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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의 대면 연극을

위한 ‘거리두기’ 면역 실험극

창안 ․ 연출 김현탁
제작 극단 성북동비둘기
장소 뚝섬플레이스
일시 2020년 8월 13일 ~ 23일

성수동 주택가 어느 골목길을 돌고 돌아 극단 성


북동비둘기가 새로 개관한 뚝섬플레이스(took some
면 PLAYS)를 간신히 찾아냈다. 공장 건물 같은 외관에
역 공연장 입구 같지 않은 작은 철문, 게다가 지상 2층

허 야 에 위치한 이 의외의 극장은 성북동과 한남동을 거

3 생 치며 성수동까지, 대학로에서 더 멀어졌지만 독자적
생명력은 더 강해진 극단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 듯

다 하다. 이곳은 기발한 시선과 극단(極端)의 감각으로


동시대를 포착하고 구현하는 김현탁 연출과 극단 성
큐 북동비둘기의 실험극이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과 가
멘 치를 모색해나갈 새로운 창작공간이다. 공연 중심지

터 는 아니지만 성수아트홀과 우란문화재단이 위치한


성수동은 공연의 불모지는 아닌 셈이니, 대학로와의
리 이 거리두기가 지역 커뮤니티와 공연장 네트워크를
:

동시에 개선/확장 시키는 역할도 하리라 기대한다.

연 개관 공연 <메이드인스타그램>을 작년 말에 무사
히 마치고,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상황에
극 서 긴급 프로젝트로 자체기획한 <면역리허설 3부
이 작>은 대면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관객과 현재의 시

간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일종의 시도이자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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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리허설 <격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원작으로 재창작
되었다. 등장인물인 아만다, 로라, 톰은 마스크를 쓰고 방호복을 입고 등장하며 그들의
가정은 코로나19의 격리된 극장으로, 관객은 유리동물로 재치있게 설정되었다. 두
번째 리허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 극대화를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이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사회적 거리두기에 접목하여 연극 안팎의 모든 거리와 관계를 자유로운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 놓는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투명막을 설치하여 비말을 차단
하고, 브레히트의 역사화나 이화효과, 게스투스 등 서사극 개념을 직접 차용하지만,
실제는 코로나19와 한국의 현실을 맥락으로 한 비판적 야유이자 놀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리허설인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은 연극과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생태를 통
해 동물과 인간, 야생과 문명의 ‘공존에
’ 대한 철학적 담론을 끌어오고자 한다. 이
공연은 면역시리즈의 앞선 두 공연의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극단이 받은 영향과 작업들에 대한 기억과 경험의 다큐멘트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야생 : 길들어지지 않는 비둘기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은 극단의 배우들을 비둘기로, 극장을 둥지로 그리고 공연


을 비행으로 비유하며 시작하는데, 이 맥락이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비둘기라는
’ 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절묘하게 일치한다. 극단명과 같은 제목의 이 시는 비둘기를 의인
화하여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 생태를 그리며 문명을 비판한다. 이는
극단이 겪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라던가, 코로나 팬데믹의 실질적인 발생원인인
자본주의와 인간의 이기심이 침범하고 파괴한 자연의 모습과 겹쳐지며 생태환경과
공존의 화두를 연극에 병치한다. 자연생태계가 요구하는 적당한 거리와 경계를 보전
해주지 않은 대가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라는 팬데믹의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은 인간의 탐욕으로 창궐한 코로나19 확산 이후 극장
에서 관객을 만나기 위한 비둘기들(극단 성북동비둘기의 배우들)의 6개월간의 고군분
투기이며 이를 통해 연극의 자생적 생태환경 조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
이후에 시작된 <Oh the Yellow> 연습 장면에서부터 <메디아 온 미디어>의 해외공연
스케줄이 취소되는 과정, 면역시리즈를 기획하며 시작된 <격리동물원>과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의 공연 과정을 시간적 순서로 구성하고, 김현탁 연출이 직접
변사처럼 내레이터로 참여하여 해설과 진행을 맡는다. 무대 위에 전개되는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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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다큐멘터리: 연극>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

의 사회적, 연극적 궤적은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기억이자 경험이며 동시에 바이러스


