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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의 미학

창안 ․ 연출 김현탁
제작 극단 성북동비둘기
장소 뚝섬플레이스
일시 2020년 6월 30일 ~ 7월 12일

2012년 공연과 이론 (통권 47호)에 발표된 <메


디아 온 미디어> 연출 노트1)에서 김현탁은 자신의
배우론을 다음 문장으로 요약한다. “배우는 불편해

면 코 야 한다”(183). 김현탁의 연극에서 배우는 쉼 없이



베 극 로 뛰어야 하고, 땀 흘리며 노동해야 한다. 오로지 하나

허 르 대 나 의 운동에만 집중하는 순간 배우의 몸은 불편해지지
설 만, 관객들은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인식의
2 톨 화 바 순간을 경험한다. 다시 말해서 몸의 에너지가 “한
트 를 이 곳으로 몰리는 상태”(183)에 도달하면 배우의 내면

브 위 러 이 투명하게 드러나면서 관객들은 풍크툼(Punctum,

레 한 스 섬광처럼 꽂히는 강렬한 울림)의 순간을 발견할 수


(

있다. “진정성은 몸의 무너짐에서 오는”(183) 법이기


히 연 C 때문이다. 불편함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김현
트 o
출 v 탁 연출의 배우론은 공간이나 텍스트에도 적용할 수
의 과 i 있다. 조명 배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극장은 행동
하는 인간의 ‘실제’ 삶을 모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 연 d 공간은 사건이 직접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
리 기 1 님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180). 공간은 사실적인
두 술 9 묘사를 통해 시공간의 연속성을 전달하지 않기 때문
)

기 이
에 관객의 몰입이나 감정이입(Empathy)이 불가능하
연中
효 구心


다. 이렇게 불편한 공간은 두 시간 동안 펼쳐지는
불편한 몸의 향연을 반복적인 연극적 놀이로 변화시
과 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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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다. 진정성의 몸이 반복 불가능한 돌발적 사건을 만들어 낸다면, 불편한 공간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연극적 놀이를 만든다. 불편한 몸이 만들어내는 진정성과 불편
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유희성. 김현탁의 연극에서는 진정성과 유희성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이 충돌하면서 극적인 긴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1)

텍스트의 측면에서 김현탁 연극의 새로움은 “모든 부분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주 작은 한 부분만을 뒤트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183). <메데아>, <변신>,
<혈맥>,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고전 텍스트들은 김현탁 연출의 손을 거치면서 비동
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그의 퍼포먼스 텍스트에서는 인
물이나 극적 행동이 다양한 시공간 사이에 걸쳐 있는 다중노출(하나의 사진 프레임
안에 두 개 이상의 이미지를 겹쳐 촬영하는 기법) 이미지로 변화한다. <메디아 온
미디어>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메데아는 만화영화 주인공 가면을 쓰고
독백을 하고, <잠자는 변신의 카프카>에서 그레고리 잠자의 얼굴에는 카프카와 김현
탁 자신의 모습이 겹쳐 있다. 그래서 메데아의 독백에 깔려 있는 거대한 감정의 응어리
는 만화영화 주인공 이미지로 인해 파편화되고, 잠자/카프카/김현탁은 변신 모티프를
다양한 시각에서 제시한다. 등장인물의 고정된 정체성을 뒤흔드는 이런 뒤틀림은 비
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형태로 과거와 현재의 시선이 무대 위에 공존하게 만든다.
두 개 이상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무대 위의 퍼포먼스 텍스트는 돌발적으로 ‘변신한

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프레임이 사라지고 새로운 프레임이 들어서기도 하고,
대중문화의 클리셰부터 역사적 사건까지 시공간을 폭넓게 횡단하기도 한다. 메데아와
그레고리 잠자는 자신의 ‘과거’ 캐릭터를 유지한 채 ‘현대’ 사회로 순간이동하고,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 고전 텍스트와 대중 매체의 글들이 겹쳐지기도 한다. 다중노출 이미
지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프레임을 바꾸고, 그 안의 배역은 끊임없이 새로운 콘텍스트
로 이동하면서, 관객은 하나의 단일한 시선으로 전체 연극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관객은 누구의 시선으로 이 작품을 봐야 하는지 불편한 시선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편한 몸 = 진정성의 몸 불편한 공간 = 유희성의 공간


