨어질 큰 죄’
입니다. 율법은 자살을 범죄로 간주하니까요. 그
리고 일반 기독교인들은 자살하는 사람을 비겁자
가 아니면 정신이상자로 간주합니다.
반면에 스토아학파 는 좀 다른 눈을 가지고 있
6

6[ 역주] 스토아학파 :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 철학의 한 유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9
었습니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린애만
도 못하게 두려움에 떨지 마라. 어린애들은 놀다
가 싫증나면 ‘난 그만 놀 테야.’하고 큰소리치지
않는가. 그와 같이 당신도 그런 처지가 되면 ‘난
그만 놀 테야.’라고 당당히 말하라. 그리고 떠나
가라. 그러나 떠나지 않고 머물 테면 제발 푸념일
랑 그만두어라.
에픽테토스 7

파. 모든 탐구의 목표는 평온한 마음과 확실한 도덕을 낳는


행동양식을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7 [역주] 에픽테토스(Epiktetos 55~135년경) : 후기 스토아학
파의 로마 철학자.
30

불교인들의 관점은 또 다릅니다. 불교인들은 자


살을 끔찍한 과오로 봅니다. 왜냐하면 자살 역시
업 짓는 행위의 하나인데 격렬하고 과격한 업은
다음 생에서도 여전히 격렬하고 과격한 업을 되풀
이 할 인因이 되니까요.
유일한 예외가 있긴 합니다. 그것은 아라한들의
경우인데 업을 짓지 않을 만큼 향상이 완성된 사
람인 그들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기의 삶을
그만두어도 그것이 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다 보니 미처 다 열거하지는 못했
지만 꽤나 끔찍한 목록이 되었군요. 하지만 가장
‘당연한 반응’이 여기에는 빠져 있습니다. 독자 여
러분이 그것을 한번 채워보시지 않겠습니까? 사
실 앞에서 열거한 바람직하지 못한 항목들을 쭉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1
훑어보고 나면, 고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라는 것
이 대체로 탐 · 진 · 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에서 나오
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
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비교적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 반응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1. 인내심[忍辱]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 지이다. 8

기독교도의 이러한 자세는 인내심이기는 하지


만 맹목적인 신봉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역주] 《구약성서》 〈욥기〉 1장 21절
8 [
32

불교에서 인욕이란 감각적 쾌락과 같은 마음의 때


[번뇌 āsavā] 를 닦아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덕목
9

입니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상태나 사소한 통증과


상처들, ‘마음에 걸리는 말’ 등에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좀 더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
음조차 갖지 않고 의연히 대처해야 하기 때문입니
다(《중부》 2경,Ⅰ권 10쪽).
2. 영웅적 자세
“신을 저주하라, 그리고 죽어라!” 그것은 자신이

9[역주] 마음의 때 : 수행으로 없애야 할 네 가지 마음의 때.


욕루欲漏, 유루有漏, 견루見漏, 무명루無明漏. 보리수잎 ·
스물 일곱 《경전에 나타난 비유담 몇 토막》(2018년) 13쪽의
욕폭류, 유폭류, 견폭류, 무명폭류 참조.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3
전지 전능자인양 운명에 도전하는 자세입니다.
“운명의 곤봉질에 굽히지 않으리, 내 머리 피투
성이 될 지라도.” 이것은 오만, 그것도 역겨운 오
만이지만 여기에는 비겁한 구석은 없습니다. 이와
아주 다른 경우로서 맹인과 장애자들이 사회에 유
용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써 삶을 헤쳐 나아가며
고군분투하는 영웅적 태도도 있습니다. 또 가정에
서 늘 겪는 하잘것없어 보이고 고달픈 일상생활을
감당해내는 여인네들의 용기는 별로 인정받지는
못해도 영웅적 자세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고
를 만났을 때 영웅적 자세로 대처해나감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고귀하고 영
웅적인 정신만이 확고부동함을 견지할 수 있기 때
문입니다.
34

3. 철학적 자세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제정신만은 차려야 한
다!” “백 년 전이나 백 년 후나 인간사 매한가지.”
라는 식으로 냉철하고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합니
다. 포우프 에게 보낸 메리 워틀리 몬테규 부
10

인 의 수준 높은 편지는 고苦에 대해 제법 철학
11

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할 수 없죠 뭐. 우리가 지구라는 이 고약스러운

역주] 포우프(A. Pope 1688∼1744) : 영국의 신고전주의


10 [
시대 시인, 풍자가.
11 [역주] 몬테규(Lady Mary Wortley Montagu 1689∼
1762) : 당시 영국을 풍미했던 다재다능한 여성작가. 수필
가, 여권주의자, 여행가, 기인으로 알려짐.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5
별에 태어났다는 운명은 받아들여야겠지요. 그것
이 철학이라면 철학일 거예요. 그나마 이 별에는
웃을 거리가 많다는 것이나 고마워해야 할까요.
높이 사줄만한 건 하나도 없지만요.

