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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의 비주얼

드라마투르기로 말을 건
<오셀로>

허순자

2003년 유리 부투소프가 연출한 아찔한 광기의 〈보이체크〉로 첫 선을 보였던 ‘토월정


통연극 시리즈’(이하 토월정통)가 돌아왔다. 프로젝트의 회귀는 오랜 기억을 불러낸다.
거대한 샹들리에를 길게 내린 설치미술에 호수의 서정성이 맞물렸던 그리고리 지차트
콥스키 연출의 〈갈매기〉(2004)는 비평적 반응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같은 해 말, 한태
숙은 특유의 극적 긴장감과 인물의 심리적 불안을 극대화한 〈꼽추, 리차드 3세〉를 위
해 〈보이체크〉의 무대디자이너였던 알렉산드르 쉬시킨을 다시 불러들였다. 토월극장
의 깊이 끝까지 밀어붙인 날선 경사의 기하학적 무대를 위해서였다. 예술의전당(이하
예당)은 시즌 개념이 희박했던 시절, 한 해에 1~3편(지나친 해도 있었다)을 토월정통으
로 올리며 제작극장의 선두 반열에 올랐다. 일본 신국립극장과의 공동 제작인 〈강 건너
저편에〉(2005), 〈야끼니꾸 드래곤〉(2011) 재연은 물론, 〈아가멤논〉(2005), 〈서푼짜리
오페라〉(2006), 〈템페스트〉(2009), 〈벚꽃동산〉(2010) 외,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레퍼
토리로 견실한 몫을 해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2013년 가보 톰파가 연출한 〈당통
의 죽음〉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그리곤 ‘시리즈’라는 꼬리표의 고만고만한 기획전들
(‘명배우’, ‘명품연극’, ‘자유연극’, ‘우수레퍼토리’), ‘SAC CUBE’ 등을 내놨다, 대학로연극으

로 통칭되는 기획과 그다지 차별화 되지 않는 제작들이었다. 토월정통의 귀환이 반가


운 이유다. 비록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 연극 시리즈’라는 틀에 암시된 행
사성 단명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오셀로〉, 무엇인가? 왜인가?

왜 〈오셀로〉(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박정희 연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23.05.12.~06.04)


를 선정한 걸까? 〈오셀로〉(원제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극작 재능이
정점에 달한 1603-4년 쓰인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직전에 내놓은 〈햄릿〉과 바통 터치
를 하며 대안적 주인공은 물론 주제와 내러티브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고한 것이었
다. 새 비극은 자코비언 무대를 들썩이게 했으며, 왕정복고와 18, 19세기를 거치며 인
기몰이를 했다. 탄탄한 구조에 도덕극을 연상시키는 선악의 대조라는 우화적 성격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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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박정희 연출 <오셀로> ⓒ예술의전당 제공

