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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
(서울신학대학교)
-목 차-
I. 서론
II.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구성 추진과 캐나다의 대응
III.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과 내·외부적 대립
IV. 5·10총선 이후 제헌국회의 범위 논쟁
V. 결론
Ⅰ. 서론
*이
논문은 2016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임(NRF-2016S1A 5B8913950). 심사과정에서 세심하게 논평을 해주신 익명의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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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RUS
문서는 미국무부 Office of the Historian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
스에서 정리하여 공개한 내용을 활용했다.
3)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한국문제관련 유엔문서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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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북의 유엔한국임시위원단 입경 거부
21) UNTCOK, “제9차 회의 요록: 한경직 목사와 여운홍 사회민주당 대표 인터뷰 기록.”
「First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Volume III. 1948. Third Session Supplement No.9(A/575.Add.2), 경희
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2017, 256~257).
22) 북한에 이미 단독정부가 수립되어 있으며, 남한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파업을 비롯
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과 5·10총선에 대한 미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인식 93
3. 유엔한국임시위원단 내부의 갈등 표출
4.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대한 한국인들의 여론
27) 「Report of U.S. Liaison Officer with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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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했다.31)
1948년 2월 18일 미국무부장관 문서에 의하면, 영국 외무부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캐나다와 호주대표가 남한의 선거 실시에 반대할 것
이고, 캐나다의 입장이 거부된다면 캐나다대표는 철수할 것이라고 알
렸다. 하지만 미국은 이들의 태도를 단호하게 반대할 것임을 전했다.32)
유엔소총회는 2월 19일에 개최되었고, 민주의원, 한협(한국독립정부수
립대책협의회)에서는 2월 21일 유엔소총회에 “조선민족의 다수가 절대
지지하므로 급속한 가결을 요청”하는 전문을 발송했다. 민주의원은 유
엔소총회 보고안 중 “제일안 즉 소련이 유엔 위원단에 북조선 입국을
거절한 이상 ‘남조선만이라도 총선거를 단행하야 중앙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은 삼천만 민족 전체의 희망임”이라며 단독선거를 촉구했다.
한협은 메논의 연설33) 중 “전 인구의 삼분지이를 포함한 조선에 총선거
를 실시하여 조선의 중앙정부로 하자는 제일안은 가장 조선민족 다수
가 희망하고 지지하느니만큼 그 안을 가결 해주시기를” 요청했고, 대
한독립촉성국민회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다(東亞日報 1948/02/22).
한국인들의 반응을 미군정은 면밀하게 파악했고, 1948년 2월 22일
하지는 미국무부장관에게 다음 내용을 보고했다. “유엔소총회에 보낸
메논의 보고는 한국 사람들을 둔하고 낙담한 사람들로 전락시키고 있
다. 그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에 관한한 한국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
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소련 관할지역에서 급변하고 있는
사건들의 중요성을 폄하하기 위해 자신이 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
는 메논의 보고 내용은 우리의 점령이 시작된 이후 코리아에서 벌여
온 ‘냉전’을 어떤 수준에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전형적인 모습”[저자 강조]이라 했다. 또한 캐나다와 호주대표가 인식
36) 미국은 “황급히 달아나기”(scuttle and run)에 기초한 미국의 남한 철수가 극동과 더
넓게는 세계에서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의 충돌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37) “Memorandum by the Director of the Office of Far Eastern Affairs
(Butterworth) to the Secretary of State[Washington],” March 4, 1948, FRUS .
38) 워싱턴행정부는 남한만의 선거 실시를 연기하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예를 들면
남한의 종교단체들이 5월 9일이 일요일이므로 투표일을 하루만 연기해 줄 것을 요청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랭던이 이 제의가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
렸고, 결국 선거는 5월 10일로 연기되었다(매트레이 1989, 179).
39) “The Acting Political Adviser in Korea(Langdon) to the Secretary of State,”
Seoul, March 10, 1948, FR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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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Lieutenant General John R. Hodge to the Secretary of State,” Seoul, March
17, 1948, FRUS .
45) 김규식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강제 수용소에 보내질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면서 체념하는 듯이 보였”다고도 이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46) “The Political Adviser in Korea(Jacobs) to the Secretary of State,” Seoul,
March 29, 1948, FRUS.
47) “The Acting Secretary of State to the Political Adviser in Korea(Jacobs)”
Washington, April 5, 1948, F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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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5·10총선 이후 제헌국회의 범위 논쟁
1. 5·10총선에 대한 평가
52) 「Report of U.S. Liaison Officer with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7 June 1948,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USAFIK), XXIV
CORPS. Box. 67. RG 554. p.151~152.
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과 5·10총선에 대한 미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인식 105
53) 「UNTCOK, First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Volume I. 1948. 7. 21. Official Record: Third Session
Supplement No.9(A/575),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2017,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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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UNTCOK, Second Part of the Report of the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2017, 629).
60) “Lieutenant General John R. Hodge to the Secretary of State,” Seoul, June
20, 1948, FRUS .
61) 실제 미군정은 새로 구성된 국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1948년 5월 30일 제이콥스는 최근 이승만과의 세 차례 면담을 미국무부에 보고했다.
제이콥스와 하지는 미국정부가 이승만과 새 국회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것은 잘못
되었음을 이승만에게 전했다. 이승만은 미국과 유엔이 한국을 위해 해준 일에 대해 감
사의 마음을 표했고, 지속적 미국의 원조와 기술자 파견을 요청했다. 또한 적절한 한
국 방위군(Korean security force)이 훈련받고 무장할 때까지 미국 군대가 계속 주둔
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과 5·10총선에 대한 미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인식 109
Ⅴ. 결론
참고문헌
1. 1차·준1차자료
「Report of U.S. Liaison Officer with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7 June 1948.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USAFIK), XXIV CORPS. G-2, Box. 67.
RG 554.
“United Natio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United States
Army Forces in Korea(USAFIK), XXIV CORPS, G-2, Box
66, RG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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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委員團 以北訪問不許.” 『東亞日報』 (1948/01/13).
“蘇뽀이코트에 各界反響.” 『東亞日報』 (1948/01/27).
“金九氏金博士見解는 理解不能.” 『京鄕新聞』 (1948/01/30).
“南朝鮮內共產派 유엔團業務妨害.” 『東亞日報』 (1948/02/10).
“蘇侵略의 發露, 朝鮮分割企圖.” 『東亞日報』 (1948/02/19).
“『메논』 議長報告의 國內反響.” 『東亞日報』 (194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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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과 5·10총선에 대한 미국정부와 한국인들의 인식 115
국문 초록
양준석
(서울신학대학교)
<Abstract>
Joonseok YANG
(Seoul Theologic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