여기에서 ‘운명’을 업kamma이란 말로 바꾸어


읽으면 제대로 뜻이 통할 것입니다. ‘웃을 거리’라
는 말은 그대로 두고요. 웃음은 선禪이 가져다주
는 선물 중의 하나이니까요. 유머는 존재의 부조
화를 인식하는 행동으로서, 사실상 일종의 균형
감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이란 한
마리 이[蝨]보다 더 중요할 것도 없는 존재, 그것
도 그 넓은 런던 시내에서 굳이 피카딜리 쪽으 12

역주] 피카딜리 : 런던의 번화가.


12 [
36

로만 기어드는 외로운 이[蝨] 한 마리와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그 점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입
니다.
4. 창조적 자세
화가, 음악가, 시인들은 고뇌에 빠졌을 때 오히
려 훌륭한 작품을 만들곤 합니다. 예술가가 고苦
를 잘 통제하여 사실상 유익한 목적으로 돌린 것
입니다. 이러한 반응은 감정에 빠져도 압도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인데, 이들은 고뇌 속에
서 울적한 채로 있느니 차라리 일어나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런 자세는 매우 소박한 형태이긴 하지만 바로 정
진이란 미덕의 시발이 되는 것입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7
5. 동정심
이 시대를 일컬어 보통 황금만능의 시대니 이기
주의 시대니 합니다. 그러나 우발적인 교통사고와
같은 분명한 고苦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즉시
동정적 반응을 보입니다. 대형 열차 사고나 자동
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간
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상이나 감사의 인사를
염두에 두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보냅니다. 병약
자나 맹인들이 놀라는 것은 그들을 도와주려는 사
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달리,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자잘한 고통들
은 흔히 간과됩니다.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사람, 우리보다 못해서 바보 같
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남의 동정을 받기 어렵습니
38

다. 우리가 꺼리며 피하는 이런 사람들도 역시 우


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굳
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일부러 찾아다닐 것까
지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과 마주칠 때는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사실 따져보면 우리 자신이야말로
측은하게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특히 이 몸[色蘊]
은 짐이 너무 무겁습니다. 오온五蘊 가운데 나머
지 사온四蘊을 모두 싣고 다녀야 하니까요.
자기가 겪는 개인적인 고

우리가 고통을 쓰라리게 맛보게 되는 것은 개인


적인 고苦를 통해서이며, 그것은 피할 수 없이 받
아야만 하는 유산과 같은 것입니다. 아주 어릴 적
부터 ‘나’ 만들기와 ‘내 것’ 만들기에 몰두해왔던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9
우리는 마침내 ‘나’라는 것이 중심축이 되어 우주
전체가 돌아간다고 믿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곧 윤회를 거듭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균
형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이지요.
어느 아가씨가 애인에게 버림받은 경우를 생각
해 봅시다. 그 일이 남들에게야 뭐 대수로운 일이
겠습니까만, 그 아가씨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사자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불행을 당한 여자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녀는 물에 뛰어들어 죽거나, 수녀원에 들어가거
나, 아니면 자기 일에 더 열심히 몰두하면서 한탄
을 그만두든지, 시詩를 쓰든지 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는 개인적
‘고’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몇 가지 양상을 들어
40