▼ ▼
일회적, 돌발적, 반복 불가능한 사건 반복적인 놀이

1) 김현탁, 연출노트 <메디아 온 미디어> , 공연과 이론 47, 2012, 179-183쪽. 이후 김현탁의 연출


노트에서 인용한 부분은 해당 페이지만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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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퍼포먼스 텍스트 = 다중노출

비동시성의 동시성

요약하면, 불편한 배우는 하나의 운동에만 집중하면서 오로지 모든 에너지를 자신


의 몸에 집중한다. 배우는 몸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무대 위에 현존하고, 관객은 강렬한
정서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불편한 공간은 연극적인 놀이를 반복하기 때문에 관객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불편한 퍼포먼스 텍스트는 다중노출 이미지를
반복하면서 관객이 단일한 시선으로 사건
을 관찰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불편한 몸
과 불편한 공간, 불편한 퍼포먼스 텍스트
가 겹쳐지면서 그의 공연은 결국 관객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김현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 이
외에 관객은 없다. 나의 의식에서 철저히
처절하게 배제된다, 나 하나로 충분하다,
관객은.”(181) ‘대중적인 시선을
’ 거부한 불
편한 연극을 보는 동안, 관객은 진정성과
유희성 사이에서 내적으로 위기를 겪는다.
고전적인 문학 텍스트를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연극적
관습이 사라져 버리는 공백이 생기고, 전
체 상황을 통제하는 힘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관객은 과거의
스토리를 재현한 연극을 보는 것인지, 아
니면 연극적 놀이를 보는 것인지 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게다가 기존의 스토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김현탁 연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극대화를 위한
의 공연은 원본 텍스트를 알지 못하는 관객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中心
에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으로>, (상) 극장 앞 공연 포스터, (중) 극장 앞 관객
대기실, (하) 극장 뚝섬플레이스 입구
그의 공연은 즉각적인 이해를 거부하지만, (사진제공: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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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풍크툼의 순간이
’ 특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탁 연출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中心으로>는 뚝섬플레이스(took some PLAYS)라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공연되었다.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면역리허설>이라는 제목으
로 세 개의 작품을 시리즈로 공연할 예정인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는 그중에서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공연 제목
을 보면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연극으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실제 공연에서도 역사화, 이화효과, 게스투스 등과 같은 서사극 개념들이
장면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 극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 무대는 강의실을 재현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배우들은 객석과 똑같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자리에 앉아있
고, 무대 뒤편 칠판에는 장면 제목이 번호순으로 적혀 있었다. 관객들은 70분 만에
서사극을 이해할 수 있는 ‘단기집중과정의
’ 수강생이 되는 것이다.
실제 공연은 서사극 개념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김현탁 연출
은 서사극이라는 프레임으로 다양한 시공간을 횡단하면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서사극
의 본질로 접근한다. 그래서 십여 편의 단막극들이 서사극이라는 주제어로 자유롭게
연결된 옴니버스 구성을 하고 있다. 결국 브레히트의 서사극 개념들은 그리스 비극,
대중문화, 동양연극 등과 겹쳐지면서 다중노출 이미지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장면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 서론
2. 가면의 사용 (관객과 함께 ‘시장에 가면’ 게임 진행)
3. 경극의 영향 (배우 두 명이 가면을 쓰고 베트맨과 조커의 대화를 경극 스타일로
공연)
4. 역사화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인형극 스타일로 공연.)
5. 이화효과 (이조년의 고전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 분석)
6. 게스투스 (핑크퐁의 <아기상어>를 선거운동, 코로나19 캠페인 스타일로 공연)
7. 자기소개 기법(브레히트의 자기소개와 코로나19 사태로 격리된 배우의 자기소개
병치)
8. 노의 영향 (독도 문제/반도체 재료 수출 제재로 인한 한일 간의 갈등을 노가쿠
스타일로 풍자)
9. 서사적이란 (TV 대담형식으로 브레히트 인터뷰 진행.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정책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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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노래의 도입 (DJ DOC의 노래 <나 이런 사람이야>를 <나 ‘이란’ 사람이야>로
가사 바꿔 부름. 장면 후반에 곡이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바뀌면서 이한열
열사 사건이 겹쳐짐)
11. 제사의 벽사용 (4명의 배우가 이한열 열사의 주검 주위에서 처용무를 춤)
12. 막간극 (앞 장면이 끝난 후 배우들이 정지 후 긴 침묵이 이어짐. 불편한 몸의
전시. 침묵이 끝나갈 무렵 무대 밖의 배우들이 등장해서 처용무를 추던 배우들을
위로하면서 장면이 끝남)
13. 결론 (배우들이 노래 <상록수 2020/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에게
(feat. 정은경 본부장)> 합창)