조, 긴박감 넘치는 전개는 관객 어필의 보고다. 주인 접어들면서 〈오셀로〉는 라이머 식의 클리셰나 편견


공은 왕이나 ‘킹카’가 아닌 관객의 눈높이에서 가늠 에서 해방된다. 오셀로를 “햄릿보다 더 시적”인 인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아웃캐스트가 아니라면 편견 물로, 이아고를 ‘메피스토펠레스의 아버지’로 승격
의 대상이 되기 십상인 타자인 것이다. 소수의 인물 시킨 A. C. 브래들리의 언급은 보수적인 서막일 따
을 중심으로,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스케 름이었다. M. R. 리들리는 〈오셀로〉를 셰익스피어의
일의 비극엔 왕권이나 국가적 운명, 우주 질서에 균 “가장 위대한 작품은 아니나, 그의 가장 좋은 작품
열을 가져올만한 거대 주제가 부재한다. 공적 사유 이다”라는 말로 설득했다.
의 자리를 남녀 간의 사랑과 성적 질투라는 사적 영
역으로 넘긴 비극은 일대 비평적 수난에 시달려야
했다. 인종 스테레오타입에의 경원의 시대에
일찍이 “손수건의 비극”이라는 태그를 달아준
17세기 토마스 라이머의 평가 절하는 〈오셀로〉의 그럼에도 20세기 이후 〈오셀로〉의 무대화 여정은
첫 딜레마였다. 가정비극의 멜로드라마적인 특성은 녹록치 않았다. 〈오셀로〉를 낭만주의 극장 무대에
오페라에 더 적합하다는 견해(베르디의 〈오셀로〉의 적합한 셰익스피어의 ”가장 19세기적인 희곡”으로
성공과 무관치 않은)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행히 복잡 지목한 얀 코트의 불길한 예고일까. 동시대적 해석,
한 사회적 기제들의 작동을 묵과할 수 없는 현대에 실험의 여지가 적은 작품은 자체의 미학적 특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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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가 되기도 했다. 가장 취약한 맥락은 인종주의 이라고 장담했다. 맞다. 수없이 많이 읽고, 본 작품
또는 인종 편견과 관련된 것이다. 주류 문화의 소수 이지만 스쳐지나간 광대의 존재를 새롭게 각인시켜
자요, 타자인 주인공을 다룬 작품에서 쟁점을 피하 준 건 이번 공연이었으니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언
기란 쉽지 않다. 작품 속에서 은유적일 수 있는 이 제나 뭔가 새롭게 발견하도록 자극하고, 그것을 다
슈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이 작동되고 있는 사회를 시 태어나게 하는 소명을 지닌 공연은 최선의 안내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연극의 고민은 커진다. 자이다. 근년 〈HIR〉 〈OIL〉, 재공연 〈가족이라는 이
편견, 차별,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표출에 민감한 현 름의 부족〉 등 동시대 해외 문제작들의 무대화에 집
대의 제작은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을 경원시 한다. 중해온 연출의 〈오셀로〉 전격 소환은 그의 검증된
식민지 역사관의 대두, PC의 확산과 함께 유색인의 역량에 근거한 것일 테다. 2001년 광란의 욕조 속
정체성을 검게 칠한 피부로 치환하던 관습적 오류 〈하녀들〉로 격렬한 연출 ‘신고식’을 치른 그는 곧장
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지이다. 최초의 흑인 오셀 박상륭 단편의 난해한 사유를 추상적 몸의 세계로
로였던 19세기 초의 아이라 알드리지, 20세기 중반 치환한 〈평심〉으로 내달렸다. 그리곤 〈철로〉 〈마라/
의 폴 롭슨 등의 예외가 있긴 했다. 하지만 백인 배 사드〉 〈예술하는 습관〉 〈헤다 가블러〉 〈이영녀〉 등
우들이 독점했던 배역은 RSC, NT를 선두로 1970년 수많은 무대들을 거치며 주목할 만한 작업을 해왔
대 말 이후 더 이상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오는 다. 그럼에도 CJ토월극장에서는 ‘처녀’ 연출인 그에
11월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소개될 NT Live의 <오셀로> 게 그곳의 광활한 무대는 도전이다. 20년이 넘는 그
도 당연히 흑인이다). 의 긴 연출 커리어에서 셰익스피어가 (고전이) 처음
‘더블타임’ 전략의 박진감 있는 구조, 성적 질 이라는 점도 의외였다. 따라서 현대극에 전념해온
투의 불행한 결과, 무모한 열정과 증오의 심미적 각 그에게 〈오셀로〉는 기회인 동시에 부담이지 않을
축장인 〈오셀로〉는 우리 연극에서도 중요한 정전의 수 없다.
위치에 있다. 1950년 국내 초연된 〈오셀로〉(여인소 연극을 본향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이름을 알
극장)는 제작 빈도(〈햄릿〉의 1/4 이 채 안 되는)에서 작 린 배우들이 주요 배역에 포진한 공연은 관객을 충
가의 다른 비극들에 뒤지긴 한다. 원작의 영감으로 동한다. 대개는 제법 오랜 시간 무대를 지켜온, 각자
부터 파생된 일부 각색 버전들을 제외하자면, 한국 의 개성과 재능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들이기 때문
연극의 〈오셀로〉 들은 대체로 획기적인 발상보다는 이다. 그런데 거기엔 일말의 염려 혹은 의문도 함께
원작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정통’ 셰익스피어로 한다. 대부분이 일천하다할 정도로 셰익스피어 경
명명되는 것들이었다. 원작의 인종 기원에 준거한 험이 제한적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캐스팅이 용이하지 않으며, 인종 편견에 대한 정서 는 연극무대가 처음인, 대중매체로부터 직행한 ‘신
적 부채에 부담이 적은 우리 무대에서도 이제 인위 데렐라’도 있다. 그를 일약 정극 무대의 히로인으로
적으로 피부를 검게 칠한 오셀로는 불편하다. 데뷔시킨 건 잠재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였을까? 위
험부담을 안고 나선 주요 배역들의 캐스팅은 공연
에 동참한 이호재(브라반티오), 정태화(그라티아노)
연출의 도전과 위험부담을 안은 캐스팅 같은 노련한 시니어 배우들의 존재감으로 어느 정
도의 균형을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
브래들리는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독자라면 〈오셀 들의 현전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엔 조연일 수밖
로〉에 광대가 있는지 물었을 때 아니라고 답 할 것” 에 없는 그들 배역에 한계가 있다. 하여 오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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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경험을 전제로 하는 셰익스피어 연기의 상궤를
벗어난 캐스팅은 관객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려운
불리한 선에서 출발한다. 이 모두는 과연 제작 주체
의 마케팅 전략이었을까? 연출의 타협이었을까?
상황을 인지한 연출과 배우들은 그것을 극복
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할 것임에 섣부른 단정은 삼
가야 하리라. 관건은 새로운 의미의 발현이요, 그것
이 이 특별한 고전을 불러낸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
닌가. 한편, 한때 유행처럼 번지던 ‘슈퍼 개념’의 셰
익스피어 연출 경향들이 진정세를 보이는 작금의
무대이다. 게다가 창조적 해석의 여지가 적은, ‘19
세기적’ 스테이징 미학에 방점이 찍힌 작품이라는
난제를 두고 연출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결론
은 공격적인 실험이나 도발 대신, 현실적인 대안으
로서 시각적 현대성에 중심 추를 두는 것이다. 무대
환경과 의상, 대사와 연기스타일로 환기되는 현대
적 감각을 비주얼 드라마투르기로 내세우는 전략이
다. 새로운 번역으로 언어 자체의 현대성을 기리는
한편, 공연의 물리적, 정서적 형태와 질감으로 도전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박정희 연출 <오셀로> ⓒ예술의전당 제공
하는 구상이다.

