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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일제 식민지 재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


06. 광복을 위한 노력
1. 한중 연대와 민족 통일 전선 형성 노력

1. 한인 애국단, 항일 투쟁에 활기를 불어넣다


1) 배경: (1)중국 관내 독립 운동의 침체, 중국인의 반한 감정 고조(만보산 사건) → 항일 투쟁의 안정적 기반 확보를 위해 중국과 연대할 필요성 대두
2) 조직: (1)김구의 책임 아래 조직(1931)
3) 활동: (1)이봉창 의거(1932.1.): 도쿄에서 일왕의 마차에 폭탄을 던짐 → 의거를 보도한 중국 언론의 반일적 태도를 구실로 일제가 상하이 침략(상하이 사변)
(2)윤봉길 의거(1932.4.): 1/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왕 생일과 상하이 사변 승리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짐 → 일본인 장성과 고관 처단 <백범일지> <이봉창>
2/ 의의: 중국의 반한 감정 완화,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한 적극적 지원 → 한중 연대 항일 전선 구축의
결정적 계기 마련

2. 민족 혁명당의 주도로 조선 의용대가 조직되다


1) 민족 혁명당 결성(1935, 난징): (1)배경: 1/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 정부 등 항일 세력이 상하이를 떠남
2/ 투쟁 역량의 강화를 위해 항일 전선을 통합하려는 노력 전개
(2)결성: 한국 독립당, 의열단, 만주에서 이동해 온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정당 단체들이 뭉쳐 결성
→ 중국 관내 최대 규모의 통일 전선 정당
(3)한계: 1/ 김구 등 임시 정부를 고수하는 세력 불참
2/ 의열단의 당권 장악 → 조소앙, 지청천 등 일부 민족주의계 인사 이탈
2) 조선 의용대 창설(1938): (1)민족 혁명당의 김원봉 주도
(2)배경: 중일 전쟁 발발 → 적극적인 무장투쟁의 기회로 인식 <윤봉길> <거사 직전 김구, 윤봉길>
(3)창설: 민족 혁명당과 사회주의 단체 연합 → 중국 관내 최초 한인 무장 부대
(4)활동: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 → 일본군에 대한 심리전, 후방 공작 활동 등
(5)변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소극적인 항일 태도 → 다수 병력이 화북 지방 이동

<조선 의용대(1938)>
3. 대한민국 임시 정부, 충칭에서 체제를 재정비하다
1) 1930년대 독립운동의 과제: 한중 연대, 통일 전선 형성 → 투쟁 역량 강화
2) 충칭 시기 임시 정부: 충칭 정착(1940) → 한국 독립당 결성(임시 정부 주도, 1940), 한국 광복군 창설(총사령관 지청천, 1940) → 건국 강령 발표(삼균주의 바탕, 1941)

4.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력이 뭉치다


1) 통일 전선 형성 노력: (1)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일부 병력이 한국 광복군 합류(1942)
(2)민족 혁명당과 사회주의 계열 인사들의 임시 정부 참여
2) 외교 활동: (1)미국, 중국 등 연합국으로부터 임시 정부를 승인 받기 위해 노력

<좌우 합작을 이룬 제34차 임시 의정원 기념사진>

<임시 정부의 이동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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