감염병의 침범으로 무너진 연극생태에 대한 기록이 된다.
다큐멘터리 여정의 시작은 2016년 초연되었던 <Oh the Yellow>의 2020년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재공연을 위한 연습장면에서 출발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인종차별에 주목하여 창안한 이 작품은 원작의 무어인 오셀로를 오늘날로 끌고 와
흑인뿐만 아니라 다른 유색인종 간에서도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과 폭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김현탁 연출은 선과 악의 이분법처럼 구별되는 백인 우월주의
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유색인종 간의 갈등을 여러 영화를 패러디하여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텍스트를 창안하였다. 객석의 관객들은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2016년 만들어진 기존 공연의 장면들의 사이에서 최근의 관련된 이슈들, 코로나의
발원지 우한으로부터 시작된 동양인 차별과 미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흑인차별과
총격 사망 그 외에 일상으로 번진 세대, 성별, 계층과 이념 등으로 번진 차별과 혐오를
떠올릴 수도 있다. 이처럼 비록 그것이 기획의 의도나 목표가 아닐지라도 관객은 자신
이 관람하는 무대 위의 장면들과 무대 밖의 다른 것들을 연결하여 떠올리고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 김현탁 연출의 실험적 무대들이 여러 매체와 무대언어를 끌어들여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고, 다양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자유롭게 열어두
는 것은 랑시에르가 그의 저서 해방된 관객 에서 언급한 “능동적 해석가”로 관객을
‘해방시키는
’ 것과 같다.
이어지는 <메디아 온 미디어>의 연습 장면도 현대인의 욕망이 소비하고 향유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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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부터 비롯된 메디아의 비극을 일부 재현한다. 강렬한 소리와 자극적 이미지
로 이뤄진 <메디아 온 미디어>의 장면들과 코로나 팬데믹 선언으로 이탈리아 축제
스케줄이 전면 취소된 비둘기들의 사연을 교차시키며 내레이터는 “연극도 삶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 현실을 한탄한다. 여기까지 장면들은 면역리허설 3부작을
기획하게 된 배경에 해당한다. 상반기 공연 일정이 모두 취소되고 11월로 변경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비둘기들은 질문한다. 만약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끝났다고 해도 다시 온다면? 연극은 그때마다 멈춰야 하는 걸까? 실제로 코로나19는
현재까지 수차례 확산과 소강상태를 반복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고 학자들은 앞으
로 어떤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팬데믹 쇼크를 일으킬지 모르지만 감염병의 주기와
빈도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극단 성북동비둘기는 연일 공연이
취소되는 무기력한 상황에 순응하기보다는 관객을 안전하게 지키며 공연을 지속할
방법을 찾기 위한 리허설을 감행하며 바이러스 감염병 시대에 대응할 면역력을 키우고
자 한다. 마치 뛰어난 적응력으로 어디에서도 살아가는 야생의 비둘기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 : 방역의 적당한 거리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에서 본격적인 면역리허설을 시작하는 장면인 ‘1. 격리동


물원의
’ 관객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소중한 유리동물로서 연극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
로 설정된다. 원작 <유리동물원>에서 차용한 인물들인 아만다와 로라, 톰은 극단을
운영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꿈과 같은 관객과 마주한다는 자체가 소중하기에 겨우
5좌석으로 한정된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무장한 채 등장한다.
공연의 경제적 손익을 떠나 줄어든 객석만큼 관객 간의 거리를 확보하고, 배우의 비말
이 객석에 튀지 않도록 완전하게 차단하는 방역수칙을 준수하여 무대로부터 물리적으
로 격리된 유리동물(관객)들이 현실에서 다른 말들과 마음 놓고 어울릴 수 있는 안전한
극장을 만드는 것이 이 가족과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초목표이다. 면역리허설 3부작은
작품별로 회당 5명에서 11명의 관객으로 한정하였지만, 공공극장을 위시하여 국내
확진자수 증가에 따라 공연기간 중에도 취소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상연 자체가 지탄
받을 수 있는 실로 큰 위험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은
개막일을 8월 4일에서 13일로 지연하였고, 객석도 19석에서 11석으로 줄였으나 필자의
관람일에는 이마저도 다 채우지 못했다. 관객 없이 연극도 있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만들었음에도 <유리동물원>의 세 인물이 대공황이라는 척박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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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다큐멘터리: 연극> (사진제공: 극단 성북동비둘기)