공간적 밀도를 거부한 개방 무대

CJ토월극장의 깊이와 높이를 최대로 활용한 날카로운 각도의 무대(와 조명 여신동)는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 전체를 공간의 구획 없이 열어둔 무대는 배우들의 동선 확장
이 불가피해 보이는 형태이다. 이를 테면 〈오셀로〉의 전범처럼 회자되는, 100석 미만
의 디아더플레이스에서 올린 트레버 넌의 1989년 RSC 공연과 대척점에 선 것이다. 객
석과의 교감을 최적화시킨 공간의 밀도가 이 극의 긴박한 구조에 최선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CJ토월로 낙점된 〈오셀로〉는 스튜디오극장의 이점을 포기한 것이었
다. 여기 저기 투명 비닐로 덮은 바닥과 탁자, 의자들이 뒹구는 군대의 막사, 벙커를 연
상시키는 공간은 현대적 조형성으로 말을 건다. 어둡고 축축한 그곳은 터키군의 침공
으로 요약되는 키프로스 섬의 고립을 강조한다. 야만적 군대 사회인 후자에 무게를 둔
무대는 1막의 문명 도시 베니스를 애써 구분하거나 대조시키지 않는다. 물리적 공간의
전이가 인물의 심리적, 정서적 변화를 초래하는 중요한 단서일 때 이러한 선택은 불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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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천장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으로 절제된 조명은 기능을 최소화함으로써
특정 공간의 의미를 새기고자 한다. 오른편 중간 즈음에 놓인 평상은 4막 이전까지는
본래의 용도로, 이후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불행한 침상으로 사용된다. 그곳은 무
대 깊숙이 숨겨져 있어야 할, 그들만의 은밀한 사적 공간이요, 어느 순간 경악할 살인
의 현장으로 변모될 장소이다. 그러나 개방 공간에서 발생하는 연민과 폭력의 장에선
클라이맥스의 긴장이 증폭되기 어렵다. 따라서 엄격한 세련미를 품은 무대는 연출과
무대미술의 긴밀한 소통의 결과로써 유기적 실체에 도달하는 데는 미흡하게 다가왔다.
흔히 오셀로와 이아고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쟁적 현전은 관극의 매력적인 포인
트가 된다. 두 사람의 격렬한 의식의 장에서 발현되는 균형감은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대개는 사악한 지성이 충천하는 이아고에게로 기우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이 공연처
럼 폐쇄적인 군대 환경을 강조하는 것일 때 시선은 그에게로 이동하기 십상이다. 대사
양이나 등장 횟수에서 오셀로(박호산, 유태웅 분)를 압도하는 악마적 매력의 이아고(손
상규 분)는 날랜 몸짓으로 무대를 활보하며, 자신의 계략 속으로 관객마저 끌어들인다.
근년 해외공연들에서 주목되는 바 폭력적 남성 문화에 저항하는 데스데모나와 에밀리
아의 변모는 흥미롭다. 그들이 도발하는 여성 서사는 〈오셀로〉 공연사의 허를 찌른다.
하지만 독립된 자아로서보다 외적 현대성이 부각된 토월의 데스데모나(이설 분)와 에
밀리아(이자람 분)는 전통적인 더블스탠더드의 희생양일 따름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토월정통은 반가웠고, 현대적 감각의 비주얼 드라마트루기로 도전한 〈오셀로〉는 새로
운 것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허순자
연극평론가, 세계 연극 현장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 『글로컬시대의 한국연극』 『연극人
10』 『국제화시대의 한국연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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