몇 장면을 예로 들어 살펴보면, 4. 역사화 장면에서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마지막 장면을 인형극으로 연출한다. 이 장면에서 김현탁 연출은 기원전 5세기의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2020년 현재 이야기와 결합시켜 다중노출 이미지로 전환시켰
다. 먼저 오이디푸스 왕은 페스트가 아
니라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이
병을 자신의 어머니이자 부인인 이오카
스테에게 옮긴다. 절망한 이오카스테는
몸이 불덩이가 되어 침실로 들어간다. 그
리고 코로나에 오염된 코로나바이러스
왕은 자기 어머니이자 왕비를 코로나 브
로치로 찔러 죽인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
의 근친상간 모티프는 코로나 전염으로
바뀌었고, 이오카스테의 자살은 타살로
바뀌었다. 주인공을 맡은 두 명의 배우는
줄인형처럼 감정표현 없이 동작만을 수
행하고, 모든 대사는 뒤에 서 있는 인형
조정자가 이야기한다. 이 장면에서 줄인
형은 운명의 노리개가 되어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오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디푸스 왕과 2020년 서울의 코로나바이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中心으로>, (상) 리
허설 장면, (하) 리허설 장면 (‘노의 영향’ 장면)
러스 왕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지 못하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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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김현탁 연출이 비극적인
사건을 인형극으로 재현한 것도 운명이라는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허덕거리는 모습을
강조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김현탁 연출은 운명의 노리개라는 인간의 조건(conditio
humana)을 고전의 역사화를 통해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이를 넘어서기
위한 성찰을 촉구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왕의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다. “모든 백성들
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너희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오이디
푸스 왕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신들의 목소리에 순응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 왕은 신화
의 세계를 깨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인형극의 특성상 인물의 행동과 감정은 분리되었고, 관객은 인형 조정자가 전달하
는 격정적인 대사와 줄인형의 동작을 직접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4. 역사화 장면은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적어도 인형의 동작 측면에서는 배우 자신의 감정과 거
리두기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격정은 파편화되어 관객에게 전달된
다. 디드로의 표현처럼 좋은 배우는 스스로 “아무것도 느끼지 않지만 탁월하게 감정을
나타낼 줄 아는 사람”2)이다. 줄인형은 디드로가 말하는 ‘차가운’ 배우, 그러니까 자신의
‘뜨거운’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둔 배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왕의 비극적인 운명에 감염되어 같이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거리두기
를 지키면서 성찰할 수 있다.
6. 게스투스(사회적 몸짓) 장면에서는 <아기상어> 노래에 맞추어 배우들이 춤을
춘다. 처음에는 동요를 즐겁게 부르는 것처럼 보이다가, 중간부터는 상어송이 선거용
노래로 바뀌고 배우들은 손가락으로 기호 2번을 외친다. 마지막에는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손 씻기 노래로 변한다. 같은 노래, 비슷한 율동이지만 손의 게스투스가 달라지면
서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서 손동작이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와 코로나19 사태라는 사회적 관계/맥락을 암시하는 게스투스로 전환되면
서, 노래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브레히트가 동양연극을 사진이 아니라 공연으로 접한 것은 1935년 모스크바에
서 매란방의 경극을 본 것이 유일하다. 노(能)의 경우 브레히트는 젠찌구의 작품 곡행
(谷行) 을 개작해서 긍정자, 부정자 라는 학습극을 만들었을 뿐이다. 브레히트가 동
양연극을 언급하는 것은 배우가 자기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연기법이 인상적이었
기 때문이다. 김현탁 연출은 브레히트가 열광했던 거리두기 연기술을 8. 노의 영향
장면에서 재현한다. 이 장면에서는 세 명의 여자 배우가 하야시가타(악사) 및 지우타

2) 드니 디드로, 배우에 관한 역설 , 주미사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2,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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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中心으로>,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