채 환상으로 도피하듯 <격리동물원>의 리허설도 현 사태가 결코 만만하게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두 번째 리허설의 제작과정을 담은 ‘2. 브레히트 거리두기 효과 극대화를 위한 연출
과 연기술 연구의
’ 장면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문득 떠오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 ‘거리두기를
’ 활용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관객과의 안전한 거리를 구축하겠다는
논문형식의 선언이자 실험이다. 13개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된 <베르톨트 브레히
트의 ‘거리두기’> 공연은 ‘가면 ’, ‘경극’, ‘역사화’, ‘이화효과’, ‘게스투스’ 등 서사극의
주요 개념들을 앞세운 놀이이자 패러디라 할 수 있다. 배우들은 ‘시장에 가면’ 놀이를
통해 “낙타도 있고 박쥐도 있는” 자본주의 시장을 떠올리게 하고, 배트맨과 조커의
가면을 쓰고 경극과 천산갑을 끌어와 중국 우한에서 발현된 코로나가 야생의 경고라는
것을 주지한다. 에피소드들은 코로나19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시의적 내용이지만,
다양한 소재와 이슈가 논리적 관습이나 질서 대신 자유롭고 산발적인 유희들로 난무한
다. 오이디푸스 왕은 코로나 바이러스 왕으로 전유되어 코로나 브로치로 왕비의 가슴
을 마구 찌르고, ‘이화에 월백하고’ 시조를 강의하는 중에 가장으로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료배우를 안타까워하는 이화효과 에피소드 그리고 생활방역 수칙을 상어가
족 동요에 맞춰 율동하는 것은 사회적 몸짓으로서의 게스투스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자기소개 기법의 에피소드에서 ‘mask’를 ‘마르크스로
’ , ‘March’를 나치로, ‘heater’를 히
틀러로 비껴가는 말장난의 언어유희는 김현탁 연출의 작업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
다. 일본의 전통 공연양식 노(Noh)의 영향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도 ‘Noh’를 일본 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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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NO’로 바꾸며 상상적 지시작용으로 일본과의 국제관계에 이어 한국의 친미주
의 성향을 연결하고,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에서 중동의 이란을 연상하고, 다시 이란을
질문화법의 ‘~이란?’으로 도단에 가까울 정도의 말장난을 선보이며 “야생이란? 연극이
란? 면역이란? 리허설이란?”까지 이르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의 재미를 관객
에게 선사한다.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은 전체적으로 가벼운 말장난들과 놀이적 재현으로 구성되
어 있음에도 코로나19라는 현재 시공간의 맥락에 놓여 있기에, 빈번히 사용되던 텅
빈 블랙박스나 검은 의상을 입은 배우들의 넘치는 에너지 이면으로, 관객에게 내재되
어 있는 현실의 공포와 불안이라는 긴장감이 틈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세
공연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리플렛에서도 각 공연의 짧은 소개글과 실제 공연 사이의
간격으로 나타난다. <격리동물원>의 소개글은 유리동물원을 관람한 짐(원작에서 짐
은 로라를 위해 톰이 초대한 직장동료이자 로라가 짝사랑했던 인물이다)의 관람후기
와 이에 응수하는 톰의 댓글로 원작인 <유리동물원>의 줄거리를 제공하는 재치있는
방식으로 공연의 이해를 돕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나 <야생다큐멘터
리: 연극>의 경우 서사극 이론의 논문과 코로나19와 야생동물에 관한 기사를 소개글로
올렸으나 사실 소개된 원작이나 이론 등을 알지 못해도 관극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리플렛을 통한 관극 전의 기대와 실제 공연의 사이에는 일정 부분 간극이
있고 그 사이에서 관객은 능동적으로 공연텍스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면역리허설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이 공연의 후반부는 대면 관객을 위한 방역의
거리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현탁 연출은 객석 간 거리 조절과 무대와
객석을 격리하는 비말 차단용 투명막(<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에서 실제 사
용되었으나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에서는 내레이션으로만 언급된다)과 같은 방역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연출적으로 관객에게 드러내는 ‘사이나
’ ‘틈의
’ 심리적 거리와
미학적 거리까지 슬쩍 끼워 넣고 있다. 이전 작업들에서 보였던 강렬한 이미지나 오브
제 그리고 극단적으로 소진되어 에너지를 발산/전이하던 몸성의 실험과는 달리 가볍
고 재치있는 아이디어와 자유로운 변주의 놀이를 표방하며 관객이 종종 느꼈던 압박감
을 해제하고 관객과의 거리를 줄였다. 다만 이 공연에 등장하는 전작들을 보지 못하고
<야생 다큐멘터리: 연극>을 관람할 경우 발췌된 장면들이 다시 압축되어 몽타주처럼
이어지는 장면들은 빈약한 정보를 가진 관객에게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비약적일 수 있다.

가을과 겨울 사이로 예상하던 2차 웨이브의 빠른 조짐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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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는 바람에 다시 공연취소 메시지가 연일 휴대폰을 울린다. 코로나19의 재난이
길어질수록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고통과 좌절은 훨씬 더 가중된다. 기대보다 늦어
지는 백신 개발과 더없이 피폐해진 일상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 생태계와 단축된 팬데믹 주기에 대한 생태학자들의 경고는 의학적 역학(疫學)을
넘어 사회적 역학(力學)의 행동과 실천까지 염두에 두게 한다. 방역에 있어 가장 중요
한 3밀(密)회피 밀폐, 밀집, 밀접 에 전적으로 위반되면서도 독자적 대응 매뉴얼이
없어 그간 정부와 지자체의 지시와 지원에 의존적이었던 연극은 속수무책으로 공연을
취소당하며 연극/연극인의 사회적·경제적 생태가 얼마나 취약했는지 다시 또 적나라
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임시기획된 온라인 상연을 통해 드러난 한참 뒤떨어진
영상화 기술, 그리고 온통 온라인/영상화에 쏠려있는 지원과 관심들은 마치 비대면
영상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당연한 해결책인가 다시 묻게 만든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면역리허설 3부작이 던지는 질문도 이 지점과 맞닿으며 의미를 지닌다. 연극
의 본질과 가치가 추구하는 철학은 무엇인지, 온라인 매체의 특성과는 어떻게 만나게
될 것인가 등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논의가 연극의 안팎으로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도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연극을
’ 위해서
말이다.

이유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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