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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찰사 기말 정리본5
한국경찰사 기말 정리본5
38 도선의 확정 1) 건국치안대
(4) 중앙경찰위원회 설치
경비, 사찰활동 강화 - 1947 년 10 월 특무과 관장사무 규정이 개정되어
경무부장 특명 사건과 중대한 일반 사건은
경무부는 경찰의 경비 및 사찰활동을 강화였는데,
특무과가 경미 사건은 관구경찰청이 담당하였다.
먼저 1947 년 11 월 수도관구경찰청에 특별순찰대를
설치하였다. - 같은 해 12 월 관구경찰청에 사찰과가 설치되고
분장사무가 규정되었다.
- 이들은 종로, 서대문, 용산 등 4 개소를 중심으로
순찰과 경비를 담당하였다.
- 이후 12 월 관구경찰청에 사찰과를 각 (3) 수사경찰 정비
구경찰서에는 사찰계를 설치하였다.
1945 년 경무국 수사과는 형사과와 경제과를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과명 통일 - 1946 년 1 월 경무국이 경무부로 됨으로써
수사과는 국으로 승격되어, 정보 업무가지
경무부는 1948 년 2 월 새로운 과의 설치나 과명의
담당하게 되었다.
개칭은 최상급기관인 경무부만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수사국에는 총무과, 정보과, 특무과, 감식과,
범의학시험소가 설치되었고 지방경찰부에서도
- 원칙적으로 총무과, 공안과, 사찰과(제주 감찰청
관구경찰청의 사찰과가 폐지되는 대신 수사과에
제외), 통신과, 여자경찰서(제 1,5,7 관구),
통합되었다.
관구경찰학교, 경찰 공보실 등 6 과 1 교 1 실을
두기로 하였다. - 경찰서에는 수사과에 서무계, 강력계, 지능계,
특무계, 사법계를 설치하였고 수사계장 휘하에
- 6 월에는 경무부의 부국장, 부관방장, 부실장,
정보반을 두었다.
관구의 부과장, 관구 경찰학교의 부교장직을 모두
폐지함으로 경찰기구를 단순히 하고 업무를 -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형사과는 수사과로,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하였다. 사법계는 수사계로 개칭되었다.
3) 지속적인 경찰업무 이관
경찰서 등급제도 1947 년 5 월 목욕탕과 음식점의 허가권을 각 오의
보건후생부로 이관되었다.
1948 년 45 우러 경찰서 등급제도를 신설하여 경찰서를
1 급지와 2 급지로 구분하였다. - 요리 또는 무주정음료판매에 관하여도 요리사
또는 무주정음료판매인은 경무부 또는 기타
- 1 급지에는 감찰관을 2 급지에는 경감을 서장으로
소관관청으로부터 부가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임명하였다.
면허를 얻도록 하였다.
- 1946 년 4 월 활동사진(필름)의 검열 및 취체에
(2) 사찰활동 강화 관한 업무가 공보부로 이관되었다. 따라서 영화의
제작, 배급 및 상영의 감독 취체에 관한 것은
해방 직후 사찰활동은 “공안질서 유지를 문란케 하는 이관되었다. 다만, 공영장의 질서 유지를 위한
다중적 불법행위 단속”하고 “정당 및 사회단체 등의 임검은 여전히 경찰이 담당하였다.
시위행렬 및 집회허가에 관한 것”을 담당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 같은 해 5 월 출판관련 경찰업무가 상무부로
이관되었다가 공보부로 다시 이관되었다.
- 미군정 초기 정치, 사회, 사상, 단체를 배경으로
하는 집회 및 시위가 많이 발생하자 1947 년 - 1946 년 4 월 소방업무는 소방부 창설로 인하여
사찰에 관한 사건은 경무부 범죄정보과가 주로 이관되었다.
취급하고, 종래 범죄정보과에서 담당하던 정치적
- 1947 년 총포. 화약. 저장, 흥신업, 도선, 도선업,
사찰이라는 업무가 정보 사무라는 이름으로
전당포업, 인쇄업, 자동차와 운전사 등에 관한
수사국 총무과로 이관되었다.
경무부의 허가 및 면허 사항을 제외한 허가권을
- 특무과는 주로 독직범(직권남용, 뇌물 등), 경제범, 서울 시장 혹은 도지사로 이관하였다.
사기, 횡령 등 일반 수사에 관한 건을 담당하게
- 이에 용달업, 하차, 마차, 제조장, 운동기 노점 등에
되었다.
관한 경무부의 허가권도 폐지하였다.
- 양곡조달은 경찰이 관여하였다. - 경무부장 직속으로 승격시켜 교육국장이 교장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 행정과, 전문과, 수사과로 나누어 교육하였다.
경찰 개혁 요구
- 전문가는 간부후보생 과정의 선구가 되었지만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제 1 분과위원회는 1947 년 3 월
교육기간은 1 개월이었고 1947 년 3 월 제 4 기까지
법률, 언론자유, 정치범 석방 등에 문제를 다른 건의안을
배출된 후 폐지되었다.
군정청에 전달하였다.
- 1947 년 9 월 전문과가 본과로 변경되어 제 1 기생
- 주요 내용은 평화적, 합법적 수단에 따른 투표나
293 명이 입교하였으며 오늘날 제1기
기권의 권리보유, 경찰과 청년단체에 대한 조치
경찰간부후보생 과정으로 삼고있다.
문제, 정치적 석방 등을 강조하였다.
- 수사과는 1946 년 2 월 각 지방경찰부 산하
- 1947 년 11 월 중앙경찰위원회 설치, 1948 년 사회,
도경찰학교를 개설하였다.
경제 활동 전반에 대한 인허가권이 일반
행정조직으로 이양되거나 폐지되어 권한의 축소가 - 각학교는 교습과, 보습과, 강습과를 두었으며
이루어졌다. 교습과는 신임순경교육, 보습과는 재래 및 특수한
경과의 경사와 순경의 재교육, 강습과는 오늘날
전문 직무교육을 담당하였다.
4) 38 선 경비활동
- 1946 년 10 월 경무부는 교육국의 분장사무 였던
1946 년 중반부터 경무부와 경기도 경찰부는 38 선 인근 경찰관 교양사무를 지방에서 시행하기 위해 각
옹진, 장단, 포천 등을 중심으로 경비활동을 실시하였다. 관구경찰청 공안과에 교양계를 설치하였다.
5) 수사권 변화
경찰은 법무국 훈령 제 1 호, 경무국장 통첩 제 1 호,
검사에 대한 법무국 훈령 제 3 호에 따른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게 되었고 검사는 소추기관으로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 다만, 일제강점기 경찰의 잔재청산 실패와
근본적인 개혁이 없는 통첩 등은 사회각층의
반발을 가져왔다.
- 1948 년 2 차례에 걸친 군정법령을 통해 검사에게
수사권, 기소권, 수사지휘권, 재판의
집행지위권등이 인정되었고, 검사동일체의 원칙도
확인되었다.
- 다만, 제헌 헌법에서는 영장청구권자의 지정과
관련된 조항은 없었다.
6) 교육발전
1946 년 2 월 조선 경찰학교를 국립경찰학교로 다시 8
월 국립 경찰전문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