이(코러스) 역할을 하고, 세 명의 남자 배우가 노가쿠의 시테(주연)와 와키(조연) 역할


을 한다. 특히 악사들은 한국산 세제 빈 통, 한국산 맥주병, 한국산 음료수 캔을 활용해
서 노가쿠의 음악을 완벽하게 모방했다. 폐품으로 만들어 내는 연주가 유치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배우들의 노력으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거의 완벽한 합주를 만들었다.
또한 세 명의 남자 배우들도 노가쿠의 양식적인 걸음걸이나 행동을 잘 재현했다. 사실
이 장면은 노가쿠의 틀을 가지고 왔지만, 내용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 갈등이
막장 드라마 형식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독도라고 불리는 젊은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한일 간의 자존심을 걸고 경쟁한다. 뜨거운 열정과 욕망이 지배하는 삼각관계
이지만, 배우와 악사들은 차가운 머리, 차가운 감정을 유지하면서 절도 있고, 절제된
동작을 보여준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의 단순한 남녀 갈등을 매우 양식적인 연기로
승화시켰다. 즉 김현탁 연출은 몰입이나 감정이입이 없더라도 연극적인 재미가 가능
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체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과거와 현재,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성(聖)과 속(俗) 사이의 충돌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인형극으로
변형되고, 테베의 페스트는 서울의 코로나19와 겹쳐진다. 노가쿠는 막장 드라마와
겹쳐지고, 죽은 자의 귀환이라는 노가쿠 특유의 모티프는 사랑싸움과 겹쳐진다. 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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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中心으로>,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

인간, 이승과 저승 사이의 수직적 갈등은 인간 사이의 수평적 갈등으로 전환되고,


신의 자리에는 인간의 욕망이 자리한다. 매 장면마다 이렇게 다양한 텍스트와 콘텍스
트가 다중노출 이미지로 결합하면서 배우들 역시 매번 변신을 거듭한다. 하지만 배우
들은 배역에 맞게 의상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복처럼 생긴 검은 바지와 검은
티셔츠만 입고 연기한다. 무대는 구체적인 사건이나 행동을 재현하지 않고 텅 비어있
다. 서사의 유일한 통합점은 무대 뒤편에 있는 칠판이다. 관객들은 칠판을 이정표로
삼아서 서사극 개념과 장면 사이의 관계를 추리하면서 공연을 본다. 결국 퍼포먼스
텍스트는 장면마다 변신을 거듭하지만, 배우들은 조명이나 특수효과 없이 최대한 서로
의 몸에 의지해서 빈 공간을 채워나간다. 퍼포먼스 텍스트는 다양한 맥락을 횡단하면
서 연극적인 유희성을 극대화하고, 순수한 배우들의 몸은 진정성을 보여준다. 연극적
인 놀이와 진정성의 몸 사이의 긴장 덕분에 이 연극은 옴니버스 구성에도 불구하고
각 장면들이 모여서 하나의 완전체를 만들었다.
1980년대까지 연극에서 검열이 있었다면, 2020년의 극장에는 검역이 있다. 김현탁
연출은 관객들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 검역을 받는 과정을 세심하게 연출했
다. 관객들은 김미옥 배우의 안내에 따라 체온을 재고, 설문지에 답해야 한다. 극장
안으로 들어갈 때도 배우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입장하고, 객석에 미리 앉아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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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이 크게 박수를 치면서 관객들을 자리로 안내한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투명
한 막을 쳐서 비말이 전파되지 않도록 했고, 배우가 객석으로 건너올 경우에는 장갑을
끼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상태에서 이야기한다. 게다가 검역 규정 때문에 무대와 객석
에는 딱 13개의 좌석만 설치되어 있다. 김현탁 연출은 1980년대 금지되었던 극작가
브레히트를 호출해서 코로나19 사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래서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효과와 코로나19 방역대책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다중노출
프레임을 형성하고 있다. 나아가 김현탁 연출은 코로나19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감염예방에 필수적인 조치라면,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는
우리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태도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브레히
트의 눈으로 우리의 삶과 역사 곳곳을 누비면서 거리두기 효과의 유용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젊은 배우들의 역량이다. 평균나이가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 어린 배우들이었지만, 몸동작이나 발성 등이 모자람 없이 훌륭
했다. 그의 연출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대중적인 시선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는 그 지점에서부터 작품은 존재한다. 자, 저기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자,
왼발에 무시, 오른발에 무식! 패기 있게 앞으로 갓!”(181). 극단 성북동비둘기가 코로나
19를 끝내 이기고 “아름다운 연못까지
” 진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거기에 도달하기까
지 김현탁 연출은 매너리즘의 혐의를 벗기 위해 과거의 김현탁과 부단한 싸움을 벌여
야 한다.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이재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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