봅시다.
1. 통증과 질병
에픽테토스는 “죽음과 통증이 두려운 게 아니
라, 바로 죽음과 통증에 대한 공포가 두렵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통증은 그 자체만으로도 예삿
일이 아닙니다. 통증은 보통 우리 몸의 어딘가에
고장이 났음을 알리는 위험표시라고 알고 있어서,
상처나 발병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진다고 생각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닙니
다. 왜냐하면 통증이란 자기가 의식하는 것의 문
제이니까요. 고苦에 부딪쳤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고, 그것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일으
키는 것도 우리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너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1
무도 뿌리 깊은 것이어서 우리는 그 느낌의 본질
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그것에 무어라고 이름을 붙이지도 못합니다. 나는
그것이 자기 연민과 분노와 두려움이 착잡하게 얽
힌 것으로, 이 모두는 삼독심의 하나인 성냄[瞋
dosa]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에
서 알듯이 지독한 통증이 오면 우리의 정신은 극
도로 비참해집니다. 통증이 느낌과 직결되어 있다
는 논거를 확실히 입증해주는 예로서 모르핀 주사
의 결과를 들 수 있습니다. ‘한 대 맞은’ 환자는 희
한한 현상을 체험하곤 하는데, 분명히 아픔은 그
대로 거기에 있을 텐데도, 자신은 전혀 통증을 느
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모르핀이 뇌 속에서 감정을 통제하는 중추
에 작용하여, 그것을 마비시켜 자기 연민과 분노
42

그리고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든 것입니다.


통증이란 것은 우리의 감정에 뿌리를 두었기에
이에 반응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다를 수밖에 없습
니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에도 신경이 예민한 사
람은 드러눕고 마는 경우가 있고, 성격이 침착하
고 신중한 사람은 그저 한번 비명을 지르든지, ‘젠
장’하고 맙니다.
통증의 강도는 분명코 각 개인의 자각 정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완성에 이른 아라한은
그 의식이 아픔과 쾌락을 초월해 있고, 감정 작용
이 잘 통어되어 있어 양쪽을 다 느끼긴 하지만 괘
념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의 아픔에 대
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고통이 줄어들 수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어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3
적으로 쭉 분석해보는 것은 일어나고 있는 감정에
마음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자연히 감정적인 반응도 약화될 것입니
다. ‘총알을 깨물고 의연히 참는다’ 는 전통적인
13

군인정신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닙니다. 총알에 정


신을 집중하는 동안은 통증을 느낄 새가 없을 테
니까요. 아마 실제로 그의 마음은 총알과 아픔 사
이를 번개처럼 빠르게 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픔은 여전한데도 참을 수 있을 정도로
반감된 것이겠지요.

역주] 서양에서 마취기술이 발달되기 전 부상당한 군인


13 [
들을 수술할 때,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물렁한 납 총알을
입에 물렸던 관행에서 나온 표현.
44

병에 걸렸을 때도 이와 같은 객관적 태도를 지


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병은 통증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기능을 약화시킵니다. 병이 나면 수행
하기도 어렵고, 의기소침해져서 남부끄럽게 생각
하게 됩니다. “거사여, 그런 까닭에 ‘내 몸은 아플
지라도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정진해야 합니다. 거사여, 그렇게 정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증이나 질병에 대
14

한 올바른 대응책은 영웅적인 인내와 용기라 하겠


습니다.

우드워드, 《몇 가지 부처님의 말씀 ; 빠알리 경전에


14 F. L.
서 옥스포드대학 출판부 1973) 132쪽.
》(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5
2. 집착
사물에 집착하는 것이 여간 큰 재앙거리가 아니
지만, 사람에 대한 집착은 그 모든 불행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고를 빚어냅니다. 경전 가
운데는 〈애생경愛生經〉이라는 중요한 경이 있는데,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를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
습니다(《중부》 87경). 우리는 인간적 사랑 속에 우
리 최대의 행복이 있다고 믿으며 자랍니다. 이것
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
렇다면 어찌하여 근심, 탄식, 괴로움, 슬픔이나
절망이란 것이 있어서 야단법석을 해야 하는 걸까
요? 그 해답을 추구하다 보면 존재의 세 가지 속
성 중의 하나인 무상無常 anicca과 마주치게 됩
15

니다. 사랑은 조건지어진 것으로, 생겨나면 반드


46

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이상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사랑은 갈애喝愛 taṇhā의 또 다른 모습
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
습니다. 우리는 사랑, 그것을 움켜잡으려 합니다.
안정을 희구하며, 이해를 희구하며, 충족을 희구
하며, 우리의 ‘근원적 고뇌’를 덜어볼까 희구하면
서 말입니다. 일시적으로 그것들을 경험해 볼 수
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다
푼 것으로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입니다.
집착과 관련하여 우리가 유념해보아야 할 것이

역주] 삼법인三法印: 무상無常 anicca · 고苦 dukkha · 무


15 [
아無我 anattā. 법륜 · 넷 《존재의 세 가지 속성》 참조.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7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죽음의 문제입니
다. 염라대왕이 자식, 친구, 연인, 애완동물을 앗
아가 버린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남아서 나이를
먹어갑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건 비극이지만
그나마 깨끗한 결말이랄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환멸로서 그것은 만남의 매력이 퇴색되어 갈 때
찾아듭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가 변해버리고
소원해졌음을 알아채고 그러다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황폐해집니다. 이것이 너무 심각해진 나머
지 애정관계가 깨어져 버리고, 흔히 뒤에 남는 것
이라곤 유감스럽게도 가슴앓이와 쓰라림뿐입니
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자기가 속았거나 기만당했다고 생각하여
미움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바보였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미워하고, 지금까지 사랑했던 대
48

상에게 이러한 자기혐오가 투사됩니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
에 모든 인간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변질되고 소원
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
하는 우정과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서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
으로든 변화하는 주위 상황에 자기를 잘 적응시켜
적절한 방향으로 스스로 변모해 가는 것이 가능하
다 할 것입니다.
냉소주의자들은 “결국 마지막엔 고苦만 남는데
도대체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은 우리 자신의 업력에 이끌려 사랑이란 것을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9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겪어야 할
과정이니까요. 우리가 현생에서든 전생에서든 사
랑의 극치와 나락을 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멧따
mettā 慈愛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
다. 사랑은 오온의 덩어리인 두 사람을 잠깐 동안
빛내줄 뿐이지만 멧따는 자기초월의 차원 높은 사
랑으로 그 빛을 온 세상에 고루고루 비추어 줍니
다.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즐거움이 찾아지든 즐거움은
즐거움이다.
《중부》 59경, I권 400쪽

부처님께서는 주로 고苦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만, 그렇다고 해서 즐거움을 금하거나 부정하지는
50

않으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감각세계를 인


정하면서 보다 나은 즐거움인 법의 실천에서 오는
즐거움 쪽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물론
그 너머에는 ‘더욱 수승하고 절묘한’ 즐거움이 기
다리고 있으며, 그것은 오직 초월상태에서 체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늙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엄밀히 말해서 모태에 드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한창 이가 나느라고 칭얼대
는 아기가 겪는 아픔이 나이를 먹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듯이,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겪는 것도 또
한 나이 먹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늙음의 고통이 가장 큽니다. 육체의 노쇠는 누구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1
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한때 잘 생겼다는 말을 듣
던 사람들에겐 평범하거나 못생겼던 사람들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누구나 늙으면
곤혹스러울 정도로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젊었
을 때의 속도를 절반도 못 내게 됩니다. 한가한
시간은 너무나 많아지는데 흥밋거리는 날로 줄어
들어 지루하고 권태롭기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늙는 건 딱 질색이야!’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냅
니다. 그래봐야 헛된 반발일 뿐 고통을 줄이기는
커녕 더욱 심화시킬 따름입니다.
노년이란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는 오히려 향상의 기회가 될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합니다. 밤늦게 나다니
거나, 자동차 여행을 떠나거나, 대륙횡단을 하는
52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원 손질조차도 이제는


잊어야만 합니다. 이런 종류의 즐거움은 결국 물
질적인 것으로, 윤회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
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혜
롭게 군말 없이 그런 즐거움들을 놓아버릴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묵은 습관들을 떨쳐버
리고, 삶이란 단지 또 하나의 습관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아 그 습관마저도 떨쳐낼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애착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아차려서 그 애착을 끊
어야만 할 좋은 기회이며, 쌓아두기를 그만두고
부질없는 소유물들을 버리기 시작할 때인 것입
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3
4. 죽음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죽음을 겪어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응 또한 해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 생각에
대해서나 겨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것은 이십 년 후에나 일어날 지, 아니면 바로 이
십 분 후에 닥칠 지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고
죽음 저편을 생각해 볼 뿐입니다. 그 생각은 살아
온 환경에 따라 그리고 공부여하에 따라 천차만별
로 다를 것입니다.
땀 흘려 일한 뒤의 휴식,
폭풍의 격랑 지난 뒤의 포구,
54

삶이 끝난 뒤의 죽음,
참으로 평안하네.

참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요. 지금도,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내’가 ‘나’
이기를 원하고 있는 한(‘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
한),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본질적으로 불안
한 이 윤회의 세계에 다시금 뛰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축생계일지 지옥일지 천상일지는 아무
도 모릅니다. 그러한 재생이 일어나기까지 이승의
시간개념으로는 얼마나 걸릴는지 아무도 모릅니
다. 또 죽음과 다음 재생 사이에서 사람의 식識은
영체라든가 갈애로 만들어진 몸이라든가 하는 것
을 걸치고 계속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중음상태
에 대해서 티베트의 《사자死者의 서書》에서는 많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5
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빠알리 경전은 전혀 그런
것을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론들은
‘요설적이고 논쟁적이고 사변적인 견해들, 혹은
사변적 견해가 무성한 황무지’라고 하여 제쳐놓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견해들에 대해서
그 어떤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미래는 미래로 두어라.” 우리의 관심은 ‘여기’,
‘지금’입니다. 죽음이 악인 것은 지금 우리가 사람
몸을 받아 모처럼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데, 그것을 박탈해 버리기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해서 절박감을 키우는
것 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16

역주] 사념수행死念修行 : 죽음에 대한 수념, 죽음을 계


16 [
56

사람은 희한하게도 나이 70이 되어서도 오히려


17세 때보다도 죽음이 더 멀리 있는 듯이 느낍니
다. 노인이 되면 그동안 살면서 몸에 익힌 습관들
이 너무도 질기게 달라붙어 있어서 전에 하던 습
관 말고는 달리 어떤 것을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됩니다. 노인들은 지금껏 자신에게 익숙해진
질서가 뒤흔들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죽
음은 그런 그들을 온통 뒤흔들어 놓을 뿐만 아니
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삶의 조건들을 떼어
내갑니다. 그들은 바로 이런 것이 싫습니다. 이
‘나’라는 것이 여태까지 입고 있던 의상이 벗겨지
면 아무것도 없이 벌거벗은 상태로 느껴지게 될

속해서 생각함. 생명기능[命根]이 끊어짐을 대상으로 한 마


음챙김으로 사마타수행의 방법 중 하나이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7
테니까요. 일반 기독교인에게는 기독교의 천국이
별로 매력이 없는데 그것은 천국이 알 수 없는 세
계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많은 젊은이들은 죽음에 대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반응합니다. “죽음은 위대한 모험
이야.” 이것은 젊은이들, 마음이 젊은 사람들의 영
웅심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종교개혁이 낳은 위대한 학자 에라스무스는 ‘바
람직하게 죽는 법, 혹은 어떻게 죽음을 잘 맞이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문을 쓴 바 있습니다. 그의 주
장은 임종 때의 회개나 교회의 거룩한 의식들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잘 죽기 위해
서 인간은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 ‘잘 살아야’ 한다
58

는 것입니다. 그것은 건전한 신조라 하겠습니다.


불교에서 보면 간절한 마음으로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三學을 닦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고苦의 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정말로 이것이 성스러운
팔정도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
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
[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이니라.

바른 마음챙김에 숙달된 수행자들은, 그 마음이


아직도 ‘술 취한 원숭이’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여
타의 우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고苦를 대합니다.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59
우리의 개인적 고통들은 우리 주변에서 모기떼처
럼 악착같이 앵앵거리고 맴돕니다. 만약 고통이
격심하면 자기 연민에 완전히 압도되어 우리는 마
음챙김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진흙탕
에 빠져 엉망진창이 되는 꼴입니다. 균형감각은
사라지고, 장래에 일어날 즐겁지 않은 사태를 미
리 상상함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태에 빠지게 될 때에는 잠
시 멈추어서 봅시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응하는 반응을(그 반응은 대체로 뒤죽박죽이지만)
가려내어, 그것이 건전한 반응이든 아니든 그 하
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봅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
리는 정신 상태를 대상으로 마음챙김 수행을 하는
것이 되고, 이는 올바른 마음챙김 수행의 매우 중
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유
60

익한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비로소 고苦로


부터 떨어져 나와 진정 가치 있는 길에 접어든 것
이기 때문입니다.
〈 고요한소리〉는
• 붓다의 불교, 붓다 당신의 불교를 발굴, 천착, 실천,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 고요한소리 회주 활성스님의 법문을 ‘소리’ 문고로 엮
어 발행하고 있습니다.
• 1987년 창립 이래 스리랑카의 불자출판협회BPS에서
간행한 훌륭한 불서 및 논문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고 있습니다.
• 이 작은 책자는 근본불교를 중심으로 불교철학·심리
학·수행법 등 실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는 연
간물連刊物입니다. 이 책들은 실천불교의 진수로서, 불법을 가깝
게 하려는 분이나 좀 더 깊이 수행해보고자 하는 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이 책의 출판 비용은 뜻을 같이하는 회원들이 보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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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의 말씀 시리즈
하나 염신경念身經
소리 시리즈
하나 지식과 지혜
둘 소리 빗질, 마음 빗질
셋 불교의 시작과 끝, 사성제 - 四聖諦의 짜임새
넷 지금·여기 챙기기
다섯 연기법으로 짓는 복 농사
여섯 참선과 중도
일곱 참선과 팔정도
여덟 중도, 이 시대의 길
아홉 오계와 팔정도
열 과학과 불법의 융합
열하나 부처님 생애 이야기
열둘 진·선·미와 탐·진·치
열셋 우리 시대의 삼보三寶
열넷 시간관과 현대의 고苦
- 시간관이 다르면 고苦의 질도 다르다
열다섯 담마와 아비담마 - 종교 얘기를 곁들여서
열여섯 인도여행으로 본 계·정·혜
열일곱 일상생활과 불교공부
열여덟 의意를 가진 존재, 사람 - 불교의 인간관
열아홉 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 정견定見
스물 활성스님, 이 시대 불교를 말하다
스물하나 빠알리 경, 우리의 의지처
스물둘 윤회고輪回苦를 벗는 길 - 어느 49재 법문
스물셋 윤리와 도덕 /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법륜 시리즈
하나 부처님, 그분 - 생애와 가르침
둘 구도의 마음, 자유 - 까알라아마 경
셋 다르마빨라 - 불교중흥의 기수
넷 존재의 세 가지 속성-삼법인(무상·고· 무아)
다섯 한 발은 풍진 속에 둔 채
- 현대인을 위한 불교의 가르침
여섯 옛 이야기 - 빠알리 주석서에서 모음
일곱 마음, 과연 무엇인가 - 불교의 심리학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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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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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둘 염수경 - 상응부 느낌편
열셋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어나는가
- 재생에 대한 아비담마적 해석
열넷 사리뿟따 이야기
열다섯 불교의 초석 - 사성제
열여섯 칠각지
열일곱 불교 - 과학시대의 종교
열여덟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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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생태위기 - 그 해법에 대한 불교적 모색
스물하나 미래를 직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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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세상에 무거운 짐, 삼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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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거룩한 마음가짐 - 사무량심
여섯 불교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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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불교 이해의 정正과 사邪
아홉 관법 수행의 첫 걸음
열 업에서 헤어나는 길
열하나 띳사 스님과의 대화
열둘 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절판)
열셋 불교와 과학 / 불교의 매력
열넷 물소를 닮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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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무아의 명상
열일곱 수행자의 길
열여덟 현대인과 불교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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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이 시대의 중도
서른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른하나 빈 강변에서 홀로 부처를 만나다
서른둘 병상의 당신에게 감로수를 드립니다
서른셋 해탈의 이정표
서른넷 명상의 열매 /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서른다섯 불자의 참모습
서른여섯 사후세계의 갈림길
서른일곱 왜 불교인가
서른여덟 참된 길동무
서른아홉 스스로 만든 감옥
마흔 행선의 효험
마흔하나 동서양의 윤회관
마흔둘 부처님이 세운 법의 도시 - 밀린다왕문경 제5장
마흔셋 슬픔의 뒤안길에서 만나는 기쁨
마흔넷 출가의 길
마흔다섯 불교와 합리주의
마흔여섯 학문의 세계와 윤회
마흔일곱 부처님의 실용적 가르침
마흔여덟 법의 도전 / 재가불자를 위한 이정표
마흔아홉 원숭이 덫 이야기
쉰 불제자의 칠보
단행본
붓다의 말씀
This translation was possible
by the courtesy of the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54, Sangharaja Mawatha P.O.BOX 61
Kandy, Sri Lanka

보리수잎․서른
고苦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년 5월 25일 1판 1쇄 발행
2001
년 10월 30일 2판 3쇄 발행
2020

지은이 엘리자베스 애쉬비


옮긴이 이금주
펴낸이 하주락 · 변영섭
펴낸곳 (사)고요한소리
출판등록 제1-879호 1989. 2. 18.
주 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47-5 (우 03145)
연락처 전화 02-739-6328, 725-3408 팩스 02-723-9804
부산지부 051-513-6650 대구지부 053-755-6035
대전지부 042-488-1689
홈페이지 www.calmvoice.org
이메일 calmvs@hanmail.net
ISBN 978-89-85186-48-3

값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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